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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체전에 웬 일본선수?

    전국체전에 웬 일본선수?

    “한국인이 되고 싶어요.” 제85회 전국체전에 18세의 일본 여고생 2명이 배구선수로 참가했다.쓰마 가나와 마시바 아키는 오사카 건국고등학교 2학년으로 해외동포 일본배구팀 일원으로 한국을 찾았다.전국체전에 순수 외국인이 참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해외동포에 대해서는 참가자격이 엄격하지 않지만 그래도 ‘국적을 불문하고 한민족의 혈통을 지닌 자’로 한정하고 있다.이들은 한민족의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 일본인이다. 이들의 전국체전 참가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2003년 전주체전을 앞두고 두 여고생의 끈질긴 참가 요청에 대한체육회 재일본지부는 결국 손을 들었고 체육회에 추천서를 보내 허락을 받았다. 이들이 재학중인 건국고는 한국계 학교로 재일동포 학생이 대부분이다.초등학교때부터 배구선수로 활약한 이들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로 진학했다.한국을 알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건국고 배구부가 오사카 지역 200여개 고교팀 가운데 4위를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것도 이들의 결정에 힘을 줬다. 처음엔 선수들간의 화합을 걱정한 이종건 감독도 “선수단내 분위기도 더욱 좋아졌고,경쟁심 때문에 실력도 많이 늘었다.”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두 선수의 생각과 행동도 한국인으로 완전히 변했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특히 학국계 학교진학을 걱정한 부모들도 지금은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이들의 꿈은 한국에서의 생활이다.쓰마는 “한국친구들이 너무 재미있다.”면서 “지금도 한국에 유학올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쓰마는 2002년에는 일본중학교대표에 뽑혀 제주도에서 경기를 한 적도 있는 실력파로 국가대표의 꿈을 키우고 있다.쓰마는 “한국과 일본 모두 여자배구는 세계정상급이기 때문에 서로 배울 점이 많다.”면서 “배구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제천여고,근영여고와의 두차례 경기(번외경기)에서 1승1패를 기록한 재일본팀은 10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났다. 청주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2006독일월드컵예선] 북한도 해외파 총출동 월드컵 北風 이어간다

    ‘북한도 해외파 총출동’ 북한 축구가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진출을 위해 해외파를 총동원한다.13일 오후 3시 30분 5조 조별리그 예멘과의 5차전 홈경기(평양)를 앞두고 일본 프로축구(J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총련계 재일동포 선수 2명을 호출한 것. 지난달 태국과의 4차전에서 2골을 작렬시키며 팀의 대승(4-1)을 이끈 ‘미남 스타’ 안영학(26·알비렉스 니가타)과 히로시마 산프레체의 주전 미드필더 이한재(22)가 주인공으로 이들은 오는 8일 평양으로 떠날 예정이다.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12위인 북한은 현재 2승2무(승점 8)를 기록,당초 예상을 뒤엎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77위) 태국(67위) 등을 제치고 조 선두를 달리고 있다.그러나 UAE가 승점 1차로 바짝 추격하고 있어 이번 경기가 최종 예선 진출을 가늠할 분수령이다.반드시 승리해야 다음달 UAE 원정 마지막 경기에 가볍게 나설 수 있어 이들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올시즌 컵 대회 등을 포함,모두 24경기에 출장해 3골을 기록하고 있는 안영학(182㎝ 77㎏)은 출중한 외모에 수비력은 물론,공격력까지 갖춘 미드필더.2002년 9월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남북통일 축구경기에 참가,국내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이번이 세 번째 대표팀 발탁. 북한 대표팀에 처음 뽑힌 이한재는 173㎝ 62㎏의 단단한 체격을 지녔으며 2002년 11월 J리그 1부 무대에 데뷔했다.지난해에는 팀이 2부리그로 떨어져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편.팀이 다시 1부로 승격한 올시즌 25경기에 출장,1골을 넣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우토로 거주 재일동포 “징용된 것도 서러운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60여년 동안 잡초처럼 살아 왔는데 이제와서 보금자리마저 잃고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때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로 끌려가 자리잡은 터전마저 잃을 처지인 일본 우토로 거주 재일동포 4명과 지원단체 회원 등 8명이 15일 강원도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고국의 도움을 호소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우토로는 일본 교토부(京都府) 우지시(宇治市) 이세탄초(伊勢田町) 우토로 51번지로 일제때 군사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노동자 1300여명이 쑥대밭을 일궈 취락지를 만들었던 곳이다.현재는 65가구 380여명이 살고 있다. 우토로 재일동포들은 이날 한국주거환경학회(회장 문영기 강원대 교수)가 ‘사회적 약자의 주거문제와 주택정책’이라는 주제로 강원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한복을 차려 입고 참가해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호소했다. 이들은 “태평양 전쟁당시 끌려와 사람이 살지 않던 잡초밭을 일궈 거주지를 마련했지만 지금은 언제 강제 철거될지 모르는 불안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문제는 전후 보상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에 기업차원이 아니라 일본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며 “우토로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에 편지를 보내는 등 동포들의 간절한 지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우토로 재일동포들은 주한 일본대사관을 찾아가 일본정부 차원의 대책도 촉구할 예정이다. 우토로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이처럼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인 것은 일제때 비행장을 건설하던 군수기업으로부터 재산을 넘겨받은 닛산샤타이(日産車體)가 지난 87년 주민들의 승낙없이 거주지 2㏊를 부동산업자에게 매각하고 이후 부동산업자가 주민들을 상대로 퇴거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10여년간 진행된 소송결과 교토재판소는 지난 2000년 주민들이 14억엔에 해당 토지를 일괄 매입하도록 하는 화의를 주선했으나 주민들의 열악한 형편 탓에 성립되지 못해 최종 패소판결이 확정됐다.이에 따라 주민들은 언제 퇴거판결이 강제 집행될지 모르는 상황에 불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금봉(66) 할머니는 “맨손으로 만든 보금자리를 잃지 않게 고국의 따뜻한 애정의 손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北京소식통 “김정일 부인 고영희 심장마비死”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51)씨가 지난 13일 새벽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북한에 정통한 베이징의 중국 소식통들이 30일 밝혔다. 소식통들은 북한은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 암투 우려와 김 위원장의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관례에 따라 고씨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채 이미 장례를 치렀다고 밝혔다. 재일동포 출신의 고씨는 그동안 세간에 알려진 고(故)성혜림씨,김영숙씨 등 김 위원장의 부인으로 알려진 인물들 가운데 실제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사실상의 공식 부인이다. 고씨의 직접 사망원인은 심장마비이지만 몇년 전 유선암으로 치료를 받았고 지난해 암이 재발,사실상 완치가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더욱이 고씨는 지난해 9월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건강이 더욱 악화됐으며,프랑스 의료진이 극비리에 방북한 데 이어 올해에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종양 및 뇌 관련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호화 관이 프랑스에서 평양으로 반입됐다는 설까지 겹쳐 이달 들어 고영희 중태설에 이어 사망설이 나돌았다.이달 중순 중국 관광객의 북한 입국 중단 조치가 취해지고 평양 주재 외국기관의 전화 연결이 불통돼 고영희 사망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서방 언론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둘째인 정철(23)과 셋째 아들인 정운(20)을 낳은 고씨의 사망이 확인될 경우 북한의 후계구도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김 위원장의 전 동거녀 성혜림이 낳은 장남 정남(33)과 고씨의 두 아들 등 세 아들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 지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한편 정부 관계자는 이날 “여러 채널로 북한 사정을 알아보고 있다.”며 “고씨 사망은 북한 내부에 중대한 사건인 만큼 정부로서는 당분간 확인도 부인도 할 수 없는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공식 확인을 거부했다. oilman@seoul.co.kr
  • 일본극단 ‘시키’ 한국진출 포기

