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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단­조총련 「35년 대립」청산의 첫 걸음

    ◎두단체 “연락기구 설치”합의의 뜻/신데탕트 기류속 조총련내 인식 변화 반증/남북한 당국의 영향력 커 자율대화엔 한계 재일한국거류민단(민단ㆍ단장 박병헌)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ㆍ중앙상임위의장 한덕수)는 1일 「조국의 평화통일 촉진을 위한 대화에 협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두 단체간에 연락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민단과 조총련이 이같이 대화를 갖고 합의케 된 것은 지난 55년 조총련 결성 이후 처음있는 일로서 박성우 민단기획실장등 4명이 조총련 사무실을 방문,백한기 사무국장등과 회동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날 합의는 반목과 질시를 거듭해온 양 기구가 불신의 벽을 허물고 협조체제를 마련한 획기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남북한 대화에도 도움을 줄 뜻있는 일로 여겨진다. ○남북대화에 큰 도움 지난달 17일 조총련측은 한덕수 중앙상임위의장 명의로 ▲조총련과 민단의 8ㆍ15 범민족대회 참가 ▲8ㆍ15를 전후해 재일동포 예술의 밤,체육교류모임 개최 ▲이같은 공동행동을 중앙은 물론 지부ㆍ거주지 등 하부조직에서도행할 것 ▲이같은 문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정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연락기구 설치를 제의했다. 민단은 이에 대해 18일 ▲조총련 간부ㆍ동포의 고향방문 ▲민단 대표단의 평양방문과 조총련측 대표단의 서울방문을 판문점을 경유해 실현할 것 ▲북경아시안게임 공동응원 등 3개항을 제의했다. 1일 양측은 양측제의를 상호 검토한 끝에 연락기구 설치부분에 합의를 본 것이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재일동포 사회에 깊은 분열을 가져 온 양 기구가 대화의 창구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산견돼 왔다. 민단 박병헌 단장은 지난달 1일 서울신문과의 회견에서 조총련과의 조건없는 대화용의를 표명했었다. 또 조총련측에서는 올해 1월 채택한 활동목표와 지난 5월 조직결성 35주년 중앙대회 보고를 통해 ▲재일동포의 권리옹호투쟁을 강화하고 ▲8ㆍ15 범민족대회가 성공리에 소집되도록 주력하며 ▲최근의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따른 조총련내의 인식전환을 배경으로 조국통일과 애국사업에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키 위한 대외사업을 강화하기로 「과업」을 설정했다. 즉 민단과 조총련은 상호대화와 협조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을 마련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아울러 ▲국제적인 동서 화해무드 ▲남북한 사이에 조심스럽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대화 움직임 ▲그리고 조총련 내부,특히 조총련계 상공인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점등도 양기구간의 대화 채널마련에 이바지한 배경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 55년 조총련이 결성된 이래 불신과 상호비방의 벽을 쌓아 온 양기구가 대립청산의 계기가 될지도 모를 연락기구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화해 낙관하긴 일러 우선 1일의 합의내용을 보면 양측 7개항 제의 가운데 단 한가지 연락기구설치만이 합의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양측은 이날 대좌에서 나머지 상대방 제의는 사실상 모두 거부 또는 보류했다. 또 양기구는 각각 남북한 당국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있기 때문에 자율성을 갖고 문제를 풀어나가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지난 35년간 반목과 질시로 일관해 오며 의사전달은 우편으로나 하던 과거를 거두어들이고 대화의 창구를 마련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해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강석진기자〉
  • 재일동포,범민족대회 참가/「협의기구」 설치 합의/민단­조총련대표

    【도쿄=강수웅특파원】 재일한국거류민단 중앙본부 박병헌단장은 1일 조총련중앙상임위원회 한덕수의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남한출신 조총련계 인사들의 고향방문 ▲남북교류를 촉구하기 위한 민단대표단의 평양방문및 조총련대표단의 서울방문 실현 ▲9월 북경아시안게임에의 공동응원단 파견 등을 제의했다. 민단중앙본부 박성우기획실장등 4명의 대표에 의해 조총련본부에 전달된 이 서한에서 박단장은 『8·15 범민족대회는 어디까지나 민족화합을 추진한다는 차원에서 각계각층의 민족성원들이 광범위하게 참가할 수 있어야 하며 특정단체나 특정인사들만이 참가하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일본지역에서만이라도 대립과 불신을 제거하고 동포화합과 상호협조하는 길을 모색하고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 이같은 사항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이날 민단측 대표들은 조총련 백한기국제국장등 4명과 1시간20분 동안 회동,양측의 제반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협의기구」 설치와 소모적인 선전전 중지에 합의했다.
  • 공무원 전직시험 응시 재일교포/일,원서접수 거부 말썽/동경도에서

    【도쿄연합】 도쿄(동경)도 스기나미(삼병)구에서 급식조리원으로 일하는 재일동포가 일반직으로의 직종전환 시험에 응시하려다 「국적조항」을 이유로 원서접수를 거부당해 일본사회의 뿌리깊은 국적차별이 또다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도쿄도 스기나미구는 23일 「일본인에 한하도록 돼 있는 지방공무원 채용규정」을 이유로 이 구내의 한 국민학교에서 급식조리원으로 일하는 재일동포 김태화씨(32)가 낸 일반 사무직으로의 전직시험응시원서접수를 거부했다. 도쿄도내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후 4년전부터 현재의 일을 해오고 있는 김씨는 한 직종에 3년이상 근무한 사람이 다른 직종으로의 전직을 희망할 경우 응시할수 있도록 매년 한차례씩 실시되는 전직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지난해에도 원서를 제출했다 접수를 거부당했었다. 김씨는 이날 지원자 40여명과 함께 구청을 방문,원서를 접수시키려 했으나 담당자로부터 『일본국적을 취득했느냐,하지 않았다면 시험요강에 의해 접수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접수를 거부당했다.
  • 「사천왕사 왔소」 새달 일 공연… 연출가 허규씨(안녕하십니까)

