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재일동포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팀추월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이준혁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캐피탈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넷제로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39
  • 의사·당간부 일어 학습붐/북송교포 경쟁적 과외교사 채용

    ◎사유화의 폐해성 선전 ○…북한은 최근 사적 소유제도는 필연적으로 개인주의를 낳게 마련이라면서 사유화의 폐해를 집중적으로 부각,선전. 북한의 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는 사유화 문제에 대해 『사적 소유제도는 개인주의를 낳고 결국 자본주의적 소유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통해 부르주아사상이 자라나고 퍼지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주장. 이 신문은 또 「개인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우월성을 설교하려는 교활한 술책」이라고 강조하면서 개인주의 배격을 촉구. ○과외비로 수산물 얻어 ○…북한에서는 최근 일본과의 수교 추진과 무역 증가 추세를 반영,일본어 교습 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 조총련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어를 배우려는 계층은 주로 해외동포 영접부 소속원,의사,과학자,당간부들이며 재일동포 북송자들이 경쟁적으로 과외교사로 채용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추세에 따라 일어교사로 초빙되는 북송교포들은 그 대가로 수산물을 비롯한 생활필수품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후문. 기왕이면일본인이나 해외동포들을 수시로 접촉해야 하는 해외동포영접부 소속원들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짭짤한 수입을 올릴수 있는데 예를 들면 평안북도 해외동포영접부 국장은 93년부터 신의주에 거주하는 북송교포 오씨로부터 하루 1시간씩 일어를 배우는 대신 매월 상당량의 수산물을 「과외비」로 주고 있다는 전문. ○미용품도 가정서 제조 ○…전반적인 생필품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는 웬만한 미용품까지도 주민들이 가정에서 직접 제조해 사용토록 권장.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 대중잡지 「천리마」최근호는 『가정에서 질좋은 미용약을 손쉽게 만들어 쓸 수 있다』면서 송진을 이용,머리기름(무스)만드는 법과 그 효과를 상세히 소개.
  • 일본에선…/달라지는 대한인식(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7)

    ◎한국인 폄하·우월감 아직도 곳곳에/경제발전·교류 확대 따라 인식 개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최근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수천년 이웃나라를 침략,온갖 박해를 가하고도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악담을 해대던 일본사회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겪은 차별과 악감정의 피해 사례는 헤아릴 수 없다.재일동포 1세들은 비교적 민족의식을 꿋꿋이 지켜왔으나 2세들은 상당수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싶을 뿐이었다. 북송교포로서 올해초 월남한 오수용씨의 누나 오모씨(63).그녀는 집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아이들이 일본인으로 생활하고 있다.(기자들의 방문으로 내가 한국인임이 밝혀져)아이들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 책임이다』라고 말하면서 취재를 거부했는데 주위의 일본인이 혹시 알게 될까봐 주의를 기울이는 표정이었다.동행한 민단지부 관계자는 『그녀가 국적을 바꾸지 않고 민단비를 꼬박꼬박 내는 것으로 보아 한국이 좋든 싫든 내 조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것만은 분명하다』면서 『그녀의 태도는 일본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신대지진때 민단과 조총련은 동포 사망자를 집계하는데 애를 먹었다.상당수가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살면서 「이지메」를 각오하고 본명을 쓰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오기를 필요로 한다.바꿔 말하면 그들이 쓰는 일본식 이름에는 눈물어린 사연과 애환,콤플렉스,사랑과 미움 그 모든 감정이 응어리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국교정상화 뒤 일본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신거주자」들도 일본사회의 거부 반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이들이 부딪힌 첫 시련은 집을 임대할 때부터 찾아온다.교묘한 말로 따돌림을 당하지만 진짜 거부 이유는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아파트를 재임대한다」,「친구들을 불러들여 밤늦게까지 떠든다」,「방이 불결하다」,「마늘 냄새가 난다」는 따위의 말을 듣기 일쑤였다.(거품경제가 꺼진 뒤 집 빌리기가 쉬어져 최근엔 집을못빌리는 예는 거의 사라졌다) 롯데관광(주) 도쿄지사장 황종걸씨는 최근 일본검찰로부터 엽서를 받고 쓴 웃음을 지었다.엽서의 내용은 황지사장이 고소한 한 일본인을 기소했다는 내용.그는 얼마전 일본인이 운전하는 택시로부터 충돌당했다.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상대가 한국인임을 알자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느닷없이 「마늘냄새 나는 조센징」 운운하면서 길 한복판에 서서 모욕을 가하더라는 것이다.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결국 일본인 운전사를 고소하고 말았다.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생각만을 모아 놓은 「추한 한국인」 1·2편은 30만부가 넘는 빅 히트를 치고 있다.일본인에게는 한국을 폄하하는 것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물론 우리에게도 일본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 있지만 추한 한국인이 가해의 역사를 미화하고 저자를 숨기는 등 비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얼음장처럼 냉랭하고 하늘만큼 우월감이 도도했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좋게 바꾸었다는 것이다.일본의 발전도 이바지했다.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너그러워질 여유를 갖게 됐다.세계각국의 문물을 가감없이 즐기려는 경향이 자리잡게 됐고 한국도 한자리를 차지할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에 대한 우월감과 경멸감,증오심을 굳게 갖고 있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한국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의 마음에 한국이라는 그림이 새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업무상 40대 이하의 샐러리맨을 많이 만나는 대우증권 도쿄지점의 박기홍 차장은 『이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잘 모른다.이들을 만나면 한일간에 감정이 없는 듯 느껴진다.또 한국을 잘 아는 일부 사람들은 「한국이 올림픽 뒤 질서를 지키려고 하고 서비스도 개선됐더라」는 말도 한다』고 전한다. 한일간에 사람들의 왕래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94년 1백60만 명 돌파,올해 목표 2백만명)도 한국에 대해 상대적 편견을 불식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회사원 가와나베씨는 지난 5월 한국을 한번 여행다녀온 뒤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있다.부인과 함께 한글책도 사서 보기 시작했다.한국을 더 알고 싶어 가을에 한국을 또 다녀올 생각이다.대한항공 김인진 일본본부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지방도시에 잇달아 취항하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취항 후 바로 한글 안내판이 붙고 안내서가 나온다.지방에서도 한국 관광붐이 분다.인지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덧붙인다. 지난달 사이타마현 히키군 요시미마치는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이 전시 군수공장용 굴을 뚫었던 곳에서 「도깨비대회」를 열려다가 계획을 바꿨다.현내 고등학생들이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장소에서 열다니 무신경한 처사」라고 반발,중단을 요구했던 것이다.이번 일을 놓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일일까.지나치지 않다고 믿고 싶다.일본인들의 얼음처럼 차가운 한국에 대한 인식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미풍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 일본에선…/민단과 조총련(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5)