    일본극단 ‘시키’ 한국진출 포기

    국내 뮤지컬 시장 진출을 모색해온 일본 극단 시키(四季)가 지난 28일 ‘한국 진출 포기’를 공식적으로 밝혔다.이에 따라 한동안 국내 공연계를 들썩이게 했던 논란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공연계가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처럼 당장의 이익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뮤지컬 산업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극단 시키의 아사리 게이타(71) 대표가 지적한 국내 공연계의 문제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그중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은 것이 공정한 오디션과 체계적인 배우 양성 시스템의 정착.이와 관련,아사리 대표는 한국 진출을 추진했던 목적으로 “시키가 키운 김지현 같은 뛰어난 한국 배우를 고국 무대에 서게 하고,한국내에 훌륭한 배우 양성시설을 만들고 싶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현재 시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배우는 모두 19명.지난 97년 시키의 정기 오디션을 통해 단원이 된 김지현(31)씨는 오는 11월11일 개막하는 뮤지컬 ‘캐츠’의 그리자벨라 역으로 발탁되는 등 극단내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부터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했던 중견급 배우까지 최근 1∼2년새 시키 입단을 희망하는 한국 배우가 늘고 있다는 게 시키측의 설명.지난 96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입단해 현재 교토 전용극장에서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 야수역으로 출연중인 김승라(41)씨처럼 재일동포 배우들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김씨는 총련계 예술단체 ‘금강산 가극단’ 출신이다. 국내 무대를 떠나 시키를 택한 이유로 이들은 철저한 실력위주의 오디션 과정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꼽는다.시키의 모든 배우들은 매일 오전 댄스,노래,발성,연기 등 부분별 레슨에 빠짐없이 참가해야 한다.수강료는 전액 극단측에서 부담한다.한국인과 중국인 연수생에게는 매월 200만∼300만원의 생활비까지 지급한다. 하지만 연수 과정이 혹독하고,무대에 서는 배우들에게도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직률도 높은 편.오디션에서 선발된 인원 가운데 20%가량만이 남는다고 한다.입단 8개월째인 이주영(22)씨는 “처음엔 완벽한 시스템을 추구하는 극단 분위기에 기가 질렸지만 지금은 그런 프로 정신이 최고의 공연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공연계의 경우 최근 들어 일부 극단이 배우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해 자체적으로 교육 과정을 도입하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더 큰 문제는 스타 위주의 오디션 관행.외부적으로는 공개 오디션을 표방하면서도 주역급 배역은 지명도가 높은 스타 배우를 미리 내정해놓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극단 시키의 한국 진출을 둘러싼 논란은 영화계를 비롯한 여타 문화산업 분야처럼 이제 공연계도 언제든지 외국 기업의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켰다.뮤지컬 전용극장 설립,정부의 다각적 지원 등 공연계가 주장하는 하드웨어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공연계 내부적으로도 실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이다. 도쿄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情의 문화’에 푹 빠졌다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情의 문화’에 푹 빠졌다

