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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자민간사장 김대통령에 폭언/일 여당 방한단 면담취소 비난

    ◎가토 “김영삼이라고 하는 대통령은”… 운운 【도쿄=강석진특파원】 독도문제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최악의 상태를 맞고 있는 가운데 평소 대북한 관계개선에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온 가토 고이치(가등굉일)자민당간사장이 12일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개인적 감정이 섞인 폭언을 해 크게 물의를 빚고 있다. 가토간사장은 이날 야마가타현 아쓰미마치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야마자키 다쿠(산기탁)정조회장등 연립여당 방한단과의 면담을 취소시킨 김대통령을 『김영삼이라고 하는 대통령은 하나의 정치스타일을 갖고 있어서』 운운하며 이웃나라 국가원수를 완전히 무시하는 표현으로 발언했다. 「김영삼이라고 하는 대통령」이라는 표현에 대해 재일동포들은 『우리가 아는 일본말로는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는 표현』이라면서 『이웃나라 국가원수에 대해 공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 『아시아중에는 한반도·대만 두군데가 긴장상태에 있다』면서 『일본으로서는 하루 빨리 적극적으로 자주·자립·독립의 정신으로「어른스런 판단」에서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기가 온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해 대한반도 독자외교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의견대립이 있기 때문에 더욱 솔직히 이야기하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대화를 계속하지 않을 경우 양국관계는 점점 복잡해지게 될 것』이라고 김대통령등 한국정부의 대응방식을 정면 비판했다.
  • 일 고지현 한인 공직 진출 허용/하시모토지사

    ◎채용시험 국적제한 전면 폐지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시코쿠(사국)지방의 고치(고지)현이 올해부터 현직원 채용시험에서 국적조항을 전면 철폐하기로 결정,재일동포의 지방공무원 취업의 길이 크게 확대됐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의 동생인 하시모토 다이지로(교본대이랑) 고치현지사는 이날 『현직원 채용시험의 수험자격을 일본국적 보유자로 한하는 국적조항을 교원과 경찰관을 제외하고 전면 철폐한다』고 발표했다. 국적조항과 관련,일부 지방자치단체등에서 간호원 의사 등 전문직,기능직 등 일부 직종에 한해 국적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사례는 있어왔지만 일반직 공무원을 포함해 국적조항을 전면 철폐한 것은 고치현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한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재일동포의 고치현 지방공무원 취업이 전면 개방되게 됐다. 일본의 지방자치법은 외국인의 지방공무원 채용을 직접 금지하고 있지 않지만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공무원이 되는 데는 일본국적을 갖고 있는 자로 한다」는 내각법제국의 견해을 바탕으로 자치성이 반대입장을 견지해 왔다.
  • 일 빠찡꼬 연수입 228조원/총무청조사…5년전보다 99.6%늘어

    ◎엄청난 호황에 대기업도 점포 운영 일본의 대표적인 오락산업인 빠찡꼬산업이 연간수입 30조4천7백78억엔(2백28조5천8백억원상당)에 이르고 있다고 일본의 총무청이 25일 발표. 일본 총무청은 5년마다 「서비스산업기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빠찡꼬산업의 연간수입규모는 연속 1위를 기록하면서 지난번 조사보다 99.6%나 늘어난 규모라고. 다른 서비스업종의 연간수입규모를 보면 2위인 여관업이 31.2% 늘어난 7조6천3백29억엔,3위인 광고대리업은 4.2%가 줄어든 6조7천7백84억엔을 각각 기록해 빠찡꼬산업이 전체적인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음을 과시. 업자가운데 재일동포가 60%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빠찡꼬산업이 호황업종으로 자리잡자 최근 들어 대기업인 미쓰비시상사,스미토모상사가 빠찡꼬 선불카드운영회사를 차리는가 하면 다이에등 대기업은 아예 자회사를 통해 빠찡꼬점을 운영하는등 빠찡꼬산업진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 심리적 여운 아직… 고베항 70% 복구/일 판신대지진 1년

    ◎고아·알코올 중독 늘어 사회문제화/121조원 투입… 공공시설 재건 “순조” 일본 고베(신호)시 일대를 강타했던 한신(판신)대지진이 일어난지 17일로 만1년이 된다.지진이 많은 일본에서조차 1천년에 한번 일어날 대규모 지진이었다는 한신대지진은 일본사회에 커다란 충격파를 그렸었다. 6천3백여명이 희생된 한신대지진의 피해는 아직도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양친을 잃은 어린이만 5백60여명.졸지에 고아가 된 이들 어린이가운데는 아직도 3분의1정도가 부양해줄 곳을 찾지 못해 피난시설과 고아원등에서 생활하고 있다.또 지진의 공포,뒤이어 발생한 화재의 악몽,가족을 잃은 충격이 주민들을 심리적으로 괴롭히고 있고 일부 피해자들은 이를 잊기 위해 술에 매달리는 알코올의존증도 스며들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폐허위에 다시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효고(병고)현과 고베시는 총사업비 17조엔(약 1백21조원)을 투입하는 부흥계획을 실행하고 있다.그들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부흥을 이루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그들은 지진당시 혼란을 질서로 극복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이에 대해서는 매뉴얼사회인 일본에서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관의 지원을 기다린 것뿐이라는 폄하도 있지만 매뉴얼이 없을때 약탈과 폭동을 일으킨 미국 LA지진과는 여하튼 좋은 대조가 됐었다.또 「분발하자 고베」라는 구호를 내건 고베연고 프로야구팀 오릭스가 지난해 저팬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자 고베시민들은 준우승까지 분발한 오릭스팀을 뜨겁게 환영,연대감을 북돋기도 했다.화재로 싹쓸이가 된 나가타구등 낙후된 지역은 새로운 도심지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 실천을 기다리고 있다. 지진으로 무너지거나 쓸 수 없게 된 건물은 지난 1년동안 거의 대부분 철거됐다.장마철에 집중적으로 작업이 이뤄져 이제는 개인주택등 일부만 미철거상태로 남아있다.그러나 새로운 건설작업은 도로,부두,고가도로등 공공시설이 우선대상이 되고 있어 빌딩,주택의 재건작업은 늦어지고 있다.이에 따라 지진당시 항구기능이 마비됐던 고베항의기능은 70%가량 복구됐으며 길게 넘어져 지진의 위력을 실감케 했던 고베시내 한신고속도의 고가도로는 교각이 세워져 상판을 기다리고 있다. 효고현과 고베시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케미컬 슈즈(신발)업계의 부흥계획을 단순히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산시설을 첨단화하고 동시에 대량고용이 가능한 멀티미디어산업 유치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베시는 또 고베항을 더욱 발전시켜 세계적인 항구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지진후 무너진 「안전신화」에 놀란 일본정부는 도로,건물등의 내진기준을 크게 강화했다.수도고속도로공단은 오는 97년까지 도쿄 일원 수도권 고가도로의 교각 7천2백기의 안전강화공사에 착수했다. 한편 2백여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인적,물적 피해를 크게 입었던 고베시와 효고현 일대의 재일동포들도 생업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린 동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점차 정상을 찾아 생업에 힘쓰는 분위기다.
  • 김정일 54회 생일행사 준비 돌입(북녘 뉴스라인)

    북한은 다음달 김정일의 54회 생일(16일)을 한달 앞두고 벌써부터 생일행사 준비에 들어갔다.김정일생일은 지난해 「민족최대의 명절」로 지정됐으며 생일 다음날까지 「국가휴일」로 이틀간 모든 기관·기업소·가정들에 대해 국기게양을 의무화하고 있다.김일성 사후 두번째 맞는 이번 생일행사는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속에서도 성대하고 요란하게 치러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조총련에 대북지원사업 지원 촉구 북한은 새해들어 조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해 대북 지원사업을 강화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매체들은 김정일이 지난해 조총련에 보낸 편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김정일이 재일동포들의 나아갈 길을 밝혀줬다』고 강조하고 조총련에 대해 『애국사업에 새로운 성과를 이룩할 것』을 다그치고 있다.현재 조총련의 대북송금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대외민사관계법 제정

