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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 똥은 얼마나 클까”

    경기도 과천의 놀이공원 서울랜드가 이색기획전 하나를연다.누구나 “아이 더러워”하고 고개를 돌려버릴 ‘똥’이 주제이다. 서울랜드는 4월부터 8월까지 이벤트홀 400여평에서 ‘똥의 재발견’ 기획전을 꾸민다.서울랜드 관계자는 이와 관련,“똥은 더이상 더럽고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중요한 자원이며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재조명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먼저 똥의 어원(語源)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접한 뒤 거대한 호랑이모형과 마주친다.이 안에서 호랑이,코끼리 등 26종의 동물과 조류 7종의 똥을 관람하게 된다.원형 그대로 채취한 똥을 고온건조시켰기 때문에 악취가 전혀 없다.호랑이 몸을 통과하면서 각 소화기관의 특징을 그래픽과 영상자료로 설명한다. 다음으로 ‘똥과 환경의 장’에선 똥이 하수처리되고 정화돼 퇴비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게 된다.이 곳에서는 ‘코끼리 똥과 말똥으로 만든 종이’ 등이 선보인다. 특히 관람객들은 자신이 ‘배출’한 1년동안의 똥무게를측정하는 등 환경을 오염한 양을 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된다.(02)504-0011임병선기자
  • [씨줄날줄] 서산대사

    호국의 승병장으로 알려진 서산대사(西山·1520∼1604)는 실은 조선조를 통틀어 우뚝한 선승이다.[만국도성이 개미집 같고 천가호걸이 초벌레 같다]는 선시(禪詩)에서 볼 수있듯이 그의 정신세계는 높고 넓고 또한 깊다. 왕조시대에이런 시를 읊었으니 어찌 모함이 없을 것인가.그러잖아도무엄하다고 수군거리는 판에 ‘정여립(鄭汝立)의 난’ 에연루된 무업(無業)이라는 중이 대사를 물고 들어갔다. 다행히 무고인 것이 드러나고 의연한 자세에 감동한 선조(宣祖)가 묵죽 한 점을 하사했다.이에 대사는 즉석에서 시 한수를 지어 바쳤는데.[어진 임금 붓 끝에서 나온 소상강대,달이 떠도 그림자가 없고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없네(蕭相一竹枝,聖主筆端生,月來不見影,風動不聞聲)]. 운율도빼어나지만 의미도 심장하다.시를 받아본 선조는 “과연휴정(休靜·스님의 법명)은 허명(虛名)이 아니었구나”라며 감동했다고 전한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사는 1,500여명의 승군을조직,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웠다.명(明)의 원병도 청병사신이항복(李恒福) 편에 대사의서찰을 받은 석숭대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서산은 또 이순신(李舜臣)이 공을 세우고도 모함으로 옥에 갇혀 있을 때 몸소 찾아가 위로하고 작전을 논의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탄신 481주년을 맞아 불교계에서 대사의 재조명 움직임이활발하다.민중의 여망이 모아지다 보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지만, 대사의 행적이 기적을 행사한 기승으로만전해지는 것은 불교계를 위해서도,민족을 위해서도 유감이다. [오늘 나의 행적은 후학들의 이정표가 되나니] 스스로 이런 글귀를 남겼으니 그의 생애와 사상,정신세계의 깊이를재조명하다 보면 오늘 우리 현실에 대한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불교계의 서산대사 재조명 작업은 그런 점에서 적절한 것 같다.특히 수행에 투철하지도 못하면서 선승입네하고 현실에 오불관언하는 사람들,참으로 중생에 대한 연민도 없으면서 현실참여 한답시고 수행에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서산대사의 행장이 졸음을 깨우는 죽비가 되지 않을까.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백제 숨결 흐르는 ‘왕인축제’ 열린다

    ‘벚꽃피는 4월,백제문화의 숨결이 아슴푸레한 전남 영암으로 오세요.’ 잃어버린 백제문화를 재조명하는 2001 왕인문화축제가 4월7일부터 10일까지 영암 월출산 근처의 왕인박사 유적지를 비롯,구림마을 일대에서 열린다.왕인박사는 4세기 일본 응신천왕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천자문 1권,논어 10권을 지닌 채 도공,와공,직조기술,제지기술자 등 한반도 최고의 문화집단을 이끌고 일본에 건너가 백제문화를 전파한 인물이다.일본 태자의 스승을 지내기도 했던 그의 족적은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자세히 남아있다.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아스카문화의 창시자로 떠받들어져 그가 묻혀있는 오사카(大阪)인근의 히리가타(枚方)시에선 ‘시텐노오지 (四天王寺) 왔소’ 퍼레이드가 매년 11월 3일 열리고 있다. ◆‘백제’와 일본을 하나로=영암군은 해양수산부,새천년준비위원회 후원으로 4월9일 오전 10시 영암 대불항에서 떼배‘왕인호’를 띄운다.왕인박사가 일본 규슈까지 갔던 항로를 되짚어보는 것이다.한국고대항해탐험연구소 탐험대장 등 7명이 보길도와 고흥해안을 거쳐 12∼15일동안 항해,규슈의가라쓰 해안에 상륙한다. 또 영암의 풍광과 왕인박사 일대기를 담은 일본 엔카 ‘가케하시(架橋)’를 만든 와타나베 게이수케(渡邊敬介·63)가9일 ‘구림의 밤’행사때 오바야시 고지(大林幸二) 등 일본예술인 50명과 함께 ‘가케하시’와 ‘가이교와 가와나노니(해협은 시내인데요)’ 등을 부른다. ◆백제 민속놀이 어때요=백제 서민의 성년식이라 할 수 있는 들돌들기는 영암에서만 보는 민속놀이.농경시대 일꾼 품삯을 정하는 요식행위였던 들돌들기는 청년이 비로소 어른이되는 절차이기도 했다.윷놀이와 비슷한 쌍륙놀이는 윷대신두개의 주사위를 던져 말의 행로를 정한다.중국 한무제때 서역에서 유행해 백제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스고로쿠’가됐다. 도포마을에서 행해져온 줄다리기도 길놀이,진놀이,고걸이,제사,대동마당 등 여섯마당으로 엮어 500여명이 마을의 화합을 도모한다. 이밖에 호남지방에서 벚꽃 순례로 이름높은 38㎞ 벚꽃길에서 펼쳐지는 ‘백제 왕인 일본가오’ 퍼레이드,한국과 일본학생들이 천자문이쓰인 등불을 들고 행진하는 ‘천자문 천등행렬’,천자문이 음각된 계단을 오르는 ‘도전! 천자문 250계단’,왕인후예 선발대회 등이 진행된다. ◆시커먼 도자기 구경=8∼9세기 대규모 도기제작장으로 이름을 떨친 구림마을도 꼭 들를 일이다.이곳에서는 녹갈,흑갈,황갈색을 입힌 시유도기가 쏟아져나왔다.지난 96년 이화여대 박물관팀에 의해 발굴된 10여개의 도기가마터를 들러보자. 또 폐교의 쓸쓸한 모습을 뛰어난 감각으로 담아낸 영암도기문화센터에서 직접 도자기를 빚어 구워볼 수도 있다.작품은택배로 나중에 집에서 받아본다. 지난해 축제에는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1만여명의 외국인이다녀갔다.하지만 관광비용 지출이 1인당 1만6,500원밖에 안돼 주최측은 많은 걸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임병선기자 bsnim@
  • 민중미술 대표작 200여점 기증

    이호재(李皓宰) 가나아트센터 대표는 9일 80년대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품 200여점(38억원 상당)을 서울시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하고 서울시와 기증협정을 맺었다. 기증 작품은 이응노·박생광·신학철·오윤씨 등 작가 45명이 지난 80년대의 시대정신을 형상화한 평면 및 입체작품들이며 20명이 공동으로 완성한 가로 11m,세로 1.6m 크기의걸개그림 ‘1980년대판 그림이야기’도 포함돼 있다. 이 대표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80년대의 시대정신을담은 리얼리즘 작품을 되돌아보고 이를 역사적 시각에서 재조명해 보자는 취지에서 작품을 일괄 기증하기로 했다”며“시립미술관에 기증한 것은 미술관이 도심 속에 위치해 일반인들이 언제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립미술관에 별도의 독립공간을 마련,기증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라며 “이번 작품들이 지난해 기증받은 천경자씨 작품 90여점과 함께 미술관의 주요 자산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김삼웅 칼럼] 현대사의 순교자들

