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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약 부당해제로 업체도산/한국통신에 시정령

    공정거래위원회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거래 상대방과 맺은 계약을 부당하게 해제,결과적으로 거래기업을 도산시킨 한국통신공사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위반사실을 중앙 일간지에 공표토록 했다. 이는 공정위가 공기업의 부당행위에 대한 엄벌 의지를 밝힌 후 취한 정부투자기관에 대한 첫 제재이다. 25일 공정위에 따르면 전기통신기기의 독점적 수요자인 한국통신공사는 (주)한국제어계측과 케이블 시험기 등 2종의 전기통신 계측기기 구매계약을 맺었으나 납품된 물품의 일부 결함을 이유로 보완할 기회도 주지않고 계약을 전면 해제했다.이 과정에서 계약보증금,차액보증금 및 지체상금 등 3억원 이상의 위약금을 떠넘겨 이 업체를 도산시켰다는 것이다. 한국통신은 계약 대상물이 국내업자의 기술에 의해 제조·구매하는 수입대체기기인데도 납품 기한을 지나치게 짧게(36일) 설정했고 상대방이 재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지않고 불합격과 동시에 계약을 해제했으며 계약해제시 지체상금까지 부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조선맥주가 신제품 하이트맥주를 광고하면서 자사제품의 거품은 깨끗하게 보이고 경쟁사의 것은 탁하게 보이도록 한 것은 부당광고 행위라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 야구위 실무총재시대/정태화 체육부기자(오늘의 눈)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새 총재에 오명씨가 추대됐다. 한국프로야구의 헌법이라고도 할수 있는 야구위원회규약에는 총재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관리·통할하며 총재의 지시·재정·제재는 위원회의 최종결정으로 모든 소속단체와 개인이 반드시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총재는 프로야구에 관한한 황제나 다름 없는 지위에서 모든 구단과 선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총재인만큼 이에 따르는 책임 또한 막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총재에 오른 이는 서종철(82∼87년)·이웅희(88∼92년)·이상훈씨(92∼93년)등 모두 3명뿐이었다. 이 가운데 서종철 이상훈 두총재는 국방부장관 출신이었고 이웅희씨도 문공부장관을 지낸 국회의원이었다. 우리 프로야구가 12년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연간관중 5백만명 돌파를 눈앞에 둘 정도로 발돋움한데는 나름대로 이들의 숨은 노력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실무적인 총재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총재의 성격이 짙었다. 이제 오명씨의 추대는 프로야구에도 개혁바람이 불어 상징적인 총재의 구시대를 마감하고 실무총재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 프로야구에는 새 총재가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산적해 있다 서울 잠실과 부산 사직구장을 빼면 나머지 6개 구장은 비가 조금만 와도 경기를 못하기가 일쑤고 주차장등 각종 편의시설이 태부족한 것은 제쳐두고라도 우선 수용인원이 1만명을 겨우 넘을 정도로 비좁은 형편이다. 이런 일들이 오총재가 타개해야 할 실무들에 속한다. 오총재는 스스로 야구에 문외한임을 자인하고 있다. 오총재는 체신부차관과 장관을 역임하면서 우리 통신망을 선진국대열에 올려놓고 엑스포조직위원장으로서도 대단한 수완을 발휘했다. 이처럼 어느 분야에 가든지 스스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오총재이기에 우리는 프로야구에서 그의 또하나 새로운 진면목을 보고싶은 마음이다.
  • 서슬퍼랬던 권부가 떨고 섰습니다(박갑천 칼럼)