    【내외】 북한은 최근 해외의 북한법인,공민과 타국법인,공민과의 재산관계등 해외에서의 민사관계를 내용으로 한 「대외민사관계법」을 제정했다고 조총련기관지 최근호가 27일 보도했다. 지난 9월6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의장 양형섭) 「결정」제62호로 채택된 이 법은 ▲대외민사관계법의 기본 ▲재산관계 ▲대외 민사관계의 당사자 ▲가족관계 ▲분쟁해결 등을 규정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그동안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지 않고 재일동포들의 가족관계에 속인주의를 적용하지 않으며 한국이나 일본의 민법을 준용해 왔으나 앞으로 재일동포의 민사관계는 이 법에 따라 처리된다고 강조,상속을 비롯한 해외공민들의 민사법률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기준이 마련됐다고 주장했다.
  • 교토­오사카 교포사회(세계속 한인촌 탐방:5·끝)

    ◎20∼30대 배우자 80%가 일본인/서툰 한국말… 다다미 깐 일본집서 한국식 제사/차별 줄어들고 고학력화… 관리·사무직 늘어나/어렵게 일군 삶의 터전 소유권분쟁에 휘말리기도 해방50년.재일동포의 삶은 일본사회의 차별과 무관심속에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하지만 지문날인 철폐운동등 피어린 투쟁과 일본인의 차별의식 약화,한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 등으로 뒤늦게 나마 빛이 들고 있다.소외자에서 이제는 「끼여들기」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재일동포는 앞으로 어떻게 삶을 정립해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묻고 있다.이 물음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국인,한국정부도 모두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 정립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재일동포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중의 하나가 교토(경도)시 부근 우지(우치)시에 있는 우토로지역이다.그곳을 취재하기 위해 교토를 찾아 「우토로 토지대책위원회」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교토민단 남지부 감찰위원장 김소도씨를 만났다. ○일제 패망전 강제연행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게 된 김위원장은 귀찮아 하는 기색없이 교토역앞 중국요리집으로 약속장소를 정했다.그곳에서 열리는 「오카모토(오본)」가와 「하야마(엽산)」가의 결혼식장에서 접수를 보고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혼식은 일본이름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끼리의 결혼식이었다.결혼식은 피로연에만 손님이 초대되는 일본식.피로연은 사회자의 일본어 인도에 따라 먼저 일본말 축가등이 불려지고 있었다.1백50명정도의 하객이 모여 성황인 그 자리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1∼2명 눈에 띄었다.양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인도 참석한 것이다.그러나 상당수는 한복 차림이었다.우토로주민들이었다.이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기자에게도 음식을 마음좋게 자꾸 권했다. 1시간여 지나 아리랑과 새타령,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 경쾌한 템포로 흘러나오자 분위기가 일변.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일본인의 결혼식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신부 어머니가 낯 모르는 기자를 대하면서 한국말이 서툴러 미안해 할 정도지만 마음속의 신명은 그대로였다.덩실 춤은 1시간이나 계속됐다. 피로연이 파할 무렵 김위원장과 우토로지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일제가 패망전 한 회사를 만들어 그 회사로 하여금 비행장을 만들도록 하던 곳이다.강제연행돼 오거나 막노동꾼으로 흘러들어온 재일동포를 부려 비행장을 건설하다가 패망했다.그들은 조선인 노동자를 방치했다.보상은 커녕 귀국여비조차 지급하지 않았다.조선인은 건설현장 한구석 「함바(반장·노무자 합숙소)」에서 새로운,그러나 고달픈 삶을 개척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이제는 6천4백평 대지위에 모두 재일동포인 80가구 3백80명이 살고 있다.고다쓰(각로)와 다다미를 깐 일본식 새 집을 지은 우토로의 동포들은 한국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살고 있다. 그 회사는 지금 닛산자동차 계열회사인 닛산샤다이(차로)다.그런데 땅값이 치솟던 거품경제의 절정기인 88년 6월 돌연 한 부동산회사가 토지를 명도할 것을 요구했다.닛산샤다이로부터 우토로토지를 매입했다는 것이다.재일동포 주민에게는 큰 충격이었다.힘겹게 닦아놓은 삶의 보금자리를 억울하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지금은 소유권을 둘러싼 재판이 진행중이다.김위원장은 『끌어다가 고생시키고 내팽개치더니 죽을 고생해 이제 살만하게 만드니까 나가라고 한다』고 분노한다. ○한국명절때 시장 북적 우토로는 불완전한 전후처리를 상징한다.해방후 헌 신발짝처럼 내팽개쳐진 동포들이 제법 터전을 일구고 일본사회에 끼여들고 있지만 아직도 식민통치로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또 교묘하게 민사화됨으로써 제3자가 개입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차별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재일동포가 받는 차별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취직도 예전보다는 쉬워졌다.일본사회에 끼여들게는 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여전히 취직도 일본인보다는 상당히 어렵고 진급은 더 어렵다.이와관련,김세택 오사카총영사는 『사람이면 사람 대접 받아야 한다.이름도 제대로 쓸 수 없다면 동포들이 겪는 어려움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몇년전 귀화해 오사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이와미 히데노리(암견영헌)씨도 『귀화한 뒤 사업을 해 보니 세무서와의 관계,은행융자에 있어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오사카 조센이치바(조선시장).입구에는 「태백산에서 10년동안 기도한 도사」라고 한글로 써놓은 선전문구를 땅바닥에 펴 놓은 한국인 여자 점쟁이가 동포를 상대로 일본말로 손금을 봐주고 있다.이곳에서 2대째 덕산물산이라는 튼실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홍여표씨는 『50년대까지만 해도 추석과 설 명절 때 조선시장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면서 『요즘도 한국명절이 되면 붐비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홍씨는 『해외교포가 자랑할 수 있는 민족교육이 아쉽다』고 토로한다. 주재원을 제외한 순수 재일동포는 94년 현재 57만명 수준.1세대는 5% 내외이고 2·3·4세들은 한국말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차별을 통해 강요되는 일본동화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재일동포가 돈을 갖고 조국을 떠난 것이 아니다.차별과 생활고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국적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나라사랑도 각별해 올림픽은 물론 나라의 기쁘고 슬픈 일에 꽤 많은 성금을 마다하지 않았다.경제발전 초기단계에 재일동포의 기여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나라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참정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2세 김정규(코리아 투데이발행인)씨는 『올림픽은 정말 감동적이었다』면서 『재일동포가 생활은 스스로 한다.나라가 잘되는 것이 가장 고맙다』고 말한다. ○생활고 불구 성금 쾌척 그러나 지난 84년 64만명이었던 숫자가 귀화자가 연간 7천명 안팎으로 늘면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최근 재일동포 자녀들의 결혼상대는 80%가 외국인,바꿔말해 일본인이다.동포들의 주요 업종은 빠찡꼬,야키니쿠(불고기)집,막노동등이다.최근 들어서는 관리직·판매업·사무직등 종사자가 늘고 있다.이들 3업종 종사자는 74년 4만8천6백여명이었으나 94년에는 10만5천명으로 늘어났다.직업별 구성비는 일본사회 전체 비율에 근접하고 있다.고학력화의 결과다.통계로 보나 동포들의 실생활을 보나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진전의 이면에서 그들은 아이덴티티 정립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벌써 한국말이 불편한 2·3세들이 머리가 허옇게 센 노·장그룹이 되고 있다.교토민단 김재하(의사)단장은 『한국인으로 살 것인지,한국계 일본인으로 살 것인지,일본인으로 살 것인지 한국정부도 깊이 생각하고 어떤 방향이 결정된다면 그에 맞는 정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라면서 『한국민이라면 국민으로서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동포에게도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김총영사는 『재일동포도 국민임을 재일동포 뿐 아니라 정부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면서 『서울의 국민과 같이 대우해줘야 한다.독일이나 미국이 일본에 자국민이 60만명이상 거주한다면 우리처럼 방치했겠는가.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김총영사는 특히 재미동포는 다수 기용되면서도 어려움속에 조국사랑이 남달랐던 재일동포가 본국정부에 아무런 목소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적극적 사회참여로 권리 찾아야/재일동포 사회 이끌 전문가양성이 가장 중요/미야쓰카 도시오 산리학원대학 교수·재일동포 전문가 재일동포에 대해서는 일본사회가 대체적으로 공헌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하지만 빠찡꼬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서민의 오락으로 자리잡은 빠찡꼬산업을 일으킨 것은 재일한국인·조선인들이다.일본에 우체국이 1만8천곳 있고 슈퍼마켓이 4만5천여곳인데 빠찡꼬 점포는 1만8천곳이다.빠찡꼬 업소경영자의 70%는 재일한국인·조선인이다.폭력단과의 연계,탈세 등이 문제되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만큼 발전시켰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이제 이들에게 햇빛을 주어야 한다.최근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줄고 있지만 일본국가가 재일동포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재일동포는 일본 전체인구의 1%도 안되는 적은 숫자다.재일동포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왜 일본에 재일한국인·조선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는지 역사적 배경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한반도의 분단과 민단·조총련의 분열도 일본인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고 있다.재일동포에게 불행한 시절이 있었지만 미래는 밝게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다만 현재의 재일동포의 상황으로는 문제가 잘 풀릴지 의문이다.일본사회의 차별은 금방 없어지지 않는다.재일한국인·조선인 3세 정도면 거의 일본인화돼 있다.이제는 일본정부에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사회에 참여하면서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빠찡꼬와 불고기집이 지금까지의 동포들의 대표적인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빠찡꼬나 불고기집 경영자만이 아니라 과학자,기업가,교육·문화계 인사가 나와야 한다.이런 사람들이 재일동포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윤명오(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27)

