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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역사를 보면 기성세력이 예언의 힘을 빌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심이 흉흉할 때,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예언서를 끄집어내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 나왔다.‘정감록’이 주로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 편에서 이용돼 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력은 주로 국도(國都)에 관한 풍수설을 자주 꺼냈다. 이런 논의를 주도한 이들은 술관(術官)이었는데, 고려 인종 때 백수한과 묘청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고 주장한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른바 묘청의 서경 천도설이다. 이것은 이미 다각도로 다룬 적이 있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밖에 어느 곳에 별궁(別宮)을 지으면 나라의 수명이 연장된다거나, 양경제(兩京制 수도를 둘로 함) 또는 삼경제(三京制)를 실시해야 나라가 무사태평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일단 이런 주장이 제기되면 술관들 사이에선 격렬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되풀이되었고, 그 여파로 한동안 조정이 양분되기도 했다. 민심을 달래려는 정략적인 의도에서 임시방편적인 조치가 강구되기도 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엔 예언서에 관한 논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민심을 가라앉히는데 더욱 효과적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것은 기성세력이 예언서를 대하는 근본 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징후로 봐야 한다. ●강화도 연기설과 술관 백승현 13세기, 고려사회는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고종(1213∼1259) 때는 사태가 심각했다.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조정은 수도 개경을 버리고 강화로 피란을 가게 됐다. 국운이 다했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고 신하들의 사기도 저하되었다. 왕은 무엇이 됐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이 때 풍수를 업으로 삼은 백승현이란 술관이 고종의 뜻을 알아차리고 왕업을 연장시킬 방도를 제시했다.“혈구사(穴口寺)에 들러 ‘법화경’을 강론하시면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삼랑성 등에 궁궐을 짓는다면 영통한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백승현은 국교인 불법과 풍수설의 위력을 빌려 사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종은 내심 백승현의 주장에 찬동했다. 당시엔 심리적인 방법 외에 따로 마땅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왕은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상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다음 최고급 술관들에게 백승현의 건의사항 특히, 임시궁궐을 짓는 문제에 대해 찬반토론을 하게 했다. 일대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백승현은 이 자리에서 ‘마타도록’, 불경, 음양서 및 각종 예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여 왕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의 견해를 반대하던 경유 등은 말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결국 백승현의 건의대로 삼랑성과 신니동에 궁궐을 건설하게 되었다.(‘고려사’, 권 123) 그러나 궁궐공사는 시작만 하였을 뿐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웠다. 많은 인력과 재물이 투입되는 큰 공사인 만큼 도리어 국력이 소진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고종은 승하했고 원종이 왕위에 올랐다. 몽골과의 전쟁은 아직 지속되고 있었다. 원종5년(1264년) 몽골은 고려의 왕더러 몸소 입조(入朝)하라고 요구하였다. 백승현은 당시의 실권자 김준(金俊)을 통하여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만약 마리산(摩利山·마니산이라고도 함)의 산성 주변에 못을 판 다음 왕께서 친히 제사 지내시고, 또 삼랑성과 신니동에 임시 궁궐을 만들고, 친히 대불정에서 오성도량(五星道場·해와 달을 비롯한 다섯 별들을 위한 기도)을 마련하신다면 금년 8월이 되기 전에 징험이 나타날 것입니다. 몸소 입조하라는 말은 아예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삼한이란 이름을 바꿔 진단(震旦)이라 부르면 큰 나라가 조공을 바치러 올 것입니다.” 원종은 백승현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내시대장군(內侍大將軍) 조문주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해 임시 궁궐을 짓게 했다. 가뜩이나 조정의 세입이 부족한데 궁궐공사를 벌이고 대규모 불사(佛事)를 벌이고 한다는 것은 도리어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는 관리가 있었다. 예부시랑 김궤였다. 그는 어느 재상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털어놓았다.“혈구산은 사실 흉산입니다. 그러나 요망한 백승현은 그곳에 대일왕(大日王 태양신)이 항상 머무른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고종께 아뢰기를, 혈구사를 지어 고종의 옷과 혁대를 가져다 두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한 지 얼마 안 되어 왕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지금 또 감히 요망한 말을 지어내서 임시 궁궐을 짓자 하고, 혈구사에 임금님이 몸소 대일왕을 위해 도량을 차려야 한다고 하니 말도 안 됩니다.” 김궤는 그 재상더러 국정의 실권자인 김준에게 고해, 백승현의 말을 물리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려사’, 권 123) 이 말을 전해 들은 김준은 김궤를 죽이려 했다. 까짓 돈이 얼마 드느냐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과연 백승현의 제안이 옳은가, 하는 문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행사를 벌임으로써 고려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백승현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의 주장과는 달리 원종은 몽골에 항복했고, 몽골인 왕비를 맞아들이는 처지가 되었다. 김준도 비명에 횡사했고, 조정은 강화도를 떠나 개경으로 다시 돌아갔다. 고려라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지만 망한 거나 별반 차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백승현 효과는 그야말로 일시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아직 살아 있다. 강화도 혈구산에 대일왕, 즉 태양신이 머문다는 백승현의 견해는 현재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혈구산은 강화도의 주산(主山)인데, 그 남쪽에 마니산이 있다. 그 산 꼭대기에 유명한 참성단이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강화도가 하늘 또는 태양신과 밀접한 관계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해마다 참성단에서 채화된 불을 가져다 전국체전에 봉화로 사용할 정도다. 또한 혈구산 등이 최고의 명산이란 백승현의 주장이 후대에 널리 전승되어 ‘정감록’에도 강화도는 전국의 길지(吉地) 가운데 하나로 이름이 올라 있다. ●조선 광해군 때의 교하 천도설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다. 그러자 그간 수백 년 동안 잠잠했던 천도설이 다시 조정에 등장했다. 광해 4년(1612) 술관 이의신이 상소를 올려 한양을 버리고 천하제일의 길지인 경기도 교하(交河)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얼마 전 왜란에 이어 몇 차례 반역사건이 발생한 이유,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까닭, 그리고 한양 주변의 산이 황폐해진 것도 한양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진 때문이라고 했다. 광해군은 이 말에 솔깃했다. 허균을 비롯한 일부 관리들도 수도 이전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힘을 얻은 왕은 예조에 명령해 수도이전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 보라 했다. 그러나 예조 판서 이정구(李廷龜)는 반론을 전개했다. 우선 풍수설이란 것이 유교경전과 무관해 믿을 만한 근거가 도무지 전혀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의신이 문제로 삼은 한양은 지세가 평탄해 편리하고, 전국각지와 교통망이 발달해 있으며 주변에 비옥한 토지가 많아 물산이 풍부하고 성곽도 잘 갖춰져 있어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수도로서의 조건이 완비돼 있어 조선을 다녀간 중국의 많은 사신들도 한양의 수려함을 칭찬했다고 주장한다. “왜란은 국제질서에 관계된 것이며, 역적이 일어난 것은 수도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가지 않으면 수풀은 절로 무성해집니다. 국운을 생각한다면 백성을 사랑하고 풍속을 두터이 하며, 내정을 잘 닦고 외적을 물리치는 것뿐입니다. 이 도리에 어긋나면 해마다 도읍을 옮기더라도 위기와 난리만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런 식의 반론이 고려 공민왕 때는 불가능했다. 고려 고종이나 원종 때도 물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예언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술관들이 검토해야 할 일종의 전문분야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엔 달랐다. 모든 중요한 문제는 성리학자들이 담당했다. 더 이상 풍수설과 도참설이 판단의 기준은 아니었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척도였다. ●발상의 전환 이정구는 바로 그런 입장에서 일체의 예언을 근거 없는 미신으로 간주해 몽땅 부정해 버렸다. 그가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은 공리성과 합리성이다. 이것은 역사상 일대 전환을 뜻한다. 고대의 왕과 대신들은 기꺼이 예언가 노릇을 차지했다. 고려 말까지도 왕과 대신들은 예언의 위력을 빌려 정권의 안정을 꾀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곤 하지만,20세기 후반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국가의 중요한 일을 점성술사와 상의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어쨌거나 17세기 조선의 성리학자 이정구는 예언을 정치의 장에서 몰아냈다. 본심이야 어쨌든 광해군도 이정구의 견해에 반대의사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예언이 주렁주렁 매달린 뽕나무 밭이 변해, 이제 합리성의 푸른 바다가 된 셈인가.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신돈·공민왕 ‘도선비기’ 이용 망국론 잠재워 요즘 MBC가 고려말 승려였던 신돈을 재조명하는 드라마 ‘신돈’을 방영하고 있다. 그는 과연 ‘희대의 요승’인가 아니면 ‘실패한 혁신가’인가. 고려 말, 공민왕은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왕은 승려 출신 신돈을 내세워 내정을 혁신하고, 정권을 농단해온 무장(武將) 세력을 숙청하는 등 여러 면에서 새로운 정치를 꾀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여러 차례 홍건적과 왜구의 침공이 잇따르는 등 애로가 많았다. 공민왕과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신돈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 여러모로 예언을 이용하고자 했다. 신돈과 공민왕이 예언설에 집착하게 된 데는 사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외우내환이 겹쳤고 혁신정치를 추진하느라 불만세력이 발생한데다, 항간에 고려가 곧 망한다는 끔찍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 든 국면전환이 이뤄져야만 했다. 이에 신돈은 ‘도선비기’(道詵記)를 살폈다. 여기서 그는 송도의 운수가 쇠진된다는 설(松都氣衰之說)을 거꾸로 이용했다. 신돈은 왕에게 천도를 권하였다. 왕은 그에게 명령하여 평양으로 가서 지맥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돈은 진심으로 도읍을 옮길 생각을 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시늉을 하며 잠시 민중의 마음을 떠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신돈은 심리전술의 대가였다. 자신이 승려출신이라 유교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자들을 널리 포용하기 위해 약간의 잔재주를 피우기도 했다. 공민왕이 성균관을 지으라고 명령하자 그는 여러 유신(儒臣)들과 함께 성균관의 옛 터를 둘러보았다. 신돈은 모자를 벗고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공자에게 맹세했다.“온 마음을 다하여 성균관을 다시 짓겠습니다.” 공민왕 18년(1369), 신돈은 그동안 자신이 추진해온 개혁정치가 한계에 도달하자 또 다시 천도론을 펼쳤다. 이번에는 평양이 아니라 충주였다. 공민왕은 그에 반대했다. 신돈에 대한 의심을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신돈은 핑계를 찾아냈다. 개성은 바닷가에 가까운 관계로 왜구가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내륙지방이자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충주가 수도로 적격이란 것이었다. 공민왕은 여러 생각 끝에 교서(敎書)를 내려 수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정리했다.“옛날에 우리 태조는 매번 소해, 용해, 양해 그리고 개해마다 삼소(三蘇)를 돌아가며 머물렀다. 나도 장차 평양에 갔다 금강산을 거쳐 충주에 머물려고 한다.”서울은 개성으로 묶어 두되 평양, 금강산 및 충주를 이른바 세 군데 명당으로 삼아 돌아가며 머물겠다고 한 것이다. 왕의 원거리 순행은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는 큰일이었다. 여행경비가 만만치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일행이 머물 시설을 새로 짓는 문제, 도로를 닦는 작업이 뒤따랐다. 더욱이 왕은 자신이 머물 이궁(離宮)은 물론 죽은 왕비를 위해 공주혼전(公主魂殿)까지 짓게 하였다. 그 바람에 평양과 충주의 백성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국운을 연장해 보겠다고 벌인 공사 때문에 자칫하면 민심이 이반되어 도리어 국운이 위태해질 가능성마저 커졌다. 얼마 후 공민왕은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책동한 신돈을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이때를 기다린 술관 진영서가 왕에게 아뢰었다.“요즘은 한낮에도 태백성이 보입니다. 게다가 흉년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길하고 움직이면 흉합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어째서 이렇게 늦게 그런 사실을 아뢰느냐며 평양과 충주 순행계획을 모두 파기해 버렸다. 모든 공사가 중지된 것은 물론이다. 공민왕은 남달리 영리했지만 본래 의심이 많고 잔인한 성격이었다 한다. 제아무리 심복 대신이라도 권력이 커지기만 하면 꺼려해서 반드시 제거했다. 신돈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역모를 꾸몄다는 죄명으로 왕은 신돈을 없애 버린다. 그러던 왕 역시 어느 신하의 칼끝에 쓰러진다. 공민왕과 신돈은 한 때 개혁정치의 동반자로, 갖은 예언설까지 끌어다 국운을 연장하려 애썼지만, 실은 제 한 목숨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 영암에 고대문화 다시 꽃핀다

