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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日지문날인 거부 상징적 존재 한종석씨

    [부고] 日지문날인 거부 상징적 존재 한종석씨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지문날인 반대운동에 불을 붙인 재일교포 한종석씨가 24일 오전 2시20분쯤 도쿄의 한 병원에서 호흡부전으로 별세했다.79세. 한씨는 처음으로 지문날인을 거부한 상징적인 존재였다. 한씨는 지난 1980년 9월 “지문날인은 굴욕의 낙인”이라며 항의, 일본 전역을 돌며 지문날인 반대운동을 펼쳤다. 때문에 외국인등록법 위반죄로 첫 기소됐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씨의 용기있는 행동은 ‘단 한명의 반란’으로 비쳐졌다. 이후 1989년 히로히토 일왕 사망에 따른 대법원의 면소판결을 받았다. 일본의 외국인 지문날인은 지난 1952년 4월 재일교포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외국인등록법에 의해 실시됐다. 법에 따라 외국인등록증명서는 항상 휴대토록 의무화된 데다 14세 이상의 외국인은 반드시 지문을 찍어야 했다.1985년 지문날인 거부자는 1만명을 넘어섰다. 일본은 지문날인이 인권침해라는 세계적인 비판을 받으면서도 2000년 4월에야 완전 폐지했다. hkpark@seoul.co.kr
  • 추성훈 日야유 날린 TKO승

    추성훈 日야유 날린 TKO승

    재일교포 추성훈(32·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7개월 만에 링에 올라 TKO승을 거뒀다. 추성훈은 21일 일본 오사카성홀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 ‘드림5’ 라이트급 그랑프리 결승전 미들급 이벤트 경기에서 프로레슬러 출신 시바타 가쓰요리(29·일본)를 1라운드 6분34초 만에 초크(목조르기)로 제압했다. 일본 팬들의 거센 비난 속에 유도복을 입고 링에 오른 추성훈은 초반에는 지난해 12월31일 ‘야렌노카!오미소카!’에서 미사키 가즈오(일본)에게 나중에 무효로 판정된 KO패를 당하며 코뼈를 다친 것을 의식한 듯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나 추성훈의 공격은 강력했다. 하이킥이 빗나가자 달려든 시바타를 들어 바닥에 쓰러뜨린 뒤 파운딩 펀치에 이어 위에 올라탔고, 목조르기에 들어갔다. 추성훈의 완벽한 기술에 걸린 시바타는 결국 기절,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추성훈은 도복 양소매에 새겨진 태극기와 일장기를 손으로 두드리는 세리머니로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추성훈은 2006년 12월31일 K-1 다이너마이트 사쿠라바 가즈시(일본)전에서 규정에 어긋나는 로션을 발랐다는 이유로 무기한 출전 징계를 받은 이후 일본 팬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정대세 “독도는 한국땅”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간판 공격수이자 일본 J-리그에서 뛰고 있는 재일교포 3세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가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한국과 일본이 독도를 둘러싸고 영유권 갈등을 빚는 가운데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된 것과 관련해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그는 “아, 정말 복잡한 마음이다. 잘 해결돼서 힘을 합치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독도는 우리땅’을 정확한 발음으로 들려줬다. 그는 일본 친구들이 눈치를 주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일본 사람들은 모르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또 진행자가 일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독도는 한국땅이란 점을 확실하게 말해달라고 주문하자 “네, 그것은 당연히….”라고 응했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났지만 본적이 경북 의성인 정대세는 다음달 2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프로축구 올스타전 출전을 앞두고 있는데 “일본 대표로 나가느냐, 북한 대표로 나가느냐, 이 두 개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북한을 선택했다. 하지만 올스타전에는 일본 대표로 참가하는 만큼 생각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으로 귀화할 뜻이 없었는지에 대해선 “일본에서도 조선 사람으로 당당히 살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건국 60주년] 민단 ‘참정권 찾기’ 몸부림

    [건국 60주년] 민단 ‘참정권 찾기’ 몸부림

    |도쿄 박홍기특파원|건국 60주년은 곧 재일 교포들의 역사다. 교포들의 삶 자체가 질곡의 세월이다. 일본의 차별과 냉대를 몸으로 이겨내며 지금에 서 있다. 남북 분단이란 현실에서 이념의 대리전도 치러야 했다. 재일 교포사회를 단순하게 도식화하기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징병 등 강제로 끌려온 세대들이 있는가 하면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스스로 일본 땅을 밟은 세대도 뒤섞였다. 때문에 세대간의 틈뿐만 아니라 정착 과정에서의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골도 없지 않다. 교민 1세대인 김모(77)씨는 “망국의 설움을 안은 채 사는 1세대와 이후 세대의 삶을 한데 묶어 조명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두들 구구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특별영주자엔 북한 국적도 포함 일본 법무성의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재일 교포는 59만 8219명에 달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일본 땅을 밟아야 했던 한국인들 가운데 지난 1965년 한·일 협정에 의거, 특별 영주권을 받은 교포는 43만 8974명, 일반 영주권자 및 일본인의 배우자 등은 7만 2760명, 장기 체류자는 8만 6485명이다. 특별영주자에는 북한 국적의 교포도 포함됐다. 일본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탓에 별도로 집계를 내지 않는다. 대체로 재일본대한민국단(민단) 소속은 33만∼34만명,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은 9만∼10만명가량으로 추산될 뿐이다. 일본의 ‘귀화 권장정책’에 따라 국적을 바꾸는 교포도 많다.2006년 귀화한 교포는 8541명이다. 교포 1세들의 직업군은 일본 기업의 취직문이 닫혀 있었던 탓에 자영업이 주류를 이뤘다. 파친코, 식당, 운송업, 건축업이 비교적 많다. 교포 사회에서 민단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다. 정치적 색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분명 맥을 같이하는 까닭에서다. 민단은 1946년 10월 재일본조선거류민단으로 출범했다.1966∼71년 한·일 협정에 의한 영주권신청운동을 전개했다.83년 일본의 외국인등록법 지문날인제를 폐지시키는 등 차별을 막는 데 앞장섰다. 배철은 민단 선전국장은 “최대 현안은 94년부터 추진한 지방참정권의 획득이다. 영주권을 가진 교포들을 외국인이 아닌 주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정당한 주장이다.”고 밝혔다. ●교포 권익보호 힘쓰는 민단 교포 사회의 한 축은 조총련이다. 현재 북한과의 뒤틀린 관계 때문에 일본의 조총련 활동에 대한 제재는 만만찮다. 조총련은 일본 사회에서 ‘민족교육’에 치중했다. 교육기관만 조선대학교를 비롯, 전국에 초·중·고 120개교를 갖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한다. 조총련 간부는 “남과 북은 겨레요 동포다. 일본의 강경 대북정책은 전체 교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한·일 협정 이전에 정착한 교포들과 구별되는 ‘뉴 커머(New comer)´들이 있다.2001년 5월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를 결성했다. 새 터전을 찾아온 만큼 무역·정보통신·경영투자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조옥제 한인회장은 “동포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자발적 조직”이라면서 “자녀들의 정체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kpark@seoul.co.kr
  • [백지숙의 미술산책] 일상속의 미술, 미술속의 일상