    ◎철과 유리로 빚은 첨단 항공터미널/수심 20m 해상에 3억6천톤 토사부어 인공섬 조성/글라이더 날개 형상의 지붕으로 풍압 최소화/지반 불균형 침하대비 건물곳곳 유압잭 설치 바다위의 하이테크 관문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인구는 2천7백만명.도시의 GNP는 캐나다와 맞먹는 세계 최대급 메트로폴리스의 하나다.오사카는 일본에서 외국인 거주자수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왜냐하면 압도적인 수의 재일동포 때문이다.그만큼 우리에게는 낯익은 곳이다. 오사카 및 그 주변지역을 「간사이(관서)」라고 한다.이곳 간사이에는 원래 「이타미」라는 국제공항이 있었다.이타미공항은 김포공항의 국내선 청사 보다도 소박한 모습이었다.「소박하다」 못해서 「초라하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의 시설이었다.그러나 새로지은 간사이 국제공항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사카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이타미공항을 「흑백영화」에 비유한다면,간사이 국제공항은 「컬러S.F.영화」라고나 할까.관문의 분위기가 오사카의 분위기를 적어도 1세기 정도는 미래로 보내버렸다. ○해상 진입로는 환상적 구 소련의 거장 영화감독인 「타르코프스키」는 「혹성솔라리스」라는 S.F.영화를 촬영하면서 도쿄의 수도권 고속도로를 미래도시의 촬영현장으로 삼았었다.그러나 그가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면 그는 간사이 국제공항의 해상진입로를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불과 1년전까지 사용되었던 이타미 풀밭위의 활주로에 익숙한 승객들에게 간사이 국제공항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아직도 육지는 멀리 있는데,이미 착륙태세를 갖춘 기체는 수면높이의 저고도 비행에 들어간다.찰랑이는 물결이 느껴질 즈음,창밖으로 사각형의 인공섬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공항의 여객터미널은 정교한 철 부재를 이어 만든 글라이더의 날개형상의 지붕으로 덮여있다.건물의 선은 바닷바람을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듯한 가벼운 풍공학적 모습을 지니고 있다.사각형섬의 한쪽 끝에서 실처럼 가느다란 수상도로가 본토와 잇닿아 있다.입체트러스와 유리로 된 터미널은 그 자체가 건물이면서 기계인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10여년간 논쟁끝 건설이 거대한 섬의 건설을 위해서는 최소한 10년간의 논쟁이 있었다.수백명의 지역대표가 번갈아 공청회 발표자로 나섰다.한편에서는 「지역의 이익」이나 「자연에 대한 가치관」 같은 사회·문화적 토론과는 독립적으로 이 구조물의 건설능력에 대한 검토가 진행되었다.수심 20m의 바다위에,미소한 오차를 허용치 않는 활주로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에 대한 문제가 면밀히 검토되었던 것이다.수상도시 「베네치아」 보다 악조건,즉 덧대어 고정시킬 땅 한조각 없는 망망대해위에 3억6천만t의 토사를 쏟아부어 「인공섬」을 건설한다는 것은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일이었다.쿠프왕 피라미드 70개분의 중량을 점토질 지반에 올려놓는 것까지 성공한다 해도 2만년간 상부하중을 받아본적이 없는 해저지반이 이것을 받쳐줄 것인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침하」는 막을 수 없다.문제는 어떻게 하면 침하가 일어나더라도 골고루 일어나게 제어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무리하다 못해 황당하다고 할 수 있는 난제였다. 땅에 대한 집착의 결실일본인은 「땅」에 관한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있다.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한계의식은 그들로 하여금 틈만 있으면 대륙침략을 꿈꾸게 했다.그나마의 「섬땅」도 툭하면 지진으로 깨어지고 불을 토했다.절대로 안전하다고 믿었던 마지막 보루 고베의 지진은 일본인의 강박관념을 현실의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넣은 재앙이었다.세계를 놀라게 한 그들의 침착성은 오히려 숙명지워진 절망감의 단면이기도 하였다.일본 땅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말은 군사용어인 「불침항모」라는 말뿐.틈만있으면 그들은 「일본침몰」의 위기감에서 「일본 열도 개조론」을 외쳐댔다.젊은이 모두를 병역의 개념으로 동원해서,산을 깎아 바다를 메워 한치의 땅이라도 넓혀야 한다고 외친다.핵문제나 공해문제에는 매우 민감한 그들이지만 해양매립 등의 엄청난 생태파괴프로젝트는 의외로 쉽게 받아들인다.아시아의 거대도시들은 하안의 삼각주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아시아국가에서 공항의 위치가 바닷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공항의 「해양입지론」도 논리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홍콩,싱가포르가 그렇고,우리의 수도권 신공항도 영종도에 건설되고 있으니 말이다.그러나 그러한 입지적 당위성과 소음공해에 대한 주민반발등 사회적 여건을 십분 고려한다 해도,해안가도 아닌 바다 가운데 인공섬을 구축한다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땅에 대한 심리적 집착이 없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이 건설프로젝트의 방향이 기술적으로 입증되기 이전에 결정되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일본적 발상의 배경을 짐작케 한다. ○건물바다 철광석 깔아 간사이 국제공항은 해저에 박혀있는 무수한 모래기둥의 투수성을 통해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매립시차에서 오는 불균등한 침하현상을 막기 위해서,공사기간별로 토사매립량을 조절하였다.건설후 측정결과 지반의 안정성이 확인되었다.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침하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미세한 침하가 예측대로 균등히 일어나고 있었다.여객터미널 건물 바닥에는 철광석을 깔았다.지하공간 부분이 많은 터미널 건물의 무게가 가벼워서 중앙부 바닥이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건물의 무게를 늘려야했기 때문이다.건물 구조부 곳곳에는 모두 유압잭을 설치했다.만약 발생될지 모르는 불균등 침하시의 높이차를 인위적으로 보정하기 위한 것이다. 간사이 국제공항에 구현된 첨단기술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는 방재기술이다.대규모공간의 화재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유사시의 신속한 대피를 도모하기 위한 각종 실험연구가 이루어졌다.재래식 소방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초대형 폐쇄공간의 방재성능을 보장하기 위해서 화재발생을 초기에 감지하고 진압하기 위한 첨단의 감지·소화시스템이 적용되었다.이러한 검토는 방대한 보고서로 정리되었으며 방재공학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수도권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그 최종 규모는 간사이 국제공항을 능가한다.최근의 국내건설 현실은 거듭된 재난으로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과 불안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건설기술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건축물의 하나인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성공시킨바 있다.20세기 최대의 마지막 역사가 될 신공항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서 「간사이 국제공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우리의 기술력을 남김없이 보여줄 수도권 신공항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본다.
  •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대법,재심청구 기각