    ◎“흔들리는 조총련”… 이탈자 해마다 급증/사회주의 붕괴·김정일 체제 불안감 큰 몫/이탈 「제3세력」 포용하는 민단노력 절실/남북화해 물결따라 두 단체 교류 조짐도 재일동포 2세 전월선(36·여)씨는 일본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오페라 가수다.그녀는 지난해 비제의 「카르멘」으로 한국무대에도 데뷰했다.그러나 전씨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둘로 갈라진 재일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아픔이 짙게 깔려 있다. 청중들의 열광적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남·북으로 국적이 갈린 가족과 만나야 한다.그녀의 가족은 일본사회의 민족차별과 함께 또 하나의 비극인 민족분단의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다.전씨의 국적은 처음에는 조선(북한)이었다.그러나 지난 93년 한국으로 바꾸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한국 국적이다.그러나 어머니와 동생들의 국적은 조선이다.한 가정에서 조차 국적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녀의 가족과 같이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누어져 있다.민단자료에 따르면 현재 68여만명의 재일동포중 민단계는 49만여명,조총련계는 18만여명으로 나타나 있다.그러나 조총련계가 24만여명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일동포사회는 당초 1945년10월 「조선인연맹」이라는 하나의 단체로 출발했다.그러나 1946년 「조선건국촉진 청년동맹」과 「신조선건설동맹」을 비롯 20여개의 산하단체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독점됐던 조선인연맹을 탈퇴,새로운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둘로 나뉘었다.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재일동포 사회도 이처럼 둘로 갈라놓았으며 오늘도 그러한 대립과 갈등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민단은 초창기 재일동포에 대한 세금투쟁,외국인등록령 반대투쟁 등을 시작으로 재일동포의 권익옹호와 민생안정를 위한 여러가지 민족차별 철폐 투쟁을 해왔다.83년에는 지문날인제도 철폐를 위해 1백80여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64년 도쿄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한국선수단을 지원했다. 민단은 75년7월 조총련계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위한 성묘단 사업을 추진,많은 호응을 받았다.성묘단 사업을 계기로 조총련중 민단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당초 조총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인구 비율이 역전됐다. 그러나 민단은 고질적 파벌싸움과 재일동포에 대한 권위주의적 태도 등으로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재일동포는 민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싫어한다』고 잘라말했다.그는 『민단은 단비만 받고 재일동포를 위해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지나치게 권위주위적』이라고 혹평했다.민단 관계자들도 민단에 대한 무관심과 비난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신용상 단장은 『봉사하는 민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동포사회의 또하나의 세력인 조총련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며 이탈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조총련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선학교 교장과 조총련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박로호 모국방문추진도쿄위원회 부위원장(70)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의 모순을 깨달은 후 조총련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고 말한다.그후 조총련을 탈퇴한 박부위원장은 『조총련의 중요한 지지 기반인 지식인들의 갈등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경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조총련계 상공인들도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날로 악화되는데 실망,크게 흔들리고 있다.지난해에는 조선상공연합회 부회장을 비롯 조총련계 상공인 1백40여명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다. 조총련은 한덕수의장이 88세의 고령에다 병을 앓고 있어 허종만 책임부의장 체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도 외화공급원인 조총련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인식이 김일성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조총련은 사실 당초 민단보다 지식인이 많았고 잘 조직됐었으며 지금도 경조사와 경제 문제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하는 등 강한 조직관리를 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과 북한의 모순과 어려운 실상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조총련을 떠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5천∼6천여명이 탈퇴했으며 지난해 이탈자는 6천2백여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총련을 떠난다고 해서 그들이 민단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이 민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제3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의 재일동포 사회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움직임과 교류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하지만 본격적인 화해는 아직은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세계적 이념의 대결 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 내의 이념적 대립은 한반도 뿐아니라 이국땅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인터뷰/민단 중앙본부 신용상 단장/재일동포 권익보호·생활안정에 최선/“참정권 획득,민족차별 철폐 앞장/권위주의 탈피 봉사단체로 일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의 신용상단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단은 앞으로도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금의 최대 현안은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획득』이라고 말했다. 세금은 같이 내면서도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참정권문제 등 민족차별철폐와 함께 재일동포들의 인식도 이제는 일본 영주로 정착되고 있으며 민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지난해 4월 당초 이름에서 임시로 머문다는 의미의 「거류」라는 말을 빼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민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우려됩니다.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단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나 민단에 신세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신(판신) 대지진때의 위로금 분배를 민단에서 맡아 했듯이 재일동포를 위해서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민단은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중요한 압력단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민단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봉사하는 단체의 역할을 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벌의 알력과 후계자문제,계속 늘어나는 귀화현상 등 많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결코 비관하지는 않습니다.한국정부도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거나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재일동포의 명암(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

