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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人 아들 포함? 외교부 어설픈 대응?

    日人 아들 포함? 외교부 어설픈 대응?

    지난 28일 중국 베이징발 북한 고려항공 편으로 강제 북송된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을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이 라오스 현지에서 서류를 급조해 불법 월경자 신분을 세탁하고, 대규모 호송 인원을 투입하며 군사작전을 펼치듯 평양으로 신속하게 압송한 이유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진실 공방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당초 북송 탈북자 전원이 꽃제비 출신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이들 가운데 1명은 일반 탈북자인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일본 언론들이 1977년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마쓰모토 교코의 아들로 지목한 20대 문모씨는 동명이인 혹은 마쓰모토와는 연관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탈북자 9명의 신분을 파악하고 있는 서울의 북한 소식통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문씨는 중국에서 1년 이상 꽃제비 생활을 했고, 일본인 납치 피해자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신분”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9명을 안내했던 J선교사 측도 오랜 기간 함께 지낸 문씨에 대해 특수한 배경이 없다고 확인했다는 전언이다. 정보 당국 등은 9명 중 유일하게 일반 탈북자인 또 다른 20대 P씨의 신분에 주목하고 있다. P씨는 꽃제비 출신으로 이뤄진 J선교사 그룹에 올해 2월쯤 뒤늦게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P씨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P씨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가야 가족을 찾을 수 있다고 당부해 탈북했다”고 말했다. P씨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소문이 있어 당국이 확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P씨가 북송 재일동포와 일본인 처의 자녀일 가능성도 나온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전날 우리 정부 측에 일본인 납치 피해자와의 연관성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우리 정부는 일본 측에 “전혀 확인된 바가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납북 일본인 자녀는 북한 당국의 통제를 받고 관리된다”며 “주요 납북자의 자녀가 꽃제비 생활을 하다 탈북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9명의 탈북자가 꼭 17일간 억류됐던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이민국과 현지 한국 대사관의 거리는 3.5㎞. 승용차로 10분 안팎, 도보로 채 40분이 걸리지 않는 지척이었지만 9명 어느 누구도 영사 면담조차 하지 못했다. J선교사 등 국내 탈북단체 측은 이번 북송 사건에 대해 외교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낳은 참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탈북자 9명뿐만 아니라 이들을 인솔한 한국 국적자 J선교사와도 단 한 차례 영사 면담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 관계자는 “영사 면담은 공식적인 외교 절차다. 해당 국 정부가 거부하는 이상 우리가 마음대로 접촉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라오스 경찰에 탈북자 신원을 밝히라고 조언한 데 대해 “J선교사가 인신매매범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 라오스와의 협조 체제를 감안한 조치였다”고 반박했다. 탈북단체와 외교부는 ‘미국 대사관 망명계획’ 등과 관련해서도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등 국제기구에 북송된 탈북자 9명의 ‘신변안전 보장’ 지원 협조를 공식 요청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前복싱 세계챔피언 日서 상해 혐의로 체포

    前복싱 세계챔피언 日서 상해 혐의로 체포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지낸 재일동포 3세 홍창수(39)씨가 사소한 시비로 주먹을 휘둘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24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홍씨는 지난 22일 효고현 미타시 노상에서 주유소 손님 A(24)씨와 주유소 점장(53)의 얼굴 등을 주먹 등으로 때린 혐의(상해)를 받고 있다. 홍씨는 가족을 태우고 차를 몰고 가던 중 주유소에서 나온 A씨의 차가 갑자기 앞쪽에 끼어들자 이같이 반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경찰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탓에 뒷자리에 앉아있던 딸(2)이 앞좌석에 부딪혔기 때문에 화가 났다”며 “두 사람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딸이 앞좌석 시트에 부딪힌 뒤 바닥에 떨어져 울음을 터뜨리자 흥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0년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뒤 8차 방어에 성공하는 등 통산 32승 3패 1무의 전적을 남겼다. 프로 복서로 활동할 때만 해도 조선적(일본 법률상 무국적)을 지녔으며 북한으로부터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지만 2007년 은퇴 직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09년부터 오사카 코리아타운인 쓰루하시에서 야키니쿠(일본식 불고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일본 사죄할 때까지 죽지 않겠다”

    위안부 할머니 “일본 사죄할 때까지 죽지 않겠다”

