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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대통령 퇴임사 요지

    ◎“모두가 수레에 타기보다 밀때/우리에겐 밝은 21세기 열릴것” 저는 내일로 5년동안의 대통령 임기를 모두 마치고 여러분과 같은 보통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께 약속드린 민주주의의 시대 그리고 통일과 번영의 길을 열기 위한 길고,때로는 힘들었던 여정이 이제 끝나고 있습니다.저는 이 사람 노태우를 대통령에 뽑아 주시고 그 직무를 대과없이 마칠 수 있도록 늘 격려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국민이 나라의 참된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루겠다고 다짐한 6·29선언의 그날로부터 우리의 역사는 거대한 전환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나라로 거듭 태어나 두번째의 평화적인 정부교체를 맞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는 적지않은 진통이 있었고 값비싼 대가도 치렀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성취와 보람이 그것을 보상해 주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오랜 갈등과 대결의 역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었으며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고 미래로 뻗어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동아시아 변방에 머물던 우리는 경제적 성취위에 민주화를 함께 이룸으로써 세계사의 중심국가에 합류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이제 우리의 생활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우리의 민주화는 자율과 참여로 그것을 이루어낸 국민 여러분의 작품입니다. 민주주의는 우리를 너그럽게 해 주었으며 서로 화합하고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민주국가 건설을 시작한 이래 오늘만큼 국론이 한결같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민주주의는 국가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며 민주화를 거침으로써 우리는 선진국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5년전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우리와 교류가 없는 북방대륙과 관계를 개선하여 통일로 가는 길을 열겠다고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해 냈습니다.통일을 가로막던 외적 장애가 모두 제거되어 이제 민족의 재통합은 우리 스스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만 빠른 속도로 진전되던 남북관계개선이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끈질기게 노력하면 90년대안에 획기적인 통일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저는 굳게 믿습니다. 오늘날 세계 여러나라가 다 함께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이룬 높은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값진 것이지만 민주화와 함께 성취한 것이어서 더욱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저는 이땅에 민주공화국을 세운 이후 우리의 현대사가 단절을 거듭해 온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대사에서 이룬 일들이 제대로 평가되어 우리의 힘과 긍지의 샘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지난날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역사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과거의 관념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하여 우리 역사의 연속성을 확인하고 그위에 민족자존을 더욱 높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치는 끊임 없는 선택의 문제이므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라고 믿습니다. 최선의 것을 추구하다가 차선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제가 시대의 소명과 국민의 기대에 얼마나 충실히 헌신했는지 역사가 판정해 줄 것이며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일 것입니다.이제 김영삼대통령 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리나라는 새로운 활력으로 21세기를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우리 앞에는 경제의 도약으로 선진국으로 오르고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지도자의 힘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나누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힘껏 새 정부를 도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조르고 소매를 걷어붙입시다. 우리 모두가 수레에 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수레를 미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우리에게는 밝은 21세기가 열릴 것입니다.
  • “민주화·경제성장 함께 이뤄 보람”/노 대통령 고별회견

    ◎90년대내 통일 돌파구 열릴것/모두가 허리띠 졸라 선진도약을/퇴임후도 사회위해 기꺼이 봉사 노태우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재임 5년을 결산하는 고별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민주주의의 나라로 거듭 태어나 2번째의 평화적 정부교체를 맞고 있다』면서 『동아시아 변방에 머물던 우리는 경제적 성취위에 민주화를 함께 이룸으로써 세계사의 중심국가에 합류했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우리가 이 땅에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한 이래 오늘만큼 국론이 한결같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런 뜻에서 민주주의는 국가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며 민주화를 거침으로써 우리는 선진국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했다』고 평가했다. 노대통령은 현승종국무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이 배석한 가운데 TV와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된 이날 회견에서 『민주주의는 이제 우리의 생활속에 자리잡았으며 이는 자율과 참여로 그것을 이루어낸 국민 여러분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우리 앞에는 경제의 도약으로 선진국에 오르고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국민 모두가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조르고 소매를 걷어붙여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나누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힘껏 새정부를 돕자』고 호소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통일을 가로막던 외적 장애가 모두 제거되어 이제 민족의 재통합은 우리 스스로 풀어 나가야 할 문제가 되었다』고 말하고 『북한의 핵문제 때문에 남북관계개선이 더 진전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계속 끈질기게 노력하면 90년대 안에 획기적인 통일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민주화 과정에서 큰 대가와 희생을 치렀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오늘날 세계 여러나라가 다 함께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이룬 높은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값진 것이지만 민주화와 함께 성취한 것이어서 더욱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우리의 현대사가 단절을 거듭해온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과거의 관념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하여 우리 역사의 연속성을 확인하고 그 위에 민족자존을 더욱 높여 나가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정치는 선택의 문제이므로 최선의 것을 추구하다 차선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회고하고 『시대의 소명과 국민의 기대에 얼마나 충실히 헌신했는지는 역사가 판정해 줄 것이며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퇴임후 구상에 대해 『전임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이바지해야 할 의무는 남아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사회를 위해 기꺼이 기여하고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 “총액임금제 당분간 계속 추진”/16일 본회의(의정중계)

    ◎사면복권 대상 선정원칙·범위 밝혀라/95년 지방까지 청정연료사용 의무화 ▷답변◁ ◇현승종국무총리=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발생한 용공시비는 후보자간의 문제인 만큼 개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부산기관장모임사건과 관련,정부는 관계공직자들을 인사조치 하는등 적법한 조치를 다했다. 정부조직개편은 현재 의원입법으로 진행중이며 정부조직체계 전반의 개편은 차기정부에서 보다 심도있게 연구검토될 것이다. 정부는 환경문제에 대해 지난해 6월 리우환경회의를 계기로 7월에 지구환경장관 대책회의를 설치하고 현재 지구환경 종합대책을 추진중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 문제와 관련해선 정신대 피해자신고접수를 바탕으로 일본에 응분의 보상을 촉구할 방침이다.한일양국 정부가 긴밀히 논의하고 있는 만큼 남북한이 공동대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필요할 경우 유엔 인권위를 통해서라도 대처할 것이다. 공직자 부조리 추방을 위해 정부는 사정체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각종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개편하겠다. 금년에도 안정기조 정착과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임금안정이 불가피하다.임금결정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유도하겠다. ◇이수정문화부장관=홍란파는 1922년 이래 봉숭아등 많은 노래로 암울한 시대에 민족혼을 고양해 각계의 추천으로 지난해 8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다만 그의 행적에 대한 친일시비가 이는데 대해서는 유감이다. 내년 동학혁명 1백주년을 맞아 지난87년부터 17억원의 예산으로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동학사상의 재조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역사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힘쓰겠다. ◇이진삼체육청소년부장관=청소년의 국가관 확립을 위해 독립기념관 방문기회를 늘리겠다. ◇백광현내무부장관=안기부 직원이 부정입학을 알선한 학부모는 광운대 후기 전자공학과에 응시한 김모군의 아버지로 현재 무역협회 감사역으로 근무중인 김모씨와 염색공장인 아진실업의 대표인 김모씨등 두명이다. 「고문」혐의로 수배중인 이근안은 연고지 은신처등을 다각적으로 수사하고 있으나 아직 검거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공소시효는 그잔여시효가 5년8개월이 남아있다.현재 항소심에 계류중으로 형 확정때까지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 현재 시국치안 경찰관은 전체 경찰의 4.7%에 불과하다.문민정부 출범에 따라 각종 불법집회나 시위가 감소할 것이므로 시국경찰의 업무를 민생치안으로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 ◇안필준보사부장관=도농간 의료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농촌지역에 대학병원의 분원설립을 촉진하고 1·2차 의료기관의 육성을 위해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강력히 추진하겠다. 질병치료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양·한방 복합진료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이연택노동부장관=노조신고 때 상급단체를 기입하도록 계속 지도하겠다.이는 노조법상 우리노조가 총연합단체·산별·단위노조등 3단계 기본조직으로 돼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면 노조체계가 혼란되고 단위노조의 난립으로 오히려 노조의 단결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총액임금제는 당분간 계속 추진할 계획이며 이를 금융실명제와 연계하면 곤란하다. ◇이문석총무처장관=최근 3개월간 대통령실에서 전출된 인원은모두 11명이며 이 가운데 2명은 승진,9명은 같은 직급으로 이동했다.승진한 2명은 해외공관장 발령을 받았기 때문에 관례에 따라 한 직급 올린 것이다. ◇이재창환경처장관=환경규제 차이에 의한 상계관세도입은 그린라운드라는 형식으로 선진국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가까운 시일내에 구체화되기는 힘들다. 대기보존 대책은 에너지 정책과 깊은 관계가 있는 만큼 95년까지는 청정연료사용의무화를 지방까지 확대하겠다. 폐기물관리의 효율성을 위해 1회용품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을 도입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정우법무부장관=14대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 갈등의 해소와 대화합의 차원에서 취임직후 대사면이 실시될 것이다.그러나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므로 여기서 사면의 기준 폭을 말씀드리기 힘들다. 사면을 제청할 장관으로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실시되도록 건의하겠다.민주화운동과정에서의 학생및 공안사범,노동쟁의과정에서의 근로자,일반형사범 등 대상범위를 확대하도록 건의할 방침이다. ◇유혁인공보처장관=지금까지 각 종교방송국으로부터 36개의 지방국신설 신청을 받았으나 공보처로서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의 증설계획을 현재로서는 갖고 있지 않다. 종합유선방송은 지적소유권문제와 같은 장애요인이 있더라도 방송문화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할 것이다. 또 방송구역분할과 채널구성방안등의 구체적인 준비작업은 새정부출범후에 본격화되리라 본다. ▷질문◁ ◇장영달의원(민주)=총리는 지난 대선관리를 총책임진 장본인으로서 김영삼당선자가 25일 취임하기에 앞서 자신의 동지에 대해 용공매도한 행위를 공식사과하도록 요청할 의향이 없는가.지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호남지역의 숙원사업에 대해 예산을 대폭 지원하고 부산기관장 모임에 참석했던 관계자 전원을 구속처벌할 용의는 없는가. 새정부 출범에 맞춰 추진중인 사면 복권대상자 선정원칙과 그 폭을 밝히라. ◇송두호의원(민자)=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재산공개등 「윗물맑기운동」을 전개해야 하며 이러한 운동이 사회전체의 범국민 정신운동으로 확산될 때 이 땅의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에대한총리의 견해는. ◇김진영의원(국민)=이번에 청와대 비서실및 경호실 간부 23명에 대한 훈장수여 결정이 알려졌다.사전에 국무총리,총무처와 상의가 있었는가. ◇조진형의원(민자)=이번 입시부정은 사학의 재정이 부실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기여금 입학제를 도입하거나 재정이 빈약한 사학재단을 과감치 처리하든지 아니면 정부의 재정지원을 늘려주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대한 견해는. 또한 대학정원을 늘려 수요를 충족시키는 대신 엄격한 졸업정원제를 실시할 생각은 없는가. ◇원혜영의원(민주)=6공하에 있었던 각종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과 관련,노대통령은 퇴임전에 「6공하 비리의혹청산 선언」을 하여 자신의 재임기간중에 있었던 모든 의혹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용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최상용(민자)=신한국건설의 중점과제중 하나인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노사관계에 관한 제도개혁이 선결과제라고 보는데 노조조직 체제의 산별체제전환과 노조의 정부정책참여및 경영참가등을 새정부의 주요과제로 선정,추진할 용의는 없는가.
  • 재야화가 고 이철이 예술혼 재조명