    ◎반한반일… 「뿌리」와 「생활」사이 고민/이지메식 차별 극복 각 분야서 두각 광복 50년.한국과 일본은 5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문제를 안은 채 「가깝고도 먼」관계를 유지하고 있다.현재의 한·일관계는 과연 어떤 상황이며 바람직한 미래는 어떠해야 할까.광복50주년,광복의 달을 맞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양국관계를 총점검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해보는 「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을 연재한다. 재일동포 신인하씨는 도쿄에 있는 어느 신문사 운동부(체육부)에서 일하고 있다.그녀는 지난 91년 요코하마시립대학을 졸업한후 신문사에 들어갔다.그녀는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을 누비며 기사를 쓰고 있다. 그러나 신씨는 정식 기자가 아니다.그것은 그녀가 일본인이 아니라 재일동포라는 이유 때문이다.그녀는 단지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정식 사원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임시채용에 머물수 밖에 없는 신씨는 보험·후생연금·보너스 등의 혜택을 받지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신씨와 같이 민족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동포는 그 탄생의 기원부터가 비극적이다.일제 식민통치의 불행한 부산물인 그들의 원초적 비극은 일본 특유의 「이지메」라는 단어속에 증폭되었으며 광복 50년이 된 오늘도 끝나지 않고 있다. 약자를 괴롭힌다는 의미의 이지메 현상은 재일동포들에게는 민족차별로 나타났다.재일동포들은 여러가지 제도적·인습적 차별과 압박·멸시속에 민족차별의 한을 품고 고난의 어두운 세월을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재일동포들은 그러한 차별로 삶의 터전인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그들은 이때문에 자유업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많은 재일동포들이 야키니쿠(불고기·갈비)음식점이나 소매상을 하고 「빠찡꼬」업에 진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빠찡꼬는 일본거리에서 가장 화려한 간판으로 빛나고 있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재일동포들의 어두운 민족차별의 역사가 배어 있다. 재일동포들은 민족차별을 없애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해왔다.민족차별 문제는 2세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60년대부터 일본사회의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차별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재일동포 1세와는 달리 2세들은 지문제도등 민족차별에 대한 강한 저항을 나타냈다. 지문날인철폐 운동은 대표적인 민족차별 반대운동이었다.오랜 투쟁의 결과 재일동포들의 지문날인제도는 1993년 1월 외국인등록법이 개정되며 없어졌다.그것은 대단한 변화였다.가난과 심한 차별속에 살았던 과거와 비교해 볼때 제도적·법적 지위가 많이 개선됐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사회 각 부문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재일동포들은 삶의 기본이 되는 취직이 어려우며 취직이 되더라도 컴퓨터등 전문기술을 갖고 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식사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정식사원이 되더라도 진급에 한계가 있다.그들은 진급을 미끼로 귀화를 요구받기도 한다.재일동포들은 또 세금을 내면서도 지방자치 차원에서 조차 참정권이 없다. 일본사회의 많은 차별로 2세,3세로 내려갈수록 일본이름을 사용하고 일본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그들에게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민족의식 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이 더욱 절박한 과제이다.그러면서도 그들은 민족차별과 장래에 대한 불안등으로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한 갈등을 감수하기 보다는 차라리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거나 일본인과의 결혼 등으로 귀화하는 재일동포도 늘어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7천∼8천명이 귀화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총귀화자수는 거의 20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고난과 차별의 어둡고 긴 터널을 자신의 실력으로 빠져나와 일본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않다.그러한 젊은 세대중 한사람이 유미리(27·여)씨다.재일동포 2세인 그녀는 일본의 대표적인 희곡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연극을 하다가 17세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지난 93년 최연소로 일본 희곡계 최고의 기시다상을 받았다. 유씨는 지금도 정열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 「풀 하우스」는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예비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제1백13회(1995년)아쿠타가와상 예비심사를 통과한 6개 작품중 그녀의 작품이 선정되자 그녀의 문학적 위치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그밖에도 김경득 변호사,여배우 김구미자,오페라가수 전월선,화가 최광자,이진희·강재언 교수등 적지않은 사람들이 일본 속에서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다.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사무직종사자는 전체에 26.9%(92년말 현재 일본법무성 통계)나 된다. 보통의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도 과거보다는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도쿄 우에노에서 제일물산이라는 한국식품점을 경영하는 강은순씨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는 일본인들의 멸시도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그녀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국력이 강해지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본인들이 재일동포를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국력신장과 일본사회의 국제화로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유형·무형의 각종 민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일본의 민족차별과 조국으로부터도 따뜻한 환영을 받지못하는 재일동포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반쪽 한국인,반쪽 일본인」의 어정쩡한 지위가 되고 있다.더욱이 뿌리의식이 강한 1세가 68만여명의 동포중 5∼7% 정도 밖에 남지않아 멀지않아 1세가 없는 재일동포사회로 바뀔 것이다. 그러한 재일동포들은 세월의 흐름과 언어의 단절등으로 조국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이 있었던 1세와는 달리 2세이후 세대들은 일본에서의 정착을 당연시하고 있다.그렇다고 배타적인 일본사회속에 완전 동화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탄생부터가 비극적이었던 그들은 귀화를 하든가 아니면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 「삼풍」과 한국 이미지/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지난달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뉴스가 거의 매일 일본 TV에 방영되고 있다.해외에서의 파문도 적지 않은 형편이다.한국 건설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익히 짐작되는 바다.성수대교 붕괴사고의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 발생한 이번 사고는 「한국」의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같다. 특히 97년 건설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리 건설업체들은 연간 공사규모 85조엔에 달하는 일본시장이 금세기 마지막 황금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이들에게 이번 사고는 청천벽력이다.일본 건설시장은 기본적으로 지명입찰제도로 운영된다.발주자로부터 입찰 자격이 부여돼야 경쟁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일본에 진출한 S종합건설의 지점장은 『97년부터 건설시장이 개방된다 하더라도 누가 입찰 자격을 주겠느냐』고 고개를 흔든다.그는 『98년 공공부문이 일반경쟁입찰로 바뀌어도 민간부문에서는 자기 집 지어달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비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파장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있다. 한국 관광산업은 일본이 주요 시장.이곳의 일부 여행업체들이 사고 발생 후 한국 거래여행사들에 숙박시설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와 관광업계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한동안 덤핑 경쟁으로 부도업체가 속출하는 불황을 겪다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여행업체들로서는 혹이 붙은 셈이다.관광공사 도쿄지사는 곧 여행사 대표자 회의를 열어 구체적 대책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여행업체들의 안전 요구는 지난해 성수대교 추락 사건 당시에는 없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여년 동안 조총련계 교포들을 상대로 「모국방문단」사업을 벌여왔다.최근 재일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한 지방본부는 32명의 방문단 모집을 끝내고 오는 26일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가 이 가운데 19명이 참가를 취소,결국 단체방문단을 구성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19명은 「호텔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이유를 들었다.이와 관련,한 민단관계자는 『조총련의 유언비어 때문이라고 판단된다』면서도 『성수대교 붕괴,유람선 화재,대구 가스폭발,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한국의 안전도에 대한 일본지역의 평판은 땅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한숨짓고 있다.일본지역에서 삼풍사고의 파문이 예상외로 넓고 깊게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 일제연행 한국인 삶 일서 영화화/재일동포 중심 제작비 6억엔 모금

    ◎일 원로배우 등 출연… 올 가을 개봉 【도쿄 연합】 2차대전말 일제에 의해 강제 연행된 한국인의 애환이 가득 담긴 삶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영화화된다.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한 50여명은 2년전부터 제작위원회(위원장 김일웅)를 구성하고 약 6억엔의 제작비를 모금,하키기 호세이(심목봉생)작 「세번째 해협」을 영화화하기로 하고 3일 도쿄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고야마 세이지로(신산정이랑) 감독이 메가폰을 든 이 영화에는 주인공 「하시근」 역에 일본의 원로배우 미쿠니 렌타로(삼국연태랑)가 출연하며 미나미노 요코(남야양자)와 재일교포 3세 배우 이종호(25)등이 나온다. 주인공 하시근은 현재 70세로 2차대전말 기타큐슈로 연행돼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뒤 해방돼 귀국했으나 부인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고향에서 차별받아 부인은 일본으로 돌아가 끝내 사망하고 50년간의 한을 풀기 위해 주인공도 다시 일본을 방문하는 기구한 운명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김일웅 제작위원장은 『해방 50주년을 맞아 자손들이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던가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에 참석한 박정호 한국문화원장은 『한국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 일본영화』라면서 『이 영화를 통해 알려져 있지 않은 강제연행 사실 등 한국인의 과거 슬픈 역사를 일본인들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올 가을 개봉될 예정인데 제작진은 한국인이 주인공인 만큼 한국에서도 상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가깝고도 먼 이웃(한·일수교 30년)

