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재일동포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투자펀드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우리금융지주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강풍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 한글날
    2025-12-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30
  • [한·일 외교문서 공개] DJ납치 ‘정치적 해결’

    [한·일 외교문서 공개] DJ납치 ‘정치적 해결’

    한·일 양국이 1973년 8월 당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씨 납치사건을 진상규명이 아닌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송된 재일한인은 1972년까지 9만 442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1950년대 말에 주한미군이 소형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원자포’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교통상부가 5일 공개한 외교문서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이 외교문서에는 김대중씨 납치사건과 관련,“한·일 양국관계와 국민 감정, 여론, 내외 정치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국제형사사건의 틀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여파를 고려해 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치적인 해결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사건 발생 50여일이 지난 11월2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김종필(JP) 총리와 다나카 총리간 대화에서는 진상규명보다는 밀실에서 적당히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정황도 나타난다. 하지만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는 납치 10여일 후 한국 정부가 납치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담은 보고서를 유엔에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한편 ‘경무대와 주한미대사관 교환문서’(1958년)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당시로서는 현대식 무기인 280㎜ 원자포 6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0년대 말에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국군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미국에 전력증강을 요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년여 동안의 치열한 외교전 끝에 특별군사원조금 5000만달러를 받아내기도 했다. 박정현 김수정기자 jhpark@seoul.co.kr [외교통상부 공개 문서 보기] ☞ 재일동포 북송재개, 1971 ☞ 재일동포 북한 송환, 1972 ☞ 김대중 납치사건, 1973. 전12권 - V.1 동 사건을 위요한 한.일본간의 외교교섭 및 수사협력, 8-9월 ☞ 김대중 납치사건, 1973. 전12권 - V.2 동 사건을 위요한 한.일본간의 외교교섭 및 수사협력, 10-11월 ☞ 김대중 납치사건, 1973. 전12권 - V.3 대통령 및 국무총리앞 보고, 8-11월 ☞ 김대중 납치사건, 1974. 전3권 - V.1 김대중 문제에 관한 한.일본간 외교교섭
  • [12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아무리 친딸처럼, 친정엄마처럼 대하려고 해도 마음처럼 뜻처럼 안되는 게 고부간인데, 진심을 담아 서로에게 살갑고 다정하게 대하며 화목하게 사는 고부간이 있다. 친 딸처럼, 친정엄마처럼 화목하고 다정하게 한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들 고부간의 특별한 삶의 노하우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오후 11시5분) 가수 김종서가 ‘자주찾기’코너에 출연한다. 김종서는 극중에서 미키광수의 선배로 등장해 특유의 고음으로 인상적인 무대를 꾸민다.‘만사마’코너로 인기를 모았던 정만호가 새 코너 ‘들이대’를 선보인다. 만사마 동생으로 알려진 홍동명과 ‘뭐드래요’의 안삼성이 웃음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0분) 26년 동안 재일동포 인권향상을 위해 헌신해 온 김경득 변호사가 생을 마감했다. 그는 변호사가 되려면 귀화해야 한다는 국적조항 철폐운동을 벌였다. 일본은 국적 요건을 완화하게 됐고 그는 외국인 변호사 1호로 기록된다. 이후 김변호사는 재일동포 국민연금, 도쿄도 관리직 채용 거부소송 등을 이끌었다.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MBC 오후 8시20분) 태경과 은민은 비오는 날 함께 우산을 쓰며 점점 가까워지는데, 은민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태경은 혼란스러워한다. 태희는 태수에게 전화를 걸어 금두꺼비 판 돈을 대신 갚아달라고 한다. 이 일로 태수와 희정은 크게 다툰다. 한편, 동갑내기인 은주와 태경은 주말에 함께 영화를 보러가기로 하는데….   ●별난여자 별난남자(KBS1 오후 8시25분) 기웅은 석현에게 말 못 할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해인에게 말한다. 해인은 그것이 무언지 석현에게 묻고, 석현은 곤욕스러워하면서도 해인이 꼭 알아야겠다면 얘기하겠다고 말한다. 한편 석현을 걱정하던 민숙은 추어탕을 끓여서 작은집으로 가고, 나라는 외출 중이어서 석현 혼자 민숙을 맞이한다.   ●황금사과(KBS2 오후 9시55분) 홍연과 닥터 강의 결혼을 계기로 경구의 수배가 해제되고, 경숙, 경구, 경민은 오랜만에 밝은 마음으로 오누이의 정을 나눈다. 수배가 풀린 후, 경구는 유학준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홍연은 닥터 강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한편, 금실은 박회장이 생모를 죽였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진다.
  • 박찬호 ‘은밀한 결혼식’