    ‘옹관묘 공원에서 바둑 공원까지’ 봄이면 10리 벚꽃 길 따라 열리는 왕인문화축제의 고장 전남 영암군이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영산강 유역 고대국가였던 마한 문화공원이 공정률 95%로 마무리 중이고, 가야금과 바둑 공원은 기본설계에 들어갔다. 또 왕인박사 유적지 확장과 도선국사가 살았던 도갑사 대웅전도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 또 월출산 자락에 걸린 달빛을 배경삼아 펼쳐지는 달맞이 국악공연은 벌써 27번을 마쳐 농촌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시종면 옥야리 일대에 들어서는 마한 문화공원에는 전시관과 생활문화·농경 체험장, 고분탐사관, 전망대 등이 갖춰졌다. 망루·움집·족장집·동물사육장 짓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마한은 3∼6세기 삼국시대와는 다른 고대국가였음이 대규모 유적(옹관묘)으로 입증됐다. 군서면 구림리 성기동 왕인박사 유적지에서는 왕인박사 일대기 전시관을 새로 지었고 왕인학당, 전통찻집, 정자도 다시 짓고 있다. 또한 구림 전통마을 명소화 사업으로 전통 종이공예 전시관을 건축 중이고 신라 말 풍수지리학의 대가로 군서면 구림리 출신인 도선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도갑사 대웅전과 극락전·성보전을 발굴 자료에 따라 복원한다.여기에 신북면 갈곡리 갈곡들소리 전승관도 새단장했다. 이 들소리는 모내기를 하면서 다함께 부르던 흥겨운 노랫가락으로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 모찌기 소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승되는 농요다. 한편 영암군 덕진면 출신인 조훈현 국수를 기념해 바둑공원을, 영암읍 회문리 일대에 가야금 산조 김창조 선생을 기리는 가야금 공원을 만든다.영암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5돌 자선공연 갖는 국민가수 하춘화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5돌 자선공연 갖는 국민가수 하춘화

