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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한권의 책] ‘갈등과 반목’ 칼의 문화를 버려라

    북한의 핵실험, 정치권의 행태, 부동산의 투기 열풍, 대학입시 전쟁, 지하철 출근전쟁까지…. 우리는 매일매일 전쟁 속에서 산다. 지구촌은 어떠한가? FTA, 탄소시장,ODA 등의 세계 관계 속에서 각기 설 자리를 쟁탈하기 위한 세계인들의 삶은 국가의 경계도 없이 발가벗겨져 가고 있다. 힘센 자의 성공 논리로 점철되어온 지배 중심의 사회체제를 비판하고 평화의 대안으로 성배의 문화를 강조한 ‘성배와 칼’. 이 책의 저자인 리안 아이슬러는 인류학, 여성학, 사회학을 두루 아우르며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만들어온 지배문화를 ‘칼의 문화’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인간이 끊임없이 분쟁을 일삼는 것도 ‘칼’의 역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마치 펜은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실감나게 할 만큼 인류학자 시각에서 지난 역사를 속속들이 분석하여 파헤치고 있다. 반면 대립보다는 협력과 공존을 중요시하는 공동협력 사회체제를 성배의 문화라고 칭한다. 아이슬러는 성배로 상징되는 ‘여신’을 중시한다. 여성의 출산과 자손번창, 심지어 죽음까지 성스럽게 덧입힌다. 남녀가 평등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도 없었고 의사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던 신석기시대를 성배문화의 기원으로 잡는다. 또 크레타문명을 재조명하며 “크레타는 역사 기록상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대등한 동반자로서 조화를 이루어 즐겁게 지낸 마지막 세상 같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유목민족의 침략으로 신석기시대는 무너지고, 청동기와 철의 무기를 만들어내면서 인류의 전쟁이 지구상에 등장한다. 텐트만 접으면 삶의 터가 바뀌므로 힘이 약한 여자들을 쉽게 납치, 약탈하여 노예화할 수 있던 유목민사회에서 ‘여신문화’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야금술과 남성우월성이 자리잡혔다. 저자는 로마제국 시절 저술된 성경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약자인 여성을 귀하게 섬겼던 예수님의 모습은 가려지고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결국 인류가 평화를 지향하기 위하여 칼의 문화가 짓밟아버린 성배의 문화를 되찾는 새로운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고 아이슬러는 강조한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피라미드식의 위계질서보다는 연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공동협력사회를 이룰 때 인류의 평화가 도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다. 그런 사회를 지향해갈 때 우리 사회는 21세기 지구촌의 화두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을 덮으며 잠시 한국사회 속에 녹아 있는 칼의 문화를 되새기게 된다. 특히 조선시대 이래 600년간 이 땅에 뿌리박아온 부계사회에서 휘두른 칼의 위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슬픈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당시 이화고녀를 졸업한 씩씩하셨던 어머니, 온화하고 항상 인내하시던 모습의 외할머니, 그 윗대 할머니들은 또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그 모습은 모르지만 분명히 가부장적인 가치로 움직이던 사회에서 당신들의 주장은 접은 채 아이들 젖을 먹이고, 밥하고, 시부모님, 남편의 옷을 밤새워 지었으리라!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하였다고 하나 곳곳이 아직도 칼의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하여 인류역사에 숨어 있는 성배적인 속성이 현대사회에 승화된 모습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정의감마저 치솟는다. 그래야만 남·녀를 불문하고 현대인 모두의 삶이 편안해 지리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졌다. 심리학자 샌드라 뱀의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속성이 아닌, 적응력을 강조하는 ‘양성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바로 이 저자의 ‘성배문화’와 접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나눔과 섬김의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박은경 대한YWCA연합회장·인류학 박사
  • 본지 ‘옛길’연재 큰 반향… 각계 “보존나서야” 목소리

    본지 ‘옛길’연재 큰 반향… 각계 “보존나서야” 목소리

    ‘말을 타거나 봇짐을 메고 길손들이 걸어가던 옛길….’ ‘수많은 민초들이 스쳐 지나면서 애환을 함께 했던 이 길은 우리의 삶이자 역사였다….’‘부산에서 서울까지 사라진 옛길을 따라 잊혀진 삶을 되짚어 본다.’서울신문이 지난 4월24일 ‘다시 걷는 옛길’ 영남대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했던 약속이다. 23일 서울길까지 6개월 동안 13차례에 걸친 옛길의 연재가 끝났다. 한정된 지면에 처음 약속했던 것을 모두 담는 것은 당초 무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잊혀졌거나 잊혀져 가는 길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본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연재가 거듭되면서 문화재계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관심도 집중됐다. 문화재청도 급기야 옛길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적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독자 및 주민 성원 봇물 취재과정에서 옛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옛길은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철도, 고속도로, 국도로 변해 있다. 또 늘 이용하는 동네길이나 고향집 진입로도 옛길이었다. 그러나 옛길 대부분이 개발 등으로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 파괴돼 가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큰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아직도 옛길을 기억하고 안내해 줄 수 있는 촌로와 향토사학자들의 건재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도 나이가 많아 그리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루 빨리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옛길변에 표석이라도 세워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도 더 이상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연재과정에 독자들이 옛길에 보여준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메일과 전화로 격려해 주었고, 동행을 요청해 왔다. 이런 분위기를 실감케 하듯 취재과정에서 옛길에 관심을 갖고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을 확인했다. 옛길도 백두대간처럼 종주 붐이 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지자체·정부 복원 나서야 자치단체들도 옛길에 관심을 갖고 유지복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개인 하늘재(鷄立嶺)와 관갑천(串甲遷)이 있는 경북 문경시는 지난 1997년 유곡역사 지표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올해 지적도를 활용한 도면상 옛길 복원을 완료했다. 옛길을 본격 복원하기 위한 준비작업 차원에서 진행됐다. 내년엔 전국 처음으로 도립공원 문경새재에 길 전문박물관인 ‘문경 옛길박물관’을 세우기로 했다. 시는 이를 통해 문경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사)우리땅 걷기모임 신정일 공동대표는 “서울신문의 옛길 연재는 정부의 무관심과 개발 붐으로 사라져가는 ‘옛길’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돼야 한다.”면서 “모두가 옛길 보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희망제작소 박원순(변호사) 상임이사는 “미국과 일본 등 각국들은 조상의 얼이 깃든 옛길을 잘 복원·보존해 소중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정부도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최영준(지리학과) 교수는 “옛길은 보물이나 기념물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그동안 각종 개발로 많이 사라졌지만, 옛길의 흔적이 잘 보존된 곳이나 잔도(棧道) 등을 시급히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한찬규·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명승’ 문화재로 보존한다

