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재임시절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계약서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일상생활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개발사업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조진호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0
  • [동호회 엿보기] 현오석 부총리 시절 직접 출전도…뒤풀이 없어도 화목한 ‘火木 드리블’

    [동호회 엿보기] 현오석 부총리 시절 직접 출전도…뒤풀이 없어도 화목한 ‘火木 드리블’

    화요일과 목요일만 되면 농구경기를 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정부세종청사 2동에 있는 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운다. 공격과 수비가 쉴새 없이 바뀌며 슛과 리바운드, 드리블이 이어진다. 하지만 여느 농구경기와 다른 점이 있다. 승부가 중요한 순간에도 전화를 받고 다시 일하러 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뒤풀이도 거의 없다. 경기를 마친 뒤 다시 사무실로 가서 밀린 일을 하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유재훈·신제윤·변양호 등이 창립 멤버’ 농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기재부 농구 동호회. 1986년 처음 생겼으니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름은 뜻밖에도 ‘재롱회’다. 재롱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태식 다자개발은행연차총회준비기획단장은 “재무부 농구회 앞글자를 따서 재롱회로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물론 ‘재롱’이라는 이름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젊은 사무관들이 모여 농구 동호회를 만들면서 다소 장난스럽게 일부러 재롱회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시 재무부는 상명하복과 군대식 문화가 강한 곳이었습니다. 농구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하자는, 즐거운 일탈을 꿈꾸자는 거였죠. 재무부는 전통적으로 축구가 강세인데 농구 동호회를 만든 것 자체도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이 있었고요.” 재롱회 창립멤버는 당시 사무관이었던 유재훈(AIIB 회계감사국장), 신제윤(전 금융위원장), 변양호(전 보고펀드 대표), 그리고 과장이었던 김규복(전 생명보험협회 회장)씨 등이다. 여기에 윤종원(OECD 대사), 은성수(한국투자공사 사장), 신경남(전 ADB 선임 이코노미스트)씨가 합류했다. 1994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한 재정경제원이 출범하면서 재롱회는 경제기획원 출신 회원도 받아들였다. 이때 처음으로 국장급 회원이 가입했는데 그가 바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었다. 농구가 기재부 체육대회 정식종목이 된 게 현 부총리 재임시절이었다. 현 부총리는 2013년 재롱회와 세종시 기자단 농구회(세기농) 친선경기에 직접 출전해 빼어난 중거리슛 능력을 뽐내기도 했다. 방문규 전 예산실장도 재롱회 회원이었는데 그는 기재부 체육대회 때 예산실과 세제실 경기를 구경하다가 ‘성에 안 차’ 직접 코트장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밀린 업무 많아… 경기 중 전화 받고 퇴장 일쑤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농구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윤 회장은 1995년 국세청에서 재경원 세제실로 옮기자마자 곧바로 재롱회에 가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다는 그는 틈틈이 농구를 하며 힘든 고시 공부를 버텼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2015년 기재부에 왔을 때 재롱회 총무를 맡고 있던 선배 소개로 회원이 됐다가 지금은 아예 총무를 맡고 있는 강석훈 조세정책과 주무관 역시 “일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땀과 함께 확 풀어진다”고 말한다. 재롱회는 현재 회원이 50여명이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모여서 농구를 한다. 과천청사 시절엔 실내체육관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세종청사는 실내체육관이 있어서 농구를 하기 위한 여건이 좋아졌다. 그간 기재부 체육대회에서는 국제팀(국제금융국과 대외경제국 연합팀)이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 기재부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국제팀이었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국정원 적폐청산TF ‘원세훈 녹취록 삭제 의혹’도 조사한다