    【부산=이기철 기자】 간첩단사건으로는 처음으로 1심과 2심에서 재심결정이 난 재일동포 간첩단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파기환송결정을 내려 재심이 무산됐다. 대법원 제3부는 14일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0∼15년씩을 선고받은 신귀영(58)·신춘석(57)·서성칠(60·사망)씨등과 가족이 낸 간첩단사건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새로 제출된 재일교포 신수영씨의 진술서로는 무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라고 볼 수 없고 신씨 등이 주장한 경찰관의 고문·감금행위도 확정판결이 없어 재심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민단­조총련 해방 50돌 합동 심포지엄/도쿄서

    ◎“이젠 이념굴레 벗고 재일동포 화합 이루자”/본국 정세 휘말리지 말고 우리위치 찾을때/분파주의 벗고 귀화자와의 알력 극복해야 해방 5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들의 새로운 존재 형태를 모색하는 심포지엄이 3일 도쿄에서 개막됐다.이번 심포지엄은 3일 「재일동포의 화합」을 주제로 주제발표와 토론을 가진데 이어 4일 「재일동포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주제로 계속되며 오는 18,19일 오사카에서 「재일동포의 생활과 경제활동」,「재일동포의 민족교육과 문화」를 주제로 열린다. 남북분단과 재일동포사회의 분열속에서 한국적과 조선적을 가진 동포들이 함께 자리를 하면서 재일동포의 공동체를 진지하게 모색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특히 이번 심포지엄과 관련,조총련측이 「반동분자들의 책동」이라고 비난하고 민단이 소극적인 가운데 심포지엄이 열린데 대해 참석자들은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이날 참석자들의 주제 발표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경수(45·리쓰메칸(입명관)대 조교수)=재일동포의 분열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초기에는일본 공산당의 영향,그 뒤에는 남북분단에 의해 분열됐다.한국전쟁의 결과 분열이 결정적으로 됐다.당시의 분열은 조직의 분열이었다.그러나 65년 한일협정결과 재일동포 사회까지 분열에 이르렀다.이같은 분열은 재일동포의 운동이 본국직결형이었기 때문이다.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운동 속의 하나로 존재하도록 상대화를 못시킨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신기수(64·텐리(천리)대 강사)=해방당시 재일동포들은 노래와 춤으로 해방을 맞았다.일본인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동포들은 자각속에 해방을 맞았고 그 정열로 노천학교를 지어 후세를 교육하기도 했다.한국은 정치범이 8월16일 풀려났지만 일본은 2달뒤에나 풀려났다.당시 풀려나는 일본인 정치범조차 맞이하러 간 사람의 90%는 재일동포였다.이처럼 세상변화를 기대한 재일동포들이었지만 계급투쟁 우선으로 나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조련(재일본조선연맹,조총련의 전신)은 2회 대회때까지 동반자인 민족주의자를 모두 추방해버렸다. ▲김총령(52·통일일보 편집장)=재일동포 사회의 분열이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만 운동 지도자들의 첨예주의 과격주의 운동속에서 출세하려는 사람이 결국 동포운동을 미군정과 대립하도록 가져가고 탄압받게 만든 면도 있다.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올해 해방50주년을 화합하지 못한 채 맞이했다.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3세들이 재일동포 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는 만큼 본국정세에 휘말리는 운동이 아니라 재일동포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인식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또 여러가지 단체와 운동의 존재의의와 권리가 인정되는 민주적 운동이 돼야 한다.상대를 향해 「적색 스파이」,「안기부 앞잡이」등으로 「레테르화」해서는 안된다. ▲김규일(57·재일동포의 생활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재일동포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스스로 문제해결능력을 높여야 한다.민족적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바람직스럽다.지방할거주의,정치적 분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사회적으로는 귀화자가 늘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귀화자와 비귀화자간의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또 일본 각지에서 풀뿌리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재일동포 시민운동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 북송 일인 「옥수수 주식병」 신음/「아이치 모임」서 증언

    ◎일의 동생 야스모토/“돈·약 보내달라” 전화 자유왕래 방안 호소 일본 나고야시의 국제센터빌딩에서 21일 열린 「귀국자 가족을 돕는 아이치의 모임」(대표 하기와라 시게오 와코대 교수) 주최의 강연회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여성 야스모토 사쿠코(안본좌구자·51)씨는 북송가족의 애절한 삶의 고통과 북한의 어려운 실상을 밝혔다. 야스모토씨는 그녀의 언니가 북한으로 간 북송가족.그녀의 언니는 23살이었던 지난 60년 남편등 가족과 함께 「귀국」하기 위해 북송선을 탔다.일본에 있는 귀국자들의 가족·친척들은 북송교포들의 비참한 삶을 잘 알지만 북한에 있는 부모·자식·형제의 안위를 염려해 입을 열지 않는다.그저 부지런히 돈과 물건을 보내고 남몰래 눈물을 흘릴 뿐이다.인질인 셈이다.야스모토씨도 그랬다.그러나 그녀는 이날 『북송자 가족중 누군가 입을 열지 않으면 문제해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강연에 임한다』고 비장하게 말문을 열었다. 언니는 울면서 말리는 가족들에게 「차별이 없는 조국으로 간다.자리잡으면 부를께」라면서 떠나갔다.지금은 황해남도에 살고 있다.언니는 늘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배려로… 잘 지낸다」라고 편지했다. 지난 83년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언니를 만나러 북한을 방문했다.23년만의 상봉. 가슴이 벅찼지만 언니와 우리 가족 사이에는 통역·주민·안내원 등 10여명이 끼어들었다.친밀한 말을 나눌 수 없었다.언니는 23년전 일본을 떠나가면서 니가타에서 한벌 사 입었던 가디건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언니는 그 곱던 손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6일 북한으로부터 콜렉트 콜(수신자 부담)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언니는 「신장약 간장약 그리고 페라글라병 약을 보내줘」라고 말했다.언니는 울먹이고 있었다.「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살려고 했는데….뭐든지 좋으니까 도와줘」라고 말했다.페라글라병이 무어냐고 물으니 영양부족병이라고 말했다.옥수수를 주식으로 할 때 생기는 병이었다. 그 두달전에 언니의 막내딸로부터 편지가 있었다.조카는 「어머니는 요통,큰 오빠는 후두열,가운데오빠는 신장염,셋째 오빠는 급성간염,그리고 조카는 눈병을 앓고 있습니다.미안한 부탁이지만 약을 보내주세요.될수록 빨리 보내주세요.약이 안되면 돈이라도 보내주십시오」라고 부탁해 왔었다. 그녀는 여기서 강연을 마치면서 북송가족의 자유왕래 실현을 위해 북한 조총련 일본 모두가 노력해야만 할 것이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 성철스님 열반 2주기/해인사서 대규모 추모법회