    ‘명승’ 문화재로 보존한다

    서울신문이 지난 4월24일자부터 10월23일자까지 인기리에 연재한 ‘다시 걷는 옛길’ 영남대로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선정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사적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높은 전국 각지의 ‘옛길’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 관리키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대동지지정리고 및 세종실록지리지, 증보문헌비고 등 옛 지도상에 나타난 옛길 가운데 보존상태가 양호하거나 전설·유래를 간직한 구간에 대한 자료를 추천 의뢰했다.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지자체를 통해 추천된 옛길을 데이터화한 뒤 내년 상반기 지적 및 천연기념물 관련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 자료분석과 함께 실증·고증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또 해당지자체와 문헌·현지조사를 실시하고, 대학교수 등 옛길 관련 전문가와 동호회, 향토사학가, 시민을 대상으로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바탕으로 내년 10월쯤 지정 대상을 선정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연말쯤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옛길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복원과 보수·정비 등에 국비 지원이 가능해져 체계적으로 유지·관리될 전망이다. 또한 옛길이 새로운 관광자원인 명승지로 개발돼 관광활성화에 따른 지역홍보 및 세수증대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위수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과장은 “옛길은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얼과 문화, 유무형의 유적들이 산재된 민족문화유산”이라며 “때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신문의 옛길 재조명을 계기로 이를 국가문화재로 지정, 보전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이 한권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버림받은 동족으로부터 또 버림받은 사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버림받은 국외자(pariah)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평범한 악의 드라마를 보여주려는 용기 때문에 아렌트가 지불해야만 했던 대가이다. 오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아렌트는 이 책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인간도살장으로 내모는 아이히만의 정치적 악행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결말부터 시작된다. ‘정의의 집’이라는 법정 정리의 외침과 더불어 드라마는 시작된다. 아이히만은 법정의 유리보호대 속에 보이지만, 벤구리온은 막후 진행자로 법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제1장). 이어 평범한 시민이며 친유대적이었던 아이히만이 생존과 성공 욕구 때문에 나치당에 가입해 유대인 문제 전문가, 인간 도살자로 부상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2∼3장). 유대인들을 인간도살장으로 내모는 조직적인 과정(추방, 수용, 학살)에서 ‘인간됨’을 포기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은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4∼6장). 드라마의 주역은 반제(Wannsee)에 위치한 한 가정의 저녁모임을 계기로 본디오 빌라도라도 된 듯이 양심을 버린 채 ‘국가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인간 도살자로 변신한다(7∼8장). 이후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의 소거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9∼13장). 종결부에 이르러 아이히만은 “모두 만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사형당한다(15장). 아렌트는 바로 이 장면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종결한다(15장과 후기). 이 책에 드러난 주옥같은 정치적 지혜들을 짧은 지면에 담기에는 부족하다. 이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그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다.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삶은 정치적 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유대인들은 아렌트가 악마인 아이히만을 용서하고 동족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아렌트는 유대인위원회와 유대인 경찰의 나치 동조를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혀 소모적인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악의 평범성을 둘러싼 논쟁은 이후 수없이 제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아렌트는 양심 문제, 조직화된 범죄와 책임 문제, 인간성 문제, 정치적 의무, 정치행위와 말의 관계 등 다양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삶의 근본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 이 책은 치열한 학문적 논쟁의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정치평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평범한 것 같지만 심오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저자의 의도를 생생하게 살려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책이다. 아렌트 연구의 권위자인 숭실대 김선욱 교수의 진지한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일반정부를 총독관구로, 죽음의 수용소를 인간도살장으로 표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언어감각에 맞게 생소한 용어와 문장을 옮기려고 고심했으며 정화열(미국 모라비언대) 교수의 해제를 포함시킬 정도로 독자들을 배려한 역서이다. 홍원표 한국외대 정치철학 교수
  • [北 핵실험 파장] 핵실험 성공여부 2주후 판명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북한은 4㏏(4000t)의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중국에 통보했으나 실제 폭발은 이보다 훨씬 약했으며 핵실험이 부분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0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북한측이 4㏏의 폭발을 기대하고 있다는 얘기를 아시아 채널을 통해 들었다.”고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은 “미 정보당국이 지진 규모 1㏏ 이하의 폭발을 탐지했으며 현 시점에서 북한이 사실상 핵실험을 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큰 폭발을 감지했으나 주변 당사국들은 그 폭발이 실제 핵실험이었는지와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일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실패 가능성을 점치는 세계 정보·국방 분석가들이 적지 않은 것은 과거 북한의 ‘뻥튀기’선전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진짜 핵실험에 성공했는지, 북한측 주장대로 실험과정에서 방사능 유출 등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선 더 관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과거 실패 사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도 미지수다. 청와대는 10일 북한 핵실험 관련 성명이나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실험 발표에 따르면’이라는 식으로 유보적 표현을 쓰고 있다. 송민순 안보정책 실장도 “종합적 판단이 내려지려면 2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7월5일 북한이 발사한 7기의 각급 미사일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대포동 2호를 발사했고, 이튿날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사일 자주권을 언급하면서 “성공적인 미사일 발사였다.”고 강조했지만, 한·미·일 당국은 실패로 결론지었다. WP는 “폭발물 가운데 일부만 폭발했을 수도 있으며 이 경우 북한은 잘못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dawn@seoul.co.kr
  • [장하성펀드 허와실] (중) ‘증시규정’ 재조명 계기로

