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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년 발간 ‘경성시가전도’ 공개

    1910년대 서울의 모습을 담은 ‘경성시가전도’(京城市街全圖) 등 일제시대 지도 5장과 사진 5점이 공개됐다.특히 경성시가전도는 1917년 2월 12일 발간돼,서울시가 최근 공개한 ‘경성시가도’(1923년 발간)와 ‘대경성정도’(1936년 발간) 등보다 앞서 지금까지 발견된 일제시대 최초의 지도다. 3일 경희대 수원캠퍼스 혜정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축척 1만분의 1인 경성시가전도에는 당시 서울 주변의 성곽과 전차 노선을 비롯해 청계천 다리 이름,용산 미군기지 자리에 들어서 있는 일본군 시설물 등이 자세히 표기돼 있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덕수궁 평면도(1910년)와 경성시가도(1923년,1929년),그림지도인 경성명소도회(1926년) 등 지도 4장과 1896년 경성 및 남산 일본인 거류지와 1920∼1930년대 서울시가 등의 모습을 담은 사진 5점도 공개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사료들은 일제시대 서울의 주요 지명과 덕수궁터,청계천,용산 등의 변천 과정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도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사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대사관 자리는 1917년에는 경성제대 법학부 자리였지만 1923년에는 일본 경관연습소로 바뀌었다. 용산 미군기지 근처 남산공원은 1917년 지도에는 원래 명칭대로 표기됐지만 1923년 지도에는 조선신궁이 건립되면서 왜성대(倭城臺) 공원으로 변모했다. 1910년 미국영사관 모습이 담긴 덕수궁 평면도(융희 4년)에는 대한제국의 연호인 ‘융희’가 사용된 반면,경성명소도회(대정 15년)와 1929년의 경성시가도(소화 4년)에는 일본식 연호인 ‘대정’과 ‘소화’가 사용됐다. 연구소 오일환 박사는 “이 지도와 사진들은 일제 초기 서울의 모습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면서 “특히 덕수궁 내 미국 대사관저 부근의 모습과 용산 미군기지 조성 이전의 시설물 배치 등을 볼 수 있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자료들은 경희대가 한 재일교포 사료 연구가로부터 2년 전 기증받은 서양고지도 600여점과 국내 고문헌 자료,고서 등 수천점 가운데 일부다.학교측은 최근 자료 정리작업을 벌이면서 발견된 사료들을 1차로 공개했다.나머지 사료들도 분류가 끝나는 대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장세훈기자 shjang@
  • 편집자에게/ “호적·한국인 증명서 모두 인정 검토를”

    -‘중국동포 한국국적 허용 추진’ 기사(대한매일 12월1일자 1면)를 읽고 중국동포는 재일교포,재미교포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우리 국민이다.한·일협정 이후 재일교포 가운데 한국국적을 확인받고 싶어했던 60여만명에게 국적을 허용했듯이 중국동포에게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90년대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지만,우리 정부는 중국동포의 한국국적 확인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다.이제 이를 시작할 때가 왔다. 일부에선 외국인 노동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데,이는 전혀 잘못된 지적이다.중국동포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다.일제시대 때 국내에서 살 수 없어 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으로 떠난 우리 민족이다.재외동포법에 따라 재일·재미교포를 대우하듯 중국·러시아동포를 대접해야 한다.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전혀 비교할 필요가 없다.만약 중국동포를 외국인 노동자와 동일하게 처리한다면 오히려 중국동포들이 재미·재일교포들에 비해 ‘역차별’당하는 셈이다. 호적에 본인이나 아버지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경우에만 한국국적을 회복시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호적법은 1922년에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법률이다.대다수의 중국동포들이 이전에 출국해 호적에 남아 있지 않다.따라서 정부는 호적뿐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증명서를 모두 인정하는 방향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지석 변호사
  • [임영숙 칼럼] 여성들의 ‘멋진 선택’

    한 70대 여성이 자신의 ‘멋진 선택’에 관해 이야기했다.그는 20대에 남편을 떠나 보내고 어린 딸을 키우다가 재혼권유를 받았다.젊은 시절 파리지엔처럼 매력적이라는 말을 듣던 그가 처음 소개 받은 남성은 서울의 유명 대학 교수로 서로 마음이 끌렸다.그러나 그는 이 교수를 거절하고 훨씬 나이가 더 많은 시골 남성과 재혼했다.그 남성이 딸과 같은 성씨였기 때문이다.나중 알고 보니 그 남성은 재일교포였고 일본에 부인이 있었지만 호적상으로는 미혼이었다.“얼마나 멋진 일이야.성도 같고 호적도 깨끗하고….” 사실상 속아서 한 재혼이었고 결혼생활도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도 이 재혼에 만족해 한다.재혼한 엄마로 인해 딸이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멋진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 할머니처럼 호주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 어이없다는 느낌이 든다. 남편이 밖에서 낳은 아이가 자기도 모른 사이 호적에 올라 남편이 죽은 후 자신의 호주가 되는 황당한 경험을 한 여성도 있고,재혼하면서 데리고 간 아이가 새아버지와 성이 다른 것을 숨기기 위해 서류상으로 죽이거나 실종시킨 후 새로 출생신고를 하거나 입양시키는 편법을 쓴 여성들도 많다.최근에는 한 여성공무원이 재혼하면서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두 딸의 성을 불법적으로 바꾸었다가 적발돼 논란이 된 적도 있다.이런 편법이나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재혼한 여성들은 새아버지와 성이 다른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상처받는 모습을 아프게 지켜 보아야 한다.더욱 기막힌 경우는 남자와 헤어져 혼자 키운 아이를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 후 아이가 없다고 데려가 버려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야기하는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무회의를 통과해 이번주 중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헌법재판소에 호주제에 대한 위헌심판이 현재 계류된 상태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호주제가 합리적 이유없이 가족간의 종적관계,부계우선주의,남계 혈통 계승을 강제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냈다.유엔도 1999년과 2001년 두차례 우리 정부에 호주제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이혼율이 세계 1∼2위를 다투며 세쌍의 신혼부부가 탄생할 때마다 한쌍이 이혼하는 추세속에서 사회변화를 담아 내지 못하는 법과 제도는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그러나 오는 12월9일 막을 내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법개정안이 통과될 전망은 불투명하다.여성부는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과정에서 ‘가족’개념이 되살아나 가족해체에 대한 일부 반대자들의 우려를 씻어주게 돼 무난히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다르다.이번 법무부안보다 먼저 민법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는 이미경(열린우리당) 전 의원은 ‘우선 법사위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지난 8월 법사위에서 개정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할 때 대부분의 의원들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의 몸사리기도 예상되고 있다. 민법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음 정기국회에서는 통과될 수 있을 것이다.호주제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고 민법개정안에 대한 일부 반대는 개정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부계우선주의 소멸에 대한 심리적 저항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우리 몸에 맞지 않는 낡은 옷과 같은 호주제를 폐지하는 데 있어 국회의원들이 더이상 뭉그적거려선 안 된다. 각 정당은 지킬 생각도 없어 보이는 정치개혁안을 내놓기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법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다음 총선에서 정치세력화에 눈뜬 여성들의 선택과 지지를 확실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필 ysi@
  • ‘땅 텔레마케팅’ 다시 활개/“개발예정지 사라” 유혹… 제주도 집중타깃