    일본 국수주의 록밴드가 3·1절을 앞두고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노래를 담은 CD를 ‘나눔의 집’에 보내 파문이 일고 있다. 3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따르면 ‘조선놈들을 쳐죽여라’라고 쓰인 노래 CD 1장과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한 A4용지 1장이 들어 있는 소포가 3·1절 전날인 지난달 28일 나눔의 집에 도착했다. 발신인란에는 ‘東京部 千代田區’(도쿄도 지유다구) ‘櫻舞流’(벚꽃 난무류)라고 적혀 있었다. ‘벚꽃 난무류’는 일본 국수주의자들로 이뤄진 록밴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가사에서 시종일관 한국을 비하하며 ‘매춘부 할망구들을 죽여라’라며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소포를 뜯어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래를 접한 할머니들은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유희남(87)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끌려가서 고통을 당한 사실을 전 세계가 알고 사죄하라고 하는데 사죄는커녕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박옥선(90) 할머니도 “노래 가사처럼 그냥 죽지 않겠다”며 “일본의 사죄를 받으려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이런다고 우리가 죽겠느냐”며 분노했다.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일조했던 김군자(88) 할머니는 “너무 뻔뻔하다”며 “일본 정치인들이 젊은 층에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래 가사에는 ‘지진 틈타 도둑질하는 놈들 뭐하러 왔어’, ‘다케시마에서 나가라. 동해 표기를 없애라’, ‘돈으로 사는 히트 차트 토할 거 같아’ 등 재일동포와 독도, 한류 아이돌 그룹을 겨냥한 망언도 담겨 있다. 이들은 3분 56초짜리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지난 1월 26일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동영상에 자신들의 공연 사진과 태극기를 찢는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집회 사진을 넣었고 ‘똥 먹어라. 먹는 것에서 똥이 나오잖니’라는 가사가 나올 때에는 양푼에 담긴 비빔밥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안 소장은 “변호사와 함께 소포를 보낸 이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며 “월요일 관할 경찰서나 ‘말뚝 테러’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경제 프리즘] ‘신한 사태’ 이미지 추락·제재 후폭풍…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 프리즘] ‘신한 사태’ 이미지 추락·제재 후폭풍…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의 1심 판결로 ‘신한 사태’는 일단락됐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설범식)는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애초에 은행 측이 신 전 사장에 대해 고소한 내용 상당수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무리하게 기획 고소를 벌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의 반목 구도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10년 9월 신한은행은 전직 행장이자 지주사 사장인 신 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 전 사장의 부당대출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 횡령에 대해서도 대부분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서 혹은 이 회장을 위해 사용됐을 것이라며, 교포 주주로부터 2억원을 받은 사실만 유죄로 판단했다. ‘특정인의 진술에만 의존한 기획된 고소’라는 신 전 사장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신한금융 측은 “과거 경영진의 일”이라며 선을 긋는다. 라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취임한 한동우 회장이 요즘 유행어인 ‘대탕평책’을 일찌감치 썼다며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됐다”고도 강조한다. 하지만 조직 안팎의 목소리는 다소 다르다. 고소를 주도했던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인맥들이 주요 요직을 꿰찬 반면 신 전 사장 측 인사들은 ‘평가절하’됐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경영진과 재일동포 주주들과의 돈 거래는 얼마 전 뒤늦게 적발된 모 지점장의 재일동포 고객돈 2억원 횡령사건 등과 중첩되며 신한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혔다. 은행 측의 부인에도 아직도 일본 ‘도쿄(지점)파’와 ‘오사카(지점)파’ 간의 알력이 존재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신한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면서 “조직 안정과 화합 차원에서 진정한 탕평인사가 필요하다고 공감한다”고 전했다. 유주선 신한은행 노조위원장 당선자는 “오랜 내분에 따른 직원들의 피로도가 극심하다”면서 “확정판결이 나오면 당시 사태를 주도한 임원진에 대한 문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 전 회장이 치매를 이유로 재판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서도 뒷말이 많다. 골프를 치거나 직접 운전을 하는 등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신한지주 측은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데 기억력 등에 문제가 있는(그래서 법정 증언은 어려운) 가벼운 치매”라고 해명했다. 금융감독원은 1심 판결이 나온 만큼 곧바로 징계에 착수할 방침이다. 앞서 라 전 회장에 대해서는 업무집행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2~3년 걸리는) 최종판결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면서 “1심 판결문을 검토해 (제재)당시와 달라진 상황이 있다면 확인검사 후 제재심의위원회에 회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현직 행장끼리 치고받는 초유의 사태도 모자라 ‘권력 실세 뒷돈설’까지 얽히면서 신한금융의 이미지는 크게 추락했다. 조직원 사이에 깊게 파인 갈등의 골과 제재 후폭풍 등도 넘어야 한다. ‘신한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부고] 영화 ‘감각의 제국’ 日 오시마 감독 별세

    [부고] 영화 ‘감각의 제국’ 日 오시마 감독 별세

    전후 일본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오시마 나기사가 15일 오후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NHK 등 일본 언론이 이날 보도했다. 80세. 1959년 ‘사랑과 희망의 거리’로 데뷔한 오시마 감독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검열, 광기, 재일 한국인 차별 등을 비판한 작품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1960년 작 ‘청춘잔혹이야기’로 일본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영화 운동)의 기수로 떠올랐고 재일동포 교수형 사건을 다룬 ‘교사형’과 ‘의식’ 등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965년에는 한국 초등학생 이윤복군의 일기를 담은 책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바탕으로 ‘윤복이의 일기’를 제작했다. 그는 대담한 성 묘사로 화제가 된 1976년 작 ‘감각의 제국’으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한·일 기업소송 재일동포 변호사 활용을”

    “한·일 기업소송 재일동포 변호사 활용을”