    [장하성펀드 허와실] (중) ‘증시규정’ 재조명 계기로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장하성펀드)가 새로운 ‘펀드 주주’를 선보이고 있다.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지분 관련 규정들을 수면 위로 나오게 하고, 관련 규정들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장하성펀드가 주식시장에 새로운 주주 형태를 선보이고 있다.”면서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오랜만에 관련 규정을 꼼꼼히 챙겨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평가했다. ●주식 5%,3%의 힘! 상장기업의 주식 5%를 보유하면 대주주 대접을 받는다. 주식 보유자는 증권거래법 200조에 따라 보유하게 된 날부터 5일 이내에 보유 목적과 보유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주식 5%라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행동을 시장이 알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장하성펀드는 대한화섬 지분 5.15%를 사들였다고 지난 8월23일 공시했다. 매입한 주식이 5%를 밑도는 태광산업에 대해서도 공시의무는 없으나 사들였다고 밝혔다. 왜 5%가 대주주 대접을 받을까. 상법에 따르면 3%만 가져도 회계장부 열람을 요청하고 이사 해임과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3%를 보유해도 지분 보유를 공시하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규정을 따른 것이다. 물론 주주총회를 소집해도 표 대결을 하면 경영진이 당연히 이긴다. 그러나 경영진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곳이 있다. 증권거래법 191조는 감사가 대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대주주의 권리행사를 일정부분 제한하고 있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의결권 있는 주식 3%를 초과하면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태광그룹이 대한화섬의 지분을 71.88%(9월 말 현재) 갖고 있지만 감사 선임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3%뿐이다. 장하성펀드도 5.15%를 보유하고 있지만 역시 3%만 행사할 수 있다. 내년 초면 대한화섬의 감사 두 명과 태광산업의 감사 한 명의 임기가 끝난다. 내년 대한화섬의 감사 선임은 22.97%에 이르는 일반 주주가 어떻게 움직이냐에 달려 있다. 태광산업도 이호진 회장을 포함한 최대주주 지분이 71.72%지만 감사 선임에 있어서는 3%만 행사할 수 있다. ●주주의 모든 것을 담은 주주명부 이 점에서 주주명부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주주명부에는 주주의 이름과 주식수 외에도 주소 등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하려면 더 많은 주주의 위임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주의 주소를 알아야 한다. 상법 396조에 따르면 회사측은 본점에 주주명부를 비치해야 하고, 주주와 채권자는 언제든지 주주명부의 열람 및 등사(복사)를 청구할 수 있다. 장하성펀드는 이 조항에 따라 대한화섬에 주주명부 열람을 신청했으나 대한화섬측이 이를 거절해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 제기한 상태다. 기업이 주주명부 공개를 거부해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물면 된다는 점에서 일부 기업들이 주주명부를 공개하지 않기도 한다.‘공개청구 목적이 정당하지 않다면 주주명부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기 때문이다. 장하성펀드는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하면서 ‘상장폐지 위험’을 거론했다. 최대주주 등의 보유주식수가 80% 이상일 경우 최대주주는 증권거래소에 상장폐지를 요청할 수 있다. 장하성펀드가 지분매입 공시를 한 뒤 태광그룹이 대한화섬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는 점이 그 이유다. 농협CA투신운용 김은수 마케팅총괄본부장은 “장하성펀드가 소액주주들이 많이 몰랐거나 무관심했던 부분들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등 선도 역할을 했다.”면서 “장하성펀드는 환경, 사회적인 책임,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3가지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투자(SRI)펀드의 한 지류”라고 평가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조선시대 ‘태교 지침서’ 엿보다

    고서(古書)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다양한 문화·생활양식이 가득 담긴 고서를 들여다보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다큐멘터리 전문 Q채널은 고서를 통해 전통생활 속에 녹아든 삶과 생활의 지혜를 발견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고서, 지혜의 문’(8부작)을 2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방송한다. 민족의 사상과 문화가 응축돼 있는 고서가 안내하는 길은 과거로만 향하지 않는다. 현재를 명석하게 볼 수 있는 거울이며, 앞으로 지향해야 할 미래를 제시하는 길이기도 하다. 1부에서는 조선 영조때 사주당 이씨 부인이 쓴 태교지침서인 ‘태교신기’(胎敎新記)를 통해 전통태교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현대의학과의 접목 가능성을 검토한다.2부는 검시(檢屍)에 관한 방법론을 다룬 법의학서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통해 조선시대의 법정신과 형벌제도를 살펴본다.3부는 종합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통해 동양무예의 정수와 한국무예의 긍지를 보여준다.4부는 조선시대 양반음식 146가지 조리법을 한글로 소개한 요리지침서 ‘음식지미방’(飮食知未方)을 통해 음식을 실제로 만들어 보고, 우리 전통음식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규명한다. 5부에 소개되는 ‘승총명록’(勝聰明錄)’과 ‘용하기’(用下記)는 전통 상업정신을 재조명하는 귀중한 고서다.6부와 8부에서는 각각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통해 과학기술 및 주거문화에 대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본다. 이와 함께 7부에서는 미국 인류학자인 스튜어트 컬린의 저서 ‘한국의 놀이(Korean Game)’를 통해 세계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전통놀이를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교육적 가치를 재조명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日 ‘국수주의 작가’ 인생과 사상의 정수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자기 나라 지폐에 얼굴이 등장할 만큼 그는 일본인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역사의 전환점에 설 때마다 그의 사상은 어김없이 재조명됐다. 자위대 이라크 파병 문제로 일본 열도가 들썩였던 2003년 말에도 일본의 국영방송은 그의 사상을 조명하는 특집을 내보냈다. 사회가 불안할 때일수록 그는 일본인의 정신적 등대 구실을 해온 셈이다.‘국민작가’ 대접을 받고 있는 그의 주요 작품들은 국내에도 거의 다 소개돼 있다. 지난달 ‘나는 소세키로소이다’라는 평전이 출간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장편 ‘길 위의 생’(김정숙 옮김, 이레 펴냄)이 나왔다. 소세키가 죽기 일년 반 전에 쓴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로 꼽히지만 엄밀히 말해 자전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인’ 방법으로 쓴 창작물이다. 주인공 겐조의 유년기는 곧 소세키의 과거이며, 겐조의 현재는 소세키가 런던에서 돌아와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길 위의 생’에는 ‘칙천거사(則天去私)의 완성’이라는 평이 따른다. 칙천거사는 나를 버리고 하늘에 따른다는 선적(禪的)인 의미의 조어. 그만큼 만년에 이른 소세키 자신의 인생과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그의 사상과 문학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문학적 자율성과 순수성을 온전히 지켜온 작가가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로서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소세키 문학이 일제의 한국침략, 식민통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는 군국주의적 발상, 독단적인 사회진화론적 사고, 호전적인 정치적 요소들이 노골적으로 혹은 은미하게 녹아들어 있다.‘길 위의 생’은 다행히 그런 혐의에서는 벗어나 있다. 소세키는 죽을 때까지 조선과 조선인을 천시하고 경멸했다. 문학평론가 이보영 전북대 명예교수는 “그처럼 집요한 민족적 적대감은 세계문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소세키의 국수주의적 애국심, 자기모순을 지적한다. 대문호의 작품도 배경을 알고 읽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1만 2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희망을 새긴 ‘오윤 판화’ 다시본다

