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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실용경제| ●성공하는 DNA, 실패하는 DNA(무라카미 가즈오 지음, 이정환 옮김, 명진출판 펴냄) 유전공학의 권위자가 파헤친 인간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 유전자 정보를 담는 DNA는 천재든 바보든 모든 사람이 99.9% 똑같이 갖고 있다. 다만 유전자에 ON-OFF스위치가 달려 있어, 필요한 0.1%의 유전자에 불을 제대로 켜느냐 못 켜느냐에 따라 천재와 바보,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갈린다고 저자는 주장.9800원. ●빅마마의 쿠킹다이어리(이혜경지음, 월간 쿠켄 펴냄) 넉넉한 몸매에 구수한 입담으로 유명한 케이블TV 요리강사인 저자의 요리비법서. 세련된 요리 레서피가 아닌 주부식 레서피로 누구나 멋진 요리를 하고 싶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저자의 맛깔스러운 요리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9500원. ●몸을 살리는 의학, 몸을 죽이는 의학(윤승일 지음, 북 라인 펴냄) 한의와 양의를 아우르는 저자가 한방과 양방, 자연의학이 통합된 새롭고 풍부한 의학지식과 건강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의학적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아주고 있다.1만 5000원. ●남자의 건강(크리스토퍼 루이스지음, 장성준 옮김, 거름 펴냄) 병원 가기 싫어하는 이들이 알아야 할 건강안내서.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밤늦도록 놀고도 싶은 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하면서 건강하게 살수 있는 노하우가 담겨있다.1만 2000원. |유아·아동| ●코끼리가 있어요(고미 다로 글·그림, 방연실 옮김, 청년사 펴냄) 어린 주인공이 가는 어디에나 따라다니는 코끼리 그림책. 아이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항상 그 옆에 있다는 사실을 귀띔하며 아이의 정서를 편안히 다독여줄 듯.4∼7세.8500원. ●딸기나라 딸기우유(이필원 글·그림, 시공주니어 펴냄) 상상의 세계 ‘딸기나라’에서 온갖 소동을 벌이며 즐겁게 사는 아이와 말썽꾸러기 소, 고양이의 이야기. 생생한 질감의 판화 그림이 앙증맞다.4세 이상.8000원. ●새들과 함께 노는 허수아비(페터 존 글, 미카엘라 그림, 유혜자 옮김, 문학사상 펴냄) 평화로운 동물나라에 무시무시한 침입자가 나타나면서 빚어지는 불행한 사건과, 이를 극복해가는 동물들의 모험담. 참된 용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6세 이상.8000원. |초등·청소년| ●날씨 굽는 가마(이영희 글, 장인한 그림, 효리원 펴냄) 날씨 굽는 도공 할아버지, 그에게 원하는 날씨를 얻어가려 아웅다웅하는 사람들. 억지로 날씨를 만들어내려는 욕심쟁이, 선한 마음씨로 날씨를 얻으려는 이들이 벌이는 팬터지 창작동화. 초등생.8500원.
  • [낮은소리] 키 작은 사람들의 애환

    [낮은소리] 키 작은 사람들의 애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행복과 불행은 키가 큰 사람에게도, 작은 이들에게도 찾아드는 법이지만 마음 먹기는 다른 것 같다. 작은 키 때문에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하는가 하면, 이같은 ‘단점’을 잘 이겨내 사회의 거울이 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키가 크면서도 늘이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작은 키를 ‘사회적 장애’로 만들어버리는 주변의 시선, 매스컴과 계급사회 등 각종 시스템이 낳은 비뚤어진 세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책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않는 법’(Don’t judge a book by a cover)이라는 서양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작은 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 또 ‘작지만 야무진 포부’와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를 살펴 본다. “제 나이는 17세이고 몸무게 75㎏에 키 168㎝랍니다. 키가 작아서 고민입니다. 키를 늘일 수 있는지….” “미국 미시간주에서 대학을 마치고 공군에 입대하려 했는데…키 160.4㎝로 반올림 해도 161㎝가 안된다며 불합격 판정을 내리더군요. 정말이지 또 한번 죽고 싶었습니다.” 신체의 키와 관련된 기관·단체 등에 쏟아지는 질문 가운데에서 꼽아본 내용이다. 이와 유사한 걱정 섞인 하소연 사례가 유관단체에 많게는 하루 수십건씩이나 들어오기도 한다. 심지어 신장이 170㎝대이면서도 또래끼리 잘 비교하는 사춘기 청소년, 취업·결혼과 같은 중대사를 앞둔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해오는 경우도 적잖다. 모두 키 순서로 줄을 세우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영웅상’ 탓이다. ●‘숏다리’-그들은 누구 “전 180㎝가 안되면 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은 모두 180㎝를 넘는다고요. 그 정도는 돼야 모델이나 탤런트를 할 수 있거든요.” 한 대학생이 쏟아낸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큰 키라고 여기고, 특히 160㎝에도 못미치는 사람이 들으면 그야말로 속터질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작은 키인가 하는 화두가 나올 법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키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따진다면 같은 나이에서 어떤 수준이냐를 살펴볼 수 있다. 키는 보통 계속 자라다가 고교에 입학할 나이인 17세 이후에는 멈추기 때문에, 그 이전엔 예측 가능한 신장과 17세의 평균신장을 잡아보면 된다. 우리나라 17세 청소년들의 평균 키는 남자 173.6㎝, 여자는 161㎝이다. 그러나 정형외과 측면에서 보면 ‘작은 키’란 또래 100명을 나란히 세웠을 때 작은 순서로 3번째 안에 들어갈 경우를 가리킨다. 키 순서로 출석번호를 매기는 학교의 현실도 작은 키를 탓하는 풍조에 한몫 거든다. 부산에 사는 K(21)씨는 “150㎝로 고교때 늘 1번을 달고 다녔다.”면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해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왔는데, 요즘 작은 키 때문에 고민이 커졌다.”고 귀띔했다. 저신장의 원인은 부모의 키가 작은 경우와 연골무형성증, 골형성부전증 등 뼈나 성장판 연골에 선천적으로 질환을 앓는 경우, 성장호르몬이나 갑상선호르몬 결핍, 만성신부전, 염색체 이상인 터너증후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란’ 꿈꾸는 ‘다윗’ 고려대 서울구로병원 ‘키 크기 클리닉’의 송해룡(49) 박사는 작은 키의 원인과 관련,“부모의 키가 작은 가족력이 전체의 70∼80%”라면서 “이런 경우 결코 질환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나아가 비록 키가 작더라도 스스로 강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등 자기영역을 개척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인도 모르는 유전자 변형으로 보다 심각한 기형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는데, 키가 작다고 해서 자신조차 낮춰보는 것은 또 하나의 죄악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작은 키 모임’(LPK) 김동원(47·자영업) 회장의 사례를 보자. 이 모임은 키 150㎝ 이하인 남녀와 그들의 피붙이를 포함해 회원이 110가족,300여명에 이른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지방에도 비슷한 규모의 모임이 있다. 김회장은 유전자 변형으로 키가 자라지 않는 둘째아들 승철(12·초등학교 6년·125㎝)군을 뒀다. ●“약자 보호해줘야 성숙한 사회” 그는 “회원들은 단지 일상생활에서 불편할 뿐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면서 “제도권 교육체계 등 사회의 냉대 때문에 따돌림당하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극소수일지언정 약자들을 다수가 보호해줘야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과 아들이 겪은 일도 들려줬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교실배정 문제로 학교측과 다퉜단다. 체구가 자그마한 아들이 높은 곳을 오르내리기 힘들어해서다. 그러나 “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돼야 하느냐.”는 항의만 들었단다. 또 아이들끼리 하는 운동에 참여하면 교사까지 “너 때문에 졌다.”는 등의 핀잔이 쏟아졌다. 김회장은 요즘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아는 저신장 법학 전공자를 사회복지사로 고용, 교실 옷걸이와 책상을 비롯해 각종 시설의 높이를 아들처럼 작은 사람을 위해 낮추는 등 ‘인권 되찾기 투쟁’에 열중하고 있다. 글 사진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왜소증 극복할 수 없나 키가 눈에 띄게 작다고 다 환자는 아니다. 증(症)이란 말 때문에 잘못 알려졌지만 왜소증 가운데 질환 비율은 20∼30%뿐이다. 통상 남성의 경우 145㎝, 여성은 140㎝ 이하가 왜소증에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2500여명이 왜소증으로 추정된다. 보통 어린이는 연간 5㎝이상 자란다. 사춘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1년에 4㎝이하로 자라면 성장장애가 의심돼 상담을 받는 게 좋다. 부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거나, 미리 자신의 키를 예측해 성인때 신장이 여아 150㎝, 남아 160㎝이하일 것 같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성인 때의 키를 예측하는 방법은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키+어머니의 키)×0.5+6.5, 여성의 경우 (아버지의 키+어머니의 키)×0.5-6.5로 계산하면 나온다. 전문의들은 “성장 호르몬은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평소에 비해 40배 이상 분비된다.”면서 “이 시간에 수면을 충분히 취하도록 도와줘야 키가 제대로 클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수영과 댄스, 배구, 농구, 조깅, 맨손체조 등 가벼운 운동을 하루 20∼30분씩 1주일에 5회이상 하면 좋다. 같은 이치로 몸을 쭉 펴주는 스트레칭도 권할 만하다. 몸무게로 인해 압박된 척추나 성장판에 적당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평소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구부정한 자세로 컴퓨터나 TV를 장시간 가까이 하게 되면 원래 키 보다 작아보일 뿐만 아니라, 실제 척추가 비뚤어져 척추 질환의 위험도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키 작은 영웅들 작은 키 때문에 속타는 사람이 많지만, 잘 이겨내면 오히려 부러움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역사가 말해준다. ‘얼굴 예쁘고 재주도 있는데 키만 조금 더 컸더라면’이란 말에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깎아내리는 심리가 숨었다.‘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칭찬에 가깝다. 그래서 ‘슈퍼 땅콩’ ‘울트라 슈퍼 땅콩’ 등의 별칭으로 유명해진 이도 많다.‘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과도 통한다. 최근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브리티시오픈 우승컵을 안은 장정(25)은 귀국 인사말에서 “제 키는 151(㎝)이 아니라 153(㎝)이랍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작은 키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이젠 자랑거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에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이어 ‘울트라 슈퍼 땅콩’이라는 별명을 ‘작은 거인’으로 바꿔 불러달라는 애교 섞인 말을 했다.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장정이 그런 별명을 얻은 배경도 작은 키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바로 같은 프로골퍼인 김미현(28)이 먼저 국제무대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슈퍼 땅콩’이란 별명을 선취(?)했기 때문에 엇비슷한 신장을 빗대고 수식어를 덧대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덩샤오핑(鄧小平·1904∼77년)에게는 키 때문에 벌어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각국 수장들과 나란히 서서 대화를 할 때면 깔판을 딛고 마주 봤다고 한다. 1972년 미국 리처드 닉슨(1913∼94) 대통령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던 때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그는 150㎝의 단구로 10억 인구의 중국은 물론, 지구촌을 호령했던 불세출의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프랑스 황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년) 역시 157㎝로 평균적인 서양인에 비해 ‘프티’(Petit·프랑스 말로 작다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유럽을 손안에 넣었던 작은 거인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바우덕이’ 한국문화 대표주자로

    안성 남사당 놀이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명품으로 육성된다. 경기도는 ‘바우덕이’로 잘 알려진 ‘안성 남사당 놀이’를 세계적인 문화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80억원을 들여 상설공연장 건립 및 공연상품 등을 개발키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도는 2007년 말 개관을 목표로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일대 1500평 부지에 1500석 규모의 ‘안성 남사당 놀이 상설공연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특히 외국 관람객들을 위해 공연장 내부에 레이저빔을 활용, 공연실황과 출연진의 대사를 외국어로 자막처리하는 최첨단 영상시스템을 설치한다. 또 줄타기와 땅재주 놀이 등 남사당 놀이 6마당을 영상으로 제작, 보급하고 ‘바우덕이 뮤지컬’을 해외공연상품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바우덕이’로 잘 알려진 안성 남사당 풍물단은 2004 아테네올림픽 대한민국 문화사절단으로 활약한데 이어 한·불수교 120주년 프랑스 행사에 초청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동안 실내공연장이 없어 공연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도 관계자는 “안성 남사당놀이가 경기도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사절단으로 활약하는 만큼 경기도가 적극적인 지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은 지난달 18일부터 프랑스 중서부 지방에서 1개월 일정으로 순회 공연을 펼치며 한국의 전통 대중 문화를 알리고 있다. 풍물단은 보르도, 푸아티에, 클레르몽 페랑 사이의 소도시들을 돌며 50여회의 크고 작은 공연을 펼쳤고 10일부터는 유명 민속축제인 제48회 콩폴랑 축제에도 참여하고 있다.안성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서울광장] 자영업자, 대기업 문어발에 죽는다/이상일 논설위원