    박찬호 ‘은밀한 결혼식’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의 주인공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30일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로널드 문(한국명 문대양) 하와이 대법원장의 주례로 재일동포 3세인 박리혜(29)씨와 결혼식을 가졌다. 이날 결혼식은 언론 등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양가 가족과 친지 30여명만 참석해 진행됐다. 일본 교포 사회의 재력가로 알려져 있는 박충서씨의 딸인 신부 박씨는 일본 조치(上智)대와 미국 뉴욕의 요리학교인 ‘CIA’에서 프랑스 요리를 전공했다. 주례를 본 문 대법원장은 한국인 최초의 미국 주 대법원장으로서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한인 사회가 선정한 7명의 ‘이민 영웅’에 뽑히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성심학교 청각장애 야구팀 ‘소리없는 함성’

    “고교 졸업후에도 당당하게 야구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여줘 후배들과 많은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던져주고 싶습니다.” 국내 최초 청각장애아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에이스이자 중심타자였던 장왕근(19)군. 열정만은 어떤 선수에 뒤지지 않지만 요즘 진로고민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중단해야 될지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다. 졸업예정자 8명 가운데 평택복지대학 입학이 확정된 포수 출신 이현철(19)군을 제외한 6명도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 3년전 야구팀을 처음 만들어 일반대회에 출전했을 당시 이들은 시련과 좌절을 넘어 장애와 편견을 이겨낸 ‘희망의 전도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들은 요즘 현실의 높고 차가운 벽에 부딪혀 참담함을 맛보고 있다. 이들을 선뜻 받아줄 곳이 많지 않고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조일연(52) 성심학교 교감은 이들의 뜻을 꺾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실업팀 창단을 위해 서울시청과 충북도청, 강원랜드 등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팀을 만들기 어렵다는 공허한 답변만 돌아왔다.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사장으로 있는 재일동포 사업가 손정의씨에게 여러 경로로 창단을 부탁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에게도 선수 한명이라도 2군 연습생으로 키워달라고 ‘SOS’를 쳐놓은 상태다. 다행히 최근 국제디지털대학 사령탑을 맡은 감사용(48)씨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감 감독은 선수를 보내주면 열심히 지도해 프로팀에 진출시키겠다며 두차례나 충주 성심학교를 찾았고 특히 장군에게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장군은 184㎝,84㎏의 좋은 체격조건에 지난해 4월 ‘아름다운 꼴찌팀’ 서울대 야구부와의 친선경기 때 홈런을 때렸을 정도로 파워도 겸비한 선수. 하지만 학비 일부를 면제해 주겠다는 ‘장학생’ 영입 약속에도 장군 등 졸업 예정자들은 감 감독의 이런 제안이 ‘그림의 떡’이다. 글러브와 배트 등 장비구입비와 각종 대회 출전에 따른 경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정형편이 힘들기 때문. 장군은 동생 영태(16)가 성심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있고 부모님 모두 같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딱한 처지다. 연합뉴스
  • [조영증의 킥오프] 재일본 대한축구단

    해마다 이맘때면 일본 후지산 아래의 한 골프장에서는 20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대한 자선 골프 축제가 열린다. 재일본 축구협회가 주관하고 재일본 체육회와 거류민단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재일동포들의 친선 도모와 축구발전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올해로 다섯번째다. 한국 축구인을 대표해서 초청된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과 필자는 참석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날로 기억되기 충분했다. 일본측 축구인으로는 모리 전 국가대표감독과 기무라, 하시라다니 등 일본 전 대표선수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를 통해 마련된 기금은 동포축구단인 ‘재일본 대한축구단’ 후원금으로 전액 쓰인다. 재일본 대한축구단은 동포 2,3세들이 주축이 되어 올해로 창단 5년째를 맞고 있다. 매년 봄철에 열리는 대통령배에 출전,2년 연속 예선을 통과했고 지난달 전국체전에서는 2년 연속 우승하는 등 해가 거듭될수록 실력이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K-리그나 J-리그에서 활동할 만큼의 우수한 선수를 배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재능있는 동포 유소년들이 의욕을 가지고 축구를 시작하지만 일본인으로 귀화를 하지 않으면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일본축구협회의 제도 탓에 많은 재일동포 유소년들이 꿈을 접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송일열 재일 축구협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필요에 따라 훈련할 수 있도록 재정적·정신적 지원으로 많은 힘을 주고 있다. 필자는 재일본 대한축구선수들의 훈련과 경기 모습을 자주 볼 기회가 있었고 다재다능한 우수 선수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꾸준한 훈련과 연습을 하지 못해 기량이 퇴보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젊은 선수들의 꿈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하며 개운하지 못하다. 이번 자선골프대회와 같은 여러 뜻있는 독지가들의 모임이 더욱 번창하여 재일동포 축구선수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되길 기대해본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 youngj-cho@hanmail.net
  • 승엽, 사상 첫 양손에 한·일챔프반지