    ◎“전통축제 「해외마당」에 큰 보람”/“전래문화의 뿌리,일 재현에 가슴 뿌듯/춘향제등 향토축전의 활성화 힘써야”/재일동포들에 민족문화의 우월성 심어줄 터 【대담:장석영문화부장】 오직 무대를 통해 말한다는 연극연출가 허규씨(57). 그가 최근 연출가에서 문화이벤트기획가로 변신,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남원 춘향제,강릉 단오제에서 지역문화와 관련된 인물의 행차행렬을 꾸며 지역축제를 활성화시킨 데 이어 오는 8월 일본 오사카에서 펼쳐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일에 몰두해 있다. 허씨는 이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통해 한국의 전통축제 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선보여 한일문화의 고리를 복원시켜 보겠다고 벼른다. 그는 또 이번 행사가 자신의 연출무대를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 실외마당으로 옮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국내마당에서 해외마당으로 넓혀나가는 길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재일동포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온 정열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예술가에서 민족예술가로 도약해 보겠다는 그의 오늘과 내일의 목표는 무엇일까. -먼저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게 된 동기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이 행사가 태동된 것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이 치러진 이후였습니다.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서 거리축제인 「상감마마 행차요」를 기획·연출했는데 아마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저에게 이번 행사를 맡긴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기획에 들어가 이미 지난달 12일 서울 임진각에서부터 본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원래 이 행사는 신한은행의 모체인 대판흥은의 이승재전무가 「빛나거라 21세기의 어린이여」를 기업이미지의 주제로 내세우다가 교포 3세이하의 세대를 위한 전통문화축제를 착안,재일실업가들로 후원회를 결성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이 후원회는 후쿠다 전일본수상등 한일 주요인사 18명으로 「사천왕사 왔소」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나라를 연결하는 첫 행사를 이번에 갖는 것입니다. 지난달 12일 임진각에서 5백여명의 교포가 성토제등을 올려 조국순례행사의 막이 올려졌고 이달 31일 부산을 출발,다음달 19일 오사카에서 약 3천여명의 교포가 참석하는 고대의상 퍼레이드와 일본 사천왕사에서의 전통예술공연등으로 행사는 이어집니다. ○올림픽뒤 축제에 전념 -왜 행사의 이름을 「사천왕사 왔소」라고 했습니까. ▲교포들의 사상최대 뿌리찾기 운동인 이 축제의 명칭이 어째서 「사천왕사 왔소」인가 하면 일본의 사천왕사가 부여의 정림사지를 모방한 사찰로 고대 한일문화 교류의 창구역할을 맡았고,일본의 전통축제에서 「왔쇼이」(□□□)라고 외치는 말의 어원이 한국어 「왔소」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번 축제의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대로부터 많은 문물이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넘어갔다는 인식은 일본 사회에 깔려 있으나 그것을 기리는 축제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축제는 그 명칭에서 나타나 있듯이 한반도에서 받은 영향을 기리자는 최초의 축제로 오사카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고대 사기에도 나타나듯이 일본인 모두가 좋아하는 성덕태자의 스승이 고구려인이며 그런 분들이 이 시대에 오사카에 다시 나타났음을 표현해 보일 계획입니다. 또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전해준 문물들을 재현하려 합니다. 이 행사를 8월에 갖는 이유는 우리의 광복일이 8월에 들어있기 때문등입니다. -연출가에서 기획가로 변신한 셈인 데 보람을 느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활동을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10년 주기로 변한 것 같습니다. 60년대에는 주로 서구식 연극에 주력해 왔고 70년대에 넘어오면서 우리 연극 찾기에 눈을 돌렸죠. 그러다 80년대에 와서는 창극쪽으로 관심을 모았고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부터 축제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축제다운 축제가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축제를 기획·제작·연출하는 단체를 만들어 보자는 데 착안했던 것입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단체가 축제문화진흥회죠. ▲81년부터 89년초까지는 국립극장장으로 공직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종합기획 「마루」라는 이름으로축제행사를 맡아 추진해왔는데 지난해 3월 주식회사로 등록하면서 「축제문화진흥회」란 간판을 달게 되었습니다. 거리축제는 가만히 서 있는 무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오고 가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구간별로 업무를 분담해 조립형태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인력과 장비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각 지방에 따라 고유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경시되어 온 경향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활성화가 되리라고 보십니까. ▲각 지역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유의 축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축제들이 주로 관청에서 주관해 왔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행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남원의 춘향제만 해도 제가 거의 30여년간 굿판등을 쫓아다니며 보아왔지만 전혀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어디든 백일장,노래자랑 등이 있고 난장에 서서 먹고 마시고 떠들썩한 것만 있었지 정작 삶의 질을 높여주는 축제다운 축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신문에서 올해부터 전국 10개 지역에서 펼치는 향토문화축제는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스럽고 반드시 지역문화 발전에 큰 몫을 하리라고 기대됩니다. ○마당극 현대에 잘 맞아 -현재 우리의 공연계에 대해 하실 말씀은. ▲제 자신이 공연계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꼬집어 얘기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공연예술은 지금까지 보다는 앞으로 훨씬 독창력을 발휘해 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더욱 활성화도 이루어지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우리는 전파와 전자의 뉴미디어시대에 살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인간적인 모습의 예술공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고 또 그리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그리워지고 자연이 그리워지고 하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찌보면 우리 공연계도 혼돈적 상황이라고 해야겠지요. 각종 개방화에 편승,외국의 공연단체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외국과 문화의 뿌리를 달리하는 우리나라에서 현재의 예술적 환경과 시대상황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극형식은 어떤 것일까요. ▲저보고 마당극의 기수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만 마당극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맞는 전통의 현대적 수용의 지름길이 된다고 봅니다. 지난 75년 미국과 유럽을 40여일간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공연만 38편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각 나라의 연극이 자기네 민족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통일성은 언어입니다. 음식문화도 중요하지요. 역사와 국가를 떠나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언어나 음식이 같으면 그 기질도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우리의 기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민족의 신명,신바람도 그런 것중의 하나죠.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또 놀기 좋아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놀기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적 재질이 뛰어난 민족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을 무수히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같은 언어,같은 음식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가진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음악적으로나 기타 다른 형식에서도 나름대로 획일적이 아닙니다. 신바람 잘 내는 민족이기 때문에 싸움도 잘하고 분파도 잘 일으킵니다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연극부 활동 -맨 처음 연극을 하시게 된 동기는. ▲원래 대학의 전공은 임학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할 때인데 연극에 열을 올리던 아저씨 집에서 기거를 했어요. 그때 연극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서울농대 3학년때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연극인의 길을 걸었죠. 그동안 연극연출 횟수는 1백10여편정도였고 방송드라마는 약 5백여회를 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77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물도리동」과 68년에 제작했던 드라마 「탑」입니다. -가족이 분야는 달라도 모두 한길을 걷고 있다고 들었는데. ▲시인인 아내(박현영)와 시립국악단에 있는 딸,그리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이 가족인데 모두 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전통예술의 뿌리에서 우리 예술을 꽃피우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갈 작정입니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 문화예술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 “평양에도 개혁의 미풍”/호 국립대 연구원,홍콩지에 방북기

    ◎자영업 인정ㆍ화폐경제… 10년전 중국과 비슷/「국방우위」변화… 보수파 제동으로 개혁 더뎌 북한은 아직도 겉보기에는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로 보이지만 최근 들어 자영업이 인정되고 화폐경제요소가 등장하는가 하면 국방우위정책을 재평가 하는 등 안으로는 중요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홍콩의 시사주간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5일 발매된 12일자호에 보도했다. 호주국립대학 동북아과정 연구원인 개리 클린트워스씨가 지난 4월 북한을 다녀온뒤 기고한 「평양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북한의 내면적 변화가 흡사 10년전 중국의 변화를 방불케 한다고 진단하면서,그러나 당과 군의 보수세력 때문에 변화는 느리고도 통제된 형태로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이 기사의 요약. 북한은 겉보기에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북한에도 오래전부터 단파방송이나 재일동포들의 왕래를 통해 조금씩 외부소식이 들어왔다. 북한당국도 중앙계획경제와 지나친 국방우위정책으로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있으며 동북아지역 경제발전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도 개혁을 통해 살아남길 원하지만 이로 인해 중국ㆍ동구ㆍ소련처럼 권력이 불안해지거나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북한의 기술관료 엘리트들은 사석에서 사회주의의 폐단과 북한구조의 단점을 인정하곤 한다. ○사회주의 폐단 시인도 북한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도 승리할 수 없으며 테러ㆍ원자탄 등이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와 보수적인 당관료를 중심으로 신사고에 대한 저항도 엄존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완만하고 통제된 형태를 띨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에도 이미 변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모습은 10년전 중국과 비슷하다. 노동자들은 생산량에 따라 현금 보너스ㆍ상품ㆍ메달 등을 추가로 받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자영업도 허용되고 있다. 기차역에는 주로 여성들이 삼륜차를 대기시키고 있는데,이것이 대표적인 자영업이다. 이들의 노동은 매우 힘드나 수입은 일반인들에 비해 4∼5배에 달한다. ○국가발행 복권도 등장 또 북한이 점차 화폐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보조금에 의해 싸게 공급되던 난방ㆍ주택임대료ㆍ수도ㆍ전기료 등을 실제가격으로 올리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지폐를 쿠폰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이자(일반예금 1∼2%,정기예금 3∼5%)도 지급된다. 국가가 운영하는 복권도 등장,당첨자는 TV 1대를 구입할 만한 「거액」도 만져볼 수 있게 된다. 청진ㆍ함흥ㆍ판문점,그리고 북방의 일부지역등 군사적 관련지역을 제외하고는 여행제한도 크게 완화됐다. ○중국경제특구에 관심 이같은 변화는 북한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신호」이다. 국방우선주의에 대한 재평가는 최근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이 군사적 반응을 초래할 어떠한 자극도 회피하고 있다. 또 비무장지대의 땅굴이 자신의 소행임을 인정하면서 그같은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비친다. 북한은 중국의 경제특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방위산업의 일부를 자전거ㆍ완구ㆍ컴퓨터ㆍ레코드ㆍ생필품 공장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물론 주한미군철수문제,일본에 대한 불신등 변하지 않고 있는 부분도 있다.
  • 민단,조총련과 화합 모색/올 8ㆍ15계기 남ㆍ북한 교차방문등 제의