    헤겔이 “세계의 역사는 자유의식의 진보과정이다”라고 했을 때 압제에 시달리던 수많은 사람이 냉소했다. “인간의역사는 학대받는 자의 승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고 타고르가 설파했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사람들은 오히려 사마천의 “천도는 공평해서 언제나 선인편을 든다고 말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백이숙제는 선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면서도 굶어죽지 않았는가. 안연(顔淵)은공자 문하 제1의 호학자라고 불리면서 먹는 것도 부족하였고젊어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 하늘(역사)이 선인에게 보답하는 방식인가.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해치고난폭방자한 수천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천수를다하였다. 이는 대체 무슨 까닭인가”라는 말에 공감했다. 조선시대 기득세력은 ‘벽이숭정(闢異崇正)’을 지배논리로써먹었다. 이단을 배격하고 정학(正學)을 높인다는 이 논거는 정통유학 이외의 모든 학문을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얼마나 많은 선비학자가 희생됐는지는 묻지 말자. 어둠이 채 걷히기 전에 고정희는 ‘망월리비명’을 썼다. “한 세대 긋고 지난 업보가 어디/망월리에 잠든 넋뿐이랴만/한 세대가 쌓아올린 어둠의 낟가리에/불쏘시개 되어 하늘 툭 틔우고/황산벌 숯가마로 묻힌 저들이/오늘은 가는달 붙잡고 묻는구나/내 죄값을 달에게 묻는구나.” 어찌 망월리나 황산벌뿐이랴. 서대문형무소, 안기부지하실,남영동독방,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불구가 되고 골병이 들었던가. 그리고 정의와 역사를 원망했던가. 군사정권 치하에서 300여명이 암살·옥사·고문사·옥고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분신·투신·자결 등으로 산화했다. 폭력정치에 희생된 4·19와 5·18 희생자를 포함시키면 800여명에 이른다. 잘못된 정치가 빚은 6·25전쟁의 와중에 민간인 수십만명도 학살당했다. 우리 현대사는 굽이마다 이른바 특정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이 국민의 희생과역사왜곡의 가해세력이 되어온 것이다. 국민은 긴 날들을 ‘가는 달 붙잡고’한탄하면서 힙겹게 살았다. 그리고 역사를 원망하고 하늘을 저주하는 사람이 늘었다. ‘자유의식의 진보’나 ‘학대받는 자의 승리’는 언어의 유희일 뿐이었다. 그러나 누가 역사앞에 오만한가. 우리는 친일파들이 설땅을 잃어가고 독재자와 하수인들이 단죄되고 심판받는 것을 보았다. 이승만이 쫓겨나고 박정희가 암살되고 전·노씨가 수감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군사독재를 미화하고 남북화해협력에 발목을 잡아온 족벌언론이 ‘안티’의 대명사가 되고있음도 지켜본다. 반면에 ‘죄값을’ 달에게나 물어야 했던 현대사의 순교자들이 역사앞에 복권되는 모습도 지켜본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구성된 것을 필두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제주4·3진상규명위원회가 날개를 펴고,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활동이 민주화운동으로 결정된 데 이어, 80년대 신군부 집권시절 30여명이 옥고를 치르고 500여명의 해직노동자가 발생한 원풍모방사건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5공시절 서울·부산·광주의 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도 ‘반미’의 딱지를 떼고 역시 민주화운동으로규정되었다. 때맞추어 ‘민족일보’사건에 대한진상규명의요구가 터져나오고 사법살인의 희생자 진보당사건도 재조명이 기대된다. 그동안 뒤틀린 폭력정치의 희생물이 되었던사건들이 하나씩 밝은 하늘 아래 진상을 밝히고 있는 것은 역사의 승리다. 비록 아직도 어둠의 역사를 지키려는 검은 손길이 수구의커튼을 움켜쥐고 반격을 노리지만 시시각각 밝아오는 정의의태양이 어찌 손바닥으로 가려지겠는가. 밖에서도 정의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일본의 우익 교과서에 대한 검정통과가 굳혀져가는 때에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R)이 최근 주관한회의에서 “식민지정책과 노예제도의 책임을 지고 희생자에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테헤란선언을 채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죄지은 자에 벌을 주고 공세운 사람에 상 주는 것은 만고의진리다. 그래야 질서가 잡히고 정의가 선다. 화해나 용서는그 다음의 문제다. 상벌이 뒤바뀌어도 안되지만 사적인 온정주의로 공적인 범죄의 용서도 안된다. 비록 더디게 ‘학대받는 자의 승리’가 가능하더라도 우리는 역사의 법칙을 믿는다. 현대사의 순교자들에게 명예와 영광있으라!■김삼웅 주필 kimsu@
  • [대한광장] 우리사회 주류와 시대정신

    지금 벌어지는 이른바 주류논쟁은 역사학자인 내게 좋은 관찰대상이자 비평대상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현 우리 사회 주류의 뿌리는 조선후기 200여년 이상을 일당집권한 노론이란 정파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일제는 강점 직후 조선 멸망에 공을 세운 총76명의 조선인들에게 합방공로작(合邦功勞爵)을 주는데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은 집권 노론이었다.게다가 임시은사금·은사공채 등의 명목으로 거액을 주었다.유림(儒林)출신 독립운동가 김창숙(金昌淑)의 “그때에 왜정(倭政) 당국이 관직에있던 자 등에게 은사금이라고 돈을 주자 온 나라의 양반들이많이 뛸 듯이 좋아하며 따랐다”라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들 노론에서는 아무도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은 반면 정권에서 소외된 소론과 남인 계열에서는 많은 인사들이 독립운동에 나섰다.소론의 대표적 집안인 우당(友堂)이회영(李會榮)·이시영(李始榮)가문은 6형제 모두가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나섰으며,그 외에 이상설(李相卨)이동녕(李東寧)이상룡(李相龍)김창숙·김대락(金大洛)등의 소론·남인 출신 독립운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이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고국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죽거나 고문을 당해 병신이 된 반면 노론은 일제 치하에서도 친일 지주로서 온갖 영화와 천수를 다 누렸다. 일제의 패망은 이들 친일파들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청천벽력이었다.비주류로의 낙마는 물론이고 자칫하면 프랑스에서그런 것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그러나 이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냉전체제였다.이들은 재빨리 일부 중립적 인사들을 끌어들여,유엔한국위원단조차 보수적 지주정당으로 분류한 한민당을 결성했다.이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친일 전력을 감추기 위해 임시정부 봉대(奉戴)를 내세웠지만,곧 임정의 친일파 제거 방침에 위협을 느껴 국내 기반이 부족한 이승만과 결탁해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다. 친일파와 반공세력의 이런 결탁은 결국 민족정기의 총화인반민특위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일본 관동군 촉탁으로서애국지사 수십여명을 교살 또는 투옥시킨 이종형이 반민특위에체포되자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며,나는 공산당하고싸운 사람인데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1949년 8월7일,이승만의 명령을 받은 시경국장김태선은 반민특위본부를 습격해 해산시킨다. 