    ◎문도회 주최로 새달 5일부터 1주일간/사리탑·기념관 추진… 학술상도 제정 불교 신도들에게 큰 깨달음을 남긴 성철스님의 열반 2주기를 맞아 회향법회와 추모제가 열린다.성철스님 문도회(회장 법전스님)는 스님이 입적한 음력 9월 21일에 해당하는 오는 11월12일 성철스님의 영정을 모신 해인사 백련암의 고심원에서 열반 2주기 회향법회를 갖고 대웅전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제를 연다. 5일부터 11일까지 1주일간 열리는 「성철대선사 추모 칠일칠야 참회법회」는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적 깨달음으로 만드는 수행의 자리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의 사리를 보관할 사리탑 건립도 추진된다.재일동포 미술가인 최재은씨를 사리탑 설계자로,주남철 교수(고려대),정영호 교수(교원대),홍원식 교수(동국대),김동현 문화재연구소 보존실장 등을 지도위원으로 위촉,현대적인 사리탑을 세울 계획이다.사리탑은 해인사 일주문에서 1백m 떨어진 동쪽 산기슭에 조성할 계획이며 내년 4월 착공,98년 11월 완공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성철스님 불교학술상 및 논문상을 제정,올해중으로 모집 공고하며 성철스님 제자들이 운영하는 사찰과 포교당을 중심으로 올바른 참선법 보급을 위한 선방 개설과 함께 「남모르게 남을 돕자」는 스님의 뜻을 받들어 이웃돕기 자비운동도 펼칠 계획이다. 또 불교서적중 가장 어려운 선서의 대중화를 위한 보급활동과 불전 원전의 연구자 및 번역자 양성등 역경사업도 집중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성철 스님의 영각 고심원은 스님이 남긴 5천여권의 서적과 유품을 모아 기념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20여년동안 성철스님을 모셔온 원택스님은 『성철스님이 참선에만 전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이웃의 불행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다』면서 『큰 스님의 뜻을 신도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것이 문도들의 도리』라고 말했다. 참회법회는 『나를 만나려면 1천배를 먼저 하라』는 스님의 생전 가르침에 따라 1주일간 1천배를 올린다.「참여 희망자는 해인사 백련암 (0599)32­7399,해인사 청량사 (0599)32­7987,서울 정안정사 (02)523­8088,서울 연등국제불교회관 (02)735­53 47,부산 해인선원 (051)628­7200,부산 해월정사 (051)742­4762,대구 정혜사 (053)624­9852,마산 정인사 (0551)56­5450,하남시 정심사(0347)791­7732.
  • “수출품 생산 목표 달성” 독려(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최근 무역제일주의방침에 따른 수출계획이 총체적 경제난으로 차질을 빚게 되자 수출품생산의 「정상화」를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북한은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를 통해 『오늘 수출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관련분야 종사자들에 대해 『수출계획 수행이 갖는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자기 부문,자기단위에서 맡은 수출품 생산계획을 무조건 지표별로 어김없이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한총련 청년 상공인회 곧 결성 【◎】 조총련이 20·30대 동포청년상공인을 망라하는 새로운 산하단체인 「재일본조선 청년상공회」(약칭 청년상공회)를 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에 따르면 조총련은 재일동포의 세대교체로 인해 3·4세대 동포상공인이 증가하고 있어 이를 조직화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오는 9월6일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를 결성키로 하고 지난달 3일 도쿄에서 결성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피폭자 1차조사… 273명 확인 【내외】 북한은 일본과의 전후보상 문제를 겨냥해 올들어 원폭피해자로 구성된 단체를 새로 결성하고 북한내 거주 피폭자들의 현황파악에 나서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재일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지난달 초 피폭 50주를 맞아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전해졌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월2일 「반핵과 평화를 위한 조선피폭자협회」를 결성했으며 피폭자에 대한 1차 조사에 나서 모두 2백73명의 피해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 조총련 성묘단 입국/오늘까지 3백23명/사할린동포 78명도 도착

    재일 조총련계 동포와 일제당시 사할린에 강제징용당한 재사할린동포 등 재외동포 모국방문단이 올 추석을 고국에서 맞기 위해 29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재일 조총련계 교포 모국방문단은 29일 상오 11시30분 교토발 대한항공 721편으로 36명이 입국한 것을 시작으로 30일까지 이틀동안 모두 3백23명이 고국을 찾는다. 이번 해외동포의 모국방문은 해외동포모국방문후원회(회장 강영훈)가 해외동포 모국방문사업 20주년을 기념해 초청한 것으로 3박4일간의 일정으로 경주 독립기념관등 유적지답사와 산업시설등을 돌아본뒤 각자의 고향에서 추석을 보내고 돌아갈 예정이다. 해외동포모국후원회는 지난 75년 9월 순수한 민족애와 인도주의정신및 민족대단결과 남북한간 제반교류차원에서 해외동포모국방문을 주선한 이래 지금까지 재일동포 5만5천5백83명을 비롯해 재미교포 3천5백38명 중국교포 2천9백65명 서독교포 1백명 캐나다동포 7백39명 스웨덴동포 1백21명 러시아동포 4백36명 등 33개국 6만3천7백55명의 해외동포가 고국을 찾았다. 이밖에도 일제강점 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사할린 교포 78명도 대한적십자사(회장 강영훈)의 초청으로 30일 입국해 고국에서 추석을 맞게 된다.
  • “고희 넘어 찾은 조국 가슴벅차”/55년만에 귀국한 정돈기씨

    ◎조총련과 40년 관계 끊고 고향위해 헌신 『나이가 들수록 고국이 그리워지는 것은 너나 할것없이 같은 마음일 겁니다.20대의 창창한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일흔이 넘어 다시 고국을 찾고 보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해외동포모국방문회(회장 강영훈)가 해외동포 모국방문사업 2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재일동포추석모국방문단」으로 55년만인 29일 낮 12시 김포공항을 통해 고국땅을 밟은 정돈기(75) 이일순(62)씨 부부는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서 설레는 가슴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보릿고개가 먼저 떠오릅니다.그런데 막상 조국땅을 밟고 보니 말로만 듣고 TV에서만 보던 조국의 모습에 가슴 벅찰 뿐입니다.한편으로는 지난 세월이 다소 후회스럽기도 하군요』 경북 구미시 원평동이 고향인 정씨는 1940년 우연히 돈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1950년 조총련에 가입한뒤 일본 니가타현 조선인상공연합회 이사장(75년)·회장(87년)등을 역임하며 조총련에 깊이 관여해 왔으나 최근들어 재일동포 민단으로 전향할 결심을 하고 입국했다. 『조총련에 가입한 것은 순전히 사업상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조총련에 대한 회의가 들뿐더러 이 길이 제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고향을 찾아 추석성묘를 지낸뒤 하루 빨리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과 손을 끊고 민단에 들어가 마지막 여생을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게 정씨의 소박한 꿈이다. 『물론 조총련의 협박이나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겠죠.사업을 하는 네 아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나이든 제가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일개 구미면이 구미시로 바뀌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는 정씨는 『해외동포모국방문후원회가 마련한 행사에 참석한 뒤 서울에 사는 누님과 구미시에 살고 있을 남동생 정민기(70)를 만나 하지 못했던 그동안의 얘기를 마음껏 나누고 조카들과 함께 놀러도 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 「있는지 없는지…」 저자 강성재씨(인터뷰)