    |요코하마 이춘규특파원|재일동포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김양기(도코하가쿠엔대학·철학) 교수는 일본의 겨울연가·‘욘사마’ 바람의 원인을 문화적 충격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도 한·일 관계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지 등에 대해서는 “섣불리 낙관해선 안된다.”고 경계론을 폈다. 김 교수는 요코하마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겨울연가와 주인공 배용준씨,이른바 ‘욘사마’에 일본인들이 빠져든 것은 정(情)의 문화로의 회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패스트푸드나 템포 빠른 영화 등 이른바 속도의 문화에서 슬로푸드나 느린 영화 등 느림의 문화로의 회귀로 풀이했다. 또다른 매력은 무엇일까.일본이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억제를 강요당하는 문화인데 비해 한국인들은 희로애락을 명백하게 표현한다는 점이 겨울연가에서 잘 표현돼,감정 발산 욕구가 있는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부러움을 갖고 빠져들게 했다는 것.젊은 시절의 순정심리도 자극했다.비극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일본의 인기드라마와도 대비되는 효과도 거론했다. 그러면서 초로의 김 교수는 10년 뒤의 조국을 상정했다.그때는 한국에서도 지금의 일본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란 얘기다. 왜 일본 여성들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까지 배울까.한국에 가,한국 사람을 만나 얘기하고 싶어서라는 것이다.다만 드라마와 다른 현실,순정이 사라지고 있는 한국 현실을 대화를 통해 알게 되면 실망할 가능성을 우려했다.욘사마의 개인적 매력과 주인공의 인성적 특징도 짚었다.몰개성적이고,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는 듯한,그러면서 자기 것은 요구하지 않는 듯한 연기를 사실적으로 해 몰입하게 했다는 것. 그래도 의문이 많다.왜 드라마 촬영지까지 직접 찾아갈까.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들었다.유명배우 뒤따라가기 전통이다. 겨울연가 바람이 한·일 관계의 앙금을 풀고,관계개선의 촉매제까지 될까.“타이거 우즈가 골프계를 장악했다고 흑인 차별이 없어지나.”라고 김 교수는 반문했다.반감·차별을 완화시키는 역할은 하겠지만,낙관은 금물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올 10월부터를 우려했다.즉 내년 4월에 신교과서 채택 문제가 있고,그 문제를 올 10월부터 언론이 거론할 것이기 때문에 겨울연가 바람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봤다. 일본 사회에서 평생을 살면서 ‘철학 없는 우익들’로부터 협박도 많이 받았다는 김 교수의 전망은 전체적으로는 신중했다. 제자들,젊은이들은 대부분 인정을 몰라 겨울연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본 우익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일부 우익이 겨울연가의 돌풍을 질시하기도 하고,“한국은 남북 가리지 말고 일본에서 나가라.”고도 하지만 확신범이 아닌 현재의 우익은 일본 사회에서 영향력이 적다고 한다. 아울러 겨울연가 인기에 음습한 정치적 배경은 없는지 등의 불필요한 걱정은 버리라고 당부했다. 겨울연가의 바람에는 분명 집단으로 움직이는,“가자.”하면 가는,방향이 잡히면 따라가는 일본인의 특성이 조금 반영되기도 했단다.그러면서 그는 겨울연가를 매개체로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에서 서로 의심하고,헐뜯는 잔재들이 극복되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taein@seoul.co.kr
  •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요코하마 이춘규특파원|신세대 학자 오구라 기조 도카이대 조교수(한국철학)는 겨울연가 열풍 효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기여할 것으로 봤다.다만 역사 문제가 다시 부각될 내년에는 고비를 맞을 것으로 봤다. 자택 인근 요코하마 시내 한 호텔에서 오구라 교수를 만났다.많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 하필 왜 겨울연가인가.그는 겨울연가가 일본인의 향수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중년 여성들의 20∼30년 전 순수한 사랑을 되새기도록 자극했다는 얘기다.일본인에게는 억제당하는 직설화법도 신선했단다.한국어에 대한 분석은 독특했다.일본인들은 한국어가 강하고,거칠고,폭력적이란 이미지를 가졌었단다.학생운동·반일시위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그런데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말이 부드럽고,사랑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언어라는 이미지가 정착됐다나.말이 음악같기도 해 한국어 바람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한국,한국어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현상이 ‘무서울 정도’라고도 표현한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겨울연가처럼 이상적인 사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역시 우려했다.드라마 촬영지 방문도 독특하게 분석했다.약 1100년 전부터 수백년간 일본인들은 순례를 집단으로 행해 종교적 해탈감을 맛보았다고 한다.그런 잔재들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남이섬을 찾는 것도 비슷하단 주장이다. 오구라 교수는 겨울연가 돌풍을 1회성으로 보지는 않았다.역사적 배경이 있단다.일본이 한국을 배울 만한 나라로 여긴 것은 두 차례.첫번째는 7세기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만들 때 이른바 백제 신라의 귀화인들이 문화를 갖고 일본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가 제도와 문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 시대다.도쿠가와는 7년의 전화를 봉합하기 위해 “나는 도요토미와는 완전히 다르다.주자학의 선배로서 조선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해 국교를 재개하며 조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번이 세번째 한국 배우기란다.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파트너십 선언,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언론들이 한국에서 배우자는 바람이 일었다는 것이다.겨울연가 종영 이후에도 “한국의 작품들이 일본인에게 계속 매력있게 남아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겨울연가는 잊고 지낸 이웃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 촉매제였다는 분석이다. 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며 갑자기 젊은 여성들이 홍콩에서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고,월드컵 등 축구를 통해서 젊은 남성이 한국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았던 중년 여성들이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알기에 나서 일본 전체 세대가 한국알기에 동참했다.물론 서울올림픽 때 한국바람이 일다가 독도·위안부 문제 등으로 반일,혐한 분위기로 돌변했듯이 이번에도 역사인식 문제나 한국의 친일파 진상 규명 등 넘어야 할 변수가 많다고 우려했다.그 고비가 내년이란 분석이다. 재일동포들의 소외감도 우려했다.한·일 가교역을 담당했던 동포들이 직접교류 확대로 역할이 축소되는데다,재일교포의 고난은 잊어버리고,겨울연가의 영향 때문에 역사 문제는 외면하고 여행·소비 위주의 교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는 얘기다. taein@seoul.co.kr
  • [기고] 동북아 역사전쟁 중장기전략 시급/조법종 우석대 교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프로젝트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국과 중국의 역사분쟁은 기왕의 한·일 역사쟁론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역사갈등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있다.이는 특히 일본이 영토확대를 목표로 동북아시아를 역사분쟁지대로 만들려는 의도와도 연결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중국은 1996년 이미 중국사회과학원 핵심연구과제로 고구려 연구를 진행했으며 2002년 5개년 계획의 동북공정을 시작하고,2003년 중국지역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해 결국 2004년 6월 북한과 함께 동시에 등재됐다. 이후 중국은 세계문화유산 등재기념축제를 3개월 동안 진행하고 있으며 일사불란하게 외교부 홈페이지 고구려를 우리 역사에서 삭제했다.그리고 자국민을 상대로 각종 신문 및 웹사이트 등을 통해 홍보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제 교과서 개편을 통해 내부적인 고구려사의 중국사화 작업을 종결할 태세다.또 고구려 역사 선전장으로 변한 지안 및 환런 등지의 고구려 유적에 “중국 고구려”라는 설명을 반복해 표시하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선전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현재까지 진행돼온 이같은 중국의 활동에 우리 정부가 취한 대응방법을 보면 중국의 페이스에 끌려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즉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학계와 시민단체가 지적하면 그 뒷수습 차원에서 대응방안이 강구되거나 시간만 허송하는 논란을 하기 일쑤였다. 이미 중국은 다음 단계를 발빠르게 진행하고 있다.예컨대 학계는 이미 2003년 이 문제가 학술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고서로 제출했지만 당시 정부는 학술 차원의 문제라며 문제 확대를 일축하고 대신 문화사절을 중국에 파견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그때라도 최근과 같은 입장의 절반의 강도로 정부가 대응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러나 지금이라도 전국민적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고,고구려연구재단이 구성돼 문제해결의 중추로서 활동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중국의 문제제기에 따라가듯 감정적 대응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수 앞선 다양한 카드를 준비해 상대가 생각지 못한 의표를 찌르는 대응전략을 마련,정부의 종합적인 단기·중기·장기적 실천방안을 진행해야 한다.따라서 이를 조정하는 고구려연구재단의 정부기구화가 신속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 대응방안에서 우선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논의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왕의 우리 국사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이다.즉 중국에 당하고서야 우리의 실체가 인식된 꼴이 돼 부끄럽지만 국사 교육 없이도 대학갈 수 있고,조기유학 가서 외국 역사 실력만 가득 찬 유학파들이 우리 역사를 책임지도록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낸 현재의 교육정책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따라서 국사 교육 강화는 민족존립 차원에서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또한 중국의 조선족과 러시아의 고려인,일본의 재일동포 등 재외동포들의 적극적인 포용이 필요하다.어찌 보면 고구려 유민,발해 유민 그리고 백제 유민의 현재적 잔영 같은 이들이 정작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가장 소중히 국가가 관심을 쏟아야 할 존재들이다.우선 중국 옌볜 조선족사회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소리 없는 지원을 통한 연대강화가 절실하다. 한편 최근 한류로 상징되는 우리 대중문화 역량과 IT,인터넷 기술력을 활용한 대응방안이 적극 모색돼야 한다.이들 분야에 고구려문화 콘텐츠가 가미된 내용이 전세계에 ‘고구려=한국’임을 인식시킨다면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티베트,몽골,베트남,터키 등 우리와 유사한 역사경험 국들과의 연대도 마련돼야 한다.정부는 현재 제기된 다양한 논의 가운데 실천 로드맵을 중장기적으로 마련해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
  • 말말말˙˙˙