    [백지숙의 미술산책] 일상속의 미술, 미술속의 일상

    걸어가면서 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을 때는 발밑에 신경을 쓰느라 멀리 보지 못하고, 익숙한 길을 걸을 때는 잡생각에 빠져서 바깥을 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걷는 사이, 틈틈이, 우리는 또한 본다. 걷다 쉬는 사이 우리 눈앞에 낯선 풍경이 끼어들기도 하고, 냄새나 소리가 사념 바깥으로 우리를 끌어내 보게 만들기도 한다. 적어도 미술이 보는 방법과 관련된 삶의 태도를 숙련시킨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미술은 그렇게도 우리 일상 속에 있다 말할 수 있다. 즉흥적으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즉흥적이라고는 했지만, 제주도 관광을 해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 혼자 별러 온 일이기도 했다. 때 맞춰 여름 물이 잔뜩 오른 나무 숲길을 따라 한라산에 올랐다. 노루도 만나고 백록담도 보았다. 대장금 촬영장소로 중국 단체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는 외돌개는 바다 속에 우뚝 서 있는 그 자태가 예상 밖으로 멋들어졌다. 무엇보다 검은 절벽과 깊은 물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던 쇠소깍은 전해 내려온다는 설화와 함께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다. 미술관 일로 ‘열 받은’ 머리를 식힌다고 떠난 길이었지만, 직업병인지, 삼다도 제주도의 사다(四多)라는 미술관, 박물관을 지나치진 못했다. 제주 돌박물관의 ‘하늘 연못’은 압도적인 크기와 단순화로 설문대할망의 전설을 시각화하고 있었고,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했다는 바람, 물, 돌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어법을 따라 제주도의 풍경을 깔끔하게 추상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제주도에서 가끔 한가롭게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 치는데, 하나 같이 외국인들이다. 내국인들은 다 렌터카를 타고 관광지를 돌기 때문이다. 멀리 제주도까지 와서 홀로 걷고 있는 저 사람들은 과연 무얼 보는 걸까? 마침, 여행에서 돌아오니 제주도에 있는 외국인들의 일상과 꿈을 포착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김옥선의 사진전 ‘함일(‘하멜’의 한국어 표현)의 배’(금호미술관)는, 제주도를 관광하는 외국인들보다는, 거기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사진 속에서 이들은 어색하지만 편해 보이고, 순진하지만 피곤해 보인다.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가 13년 만에 배를 타고 기어이 조선을 탈출했다는 저 옛날의 하멜 일행과 달리, 오늘날의 이 함일들은 ‘자발적으로’ 제주도에 정착한다. 제주도에 산 지 13년이라는 작가 김옥선은 이들의 존재와 자신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그가 찍은 사진 속에서 제주도는 더 이상 그저 아름다운 ‘이국적’ 관광지만은 아니다. 여행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을 간직하는 것뿐이 아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마치 관광객과 같은 집중력과 호기심으로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면,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너무 구린 이야기인가? 아니면 촛불시위 현장 옆에서 너무 한가로운 소리인가? 아르코미술관 관장
  • 재일교포 여대생 강정자(姜靖子)양 -5분데이트(147)

    재일교포 여대생 강정자(姜靖子)양 -5분데이트(147)

    『한국인 의사와 결혼하고 싶다』고 한마디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강정자양. 이화여대서 열린 재일교포 하기학교에 참가한 교포 여대생 가운데서 「픽·업」된 표지아가씨-. 『어쩌면 일본에서 듣던것과 그렇게 달라요』 8월16일 수료식을 끝내고 서울과 부산을 둘러본 강양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지만 그쪽 언어 풍속이 몸에 배었으니…』조금 불안스러운 눈치. 1952년 5월22일생. 일본서 낳아서 그곳에서 자랐다. 「오사까」시에 있는 「하고로모」초급대학 가정과 졸업반이데 고국에 온것은 처음이다. 「오사까」시 교외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 회사고문을 맡고있는 아버지 강봉수(姜鳳秀)씨의 2남2녀중 셋째. 아버지는 일본 「게이오」대학과 청산학원을 마친 「인텔리」로 독립운동을 하느라 감옥 출입도 한 열렬한 애국자란다. 이번 귀국한 길에 삼촌 김영호(金榮皓)교수(이화여대)와 고모부 윤인호교수(서울대)를 비롯, 친척 어른들을 전부 찾아 뵙고 떠날 계획. [선데이서울 71년 8월 29일호 제4권 34호 통권 제 151호]
  • 극사실 vs 추상, 극과극 ‘전시 맞불’

    극사실 vs 추상, 극과극 ‘전시 맞불’