    국정원 적폐청산TF ‘원세훈 녹취록 삭제 의혹’도 조사한다

    국가정보원이 과거 정치개입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만든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원세훈 녹취록 삭제 의혹도 조사할 방침으로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31일 보도했다. 국정원 핵심 관계자는 이날 매체와의 통화에서 “13개 조사항목 중 하나인 ‘국정원 댓글사건’과 함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녹취록 삭제 의혹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원세훈 녹취록 삭제 의혹’은 원 전 원장이 재임시절 지방선거에서 국정원이 후보를 검증하라고 요구하고, 기사를 잘못 쓴 매체를 없애라고 지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녹취록 상당 부분을 삭제한 다음 검찰에 제출한 것을 말한다.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이를 복구해 국정원 댓글사건 재판 증거로 냈다. 보도에 따르면 TF는 녹취록이 삭제되는 과정에 국정원 내부 규칙을 위반한 사례가 발견되면 관련자를 징계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한편 적폐청산 TF는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국정원 댓글 사건의 자체 조사 결과 일부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은 사안이 굉장히 복잡해 전체를 들여다보는 데 시간이 필요한데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은 만큼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일부를 발표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나머지 과제 중에서도 조사 진도가 빠른 사건들은 완료가 되는 대로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예산으로 산 물품·재임시절 기념품 반출 불가…국가안보실·비서실·경호실 등 기록물 이관조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일 곧바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떠나지 않고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동 상황 때문에 오늘 이동하지 못한다. 박 전 대통령은 오늘 관저에 있게 된다”고 말했다. ●경찰, 삼성동 사저 주변 5개 중대 350명 투입 헌재의 파면으로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상실했지만 청와대를 언제 떠나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지만 이른 시일 내에 청와대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직원들은 이날 오후 2시 50분쯤 승합차 2대를 타고 와 차량에서 베이지색 상자 등 박 전 대통령의 것으로 보이는 짐을 내려 사저로 옮긴 뒤 약 30분 뒤 사저를 떠났다. 경찰은 사저 주변에도 5개 중대 약 350명을 투입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삼성동 사저는 1990년부터 청와대에 입성한 2013년 2월 25일까지 23년간 거주한 곳이다. 사저는 1983년 지어져 시설이 낡아 전반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이삿짐은 별도의 절차를 거쳐 옮겨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후임자를 위해 청와대를 떠나기 일주일 전쯤에 대부분 이삿짐을 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따라 임기 종료 또는 직무 복귀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던 터라 미리 이사 준비 등을 해둘 수 없었다. 관저에 있는 물품 가운데 사비로 구입한 것 외에 예산으로 구입했거나 재임 시절 대통령 자격으로 받은 기념품 등은 그대로 둬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을 전후해 3개의 침대를 구입했는데 이 침대들도 나갈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이를 사용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에 침대들은 폐기 처분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의 반려동물인 진돗개 ‘희망’, ‘새롬’이와 새끼 7마리는 박 대통령이 데리고 갈 수 있지만 행보는 결정되지 않았다. ●행자부, 조만간 기록물 이관 TF 착수 박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면서 18대 대통령 기록물도 이관 조치된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이관 대상은 국가안보실을 포함한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실, 지역발전위원회 등 18개 자문위원회, 국무조정실(대통령 권한대행)이 생산한 기록물 등이다. 행자부는 조만간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이관 대상 조사와 확인, 목록 작성, 정리, 이관 등 업무를 진행할 계획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일반적인 경우 대통령 임기 6개월 전부터 기록물에 대한 이관 준비를 시작하지만 이번의 경우 사안이 워낙 특별해 아직 준비된 것이 없다”면서 “조만간 박 전 대통령 측과 만나 구체적인 이관 절차와 범위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단독]법원, “요진개발, 일산 학교 부지 고양시에 다시 돌려주라”

    [단독]법원, “요진개발, 일산 학교 부지 고양시에 다시 돌려주라”

    경기 고양시가 요진개발㈜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학교부지를 요진개발의 사립학교 법인에 돌려줘 특혜의혹이 수년째 제기돼 온 가운데, 법원이 문제의 학교부지를 고양시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주목된다.(서울신문 관련기사 2012년 11월 23일자 17면, 2014년 12월 30일자 29면, 2015년 3월 30일자 12면 보도, http://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330012003) 의정부지방법원 제2행정부(부장 박정수)는 학교법인 휘경학원(보조참가자 요진개발)이 고양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지구단위계획변경신청’(자사고 설립계획을 사립초교로 변경)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19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자사고 설립계획을 사립 초교로 변경하는 내용의 지구단위계획 변경 신청을 고양시가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자사고를 설립하지 않으면 고양시로 되돌려 준다’는 취지의 약정을 양측이 과거 했기 때문에 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이어 “자사고 설립이 어려워 진 것은 기본적으로 원고에게 책임이 있으며, 학교부지 주변 상황을 보면 자사고를 사립초교로 바꿀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학교부지에 당초 계획대로 고등학교를 설치 할 수 없다면 피고(고양시) 측에 기부채납해서 다른 공익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맞다”며 2014년 11월19일 휘경학원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1237의 5 일대 고등학교 부지 1만 2626㎡(이전 당시 공시지가 250억원)를 사실상 ‘고양시로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요진개발 측은 “아직 항소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요진개발은 지하철 3호선 백석역과 인접한 옛 출판단지 터 11만여 ㎡의 용도를 바꿔 주상복합아파트를 신축하려고 했으나 특혜논란으로 10년 가까이 개발을 못하자, 강현석 전 고양시장 재임시절인 2010년 1월 사업부지 가운데 약 40%(4만 4480㎡)를 자사고 설립 등의 용지로 고양시에 기부채납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최성 시장 측은 “전임시장 측 협약이 지나치게 건설업체에 유리하다”며 변경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학교부지가 휘경학원에 무상으로 돌아갔다. 휘경학원 이사장은 요진개발 지주회사 격인 요진산업㈜ 최준명 회장이다. 요진개발은 감사원이 “의회 동의없이 공유재산을 휘경학원에 준 것은 잘못”이라며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중징계를 고양시에 통보하기 직전인 2014년 11월 19일 1년 6개월 동안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에 신탁돼 있던 학교부지를 휘경학원으로 전격 소유권 이전하고, 사립초교 설립을 추진해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트럼프와 힐러리가 바다에 빠지면 누가 살아남을까?” 국민들의 기발한(?) 정답