    저는 옛총독부 건물입니다.낙엽지는 이 계절에 저는 유독 더 으스스해지는 몸을 추스르고 있습니다.남은 삶을 생각하면서입니다.95년말까지 「완전철거」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있고 각오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그후에 알려진 철거방법의 문제가 저를 더욱더 떨게 만듭니다.파괴공법 따라 한꺼번에 폭삭 주저앉게 해체하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고 다이아몬드 박힌 줄톱으로 두부 자르듯이 잘라낸다는 것이 아닙니까. 만에 하나 이웃 문화재에 해가 미칠까 하여 배려한 결과인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이 「줄톱공법」은 문득 부관참시를 연상케 하면서 섬뜩함을 안겨줍니다.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2막2장)에서 시저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을 떠올리게도 합니다­『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몇번이고 죽지만 용감한 자는 한번밖에 죽지 않는다』.남에게 가혹했던 자일수록 제 죽음에는 비겁해진다더니 제가 그짝났습니다.시저같이 의젓할 수 없는 겁쟁이인 모양입니다.「줄톱공법」소식에 벌써 몇번이나 죽었다 깨어난 것인지 모르니까요. 사실은 「부관참시」를 당해도 쾌싼 처지라고는 하겠습니다.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시인으로 증오와 염세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테오그니스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좋았을 일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읊었던 그대로 저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옳을 존재이기도 합니다.경복궁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리부터가 그러합니다. 조선왕조의 정궁으로 지어진 것이 경복궁입니다.「경복」이란 이름은 「시경」(시경:대아·생민지십)의 『술마셔 이미 취했고/은덕에 이미 배불렀네/우리님 천년만년/큰복을 누리소서』(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하는데서 따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큰복」을 누려야할 그곳에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제가 「침략의 본산」으로서 지어진 것입니다.경복궁 안의 전·당·누·각·정·대…등 4천여간을 헐어 민간에 방매해버린 자리,안산(안산:남산)을 가로막는 그 자리에 말입니다.한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닛폰(일본)의 「일」자를 본떠 짓기 시작한 것이 19 16년이었고 10년후인 26년에 완공된 것이 오늘의 제 모습입니다.95년에 「참시」되면 노후가 처량한 70개 성상을 살다가는 셈입니다. 광복되고도 반세기 가까이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던 것을 한국민의 「관용」으로 생각해야 할것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다만 역사의 흐름을 느낍니다.세상사의 무상함도 느낍니다.한시대 서슬퍼랬던 권부가 지금 가을바람 앞에 떨고섰습니다.대컨 인생살이가 그런것 아닌지요.
  • 오색의 사리 사파 밝히고…/성철종정

    ◎1차38과 수습… 1백여과 더 나올듯/12월22일까지 해인사안치 일반에 공개 【해인사=나윤도·남윤호기자】 한국 불교의 태고봉 성철스님이 남긴 사리는 12일 하오 1차 수습한 결과 38과로 밝혀졌다. 조계종종단장장의위원회측은 이날 이같이 발표하고 앞으로 뼈에 박힌 사리와 재에 묻힌 사리들을 모두 분류하면 1백여과이상이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장의위원회측은 사리의 수에 대한 최종발표는 분류가 완전히 끝나는 14일 상오에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사리 수는 지난 83년 12월 입적한 구산스님(전 송광사 방장)의 53과보다 훨신 많은 것으로 국내 최고의 기록이다. 장의위원회는 또『큰스님의 사리가 자주색·검정색·흰색·갈색등 5색 영롱한 색상을 띠고 있었으며 크기도 녹두알에서 좁쌀알 크기까지 다양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수습된 사리 38과는 보경당에서 볼록렌즈로 덮인 유기그릇에 담겨져 대기중인 스님들과 법당 앞에 장사진을 이룬 1천여명의 불자들에게 공개됐다. 장의위원회는 큰스님의 사리를 49재가 끝나는 오는 12월22일까지 보경당 불좌대 아래에 깐 빨간 융단위에 안치,매일 상오8시부터 하오6시까지 불자들에게 참배를 허용키로 했다. 49재이후에는 특별 제작한 사리장치에 정식으로 봉안한 뒤 사리탑인 부도를 세워 영구보존할 계획이다. 사리분류를 지휘한 장의집행위원장 일타스님은 『사리가 머리와 상체·하체부분서 골고루 나왔으며 녹두알만한 것 3∼4개를 비롯해 다양한 크기의 것들이 뼈속에 알록달록 점점이 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초 오늘중으로 뼈를 갈(쇄골)예정이었으나 뼈속에 박혀 있는 사리의 수가 많아 사리를 모두 수습한 뒤 쇄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13개 금융기관 공개·증자 허용/증권4·보험7·투금1·종금1사