    [서울광장] 자영업자, 대기업 문어발에 죽는다/이상일 논설위원

    증권회사를 퇴직한 한 전직 샐러리맨은 먹고 살 길이 막연하다고 하소연했다.“음식점이나 빵집, 구멍가게 어느 것이든 하나 차리려고 찾아봐도 혼자 창업해 성공하기는 어렵다.”며 그 이유로 “대기업들이 모두 직영이나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주위를 둘러보면 그의 하소연이 엄살만은 아니다. 신라명과, 파리바게트 등 제과점은 대기업들의 프랜차이즈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아주 탁월한 제빵 기술자가 아니면 맛도 좋고 제품도 다양한 데다 휴대전화 회사와 연결해 보너스 포인트로 값을 깎아주는 대기업 빵집을 당해낼 수 없다. 음식점은 대기업의 입김이 더 세다.CJ그룹의 스카이락과 VIPS, 롯데그룹의 TGI, 오리온그룹의 베니건스 등 패밀리 레스토랑 수백개 지점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대기업들이 본사 직원으로 직접 경영한다. 외식산업 기업들은 커피점 등 다른 장사도 한다. 외국의 노하우를 들여와 대규모로 영업하는데 그 옆의 가족단위로 운영하는 영세 식당이 이길 재주가 있겠는가. 동네의 구멍가게를 패밀리마트 등 재벌기업의 편의점이 밀어낸 지도 오래됐다. 요즘에는 대형할인점의 영업시간 제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대형할인점의 폐점 시간을 밤 10시 이전으로 앞당기고 여러 차례 어기면 등록 취소하겠다는 입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들이 찬성하는 반면 대형할인점 등은 ‘시장원리 훼손’이라며 반발한다. 대형할인점 영업시간 논란은 자영업자 대책 논쟁의 2라운드에 해당한다. 두 달여 전 정부가 자영업자의 과잉 난립을 막기 위해 미장원의 자격증 도입 등을 거론해 논쟁에 불을 댕겼었다. 물론 경쟁력이 취약한 자영업자는 밀리고 도태되는 추세다. 외국인이 놀랄 정도로 한국에는 자영업자가 과잉 난립해 있다. 경기침체에다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 등 구매패턴의 변화 탓에 자영업자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대 변화와 약육강식 탓으로 돌리기에는 정부와 대기업의 역할에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할인점이 밤새 영업을 해서 동네 구멍가게를 고사시키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의문이다. 대기업은 돈만 남으면 어떤 장사든 해도 좋은 것인가. 대기업이 외국 브랜드를 들여와 영세업자를 밀어내는 모습은 한심하다. 과거에는 두부나 국수 등의 제조업은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대기업 진입이 규제됐었다. 이런 제조업 진입 규제는 내년 말까지 거의 풀리게 돼 있다. 서비스업종에는 그런 중소기업 보호장치도 없다. 빵집, 음식점, 구멍가게에서도 모두 대기업들이 판치는 것이다. 소매시장의 대외개방 후 10년간 외국 할인점에 대항해 국내 유통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요즘 대형 할인점은 하루 24시간 영업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기업 등쌀에 자영업자들이 줄도산하고 지역 경제가 무너지는 외국 예를 답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재벌 2,3세들은 동네 자영업자들의 밥줄을 위협하지 말고 세계로 향했던 창업자의 기상을 본받아야 한다. 직영을 풀어 프랜차이즈로 전환하고 적어도 24시간 영업은 자제하길 권한다. 정부는 미장원 자격제에서 후퇴한 후 제과점 등에서 또다른 진입규제를 마련할 엉뚱한 생각보다 자영업자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하길 바란다. 유럽에서 할인점의 입지 규제가 결국 해외 진출을 독려한 결과를 낳은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북한 ‘결단’ 임박한 듯

    |베이징 김수정특파원|중국측이 2일 수석대표 회의가 끝난 뒤 6자회담 합의문 도출을 위한 4차 수정 초안을 내고, 이 안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면서 타결시기가 도래한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북·미 양측이 3일 오후 3시까지 어떤 훈령을 받느냐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특히 북한측은 1일에 이어 2일에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개념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져 북측의 결단이 타결의 관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힐 “최종안 만족… 北 반응에 달려”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회담 개최 여드레 만에 처음 기자들 앞에 나서 “이견을 최대한 좁혀 결과물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고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지만 폐기는 핵무기 프로그램에 국한돼야 한다는 입장을 동시에 밝혔다. 이 안을 받은 뒤 한국과 미국 일본 3국은 별도 협의를 거쳤고 이후 한·미 수석대표는 동시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전체적으로 좋은 안이며 회의는 생산적이지만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차관보도 “모든 참가국들의 입장이 골고루 반영된 균형적인 안”이라고 평가했다. 한·미가 함께 북한측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란 게 읽혀지는 대목이다. 일단 참가국들은 이번 4차 초안을 최종안으로 잡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 회담 당국자도 “수정이 가해질 수 있지만 그 폭은 좁다.”고 말했다.●러 통신 “오늘 회의 종료될것” 보도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이 베이징 소재 북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3일 회의가 종료될 것”이라고 보도, 북측이 모종이 결심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는 있다. 중국측의 초안은 우리측 송민순 차관보의 말처럼 북·미 양측의 입장을 골고루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모든’ 핵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폐기란 표현으로 미측 입장을 반영했고, 평화적 핵활동 요구와 관련해선 북측 입장을 반영한 표현을 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복귀하는 등 전제조건을 취하면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합의없이 휴회로 끝날 가능성도 힐 차관보는 “이 안을 워싱턴에 보냈으며,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합의 없이 휴회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이날 ‘검려지기(黔驢之技)’란 고사성어를 들어가며 합의를 촉구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검 지방 당나귀의 재주’라는 뜻으로 ‘당나귀의 뒷발질이나 서투른 재주’를 우회적으로 말하는데 ‘재주 없는 사람이 이만큼 하는데 좀 도와달라.’는 (북·미 양측에 대한) 읍소였다는 게 회담 주변의 이야기다.crystal@seoul.co.kr
  • X마스 카드 12만장을 그린 인간 옵세트

    X마스 카드 12만장을 그린 인간 옵세트

      『인간이란 초극(超克)되지 않으면 안될 그 무엇이다』란「니체」의 말에 심취, 바로「초극」을 위해 만 1년 동안에 정확히 12만 3천 장의「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낸 사나이가 있다. 그러니까 하루 평균 337장의 그림을 그려낸 셈. 가위「니체」도 혀를 내두를 만한 초인적 작업량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서 선을 하는 자세로 그려 이 초인의 이름은 한 국(韓 國)(30) - 본명은 봉호(鳳浩)였으나「세상에 나와보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아예 한 국으로 고쳐버렸다는 이 초인의 고향은 전북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에 계시다. 딸 없는 5형제 중 넷째. 국민학교 5학년 때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회람을 시키고 학교 환경정리를 도맡을 만큼「그림 재주는 남에게 알려진 것」이란다. 그러다 철이 들면서부터는「동서고금, 각종각색의 만권서적」을 독파하고 비로소「문학이란 신천지가 눈앞에 보여」시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말을 빌면「일찍이 19살 때 전북대에서 특강을 한 바 있으며 지방방송국에서 장자(莊子), 노자(老子), 논어(論語) 등을 강론」했다는 것. 그리고 전주에서 20세 전후 해 시화전을 두 번 가졌다고. 『지금도 시작(詩作)은 계속하고 있다』며 빽빽이 앞뒤로 시가 쓰여진 대학「노트」10여권을 풀어 내놓는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동양철학에 깊은 흥미를 느껴 법혁경(法革經), 열반경(涅槃經), 화엄경(華嚴經) 등 불경을 읽고 다음엔 노·장 철학, 그러다 27세 되던 해 달마선사(達磨禪師)가 소림사(小林寺)서 9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난 후에 쓰여진「선문염령(禪問拈領)」을 읽고 선(禪)에 심취하게 됐다고. 그림 그리는 자체가 선(禪), 하루에 10시간씩 작업 「정신과 육체의 고도의 조화」가 즉 선이라는 이 청년은 이때부터「무념무상의 경지에서」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좌선(坐禪)이 앉아 견디는 것」이듯「선화(禪畫)란 그림 그리는 자체가 선」이라는 것. 12만 3천 장이란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을 그려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지난해 모 주간지에 4만여 장의「크리스마스·카드」를 손수 그려냈다는 사람의 기사를 읽고 나서부터. 새벽 4시쯤 일어나 호롱불 밑에서 시작, 5시간 그리고 아침을 먹고 나서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낮에는 충분히 쉰 뒤 밤 9시부터 시작, 12시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하루에 10시간을 그림 그리기에 소비한 셈. 최고로 많이 그려 본 것은 하루 820장. 좀「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3, 4백장을 그렸단다. 물론 가끔 쉬는 날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 서울, 전주, 산정, 세 곳을 1년 동안 전전하며(장소를 옮긴 건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서) 그려낸 그림이 모두 12만 3천 장. 가위「인간 옵세트」라 불릴 만하다. 몸엔 온통 채색 투성이고 여름이면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 한지(韓紙)를 손바닥에 붙이고 그려야 했다. 붓을 쥔 손가락마다 굵은 못이 박히고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래도 새 기록을 세우고 싶어 작업을 계속했다. 붓을 놓은 건 11월 초순. 한간방 가득히 그림이 쌓이고서야 붓을 멈췄다. 세어보니 12만 3천 장. 처음엔 흰 종이에 동양화 소재들을 골라 그리고 때때론 추상화나 구상화도 그렸다. 그러나 묵화(墨畵)로 돌아 매란국죽(梅蘭菊竹)만 그렸다. 물론 그림마다 전혀 다를 수야 없고 비슷하게 50~60점. 그러나 가다 싫증나면 또 바꾸곤 했다.「동양화에 입체감을 준 건 내가 사상 최초」라는 이 사나이는『죽(竹)은 곧고 바른 애정의 불변성, 란(蘭)은 유현한 우정과 깨끗한 사랑, 국(菊)은 서릿바람에도 싱싱·굳은 절개, 매(梅)는 눈 속에서도 피는 깊고 높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한바탕 자랑. 「동양화에 입체감」이란 건 매(梅)에 붙은 눈송이를 짙은「화이트」로 점묘(點描), 양감(量感)을 주었다는 얘기. 게다가 이 사나이는「창조만이 예술이라고 할 때 올 데까지 다 온 현대 미술의 마지막 탈출구는 양(量)의 미학」이라며 인간「옵세트」화가 지상의 미학임을 주장하기도. 어쨌든 엄청나게 그려놓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이것들을 상품화해 볼 생각이 난 거다. 그래서 시골처녀 20명을 40여 일간 동원해「예쁘게 상품화」했다.「크리스마스·카드」로 판매하겠다는 것. 이래서 4만 7천 장의「카드」가 모여졌다. 나머지 것들을 모두「카드」화 하고 싶었지만「돈이 모자라서」고향인 산정에 남겨두었다. 머리 뜨거워 쇠베개 베고 선화(禪畵)라면 그림 그린 것으로 족하지 판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으냐니까. 『그림 팔아 공공사업에 쓸 수 있지 않느냐?』며 이익금으로 고향에 도서관을 마련하고픈 게 현재로선 지상의 욕심이라고. 자신을 평해「비비파(非非派)」라고 부르는 이 인간「옵세트」는 아직 미혼-. 『현실세계에 처음 부딪쳐 본 것이 첫 사랑이었는데 결국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결혼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노라고. 학력을 밝히길 굳이 거절하는 이 청년은『「사르트르」가「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것과 같이 그런 류의 권위를 인정하기 싫어』안 밝히는 것이라고.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니까『어렸을 땐「예수」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한국의 장자(莊子)가 되고 싶다』 한시(漢詩)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황혼녘의 산책을 좋아한다. 체중 57kg, 키 172cm. 다소 마른 편인 이 인간「옵세트」는 뒷머리가 뜨거워 베개를 베고 자지 못하고 칼등이나 쇠붙이를 베고 자야만 잠이 든다는 괴짜. 그래도 잠이 오느냐니까『그래야만 잠이 온다』며 아예 베개마저 철제(鐵製)로 특별주문해 만들어 두었으니 올 겨울부턴 푹 단잠을 자게 되었다고-. 이 괴짜의 정신세계를 엿보기 위해 자작시 일부를 소개하면-. 심측(深測)으로 매혹(魅惑)하는 그대 눈 바라보면 악마(惡魔)도 뉘우치게 할 어떤 힘에 이끌려 아름다히 만물(萬物)을 치장하는 맑은 햇살 대하듯 천심(天心)의 원광(元光) 사위게 할 가슴속 진홍(眞紅)의 장미(薔薇)! …… 죽은 자를 되살리고 간 자 죽이던 가이없는 사랑이여! 그 고운 눈의 비밀(秘密)이란 색채(色採)짙은 내 환상(幻像) 빼고나면 그 미쳐난 화인(畵人)이여! 해골(骸骨)쪽들 어수선히 웃고 있을 뿐인가? (『반역자(叛逆者)』첫 연(聯)과 마지막 연 ) [ 선데이서울 68년 12/15 제1권 제13호 ]
  • 다양한 마케팅 펼치는 정준모 덕수궁 미술관장