    서울 사간동 화랑가에는 지금 한판 자존심 대결이 한창이다. 사실주의 작가 조덕현(51·이대 조형예술대 교수)이 국제갤러리에서 8년만에, 단색조 회화로 알려진 추상화가 최인선(44·홍익대 미대 교수)이 학고재에서 3년만에 각각 개인전을 열고 있는 것. 극사실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극사실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며 ‘온탕냉탕’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는 감상의 뒷맛이 짜릿하지 않을까? #조덕현 ‘리 컬렉션(Re-collection)’전 조덕현이 무려 8년만에 갖는 네번째 개인전은 한마디로 ‘두 여자 이야기’다. 한국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디자이너 노라 노(80)와, 재일교포 출신으로 1993년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의 경영주인 영국 귀족 로더미어 자작과 결혼한 로더미어 부인(한국명 이정순·58). 말할 수 없이 화려했지만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두 여인을, 그들의 앨범 속 사진을 베껴 그리는 화법을 동원해 미술의 울타리 안으로 초대했다. 사진보다 더 생생한 그림들 위에는 신기하게도 암시와 은유가 넘쳐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전시장을 들어선 관객은 움찔 놀라게 된다. 양쪽 벽면에 노라노와 로더미어 부인의 무명 치마저고리 차림의 흑백 초상화가 걸려 있고, 초상화 속 치맛자락이 액자 밖으로 나와 전시장 바닥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어디까지가 그림이며, 어디부터가 진짜 무명천인지 경계가 묘한 감상이 압권이다. 전시장에 걸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얼핏 진짜 흑백사진 같다. 하지만 이들 모두 두 여인의 앨범 속 사진들을 연필과 크레용 비슷한 콩테로 그린 그림들. 회화 및 설치작품 38점을 동원한 전시는 두 인물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시장 1층에서는 노라노의 인생 파노라마가 정교하게 재구성됐다. 경성방송국 설립자였던 아버지,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였던 어머니, 한창 전성기 때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배우 문희 등이 모자이크화처럼 그의 한평생으로 맞물린다. 2층 로더미어 공간도 마찬가지.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과 프랑스에서 유학했고, 단 한번도 한국에 살아본 적 없으면서도 사무치게 한국을 그리워해온 여인. 벽안의 남편 유해를 무주 백련사에 모신 사연 등이 한편의 이야기가 되어 전시장에 굽이굽이 흘러넘친다. 전시장을 돌고나서 마치 두 편의 일대기를 읽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면, 작가의 의도에 딱 걸려들었다는 얘기다.“워낙 서사에 관심이 많아 전시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고,(작품을)어떻게 보든 모두 다 정답”이라 말하는 작가다.7월5일까지.(02)733-8449. #최인선 ‘새 회화와 뉴드로잉’전 단색조 회화를 고집해온 작가 최인선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번 전시는 ‘변신’이라는 해석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가만히 놔둔 색깔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원색을 동원해 내놓은 신작이 460여점. 대형 모자이크 그림으로 이어붙이기 전의 개별 작품들을 모두 헤아린 수치이나, 놀라운 집중력과 직감을 자랑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460여점 모두를 근 1년만에 ‘쏟아’냈다. “솔직히 자기 작품을 스스로 복제하며 예술세계를 이어가는 작가들이 많다.”고 단언한 작가는 “나 역시 한 가지 주제 혹은 기법에 매몰된 작가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며 원색의 추상세계로 급선회한 배경을 귀띔했다. 모노크롬으로 대변되는 이전 작품들이 순수추상이었다면, 이번 작품들에선 최소한의 구상 이미지를 짚어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점도 달라진 면모. 수평과 수직이 교차한 그림들을 빽빽이 잇댄 작품들과 프린트 위에 그림을 그려넣은 추상화들이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작품 속에 숨겨진 실내 이미지를 찾아내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더 젊은 시절에 무채색 그림만 그렸던 게 후회스럽다.”고 서슴없이 내뱉을 만큼 작가는 지금 색(色)의 잔치에 걷잡을 수 없이 푹 빠져 있다.18일까지.(02)720-152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1960년대말 재일동포 애환… 객석도 뭉클

    1960년대말 재일동포 애환… 객석도 뭉클

    할 일 없는 사내들은 철판에 곱창을 구워 먹는다. 아낙들은 쇳내가 나는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한다. 낡은 함석 지붕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굉음이 질곡처럼 드리우는 곳. 한국말과 일본말이 아무렇게나 차려놓은 밥상처럼 섞여드는 곳. 이곳은 1960년대 말 일본 간사이 지방에 엎드려 살던 재일교포들의 살림처, 용길이네 곱창집이다.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25일까지·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풍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왼팔을 잃고 일본에 자리를 잡은 용길. 전처와 낳은 딸 시즈카·리카, 후처인 영순의 딸 미카, 영순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도키오와 함께 곱창집을 운영한다. 사계절을 보내며 세 딸은 제 짝을 찾아 일본, 한국, 북한으로 각각 떠난다. 날마다 학교에서 상처투성이가 돼 돌아오는 아들은 여느날처럼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그림처럼 떨어진다. 한편 일본 당국은 용길이가 제값 주고 산 옹색한 땅을 ‘국유지 점거’라며 빼앗으려 한다. 한·일 배우들이 함께 극을 이끌어가고 자막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번갈아 나오는 ‘야키니쿠 드래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못된 채 이국땅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동포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비관적 현실 속에서도 의지로 낙관하는 인물들을 보는 마음은 뭉클하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패악도 부리고 오열도 한다. 객석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지는 지점은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의 속내가 비로소 드러날 때. 땅도 자식도 팔도 모두 잃은 용길은 절규한다.“일하고 일하고 일만 하다가….” 한번 터진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용길역의 신철진, 커튼콜 때도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미처 지우지 못한 미순역의 고수희는 극에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처음 왔던 것처럼 빈 수레를 끌고 떠나는 가족 위로 축복처럼 벚꽃이 내린다. 이 연극은 영화 ‘피와 뼈’의 작가로 유명한 재일교포 출신 극작가 정의신(51)과 한국의 연출가 양정웅(40)이 한·일합작으로 만든 작품. 실제로 오사카 인근 국유지에서 고물상집 아들로 살았던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을 극에 녹여낸 정의신의 체취가 뚜렷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스타일리스트적 면모가 강한 양정웅 특유의 연출색이 그리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02)580-1300.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한·일회담 속내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세계 외교사에서 가장 험난한 회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일회담. 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모두 다섯 권으로 펴낸 ‘한·일회담 외교문서 해제집’이 그것.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의 전문가 5명이 3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다. 1950년부터 1965년까지 1500여회 넘게 개최된 한·일회담은 일본 측의 망언, 미국의 간섭, 국내 반일여론과 시위 등으로 재개와 휴회를 반복한 마라톤 교섭이었다.1차의 예비회담과 7차의 본회담으로 진행된 한·일회담에서 오갔던 주요 의제는 한국현대사에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일협정 문서는 2005년 1월 일제강점하 피해자들이 문서 공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청구권 관련 문서가 일부 공개됐다. 문서 전체가 공개된 것은 회담 완료 40년 만인 2005년 8월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측은 “국민 일반은 물론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과 유족 등 관심있는 독자의 수요에 부응하고자 했다.”며 이번 해제집 간행이 한일협정의 성과와 한계 등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단 측은 이미 일본의 연구자와 출판사 측에서도 번역·출판 제의를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해제집은 회담 때 오갔던 외교문서 3만 6000장을 주제별로 정리했다.▲어업평화선 ▲청구권 일반 ▲선박 ▲문화재 ▲기본관계 ▲재일교포 법적지위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일본군 위안부, 일제 강점하 피해 보상문제, 독도 및 문화재 반환 등은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주요 현안”이라며 “이번 학술적 재정리가 오늘의 현안을 풀어가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두산, 중앙대 인수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다.8일 중앙대와 두산그룹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 2일 학교법인 중앙대학교를 매각·인수하는 내용의 ‘공동협약서’를 체결했다. 두산그룹은 중앙대 인수 조건으로 1200억원을 장학·연구기금으로 조성해 학교 운영에 참여할 예정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김희수 중앙대 이사장이 재단의 기업 영입을 추진하면서 지난 3월 두산그룹에 영입을 제의했다.”면서 “두산그룹은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해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학교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이사장이 재일교포 출신에 고령(84세)이어서 학교를 정리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는 오는 14일 재단이사회를 개최해 이를 처리할 예정이며 교육과학기술부가 승인하면 인수 절차는 마무리된다. 두산그룹이 중앙대 인수를 추진한 것은 비자금 수사 등으로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고 사회공헌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중앙대 인수로 기업 이미지 쇄신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중앙대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육성하고 역량 있는 인재를 배출해 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한국 귀화’ 북한 국적 재일동포 3세 백가화, 하르방 고향서 ‘통일 샷’ 날린다