    정부의 강도 높은 집값 대책으로 주택시장이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전화로 땅을 파는 ‘텔레마케팅’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9·5,10·29대책 이후 주택시장에서 빠진 돈을 땅으로 끌어들여 보자는 계산에서다. 이들은 그럴듯한 개발계획을 내세우지만 사실이 아닌 경우도 있고,집을 지을 수 없는 땅인 경우도 있다.따라서 투자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서울 종로에 사무실이 있는 P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제주 땅을 사라는 K텔레마케팅사의 전화에 시달린다.‘남제주군 표선면에 재일교포가 투자해 테마파크와 방송사들의 드라마세트가 들어설 예정이니 땅을 사라.’는 것이다. P씨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와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그러나 정작 남제주군은 K사의 테마파크가 건설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이밖에도 세화·송당지구,서귀포 등을 대상으로 텔레마케팅사가 판촉을 벌이고 있다.부동산업계에서는 최소한 강남에 20개 이상의 텔레마케팅사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텔레마케팅 업체가 소개한 땅을 매입할 때는 반드시 현장과 해당 관공서를 방문,개발계획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눈처럼 녹는 찰나속 내면의 인생…/윤대녕의 장편 ‘눈의 여행자’ 8년 구상한 눈 소재 소설 결실

    “그 때마다 낙타 한 마리가 눈 속을 뚫고 밤의 사막을 느리게 건너갔다.” 모래와 눈의 만남.8년 전 실크로드 여행에서 그 이질적 이미지의 겹침을 목도한 작가 윤대녕은 그 틈새에서 미지의 외침을 들었다.이미지를 중시하는 작가의 뇌리 속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졌다.이는 눈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작가는 밀린 빚을 갚듯 올해 1월5일 눈을 찾아 일본으로 떠나 한달 동안 “눈 눈 눈”이라고 되내이며 눈 속을 걷고 쓰고 한 끝에 초고를 완성했다.이후 5번의 수정작업을 거쳐 최근 장편 ‘눈의 여행자’(중앙 M&B 펴냄)를 탈고했다. 소설은 작가인 주인공의 눈여행으로 시작해 눈여행으로 끝난다.어느날 ‘그’의 작품을 관리하는 에이전시의 K가 한 재일교포 여인의 숫자놀이책과 편지를 주면서 작품기획을 제의한다.그 속엔 그녀의 눈여행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여행 내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작가가 그 아이를 찾아줬으면 한다는 사연이 적혀있었다. 3인칭 시점으로 시작한 작품은 여행이 시작되면서 내면의 이야기를술회하기에 유리한 1인칭으로 바뀐다.여행을 수락한 것은 ‘나’에게도 외사촌누이와의 근친 상간에서 낳은 ‘수’라는 아이에 얽힌 사연이 있기 때문.작품은 ‘나’의 니가타 등 일본 동북부 지역 ‘눈 여행’과 ‘수’에 얽힌 사연을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여행이 끝날 무렵 ‘나’는 초대한 주인공 부부를 만난다.딸이 죽자 실어증에 걸린 부인이 어느날 눈여행을 하면서 갖고 있던 아이의 이빨 열개를 하나씩 묻으며 다녔다는 사연을 들려준다.결국 ‘나’를 눈여행에 초대한 것은 소설을 써서 눈속의 아이나 그 속에 함께 묻힌 것이나 다름없는 여인을 불러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것이라고 덧붙인다. ‘눈의 여행자’는 아이를 일찍 떠나보내고 가슴에 묻은 가족이야기와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되는 과정을 다룬 ‘메타 소설’(소설쓰기의 소설)이다.그리고 그 슬픈 운명을 잠깐 내렸다 사라지는 백색의 이미지에 옮긴 것이다.그러나 외연은 더 넓다.‘눈 여행’을 통한 작가의 메시지는 퍼붓는 눈송이만큼이나 많다. 작가의 속내는 작품곳곳에 주인공 ‘나’의 독백을 통해서 감지된다.“나라는 존재도 이 무량히 퍼붓는 눈송이 중의 하나가 아닐까.(…)더불어 내가 한 송이 눈이 되어 떠돌 때 가슴에 품고 있는 상처나 고통도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인생도 잠깐 내렸다가 녹는 눈처럼 찰나 아닌가?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데 그 사이에 인간의 갈등과 번민을 담은 스토리를 넣었다.” 지난 4월 제주로 이사해 그토록 원하는 창작과 낚시에 푹 젖어 사는 그는 “묵은 마음의 짐을 턴 뒤 멍 한 상태”라고 말한다.내년 초 문학동네서 내놓을 창작집을 마무리하고 쉬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우리 비평계는 작품분석에 갇힌 꼴”‘문명’읽는 비평의 눈 길러야/방민호교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