    다양한 마케팅 펼치는 정준모 덕수궁 미술관장

    “앞으로 영화관만큼 미술관으로 관람객들이 찾아 오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정준모(48)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덕수궁 미술관장. 전시기획뿐만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근대 미술품들의 발굴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미술계에서 ‘전방위’ 활동이 가능한 몇 안되는 재주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8년 일하다 올 초 덕수궁 미술관의 총사령탑을 맡았다. 그가 부임하면서 덕수궁 미술관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적은 예산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미술관으로 관람객을 오게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미술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는 “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탓하기에 앞서 미술문화 소비자들이 많아지도록 미술관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정부 지원과 기업 후원을 많이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미술관의 파워를 키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미술관 체험 보고서 만들기’‘수화로 읽는 미술감상’ 등 기발한 프로그램이 거의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직접 지난 6월부터 일주일에 한번 낮 12시∼오후 1시까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전시장을 돌며 작품을 설명해주는 수고로움을 마다 않으며 ‘웰빙 샌드위치가 있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입장료만 1만원인데 샌드위치까지 곁들여 불과 1만 2000원을 내면 된다. 가족들을 불러 뽐내며 전시회를 설명할 수 있도록 한 ‘아빠는 미술박사´ 프로그램에는 미술에 관심있는 30명이 초청돼 가족 몰래 미리 교육을 받았다.“경기 위축으로 어깨에 힘빠진 아빠들의 기를 살려주고, 가족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했다.”고 했다. 그는 “그림은 알고 보면 즐겁다.”면서 “우리 미술교육이 그리는 교육만 시켰지 보는 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신한은행과 제휴, 아름다운 카드 고객이 신용카드 결제로 덕수궁미술관에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기부금에 대한 기대보다 미술관도 기부가 필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외국 미술관들은 대부분 기업, 개인의 기부금으로 작품을 구입한다.”며 “우리나라도 미술관에 대한 활발한 기부가 이뤄져야 좋은 작품을 구입, 좋은 전시회를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차는 어떻게 인간 곁으로 왔나

    중국 천목산에는 원숭이들을 ‘희롱’해 채다(採茶)해낸 원우차(猿愚茶)라는 차가 있다.500∼600년 된 차 나무는 그 키가 매우 크다. 원숭이들은 그 차나무에 올라가 맛있는 찻잎을 따먹고 살았다. 도저히 차를 딸 재주가 없던 사람들은 원숭이들에게 돌멩이 세례를 퍼붓고 약을 올렸다. 사람들의 돌멩이 세례에 화가 난 원숭이들은 차나무 가지 중 오래된 것을 꺾어 사람들에게 던졌다. 사람들은 또 일부러 원숭이들을 다른 나무로 옮겨가게 했다. 그래야 새로운 차나무 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숭이들이 꺾어 던진 차나무 가지의 찻잎을 모아 귀한 차를 만들어 팔았다. 그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명차로 손꼽히는 원우차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그 답은 중국의 윈난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윈난성 사모지구 진위안현 애뢰산에는 2700년 된 차나무가 ‘생존’해 있다.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인 것이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역사와 역사를 넘어 2700년을 살아온 차나무가 있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듯한 ‘품세’(品勢)를 가진 그 차나무는 오랫동안 한 마을을 지키며 ‘공존’과 ‘화해’의 다리를 놓고 살아온 촌로의 후덕함을 그대로 닮아 있다. 넓고 넓은 긴 팔을 벌리고 세상의 온갖 번뇌를 다 담아낼 듯한 품세를 지닌 그 차나무를 중국에서는 ‘과로’(瓜蘆)라고 부른다. 오래고도 오랜 차나무란 뜻이다. 차나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 중 인간에게 그 효용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이다. 나무, 잎, 꽃, 향기 등 식물로서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식용으로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기 때문이다. 육우는 ‘다경’에서 “차나무는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상서로운 나무다. 나무의 높이는 한 자나 두 자나 수십 자에 이르기도 한다. 파산과 협천에는 두 사람이 함께 껴안아야 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차나무는 가지를 베어야만 잎을 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차의 근원은 어디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슴없이 중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말은 사실 적당하지 않다. 그것이 차나무에 대한 근원인가, 아니면 하나의 음료문화의 근원인가를 먼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학적 특성으로서 차의 근원을 따진다면 중국이 될 수 없다. 지정학적으로 차나무는 북위 42도에서 29도인 남아프리카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고 식물학적으로는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로 약 6500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라별로 살펴본다면 중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스리랑카, 코카서스, 남아메리카 일부 등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존재로 그 근원을 따지기 매우 어려운 대목인 것이다. 차는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존재해 왔다. 단순히 차나무와 관련된 식물학적인 특성으로 그 근원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차를 인류의 삶과 결합시킨 문화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그 발원지이며 근원지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하는 차의 기원은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다.‘신농씨설’(神農氏說),‘편작설’(篇鵲說),‘달마설’(達磨說),‘기바설’(嗜婆說) 등이 그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이 나름대로 ‘신화’(神話)적인 전설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차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다. 차의 기원은 그 약리성에 먼저 바탕을 둔다. 지금처럼 병든 인간의 육신을 다스릴 수 있는 약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인들은 자연에서 그 치료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차의 발견과 보급 역시 마찬가지로 그 약리성에 바탕을 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차를 발견해 인류에게 전한 사람은 중국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전설의 삼황오제중 한 사람인 ‘신농씨’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신농씨는 백성을 교화해 농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인간에게 불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해서 ‘화덕왕’(火德王) 또는 염제(炎帝)라고도 한다. 그는 ‘농업의 신’답게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풀들을 씹어서 맛을 본 후 그 약성을 가리고 약을 만들어 백성들을 치료했다. 신농은 뱃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배를 갖고 매일 산하대지를 누비며 하루에 100가지가 넘는 풀을 맛보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산을 누비며 갖가지 풀을 맛보던 신농은 그만 독초에 중독되고 말았다. 지금껏 풀잎을 맛보며 크고 작은 독초에 중독될 때마다 해독약을 만들어 먹었던 신농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그가 만든 갖가지 해약도 소용이 없었다.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신농은 향긋한 냄새가 나는 나뭇잎을 따서 먹었다. 뱃속으로 들어간 그 녹색잎은 신기하게도 들어가자마자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돌며 뱃속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녹색잎이 위장을 돌며 독초의 독성을 깨끗하게 청소해 버린 것이다. 신농의 배는 곧 씻은 듯이 나았다. 그뒤 신농은 녹색잎을 품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백초를 맛보며 독을 만날 때는 꼭 그 녹색잎을 마시고 해독했다. 신농은 신비로운 약효를 지닌 그 녹색잎에 대해 ‘검사하다’란 뜻을 가진 ‘사’(査)라고 불렀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후난성 주저우시 옌링현 당전향 녹원파에 신농이 누워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차릉’(茶陵)이 있다. 청나라때 크게 중수했다는 차릉은 베이징의 자금성과 그 격을 같이할 만큼 정성들여 지어졌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신농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를 꺼린다. 신농이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시조 신농은 4500여년전 지금 중국 후베이성 쑤이현 역산에서 태어난 실제 역사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중국의 위대한 문자학자 뤄빈지(駱賓基)는 갑골문자보다 1000년 앞서 동이족 수장이라는 ‘신농’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해 중국 문자학회를 들끓게 한 적이 있다. 만약 뤄빈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차 문화의 종주국은 중국이 아닌 우리 ‘동이’(한국) 문화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가 하나의 어원으로 자리잡은 것은 8세기경 당나라 때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 ‘차’는 ‘도’( )로 불리어졌다. 중국에서 ‘다’는 산스크리스트 글자로 소리나는 대로 표현하면 ‘투’(tu)로 발음된다. 그 발음을 한문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도’였다. 전한시대까지 ‘차’는 ‘도’자로 쓰여졌다. 글자는 ‘도’로 썼지만 발음은 ‘차’로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후한때부터 ‘도’자의 한 획을 떼어버리고 그대로 ‘차’(茶)로 썼다고 한다.‘도’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쓴맛 나는 풀’이 된다.‘쓴맛 나는 풀잎’이라는 것은 차가 지금처럼 음용으로서보다는 약용으로서 그 가치가 더 높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도’가 아닌 ‘차’(茶)라는 글자가 담고 있는 뜻도 무궁무진하다. 차는 한자의 초(艸=草)와 나무(木)사이에 사람(人)이 있는 모양으로 상형화되어 있다. 또 다르게 풀이해 본다면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상서로운 ‘풀’(草)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좀더 한발짝 나아가 본다면 ‘차’라는 글자가 가진 상징성과 효용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육우는 ‘다경’에 이같은 차의 명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차는 가(價), 설( ), 명(茗), 천( )이라고도 하는데, 주공은 ‘가’라고 하는 것은 쓴차(苦茶)라 했고, 양집극은 서남쪽 사람들은 차를 ‘설’이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곽홍농은 일찍 딴 것을 ‘차’라고 하고 늦게 딴 것을 ‘명’이라 하며, 혹은 전부를 ‘천’이라 할 뿐이라고 했다.” 신농이 독을 치유할 수 있는 상시적인 약으로 복용했다고 하는 ‘차’는 그후 중국인들에게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며 귀하게 취급되었다. 중국인들은 ‘귀하디 귀한 차잎’과 함께 파·생강 등 귀한 약재들을 혼용해 죽을 끓여 먹었다. 이같은 음다풍속은 차의 약리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차가 하나의 음용으로 상용화되기 전에 독특한 음용법을 개발해 ‘귀한 단방약’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차의 식물학적 학명은 차나무과(Theaceae) 차나무속(Thea) 차나무(Sinensis)로 6500만년 전에 출현한 사철 푸른 다년생 종자식물이다. 나뭇잎은 약간 두꺼우며 윤기가 있고 긴 타원형으로 질기며 그 끝은 뾰족하며 잎 둘레 주위에 톱니가 있다. 땅속으로 바로 깊이 들어가는 직근성이다. 신기하게도 차나무는 인간이 가장 최적의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곳에만 분포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사계절이 존재해야 하고, 온도 날씨 강우량 등이 적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을 가진 지역대가 바로 인간의 가장 쾌적한 환경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오랜 결혼풍습중에 봉채(封采)라는 것이 있다. 봉차(封茶)라고도 불렸던 이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결혼하기 전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차를 보냈다. 봉차를 결혼 전에 보내는 것은 차나무가 가진 성질대로 평생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나무는 성질이 씨앗으로 심어야만 잘 자라고 직근성으로 세근(細根)이 없기 때문에 옮기면 잘 자라지 않아 한번 결혼하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정절을 의미한다. 또한 씨앗을 따로 심어도 한 나무로 합해져 나오므로 신랑과 신부가 천생연분임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결혼예물의 봉채로 차 씨앗을 보내는 것만큼 완벽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어졌던 봉차의 풍습은 일본에도 전해져 지금도 혼숫감에 차 씨앗 2개를 신부집에 보내기도 한다. 차나무는 또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겨울에 순백의 하얀 꽃잎을 피운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꽃과 열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는 점이다. 마치 구름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운화’(雲花)라고도 부르는 차의 꽃잎은 5장으로 차의 다섯가지 맛인 고(苦), 감(甘), 산(酸), 삽(澁), 함(鹹)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말을 풀이해 보면 너무 인색하지 말고(鹹), 너무 티(酸)내지도 말며, 복잡(澁)하게도, 너무 쉽고 편(甘)하게도, 어렵게(苦)도 살지 말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차가 가진 깊은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대목이다. 신농에 의해 ‘발견’됐다는 차가 인간과 접목된 것은 바로 그 약리성 때문이다.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는 중국의 명차 중 하나인 몽정차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수행을 하다 그만 중병에 걸린 늙은 스님이 있었다. 여러 가지 약을 써봤으나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인이 스님에게 말했다.“춘분 전후로 봄 천둥이 처음 칠 때 몽산에서 증정차를 제다하여 그곳의 물로 달여 마시면 숙환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노인의 말을 들은 스님은 몽산에서 제일로 치는 상청봉에 석실을 짓고 봄 천둥이 치길 기다렸다. 마침내 봄 천둥이 치자 그 스님은 노인이 가르쳐준 방법에 따라 몽정차를 채집했다. 그 차를 달여서 복용하자 과연 병이 낫고 눈썹도 검은색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었다. 신체도 건강해져서 그 모습이 30여세로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차를 병을 낫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려는 약용 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중국의 다성인 육우는 ‘다경’을 지을 때 차의 약리적인 가치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육우는 “만약 열이 나서 갈증이 생기거나 고민이 있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깔깔하거나, 사지가 번거롭거나, 뼈마디가 쑤시면 네댓 모금만 마셔도 제호 감로와 더불어 손색이 없다. 또한 차를 음료로 삼은 것은 신농씨로부터 시작되어 주공에 이르러서 널리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초기 양쯔강 하류지역 차산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음용됐던 차는 수나라시대 대운하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개화’를 하게 된다. 초의 스님은 이같은 차의 역사에 대해 ‘동다송’에 “천인과 신선 인간세상 귀신까지 다같이 사랑하고 아끼었으니, 그대(차) 타고 난 성품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함을 알겠구나. 차의 신 신농도 일찍이 너(차)를 맛보고 식경에 실었나니…제호와 감로라 불리며 예부터 그 이름 전해왔다네.”라고 찬탄하고 있다. 차에 대해 이런 말이 예부터 전해온다.“새는 날고 짐승은 달리고, 사람은 입을 벌려 말한다. 이 셋은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마신다는 것은 그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목이 마르면 장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
  • 웰컴 투 동막골-포연속에 핀 ‘동화같은 인간애’