    이승엽(롯데 마린스)이 한·일프로야구에서 ‘챔프 반지’를 모두 끼는 첫 주인공이 됐다. 이승엽은 26일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재팬시리즈 4차전에서 선제 2점포 등 4타수 4안타 3타점의 괴력으로 31년만에 롯데의 우승을 견인한 것. 재일동포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정일)가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 1974년 주니치 드래건스를 꺾고 천하통일을 이룬 롯데는 이후 일본야구의 변방에 머물렀지만, 한국인 이승엽의 방망이를 빌려 영광을 재현했다. 이승엽은 지난 2002년 한국프로야구 삼성에서 챔피언 반지를 챙겼다. 공교롭게 삼성 역시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1985년을 제외한다면 프로야구 출범 20년 만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셈이어서 이승엽을 ‘우승청부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승엽에 앞서 한국프로야구 챔프반지를 손에 쥔 채 일본야구에 도전장을 던진 선배들에게도 한·일 동시제패의 기회는 있었다. `주니치 삼총사´ 선동열(삼성 감독) 이종범(기아) 이상훈(은퇴)은 1999년 센트럴리그 우승을 일궜지만, 재팬시리즈에서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에 1승4패로 졌다. 정민태(현대)와 정민철(한화)이 속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2002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이들은 40명 엔트리에 아쉽게 들지 못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찬호, 새달 29일 장가간다

    ‘코리안특급’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새달 29일 미국 하와이에서 재일동포 2세 박리애(29)씨와 웨딩마치를 올린다. 박찬호의 국내 매니지먼트사인 팀 61 김만섭 대표는 25일 “박찬호가 11월29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고 조만간 직접 발표할 것”이라며 결혼 계획을 공식 확인했다. 박리애씨는 일본 조치대를 나와 미국 뉴욕 소재 요리학교인 CIA에서 프랑스 요리를 전공한 재원이고 아버지 박충서(63)씨는 부동산 사업가로 1998년 일본 전체 개인 납세액 순위 76위(2억 8170만엔)에 올랐던 재력가. 박찬호는 가족 등 소수 인원만 초청한 비공개 결혼식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광복 60주년 사진전] 아! 재일동포…

    [광복 60주년 사진전] 아! 재일동포…

    재일동포들의 100년간의 생활상과 해방 이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단장 김재숙)이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하는 사진전 ‘아! 재일동포’가 서울신문사·외교통상부 후원으로 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에서 5일 시작됐다. 15일까지 이어지는 민단 주최의 이번 사진전에서는 1946년 10월3일 도쿄 히비야 공회당에서 결성된 이후 60년간 활동을 모은 130점과 일제침략으로 강제로 끌려간 재일동포들의 어려운 생활상을 담은 70점 등 모두 200점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1905년 9월부터 운항을 시작했던 부관연락선의 모습과 해방을 맞아 귀국을 기다리는 부두의 인파, 재일동포들에 꿈을 안겨주었던 역도산, 조국에 헌신한 동포기업인 신격호 롯데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 등이 공개됐다. 또 지문날인 철폐를 위한 동포들의 생존권투쟁을 위한 사진들도 전시되고 있다. (1) (2) (3) (4)
  • “한인동포 정체성·생활문화 급변 한민족 네트워크 위한 조사 절실”

    “한인동포 정체성·생활문화 급변 한민족 네트워크 위한 조사 절실”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은 차 대신 숭늉을 마시는 등 의식주 생활에 한민족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한인 후손들은 한인보다 멕시코인, 미국인 등과 결혼을 해 정체성이 상당히 약화됐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홍남)이 한국문화인류학회(회장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와 공동으로 27일 개최한 광복 60주년 기념학술대회 ‘재외 한인동포 이주의 역사와 문화’에서 소개된 한인동포들의 생활상이다. 이 자리는 민속박물관과 문화인류학회가 지난 10년간 벌여온 한인동포들에 대한 현지조사 연구를 평가하고, 추후 사업 및 정책의 방향설정을 위해 마련됐다. 발표에 나선 김광억 서울대 교수는 “중국 둥베이(東北)지역 조선족의 일상에서는 조선어가 기본이나 30대 이하 사람들은 한어가 오히려 유창하다.”면서 “최근 경제여건이 개선되면서 일생의례 등에서 한국식 생활양식이 전파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중앙아시아 한인동포를 연구해온 전경수 서울대 교수는 “북한과 밀접한 구소련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이후 남북 대결구도가 조성됐고, 지역별 이산가족이 많이 생겼다.”고 전했다.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재일동포의 문화에 대해 “식생활은 민족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지만 의생활은 거의 일본식으로 바뀌었다.”면서 “일본정부의 동화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재일동포의 생활문화는 ‘혼성화’ 및 ‘재민족화’ 성격을 띤다.”고 말했다. 멕시코 한인동포의 문화연구를 맡은 김세건 강원대 교수는 “지난 100년간 한국과 단절돼온 멕시코 한인들의 생활문화는 ‘현지화’와 ‘고립적 정형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식문화와 세시풍속에서 한국문화의 단면을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재인식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김홍남 민속박물관장은 “한인동포 이주의 역사가 140여년이나 됐지만 지금까지 조사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동포들의 생활지역이 남아있고 이미 조사한 지역들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면서 “한민족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이들의 생활문화에 대한 조사연구를 강화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X파일’ 수사 급물살 예고