    현실의 세계에 머물 곳이 없기 때문에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을 쓴다.하지만 소설 안에도 나의 거처는 없다.그래서 또다시 거처를 찾아 소설을 쓴다.-재일동포 소설가 유미리씨,최근 장편 ‘8월의 저편’을 한국·일본에서 동시에 내놓은 뒤-
  • 재외동포 607만6783명

    재외동포 607만6783명

    2003년 7월 현재 재외동포는 2001년보다 7.48% 늘어난 607만 6783명으로 집계됐다. 4일 외교통상부가 펴낸 ‘2004년도 세계각국편람’에 따르면,이 시점의 아주지역 재외동포는 2001년에 비해 11.57% 증가한 297만 9736명이고 이 가운데 재중(在中)동포가 214만 4789명으로,13.62% 늘어났다.재일동포는 63만 8546명으로 0.26% 줄었다. 미주 지역은 243만 3262명으로,2.43% 증가했으며,미국은 1.62% 늘어난 215만 7498명,캐나다는 20.74% 늘어난 17만 121명이다. 구주 지역은 9.59% 늘어난 65만 2131명이며,이 가운데 CIS(독립국가연합) 지역이 55만 7732명으로 6.91%,그외 유럽지역이 9만 4399명으로 28.65%가 각각 늘었다. 반면 중동 지역은 6559명으로 9.41%가 줄었고,아프리카 지역도 3.28% 감소한 5095명이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