    “한·일 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법 제도도 언어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계약 협상은 영어 위주로 진행해 쌍방간의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어 재일동포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관한 세계 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하고 8일 귀국한 재일동포 3세 김철민(34) 변호사는 한국과 일본 양국 간 기업 관련 소송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영문 계약서는 법리 해석이 영미법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대륙법에 뿌리를 두고 있어 분쟁이 생기면 적용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양국의 계약서는 문구 뜻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만 영어는 해석이 분분할 수 있어 조목조목 명시해야 합니다.”라고 충고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맡게 된 한·일 기업 간 소송을 예로 들었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은 일본 기업과 1000만엔 규모의 기계부품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기업은 영문 계약서에 납기 지연 시 계약금의 10배에 해당하는 위약금 1억엔을 배상하도록 명시한 것을 모르고 납품을 수개월 지연시켜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그는 “계약서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작성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2002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 한국 국적의 김 변호사는 일본 6위의 대형 로펌 시티유와 법률사무소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04년 9월 일본 기업 ‘네프로 IT’의 코스닥 상장을 도운 인연으로 2010년 국내 대형 로펌인 김앤장과 태평양 등에서 파견 근무하며 법률 조언을 해 왔다. 현재 재일동포 변호사는 150여명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인권이나 개인 민사사건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또는 그 반대로 유학 온 학생들이 자국 로스쿨에 진입해 특화된 변호사로 거듭나면 기업 관련 소송에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재일동포 인권지킴이 선친 유지 이을 것”

    “재일동포 인권지킴이 선친 유지 이을 것”

    “한국의 경제·문화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 내 재일동포 차별은 많이 없어진 편이죠. 다만 보편적 인권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아직 멀었고 진심으로 손해 배상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세계 한인차세대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재일동포 김미사(26)씨는 4일 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일본 내에서 한국 국적을 지닌 첫 법조인이자 ‘재일동포 인권지킴이’로 유명한 김경득(1949~2005) 변호사. 김 변호사의 2남 2녀 중 둘째인 김씨는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일본 게이오대 로스쿨과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현재 게이오대에서 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나 원래 꿈은 저널리스트였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변호사가 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지만 19세 때 돌아가시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같은 직업을 가져서라도 아버지와 계속 이어지고 싶었죠. 아버지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것은 김씨만이 아니다. 오빠 창호(28)씨는 도쿄대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미국 시카고대에서 법학석사(LLM) 과정을 밟고 있고 여동생도 일본 주오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 김 변호사는 재일동포 차별 철폐운동의 상징이다. 그는 1976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최고재판소로부터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는 한 사법연수생으로 채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3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일본 내 한국인 변호사 1호가 됐고 이후 재일동포 국민연금 소송 등을 주도했다. 김씨의 가족들은 집안에서 한국어를 쓰며 2남 2녀의 국적도 모두 한국이다. “일본에선 한국 국적으로 판사나 검사는 될 수 없어요. 로스쿨을 다니면서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버지가 힘겹게 지킨 국적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법학자가 돼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씨는 “일본 내 북한 동포의 어려운 처지는 여전히 과제”라면서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 일본의 교육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Weekend inside] 東아시아 갈등 부추기는 中좌파·日우익