    ◎“적대적 대일감정 버려야”/“한·일 상호이해엔 전후세대 역할 중요” 일본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한국 알리기」에 힘쏟고 있는 30대가 일본 비평서 「일본이 있는지 없는지 가봐야 안다」를 냈다(삼진기획 펴냄).지은이는 제목에서 보듯,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없다」와 「일본은 있다」로 대표되는 양극적인 시각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책을 쓴 강성재(35·일본 히로시마시 거주)씨는 한마디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고유 문화를 갖고 사는 모습은 똑같다.이제는 적대적인 감정을 버리고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일본에서 「한일문화교류센터」「한국 친구를 사귀는 모임」등을 설립,일본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에 분주한 민간 외교관.그는 또 부산시가 임명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일본 홍보위원장」이기도 하다.마치 성공한 재일동포의 표본처럼 보이지만,그가 지난 89년 유학차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남들처럼 「한국인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일본인들의 한국인 차별은 상상보다 더했습니다.그러나 더 참기 힘든 것은 젊은 세대가 한국을 잘 모를 뿐더러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창생활 동안 만난 일본 친구 가운데는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 나란지」「한국인은 주로 뭘 먹고 사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그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히로시마 수도대학교 졸업후에도 그곳에 남았다. 강씨는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은 양국의 젊은이들이야말로 앞으로 진정한 우호관계를 이룩할 장본인』이라고 강조하고,따라서 자신의 책을 우리 청년들이 관심있게 읽어주기를 바랐다.책은 ▲일본에서의 체험기 ▲한국인의 긍지 ▲한일 문화교류의 바람직한 방향 등 크게 세 갈래로 구성했다. 『한일관계가 정부 차원에서 개선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민간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일본인 아내와 가정을 이뤄 히로시마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으며,각종 단체에서의 활동말고도 신문·잡지 기고,강연활동을 통해 일본사회에 한국을 전파하고 있다.
  • 일본에선/한국어 교육(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3)

    ◎한글강좌 126개 대학 개설… “7대 외국어”로/NHK 월간교재 1회 7만부 나가/「서울 연수」 한해 1천명… 꾸준히 증가/남북한 문법달라 혼란… 교재·강사 태부족 「한국어」냐 「조선어」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안녕하십니까 한글」로 이름이 낙착된 일본 공영방송 NHK의 한글강좌가 올해로 11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 24일 강좌에서는 재일동포 작가 김달수씨가 어려서 살던 마산을 방문,아스라히 멀어져간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는 모습이 한국어와 일본어 자막으로 소개돼 단순 어학강좌를 넘어 한국과 재일동포의 삶을 조명하고 이해하는 수준에 올라서 있음을 보여 주었다.NHK 한글방송은 한국어 학원이 많은 도쿄 오사카 이외의 지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많은 사람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자체 평가되고 있다.개설당시에는 교재가 15만부 이상 팔렸다.올림픽 뒤 다소 열기가 식었지만 7만부 가량이 팔리고 있다고 NHK측은 밝히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전 일본에서의 한국어는 60만 재일동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재일동포들도 일본에서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모국어로부터 멀어져 갔다.조선적을 가진 조총련계 동포들이 비교적 모국어를 강하게 지켰을 뿐이다. ○한때 15만부 판매 그러나 86 아시안게임,88 올림픽을 앞두고 상황은 일변했다.한국에 대한 소개가 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도 늘어갔다.NHK에 한글강좌가 개설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일본 대학내 한국어 교육 실태를 보면 80년대초까지 학과를 두고 있는 곳은 도쿄외국어대학,오사카외국어대학,도야마대학,덴리대학 등 4곳이었다.학과 명칭은 전부 조선어학과,조선어·조선문학과,조선학과 등이었다.제2외국어로서 강좌가 설치된 곳은 77년 30개교,83년 47개교였다. 간다외국어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된 것은 86년이었다.강좌가 개설된 학교수는 88년 68개교로 늘어났다.92년에는 84개교로,가장 최근 조사가 실시된 94년에는 1백26개교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 강좌개설 대학수는 독일어(5백14개교),프랑스어(4백60),중국어(3백67),이탈리아어,러시아어,스페인어에 이어 7번째를 차지했다.이와관련,일본 문부성 고등교육국 대학과는 『7개 언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사되고 있고 그 이하는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강습소 1백50곳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아직 미미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86년 고등학교에서 한글이 교육된 곳은 일본 전국에서 7개교,88년에는 14개교,91년에는 24개교였다.91년 당시 전체 5천5백3개교인 고등학교의 0.4%에서만 한글이 교육된 것이었다. 지난 92년에는 42개교로 늘었다.이는 고등학교에서 교육되는 제2외국어가운데 중국어(1백54개교),프랑스어(1백28),독일어(73)의 다음으로 스페인어(39)보다 많다. 또 일본에서 외국어 강좌가 개설된 문화센터,학원 등에는 거의 빠짐없이 한글강좌가 개설돼 있기도 하다.주일대사관 교육관실은 일본 전국에 대략 1백50여곳의 강습소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독특한 예는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지난 89년 학부 개설 당시부터 제1외국어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한글 등 6개국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첫해 1천54명중 한글을 선택한 학생은 불과 4명.91년 비디오 상영과 불고기파티로 「손님 유치」에 노력한 결과 수강신청 2일째 정원 20명을 겨우 채웠다.92년에는 첫날 정원을 넘었다.지난해에는 70명이 신청해 듣고 있다. ○정부차원 지원을 게이오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려는 학생은 아시아언어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아시아언어별로는 중국어는 메이저 지향의 학생이,말레이·인도네시아어는 희소성을 중시하는 학생이,한글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개의치 않는 성취지향형 학생」이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한글선택 학생 가운데 여학생 비율은 30%를 밑돌아 6개 언어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는 일본 안에서만 교육되는 것이 아니다.한국에 유학해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도 많다.지난 59년 창립된 연세어학원 한국어학당을 비롯,서울대·외국어대 등의 한국어코스에는 늘 1천명정도의 일본인 학생이 재학중이다.한국어 코스를 거친 일본인들이 2만여명은 되리라는 추정이다. 하지만 일본 안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우선 능력있는 교사가 부족하다.지도방법도 확립돼 있지 못하다.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어의 경우 교재가 다양하고 충실한 반면 한국어의 경우 학원 등에서 주먹구구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많고 난이도도 조절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문체부에서 제작해 해외로 보내는 「한국어」의 경우 일본실정에 맞지 않아 일본내 18군데 설치돼 있는 한국교육원 등에서는 재편집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북한식 한국어와 남한식 한국어의 통일도 시급한 과제.지난 93년 조총련 인사들이 지원해 창설된 「한글능력검정」은 북한문법과 남한문법을 모두 맞는 것으로 하고 있지만 예문 등에는 북한식 표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이에 맞서 한국은 내년부터 「한국어능력검정」을 실시할 예정이다.여하튼 일본인들에게 정확한 통일된 한국어를 보급하는 데는 남북한 언어의 통일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언어는 교류의 다리다.앞으로 교재의 개발,교원 양성,남북한 언어의 통일 등 과제가 개선돼 나간다면 한국어 보급,더 나아가 한일간 교류에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에선…/한국 상사원(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1)