    흑백대비가 분명한 강렬한 이미지의 목판화로 민초들의 아픔을 표현했던 오윤(1946∼1986)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낮도깨비 신명마당’전이 작가의 타계 20주기를 맞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군부독재와 광주민중항쟁, 신군부 체제를 겪은 고인은 암울했던 시기의 시대적 아픔과 민중의 고단함을 역동적으로 풀어낸 한국 민중미술의 거목. 불안한 시대상황을 투쟁적인 모성을 통해 나타낸 ‘대지’ 시리즈, 노동자와 농민들의 내면 감정을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따뜻한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낸 ‘노동의 새벽’ 등 대표작을 남겼다. 생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해 타계하기 불과 한달 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2000년대 이후 국내 미술계에서 본격 재조명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칼노래’ ‘노동의 새벽’ ‘대지’ ‘원귀도’ 등 대표적인 판화 139점과 그동안 잘 발표되지 않았던 유화 10여점, 조각 20점과 드로잉, 유족이 갖고 있는 목판화의 원판, 작가노트와 유품 등 오윤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다.22일부터 11월5일까지.(02)2188-6046.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노래 좋아하지만 좋은 추억일뿐”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1980년대 인기를 모았던 노래 ‘연(라이너스)’의 작곡가가 쓴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게재돼 화제가 되고 있다. 11일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Nature Cell Biology)에 따르면 연세대 생명과학부 조진원(48) 교수팀이 암억제 요인으로 알려진 p53과 당뇨 및 당뇨합병증의 발병에 관여하는 O-GlcNAc과의 수식화(修飾化)를 6년 만에 밝혀냈다. 조 교수팀은 이번 연구 성과로 당뇨합병증 치료제 개발에 한발짝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논문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논문의 교신저자가 조 교수라는 점 때문이다. 조 교수는 1979년 제2회 TBS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우수상과 작사상을 받은 라이너스의 ‘연’을 작사·작곡한 주인공. 이후 같은 해 홍종인과 부른 ‘사랑하는 사람아’를 직접 불러 인기를 끌기도 했다. 생물학과에 진학했던 조 교수는 작사·작곡을 취미삼아 했다가 가요계에 발을 담그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아’도 원래 다른 친구가 부르기로 했는데 홍종인과 음색이 맞지 않아 얼떨결에 제가 불렀죠.” 대학 졸업후 본격적으로 생물학에 투신했지만 노래와의 인연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기독교방송(CBS)에서 ‘꿈과 음악 사이에서’라는 심야 라디오 프로를 1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7080세대의 음악이 재조명을 받으며 여러번 TV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출연을 거절했다고 한다. “노래를 좋아하지만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을 뿐, 본업은 역시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죠. 노래 하느라 연구에 뒤처졌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조 교수가 다음달 14일 연세대 출신 동문가수가 한데 모이는 자선콘서트에서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절친한 동료교수인 김기정(정치외교학과) 교수와 함께다. 조 교수의 노래사랑은 그의 홈페이지(biology.yonsei.ac.kr///glyco)에서 조 교수가 작사·작곡한 노래 5편으로 확인할 수 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Book Review] 건국 공간속의 외세 다시보기

    오래된 풍경 하나. 남한은 북한을, 북한은 남한을 소련과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긴다. 남북은 미국과 소련의 후원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정부였다는 식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기만 했을까. 가르마를 타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넘기는 단정함은 머리카락의 자연스러운 숨결을 반드시 죽게 한다. 풀이과정 없이 답안만 앙상하게 남는 격이다.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창비 펴냄·이하 ‘신화’)와 ‘북조선 탄생’(서해문집 펴냄·이하 ‘탄생’)은 역사의 머릿결을 자연스럽고 입체적으로 되살려 놓은 책이다.‘신화’는 국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한·미 관계를 분석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노작이다. 찰스 암스트롱 미 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센터소장이 쓴 ‘탄생’은 흔히 90년대 초반 소련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부정·극복됐다는 브루스 커밍스류의 수정주의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우선 ‘신화’를 관통하는 저자의 생각은 미국 자체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와 동북아 전략이라는 ‘이해관계’ 사이에서 줄타기한 국가라는 것이다. 지금 부시 정부야 주먹질이 전부인 줄 알지만, 냉전기 미국 정부는 공산진영에 대한 ‘봉쇄(Containment)전략’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군사력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를 굉장히 꼼꼼히 따졌다는 것. 흔히 말하는 ‘세계여론’에 민감했던 이유다. 그러니 자연스레 미국의 대외정책은 시기와 국면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이 유동성이 바로 한국의 자율공간이다. 한국은 과연 이 빈 공간을 잘 이용했을까. 저자는 부정적이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을 무조건 퍼주는 ‘우방’이나 언젠가는 다 먹어치울 ‘제국’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봤기 때문. 그러니 미국의 대한 정책에 잘 대응하지도 못하고, 지나온 대미 관계에서 교훈도 얻지 못한다. 세세하게는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발전이론가 로스토를 재조명한 4부와 박정희 정권 때 미국의 집요한 김종필 제거전략과 역풍을 다룬 5부가 흥미롭게 읽힌다. 역사의 숨결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탄생’은 더 많은 눈길이 간다. 저자는 북한 건국의 키워드로 ‘민족주의’와 ‘혁명’을 제시한다. 원제가 ‘북조선 혁명(The North Korean Revolution 1945-1950)’이다. 국가 성립기 북한은 가장 급격한 사회변화를, 그것도 동유럽과 비교했을 때 아주 토착적인 방식으로 추진했다는 것.‘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아니라 ‘소비에트의 북한화’였고, 그 중심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이 지금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것도 소련에 의해 세워진, 소련을 아주 가져다 베낀 나라가 아니라 이런 북조선혁명의 특성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다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를 포갠다. 지금 북한 형편이야 어처구니없지만,1950년에는 지금의 상황을 예측이나 했겠느냐는 게 저자의 반문이다. 어쨌든 남한은 성공했으니 훌륭했고, 북한은 실패했으니 절대악이라는 희한한 논리가 학문의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불온’할 수 있겠다. 번역자 김연철(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이정우(‘통일한국’ 편집장)가 여기저기 ‘이 책의 논의는 전적으로 학술적인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대목은 씁쓸하기도 하다. 이미 승패가 확연히 갈린 상황에서 이런 북한연구 성과 소개마저 조심스럽게 만드는 남한의 상황은, 트라우마일까 콤플렉스일까. 각각 1만 7000원,2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9·11 5주년 24시간 특집방송