    ◎수교 19년뒤에야 한국정상 “공식 방일”/66년 무역협정 서명… 경제협력 “물꼬”/빈번한 교류속 일 지도층 잇단 망언 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일 양국간에는 모두 17차례의 정상간 왕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공식 방일이 추진된 것은 72년이다.박정희 대통령이 11월23일 공식 방일하기로 예정됐었으나,국내의 반일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소됐다.박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의 공식 방일이 성사된 것은 12년 뒤인 84년에 이르러서였다.이 해 9월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히로히토 국왕을 만났다.이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90년과 94년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수교전에도 대통령의 방일은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48년과 50·53년 등 세차례 일본을 비공식 방문,요시다 총리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또 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로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이케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일본 총리는 사토 총리로 67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공식방한한 첫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총리로 83년 1월11일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이후 88년 다케시타,91년 가이후,92년 미야자와,93년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이어졌다. 비공식과 실무 방문을 포함하면,한국의 대통령은 모두 7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며,일본의 총리는 10차례 방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6년 3월 한일간의 무역협정이 서명,발표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 관계도 시작됐다. 이 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장기영 전부총리와 후지야마 일 경제기획청장관이 참석하는 한일경제각료 간담회가 열렸다.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확대되어 왔으나,90년대초에 들어 무역·투자·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역불균형 심화가 지속적으로 양국간 현안이 됐는데,65년 1억 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는 80년대 후반에 50억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92년에는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67년 정기 각료회의가 시작된 뒤,양국 외무장관 회담,고위외교정책협의회,한·일 어업공동위원회,문화교류실무자회의 등의 한·일 정부간의 정기회담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한일협력위원회,한일경제협회,한일협회,한일여성친선협회,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민간 친선단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65년 1만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인적교류는 지난해 2백70만명으로 늘어났다.일본이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은 68만8천명이다.최근에는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 통계에 따르면,재일교포의 총혼인건수 1만3천9백34건 가운데 동포간 혼인은 15.8%에 불과하며,일본여자와 결혼한 교포남성이 19.5%,일본남자와 결혼한 교포여성이 64.2%였다.일본에 귀한한 재일교포는 50년이래 17만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관계 발전의 한편에서는 일본측의 망언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의 고위각료급에서만도 해마다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망언을 쏟아냈다.대표적인 것이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에 대한 86년 후지오 문부상의 망언으로 양국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정부는 이해 9월 예정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며 후지오의 망언에 엄중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외상이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쿄의 평가와 과제/“국교정상화 한국발전에 크게 기여”/위안부 등 개인배상문제 불씨 잠복/재일동포3세 법적지위개선도 현안 한국과 일본은 22일로 한·일기본조약 서명 30주년을 맞는다. 국교가 정상화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한국은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또 「김대중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망언파동 등으로 한일관계는 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일관계는 양국 정치에 있어 「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정략적 카드」로 악용당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한일국교정상화가 냉전체제하에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한국의 경제발전,일본의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안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양국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는 데 대해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특히 일본에서는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보다 많은 플러스가 됐다고 말하는 학자,평론가들이 많다.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김동조전외무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냉전구조하에서 정치적으로 아시아,넓게는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으로서도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조약체결로 얻은 자금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도쿄신문 20일자).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일사학자 강재언교수도 높이 평가한다.하지만 강교수는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는 우선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의 자금은 식민지 피해에 따라 당연히 받을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배상을 받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특권층을살찌운 반면 한국은 깨끗하게 경제건설에 활용됐다』고 말해 자금이 들어온 일본보다는 활용한 한국의 노력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반면 「식민지지배 책임문제」 등이 분명하게 밝혀진 위에 국교정상화가 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돈이 급하고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된채 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게 됐다고 말한다.남은 문제들 가운데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반성,한일기본조약의 해석,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 지위 문제,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배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이동원 전외무/“국력 길러 일 우월의식 극복을/과거에 매달려 역사흐름 놓치지 말길/패전 극복 일의 창조적 노력 본받을만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이동원 전외무장관(현 국제학술원이사장)은 21일 국교정상화 30주년에 즈음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당사자로서 30주년을 맞는 감회와 기본조약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은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었던 외교협상이었습니다.그만큼 양국간의 적대감과 갈등이 깊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에 서명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청산을 분명히 하지않고 경제협력을 우선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역사는 변화하는 것입니다.변화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한·일기본조약은 그 시대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을 활용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한국도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과거의 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의원의 「전후50년국회결의」 채택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같은 자세가 부족합니다.일본은 국수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국가들과 함께 공존·번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후진성을 이용,우월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강합니다.공존의 시대에 배타주의적 우월의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일본도 중국·한국·아세안등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인식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국교정상화후에도 일본지도층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변국가를 멸시하는 일본의 배타주의적 우월의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의 의식속에는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창조적 노력과 국력배양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차대전후 일본은 전쟁폐허의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일본은 그러나 미국에 머리숙이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경제부흥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특히 선진기술을 그대로 모방하지않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본적인 알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점점 깊어져왔습니다.작은 것이라도 「한국적 알파」를 추가하려는 창조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의 시각이 변했다고 봅니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한국을 얕보는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지배를 배경으로 한 한·일간의 특수관계에서 이제는 보통의 이웃국가관계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상황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광복 50주년이 됐습니다.일본에도 한국에도 식민지이후 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기때문에 한국도 이제는 냉정한국제정치논리에 대비하여야합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양국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문화등 각분야에서 더욱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반일감정을 극복하고 기술·정보등 경제분야의 발전을 통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야합니다.물론 일본과는 경제규모에서 대등할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질적인 대등함을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합니다.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력이 뒷받침되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폐기물 열분해 처리 정경산업(앞서가는 기업)