    ◎「경제극일의 첨병」 2천여명 활약/80년 20개사서 올 3백22개사로 급증/일 비즈니스·서비스 장점 흡수에 주력/체재비 많아 “본사 눈치”… 자녀교육 고민 94년말 현재 우리나라 공관이 파악하고 있는 재일본 한국인은 모두 67만6천7백93명이다.이 가운데 유학 취학 회사주재원등 이른바 「신거주자」들은 6만6천여명정도.지난해 도쿄에서 결성된 주일한국기업연합회 연락사무소 역할을 함께 하고 있는 무역협회 도쿄지부 내종태부장은 『신거주자 가운데 연합회에 가입한 회사주재원만 대략 2천명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공식통계일 뿐.이곳에서는 「솥 걸어놓고」 사는 한국인 신거주자를 26만여명으로 추산하는게 일반적이다.또 일본회사,다국적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과 개인사업가들도 크게 늘어나는 등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다.엄밀한 의미의 주재원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이고 몇명이나 되는지 가늠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엔고 타고 진출 붐 80년대초 일본에서 근무했던 주일대사관 오영환 경제과장은 『당시 일본에 사무소를 갖고 있는곳은 불과 20여개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면서 『그때는 주재원모임이라고 하면 당연히 모두 모인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한다.85년 무렵에는 사무소가 1백여사로 늘어났고 올해 기업연합회에 파악돼 있는 사무소는 3백22사나 된다.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은 80년대 중반이 고비였다.당시 엔고현상이 시작되면서 대일수출이 급증했고 해외여행·해외유학이 자유화되면서 사무소와 주재원의 대량유입이 시작됐던 것이다. 주재원들의 삶도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다. 66년부터 4년동안 청구권 및 경제협력사절단에 근무했던 주일대사관의 김주일공사의 회고­. 『60년대 중반이면 우리나라가 어려울 땐데 일본에 오니 이미 선풍기 냉장고 컬러TV는 생활필수품이었다.하지만 한국손님이 집에 들러 이런 물건을 보고 가면 「일본에 가더니 별별 것을 다 장만해 놓고 살더군」이라고 말해 곤혹스러웠던 적이 많았다.또 활동비가운데 고속도로 통행요금의 경우는 「길 다니는데 무슨 돈을 내느냐」면서 이해하지 못해 지급받지 못하기도 했었다.한국에 갈 때는 지금은거들떠 보지도 않을 나일론 양복기지와 주서 믹서등을 들고가면 귀국비용정도는 충분히 뽑았었다』 70년대초 일본에서 근무했던 대한항공 김인진 도쿄본부장은 『안보상 이유로 재일동포 특히 조총련계 동포 접촉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라,가급적 한국말을 쓰지 말라,한글간판 있는 곳에 가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활동이 위축됐었다』면서 『이제는 가슴을 펴고 다니지 않느냐』고 활짝 웃는다. ○아직은 탐색 단계 일본 주재원들은 경제선진국인 일본생활을 통해 국제감각을 익히고 자녀들에게 국제적인 소양을 줄 수 있는 점을 보람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또 비지니스와 관련,일본 상대로부터 배우는 것도 눈에 안보이는 수확. 하지만 아직 이곳 일본에서 회사들이 지점등을 개설해 영업수익을 올리는 곳은 생각보다 적다.철강·전자분야에서 대일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실제 영업과 협상은 대개 본사가 관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이곳 지점 지사 사무소의 상당수는 일본 시장에 관한 정보수집과 연락기능 수행에 머물고 있다.아직은 많은한국기업들의 일본진출이 탐색단계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증권의 박기홍 차장은 『까다로운 일본인 고객의 서비스 요구등을 겪으면서 새삼 영업사원으로서 자세를 가다듬을 때가 많다』면서도 『그러나 일본시장에 마구 들어오는 한국 회사들의 과당경쟁이 우려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일본 근무로 영업감각이 둔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승진 문제로 신경 일본시장의 침투가 어려운 상황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사무실 임대료,주재원 체재비와 활동비,일본 현지직원 인건비등 꽤 많은 비용을 써야 하는 상당수 지점과 사무소등은 때문에 늘 본사에 눈치가 보이는 편이다.주재원 개개인의 승진등과 관련,사내 평가에도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 이곳 근무자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자녀들의 교육문제다.해외생활이 언어발달과 한국 교과교육에 부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또 영어권이나 유럽지역 주재원들과는 달리 자녀들이 귀국하면 동료학생들로부터 「쪽발이」라는 놀림을받거나 일본말을 가급적 빨리 잊어버리려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례입학에 불리 정부가 국제화 시대를 말하면서도 일본 지역에 정부가 세운 학교가 한군데도 없는 등 해외주재원 자녀 교육에 소홀하다는 것이 많은 주재원들의 불만이다.이와함께 특례입학과 관련,「동시귀국조항」(특례입학의 적용을 받으려면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귀국해야 한다는 내용)을 상사주재원 자녀에게만 강요하는데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대한항공 김종렬 관리부장은 『자녀 교육문제로 한참 일해야 할 사원들이 회사와 마찰을 빚어 가면서까지 귀국하고 있다.시장개발의 영속성을 생각해야 하는 회사로서는 인력관리에 어려움이 크고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동시귀국조항의 시정을 희망했다.김부장은 『지난 한햇동안 주재사원 69명가운데 자녀교육문제로 3명이나 조기귀국했다』고 말했다.
  • 일본에선…/주일 한국대사관(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9)

    ◎68만 교민 대변하는 「작은 한국정부」/통상적 외교보다 정치적 업무 비중 커/“일은 한국도움 필요” 외교가서도 중시 일본하늘에 펄럭이는 태극기.그 태극기가 휘날리는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속의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한국대사관은 대일외교의 첨병 역할과 함께 양국을 잇는 가교역을 맡아 오며 국교정상화후 한·일관계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 한국대사관은 도쿄 중심부의 외교가라 할 수 있는 미나미 아자부에 있다.한국대사관은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1965년에 설치됐으며 그전에는 1949년 1월부터 주일대표부가 있었다.일본에는 대사관 관할아래 오사카 총영사관,후쿠오카 총영사관,요코하마 총영사관등 10개의 총영사관과 가고시마 명예총영사관이 있다. ○양국발전에 공헌 주일 한국대사관과 한국외교사절을 대표하는 주일대사는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교민들을 보호·감독하며 양국간의 우호관계 증진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다.김태지 주일대사는 『대사관의 중요한 역할은 한국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교민의 이익을 보호하고양국의 우호관계를 통한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일본에는 특히 68만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관광객과 기업이나 각 기관의 주재원들이 크게 늘어나며 영사업무도 많아졌다. 한국대사관은 그러나 그러한 통상적인 역할과 업무와는 또다른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일본은 지난 36년동안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굴절된 역사관계가 있는 나라일 뿐 만 아니라 민단과 조총련으로 갈라진 이국땅에서의 민족분단의 비극과 이념적 대결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북의 정보도 수집 정치성이 강했던 한국대사관은 한·일간의 최대 현안인 과거청산문제 해결과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일본의 지원문제 등을 위한 중요한 창구역할을 해왔다.그러나 양국관계가 냉각되거나 일본정치인들의 역사문제에 대한 망언이 되풀이되면서 외교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사관은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법적지위향상 등을 위해 민단과 협조하며 일본정부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대사관은 또 남북대결의 또다른 현장인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수집이라는 중요한 임무도 담당해 왔다.한국외교관들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북한을 다녀온 조총련계 재일동포나 일본인들과 직·간접의 접촉을 시도하고 일본정부와도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주일대사관의 이러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때문인지 대사도 대부분 정치적 비중이 있던 인물들이었다.초대 김동조 대사를 비롯,2대의 엄민영,3대 이후락,4대 이호,5대 김영선,6대 김정렴,7대 최경록,8대 이규호,9대 이원경등 「거물급」이었다.정치적 현안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치적 대사」가 필요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90년이후 실무형 그러나 90년대 들어 서며 과거사문제가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냉전의 붕괴로 이념적 대결이 약화되며 정치적 비중보다는 양국간의 경제현안등 실무적인 문제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며 대사도 실무형의 전문외교관 출신으로 바뀌었다.그 첫시도가 10대 대사로 부임한 오재희 전외무차관이었다.그 후 11대의 공로명 현외무장관 그리고 현재의 김태지 대사로 이어진다. 주일 한국대사관은일본 외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크다.아시아국가중 일본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는 물론 중국이지만 일본에 주재하는 외교관중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그 숫자가 많다.미국은 1백35명의 외교관을 일본에 파견하고 있으며 한국이 그 다음으로 78명,중국이 77명 그리고 러시아가 41명의 순이다. 『일본은 과거사문제때문에 한국과 껄끄러운 면도 있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로 한국을 중시하고 있다』고 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말한다.그는 『일본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에서의 협력을 비롯,대외정책에서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미국주재 한국대사관과 함께 외무부에서도 중시되고 있다.그러나 한·일간의 이슈가 많을 때는 외교관이 많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외교관 과잉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는 외교관도 있다. ◎김태지 주일 한국대사 인터뷰/국제무대서 한­일은 중요 파트너/일의 솔직한 과거 반성꼭 있어야 김태지 주일 한국대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관계는 경제문제등 현실적인 현안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일본은 아시아의 협력문제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복 5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30년이 된 오늘의 한·일관계 현주소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일관계의 최대 현안인 과거사문제등 그동안 산적했던 많은 정치적 문제들이 어느정도마무리되고 경제문제등 실무적인 이슈들이 중시되고 있는 느낌입니다.일본은 한국에게도 중요하지만 일본도 한국을 매우 중요한 이웃나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한·일국교정상화 당시의 양국 교역은 2억달러 정도밖에 안됐었으나 지금은 3백90억달러로 그 규모가 커졌습니다.물론 무역역조의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만….그리고 양국간의 인적 교류도 활발하여 지난 해에는 2백70만명(일본인 1백65만명,한국인 1백5만명)이 서로 상대국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은 오늘의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의 국력신장에 따라 국제적 위상이크게 높아졌다고 일본사람들은 말합니다.일본정부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등 국제기구와 지역협력을 위해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며 국제무대에서의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사문제의 해결방법은 어떻습니까. ▲일본사회에서는 과거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수주의적 사고를 가진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은 아시아국가들이 납득할 만한 과거청산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이나 다른 아시아국가들이 과거사를 보는 시각이 일치되도록 일본은 노력하여야 합니다.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일치하려면 일본의 솔직한 과거청산이 필요합니다.그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일본이 세계로 진출하여야 좋은 외교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일본의 밝은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의 정치인·관료·지식인 등을 만날 때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양국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양국간의 진정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건전한 학술·문화의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양국간에는 또 과거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폭을 넓혀야 하며 그러한 접근이 과거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구조적인 문제인 무역역조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일본기업의 한국유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를 위해 한국은 투자유치단을 파견하고 홍보를 강화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회담 전망은 어떻습니까. ▲북한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합니다.그러나 일본은 북한과의 접촉과 관련,한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 일본에선…/한국음식 인기(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3)