    ◎지위향상 대일 공동 로비도 추진 【도쿄=강수웅특파원】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중앙본부(단장 박병헌)는 일본에 거주하는 67만 한인사회에 있어서의 민단계ㆍ조총련계의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오는 8ㆍ15광복절을 계기로 ▲조총련중앙과 민단집행부와의 조건없는 대화 ▲인도적 차원에서의 남북한 상호방문추진 ▲스포츠ㆍ문화ㆍ경제면에서의 상호교류 등을 제의키로 했다. 민단중앙본부는 이번 대화제의를 통해 구체적 공동추진사업으로 취업ㆍ공직채용 등 전 재일동포의 이익확보를 위한 대일본정부에 대한 로비활동을 공동으로 펼치는 것은 물론 의료분야 등 첨단과학기술부문에서의 공동연구ㆍ개발추진,노인홈(양로원)건설 등 전시효과적이 아닌 실질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남한출신 조총련계 인사들은 한국을,북한출신 민단계인사들은 북한을 각각 방문할 수 있도록 추진하며 오는 10월 북경아시안게임 때는 5백여명 규모의 공동응원단을 파견하는 문제등도 중점 논의키로 했다.
  • 교포화합에 앞장 민단 박병헌단장

    ◎“민단­조총련 장벽도 곧 헐리겠지요”/조총련 내부에도 「변화의 기류」 움터/노대통령 방문계기,“동포로 포용” 결심 민단사상 최초의 소련 공식방문을 앞두고 있는 박병헌단장(61)은 분주한 속에서도 1시간여에 걸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성과,조총련과의 대화계획,소련방문의의 등을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먼저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재일동포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이를 계기로 조총련측과의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요. ▲사실 대통령의 방일결정때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민단내의 의견도 찬ㆍ반으로 갈려있는 상태였습니다. 우선은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사죄태도가 분명치 않은 상태였다는 점,또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보장문제도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대통령의 방일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논이 있었습니다.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문제는 70만 동포의 생활권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민단이 대통령 방일을 반대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민단집행부에서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민단입장에서는 이만큼 노력했으면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와서 한말씀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며,90년대 정리의 계기가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 판단은 옳았습니다. 대통령의 방일은 45년 재일동포의 한을 풀어주었고,일본의 정치ㆍ지식인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새로운 관점에서 인식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차원높은 국회연설에 대해서는 민단ㆍ조총련을 불문하고 재일동포전체가 긍지를 갖게 한 큰 성과였습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방일은 재일동포사이의 민단ㆍ조총련의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노대통령은 법적지위해결은 민단계동포 뿐만 아니라 조총련계동포들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일본정부도 수긍했고,한국과는 교제를 갖지않던 일본사회당ㆍ공산당 수뇌들과도 대화를 나눌 계기가 됐습니다. 대통령의 국회연설 때 사상유례없이 전 국회의원이 참석했다는 것은 한일관계를 중요시하려는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밖에는 모르던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민단ㆍ조총련의 장벽을 제거할 것입니까. ▲노대통령이 민단주최 환영리셉션에서 『조총련계 인사들을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동포로서 포용해 나가야할 것』이라는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책임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45년간 일본에서 받았던 차별의 설움을 씻고,동포간 투쟁의 역사를 종식시켜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우리의 문호는 개방되어 있으며 조총련중앙과 조건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기 때문에 이달중으로 제의할 생각입니다. 사실 그동안에도 몇차례에 걸쳐 대화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건이 다릅니다. 독일의 통일에서 교훈을 얻는 바와 같이 우리의 남북통일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 시초는 일본 도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계정세가 변화하는 가운데 처음으로 시도되는 우리의 제안은 받아들여지리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조총련이라는 조직은 아직도 북한의 지령을 받아 파괴활동을 일삼는 적성단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공작적 차원의 흉계는 버리고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대화에 나서도록 권고하려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로 보아 저쪽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조총련 조직자체로서는 아직도 일체의 대화접촉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한덕수의장은 나이도 많고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으나 일반회원들의 공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인들은 융통성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총련인사들의 한국방문도 매년 2천여명씩을 상대로 실시하는 성묘단의 차원을 떠나 지도층에서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폭을 넒혀나가도록 주선하겠습니다. ­이번 민단집행부의 대거 소련공식방문단 구성은 사상최초의 것이 아닙니까. 방소 목적은 무엇입니까. ▲소련거주 한인들의 모임인 고려한인회(회장 미하일박) 간부들과 만나 소련과 북한의 현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듣자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해외동포로서 본국의 북방정책을 지원하고 참여할 길을 찾자는 뜻도 내포된 것입니다. 이와함께 북한의 지도급 출신 소련 거주 인사들의 일본방문도 초청,의견을 듣는 기회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오는 7월4일에는 파리에서 개최되는 해외한민족협의회 운영위원회에도 참석키로 되어 있습니다.
  • 징용 한인명단 64명 일 돗토리서 또 발견

    【도쿄 연합】 일본 홋카이도(북해도)와 효고(병고)현에서 한국인 강제징용자 명단이 발견된데 이어 돗토리(도취)현에서도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이 지방 이와미(암미)광산에 끌려와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한국ㆍ조선인 64명의 명단이 사회당의원과 재일동포에 의해 보관돼온 사실이 11일 밝혀졌다.
  • 조총련까지 등돌려 간다(사설)

    얼마전 일본의 한 유수한 일간지에 장명수란 사람의 회견 기사가 실렸다. 「공화국(북조선) 귀국자 문제 대책 협의회사무국 대표」라는 기다란 직함의 인물이었다. 『대단히 곤란한 일을 시작해 버렸습니다』로 그 회견 기사는 시작된다. 직함 그대로 그는 북한으로 간 「재일 조선인」의 실태조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 자신 재일동포의 북송을 적극 추진했고 그의 부모형제도 이른바 「귀국선」을 탔던 처지이다. 80년에는 「조국 방문단」의 부단장으로서 방북한 바도 있다. 그런 처지의 사람이 어째서 「귀국자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인가. 북송에 관여할 때까지 「지상천국」으로 생각했던 북한이건만 그 후의 사정은 그렇지 못한 곳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돈을 보내 달라,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행방불명자 또한 속출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던가 반성하면서 행방불명자 친척들의 호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0만명 가까운 북송 동포의 처지와 그 일의 선봉에 나섰던 자신의 과오를 아프게깨달은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북한이 지구상에서 타국땅에 존재하는 가장 강대한 우익으로 쳐오는 것이 일본에 있는 조총련이다. 그들은 조총련을 많이 이용해 왔다. 김부자의 생일이면 강제로 성금을 거둬들이는 대상이 그것이었으며 해외공작을 함에 있어서도 그것이 무대가 되었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더구나 그 세력은 막강했다. 양두구육의 감언이설이 먹혀들었을 때까지 그러했다. 하지만 진실이란 언제까지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벌이는 재일동포 모국방문 사업에 조총련계 동포들이 끼어들면서부터 북의 일방적 메시지가 얼마나 허위에 찬 것인가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는 이미 북녘땅에 다녀온 사람들도 있었다.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셈이다. 그 위에 북이 자랑스럽게 벌인 북송사업은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되어 버렸다. 「낙원」아닌 「지옥」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엊그제 도쿄에서 조총련에 의해 「김일성 타도 재일 조선인 궐기대회」가 열린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그동안의 흐름으로 보아 당연히 있어야 할 움직임이 현실화하였다는 것 뿐이다. 그들은 김일성을 조국통일의 「암적 존재」로 규정했다. 성숙한 정치사회에서 사는 그들은 남과 북의 실체를 공정한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KAL기 폭파사건과 김현희의 증언을 들었고 그에 대한 북의 엉뚱한 반응도 보았으며 한필성­필화 남매 관계의 시말도 엄정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번 불 댕겨진 그 움직임이 일본전역으로 확산되는 일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나갈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도 그런 움직임의 현실화에 촉매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더구나 노대통령은 교민 리셉션 석상에서 『조총련을 적대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 형제로 받아들이면서 도와 달라』고 하여 동족으로서의 끈끈한 정의를 환기시킨 바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역시 북한의 자세전환 그것이다. 지구촌의 조류를 직시해야겠건만 그렇지 못하는 그들이 참으로 답답하다. 며칠 전에 열린 최고인민회의도 「체제고수」를 재천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 “한국의 국제적 지위 격상” 실감/노대통령 방일을 보는 일의 시각