    ◎폐타이어·비닐로 벙커C유 생산/2차오염 방지 신공법 세계 첫 개발/일에 특허 출원… 매출목표 3백억 폐기물 처리에 신기원이 열렸다.태우거나 매립하지 않아 2차오염 방지는 물론 석유까지 부산물로 얻는 공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 있다. 폐기물 처리 설비업체 정경산업(사장 정진규)이 그 주인공.이 회사가 개발한 비법은 증소식 열분해 방법으로 타이어와 플라스틱,비닐 등 폐기물을 찌는 것 같이 뜨겁게 가열,분해하는 방식이다.분해로에 넣어 섭씨 2백50∼6백도의 온도로 가열하면 합성수지가 분해,가스로 변한다.이 가스를 다시 냉각,벙커 C유로 만드는 방법이다.찌꺼기로 남는 탄소 덩어리인 차르(CHAR)는 카본과 아스팔트 강화제,건축자재 등의 원료로 쓴다.쓰레기더미에서 돈을 캐는 셈이다. 지난 달에 폐차처리 업체인 대지산업진흥(전남 곡성 소재)에 처음으로 설치,환상적인 이론을 현실화 시켰다.폐차의 40%에 달하는 타이어와 시트,범퍼 등 폐 합성수지 처리에 획기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지난 달 말에는 (주)대우와 해외독점 판매 계약을맺고 해외시장을 개척중이다.한화와 쌍용양회,금호타이어 등도 계약을 조를 정도로 그 장래성을 인정 받고 있다. 이미 특허가 출원된 일본을 주시장으로 삼고 해외 수요처 발굴에 나섰다.대우가 세계 각국에 특허출원을 지원하는 동시에 미국과 영국·독일 등으로 시장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자원재생공사와 4∼5개 폐처리 업체들과 상담이 진행 중이다.올 매출목표는 3백억원. 광주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제법 돈도 모았지만 엔지니어(전남대 공대 졸업)로서 제조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87년 이 기술로 일본에서 특허를 따낸 재일동포 최일규씨(93년 작고)를 만나면서 결단을 내렸다.당시 최씨는 귀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정부로부터 개발 지원금을 받지 못해 한국에서 파트너를 찾던 중이었다.시제품 제작에 7년을 보냈다.호텔업에서 번 25억원을 모두 투자했다.주위에선 불가능한 일에 매달린다고 말렸지만 교직생활을 하는 부인의 이해로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 함흥,범죄 최다지역 “악명”(북한 이모저모)

    ◎식량사정 최악… 외지인 출입많아/김정일 “비닐조화는 허례허식… 녹여서 가방 만들라” ○…최근 극심한 식량날을 겪고 있는 북한은 향기는 없지만 경제적 효용성 때문에 각종 장식물로 활용되고 있는 조화마저돕 「곁제적 낭비」나 「허澤허옭」으로 간주,금기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 최근호는 김정일이 몇해전 간부들과 점심식사를 위해 한 식당에 들렀다가 합성수지로 만든 복숭아나무와 포도덩굴을 보고 『숱한 수지를 낭비하고 돈을 들여서 가짜 복숭아나무를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지적하면서 당장 해체해 공장으로 보낼 것을 지시했다는 일화를 소개. 김정일은 이어 『그것이야말로 허례허식이다.가짜를 가지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관계자들을 심하게 질책하는 한편 『저런 것을 만들 비닐이 있으면 신발이나 가방 같은 것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면서 공장에 보내 제품생산에 쓰도록 했다는 것. ○…북한에서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함흥인 것으로 전해졌다. 귀순자들의 증언을 보면 함흥이 북한 최고의 범죄 다발지역이 된 것은 크게 세가지 이유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분석.우선 식량사정이 북한에서 가장 좋지 않은데다 특히 인구밀도에 비해 농경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 두번째는 주민들간의 심한 빈부격차로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인 화교나 재일동포 출신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살고 있어 주민들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위화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또 함흥이 북한 동북부의 교통요충지라는 점도 범죄 다발의 한 요인.
  • 「옴교 자금」국제조직 연루설/서유행씨 배우 싸고 의혹 증폭

    ◎피살 무라이,재정운용에 깊이 관여/수사초점 흐리려 교포선택 가능성 추리소설보다 더 복잡한 옴진리교의 독가스살포사건,경찰청장관 피격사건등 일련의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옴진리교 간부살해사건.25일 이 사건이 터진지 사흘째로 접어들면서부터 재일동포 범인인 서유행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지않겠느냐 하는 추측이 무성해지고 있다. 사건후 한국대사관,민단 등에는 「도대체 무언데 조센진이 끼어들었어」따위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지만 일본경찰과 언론들은 범인이 한국국적이라는 점보다는 「수사를 방해하는 린치 테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범행의 동기와 배후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을 리드해 나가고 있다. TV 등에는 범행 장면과 한국적이라는 코멘트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한국을 타깃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일본 사회가 원숙해졌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또 워낙 대형사건인 옴진리교사건이 본 줄거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공통인식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1차 관심은 범행의 동기와 그 배후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범인 서는 25일 하오까지도 『옴진리교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 했다.간부라면 아무라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단독범행일까.하지만 정황은 이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상태.그가 9시간이 넘게 현장에서 서성이면서 오가는 다른 간부들은 놓아두고 하필이면 무라이 히데오 「과학기술성 대신」만 노렸느냐는 점과 폭력단원이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엄청난 범행을 혼자서 했겠느냐는 점이 의문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와관련,옴진리교 사건을 상세히 추적하고 있는 종교평론가 마루야마씨는 『무라이씨가 독가스사건 등의 전모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배후의 커다란 조직이 입을 봉하려고 살해한 것이 아닐까』라는 대담한 추정을 내놓기도 한다.이 경우 입을 봉해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구냐는 추론도 무성하게 나온다.옴진리교 피해대책 변호단의 오카다변호사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마루야마씨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국제적인 모략의 냄새가 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옴진리교가 1천억엔 이상을 자유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신도가 1만명밖에 안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커다란 조직과 연계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특히 무라이「대신」은 자금운용에 깊숙이 관여돼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배후가 있다면 한국인을 실행자로 선택한데 대해서도 무엇인가 복선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곳 재일한국인들의 걱정이다.외부의 타깃을 만들려는 것은 혹시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는 것이다.
  • 고베지진1백일/“세계적부흥모델 만든다”/본사 강석진특파원 현지르포