    ◎일 식탁 파고드는 김치·갈비/전문 반찬가게 북적… 편의점서도 취급/일부 가정선 총각­백김치 등 직접 담가/소주·족발 등 우리 전통음식 애호가 점차 늘어 도쿄 우에노(상야)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기무치 도리(김치 거리)는 일본속의 「작은 한국」이다.서울의 어느 조그마한 거리를 옮겨놓은 듯한 그곳에서는 한국음식의 거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 ○마늘냄새 탓안해 상점수는 모두 합쳐봐야 10여개 남짓하지만 김치를 비롯,온갖 한국음식이 맛깔스럽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야키니쿠(불고기·갈비) 음식점에서는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일본인도 좋아하는 갈비와 그밖에 여러가지 한국 전통음식도 즐길 수 있다.하지만 김치거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식료품은 거리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시 한국의 전통음식 김치다. 『김치는 이제 한국만의 음식은 아닙니다.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 못지않게 김치를 즐깁니다』 기무치 도리 한가운데서 한국식품 종합센터 제일물산을 경영하는 재일동포 강은순씨의 일본속의 한국음식문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강씨는 『가장 인기 높은 품목은 김치며 일본손님이 절반을 넘는다』고 말한다.해방직후만해도 김치에는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에 일본인으로 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일본인은 한국인의 마늘냄새를 특히 싫어 했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마늘냄새를 탓하는 일본 사람도 별로 없고 한번 김치를 먹어본 사람은 반드시 김치를 다시 찾는다』고 강씨는 말한다. 일본 사람중에는 소금으로 절인 자신들의 고유한 「김치」보다 한국김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한국김치는 우에노의 기무치 도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작은 골목까지 진출한 편의점 어디에서도 살 수 있다.한국김치는 일본 자위대에도 공급되고 있다. ○자위대에도 공급 일본인이 한국음식중 김치만 좋아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우에노 기무치 도리에 있는 식품점에는 한국식품점에 있는 모든 것이 있다.배추김치를 비롯,여러가지 김치와 깍두기·각종 젓갈·고춧가루·고추장·간장·마늘·김·생선포·떡·조미료·삼계탕 재료·한국라면·냉면재료·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식혜·소주등 각종 식료품이 진열돼 있다. 도쿄신문 전송과에 근무하는 니시이(서정)씨는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일본인중의 한 사람이다.그의 식성은 오히려 한국적이다.그는 김치는 물론이고 갈비·육개장·족발·삼계탕·소주등 전통적인 한국음식을 좋아한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그는 무교동의 낙지집과 삼계탕집,청진동의 해장국집등을 즐겨 찾는다.그는 귀국할 때 김치재료를 사갖고 돌아가는 때도 많다.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기 위해서다.그는 일반적인 배추김치 뿐만 아니라 총각김치·백김치등 여러가지 김치를 손수 담가먹는다.물론 니시이씨 같이 김치를 손수 만들어 먹을 정도의 일본인은 많지않다.그러나 일본에서 가장 대중화됐다고 할 수 있는 갈비와 김치등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손님 90%가 일인 일본인이 특히 한국음식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 전후라고 니시이씨는 말한다.『올림픽을 전후하여 일본 TV방송들이 한국음식 특집을 많이 보도하며한국음식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그는 회고한다.니시이씨는 『일본에서는 80년대말 한국·남미음식등 매운맛의 음식이 붐을 이룬적이 있었다』고 들려준다.『발효식품인 김치등 한국음식이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높아지며 한국음식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강은순씨는 말한다. 재일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 오사카는 물론이고 도쿄등 일본어디에서도 갈비·불고기·내장·갈비탕·족탕·냉면등 한국음식을 파는 야키니쿠 음식점을 흔히 볼 수 있다.야키니쿠 음식점은 특히 일본 사람에게 인기가 높다.도쿄와 요코하마 사이에 있는 가와사키의 세멘토 도리(시멘트 거리)에는 대부분이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20여개의 야키니쿠 음식점이 밀집돼 있다.그곳에서 동천각이라는 대규모 야키니쿠 음식점을 경영하는 전평만씨는 『고객중 일본인이 90%를 넘고 있으며 장사도 잘된다』고 말한다. ○고급·대형화 추세 환락가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도쿄의 신주쿠나 아카사카등에도 한국음식점이 밀집돼 있다.신주쿠에는 야키니쿠 음식점만이 아니라 찌개등 토속적인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도 적지않다.그곳의 손님도 대부분 일본인이다.신주쿠나 아카사카등에 있는 한국음식점과 스낵 바(단란주점)에서는 소주를 즐기는 일본인도 늘어나고 있으며 한국 사람과 같이 간 일부 일본인은 폭탄주까지 즐겨 마시는 경우도 있다. 일본인의 한국음식 선호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진로그룹이 최근 도쿄에서 가장 화려한 롯폰기에 「진로가든」이라는 대규모 한식집을 개점하여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급화된 서비스로 일본에서 한국의 음식문화를 한차원 높여 국제화된 일본외식산업에 진출하려는 실험적 도전이다.그러나 시설은 화려하지만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하지만 진로가든은 소규모가 많은 야키니쿠 음식점의 인식을 바꾸어놓고 있다.일본에서는 최근 야키니쿠 음식점의 대형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사람은 음식점에서만 한국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일반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모여앉아 한국가정과 같은 방식으로 갈비를 즐기고 김치를 먹는 일본인이 늘어나고있다.한국음식은 이제 일본 가정에서도 즐기는 음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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