    ◎노대통령 환대 속마음으로부터의 표현/70만 재일동포에겐 자긍심 심어준 계기 일본의 대한인식은 최근 두번 변했다. 한번은 88서울올림픽때였으며,또 한번은 이번 노태우대통령의 방일때였다. 서울올림픽때 일본국민들이 보여준 관심과 지원은 대단한 바 있었다. 「스바라시이」(훌륭하다)를 연발했으며,재일한국인들은 모처럼 어깨를 펴고 다녔다. 이때 일본인들은 같은 아시아권에,그것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이처럼 「큰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으며 자긍심마저 느꼈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일거에 부상시킴과 동시에 일본의 대한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번 노대통령의 경우도 우선 그 인상부터가 만점이었다. 「노 스마일 하네다(우전)착륙」등의 사회면 톱기사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일본국민들의 마음을 적어도 사흘동안은 사로 잡았다. 궁중만찬,사상최초의 국회연설,일본기자클럽에서의 한국대통령의 모습은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의 한국을 일본인들은 군사정권의 연장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당당한 체격에서만은 「군출신」임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한살차이의 동년배인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나란히 선 그의 모습은 월등했다. 노대통령이 체일하는 사흘동안은 물론 방일 휠씬 전부터도 일본의 언론들은 한ㆍ일의 현안과 노대통령에 관한 기사로 지면을 가득가득 채웠다. NHK를 비롯한 각 TV방송도 노대통령의 도착광경에서부터 영빈관에서의 환영행사등 각종 이벤트를 그때그때 생중계했다. 거리에는 「국빈의 일본 공식방문때문에」 교통을 통제한다는 알림이 곳곳에 나붙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협조적이었다. 경시청은 당초 대통령의 방일기간중 도심교통량의 30%정도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도쿄시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실적은 그 목표를 웃돌았다. 평소보다 휠씬 한적해진 도심을 달리는 택시운전사들은 『대통령이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싱글벙글했다. 일본정부당국이 사상유례없이 세심하게 배려한 이번 대통령의 방일행사는 무드 그자체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다만 아키히토 일왕의 「역사청산」에 관한 발언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사죄의 뜻을 포함하느냐의 여부에 논란은 있으나 전체적인 방일성과는 대성공이었다. 전후 45년만에 골라낸 사죄용 어휘 「통석」에서 나타난 바와같이 일본인들은 확실히 인색한데가 있다. 좀더 알기 쉬운 말로 『일본이 잘못을 저질렀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 책임을 느껴 앞으로 잘해 나가겠다』라고 말하면 충분하지 않느나고 생각하는 한국측의 입장에 흡족할 만한 표현은 일본측은 이번에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일왕의 상징성,헌법상의 제약,정치ㆍ외교적 한계등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실상 그 속사정은 다른 데 있다. 『일왕의 말 한마디로 일왕에의 충성을 맹세하며 목숨을 바친 수많은 「황국신민」의 가족들이 남아있는데 이제와서 천황이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한다면 이 유족들의 입장은 무엇이 되느냐』라는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속마음이다. 그나마 노대통령의 방일에 이만한 표현이라도 나온 것은 한일 언론의 힘이었다. 노대통령이 여러차레 밝힌바와 같이 일왕의 표현,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직접적인 사죄,중ㆍ참의원의장의 전례없는 사죄코멘트 등 전반적인 정황으로 미루어 볼때 과거역사의 인식에 있어서 일본측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다만 일왕의 표현만이 해석상의 뉘앙스를 남길 뿐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일본인은 『혼네(본음)와 다데마에(건전)의 역전』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속마음을 표시하는 「혼네」와 겉으로 나타내는 행동 「다데마에」가 다른 것이 일본사람이다. 겉으로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잘하면서도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혼네 다네마에론」은 일인들이 갖고 있는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따라서 「다데마에」는 항상 「혼네」보다 화려하며 외교적인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의 경우에는 이것이 거꾸로 되었다는 것이다. 속마음으로는 더 해주고 더 표현하고 싶은데도 여러가지 「사정」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의 「대접」이 그 정도에 머물렀다는 견해이다. 노대통령은 26일 귀국에 앞서 가진 일본기자클럽에서의 오찬회견에서 『나는 사흘간의 일본방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일본국민의 따뜻한 우의를 느끼며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두나라간의 공통된 열의를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지적한 「새로운 것」은 바로 일본의 대한인식의 변화이며,그 변화는 『이제 한국은 만만치 않은 존재이다』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전후 45년동안 변화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바로 한국과 한국민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 일왕,“불행했던 시대” 대목서 긴장/노대통령 방일여로 이모저모

    ◎도이 사회당위장도 “엄청난 과거사과”/가이후총리 “동년배끼리 대화로 풀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낮 12시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행사 참석,일왕 예방,도쿄도지사 접견,일본 유력인사 개별접견에 이어 가이후총리와의 1차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참석 등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일왕 주최만찬◁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가장 관심을 모은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24일 저녁 8시40분쯤 시작. 미리 준비된 만찬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사에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라는 대목에서 잔 기침을 해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이들의 교류를 비롯한 양국의 장래문제를 언급하면서는 밝은 어조로 바꾸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국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 ○애국가 연주뒤 축배 만찬사가 끝난 뒤 애국가 연주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과 한국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이어 노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고대로부터의 양국간 문화교류를 선린우호의 역사를 담담한 어조로 지적한 뒤 근세에 있어서의 어두웠던 과거에 언급. 노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고 힘을 주어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역설. 노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고 이날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평가하고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모두 노력하자』고 다짐.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노대통령 내외의 입장,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노대통령의 답사,민속공연은 보도진에게 공개됐는데 이때마다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7시50분쯤 일왕 궁성인 황거내 만찬장 호메이 덴(풍명전)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아키히토일왕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은 만찬장인 호메이 덴 2층으로 오르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오늘 만찬을 통해 반가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되어 기쁘다』고 인사. 이어 하오 8시35분쯤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을 선두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미치코왕비,나루히토(덕인) 왕세자부처,그밖의 왕족들 순서로 만찬장에 입장했는데 이순간 미리 테이블에 착석해있던 귀빈들이 일제히 일어섰으며 궁내청소속의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벽을 넘어서」를 은은히 연주.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착석한 헤드 테이블에는 가이후총리 내외,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 내외,다케시타 나카소네 전총리 내외,쿠사바최고재판소장관 내외 등 일본측 인사와 최호중외무부장관등 우리측 수행장관들이 같은 열에 나란히 착석. 이날 만찬 음식은 제비집스푸 연어구이 등 주로 서양식이었으며 메인디시는 쇠고기였고 포도주와 일본주도 포함. ○…노대통령 내외는 하오 10시45분쯤부터 순쥬노바로 자리를 옮겨 일본 민속공연 「아악」을 일왕 내외와 약 20여분간 관람. 노대통령이 관람한 아악은 고대 한반도에서 전래한 고려악형식이었으며 노대통령은 민속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석으로 가 피리모양의 악기를 입에 대보기도 하며 연주팀을 격려. 이날 궁성만찬은 당초 하오 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 사이에 환담이 길어지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따라 45분이 길어진 밤 11시15분께야 종료. ▷1차 정상회담◁ ○…이날 하오 영빈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간의 제1차 정상회담은 접견환담및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진행 ○가벼운 담소로 시작 하오 6시 정각 영빈관에 도착,접견실인 2층 사이란 노마홀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2명씩의 배석자와 함께 자리에 앉아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 가이후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측의 사정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두차례씩 지연된 데 대해 송구스러움을 표한 뒤 한국내에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문을 결심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정달 어려운 방일이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만큼 뜻있는 방문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20세기를 깨끗이 정리하여 밝은 21세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가이후총리는 『각하께서 6ㆍ29 민주화선언의 선두에 나서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같은 연대 출신이므로 뜻을 나누면 대화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가이후총리는 이어 『곧 있을 정상회담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죄」에 앞서 사죄의 뜻을 간략히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 「고맙다」고 응답한 뒤 자신가 가이후총리,아키히토 일왕이 가가가 32,31,33년생임을 들어 『서로 배짱이 통하는 동년배의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면 긴 역사속에서 짧고 불행했던 기간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각계 인사접견◁ ○…노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스즈키 도쿄도지사를 접견한 데 이어 나카소네(중증근),다케시타(죽하) 전총리,도이(토정)사회당위원장,이시다(석전)공명당위원장,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 등 일 정계원로및 중진들을 차례로 접견. 다케시타 전총리는 노대통령을 만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기를 빈다』고 했고 도이 사회당위원장은 『과거 양국간에 있었던 엄청난 일에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고 36년 식민통치등에 대한 사회당으로서 입장을 전달. ○일왕과 1호차 탑승 ▷환영식◁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1시20분 숙소인 영빈관 앞뜰에서 아키히토일왕 내외 나루히토(덕인)왕세자 왕족대표인 마사히토(정인) 일왕제 가이후 일총리부처 일본 전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환영식에 참석,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일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하오 1시19분 아키히토 일왕 부처와 영빈관 현관 입구에서 첫 인사를 교환한 뒤 붉은 카펫이 깔린 테라스에서 일왕 부처와 나란히 서서 의장대가 연주하는 애국가와일본국가를 들으며 새로운 한일 선린우호관계 발전을 다짐. 노대통령은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총례를 받은 뒤 도보로 의장대를 사열. 노대통령은 사열을 마친 후 환영식에 참석한 사쿠라우치요시오(앵내의웅) 일 중의원의장 쓰치야 요시히코(토옥의언) 참의원의장및 일 각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 노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환영식이 끝나자 아키히토 일왕과 국빈 1호차에 탑승하면서 환영나온 도쿄 한국인학교 학생,일본국민교생,재일교민 등 2백명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고 이들은 양손에 든 태극기와 일본국기를 흔들며 환호. ▷일 하네다 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4일 정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이원경 주일대사및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일 외무성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역사적 일본방문을 시작. 노대통령 내외는 이어 다나카 의전장의 소개로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 내외와 야나기 겐이치 주한 일본대사 내외등 일본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재일동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대기하고 있던 국빈차량에 탑승. 이날 하네다 공항에는 경호관계로 일반 환영객은 출입이 금지됐고 공항구내에는 일본경호요원들이 50∼1백m 간격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일본 NHK­TV는 정오 뉴스시간에 생중계로 도착광경을 방영.
  • 과거청산과 새로운 한일관계/노태우대통령의 방일에 부쳐(사설)