    풍(豊)은 풍이로되 신풍(新豊)이도다. 그렇다면 ‘풍’은 무엇일꼬? 주역에 나오는 풍괘(豊卦)를 줄인 말이다.‘풍’은 번영과 성숙이 가득찬 정점의 상태를 말하며, 한낮의 태양처럼 천하를 밝게 비칠 최고의 운에 비유한다. 여기에 늘 향기로운 춘화(春花)가 더해진다면 어떠할까. 최연소 음반 출반(6세), 최연소 레코드회사 전속가수(9세), 최연소 영화주제가를 부른 가수(10세), 최다 개인발표회(1260일)로 기네스북 등재, 최다 사회 봉사활동 공연(100여회), 최초 평양공연(85년)….‘신풍’은 이렇게 ‘최’라는 수많은 접두사를 만들어냈다. 국민가수 하춘화(河春花·본명·50). 아호가 바로 ‘신풍’이다. 항상 새로운 ‘풍’을 선사하라는 아버지의 큰뜻에서 그렇게 지었다. 이후 한번도 흔들림이 없었다. 반세기 가까운,45년 세월을 늘 처음처럼 살아왔다. 그동안 무려 2500여곡을 발표하면서 한결같이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자신을 좋아하는 팬이 항상 주위에 있었기에 저절로 힘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같은 결실을 모은 ‘하춘화 노래인생 45년’ 행사를 다음달 10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갖는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깨끗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환경미화원들을 위한 공연이다. 개런티를 포함해 수익금 전액이 환경미화원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객석은 환경미화원 부부로 꽉 채워진다. 또 있다. 알고보니 하씨는 아무도 모르게 공부를 열심히 해왔다. 내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어서 현역가운데 첫 박사가수라는 명함이 추가될 전망이다. 노래와 공부, 정열적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이래저래 내년에는 ‘춘화’의 계절이자 또다른 ‘신풍’으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정점에 서는 셈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모 방송국 인근에서 하씨를 만났다. 청바지 차림에 외투 하나를 가볍게 걸친 모습이 무척 젊고 자유스러워보였다.4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다들 그러는데, 사실은 너무 고생해 별로 (몸이)좋지 않아요.”라고 달갑지 않은 듯 받아넘긴다. 공부를 하느라 심신이 피곤해 있다고 고백했다. 하씨는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오는 13일 박사논문 예심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올 한해는 (공연 등)아무것도 못했어요.”라고 토로했다. 이어 “올 1월부터 4개월 동안 자택(서울 서초구 서초동) 인근의 독서실에서 지독히 공부했거든요.”하면서 피식 웃는다. 읽은 논문만 50편은 훨씬 넘는다고 했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처럼 정말 열심히 했단다. 하씨의 평소 좌우명은 ‘성실 건강 정직’이다. 악바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한번 마음을 먹고 일을 정하면 끝을 보고야마는 우직한 성미다. 박사논문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느냐고 하자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위상과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지요. 우리 국민은 다들 대중가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같은 연구접근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라고 하면서 논문의 제목은 ‘대중이 선호하는 대중가요의 사회철학적 연구’라고 했다. 이어 “대중가요가 엄청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또 학문적으로 접근한 사람이 없어서 시작하게 됐지요.”라고 연구의 계기를 밝혔다. 아울러 “한때 가수로 명성을 날리다가 인기가 시들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가수로)활동할 때 학문적 바탕을 쌓고 인재양성에 열정을 쏟아야겠다는 사명감을 늘 생각했지요.”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내년이면 박사가수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맞아요,1호가 될 겁니다. 더욱 열심히 해야지요. 또 결국 나중에 가서는 학교 강단에 서서 후배와 제자를 키워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정말이지 (공부가 힘들어)박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어요.”라는 고충을 토로한다. 지나온 45년 가수인생과 더불어 자선공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71년 ‘물새 한마리’ 이후 ‘영암 아리랑’‘날버린 남자’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사실상 한국가요 70년을 넘나들지 않느냐고 하자 “직업연령으로 치면 정말 많이 먹었지요. 하지만 제 나이에 데뷔하는 사람도 많아요. 직업적으로 보면 후배지요. 하지만 그분들한테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아버지가 늘 그랬어요.‘남을 생각하라, 사회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어릴 적부터 그 말이 귀에 콱 박혔습니다. 나중에는 (자선공연이)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더군요.”라고 말했다. 부친이 살아계시느냐고 하자 “물론이지요.(부모)두분 다 84세로 건강하게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집에 오셔서 같이 점심 드시고 그랬거든요.”라고 대답했다. 한 동네, 걸어서 5분거리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어번 식사를 함께 한다고 귀띔했다. 또 “딸만 넷을 두었어요. 사실 저만 빼놓고 다들 박사학위를 땄거든요. 언니는 사회체육학 박사, 바로 밑에 동생은 컴퓨터 전공, 막내는 경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늘 아들 열이 부럽지 않다고 자랑스러워한다며 웃는다. 일제때 신식 교육을 받은 아버지는 요즘도 패션감각이 뛰어나 사위들을 만나면 한수 지도까지 해줄 정도라고 했다. 가요 평론가의 말을 빌려 하씨가 우리식 전통가요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라고 했더니 “트로트는 미국에서 나왔지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식 가요로 정착하고 있습니다.‘영암아리랑’과 ‘칠갑산’ 같은 경우는 민요에 바탕을 둔 신민요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또한 “문화란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이식의 과정을 거쳐 정착하게 됩니다. 랩음악의 경우 생명력이 6∼10년 정도로 봅니다. 우리 문화에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음악도 많습니다. 하지만 트로트풍의 전통가요는 여전히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 음악이지요. 김치가 우리 음식이듯 말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트로트에 대한 우리식 이름이 필요합니다. 나훈아씨는 ‘아리랑’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지요. 어쨌든 우리 세대에서, 우리들이, 만약 제가 강단에 선다면 학문적으로 접근하면서 문화적 통찰력으로 그 작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고 강한 의욕을 내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강하고 항상 거침이 없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이 준비된 테이프처럼 술술 나왔다. 아이큐(IQ)가 몇이냐고 하자 “아이고 그런 질문 하지 마세요. 좋으면 어떻고, 안 좋으면 어때요.”라고 한다. 인터뷰 도중 하씨는 방송녹화 일정 때문에 서둘러 일어서려고 했다. 잠시 붙잡고 건강관리에 대해 물었다.“사실 운동이 생활화됐습니다. 수영 골프 스키 볼링 다 좋아합니다. 집주변의 학교운동장에서 뛰기도 합니다. 집안에서는 스트레칭도 하고요.”라고 대답했다. 골프실력은 싱글 수준이지만 요새는 1년에 한번밖에 라운딩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10년전 늦게 결혼한 하씨는 아직 슬하에 자녀가 없다. 자택에서는 남편(KBS 행정직 직원)과 둘이 오붓하게 지낸다.“다음달 공연 기대하세요. 신인가수의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거든요. 우리 가요 7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큰 공연이 될 거예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전남 영암 출생 ▲75년 서울 일신여상 졸업 ▲80년 경남대 가정학과 2년 수료 ▲94년 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 최고 정책과정 수료 ▲98년 한국방송통신대학 졸업 ▲2000년 동국대 대학원 졸업 ▲2005년 성균관대 예술철학 박사과정 재학중 ● 경력 ▲61년 서울 동아예술학원 가요과 수료, 레코드 취입 8곡 ▲63년 지구레코드사 전속가수 ▲65년 영화 ‘아빠 돌아와요’ 주연 및 주제가 부름 ▲72년 뮤지컬 ‘우리가 여기 있다’ 주연 ▲73년 드라마 ‘여보 정산달, 초가삼간’ 주연 ▲74년 제1회 개인리사이틀 공연, 이후 매년 공연 ▲85년 분단 최초로 평양공연 ▲92년 가요 20년 기념 공연 ▲2001년 가요 40년 공연 ▲2001년 옥관 문화훈장 ▲2002년 선행스타 대상수상 ▲2005년 현재 2500곡 취입
  •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조재곤 씀

    “나는 조선 관원이고, 김옥균은 나라의 역적이다. 김옥균의 생존은 동양 삼국의 평화를 깨뜨릴 우려가 있다.” 1894년 3월28일 중국 상하이 둥허양행이라는 한 호텔에서 김옥균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홍종우가 중국 관헌에게 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홍종우는 특별히 주관도 없는 ‘무뇌아’로,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해 조선 정부의 사주를 받아 김옥균을 살해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조재곤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격동의 구한말, 김옥균 암살사건의 전말과 그 의미를 재조명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홍종우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국내 학계에서 내린 보수파라는 평가와 달리 그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프랑스 저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서구사상과 문화도 체득했다. 개화사상 면에선 오히려 김옥균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김옥균의 사상을 세계주의, 홍종우의 사상을 국제주의로 분석하면서, 두 개혁가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정면 충돌해 동반몰락한 것에 큰 아쉬움을 토로한다. 결국 김옥균 암살은 일본이 청과 조선을 침략하는 빌미가 됨으로써 조선의 운명에 절대적 악재로 작용했음도 밝힌다.1만 4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5·18 당시 전남도경 국장 민주화 인정 현충원 안장