    ◎갤러리 21,19∼28일 화업 40년 발자취모아 「유작전」 마련/이중섭과 함께 수학한 양서1세대/국전외면… 「그림통한 자유」로 일관/하정웅대표,“한국미술 발전위해 숨겨진 작가발굴 지속” 잊혀지고 숨겨진 작가들을 발굴,재조명작업에 정성을 기울이고있는 한 화랑이 지난해 연말 김욱규유작전을 개최한데 이어 새해들어 「이철이유작전」(19∼28일)으로 또다른 뜻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사업가로 성공한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고국에 각별한 마음으로 지난해 가을 동숭동에서 개관한 갤러리21이 바로 그 화랑이다.상업성보다는 미술인과 관객의 교감의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고있다. 이철이란 작가는 지난69년 60세로 타계한 서양화가. 일제시대에 이중섭 유영국등과 함께 동경문화학원에서 수학했던 양화1세대 작가이다. 일찍부터 국전을 외면하고 재야작가로 일관하여 화단의 그늘에 가려졌던 인물이기도 하다.그 저력과 열망을 다 채우지 못한채 예술생애에 대한 엄밀한 평가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불우한 작가라 할수있다. 19 42년 상처한 뒤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과묵한 가운데 술을 좋아했고 세속적 욕심이 없었다는 그의 예술세계는 19 6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선명하게 성취됐다. 지난88년 미술전문잡지의 발굴기사에 의해 작고후 처음으로 미술사적 조명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그래서 유작을 보관해온 유족(장남 이상국)은 비로소 용기를 얻어 90년 조그마한 회고전을 연바도 있다. 이 전람회를 계기로 이 작가에 대한 미술계 인식은 새로워지기 시작했으며 91년에는 이철이의 삶과 예술을 정리한 대형화집이 유족에 의해 발간되기도 했다. 이번 유작전에는 일본 유학시절에 제작했던 누드,풍경등 구상경향의 유화에서부터 해방이후 오랫동안 미술교사로 지내면서 몰입했던 꽃그림 중심의 수채화가 나온다.그리고 예술의 본격적 경지에 접어들어 작고 직전까지 천착했던 추상작품이 한꺼번에 선보여 예술40년의 궤적을 뚜렷이 보여줄수있게 되었다. 그의 아들과 동명이인인 중견서양화가 이상국씨는 스승이었던 그를 『선생님은 작품으로 인생의 승부를 거셨고 그림을 통해 자유를 얻으려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술가의 인생이 어떠해야 하는지 눈뜨게 한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미술평론가 이구열씨는 『그의 예술적 자취를 재조명하는 것은 우리 근·현대화단사에 매우 요긴한 일』이라고 강조하고있다. 지난해 가을 작고작가 김욱규(19 16∼19 90년)의 유작 4백여점을 최초로 공개,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갤러리21은 앞으로도 이 사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한국현대미술사에 빠져있으나 우리 미술사를 바꿔야 할만큼 소중한 작가들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다. 지난20년간 미술을 수집해온 화랑대표 하정웅씨는 그때마다 한국미술의 발전과 우수한 작가들의 양성을 위해 큰 몫을 하리라는 각오로 고국을 다녀가곤한다.
  • 선현들의 말씀 오늘에 맞게 재조명(’93책의 해)

    ◎초중고생위한 「고전의 세계」 출간/논어·맹자·소학·격몽요결 등서 발췌/문화부,각학교에 도의생활교재로 보급/명구에 얽힌 일화 곁들여 이해도와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동양의 고전을 알기 쉽게 정리한 「고전의 세계」가 출간돼 청소년들의 도의생활 교재로 쓰여진다.문화부가 펴낸 이 책은 국민학교용 「밝은 마음 바른 생활」2종과 중학교용 「배우며 생각하며」,고등학교용 「사람이 가는 길」등 모두 4종이다. 이 책은 「논어」「맹자」「소학」「명심보감」「격몽요결」등의 고전에서 청소년 시절의 지표가 될만한 덕목을 골라 체계적으로 정리,제시하고 있다.먼저 각주제의 머리에는 선현들이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한 고전의 주요 명구를 예시한다.본문에서는 이와 관련된 일화,민담,역사적 사실등을 풍부하게 들어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또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생각해 볼 문제(국민학생용)나 연구문제(중·고등학생용)를 실어 본문의 내용을 실생활과 연계시켜 다시 한번 생각해 볼수 있도록 했다.한편 국민학생용과 중학생용은 천연색 삽화를 곁들여 이해를 돕도록 했다. 이 책은 성균관대 최근덕교수의 책임연구 아래 같은 대학의 오석원 이기동 최영진 최일범교수와 아동문학가 김종옥 고정욱이 집필에 참여했고 삽화는 숭의여전 김정교수가 맡았다. 사실 「논어」「맹자」류의 고전들을 알기쉽게 풀어 쓴 책들은 이미 시중에 넘쳐나고 있다.그러나 이들 고전이 담고있는 가치관이 모두 현대에 그대로 적용되지 못할뿐 아니라 이해되지않는 대목도 있어 청소년들이 거리감을 느껴왔다.이에따라 집필진들은 먼저 이들 고전이 담고있는 가치관가운데 계승될수 없는 것은 버리고 계승될수 있는 것만 가려냈다.여기서 추린 덕목을 현대적 감각에 알맞게 재조명하고 미래사회에 대비한 윤리의식을 보완시켜 성장단계에 맞는 수준으로 정리했다. 「고전의 세계」의 권별 수록내용을 보면 국민학교용 「밝은 마음 바른 생활」은 생활예절과 어버이사랑,형제사랑,이웃에 대한 내용을 담아 유년기에 올바른 정서의 기틀을 다지도록 했다.중학교용 「배우며 생각하며」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예절,그리고 삶의 슬기와 용기를 북돋울수 있는 내용을 담아 소년기의 미래지향적인 가치관 형성을 돕는다.고등학교용 「사람이 가는 길」은 가정,국가,세계속에서 자아를 발견하여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인생관을 가질수 있는 내용을 담아 사춘기의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도록했다. 이 책은 1차로 2만권이 만들어져 전국의 초·중·고교 및 유관기관에 청소년 지도자료로 배포된다.문화부는 현재 일선 교사들이 이 책의 내용을 효율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데 도움을 줄 교육지침서의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문화부는 이밖에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고전의 세계」와 고전을 심층적으로 이해할수있는 해설서도 단계적으로 펴낼 계획이다. 이 책은 입시교육에 찌든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여유를 주고 또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올바른 가치관과 인격 형성도 꾀해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에따라 문화부는 이 책이 각급학교의 교재로 쓰일수 있도록 하기위해 교육부와 활발히 접촉,현재 상당한 진전을 보고있는 상태이다.문의 문화부 생활문화과 720­3816
  • 월남전 고엽제피해 심층 해부