    남북의 대치상황을 모티프로 한 영화, 더군다나 그 장르가 휴먼드라마라면 으레 몇가지 편견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왠지 신세대 코드와는 엇박자를 탈 것같고, 어쩐지 감정 과잉의 신파로 부담을 줄 것도 같고…. 새달 4일 개봉하는 ‘웰컴 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은 단언하건대 그런 편견들은 접어둬도 좋겠다. 동심을 일깨우는 동화같은 화면, 맺힌 데 없이 순도 높은 드라마가 사이좋게 손잡은 휴먼드라마다. 감독과 배우의 이름값으로 작품의 기대치를 따지는 관성으로 보자면 영화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게 사실. 관객의 압도적 소구대상인 톱스타가 버티고 있지도, 덮어놓고 신뢰를 보낼만한 인기감독을 내세우지도 못했다. 영화는 ‘맥도날드’‘교보생명-최민식편’ 등 CF를 찍어온 박광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정재영-신하균-강혜정의 ‘3인4각’ 호흡맞추기는 그러나 한순간도 균형을 잃지 않고 절묘한 화음을 빚어낸다. 딴판인 세 배우의 개성을 파열음 없이 매끈히 톱니를 물린 건 전혀 초보티가 나지 않는 감독의 연출 역량 덕분이다. ●한순간도 균형 잃지않는 절묘한 화음 장진 감독 원작의 동명 연극을 모태로 한 작품은,6.25전쟁의 포연 속으로 관객을 밀어넣되 마구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넉넉한 화면을 풀어헤치며 “긴장할 것 없다.”고 최면을 건다.‘아이들처럼 막 살라.’ 해서 이름붙여졌다는 첩첩산중의 작은 동네 동막골. 정치적 이념은 커녕 전쟁이 일어난 사실조차 모르는 순박한 산골주민들 사이에 우연찮게 국군과 인민군, 비행기에서 추락한 미군 등 외부인들이 섞여들어 엮는 에피소드들로 드라마는 살을 붙여간다. 연극무대에서 이미 인기검증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의 가장 큰 재주는 쉼없이 늘어놓는 재담이다. 수류탄을 보고도 “어디다 쓰는 돌멩이냐?”고 묻는 주민들의 무공해 대사 퍼레이드로 코미디의 질감을 부풀려 박장대소를 이끌어내기 일쑤. 시점이 어느 주인공 하나에 고정되지 않는 ‘산골 시트콤’같은 드라마는 이렇듯 돌발성 코믹대사들로 관객들을 이완시키며 중반 고개를 훌쩍 넘어간다. ●돌발성 코믹대사 ‘산골 시트콤´ 같은 드라마 가까스로 살아남아 떠도는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비정한 전쟁논리를 못 견뎌 탈영한 국군 표현철(신하균) 일행도 어찌보면 드라마의 요철을 일궈내기 위해 투입된 큼지막한 ‘장치’라는 느낌이 들 정도. 기실, 기자시사회장에서 “배우들보다 극중 소품이나 장치 쪽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같다.”는 정재영의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그러나 대중의 시청각적 소구점을 정확히 꿰뚫는 CF출신의 감독은, 소품처럼 흩뿌려 놓았던 인물들을 감동의 두름에 하나로 꿰어내는 센스도 놓치지 않았다. 강원도 평창의 수려한 풍치를 배경으로 개그쇼 같은 언어유희를 즐기던 관객들은, 총부리를 겨누던 수화-현철의 화해과정조차 몽롱하게 지켜보게 된다. 영화의 최대 동력은 팬터지. 수화-현철의 갈등이 우정으로 반전하는 상황에도 만화같은 팬터지 기법(곳간의 옥수수가 수류탄에 터져 천지사방에서 팝콘이 흩날린다)이 동원됐을 정도다. 번번이 인물들의 대치·긴장관계를 풀어주는 귀엽게 실성한(?) 마을소녀 여일(강혜정)의 캐릭터도 그렇다. 현실과 비현실을 무중력 상태로 넘나드는 다분히 환상적 인물로 웃음과 감동을 끌어낸다. 암팡진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조연의 이미지를 털기 어려웠던 강혜정을 재발견하는 건 영화의 큰 수확이다. ●조연이미지의 강혜정 재발견이 큰 수확 많은 장점을 아우른 영화는 그러나 속도조절에는 실패했다. 하염없이 느리게 굴러가는 이야기에 조급증이 난다는 평들이 적잖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엄청나게 공들인 막판 폭격신은 보기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하지만 감상의 맥락을 급전직하시켰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5분 데이트 (11) - 강형숙

    5분 데이트 (11) - 강형숙

      『전 외교관 부인이 될래요』 미스·모의(模擬)유엔총회 강형숙(姜馨淑)양 『직접 제가 외교관이 되는 건 싫고요. 외교관 부인으로 뒤에서 뒷바라지 해주고 싶어요』 하는 이 깜찍한 아가씨 강형숙양은 방년 20세. 외대 영어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교동국민학교, 숙명여중, 경희대부고를 거친 재원으로 어학에는 재주가 있어 중·고교 시절부터 꼭 1등 차지. 대신 수학, 역사 등이 싫었고. 『남자친구는 많이 사귀어 보았지만 아직 맘에든 애인감은 없어요. 저와 목적하는 바가 다르거나 똑똑해 보이지 않으면 같이 앉아 말할 기분조차 안나요』 그래서 남학생들 사이에선 약간「콧대 센 아가씨」로 통하는 모양이나 붙임성은 좋다. 한두 번 집안을 통해 중매가 들어왔으나「전적으로 제가 결정할 문제」라 선도 안보았고. 고등학교 때 별명은「새침이」. 중국요리「깜붕기」가 먹기 좋고 겨자든 초밥은 딱 질색. 식모아줌마가 시골간 틈에 꼭 한 번 밥을 지어봤는데 가까스로 먹을만한「61점짜리」가 되었고. 저녁엔 8시, 9시면 잠이 든다는 초저녁파. 그래서 엄마가『시집가서 남편 늦게 돌아오면 어쩔래?』하는 꾸중을 들어도『잠 안오는 약 먹고 기다리죠』하는 정도. 대신 새벽 3, 4시면 깨어 일어나 中·日 등에 사귀어 놓은「펜·팔」에게 편지를 쓴단다. 「펜·팔」하고 있는 사람 중 대만에 있는 대학교수 한 분은 자식이 없다고 강양을 자기 친딸처럼 생각, 지난번 대학총학장회의에 참석차 한국에 왔을 땐 집에 들러 강양의 부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 묵어가기도. 「퀴즈」를 하나 내라니까『달이 물에 비치면 왜 커보이나?』알아 맞추란다. ※ 뽑히기까지 지난 11월 21일 열린 제7회 모의UN총회엔 70여명의 여대생들이 참가, 시선을 끌었는데 이중에도 특히 한복차림의 귀여운 사회자 강양의 재치있고 애교있는 사회는 이날 남학생들에게 인기의 초점이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미스·모의UN총회」. 지난번 외대 영어극『다리 위에서의 조망』에서도「히로인」을 맡은 바 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한국에서 가장 큰 개「용(龍)」전하

    한국에서 가장 큰 개「용(龍)」전하

    거인들과 함께 사는 견공의 현주소 체중 62kg, 키는 1미터 20센티, 비원(秘苑)안 김일(金一)도장의 한 식구 우리나라에서 제일 몸집이 큰 거인들이 모여 사는 곳엔 집 지키는 개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등치가 큰 거구였다. 숲이 무성한 서울 종로구 와룡동 1번지 비원(秘苑) 속 깊숙이 자리잡은「프로레슬러」김일도장의 선수들 숙소인 신선원전을 버티고 있는「용」이 그 개 이름. 몸무게 62kg, 키 120cm의 수컷. 송아지하곤 비교가 안된다.「프로·레슬러」홍무웅씨가 주인이다. 천규덕, 박송남, 박성모 등 체구가 당당한 23명의 김일도장 선수들의「보디·가드」이기도 하다. 이름처럼 용같이 빠르고 힘이 장사란다. 하루 한 끼의 식사(?)는 쇠고기 4근이 모자라는 선수 한 끼의 식사와 맞먹는 대단한 식욕이다. 종자는 토사견으로 우리나라에선 2번째 가는 싸움꾼이다. 지난 9월 사직공원에서 열린 전국 투견대회에 나가 전국에서 뽑힌 1백여 마리의 토사견과 겨뤄「챔피언」「삼손」에 27분만에 TKO를 당하기는 했지만-. 한 마리 덤얹어 7만원에 사들인 것,「레슬러」들과 함께 훈련도 하고 「삼손」은 그 당시 역시 홍무웅씨의 소유였었다.「삼손」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챔피언」을 만든 홍선수였다. 투견대회가 열리던 날 홍선수는 상대편인 이「용」에게 매력을 느꼈다. 우선 힘이 세고 훈련을 잘 시키면 곧「챔피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그래 소유자였던 김모씨에게 또 다른 개 한 마리를 덤으로 주고 7만원에 사들였다. 농구공만한 크기의 머리에 털 색깔이 누런 이「용」에 대한 훈련을 시켰다. 내년엔 가장 무서운 싸움꾼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컹」하고 짖어대는「폼」이 사자같고 한 번 짖는 소리가 온 비원을 진동시킨다. 이 개가 처음 신선원전에 들어온 후 담 너머 주민들은 웬 괴수가 나타난 줄 알았다는 얘기들이다. 무뚝뚝해 꼬리 한번 흔들지 않지만 23명의 주인들은 냄새만으로도 잘 구별한다. 아침 6시면「레슬링」선수들과 함께 비원 뒷동산에서 훈련을 함께하다 중량급 선수가 개줄을 허리에 감고 잡아다녀도 힘자랑은 개가 더 세단다. 거뜬히 끌고 나간단다. 2m의 담을 뛰어 오르는 재주꾼이기도 하다. 신선원전에서 2백m쯤 떨어진 도장에서 하오 3시부터 선수들 운동시간이 시작되면 돌아오는 6시까지 혼자 숙소를 지킨다.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신선원전, 하오엔 큰 집에서 쇠창살이 세로 난 울안에서 엎드려 햇빛을 즐긴다. 선수들이 연습하는 걸 구경하러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람을 오는 동네 꼬마가 있는데,「용」군은 이 꼬마와 각별히 친하게 지낸다. 꼬마를 바라보는「용」의 눈은 보통 때와 달리 아주 자비롭고, 꼬마니까 봐준다는 식의「포즈」를 취한다.「용」이라는 이름의 음을 따라「용용죽겠지」하며 놀려도 용은 거견(巨犬)답게 이순(耳順)의 경지를 보여준다. 거구의 선수들이 돌아오는 날엔 거구가 우습게「용」은 좋아 날뛴다. 선수들 또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개가 아니면 어디 여기에 합당이나 하냐는 얘기들이다. 엎드려 있는「폼」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나오는 모습과 흡사하다. 거구답게 의젓하다. 한데 1년에 두어 번 다녀가는 김일선수만은 알아보지 못한다.『거물들의 우두머리(?)를 몰라보는 고얀 놈』이라는 얘기다. 밥은 한 톨 안주고 고기와 뼈를 먹이는데 쇠고기는 씹지도 않고 그냥 꿀꺽 식은 죽 먹기다. 김일도장은 지난 65년 12월 김씨가 일본에서 돌아와 비원 안에 도장을 차렸다. 일정 때 지은 건물에 지금은 23명이 알통을 키우고 있다. 유리창이 깨져나가 엉성한 건물이지만 웃통을 벗고 땀을 흘리는 선수들은 말 한 마디 없다. 공기 좋고 인적 드물어 운동하기엔 가장 좋은 장소라고 모두 자랑들이다. 도장에서 북으로 좀 떨어진 더 깊숙한 곳이 신선원전, 선수들의 숙소다. 방 4개에 옛날에는 궁중에서 썼을 집이 마당엔 빗질이 깨끗하다. 홍무웅선수가 숙소 책임자다. 선수들도 개도 전부「자이언트」들, 그야말로 얼씬하지 못하는 거구들의 집. <최광일(崔光一)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21일 TV 하이라이트]