    9·11 5주년 24시간 특집방송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그 뉴욕의 핵심 세계무역센터에다 말 그대로 ‘피의 불벼락’을 내린 9·11테러가 일어난 지 올해로 5주년. 거대한 비행기가 꼬리만 남긴 채 건물에 꽂히고, 조금 있다 거대한 건물 자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그 모습은 영원히 잊기 힘든 충격이었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9·11테러는 그 이후 세상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했다. 오는 11일 5주년을 맞아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은 10일 아예 24시간 테러특집방송 ‘테러데이 9·10’을 편성했다. 우선 새벽과 오후 6시에 편성된 ‘TV와 인질’,‘폭탄과 휴대폰’,‘인터넷과 자살테러’ 3편은 어찌보면 필수품이 되어버린 각종 미디어들이 어떻게 테러에 악용될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다음으로 오전 11시부터는 연달아 편성된 5편의 다큐는 9·11테러의 모든 것을 다시 분석하고 재조명한다. 알 카에다는 어떤 조직인지, 오사마 빈 라덴은 어떤 인물인지, 이들은 테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테러를 감행한 다음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이다. 또 9·11테러 외에도 세계를 경악케 한 7개 테러사건을 다룬 다큐도 준비됐다.1970년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이 유럽에서 한꺼번에 항공기 4대를 납치했던 ‘스카이 잭 선데이(공중납치의 일요일)’ 사건부터 지난해 7월 사제폭탄으로 지하철역과 버스를 공격한 ‘런던 지하철 테러’까지, 테러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고 어떤 기억을 남기는지 추적했다. 5주년 당일인 11일 오후 6시에는 다큐 ‘플라이트93-남겨진 이야기’가 방영된다. 영화 ‘플라이트 93’을 만들기 위해 9·11 테러 희생자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7주간의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자료를 바탕으로 ‘본 슈프리머시’ 등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큐로 만들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관계자는 “9·11은 단순테러가 아닌 문명사적인 사건이라는 판단에 따라 24시간 종일 방송을 기획했다.”면서 “테러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탱화의 거장’ 만봉스님 다큐

    탱화(幀畵). 어떤 사람은 무섭다고도 하지만, 부처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그림이어서 불교에서는 ‘소리없는 법문’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미술장르다. 이 탱화 그리는 사람을 ‘불모(佛母)’‘화승(畵僧)’‘양공(良工)’ 등 다양하게 부르는데 그 가운데 으뜸은 ‘금어(金魚)’다. 금어라는, 최고의 그림꾼이라는 영예를 받았던 만봉 스님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아리랑TV는 지난 5월 열반에 든 탱화의 거장 만봉스님을 추억하는 다큐멘터리 ‘추사(追思) 만봉’을 9월2일 오후 8시 방영한다. 만봉스님은 일곱 살 때 김예운 스님 아래서 불화를 배우면서 차츰 탱화의 세계에 빠졌다. 불화를 보기만 해도 마냥 행복했다는 만봉스님이었기에 이 땅에서 살다간 96년 동안 탱화에만 푹 빠져 지내온 세월이 무려 80년. 그 세월 동안 숱한 작품을 남겼다. 전국의 절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 5월 세상을 떠날 때도 꼿꼿한 자세로 탱화를 그렸을 정도이니까. 언뜻 단순해 보이는 탱화 작업은 사실 대단히 어렵다. 워낙 세밀한 붓놀림이 요구되는 작업이라 몇시간 동안 최대한 몸을 가까이 끌어다 붙여야 완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깊은 불심. 단순히 기술로만 탱화를 평가할 수 없다는 만봉스님의 고집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만봉스님은 매일 새벽 5시에서 오후 10시까지 탱화를 그리면서 항상 똑바르게 정좌한 자세만 고집했다.“적어도 3000장은 그려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것. 이럴 정도니 불과 18세에 ‘금어’ 칭호를 받았다는게 어색하지 않다. 그럼에도 생전의 만봉스님은 “평생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라며 겸손해했다. 만봉스님은 탱화뿐 아니라 단청에도 재능이 뛰어났다. 남한산성, 경복궁, 경회루, 남대문에다 종로 보신각에 이르기까지 고건축물 가운데 만봉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드물 정도다. 만봉스님은 1972년 무형문화재 단청장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광장] ‘태백산맥’에서 ‘서울1945’까지/황진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태백산맥’에서 ‘서울1945’까지/황진선 논설위원