    ‘한국 귀화’ 북한 국적 재일동포 3세 백가화, 하르방 고향서 ‘통일 샷’ 날린다

    일본의 성격파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한 하드보일드 영화 ‘피와 뼈’는 한 재일동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 김준평은 청년 시절 배를 타고 고향 제주를 떠나 일본 오사카에 정착한 뒤 평생을 독선과 온갖 악행으로 살아간다. 몸과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김준평은 말년에 북한땅을 도피처로 택하지만 결국 그곳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영화 이면을 들춰보면, 해방 전후 일본 동포사회가 한국을 택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북한을 택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눠지는 배경, 그리고 이후 세대들의 만만치 않은 삶들이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동포 3세들의 복잡다기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스레 부각된 건 지난달 남북 축구가 열린 무렵 북한대표팀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의해서였다. ●북한 골퍼 1호… 필드의 정대세 스포츠는 거짓이나 숨김 없이 진솔하다. 끊임없는 열정과 몸짓만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대세는 “국적은 한국이지만 내 마음의 고향은 조선”이라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정대세처럼 무 자르듯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지 밝히는 동포3세들은 그리 흔치 않다. 할아버지의 고향 제주를 처음 밟은 ‘전 북한국적의 프로골퍼 1호’인 재일동포3세 백가화(29)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23일 비 내리는 제주의 세인트포골프장.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 출전한 백가화는 프로암대회가 열리기 직전 제주에 남은 유일한 친척인 11촌 아저씨 백길호(61)씨와 처음 만났다. 백씨의 아저씨이자 백가화의 할아버지 백창식(81)옹은 한 살배기 때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제주를 떠나 오사카에서 지금껏 살아왔다. 백가화는 “처음 뵙는 아저씨지만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라고 어눌한 우리말로 더듬더듬 인사한 뒤 “어제 먹은 갈치국이며 다른 음식들도 일본에서 할머니가 해주신 것과 똑같아 먼 동네에 온 것 같지가 않습니다.”고 했다. 한 세대를 압축시킨 것 같은, 한 시간 남짓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백가화는 “‘핏줄의 인연’이 이렇게 강한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며 놀라워했다. 백가화는 지난 2006년 JGTO 던롭피닉스오픈 출전 당시 우연히 알게 된 토마토저축은행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고,2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한 해 초청 제한 횟수인 3회까지 한국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약속받았으니 오래 전부터 꿈꾸던 ‘코리안 드림’을 일군 것이나 다름없다.”고 기뻐했다. ●호주PGA 북한국적이라 비자 거부당해 그는 3년 전 북한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한창 공이 잘 맞았던 그 시절, 백가화는 미국프로골프(PGA) 2부투어(네이션와이드) 진출을 모색했었다. 호주PGA 대회에도 초청을 받았지만 북한 국적이라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 젊은 혈기에서였을까, 아니면 골프에 대한 열정에서였을까. 그는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직후 열린 던롭피닉스오픈 홈페이지 프로필난에 북한 국적으로 표기된 것을 보고는 “난 엄연히 한국사람이니, 내 이름 옆에 태극기가 나오도록 해달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일본 이름은 요시카즈 하쿠. 한국 이름을 만든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총련계 학교에서는 일본 이름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요시카즈’의 한자를 한글로 발음해 백가화(白佳和)라는, 다소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바꿨다. 그가 한국국적을 취득할 당시 그의 아버지 헌택(55)씨와 형 광영(33)씨 역시 한국 국적을 얻었다.“아버지는 ‘부친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라고 생각하셨다.”면서 “죽기 전에 고향의 국적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코리안 드림 위해 3년전 국적 바꿔 백가화는 “정대세는 분명 재일동포 사회의 자랑이자 새 ‘아이콘’임에 틀림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나처럼 고민이 많았을 청년”이라고도 했다. 둘은 2년 전 ‘조·일스포츠인 간친회’에서 처음 만났다.“키 크고 몸 좋고, 단단한 청년”으로 그는 정대세를 기억하고 있다. 각 종목 20여명과 총련 관계자 등 약 30명이 함께한 그 자리에서 둘은 “같은 동포 선수로서 동포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되자.”고 굳은 악수를 나눴다. 둘은 모두 총련계 조선학교를 통칭하는 ‘우리학교’ 출신이다.“그러나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어디에 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한국을 택하는 또래들이 많아졌다.”고 백가화는 전했다. 그러나, 국적은 바꿨지만 백가화 자신은 여전히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남아 있다. 그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 이념과 현실이 맞부딪치고 있는 땅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국적은 한국으로 바꿨지만 어찌 보면 재일교포로서의 존재가 더 편할 수도 있다.”고 그 또래들이 겪고 있는 혼란한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같은 ‘경계인’이었지만 그 틈바구니에서 ‘꽃’을 피워낸 정대세, 그리고 아직 피우지 못한 백가화. 그러나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민족을 거부하고 엄혹한 현실에 쉽게 동화하는 세태에서 자신들의 생애를 관통하는, 그리고 오래도록 바뀌지 않을 그 무언가가 각자의 심장 속에 똑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주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백가화는 누구? 출생 1979년 11월15일 일본 오사카 학교 오카야마 조선초중급학교 히로시마조선학원 고등부 가족 부모 백헌택(55)·오영자(52)씨의 3남 중 둘째 골프입문 15살 때 프로데뷔 2001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특기 숏아이언, 퍼트 주요성적 카시오월드오픈 공동4위, 아콤인터내셔널 공동5위(2005년), 일본PGA챔피언십 공동5위, 카시오월드오픈 공동6위(2006년)
  • 재일교포 추성훈의 격투기와 삶