    일본을 일컬어 흔히 「가깝고도 먼나라」라고 한다.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나 감정적인 측면에서나 이해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괴리가 크다는 표현이리라. 우리는 24일부터 2박3일간 있을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이 이같은 괴리를 줄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바란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양국정부간에는 그동안 재일동포 3세의 법적지위문제와 일본국왕의 사죄문제 등으로 지루한 교섭이 오간 것을 국민들은 지켜보아 왔다. 특히 사과문안을 놓고 밀사가 오가는 막후교섭까지 계속되고 있으나 결과가 신통찮은 점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대통령 방일을 반대하는 의견마저 있어온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의 방일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은 왜 그곳에 가는가. 현재 한일양국간에 특별한 현안은 없다는 것이 외교당사자들의 말이다. 그런데도 방문정상외교를 펴려는 것은 장차 동북아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두나라의 관계개선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또 안보와 경제분야에서의 협력과 보완이 두나라의 국익과도 일치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과문제에 대한 상식적 결론이 나올수 있다. 양국간에는 강점과 탄압이라는 역사가 있고 이에따른 국민감정문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까닭에 장래의 진정한 협력과 발전을 이루려면 이같은 과거의 청산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가해자인 일본이 이같은 기본인식을 외면하고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에 인색하다면 우리 국민들의 대일감정은 풀릴 수 없다. 노대통령이 꼭 일왕의 사과를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으로서는 과거를 사과하고 장차 선린관계를 발전시킬 좋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입은 피해가 엄청난 것인 만큼 얼버무리는 정도의 사과는 반드시 다른 기회에 또다시 이 문제를 재론케 만들 것이다. 우리는 과거역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수사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두나라간의 현안중에는 일본의 과거 잘못으로 파생된 현실적 문제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재일교포의 법적지위문제는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당면현안이다. 일제의 희생자로서 당초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일본사회에 살게 된 재일교포들이 여러가지 제약과 차별대우를 받고 있음은 인과관계로 보아서도 부당하다. 지난 4월말 열린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지문날인,외국인 등록증 상시휴대,강제추방제도,재입국허가 등 이른바 4대악 제도의 일부적용 완화와 교포3세의 법적지위문제에 대체적 합의를 보았으나 4대악제도 폐지와 취업차별철폐 등 차별대우의 시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노대통령의 방일이 교포지위를 개선해 나가는데 있어 새로운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 노대통령의 방일에서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는 바는 경제분야의 가시적 협력이 이루어질 것이냐이다. 양국간에는 무역역조와 첨단기술 이전문제가 경제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다. 첨단기술문제는 국제시장에서 경쟁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 업계에 일본의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발상이지만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의 민간기업이 잠재적 경쟁자인 우리에게 얼마나 기술을 전수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연간 4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역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정상외교를 전후하여 전개된다면 어느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비관세장벽을 낮추고 대한수입을 정책적으로 확대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현안들이 대통령의 방일기간중 꼭 가시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원칙이 결정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외교교섭에 앞서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 이같은 현실적 기대와 아울러 우리의 통일까지를 내다본 먼 장래를 내다보며 한일간의 구조적 문제점을 풀어나가고 우호협력관계를 증진하는데 이번 정상외교의 목표가 두어져야 함을 강조해 둔다.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84년 「유감」보다 진전… 대승적 차원서 수용