    ◎“전화위복 삼겠다”… 「10년 계획」착착 실천/영업재개 교민들 “열심히 산다 써주오” 대지진으로 황폐화했던 일본 효고현에 지진 1백일이 지난 요즘 부흥의 깃발이 높이 펄럭이고 있다. 고베시의 거리에는 부서진 건물들을 철거하는 건설중장비의 굉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거리를 걷다보면 건물철거 작업에서 발생한 먼지로 목이 잠기고 눈이 쉬 피로해진다.가라오케의 깨진 입간판에도 불이 들어오고 신고베역 앞 광장에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남자어린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잉어 깃발이 바람을 받으며 힘차게 휘날린다. 지진과 화재로 삶의 터전을 한꺼번에 잃었던 재일동포들도 재기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피해가 컸던 나가타구에서 가설주택을 빌려 다시 불고기 식당 영업을 재개한 김아주머니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교민들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써 주이소』라고 당부하면서 『어서 돈 벌어서 한국에 놀러 가야지』하고 밝게 웃어 보인다.고베시에서 만난 동포들은 『우리가 돈 갖고 일본에 왔느냐』고 반문하면서 『지금은 당시보다 훨씬 여건이 좋다』고 자신감을 내보인다. ○여전히 인내심 발휘 산노미야지역은 통행이 어려운 인도를 피해 차도로 내려간 사람과 차량으로 뒤범벅돼 혼잡을 빚고 있지만 누구도 성내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차량들은 걷는 사람 뒤를 천천히 뒤쫓아갈 뿐이다.여전히 인내심이 발휘되고 있고 질서는 잘 지켜지고 있다. 효고현 전체의 희생자는 지금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5천5백여명을 넘어섰다.행방불명자도 아직 2명이 남아있고,부상자는 3만7천명을 기록하고 있다.4만8천여명의 주민들이 여전히 피난생활을 계속하고 있다.총피해액은 10조엔에 달한다. 그래도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그들은 단순한 복구작업을 거부한다.오히려 지진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부흥을 이루겠다는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각종 계획도 복구계획이 아니라 모두 「부흥」계획이다.효고현 「진재부흥부」의 사이토 가즈미치씨는 복구에 얼마나 걸릴 것이냐는 질문에 먼저 한자로 「복구」가 아니라 「복흥」이라고 다시 써 보인다. 부흥10개년계획은 21세기를 맞아 세계에 대해 열린,문화가 풍부한 지역으로 비약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그들은 부흥이 완료되면 세계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원봉사 손길 뜸해 하지만 부흥에 이르는 그들의 길은 아직 험난하다. 우선 피난민들을 위한 가설주택 마련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자영업자인 나카다니씨(60)는 집이 전파돼 친척집에 기거하고 있다.그는 『시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스러워한다.지진 발생후 일본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답지한 구호물자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기력을 회복했지만 개학을 맞아 자원봉사자들도 대다수 돌아가고 구호의 손길도 가늘어지고 있다.이제 모든 것이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몫이 되고 있다. 또 피해시설의 철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효고현에서 나오는 건물 등 파괴시설의 철거 쓰레기는 모두 1천8백50만t규모로 추산된다.쓰레기를 실은 트럭의 행렬이 3∼4㎞나 늘어서기도 한다.피해건물 철거에만 2년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세민들의 경우 전망이 막연하기만 하다.또 집은 시가 철거해 준다고 해도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재건축 비용은 커다란 부담이다.가옥이 전파된 나카야마씨는 『일본의 건물은 담보로 잡혀 융자받은 경우가 많은데 담보물인 건물이 부서져 담보가치가 없어진 경우 은행이 새 건물 지으라고 융자를 주겠느냐』면서 고개를 흔든다.도로와 공원을 넓히려는 당국의 재개발계획과 주민들의 이해도 충돌하고 있다. ○영세민들엔 부담 커 재일동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한국으로부터의 의연금 등은 가구당 5만엔 수준이고 50억엔의 대출금도 담보물이 튼튼한 경우일수록 이용에 유리하다.효고현 민단 사무국장 김준태씨는 『정작 1백만엔에서 5백만엔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가난한 동포는 대출받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고 문제점을 지적한다.부흥이 전체적으로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으로 내려오면 부딪히는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닌 것이다. 한신대지진 1백일.어둠속에 한줄기 빛이 비쳐오고 있지만 한편으로 빛과 그림자가 점점 선명히 대비돼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 일 옴교간부 청부살해 가능성/사린가스 테러 「핵심」

    ◎범인 서씨 범행동기·배후 집중조사 【도쿄=강석진 특파원】 독가스 사린 제조의 총책임자로 지목되던 일본 옴진리교 제2인자 무라이 히데오(촌정부·36)피살사건을 수사중인 일본경찰은 24일 현장에서 검거된 재일동포 서유행(29·무직·주거부정)씨가 범행현장에서 무라이를 수시간이나 기다렸다고 진술한 점에 비춰 이번 범행이 치밀한 계획 끝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범행동기와 배후를 집중추궁했다. 일본경찰은 또 옴 진리교의 독가스 사린 제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무라이의 피살로 막바지 고비를 맞은 연립여당은 24일 회의를 갖고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경찰의 집중 수사를 받고 있는 옴 진리교에 대해 내란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옴 진리교에 대한 수사도 어려움에 빠지게 됨에 따라 누군가에 의해 무라이씨가 청부살해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중이다. 서씨는 경찰에서 자신이 1년전 미에현의 우익단체 신슈시에이칸(신주사위관)에 가입한 회원이라면서 『TV에서 도쿄지하철 독가스테러사건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옴 진리교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일본경찰은 신슈시에이칸이란 단체가 지난해 10월 등록됐으며 사무실 주소가 일본 야쿠자 최대조직인 야마구치구미계열 산하조직의 본부 사무실주소와 같다는 것을 밝혀냈으나 신슈시에이칸이라는 단체는 활동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야마구치구미의 산하조직인 하네구미 관계자들은 서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일본경찰은 사린제조의 총책임자로 지목되던 무라이의 피살은 오히려 경찰의 수사를 방해할 뿐이므로 우익단체에서 그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보면서도 신슈시에이칸과 폭력단체간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옴 진리교 과학기술상인 무라이씨는 23일 밤 도쿄의 옴 진리교총본부 앞에서 스스로 우익단체 회원이라고 자칭하는 재일동포 서유행씨가 휘두른 칼에 찔려 24일 새벽 인근 병원에서 숨졌다.
  • 「섬나라」 황금연휴… 일인이 몰려온다/관광 “호황”… 검색“비상”

    ◎「엔고」타고 평소의 3배이상 입국/옴교 원정 보복테러 대비 초긴장 이번 주말부터 5월 첫째주까지 일본인관광객이 줄을 이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특히 5월3∼4일전후에는 평소의 3배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 기간 서울과 제주도·경주등 주요지역의 호텔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며 한·일노선의 항공편도 벌써 동이 나는등 관광업계가 호황을 누리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는 오는 29일이 식목일이고 30일은 일요일로 연휴가 되며 5월3일은 헌법기념일,4일 국민체육일,5일 어린이날,6∼7일 주말로 황금연휴가 이어지는데다 최근의 「엔고」현상으로 일본인이 한국등지로 국외여행을 하는 것이 국내여행보다 오히려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은 연휴와 연휴 사이에 낀 5월1∼2일을 「샌드위치 데이」로 대부분 휴가를 얻어 4월말부터 5월8∼9일까지 한국등 해외여행에 나서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일본인관광객 등의 대거입국이 예상되자 관계당국은 출입국관리비상령을 내리고 공항·항만 등 출입국장소는 물론호텔·지하철·백화점 등 공공장소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등 보안당국과 호텔등 관광업계는 특히 23일 옴진리교 제2인자가 재일동포에게 살해된 데 따라 추종세력이 보복테러를 하기 위해 관광객 등으로 위장잠입할 가능성등에 대비,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포공항경찰대는 이에 따라 첫 비행기와 마지막 비행기의 이착륙 1시간을 전·후해 공항청사의 화장실과 사무실 쓰레기통 등을 샅샅이 검색,폭발물과 유해가스 등을 탐지하고 있으며 소속 경찰관 40명을 경찰특공대에 보내 대테러훈련을 시켰다. 경찰은 아울러 공단과 협조,고체·액체폭약 및 유해가스를 탐지할 수 있는 최신형 검색기 9대를 들여와 여객및 화물청사에 배치하기로 했다. 공항경찰대는 세관및 출입국관리소등과 협조,이날부터 일본·중국·미국등지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은 미성년자까지도 철저하게 검사하기로 하는 한편 여권 없이 신분증만으로 입·출국이 가능하던 미8군 소속 현역군인에 대한 심사도 강화했다. 이에 발맞춰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은 11개이던CC­TV를 66개의 컬러TV로 대폭 늘리거나 교체했으며 3일이던 녹화테이프 보관일도 1주일로 늘렸다.
  • “옴교 재일교포에 보복 가능성”/옴교 2인자 피살 파장 어디까지