    재일교포 추성훈의 격투기와 삶

    연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재일교포 격투기 스타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33)이 또 한번 화제몰이에 나선다.16일과 23일에 방송되는 MBC ‘네버엔딩 스토리’(오후 6시50분)의 ‘추성훈 그리고 아키야마’편에서다. 이 프로그램에서 추성훈은 MBC 문지애 아나운서와 만나 그의 평소 생활과 경기연습 모습을 공개한다. 지난 3월 일본 도쿄 집으로 직접 찾아가 그를 만나고 돌아온 문 아나운서는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MBC 경영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추 선수는 실제로 만나봐야 진짜 매력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실물을 보니 더 멋있고 자상했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29일 ‘드림(DREAM)2’ 미들급 토너먼트대회를 앞두고 있다. 일본 격투기 영웅 사쿠라바 가즈시를 상대로 명예회복을 할 수도 있어 더없이 중요한 경기. 이를 위해 그는 매일 조깅, 헬스, 복싱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조깅을 함께 하며 추 선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문 아나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고, 그는 일일이 웃어 주며 반응했다.”고 회상했다. 추성훈이 이종격투기 선수생활을 시작하면서 살게 된 도쿄 집에는 많은 양복, 선글라스, 모자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의외로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그다. 추 선수는 “무조건 멋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옷을 선택하는 작은 부분에서부터 프로의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특유의 승부근성을 내비친다. 제작진은 신칸센을 타고 그의 부모가 살고 계신 오사카도 찾아간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서 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우리나라 분들이 성훈이를 아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귀화 과정이 힘들었냐는 문 아나운서의 물음에 그는 “괜찮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눈물을 흘렸다.”고 답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3일 TV 하이라이트]

    ●체험, 삶의 현장(KBS1 오전 9시) 개그맨 김종석이 얼굴만 한 왕돈가스 기사식당의 일꾼으로 출동한다. 아나운서 오영실은 버스 안내양이 돼보려 충남 태안으로 떠난다. 시골길 35개 정거장을 주름잡는 ‘차장 아가씨’로 변신해 태안의 명물 태안의 특산물도 소개한다. 충남 논산의 장어양식장 일꾼으로 출동한 탤런트 정호근도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선사한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20분) 최근 한 병원 연구진의 연구 결과, 대한민국 7대 암 가운데 가장 쉽게 전이되는 암으로 대장암이 1위에 올랐다. 그만큼 독하고 질긴 생명력을 지닌 병이므로 발병 전의 예방과 관리가 중요하다. 대형 대장 터널 모형과 대장내시경으로 1.5m 대장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건강한 장을 만들기 위한 조건을 알아본다. ●싱싱 일요일(KBS2 오전 7시40분) 나른한 봄, 가족들과 함께 갯벌체험 행사가 한창인 남해의 지족갯마을과 두모마을로 떠나본다. 팔씨름 챔피언 4관왕에 빛나는 김덕환씨. 남자 셋을 너끈히 이기는 힘의 원천은 바로 골뱅이. 골뱅이의 끈적끈적한 콘드로이틴 성분이 스태미나를 높여준다. 남성을 위한 바다 식품, 골뱅이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1시20분)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비밀리에 가공되던 핵무기 공장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미국은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놀랍게도 이 폭탄 테러 당시 쓰였던 폭탄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이용해 발명한 발명품이었는데…. 폭탄의 실체는 무엇일까? ●굿모닝 세상은 지금(SBS 오전 7시35분)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탄 소유스 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우주강국을 향한 도전에 가속이 붙게 됐다. 우주시대를 연 대한민국의 열정과 그 미래를 살펴본다. 천문대에 몰린 인파들, 곳곳에서 우주체험전도 잇따르고 있다. 이소연씨의 첫 교신자로 화제가 되고 있는 우주꿈나무들도 만난다. ●SBS스페셜(SBS 오후 11시10분) 재일교포 축구스타 정대세.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자라야 했던 재일교포 청년들의 희망이 되어준 재일교포축구연합회의 활동과 정대세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주목받기까지의 삶을 돌아본다. 이로써 2008 재일교포 청년의 새로운 초상을 그려내고, 달라진 재일교포 사회의 정서도 소개한다. ●희망풍경(EBS 오전 6시) 앞을 못 보는 박흥식 할아버지와 지인자 할머니는 손자 동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불편한 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4남매를 키웠고, 환갑이 넘은 지금도 동현이를 키우며 농사일을 계속하고 있다. 서로 의지하며 다독이는 노부부와 어린 손자의 동거를 통해 자식에서 손자로 이어지는 내리사랑과 장애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그린다. ●세계인 위클리(YTN 오전 10시35분) 정신분열증은 정신병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상태를 뜻한다. 예루살렘의 과학자들이 정신분열증을 간단히 진단할 수 있는 ‘버추얼 리얼리티’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했다. 빨간 구름이 떠다니는 가상세계를 보여주고 모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환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 권상우 가슴 부럽다고? 남성용 ‘뽕러닝’ 입어봐!

    권상우 가슴 부럽다고? 남성용 ‘뽕러닝’ 입어봐!

    멋쟁이를 자처하는 남자들이 자신의 재킷 주머니에 살며시 네모난 수건을 접어 넣기 시작했다. 얼마 전 TV에 출연한 재일교포 격투기 선수 추성훈. 패션에 관심이 많으며 모델로 활동해 보고 싶다고 밝힌 그는 보라색 포켓치프를 꽂고 나왔다. 남자 아나운서들도 포켓치프를 애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제 목 말고 가슴에도 힘 좀 줘야 ‘멋 좀 아는’ 남자라는 소리를 듣겠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www.auction.co.kr)의 남성복 담당 강봉진씨는 “사치스러운 인상과 달리 넥타이 가격의 5분의1 수준으로 구입할 수 있고, 접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낼 수 있어 경제성에 패션 경쟁력을 갖춘 액세서리”라고 설명했다. ‘행커치프’‘포켓스퀘어’로도 불리는 포켓치프는 최근 옥션에서 하루 평균 200여장이 팔리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옥션에서 판매자 ID ‘moumoudnjs’로 포켓치프를 판매하고 있는 원덕호 사장은 “특히 20, 30대 남성 고객이 전체 고객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린넨 소재의 네이비, 블랙, 와인 등 기본 색상이 가장 잘 팔리며, 캐주얼한 의상을 입는 20대 남성들은 화려한 물방울 무늬, 꽃무늬 제품을 많이 찾는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남성 정장 브랜드에서 대량 주문을 할 정도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포켓치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예 포켓치프가 달린 재킷이나 와이셔츠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남성용 브로치나 코르사주 등 소품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강봉진씨는 “일부 정장 판매자의 경우 꽃 코르사지를 사은품으로 내걸 정도로 가슴 액세서리에 신경쓰는 남성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남성의 가슴이 강조되는 패션이 유행하면서 빈약한 가슴 근육을 보완해주는 이색 상품도 등장했다. 여성용 브래지어와 동일한 소재로 된 패드가 부착된 남성용 러닝셔츠가 그것. 패드의 두께는 1.8㎝. 착용시 자연스럽게 가슴 부위를 돌출시켜 옷 맵시를 돋보이게 만드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하루 평균 50여장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물 파동의학’ 연구가 에모토 마사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물 파동의학’ 연구가 에모토 마사루