    지난 1980년 광주 5·18 민중항쟁 당시 전남도경 국장이었던 고 안병하(88년 사망)씨의 유해가 17년 만에 국립 현충원에 안장된다. 국립묘지 안장은 지난 6월 역사 재조명 차원에서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당시 고인의 행적에 대해 5·18 관련단체 등의 증언과 법원 판결문 등을 재조사, 이를 근거로 현충원측에 요청해 이뤄졌다. 대법원은 지난 1997년 5월 안씨에 대해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로 판결했고 국가보훈처는 2003년 1월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했다. 전남경찰청은 23일 “연고도 없던 충북 충주시 진달래공원 묘지에 묻혔던 안 전 전남도경 국장의 영현(영령)을 국립 현충원 경찰묘역에 24일 안장키로 했다.”고 했다. 고 안 국장은 5·18 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신군부의 강경진압을 거부하다 5월26일 보안사로 연행돼 사직서를 냈고 구금과 고문 등 후유증으로 1988년 10월 숨졌다. 그러나 5·18 당시 숨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순직 대상자에서 빠졌다.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의회] 박덕기 성북구의장 출판기념회

    성북구의회 박덕기 의장은 지방자치와 지역 비정부기구(NGO)의 관계를 연구한 ‘한국 지방자치와 NGO’(청문각)를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책은 지방자치와 NGO에 대한 이론적 접근으로 시작된다. 한국사회에서 지방정부가 갖는 의미와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주민, 여성과의 관계를 재조명한 것. 이후 국내 NGO의 과거·현재·미래를 반추한다. 개념과 등장 배경을 설명하고 우리 정치사에서 NGO가 맡은 역할을 꼼꼼히 훑어간다. 특히 박 의장은 지역NGO의 활동에 주목했다. 부천시 담배자판기설치금지조례, 서울시 송파구 주부 구정평가단운영조례, 부천시 어린이놀이터관리조례조정운동, 인천 부평구 미군부대 이전에 관한 구민투표조례 등이 지역NGO의 참여로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지역NGO는 지방정부와 함께 지역사회의 공공재 생산에 협력하는 공동 파트너이자 정부와 의회를 견제하는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책은 지역NGO의 활성화를 전제로 지방자치와의 상관관계를 예측·분석했다.“쉽지 않지만, 비정치·비영리 단체의 속성을 지닌 지역 NGO가 주민을 조직화할 수 있고, 지방자치제도를 여러 각도에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박 의장은 설명했다. NGO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 책은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유용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고희탁씨, ‘황도유교’ 창시자 다카하시 재조명

    다카하시 도루. 동경제대 출신으로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종교조사촉탁과 조선도서조사촉탁 등을 맡아 조선의 유학을 연구정리한 인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조선 유학’과 관련해 배우는 주기론, 주리론, 사단칠정같은 개념도 모두 다카하시에 의해 부각됐다. 일제 관변학자로 일왕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황도유교(皇道儒敎)’의 창시자다. 그러니 ‘다카하시 극복’이 최근 유학자들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다카하시의 논의를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글로벌컬처연구소 고희탁 연구원이 반년간지 ‘오늘의 동양사상’에 기고한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사상사론의 양면성’이 화제의 글. 고 연구원은 외려 “이제 우리도 식민사관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식민사관 콤플렉스 벗어나야” 사실 조선 지배층의 헤게모니는 임진왜란에서 끝났다. 임진왜란은 지배층의 무능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궁궐을 불태우고, 임금이 뻔히 궁궐에 앉아 있는데도 궁내를 휘저으며 도둑질하고, 피란길에 오른 임금에게 돌팔매질을 했다. 왜란이 끝난 뒤 조선 지배층이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반동적 보수화였다. 그럼에도 우리 연구자들은 조선후기사를 부정적으로 그려내는데 상당히 망설인다. 부정적으로 그리면 결국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할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고 연구원의 글도 이런 맥락에 있다. 그는 먼저 다카하시의 연구를 ‘지식사회학적 관점’이라 본다. 조선 유학을 철학적 기반이나 개별 학설보다 ‘정치적 영향력’에서 본다는 것. 고 연구원은 “다카하시가 단순히 조선 유학을 폄하만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학문적 논쟁이 점차 정치적 권력투쟁과 연결되면서 굉장히 소모적으로 흘러간다는 점에 비판적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다카하시가 다산 정약용에 주목하는 과정을 눈여겨 본다. 다카하시는 조선유학에 대한 비판과 달리 유학의 실용적 측면을 되살리는 다산을 “조선 사상사의 석학”이라고 극찬한다. 재미있는 점은 다카하시가 1930년대 이런 주장을 내놓는 시점에서 조선 민족주의자들도 ‘실학’을 연구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다산은 조선사상사의 석학” 다카하시의 조선 유학 비판에 대해 고 연구원은 ‘학자지배’ 사회에 대한 와타나베 히로시의 연구를 인용한다. 와타나베는 되묻는다.“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배층이 왜 학문에서는 이를 모른 체하고 ‘도의’라는 엄숙한 자기규율적인 이론체계를 채택하는가.”그것은 학자지배 사회의 근본조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게 와타나베의 지적이다. 즉, 존재 이유가 불명확한 특권층일 경우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입증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는 것. 왜란 이후 조선 유학자들이 주자학을 극단적으로 경직된 이론체계로 밀어붙여버린 이유를 알 수 있는 열쇠라는 게 고 연구원의 설명이다. 고 연구원의 주장에 따르면 의외로 다카하시는 지금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공공성 개념이 약했다는 점에서 조선 유학을 비판하지만 실학과 양명학을 연구하면서 상당히 변화한다.”물론 한계는 있다. 고 연구원은 “관변학자로서 ‘황도유교’ 철회를 선언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베니스의 상인’ 마당놀이서 환생

    24년 전통을 자랑하는 마당놀이의 명가, 극단 미추가 올해도 어김없이 흥겨운 판을 벌인다.18일부터 12월18일까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막올리는 ‘마포 황부자’. 빌려준 돈을 못 갚을 경우 몸의 살을 대신 내놓으라는 고약한 계약을 요구하는 마포 고리대금업자 황부자의 이야기. 어디서 본 듯한 줄거리다 했더니 다름아닌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한 것이다. 춘향전, 심청전 등 우리 고전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왔던 극단 미추로서는 파격적인 시도. 마당놀이 주 관객층인 40∼50대 외에 20∼30대 젊은 관객들을 끌어안으려는 복안이다. 의원을 부를 돈이 없어 아내와 사별한 황득업(윤문식)은 돈을 빌려 달라는 자신의 청을 거절한 김부자(정태화)에 대한 원한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 갑부가 된다. 청나라와 무역을 하던 김부자의 아들 무숙(이기봉)은 자금이 딸리자 황부자를 찾아오고,‘약속한 날까지 돈을 못 갚으면 살코기 한 근을 떼어준다.’는 계약을 맺는다. 이 와중에 황부자의 무남독녀 만금(김성녀)은 무숙에게 첫눈에 반하는데…. 전작 ‘허삼관 매혈기’‘벽속의 요정’을 통해 원작에 버금가는 탁월한 각색 능력을 선보인 극작가 배삼식이 이번에도 예의 그 맛깔스런 솜씨를 발휘했다. 땅 투기, 주식투자 등의 현실 풍자가 혀끝에 톡 쏘는 겨자처럼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손진책 대표가 연출을 맡은 이번 공연에는 작곡가 박범훈, 한국무용가 국수호, 무대미술가 박동우 등 내로라하는 스태프들이 대거 참여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02)368-1515.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전쟁’의 한반도화/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 언론인