    ◎“민단지부 등에 경계강화” 경찰 긴장/한국대사과선 외교문제 비화 우려 일본 옴진리교사건 수사가 한달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폭력조직의 일원으로 여겨지는 재일동포가 교단 간부 무라이 히데오씨를 살해,일파만파의 충격을 주고 있다. 왜 그를 죽였는가,수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재일동포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한일관계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인가 등등 의문과 우려가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다. 범인 서유행은 범행후 『옴진리교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고 했다.교단간부라면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최근 폭력단체나 우익단체등이 옴진리교 본부등에 확성기를 단 차량으로 접근해 『옴진리교 나와』라고 시비를 거는 모습은 자주 목격됐다.그렇다고 하더라도 범인 서의 진술은 왜 무라이를 살해했는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우선 그는 하오 1시30분쯤부터 현장에서 서성이며 조유외보부장,아오야마변호사등 교단 주요간부는 노리지 않다가 7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무라이만 범행대상으로 삼은 점이 설명이안되고 있다.서는 무라이를 살해한뒤 할일을 다했다는 듯이 칼을 던지고 무심한 표정으로 경찰에 체포됐다.서는 우익단체인 「신슈시에칸」소속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신슈시에칸측은 서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고 있다. 무라이는 옴교단 「과학기술성 대신」으로 독가스제조등 교단무장화의 최종 열쇠를 쥐고 있는 주요 인물.일본경찰이 무라이를 연행하기로 결정한 직후 범행이 저질러졌다는 지적도 있다.따라서 일본 경찰은 서의 범행동기와 배후등을 집중추궁하고 있으며 언론에서는 범인이 무라이의 입을 봉하려는 누군가에 의해 사주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이 추정대로라면 서는 무라이의 입을 봉하려 한 누군가에 의해 사주받아 범행을 저지른 것이 된다. 여하튼 교단 2인자의 한명으로 독가스제조의 책임자인 무라이의 피살로 옴진리교의 범행 전모를 밝히는데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이 때문에 노나카 국가공안위원장은 즉각 『수사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옴진리교단에 대한 물증수사등을 강화하라』고 경찰에 지시하기도했다. 범인이 한국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24일 하루종일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재일동포사회는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에 대해 냉담한 일본사회가 한국인에 대해 더 차가워지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진리교에 대한 수사가 전개되면서 일본 경찰은 「옴신자들이 수사를 피해 한국등지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다」,「옴진리교신자 가운데 한국인이 교주인 모 종교신자들도 상당수 있다는데 알고 있느냐」등등 한국과의 관련사항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대사관 등도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며 이번 사건이 한일간 문제로 비화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하지만 옴진리교측으로부터 재일동포에 대한 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벌써 일본경찰이 범인 서의 부친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 민단지부등에 대해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즉각 연락할 것과 건물 주위의 수상한 신문뭉치·캔등을 보이는 대로 치울 것을 주문하는등 분위기는 살얼음 위를 걷는 상태다. ◎옴교 2인자 피살 이모저모/시민들,“안전 부재… 하루하루가 불안”/“가스제조 배후 수사 미궁” 일경 우려 ○…일본열도의 무거운 공포와 불안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죽음의 독가스 사건등 일련의 가스테러 사건으로 불안에 떨고 있던 일본인들은 23일 주요 수사 대상 인물이 많은 보도진과 경찰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살해되자 또다시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한 시민은 『하루 하루의 생활이 너무 불안하다』며 『일본의 안전신화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일본 TV방송들은 24일에도 옴진리교 고위간부인 무라이 히데오가 옴진리교 도쿄총본부 앞에서 칼에 찔리는 장면을 슬로비디오로 반복해서 대대적으로 보도.그는 23일 밤 8시35분께 한국국적의 서유행에 의해 옆구리·왼쪽팔등을 찔린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범인이 찌른 칼은 간까지 들어갔다고. ○…경찰은 무라이를 포함,20여명의 주요 옴진리교 관계자를 새로 검거할 계획으로 그들을 철저히 감시했다.경찰은 특히 23일부터 차량 6대를 동원하며 무라이에 대한 감시를 강화.그러나 경찰은 범행을 막지 못한데다 사린가스 제조에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무라이가 살해되자 수사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범인 서태성은 누구인가/일서 태어난 교포2세… 폭력조직 일원 일본의 독가스사건과 관련,의혹이 있는 옴진리교 고위간부를 살해한 범인 서유행은 재일동포 2세.도쿄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그는 재일동포 서태성(62)씨의 1남2녀중 셋째로 태어났다.부친은 도쿄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으며 위로 두 누나는 출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범인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으며 7년전 가출,가족들과는 연락을 끊고 지내왔다.지난해 11월부터는 도쿄도내 세타가야구에서 기거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범행후 「신슈시에칸(신주사위관)」이라는 정치단체의 소속이라고 스스로 밝혔다.신슈시에칸은 긴키지방의 미에현 이세시에 주소를 두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현선관위에 정치단체로 등록한바 있으나 실체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단체.법률행위가 아닌 사실행위를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경찰은 우익정치단체로서의 신슈시에칸은 전혀 파악된 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오히려 신슈시에칸의 주소에는 일본 야쿠자의 대명사인 야마구치조의 미에현 숙박소가 있을뿐아니라 서유행이 몇년전부터 야마구치조에 들락날락했다는 정보도 있어 신슈시에칸은 야마구치계열의 폭력조직으로 추정된다. 미에현 신슈시에칸 건물에 대한 경찰 수사결과로는 신슈시에칸은 불과 4명 정도의 멤버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의 범행과 관련,한국대사관과 재일민단은 『서유행은 한국적을 갖고 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교육을 받은 자로서 일본의 폭력조직에서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고 전제,초점은 왜 폭력조직이 옴진리교의 간부에게 타격을 가했는가에 두어져야지 한국인이 범행을 저지른데 모아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일 3백95개 지방의회/외국인에 참정권 부여