    검찰이 김대중(DJ) 대통령 시절 국정원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도청 테이프를 확보하면서 DJ정부의 도청 수사가 새 국면에 접어 들고 있다. 감청기기를 이용한 도청이 있었다는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도 확보했다. 그동안 DJ시절의 도청의혹은 “김대중 대통령의 도청 중단 지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시절에도 한동안 불법감청을 했다.”는 국정원의 지난 8월의 자체조사 결과발표만 있었지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추가 도청테이프 확보 검찰은 앞서 국정원 압수수색에서 감청장비 사용내역 등을 통해 DJ시절 도청을 일부 확인한 바 있다. 추가 도청테이프 확보로 도청 수사는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이 테이프의 내용과 등장인물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 외부에 보관돼 있던 이 도청 테이프는 검찰이 확보하기 전에 이미 복사 등의 방법으로 밖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림팀을 운영해온 공운영(58·구속)씨 말고도 제 3의 인물이 일부 언론사와 이 도청 테이프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국정원은 95년 9월 이후 감청자료는 컴퓨터에 파일형태로 저장되고 한달뒤, 자동으로 삭제된다고 지난 8월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 확보한 도청내용이 테이프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DJ시절의 감청장비를 이용한 도청내용이 아니라 미림팀 방식으로 도청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조사 불가피 검찰은 DJ정부 시절 감청기기를 이용한 도청이 있었다는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직원은 지난 2002년 한나라당이 폭로한 국정원 도청문건 중 일부를 국정원에서 실제로 작성했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2002년 9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등에서 국정원 최고위 간부만이 볼 수 있는 국정원 도청문건이라며 보고서 양식의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이 문건에는 2002년 8월 박지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재일동포 2세인 요시다 다케시 신일본산업 사장이 나눈 대북사업 관련 국제전화 통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그 해 11월 김원기 국회의장과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나눈 대화 등 여·야 정치인과 언론사 간부 등 39명의 통화내용을 담은 ‘국정원 도청 문건’도 공개했었다. 특히 정 의원이 공개한 내용 중에는 국제통화 내역도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합법적인 국제통화 감청을 하면서 ‘끼워넣기’식 도청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이에 따라 당시 폭로의 주역이었던 한나라당 정 의원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軍과거사 규명 4건 확정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12·12와 5·17 비상계엄확대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1980년대 초 신군부의 집권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과 삼청교육대 사건, 강제징집 등 녹화사업,1960년대 후반 발생한 실미도 사건 등 4건을 1차 조사대상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군 과거사위는 또 10·27 법난(法難), 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 사건,5·6공의 민간인 사찰,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조작 의혹사건 등을 2차 조사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1차 조사에서는 특히 신군부 집권과정에서 벌어진 12·12사건에 관여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던 군 인사들의 포상 내역이 조사 대상에 포함돼 경우에 따라서는 훈·포장이 박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과거사위는 신군부가 원활한 권력 장악을 위해 5·17 확대 계엄을 실시하고, 계엄 확대 이유로 내세운 당시 북한의 특이 동향 여부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명령체계 및 실종자 행방 등도 의혹을 낱낱이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발령된 직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군 부대 내에 설치한 삼청교육대사건과 관련해서는 최초 계획 입안 및 추진 과정에서의 위법성, 검거 및 교육 과정에서의 인권 유린 실태, 검거자와 입소자의 규모, 사망자 수 등을 집중 규명할 방침이다. 강제 징집 및 녹화사건의 경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와 대상자 수, 프락치 공작 실태 및 피해사례 등을 주로 규명하게 된다. 1971년 실미도사건은 공군 684부대(일명 실미도부대)의 창설 배경 및 주체, 훈련병 모집과 훈련 과정에서 자행된 불·탈법적 인권 침해 행위를 집중 규명하고 훈련병의 신원 및 유해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한편 민간위원 7명과 국방부측 인사 5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과거사위는 지난달 1일부터 민·군 조사관 10명씩을 임명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해왔으며, 이번 조사 과정에서 해당 사건의 피해 실태를 파악해 적절한 명예 회복 조치 등도 권고할 방침이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찬호 12월 결혼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코리언특급’ 박찬호(33·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12월초 결혼할 것으로 알려졌다. 1일자 스포츠서울에 따르면 박찬호의 예비신부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재일동포 재력가의 딸로 미국 유학 경험이 있으며, 이들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극비리에 약혼식을 올린 뒤 결혼식 날짜는 올 연말로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혼식은 양쪽 집안 사정을 감안해 한국과 일본에서 두차례 올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유승현, 한국수영 체증 뚫었다