    ◎KBS­1TV,「베트남전쟁 그후 17년」 8∼9일 2부작으로 방영/살포경위서 기형아 출산까지 생생히/정부지리 폭로한 미 의회 보고서 공개/미 환경보호국 등의 고엽제 연구결과도 소개 베트남전의 고엽제 살포에 따른 피해문제를 본격 조명한 특집다큐멘터리 2부작 「베트남전쟁 그후 17면」이 오는 8,9일 하오 10시 KBS­1TV를 통해 방영된다.지난해 11월 한·베트남 수교를 계기로 아태시대의 새로운 동반자로 떠오른 「베트남의 오늘」도 아울러 소개하게 될 이 프로는 KBS가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선보이는 집중기획물.특히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소개돼 왔던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정확한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짚어볼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제1부 「아메리칸 호프는 자란다」에서는 최근 본격적으로 여론화되기 시작한 고엽제 문제를 미국·한국·베트남의 삼각취재를 통해 심층적으로 해부한다.어떠한 절차를 거쳐 고엽제가 베트남 전역에 살포되었는가를 비롯,병사들의 고엽제 노출기준 측정시 이용되는 미 국방성의 군사비밀테이프(HerbsTape)와 고엽제 작전에 대한 미 정부의 비리를 폭로한 미의회 청문회 보고서 등이 국내 방송사상 최초로 공개된다.또한 성분도 모르고 고엽제를 뿌린 미군 조종사,모기약인줄 알고 자청해서 이를 맞은 한국인 병사,그리고 전쟁후 17년이 넘도록 기형아 출산이나 심신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는 베트남측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도 담겨져 있다.특히 미 육군 예비역장성 줌 왈트씨와의 인터뷰 내용도 소개된다.왈트씨는 고엽제 살포를 명령했던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아들 또한 베트남전에 참전해 고엽제를 살포했다가 그 후유증으로 지난 88년 사망하는 등 비극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는 이미 미국에서 TV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이 프로는 현재 보훈처가 입법 예고한 고엽제 피해자 검진방침을 지지 보완하는 가장 신빙성있는 다큐멘터리로 미 재향군인회,미 환경보도국,담당자들의 고엽제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곁들여 더욱 사실성을 높였다. 그밖에 베트남 최대 산맥인 정선산맥의 「죽은 산」들의 모습과 그곳에서 서생하고 있는 「아메리칸 호프」라는 풀들의 생태도 소개된다.또 중부 라오스의 험준한 국경지역에 위치한 고엽제 피해 마을을 찾아 요즘도 일년에 수백명씩 태어나는 사산아와 기형아들이 수용된 두유 산부인과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들의 평화촌을 세계 최초로 실감나게 보여준다. 제2부 「새로운 출발」에서는 전쟁이 끝난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온몸으로 베트남전을 치러내고 있는 「반도의 사람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베트남인들이 겪고 있는 희망과 고뇌를 재조명하게 될 이 프로는 전쟁이산가족,전쟁사생아들,부산 난민수용소에 수용된 「보트 피플」그리고 LA에 뿌리내린 베트남 이민들의 표정들을 생생하게 취재해 영상에 담는다.특히 미 국방부에서 8년전부터 공식적으로 보상 치료해주는 PTSD(외상성 정신질환)의 정체를 처음으로 소개한다.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방위스포츠」관광코스로 개발한 M­16 실탄사격장과 전쟁당시 사이공 비밀무기 보관소도 최초로 공개한다.그밖에 베트남 외무차관등 고위층과의 인터뷰를 통해 변모한 베트남의 실상을 바로 알리는 계기도 마련한다.
  • “입시관리 진단과 처방” 전문가 긴급대담

    ◎“「교육의 뜻」 전면 재정립해야”/커닝 넘어선 교직자·학부모 결탁에 충격/죄책감 못느끼는 대리시험 부정에 허탈/처벌로 끝내지말고 재발방지책 세우길/자율화 따른 잡음도 부패보단 나을것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대입시부정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와 범죄에 대한 최후의 보루역할을 해야할 교육현장에서까지 비리가 다반사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어떤 사건보다도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오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같은 입시부정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의미와 원인,그리고 대책은 무엇인지 서울대 김일철교수와 연세대 김인회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오늘의 사태를 진단해본다. □참석자 김인회 ▲62년 연세대졸 교육박(연세대) ▲연세대부교수 연세대교육대학장 현 연세대교육학과교수 ▲저서 「한국무속사상연구」「한국문화와 교육」「교육과 민중문화」 김일철 ▲57년 서울대졸 사회박(미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서울대교수 사회대학장 현 서울대사회학과교수 ▲저서 「사회구조와 사회행위론」「한국사회와 재구조화과정」 ▲김인회교수=이번사태를 통해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허탈감과 함께 실망감마저 느낍니다.어떻게 이지경에 이르렀는지 송구스럽기까지 합니다.6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입시부정이라해도 기껏해야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정도였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자행됐고 재단·교사·학부모·학생들까지 계획적으로 동원되고 있습니다.이런점을 감안하면 사학의 비리척결차원이나 당사자들의 부도덕성만을 비난하고 법적조치를 취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만은 안된다고 봅니다.우리의 교육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만큼 교육이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재조명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철교수=사회 각분야에서 각종 비리·부정이 노출되고 있는 단계에서 터진 이번 일련의 사건들은 교육계만의 특이한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비정상적인 수준이고 보면 최근의 사태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징후들이지요. 물론 자녀에 대한 강한 교육열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과정에서 투입되는 엄청난 비용이 얼마든지 비리·부정의 잠재성을 갖고 있었고 제도자체가 그런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이번 사고들이 대다수 서민층과는 관계없는 특정층의 비리로 볼 수 있고 마치 아무일 없다가 이번 사고 발생으로 문제가 급격히 부각된 것처럼 보는 인식의 위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인회교수=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60년대말부터 지속된 교육의 획일화에서 찾고 싶습니다.정부에서 엄격한 틀에 맞추어 교육을 독점해오다보니 한정된 교육과정의 평가라고 할수있는 석차경쟁이 대학에까지 이어지고 이것이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돼버렸으며 대학입학은 생존권의 연장이 됐습니다.또 학교교육이외는 교육이라곤 찾아볼수가 없는 교육독점은 인간교육·인성교육을 없애버린 결과마저 빚었습니다.이런상태에서 입시부정이 생기지 않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리석다고 봅니다.인간교육의 실패로 사회구석구석마다 비리가만연한 상황에서 극히 일부지만 어떤수단을 써서라도 내자식만은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부모들이 없을수 없고 이를 이용,돈을 챙기려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겠습니까.그리고 돈을 받고 죄책감없이 시험을 대신 쳐주는 학생들이나 알선하는 교사들이 나올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이렇게볼때 우리교육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모든것이 비롯됐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일철교수=물론 이번 사태가 문화적 전통과 그릇된 교육의 역사와 전통,사회의 빗나간 교육관등 모든 제도·관행이 빚어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제도가 완벽한게 없는만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완벽하지 못한 제도에서 비정상적인 파행이 언제든지 발생한다고 볼때 비리가 생겨날때마다 철저한 원인규명을 통해 강력하게 대처하다 보면 자연히 준법·질서기강이 정착되는 법이지요. 부정이나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즉각 대처하는 방법도 빨리 세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지금같은 일과성 대책으론 거듭되는 사고재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김인회교수=사실 그렇습니다.입시부정관련자들은 엄중히 다스리고 관련대학의 정원을 줄이는 등 처벌을 강하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획일화된 교육에 다양성을 부여하는게 가장 시급하다는 생각입니다. 대학은 면접만 하고 국민학교부터 고교때까지 내신성적으로 선발한다든지 전형방법만 다양해도 대리시험은 없어질 것 아닙니까.물론 여기에도 부정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독점에 따른 부작용보다는 문제점이 훨씬 작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입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도 경쟁의 채널이 많으면 자신의 개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이고 점차 다양하고 복잡다단해지는 사회의 흐름에도 부합하게 되는 것이죠.입시부정도 이것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극한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수용의 폭이 넓어진다면 이같은 비리를 줄이는 완충역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일철교수=내년부터 입시제도가 바뀌어 대학의 학생 선발권에서도 어느정도 다양성 추세를 띠고 있는 단계에서 정부의 획일적 통제는 더이상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다양성은 자율성과 깊이 연관돼 있다고 볼때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통해 획일적인 통제를 줄여나가야 하겠지요. 사실 이번 사태발생도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이 동일한 모델에 맞추려는 통제형태를 띠어온데서도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보입니다. 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자율성의 여지도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발생이 우려되지만 대국적으로 볼때 자율성확대에 따른 잡음이 획일적 통제로 인한 부정부패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지요. ▲김인회교수=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번사태를 보고 『조금 풀어주니까 이렇게 되지않았느냐 다시 옛날처럼 강력하게 통제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제입장에서 볼때는 아주 근시안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풀어준다는 것 자체도 획일적으로 한다면 이 또한 통제의 일부입니다.교복자율화의 예를 보더라도 말이 자율화였지 강제로 교복을 벗겼지 않았습니까.다양화라는 것도 어느정도의 폭을 정해놓고 점차해나가면서 자율의 역량을 쌓게하고 궁극적으로 자율에 입각한 완전다양화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김일철교수=물론 자율성 확보를 위해선 모순이 생겼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선행돼야 함은 말할나위 없습니다.이번 사태만 하더라도 언론이 비리공개를 통해 자정능력을 북돋워 나가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부정사실 부각에만 그칠게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지적을 통해 건설적인 대책마련을 강조해야 한다는 접근방법이 아쉽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과 같은 학교성적·학벌을 기계적으로 중시하는 흐름이 아니라 개인능력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이 정착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률적인 학력강조 분위기가 계속될 때 문제는 계속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계의 시정의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공동노력이 시급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김인회교수=이번 기회에 오랜동안 고질적으로 굳어진 잘못된 우리의 교육관을 다시한번 새롭게 가다듬어볼 필요성이 있다고 재차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회변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추세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아진학교교육에의 전적인 의존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형태로 분화·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1차적으로 가정과 지역사회 생활을 통해 인격형성의 토대를 마련하고 학교생활로 사회활동 준비를 갖춘다는 대원칙아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그리고 모든형태의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 전반적인 자율 능력을 배양해나가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김일철교수=저는 우선적으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가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수단도 사회가 인정하는 정당한 방식이 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학문의 자유와 인간의 양심을 가장 중시하는 교육계에서 최근의 조직적인 부정이 발생한 것은 비단 교육계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모두의 수치가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도적인 개혁도 추진하면서 가정과 직장등 기본적인 사회단위에서부터 부정한 수단을 배척하려는 인식과 노력이 일면서 사회전반에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될때 근본적인 개선은 앞당겨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바로크음악 재조명작업