    “트럼프와 힐러리가 바다에 빠지면 누가 살아남을까?” 국민들의 기발한(?) 정답

    세계인의 관심 속에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시작됐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보다 크다는 예상이 우세한 편이지만, 최종당선인이 누구일지를 두고 각계 전문가들은 촉각을 곤두세운 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의 분위기는 다소 싸늘하다. 신뢰할 만한 후보가 없다는 좌절감 때문에 유권자의 대부분은 이번 대선을 ‘역대 최악의 대선’으로 꼽고 있다. 공화당 대표 도널드 트럼프는 오래 전부터 비상식적 언행, 인종차별 및 성차별, 극우 성향 등으로 인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인물’이라는 평가를 적잖이 받는다. 이에 맞서는 힐러리 클린턴은 당초 트럼프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 되는 인재로 평가받았으나, 변호사시절 아동성범죄자 변호 경력, 국무장관 재임시절 정부기밀문서 유출 혐의, 수사과정 중 허위증언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지지도가 급락한 바 있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현지 국민들의 좌절을, 유머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봤다. 1. 트럼프와 힐러리가 바다에 표류하면 누가 살아남을까? 미국. 미국이 살아남는다. 2. 힐러리냐 트럼프냐 = 둘 중 어디에 감전 당하느냐 3. 다음 선거에서 누굴 뽑아야 할 지 드디어 알았다. -2016 대선, 거대 운석에 투표합시다. -그냥 빨리 끝장내줬으면 좋겠으니까. 4. 누굴 뽑을거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의 내 모습 5. “아버지, 2016년에 왜 트럼프에 반대 안했어요?” “모르겠구나 아들아. 나도 모르겠어.” (사진=세계멸망을 그린 영화 ‘더 로드’)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2015년‘KAIST 자랑스런 동문상’에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등 5명 선정

    2015년‘KAIST 자랑스런 동문상’에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등 5명 선정

    KAIST 총동문회(회장 백만기)는 2015년‘KAIST 자랑스런 동문상’에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 권순기 전 경상대 총장, 이재규 KAIST 교수,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지대윤 퓨쳐켐 대표이사 등 5명을 선정했다. 이관순(화학과 석사 82학번 ․ 박사 85학번)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해 글로벌 제약회사와의 라이선싱을 통해 신약기술 수출 8조원 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국내 제약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순기(화학과 석사 82학번 ․ 박사 83학번) 전 경상대학교 총장은 재임시절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경상대학교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다.이재규(산업공학 석사 73학번) KAIST 교수는 지난 30년간 KAIST 교수로 재직하면서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해 왔다. 이영수(산업공학 석사 76학번)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은 지난 35년 간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실용화 로봇연구 등 국내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연구해 왔다. 지대윤(화학과 석사 77학번) 퓨쳐켐 대표이사는 방사성 의약품 전문회사 ‘퓨쳐켐’을 설립해 국내 방사성 신약 개발을 주도해 왔다. ‘KAIST 자랑스런 동문상’은 한 해 동안 국가와 사회발전에 공헌하고 모교의 명예를 빛낸 동문에게 주는 상으로 KAIST 총동문회가 1992년부터 시상해 왔다. 올해 시상식은 오는 30일 오후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리는 2016년 KAIST 총동문회 신년교례회에서 열린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인간 노무현’ 보낸 지 5년… 그리움이 피운 희망의 불씨

    ‘인간 노무현’ 보낸 지 5년… 그리움이 피운 희망의 불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반추하는 책 2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생각의길이 펴낸 ‘그가 그립다’(유시민 외 21명 지음)와 책담이 세상에 내놓은 ‘기록’(윤태영 지음)이 화제의 책들. 모두 노 전 대통령 생전 지근에서 일상을 공유한 이들이 떠올린 ‘바보 대통령 노무현’의 진면모를 들여다 보게 하는 회고의 기록들이다. ‘그가 그립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위에서 살며 그를 지켜보았던 22명이 떠올린 생각들을 모은 산문집.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법학자 조국, 작가 신경림·노경실·정여울·유시춘, 역사학자 이이화, 교수 한홍구·서민, 카피라이터 정철, 문화평론가 김갑수, 드라마 작가 김윤영, 프로듀서 김형민, 시인 류근, 이발사 정주영, 연구원 김상철·시윤희·조세열, 요리사 신충진, 협동조합 대표 노항래, 연출가 김태수, 번역가 박병화가 필자들이다. 이들이 기억하는 생각 조각들이 ‘그리움’이란 테마 아래 희망의 메시지로 묶이는 구성이 흥미롭다. 필자들이 떠올리는 노무현의 인상은 아무래도 굴곡많은 삶을 굳은 의지로 살아냈던 의지와 정의감, 그리고 인간미로 집약된다. 대통령과 정치인보다는 ‘인간 노무현’의 면모가 더 짙다. 그래서 그 반추의 기억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인간 노무현’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넘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피자는 ‘속 깊은 기대’로 향한다. 가수 조관우가 부른 동명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한 북 테마앨범도 CD로 제작해 붙였다. ‘기록’은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지척에서 지킨 인물로 여겨지는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이야기’다. ‘기록’을 철학이요, 원칙으로 삼았다던 노 전 대통령이 모든 회의나 행사에 자유롭게 배석해 자신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겼다는 윤 비서관의 솔직한 회상으로 눈길을 끈다. 수백 권의 휴대용 포켓수첩과 100권에 가까운 업무수첩, 한글파일 1400개에서 건져올린 ‘인간 노무현’의 일상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책은 노 전 대통령의 화법과 습관 같은 개인적 모습을 비롯해 탄핵안 가결 등 재임시절에 숱하게 겪었던 위기들, 그리고 퇴임 이후 서거까지의 마지막 삶을 가감없이 풀어낸다. 금연 중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담배를 주문하고 어려운 입장에 놓인 사람들 앞에선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인간적 면모들이 도드라진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이지원(문서관리시스템) 메뉴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남기곤 했다는 메모 내용들을 ‘나의 구상’이란 제목의 부록으로 실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신년 여론조사-표심의 특징] 차기단체장 지지 무응답 22% ‘예측불허’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6월 지방선거에서도 부동층의 표심은 예측불허이다. 16개 시도지사의 업무수행 평가에서 무응답층의 비율은 평균 16.3%에 불과했다. 잘했든, 못했든 현역단체장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는 확고하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현역단체장이 출마했을 때 지지 여부를 묻자 무응답 비율은 평균 24.1%로 올라갔다. 또한 ‘차기 광역단체장으로 누가 적합한지’에 대한 무응답 비율은 평균 22.4%로 나타났다. 현역 단체장에 대한 지지 여부와 차기 단체장의 인물적합도에 대한 무응답 비율은 20대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차기 단체장의 인물적합도에 대한 20대 무응답층의 비율이 경기(50.3%)와 대전(49.6%)에서는 50% 안팎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업무수행 평가(잘함 49.3%, 못함 42.0%)에서는 무응답 비율이 8.7%에 불과했지만 박 시장이 서울시장에 재출마했을 경우 지지 여부를 묻자 무응답층은 12.0%로 상승했다. 차기 서울시장감으로 누가 적합한지를 물었을 때에는 무응답 비율이 20.1%까지 치솟았다. 부동층으로 직결되는 무응답층 규모가 이처럼 질문에 따라 들쭉날쭉한 까닭은 유권자들이 과거 단체장의 성과 평가에는 냉정하지만, 미래 선택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광역단체장의 경우 재임시절의 성과 혹은 후보자의 출신지와 자질·능력, 선호도 못지않게 정당 공천이 큰 영향을 미치는 데다 정치현안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을 미뤄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아직까지 후보군에 대한 교통정리가 덜 된 상황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지방선거에서 의외의 거물급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후보등록 막바지에 윤곽을 드러내곤 했기 때문이다. 일부 광역단체의 경우 ‘안철수 신당’ 창당 시 파급력이 아직까지는 수면 아래에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2013 공직열전] 문화체육관광부 (상)실장급 간부들