이날은 동시에해방된 나라의 주류가 되어야 할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다시비주류로 내몰리고,일제 시대의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이 다시 이 사회의 주류로 당당하게 복귀한 날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후 최근까지 반공·냉전세력과 결탁해 이 사회 주류의 위치를 이었다. 고려말 신흥사대부가 권문세족을 비주류로 내몰면서 주류의위치를 차지한 것은 역사의 진보이고 시대정신의 구현이었다.그러나 우리 사회의 주류인 친일·냉전세력은 시대정신의구현자가 아니라 시대정신과 맞서 싸우는 역사의 극복대상일뿐이다. 이런 점에서 주류논쟁을 불붙인 이회창 총재의 선친이 일제말기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일제하에서 검사보 노릇을 했다는 것은,그것이 엘리트 내지 귀족이라 불리는 이총재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일지는 몰라도 그다지 자랑할 만한 과거는 아닐 것이다.당시는 의열단원 김익상같이 일제 형사에게끌려간 후 살해되었거나,일제의 사상범 예방구금령 아래에서수많은 애국인사들이 영장도 없이 끌려가 무기한 갇혀 있던상황이었다.게다가 5·16직후 반공을 극대화해 위기를 타개하려던 쿠데타 정권의 기도대로 ‘민족일보’사장 사법 살인사건에 담당 판사의 한 구실을 했다면,이총재는 옛 민족일보기자이자 ‘민족일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인 김자동씨가주장(대한매일 2월20일자)한 대로 “잘못을 인정하고 이 사건의 재조명 작업에 앞장서야”할 것이다. 이총재에게 이런요구를 하는 김자동씨가 임정요인 김가진선생의 손자이며,역시 독립운동가인 정정화여사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아직 껏독립운동가 자손이 이런 요구를 해야 하는 이 현실은 분명뒤틀린 주류의 역사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美 새정부의 한반도 정책 보고서

    대북 강경론자들이 대거 포진한 미국 신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부시행정부의 한반도 리포트’(김영사).도널드 럼스펠드국방장관,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제임스 켈리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 지명자,리처드 하스 국무부 정책기획국장,로버트 죌릭 무역대표부 대표 등 공화당 정부 핵심 참모 10명의 관련논문 11편을 소개했다. 라이스보좌관은 ‘국익의 증진’이란 글에서 공화당의 외교정책이 국가이익을 재조명하고,억제가 실패하면 언제라도 전쟁에 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천명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아마티지 부장관은 ‘아미티지 보고서(북한에 대한 포괄적접근)’에서 북한에 대해 필요한 억제력을 강화하는 외교적노력을 기울이되 실패할 경우 억제·봉쇄 강화나 선제공격등 두가지 대안을 고려해야 하나 어느 것도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 책을 책임편역한 장성민 민주당 국회의원은 “미국 외교정책은 국무부의 한 고위관료나 행정부가 일방적으로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의 동의와 이익집단,여론의 지지는 물론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이 책은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안보 정책을 구상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혁기자
  • 김자동 前민족일보 기자 “민족일보 사건 재조명돼야”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는가운데 돌연 ‘민족일보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자민련 송석찬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한나라당이회창 총재는 1961년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반국가단체동조혐의로 사형시키는 등 언론 말살과 인권 탄압에 앞장섰다”며 이총재의 정계 은퇴를 촉구했다.언론탄압의 상징적사건이자 ‘사법살인’으로까지 불리는 ‘민족일보 사건’의교훈은 무엇인가. 독립운동가의 후예로 민족일보 기자를 지낸 김자동(金滋東·72)씨를 만나 ‘민족일보 사건’의 배경과 후일담,그리고 오늘의 언론상황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최근 언론개혁 논쟁 와중에 ‘민족일보 사건’이 터져 나왔다.이를 접한 소감은? 마무리가 제대로 안된 역사는 언젠가는 다시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국회에서 ‘민족일보사건’이 재론됐을 때 이 사건을 모르는 세대들에게는 ‘언론탄압’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져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민족일보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착잡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당시 5·16 쿠데타세력이 ‘민족일보’를 탄압한 직접적인이유는 무엇이며,그 재판 결과는? 당시 미국으로부터 사상을 의심받던 박정희가 진보성향의민족일보를 용공좌익으로 몰아 탄압하면서 쿠데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보세력의 확장을 조기에 차단하려고 꾸민 사건이라고 본다. 재판결과 조사장은 사형에 처해졌다. 언론인처형은 일제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재판과정에서 논란이 된 내용은 어떤 것이며,당시 세간의여론은 어땠나. 재판은 비밀리에 일방적으로 진행됐으며, 피고측에서 자금출처에 대한 증인 채택을 요청했으나 묵살됐다. 당시 보도통제로 국내에서는 왈가왈부할 여건이 되지 못했으나 조사장의 사형 확정 후 국제적 비난이 빗발쳤다.나중에박정희가 조사장을 처형한 일을 후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민족일보사건’ 재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심판관(판사)으로 참여했는데 도덕적 문제는 없나. 어떤 이유에서건 이총재가 ‘민족일보사건’ 1심 판결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며, 부득이한 사정이었다고 해도 잘못은 잘못이다.이총재는 솔직히 자신의잘못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며 이 사건의 재조명 작업에 앞장서야 마땅하다고 본다.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상황을 보면 민족일보의 주장과 크게다르지 않은데 당시 민족일보가 남북관계에서 진보적 노선을편 배경은 뭔가. 민족일보의 보도태도는 4·19직후의 상황에서는 그리 앞선것이 아니었다.당시 대구의 ‘영남일보’ 등도 이같은 논조를 폈다.그러나 5·16이 터지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조사장은 우익인사로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을 뿐 좌익과는 연관이 없다. ●최근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두고 야당과 일부 언론사는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데. 언론사도 기업인 이상 세무조사는 당연하다. 이를 언론탄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사는 좀더 의연하게 조사에 임해야 하며 다만 결과를 놓고서는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야당이 이를 정쟁의 대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씨는 상해 임시정부 요인을 지낸 동농 김가진(金嘉鎭) 선생의 손자이며,모친은 여성독립운동가인 정정화(작고)여사다.