    “물에도 감정이 있을까요?” “???” 일단 ‘있다’로 답을 정해보자. 흥미로운 광경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물이 어떤 메시지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물의 결정모양이 달라진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물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계속 전하면 아름답고 예쁜 모양으로, 그렇지 않은 부정적인 메시지에는 나쁘게 반응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과학적으로 따지는 것은 차후의 문제로 접어두면 더욱 신기해진다. 하기야 사람은 어머니의 양수에서 자라고 또 인체의 구성 자체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으니 물에도 어느 정도의 감정은 있지 않을까. ■“예쁘다, 사랑한다 말해주면 물도 감정있어 알아들어요” 이른바 ‘물과 파동의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에모토 마사루(江本勝·65)는 이같은 연구에만 14년째 몰두해오고 있다. 인간의 생각이 물에 전달되면 물이 얼었을 때 그 결정의 모양이 아름다워지거나 추해진다는 이론을 처음 제기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의 주장은 물에 기도를 하거나 종이에 글자를 적어서 물을 담고 있는 용기에 두르면 얼마든지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사람의 말이나 그림 등 외부 조건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까닭에 물에는 뭔가 정보를 기억하는 장치가 있다고 설파한다. 그는 1999년 물 결정의 사진을 촬영한 ‘물이 주는 메시지’라는 사진집을 펴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물 관련 서적만 ‘물은 사랑을 원한다’ 등 모두 10여권을 펴냈다. 특히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80여개국에서 50개국 언어로 번역, 판매되고 있을 만큼 과학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그동안 40여개국 1000여곳에서 이 내용에 관한 초청강연을 했으며, 향후 2년 동안의 강연 일정이 잡혀 있을 만큼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2년 전 대구에서 열린 ‘생명의 근원 물’에 대한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했을 때에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많은 청중들 앞에서 5㏄가량의 물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려주거나 특정 그림을 보여주고 영하 25도로 얼렸다가 녹는 20∼30초 동안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과정을 공개했다. 어쨌거나 그의 연구노력의 결과로 유엔(UN)이 지난 2005년 ‘생명을 위한 물 10년 계획’을 선언하고 지구촌 어린이들에게 물의 결정 사진집 등을 배포하는 ‘에모토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전적으로 에모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각국의 어린이 6억 5000만명을 대상으로 물의 결정을 통해 물의 소중함을 알린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취지. 에모토가 배포하는 물 결정 사진집에는 백두산 천지와 한강 등 한국의 물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다. 이는 재일교포 2세인 부인 에모토 가즈코(江本和子·59)를 향한 각별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가즈코의 부모는 전남 고흥 출신이다. ‘물에 감정이 있다’는 그의 이론은 엄밀한 과학적 검증을 받은 것이 아닌 까닭에 과학자들에게 종종 황당무계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이때마다 그는 “많은 과학적 사실이 가설을 거쳐 확인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이 문제 역시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한다. 매년 3월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우리나라도 ‘물부족 국가’로 분류되는 만큼 물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물의 날’을 맞아 잠시 방한한 에모토를 만났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목적은. “1968년 처음 한국에 온 이후 이번이 15번째 방문이다. 물의 날을 맞아 대학로에서 열린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퍼포먼스를 관람도 하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한국어판(더난출판사) 출간기념도 할 겸 해서 왔다. 또 강북삼성병원 산부인과 이교원 교수와 만나 태아양수에 대한 연구논의도 가졌다.” ‘양수연구’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양수를 이용,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양수연구인가. “인간이 태어나기 전 최초의 상태를 연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간은 태초 물속(양수)에서 이루어진다. 태아의 움직임에 따라 양수의 결정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양수 안에는 성분이 워낙 많아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태교연구만 하더라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구체적인 연구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다시 물 이야기로 넘어갔다. ▶일본과 한국의 물을 비교한다면. “일본의 수돗물은 그냥 마시지 못한다.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일본에서 ‘물아 고맙다’라고 씌어진 증류수를 주로 마신다. 그럴 때마다 항상 ‘물아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부부싸움을 할 때만 빼놓고는 말이다.(웃음)” ▶물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졌나. “어느 날 내리는 눈을 보다 특이한 생각을 하게 됐다.‘눈도 물인데 물을 얼리면 결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그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1994년 물 결정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에모토는 이때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좋은 말과 나쁜 말, 음악의 고저장단에 따라 각각 물의 결정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사랑’‘감사’ 같은 좋은 말을 들려줄 때 물 결정이 깔끔하고 예쁜 모양을 보인 반면 나쁜 말을 들려줄 때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그날 이후 이 신비한 현상에 푹 빠져 버렸다. ▶물에는 왜 결정이 생기는가. “물의 기운과 파동 때문으로 추정한다. 소독을 많이 하는 수돗물에는 결정이 잘 나타나지 않는 반면 생수는 결정체가 아주 크다. 또 급류, 순류, 하천의 상·중·하의 위치에 따라 결정모양이 전부 다르다. 나는 이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은 못하지만 물이 정보를 기억하고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각국에 강연을 갈 때마다 과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텐데. “현대과학은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무 것도 아닌 무기질인 물에서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의 연구가 비과학적이라고 할지라도 분명 과학자들과 나는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으며 2,3년 후면 자연스럽게 비판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 물의 이미지를 연구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려운 일일 지 몰라도…, 물 연구로 아직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없다.” ▶한국계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나. “40년 전 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결혼하려고 장인한테 인사드렸더니 전쟁이 나면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며 극구 반대했다. 나는 ‘절대 전쟁이 안 난다. 또 평화운동을 펼치겠다.’고 여러번 설득을 했다. 당시 장인은 도쿄에서 운수업을 하시고 장모는 라면집을 운영했는데 고집이 무척 세신 분이었다. 결국 장인과의 약속을 지켰다.‘에모토 프로젝트’가 바로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앞으로의 활동을 묻는 질문에 “에모토 프로젝트와 별도로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물이 전하는 메시지’를 볼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면서 그들에게 물의 소중함과 긍정적이고 착한 마음씨를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대를 ‘카오스의 시대’라고 전제한 뒤, 혼돈과 복잡한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답은 ‘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90%가 물이며, 성인이 되면 70%, 죽을 때는 50%가 물이라는 것.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에모토 마사루는 194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요코하마시립대학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했다.1992년 ‘오픈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에서 대체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에서 공명자장분석기와 ‘마이크로 클러스터 물’을 알게 된 후 물과 파동의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해왔다. 현재 ‘IHM(파동기기 등을 연구하는 회사)종합연구소’ 소장과 IHM국제파동회 대표 등을 맡고 있으면서 세계 각지에서 물과 결빙 결정에 관한 강연을 하는 등 ‘사랑과 감사’의 힘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파동시대의 서막’‘파동의 인간학’‘물이 전하는 말’‘물은 답을 알고 있다’ 등 10여권이 있다.
  • 日 최고의 ‘러브호텔 전문가’는 교포 3세