    서귀포를 노래한 대중가요는 많다.‘서귀포 사랑’,‘서귀포를 아시나요’‘안개낀 서귀포’‘서귀포 나그네’‘서귀포 달밤’‘서귀포 칠십리’등.그러나 많은 서귀포 관련 가요중에서 서귀포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린 노래라면 단연 ‘서귀포 칠십리’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진주캐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노래를 부른 요절가수 남인수의 미성과 가창력은 서귀포 해안 절경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이 노래는 격동기인 40년대를 풍미하고 금지→개사→해금 등의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계속 애창되고 있다. 월북 작곡가인 조명암(趙鳴岩·본명 趙靈出·1913∼1993)이 가사를 만들고 박시춘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그저 나온 게 아니다.충남 아산출신으로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시인이자 연극인인 명암이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동방의 태양’이 당선되자 OK레코드사 이철(李哲)사장이 그의 등단을 축하하면서 이해 6월 함께 제주에 여행왔다.서귀포 해안절경에 매료된 명암이 이틀 밤 내내 고심한 끝에 탄생하게 됐다. 당시 명암이 본 서귀포구는 천혜의 자연 포구였다.동으로 정방폭포·소남머리 단애에서 서쪽으로는 남성동 절벽과 외돌개 기암에 이르기까지 절경 아닌 곳이 없고,그 앞에 범섬·새섬·문섬·섭섬이 미려하게 자리잡은 사이로 통통배와 고깃배가 오가고,여기에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까지 가미된 해안 풍광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었을 것이다.그래서 천재화가 이중섭도 한국전쟁 중 서귀포에 피란와 바다그림을 그리며 6개월 동안 머물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명암은 광복 이후 미 군정이 진보적 작가들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본명인 조영출,이가실,금운탄,이부풍이라는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다 1948년 자진 월북했으며,‘서귀포 칠십리’도 그의 월북과 함께 ‘구금’에 들어간다. 박시춘은 이 노래가 없어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작사가인 반야월에게 개작을 의뢰했고 억지 개사된 ‘서귀포 칠십리’는 남인수가 지병중임에도 다시 불러 두번째 탄생했으나 2절 가사 중의 ‘미역따던 아가씨’가 ‘머리빨던 아가씨’로 바뀌는 바람에 “바닷물에 머리를 빠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귀포 칠십리’도 93년 ‘금지가요 해금’조치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됐으며 급기야 일본에서 활동중인 이성애가 일본어로 취입,오사카(大阪)등지의 나이 많은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최고의 노래로 자리잡았다. 서귀포시는 서귀포의 대표적 가요인 ‘서귀포 칠십리’와 작사자인 조명암을 기리기 위해 지난 97년 외돌개 해안 동쪽 구릉에 조각가 이영학이 제작한 무쇠 노래비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불어닥친 태풍 ‘매미’로 부서지고 말아 시는 다시 5000만원을 들여 이달 말 천지연폭포 북쪽 절벽위에 김혜숙씨의 작품인 가로 3m,세로 2m 크기의 화강암 노래비를 세울 계획이다.버튼식 음향장치까지 설치해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서귀포 칠십리’등 서귀포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서귀포는 ‘서귀포 칠십리’로 더 낯이 익다.그래서 “서귀포 해안 길이가 칠십리(七十里)나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대해 서귀포시는 1653년 발간된 ‘탐라지’내용을 근거로 과거 정의현청(旌義縣廳)이 자리했던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서 서귀포항까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칠십리는 제주 사람들에게 단순한 수치나 거리개념이 아니다.면면히 이어져온 향토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서귀포의 이상향이고 피안이다. 서귀포시가 최근 각종 축제나 스포츠대회 명칭에 ‘서귀포 칠십리’를 붙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귀포 칠십리 축제’‘서귀포 칠십리 전국 남녀궁도대회’‘서귀포 칠십리 건강달리기대회’‘서귀포 칠십리 70경’등이 그것이다.심지어 ‘서귀포 칠십리 건축대상’‘서귀포 칠십리 감귤’이라는 브랜드도 나왔다. 조명암이 다녀간 지 어언 70년.그가 거닐었던 서귀포구는 이제 형형색색의 유람선과 관광잠수함이 드나드는 관광항구로 변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서귀포 관광미항 개발계획’까지 마련돼 호주 시드니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같은 국제적인 관광 미항으로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