    유승현(22·한체대)이 13년 묵은 국내 남자 평영 200m 기록을 마침내 깨뜨리며 세계선수권에서 6번째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유승현은 29일 캐나다 몬트리올 장드라포파크 야외수영장에서 벌어진 세계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 남자 평영 200m 예선에서 2분17초89로 지난 1992년 재일동포 윤주일이 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세운 종전 기록(2분18초27)을 0.38초 앞당겼다. 이번 대회 자신의 두번째 한국 신기록. 유승현은 대회 경영 첫날인 지난 25일 남자 평영 100m에서 1분02초86의 기록으로 8년만에 한국기록을 경신하며 무더기 신기록 작성의 물꼬를 텄다.유승현은 그러나 이날 예선에서는 총 출전자 56명 가운데 25위를 그쳐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전날 여자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결선 무대를 밟은 이남은(16·울산 효정고)은 여자 배영 50m에서 29초35의 기록으로 8명 가운데 최하위에 그쳤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식민의 고통’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식민의 고통’

    지난 2월 일본 교토부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가 한 지역에 관한 문제로 공동 탄원서를 냈다. 과거 정치적 입장을 돌이켜 볼 때 비록 전체 규모는 아니지만 이들 단체가 손을 잡았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여기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의원들이 나서기도 하고, 자발적인 모금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지난 5일 유엔인권위원회는 이곳을 방문해 일본 내 소수민족 차별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마지막 조선인 징용촌으로 최근 철거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 교토 우지시 우토로 51번지가 그 곳이다. EBS가 우토로 51번지의 삶을 밀착 취재했다.21일 오후 10시 ‘ EBS스페셜’을 통해 ‘빼앗긴 60년, 우토로 조선인의 눈물’이 방영된다. 지금도 식민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토로 사람들을 통해 해방 60년 이후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한·일 양국의 과제와 미래를 짚어보자는 취지. 우토로 51번지에는 1941년 일본 체신성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징용된 한인과 그 후손 65가구 203명이 모여 살고 있다. 지난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무단점유를 이유로 우토로 거주자들에 대해 강제 퇴거명령을 내렸다.EBS는 우토로 거주자들이 왜 쫓겨날 운명에 처했는지, 반세기가 넘도록 한·일 정부로부터 어떻게 방치됐는지를 생생한 증언으로 담았다. 우토로의 삶은 열악하다. 한·일협정 배상 대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충분한 식수도 공급되지 않을 뿐더러 하수처리 시설도 없다. 행정 영역이 닿지 않은 ‘섬’ 같은 존재. 병을 앓는 노인이나 생활보호대상자를 제외하곤, 고령의 노인이라도 일을 해야 한다. 재일동포들이 연금에서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EBS는 고령자 연금투쟁을 이끌고 있는 현순임(78)씨와, 그를 취재하며 ‘재일동포 차별’에 대한 책까지 냈던 마이니치신문의 나카무라 기자를 만나보기도 한다. 또 우토로처럼 강제 퇴거 상황에 놓였던 교토 40번지의 삶을 기록한 사진작가 신동필씨와 함께 기억 속에 사라진 역사의 현장을 살펴본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북관대첩비 8·15때 서울에