    ●연중기획 교육이 미래다(EBS 오후 11시40분) 내 아이가 부자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기 전에 정직하게 돈을 벌고,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 줄 알도록 가르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어린이 경제교육 전문가인 김정훈 교수의 사례를 통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경제교육에 대해 알아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1시25분) 캐나다 한인 유학생이 코카인을 통조림 속에 숨겨 들여오다 긴급구속됐다. 이 유학생은 통조림은 물론 코카인 운반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최근 국제 마약조직이 마약 운반을 위해 일반인을 이용하는 사례가 자주 있어 이 유학생도 피해자일 수 있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시장실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자 용빈은 문틈으로 시장실을 훔쳐본다. 철호는 시장실 기물을 때려 부수면서 홍섭 때문에 박 의원이 자기까지 의심한다며 앞으로는 봐주는 일이 없을 거라 한다. 이에 홍섭이 계속 철호를 자극시키자 철호는 너 하나쯤 밟아버리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고….   ●유쾌한 두뇌검색(SBS 오후 7시5분) 신비한 동물의 비밀을 두뇌검색에서 벗긴다. 정글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가 왕일 수밖에 없는 놀라운 비밀은 혀에 있다고 한다. 혀의 비밀을 살펴본다. 또 대한민국 최고의 재주꾼으로 통하는 달이가 스튜디오에 등장해 놀라운 재주를 선보이고, 귀여운 강아지들도 총 출동한다.   ●피플 세상 속으로(KBS1 오후 7시30분) 전국 팔도를 무대 삼아 자신의 노래를 알리는 박상원씨.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이건만 무거운 테이프 보따리에 음향기기를 메고 장사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한시도 몸을 쉴 수 없는 장돌뱅이로 살며 보낸 세월, 힘들 때도 많았지만 가수의 꿈만은 버리지 않았다. 장돌뱅이 박상원씨의 인생을 엿본다.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미르와 가온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없는 아라는 ‘피터팬’동화책의 웬디 대신 뱃머리에 묶이게 된다. 아라를 찾아 나선 미르네 가족은 채석장에서 암흑전사들을 만나지만, 해가 저물며 암흑세계로 가는 블랙홀이 열리고 아라는 동화책 안에 갇힌 채 암흑세계로 끌려간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은 대단한 기인(奇人) ‘조선왕조실록’엔 토정의 풍모를 전해주는 몇 가지 기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이라 불렀다. 이지함이 거처하던 곳이 토정(土亭)이었기 때문이다. 토정은 일찍이 한양의 마포 항구(麻浦港口)에 흙을 쌓아 언덕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아래 굴을 팠으며 위에는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큰물이 졌을 때도 토정이 만든 흙 언덕은 언제나 그대로였다(실록, 선조 수정 11년 7월1일 경술). 토정은 여느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어 보이는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특히 발이 무척 컸다고 한다. 토정의 얼굴은 둥글고 검은 편이었고 눈빛이 강렬했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맑아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토정은 보통 선비들과는 차림새도 확연히 달랐다. 그는 짚신을 신고 죽립(竹笠)을 쓴 채 걸어 다녔다고 한다. 초립(草笠)에 나막신을 신은 구부정한 모습이었다는 진술도 있다. 그 당시 선비들은 당연히 조랑말이라도 타고 다녀야 되는 줄로 알았고, 항시 의관을 정제했다. 고급스러운 말총으로 꾸민 큰 갓을 쓰고 가죽신을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토정은 이런 풍습을 도외시했으므로, 그가 길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기 마련이었다. 담화를 나눌 때도 토정은 수수께끼나 농담을 즐겼고,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다(실록, 선조 수정 6년 5월1일 경진). 한마디로, 토정은 격식을 초월했다. 혼례를 치른 다음 날에도 의외의 행동으로 가족과 친지들을 놀라게 했다. 모처럼 새로 지은 도포를 입고 외출한 토정은 어느 다리 밑을 지나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세 명의 거지아이를 만났다. 토정은 입고 있던 새 도포를 벗어 세 폭으로 찢어서 그 아이들에게 입혀주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종일 바깥에서 일을 보았다. 토정은 이처럼 호방한 성격이었다. 도인의 면모를 보인 적도 많았다. 그는 열흘 정도는 굶어도 거뜬했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냉수 한 모금 마시는 일이 없었다. 요즘의 건강상식에 크게 어긋난 행동이었다. 토정은 간혹 천리 길을 걸어 어딘가를 바람처럼 다녀오기도 하였다. 배를 타고 방랑하기를 좋아해 제주도를 여러 번 찾았다는데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거센 날을 용케 피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간혹 여행 중에 기생들이 별의별 수단을 다 써 유혹했으나 한 번도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토정은 정욕마저 완전히 끊어버린 이를테면 속세의 신선이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설화도 그래서일까. 토정에겐 앞일을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장인에게 화가 닥칠 것을 미리 알았다 한다. 명종 초년의 일이다. 하루는 토정이 그 부친에게,“아내의 가문에 불길한 기운이 있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미칠 것입니다.” 라고 아뢴 뒤 식구들을 이끌고 서둘러 한양을 떠났다. 바로 그 다음 날, 토정의 장인은 사화에 연루돼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일말의 의문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실록’은 토정의 예언 능력을 무척 칭찬한다. 한 번 사람을 만나보면 그 성품은 물론, 앞날의 길흉까지 환히 알아 맞혔다 한다. 토정은 이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오래 전에 사태를 예언했다는 구비설화가 남아 있다. 만년에 그는 조선 팔도를 두루 유람했다고 한다. 당연히 천하명산 금강산에도 들렀다. 하루는 날이 기울자 토정은 지친 몸을 이끌고 암벽 위에 서 있는 초라한 암자를 찾아갔다. 워낙 피곤해서 제대로 자리를 펴고 누울 겨를도 없이 방안에 들어가 한 쪽 벽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었다. 조금 있다가 꿈속에 스님 두 분이 나타났다. 그들은 병풍과 자리를 깔며 부산을 떨었다. 토정은 스님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러 산의 산신령들이 모여 장차 다가올 난리를 의논할 거라는 답변이었다. 과연 전국 명산의 산신령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회의를 열었다. 여러 주장이 난무했다. 그러자 금강산 산신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왜놈들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을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최선을 다해 놈들을 물리치자고 주장했다. 놀란 토정은 퍼뜩 깨어났다. 조금 전 기대어 잠을 청했던 암자는 오간 데 없었다. 암벽 위엔 한 그루 늙은 소나무만 외롭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토정은 왜란이 일어날 줄을 짐작했다. 이것은 한낱 설화다. 토정을 뛰어난 예언가로 간주하게 된 후대의 민중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가 있다. 역사 속에서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을 재발견하는 것이 민중들로선 익숙한 일이었다. 그들은 본래 토정이 특이한 선비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설화를 덧붙여 민중의 스승으로 이상화했다고 풀이된다. 왜란에 관해선 또 다른 이야기가 토정의 문집에 실려 있다. 일찍이 그는 상중(喪中)에 있던 제자 조헌(趙憲)을 조문하였다. 그날 혜성(彗星)이 밤하늘에 뻗쳐 조헌이 그 조짐을 물었고, 토정은 이 혜성이 천하에 큰 난리가 일어날 조짐이라며 그때에 대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한다(실록, 영조 30년 11월27일 임인). 스승의 말을 가슴에 새긴 조헌은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돼 금산에서 북상하던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문집의 기록은 사제간의 문답을 확대 해석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토정이란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일상적인 일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국가의 장래를 염려했던 것이다. 토정은 다분히 도가적(道家的)이었지만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선비였다. ●사화에 얽혀 불우했던 토정 사실 토정은 국가경영에 관심이 컸다. 평상시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내가 일백 리 되는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되면 가난한 백성을 모두 부자로 만들고 야박한 풍속을 돈독하게 바꿀 것이다.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아 나라의 평안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토정은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명종5년(1549년) 토정이 33세 되던 해에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토정의 장인이 역모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했고, 연좌법에 걸린 토정은 벼슬길이 막혔다. 설상가상으로 죽마고우(竹馬故友) 안명세(安名世)마저 필화를 입고 죽었다. 사관(史官)으로 이름이 높았던 안명세는 명종 연간 을사사화(1545년)에 관련해 윤원형과 이기 등 소윤(小尹)이 윤임 등 대윤(大尹)을 모함해 몰살했다고 적었다. 윤원형 일파는 몰래 사초를 들여다보았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안명세를 제거한 것이다. 이후 토정은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기인(奇人)으로 처세하게 됐다. 지지난 호에 소개한 정렴은 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의 아들이라 스스로 세상을 피했던 데 비해, 토정은 억울하게도 세상에 용납되지 못해 기벽(奇癖)을 갖게 됐다고 해야 맞다. 어찌 보면 세상을 원망하고 자포자기하기가 참 쉬웠을 텐데, 토정은 절망하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및 의학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조헌과 이산보를 비롯해 여러 제자를 키웠다. 조정이 토정에게 벼슬길을 열어준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을사사화의 주도세력이 조정에서 물러난 선조 초년이었는데, 그 사이 토정은 이미 늙어버렸다. 그는 60이 가까운 나이에 사실상 초임이나 다름없는 아산군수 자리에서 세상을 떴다. 평생 닦아온 선비의 웅지를 펼칠 겨를도 없었다. 토정이 남긴 글은 뒷날 ‘토정유고’(2권1책)로 정리됐다. 이와는 별도로 민간에서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주역(周易)에 관한 ‘월영도’, 풍수지리를 다룬 ‘농아집’ 등을 토정의 저술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실상 ‘토정유고’에는 위에 언급한 어떤 책자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만일 실증주의의 입장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토정비결’이나 ‘토정가장결’ 등은 토정의 저술이 될 수 없다.‘토정유고’외에는 이지함의 저술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후대의 위작으로 볼 것인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토정비결의 매력 물론 어느 쪽도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다른 책은 몰라도 ‘토정비결’만은 토정의 붓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토정은 의학과 점에 능통했기 때문에 그를 찾아와 운수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반의 그런 요구가 많아지자 토정은 아예 한 권의 책을 지어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기를 도모했을 법도 하다. ‘토정비결’은 주역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주역과는 다르다. 주역의 기본 괘는 48개인데 비해 ‘토정비결’은 32개다. 괘를 짓는 방법도 달라 이른바 사주 가운데 시(時)를 뺀 년(年), 월(月), 일(日)을 사용할 뿐이다. 조선시대 민간에는 시계가 없어 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토정비결’은 주역을 이용하면서도 조선의 특성을 십분 고려했다. 그러다 보니 점괘의 총수도 주역과는 다르게 됐다. 주역에는 총 424개의 괘가 있으나 ‘토정비결’은 총 144개뿐이다. 훨씬 간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 토정 이지함처럼 기발하고 독창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토정비결’은 열두 달의 운수를 시구(詩句)로 적어 놓았다.“동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관재수가 있으니 혀끝을 조심하라.”는 식이다. 간단명료한 글귀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점괘다. 각 항목마다 길흉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 있어 낙관도 실망도 하기 어렵게 돼 있다. 결과적으로,‘토정비결’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며, 일마다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처리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토정비결’은 운수를 판별하는 데 중점이 있다기보다 일반 민중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토정비결’은 단순히 점을 봐주고 금품을 요구하는 직업적인 점쟁이의 저술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눈엔 그것이 점을 통해 점을 치는 사람들이 점에만 의존하지 않게 유도하는 기능이 숨겨진 반점술서(反占術書)로 보인다. 토정 이지함과 같이 점에 능통하면서도,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철학을 신봉한 큰선비가 남겼을 법한 저술이다. ●그럼 ‘토정가장결’은? 정리하면, 토정은 살아생전에 이미 기인, 도사 그리고 큰선비로 세상에 유명했다. 더욱이 후세에는 ‘토정비결’과 같은 명저의 지은이로 민중에게 더욱 친숙한 이름이 됐다. 그가 만일 무수한 개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면, 나라의 운수인들 모를 까닭이 있었겠느냐는 의견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맴돌았음이 틀림없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토정이 남긴 예언서가 어디선가 발견돼야만 했다. 이것이 조선후기 ‘토정가장결’이 탄생한 문화적 배경이다. 분명한 사실은 ‘토정가장결’에 앞서 ‘정감록’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진인 정씨가 새 나라를 세운다는 ‘정감록’의 예언을 참작해 ‘토정가장결’이 쓰였다.“내 비록 재주 없으되 우러러보고 굽어 살피며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보니 한양이 5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토정가장결’은 이런 식으로 조선왕조의 멸망을 점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본 결과, 조선왕조의 운수를 짐작하게 됐다고 했다. 천문에 중점을 두고 예언을 했다는 점이 ‘토정가장결’의 특징이다.‘감결’을 비롯해 다른 예언서들이 풍수지리에 의존해 국운을 점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참고로, 천문 점의 전문가들은 서북지방에 많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천문지식은 중국 사람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토정가장결’에 보이는 두 번째 특징은 압록강 이북의 요동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잠시 비결을 인용하겠다.“장류수(계사) 운은 푸른 옷과 흰 옷이 서쪽, 남쪽에서 침략한다. 이때 전읍(奠 , 즉 鄭姓 眞人)이 바다 섬의 군사를 이끌고 방성, 두성의 장수와 함께 갑오년 섣달 즉시 금강을 건너면 다시 천운이 커질 것이다.(중략) 곽 장군이 요동 군사를 이끌고 방씨, 두씨 장수와 함께 왜적 및 서남 오랑캐를 무찌르며,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돕는다. 정씨를 편들고 이씨를 공격하면 이씨는 제주로 들어갈 것이니 4,5년간의 운수에 지나지 않는다.” 요약하면, 계사년에 외침이 있는데 만일 그 때 요동의 곽 장군이 나서서 정씨를 도우면 동아시아의 정치질서가 재편된다고 했다. 곽 장군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인데, 곽 장군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상정되었다. 늦어도 19세기 후반엔 고구려의 옛 땅이던 만주가 가난에 쫓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간 상당수 민중들의 손길로 개발되고 있었다.‘토정가장결’에 등장하는 곽 장군은 아마도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달리 말해, 간도에 진출한 빈농들이 이상적인 지도자로 여겼을 법한 가상인물이다. 셋째,‘토정가장결’은 난세의 피란지로 전혀 새로운 장소를 거론했다.“만약 요동 간방으로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반드시 삼척부 대소궁기를 향하여 부지런히 힘을 기울여 곡식을 쌓을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정감록’은 주로 삼남 지방에 십승지 또는 길지를 설정해두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상도의 풍기, 충청도 공주 및 전라도 운봉이었다.‘토정가장결’은 이를 정면에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요동과 삼척이란 뜻밖의 장소를 최고의 길지로 내세운다. 확실히 새로운 변화였다. 여기서 나는 ‘토정가장결’이 출현한 시기를 좀더 정확하게 짐작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간도로의 ‘불법이민’이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이 예언서가 창작된 것은 아닐까. 참고로, 삼척이 길지로 대두된 이유를 헤아려 보겠다. 토정에 관한 구전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한때 토정은 삼척에 머문 적이 있었다는데 거기서 스님 행색으로 위장한 왜놈 첩자를 붙들었다. 이 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은 토정이 살던 삼척에는 아예 얼씬도 못했다는 설화가 있다. 신기하게도 구전설화는 예언서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 모양이다. 물론 거꾸로 됐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토정은 정치적으로 무척 불우한 재사였다. 그래서 그는 기인이자 도사가 되기도 했고,‘토정비결’ 같은 책을 지어 고난 받는 민중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토정은 민중의 스승으로 자리매김돼 ‘토정가장결’의 저자로도 둔갑됐다.‘토정가장결’은 ‘정감록’의 논리를 존중하면서도 19세기 후반의 변화된 사회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알 자는 알리라.” (푸른역사연구소장)
  • 비틀즈와「해프닝」의 벌거벗은 결합