    ◎바흐·헨델곡 연주회·음반제작붐… “대중화” 비판도 서구의 클래식 음악계에 바로크음악을 다시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프랑스 독일 미국등의 내로라 하는 클래식연주자및 지휘자들이 앞장서고 있는 이같은 움직임은 단순히 바로크음악을 리바이벌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화시키려 한다는 측면에서「복원운동」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대중화되면 오히려 저급해질수 있다』는 일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바하와 헨델로 대변되는 바로크음악의 본래 분위기를 최대로 살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클래식의 향기를 큰 변질없이 이어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70년대에 바로크음악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싹틀 때만해도 많은 비평가들은 『한물간 짓을 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했었다. 그러나 20년남짓 지난 오늘,바로크음악은 바하를 결코 욕되게 하지 않았으며 대중속에 엄연히 살아있어 오히려 그 뿌리를 더 깊이 내리려는 움직임이 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크음악의 대중화가성공하고 있는 단적인 예는「세계의 모든 아침」이란 사운드트랙에서 찾아볼수 있다. 제라드 데파르디유란 프랑스 영화사가 배경음악으로 제작한 이 사운드트랙은 25만개가 복사돼 팔려나갔다.덕분에 앨범의 기획자이자 지휘자인 조르디 사발은 10년동안의 무명시절을 벗어나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미국출신의 윌리엄 크리스티도「예술의 번창」이라는 바로크음악공연을 통해 사발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두었다.그의 성공은 프랑스정부가 고전음악을 대중에게 보급시키려는 뜻을 인정,전폭적인 재정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발,크리스티등이 바로크음악을 대중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들이 예술적으로도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남아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음악의 다양한 기법들이 득세하고 있고 고전음악도 최첨단 악기에 의해 변형되고 있는 이때에 바로크음악을 본래에 가깝게 다시 조명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긍정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고전음악의 제작에 인색한 레코드회사들이 최근들어 바로크음악의 대중화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에서도 읽을수 있다. 레코드사들은 바로크음악을 70년대식으로 리바이벌하는 것을 꺼려왔다.현대의 편곡기법이라든가 녹음기술을 채택하지 않고 단지 재생하는 것에 그쳐 음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영국 EMI레코드사는 지난50년 만들었던 바하의 칸타타51번을 다시 그대로 찍어냈다.다른 이름있는 레코드제작회사들도 바하와 헨델의 음악작품을 제작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 공무원 직급구조 개선 모색/9개부처 새해 업무보고 내용

    ◎중앙행정권한 지방으로 대폭 이양/전·현역군인에 취업·주택지원 확대/재소자 통근작업 등 직업훈련 강화/정부 제3청사 건립 추진… 행정기관 지방 이전 ▷감사원◁ 공직기강확립차원에서 일부 공직자의 일미루기,눈치보기,손벌리기 등 부정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공직배제 등 일벌백계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반면 모범공직자의 발굴,포상등 사기진작을 통하여 긍지와 보람을 갖는 공직사회구현에 주력한다. 경제·사회의 안정과 발전지원 측면에서 경제활력의 회복을 위하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요사업에 대한 추진상의 문제점이나 애로사항을 타개해 나가겠다. 준법질서촉구차원에서 전환기를 틈탄 그린벨트 훼손,변태유흥업행위 등 불법·무질서 행위에 대한 단속을 지원하고 부동산투기나 조세포탈등 경제질서 교란행위의 근절을 촉구하는데 역량을 결집시키겠다. 이러한 기조아래 올해는 3백88개 감사사항에 대하여 실지감사를 벌일 계획이다. ▷내무부◁ 공직사회내의 「새바람운동」을 전개하고 기관장·상급자의 「윗물맑기운동」을 솔선수범하는등 새정부 출범에 따른 공직분위기를 일신한다.올해를 「공직부조리추방의 해」로 정해 부패구조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겠다. ○행정규제 대폭 완화 또 민원행정을 일대쇄신하고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일하는 정부,질높은 봉사」를 구현하겠다. 한국병치유를 위한 부패 부도덕 비능률 무기력을 추방하고 지역감정을 해소하며 민주시민의식함양을 통한 선진사회기반을 조성하는등 「신한국창조」를 위한 새시대 범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 지방행정조직의 전면적 진단실시,지방행정구역의 전향적 개편등 지방자치체제를 보강하고 중앙권한 사무의 지방이양을 확대하는등 지방자치정착기반을 조성하겠다. 완벽한 민생치안수준을 확보하고 사회안정기조를 확고히 정착시키는등 「안정된 사회,안전한 국민생활」을 보장하는데 역점을 두겠다. 지방도로망을 정비하고 달동네 오지등 개발이 뒤진 지역의 발전기반을 조성하는등 살기좋은 지방안주기반을 확충하겠다. ▷법무부◁ 간첩등 좌익폭력세력을 발본색원하고 법절차를 무시한 불법집단행동에엄중대처하는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에 최대한 역점을 둘 방침이다. 민생침해사범의 지속적 단속으로 국민체감치안개선에 주력하고 공직및 사회지도층 부정·비리를 척결하는등 엄정한 사회기강을 확립하겠다.법률구조기능확충으로 서민권익을 보호하는등 법률복지사회를 구현하고 지방교정청기능 활성화로 교정역량을 증진시키는 동시에 재소자 직업훈련을 강화하며 외부통근작업을 확대하는등 교정관리기능을 강화하겠다. 출입국절차의 신속·간편화등 선진출입국관리질서를 정착시키며 비행청소년 선도활동의 적극 전개등 범법자 보호선도역량을 극대화하겠다. ○연구력 강화에 역점 ▷교육부◁ 교육과정운영의 정상화로 자주적·창의적인 인간교육을 강화하고 교육환경의 개선을 통해 국민기초교육의 충실화를 기하겠다. 초·중등 과학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93년을 「과학교육의 해」로 운영,학생과학탐구올림픽을 개최하고 전국과학교육자대회및 과학교육 대토론회를 열겠다. 또 「대전엑스포93」을 통해 과학교육을 강화하고 올해부터 2001년까지 기간동안의 과학교육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할 계획이다. 고등학교직업교육·중견기술인력및 고급기술인력양성등 직업기술교육을 강화하겠다. 새 대입제도의 세부시행계획확정및 시행과 대학의 교육·연구력강화및 자율성신장에 역점을 두겠다. 우수교원확보와 교원지위향상및 복지·처우개선에 힘쓰는등 긍지높은 교직사회조성에 진력하겠다. 대학부설 평생교육원의 확충등 평생교육체제를 확립하고 재외국민교육을 강화하며 국제교육·교류협력을 증신시키겠다. ▷문화부◁ 자율의 토양위에서 문화가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신한국문화」를 창조하고 더불어 함께사는 공동체의식을 부식시키며 문화입국의 기반을 구축하겠다. 이에 따라 전통문화를 전승·발전시키는등 문화창조역량을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 또 한국인의 가치관재정립과 도덕성회복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진작시키고 남북문화교류추진등 통일을 향한 문화적 대비에 힘쓰겠다. ○월드컵 축구 등 유치 ▷체육청소년부◁ 국민생활체육진흥 10개년계획수립등 생활체육활동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누구나 쉽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주력하겠다.신인선수(꿈나무),후보선수발굴·육성을 체계화하고 국가대표선수들의 훈련방식을 선진국형으로 전환시켜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수성적을 거둠으로써 스포츠강국의 위상을 견지하겠다. 96년 동계아시아경기대회,2천6년 동계올림픽대회,2천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를 적극 추진하겠다.남북대화재개및 체육협정대상국 확대를 통해 남북체육교류와 국제체육교류협력을 강화시켜 나가겠다. 「한국청소년기본계획」의 2차년도사업과 「청소년기본법」의 규정사항을 차질없이 시행하고 가정·학교·사회의 각자 역할을 제고,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청소년들을 건전하게 육성해나가겠다.2천1년까지 3천억원의 청소년육성기금조성을 위해 국고출연금확대및 조성사업 개발·시행을 차질없이 진행시키겠다. ▷총무처◁ 미래행정수요에 대처하는 조직관리기반을 구축한다.정부조직체계의 합리적 개편과 정비,기구·인력의 효율적 관리로 「작고 강력한 정부」를 구현시키겠다. 행정권한의 위임·위탁등 중앙·지방·민간간의 역할을 재정립하겠다.국제화·전문화시대에 적합한 우수전문인력확보,계급구조및 공직분류체계등 인사제도개선,국정의 일관성과 계속성을 유지할 안정된 근무여건마련등 새행정의 구현을 주도할 인사행정체제를 확립하겠다. 조직의 지휘체계와 추진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공직 기강을 확립하고 공직사회의 활력증진을 위한 복무여건을 조성해나간다.깨끗하고 정직한 공직윤리실천에도 힘쓰겠다.규제완화등 행정쇄신작업의 지속추진,각종 민원제도의 합리적 개선,민원공무원 봉사자세확립으로 국민편의위주의 봉사행정체계를 구축하겠다. 사무능률향상,행정사무자동화·전산화를 추진하겠다.대통령 이·취임식등 국가주요행사를 차질없이 수행하고 국가사회발전유공자를 적극 발굴하며 국가서훈및 정부행사의 간소화·내실화를 기하겠다.청단위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이전을 위한 정부3청사건립을 추진하고 경제부처통합수용및 부족 사무실해소를 위해 과천청사 제5동 건립을 추진하겠다. ○보훈병원 병상 확충 ▷국가보훈처◁ 국가보훈대상자 기본연금을 월27만4천원에서 28만2천2백원으로 인상하겠다.중상이자 간호수당도 월40만원에서 48만원으로 올리겠다. 3백병상을 갖춘 대구병원을 2월에 개원하는등 보훈병원 병상을 1천5백80개로 확충하는 한편 부산병원(2백40병상)에도 3백40병상의 증설을 추진하겠다.지방거주자의 진료편의를 위해 44개소의 종합병원에 위탁가료를 실시하도록 하며 전공상군경의 신체재활과 여가선용을 위한 국가유공자 복지회관을 경남 창원에 건립하겠다. 5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1만2천가구의 보훈대상자에 대해 주택및 생업을 지원한다.노령대상자 소득보장을 위한 정년연장,재취업지원 강화등 직장주선도 내실화하겠다.제대군인 86만명,현역군인 12만명등 총98만명에 대해 취업·주택·의료·교육지원을 하며 군인보험및 재향군인회운영도 지원하겠다. 새로 발굴된 해외 사료등을 바탕으로 5백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하고 서울에서 독립운동사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새 법령 홍보 극대화▷법제처◁ 새정부의 개혁정책추진을 법제면에서 지원하는데 역점을 둔다.비합리적·비능률적 제도를 과감히 정비하고 규제위주의 법제도를 지원·조장위주로 개편하겠다. 어려운 법령용어를 알기쉽게 대체하고 입법예고제의 여행으로 입법절차도 민주화하겠다.통일에 대비한 법제연구도 강화,북한법제에 대한 분야별 연구를 심층화시키고 교류협력시 발생할 법률문제도 사례별로 미리 연구해 나가겠다.정부수립이후의 각종 법령원본의 광파일화를 통해 법령전산망도 확충하고 현행 법령전산망을 종합적 법령 정보 데이터베이스로 확장하겠다. 각종 홍보매체를 통한 새 법령소개를 정례화시키고 정기간행물에 의한 법령홍보도 극대화하겠다.행정심판의 내실화를 위해 당사자출석에 의한 구술심리제도를 적극 활용,심리의 공정성을 제고하고 심리기간단축으로 신속한 권리구제를 실현하겠다.
  • 근현대인물 재조명 된다/창비,현대인물연구시리즈 기획