    ◎일왕 「사과문안」 최종절충 안팎/가ㆍ피해자 명시됐지만 「책임」은 약해/일왕ㆍ총리 사과 합치면 우리측 요구수준 될듯 노태우대통령 방일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궁정만찬석장에서 밝히게 될 대한사과문안에 대한 한일 양국간 협상은 방일 하루전인 23일 일단 마감됐다. 야나기 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가 이날 하오 최호중외무장관을 예방,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고 사과의 주체를 밝히는 내용의 최종적인 일왕사과문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최장관도 이날 야나기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일본측이 노대통령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견지,신중하고도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한다』며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사과문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데 이어 『이번 방일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밝힐 사과수준은 84년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당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말한 「유감표명」보다는 진전된 것』이라고 강조,우리측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시사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은 ▲한일 양국간 과거사에 있어 가해자및 피해자 명시 ▲사과주체의 표시 ▲84년 당시의 「유감」보다는 더 강도가 높은 사과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우리정부가 요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시,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분명히해야 한다는 수준에는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수준을 토대로 일왕사과문안을 정리해본다면 『본인(일왕)은 금세기 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일본)가 한국에 끼친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데 대해 고통과 슬픔을 통절히 느끼며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로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양국간의 이번 협상은 우리측의 강력한 입장개진과 일본측의 양보가 어우러져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과거청산을 희망했던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84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식외교경로 전달방식을 선택,이날 하오 야나기 대사가 최장관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을 한국측에 전달. 일본측은 이에앞서 22일 밤 고위특사인 세지마 류조(뇌도용삼)씨의 보고를 토대로 가이후(해부) 총리 주재로 나카야마 외상,사카모토 관방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최종문안을 23일 제시키로 결정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이 자리서 일왕발언의 헌법상 허용문제를 감안,일왕의 사과표명을 한국측의 요구수준보다는 낮추되 대신 가이후 총리가 한국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깊은 반성과 책임을 밝힌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야나기 대사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35분가량 늦은 이날 하오 2시35분쯤 외무장관접견실로 최장관을 예방,최종문안 전달과 함께 일본측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언. 40여분간 계속된 이 면담에서 최장관은 『양국관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일왕의 사과문안이 우리국민의 기대를 상당한 정도 담기를 희망한다』면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재차 강조했으며 야나기 대사는 이에대해 어려운 일본 국내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일본대사관측은 야나기 대사가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 『본국정부로부터 텔렉스 도착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일본측이 우리측에 공식통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통을 겪었음을 시사. 최장관은 특히 야나기 대사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건네자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 제시가 온 국민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고 답변,일본측이 우리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과문안을 갖고 왔음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최장관은 또 야나기 대사와 악수하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그냥 앉아서 얘기하는 표정을 찍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 최장관은 면담을 끝낸 뒤 청와대로 직행,노대통령에게 최종사과문안및 일본측 정황등을 상세히 보고. ○…최외무장관은 이날 노대통령에게 일측 사과문안을 보고한 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한동안 문안내용을 놓고 숙의. 노실장은 이어 삼청동에서 외무부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청와대로 돌아와 이수정공보수석비서관을 급히 찾았는데 주변에서는 『일측의 사과문안과관련한 우리측 대응입장을 다시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 노실장은 기자들이 『일왕사과문안은 절충이 모두 끝났느냐』는 물음에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하면서 『비행기 타는 일만 남은 것 아니냐』고 말해 양국간의 절충이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 노실장은 일왕의 사과수준을 캐묻자 『일왕과 총리의 사과내용을 합치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다소 미흡함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답변. 노실장은 이날 전달된 일본의 사과내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당장 문안을 펼쳐보일 수는 없으나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피력.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측 사과문안과 관련,『노대통령의 일왕주최 만찬답사ㆍ국회연설ㆍ일총리주최 만찬답사 등을 일부러 다시 손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사과수준과 외교적으로는 정상적인 것 같다』고 피력해 다소 우리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84년 사과수준」보다는 강도가 있는 것임을 시사. 이 관계자는 『일측의 사과문안이 일본내에서는 많은 반대견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일본정부로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 ◎노대통령 맞는 동경의 기류/「침략국」인상 씻고 “평화지향 일본” 부각 겨냥/“한ㆍ일 신협력시대”들어 실리 치중 말은 안해도,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에 대해 일본측이 전례없이 중점을 두고 배려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정」에 기인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미래지향적 우호ㆍ협력관계의 구축을 노대통령 방일실현의 첫번째 목적으로 꼽는다.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두나라 공동전선을 구축하며,세계경제 블록화에 대처하기 위해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론을 들고 있으나 그 「필요성」은 더욱 현실적인 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가이후(해부)정권의 장기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외교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오는 8월이면 발족 1년을 맞는 가이후내각으로서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방일실현,한국과의 유대강화,동구제국과의 관계개선등 외교실적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부상시킴과 동시에 「본격정권」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외에 인식시켜줄 필요가 절실하다. 두번째는 일왕의 방한실현 타진이다.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한국방문이 필요하다. 일왕의 한국방문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활히 함으로써 세계적 경제마찰의 초점을 분산시키자는 등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신칸센(신간선)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판매등을 통해 기존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없지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이같은 외교목표 설정은 한국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학자ㆍ변호사ㆍ종교인등 58명은 『의회는 36년간의 식민지지배를 통해 일본이 한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준 데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사과한다』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일본 중ㆍ참의원및 각 당에 요구했다. 와다 하루키(화전춘수) 동경대교수,다카키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 다케우치 겐타로(죽내겸태랑) 일본기독교협의회장 등을 대표로 하는 이들은 「한국병합조약 80주년을 맞아 조선식민지 지배 반성의 국회결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 이것은 진정한 인식전환만이 우호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 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씨는 최근 산케이(산경)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일왕은 일본의 책임소재를 명쾌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서,일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천황이다. 노일전쟁으로부터 종전까지 일본은 가해자였으며 한국은 피해자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천황의 사죄내용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의미가 명시되어야 한다. 총리가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한국민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이같은 식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소 일본의 대한관에서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뉘우침과 반성의 뚜렷한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히려 최근의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등지에서의 극우국수주의자들에 의한 폭발테러사건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일제당시의 의식과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언행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과거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도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일본법원은 일본군의 「침략」과 「대학살」표현을 완화토록 지시한 문부성의 수정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결까지 내렸었다. 역사적 사실을 수정하도록 강요하는 정부,또 이를 마땅한 것으로 판단하는 법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일부 지배층의 기본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한ㆍ일우호관계는 수립될 수 없다. 일본의 잘못된 대한인식과 태도는 지난번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보장ㆍ처우개선 협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우여곡절끝에 「3세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도의 합의를 보았으나 1ㆍ2세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70여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의 법적 지위문제는 바로 인간의 기본권인인권과 생존권의 문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울 받으며 일본사회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그 자손들의 법적 안정성 보장및 차별철폐,원폭피해자문제,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등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문제는 많다.
  • 「사과수준」막판 “접점찾기” 신경전/일 특사 세지마의 “서울행보”

    ◎일 제시 최종문안 가해자 명시 불분명/84년 수준보단 진전… 기대에 크게 미흡/일측,여론의식… 후쿠다서 세지마로 특사 교체한 듯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 첫날인 24일 하오 궁정만찬석상에서 밝히게 될 한일양국간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사과수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했던 양국간 협상이 막바지 「초읽기」에 돌입했다. 일본측이 22일 상오 가이후(해부) 총리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한국측에 제시할 최종적인 사과문안을 사실상 확정한데다 가이후 총리의 특사로 세지마 류조(뇌도용삼) 이토주(이등충)상사 상담역을 서울에 보내 일본측의 전반적인 정황 등을 한국측에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측이 이날 제시한 최종문안은 사과수준이 84년 당시 유감표명 보다 진전된 내용을 담고있기는 하나 가해자인 일본의 명시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했던 정부의 당초 기대와는 동떨어져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따라 실질적인 최종사과문안은 양국간의 막바지 협상결과에 의해 다소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서인 외무부는 이같은 점을 인식,비록 일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이라 하더라도 우리측의 기본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새로이 문안조정을 촉구할 방침임을 굳혀 사과문제를 둘러싸고 양국간에는 마지막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측 특사로서 커다란 관심을 끌고있는 세지마씨는 양국간 현안해결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이날 낮12시5분 서울에 도착한뒤 평소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태준 민자당최고위원과 함께 노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청와대로 직행. 이날 노대통령은 세지마씨를 하오1시반부터 3시까지 1시간30분동안 접견,일왕 사과문제등 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수정청와대 대변인은 『노대통령은 가이후총리의 개인적인 부탁을 받고 방한한 세지마씨를 통해 노대통령 방일에 따른 가이후총리의 생각과 일본내 상황을 청취했다』고 간단히 발표했으나 이자리에서 한일간 외교적 쟁점이 되고있는 일왕의 사과문제가 거론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다』로 일관. 이대변인은 그러나 세지마씨가 일본측의 마지막문안을 노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설명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문제와 관련,문서를 전달하거나 한 일이 없다』고 좀더 적극적으로 부인. 한편 세지마씨는 불과 다섯시간정도 서울에 머무른뒤 이날 하오5시15분 출국. ○…일왕사과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외교적 분쟁을 해소,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당초 양국정부는 지난 14일 김정기 외무부아주국장의 방일시 외무부를 중심으로 양국간 고위특사의 상호파견 문제를 신중히 검토 했다는 것. 이에따라 우리측은 박최고위원의 재방일을 공식화 했으나 일본측은 일본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막판까지 극비에 붙이면서 우리측에도 절대보안을 요구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누구를 특사로 파한할 것인지를 두고 최종순간까지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20일까지는 전직수반협의회 제8차 총회 참석차 방한하는 후쿠다(복전) 전총리를 통해 사과문안을 전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일본측 여론이 『우리가 정계거물까지 보내 머리를 조아릴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론 쪽으로 기울자 21일 가이후총리 주재 회의에서 현재 반은퇴상태에 있는 세지마씨를 특사로 낙점했다고 외무부 고위당국자가 귀띔. ○…외무부는 일본측이 일왕 사과문안과 관련,가해자를 분명히 표시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자 막판까지 일측의 성의를 촉구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 정부측의 대응방안으로는 노대통령이 방일기간중 일왕주최 만찬사,총리주재 리셉션,일본 기자구락부의 기자회견 등 적절한 기회에 우리측의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는 방법과 함께 일왕의 방한을 초청하지 않는 방법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한 당국자는 추가 설명. 외무부의 다른 당국자는 이와 달리 『일본내 여론은 일정부에 의해 충분히 순치될 수 있으며 일정부도 우리측 요구를 수용하려고 최대한 노력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우리측 요구가 수용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 ○…한편 세지마씨와 거의 같은 시간에 일본항공편으로 내한한 후쿠다 전 일본총리는 이날 하오 민자당사로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을 예방. 김대표는 이자리에서 『한일 양국간 현안에 대해 한국국민의 감정은 대단히 민감하다는 점을 유의해 달라』고 말하고 『따라서 한국국민의 감정에 거슬리는 행위는 양국선린관계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우려된다』는 견해를 피력. 후쿠다 전총리는 노대통령의 방일과 관련,『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이 명예로운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지문날인등 재일동포 3세문제가 완전히 타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나머지 문제도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다 전총리는 김대표에 이어 김종필최고위원도 방문하고 양국관심사에 대해 논의.
  • 노대통령 방일에의 기대 민단간부 좌담