    ◎2천5백억규모… 내년 1∼3월중 은행을 제외한 제 2금융권 13개 기관에 대해 내년 1∼3월중 총 2천5백억원의 증자 및 공개가 3년8개월만에 허용된다.재무부는 지난 90년 5·8 증시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억제해온 금융기관의 증자를 이같이 허용하기로 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증자 및 공개가 허용되는 금융기관은 5·8조치로 증자와 공개가 보류된 금융기관,업종전환 기관,경영악화 등으로 증자가 불가피한 기관들이다. 증자 및 공개물량은 납입금액 기준으로 4개 증권사가 1천억원,7개 보험사 1천억원,중앙투자금융 2백억원,한국종합금융 3백억원이다. 증자대상 증권사는 신흥증권·한국투자증권·동아증권·삼성증권이고 보험사는 대한화재·해동화재·고려화재·한국자동차보험·대한재보험·동양화재·제일화재이다.한국종금은 공개대상이다. 재무부는 공개로 인한 증시의 불안정을 막기 위해 증자금액의 50%를 주식매입 자금으로 쓰도록 했다.증권사는 증자금액의 25%를 증안기금에 출자하고 나머지 25%는 주식을 매입해야 하며 다른 기관은 50%를 투신사의주식형 수익증권을 사야 한다. 한편 은행의 증자는 내년 4월 이후의 증시상황을 봐가며 검토하되 상업은행의 경우 상업증권의 매각상황을 봐가며 내년 2월쯤 증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 자신을 아는 사람/임운길 천도교 선도사(굄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한마디 말로 인류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여기에서 온갖 죄악과 불행이 싹트고 사회혼란이 야기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만사가 마음가짐과 생활태도에 달려 있으니 만큼 항상 나 자신을 닦아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자아완성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첫째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있다.세상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하고 존귀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있다.가정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민으로서 참된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나는 한국사람으로 태어났다.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로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으며 홍익인간의 높은 이념과 숭고한 이상과 인내천의 새로운 진리를 창명 하였다.앞으로 반드시 세계역사를 주도할 저력있는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겠다. 셋째 나는 한울님을모신 존엄한 존재다.무형한 한울님이 유형화된 것이 인간이요,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그러나 아직 한울님 모신줄을 모르고 배천역리 불순도덕 하는 사람이 많다. 한울님 모심을 깨닫고 정성 공경 믿음의 생활을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무궁성을 알게 되고 차차 무한한 힘과 지혜를 받게 되리라 믿는다. 넷째 나는 성심신을 갖춘 존재다.육신만 알고 마음과 성품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자기의 뿌리를 모르는 셈이다.실상을 모르고 허상만을 생각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자신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다섯째 사람은 사명적 존재이다.사람은 쓸모 없이 내 던져진 물건이 아니라 한울님의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존엄한 존재이다. 자기사명을 알고 사명완수를 위해 줄기차게 노력하는 것이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중국내 고구려유적 비디오 공개/신영식교수 촬영

    국내 사학자가 중국의 길림·요령성일대에서 직접 찍은 고구려 유적 비디오가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5일 상오10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리는 「한국민족사의 제문제」심포지엄에서 신영식 이화여대교수가 상영할 비디오에는 광개토대왕비·장군총을 비롯해 장천1호·무용총·각저총등의 고분벽화,요령성 일대의 안시성·백암성·건안성등 산성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고구려가 당의 침략군을 격퇴한 요령성 해성현의 안시성(현재이름 영성자고성)과 그 주변 산성들의 형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어서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신교수는『지난해 9월부터 지난 8월까지 연변대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동안 고구려 유적들을 두루 답사,촬영했다』고 밝히고 이번에 공개하는 비디오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널리 알려진 유적을 중심으로 30분짜리로 편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강도 폴리에틸렌 섬유」대량생산 길 열었다/KIST 최철림박사팀

    ◎섬유­수지 분리방지기술 특허획득 수술용 실·레저용품 등에 사용되는 최첨단 신소재 「고강도 폴리에틸렌섬유」를 생산할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원장 김은영·KIST)은 최근 고분자연구부 최철림박사팀이 고강도 폴리에틸렌섬유의 핵심기술인 표면처리방법을 개발,미국및 국내특허 2건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지난 80년대초 네덜란드에서 처음 개발된 고강도 폴리에틸렌섬유는 아라미드섬유 보다 더욱 가볍고 충격에너지 흡수능력이 뛰어나 방탄재료·고강도 구조재료·건축보강재·고압용기·해양로프 등에 사용되는 첨단신소재이다. 이번에 특허를 획득한 표면처리방법은 고강도 폴리에틸렌섬유를 복합재료로 이용할때 가장 까다로운 섬유와 수지의 접착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것은 물론 성질의 안정화도 이룬 것이 특징이다. 기존 방법은 분자들이 이온화된 플라스마를 이용,섬유표면의 질을 바꿔 수지와의 접착을 높이는 플라스마 에칭방법을 사용해왔다.그러나 이 경우 처음에는 접착이 잘되나 시간이 지나면 섬유표면의 반응성이 떨어져 접착이 되지 않고 섬유와 수지사이가 벌어지는 결점이 있었다.이에 비해 표면처리공정은 저온의 플라스마방법에다 결합체인 실란 커플링제로 덧칠해 화학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접착강도를 2백60% 이상 높였을 뿐 아니라 층간분리현상도 없앤 것이 장점이다. 최철림박사는 『고강도 폴리에틸렌섬유를 이용하는데 표면처리방법이 가장 까다로워 현재 미국·일본·네덜란드등 세계 3개국에서만 상품화가 된 상태』라며 국내여건이 미흡해 아직 상품화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 여몽연합군 일 정벌(일본속의 한국문화:7)