    1980년대 초만 해도 국내에는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컨대 한국전쟁 전황이나 전시의 사회상을 담은 공식 동영상이나 컬러 사진은 전혀 없고 초라한 흑백 사진첩 몇 점 있을 뿐이었다. 마침 80년대 들어 한국 신문들은 너도나도 컬러 윤전기를 들여오며 컬러화보 경쟁에 불을 붙였다. 당시 특파원으로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취재하던 필자는 6월 특집기획을 한국전 컬러 사진화보로 잡고 국방부를 두드렸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공보관실 통신담당 상사의 친절을 만나게 되어 펜타곤에 보관된 한국전 관련 사진과 동영상 필름들을 훑어보는 행운을 얻었었다. 한국관련 자료만도 수십평 사무실에 가득했다. 미군은 1차 세계대전 때부터 통신부대 소속 사진병을 전투 일선에 배속시켜 전투 상황, 후방 민간인들의 참상 등을 흑백과 컬러 사진으로 생생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면처럼 미군 폭격기의 북한지역 폭격 모습도 동영상으로 담겨 있었다. 큰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진 폐허 서울의 모습, 젖먹이 동생을 등에 업고 무너진 집터에 망연자실 서있는 8∼9세 소녀의 가슴 아픈 정경 등 컬러 사진 수십장을 복사해 지면에 보도했었다. 그 후 한국의 방송사 연구소 등이 동영상과 사진자료들을 복사해 서울로 가져갔지만 그때의 느낌은 우리 땅에서 빚어진 전쟁이지만 그것은 미국의 전쟁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문서나 자료는 1차,2차 세계대전에 이어 한국전 순서로 당연히 ‘그들의 전쟁’인 양 정리되어 있었다.81년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한국전쟁의 기원들’을 출간, 수정주의 바람을 일으켰고 한국전쟁은 한·미 양국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한 교수의 권유로 워싱턴 국립문서고 메릴랜드 분소에서 한국전쟁 중 미군이 북한에서 가져온 ‘압수해온 북한문서’들을 만나게 됐다. 한글로 제목만 정리해 놓은 마이크로 필름과 씨름을 하다 전시 북한 외무성의 미국담당과 업무일지를 발견, 특종기사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일지를 샅샅이 뒤져보았다. 하지만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불과 며칠 전까지 직원들은 미국의 행정·금융조직 등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그 진척도를 업무실적으로 적어 놓고 있었다. 흥분만큼의 큰 실망감과 함께 “한글로 된 이 북한 문서들이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 병사들이 여기저기 북의 관공서에서 쓸어 담아온 잡지등 별 가치 없는 책자들이 많았지만 전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80년대 초 마침 30년 기한이 만료되어 공개된 미 국무부, 국방부의 비밀문서들은 역시 미국 주도의 상세한 한국전 상황을 담고 있다. 한국군은 미군에 예속된 소부대의 모습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 시각이 바람을 탈 소지를 주었다. 하지만 불과 10년후 90년대 들어 반대편인 러시아와 중국 측 비밀문서들이 공개되며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이 소련, 중국의 합의를 얻어 전쟁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시민전쟁, 혁명전쟁, 미국의 도발 유도 등 수정주의 시각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제 한국전쟁의 ‘평가’를 놓고 다시 대립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남북 어느 편에 서는 일이 되기 쉽다. 이념적 주장일 뿐 학문적 논쟁이 될 수 없다. 그보다 미국 러시아 중국과 남북한의 수집 가능한 전쟁 양측의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학문적으로 면밀히 재검토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아직도 찾아낼 진실들이 자료 곳곳에, 또 이면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갈등 대신 좌우를 떠나 한반도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학문적 연구로 한국전쟁을 한반도화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 언론인
  •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을 보면 동쪽 끝에 외따로 박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인지 한국 하면 조용히 숨어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서구중심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을 뿐, 한국은 이미 오래전 세계화된 국가였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서다. 이 문제를 짚기 위해 중앙아시아학회(회장 김호동 서울대 교수)는 4∼5일 이틀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단순히 ‘비단 상인들의 길’이 아니라 ‘문명의 흐름’으로서 실크로드를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서 고려대 정수일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확대를 제안했다. 실크로드가 처음 드러난 것은 중국~인도간 교역로로서다.19세기말 탐험가들이 발견했다. 그 뒤 발굴과 탐험이 잇따랐고 이 길은 중국 시안에서 시리아의 팔미라에 이르는 기다란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 길은 점처럼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를 잇는다 해서 흔히 ‘오아시스로’라고 불린다. 우리가 흔히 실크로드 하면 떠올리는, 모래바람부는 사막을 걸어가는 기다란 상인들의 행렬과 같은 이미지는 바로 이 오아시스로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 연구가 더 깊어지자 다시 북방초원지대를 통하는 ‘초원로’와 지중해에서 중국 동남해안에 이르는 ‘해로’ 개념도 등장했다. 이외에도 숱한 교역로가 확인되면서 이제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숱한 길들이 됐다. 정 초빙교수는 여기에다 아예 전세계를 뒤덮는 길로 실크로드를 재조명하자고 제안했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와 유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대륙까지 연결됐다는 것이다. 그는 16세기 ‘대범선 무역’을 그 증거로 삼았다. 필리핀을 기점으로 중남미의 백은과 중국의 비단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정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동쪽 끝을 중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조선과 고구려, 신라의 중국과의 교류를 보면 오아시스로와 잇대어 있다는 것이다. 해로 역시 유물로 증명된다. 백제왕릉에서는 동남아 특산 유리구슬이 나오고 중세 아랍문헌에서는 신라의 수출품목들이 나열되어 있을 정도다. 초원로는 아직 관련 연구가 부실해 명확한 증거만 없다뿐이지 활발하게 이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 교수는 이런 증거들을 모아 실크로드가 한국까지 이어졌고 이것이 ‘세계 속의 한국’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胡 중국 왕조 가운데 국제적 교류가 가장 많았던 당나라에는 유독 ‘호(胡)’자가 들어간 것들이 많다. 호복(胡服)·호식(胡食)·호악(胡樂)·호선무(胡旋舞)·호희(胡姬)….‘오랑캐’라는 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국이 북방 이민족을 부를 때 흔히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일본 오사카대학 모리야스 다카오 교수는 당나라 때는 이 ‘호’가 바로 중국 서쪽에 있던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였다고 주장한다. 소그드족은 중앙아시아 상인들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다카오 교수가 보기에 실크로드에 대한 당나라의 입장은 들쭉날쭉하지만 그래도 일관되게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로 ‘호’를 썼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바로 개국 초기 쇄국하고 있던 당나라가 시야를 넓혀 가고 있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이외에도 이주형 서울대 교수, 우지용 신간문물고고연구소 연구원, 밸러리 핸슨 예일대 교수 등이 실크로드와 불교미술·복식·역사를 다룬 주제들을 발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만추에 만나는 정통극 두편