    ◎“재일동포 「차별의 한」 풀어줄 계기로”/양국보호 못받는 1세지위 개선 더 절실/사죄 인색한건 일이 과거반성 안한 증거/70만 교민과 아픔 함께… 모국투자ㆍ교육의 문호 넓혔으면 21세기의 새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하게 될 노태우대통령의 일본공식방문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일왕의 사죄발언문제,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보장 및 처우개선문제 등 한일간에는 많은 현안이 걸려있다. 이처럼 한일간에 문제가 많으면 많을 수록 노대통령의 방일이 갖는 뜻은 크다. 특히 70만 재일교민들은 대통령의 방일로 재일한국인들이 받아온 수난과 차별의 한을 풀어줄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21일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거류민단 간부들을 모아 「재일교민은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들어보았다. □참석자 박성우 이칠두 남경수 ▲사회=노태우대통령의 일본공식방문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재일 한국인의 입장에서 대통령의방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박성우실장=우리 민단간부들이 지난 4월말 서울에서 대통령을 만났을 때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일본방문을 기회로 우리 교민들의 한을 풀어주겠다』 바로 그것입니다. 외국에 사는 교민들에게 모국대통령의 방문은 큰 힘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교민들이 크게 고무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특히 이번에 노대통령은 일본국회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특별연설의 기회를 가지며 오사카(대판)까지 방문키로 되어 있습니다. 오사카는 우리교민의 3분의1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그 방문의 의의는 매우 큽니다. ○교민 생성 배경 이해를 ▲이칠두단장=어떻게 보면 우리 재일교포들은 그동안 일본에 거주하면서 받은 수모와 차별ㆍ고통에 대해 한번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못듣고 살아왔습니다. 재일교포는 미국이나 유럽의 교민들과는 그 생성과정이 다릅니다. 따라서 그만큼 더 조국지향형이며 애국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일원이라는 입장 이외에 한때는본국의 「기민정책」에 의해 가중된 설움을 받은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세월이 변해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만 종전 당시 일본에 귀화하려고 마음 먹었던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교민들이 본국에 섭섭하다는 말을 비추면 『일본에 귀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농담이라도 『귀화하라』는 말은 일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재일교포의 사기는 복돋워주지 못할 망정 감정적 상처를 주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슬픈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일을 앞둔 노대통령이 재일교포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말한 것은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남경수단장=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란 완전 2세입니다. 그동안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민족차별은 표현을 못할 정도입니다. 88올림픽이후 일본인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보는 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노대통령의 방일를 계기로 대한 인식은 더욱 일신되리라고 봅니다. ▲사회=지난 4월30일 한일외무장관 회담에서 「3세문제」에 대해대체적인 타결을 보았고 지금은 일왕의 사죄발언문제로 현해탄의 파고가 높아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단장=「3세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우리 외교당국이 많이 힘을 썼다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재일교포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법적지위 해결로 볼 수 없습니다. 강제징용돼 일본에 끌려온 사람은 1세이며 희생된 사람도 1세입니다. 그런 1ㆍ2세를 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에 교민들은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이것은 바로 생활에 직결되는 권익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한인식 일신 기대 ▲박실장=동감입니다. 서러움의 역사 체험은 1세들에게 절실합니다. 이들은 일본에서도 선거권이 없고 한국에 가도 선거권이 없습니다. 어느쪽으로부터도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나간 세대」가 아닙니다.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의 교민사회가 건설됐다는 사실을 한일 양국이 당국자들은 똑똑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남단장=1ㆍ2세 여부를 따지지 말고 포괄적으로 해결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ㆍ2세 문제를 추후 논의한다고는 하지만 교활한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협상이 어디 그리 쉽습니까. 이번 일왕의 사죄문제만 보더라도 일본인들의 속마음을 훤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상징천황」이니까,헌법상의 제약이 있으니까라는 것은 구실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선대가 저지른 역사상의 과오에 대해 나는 이렇게 반성하고 있다라는 마음만 전달하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그런 기분을 나타내는 말이 어떻게 정치적인 발언입니까. 또 설사 정치적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일본의 국가원수인 일왕이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요컨대 성의와 마음가짐이 문제라고 봅니다. ○「제약」은 구실에 불과 ▲이단장=일본은 경제적으로는 1등국이지만 국제화에는 3등국입니다. 전후 독일은 유태인을 비롯한 피해당사국에 깨끗하게 사죄하고 매듭짓지 않았습니다. 유독 일본만이 사죄에 인색한 것은 실제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겠습니다.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두고두고문제가 될 것입니다. 일본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의 공헌」은 이 문제를 명쾌하게 매듭짓지 않고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교과서 문제도 그랬습니다만 다시 거론되지 않도록 핵심을 찌르는 타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실장=명치이후의 통제된 의식교육이 오늘의 일본을 이처럼 가슴터놓지 못하는 왜소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보겠습니다. 일본인들의 단점중 하나가 「혼네」(본음)와 「다데마에」「건전」의 구별 아닙니까. 본심에서 우러나온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른 것,이것이 일본인들의 속성입니다. 『본심으로 한국인을 대하』는 것이 우리들의 요구입니다. ▲사회=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본국 정부에 바라는 것이 많이 있을 텐데요…. ▲박실장=재외국민,특히 재일교포에 대한 본국 국민들의 의식이 우선 고쳐졌으면 합니다. 문세광사건 교과서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이 미워질때 그 영향이 재일교포에게도 연쇄파급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재일교포가 한국말도 못한다. 그러니 미운존재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재일교민들에는 생존을 위해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오랜 세월이 있었습니다. 모국어로 말하며 한구식의 제이름을 밝히면 일본땅에서 살지 못하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본국 국민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본국에 가서 상거래를 할때 재일교민들은 한국민으로서 취급받기를 원합니다. 세법이고 무엇이고 떳떳한 국민으로 취급해 달라,왜 일본인에 준해서 취급하는가. 일본에 있으면 일본인으로부터의 차별,본국에 가면 또 그대로 본국차별이 있습니다. 재일교포들이 발붙일 곳은 어디입니까. 재일교민이 생기게 된 역사적 아픔을 같이 느껴주었으면 합니다. ▲이단장=재산반입규제문제만 해도 모순이 많습니다. 언제든 얼마든지 갖고 들어오라고 했다가 달러의 여유가 생기면 이제는 안된다 이런식입니다. 조령모개 정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돈을 조금만 가지고 들어가도 부동산 투기가 목적이 아니냐 이렇게 왜곡된 눈으로 봅니다. 일본에서 갖은 고생해서 번 돈을 조국의 발전을 위해 쓰겠다는 고귀한 정신을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국에서 융자받을 때도 국내 거주자 보다 요건이 엄격합니다. 제도나 의식면에서 재일교민도 1백% 국민취급해주도록 바라고 싶습니다 ▲남단장=재외국민들을 위한 교육문호도 더 넓어졌으면 합니다. 교민의 자녀들이 모국어도 서툴고 학력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생활환경이 달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좋은 제도는 남겨서 장기적으로 재외국민을 고무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한시법으로 되어 있는 호적특례법도 지속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현상에 따라 제이름이 아닌 남의 호적으로 평생을 사는 잠재거주자의 구제문제와 직결되는 것인만큼 이 법은 더 지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현재 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격 데모,불법쟁의 등 사회현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준법ㆍ질서 확립을 ▲박실장=우선 준법과 질서의식이 확립되어야 하겠습니다. 개선은 추구하되 그 절차는 적법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질서있는 개선이 중요합니다. 과도적인 현상은 빨리 탈피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길어지면 이미 「과도」가 아닌 「기정」의 것이 되고 맙니다. ▲남단장=근본은 도덕의 문제입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보면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자리를 양보한다든가 가방을 들어주는 미덕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국민들이 공적으로 모였을 때는 왜 서로 아끼는 마음이 안나오는지 답답합니다. ▲이단장=우리 한국이 올림픽을 치렀다는 역사적 사실만 남아있고 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재일 교민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자는 체험을 통해 배우고 현자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배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일일이 부딪치며 겪으면서만 배울 것이 아니라 시간을 단축해 역사를 통해 배우고 빨리 성숙해졌으면 하고 기원할 뿐입니다.
  • 시급한 대일무역 불균형 시정(사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한일경제현안문제가 재일동포 3세의 법적지위와 「일왕사과」문제에 가려져 활발한 논의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두나라간 경제현안인 대일무역불균형시정과 기술이전문제는 한일국교정상화이후 25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아직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장기 현안과제라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두나라간에 이 문제가 또다시 논의될 예정이나 그 성과는 극히 불투명하다. 한일간의 무역협력문제는 과거에도 두나라 정상간에 합의를 보았으나 일본의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상관습이 까다로운 데다가 대한수입규제적인 관세와 비관세장벽및 복잡한 통관절차로 인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기술이전 문제 역시 일본기업들이 부머랭 효과를 이유로 대한이전을 기피하고 있고 일본정부가 민간기업 레벨의 기술이전에 적극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노대통령의 방일이 한일간 경제협력의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도 그 성과에 깊은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정부 스스로 타개책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먼저 대일무역역조 시정문제와 관련하여 지적되어야 할 사항은 수입선다변화조치의 재점검이다. 83년이래 대일무역역조 개선책의 일환으로 실시해온 수입선다변화조치가 무역역조가 약간 개선된 87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이 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수입선다변화는 커녕 수입개방에 따라 각종 사치성 소비재가 일본으로부터 마구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내 대기업으로 하여금 수입선을 미국이나 일본으로 전환하는 한편,대일수입에 상응하는 대응수출을 철저히 이행토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수입선다변화 대상품목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이 일본으로부터 사치성 소비재를 수입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감시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이외 중소기업들의 대일수입도 억제하는 게 시급하다. 그러려면 일본에 한하여 수입개방을 재조정하는 등 긴급보완대책이 강구되어야한다. 일본이 우리제품의 대일수출을 막기 위하여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기업들의 대일사치품수입에 대해서는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수입선다변화 및 대일수입억제조치와 아울러 대일수출을 늘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대일무역역조현상은 그 자체문제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무역수지를 거의 항구적으로 적자를 일으키는 역동성을 갖고 있음에 유의하여 그 대책 또한 보다 강도 높은 것이어야 할 것이다. 대일수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대일수출품목에 한하여 무역금융의 단가를 인상하는 등 선별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에 있다고 본다. 또 환율문제에 대하여 정부의 단안이 있어야 한다. 미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하여 원화의 대엔화환율을 간접결정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면 달러는 절하되어도 엔화는 절상되어진다. 이렇게 되면 대일수출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는 반면에 수입은 더 늘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달러에 대한 엔화의 절하폭에 가깝도록 우리의 원화를 절하하든지,그렇지 않으면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을 통하여 원화와 엔화의 왜곡관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비단 일본과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일역조시정문제와 관련하여 강조되어야 할 것은 양국의 노력이 상호 교역의 확대균형의 시각에서 접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본 역시 양국간 무역불균형이 한국의 산업구조가 대일의존적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지 말고 무역장벽과 유통장벽 등 우리의 대일본 시장진입을 방해하는 제도와 관행을 허물기를 촉구한다. 그러려면 미일간 무역불균형시정을 위하여 두나라간에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것처럼 한일간에도 구조적 장벽문제를 논의할 기구를 이번 기회에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 재미교포 1천여명 일 대사관앞서 시위/재일동포 차별 항의