    ◎“원구 3만명에 결사항거” 표석 곳곳에/대마도주 종조국,“80기로 맞섰다” 용전 과장/일제 군국주의자들,증오심 부추기려 미화 13세기말,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백여년전인 1274년에 몽고군과 고려군이 연합하여 대마도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우리는 이 사건을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이라 부르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통상 문영·홍안의 역이라 부르고 있다.이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대마도와 일기도 그리고 북구주의 박다였다. 여기서는 사건을 좀 더 강하게 원구의 내습이라 부르면서 곳곳에 표석을 세워 그날의 참화를 잊지 않도록 환기시키고 있다.심지어는 위령비에다 신사까지 세워서 이날 이때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말썽 많은 동경 한복판의 정국(야스쿠니)신사와 같은 것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1274년에 도해 대마도 서해안에도 위령비와 신사가 있다고 해서 오늘은 그곳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소위 원구라는 호칭은 우리가 하는 위구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 하겠으나 일본은 단 한번 당한 침략인데도 곳곳에 기념물(?)을세워 놓고 있는 반면 우리는 수없이 당한 위구였는데도 단한곳 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다는 점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만일에 우리가 위구고전장이라고 해서 절을 세운다고 가정하면 전국 도처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찰 투성이가 되고 말 것이다.그런데 왜 일본에는 이런 곳을 만들어서 요란하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일까.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대마도에서는 제사를 지낸 뒤에 서북쪽 바다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행사가 반드시 있다고 하며 수년전에는 원구700주년기념행사를 성대히 거행했다는 소문이다.두말할 나위도 없이 일제잔재이며 이 잔재때문에 일본인들은 대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일본속의 한국문화를 솔직하게 시인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시신 두토막… 묘2개 엄원(이즈하라)에서 원구고전장이 있다는 소무전(고모타)마을로 가자면 이 섬의 진산인 백악산을 넘어가야 한다.백악산도 백두산이란 우리 민족고유어에서 유래하고 있다.도중에 차는 어동총이라는 곳에 잠시 머문다.「어동총」이란 무엇인가.여몽연합군이 대마도를 공격하였을때 항전하다가 죽은 제1대 도주 종조국의 무덤인데 그가 두 토막이 나서 시체가 두군데 묻혀 있다는 것이며 그중의 하나가 이곳의 오동총이라고 하니 듣기에도 소름이 끼친다.비문에는 종조국공어동총이라 새겨 놓았으나 그 옆면에는 자신이 없는 듯이 『종조국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다』고 부기해놓고 있다. 다시 차는 고개를 넘어 해안에 닿는다.멀리 바다 건너에는 우리나라의 남해안이 바라보이고 작은 어선들이 항구에 들어선다. 항구에 들어서는 어선들이 마치 옛날 왜구들이 우리나라를 약탈하고 돌아오는 장면같이 느껴져 섬찢했다.물론 필자의 시대착오이긴 했지만 이 마을에다 지어놓은 소무용국신사와 또하나의 종조국어동총을 보는 순간 갑자기 지난날의 어린 시절이 눈앞에 다가섰다. 왜 그랬을까.바로 이 신사와 동체묘가 일본군국주의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이 섬 사람들은 7백년이나 지난 일을 기억할리가 없는데 명치유신 이후 이나라에 군국주의가 되살아나더니 케케묵은 신공황후라는 귀신의 삼한정벌설이 대대적으로 등장하는가하면 원구고전장 같은 곳이 만들어져서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바로 그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본시 원구란 말은 없었고 명치유신이전에는 「이국합전」정도로만 불렀었다는 사실을 상기할때 원구고전장이란 말자체가 근대적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또 그보다 더 뚜렷한 증거는 이 신사앞에 세워놓은 안내판이다.하나는 일제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원구분전지도」라는 안내판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관광협회에서 만들어 세운 「원군침공요도」라는 안내판이었다.앞의 것은 한마디로 증오심을 유발하기 위한 문구로 가득차 있는데 반해 뒤의 것은 매우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원구분전지도. 문영 11년 10월15일에 원군 3만여명이 선수를 서로 맞대고 쳐들어와 대마도를 포위하였다.수호대 종조국은 겨우 80여기로 그들과 싸웠으며 의용전사한 도민이 부지기수였다.적들은 살아남은 노유부녀들을 붙잡아서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새끼를 꿰매어 뱃머리에 엮어서 매달았으며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하였으니 그 참상은 눈뜨고 볼수 없는 일이었다.적의 선봉은 그 나라의 중죄인들로서 이름하기를 생권군이라 하였으며 악랄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종조국은 일기당천의 용사들을 지휘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죽음에 임해서도 그는 눈을 부릅뜨고 적을 응시하며 쓰러졌다.종조국의 동생 마지윤도 함께 쓰러져 충사하였으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원군은 오지 않았으니 오호라 슬프도다.명치29년 11월2일 종조국에 특지를 내려 종2위로 삼으니(천황의) 성은이 고골을 적시고 전국이 감읍하였다」 ○태풍에 배침몰,철수 누가 읽어 보아도 소름이 끼치는 글이요 제1대 도주 종조국의 용전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그러나 그때 종조국은 결코 일본천황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또 그런 종조국에 종2위라는 작위를 내린 해가 명치29년,즉1896년이었다.청일전쟁을 도발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한 바로 그해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관광협회에서 만들어 세운 안내판의 글귀는 담담하기만 하다. 「원군침공요도 문영지역 ­문영11년10월에 고려군을 포함한 3만여명의 원군은 먼저 대마와 일기를 공격하고 10월19일 박다만에 이르러 이튿날 상륙하기 시작하였다.일본군은 주로 구주의 무사들이었는데 원군이 장궁독시와 철포와 같은 신식무기로 싸운데 반하여 일본 무사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1대1로 싸울줄밖에 몰랐다.그래서 대패했는데 때마침 태풍이 불어 원의 군선이 거의 다 침몰하고 1만3천명의 군사를 잃고 고려로 철수하였다.이것이 문영의 역이다」 일제말기에 「신풍」이라는 자살부대를 만들어 10대 청소년들을 몰살시킨 역사를 일본인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원구때의 신풍이 다시 불지 않는 조작된 역사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런 역사 왜곡의 현장을 그대로 둔채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들.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수 있단 말인가.
  • 한 통일원 일문일답