    만추에 만나는 정통극 두편

    ‘아일랜드 희랍 비극을 볼까, 프랑스 낭만 희극을 볼까.’ 가벼운 소극장 연극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 정통극의 진수를 선사할 두 편의 대극장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아일랜드 여성작가 마리나 카의 ‘고양이늪’(1∼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19세기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락’(8∼27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중견 연출가 한태숙과 김철리가 각각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를 모으는 화제작들이다. ●현대판 ‘메디아’-고양이늪 고대 희랍비극 ‘메디아’를 연상케 하는 ‘고양이늪’은 극중 여주인공 헤스터의 광기와 에너지에 압도당하는 연극이다.‘당신 안의 어둠을 난 볼 수 있어.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 나도 그렇기 때문이지’ ‘나처럼 되게 하진 않을 거야, 평생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진 않아.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으니까.’ 등의 대사는 오싹한 한기와 격렬한 열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아일랜드 한 농가의 습지.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헤스터는 열살 연하인 카사지를 만나 딸 조시를 낳고 마을에 정착한다. 그러나 카사지는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다며 그녀에게 떠나줄 것을 요구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이어 또다시 버림받게 된 헤스터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불탄다. 여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헤스터역은 극단 미추의 간판배우 서이숙이 낚아챘다. ‘허삼관매혈기’로 지난해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그는 기존의 중성적인 이미지를 벗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의 광기를 밀도있게 표출해낸다. 몸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많아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든 그는 “좋은 작품, 좋은 연출가와 작업하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며 웃었다. 카리스마와 섬세함을 겸비한 여성연출가 한태숙이 보여줄 무대미학도 관심거리.“난생 처음 혼을 빼놓는 희곡을 만났다.”는 그가 ‘레이디 맥베스’ ‘서안화차’ ‘꼽추, 리처드3세’ 등에서 선보인 파격성과 실험성을 이번 작품에선 어떻게 형상화할 지 기대를 모은다.(02)744-7304. ●시인검객의 사랑-시라노 드 베르주락 프랑스 낭만주의문학을 대표하는 ‘시라노 드 베르주락’이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시리즈’의 여섯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다.‘토월정통연극시리즈’는 세계 연극사에 빛나는 고전을 재조명하기위해 마련된 무대로,2003년 ‘보이체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갈매기’‘리처드3세’‘아가멤논’등 작품의 명성에 비해 관객들이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명작들을 잇따라 선보여왔다. 17세기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락’은 추한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앞에 나서지 못하고 다른 남자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시인검객의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다. 1897년 파리의 포르트 생 마탱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프랑스 연극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고,20세기 들어서는 호세 페레, 제라르 드 파르디유를 주인공으로 여러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1971년 극단 실험극장이 초연했고, 이후 1992년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공연된 정도다. 당시 이 작품으로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연출가 김철리가 13년 만에 다시 연출을 맡은 점이 이채롭다. 그는 “코미디에 기울었던 이전 공연에 비해 사회적인 메시지에 좀더 무게를 두겠다.”고 밝혔다. 오디션에서 선발한 배우 최규하 이안나 오동식 등이 출연한다.(02)580-1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안동일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1979년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등 주요 인물 변호를 맏았던 지은이가 재판기록과 당사자들 및 주변 인물들을 직접 만나 확인해 서술한 기록물.1만 5000원.●불황에서 나라를 건진 경제학자들의 투쟁(와키타베 마사즈미 지음, 홍성민 옮김, 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 스미스, 리카도, 흄, 빅셀 등 역사에서 경제학자들이 불황이나 경제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밝힘으로써 오늘의 경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향을 제시한다.1만원.●건축, 우리의 자화상(임석재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우리 사회와 문화의 총체적 거울이자 자화상으로서 건축의 사회적 맥락과 의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우리 건축이 생활환경 만들기가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라고 비판한다.1만 2000원.●허기진 두뇌를 위한 지식의 통조림(멘탈플로스 편집부 엮음, 강미경 옮김, 세종서적 펴냄) 섹시한 곤충, 점균류와 상사의 공통점, 임자를 못만난 노벨상 등 현대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흥미로운 온갖 정보와 지식을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냈다.1만 4500원.●탄소주권 에너지전쟁(톰 아타나시오 등 지음, 김현구 옮김, 모색 펴냄) 온난화의 진보적 해법으로 ‘1인당 할당제’와 공유재로서의 접근법을 제안한다. 또 원자력에너지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시민 주체의 녹색 에너지 개발을 제안한다.1만 2800원.●최후의 만찬은 누가 그렸을까?(로잘린드 마일스 지음, 신성림 옮김, 동녘 펴냄) 최초의 여성이 등장한 때부터 현대까지 세계의 여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여성의 시각으로 쓴 여성의 역사. 인류역사의 중심에 여성도 있었다는 점을 집요하게 강조한다.1만 8000원.●스푸크(메리 로치 지음, 권 루시안 옮김, 파라북스 펴냄) 영혼 존재의 증거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영혼을 측정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연구, 전 세계의 사후문화 취재 등을 바탕으로 영혼의 존재를 고찰한 책.1만 4500원.●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윤신향 지음, 한길사 펴냄) 윤이상 서거 10주기를 맞이해 윤이상과 음악을 재조명한 책. 저자의 독일 쾰른대학 박사 논문 ‘두 개의 세계 사이, 윤이상의 음악적 사고에 대한 고찰’을 텍스트로 했다.2만원.●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히다카 도시다카 지음, 배우철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동물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본 책.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자연관과는 완전히 다른 동물의 세계로 안내한다.1만 1000원.●자연이 우리에게 준 1001가지 선물(잭 캔필드 등 엮음, 신혜경 옮김, 도솔 펴냄) 대자연이 주는 감동과 함께 자연과 사람, 사람과 동물, 자연 속에서 만난 사람과 가족, 친구, 추억 등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자연 이야기를 담았다.9500원.
  • 내 어릴적 교과서 ‘선데이 서울’