    비틀즈와「해프닝」의 벌거벗은 결합

    「존·레논」과 사는 오노·요꼬가 아기를 낳는다 「더·타임즈」로 그곳 가린 전라의 사진을「자켓」에 전세계 10대들을 비틀거리게 하던「더·비틀즈」의 사실상의 창시자「존·레논」군이 그의 새 애인「오노·요꼬」양과 나란히 벌거벗은 사진을 새「디스크」의「쟈켓」으로 내어놓아 또다시 전세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셰익스피어」「미니·스커트」와 함께 대영제국 3대 수출품목의 하나였던「더·비틀즈」는 67년 1월 22일「폴·매카트니」군의 탈퇴선언으로 해체, 각자 영화에 출연하는 등 개인활동을 해왔다. 단 하나의 기혼자이던「존·레논」군은 자신이 작사·작곡을 하는「비틀즈」의 우두머리격-. 그러던 그가 일본 전위예술가의 한 사람인「오노·요꼬」양을 만나자 의기투합, 본처인「신시아」와 이혼을 선언, 곧장「오노」양과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이번 말썽을 일으킨「자켓」에는 두 달 뒤면「레논」군의 아기를 낳게 되는「오노」양과「레논」군이 전라인 채 근엄한 영국에서도 근엄하기로 소문난「더·타임즈」지로 두 사람의 국부만을 가린 해괴한 사진이 들어있다. 물론 촬영은 자동「셔터」로「레논」군이 찍은 것. 화제의「디스크」는「오노」양 자신이 만든 전위영화『두 사람의 처녀』의「사운드·트랙」을 모은 것. 온통 소음투성이의「디스크」라고. 英·美서 출반(出盤) 거부까지, 일본선「파렴치한 여인」 미국에선 내년 1월 6일부터 발매될 예정이나 이미 영국선 올들어 최고의 비음악적 사건으로 화제가 분분하다. 그러나「존·레논」군은 태연하다. 『그녀가 작업하는 광경을 보면 너무나 진지하고 적나라해서 벌거벗은 사진을「자켓」으로 낸다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당연」은 당연히「비틀즈」의「레코드」를 출반하기로 계약된 EMI「레코드」사에서「부당」히 거절당했다. 영국의 3대 대중가요지도 소개를 거부했다. 한편 미국에서도「캐피털·레코드」사가 출반을 거부, 결국「테트라그라마폰」사에서 출반하게 됐다. 영국에서 이「레코드」를 내기로 한「트랙」사는『영국「누디스트」협회에선 무척 좋아할거』라고 이 사진공개를「더·타임즈」지에 맡겼다. 한편「오노」양의 고국인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대서특필. 모 주간지는『올해 일본에서 가장 파렴치한 여인』으로「오노」양을 선정하기도. 어쨌든「리버풀」의「나이트·카페」에서 출발,「에프스타인」이란 명「매니저」를 만나 5년 동안 무려 8천 6백만「달러」(한화로 약 2백 50억원)의 수입을 올려 65년 10월엔「나이트」작위까지 받은「비틀즈」는 해체 후에도 또 한번 세계의 화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레논」(27)군은 자작·작곡·작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기타」를 뜯는 외에 동화집을 내어 영국에서 10만부를 팔아먹은 재주꾼이다.「비틀즈」중에선 가장 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인·히스·오운·라이트』란 시집을 내고 스스로 삽화를 그려 넣기도 한 만능선수. 본처인「신시아」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가지고 있으며 두 달 후엔「오노」양에게서 또 새 아기가 태어나게 된다. 「레논」군은 시집도 낸 다재(多才), “예수보다 인기있다” 기염 66년「비틀즈」가 日·比(필리핀)등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인기가 마지막 절정에 달해있을 때 TV회견에 나서,『이제「비틀즈」는 예수보다도 인기가 있다』고, 기염을 토해 전 미국에 반「비틀즈」냉풍을 몰아온 장본인도 바로「레논」군. 한편 이에 못지 않게「오노·요꼬」양의 이력도 화려하다. 지난번「유엔」본부 건물 앞에서 아가씨 4명이 벌거벗은「해프닝·쇼」를 벌였을 때의 주모자가 바로「오노」양. 연주여행에 나설 때마다 아내「신시아」와 아들을 데리고 다니던「존·레논」군이 제일 싫어하던 것은 자기 부인을「비틀부인」, 자기 아들을「베이비·비틀」이라고 부르는 것. 그래서 이번에도 제발「비틀·레코드」나「비틀·오노」란 타이틀은 붙이지 말라고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오기도. 「더·비틀즈」는 원래「리버풀」의 지하「카페」에서「코피」나 마시며 제멋대로 노래를 부르던 망나니들. 그러던 것이「존·레논」군이 작곡한『나도 사랑해줘요』를 같이 부르는 것을 들은「에프스타인」이란「매니저」가 이들을 적극 상품화, 64년 2월 7일엔 미 CBS·TV의 인기「프로」「에드·설리반·쇼」에 출연하면서부터 완전히 전세계의「틴·에이저」들을 사로잡고 말았다. 엄격하기로 이름난「이튼·스쿨·보이」들이『그대 손목을 잡고 싶어요』를 부르는가 하면 시집가기 전의「루시」양(「존슨」미대통령의 딸)이「비틀즈」의 공연일자가 하필이면 숙제가 많은 토요일이라고 징징 우는 소동도. 이렇게「비틀즈」인기가 올라가자 일본에 원정, 그쪽의「하이·틴」들을 매혹, 울부짖고 심지어 10대 소녀들이「팬티」를 벗어 던지는 소동을 벌였다. 한편「필리핀」공연에서도 기대 이상의 환영을 받았으나 맨 마지막에「마르코스」대통령내외의 초청연주를 거부함으로써 공항에서 달걀세례를 받으며 쫓겨나기도-. 한 사람도 듣지는 않지만 백 만장 팔리는 레코드로 「폴·매카트니」군이 탈퇴한 후도「레논」군을 중심으로 한 잔류파는 날로 떨어져가는 인기를 만회코자「히피」족들 틈에 끼어드는가 하면「히피」들의 우상「마하리시·마하시·요기」란 자칭 성자(?)와 어울려「요가」에 심혈을 쏟기도 했다. 그러나「매니저」「에프스타인」씨가 원인불명인 채 자기 방에서 죽어버린 이후론「비틀즈」도 완전히 그 영화(榮華)를 잃어버렸다. 결국『「비틀즈」선풍은 오래가지 못한다』던 美사회학자「데이비드·리스맨」의 예언이 맞아 5년 만에「비틀즈」는 사라졌지만 이번『두 사람의 처녀』만은 그 해괴한「자켓」덕분에『한 사람도 듣지는 않지만 1백 만장 이상 팔리는 사상 단 하나의「레코드」』(「뉴스위크」평)가 될 것은 틀림없다. [ 선데이서울 68년 12/1 제1권 제11호 ]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2)활과 화살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2)활과 화살

    고대 중국인들은 우리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일컬었다.夷자는 큰대(大)자와 활궁(弓)자의 합성문자로 우리 조상들이 활쏘기와 만들기에 무척 능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고구려의 무용총(舞踊塚) 벽화에 등장하는 활과 화살은 우리민족의 징표로 사용된다. 역사에 기록된 활의 시초는 나무로 만든 고조선의 단궁(檀弓)에서 비롯된다. 삼국시대로 오면서 탄력이 필요한 부분에 대나무를 넣고 쇠뿔이나 쇠심줄을 접착시켜서 강도를 높인 각궁(角弓)이 만들어 졌다. 현재의 활은 각궁을 말한다. 각궁은 시대가 흘렀지만 모양과 성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활 모양이 둥근 것은 우리의 각궁뿐이며, 쏘는 사람의 기력에 따라 힘조절이 가능한 ‘살아있는 활’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활을 만드는 장인을 궁인(弓人),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시인(矢人)이라 부른다. 활쏘기는 조선시대까지 무과(武科)의 중요 시험과목이었으며, 그러한 전통이 수천년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궁시장들의 빼어난 손재주와 고집스러운 장인기질 때문이었다. 우리민족에게 활은 심신 수양의 수단이었다. 전투에서 살생의 용도를 의미하는 ‘쏜다.’는 말 대신, 심신 수련의 뜻이 강조된 ‘낸다.’는 말을 더 선호한 우리만의 ‘활의 문화’가 있는 것이다. 활을 쏘는 사람인 한량(閑良)들이 기량을 연마하고, 시합을 하는 곳인 활터에는 반드시 정자(亭子)가 있다. 정자의 기능은 그냥 노는 곳이 아니라, 풍류와 심신을 단련하는 장소였다. 활에는 빛과 밝음을 추구했던 우리민족의 광명사상과 태극사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과녁 가운데 붉은 원은 태양의 상징이며, 활시위를 현(弦)이라 하고, 달이 차고 기울 때를 상현(上弦) 하현(下弦)이라고 이름한 것도 역시 음양의 변화작용을 활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땅의 한량들은 활을 낼 때마다 해와 달처럼 하늘과 땅을 넘나들며 우주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인간의 위상을 온 몸으로 체득해간 것이다. 글·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중요무형문화재 ‘矢匠’ 유형기씨 “장을 담글 때 재료중에 무엇 하나 빠지면 안 되듯이 힘 활 화살이 맞아야 명궁이 됩니다.” 현재 유일한 시장(矢匠)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옛화살을 재현하고 있는 유형기(71·중요무형문화재 47호)씨는 손목이 시큰거린다면서도 시죽을 연신 불에 구워 활대를 펴고 있었다. 좋은 화살소리를 들으려면 장인의 손을 130번이나 거쳐야 한단다.“힘이 좋은 사람은 무거운 화살을 쏴야 하죠. 가벼운 놈을 강한 활로 당기면 꼬리가 휘둘려서 안 맞아. 윗마디가 굵은 놈은 걸음이 늦고 몸이 날렵한 놈은 걸음이 빠릅니다.” 마치 사상의학에 달통한 명의가 맥 한번만 집고서도 사람의 체질을 가려내어 처방을 하는 것 같았다. 대를 이으려는 아들이 있다지만 “손맛만으로도 화살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다.”며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화살은 사람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향한 답니다.” 인생의 지향점이 있는 곳. 그는 지금 전통의 명맥을 과녁 삼아 의지의 화살을 쏘아올리고 있다. ■무형문화재 ‘弓匠’ 김박영씨 가파른 산기슭을 숨도 고르지 않고 찾아 올라간 여섯평 남짓 궁방의 한쪽에서 김박영(76·무형문화재 47호) 궁장(弓匠)은 눈길도 한번 안 준 채 조궁에만 열중이다. 활틀에 부레풀을 먹이고 쇠심줄을 감는 일이 처음 보기에도 수월치가 않다. 한참 뒤 기자의 기다림이 측은했던지 “사람이 만드는 물건이란 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낫게 생겨나지만, 어떤 것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나온 게 있더라고요. 그게 바로 우리 활이오.” 라며 말문을 연다. 뭔가를 배우려 하기엔 늦은 나이(33세)에 고향사람의 추천으로 당시 경기궁의 최고 명인인 김장환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각궁 전통 활만을 부천에서 40년 넘게 만들어 왔다. 탄력좋은 대나무를 적당히 잘라 좌우 양쪽에 물소뿔을 다듬어 붙인 다음 활 중간에 소의 힘줄을 두 번 채워 넣는다. 활 안팎에 매끄러운 나무 껍질을 붙여 한동안 말리면 비로소 활시위를 매고 강도를 조정하는 마지막 단계 해궁(解弓)을 밟는다. 글·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유비쿼터스 헬스시대로] 3년후의 휴대전화는 ‘만능 의료기기’