현역에서 은퇴한 김씨는 지난 98년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결성,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이밖에 옛 동료들과 함께 ‘민족일보사건’의 재심을 준비중이며,‘인터넷 민족일보’ 복간도 검토중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동아투위 민주화운동 포함 안팎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사건을 정부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언론자유 운동이 당시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민주화 활동의 상징적 사건임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정부가 늦게나마 언론탄압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으로 그동안 해당 회사측과 해직 당사자들간 벌였던 논란에 대한 종지부는 물론,80년대 해직언론인 등 유사사건의 평가에도 영향을미치게 되었다. 또 이번 결정으로 언론민주화 운동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투위 사건은 지난 74년 정부의 언론탄압에 맞서다 해직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기자 등이 모여 자유언론 활동을 벌이다 정권의 탄압으로 해직되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74년 10월 24일 오전 9시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편집국에서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결의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당시 학원과 종교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에서 싹트고 있던 민주화운동에 불씨를 지폈다. 동아일보 기자들로부터 시작된 동아투위 사건은 동아방송의 기자와 PD,아나운서 등이 가세하면서 전체적인 자유언론투쟁으로 확산됐다.정부는 광고탄압이라는 방법으로 동아일보사 경영진에 압력을 가해 75년 2월17일 관련자 113명을 강제 해직토록 했다. 해직된 기자 중에는 이부영(李富榮)한나라당 부총재,장윤환(張潤煥)대한매일 논설고문,임채정(林采正) 민주당 의원 등이 있으며 이번 보상심의에는 이들을 포함해 100명이 신청했다. 당시 강제로 해고된 동아출신 언론인 113명은 즉시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외부압력 배제 ▲기관원 출입금지 ▲언론인의 불법연행거부 등을 요구하며 언론탄압에 정면 항거했다. 이 과정에서 동아투위 관련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조선일보기자 70여명이 해직된 데 이어 전국 35개 언론사가 동아투위에 지지를 보내고 대학생과 종교단체가 성명을내고 시위를 벌이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보상심의위원회 위택환 언론분과위 전문위원은 “동아투위의 활동은 언론을 장악하려는 독재정권에 항거한 자유언론수호 활동으로 명백한 민주화운동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홍성추기자 sch8@
  • ‘대한독립선언’ 82주년 기념식

    만주와 러시아 거주 민족지도자 39명이 1919년 2월1일 중국 길림성에서 선포한 ‘대한독립선언’ 82주년 기념식이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광복회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는 김유배(金有培) 국가보훈처장,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박유철(朴維徹) 독립기념관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기념식에 이은 학술회의에서는 서굉일(한신대)·신용하(서울대)·한용원(한국교원대) 교수와 일본의 경제평론가인 구보다 요시마다씨가 선언을 기초한 조소앙 선생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주제논문 등을 발표했다. 대한독립선언은 조소앙,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항일 독립운동 지도자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춰 조국독립을 요구한 내용의 선언서로서 2·8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주석기자 joo@
  • 인류 대이동 드라마 쓴 몽골리안

    수만년전 내륙아시아에 깃들어 살던 원시인들이 사냥감을 쫓아 북단의 시베리아로 흘러든다. 이어 동쪽 해안까지 가로지른 뒤 베링해를건넌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내리닫는다. 이같은 장대한 인류 대이동 드라마를 써내려간 이들,바로 몽골리안들이다. KBS-1TV가 6일 첫 전파를 쏠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몽골리안 루트’는 몽골리안의 전세계 확산 경로(루트)를 추적,흔적조차 희미해진 선사시대 문명확산의 스펙터클을 복원하려는 기획.10여년된 구상을 제작기간 3년6개월,총 제작비만 10억원을 들여 8부작으로 다듬어낸 KBS다큐멘터리팀 야심작이다. 몽골리안이란 유럽인종,아프리카인종과 대별되는 계통.우리 민족을비롯한 아시아인,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한 인종으로 묶는 핏줄이다.아시아 내륙을 발화지점으로 시베리아와 신대륙까지 들불처럼 번져나간 이들의 대이동사는 유럽,중국 등 정주문명권이 패권을 쥐면서 홀대돼온 게 사실.‘…루트’의 감상포인트라면 인류학적상상력속에만 남아있던 몽골리안의 전세계 확산가설에다 방대한 자료수집과 과학적 접근으로 구체적 실체를 부여했다는 점일듯 싶다. 화요일마다 한편씩 안방을 찾을 ‘…루트’는 크게 두개의 키워드를둘러싸고 전개된다.첫번째는 확산 드라마.혹한 적응과정에서 작은 눈,튀어나온 광대뼈 등 고유형질을 획득한 몽골리안들이 북으로는 시베리아 등 툰드라지대,태평양을 건너서는 북미·중남미까지 퍼져나가톨텍,아즈텍,마야,잉카 문명을 잉태하는 과정이 1∼4부에 걸쳐 그려진다.또 하나의 대주제는 유목문화.초목성 스텝기후 확산의 여파로문화접합 끝에 알타이 기마 유목민으로 변신한 북방계 몽골리안들이로마·중앙아시아·터키는 물론 헝가리·이집트까지 넘나들며 정주문명과 교접하는 과정을 5∼8부에 담아낸다. 30일 KBS국제회의실에서는 ‘…루트’ 첫회분인 ‘툰드라의 서곡’시사회가 열렸다.시베리아 야쿠츠크 에벵키족 사슴사냥꾼의 행로를큰 액자삼아,북방계 몽골리안의 착근과정을 기술혁명,유전학,정신세계 등 여러모로 훑어내렸다.구석기혁명을 배태한 세형돌날에 대한 심층분석,토템숭배의식 곰희생제 화면 등이 도드라졌다.절대적 자료부족때문에 컴퓨터 그래픽에 어쩔수 없이 의존,유장한 맛을 끊어먹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으나 두달간 지켜보는 것이 아깝지 않을 세기와공력이 엿보였다. 제작을 맡은 진기웅 PD는 “프로에 대한 일부의 민족주의적 요구를알고 있지만 우리는 민족의 뿌리찾기,과거의 위대한 유산 재조명 등의 접근은 하지 않았다.잊혀졌던 인류사의 드라마를 되짚어보며 과도한 서양사 의존에서 벗어나 역사적 균형감각을 되찾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루트’는 일본,싱가포르 등과 10만달러 상당의 수출가계약이 체결돼 있으며 미주로도 수출이 타진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대한매일 신년특집/ 대한매일의 어제 오늘 내일