    “잡지 ‘선데이 서울’도 국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KBS 1TV가 가을 개편을 맞아 신설한 대중문화 다큐멘터리 ‘문화지대-오래된 TV’(제작 타임프로덕션)에서 전하는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이다. ‘김신조 사건’이 일어났던 해인 1968년 9월, 한 은행 여직원을 표지모델로 해 창간했던 ‘선데이 서울’. 큼지막한 여자 연예인 수영복 사진을 싣고, 연예인의 가십성 동정에서부터 당시에는 터부시되던 은밀한 성 이야기까지 시대의 시시콜콜한 풍속도를 담아 여행을 갈 때 챙기는 필수품이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 후 1991년 폐간될 때까지 23년 동안 인기를 누리며 장수했으나, 일부에서는 이를 도색잡지 정도로 여기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 문화재라니? 60∼80년대 암울했던 시절에 서민들에게 위안을 줬고, 거대 담론이 아니라 미시적인 삶을 그대로 그려냈던 ‘선데이 서울’이 한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재로서 의미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최근들어 같은 이름의 영화나 연극이 만들어질 만큼 그 때 그 시절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한편으로는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이 ‘선데이 서울’이 부활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이렇듯 첫 회 소재를 ‘선데이 서울’로 삼은 ‘오래된 TV’는 문화 엄숙주의에 반기를 들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대중문화의 시대적 존재 가치를 재발견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31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11시40분에 방송된다. 아시아, 문화 관련 프로그램 강화를 가을 개편 목표로 내세운 KBS의 신설 프로그램 8개 가운데 가장 눈에 띈다. 상류층이나 예술가 중심의 고급스럽고 난해한 문화가 아닌, 한 시기를 풍미했던 대중적 아이템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아요∼!’하고 괴성을 쏟아내던 이소룡일 수도 있고, 조용필과 단발머리일 수도 있다. 또 명동의 음악다방이거나 갤러그 오락일 수도 있다.20분 정도의 시간에 한 가지 아이템을 집중적으로 이리저리 뜯어본다. ‘그 때를 아십니까’나 ‘영상실록’ 등 과거를 돌이키는 기존 다큐와는 화법에 차이가 있다. 단순히 기록 영상을 이어붙이거나 거기에 내레이션만을 입히지 않는다. 그 시절 그 아이콘을 향유했던 현재의 인물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것들이 개개의 역사 속에서 문화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첫 방영에는 소설가 이순원, 딴지일보 대표 김어준씨 등이 나와 ‘선데이 서울’이 세상을 배워나가는 도구였다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제작을 맡은 정태일 PD는 “지금은 사라진 문화들을 현재 시점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당시에는 간과되었거나 몰랐던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야기꾼들이 뒤집어 본 신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종교 연구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절대적으로 유일하고 정설인 신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신화란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유효하기 때문에 진실인 것이며, 시대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유효하게 변경되는 것이 신화의 존재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유효한 신화는 어떤 모습일까. 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참여해 역대 신화들을 재조명하는 세계적인 출판 프로젝트로 주목받아온 ‘세계신화총서’가 6년 간의 준비끝에 1차분 3권을 내놓았다.20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의 기자회견에 맞춰 전 세계 31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세계신화총서’(문학동네)는 1999년 스코틀랜드 케넌게이트출판사의 수석편집자이자 발행인인 제이미 빙이 기획한 것으로 2038년까지 모두 100권을 만드는 거대 프로젝트다. 출판사는 작가들을 섭외하고, 원고량(한국판 기준 200쪽 내외)을 정해줄 뿐 다루는 신화의 내용이나 형식은 전적으로 작가의 판단에 맡긴다. 그리스, 이슬람, 힌두, 남미 신화 등을 총망라하며, 픽션 혹은 논픽션으로 다뤄진다. 지금까지 확정된 필진은 카렌 암스트롱(영국),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재닛 윈터슨(영국)빅토르 펠레빈(러시아), 데이비드 그로스만(이스라엘), 치누아 아체베(나이지리아), 도나 타트(미국), 밀튼 하툼(브라질), 이언 매큐언(영국), 키리노 나츠오(일본), 수 통(중국)등이다. 이밖에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오르한 파묵(터키)과 이사벨 아옌데(칠레), 주제 사라마구(포르투갈), 토미 모리슨(미국)등의 작가와는 현재 계약이 진행중이다. 이번에 출간된 3권은 기존 신화서들과 차별되는 이 시리즈의 방향성과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제1권으로 나온 카렌 암스트롱의 ‘신화의 역사’(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는 1만 2000년 인류 역사를 아우르는 신화 개론서이면서 동시에 이 시리즈의 의미를 설명하는 입문서 노릇을 톡톡히 한다.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 대안으로 신화의 복귀를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페넬로피아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김진준 옮김)는 서양 문학 최고의 고전 오디세이아를 통쾌하게 뒤집은 소설이다.‘눈 먼 암살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페니미즘 문학의 대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디세우스의 헌신적이고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의 시각에서 역마살과 여성편력, 영웅 콤플렉스 등 오디세우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다룬다. 열 두명의 시녀들이 등장해 동요, 연극,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한 재판 장면 등을 보여주며 오디세우스의 비밀을 폭로하는 대목은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무게,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는 ‘21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로 칭송받는 재닛 윈터슨의 소설이다. 올림포스 신들에 저항한 벌로 지구를 떠받치게 된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등 고대 그리스의 두 영웅을 불러낸다. 번역을 맡은 소설가 송경아는 옮긴이의 말에서 “(아틀라스는)소외된 자, 침묵하는 자, 누구도 짊어질 수 없는 무게를 견디면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자”라면서 “재닛 윈터슨은 작가의 권능과 세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아틀라스에게 동반자와 자유를 준다.”고 썼다. 각 권 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해상왕 ‘장보고’ 생생한 발자취

    통일신라시대 동북아 해상권을 장악한 청해진 대사 장보고 장군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 국내 최초로 마련됐다. 특히 장보고가 당시 일본·중국 등과 무역하면서 교류한 해외 교역품들도 함께 전시돼 역사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과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는 해상왕 장보고와 관련된 국내외 유물 20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신라인 장보고-바닷길에 펼친 교류와 평화’특별전을 18일 전남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막,12월18일까지 계속한다. 그동안 장보고에 대한 유물들이 일부 전시회에 등장한 적은 있지만, 장보고를 주제로 한꺼번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최근 관심이 더욱 높아진 장보고의 실체를 고고학적인 자료와 문헌기록, 해양교류사 연구업적 등을 통해 유형화(有形化)하는 첫 시도로 풀이된다. 특별전에는 문관복을 착용한 장보고 인물도(圖)및 복원된 갑옷, 투구, 칼, 활 등과 함께 전남 완도 청해진유적에서 출토된 방어용 목책(木柵)과 청동병, 제주 법화사지·흑산도·경주·부여·익산 등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대중국 교역관련 유물들이 전시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장보고 시대에 일본 교역의 중심지였던 후쿠오카 대재부·홍려관 유적 출토 교역품인 신라도기호(陶器壺)와 중국·이슬람 도자기 등 29점이 한국을 처음으로 찾는다는 것. 당시 한·중·일 및 이슬람 등의 무역 형태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이 이슬람과도 직·간접적으로 교류했다는 증거가 되는 교역품들을 볼 수 있다. 또 이창억 울산과학대 교수가 국내 처음으로 고증을 거쳐 설계한 ‘장보고 무역선’이 실제 크기의 10분의 1 규모인 3m로 제작돼 전시된다. 해양유물전시관 김성범 관장은 “일본 규슈역사자료관, 후쿠오카시교육위원회 등과 접촉해 처음으로 장보고 관련 일본 소장 유물을 대여, 전시하게 됐다.”면서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했던 장보고의 개방과 교류, 용기와 진취적인 정신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061)270-2000.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CEO칼럼] 장수 기업의 비결/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칼럼] 장수 기업의 비결/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상예술의 귀재다. 그가 만든 ‘쥬라기 공원’은 우선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뜨겁게 호응을 받았다. 그는 호박화석에 갇혀 버린 모기가 빨아먹은 공룡피의 DNA를 복원한 공룡자연공원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과학적 신비성 여부야 모르겠지만 공룡과 모기의 비유는 탁월하고 기발한 발상이다. 거대 공룡은 몇 백만 년 전에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이다. 그러나 모기는 지금도 맹위를 떨치며 존재한다. 공룡은 거대했고 강했지만 소멸해 버렸다. 미물에 지나지 않는 모기가 수백만 년 종족을 보존하고 지금까지 생존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기업 생존의 비결 역시 거대함과 강함에 있지 않다. 특히 최근 소니와 GM 같은 글로벌 기업이 흔들리는 모습은 이와 같은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기업성장 50년의 재조명’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한국경제가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1955년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중 글로벌 경쟁에 처한 현재까지 100위권 안에 남아 있는 기업은 7개사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1955년 100대 기업 중 CJ,LG, 현대해상, 한진중공업, 한화, 한국전력 등만이 2004년 100위권 안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또 1955년 1위였던 삼양사와 1965년 1위였던 동명목재는 이미 100대 기업에서 빠졌고 1975년 1위였던 대한항공은 24위로 밀렸으며 1985년 1위였던 삼성물산은 18위로 떨어졌다.1975년만해도 27위였던 삼성전자가 1위에 올랐다. 재벌들의 경우도 1964년 10대 그룹 중 삼성과 LG만이 10대 그룹에 남았다. 그만큼 시장은 냉혹하다. 그러나 한 세기를 넘겨 가면서도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기업들도 있다. 아리에 드 지우스 교수는 100년 이상의 기업들을 연구하며 장수 기업의 네가지의 공통된 특징을 추출하였다. 400년후 일본의 스미토모,196년된 미국의 듀퐁 등 현존하는 세계 27개 장수기업의 경영사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첫째는 이유없이 위험한 곳에 자본을 투자하지 않는 ‘보수적 자본 조달의 원칙’과 둘째, 시대환경과 변화에 놀랍게 적응하는 과감한 자기변신의 노력 즉 ‘세상에 대한 민감성’을 들었다. 셋째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관용’이며, 마지막으로 종업원 스스로 조직 전체의 부분이라 여기고 경영자는 회사를 임기동안 지키는 청지기로 여기는 ‘회사와의 일체성 의식’이었다. 장수 기업에 대한 또 하나의 고전적인 연구는 알프레드 챈들러의 ‘전략과 구조’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기업의 흥망성쇠는 환경 적응에 있음을 찾아냈다. 기업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 개념으로 효과성과 효율성을 들었다. 효과성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뜻하며, 효율성은 안정과 통제라는 내부 관리적 일관성을 의미한다. 장수기업 특징은 이러한 상호 모순되는 개념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균형 감각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이 망하는 지름길은 반대로 자만감이라 했다. 성공에 대한 자만감은 교만을 낳고 교만은 철저하게 견지해야 할 균형 감각을 무너뜨려 실패를 맞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100년 전통을 자랑하고 맥주에서 중공업으로 주력 업종 변신에 성공한 두산그룹의 오너 형제들이 다투면서 검찰에 오가는 모습 때문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종업원들의 ‘회사와의 일체성 의식’에 금이 가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장수기업이 귀한 한국에서 오너 일가들의 싸움 때문에 기업이 큰 상처를 입지나 않나 염려스럽다. 살아 남기 위해 리더십이 변해야 한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 쌈지길서 우리가곡에 취해봐