    ◎1차 전봉준·김원봉연구 펴내/조봉암·홍명희·여운형도 계획 그동안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 편향 때문에 소홀히 다루어져온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에 관한 새로운 조명이 시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창작과 비평사가 새롭게 기획한 현대인물연구시리즈의 제1·2권으로 최근 발간한 「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우윤)과 「김원봉연구」(염인호)는 주로 문헌자료에 의존했던 기존의 평전들과는 달리 학문적으로 전공한 젊은 학자들이 직접 현지답사와 인터뷰등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한국현대인물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이와함께 진보당의 조봉암,일제시대 노동운동가 이재유,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끈 민족지도자 여운형등에 관한 연구서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이 작업은 역사인물의 체계적 연구를 통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봉준의 연구에서는 갑오농민전쟁의 원인에 대해 단순히 삼정문란이나 지배층의착취,그리고 양반·토호들의 횡포에만 초점을 맞춘 종래의 시각에서 벗어나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이를 토대로한 사회변동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라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했다.특히 주도면밀하고 조직적인 운동전개로 근대 민중운동 역량의 일대폭발을 가져온 전봉준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그의 인간적 면모도 부각시켰다. 민족주의자 약산 김원봉의 연구는 그의 고난에 찬 투쟁사와 사상을 하나의 일관된 틀로 체계화한 국내최초의 연구서이다.그는 남한에서는 19 48년 월북했다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민족해방운동사의 정통성을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에만 한정시키는 또다른 이데올로기적 제약으로 남북한 양쪽에서 배척당해 역사의 뒤켠에 매몰된 인물이었다.이 책에서는 그가 이끈 의열단·민족혁명당·인민공화당등의 활동을 다각적으로 구명,그가 민족독립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러면서도 민중의 이익을 일관되게 추구한 진보주의자였음을 밝혀내고 있다.
  • 임란 개인체험 다룬 실기문학 재조명(건널목)

    ○단대 황패강교수 지음 ○…지난해는 임진왜란발발 4백주년이 되던해.그 역사적 의미를 재검한 학계의 움직임이 결실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실기」를 통해 우리 선인들의 임진왜란체험을 보다 냉정하게 살펴보려는 저서가 나와 주목을 끈다. ○…한국고전문학연구에 일가를 이루고 있는 국어학자 황패강교수(단국대)가 펴낸 「임진왜란과 실기문학」은 이같은 맥락에서 우리 학계에 새로운 학문적접근방식을 제시하고 있다.황교수는 이 책에서 유성용의 「징비록」,이순신의 「난중일기」등 이미 알려져 있는 실기문학의 대표작을 비롯,조정의 「임진위란일기」,오희문의 「*미록」,유진의 「임진록」,정영방의 「임진조변사적」등 6작품을 검토했다. ○정사와 달리 주변사다뤄 ○…「실기」란 「정사」와 달리 작자자신의 주변적 사실과 개인적인 생활현실을 다뤘기 때문에 사회전반적인 문제나 역사적 소재취급에는 제약이 따르게 마련.필요한 사회의 정보를 대개 풍문이나 전문 혹은 문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고 있어 사실 전달이 불완전하거나 부정확할수 밖에 없다.그러나 「정사」를 공식사건의 추상적인 기록이라한다면 「실기」는 전쟁을 몸으로 겪은 각 계층인들의 각이한 체험을 사실적이고 감성적으로 고찰한 것이다.예를 들어 유진의 「임진녹」에는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아이를 거두는 마을주민들의 훈훈한 인정담을 통해 전쟁의 참화에도 우리 고유의 온정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사회 병리도 묘사 ○…따라서 황교수는 이들 「실기」에서 「정사」에서 간과하고 있는 문제들을 들추어냈다.이를테면 개인들의 사소한 신변문제를 통해 위정자와 관리들의 허세와 무능,의병에 대한 부정적 시각,명나라군대에 대한 비판등 당시 조선사회의 감춰진 병리를 드러내는 소중한 우리 문학이라는 것이다.
  • 전통 계승/이창갑 건양대총장(굄돌)

    농어촌을 공동사회라 하면 도시를 이익사회로 견주기도 한다.이익사회는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며 과학적이라는 등의 특징을 지닌다.그런데 우리의 농어촌도 이제 거의 이익사회화되어 가고 있다.그래서 웬만한 농어촌에 가면 그윽한 사랑방 대신 다방이 들어섰고 마당에 차일을 치고 벌어지던 모든 잔치 자리는 식당으로 옮겨졌다.이 때문에 이제는 농어촌 어디를 가도 구수한 사랑방의 이야기를 들어볼수 없게 되었고 주막의 농주도 맛볼수 없게 되었으며 차일밑의 흥타령을 들을수 없게 되었다.결국 도농간 어디를 가나 인정은 메마르고 정서는 날로 각박해지고 있는 듯 싶다. 이 정서와 인정을 회복하지 않는 한,삶의 보람을 만끽하고 거기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물질문명만으로는 결코 인정을 회복하고 정서를 순화할수 없다는데 있다. 여기서 전통문화의 재조명과 계승이 요구된다.왜냐하면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전통문화의 터전위에서 훈훈한 인정을 나누어 왔고 여유있는 정서생활을 향유해 왔기 때문이다.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전통문화의 계승이 요구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물질문명이 우리보다 몇발 앞섰다고 자처하는 일본인의 경우 요즘도 전국 각지에서 거의 빠짐없이 그들의 전통축제인 「마쓰리」가 거행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요컨대,우리는 바야흐로 뚜렷한 가치관,확고한 주체성을 발휘할수 있는 건전한 국민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그러한 국민의식이 없이는 오늘의 혼미를 결코 치유할 수 없다.그리고 그러한 국민의식은 무엇보다도 전통문화의 재조명과 계승에 의하여 확립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전통문화의 계승이란 옛 것의 무조건적인 답습이나 모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옛것의 모방이나 답습은 역사를 역행하는 일이다.올바른 계승이란 옛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일임을 명심하여야 한다.그리하여 우리는 기계문명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정서와 인정을 회복하고 건전한 국민의식을 발휘할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 중학생때의 꿈 대통령 되기까지(김영삼 결단·돌파 40년:상)

    ◎인간면모/활달했던 성장기… 항상 긍정적/“역사·국민앞에 떳떳이/신의·약속 중시… 친화력도 겸비/유복한 가정 외아들… 돈에 초연 제14대 대통령당선자 「김영삼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정치인으로서 너무나 뚜렷한 족적을 보여주었다.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으로 출발,민주화 투쟁·반독재투쟁의 선봉에 항상 앞장서 있던 그는 이제 집권당총재를 거쳐 대통령당선자가 되었다.화려하면서도 영욕이 교차했던 그의 정치경력 때문에 국민들이 거는 새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김영삼당선자의 인생과 정치비전을 상·하로 나누어 재조명해 본다. 1992년 12월19일­. 긴세월 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실현됐다. 대통령은 정치인의 꿈이다.그는 그 꿈을 성취했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다. 그가 어떻게 결단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진운이 결정된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도 이날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아침운동길에 나섰다.마산에 계신 부친 김홍조옹에게 안부전화도 잊지 않았다. 어제 아침과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둠속에서 상도동야산을 달리는 그의 머리속에는 ” 늘 기도/이자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으리라.지난날의 어떠한 난관보다도 더 힘들고 막중한 대통령의 자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옹(82)은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여사(60년 작고)는 대가집 며느리답게 포용력이 크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영금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당선자는 여동생만 다섯인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그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되었다. 어머니 박여사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꿈많은 어린시절 그는 섬소년으로 바다를 벗삼아 자랐고 지금도 그는 바다만 보면 불행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포근했던 모성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민다고 한다. 그는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그는 정의감이 강했으며 수영·축구등 운동에도 만능이었다고 동기생들은 전한다.통영중시절 김영삼학생이 한국인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을 받은 사건은 아직도 동기생들 사이에 일화가 되고 있다. 또 어머니로부터 하숙비를 더타내 가난한 동급생을 돕는 따뜻한 면모도 가졌다고한다.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항상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정치적 고비를 헤쳐온 그의 행동양식은 활달했던 학교생활 과정에서 쌓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에게도 설레던 첫사랑의 기억이 있다.서울대학생시절 하숙집 이웃의 박모라는 여학생을 짝사랑했고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6·25전쟁으로 연락이 끊겼다.다시 서로의 소식을 알게됐을때는 이미 각각 가정을 가진 남이었고 그녀가 남편과 사별한뒤 만나자고 했을때 그는 고민끝에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4세때인 51년 이화여대약학과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2남3녀를 두었다. 김당선자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처음에는 장가를 가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결국 어른들의 성화에 못이겨 한번 선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향에 갔었다』고 무뚝뚝하게 당시를 회고하지만 손여사는 『멋쟁이같고 의리와 뚝심이 있어보여 마음에 들었다』고 감격적인 젊은날을 회상한다. 그의 성격은 「한번 한다면 한다」는 무서운 저력을 지니고 있다.대통령의 꿈도 중학시절부터 비롯됐다.「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하숙방에 써붙였던 목표는 이후 50여년간 그를 채찍질했고 그를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신의와 상대를 편하게하는 친화력이 그를 「정치거산」으로 또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정적에 대해서는 서릿발같은 단호함으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품을 찾아드는 인사는 기꺼이 품어주는 포용력도 그의 돋보이는 점이다.이같은 그의 신의와 포용력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충성심을 갖게한다고 한다. 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좌동영 우형우」중 한사람이었던 고금동영정무장관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누가 될까봐 내색하지 않고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김당선자를 보필했다. 김당선자가 고금장관의 병상에서,묘소에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은 지금도 남은 동지들의 가슴을 적시게 한다. 늘 웃는 동안으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했을때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 만큼 「독기」도 지녔다. 그는 무서운 결단과 포용력을 아울러 갖춘 정치지도자이지만 부친에게 매일 아침문안 전화를 드리는 효자이며 또 손자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이다. 그는 항상 『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기도로 자신을 새롭게 가꾸고 있다.
  • 연극인 오태석씨(이세기의 인물탐구:7)