    북관대첩비 8·15때 서울에

    |도쿄 이춘규특파원|북관대첩비가 오는 8·15 남북 공동행사에 맞춰 서울에 온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약탈된 뒤 100년 만이다. 14일 도쿄에 있는 복수의 외교 소식통들은 “북관대첩비가 서울에서 열리는 8·15 남북 공동행사 때 반환될 것”이라며 “그 자리에서 남북한과 재일동포들이 참가하는 북관대첩비 본국 송환 축하 행사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소식통들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돌려받은 북관대첩비를 일정 기간만 서울에서 전시하고, 원래의 자리인 함경북도 길주로 빠른 시일내에 옮기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들은 “야스쿠니신사측은 그동안 일본 정부의 요청이 있고, 남북한이 합의하면 돌려준다는 입장을 밝혀왔다.”면서 “이미 남북이 합의했고, 일본 정부도 남북이 합의하면 돌려주기로 한 만큼 8·15행사에 맞춰 반환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앞서 서울에서 열린 제 15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북관대첩비 반환에 합의했고, 이같은 합의를 토대로 한국 정부는 지난달 28일 일본 정부에 북관대첩비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통일부는 북관대첩비가 반환되면 우선 국내로 반입해 보존ㆍ복원처리한 다음 국내에서 전시한 뒤 북측에 전달한다는 입장이다. 높이 187㎝에 1500자의 글을 담고 있는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도 경성과 길주에서 의병장 정문부가 왜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숙종 35년(1709년)에 세워진 것으로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소장이 비석을 파내 일본으로 가져간 뒤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돼 왔다. taein@seoul.co.kr
  • 국정원장 인사 청문 여야 ‘안보격전’ 채비

    다음달 5일 실시될 김승규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들이 대거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증인·참고인 8명 인사와 직접관련 없음국회 정보위원회가 주관하는 청문회에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채택된 인물은 모두 8명이나 모두 김 후보자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듯하다. 이는 여야 모두 TV를 통해 생중계될 이번 청문회를 김 후보자에 대한 자질 및 능력 검증보다는 국가 안보 등에 대한 홍보의 장으로 접근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野 `강철서신´ 김영환씨 통해 北실상 부각 전망한나라당이 채택한 이색 참고인 가운데 1980년대 ‘강철서신’의 저자로 학생운동권내 주체사상파(주사파)의 핵심이론가였던 ‘강철’ 김영환씨가 눈에 띈다. 김씨는 최근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뉴라이트’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과 북한의 민주주의 전망을 듣기 위해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한나라당은 ‘평양의 수족관: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0년’이란 책의 저자로 최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북한 인권실태를 설명한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씨를 증인으로 채택,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듣기로 했다.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 활동에 대한 문제점을 따지기 위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북한 핵 실태에 대한 증언을 듣기 위해 김태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을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도 참고인에 포함됐다.●與 `간첩조작´ 증언통해 국보법폐지 강조 할 듯 열린우리당의 출석 요구를 받은 참고인들도 눈길을 끈다. 조작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1990년대 남매간첩사건의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김은주씨와 1975년 재일동포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3년간이나 옥살이를 한 강종헌씨를 포함시켰다. 이들은 당시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무리한 수사행태에 대해 집중 증언할 것으로 보이며, 열린우리당은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거듭 주장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재일동포 60년, 왜 귀화하는가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재일동포 60년, 왜 귀화하는가