    【도쿄 연합】 재일동포 등 일본에 정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할 것을 결의한 일본 지방의회들의 수가 최근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상 재일한국민단 단장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재일동포들에게 지방참정권부여를 요구,결의하는 의견서 등을 채택한 지방의회가 지난 3월말 현재 3백95개로 늘어났다』고 밝히고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관철을 올해 민단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재일교포 참정권 확보/민자당,대일교섭 추진

    민자당은 참정권을 갖지 못하고 있는 재일교포가 지방의회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차원의 대일교섭을 벌이고 있다. 한일의원연맹회장인 김윤환정무1장관은 지난달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정계지도자들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협의했다고 9일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 2월말 일본 최고재판소가 「지방의회선거에서 재일교포를 비롯한 정주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위헌이 아니며 입법사항」이라는 판결을 냈다』고 전하고 『이에 따라 지방의회선거만이라도 재일동포에게 참정권을 주도록 자민당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사회당과 통합야당인 신진당,사키가케등 정당들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자민당을 설득하면 일본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참정권을 주는 현행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 재일동포37%“일에 귀화하고 싶다”/주일한국대사관 3천명 의식조사

    ◎평상시 일시이름 사용 63%… 민족의식 약화/3세 96%이상이 “영주·참정권·공무원 희망” 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주일한국대사관이 재일동포들을 상대로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젊은 세대들의 민족의식이 약해지고 있으며 일본사회에서 공생분위기의 조성을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갈 필요성이 큰 것으로 지적됐다.주일대사관은 지난해 말 한국적을 가진 재일동포 3천명을 상대로 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이같은 결과를 교민정책을 수립해 나가는데 반영해 나갈 방침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재일동포 가운데 37.4%가 귀화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1세는 18.3%만이 귀화를 희망하고 있으나 2.5세(부모가 1세와 2세인 경우)는 41.2%,3세는 33.7%로 높게 나타났다.이같은 결과에 대해 대사관측은 1∼2년 이상 걸리는 귀화절차가 간소화될 경우 귀화희망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 민족차별과 관련,응답자의 75.9%가 경험한 바 있다고 응답했다.여성 가운데 65%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은 79.8%가 경험했다고 응답했다.차별은 주로 학교와 교사로부터 경험한 경우가 71%,취직시 41.5%,지역사회내 28.6%,주택임차시 28%,융자받을 때 28%의 순(복수응답)으로 조사됐다.또 재일동포의 57.2%가 「장래에도 차별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차별극복과 공생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일상적인 사회생활에서 일본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63.5%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세대별로는 3세이하가 70% 수준으로 높게 나타났다.일본이름만 사용하는 비율은 남성이 7.5%인데 비해 여성이 21.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사관측은 민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이름이나 모국어 사용등 민족의식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앞으로 민족교육에 역점을 두고 각종사업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이번 조사에서 민족학교 취학경험은 1·2세가 25%인 반면 2.5세 이하는 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에따라 하·동계방학기간을 이용한 모국연수,장학금지급확대등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정정검도쿄총영사가 밝혔다.정총영사는 또 민단조직도 재일동포가 적극 참여할수 있도록 봉사위주체제로 전환하고 지도자들의 세대교체도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대사관측은 또 3세들이 96%이상 일본영주를 희망하면서 참정권,공무원채용,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들이 일본사회에서 차별없이 공생해 나갈수 있는 분위기 형성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펴낸 박용구옹(저자와의 대화)

    ◎“한·중·일 바른 관계 정립에 도움됐으면”/중국·일본생활 통해 얻은 교훈 정리/“타국 낮워보는 패권주의가 불평등 관계 형성” 문화예술계의 원로 박용구(81)옹이 최근 한국·일본·중국 3국관계를 문명사적으로 조명한 책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펴냄)를 출간했다.평생을 음악·무용 등 공연계에 몸담은 그가 일종의 외도를 한 셈이다. 그러나 세 나라에서 모두 살아봐 느낀 점이 많은 그로서는 할말도 많았을 테고 따라서 너무 늦게 말문을 틔운 감이 없지 않다. 『동아시아의 지난 역사는 「기록게임」에 의해 좌우되어왔습니다.상대보다 먼저 역사서를 통해 주변국을 배타적으로 규정하고 불평등관계를 합리화해온 것이지요』 그는 서기전 1세기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이 쓴 「사기」가 이웃국가를 오랑캐로 낮춰보는 패권주의적 화이사상을 확립시킨 뒤 2천여년동안 동아시아가 불평등한관계에 휘말려들었다고 주장했다.또한 일본이 8세기에 역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통해 「사기」의 화이사상을 흉내낸 신국사상을 자국민에게 주입함으로써 아시아를 불행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세 나라가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려면 서로의 잘못을 깨닫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는 중국과 일본이 오만을 버리는 것과 함께 「기록게임」의 패배자인 한국도 한때 「소중화」를 자처하며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것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3국관계에 인류 전체의 존망이 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21세기에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는 황화론에 대비해서라도 3국은 뭉쳐야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박옹은 3국 국민이 각기 위정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 바람직한 3국관계를 유도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박옹은 지난 40년경 만주 하얼삔에서 성악가로 활약하다 귀국했으나 월북작곡가 김순남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자유당정권의 박해를 받자 50년 일본으로 밀항한 비운의 인물.일본에 머무르다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고국에 돌아오자 이번에는 「5·16」군사정권에 의해 재일동포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내가 살아온 80년이선인들이 살다간 8백년보다도 더 변화가 많은 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박옹은 자신이 겪은 고초가 잘못된 3국의 역사관계에서 비롯됐다고 깨달은 것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고 밝혔다.그는 이 책이 『한·일·중 동북아시아 세 나라가 앞으로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해나가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하고 바랐다.
  • 재일 민단/참정권 획득 활동 강화/일 신진당,정주외국인 입당 허용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최고재판소가 재일동포 등 정주 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부여가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재일 한국민단은 2일 참정권 획득을 위한 활동을 더욱 강력하게 펼쳐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재일 민단은 일본의 여야 정당을 상대로 한 로비 활동을 강화하기로 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의회의 요망서 채택을 이끌어내기 위한 지방단위의 활동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이같은 방침은 현실적으로 지방자치법과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데 의원입법에 의한 것이 가장 빠를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제1야당인 신진당은 2일 정주 외국인에 대해 입당을 허용하기로 했다. 정주 외국인에게 입당을 허용한 것은 신당 사키가케 등 일부 정당이 지방차원에서 허용한 바 있지만 중앙당 차원에서 이뤄진 것은 신진당이 처음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