    ◎“가공할 시공처리… 이시대의 연극천재”/변혁에의 집념,70년대 연극사 전환점 이뤄/역사적사건 재조명… 「탈고정관념」 방향제시/「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연극 “30년 외길인생”으로 이어져 연극 「약장수」를 본 사람이라면 북치고 장구치듯 한바탕 굿판을 이루던 재담과 사투리,종횡무진의 요설 사설등 우리 말이 갖는 무한한 리듬감과 현란했던 언어구사의 묘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백곰 모시곰 달하 높이곰 돋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72년 초연된 이 연극은 75년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오태석씨가 공간사랑무대에 직접 출연하여 「연출가·작가의 연기」라는 차원에서 연극팬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오태석은 귀신이 넘나드는 경이의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틀거리거나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뒹굴어 만신창이가 된 처절한 몸부림은 연극이 말하려는 문제의식과 함께 관객을 숙연케하는 기원이 도사려있다. 몸짓은 물론 언어와 분장·무대미술과 의상에도 변혁·개혁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관객에 의외성 제시 라면박스나 신문지조각으로 꾸며진 무대는 차라리 눈부시고 싱그럽다.칡과 치자물들인 무명 저고리,백발노인 역할을 분장하지 않은 20대 연기자가 맨 얼굴로 등장하는등 서구적 사실주의 연극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무대에서의 파격과 의외성을 연속적으로 맛볼수 있게한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쓰고 연출한 「태」와 「한만선」 「사추기」 「물보라」 「춘풍의 처」등 일련의 작품은 7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전환기를 이룬 대표작으로 손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뼈의 마디마디,어쩌면 동맥 정맥까지도 탄탄한 생명력이 살아 꿈틀거려야만 그는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그리고 그만의 정서와 상상력에 몰입하다보면 관객은 안개속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도 극의 한복판에 선채 도무지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 이처럼 가공할 시공처리와 시각·청각·상징적 무대언어는 극의 「완성도」성취라는 명제아래 연극다운 품격과 연극만의 특징미를 진하게 각인시켜 주고있다. 그는 하오 1시에서 1시반사이 서초동 삼익상가에 있는 그의 연습실에 나온다. 커다란 검은 숄더백에 검은 레닌모를 깊숙이 눌러쓴,새벽까지 마신 작취미성에도 불구하고 모자밑의 두 눈은 새파랗다 못해 광기가 번뜩인다. 연습도 마찬가지다. 연출자의 지시에따라 창조적 연습,되풀이 연습,연기자들이 준비해온 각자 연기를 지켜보다가 그는 마치 제각기 다루던 악기를 한데 모아 교향곡을 이루는것처럼 세시간 네시간 심오하게 숙고하면서 작품의 주제에 파고든다. 그래도 성에 차지않으면 무대에 뛰어올라 요란한 손짓발짓으로 시범을 하고는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치거나 무대장치에 직접 못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기 일쑤다.오태석의 멍든 이마는 자신의 것을 하기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는 한 예술가의 고독한 흔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술취해 있을땐 더욱이나 이 고독이 소스라쳐 그는 연극의 심연속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다.그러나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것이 연극에 관한 토론일때는 이제까지의 취기를 삽시에 거두고 예의 오태석특유의 논리정연한 속변달변을 속사포처럼 전개해 나간다. 「주어진 여건과 틀속에서 그 여건과 틀에 맞춘 행위만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의미하다」「연극이 예술인 바에야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모든 연극표현술과 수단을 동원하고 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의 모티프를 끌어내고 이를 현시점에 비쳐보는」탈역사로의 방향을 간단없이 제시해왔다고 할수있다. 87년이래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개작해온 「부자유친」이 그 좋은 예의 하나다.「부자유친」은 한마디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다. 이 연극은 뒤죽박죽 진행되어 어디가 처음인지 끝인지 종잡을수 없는 충격의 장면 장면이 이어진다. 왕은 흰두루마기,제자는 팬티바람,신하는 왕의 명령에 응석을 부리고 울던 사람이 파안대소,죽은자가 기지개를 켜는가하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가 풀죽은 마대처럼 바닥에 널브러진다. 어느 한구석도 논리에 들어맞지 않지만 이 반논리와 탈논리가 지극히 논리적임을 관객들은 당장 깨닫게 된다. ○반논리속 논리 정립 아버지가 자식을 학살하는데 논리가 어디 있겠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이 노리는 초점이다. 83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장화를 신은 고양이」때는 한국무용을 하는 국수호에게 안무를 맡기면서 연출자는 「한국무용이 아닌 발레」로 안무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한국무용가의 「발레」란 오태석만의 익살이자 풍자,어쩌면 냉소의 한 일면일 수가 있다. 이렇게 오태석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연극을 이끌어왔다.그러나 그의 연극의 뿌리는 일찍이 동랑으로부터 이어받은 고전적 문법이 뼈대를 이루고 한국적 몸짓으로 지칭되는 마당놀이의 연희가 질서정연하게 바탕에 깔려있다.그리고 「우리의 너그럽고 훈훈한 인심,너털웃음,호연지기,유약한듯 하나 끈질긴 인내」등 반만년 역사를 통해 일관된 한국인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연극 구석구석에 채우고 있다. 그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3살되던해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남대문국민학교에 다니던 11살때 6·25를 만나 당시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부친 오세권씨가 인민군에게 둘러싸여 끌려가던 광경을 눈앞에서 겪은,이른바 6·25 비극으로 인한 피해자의 한사람이다.연극 「자전거」에서 유년시절의 이 잊지못할 광경을 또렷하게 묘사해 보이고 있다. 배재고에 다닐때까지는 편모슬하에서도 비교적 여유있게 자란 편이었다.그러나 「계(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어머니 이라안여사(74)가 모았던 계가 깨지는 바람에 집안은 하루아침에 풍산되고 대학입학과 함께 그는 뼈저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친구들의 자취방을 넘나들다가 대학의 빈 강의실을 찾아 잠자리를 마련했다.그때도 물론 「연극」이라고는 구경도 해본적이 없는 문외한이었다.그러나 61년 정부가 「연극인 활성화 방안」으로 마련한 「신인예술제」개최를 위한 희곡공모 소식을 듣고는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밤새도록 써서 제출한 희곡이 당선. 이 대목에서 「제목이 뭔데?」물으면 그는 영락없이 얼굴을 확 붉히면서 「영광!」하고는 와하하 웃어버린다. ○「연세찬가」 작사 당선작품은 다른 단체들과 더불어 나란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갖게되어 있었다.그래서 여기저기 연극과에 다니는 친구들을 모아 급조한 것이 그가 최초로 발족한 「회로무대」다. 「영광」에 이어 다음해 「사중주」,또 다음해 공연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연극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마약에 깊숙이 빠져든 자신을 후회하지 않았다. 공연날짜가 임박했으나 공연할 돈이 없던차에 마침 학교에서 동문·재학생들을 상대로한 「연세찬가」작사를 공모했다. 본래의 「연세찬가」는 백락준박사가 지은 장편소설(?)같은 것이어서 행사때마다 끝까지 부를수 없을만큼 길었다고 했다. 「형제자매」와 「사랑」만 잘 섞으면 될것같아 그는 신인예술제 공모때처럼 이번에도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나운영작곡의 /반세기 지켜온 민족의 얼/자유와 진리 심어온 모습…/은 바로 그가 지은 작사다. 그는 「연세찬가」작사 당선 상금으로 세번째 공연인 「조난(조란)」을 무사히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호구지책」으로 연극을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이선택한 최선의 길이며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알고 지난 30년을 오로지 연극에 전념했다.그리고 그의 연극에 대한 찬반양론의 시비속에서도 오태석의 위치는 우리 연극사에서 확고한 획을 긋고 있다는 것,그만의 독특한 오태석 언어와 색깔을 소유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끈질기게 실천해 보이는 것 등을 강점으로 들 수 있다. 90년 동숭동 대학로에 그가 이끄는 극단 목화의 전용극장인 충돌Ⅰ,Ⅱ(흥사단지하)를 개관,목화레파토리 전용극장으로 쓰다가 연극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무대에 올려야 하는 부담감에 쫓기기 싫어 지난 봄부터 대관을 겸하면서 서초동 연습실로 컴백했다. 지난 20년동안 그를 한결같이 섬기는 조상호·정진각등 속칭 「오사단」초창기 멤버들이 목화의 단원이다.가족은 부인 최란선씨와 딸 시내(고2)아들 영택(중2). 그는 이따금 자신의 연극에 직접 출연,올해도 서울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에 가져간 자작·연출 「떠도는 혼」에서 상주로 찬조 출연하기도 했으며 87년부터는 해마다 도쿄 파르코 극장 초대공연을 가져 일본 연극계의 열렬한 찬사와 호응으로 목화의 고정팬을 확보하면서 일본속에 한국의 목소리와 몸짓을 심고 있다. 이시대의 연극천재·연극계 기인이란 호칭에 걸맞게 각계각층의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의 입에서나 「오태석=연극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연보 ▲1940년10월 충남 서천에서 오세권씨(6·25때 납치)와 이라안여사의 3남1녀중 장남 ▲63년 「회로무대」창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회로무대」해체 ▲67년 한국일보 장막희곡 「화장한 남자」가작수상,조선일보 신춘문예 「웨딩드레스」당선 ▲68년 국립극장,경향신문공모 「환절기」당선 ▲72년 동랑레파토리 극단 「Luv」로 연출데뷔 ▲84년 목화극단 창단 ▲80년 「초분」일본공연 ▲83년 「어미」일본공연 ▲85년 MBC창사기념 「메밀꽃 필무렵」(작,연출) ▲86년 MBC창사기념 「봄,봄」(작,연출) ▲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시나리오·연출 ▲87년 일본 도가국제페스티벌 「춘풍의 처」참가이래 해마다 초청공연,제11회 서울연극제 「부자유친」참가 ▲88년 서울예술단 「새불」(작,연출),일본 미쓰이 페스티벌,「태」참가 ▲89년 동숭아트센터 개관기념공연 「비닐하우스」(작,연출) ▲90년 목화레파토리극장 충돌ⅠⅡ개관 ▲92년 서울 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 「떠도는 혼」(작,연출),일본 마에바시(전교)시승격 1백주년 기념공연 「도라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쇠뚝이 놀이」「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이식수술」「약장수」「물보라」「사추기」「육교위의 유모차」「19 90년5월」「산채우」「자전거」「아프리카」「필부의 꿈」「나래섬」「운상각」「심청이는 왜 두번 임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백구야 껑충나지마라」「환절기」산문집 「북소리 울릴때」 서울연극제 대상,서울신문사제정 제2회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창작상,한국연극예술상
  • 호암갤러리,내일부터 「1992 한국회화전」