    “오늘 한국 비평은 어제에 대한 반정립 또는 타자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또 문학사적·역사적 주제를 옆에 밀쳐두고 작품 분석·설명·해석 등에 국한하거나 서구 이론의 현학적 수용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27쪽) 93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비평가 방민호(사진) 국민대교수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향연 펴냄)은 도전적이다.비록 목소리는 낮지만 작품분석에 갇히거나 비생산적 논쟁에 휘말려 신음하는 한국 비평계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대안은 비평의 시선을 문화에 가두지 말고 ‘문명’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임화·김기림 비평의식 계승 못하고 축소 그는 자신의 논거를 위해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으로 에둘러 간다.프롤레타리아 문학론의 테두리를 벗어나 조선 문학의 아이덴티티를 고심하며 쓴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해방 이전 한국비평의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 임화와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라는 비평문에서 ‘문화의 운명’으로나아가며 근대 한국사를 동양이라는 문명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한 김기림의 앞선 걸음에 주목한다.이 두 사람이 미완으로 남긴 문제의식을 해방 이후 우리 비평계가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축소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세계 문학사의 전개’를 쓴 조동일의 방법론에서 문명사적 시각의 부활을 목도하고 최원식에게서 문명론적 시각의 단초를 확인한다.이어 임화,김윤식 등 비평계 거봉을 등반한 지은이는 문학의 보편성을 향한 여정의 중간에 잠깐,‘불문학 비평가’인 황현산과 박철화의 존재의미를 점검하며 한국 비평의 줄기를 넓힌다. 이같은 작업은 저자가 국문학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문학비평,나아가 문명비평의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이를 위해 그는 ‘대상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재일교포 문인과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한국 문화,한국 문학의 의미를 상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19쪽)는 지은이의 고백은 “경계인들의 사상에서 많은 것을 더 얻게 되리라.”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백민석·오수연 문명의 새흐름 인지 지은이의 잣대는 2부와 3부에서 현장비평으로 구체화된다.소설가 백민석에게서 “그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해”(214쪽)를,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하여 불문학을 공부했기에 불어로 사유하고 표현하는 작가 정양에게서는 “이중의 인연·언어·식성을 갖고 두 개의 세계 속을 자유롭에 유영하면서 유목민처럼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230쪽)을,인도 경험을 토대로 ‘부엌’을 쓴 오수연에게서는 “세계를 향해 열린 새로운 주체로 거듭남”(244쪽)을 발견한다.이들은 덜 영글었지만 세계사 흐름을 주시하면서 미래에 걸맞은 새 시민을 싹틔우려는 작가들. 지은이가 이들에 거는 기대는 비평가인 그에게도 오롯이 걸린다.그의 두번째 평론집 제목의 일부처럼 ‘납함(여러 사람이 일제히 고함을 지름)’만이 가득한 시대에 냉철한 현실분석과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 대안을 내놓은 그의 목소리는 그에게 걸린 기대이자 그가 짊어질 과제이기도 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 프리랜서 기자천국 日