    서귀포를 노래한 대중가요는 많다.‘서귀포 사랑’,‘서귀포를 아시나요’‘안개낀 서귀포’‘서귀포 나그네’‘서귀포 달밤’‘서귀포 칠십리’등.그러나 많은 서귀포 관련 가요중에서 서귀포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린 노래라면 단연 ‘서귀포 칠십리’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진주캐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노래를 부른 요절가수 남인수의 미성과 가창력은 서귀포 해안 절경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이 노래는 격동기인 40년대를 풍미하고 금지→개사→해금 등의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계속 애창되고 있다. 월북 작곡가인 조명암(趙鳴岩·본명 趙靈出·1913∼1993)이 가사를 만들고 박시춘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그저 나온 게 아니다.충남 아산출신으로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시인이자 연극인인 명암이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동방의 태양’이 당선되자 OK레코드사 이철(李哲)사장이 그의 등단을 축하하면서 이해 6월 함께 제주에 여행왔다.서귀포 해안절경에 매료된 명암이 이틀 밤 내내 고심한 끝에 탄생하게 됐다. 당시 명암이 본 서귀포구는 천혜의 자연 포구였다.동으로 정방폭포·소남머리 단애에서 서쪽으로는 남성동 절벽과 외돌개 기암에 이르기까지 절경 아닌 곳이 없고,그 앞에 범섬·새섬·문섬·섭섬이 미려하게 자리잡은 사이로 통통배와 고깃배가 오가고,여기에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까지 가미된 해안 풍광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었을 것이다.그래서 천재화가 이중섭도 한국전쟁 중 서귀포에 피란와 바다그림을 그리며 6개월 동안 머물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명암은 광복 이후 미 군정이 진보적 작가들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본명인 조영출,이가실,금운탄,이부풍이라는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다 1948년 자진 월북했으며,‘서귀포 칠십리’도 그의 월북과 함께 ‘구금’에 들어간다. 박시춘은 이 노래가 없어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작사가인 반야월에게 개작을 의뢰했고 억지 개사된 ‘서귀포 칠십리’는 남인수가 지병중임에도 다시 불러 두번째 탄생했으나 2절 가사 중의 ‘미역따던 아가씨’가 ‘머리빨던 아가씨’로 바뀌는 바람에 “바닷물에 머리를 빠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귀포 칠십리’도 93년 ‘금지가요 해금’조치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됐으며 급기야 일본에서 활동중인 이성애가 일본어로 취입,오사카(大阪)등지의 나이 많은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최고의 노래로 자리잡았다. 서귀포시는 서귀포의 대표적 가요인 ‘서귀포 칠십리’와 작사자인 조명암을 기리기 위해 지난 97년 외돌개 해안 동쪽 구릉에 조각가 이영학이 제작한 무쇠 노래비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불어닥친 태풍 ‘매미’로 부서지고 말아 시는 다시 5000만원을 들여 이달 말 천지연폭포 북쪽 절벽위에 김혜숙씨의 작품인 가로 3m,세로 2m 크기의 화강암 노래비를 세울 계획이다.버튼식 음향장치까지 설치해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서귀포 칠십리’등 서귀포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서귀포는 ‘서귀포 칠십리’로 더 낯이 익다.그래서 “서귀포 해안 길이가 칠십리(七十里)나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대해 서귀포시는 1653년 발간된 ‘탐라지’내용을 근거로 과거 정의현청(旌義縣廳)이 자리했던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서 서귀포항까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칠십리는 제주 사람들에게 단순한 수치나 거리개념이 아니다.면면히 이어져온 향토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서귀포의 이상향이고 피안이다. 서귀포시가 최근 각종 축제나 스포츠대회 명칭에 ‘서귀포 칠십리’를 붙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귀포 칠십리 축제’‘서귀포 칠십리 전국 남녀궁도대회’‘서귀포 칠십리 건강달리기대회’‘서귀포 칠십리 70경’등이 그것이다.심지어 ‘서귀포 칠십리 건축대상’‘서귀포 칠십리 감귤’이라는 브랜드도 나왔다. 조명암이 다녀간 지 어언 70년.그가 거닐었던 서귀포구는 이제 형형색색의 유람선과 관광잠수함이 드나드는 관광항구로 변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서귀포 관광미항 개발계획’까지 마련돼 호주 시드니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같은 국제적인 관광 미항으로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정보뱅크] 이주일의 교육캘린더

    ●15일 (화) 디지털대성 모의고사 신청(대성학원·25일까지) ●2004재일동포 중·고생 하계학교 홈스테이 모집(국제교육진흥원·7월6일까지) ●17일 (목) 특기적성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사 세미나(사립학교연금관리공단·오후 3시) ●18일 (금) 창의성 신장을 위한 영재교육 심포지엄(서울교육연수원·19일까지) ●19일 (토)바른 식생활 홍보행사(여성플라자·오전 9시30분) ●20일 (일)트루스터디 2004수능D-100 공모전 마감 ●21일 (월)상업교육발전 종합방안 위탁연구(한국직업능력개발원·오후 3시)
  • [정보뱅크] 쪽지통신

    ●서울시교육청은 19일(토) 오전 9시30∼낮 12시30분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우리 아이들,식생활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시민과 학부모를 위한 바른 식생활 홍보 행사를 개최한다. ●서울올림픽기념관(www.seoulolympicmuseum.com)은 6월 매 주말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회관에 있는 기념관 소영상실에서 그리스·로마신화를 주제로 주말가족영화 행사를 열고 있다.19·20일에는 ‘올림포스 가디언Ⅲ’,26·27일에는 ‘올림포스 가디언Ⅳ’를 상영한다.모두 90여분에 이르는 애니메이션으로 아테네와 아라크네,헤르메스,올림포스 신들,프로메테우스,판도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무료.(02)410-1051∼5,1293∼7.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이 최근 서울 역삼동 문화콘텐츠센터에 어린이와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에듀테인먼트 공부나라’를 문열었다.애니메이션 상영관과 캐릭터몰,에듀테인먼트 체험관에서 한글·영어·과학·숫자·미술·음악·창의·동화나라 등 8개 분야의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체험해볼 수 있다.매일 오전 10시∼오후 8시.일요일 휴무.무료.역삼역 6번 출구로 나와 150m 가다 왼쪽.(02)2051-3070. ●국제교육진흥원(www.ied.go.kr)은 2004재일동포 중·고생 하계학교 기간 중 실시하는 홈스테이 행사에 재일동포 학생들을 맞이할 가정을 모집한다.기간은 7월31일∼8월1일(토∼일) 이틀 동안이며,중·고생 자녀가 있는 수도권 거주민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신청은 6월7일(월)∼7월6일(화) 진흥원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e메일이나 팩스,우편으로 보내면 된다.(02)3668-1388.팩스(02)764-1327.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 ‘해밀’은 이달 30일까지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체험 공모전을 연다.‘생생체험 공모전’은 ‘학교 밖 생활 이렇게 극복하고 있다! 나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학교를 떠난 뒤 자신의 체험기와 학업을 중단하려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등을 A4용지 1∼2장 분량으로 보내면 된다.‘만화로 보는 우리세상 공모전’은 학교 밖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와 이모저모 등을 형식에 상관없이 만화로 그려 보내면 된다.작품은 e메일(hemilcenter@kyci.or.kr)로만 받는다.학교를 떠난 만 24세 이하 청소년이면 누구나 응모 가능.(02)2253-3811. ●한국중등교육협의회는 푸르덴셜생명보험과 공동으로 전국 중·고교생들의 자원봉사 활동 사례를 모집,시상한다.지난해 이후 개인이나 20명 이하 동아리의 자발적 활동이면 응모할 수 있다.신청서는 푸르덴셜 홈페이지(www.prudential.co.kr)나 대회 홈페이지(www.soc.or.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30일(수)까지 우편접수만 가능하다.강남구 역삼동 838 푸르덴셜타워 19층.(02)2144-2200. ●마포구자원봉사센터는 여름방학을 맞아 청소년체험학교를 운영한다.마포구 소재 중·고교생이면 지원할 수 있다.7월24일(토),31일(토),8월14일(토),21일(토) 오전 9시∼오후 1시까지 경기도 일산 홀트복지타운에서 봉사활동이 이뤄진다.7월16일(금)까지 원하는 날짜를 정해 (02)330-2645∼6번 또는 e메일(mvc2003@mapo.seoul.kr)로 신청하면 된다.명단은 7월19일(월) 홈페이지(www.mapo.seoul.kr/volunteer)에 공개한다.
  • [새 음반]