    [2013 공직열전] 문화체육관광부 (상)실장급 간부들

    지난 2월 25일, 취임식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현충원을 찾았다. 방명록에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이란 세 단어가 쓰였다. 문화계는 흥분했다. 국가 수장 가운데 어느 누구도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로 새 정부의 국정기조로 이어졌다. 불명예 퇴진했던 유진룡 전 차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출신의 첫 장관이 돼 친정으로 돌아왔고, 모철민 전 차관은 교육 공무원들의 독무대였던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자리를 꿰찼다. 실현 여부를 놓고 논란을 키웠지만, 박근혜 정부는 ‘문화재정 2%’란 달콤한 청사진까지 제시했다. 요즘 문체부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지금 이대로~”다. 1990년 신설된 문화부는 1993년 체육청소년부와 합쳐 문화체육부로 개편됐고, 1994년 다시 교통부 관광국과 통합됐다. 1998년에는 폐지된 공보처의 일부 기능을 흡수했고, 2008년 국정홍보처와 정보통신부(디지털콘텐츠 업무)를 끌어와 현 체제를 확립했다. 잦은 부침을 겪으며 지금의 ‘파벌 없는 부처’란 생존 방식이 확립됐다. 이는 실장급 간부들의 면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7명 가운데 옛 공보처 출신이 2명, 나머지는 옛 문화부 출신이다.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을 앞세워 발탁된 조현재 1차관이 체육부 출신의 ‘체육통’임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안배가 이뤄진 셈이다. 또 7명 가운데 영남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강원·호남이 2명씩, 서울·경기·충남이 1명씩이다. 서울대 출신도 없다. 육사를 포함해 제각기 다른 대학 출신이다. 게다가 7명 중 4명은 대변인(홍보관리관) 출신으로, ‘대변인=출세’란 등식을 입증한다. 실장급 간부들의 주축은 행시 25~28회다. 문체부의 살림을 주무르고 있는 최규학 기획조정실장과 방선규 국민소통실장이 대표 주자. 두 사람 모두 공보처에서 출발한 공통점이 있다. 최 실장은 “적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무던한 성격이다. 정·관계 등 안팎으로 다양한 친분까지 지녔다. 미국, 베트남, 영국 등의 해외 문화원을 돌며 다양한 식견을 쌓아 각종 현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 실장은 ‘마당발’이다. 이곳저곳 인맥이 많아 ‘사통팔달’로 통한다. ‘두주불사’로 소문났지만 균형 잡힌 정무 감각과 깐깐한 일처리로도 유명하다. 한 내부 직원은 “대개 통이 크면 섬세함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업무에 대한 자세는 집요하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정부 때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으로 논란이 됐던 기자실 폐쇄 조치의 실무를 총괄해 위기를 겪었으나, 새 정부 들어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권토중래했다. 원용기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선비’로 불린다. 국내 대기업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해외연수까지 다녀온 그는 학구열이 남다르다. 조용하면서도 내실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난해 영국문화원장 재임시절, 런던올림픽 관련 한류 문화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본청으로 금의환향했다. 육사(36기) 출신의 심장섭 종무실장은 주변에서 “전혀 군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작권정책관, 미디어정책국장, 국립중앙도서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종무과장으로 일하며 동국대 불교대학원까지 마친 ‘종교통’이다. 김종율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은 호탕한 성격과 추진력 있는 일솜씨로 호평을 받는다. 골치 아픈 사업으로 꼽히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 투입돼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도 그런 ‘개인기’ 덕분이다. 콘텐츠 정책관, 문화콘텐츠산업실장 등을 지낸 ‘콘텐츠통’이다. 임원선 국립중앙도서관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저작권 전문가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파견돼 일하던 그는 돌아와 저작권정책관을 지냈다. 다양한 저작권 정책 입안에 기여했다. 논리적이며 치밀한 일처리가 강점이다. 최고참으로 맏형 스타일인 우진영 해외문화홍보원장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보좌역에 내정돼 조만간 문체부에서 명예퇴진할 예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손목시계 선물/박현갑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 손목시계가 나올 모양이다. 청와대는 지난 2일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국민행복 포토 콘테스트’를 진행해 행복, 희망, 창조상 3개 부분의 당선작에 대통령 기념시계 세트를 증정한다고 밝혔다. 당선작은 다음 달 10일 청와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발표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기념 손목시계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마다 만들었다. 기념시계는 대통령 행사에 참석한 국민이나 표창을 받은 사람 등에게 기념품으로 선물해 왔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문양과 대통령 서명이 새겨져 있다. 제작 단가는 몇 만원대가 일반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시계는 메탈 재질의 4각형 시계로 제작 단가가 3만 2000원 정도였고, 둥근 시계 모양에 가죽끈을 이용한 김대중 시계는 원가가 2000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기념시계는 그 자체로서는 가치가 없다. 단가에서 알 수 있듯 1년 정도 지나 배터리를 교환하지 않으면 멈추기 일쑤다. 한정판으로서 희소성 때문에 소장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가짜 대통령 기념시계가 나돌 정도로 인기 있는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절인 2009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대통령 휘장과 서명을 이용한 가짜 ‘대통령 시계’를 1300여개 제조·판매한 혐의로 이모씨 등 8명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대통령 기념시계가 권력자와 가까운 증표, 힘깨나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등의 과시용으로 통용될 만한 매력이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점을 우려해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 시계 제작 물량을 제한한다는 후문이다. 손목시계는 회중시계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왔다. 보석상 카르티에가 탐험비행사인 산토스 뒤몽으로부터 비행 중 회중시계를 볼 때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1904년에 만들어 준 게 최초의 기계식 손목시계라고 한다. 요즈음은 휴대전화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시계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있다면 결혼 예물이나 권력층 선물용 등 제한적인 경우뿐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갑 때 준 시계는 보석이 박힌 억대의 스위제 시계였고,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받았다는 여성용 프랭크 뮬러 시계는 2000만원짜리였다. 서랍을 뒤지다보면 널린 게 시계다. 청와대가 고민 끝에 만들기로 했다는 대통령 기념시계가 서랍 속에 나뒹구는 또 다른 기념시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기념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찻잔 세트 같은 게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싶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朴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각별한 인연… 정수장학회부터 ‘父女 대통령 보좌’