    “여자에게 금단(禁斷)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스모(일본 씨름)를 취재하다 보면 승부에 전력투구하는 ‘남자’를 가까이서 실감할 수 있어 매력을 느낀다.”사토(35·여)는 스모 전문기자이다.신문사나 방송국,잡지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 라이터’(프리랜서 기자의 일본식 표기)이다.프리 라이터의 길을 택한 것은 9년 전.대학을 졸업한 24살 때 사진 주간지인 ‘프라이데이’에 입사,스모를 맡게 된 것이 “평생의 운명을 결정한” 스모와의 만남이었다.2년 뒤 안정된 월급,이름있는 주간지의 명함을 버리고 사토는 ‘프리 선언’을 했다.“명령받고,쫓기는 생활이 싫었다.”는 것이 이유다.신문·방송의 스모 담당기자를 제외하고 스모계를 취재하는 프리 라이터는 10여명으로 그 가운데 여자는 2명이다.거물 스모선수를 연속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는 그녀는 “주위에서 ‘몸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시샘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그만큼 벽이 높고 보수적인 스모계에서 여성이 10년 가까이 프리 라이터로 ‘생존’하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에는 득실거린다고 할 정도로 유난히 프리 라이터가 많다.숫자를 헤아릴 만큼 희소한 한국과는 딴판이다.어떤 프리 라이터는 “2만명 정도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별다른 자격이 필요없는 것이 프리 라이터인지라 그 숫자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본 다나카 가쿠에이’란 책을 쓴 바 있는 쓰루(59)는 그 이유를 “뭔가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하는 활자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뿐만 아니라 웬만큼 글을 쓰면 글 하나로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갖춰져 있는 점도 프리 라이터를 다량 배출하는 환경의 하나다.일단 글을 실어줄 매체가 많다. 수천종의 잡지가 쏟아져 나오는 일본은 프리랜서가 활동할 공간이 넓은 편이다.뭔가 쓰고 싶은 사람,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굳이 신문이나 방송사를 택하지 않아도 일정한 실력을 갖추면 프리 라이터가 될 수 있는 셈이다.출판·잡지사는 사원을 고용하는 부담보다는 프리 라이터를 그때그때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양한 전력의 소유자들프리 라이터의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 뭔가를 쓰고 싶었던 사람들이다.그래서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도 오랜 시간에 걸쳐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간노(40·여)는 대학 졸업 후 은행에 들어가 “평범한 OL 생활을 하다,이게 아니다 싶어” 박차고 나와 A신문사 광고국에 계약직 사원으로 재입사했다.“기자로 가는 길에 가깝기 때문”이었다.신문사에 들어갔으나 광고국인 탓에 글을 쓸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경제전문 주간지로 옮겨 편집자의 길을 걷는다.결국은 2000년 한국 젊은이들의 반일 감정에 관한 책을 써 프리 라이터의 직함을 갖게 된다.14년 만에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재일교포 2세인 이택수(35·가명)씨는 조총련계 기관지에서 7년간 기자로 일하다 2001년 프리로 독립했다.기관지 기자 생활은 “프리 라이터를 하기 위한 과정”이었다.지난 7월 ‘한국은 드라마틱-엔터테인먼트로 보는 한국 스타일’이라는 책을 쓴 다시로(37·여)는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게이오대 국문과를 나온 그녀는 대졸 여성들이 선망하는 아나운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홍콩 유학을 거쳐 4년 전부터 한국 연예계에 관한 기사를 취재하는 프리 라이터의 길에 들어섰다. ●프리여서 좋지만 수입은 불안정 자기가 취재하고 싶은 분야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매력에 빠져 프리 라이터의 길에 들어섰지만 수입이 적어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시로는 “아나운서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미치는 아슬아슬한 생활”이라고 털어놓는다.세무소에 신고한 2002년도 수입은 월 평균 20만엔을 넘지 않았다.올해는 좀 넉넉한 편이다.한국 드라마 ‘겨울 소나타’가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친 덕분에 한국 연예계에 갖는 일본인들의 관심이 높아져 책이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을 드나드는 취재경비나 집 월세,생활비 등을 빼면 여유로운 생활은 꿈꾸기 힘들다. 이택수씨는 “작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이후 북한과 조총련 사정에 관한 원고 의뢰가 많이 들어와 올해 700만엔의 수입을 예상하고 있지만 프리로 전업한 첫해에는 월 5만엔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힘겨웠다.”고 말한다.우익계 잡지건 좌익계이건 “거절하지 않고” 원고를 쓰고 있는 그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택수씨의 경우만 해도 행복한 편이다.상당수 프리 라이터는 살인적인 일본의 고물가 속에서 월 20만엔에도 못미치는 불안정한 원고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그래서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는 프리에서 조직의 룰이 지배하는 신문사나 공무원의 세계로 역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활고로 프리에서 재취업 주간지 기자로 활동하다 이름을 얻어 작년 프리 선언을 했던 마쓰모토(36·가명)는 얼마전 신문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중학생을 포함,세 아이를 둔 가장인 그는 고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신문사 정치부 기자로 변신했다.쓰루는 지방의 조그만 지방자치단체의 촉탁직원으로 일한다.도쿄의 출판사,잡지사의 인맥 관리가 힘든 지방에서 프리로 활동하기가 어려운 만큼 고정적 벌이를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뒤늦게 공무원이 된 것이다. 이씨는 다른 이유에서 전업을 궁리하고 있다.그는 “일본의 지방경제를 취재하고싶지만 프리 라이터의 신분이나 불안정한 수입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몇년간 신문사의 지방 지국에 입사해 취재를 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귀띔했다.이름만으로도 통하는 초일류 프리 라이터가 되지 않는 한 ‘프리 라이터’라는 명함 한 장으로는 취재 장벽이 너무나도 높기 때문이다.간노는 “○○잡지의 기획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 간노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프리 라이터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전한다. ●어둠의 세계 취재하다 봉변 지난 12일 도쿄항 해상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사체가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사체의 신원은 프리 라이터 소메야(38).조직폭력배 취재를 하고 있던 그는 “살해당할지 모르겠다.”고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말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옴 진리교의 관련시설에 신자를 가장해 잠입취재를 하는 등 평소 접근이 힘든 조직폭력배,중국인 범죄조직,고리업 세계 등을 취재,기사를 쓰고 책도 펴냈다. 이처럼 프리 라이터 가운데는 신문·방송이 좀처럼 다루지 않는 분야에 목숨을 걸고 취재 활동을 펼치는 사람도 더러 있어,언론의 영역을 넓히는 데 언론사의 기자 못지않은 활약을 하기도 한다. marry01@ ■프리 라이터 스즈키 아키라 |도쿄 황성기특파원|스즈키 아키라(사진·57)는 이색 경력을 지닌 프리 라이터이다.거품경제 시절 일본 증권가인 가부토초에서 ‘시테카부(주가 조작)’로 이름을 떨친 마법의 손이었다. 일본 경제에 거품이 한창이던 1980년대 수천억엔대를 주물렀던 장본인.많았을 때에는 130억엔의 개인수익도 올려봤다는 그는 1990년 거품의 종언을 알리는 일본 정부의 ‘총량규제(總量規制)’ 발표와 함께 가부토초에서 바람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그는 수개월 뒤 프리 라이터로서 재기에 나선다.“마이니치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로부터 주가 조작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4쪽짜리 원고를 15만엔에 써주었던 것이 출발이었다.” 그는 모두 15권의 책을 써냈다.올 3월에는 ‘뒷골목 비즈니스,어둠의 연금술’이라는 경제의 추한 이면에 관한 문고본을 출판했다.지금은 2차대전 패전 직후 일본 지하경제에 관한 문고본 출간을 같은 출판사에서 의뢰받고 자료를 수집 중이다. “국회도서관 같은 큰 도서관과 신문사를 돌며 몇십년 전 자료를 모으는 외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증언해 줄 옛날 사람을 만나는 게 큰 일”이라는 그는 “이 나이에 다리품 팔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것이 고충이라면 고충”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로도 집에서 자료 검색을 할 수 있으나 워낙 검색료가 비싸 엄두를 못낸다.“경기가 좋았을 때 같으면 출판사에서 경비를 다발로 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고 한다.그가 작년도 세무소에 신고한 수입총액은 500만엔쯤.“잘 나갈 때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거지’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지금 자료수집 중인 책을 쓰게 되면 150만엔쯤의 인세 수입을 올려 “당분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빙긋 웃는다. “우리처럼 400자 원고지에 글을 써서 1장당 얼마에 팔아 살아가는 프리 라이터를 자학적으로 ‘100엔 라이터’라고 부른다.”는 스즈키는 “이 직업은 50살 넘으면 힘들어서사실상 생명이 끝난다.”고 손을 저었다.
  • 말말말˙˙˙

    전통춤은 보존도 좋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말은 하지 않지만 은근히 억누르는,전통의 지붕을 벗어나면 안된다고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북한국적을 포기하고 한국국적을 취득한 무용가 백향주씨,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무용계가 권위주의적인 면이 있다며.
  • 40년을 같이 살았는데…/유부남과 동거 “사실혼 아니다” 판결

    남편과 수십년간 동거해온 60대 여인이 남편에게 혼인을 한 다른 여자가 있다는 이유로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 서울고법 민사22부(부장 김이수)는 24일 A(65·여)씨가 남편 B(80)씨를 상대로 낸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폐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외아들을 키우던 A씨는 60년대 초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던 재일교포 B씨를 만나 정을 키워갔고 65년 남편이 지병으로 숨지자 부모의 허락을 받아 B씨와 동거에 들어갔다.B씨는 서울 북가좌동에 주택을 마련,A씨의 부모를 모시고 살기도 하고 75년부터는 서울 연남동에 건물을 구입해 A씨 언니 내외와 같이 거주했다.A씨 역시 B씨를 남편으로 여기며 B씨 본가를 오가며 시부모를 봉양하는가 하면,외아들과 함께 남편 집안의 제사에도 참석하는 등 어엿한 ‘부부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A씨가 자신 명의로 해뒀던 연남동 건물의 소유권 이전등기가 지난 2000년 B씨 명의로 바뀐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A씨는 또 남편이 지난 71년 일본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까지 낳은 사실을 지난 96년에서야 알게 됐다.A씨는 지난해 4월 B씨를 혼인빙자간음으로 검찰에 고소하는 한편 법원에는 건물가등기 말소소송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고소는 검찰의 ‘공소권 없음’ 판단에 따라 불기소 처분됐고 손해배상 청구소송 역시 1심에서 기각 판결을 받았다.2심 재판부 역시 “동거생활을 하는 쌍방 또는 일방에게 혼인할 의사가 없는 경우 객관적 혼인의 실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사실혼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B씨가 영속적 결합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의 사실혼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B씨가 지난 71년 다른 여성과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관계를 부정,법률혼을 사실혼보다 우선시하는 판례를 깨야 한다.”면서 “A씨가 딱한 처지이긴 하나 법률적으로 달리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최승희 뮤지컬로 춤으로 34년만에 되살아나다