    ●D12 ‘D12World’ 에미넴이 15세 때 클럽에서 함께 활동했던 흑인 5명과 결성한 힙합밴드의 두번째 앨범.어셔의 빌보드차트 연속 5주 1위 행진을 무너뜨린 화제의 앨범이다.첫 싱글 ‘My Band’는 에미넴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을 꼬집은 곡으로 ‘Without Me’를 떠올리게 하는 곡.에미넴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듯.비속어가 많아 국내에는 클린버전으로 출시됐지만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양방언 ‘에코우즈’ 재일동포 2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프로듀서인 양방언의 5집 앨범.국악·몽골음악 등 아시아의 음악,아일랜드의 켈틱음악,록,재즈,클래식 등이 어우러졌다.양방언은 홍콩 스타TV 드라마 ‘정무문’과 영화 ‘썬더볼트’의 음악을 담당했고,MBC 드라마 ‘상도’의 메인테마를 작곡하기도 했다. ●오욱철 ‘첫사랑’ MBC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의사 독사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중견탤런트 오욱철의 새 앨범.최근 음반을 출시한 배인순의 ‘늦어서 미안해요’의 노랫말을 만들기도 한 오욱철은 11곡의 수록곡 가운데 10곡을 직접 작사했다.˝
  • [눈도 귀도 즐거워]‘화해’ 박씨 물고온 日뮤지컬 ‘제비’

    일본 극단 와라비자의 뮤지컬 ‘제비’가 국립극장 초청으로 8·9일 이틀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극단 와라비자(대표 고지마 가쓰아키)는 일본 민요의 보고로 알려진 북서부 아키타현에서 집단 예술촌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연극단체.반전이나 한·일관계,재일동포 문제 등 진보적인 역사관과 함께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극단이다. 뮤지컬 ‘제비’(작·연출 제임스 미키)는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주최를 기념해 초연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일본 전국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400년전 임진왜란 직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임경식이 그곳에서 십년전 실종된 아내 연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한·일간의 가슴아픈 역사를 재조명하고,진정한 화해를 모색한다. 일본인 작가가 썼지만 객관적인 시각이 돋보인다.극중에 삽입되는 국악·사물놀이·소리를 한국인으로부터 전수받는 등 철저한 연구와 고증을 더했다.뮤지컬 ‘제비’는 오는 10월 국립창극단 안숙선 예술감독의 작창과 국립극단 이윤택 예술감독의 연출로 창극으로 소개되고,내년 일본 순회공연에도 나선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
  • [사설] 北 폭발사고 인도지원 서둘러라

    북한 평북 용천에서 22일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로 대규모 인명 및 경제 피해가 발생했다.북한 당국은 23일 현재 사고 발생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사고 발생 18시간 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에서도 검은 연기가 솟고 있다는 영국 BBC방송의 보도나,54명이 죽고 1200명이 부상당했다는 국제적십자사 관계자의 말은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용천역 반경 500m 일대가 폐허로 변했다거나 사상자가 수천명에 이를지 모른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어 우려를 더해 준다. 북한의 대형 재난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경제적으로나,대외 관계에 있어서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대형 재난을 수습하는 데 커다란 곤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빠른 피해 수습과 복구를 바라마지 않는다. 정부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서두르기 바란다.이를 위해 우선 자세한 사고원인과 피해 규모,필요로 하는 지원 내역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북한측에 우리의 지원 의사를 밝히고,북한측이 수용하는 대로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 바란다.재난 지원의 생명은 신속성이다.1995년 일본 고베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문민정부는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원물자를 보냈다.피해 지역에 속속 도착하는 한국의 지원물자는 일본인과 재일동포 이재민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으며,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적지않이 이바지했다.신속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한측과 접촉을 강화하기 바란다. 끝으로 북한 당국은 피해 정보를 공개하고 지원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사고 직후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고 국제 전화까지 단절시켰다는 일부 보도도 있지만,부상자를 살리고 이재민을 돕는 게 무엇보다 급한 일이다.정치는 정치이고,인도적 지원은 인도적 지원인 만큼 북한 당국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로부터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 한국계日작가 사기사와 자살