    구한말 항일·민족언론의 필봉을 드날린 대한매일신보는 격동의 한세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질곡과 영욕의 역사로 얼룩져 왔다.일제하에서는 총독부 기관지로 친일보도에 앞장섰으며,해방후 독재정권 하에서는 권력의 대변지로 충실했다.그러나 반세기만의정권교체를 계기로 창간 당시의 제호를 되찾고 다시 태어났다.소유구조 개편을 통한 공익정론지로의 변신을 꾀하는 대한매일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을 정리한다. *어제. 대한매일은 구한말 대표적 민족지인 대한매일신보의 항일정신을 계승한 국내 최고(最古)의 공익 정론지다.1904년 7월18일 영국인 베델(한국이름 裵說)과 애국지사 양기탁(梁起鐸)선생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잘 알려져 있듯이 구국항일운동의 구심점이었다.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임을 만천하에 밝혔고,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으며,‘처처의병(處處義兵)’이란 고정란을 두어 항일의병투쟁을고무했다.암울한 시기에 국권수호의 보루이자 민족자존의 희망이었던 것이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8월일제가 이 땅을 강점하면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가 되는 치욕을 겪었다. 해방후 매일신보는 미군정청을 거쳐 정부로 귀속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이후 서울신문사의 주주총회 및 간부 인사는 공보처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1952년 4월 정관개정에 따라공보처장이 공식적으로 서울신문사 회장에 앉게 되었다.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은 1960년 자유당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됐다. 이승만 독재정권 시기 서울신문은 우리 현대사와 영욕을 같이 했다. 이승만 정권 초창기 한때는 좌경·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특히 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단을 목적으로 구성한 반민특위의 활동을 극구 지원·옹호하는 등 민족문제에 관해 여타 어느 신문보다도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 정권의 대변지로 전락한 이래 역대정권의 ‘홍보지’노릇을 해왔다.이런 연유로 ‘4·19’당시 성난 시위군중에게 사옥이 불탔으며,민주화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에는 한동안 대학가·재야진영으로부터 취재거부를 당하기도했다. 이로 인해 서울신문의 구성원들은 만성적인 정체성 위기에 시달려 왔으며,해바라기성 언론의 전형으로 불리기도 했다.결국 집권자가 경영진을 임명하는 구조하에서 언론 본연의 비판·감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신문사 경영 역시 악순환을 거듭하였다.이는신문 판매·광고에 바탕을 둔 신문사 경영원칙이 시장논리보다는 정부의 계도지 보급정책에 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오늘. 이러한 서울신문이 50여년 굴절의 역사를 접고 새로 태어났다.1998년 11월11일 서울신문은 ‘대한매일’로 제호을 바꾸고 재창간을 선언했다.▲공익을 앞세우는 신문 ▲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 ▲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신문 ▲2000년대에 앞서가는 신문이라는 다짐을 실천해가며 대한매일은 새로운 시대를 힘차게 열어가고 있다. 제호를 회복하며 다시 태어난 대한매일은 지난 2년여동안 공익 우선의 민족정론지로서 언론의 소임을 다했다.그것은 먼저 지면을 통해나타났다.특히 근현대사의 왜곡을 바로 잡고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일련의 장편 기획기사들은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일제하 친일파들의 반민족 행각을 자료와 증언으로 고발한 ‘친일의군상’,독재정권과 맞서 민주·인권투쟁을 벌이다 민주제단에 몸을바친 민주투사들의 투쟁사를 조명한 ‘민주열사 열전’,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시민들이 세운 장면 정권을 재조명한 ‘제2공화국과 장면’,일제하 단신으로 침략자를 처단하거나 총독부 등 일제 침략기관에 폭탄을 던지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의·열사들의 항일투쟁기를 복원한 ‘의열 독립투쟁’,재미언론인 문명자씨의 40년간에 걸친 극비 취재파일을 단행본 출간에 앞서 발췌연재한 ‘문명자회고록’,그리고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지의 항일유적지를 현지답사·증언을 통해 재조명한 ‘해외 항일유적지를 찾아서’등은 최고의 민족정론지에 값하는 뜻깊은 시리즈였다고 할 수 있다. 재창간 이후 거듭된 일련의 ‘정직한 역사 되찾기’작업은 각종 출판사업으로도 구체화했다.지난 99년 창간 95년과 백범 김구선생 서거 50주년을 맞아 펴낸 ‘백범 김구전집’(전12권)이 그 대표적인예이다.백범 암살 반세기만에 나온 이 전집은 백범에 관한 국내외 문헌자료를 총망라한 역작으로 꼽힌다. 대한매일의 또 하나의 얼굴은 ‘행정뉴스’면이다.공직사회의 소식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하는 ‘행정뉴스’면은 맨 뒷면에 넣어,1면과 같은 체제로 편집해 ‘1면이 둘인 신문’으로 자리잡았다. 특화된 내용이 돋보여 지난 98년 5월 선 보인 이래 열독률이 꾸준히높아지고 있다. 행정뉴스 면은 단순히 공직사회 소식을 전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의 구조적 문제점과 애환·비리 등을 낱낱이 짚어 건전한공직사회를 선도하는 지면으로 평가받았다. *내일. 지난 한세기 동안 ‘영욕의 역사’를 밟아온 대한매일은 이제 새로운 한 세기를 맞아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우선 ‘원죄’와도 같은 공적 소유매체로서의 틀을 벗고 ‘독립언론’‘공익언론’으로 거듭나고자 몸부림 치고 있다.99년 12월30일 자매지 ‘스포츠서울’이분사되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끄는 ‘스포츠서울21’로 새 출발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편집국장을 편집국 기자들이 직선하는 등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본사 편집국장은 편집인을 겸한,신문편집의 실질적인 총책임자로 편집국장 직선은 공정보도를 가능케 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편집국장 임기는 1년으로,임기가 끝난 뒤에는 중간평가를 통해 연임할수 있도록 해 편집권 독립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편집국장 직선제를 관철한 대한매일은 이제 위상 재정립 작업의 핵심이라 할 소유구조 개편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균등 무상감자후 유상증자’등을 골자로 한 소유구조 개편안은 언론개혁 차원에서범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가운데 정부가 언론사를 소유한 곳은 없다.정부의 언론사 소유는 시대에도 맞지않을 뿐더러 오히려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연합뉴스와 대한매일의 정부소유 구조개편 문제는 현정권의 공약사항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대한매일은 소유구조 개편을 통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과감한 지면혁신을이뤄나갈 계획이다.그동안 대한매일 지면이 독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제작자 위주의 ‘일방적 제작방식’이었다면,앞으로는 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쌍방향식 제작태도’로의 일대전환을 가져올 것이다.특히 남북관계 개선으로 종래의 적대적 대북보도 태도는 일대 전환을가져왔다.아울러 지방화시대와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인한 지면의 다양화 역시 시대적 요청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한매일은 98년 재창간을 계기로 ‘공익정론지’를 지면제작의 모토로 표방했다.이는 국내 대다수의 언론이 사주나 정치권 등 언론사 내외의 압력으로 인해 공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자성에서 나온 것이다.향후 소유구조 개편을 계기로 대한매일은 명실공히 공익정론지로 거듭나 시대를 이끌고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고급지로 발돋움할 것이다. 정운현 김종면기자 jwh59@