    어느 날,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국방송(KBS)의 주말 드라마 ‘서울 1945’가 화제가 됐다. 그런데 잠자코 얘기를 듣던 한 선배가 “그런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어?”하고 물었다. 정말 그랬다.‘서울 1945’는 막말을 하자면 ‘빨갱이’들이 주인공이다. 안방극장에서 그동안 좌익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었는가. 소설 ‘태백산맥’이 떠올랐다. 태백산맥 1부(3권)의 초쇄 일자는 1986년 10월이다. 그 무렵, 초년 기자였던 필자는 서울시내 한 경찰서의 기자실에서 A신문의 기자에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상상이 안돼”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곧 태백산맥을 구해 읽었다. 그런데 과연 그랬다. 좌익인 염상진, 하대치, 정하섭 등도 그들 나름의 좋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다가 스러져간 영혼들이었다.‘빨갱이’에 대한 그런 시선은 그 때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작가 조정래 선생이 20년 가까이 이적 표현물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2005년 4월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래도 태백산맥에서는 중도민족주의자인 김범우가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 좌익 염상진은 김범우에 비해서는 비중이 떨어졌다. 그런데 ‘서울 1945’에서는 처음부터 광산노동자의 아들인 최운혁(류수영 분)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해방공간에서 몽양 여운형을 돕고 한국전쟁에서는 인민군 장교로 활동한다. 자유주의자인 이동우(김호진 분)는 이승만을 돕고 국군 장교로 활약하지만 극중 비중이 떨어진다. 단순화하면 태백산맥에서는 중도 민족주의자가 남자 주인공이었는데 ‘서울 1945’에서는 ‘빨갱이’가 남자 주인공인 것이다.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서울 1945’는 순항하고 있다. 제작진은 “좌든 우든, 자신이 믿는 이상에 따라 그 시대를 헤쳐나간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수단체들은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기 종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시청률도 높은 편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2004년의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2005년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보훈대상자 인정도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봐야 한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가 지난해 펴낸 ‘한국현대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대목이 있다. 선구회라는 단체에서 해방 후 첫 여론조사를 했는데,‘최고의 인기 지도자’ 중 대통령 후보로는 이승만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인 지도자’와 ‘생존 인물 중 최고의 혁명가’에는 각각 여운형이 1위, 이승만이 2위였다. 김일성과 김규식은 김구·박헌영에 이어 각각 5,6위를 차지했다. 그런 조사에 놀라는 것은 그동안 냉전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전혀 그런 사실을 접해보지도,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운형, 김일성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하고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동구권의 붕괴로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다. 우리는 그동안 반공이데올로기 때문에 왜곡됐던 현대사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되돌아보고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과 화해, 통합과 통일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3)강역(江域)-자연상징(상)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3)강역(江域)-자연상징(상)

    한반도의 모양은 흔히 대륙으로 도약하려고 웅크린 호랑이에 비유된다. 이때 호랑이의 등뼈에 해당하는 것이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백두대간이란 용어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의 저술로 알려진 ‘산경표(山經表)’에 처음 등장한다. 민족의 발상지 백두산 우리 조상들은 산을 이어지는 줄기로 파악하였는데, 우리 국토의 뿌리인 백두산에서 시작해 낭림·금강·설악산 등을 거쳐 태백산에 이른 뒤 다시 남서쪽으로 소백·속리·덕유산으로 이어져 지리산에서 멈춘 가장 크고 뚜렷한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불렀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생명선이다. 한반도의 주요 강이 백두대간에서 시작되고, 대부분의 산이 백두대간으로 연결되어 생명의 통로가 된다. 또한 백두대간은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의 저장고이다. 옛 사람들에게 백두대간은 신앙의 대상이자 수련의 장소였으며,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고 고달픈 삶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백두대간은 가장 중요한 자연유산이며, 여가와 관광, 그리고 교육의 공간으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백두대간의 시작인 백두산(白頭山)은 우리나라 산의 시조(始祖)이다. 백두산은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는데,‘조선왕조실록’에는 1597·1668·1702년에도 백두산에서 분화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산으로, 머리에는 천지(天池)라는 커다란 호수를 이고 있어 사람들이 외경심과 신비감을 가지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로 여기고, 성산(聖山) 또는 영산(靈山)으로 신성시해 왔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에 걸쳐 있다. 그래서 백두산을 둘러싼 양국의 분쟁도 끊이지 않았는데, 최근 중국이 백두산을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편치 않다. 백두대간에 속한 산 가운데 경치로는 금강산(金剛山)이 최고로 꼽힌다. 화강암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를 받아 만들어진 ‘일만 이천 봉’과 기암괴석, 그리고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중국인들도 금강산을 직접 구경하는 것을 소원하였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도 금강산 구경을 평생의 소원으로 간직한 이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뿐 아니라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답사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 금강산은 사찰과 문화재, 전설을 많이 간직한 산으로도 유명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산 여행이 오늘날의 해외여행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기행문을 통해 간접 여행하는 ‘와유(臥遊)’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금강산은 남북화해의 상징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은 아직 금강산의 절반인 외금강만 구경할 수 있는 반쪽 관광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더 좋아했고 그래서 더 많이 찾았던 내금강을 하루빨리 구경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며칠 전 광복절을 맞아 생각나는 강역으로 독도(獨島)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국토의 동쪽 끝인 독도는 동해(東海)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독도는 행정구역 상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이며, 우편번호는 799-805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독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동도와 서도 2개의 큰 섬과 주위에 89개의 부속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독도(獨島)’라고 표기해 ‘외로운 섬’,‘홀로 섬’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돌섬’을 ‘독섬’으로 발음하면서 ‘독도’로 표기한 것이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심지어 일본 측 자료에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일본은 계속해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강역과 관련된 민족문화상징으로 독도를 꼽은 것은 이러한 일본의 억지로부터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 국토의 막내이기 때문이다. 일본자료에도 “한국땅” 독도 독도를 품고 있는 동해(東海)도 일본과 마찰을 빚고 있는 바다이다. 동해를 둘러싼 문제는 영역이 아닌 명칭 때문인데, 같은 바다를 두고 우리는 동해(East Sea), 일본은 일본해(Sea of Japan)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동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기원전 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에 대한 기사에 동해라는 이름이 사용되어 약 2000년 전부터 동해라 부른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자체가 7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동해 명칭이 일본해에 비해 역사적으로 선행하는 만큼 동해는 동해로 불러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지도에서 동해 표기는 90% 이상이 일본해로 되어 있다. 국제사회에서 동해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족문화상징에 해양강역으로 동해가 선정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 강역에 대한 정보를 조선시대 사람의 눈으로 집대성한 것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이다. 이 지도는 한반도를 북에서 남까지 동서로 끊어 22폭으로 나누어 담았다. 이 22폭을 상하로 모두 이으면 가로 약 3.3m, 세로 약 6.7m의 거대한 대축척 전국지도가 만들어진다. 대동여지도는 한반도의 윤곽을 정확하게 그렸을 뿐 아니라 백두대간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도로망·역·창고·성곽 등 각종 인문지리 정보도 풍부하게 담고 있어 19세기 중엽 우리 국토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한마디로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의 고지도 중 최고의 걸작으로, 우리 문화와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문화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자연경관으로는 황토, 갯벌, 풍수 등 3가지가 선정되었다. 황토(黃土)는 한국인과 가장 친한 흙이다. 우리 조상들은 황토로 만든 집에서, 황토로 빚은 옹기에 저장한 음식을 먹으며 평생을 보냈다. 황토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할 뿐 아니라 습도도 저절로 조절된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종자로 쓰기 위해 황토벽에 걸어두면 이듬해 봄까지 온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화·산업화의 바람 속에서 황토벽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시멘트벽에 걸린 종자는 겨울을 나는 동안 상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황토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적당히 가열된 황토가 몸에 이로운 원적외선을 방출한다고 하여 ‘황토침대’,‘황토방’이 유행한다. 옛날 어른들이 온돌방에서 ‘지지고’ 나면 몸이 가뿐해진다고 한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자연경관 ‘황토·갯벌·풍수’ 황토는 바다의 적조 제거에도 한몫을 하며, 가축의 사료로도 쓰인다. 황토의 흡수력, 해독력을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과 가축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황토를 사용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한하운의 시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이라는 대목이 나오듯이, 우리나라 황토가 누런색이 아닌 붉은색을 띤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술용어로는 ‘적색토’라 불린다. 황토는 전국적으로 나타나지만, 특히 서해안의 해발 150m 이하의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에 넓게 분포한다. 갯벌은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운반해온 미세한 흙이 쌓인 해안의 평평한 땅을 말한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발달한 갯벌은 그 규모에서 세계적이다. 우리는 과거 갯벌을 쓸모없거나 간척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갯벌은 일찍부터 ‘바다밭’이라 불린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갯벌에 자라는 각종 조개를 캐거나 어살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는 일은 서남해안 어민들의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우리가 갯벌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무분별한 대형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많이 사라지고 나서부터이다. 갯벌은 어민들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며, 다양한 동식물이 자라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동시에, 각종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거대한 정화조’이다. 우리나라 갯벌은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하는데, 돈으로 따지면 연간 10조원에 가까운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갯벌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천혜의 자원이다. 보존과 함께 지속가능한 이용도 필요할 것이다. 풍수(風水)는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된 전통적 환경사상이다. 풍수는 그 이론들이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나,8세기경 우리나라에 도입된 뒤, 우리 나름의 생각과 가치가 더해지게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풍수를 묘 자리나 보는 지술(地術)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풍수는 죽은 사람의 쉴 자리보다는 산 사람들의 살 자리를 찾는 일종의 입지론이다. 풍수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수도에서부터 마을의 터 잡기까지, 그리고 도시와 마을의 공간배치와 구성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따라서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상징이 풍수인 것이다. 정치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세종실록학교’ 수요일마다 문열어