    【워싱턴 연합】 미국의 각지역에서 참가한 약1천명의 재미교포와 미국인들은 17일 워싱턴주재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정부의 재일동포 차별정책에 항의하는 데모를 벌이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
  • 일극우단체,「반한」 시위/민단본부 앞서

    ◎“한국인 돌아가라” 농성/「일왕사과」 요구에 불만인듯 【도쿄 연합】 일본 민주청년동맹등 일본내 극우단체들이 16일 하오 2시50분쯤 대형 확성기가 달린 가두선전용 버스 10여대를 동원,도쿄(동경) 총영사관이 들어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 건물앞에서 10여분 동안 시위를 벌이고 돌아갔다. 이들은 대형 확성기로 『한국인은 돌아가라』『독도를 반환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10여분동안 소란을 피웠는데 일본 우익단체들이 민단건물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일은 가끔 있으나 『한국인은 돌아가라』는 구호가 나오는 일은 흔치 않다. 일본 우익단체들은 한일간에 현안이 생길 때마다 민단건물앞에서 시위를 벌여 재일동포 법적지위협상이 막바지에 달했던 지난달에도 시위를 한 적이 있는데 이날 시위는 과거역사에 대한 아키히토(명인) 국왕의 사과요구등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둘러싼 양국의 줄다리기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것으로 보인다.
  • 한인 1백여명 “콘크리트 생매장”

    ◎일제,발전소건설 징용자 무참히 학살/72년확장때 유골나오자 「현장은폐」/일교사가 10년간 추적한 끝에 “폭로” 강제징용으로 일본의 한 발전소 건설현장에 끌려가 혹사당했던 한국인 8백명중 최소한 1백여명이 산채로 콘크리트더미에 생매장되는 등 참혹하게 학살된 사실이 밝혀져 일본인의 잔혹성에 또 한번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해주고 있다. 「나카쓰가와(중진천) 조선인학살사건」으로 불리는 참상의 현장은 재일동포 북송창구로 유명한 니가타(신석)시 남쪽 20㎞지점의 산간마을 고이데(소출)읍으로부터 10㎞떨어진 나카쓰가와 발전소로,68년전인 1922년7월을 전후해 이 발전소공사에 동원됐던 한국인중 1백여명이 중노동과 갖은 학대에 항의하다 일본인 공사감독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사실이 한 일본인 교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확인됐다. 20년대초 연간 7만5천㎾의 전력을 생산,동양 제1의 수력발전소로 불리던 나카쓰가와발전소 공사와 저수지 댐공사에는 모두 8백여명의 조선인들이 투입돼 하루17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던 곳으로,지난 72년 이 발전소의 발전용량 확장공사를 위해 일본인 인부들이 통수관(수원지로부터 물이흘러내리는 관)교체작업을 하던중 콘크리트벽 안에서 인골을 발견하면서 50여년동안 은폐돼왔던 「학살」의 진상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발전용량을 15만㎾로 끌어올리는 공사에 동원됐던 인부들은 통수관 주위의 콘크리트벽을 해머로 부수다 맥없이 주저 않은 콘크리트 공동안에서 손발이 묶인채 아직 완전 부패하지 않은 사람의 시체와 함께 수많은 유골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겁에 질린 인부들이 작업을 거부하자 공사 현장감독은 술을 먹여가며 공사를 독려한 끝에 이곳에서 유골만 라면박스 2개 분량을 추려냈으며 그래도 유골이 계속 나오자 더이상 작업을 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콘크리트벽 안의 유골 발견으로 모습을 드러낸 「나카쓰가와 학살사건」은 그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인근 고이데고교 역사교사 사토 다이치(좌등태치)씨가 지난 80년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증언을 듣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면서 그 전모의 일부가 밝혀지게 됐다. 사토교사는 당초 이 발전소 건설공사에는 살인범 등 주로 일본인 죄수들이 동원됐으나 인력이 달리면서 조선인들이 투입되기 시작했으며 생사여탈권을 가진 공사감독은 「조선인」들에 대한 린치 고문 학대를 밤낮으로 자행한 사실을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같은 학대에 항의하거나 도주하다 붙잡혀 무참하게 학살된후 저수지ㆍ인근냇가ㆍ야산 등에 버려졌으며 공사감독은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던 「조선인」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일부 시체를 다리ㆍ나무등에 매달아 위협적인 수단으로 삼았던 사실도 알게됐다. 그러나 「나카쓰가와사건」은 댐 저수지 밑에서 물고기를 잡던 낚시꾼들과 버섯을 따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던 마을 주민들에 의해 잇따라 유골이 발견되면서부터 이 사건이 외부로 공개될까 두려워하는 학살현장 목격자들의 철저한 함구로 아직 완전한 진상이 규명된 것은 아니다. 사토교사는 당시 조선인에 대한 학살이 얼마나 무참하게 자행됐는지는 1922년8월4일자 요미우리신문이 『니가타 나카쓰가와 댐공사장 부근냇가가 버려진 조선인 시체로 뒤덮여 있다』는 짤막한 기사를 실은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토교사의 조사보고서에도 『도망치다 붙잡힌 조선인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묶어 콘크리트 반죽더미에 던졌다』 『죄수취급을 받던 조선인이 달아나다 잡히면 본보기로 우물에 던져 수장했다』는 주민의 증언들이 기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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