    |도쿄 연합|“일본인,남·여.그런 속박이 싫어요.그런 속박의 안에서 안주하는 것도 싫고요.” 이양지,유미리씨 등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계 여성작가로 꼽히는 사기사와 메구무(鷺澤萌·35)가 지난 12일 도쿄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일본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메구로(目黑)에 있는 사기사와의 아파트를 방문한 친구가 화장실 안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그녀를 발견,신고했다.경찰은 사기사와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동기를 수사 중이다.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사기사와의 신간 ‘웰컴.홈’을 출간한 출판사의 편집담당자 인스기하라 노부유키는 “짐작이 갈 만한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순간적인 감정의 혼란으로 자살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한국인인 사기사와는 지난 1987년 여고 2학년인 18세에 문학계 신인상(작품 ‘강변길’) 최연소 수상자로 화제를 뿌리며 등단했다.부친의 삶을 형상화한 ‘달리는 소년’과 재일동포의 삶을 소재로 한 ‘진짜 여름’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 등용문인 아쿠타가와(芥川)상 후보에 오르는 등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 [서울 탱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무명 가수 조용필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발표 30여년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노래방 등에서 40∼50대가 즐겨 부르는 곡이다.트로트 계열의 구슬픈 곡조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한(恨)많은 우리네 정서와 잘 어우러져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특히 노랫말에 부산의 유명 관광지인 해운대 동백섬과 부산 해로(海路)의 관문인 오륙도,부산을 상징하는 갈매기를 담아 부산사람들에게는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남녘 끝자락에서 기지개를 켜며 북상 중인 봄의 화신이 코끝을 간지럽히자,동백섬 산책로에는 봄맞이 나온 행인과 운동복 차림의 주민들이 싱그러운 해풍을 맞으며 여가를 보낸다.길가에는 하나둘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동백꽃이 수줍은 새색시마냥 다소곳이 고개숙인 채 이들을 반긴다.동백섬에서 바라본 오륙도는 일제의 핍박으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할아버지·아버지들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시대적 상황과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서민들의 기쁨과 슬픔,즐거움과 아픈 흔적을 응집해 표출하고 있다.그래서 그 어떤 장르보다 폭넓은 호소력과 전파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부산 출신의 작곡가 황선우씨가 작사·작곡하고 조용필이 부른 이 노래는 일본·중국·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에도 전파돼 부산을 알리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 원래 이 곡은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연가(戀歌)였다.작곡가 황씨가 젊은 시절 같은 마을에 사는 처녀를 사모했는데,이 처녀가 멀리 시집을 가버렸다.황씨가 그녀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며 작사·작곡한 노래가 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이며,그의 첫 작품이었다. 지난 72년 부산의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조용필이 음반을 취입했으나 반응이 신통찮았다.2년여 뒤 부분적으로 개사한 뒤 재취입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님 떠난 부산항’은 ‘형제 떠난 부산항’으로 ‘그리운 내 님이여’는 ‘그리운 내 형제여’로 바뀌었다.당시 일본 조총련 동포 성묘단의 모국방문과 노랫말이 잘 맞아떨어져 국민 애창곡 1위로 떠오른 것.재일동포 대부분이 나라잃은 설움을 삼키며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떠나게 된 것을 알고 그들의 귀국을 반기는 취지의 곡으로 바꾼 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됐다. 시민들은 부산을 세계에 널리 알린 황씨와 조씨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94년 5월 해운대해수욕장 입구 호안도로 옆 송림공원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를 세웠다.현역으로 활동 중인 가수의 노래비가 건립되기는 처음이다.노래비는 93년 부산지역 시민단체인 ‘부산을 가꾸는 모임’ 주도로 3000만원의 기금을 모아 제작됐다. 신라대 미술학과 김청정 교수가 제작한 이 노래비는 가로 1m,세로 0.4m,높이 2.6m 크기다.윗부분 청동판에는 부산을 상징하는 파도·갈매기·오륙도를 형상화했다.아랫부분 대리석에는 가사가 2절까지 새겨졌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동백섬과 오륙도는 한결같지만,주변에 고급 아파트촌과 호텔 등이 들어서 호젓하고 아늑한 정취가 갈수록 사라져 아쉬움을 더해 주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경기 살리려면 中화교단결 배워야” 김건치 재일한국상공회 회장

    |도쿄 황성기특파원|“전세계의 한국 출신 상공인들이 더 똘똘 뭉쳐야 합니다.” 2002년 4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 출신으로 첫 재일한국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에 선출돼 이목을 끌었던 김건치(金建治·58)씨.곧 임기 3년째가 되는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민족 상공인들의 단결이라고 강조했다.모범답안은 중국의 화교. “1989년의 톈안먼(天安門)사태로 중국이 어려웠을 때 중국을 떠받쳤던 힘이 바로 전 세계의 화교였다.”는 김 회장은 세계에 진출해 있는 우리 민족의 상공인들의 단결이 한국은 물론 자신들의 이익에도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그러한 네트워크 만들기의 하나로 재일한국상공회의소와 한국의 대한상공회의소를 연결하는 ‘한·일 상거래 게시판’.홈페이지를 이용해 각종 무역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실적은 미미하나 지금까지 160건의 정보가 등록돼 있고,하루 2건 정도 꾸준히 전화나 팩스로 등록되고 있다.“일본의 경기회복이 피부로 실감되고 있지만 동포기업 같은 중소기업들까지 수혜를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그는 63만 재일동포들에 대한 본국의 애정어린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덧붙인다.marry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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