    [Weekend inside] 東아시아 갈등 부추기는 中좌파·日우익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를 비난하며 중국 베이징의 일본대사관 앞에 몰려든 1만여명의 중국 시위대는 마오쩌둥(毛澤東) 사진을 앞세웠다. 대열의 선두에는 ‘마오쩌둥 사상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마오쩌둥 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중국의 좌파가 반일 시위의 선봉에 선 것이다. 지난달 한국과 일본 간의 독도 분쟁이 한창일 때 일본 도쿄의 한국대사관 앞에서는 연일 우익단체들의 반한 집회가 개최됐다. 이들은 도쿄 신오쿠보의 코리아타운으로 몰려가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꺼져라.”라고 외치며 일본인들의 반한 의식을 부추겼다. 중국의 좌파와 일본의 우익이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와중에서 동시에 득세하고 있는 사실은 아이로니컬하다. 중국 좌파와 일본 우익의 실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中, ‘민족’ 앞세워 反체제 결집 ●‘체제 불만’ 저소득층·젊은이들 관심 커져 좌파가 반일 시위의 선봉에 등장하자 중국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실제 이번 반일 시위에서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내걸리고, 좌파의 아이콘인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를 지지하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마오가 농민과 노동자 계급을 지지기반으로 두었고, 보 전 서기가 ‘홍색(공산당) 캠페인’을 펼치며 분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시위를 통해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좌파는 옛좌파, 극좌파, 신좌파 등으로 분류되지만 모두 개혁·개방 노선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빈부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와 농민시위 빈발 등 사회문제 대두가 시장경제도입 등 개혁·개방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양극화와 실업난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과 젊은층이 이들의 목소리에 차츰 귀를 기울이고 있다. 중국에서 좌파는 마오의 ‘홍위병’에서 시작됐다. 대약진운동 실패 등으로 마오에게 위기가 닥치고, 우파의 목소리가 득세하자 마오는 극좌파 홍위병들을 앞세워 체제를 유지했다. 개혁·개방 이후 꼬리를 감춘 좌파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우파를 맹공격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흰 고양이’인 우파 개혁·개방론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지난 15일과 16일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반일 시위는 일본의 중국영토 잠식에 대한 불만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반정부 성격의 장으로 비화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좌파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기득권에 불만을 가진 대중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인 선전은 대표적인 수출 가공 기지로 각지에서 몰려든 농민공만 100만명이 넘는 만큼 빈부격차가 심하고 사회불만도 팽배해 좌파에 대한 지지 여건은 충분한 셈이다. ●당국서도 민족주의 고리로 영토분쟁에 활용 좌파의 주요 목적은 개혁·개방 저지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공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 좌파 이념의 산실 역할을 하는 마오쩌둥 깃발(毛澤東旗幟), 오유지향 등의 인터넷포털에서는 지난달 원 총리의 파면을 요구하는 전·현직 공산당 간부들의 연대서한이 공개됐다. 이들은 원 총리가 개혁·개방이라는 미명 아래 국유기업을 축소, 해체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확대시켜 온 탓에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 좌파 지식인은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상당한 자산을 갖췄을 것”이라면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엄청난 성장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번 돈은 진짜 자산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통해서도 지금 못지않은 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좌파의 목소리가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영토분쟁 국면에서 민족주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개혁·개방을 공격하는 좌파와 민족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물론 중국 당국이 좌파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앞으로도 민족주의 카드를 견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좌파가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민들의 반일, 반한 감정을 자극하고 이 과정에서 당국으로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중국의 빈부격차와 공직부패 등 사회모순이 예전보다 훨씬 심각해졌으며, 3억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는 대일 강경기조를 외치는 국내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지도부가 좌파 기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日, ‘독도’ 빌미 反韓의식 조장 ●네트워크 활동 탓 ‘인터넷 우익’ 파악 어려워 일본 우익의 기원은 1868년 1월 3일 메이지유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고 왕정으로 복귀하면서 황국사관과 국수주의를 주창하는 정치가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지부를 설치하고,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단체는 없다. 다만 자민당과 민주당 의원 가운데 보수의 목소리를 내는 일부 인사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적지 않다. 우익계의 시민단체는 유신 정당의 계보를 잇는 ‘잇수이카이’(一水會)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우익단체 연합체인 ‘전일본 애국자 단체회의’ 등이 있다. ‘애국’이 포함된 단체명을 사용하면 십중팔구 우익단체가 분명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용 불안이 심해지면서 ‘인터넷 우익’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실체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심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등 재일동포 기업인이 대두하고,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재일) 한국인이 일본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위기감을 내세워 동조자들을 규합하고 있다.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1∼3%에 불과하지만 ‘2채널’ 등 특정 사이트에 모여들어 발언력을 키워 왔다. 일방적인 주장을 늘어놓을 뿐 공개적인 논쟁을 꺼린다. 한국, 북한, 중국에 거부감을 보이고, 특히 한국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표출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 ‘한국인은 일본에서 나가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드라마 상영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민영 방송사인 후지TV에 몰려가 한류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기존의 우익단체들은 공안 당국에 의해 관리된 측면이 있지만 인터넷 우익은 네트워크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 당국이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보수층서도 극한적 배타의식에 비판적 우익단체들은 지난 2009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추진했던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일부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독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둘러싸고 한국, 중국,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이 격해지자 상대국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한 단교 공투위원회’와 ‘유신정당 신풍’, ‘일본청년사’, ‘민족동맹’, ‘힘내라 일본! 전국행동위원회’ 등 인터넷 우익들이 요쓰야의 한국대사관과 도쿄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의 반한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는 일본땅’이라고 적힌 말뚝을 갖다 놓은 스즈키 노부유키는 ‘유신정당 신풍’의 대표이다. 우익 시위대는 최근에도 한국 음식점과 한류 상품점이 즐비한 거리를 행진하며 “한국인은 한국으로 꺼져라.”, “역사상 최대 날조가 위안부 강제연행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한국 상품을 구입한 일본인에게 “왜 한국 물건을 사느냐.”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배타주의적 목소리에 대해서는 일본 내 진보 인사들은 물론이고 보수층조차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우익 단체인 잇수이카이의 스즈키 구니오 고문은 최근 보수 성향 주간지 ‘사피오’ 기고문에서 “일본의 역사는 중국이나 서구 문명을 무제한적으로 수용해 가면서 발전해 왔다.”며 “한국인 등에 대한 차별 의식이나 배외 의식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제주 허씨들을 위한 여행기…5가지 메인 요리로 꾸몄죠”

    “제주 허씨들을 위한 여행기…5가지 메인 요리로 꾸몄죠”

    “새책을 내면 ‘그렇게밖에 못 썼느냐.’는 비난을 받을까 늘 불안에 떨었는데, 미술사 전공자가 제주도의 민속까지 아우르는 책을 냈으니 내가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큰 부담이 없다.” 유홍준(63)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13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돌하루방 어디 감수광’을 내놓은 기념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점심에는 손도 못 대고 계속 책 설명을 하는 모습이 영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6권까지 나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올 초 인문서로는 최초로 300만부를 판매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신간 앞에서는 별도리가 없다. 특히 일본인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가 1938년 박사논문으로 쓴 ‘제주도’와, 1966년 증보한 ‘제주도’를 읽은 뒤로 ‘간단히 쓸 수 없겠다. 질 수 없겠다.’는 각오를 했으니 더욱 그러하다. 유 교수는 “1권을 내놓고 1993년에 강연을 갔는데, 제주도 이야기를 써 달라고 하더라.”면서 “‘제주학’의 훌륭한 연구자들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는 제주도를 소개하는 5개의 메인디시가 있다.”면서 “동남쪽은 제주시의 역사, 해녀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북 쪽은 4·3사건, 서남쪽은 추사와 하멜, 모슬포 등 외지에서 온 사람들 이야기, 서북으로 제주말과 토종닭, 재일동포 공덕비, 감귤과 나비박사 석주명, 이즈미 세이이치의 이야기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한라산을 다뤘다.”고 했다. 서문에서 ‘제주 허씨를 위한 제주도 안내서’라고 말한 것은 렌터카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찍어가면서 책에서 소개한 장소를 찾아가 보라는 것이다. 렌터카의 차 번호가 ‘허’로 시작하니 하는 이야기다. 제자들은 그의 원고를 읽고, 제주도 해녀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고 했고, 유 교수는 재일교포들이 귀국하면 반드시 귀국보고회를 한다는 본향단과 본향단 할망에게 바친다는 ‘소지’(흰 한지)를 꼭 놓치지 말고 읽기를 희망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경주선 ‘문학올림픽’