    국가 경영의 모범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치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세종실록학교’가 개설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소장 정윤재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3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세종실록학교를 연다고 밝혔다. 모두 6주간의 과정으로 세종실록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김영수·박현모 박사를 통해 세종시대 교육·정치·외교·법 등을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조명해 본다.장소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정한 것은 강의 내용과 연관지어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는 과정도 마련해서이다.14일까지 이메일로만 참가신청을 받는다.(031)708-5281.
  • 아나키스트의 흔적을 찾아서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자처럼 잊혀진 사람들이 또 있다면 아나키스트들이다. 누구보다 정열적이었지만 ‘무정부주의자’라는 번역어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어감이 짙게 남아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독립기념관이 광복절을 맞아 15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이들을 재조명하는 ‘아나키스트들의 항일 투쟁-조국을 강탈한 적의 심장을 겨냥하라’ 전시회는 뜻깊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마당을 마련한 셈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는 것은 오직 무장투쟁의 길밖에 없다고 선언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명문장 ‘조선혁명선언’, 주중 일본공사를 테러하려 했던 육삼정 의거의 주역 백정기·이강훈·원심창 선생의 유품들, 이들을 감시·탄압하기 위한 일제의 보고서 등이 전시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일왕을 죽이려던 계획이 드러나 22년간 옥살이했고, 이때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와의 러브스토리가 널리 알려진 박열 선생의 유품들. 이번에 전시되는 옥중 노트, 한국에서 발간한 잡지 ‘신조선’(1946년 7월호) 등의 자료는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봉암과 진보당’ /정태영 지음