    한 재일교포 3세가 일본 제일의 ‘러브호텔 박사’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있어 화제다. 오사카 출생의 재일교포 3세 김익견(金益見·28)씨는 지난달 20일 자신의 저서 ‘러브호텔 진화론’을 출간해 언론으로부터 ‘일본 제일의 러브호텔 연구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호텔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연구를 시작한 김씨는 대학 졸업논문 주제를 러브호텔로 할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다. 처음 김씨는 러브호텔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졌으나 이후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의 러브호텔도 있다는 사실에 문화 충격(culture shock)까지 느꼈다. 또 사람마다 갖고있는 러브호텔에 대한 개념이 각각 다르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 관계자 인터뷰등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때때로 러브호텔 주변을 촬영하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거나 호텔경영인으로부터 문전박대 받는 등 고생도 만만치 않았지만 연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김씨는 “주변사람들이 러브호텔에 왜 다니냐고 이상하게 바라볼 때도 많았다.”며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이 싫었지만 그래도 연구를 계속했다.”고 밝혔다. 또 “모니터를 하다보면 러브호텔를 이용하는 남녀 차이도 알 수 있다.”며 “간사이(関西)지방의 여성들은 할인쿠폰을 쓰거나 이용료를 각각 계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씨는 러브호텔 연구이외에도 ‘혐한류’(嫌韓流)에 대항하는 홈페이지(makikome.com)를 개설하는 등 일본내에 만연한 재일교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노력하고 있다. 사진=zakzak.co.jp·민단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지희 “외로와 못살아”

    최지희 “외로와 못살아”

    가장 원만한 가정을 갖고 가장 의욕적인 배우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지희(崔智姬)가 사실은 이혼한 독신녀임이 최근 드러났다. 그녀의 호적은 69년9월4일자로 남편 윤(尹)모씨한테서 떨어져나왔고 2년이나 독신생활을 해온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은 얼마전 그녀의 남편이었던 윤모씨가 모종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됨으로써 표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결혼 3일만에 파경각오” 이혼후도 한집서 살았고 최지희가 이혼했다는 소문은 그녀가「스타」재개업을 하던 70년 초에 몇사람의 입에서 새어나왔었다. 그러나 헛소문으로 귀결되었다. 그 이유는 이혼했다는 남편 윤씨가 버젓하게 최양집에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입만이 아니고 두사람의 사이는 보통 부부와 다름없이 다정해보였다. 의혹을 품을 여지가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동거한다는 예는 많아도 이혼한 남녀가 한집에 산다는것은 상상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 상상할수 없는 가정생활을 최지희는 2년 가까이 계속 해온것이다. 웃음을 잃지않는 밝은 표정 뒤에 이런 어두운 이면이 깔려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바로「스타」, 인기인이기 때문이라는 약점이 어처구니 없게도 작용한것 같다. 처음, 최양은 그녀의 이혼사실을 질문받았을때 완강히 부인했다. 이혼날짜를 들이댔을때는 시인도, 부인도 아닌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뉴스」의 출처를 내밀자 그녀의 표정은 갑자기 허물어졌고 그 커다란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다. 그리고 조용히『운명인것같다』고 그 두꺼운 입술속으로 한숨을 깨물었다. 최양의 신상을 가장 잘 안다는 한 여배우는『최지희처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사람도 없다』고 최양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최지희가 결혼 3일만에 이미 파경을 각오했었다고 자기일처럼 소상히 말했다. 그녀가 윤씨와 결혼한것이 66년 5월23일. 5월14일 남산의 외교구락부에서 약혼식을 올리고 꼭 9일만이다. 남편 윤씨는 한동안 여배우 K모양과 염문을 날리던 사람이지만 어쨌든 유망하고 착실한 재일교포요, 청년실업가로 알려졌었다. 줄곧 남편사업 뒷바라지 5천만원 재산 모두 바쳐 누구나 부러워할만큼 화려한 결혼식이었다. 신부가 된 최양은 결혼과 함께 8년간의「스타」생활을 끝맺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었다. 결혼을 전부로 아는 여자 최지희와 결혼과 사업을 공존시키려는, 어쩌면 결혼보다 사업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남편과는 뜻이 맞지 않았던 것일까? 최양은 신혼초에『나와의 결혼은 애정에서가 아니고 사업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그 측근에게 호소한 사실이 있다한다. 그때 최지희는 9년 가까운「스타」생활에서 착실히 재산을 모았었고「톱·클래스」의「네임·밸류」를 갖고있었다. 18살때 경남 진주에서 무단가출하여 이강천(李康天)감독의『아름다운 악녀(惡女)』에 첫선을 보인 최양은「데뷔」작을 자신의 대명사로 할만큼 억척스럽게 살아나갔다. 작품을 해내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착실히 실력을 쌓아나갔다. 61년엔「아시아」재단 초청으로 미국 구경까지 하고 왔다. 미국에서 1년간 그녀는「조지타운」대학에서 어학 공부를 하는 한편「네이버훗·플레이·하우스」에서 연극공부를 했다. 이런 실력이 그녀의 독특한「마스크」와 어울려서 연기자로서의 기반을 한층 굳혔던건 물론이다. 이런 억척이 그의 가정에서 제외됐을리는 없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에 물질적인 후원은 물론 가능한 수완을 다 폈다한다. 한 소식통은 최양이 남편에게 바친 자본이 4, 5천만원은 능히 될것이라고 관측했다. 결혼전 지니고 있던 몇개의 집, 몇 천평의 대지가 고스란히 남편의 사업자금에 바쳐졌다한다. “애정은 전혀 없지만 그 분 불행 볼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씨의 사업은 실패로 낙착됐다. 윤씨가 수사대상이 된 모종 사건이란 바로 이 투자과정에서 빚어진 채무관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양과 윤씨가 이혼한 결정적 이유도 따지고 보면 사업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다. 이혼하기로 합의한 69년 가을, 한남동에서 살고있던 그들에게는 살고있는 5백만원짜리 집한채가 전부였다. 집을 팔아 2백50만원씩 나누기로 했는데 빚을 갚고보니 최양 손에 들어온건 일금 1백만원 가량. 이 1백만원을 가지고 독신녀가 된 최양은 영화계「롤·백」과 아울러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가지 모두 성공했다. 1년10개월이 된 현재 그녀는『어머니, 동생과 함께 살아갈만한 기반은 잡았다』고 할수 있게됐다. 영화출연도 평균 10편 내외의 겹치기를 하고있다. 단 한가지, 그녀에게는 해결해야할 무거운 짐이 있다. 이혼한 남편은 얼마전까지 최양집을 드나들었다. 최양은 그에게 이혼후에도 상당한 경제적인 보조를 해준것으로 전해졌다. 그녀에게 차가운 마음을 갖지못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혼을 부인하던 최양도 끝내는 다음과같이 자기의 입장을 해명했다.『법률적으로는 이혼했다. 실질적으로도 이미 2년 가까이 부부관계가 없다. 애정따위는 전혀 없지만 그분의 불행을 그대로 볼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할지 정신을 차릴수 없다』 웃음을 잃지않는 최지희. 그 활달한 표정뒤에 이런 슬픔이 숨겨있는 것이다. <관(觀)> [선데이서울 71년 7월 4일호 제4권 26호 통권 제 143호]
  • “한·일 아픈 역사 잊어선 안되죠”