    ‘문학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 펜(PEN)대회가 오는 9일 천년 고도 경북 경주에서 막을 올린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이사장 이길원)는 세계 작가 기구인 국제펜클럽의 연차 총회인 제78차 국제 펜대회가 오는 15일까지 7일간 경주에서 개최된다고 5일 밝혔다. 펜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1970년과 1988년(이상 서울)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대회에는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씨와 한국 문학 전공자인 데이비드 매캔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해 114개국에서 300여명의 외국 문인이 참가한다. 국내에서는 문학평론가 이어령씨와 소설가 이문열씨 등 600여명이 참가한다. 참가자들은 10일 개회식에 앞서 9일 불국사, 동리목월문학관, 대릉원 등을 탐방한다. 특히 12일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월레 소잉카(1986년), 오르한 파무크(2006년), 르 클레지오(2008년)가 동국대 경주캠퍼스 100주년 기념관에서 문학과 인권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국제 펜대회에 노벨상 작가가 3명이나 참가하는 것은 경주대회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北·日 국장급 본회담 개최 합의

    북한과 일본이 4년 만의 첫 정부 간 회담을 마무리하고 납북자 문제 등을 논의할 국장급 본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31일 중국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에서 유성일 북한 외무성 일본과장과 오노 게이치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을 대표로 마지막 과장급 회담을 갖고 국장급 본회담을 열어 ‘관심사항’에 대해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본 언론은 북한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의제에 포함하는 것을 수용했다고 전했다. 국장급 회담은 이르면 이달 중 열릴 것으로 보인다. 본회담에는 송일호 외무성 북·일 교섭 담당 대사와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도통신은 납치 가능성이 있는 특정실종자 문제, 1959∼1984년 재일동포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인 처의 귀국 문제, 일항기 요도호 납치범 송환 문제 등이 국장급 회담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정부는 ‘상호 관심사항’을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비록 모호한 표현이지만 납치 문제에 관해 상당 부분 관철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측 관심사에 납치 문제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양측은 지난 29일부터 열린 이번 회담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향후 본회담 의제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이날 합의로 오히려 북·일관계 개선의 여지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국민 ‘김정은 신시대’ 환영”

    “北 국민 ‘김정은 신시대’ 환영”

    최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난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명)가 북한 체제 선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후지모토는 2001년 부인과 딸을 둔 채 북한을 탈출했다가 지난달 김 제1위원장의 초청으로 방북해 가족과 재회했다. 일본에 돌아온 그는 이전보다 북한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후지모토는 27일 발매된 일본 주간지 ‘주간현대’에 김 제1위원장이 일본 팬이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기고했다. 후지모토는 이 글에서 김 제1위원장이 어릴 때 일본어를 배웠다고 소개한 뒤 “(김 제1위원장의 생모로 재일동포 출신인) 고영희의 아들인 ‘정은 왕자’(김정은)도 틀림없이 일본 팬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제1위원장을 ‘믿음직스러운 국가원수’라고 표현한 후지모토는 자신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한 것을 소개한 뒤 “정은 왕자가 곧바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 국민이 ‘김정은 신시대’를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도 적었다. 후지모토는 자신이 김 제1위원장에게 “일본에 돌아가서 대장 동지(김정은)가 얼마나 평화와 경제 발전을 지향하는 지도자인지 설명하겠다. 그렇게 하면 공화국(북한)에 대한 세계의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한국계 첫 백악관 차관보’ 故강영우 박사에 무궁화장

    ‘한국계 첫 백악관 차관보’ 故강영우 박사에 무궁화장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에 올랐던 고(故) 강영우 박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된다. 지난 2월 68세의 나이로 별세한 강 박사는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의 권익 증진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는 오는 10월 6일 제6회 세계 한인의 날에 강 박사를 비롯해 유공 재외동포와 국내 인사 등 120명과 7개 단체에 훈·포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외교통상부가 23일 공개한 서훈 추천대상자 명단에 따르면 강 박사와 함께 재일본대한민국단(민단)과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유재근 민단 중앙본부 상임고문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김정은 “배신 잊었다” 北왕래 허락하자…