  • [기고] 남북화해시대의 보훈정책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남북간의 화해 협력 분위기는 분명 지난 50년 간의 냉전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겨레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산가족 상봉자의 일부 체제 옹호적 발언,국방백서의 주적 개념에 따른 논란,최근 대두되고 있는 대북 전력 지원문제 등에서 보듯이 일련의 불협화음이 나타나고 있다.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이질적인 두 체제에서 살아 왔고 양쪽 다 아직 냉전적 사고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데 큰 원인이 있다. 이러한 정신적 괴리현상은 상호간의 교류 협력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남북한 마음 속의 장벽을 허물고 참된 민족 통합을 이루는 데큰 장애가 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이 지금 조성되고 있는 교류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하고 평화적 통일을 앞당겨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차원의 통합이 절실하다.오랜 분단에 따른 정신적 이질감을 해소하여 민족 공동체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이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선열들의 국난 극복정신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특히 지난날 국권 상실기에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한 선열들의 얼과 혼이 담긴 독립운동사는 우리 역사 발전의 동인으로 면면히 계승되어야 할 겨레의 유산이며 남북이함께 공유해야 할 정신적 자산이기도 하다. 그동안 남북한은 이념 대립의 장벽 속에서 이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제각기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왜곡시켜 온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화해 협력의 물결 속에서 상호간의 정신적 통합이 절실한 이때,남북이 이 문제를 함께 풀어갈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남북의 정신적 통합에 주안점을 두고 보훈시책을 펴 나가고자 한다.우선 남북한 학자들이 독립운동사를 공동 연구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중국,러시아 등 해외지역 사료를 발굴·재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아울러 그 연구 성과를 국제학술회의 개최,독립운동사료집 발간,독립유공자 포상 등에 반영해 나갈 것이다. 다음으로 남북 공동으로 중국 등 해외 소재 독립운동 사적지의 실태를 파악하여 보수·복원 등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해외 안장선열 유해 봉환,독립기념사업 등의 민족 의식 고취행사를 공동 개최하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민족 정기 선양사업은 정부의 힘만으로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민간 차원의 사업 추진이 충분히 이루어질 때 남북 교류 협력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단체,민간 연구소,학계 등에서 북한의 민간 단체,학자들과 긴밀히 협조하여 독립운동사의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독립운동사는 이념 대립에 따른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고 21세기 통일 조국을 건설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남북 공동의 독립운동사 연구를 통한 참된 민족 정체성의 확립은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서둘러 추진해야 할 핵심 사업이다. 국경 없는 지구촌시대를 맞아 우리 민족의 번영과 발전에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는 노력은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함께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절실히 요구된다. 金 有 培 국가보훈처장
  • [외언내언] 내복과 마음의 온기

    필자는 어린 시절 매서웠던 겨울 추위를 잊지 못한다.국민 대다수가가난했던 70년대 이전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면 공유하는 기억일는지 모르겠다.어느 시인의 표현대로,그 시절의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은 유난히 길고 춥게 느껴졌으리라. 그 때만 해도 내복은 겨울의 필수품이었다.당시 아이들이 흔히 입던내복을 작고한 기형도 시인은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라는 시구로 되살렸다.하지만 근래엔 내복을 입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아파트나 빌딩 사무실 등 난방이 잘 된 곳에서 생활하면서 옷은 엷어져만 가는 추세다.자가용이 대중화되면서 빨간 내복은 이제 코미디드라마에서나 남아 있다. 북한주민들의 겨울나기를 도와주자는 취지의 대규모 내복 지원 프로젝트 하나가 좌초됐다는 후문이다.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1천만벌을지원한다는 목표로 시작됐지만 엄청난 비용을 댈 주체를 찾지 못하고사업 자체가 공중에 떠버린 것이다.생산에 앞장선 대기업은 있지만,그 기업에 언질을 줬다고 지목을 받은 전경련도,중간에 낀 정부 관계자도 모두 “우린 모른다”다. 사실 계약서도 없이 신기루처럼 추진된 바람에 책임 소재가 당연히불분명할 수밖에 없다.이 바람에 중소 하청업체들만 삭풍의 거리로나앉을 판이다.전북의 31개 하청업체 등이 동원돼 제조된 600여만벌의 내복이 갈길을 잃고 창고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누울 자리도모른 채 무작정 시류에 편승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나몰라라 하는 인사를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 보아 넘길 수만 없어 국내 시민단체들이 발벗고 나섰다.‘북녘동포 겨울나기 사랑의 내복보내기 범국민운동본부’(상임고문 김수환추기경 외 2인)는 20일 북한에 내복 보내기 캠페인을 본격화했다.내년 1월말까지 100만벌을 보내겠다는 목표라고 한다.만성적 에너지난으로 추위에 떠는 북녘 동포들에게 우리의 온기를 전하는 일은 뜻깊다. 이쯤에서 내복의 효용성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할 듯싶다.우리 경제가 이처럼 나빠진 데는 원유 수입부담이라는 외생 변수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요즘 내복은 실내 온도를 6∼7도 낮출 수 있는 보온효과가 있다고한다.우리 가정의 실내온도를 섭씨 1도만 내려도 2,300만 달러 절약 효과가 있다는 통계가 있다. 이 겨울에 우리끼리도 내복 입기나 선물보내기 운동을 벌였으면 좋겠다.중소 내복업체와 그 종사자들을 도우면서 궁극적으로 나라 살림에도 보탬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문득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내복을선물하던 그 때가 떠오른다. 구본영 논설위원
  • 한국복식문화 행사 조직위원 선정

    내년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우리 복식의 역사를 재조명해 한국복식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한국복식문화 2000년사’ 행사의 조직위원 14명이 선정됐다. 조직위원장은 문화부장관을 지낸 신낙균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 맡으며 명예위원장에는 유희경 한복사랑운동협의회장,최경자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이사장이 위촉됐다. 조직위원은 김동순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장,이영선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장,배천범 한국패션문화협회장,조효순 한복문화학회 이사장,이용주 한국의상협회 이사장,김미자 서울여대 교수,임병수 문화부 문화산업국장,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최달룡 한국관광공사 해외진흥본부장,한복디자이너 이영희씨 등이다.