    “한·일 아픈 역사 잊어선 안되죠”

    |도쿄 박홍기특파원|“서로를 깊이 이해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죠.” 일본 도쿄에 있는 재일한국 YMCA의 간사 다쓰케 가쓰히사(40)의 말이다. 다쓰케는 요즘 다음달 22일쯤 YMCA 10층에 개관하는 ‘2·8 독립선언기념 자료실’의 전시물을 마련하느라 한창 바쁘다. 자료실의 건립에는 국가보훈처가 재정지원을 했다. 일본인인 다쓰케는 도쿄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 히토쓰바시대의 대학원에서는 한국근대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한국통이다. 대학생 때 처음 재일한국 YMCA과 인연을 맺었다가 석사 학위를 딴 뒤에는 아예 ‘취직’,13년째 일하고 있다. 현재 일본어학교 교장도 맡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료실은 일본에서 일어난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공식적인 역사관입니다. 일본에서는 유일한 곳입니다.” 재일한국 YMCA는 1906년 일본에 세워진 뒤 당시 일본의 강점에 맞선 유학생들의 독립운동 거점이다. 자료실에는 2·8독립선언, 관동대지진 때의 유학생들 활동, 피해 등과 관련된 서적·자료들을 전시하게 된다. 당시 검거됐던 유학생들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 변호사, 유학생들을 숨겨 주며 YMCA의 폐쇄를 막은 요시노 사쿠조 등 일본인들도 소개할 방침이다. 자료실은 지난달 8일 2·8독립선언일을 기념, 우선 현판식을 가졌다. 그러나 아직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썰렁한 형편이다. 독립신문과 함께 당시의 사건을 다룬 한국 교과서만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다쓰케는 지난해 12월 독립기념관과 국사편찬위원회를 직접 방문, 관련 자료들의 사본 및 사진 등을 요청해 놓았다. 재일교포 학자들에게도 자료 임대를 부탁했다. 물론 개관 후에도 자료 수집을 계속할 작정이다.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해 “86년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왜 한국어를 배우냐.’며 부모님을 비롯, 주위 사람들의 반대가 컸다.”면서 “현재도 문제는 상존하지만 한·일 관계는 정말 많이 변했다.”고 평가했다. 다쓰케는 앞으로 2·8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곳이고, 본래 재일한국 YMCA의 터인 니시간다 네거리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는 일도 추진하기로 했다. hkpark@seoul.co.kr
  • 南·北·日대학생 ‘재일코리안’ 영화 만든다

    南·北·日대학생 ‘재일코리안’ 영화 만든다

    “재일 한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함께 미래로 나가자” 일본 도쿄 와세다(早稻田)대학의 봉사활동 단체인 ‘일본 코리아 미래 프로젝트(닛코리)’가 오는 16일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을 한데 어우르는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과거를 털어 버리고 함께 하는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회원들이 ‘열린’ 영화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닛코리는 와세다대 봉사활동센터(WAVOC)에 소속된 단체로 와세다대학 졸업생과 일본인, 한국인, 재일교포 등이 주축이 되고 있다. 현재 회원 수는 70여명이다. 닛코리가 이번에 상영하려는 영화는 지난해 7월 한국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 ‘우리학교’.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민족 학교인 조선초중고급학교 아이들의 역경과 희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4회 부산영화제에서는 운파상도 수상했다. 조선초중고급학교는 해방 후 재일 조선인(재일동포) 1세들은 일본 땅에서 살아갈 후손을 위해 책상과 의자를 마련하고 버려진 공장 터 등에 세운 ‘조선학교’의 하나. 영화는 김명준 감독이 3년간 홋카이도 조선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닛코리는 이 영화가 ‘재일 코리안’에 대해 일본인들이 이해를 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는 누구에게나 공개되며 일부 출연진은 행사장에도 나와 관객들을 맞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쿄 고다이라(小平)시에 있는 조총련계 조선대학교도 무용부, 기악부, 사물놀이 동아리 학생들을 와세다대학에 파견해 영화 상영 뒤 다채로운 행사를 갖기로 하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닛코리 회원인 한국 유학생 박지원(朴志元.20.와세다대 사회과학과)씨는 9일 “이번 행사를 통해 일본과 한국, 나아가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임재석·김윤영 맞짱

    ‘왕의 귀환이냐, 신예의 반란이냐.’ 스피릿MC 전 미들급챔피언 임재석(29·정심관 화정센터)과 신예 김윤영(21·부천 팀블루드래곤)이 공석 중인 미들급챔피언 왕좌를 놓고 맞붙는다. 무대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종합격투기대회 스피릿MC 15(부제 컴백홈·Xports 중계). 국내 최고의 타격가로 꼽히는 임재석은 지난 2005년 미들급GP에서 재일교포 파이터 최영을 실신 KO시키고 챔피언에 등극했지만, 손등뼈가 부러져 1년 동안 링을 떠났다. 지난해 4월 1차 방어전에서는 스티브 브루노(미국·아메리칸탑팀)에게 아쉬운 TKO 패배. 하지만 그는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종합격투기대회 엘리트XC에서 승리를 거두며 부활을 예고했다. 임재석의 상대인 김윤영은 커리어는 일천하지만 장신을 이용해 상대를 꼼짝없이 옭아매는 주짓수(변형된 브라질 유술) 테크니션. 미들급의 차세대 주자 중 가장 돋보인다는 평가다. 지난 1월 김호진(구미 정심관)을 리버스 암바로 꺾고 챔피언도전권을 획득했다. 이동기 Xports 해설위원은 “김윤영이 임재석과 맞붙기에는 조금 빠른 것 같다.”면서 “임재석은 경험이 풍부하고 그라운드나 스탠딩 모두 뛰어나다.7대3 정도로 우세하다.”고 전망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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