    朴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각별한 인연… 정수장학회부터 ‘父女 대통령 보좌’

    김기춘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매우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인연의 시작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선 김 실장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이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의 1기 장학생 출신이다. 정수장학회 출신 졸업생들의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1960년 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1964년 광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친 검찰 내 공안통이었다. 김 실장이 35세이던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조총련계 문세광으로부터 살해당했고, 이 사건을 김 실장이 조사하고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면서 본격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시작됐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문세광에게 ‘사나이답게 당당하게 답해라’고 다그치면서 문세광이 육 여사 암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앞서 1972년 유신헌법 제정 과정에서는 초안 작성에 참여하는 등 관여했고, 박 전 대통령 말년에는 청와대 비서관도 지냈다. 그는 이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연달아 지냈다. 법무부 장관 재임시절에는 ‘초원복집’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부산 남구 대연동의 ‘초원복집’ 식당에서 부산시장과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지역 기관장들과 모여 비밀회동을 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상징어가 되는 등 큰 논란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김 실장은 승승장구했다. 그는 1995년 15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뒤, 16대,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 17대 국회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으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 탄핵 심판시 일종의 검사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2005년 여의도연구소장에 내정되면서 박 대통령과도 정치적으로 연을 맺었고, 특히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 대통령의 선거대책부위원장 및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을 지원했다. 이 때부터 김 실장의 주도로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가 핵심 역할을 했다. 7인회에는 최병렬, 김용갑, 김용환, 현경대 전 의원 등이 포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지 부시 前대통령, 갑자기 ‘민머리’ 된 이유가

    조지 부시 前대통령, 갑자기 ‘민머리’ 된 이유가

    조지 H.W. 부시(89) 전 대통령이 돌연 삭발을 했다. 고령의 전직 대통령이 갑자기 민머리가 된 모습을 공개해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 전 대통령이 삭발을 한 것은 바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 소년을 위해서였다. 24일(현지시간) ‘Patrick’s pal(패트릭의 친구)’라는 한 사이트에는 부시 전 대통령이 삭발을 한 뒤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게 된 두살짜리 환자 패트릭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패트릭은 부시 전 대통령 재임시절 그의 경호를 맡았던 비밀경호요원 존의 아들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과거 자신의 경호를 맡았던 요원의 아들이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 주변 사람들과 지원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트릭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재를 동원했고, 과거 경호원들 40명과 함께 자진 삭발을 해 패트릭에 대한 ‘연대’의 뜻을 밝힌 것이다. 사진 속 부시 전 대통령은 휠체어에 앉아 패트릭을 무릎에 앉힌 채 활짝 웃고 있었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한 41명의 남성들이 모두 민머리를 한 모습으로 패트릭과 웃고 있었다. 특히 부시 전 대통령 부부는 60여년 전 네살이었던 둘째 딸 로빈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부시 부부는 패트릭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운동에도 적극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건설업계 ‘구원투수’ 50년만의 아름다운 퇴장