    춤 하나로 살면서 온갖 영욕을 누렸고 죽어서는 신화가 된 인물,최승희.‘전설의 무희’로 불리는 월북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조명한 공연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극단 미추의 뮤지컬 ‘최승희’(26일∼10월12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와 재일교포 무용가 백향주의 무용공연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24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2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뮤지컬과 춤 공연에서 최승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성녀(52)와 무용가 백향주(27)를 만나 공연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뮤지컬 ‘최승희’- 인간 최승희의 삶과 예술 포스터용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반듯한 이목구비며,기품있는 포즈가 영락없는 자료사진 속 최승희다.“전부터 ‘최승희 닮았다.’는 말을 적잖이 들었어요.언젠가는 최승희 역을 맡으리라 기대했는데 이제야 꿈을 이루었네요.” 밝히길 쑥스러워했지만,김성녀는 이 작품을 위해 무려 7㎏을 감량하는 열의를 보였다. 극단 미추 대표 손진책 연출가와 김성녀 부부가 최승희 소재의 작품을 구상한 것은 14년 전.1988년 월북 예술가에 대한 정부의 해금 조치 이후 최승희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찌감치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었고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하며 차근차근 작품을 준비해왔다. “최승희의 삶 자체가 아주 드라마틱하잖아요.‘천재무용가’ 칭송을 받을 만큼 탁월한 춤꾼이었지만 이념과 사상에 휩쓸려 친일무용가의 오명을 썼고,결국엔 남북 모두로부터 버림받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불운의 인물이지요.” 뮤지컬은 최승희에 덧씌워진 전설과 환상의 베일을 벗겨내고 오직 춤만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그의 숙명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다.역사적인 인물을 형상화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미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최승희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측면도 묘사한다.뮤지컬이지만 음악 비중을 줄이고,무대를 최소화한 대신 풍부한 영상활용으로 깔끔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살릴 계획이다. 그는 “연습을 할수록 최승희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예술가로서 가정보다 일을 앞세우고,제자에게 엄격한 모습 등 삶의 방식과 성격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보았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무용가가 아닌 인간 최승희에 조명을 맞추더라도 극중 춤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하지만 그는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아무리 노력한들 최승희의 춤을 어떻게 똑같이 해내겠어요.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보여줄 생각입니다.” 극중 최승희의 대표작 ‘보살춤’ ‘노사공’ ‘에아라노야’ 등 핵심 부분만 선보일 계획이다. “마지막 부분에 최승희가 육성으로 남긴 자작곡을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최승희의 체취가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배우 김성녀의 얼굴에 최승희의 모습이 겹쳐보였다.(02)747-5161. ●무용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 춤으로 재현한 최승희 지난 봄 백향주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무용계에 화제가 됐다.두살 때부터 무용가인 아버지 백홍천으로부터 클래식 발레와 조선민족무용을 배우기 시작해 25년 넘게 춤을 췄고,‘최승희의 환생’이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 그가 뒤늦게 배움의 길로다시 들어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저에겐 당연한 선택이에요.지금으로선 남북한의 춤을 체계적으로 비교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한국무용을 모르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재일동포인 백향주는 9살 때부터 평양을 드나들며 무용공부를 시작했고,11살 때는 김일성 주석 앞에서 단독공연을 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이듬해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해 무용가 엘리트 양성과정을 밟다가 16살 때 국비장학생으로 중국 유학을 떠났다.1991년 최승희의 수제자인 전 국립만수대 예술단 무용가 김해춘으로부터 최승희 춤을 배운 뒤 ‘최승희의 부활’이란 격찬을 받았다.국내에서는 1998년 처음 춤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뿌렸다. 이번 공연은 네번째 한국 무대이자 2년만의 단독 공연.‘최승희의 신화를 넘어’라는 부제는,그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제 춤을 오로지 최승희의 재현으로만 대하는 분들을 보면 섭섭해요.물론 칭찬이란 걸 알지만 제 춤은 어디까지나 저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지,누구를 흉내내는 건 아니니까요.” 최승희의 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위에 백향주의 색깔과 느낌이 묻어나는 그만의 춤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이다.그는 또 특정 국가나 민족을 대변하는 예술가로 머물기를 거부한다.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를 대표하는 무용가가 되겠다는 야심이 만만치 않다.이번 공연에는 우조춤,무당춤,관음보살무와 영춘장고춤,중국 태족춤인 공작새춤 등 독무 5개를 선보인다.한층 깊어진 그의 내면이 최승희의 춤사위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최승희 연구가인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를 만나러 간다며 자리를 터는 그에게선,최승희의 그림자 대신 무용가 백향주의 향기가 오롯이 느껴졌다.(02)3464-4998. 글 이순녀기자 coral@ 사진 이언탁기자 utl@
  • U대회 스타덤 / 못말리는 ‘땀복 소녀’ 日리듬체조 나카타 마사미