    7월31일은 47년 전 진보당 당수였던 죽산 조봉암이 ‘진보당사건’으로 사형당한 날이다.1950년대 이승만에 맞서는 거물 정치인으로 대통령 선거에 두 번이나 나섰던 그가 간첩 혐의로 사형된 후 학계에선 정권 사주에 의한 대표적 ‘사법살인’이라고 비판해왔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보당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이 이루어지는 등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문제가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조봉암의 삶을 재조명한 책 ‘조봉암과 진보당’(정태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이 출간됐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으나 해방후 박헌영과의 논쟁을 거쳐 공산당과 결별하고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인물이다.1956년 ‘반자본’‘반공산’의 중도파 노선을 표방한 진보당을 창당, 제3대 대통령선거에 나서 216만표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대항해 ‘평화통일론’을 내세우며 각종 혁신정책을 내놓았던 그는 간첩 혐의를 받고 1959년 사형됐다. 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조봉암과 진보당의 역사적 실험과 좌절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저자 역시 당시 사건과 관련 조봉암과 나란히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던 인물. 그는 “여운형을 포함해 진보계열의 정치 지도자 대부분의 명예가 회복되었는데 조봉암은 여전히 대한민국 공식문서에 범죄자로 남아 있다.”며 “조봉암의 억울한 죽음과 불명예가 방치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무슨 민주주의냐.”고 항변한다. 책은 특히 조봉암이 해방정국에서 중간노선을 지향했던 이유와 의미를 강조한다. 친미·친소, 극좌·극우의 양극화를 달리던 상황에서 민중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노선이 무엇이냐는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민족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한 실사구시적 의미로 한국적 사회민주주의를 꿈꾸었던 조봉암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1만 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월드 리포트] 파리의 새로운 상징 ‘케 브랑리 박물관’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앞은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일년 내내 북적인다. 에펠탑 지척에 한달 전부터 또다른 줄이 생겼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케 브랑리 박물관(Le Musee du Quai Branly)에 들어가려는 이들이다.24일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한 달새 벌써 15만 1000명이 다녀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임기 7년의 대통령에 첫 당선된 1995년 취임 일성으로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 11년, 착공 5년만에 완공된 케 브랑리 박물관은 문화대국 프랑스의 저력과 전통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전 트로카데로에 있던 인류 박물관과 포르트도레에 있던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문명사 박물관을 합친 이 박물관은 그동안 대중으로부터 소외됐던 비유럽 문명을 재조명한다는 의미가 크다. 총 30만점에 이르는 소장품 가운데 세계적 문화유산 3500여점이 영구 전시돼 관람객들은 복도 하나만 건너면 아마존에서 파푸아뉴기니, 마다가스카르까지 다양한 문명을 접할 수 있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이 건물은 길이 220m, 높이 10m의 유리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본관, 테라스, 행정동, 미디어테크 등 총 4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 본관은 기둥과 가교, 원색으로 채색된 거대한 큐브를 끼고 있으며 다양한 식물종으로 구성된 1.8㏊의 정원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재인식의 장’을 표방한 이 박물관은 미래적인 디자인의 독특한 외관 못지않게 전시 컨셉트도 21세기 박물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각종 기획전시회와 이에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행사들이 계획돼 있으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전세계 박물관 연구소,15개의 대학과 협약이 체결돼 연구와 교육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박물관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비유럽권의 토착 예술만을 따로 모아 전시하는 것은 서구와 비서구를 분리하는 정신구조를 심화시켜 특정 문명에 대한 평가절하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많은 소장품이 과거 식민지에서 수집된 것들이어서 제국주의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박물관의 개관을 계기로 파리가 ‘다양한 세계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인류학자들과 민속학자들은 물론 문화적 호기심이 강한 프랑스인과 수많은 관광객이 앞으로 이 박물관을 찾을 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박물관 하나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프랑스 제5공화국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위대한 문화유산을 후대에 남기는 전통을 갖고 있다. 조르주 퐁피두의 퐁피두센터,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오르셰 미술관, 프랑수아 미테랑의 그랑 루브르에 이어 시라크 대통령은 재임 중 케 브랑리 박물관을 완성함으로써 그 전통을 이었다. 끊이지 않는 악재로 시라크 대통령은 우울한 통치 말년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라크 대통령은 케 브랑리 박물관과 더불어 문화 정책 성적표에서만은 역대 대통령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후손들은 자질구레한 정치적 실책을 기억할 리 없지만 케 브랑리 박물관은 그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혜리 파리 특파원 lotus@seoul.co.kr
  • 충무로 “웰컴 투 사투리”

    충무로 “웰컴 투 사투리”

    신세대와 구세대를 가르는 바로미터 하나. 사투리를 신종 이모티콘처럼 즐길 준비가 돼 있으면 신세대, 그게 아니라면 우겨봤자 구세대다. MBC 월요 퀴즈토크쇼 ‘말 달리자’의 몇 장면. 최근 연기수업의 하나로 경상도 사투리를 배운다는 가수 강인이 능청스러운 인사말 한마디로 좌중을 휘어잡는다. “빼(뼈)가 뽀사지도록(부서지도록) 멋진 춤과 노래를 보여드리겠습니더.” 이어지는 강원도 토종 사투리 퀴즈. 난이도가 외국어보다 더 높다. 전라도 사투리로 ‘검시다’, 충청도 사투리로는 ‘심이 짠짠햐’로 통하는 ‘우타 그러 빡쎄요’의 뜻은? “‘힘이 세다’의 뜻”이란 국어연구원 본부장의 해설에 젊은 방청객들이 또 한바탕 폭소를 터뜨린다. 유행에 민감한 TV 오락 프로그램이야 그렇다 치자. 드라마의 선남선녀 주인공이 투박한 사투리 자체를 감상 포인트로 구사하는 사례가 줄을 잇는다. ●조폭물 전용서 멜로·누아르로 확산 사투리 복권의 진원지는 영화판이다.‘사투리=조폭코미디’로 통하던 충무로 등식은 완전히 깨졌다. 코믹액션은 물론이고 사투리는 어느새 누아르, 멜로 등 전방위 영역확장에 성공했다. 푸대접 받던 사투리가 발언권을 얻은 배경은 무엇일까. 왜 새삼 그것이 대중문화판의 감상 코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10~20대에 사투리는 일종의 이모티콘” 젊은 세대의 놀이 감수성에 사투리의 언어적 재미요소가 뒤늦게 딱 걸려 들었다는 해설이 우선 설득력을 얻는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영화를 통해 사투리의 진가가 재조명되기 시작했으며, 영화의 주 소비층인 10∼20대에게 그것은 마치 이모티콘처럼 재미있는 통신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모티콘만으로도 소통가능할 만큼 표준어에 대한 규범의식이 약한 신세대에게 사투리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유행어라는 설명이다. ‘사생결단’(부산)‘아이스케키’(여수) 등 잇따라 진한 사투리 영화를 내놓는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는 “갈수록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제작 분위기여서 극중 배경인 지역 사투리를 정확히 구사하는 것은 연기의 필수요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이 무따 아이가”(‘친구’의 장동건) “마이 아파”(‘웰컴 투 동막골’의 강혜정) 이후 ‘대사 유행시키기’는 영화 마케팅의 핵심 아이템이 됐다. ●배우들 사투리과외 지역민들의 박수를 이끌어낼 만큼 완벽한 사투리를 선보여야 하는 배우들의 고충은 극심할밖에. 지역민 발음을 녹음했다가 억양 그대로 흉내내는 ‘특훈’은 기본이다. 신애라가 1960년대 여수 아줌마로 변신하는 ‘아이스케키’(8월24일 개봉) 촬영 현장. 소시민의 생활 사투리를 담아내느라 사투리 과외교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감독은 아예 슛사인을 넣지 않는다. 제작사 싸이더스F&H의 정현정 팀장은 “주인공의 발음을 벌교 주민들에게 최종 모니터 받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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