    건설업계 ‘구원투수’ 50년만의 아름다운 퇴장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14일 퇴임했다. 2009년 9월 통합 LH 사장에 오른 지 3년 8개월, 건설업계에 몸담은 지 50년 만이다. 이 사장은 산·학·관에서 최고경영자(CEO)로 17년을 보낸 성공한 CEO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늘 험하고 고단한 자리의 CEO를 맡았지만 특유의 캐릭터로 어려운 고비를 헤쳐나가는 귀재였다. 이 사장의 캐릭터는 뚝심과 읍소(泣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인관계로 요약된다. 국내 최고 건설사인 현대건설 CEO에 오른 것은 2003년. 30여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영업본부 부사장을 지낸 뒤 물러났을 때다. 하지만 회사가 워크아웃으로 떨어지자 채권단과 회사는 그를 ‘구원투수’로 불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3년여 만에 회사를 만신창이에서 구했다. 뚝심은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휴일, 휴가도 반납하고 명절 휴가를 이용해 중동 건설현장을 다녀올 정도였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호되게 몰아치기만 하는 CEO는 아니었다. 정도 많고 부드러웠다. 여직원들, 수십명의 출입기자들 이름까지 기억하는 CEO였다.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현대건설의 어려움과 향후 계획을 알리고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읍소작전을 편 것은 업계에 유명한 일화다. 경기 김포 장기동에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펼칠 때 역시 언론에 읍소작전을 폈다. 결과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자금사정이 호전됐다. 주채권은행이 빚을 천천히 갚으라고 할 정도로 경영정상화를 일궈낸 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때만 해도 그는 건설사의 성공한 CEO로만 기억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을 탐내는 사람이 많았고 이곳저곳에서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강원 고성 경동대, 경기 포천 경복대 총장을 맡았다. 그의 추진력은 학교 경영에서도 먹혔다. 경복대가 재학생 5000명을 유치하는 ‘500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 교육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능력은 LH 초대 사장을 맡으면서는 더욱 빛이 났다.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이 사장은 ‘부채 공룡기업’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사명만 빼고 다 바꾸자’면서 조직과 사업 전반에 걸쳐 변화와 도전, 개혁 실천을 강조했다. LH의 사업구조조정은 이 사장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성이 없는 신도시와 택지지구를 과감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장관과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장들의 호통과 반발이 극에 다랐지만 그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때로는 읍소작전도 폈다. 자리를 피하는 국회의원들을 만나기 위해 의원회관 사우나장까지 찾아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장은 공직자로서도 모범이 됐다. LH 퇴직금 5000여만원은 이날 노사통합 밑거름으로 쓰라고 기부했다. LH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현대건설 재임시절 확보한 200억원 규모의 스톡옵션을 스스로 반납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퇴임식 직전 “원도 없고 한도 없이 일했다”고 회고한 뒤 “일정대로 LH 재무구조가 개선되게 정치권이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자들은 머리와 가슴, 입이 한결같아야 한다”며 오락가락하는 주택정책에 애정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전남교육감 1심서 당선무효형

    순천대학교 총장 재직시절 공금을 사적으로 쓰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이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 1부(부장 강화석)는 9일 순천대 총장 재임시절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장 교육감에게 업무상횡령죄를 적용, 벌금 1000만원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추징금 388만원을 선고했다. 장 교육감이 고교동창이자 의사인 정모(54)씨와 손모(56)씨에게 신용카드를 받아 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사설] 노건평씨 수백억원 뭉칫돈은 또 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 주변 인물의 계좌에서 수백억원대의 뭉칫돈이 발견됐다. 건평씨가 경남 통영시 공유수면 매립허가에 개입해 대가를 챙기고 회사 돈을 횡령한 사건을 수사해 온 창원 지검이 지난 17일 밝힌 내용이다. 건평씨 측은 ‘황당한 얘기’ ‘피의사실 공포는 위법’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검찰이 이권 개입(9억 4000만원) 및 횡령(30억원) 사건보다 훨씬 더 큰 뭉칫돈을 찾아냈으니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먼저 돈의 주인이 누구이고 어떻게 조성됐는지 경위부터 밝혀져야 한다. 검찰은 건평씨의 자금을 추적하다 그와 사업상 가깝고 거래가 많은 주변 사람의 계좌에서 수백억원을 확인했다. 뭉칫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인 2005년부터 수천만~수억원 단위로 수백 차례 드나들다 퇴임 후인 2008년 5월 이후에는 거의 입출금 없이 잠겨 있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 한 주변의 일부 나쁜 사람들과 세력들 때문에 생긴 거래로 본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대통령의 후광을 이용하기에는 형인 건평씨가 가장 쉽다. 더군다나 건평씨는 노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봉하대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데서 보듯 농협회장 인선 등 인사는 물론 이권사업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급기야 정권이 교체된 지난 2008년 12월에는 세종증권 매각 로비에 개입해 29억원을 챙긴 혐의로 1년 8개월의 실형을 살았으며, 이번에도 공유수면 매립사업과 관련해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 왔다. 뭉칫돈 계좌의 소유주와 건평씨가 친한 만큼 건평씨가 과거에 대출 등 각종 사업을 도와주고 받은 사례비를 별도로 관리해 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주변 인물의 돈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의 사업규모로 봐선 설득력이 없다. 건평씨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은 검찰수사로 밝혀질 것이다. 건평씨는 대통령 형으로서 자신의 처신에 문제가 없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책임자들도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보시라이, 英사업가 사망 조사 경찰관 3명도 고문·살해”