  • [여성 선언] 가족이란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두번째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추락하는 각종경제지표 때문에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신문지상에서 그리 큰지면을 차지하지 못했다.그들의 눈물이 우리를 감동시키기에는 주변상황도 마음도 얼어붙은 탓일까. 그럼에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사연이 있었다.두 동생을 남겨두고 부모와 함께 월남한 맏형이 50년 만에 따온‘알밤’때문이다.사연인즉슨 맏형은 월남할 때 외가에 맡긴 동생들이 따라나서겠다고 조르자“뒷산으로 알밤 따러 간다”고 속여 떼어놓아야 했던 것이다. 동생들을 속이고 부모와 월남한 맏이,뒷산에 간 부모와 형을 기다리며 50년 세월을 보내야 한,이제는 늙어버린 동생들.그 동생들을 생각하며 평생‘알밤’을 가지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형.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면‘가족’이란 무엇일까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반세기 동안 타의에 의해 가족을 만나보지 못한 이산가족들,그 켜켜이 쌓인 한으로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야 했던 사람들.그들에게 가족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가장따뜻하고 근본적인 어떤 곳이다. 그러나 한 집안에 같이 살아도 늘 헤어지기만을 꿈꾸는 가족도 사실은 얼마나 많은가. 지난 1일에는 부모를 토막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석씨가 사형을 선고받았다.얼마 전엔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를 때려죽인 며느리의 이야기가 보도됐고, 딸을 매매춘에 나서게 한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었다.어린 아이를 폭행한 부모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지난 80년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감격적으로상봉한 가족들이 서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재산상의 문제 때문에 또한번의 상처를 입고 헤어져야 했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유비통신을타고 있다. ‘혈육의 본능적인 정’‘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논리가무력해지는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영혼에 상처줄 수 있는 것도 가족이다.가정은 사회의온갖 스트레스를 떠안은 구성원들이 정신과 몸을 무장해제하고 속내를 드러낼 수있는 곳이기에 가장 편안한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양면성을 외면한 채 가정의 행복한 측면만 자꾸 부각하다 보면그 울타리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이젠‘가족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하다’고 단순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가족들이 생겨난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우선 이산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졌으면 좋겠다.그들의 아픔을 단지‘본능적인 혈육의 정’을 끊어놓은 것으로만 설명하려는 감정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맞서는 분단 국가에서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겪어야 한 고통,사회가 만들어준 다른 체제에 대한 미움과 적의,국가 복지시스템으로 메워주지 못한 고난에찬 삶 등도 그들의 설움에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이 기회에 재조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대량 해고사태가 또 살벌하게 벌어질 판이다.그렇게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노숙자와 그를 기다리는 가족이 적지 않을것이다.그들에게 보내는시선이‘깨진 가족’에 대한 동정심만으로일관할 때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난다.‘경제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사회 구성원’이라는 상처 위에‘동정이나 받아야 할 불행한 가족’이라는 상처를 덧입게 되는 것이다.게다가 개인의 고통과 생계 부양자인 부모의 책임만 남고 사회구조적인 책임,국가의 극빈자에 대한노력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가족 때문에 느낄 결핍감을 최소화하는 것은 언론과 국가 복지정책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 박미라 페미니즘잡지 IF 편집위원
  • 신채호선생 탄생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단재(丹齋)신채호선생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 ‘신채호사상의 현대적 조명과 그 과제’가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주제발표에 나선 역사학자들은 언론인이자 애국계몽운동가·독립운동가로서,특히 ‘한국 근대역사학을 창시한 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이시대에 재조명했다. 이 대회는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사학사학회 등 다섯 학회가 1년여 준비해 연 것이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기조강연에서 “단재는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하면서 논객의 명성을 얻은 뒤 ‘독사신론(讀史新論)’으로 역사학계에 나선 우리 근대 지성의 대변자”라고 평가했다.또 “독립운동의 방향과 이론을 정립하고 스스로 실천했다”면서 “단재는 역사에편승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만들며 살았다”고 칭송했다. ‘신채호의 재중 독립운동’을 발표한 한기형 학술진흥재단 전문위원은 단재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경계를 넘어 한반도 평화가 동아시아 평화의 요체임을 입증했다”고 주장하고 말년에그가 민중적 관점으로 돌아선 사실은 오늘날 진보적인 민족주의를 건설하는 데 많은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 대회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발굴된 잡지 ‘천고(天鼓)’에 관한 연구 결과 발표가 잇따랐다.단재가 1921년 베이징에서 발행한 이 한문잡지는 7호까지 나왔는데 현재 1∼3권만을 찾은 상태이다. 최광식 고려대교수는 “‘천고’에는 독립운동에 관한 논설이 대부분이지만 고대사 논문도 한편씩 실어 사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면서“수록한 논문들이 중국·일본·만주·몽골의 자료를 두루 이용하고10여년 유적을 답사한 끝에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따라서 단재의고대사 인식이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뒷날 ‘조선상고문화사’와 ‘조선상고사’저술의 토대가 되었다고 그 가치를 높이 샀다. ‘일제강점기 신채호의 언론활동’을 발표한 최기영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천고’가 순한문으로 발행된 까닭을 “중국인이 주독자층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최실장은 ‘천고’의 내용이 ‘조선독립과 동양평화’(1호)‘중국이 한중친우회를 꼭 설립해야 하는이유’(2호)등으로 채웠음을 근거로 들었다.결국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한국의 독립운동과 역사를 중국인들에게 알려 지원을 요청하자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MBC ‘이제는‘ 내년 봄개편때 부활