    “저기 좀 봐.땀복 소녀가 또 트랙을 돌기 시작했네.” 24일에도 대구는 오후 늦게까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졌다.하루 중 가장 뜨거운 오후 2시.작은 키에 예쁘장한 여자 선수가 땀복을 입고 목에 수건까지 두른 채 선수촌 내 육상 트랙에 나타났다. 무더위에 지쳐 휴식을 취하던 각국 선수들은 창 밖을 내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처음 그녀가 트랙을 돌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하프마라톤 선수로 착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리듬체조 선수였다.일본의 리듬체조 대표인 나카타 마사미(사진·22)는 선수촌 내에서 ‘독한 소녀’로 소문이 자자하다.대구의 태양이 선수촌을 달굴 대로 달군 오후에 항상 1시간씩 트랙을 도는 그녀를 보며 아프리카 육상 선수들조차 혀를 내두른다.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겨울용 땀복의 지퍼를 목까지 잠그고 목에는 두꺼운 수건까지 두른 모습은 웃통을 훌러덩 벗어던진 선수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띈다. 사우나실에서 마라톤을 하는 듯한 그녀를 세워놓고 이유를 물으니 “체중 조절을 위해서”라고답했다. 리듬체조가 체급 경기는 아니지만 몸매가 핵심이기 때문에 칼로리 배출이 절대적이란다.또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도록 온몸을 땀복으로 꽁꽁 싸매야 한다.선탠 크림을 정성스럽게 바른 얼굴에는 땀이 흐르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도쿄대 4학년인 나카타는 이번 대회가 남다르다.일본 선수들 중에는 유일하게 재일교포 3세이다.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이주했다.대견스럽게도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한국어를 제법 한다. 처음 한국에 온 나카타는 “이제껏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대구에 오니 왠지 모르게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고 말했다.또 “북한 응원단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체육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나카타는 “세계 수준에 오르려면 한참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욕심같아서는 우승하고 싶지만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운동화 끈을 고쳐 맨 나카타는 “내 이름은 팽진미”라고 말한 뒤 다시 뛰기 시작했다. 대구이창구기자 window2@
  •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佛서 전시회

    파리 함혜리특파원|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용·사진·65)씨의 개인전이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미술관에서 열린다. 기메미술관은 오는 28일부터 9월 29일까지 ‘디자인과 전통,현대성의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이타미 준씨의 33년 건축인생을 대변하는 설계도면과 도형,스케치,건축모형,회화,소품,가구 등 총 17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아시아 예술 전문 국립박물관으로 파리에 있는 기메미술관이 개인 작가 초청전시회를 여는 것은 지난 1899년 이 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이다. 기메미술관의 피에르 캉봉 수석학예연구원은 “이타미 준은 현대 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로 국적을 떠나 국제적인 건축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평했다. 재일교포 2세인 이타미 준씨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무사시 공업대학건축학과를 졸업했으며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건축 100년’전에 작품을 내기도 했다. lotus@
  • “내신서 예체능 없애야”사교육비 경감 제안 쏟아져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3일부터 운영 중인 ‘사교육비 경감대책 국민제안센터’에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20일 현재 교육부(www.moe.go.kr)와 국정홍보처(www.allim.go.kr),에듀넷(www.edunet4u.net),한국교육개발원(www.kedi.re.kr) 홈페이지를 연계해 설치된 국민제안센터에 들어온 제안은 220여건에 달한다. 내용들은 학교정책에서 특기적성교육,입시와 대학 개혁,학벌타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또 제안에 대해서는 홈페이지 안에서 토론이 이뤄지기도 한다. 입시제도와 관련해서는 수능 비중을 줄이고 내신 반영을 늘리자는 제안과 수능 자격고사화,지방대 육성 및 대학 특성화를 통한 교육의 서울 집중 완화,수능횟수 3회 이상 확대 등이 나왔다.과외를 줄이기 위해서는 초·중·고의 각종 경시 및 경연 대회와 예체능 수행평가를 폐지하고 내신에서 예체능을 제외하자는 의견이 많았다.영어 공중파 방송을 신설,언제든 영어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전문대학원을 조기에 도입해 대학 서열화를 없애고 서울대와 방송통신대를통합,‘대한국립대’를 설치하며 기업 채용 때 입사원서에 학력과 출신학교 표기를 없애자는 학벌타파 제안도 눈길을 끌었다.한 재일교포는 “학벌사회 타파,조세정의,교육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교육부측은 “제안들을 앞으로 열릴 공청회·토론회 등에서 제시되는 의견과 함께 검토,오는 12월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 지루한 국악? 모르는 소리! / ‘다스름’ ‘슬기둥’ 크로스오버 야외공연

    한국음악계에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폭넓은 음악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뜻밖에 국악인들이다.역설적으로 그동안 ‘음악’도 아닌 ‘국악’이라는 좁디좁은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식있는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다 보니 국악이 오히려 탈(脫)장르화에 가장 앞서게 됐다.분위기를 선도한 것이 ‘다스름’이나 ‘슬기둥’같은 국악실내악단들이다. 이들이,여름이 절정으로 치닫는 7월 중순 나란히 국립국악원의 시원한 별맞이터 야외무대에 선다.그동안 변함없이 추구한 ‘음악성’과 ‘재미’의 연장선상에서 다채로운 특별출연진이 가세하는 호화무대가 될 것이다. ●11일 ‘다스름' 공연:탱고·마임과 함께 ‘한국 최초의 여성 국악실내악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다스름의 ‘여름을 그리는 연가’는 11일 오후 7시30분에 열린다.무료. 다스름은 작곡가 유은선이 ‘우리 음악의 현대화와 생활화’를 지향하며 1990년 창단했다.장르와 시류를 초월하여 새로운 창작음악의 경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평가를받아왔지만 무엇보다 ‘찾아가는 문화활동’에 누구보다도 열심이라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올해도 지난 4월12일 대전 한밭도서관을 시작으로 오는 11월13일 울산 궁근정초등학교까지 전국의 20개 도서관·초등학교·중학교를 찾아간다. 작곡가로 예술원회원인 이성천씨는 “엄마로 부터 자식이 자연스러운 교육을 받듯이,다스름의 현장음악회는 엄마와 같은 정을 담아 한국음악을 소개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유은선·이상은·한돌·유정현 등의 작품과 피아졸라의 탱고,아일랜드민요 등을 연주한다.아나운서 이금희의 사회로 마임이스트 유진규,뮤지컬배우 유희성 박칼린,뮤용가 이지언,재즈싱어 웅산,소리꾼 이자람 등이 다스름과 특별한 무대를 꾸민다. ●18일 ‘슬기둥' 공연:재즈와 만나다 명실상부한 신국악운동의 선주두자 슬기둥은 18일 같은 시간 ‘한여름밤의 야외콘서트’를 펼친다.1만원. 1985년 9명의 신세대 연주자로 창단한 슬기둥은 작곡가 김영동과 국악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여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등 그동안 국악 대중화의 방향을 제시해 온 단체다. 대표곡 ‘산도깨비’‘소금장수’는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다.현재 슬기둥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경기도립국악단 음악감독 이준호를 비롯하여 작곡가 원일,소리꾼 김용우,타악그룹 푸리를 배출하는 등 스타의 산실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슬기둥이 ‘고구려의 혼’과 ‘여행’‘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산도깨비’‘소금장수’ 등을 연주한다.또 소리꾼 김용우와 ‘지게소리’와 ‘장타령’,‘서편제’의 스타 오정해와 ‘쑥대머리’와 ‘진도아리랑’,재일교포 피아니스트 양방언과 ‘프린스 오브 제주’와 ‘프론티어’,재즈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과 ‘신푸리’를 각각 들려준다.새삼 국악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한 무대가 될 것이다.문의는 두 공연 모두 (02)599-6268∼9. 서동철기자 dcsuh@
  • 국립제주박물관 ‘아름다운 콘서트’/ 재일교포 피아니스트 양방언씨