    김정은 “배신 잊었다” 北왕래 허락하자…

    지난달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난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명)가 다음 달 북한을 재방북할 것이라고 23일 밝혔다. ●北 ‘개방적 지도자’ 이미지 노려 후지모토는 이날 일본 민영방송 TBS에 출연,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4일까지 방북했을 때 김 제1위원장으로부터 앞으로 일본과 북한을 왔다 갔다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며 “다음 달 다시 방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9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로 일하며 어린 김정은의 놀이 상대로 친분을 쌓았지만, 일본과의 접촉 사실이 발각되자 2001년 북한에서 결혼한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탈북했다. 북한이 탈북 ‘전과’가 있는 후지모토의 자유로운 방북을 허용한 것은 다음 달 17일 ‘북·일 평양 선언 10주년’을 앞두고 김 제1위원장이 개방적인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일본과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실제로 후지모토는 김 제1위원장에게 ‘모든 일본인이 요코타 메구미 등의 빠른 귀국을 희망하고 있다. 일본 정부 내에 전문부서가 있을 정도로 이 문제를 중시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건넸다. 후지모토는 방송에서 자신이 방북하게 된 것은 6월 16일 일본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재일동포로부터 김 제1위원장의 초청 사실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김 제1위원장의 초청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한 달 뒤 다시 “11년 전에 헤어지면서 다시 북한에 온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메시지를 받고 김 제1위원장이 자신을 초청한 것으로 믿게 됐다고 말했다. 후지모토는 김 제1위원장이 7월 22일 자신을 위해 마련한 환영회에서 벌어진 일을 소개하고 사진 8장도 공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장 동지, 배신자가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자 김 제1위원장은 “됐어, 됐어. 배신은 다 잊었어. (어릴 때) 같이 테니스, 농구를 해줘서 고맙다. 함께 담배 피운 것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김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는 “최고 지도자가 언제나 후지모토씨 이야기를 했다.”고 반겼다. ●김정은 “어릴적 담배흡연 못잊어” 후지모토는 옆에 있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다가가 “저를 때려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장 부위원장은 “여기서 때릴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어.”라고 다독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석한 모 인사가 “난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해 김 제1위원장이 “됐다.”라고 제지하기도 했다. 환영회에는 김 제1위원장 부부와 여동생 김여정, 장 부위원장, 김정일 위원장의 마지막 부인인 김옥 등 17명이 참석했다. 한편 북한이 후지모토가 방북하기에 앞서 그의 신변을 조사한 흔적이 포착됐다고 산케이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일본 경찰이 중소기업 지원 융자금을 사취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일동포 운송회사 사장 Y(41)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컴퓨터에서 2010년부터 후지모토의 일본 내 언동과 생활 상황 등을 북한에 보고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한국학도서관 순천 이전

    日 한국학도서관 순천 이전

    재일동포 기업가가 일본에서 운영 중인 대표적 한국학도서관이 전남 순천으로 이전한다. 순천 청암대는 21일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1987년부터 운영되던 도서관 ‘금수문고’가 청암대 학술정보센터 6층으로 이전해 22일 개관한다고 밝혔다. 금수문고는 윤용길 대표와 박종명 고문을 중심으로 운영돼 온 대표적인 재일동포 도서관이다. 금수문고는 남북한과 일본에서 수집한 각종 도서와 자료 등 2만 3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재일동포와 관련된 도서를 비롯해 한국과 북한, 일본에서 간행한 단행본·신문·잡지·문학작품·도감 등이 있다. 일본 주요 대학에서 발간한 학술지와 각종 사전류 등을 포함한 역사·예술·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를 총망라한다. 특히 김달수, 김석범, 박경식, 이진희 등 대표적 재일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집대성돼 있다. ‘일본식민지교육정책사료집성’, ‘조선왕조실록’ 등과 ‘조선신보’, ‘통일조선신보’ 등을 비롯한 해방 후 발행한 신문 등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도자기, 공예품 등 200여점도 포함됐다. 일본에서 지식인들을 상대로 독도는 한국땅이란 강연을 해 화제를 모았던 강명운 청암대 총장은 “이번에 개관하는 금수문고는 앞으로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재일동포 100년사… 차별·무관심의 흔적들