    “보시라이, 英사업가 사망 조사 경찰관 3명도 고문·살해”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피살 사건 이후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서기와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의혹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건이 종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해 조만간 결과를 발표하겠다며 보시라이 스캔들이 오는 10월 권력 교체를 앞두고 정치권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당, 10월 권력교체 전 확대 차단 ‘총력’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은 보시라이가 다롄(大連)시 서기 때부터 아끼던 부하로 ‘조폭과의 전쟁’을 위해 충칭으로 스카우트해 온 ‘오른팔’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 28일 이들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구카이라이의 53번째 생일이던 지난해 11월 15일 충칭의 5성급 호텔에서 독살된 헤이우드 사건의 배후에 구카이라이가 있다는 내용을 왕리쥔이 수사해 보고하면서 보시라이의 심기를 건드린 것. 보시라이는 당시 사건을 조사한 왕리쥔의 심복 수사관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했다. 이 과정에서 2명은 숨지고 1명은 자살했다. 보시라이가 관련된 살인사건이 추가로 드러남에 따라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사형이 불가피하다고 홍콩 아시아위크가 20일 보도했다. 또 왕리쥔은 당시 헤이우드가 보시라이의 해외자금 밀반출 및 돈 세탁 내역을 보관 중이던 컴퓨터 파일도 확보했다고 보시라이에게 보고했다고 명보(明報)가 전했다. 베이징에 있던 헤이우드를 11월 15일 충칭으로 데려온 것은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보시라이의 개인비서 장샤오쥔(張曉軍)이라고도 소개해 살인이 계획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앞서 언론들은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는 지난 2001년 영국에서 동거했던 사이였으나 헤이우드가 자금이전 및 돈 세탁에 대한 보상으로 거액을 요구한 탓에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전했다. 보시라이와 불륜으로 만난 구카이라이가 다시 헤이우드와 불륜을 저지른 데에는 보시라이가 다롄TV 장웨이제(張偉杰) 앵커와의 사이에 딸까지 두는 등 여성편력이 심했기 때문이라는 추문도 불거졌다. 공안국 부국장직 박탈은 물론 자신의 부하들이 보시라이에 의해 고문사당한 것을 알게 된 왕리쥔은 지난 2월 6일 할머니 분장을 하고 충칭 공안국 왕펑페이(王鵬飛)의 차를 빌려 타고 청두(成都) 미 영사관을 찾아갔다. 보시라이는 곧바로 46명으로 구성된 개인 경호대를 동원해 왕리쥔의 심복 경찰 11명을 추가로 체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당시 왕리쥔의 망명 소식을 보시라이에게 귀띔해준 배후가 최고지도부인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로 드러나면서 보시라이의 ‘쿠데타 시도설’과 ‘베이징 내란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자금줄’ 쉬밍 회장·큰형 등 전방위 조사 베이징 당국은 현재 충칭과 홍콩을 중심으로 보시라이의 여죄를 캐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보의 뒤를 이어 충칭서기로 부임한 장더장(張德江)은 보시라이 재임시절 녹지조성, 지하철보수, 전광판 사업 등 정부로부터 돈을 빌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충칭시 재건 사업, 이른바 충칭 모델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보시라이가 공금을 전용했는지를 수사중이라고 중화권 언론들이 보도했다. 보시라이의 큰형 보시융(薄熙永) 등 형제들과 구카이라이의 자매들도 자산 해외이전에 연루됐는지에 대해 조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의 자금줄로 알려진 스더(實德)그룹 쉬밍(徐明) 회장, 독살 혐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충칭 난안(南岸)구 서기 샤저량(夏澤良) 등 총 39명이 베이타이허(北戴河)에서 조사받고 있다고 서방 언론들이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보 후원자’ 저우융캉은 누구