    인사동의 복합문화공간인 쌈지길에서 가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음악회가 열린다. 14일 소프라노 손순남씨는 ‘가을뜨락에서’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음악회에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우리 가곡을 선보인다.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독일의 리트나 이탈리아 가곡을 위주로 무대를 꾸미는 것과 달리 손씨는 순 우리 가곡으로만 이번 무대를 마련했다. 손씨는 “청중들에게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게 하고 싶어 이번 독창회를 준비했다.”면서 “외국 가곡만을 우선시하는 음악가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가곡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될 이번 공연은 인사동에 새로운 공연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피츠버그 듀케인음대 출신인 그녀는 현재 ‘솔리스트 월드’단장으로 있으며,8년째 서초구청에서 ‘손순남의 가곡교실’을 운영중이다.(02)736-0088.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책꽂이]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안성호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2000년 ‘실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저자의 첫 소설집. 아내와 불륜 남자를 동시에 살해한 남편이 주인공인 표제작을 비롯해, 나비를 먹는 여자의 이야기(‘나비’)등 몽유병자의 백일몽 같은 환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가득한 단편 8편이 실렸다.8500원.●통역사(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한국어 통역사로 일하는 재미교포 수지 박이 부모님 살해에 관련된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눈부신 아메리칸 드림 이면의 끔찍한 이민 생활상을 생생하게 드러낸 장편소설. 한국계 작가 수키 김의 데뷔작으로 출간과 동시에 미국 최대 서점 반즈앤노블의 ‘올해 주목할 작가 10명’에 선정됐다.1만 2000원.●휘트먼의 천국(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홍엽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퓰리처상 수상작 ‘세월’의 작가 마이클 커닝햄의 신작. 내성적인 소년 루크, 세상에 찌든 미혼모 캐서린, 잘 생긴 청년 사이먼 등 세 명의 인물이 뉴욕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교묘하게 얽히는 독창적인 서사구조를 선보인다.1만 2000원.●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이명원 지음, 새움 펴냄)한국문학에서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자연스레 묻혀진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한 문학평론서. 김수영의 시 ‘풀’의 이미지를 ‘여성의 성욕’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고, 문단 권력다툼의 아귀에서 잊혀져간 평론가 최일수를 불러내는 등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길어올린 21편의 글을 실었다.1만 7000원.●고욤꽃 떨어지는 소리(유재영 지음, 시학 펴냄)시인이며 북디자이너인 저자가 ‘한 방울의 피’‘지상의 중심이 되어’에 이어 등단 32년만에 내놓은 세번째 시집.‘잠을 이룰 수 없는/밤이었다/고향집에 와서/오십살이 넘어서야/비로소 듣는//고욤꽃 떨어지는 소리,’(‘득음’전문)등 40여편 수록.7000원.
  • [새영화] 한길수 23일 개봉

    23일 개봉하는 영화 ‘한길수’(제작 트라이엄프 픽쳐스)는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다.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는 감독의 집요한 노력만큼 영화적인 모양새가 따라 주지 못했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한길수라는 인물의 재조명.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에 거점을 둔 한인 독립 단체 KSPL 요원이자 미 해군정보부 요원으로 일하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쓴 한국인이다. 하와이 일본 영사관에 이중 스파이로 잠입한 뒤 미국의 참전을 유도한 진주만 공습을 예견해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진주만 공습 자체를 촉발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조국 독립을 위한 남다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의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비운의 인물이다. 이 한길수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이인수 감독의 뚜렷한 목적 의식에서 시작됐다. 그는 지난 2002년 자신이 연출한 KBS 다큐멘터리 ‘수요기획-최초 공개 한길수 X 파일’을 통해 한길수라는 인물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했다. 이후 이 감독은 한길수의 드라마틱한 삶에 매료됐고, 그의 활약상을 영화화해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 사재까지 털어 제작비에 보탤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12세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우리땅을 살리자] ‘쉬리’ 북한강서도 쫓겨났다

    [우리땅을 살리자] ‘쉬리’ 북한강서도 쫓겨났다

    ‘우리땅을 살리자.’ 서울신문은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난개발의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우리 땅을 재조명하는 ‘우리땅을 살리자.’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환경 보전과의 갈등이 불거진 지 오래됐지만 죽어가는 우리의 땅과 물·갯벌 등 자연을 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게다가 지방화 시대의 바람을 타고 지방자치단체들의 개발 공약이 전국적으로 남발되고 있어 환경 보전 및 국토의 효율적인 개발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 땅의 개발 현주소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는 현장탐구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싣는다. 북한강 상류가 큰 도전에 직면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자연하천으로 일컬어지는 이곳 생태계마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토종 물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배스(큰입우럭·환경부지정 위해외래어종)가 침입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가 하면, 어름치(천연기념물 259호)와 쉬리 등 일부 고유종은 올들어 이 일대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조사됐다.1986년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축조공사가 시작된 지 20년. 천혜의 자연하천에 짙고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평화의 댐 증축사업 사후환경영향조사’ 보고서와 주변 어민들에 따르면 평화의 댐 북쪽 5㎞ 정도 지점의 북한강 본류(안동포교)에까지 배스가 북상해 서식 중인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민간인통제선∼남방한계선에 이르는 북한강 상류 10㎞ 구간은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청정 하천으로, 배스의 출현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2003년부터 평화의 댐 사후환경영향조사를 수행한 서강정보대 심재환 교수는 22일 “지난 5월 평화의 댐 아래쪽 비수구미 마을 근처 하천에서 발견된 배스가 이달초엔 더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안동포교 근처에서도 서식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파로호에 살던 배스가 평화의 댐 도수터널을 타고 점차 북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북한강 상류의 어종 현황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배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쏘가리를 비롯, 우리나라 고유종인 어름치와 쉬리·배가사리 등 계류성 어종들이 올들어 안동포교 근처에서 3차례 조사를 실시했지만 단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2003년과 지난해 조사에서는 각각 수마리∼수십마리씩 채집됐었다. 평화의 댐 공사가 북한강 상류에까지 직·간접적 영향을 끼쳐 생태계 교란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년 전 물을 빼냈던 파로호가 점차 정상 수위를 유지하고, 평화의 댐 증축공사가 완료되면서 북한강 상류에까지 물이 차올라 하천이 흐르지 않고 정체돼 계류성 어종들이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강원대 환경연구소 최재석 연구원은 다음달 육수학회지에 발표할 ‘평화의 댐 어류군집 분석’ 논문을 통해 “과거 청정지역이었던 북한강 상류가 평화의 댐 건설로 인해 수체(水體)의 물리적 성격이 변하면서 생태계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천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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