    뉴뮤직 아티스트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재일교포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양방언(梁邦彦)씨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28일 오후 3시·7시 두 차례 콘서트를 갖는다. 양방언씨는 특히 김영원(金英援) 국립제주박물관장과 e메일로 신뢰를 쌓아 이례적인 ‘박물관 콘서트’를 수락했고,개런티도 거의 없이 체재비 정도만 받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미술사학자인 김 관장은 지난해 6월 제주박물관에 부임한 뒤 아버지가 제주 출신인 양방언씨를 주목하여 12월부터 e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뮤지션이 연주해 준다면,제주 청소년들이 박물관을 쉽게 찾아오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어떤 날은 하루 4∼5차례 e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지난 1월 마침내 ‘국립제주박물관 개관 2주년 기념공연-양방언의 음악세계’를 여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양방언씨는 일본의과대학에 진학하기도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이번 공연에는 기타 시미즈 카즈오,바이올린 구와노 히지리,퍼커션 가케하시 이쿠오 등의 일본 뮤지션과,꽹과리와 소리의 장재효씨가 함께 참여한다.(064)720-8022. 서동철기자 dcsuh@
  • 100억대 미술품 광주시에 기증

    재일동포 사업가인 하정웅(65)씨가 100억원대에 이르는 세계적인 미술품 1000여점을 광주시립미술관에 추가 기증키로 해 화제다.광주시립미술관은 25일 “하씨가 오는 7월21일 광주를 방문,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 1182점을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기증하는 작품은 2억원에 달하는 이탈리아 작가 에지디오 코스탄티니의 유리 공예작품과 함께 프랑스 작가 마리 로랑생의 회화,알랭 본푸아와의 누드,일본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재일교포 작가 조양규·문승근·김석출,국내 작가 홍성담의 ‘5월 판화’ 전작 166점 등이 망라돼 있다.
  • 신한+조흥銀 ‘No2’로 부상

    신한금융지주의 조흥은행 인수가 확정되면서 1982년 재일교포 은행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던 신한은 불과 20년여만에 국내 두번째 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됐다.아울러 국내 은행업계는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강 체제’로 재편됐다. ●신한,국내 최대지주회사로 신한지주는 기존 신한은행,신한카드,굿모닝신한증권,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제주은행 등에 더해 조흥은행을 떠안음으로써 자산(자본+부채) 규모 160조 8000억원(지난 3월말 기준)의 금융그룹으로 떠올랐다.앞으로 2년여동안은 별도 법인으로 운영될 예정이지만 조흥(74조 9000억원)과 신한(74조 5000)을 합해 은행 부문에서만 자산 150조원 규모로 국민은행에 이어 2위가 된다.자산규모는 국민은행 219조원,우리은행 107조 1000억원,하나은행 89조 6000억원 등의 순이다. ●빅4 체제 재편 3년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으로 촉발된 국내 은행의 대형화 바람은 신한의 조흥은행 인수로 일단락됐다.앞으로 ‘빅4’ 은행들은 영역 확대를 위한 경쟁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또 대형화 대열에끼지 못한 외환·제일·한미은행도 몸집을 키우거나,아니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등의 생존 전략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노무현 정부가 조흥은행 민영화의 첫 단추를 꿰면서 정부지분이 있는 국민·우리은행 등의 민영화 작업도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시너지 효과의 과제 중소기업 고객이 많은 신한이 106년 역사의 국내 최고(最古)인 조흥은행을 인수,대기업과 충성도 높은 개인고객을 흡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그러나 2개 이상 은행 합병은 옛 조직원들간의 갈등으로 실패로 끝난 사례도 있다.물리적 통합에 이어 화학적 통합이 과제가 될 것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원폭 희생 징용 한국인 한맺힌 신음소리 못잊어”/ 7년만에 장편 ‘까마귀’ 출간 한수산

    “제가 정치가나 변호사였다면 사회운동으로 싸웠을 것입니다.저는 무력한 이야기꾼에 불과하지만 소설로나마 그들(징용 한국인)의 한맺힌 삶을 재현하여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작가 한수산(57)이 7년 만에 장편 ‘까마귀’(해냄)를 내놓았다.5권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가 원자폭탄에 희생된 한국인들의 한을 다룬 것이다.올 4월부터 1년 예정으로 미국 UC버클리의 한국학연구소 방문학자로 이민사를 연구하고 있는 그가 출간에 맞춰 잠시 귀국했다.10일 서울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가 징용 한국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9년.당시 재일교포 3세의 뿌리를 추적하다가 ‘나가사키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회’를 만난 것이 계기였다.90년부터 현지 취재를 시작해 ‘지옥의 섬’이라 불린 해저탄광 하시마와 징용자의 기숙사 등을 수차례 조사하고 피폭자 증언을 담았다.중간에 중앙일보에 93년부터 2년9개월 동안 ‘해는 뜨고,해는 지고’로 연재했으나 애초의 뜻을 살리지 못했다는생각에 “새로 쓰는 심정”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다.작품 배경과 무대를 새로 짜면서 집필에 매달려 200자 원고지 5200여장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이를 위해 그가 모은 자료는 스스로도 “피폭에 관한 최대 자료”라고 자부할 정도. “저를 여기까지 붙들어 안고 온 것은 신음소리였습니다.피폭 뒤 모국어로 ‘어머니’ ‘물’을 찾으며 죽어간 한국인들의 신음 소리를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는 취재 도중 작품의 무대인 하시마 섬의 여관방에서 신음소리에 가위 눌려 일어나 울었던 기억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고함과 신음소리에 깨어보니 새벽 3시였습니다.주위엔 죽은 한인들에 관한 자료가 가득했고요.순간 ‘왜 이리 힘든 길을 나섰을까’라고 울며 후회도 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작가로서 직무유기라고 다그치며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의 혼이 밴 작품은 ‘지상’ ‘우석’ 등 하시마에 끌려온 한국인들과 그들이 한국에 두고온 인물들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들이 생지옥에서 피우는 인간미와 우정과 사랑이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에 힘입어 되살아난다.노예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탈출하다 체포당하기를 거듭하는 도중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매듭짓는다. 작품을 쓰는 내내 “구한말 각각 외세를 등에 업고 편가르기에 몰두하다 나라를 잃었나,우리는 왜 지지리도 못났나?”라고 탄식했다는 그는 역으로 북벌을 준비했던 효종대왕과 같은 기개있는 인물을 소재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가는 다음의 말로 작품 의도를 참혹하고도 가슴 아프게 요약했다.“피폭 조선인의 시체에 까마귀가 달려들었다…일본의 화가 마루키 이리(丸木)부부는 이 참상을 그림으로 그렸다.시신을 뜯으며 새카맣게 뒤덮인 까마귀 떼 사이로 희디흰 치마저고리 하나가 떠가고 있는 그림이다.” 글·사진 이종수기자
  • 노대통령 訪日/ 盧, 日국민과의 대화 요약