    광복 60주년인 올해가 60만 재일한국인들에겐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광복 이전부터 일본에 살았던 ‘재일동포’ 1∼1.5세와 그 가족 47만 1756명(2003년말 현재)은 더욱 그렇다. 일본에선 한국·조선인으로, 모국에선 일본인으로 취급당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일본인도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오늘도 식민시대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재일동포들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 이전부터 일본에 거주한 특수영주권자다. 그런데 매년 1만명 정도의 재일동포들이 줄어들고 있다. 차별을 견디기 힘들고, 조국에 대한 기대도 사그라지는 현실에서 일본인으로 귀화하기 때문이다. 한 일본 중견 언론인이 “지난해 한류열풍은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이 몰려다니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어이없게 말하는 것에서 재일동포들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차별과 푸대접의 60년 도쿄 시내 한복판의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중앙본부에서는 23일에도 일본 우익들의 확성기 비난이 그치지 않았다. 도쿄 시내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중앙본부도 우익들의 공격을 우려, 삼엄하게 경비한다. 이게 광복 60년을 맞는 재일동포들의 현주소다. 한때 70만명까지 이르렀던 재일동포들은 매년 감소추세로 현재 40만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외국인등록증을 언제나 갖고 다녀야 하고, 일상 생활에서 받는 각종 차별은 여전하다. 특히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조선국적 동포들의 피해는 막심하다. 조총련중앙본부 동포생활국 진길상 부국장은 “취직을 하고자 할 때 한국국적 동포가 5곳에서 거절당하면 조선국적 동포는 10곳 가까이서 거절당한다.”고 지적했다. 민단측은 지방참정권이라도 실현되면 귀화가 줄 것으로 보고 참정권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귀화절차 간소화를 통해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단 중앙본부 정몽주 사무총장은 “일본이 헌법을 개정, 징병제를 도입하면 귀화한 재일동포가 모국에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귀화자는 27만명이고, 그들의 자녀는 40만명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갈라서 있는 민단과 조총련 민단과 조총련이 광복 60주년인 올해에도 중앙 차원에서 합동 기념행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동포사회의 분열을 웅변적으로 대변한다.1990년대 초반 탁구 남북단일팀 공동응원이나 2002 월드컵축구 공동응원 등은 옛 이야기다. 민단 정몽주 총장은 “1991년부터 중앙·지부 단위에서 총련과 교류를 해오고 있다.”면서 “지금도 지부 단위서는 적극 교류가 있지만 중앙 차원은 (정치상황 때문에)의견접근이 어렵다.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조총련 중앙본부 통일운동국 조선오 부장은 “몇년 전 오사카에서는 양쪽 동포 3만명이 공동행사를 하는 등 좋은 분위기도 있었지만 민단 중앙과는 여러 면에서 최근 2∼3년간 좋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방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민단과 조총련은 입장차가 확연하다. 민단은 유럽쪽에서 인정하는 외국인 지방참정권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조총련은 참정권에 소극적이다. 일본에만 요구하는 게 무리라는 이유에서다. ●국적포기 사연도 제각각 동포 3,4세대들은 1,2세대와는 국적에 대한 자세가 다르다.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처럼 자신들은 한국 국적을 유지할 필요성이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가 유언 등으로 “한국적을 포기하지 말라.”고 해 유지하고는 있지만 계기만 되면 포기하겠다는 동포들이 적지 않다. 일본 언론사 기자인 30대 초반 H모씨는 한국이름으로 일본 언론에 취직했지만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는 “80대인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바로 한국적을 포기할 예정”이라고 고백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올해 34세인 조선 국적의 김모씨는 명문 사립대를 졸업했다. 졸업 뒤 100여 군데의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50곳은 한국식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했다. 결국 유수의 일본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0년만에 그만두고 가업(식당)을 잇고 있다. 그는 국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귀화 후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배철은 민단신문 편집장 등은 “귀화하면 동포사회에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완전히 일본인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면서 “귀화한 뒤 후회하거나 돌아오는 사람도 일부 있다.”고 소개했다. ●우익·야쿠자 많다는 것은 왜곡 재일동포들은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교수 등 교원도 2000여명이다. 의료보험기술자도 4300여명이고, 관리직 직업종사자는 1만 7000여명이다. 사무종사자도 5만여명이고, 비교적 차별이 덜한 연예인이나 프로야구선수도 많다. 정몽주 총장은 “광복 뒤 귀국선을 타기 위해 간사이 지역으로 많은 동포들이 몰려갔다가 국내 정정이 불안하고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주저 앉았다. 그분들이 재일동포의 뿌리”라고 소개했다. 당시 180만여명이 귀국했고,60만여명이 남아 동포사회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3D 업종 등에서 영세업자가 된 동포들을 일본의 야쿠자들이 텃세를 부리며 괴롭히자 자위 차원에서 동포 젊은이들도 조직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야쿠자 관련 부분을 적극 해명했다. 재일동포에 야쿠자나 우익이 많다는 것은 취직이 안되던 30여년 전의 일이란다. 차별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공식적인 일자리가 적지 않아 야쿠자나 우익이 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taein@seoul.co.kr ■ 재일 대한민국청년회 조수융 회장 |도쿄 이춘규특파원|‘재일본 대한민국청년회 중앙본부’의 조수융(33) 회장은 재일동포 3세다. 부친은 경상도, 모친은 전라도 출신으로 현재 한국말은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 두 누나는 현대자동차 미국법인과 일본 무역회사에 다니고 남동생은 청년회 간부다. 조 회장은 일본의 왜곡 역사교과서 채택반대 운동에 열심이지만 “한국의 국회의원들이나 운동권이 일본에 건너와 항의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그럴 경우 재일동포가 불이익을 받게 되고, 그것이 무엇보다 싫다.”고 말했다. 그는 부친이 “일본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일본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만은 한국인임을 잃지 말라.”고 교육한 탓에, 민족의식이 넘친다. 현재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다이시고교 사회과 교사인 조 회장은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민족차별을 체험했다. 초·중·고교와 대학 모두 일본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고교 때까지는 한국식 이름을 쓰지 못하고 일본식 이름으로 학교를 다녔다.19세 때부터 겨우 조수융 하나만 썼다. 집단 따돌림을 당할 것이란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동포 7000여명이 모여사는 가와사키시에서 이 정도니 동포들의 집단거주지가 아닌 곳은 짐작할 만하다. 일본에서 공무원이나 공립학교 교사 등은 한국인이 되기 어려운 직업이다. 하지만 그는 각고의 노력끝에 공립고교 교사가 됐다. 한국에는 16세 때 민단 모국방문단으로 처음 가봤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 한국은 어두운 이미지만 있었다. 웃지 않는 사람들만 사는 걸로 알았다. 일본 미디어에 한국의 어두운 면만 전해졌기 때문이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올해처럼 양국이 독도·교과서문제 등으로 충돌할 땐 정말 곤혹스럽다. 일본인들은 자신을 한국인이라 꺼리고, 한국에서는 자신을 일본인으로 보는 것 같아 서럽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 국민들을 나쁘다고 비판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자이니치/이용원 논설위원