    재일동포 100년사… 차별·무관심의 흔적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에 생계를 위해 현해탄을 건넜던 재일동포 100년의 역사를 영상과 유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열도 속의 아리랑’이 오는 10일부터 개최된다. ‘재일동포’는 ‘1910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의 자손’을 말한다. 조선총독부가 1910~2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을 펴자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넘어갔다. 1920년대 후반 이후 매년 8만~15만명이 이동했고,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으로 부족해진 일본 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본 전역의 탄광과 광산, 토목공사 현장에 조선인이 동원되었다. 일본 소설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청춘의 문’에도 광산노동자로 전락한 조선인들이 나온다. 1945년 광복 후 일본에 잔류한 인원은 약 70만명에 달했다. 재일교포는 한국과 일본을 매개하는 가교가 될 수도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일본은 이들을 차별해 왔고, 한국은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7일 “재일동포의 역사가 100여년이 지나도록 이들의 삶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각인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이번 ‘열도 속의 아리랑’은 동북아역사재단과 서울역사박물관, 일본의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특별기획전과 역사 영상심포지엄, 영화상영 등으로 구성됐고, 모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우선 특별기획전은 두개 부문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1부는 일본에서 건너온 ‘도항증명서’, ‘외국인등록증’ 등 총 449건 987점의 자료가 전시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온 재일교포들의 마음을 담았다. 2부는 일본의 역사관을 다색판화 ‘니시키에’를 통해 살펴본다. 니시키에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과 황국사관의 형성 과정을 보여 준다.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이 지난 40여년간 수집한 다색판화 중, 근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여 주는 ‘진구(神功)황후의 삼한정벌’ 등 총 94건 174점을 엄선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역사 영상심포지엄에서는 ‘영화가 말하는 한·일관계의 심층’에 대해 재일동포 소녀 야스모토 스에코의 일기를 원작으로 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은오빠’가 상영된다. 이후 한양대 윤상인 교수의 사회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가 ‘재일동포의 삶을 통해 한·일관계의 변화를 살피다’와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가 ‘우리 역사의 재조명, 재일코리안 역사특별전에 즈음하여’라는 주제의 기조발표를 한다. 역사 영상 심포지엄은 영화를 활용해 역사를 논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술회의와는 다른 신선함과 관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영화상영에는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의 기록다큐영화 ‘숨겨진 손톱자국’ ‘버려진 조선인’,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데뷔작으로 1981년 모스크바 영화제 은상 수상작인 ‘진흙강’, 박철수 감독의 ‘가족시네마’, 재일동포 김수진 감독의 ‘밤을 걸고’ 등 모두 8편이 상영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故 진창현씨 기념비 日에 제막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故 진창현씨 기념비 日에 제막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다 세상을 떠난 고(故) 진창현(1929∼2012)씨의 기념비가 일본 나가노현에 세워졌다. 나가노현 기소군 기소마치는 지난 21일 오후 신스이공원에서 고인의 부인 이남이씨와 신각수 주일 한국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과 추도식을 열었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진씨는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1957년부터 기소마치에 터를 잡고 바이올린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소마치는 일본 내 현악기 생산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진씨는 1961년에 도쿄로 활동 거점을 옮겼지만 기소마치는 그의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을 기려 생전에 명예 주민증을 줬다. 비석에는 진씨의 얼굴을 새겼고 비석 옆에는 사망할 때까지 국적을 바꾸지 않은 고인의 뜻을 기려 무궁화를 심었다. 기념비 제막식과 추도식에는 신 대사를 비롯해 다나카 가쓰미 기소정장(면장)과 데즈카 기이치 지방의회 의장, 재일동포 사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 하정웅씨 등이 참석했다. 진씨는 1984년 미국 바이올린제작자협회로부터 세계에서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 칭호를 받았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세계 최상품인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 13일 도쿄도 조후시 자택에서 대장암으로 숨졌다. 그는 병상 옆에 태극기를 두는 등 최후의 순간까지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김정은 기자의 백스테이지] 장르 불문 팔도 사투리 선생님, 황영희

    [김정은 기자의 백스테이지] 장르 불문 팔도 사투리 선생님, 황영희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막론하고, 사투리 연기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꼭 만나야 하는 사람으로 꼽는 이가 있다. 바로 전국 팔도 사투리의 달인, 연극배우 황영희(43)다. 그녀에게 사투리를 배운 ‘제자’들은 유명 배우부터 단역 배우까지 폭넓다. #신애라 ‘아이스께기’ 전라도 사투리 ‘전수’ 2008년 배우 고수가 공익근무를 마친 뒤 복귀 무대로 선택한 연극 ‘돌아온 엄사장’에서 보여준 맛깔나는 사투리는 황영희로부터 며칠동안 1대1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졌다. 2006년 배우 신애라가 생애 첫 영화 ‘아이스께기’에서 보여준 정감있는 전라도 사투리 또한 황영희의 ‘가르침’이었다. 서울이 고향인 신애라는 지역별 사투리조차 구별하지 못했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사투리는 일품이어서 사투리 선생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낳았다. 전남 목포 출신인 황영희는 팔도 사투리를 현지인처럼 구사한다. 술을 마시면 전라도 말과 경상도 말을 뒤섞어 말하는 스스로가 신기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녀는 12일부터 서울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르는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의 사투리 작업에 참가했다. 가수들이 음반작업을 할 때 녹음 전 작곡가들이 가이드송을 불러주듯, 대부분의 대사가 사투리인 이 연극의 전체 대사를 휴대전화에 녹음해줬다. 황영희는 “경상도 배우에게 전라도 말을 가르치니 굉장히 어렵더라. 역시 전라도와 경상도의 벽은 높구나 싶었다.”면서 “몇 년 전부터 극단이나 사투리 연기로 오디션을 받아야 하는 배우들이 찾아와 저에게서 사투리를 배워가곤 한다.”고 말했다. 배우 봉태규의 여자친구로도 유명한 배우 이은 등이 드라마 오디션을 앞두고 그녀에게 속성으로 사투리를 배웠다고 한다. 사투리를 지도하거나 표준어로 된 대본을 사투리로 바꿔준 작품도 수십 개에 이른다고. 얼마 전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던 연극 ‘목란언니’에선 북한 여성 조대자 역을 맡아 북한 사투리까지 멋들어지게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그녀가 다양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황영희는 “사투리 연기를 위해 틈날 때마다 각 지역의 재래시장을 찾아 말투를 익히려고 한다. 이 방법은 사투리를 배우는 데 효율적”이라면서 “지역 사람들이 많이 나온 다큐멘터리도 분석하며 본다. 꼭 사투리가 아니더라도 특이한 말투를 지닌 사람들은 면밀하게 관찰해 특징을 뽑아낸다.”고 설명했다. #각 지역 재래시장 돌며 연구 ‘사투리의 달인’이란 소문이 나면서 곳곳에서 자문 역할을 했지만, 정작 서운할 때가 있단다. “배우들에게 사투리를 가르치라고 할 게 아니라 저를 캐스팅하면 다른 배우들에게도 공짜로 사투리를 가르쳐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캐스팅은 안 한다.”며 익살도 부린다.. “작은 재주이지만 저만의 장기를 살려 연극에 도움을 주는 자체로 행복하다.”는 그녀의 웃음이 정감 깊다. kimje@seoul.co.kr
  • [부고] 세계적 바이올린 제작자 재일동포 진창현씨 별세