    ◎한국미술의 현주소 재조명/평론가 오광수씨,정예작가 27명 선정/신진 원로,동·서양화 망라… 신선한 충격 한국회화의 현대성은 어떻게 규정지을수 있으며 국제적 보편성은 또 얼마만큼 획득하고 있는가.이 물음에 해답을 던져주는 호암갤러리 주최 「1992,현대한국회화전」이 「선묘와 표현」이란 주제로 15일부터 새해 1월7일까지 이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보다 냉정한 시각에서 객관적인 우리미술의 현위치를 점검해 본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가 1인 커미셔너로 나서 동서양화단의 정예작가 27명을 선정한 작품을 전시한다. 80대초에서 20대후반까지 내려오는 대단한 진폭의 연령층으로 구성된 초대작가들은 1백호에서 1천호사이의 대작을 출품했다.작품선정 또한 오씨가 전국의 작가 작업실을 방문해 작가와의 협의아래 작품을 골라냈다는데서 더욱 뜻이 깊다. 작가면면을 보면 먼저 서체적 충동을 강하게 검증할 수 있는 작가로 김기창 석란희 이강소 윤명로 김호득 박승규 한명호 사석원 오수환 문봉선 김춘수 이철양 유휴렬 이지선 석철주등을 들수 있다.반면 선묘의 구성적 측면에서 검증의 대상이 되는 작가로 박서보 심현희 백순실 허진 이희중 송수남등이 꼽힌다.또한 구조적 측면에서 유재구 정탁영 박영하 이왈종 한영엽등의 작가를 검증대상으로 선택했다. 오광수씨는 『기성의 유명작가와 이제 막 등단한 신인이 한 자리에 초대된 이 자리는 우리 미술속에 도사리고 있는 권위주의적 관념을 불식한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 클린턴 경제패권과 대미경협(정경문화포럼)

    ◎신고립으로 매도하기 앞서 대책세워야/국방기술 민수화 맞춰 공동연구 바람직 미국국민은 12년의 공화당 집권을 마무리하고 40대의 클린턴 민주당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경제운용기조에서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이번 미국대통령선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오랜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 최대의 누적무역적자국으로 쇠락하고 있는 미국경제를 우려하는 유권자들이 미국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그들 자신의 직업보장과 생활향상을 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한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의 기수로 자처하면서 IMF­GATT체제를 출범시킨 미국이 그들의 경제적 국익을 가장 우선하는 대외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앞으로 전개될 국제관계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결정됨을 단적으로 예고해 주고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생산고의 절반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과잉 생산설비와 함께 세계 제1의 경제적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으로는 자유기업주의와 자유무역주의를 표방하면서 구소련을 정점으로 하였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세계적 확산을 방지하는 데 몰두하였다.전후 유럽 부흥계획으로 추진된 마셜플랜과 극동에서 일본에 대한 안보무임승차를 제공한 미국의 경제및 외교정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순수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미국은 그들의 막대한 생산설비를 가동시켜 줄 해외구매력을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IMF­GATT의 다자주의속에서 60년대초까지 미국은 경제적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이와함께 한국등 신흥공업국가들에 미국은 방대한 수출시장의 역할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성장의 돌파구를 열어주었다.우리나라는 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발과 저급섬유제품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을 미국에 수출해 왔다.사실 미국시장은 우리에게 가장 규제가 없는 시장이었을 뿐 아니라 많은 개도국에 대하여 미국이 제공한 특혜관세(GSP)의 특전을 우리는 누리기도 하였다. 60년대 중반의 월남전,70년대의 2차례에 걸친석유파동은 미국이 구축한 세계경제의 단일지도체제의 종막을 앞당기고 반면 EC와 일본의 경제적 부흥은 세계경제를 다극화체제로 탈바꿈시켰다.이러한 와중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공화당의 12년 집권이래 계속 늘어만 갔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미국은 그동안 국내시장의 문호를 너그럽게 열어 주었으나 미국의 교역상대국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근거위에서 자유무역의 기치로부터 「공정무역」으로 전향케 되었으며 이는 신보호주의라는 이름으로 채색되기도 하였다. 최근 구소련의 붕괴로 인한 사회주의 경제권의 몰락은 미국의 경제정책 운용에 결정적 전기를 가져다 주게 되었다. 동서의 이념대립이 종식되고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군사강국으로 남은 미국의 국가목표는 경제적 대국주의 추구로 돌아섰다. 80년대 이후 미국은 연간 1천억달러에 이르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기도 하였으며 이제 국내 실업문제가 전면에 나타난 시점에서 클린턴이 약속한 미국경제의 재건과 경제를 안보차원에서 다루겠다는 그의 주장은 국민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우리의 시선을 끄는 대목은 대통령 직속으로 경제안보위원회(ESC)를 신설하고 종래의 국가안보위원회(NEC)에 재무부,상무부,노동부,무역대표부의 대표들도 참여시키며 미국외교정책의 골간을 통상정책에서 찾겠다는 점이다.클린턴 대통령당선자는 앞으로 슈퍼301조를 부활시켜 무역법을 강화하며 미국 무역대표부의 관리들이 외국기업과 정부의 로비에 영향을 받던 폐단을 시정하고 퇴임한 고위공직자가 경쟁국을 위한 로비활동을 금지시키는 윤리지침서까지 만들계획이다. 우리는 클린턴의 이와같은 경제패권주의를 신고립주의라고 매도하기 보다는 우리의 대미 통상및 경제협력단계를 재조명하고 대응책을 빨리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6공의 북방외교에 밀려 상당히 「식어버린」대미관계를 우리는 다시 가장 관심있고 중요한 관계로 복원하여야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대권주자들이 내걸고 있는 대선공약에서 이러한 발상은 찾아 볼 길이 없다. 우리는 미국이 지니고 있는 강점을 상호협력의 차원에서 활용하는 지혜를 짜야 한다.지금 한미간의 쌍무무역은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우리경제가 지금 겪고 있는 심각한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미국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는 관민합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어날 중요한 변화는 국방비의 감축과 함께 그들의 방대한 국방관련 기술들이 민영화되고 있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걸프전에서 보듯이 민수기술과 국방기술의 구별이 점점 없어지고 겸용성을 띠게 됨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한국도 이러한 겸용기술의 개발에 소정의 연구개발비를 부담하면서 미국과 함께 그들의 국방기술을 상용화하는 공동연구를 추구하면서 양국사이의 기술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볼수도 있다.이제 선진국과의 모든 협상은 서로 주고 받는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미국에 대한 적극적 경제협력의 틀을 짜나가야 할 것이다.
  • 미에 「북한알기」 바람/세미나 개최에 언론들 집중거론