    ‘자이니치(在日)’는 일본 땅에 사는 외국인, 곧 재일 외국인을 총칭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재일 한국·조선인을 한정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된다. 그만큼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한 재일동포 김태영 후쿠오카교육대 교수의 책 ‘저항과 극복의 갈림길에서’(지식산업사 간)를 보면 자이니치 사회도 최근 몇년새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일 한국·조선인은 1978년 말 65만 9000여명이었으나 2003년 말 현재 61만 3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수치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그 구성비를 들여다 보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1978년도 인원은, 일제강점기와 광복-6·25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과 그 후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견줘 2003년 말 인원에는 최근에야 일본에 장기거주하게 된 ‘뉴 커머(new comer)’가 14만명이나 포함돼 있다. 결국 역사의 산물인 이민 1세대와 그 후손은 이미 47만명쯤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 원인은 분명하다. 일본으로 귀화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1970년대까지만 해도 귀화자 수는 연간 3000∼4000명, 많아야 5000명대 수준이었는데 1995년에 이르러 1만명을 넘어섰고 2003년에는 1만 177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조선인끼리 결혼하는 비율도 아주 낮아져 지금은 열명에 아홉명꼴로 일본인과 혼인한다. 따라서 일본 귀화는 더욱 가속도를 탈 것이다. 일본에 사는 동포에게 우리 국적을 ‘사수’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힘들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국적을 유지하건, 일본으로 귀화하건 뿌리가 한국임을 자각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적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전세계에 퍼져 사는 우리 동포를 하나로 아우르는 한민족공동체를 결성하는 일이요, 단기적으로는 각 동포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으로 풀어주는 일이다. 일본 동포사회에도 지방선거 참정권을 비롯해 현안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다음달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자이니치 문제 역시 주요 이슈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30승 슈퍼스타 ‘너구리’ 장명부 하늘로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해 30승(83년)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던 전 삼미 슈퍼스타즈 투수 장명부(54·일본명 후쿠시 히로아키)씨가 13일 숨졌다. 14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13일 저녁 장씨가 와카야마현 미나베초의 한 마작점에서 숨져 있는 것을 그를 찾아온 친구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씨는 어머니 집이 있는 미나베초에서 1년쯤 전부터 마작점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돗토리현 출신의 재일동포인 장씨는 1969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4년간 승리를 따내지 못한 채 73년 난카이로 이적한 뒤 주력투수가 됐다.77년에는 히로시마로 이적, 두 차례나 15승을 기록하는 등 6년간 58승을 거두며 히로시마팀이 리그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83년 한국으로 건너와 ‘너구리’라는 별명에 걸맞은 능글맞은 투구로 일약 30승을 기록하며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공헌했다는 평을 들었다. 반면 85년에는 시즌 25패(11승5세이브)를 기록했다.8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삼성과 롯데에서 코치를 하다가 91년에는 마약사범으로 구속된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밑바닥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한국에서는 통산 55승 79패 18세이브를 기록했다. 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이시하라 신타로/심재억 문화부 차장

    중학교 때의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푸른 교실’로 기억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작자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였다. 바로 일본의 수도 도쿄도지사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수구 꼴통’ 그 사람이다. 그 ‘푸른 교실’이 일본 문단에 그를 알렸다는 ‘회색교실’ 번역물인지는 모르지만 어려서 무식(無識)했던 내게 그는 석(石)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각인됐다. 그 후 그는 두고두고 우리의 염장을 질러댔다. 그는 일제 침략사 왜곡과 재일동포 차별 발언을 자신의 정치생명을 지탱하는 캠퍼주사로 삼았다. 오죽했으면 일본의 지성인들이 그가 입을 열면 “돈키호테가 또 입을 열었다.”며 킥킥거리겠는가. 그런 그가 최근에도 “헌법을 준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오늘의 일본을 읽는 하나의 독법(讀法)이거니와 그의 언행이 알려질 때마다 문득 ‘정말 일본스러운 인물’이라는 코웃음을 떨치기 어렵다. 그러니 이런 부류에 의해 존립의 에너지를 얻는 일본 정치에서 건강성을 기대하는 일은 아무래도 난망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이시하라 신타로의 책을 읽은 열대여섯 무렵의 내 과거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