    [유비쿼터스 헬스시대로] 3년후의 휴대전화는 ‘만능 의료기기’

    2008년 8월1일,40대 후반 직장인 김 전무는 출근 중 승용차안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당뇨 수치를 쟀다. 그는 몇년전부터 생긴 당뇨병 증상을 이처럼 주기적으로 체크한다. 김 전무가 잰 수치는 휴대전화 칩(Chip)에 저장돼 주치의에게 전달되고, 진단을 거쳐 다시 본인에게 알려진다. 김 전무는 집과 직장, 출장지 등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몸 상태를 진단한다.3년후의 휴대전화는 생체 관련 칩들이 장착돼 만능 의료기기이다. 정보기술(IT)와 바이오기술(BT)이 접목된 IT생명공학분야가 실생활에 급속히 다가서고 있다. 정부는 이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아 범정부적으로 정책을 진행 중이고, 이에 따른 관련업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다가 나노기술(NT)까지 결합되면 고품질 의료 서비스를 받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바이오진단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u디지털 헬스시대’의 도래다. 국내 ‘IT+BT+NT’시장은 미국 등 선진국에는 상당히 뒤져 있지만 앞선 IT를 기반으로 기술 접목 및 시장은 보다 빨리 기반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시장은 IT-BT 컨버전스 진행 중 IT에 BT를 접목한 생명공학분야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선도하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IT 분야를 기반으로 BT가 합쳐지는 상황이다. 생명공학은 유전체 정보의 분석 및 처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포스트 게놈시대를 맞아 산업계의 요구도 커져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삶의질 향상에 맞춰져 있다. 휴대전화를 보자. 카메라·TV만 탑재된 지금의 휴대전화에 운동도 시켜주고 혈압도 재주는 칩들이 장착될 준비가 진행 되고 있다. 칩은 신체 구조를 속속들이 체크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평소 휴대하고 다니는 이동전화가 휴대종합정보단말기, 즉 유비쿼터스 생체 단말기로 진화하는 것이다. 대전시는 최근 전국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등 이동단말기를 통해 질병을 관리하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건강관리)’ 시범서비스를 9월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대전지역 7개 대학 및 종합병원, 건강관리 전문기업 (주)헬스피아 등이 참여한다. 환자 상태를 체크, 처방을 문자메시지 등으로 환자에게 전달한다. 처방전은 환자 주변의 약국 등에 보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BT분야 연구는 최근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배양 성공에 힘입어 연구시장은 한껏 달아올라 있으며 IT와의 접목 시도가 가속화하고 있다. ●범부처 BT 연구개발 나선다 정부는 최근 BT 연구개발을 위해 IT 등 미래·첨단·융합기술 등을 접목하는 정책수립 계획을 발표했다.BT를 IT 이후 중요한 국가경제성장 원동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규 과기혁신본부장은 “과학기술부를 비롯한 8개 부처에서 올해 약 6억 5000만달러(7086억원)를 BT 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정경제부도 IT·BT분야의 수출 지원에 나선다. 수출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IT산업 주무 부처인 정보통신부는 세계적 수준인 IT를 기반으로 BT·NT와의 융합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창출하려는 목적이다. 인체통신 기술 등을 통해 자유롭게 정보 접근이 가능한 기술개발을 추구하고 있다. 융합기술개발 연구센터도 구축,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함께 2010년까지 기술개발 작업에 나선다. 지난해 88억원, 올해는 102억원을 투자한다. 기술융합 시장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IT+BT’는 생물정보학과 e휴먼,‘BT+NT’는 나노바이오,‘BT+기계·전자’는 바이오칩 등 생체 콘텐츠로 옮아갈 전망이다. ●업계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5일에 IT와 BT 영역의 동반 발전을 예측할 수 있는 의미있는 업계의 세미나가 있었다. 삼성전자 김영균 전무는 “지금의 3세대 이후 4세대 휴대전화는 반도체 기술발전에 따라 첨단 신소재 및 나노기술, 생체정보 측정 등 생명공학과의 급속한 결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생명공학연구원 정봉현 박사는 “연구원에서는 칩 개발, 벤처 등 기업은 서비스 판매, 병원은 진단으로 대별되는 시장이 형성될 것”이며 “생명공학 컨버전스는 분명 인간의 무병장수에 큰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몇년안에 통신기기에 생체공학이 접목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6)북창 정렴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6)북창 정렴과 ‘정감록’

    ‘북창비결’은 조선 명종 때 도사(道士)로 유명한 북창(北窓) 정렴(鄭 1506-1549)이 썼다고 하는 비결인데, 난해한 부분이 많다. 이 예언서는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때부터 줄곧 ‘정감록’의 일부가 되어 있다. ‘북창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정렴은 매월당 김시습, 토정 이지함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기인(奇人)으로 손꼽힌다. 꽤 흥미로운 인물인 셈이라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북창비결’을 비롯해 그가 저술한 책의 내용을 간단히 검토해 보는 것도 한낱 쓸데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북창 정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사(道士) 정렴은 다재다능한 선비였다. 그는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약(醫藥), 복서(卜筮)는 물론, 불교와 도교에 모두 정통하였고, 음악과 그림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문집인 ‘북창집(北窓集)’ 외에도 ‘북창비결(北窓秘訣)’,‘용호비결(龍虎秘訣)’,‘동원진주낭(東垣珍珠囊)’,‘유씨맥결(劉氏脈訣)’ 등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전호에서도 인용한 ‘궁을가(弓乙歌)’ 역시 정렴의 글이라 한다. 계곡(溪谷) 장유(張維)의 글을 보면, 정렴은 유·불·선 3교에 두루 통달하였으나 사상적 중심은 유교에 있었다고 한다. 도사라기보다는 유학자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말은 조선시대가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았기 때문에 나온 말에 불과한 것 같다. 장유가 정렴을 위해 지은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렴은 “한 번 산에 들어가 며칠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수양한 다음 내려올 때면 산 아래 100리 간에 일어난 일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훤히 알아 맞혔다.”고 했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점쟁이였다는 말이다. 정렴에겐 남다른 풍모가 있어 성수익(成壽益)과 같은 조선후기의 학자는 정렴을 신인(神人)이라 평했다. 성수익은 일찍이 정렴이 중국에 가서 유구(琉球·오키나와)의 사신을 만난 이야기를 예로 든다. 당시 유구 사신은 정렴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뜰 아래로 내려가 절을 올렸다고 한다. 유구 사신이 소지한 책자에는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시(某時) 중국에 들어가면 진인(眞人)을 만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유구 사신은 정렴을 바로 그 진인(眞人)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구 사신은 여러 시간 동안 정렴에게서 주역(周易)을 배웠다. 그와 대담하는 동안 놀랍게도 정렴은 일본말을 유창하게 했다고 한다(‘삼현주옥 三賢珠玉’). 정렴이 과연 언제 어디서 일본어를 배웠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사람들은 정렴이 대단한 인물이라 믿었고, 특히 지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언젠가 한 번은 정렴의 사촌이 아버지 묏자리를 부탁하러 왔다고 한다. 사양하던 끝에 정렴은 묏자리 하나를 점지해 주었는데, 땅을 파자 온통 물구덩이였다. 모두들 당황했으나 정렴은 시종일관 그 자리만을 고집했다. 결국 구덩이에 큼지막한 돌멩이 몇 개를 채워넣고 장례를 마치게 됐다. 이것은 이른바 수중명당(水中明堂)이었다. 훗날 무덤 안에 채워넣은 돌멩이 숫자만큼 무덤 주인공의 자손들이 문과에 급제했다는 것이다. 정렴이 수중명당을 정했다든가 일본어에 능통했다, 또는 100리 안팎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아 맞혔다는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서 유구의 사신을 만난 것, 주역과 풍수지리에 밝았던 점 그리고 도가적 수련을 즐겼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정렴은 점술에 능했기 때문에 그에 관해 많은 전설이 남아 있다. 그 중 특이한 이야기 하나가 있어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본래 그는 슬하에 몇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하는데 아이들을 좀체 귀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의 불평이 무척 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정렴의 어린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어버렸다. 가족과 친지들은 깜짝 놀라서 죽은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큼지막한 구렁이였다. 소년 시절 정렴은 길을 가다 우연히 구렁이 하나를 죽인 적이 있었다 한다. 그 구렁이가 정렴에게 복수하려고 둔갑술을 빌려 그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는 이런 사실을 미리 눈치챘기 때문에 아이들을 전혀 귀여워하지 않았다 한다. 구렁이가 변해 아이들이 될 이치는 없다. 방금 말한 이야기는 정렴이 세상살이에 만족하지 못해 후세에 혈육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맞을 것 같다. 뒤에 다시 말하듯 정렴은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과 불화하였다. 정렴은 여러 면에서 재능이 빼어났지만 불우했고, 그래서인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때이른 죽음에 대해서도 이를 미화하는 설화가 있어 주목된다. 요컨대 정렴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떼어줬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선조 때 정승을 지낸 윤두수(尹斗壽)가 정렴의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그런데 윤두수는 어디선가 자신이 단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아는 친구 정렴에게 매달렸다. 정렴은 친구의 간청을 외면할 수 없어 마침내 신선들이 모여 있는 곳을 알려주며 찾아가서 수명을 빌라고 했다. 덕분에 윤두수는 수명을 연장하게 됐다. 그러나 신선들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정렴의 수명을 줄이기로 했고, 정렴은 친구를 위해 사십대 초반에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일 정렴이 오래 살았더라면 윤두수에 못지않은 큰 인물이 되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후대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전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정렴의 능력은 특히 방외(方外)에서 빛났던 모양으로,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도교사’에서 정렴을 김시습·권극중·이지함·곽재우에 비견되는 조선 최고의 도사로 손꼽았다. ●정렴은 정치에 희생된 불우한 인물 위에서 간단히 암시했듯이 도사 정렴은 말년이 무척 불우했다. 그가 39세 되던 해, 명종 즉위년(1545)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버지 정순붕(鄭順朋)은 윤원형, 이기 등 세력자들과 함께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억울하게 죽이고 귀양보냈다. 정순붕은 이른바 소윤의 핵심세력으로서 명종 초년 세도가로 행세했다. 하지만 정렴은 이런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컸다. 그는 사화로 인해 명망 있는 선비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슬프게 생각했다. 아울러 권력을 잡기 위해 그런 일을 일으키는 아버지의 말로가 평탄하지 못할 줄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정렴은 곧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다시피 했다. 그는 아버지를 만류해 사화를 막아내지 못하였다는 자괴감과 세상에 대한 불만을 술과 시로 달래며 소일했다. 그런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된다.“정렴은 성품이 명민하고 착한 일을 좋아하여 마음속으로 자기 아비가 하는 짓을 그르게 여겨 일찍이 간(諫)하여 말렸으나 아버지 정순붕이 따르지 않았다. 동생인 정현이 부자간에 이간질하여 온 집안에 변고가 일어나려 하였다. 정렴은 아버지의 이해를 받지 못한 채 양주(楊州)의 시골집에 가 있거나 산사(山寺)에 머물러 지낸 것이 실로 여러 해였다(명종 즉위년 8월28일 무오). 또 다른 기록에 보면, 아버지 정순붕은 둘째아들 정현과 공모하여 큰아들 정렴을 죽이려고까지 했다.‘집안에 변고’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요컨대 정렴은 현실정치에 관해 아버지와 다른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죽음을 당할 지경이었다. 아버지와 아우로부터 버림받은 정렴은 산중에 파묻혀 지내다가 슬픔을 안고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비극이었고,‘이 점을 지금까지 선비들은 슬퍼하고 있다.’고 할 지경이었다(실록, 명종20년 10월29일 임진). 자세히 알고 보니 정렴은 너무도 불우한 재사였다. 집안의 저버림을 당한 그는 불교와 도교에 침잠했고, 천문, 풍수지리, 수학, 음악 및 미술로 마음을 달래려 했던 것이다. 그의 초인적 능력에 대한 호평은 대부분 사후에 내려진 것이었을 뿐, 그의 인생은 처참했다. ●‘북창비결’은 덕과 지혜를 최우선으로! ‘북창비결’은 말세의 한 가지 조짐을 음주의 폐습과 음란한 풍토에서 찾았다. 이런 예언에서 인터넷 성매매와 호스트 바가 횡행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런 해석은 지나치게 현재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북창비결’에선 말세가 되면 남쪽에서부터 나라가 망한다고도 했다. 좀더 정확히 말해 “물과 물이 있는 서남쪽의 독이 궁궐에까지 미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서남쪽이라면 제주도와 전라남도에 해당한다. 이 구절은 조선 말기의 동학농민운동 또는 이재수의 난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반드시 이런 사건을 미리 염두에 둔 예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경우 딱 들어맞는 예언은 도리어 그런 사건이 일어난 뒤 소급해서 조작된 예언서라는 증거가 될 뿐이다. 어쨌거나 말세가 되면 ‘쥐의 아비 시체가 온 나라에 누워 있고, 뱀의 형 집 연기가 천리 밖에서 나리라.’고 했다. 쥐의 아비와 뱀의 형이 누군지 모르겠다. 혹시 쥐의 해와 뱀의 해보다 한 해 앞선 시점 또는 해당 되는 해의 첫머리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임진왜란은 뱀해보다 한 해 전인 용해에 일어났고, 병자호란은 쥐해에 있었다.‘북창비결’의 독자들은 이 두 전쟁이 정확히 예언됐다며 이 예언서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 환란이 닥치면 ‘여덟 줄의 백성이 다섯 달 동안 시체로 쌓일 것이다. 그 때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을 것이요, 제비와 기러기가 가고 오는 시절이로다.’ 요점은 말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비명횡사한다는 것이다. 방금 인용한 구절을 나름대로 짐작해보면 이렇게도 풀이된다.‘소나무와 잣나무’는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을 이끌고 와서 싸운 이여송(松)과 이여백(栢) 형제를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제비와 기러기가 가고 오는’ 것은 병자호란 이후 포로와 사신들의 연행(燕行)길이 잦아졌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연행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제비가 간다.’는 것이다. 당시 전쟁포로와 사신 행차가 기러기 떼마냥 연이어 서울과 연경을 오갔기 때문에, 이를 암시하는 구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창 정렴이 과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날 것을 정확히 예언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북창비결’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난세를 극복할 사람이 누군가 하는 점이다.‘재물에 인색한 사람은 먼저 집에서 죽고, 아무 재주도 없는 선비는 저절로 길에서 죽는다.’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 참된 지혜를 갖춘 사람만 난세에도 살아남는다는 것이 ‘북창비결’의 대답이다. 지혜와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애써 십승지(十勝地) 같은 데를 찾아 피난해도 결국 아무 ‘쓸데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하늘에서 떨어져 죽는 기러기 신세를 후회하리라.’고 했다. 정리하면,‘북창비결’은 덕과 지혜를 처세의 으뜸으로 친다는 사실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한 취지의 주장이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에서도 전혀 없지는 않다. 어쨌든 말세에 피난할 장소를 거론하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의 덕성을 온전히 갖추는 일이라고 말한 점은 인상적이다. ●곡식이 풍부한 평야지대로 가라! 그러면서도 ‘북창비결’은 말세의 피난지에 상당한 비중을 할당하고 있다.‘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마찬가지로 피난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차이가 있다면 ‘북창비결’이 선호하는 피난지역이 다르다는 점이다.‘충청도와 강원도는 살 수가 없고, 경기도 동쪽에서는 어육(魚肉)이 난다.’ 다른 예언서에서도 강원도, 특히 오대산 이북을 위험지역으로 선포한 점은 쉽게 확인된다. 하지만 강원도에 이웃한 경기도 동부 및 충청도까지 위험지역으로 본 것은 ‘북창비결’의 특징이다. ‘바라건대 내 자손들은 산에 올라가지 말고 물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흰 것에 의지하는 자는 살겠고, 풍년 든 곳에 가까이 있으면 살리라.’ 이른바 십승지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등 백두대간의 명산대천을 말하며 다른 예언서에서는 피난지로서 중시된다. 그러나 ‘북창비결’엔 그와 전혀 다른 의견이 제시돼 있다. ‘흰 것에 의지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풍년’을 위기 극복의 상징으로 보았던 점으로 미루어 물산이 풍부한 평야지대를 선호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돈과 곡식이 쌓인 시골에서 마을 사람들을 구조할 것이네.’라고도 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흰 것’은 백미, 즉 흰쌀이나 당시의 화폐였던 무명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북창비결’이 말세의 조짐을 흉년에서 읽었던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흰쌀과 흰 베가 많이 나는 곡창지대라면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조건상 서쪽일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북창비결’은 말세에 ‘기강은 서쪽에서 지탱한다.’고 하였다. 서쪽의 곡창지대라면 전라북도의 김제 만경평야를 비롯해 충청남도의 내포평야, 경기도의 김포평야, 황해도의 연백평야 등이 생각난다. 그런데 황해도는 처음부터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 조선시대는 서북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고,‘정감록’은 어느 예언서에서나 이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북창비결’은 경기도와 충청도 역시 피난지로 삼지 말라고 심각하게 경고했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나라가 지탱해야 될 서쪽은 김제 만경 평야로 대표되는 호남평야였을 것으로 풀이된다. 마땅한 피난지와 관련해 ‘명승지(名勝地)라는 곳이 먼저 혹독한 화를 당한다.’고 말한 대목도 유념할 만하다. 정감록의 다른 예언서와는 전적으로 달리 ‘북창비결’은 십승지 자체를 부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지경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다.‘양쪽으로 끊어진 산맥, 물이 깊은 곳 섬에 숨어라.’고 말한 구절이 있다. 명산대천 또는 섬에서 말세의 피난처를 구한 흔적이 다소나마 감지된다. 그런 충고는 산에 올라가지 말고 물에 들어가지 말라던 ‘북창비결’의 또 다른 구절과 모순된다. 하지만 내용상의 이 같은 모순은 예언서의 역사를 감안할 때 도리어 당연할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예언서란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는 과정에서 조금씩 개작(改作)돼온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예언서의 논지가 중층적이거나 상호 배치된 경우가 없을 도리가 없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수요억제·공급확대 ‘병행’ 당·정·청 부동산정책 선회