    억압적 권위주의 정권아래 가려지거나 왜곡돼온 현대사를 재조명해오피니언 리더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모았던 MBC-TV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10월22일 ‘고문,끝나지 않은 전쟁’편으로막을 내린 ‘이제는…’이 2001년 버전으로 되살아난다. MBC측은 회사의 공영 이미지를 대변했다는 상징성과 그간의 사내외호평 등을 감안,이 프로를 2001년에 연장 방영키로 했다.이에 따라‘이제는…’은 3월말∼4월초 봄편성에서 부활해 1차 아이템 15편을내보내게 된다. 지난해 9월12일 ‘제주 4.3’으로 테이프를 끊은 이래 ‘이제는…’은 현대사의 민감한 부분을 끊임없이 건드리며 잇단 안타를 터뜨려왔다.‘여수 14연대 반란’‘박정희와 핵개발’‘일급비밀!미국의 세균전’‘94년 한반도 전쟁위기’‘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등.10년 전만해도 지상파에서는 상상조차 못했을 사안들이다.‘○○사단의 사라진 작전명령서’‘…세균전’등을 통해 6·25전후 양민학살 및 세균전 의혹의 진원지로 미국을 지목했으며 ‘…방화사건’에서는 광주사태에 관한 미국의 역할을 들춰내 보수회귀 분위기에 쐐기를 박기도했다.‘땅에 묻은 스캔들-정인숙 피살사건’‘KT공작의 실체­김대중납치사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전태일과 그 후’등으로는 현대사 수레바퀴에 짓밟힌 피해자들을 위무했다. 방송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PD연합회의 ‘이달의 PD상’,시청자연대회의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등을 휩쓰는 등 반응도 좋았다.평균시청률은 99년도분 13편이 8.3%,올해 15편이 7.2%. 일요일 밤11시30분의 교양프로치곤 선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제는…’은 한계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왜곡된 역사 핵심을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기보다 상반되는 당사자 넋두리의 평면적배열에 그치곤 했던 밀도 문제는 제작진 내부에서도 자성한다.말할수없던 시절 내내 침묵하다가 이제 말할 수 있게 되니까 입을 연다는방송 맥락 자체도 김빠진다.지상파 방송이 행한 ‘오욕의 과거사 정리’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방송의 책무라 할 동시대 역사에 대한 올곧은 비판과는 동떨어져 보인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2001년분 제작을 맡은 김채훈CP도 이를 상당히 의식한 듯 했다.김씨는 “한·미,한·일,남북관계 등을 축으로 놓되 시점을 보다 가깝게가져와 현대사에서의 미국,북한 내부의 권력관계와 인맥,재일교포 인권문제 등 발언의 파급효과가 큰 아이템을 다루는 데 주력하겠다”고말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뉴스피플 12월7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11월28일 발매,12월7일자)는 ‘한국의 새로운 첩보무대 서울 정동’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구한말의 첩보 각축장이었던 정동이 100년만에 또다시 첩보 전진기지로 변화하는 현장을 심층취재했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최근 32년 자동차 인생을 정리한회고록을 냈다.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자서전을 낸 지 9년만이다.한국경제의 두 거목의 자서전에 투영된 현대자동차의 역사와 형제의 애증을 들여다봤다. ‘하이테크의 요람’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한국 벤처들을현지에서 24시간 밀착취재했다.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지각변동과 대기업들의 내년 2월 인사 속앓이 사정,인사철을 앞두고 브로커가횡행하는 경찰 주변을 살펴봤다. 감기 다음으로 흔한 것이 요통.한국정형외과학회의 손꼽히는 형제명의 이춘기·춘성교수가 허리병과 디스크에 대한 모든 것을 들려준다. ‘우리 사전에 불황이란 말은 없다’는 건축 게릴라 ‘사람과 공간’,테크노 뽕짝 개척자 ‘신바람이박사’,근정전에 용 단청을 그리자고 제안한 미술사가 곽동해씨 등 사람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밖에 박물관의 우먼파워,출판가 일본문화 재조명 열풍,동시에 연극 무대에 오른 두 편의 ‘멕베드’ 비교감상법도 읽을 거리다.
  • [각료에세이] 열린마음으로/ 소비자는 농정의 영원한 동반자

    농업과 농촌의 가치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도시와 농촌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농업과 농촌의 역할에 관한 의식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농업이 국가경제의 근본이 되는 산업이라는 데 대해 77.5%가 적극동의했으며,자녀들이 일정기간 농촌에서 생활하기를 희망하거나 농업을 직업으로 삼는 데 대해 각각 72%,63%가 동의했다.그리고 응답자중68%가 농업과 농촌을 위해 추가적으로 세금을 납부할 용의가 있다고했다. 아울러 21세기에 더욱 중요해질 농업과 농촌의 역할로 식량안보 기능 다음으로 자연환경보전 기능을 꼽았다. 우리 국민 모두가 농업과 농촌의 가치와 중요성,그리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흔히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 듯이 우리도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많은 것 같다. 농업인들은 농업·농촌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긍지를 버리지 않아야 하고 소비자인 국민들은 농업·농촌의 소중한 기능과 역할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그래서 생산자인 농업인과 소비자인 국민들간에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도시와 농촌,농업인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농(都農)이 함께 하는 여러 가지 행사도 좋을 것이다.지난 5월 양평 남한강변에서는 농업인과 소비자가 함께 하는 친환경농업축제가열렸다.9월에는 일본 동경대 경제학부 우자와(宇澤)명예교수를 비롯한 각국의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사회적,문화적,경제적으로 재조명해보는 학술세미나도 개최했다. 농업정책 결정에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소비자의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선택할 권리’와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소비자와 미래의 소비자인 청소년들이농업과 농촌의 현장체험을 통해 노동의 소중함과 농업의 가치를 직접느끼도록 하는 데에도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와 애정이다. 농업인은 품질로 소비자인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소비자는 우리 농산물을 믿고 애용하며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농업인과 소비자 그리고 정부가 함께 우리 농업과 농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갈 때 WTO 무한경쟁시대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소비자는 우리 농정의 영원한 동반자이다.이 점을 우리 농업인과 농정담당자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韓甲洙 농림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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