    ◎“클린턴 대중정책과 같은 궤” 인식/기본권 침해 등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카네기위 세미나/개인우상화의 주체사상 실패로 경제 파탄/NYT지 방북기 최근들어 미국의 언론계·학계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뉴욕의 카네기 위원회는 13일 하오(현지시간) 북한의 인권에 관한 국제세미나를 열어 북한의 인권상황을 재조명했으며 뉴욕 타임스지는 15일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서 데이비드 생거 도쿄지국장의 방북기사를 대대적으로 엮고 있다.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지도 10일자에서 틀래이튼 존스 기자의 방북기를 보도한바 있다. 이같은 현상은 빌 클린턴 차기 대통령이 대중국정책에 인권문제를 연계시키겠다고 공약한 사실과 관련,북한의 인권문제도 필연적으로 부각되리란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민주당 정권은 전통적으로 공화당보다 인권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오고 있으며 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때의 인권문제 제기는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인권 이전의 상황이란 일반적 인식은 있으면서도구체적인 정보부족으로 국제사회에서 잘 은폐돼 왔다.그러나 중국의 개방화에 따라 대북한접근이 용이해졌고 부분적이나마 북한도 개방이 불가피한 여건이어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점차 축적되게 되면 북한의 인권문제는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되리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다음은 북한인권문제 세미나와 뉴욕 타임스지 방북기사의 요지이다. ▷북한인권문제세미나◁ 북한은 6·25가 끝난지 40년이 다 됐어도 아직 이산가족 재회조차 허용치 않고 있다.정치범 집단수용·일본인처 북송문제등 제네바 국제협약의 기본마저 이행치 않고 있다.북한에 적십자사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피터 쿵:국제적십자 유엔대표부 대표). 북한은 유엔에 가입하고 표면상 세계인권헌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거주이전의 자유등 인간의 기본권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더욱 문제가 되는것은 북한의 허구적인 인권개념이다.북한은 인권을 인간의 사상적·신체적 자유가 아닌 이념적 인권개념인 경제적 인권,사회적 인권개념으로 호도하고 있다(시드니 존스:아시아워치 사무국장). 참석자들은 이날 북한의 인권상황은 국제사회가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단계(뉴욕타임스지 데이비드 웅거 논설위원)에 와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개선키 위해서는 북한을 우선 국제사회에 이끌어내 국제적 압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만을 단독으로 다룰게 아니라 남한의 인권,중국의 인권을 연계시켜 북한을 함께 끌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와 관련해서 세미나는 남한의 인권문제는 최근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으나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지◁ 북한에서 가장 값진 선물은 옷과 먹을 것이었다.중국은 김일성의 80회 생일에 수백만t의 돼지고기를 선물 했었다. 2백만 인구를 가진 평양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들의 자발성이 없다는 점이었다.평양은 또 사람이 북적대는 공개된 시장이 없는 아시아의 유일한 도시일 것이다. 주민들의 「김일성수령」에 대한 헌신은 조금도 감소되고 있는것 같지 않았으며 남한이 기업가정신 및 산업정책에 의해 건설된 나라라면 북한은 「위대한 아들」에 대한 신앙과 개인숭배의 기초위에 세워져 있다. 김정일이 실질적인 통치자라고 김영남외교부장이 지난 10월초 뉴욕의 한국특파원들에게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술과 여자,그리고 유흥을 즐기는 부정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었다.또 북한에는 약 1백50만명의 지도계층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다른 국민들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보장과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현재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실패로 끝나 북한은 경제적 곤궁에 빠져있다.
  • 불교중흥 보우대사 사상 재조명/봉은사 학술세미나

    ◎조선 억불정책속 명종때 꽃피워/주류유교의 지탄으로 「요승」 낙인 억불숭유책으로 불교가 배척됐던 조선시대에 불교중흥을 위해 노력하다 순교한 하응당 보우대사.그의 삶과 사상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7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발제는 ▲교단부흥의 역사성과 그 의의(김영태·동국대) ▲보우대사의 선사상(서종범·승가대) ▲보우대사의 유교관(송석구·동국대) ▲보우대사의 문학세계(황패강·단국대) ▲보우대사의 교관(이봉춘·동국대) ▲보우대사와 봉은사(김상영·승가대)등 6편.이들은 16세기 중반 멸절위기에까지 처했던 불교를 소생시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잇게해준 공로가 보우대사에게 있다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김영태교수는 불교가 조선 국초 11종에서 7종으로 축소되고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됐다가 중종때에 이르러 폐지됐음을 상기시키면서 중의 인증제도인 도첩제 마저 중지됨으로써 불교는 그 발흥이 원천적으로 봉쇄됐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보우대사가 어린 명종을 수렴청정하던 문정대비에 의해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것은 바로 이무렵이며 그후 17년간 많은 불교사적 업적으로 그를 조선불교부흥의 성사라고 평가했다. 이어 황패강교수는 그가 불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유교일변도 사류들의 극렬한 지탄으로 「요승」으로 낙인찍힌 역사사실을 들추어냈다.그럼에도 많은 저술과 높은 문학성을 들어 시문승 또는 학승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다.또 선종판사로서 그의 흥불업적으로 ▲국가공인 사찰로 지정해 3백여 사찰보호 ▲도첩제부활로 2년간 승려4백명 양성 ▲승과부활로 15년간 유능한 불교인물 배출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불사진흥이 전적으로 문정왕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성급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종교개혁가로서의 업적에 흠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석구교수는 보우의 불교중흥을 통해 임진왜란때 승군이 나올수 있는 기초가 닦여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그러면서 문정왕후는 12세에 등극한 어린 명종을 위해 불교에 심취될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본 송교수는 이때의 불교중흥은 문정왕후의 의지와 당시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이던 보우와의 자연스런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했다.따라서 일본학자 고교정이 「하응당집해제」에서 보우의 불교중흥을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계략이었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김상영교수는 보우가 봉은사 주지로 부임한 15 48년부터 제주도로 유배돼 제주목사 변협에게 피살당하는 15 65년까지의 17년을 투쟁기(15 48∼51),안정기및 은퇴기(52∼61),몰락기(62∼65)로 나누어 시기별 활동상을 개괄했다.보우의 몰락과 죽음은 장성해진 명종이 대비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과 맹목적 호불행위를 금하라는 대신들의 끊임없는 요구에서 발단됐다는 김교수는 명종이 나중에는 태도를 바꾸게 됐고 마침내 65년 대비가 죽자 그의 운명도 종말을 맞았다고 말했다. 한편 봉은사는 이날 학술대회를 계기로 보우대사의 호를 딴 허응장학재단을 발족,보우사상의 체계적 연구를 위한 학자들에 대한 지원과 학술세미나등을 지속적으로 열기로 방침을 세웠다.
  • 진주박물관 「고대의 소리」 특별전

    ◎청동기∼조선시대 유물 4백여점 전시/선조의 무술적 정신세계 재조명 기회 국립진주박물관은 3일부터 12월3일까지 「고대의 소리」특별전을 연다. 이전시회는 주로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가운데 소리와 관련되는 4백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자리.주요 전시품으로는 청동제 각종악기와 방울,말장신구,통형동기,철제방울,흙으로 빚은 방물,방울달린잔 및 흙으로 빚은 주악인물상등이 있다.이밖에 통일신라시대이래 조선시대까지의 소리유물도 일부 선을 보인다. 이러한 소리관련유물들은 고대인들이 일상생활용품으로 사용됐을뿐아니라 주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샤머니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이처럼 각종 소리관련유물에 투영되어있는 우리조상의 의식세계및 샤머니즘적 정신세계를 재조명해 우리 문화재에 깃들어있는 참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피카소의 20대/이미 “거친 붓질”

    ◎입체파몰립 초창기 걸작품 한자리에/파리 그랑팔레화랑 전시… 조각 2점 눈길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랑 팔레의 국립 갤러리는 오는 연말까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걸작품들가운데 20대 청년시절에 그린 1백50점의 회화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전시,미술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이번 특별전시회에는 피카소의 생애를 더듬어볼수 있는 몇몇 그의 조각품들까지 나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않고 있다. 이 피카소 작품전시회와 때맞춰 프랑스의 권위있는 시사주간지 르 포엥은 최신호에서 「피카소­정물화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제하의 장문의 기사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1907년 봄,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렸을때 사람들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했을만큼 놀랐다.미술사의 한 혁명으로 불리는 큐비즘(입체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이 그림은 파리에서 피카소가 발견한 새로운 조형언어의 하나였다.지금으로부터 85년전 입이 뒤틀리고 팔이 잘린 이 기괴한 형태의 여인들은 19세기를 갓 벗어난 사람들에겐 야만적이고난폭한 충격일수 밖에 없었다.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이 나의 사상을 담는 그릇이다』­이 명언은 그의 작품세계의 출발점이 되고있다. 이번에 출품된 그의 출세작 「라 데세르트」를 비롯,그의 초기작품들은 그당시 여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국화·달리아·꽃병·냄비·물병과 기타·만돌린등 악기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1900년 파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작품내용은 사뭇 달라진다.그림의 테마로는 하층계급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그후 몽마르트르에 정주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에는 과거의 스페인 예술,특히 카탈로니아 지방의 중세조각에 많은 영감을 받는 한편으로 E 그레코·고야 등이 지닌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이 가미되어 갔다.테마로는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으나 그가 그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라 그 생활의 이면을 파헤친 애수 그것이었다. 1905년 무렵에는 G 아폴리네르와 H 마티스와 사귀게된다.그러나 작풍은 P 세잔의 형체관을 살려나가 점점단순화되었고,1907년 영원히 기념할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이르러 형태분석이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G 브라크와 함께 큐비즘운동을 전개,1909년에는 분석적 큐비즘,12년에는 종합적 큐비즘시대를 열고 25년께 갓 태어난 초현실주의에 매료될때까지 피카소는 큐비즘의 꽃을 활짝 피웠다.이 무렵에 이르러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큐비즘의 작가들은 물체를 마치 외과의사가 시체를 해부하듯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해서 보았고,그것들을 본대로 종합했다.그 위에 피카소는 그가 관찰 현대도시에서의 삶의 황량함·추악함·무자비함을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 큐비즘,즉 입체주의는 현대과학처럼 사물 겉모습의 진실성을 수학적인 관계와 질서로 묘사한 것이다.아무런 감정표출없이 나무·널빤지처럼 그려진 여인들,즉 여러지점에서 동시에 바라본 「눈」이 종합된 시점의 복수화는 실제상황에선 불가능하지만 「감각적이기보다는 두뇌적인」입체파의 대상파악의 방법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맥주컵」(1909)·「페르노술(주)과 유리잔」(1912)등에선 분석적 방법이,「술집 테이블과 기타」(1913)·「만돌린과 기타」등은 종합적 큐비즘의 기법이 동원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피카소의 초창기 회화 말고도 그랑 팔레의 전시관에서는 그의 예술적 발자취를 고찰할수 있는 「유리컵과 작은 술잔」,「압생트의 유리컵」등의 조각품들이 시선을 끌고있다.1914년에 제작된 두 작품은 작은 판자 조각들과 청동의 도금을 사용하는등 재료를 달리했지만 큐비즘이란 원리에 충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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