    정부와 열린우리당·청와대가 6일 부동산 고위정책 협의회를 열어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 공급확대와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를 검토키로 한 것은 수요 억제만으로는 최근의 집값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의 부동산 대책이 규제일변도에서 가수요 억제 및 공급확대를 병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당·정·청이 지난 6월17일 부동산정책점검회의에서 현행 부동산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키로 한 이후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 확대 등 보유세제 강화를 강력히 시사했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정부가 공급 확대보다는 가수요 억제책에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었다. 정부여당이 공급확대로 방향을 선회한데에는 공급확대가 없는 수요억제책은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없다는 판단을 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 강력한 수요억제책과 개발이익환수 장치를 전제로 공급을 늘리고 재건축 규제도 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중산층이 필요로 하는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 부족이 실제로 존재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건축 규제를 일부 풀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경기에 대한 배려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공공개발이 유력시되는 판교에 중대형 평형 배정량을 늘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으로 조성되는 수도권 신도시 역시 중대형 아파트 건립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은 악재도 호재로 둔갑시키는 재주를 부려왔다. 따라서 이번 당·정·청의 재건축 규제완화와 중대형 공급 시책이 자칫 가까스로 안정세로 접어든 주택 시장의 불안을 다시 조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8월말 대책을 내놓을 때 규제와 완화와 공급확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시장 불안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강력한 수요억제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8월 대책 발표 전까지의 재건축 단지 등의 가격 불안 요소는 국세청의 강력한 투기 단속과 자금출처 조사 등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김성곤기자 ksp@seoul.co.kr
  • 儒林(380)-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6)

    儒林(380)-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6)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6) 그러고 나서 맹자는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공자이후로 세상에는) 성왕이 나오지 않아 제후들은 방자하고 처사들은 마구 이론을 내세우고 양주와 묵적의 의견이 세상에 가득 차서 천하의 언론은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 양주와 묵적의 도가 없어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는 드러나지 않으니, 그것은 사설(邪說)로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꽉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돌아가신 성인들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적을 막으며 방자한 말을 몰아내서 사설을 내세우는 자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고, 사설을 없애고, 삐뚤어진 행동을 막고, 음탕한 말들을 몰아냄으로써 세 분의 성자(우임금, 주공, 공자)를 계승하려 한다. 내 어찌 논쟁을 좋아하겠느냐.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맹자는 평소에 공자를 ‘사람이 세상에 생겨난 이후에 가장 빼어난 인물인 지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자가 가장 싫어하였던 ‘말을 잘하고(巧言), 얼굴빛을 좋게 하며(令色),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고, 달콤한 말을 많이 하는 말재주’가 오히려 유가의 법도에 어긋남을 잘 알고 있었다. 공자는 ‘강직의연하고 질박 어눌한 사람은 인에 가깝다(剛毅木訥近仁·강의목눌근인)’라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맹자는 자신이 논쟁을 잘하는 호변가(好辯家)나 달변가로 보여지는 것에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제자 공문도의 질문에 두 번이나 강조하여 ‘내가 어찌 논쟁을 좋아하겠느냐.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다.’라고 변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맹자 자신도 자신의 투사적 모습에 대해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듯 보인다. 그러나 맹자의 변명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맹자가 태어난 전국시대는 그의 변명대로 모든 처사들이 ‘마구 이론을 내세우는(處士橫議·처사횡의)’ 난세였고, 또한 맹자가 걱정하였던 대로 ‘천하의 언론은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가고 있었던(天下之言不歸楊則歸墨·천하지언불귀양즉귀묵)’ 백가쟁명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맹자의 이러한 변명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춘추시대말기에 유가는 이미 현학(顯學)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며 그 세력역시 가장 막강하였다. 그러나 여러 사상가(諸家·제가)가 출연하여 논쟁을 벌이면서 현학으로서의 유가는 세력을 잃고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어 맹자의 걱정대로 ‘공자의 도를 드러내지 않으면 천하의 언론이 양주와 묵적의 사설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수백의 학파 중에서 당대의 대표적 유파들로는 유가를 비롯하여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음양가(陰陽家), 명가(名家), 종횡가(縱橫家), 농가(農家), 병가(兵家), 소설가(小說家), 잡가(雜家) 등 10대 학파들이 그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맹자는 이 대부분의 유파들과 맹렬하게 치열한 논쟁을 벌였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논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이 유파들은 상호논박하면서 사상적 발전을 이루었으므로 당시 학술과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는데, 맹자 또한 이들과 논쟁을 통해 유가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심오한 사상을 닦아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서울 재설계’ 좋은 평가받아

    ‘서울 재설계’ 좋은 평가받아

    청계천 복원과 서울광장·서울숲 조성, 오페라하우스 및 서울시 신청사 건립계획. 이명박 서울시장의 치적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토목과 건축에 모아졌다. 이 시장은 취임 3주년(7월1일)을 맞아 남은 1년 동안 ‘뉴타운 특별법’ 구상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예술 장학생’을 선발해 지원하는 등 문화정책에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 ●CEO시장의 성과 서울시는 이 시장의 3년동안의 업무수행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병일 대변인은 28일 “지난 2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R&R)가 서울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이 시장의 직무수행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4.4%가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어 “1000만명이 사는 거대도시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행정분야에서 이처럼 높은 비율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고 덧붙였다. 이미 통수(通水)시험까지 마치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청계천복원사업과 서울숲 조성, 대중교통체계 개편, 뉴타운 개발, 서울광장·숭례문광장 조성 등 큰 프로젝트들이 큰 무리없이 추진됐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시는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자치단체 관계자와 정치·행정학자 등 180여명을 대상으로 16개 광역자치단체장의 직무수행을 평가한 결과에서도 이 시장은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자매지인 fDi(foreign Direct investment)로부터 ‘2005년 세계의 인물 대상’을 받기도 했다. ●남긴 흠집과 향후 과제 CEO시장의 성공적인 직무수행에 상처를 남긴 대표적 사례는 양윤재 행정2부시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되면서 불거진 청계천 주변 개발을 둘러싼 일련의 비리의혹 사건이다. 아직 재판 과정이 남아 있지만 양 부시장의 구속과 건축물 고도 완화 과정에서의 금품 로비 의혹은 청계천 복원사업 전체에 얼룩을 남겼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시장이 각종 역점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해 관계자나 시민단체 등의 여론을 수렴하고 이를 조율하는 부분에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 시장은 남은 1년 동안 정부에 건의한 ‘뉴타운 특별법’ 구상을 통해 집값 안정과 균형발전을 꾀하고, 중앙버스전용차로 확대, 경전철을 비롯한 신교통수단 도입 등 역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하이서울 과학 장학생’처럼 돈이 없어 숨은 재주를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한 예술 꿈나무들을 발굴해 지원하는 방안도 구체화하고 있다. 이는 오는 8월 말 ‘문화도시 10개년 계획’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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