    [부고] 세계적 바이올린 제작자 재일동포 진창현씨 별세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인 재일동포 진창현씨가 지난 1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3세.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들과 일부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15일 도쿄도 조후(調布)시에서 조촐한 가족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192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4세 때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인력거를 끌거나 항만노역, 토목인부 등을 전전하며 야간 중학교를 거쳐 메이지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영어교사가 꿈이었지만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교직에 몸담을 수 없어 방황하던 중 우연히 바이올린의 최고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에 대한 강연을 듣고 인생 항로를 바꿨다. 20세기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를 푸는 데 일생을 바쳤다. 고인은 각고의 노력 끝에 1976년 미국바이올린제작자협회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음향과 세공으로 나누어 총 6개 종목에 걸쳐 개최한 콩쿠르에서 5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현존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명성을 얻었다. 1984년 미국 바이올린제작자협회로부터 세계에서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 칭호를 받았다. 고인이 제작한 바이올린 한 대 값은 150만엔(약 2140만원)을 호가한다. 정경화를 비롯해 헨리크 셰링, 아이작 스턴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고객이다. 하지만 고인은 어린이 보급용 바이올린을 만드는 등 일생 동안 700여대의 바이올린을 손수 제작했다. 2008년에는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고인의 일대기가 일본 고교 2학년 영어교과서(산유샤) ‘코스모스(COSMOS)Ⅱ’에 ‘바이올린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고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자 일본인들에게서 국적 변경을 끈질기게 권유받았지만 끝내 거절했다. 2008년 10월 한국 정부로부터 일반인의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지난 3일 조후시 자택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병상 인터뷰<5월8일자 29면>가 생애 마지막 인사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남이씨와 아들 창호·창룡, 딸 찬숙씨 등이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정경화·셰링도 내 고객… 바이올린 더 만들지 못해 참 슬퍼”

    “정경화·셰링도 내 고객… 바이올린 더 만들지 못해 참 슬퍼”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인 재일동포 진창현(83)씨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진씨는 세계에서 감독 및 검사 없이 바이올린을 제작할 수 있는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 가운데 한 명이다. 진씨가 제작한 바이올린 한 대 값은 150만엔(약 2140만원)을 호가한다. 정경화를 비롯해 헨리크 셰링, 아이작 스턴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명연주자들이 진씨의 고객이다. ●병세 급속 악화… 손쓸 수 없는 상황 지난 3일 도쿄도 조후시 자택에서 만난 진씨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다가 가족들과 의사, 간호사가 흔들어 깨우면 겨우 눈을 뜰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지난 2월 26일 병원에서 갑자기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진씨는 이후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지금은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고국의 기자가 집에까지 찾아왔다는 부인 이남이(72)씨의 귓속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들은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초점 없는 시선이었지만 기자와 눈을 마주치려 애써 힘쓰는 것 같았다. 기자가 찾아오기 며칠 전 “바이올린 제작을 못해 참 슬프다.”며 어렵게 얘기한 게 마지막 의사표현이었다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끈질긴 日 귀화 요구 끝까지 뿌리쳐 침실이 놓인 거실 창가에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경북 김천 출신인 그는 열네 살 때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인이 존경하는 세계적인 마스터 메이커가 됐지만 아직도 모국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진씨는 세계적 명성을 얻자 일본인들로부터 끈질기게 국적 변경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인 이씨는 “원점을 잊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었다.”며 “귀화는 낳아 주고 길러 준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두 아들과 딸에게도 늘 강조했다.”고 말했다. 진씨의 큰아들 창호(50)씨는 바이올린 제작을, 둘째 아들 창룡(46)씨는 현악기에 사용하는 현을 제작하는 등 가업을 물려받았다. ●평생 스트라디바리우스 신비에 도전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인 교사를 만나 바이올린 연주법을 배운 진씨는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한동안 바이올린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미군 병사들을 태우는 인력거를 끌거나 분뇨 수레를 끌면서 야간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에도 항만노역, 토목인부 등을 전전하며 메이지대학까지 마쳤다. 하지만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교직에 몸담을 수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달랠 길 없던 그는 그 무렵 우연히 바이올린의 최고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에 대한 강연을 듣고 인생항로를 바꿨다. 20세기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에 도전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진씨는 1976년 미국바이올린제작자협회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음향과 세공으로 나누어 총 6개 종목에 걸쳐 개최한 콩쿠르에서 5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받아 현존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인 첫 日 영어교과서에 실려 그의 삶은 일본에서 책과 만화, TV드라마로 만들어졌다. 2008년에는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일본 고교 2학년 영어교과서(산유샤(三友社) 간행 ‘코스모스(COSMOS) Ⅱ’)에 ‘바이올린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12쪽에 걸쳐 소개됐다. 한국 정부로부터 일반인의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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