    실각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와의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저우융캉(周永康·70) 중앙 정법위원회 서기가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보시라이 해임과 관련, 저우 서기는 당의 비밀조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 정법위 서기직에서 면직될 가능성이 있다고 타이완 중앙일보(中央日報)와 싱가포르 연합조보 등이 20일 보도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上海幇)으로 분류되는 저우 서기는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권력서열이 가장 낮지만 공안·사법을 총괄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검찰·법원·공안(경찰)·무장경찰, 국가안전부(우리 국가정보원에 해당)를 지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이징 외교가에는 저우가 ‘차기 최고 지도부에 자신이 맡고 있는 정법위 서기직에 보시라이가 오를 수 있도록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실제로 저우는 보시라이의 심복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소재 미국 영사관 망명 시도 이후부터 지난달 15일 보시라이가 충칭시 당서기직에서 면직될 때까지 상무위원 중 유일하게 그를 공개 지지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8일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충칭대표단을 만나 공개적으로 보시라이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저우와 보시라이 관계는 ‘금권교역’을 통해 맺어졌다. 중앙에서 밀려나 ‘권토중래’를 노리던 보시라이는 충칭시 당서기 재임시절 저우의 아들 저우빈(周斌)에게 엄청난 사업상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보시라이는 400억 위안(약 7조 2300억원) 규모의 쓰촨성 및 충칭시 석유화학 관련 프로젝트를 관련 사업자인 저우빈에게 넘겨 100억 위안의 이득을 취하게 하는 등 특혜를 베풀었다. 이에 저우는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통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등의 전화를 도청하는 것 등을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7년씩 두번 집권하려 했다”

    “7년씩 두번 집권하려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4일 재임시절 7년을 회고하며 ‘임기 7년의 대통령직을 한 번 더 하려 했다.’는 비화를 공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연희동 자택에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학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내가 대통령을 7년 했는데, 7년 7년 두 번을 프랑스식으로 하려다 ‘잘못하면 내가 3∼4번 해야겠다’는 모순에 빠지거나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까봐 딱 7년만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내가 모범적으로 (대통령직을) 한번 하고, 후임 대통령은 5년씩만 하라고 했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분들에게 (대통령 임기) 7년을 하도록 해줬어야 하는데, 5년으로 한 것이 후회가 된다. 5년은 너무 짧다.”고 말했다. 대통령 임기는 전 전 대통령 퇴임 직전인 1987년 개헌을 통해 ‘7년 단임’에서 ‘5년 단임’으로 변경됐다. 그는 “이북(북한)이 핵보유를 하고 있는데 저 사람들 빨리 없애지 않으면 자살하는 것”이라면서 “소련(러시아), 중국이 위협을 느낀다. 김정일이 술 한잔 먹고 취해서 (발사 버튼을) 누르면 베이징이 날아가지 않느냐.”고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현재 회고록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 중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아이젠하워 대통령, 세 차례 외계인과 접촉”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시절 외계인과 회담을 가졌었다고 전 미국 국방부 상임고문이 영국 유명 TV시사쇼에서 밝혔다. 최근 BBC2 ‘프랭크 스키너의 어피니어네이티드’에 출연한 티모시 굿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임시절 뉴멕시코주 인근 홀로먼 공군기지에서 외계인과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영국에서 외계인 및 미확인비행물체(UFO)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티모시는 “아이젠하워는 지난 1954년 2월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휴가를 보낼때 극비로 공군기지를 방문해 외계인들과 세 차례나 만나 회담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당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안내로 공군기지를 방문했으며 현장에는 많은 목격자가 있었다. 또한 티모시는 당시 외계인들은 전세계 각계각층에 있는 수천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무작위 접촉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재임시절 외계인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중순 기밀해체된 문서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최고사령관이었던 1952년 당시 함대 근처를 비행하던 UFO를 목격한 적도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010년에는 뉴햄프셔주의 헨리 매클로이 의원이 아이젠하워와 외계인의 면담 사실을 기술했다는 극비문서를 입수, 이를 비디오로 찍어 공개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매클로이 의원은 아이젠하워가 외계인들의 미국 방문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서에서 외계인은 인류에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로 묘사됐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회고록(回顧錄)/최용규 논설위원

    회고록 집필로 훨씬 더 유명해진 이는 영국의 정치가 원스턴 처칠(1874~1965)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01년 프랑스 시인 르네 쉴리프뤼돔(1839~1907)부터 2010년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이르기까지 노벨문학상 100여년 역사에 시인·소설가가 아닌 정치인이 이 상을 받기는 처칠이 유일하다. 정치가·웅변가 외에 저술가란 ‘고급스러운 훈장’이 붙은 것도 회고록 덕이다. 총리 재임시절 받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혜경궁 홍씨(1735~1815)의 ‘한중록’(閑中錄)은 우리가 자랑할 만한 ‘국보급’ 자전적 회고록이다. 71세 때인 1805년(순조 5년)에 썼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회고했다. 한문본에는 泣血錄(읍혈록)으로 되어 있다. 눈물을 쏟고 슬피 울면서 기록했다는 뜻이리라. 회고록은 더 이상 한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술·스포츠 스타에 이르기까지 외연이 크게 확대됐다. 회고록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자전적 에세이로 명찰을 바꿔 달기도 한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표현의 절제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폭로투성이다. 미국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는 1995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했다. ‘모니카 이야기’다. 클린턴은 탄핵, 이혼 위기로까지 몰렸다. 올봄 국내에서는 신정아의 자전적 에세이 ‘4001’이 화제를 몰고 왔다. 회고록은 과거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인생 전반을 다루는 자서전과는 차이가 있다. 자기가 겪은 일을 기록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자기 해명서나 변명서가 될 개연성이 높다. 1992년 대선 때 민자당 후보인 YS(김영삼)에게 선거자금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고백한 ‘노태우 회고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5·17 비상계엄 확대를 ‘서울의 인명·재산 보호를 위한 치안유지 차원’,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라고도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복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 등의 형태로 자신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힐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군사반란의 주범으로 한국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긴 5·6공 최고통치자들이 자기들의 역사를 고쳐 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