    |도쿄 곽태헌특파원|노무현 대통령은 8일 오후 일본 TBS TV가 기획한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일상생활 등 가벼운 질문에서부터 북핵·과거사 같은 무거운 문제까지 다양한 질문에 답했다.이날 대화에는 중고생,대학생,농어민,주부,자영업자,샐러리맨,기업경영인 등 100명이 나왔다.재일교포도 질문에 참가했으며,인터넷을 통한 질문도 있었다. 남북통일이 10년 안에 실현될 수 있나. -예측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평화를 안정시키고 그 토대 위에서 활발하게 교류해 가면 될 것이다.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것으로 보도되는데 과연 평화적 해결이 가능한지 걱정된다. -쉽게 만나 합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협력해 나가면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다.북한이 상식적이지 않은 행위를 하지만 그들도 생각이 있을 것이고 잘 해낼 것이다.고이즈미 총리,중국·미국 지도자와 협력해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 앞으로 우호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세 나라를들어 달라. -일본이 첫 번째인 것 같다.가장 가깝고,또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해온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다.실제로 한국 경제와 일본 경제는 밀접하게 결합되고 서로 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한·일은 아주 가까운 나라이어야 한다.그 다음에는 중국이다. 한·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교류,과거사라고 생각한다. -저는 과거사 문제를 말하지 않기로 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과거는 과거사가 아니라 미래를 어떻게 꾸려 가느냐에 따라 과거사가 나쁜 기억으로 되살아나기도 하고 장애물이 될 수 있다.미래를 잘 풀면 과거사는 과거에 존재하고 역사로만 남을 것이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과 대통령 입장에서 답해 달라. -과거 얘기를 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물론 묻어 두자는 것이 아니다.다만 대통령이 끝이라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과거사를 극복할 수 있는 공동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총리가 됐다면 어떤 나라를 지향하겠나. -일본 총리가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서 한번도 생각 안했다.일본 총리가 된다고 가정한다면 큰 시장을 내다본 비전을 제시하고 이 지역에 불안이 있으니 동북아시아의 평화주도 세력으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이웃나라들이 신뢰할 수 있게 해나가겠다.그렇게 하면 일본은 무한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이 1982년 일본에서 요트 조정하는 비디오 방영 후 함께 요트를 탔던 이노우에의 영상편지 방영)20년전 요트도 타고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던 시절이 생각난다.다시 한번 그 노래를 듣고 싶다. -(요트를 탔던 때가)가장 화려했던 때다.이번에 이노우에를 한번 만나는 시간을 만들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 못했다.어제 얼굴만 마주쳤다.한번 초청할 생각이다.‘돌아와요 부산항’은 지금은 잘 안한다. 가정의 실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나,부인이 쥐고 있나. -전통적으로 한국 여성들은 재물을 넣는 창고의 열쇠를 관리해 왔다.요즘은 한국 여성들이 남편의 통장을 갖고 있어 월급이 바로 들어간다.(한국은)사회적 영역에선 여성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지만,가정에선 확실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제 아내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좌우명은 무엇인가.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이란 말이 있다.큰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뜻이다.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어떻게 될까,한·일관계,동북아가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데 우리가 뜻을 모아 가면 원하는 동북아시대를 만들 수 있다.의지를 가지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편 사회자는 대화를 마친 뒤 “일본말을 공부하십시오.”라며 일본어책 두 권을 선물했다.
  • 월드컵 1주년 기념 - 일본에선 / 히딩크 인기 ‘짱’… 서적 6권 나와

    |도쿄 황성기특파원|한국에서 사상 초유의 4강 신화를 일군 최대 주역 히딩크의 인기는 일본에서도 높다.지휘봉을 놓은 뒤 악평과 비판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일본 대표팀의 트루시에 전 감독과는 대조적이다. 월드컵 폐막 이후 1년간 일본에서 출간된 히딩크 관련 서적은 6권.히딩크 자서전 1권,히딩크가 이끈 한국팀의 실체를 다룬 논픽션 1권,히딩크의 리더십을 소개한 서적 4권이다. ‘한국을 바꾼 남자’(문예춘추 간행)는 지난해 한국에서 출판된 히딩크 자서전 ‘마이 웨이’의 일본판이다.대한매일의 월드컵 객원기자 간노 도모코가 일본어로 번역한 이 책은 월드컵 1주년에 맞춰 출간됐다. ‘히딩크 코리아의 진실’(TBS 브리태니커 간행)은 히딩크가 이끈 한국 대표팀을 수년간 밀착취재한 재일교포 3세 스포츠 기자 신무광의 르포.지난 연말 출판된 이 책으로 신무광은 재일교포로는 처음으로 지난 3월 ‘미즈노 스포츠 라이터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밖에 ‘히딩크의 법칙’(DAI-X 출판),‘히딩크의 리더력’(PHP),‘기업변혁의 새로운 폴리시-히딩크의 7가지 방침’(인터워크),‘히딩크 혁명’(다이아몬드사) 등이 히딩크의 전략,리더십을 소재로 한국 필자들이 쓴 책을 번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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