    ◎“북핵문제 진전땐 팀훈련 신축대응/북 권력 승계후도 남­북한관계 불변” ­특사교환을 통해 핵문제등 남북관계가 원활히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근거는. ▲우선 김영삼대통령의 강력한 핵우선 해결원칙이 북측에 전달될 것이다.북한도 그들이 얻고자 하는 대미 관계개선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 상호사찰을 위한 분위기 조성까지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3차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우리측이 특사교환이 이뤄지면 팀스피리트훈련을 중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데…. ▲핵문제 해결의 진전이 있으면 신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원칙은 전했다.그러나 비공식접촉에서 논의한 구체적인 내용을 얘기할 수 없다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한부총리의 대북정책이 너무 유화적일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보는 눈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정부는 북한의 핵문제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쓰고 있다.그러나 통일원은 남북관계 개선에 존재이유가 있는 만큼 같은 조건이라면 유화책을 쓰는 것이 옳다고 본다.다만필요할 경우 유화책 이외에 다른 강경책을 쓰는 부서가 있어 정부 전체로서 협업을 이루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기조연설에서 밝힌 남북 상주대표부설치 요구를 북한의 대미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봐도 되는가. ▲전제조건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요구가 보도되면 미국이나 북한도 우리의 의사를 알게 될 것이다. ­북한내부의 돌발사태나 외부여건의 급변으로 통일이 급진전될 가능성은.김정일체제의 등장이 남북관계의 악재인가,호재인가. ▲아버지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해 권력장악력이 부족한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당분간 남북관계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북한이 경제적 난관등 각종 모순으로 돌발사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는 할 수 없으며 정부도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하고 있다. ­각종 설득과 제제등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핵개발을 강행하여 핵무기를 보유하게될 경우 우리의 대응방안은. ▲현재로선 그런 일이 없을 것으로 본다.다만 핵개발을 저지키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 조각가 유영교씨(이세기의 인물탐구:39)

    ◎돌로 빚어내는 생명력… 인간미 “물씬”/풍만한 인체·단순화된 형태의 구상 즐겨 표출/연속 국전특선… 완벽한 조형술로 정상의 명성/요즘은 고난·번뇌 초월한 「평화의 표정」 형상화에 집착 「인생은 석재다.그것으로 신의 모습을 조각하든가 악마의 모습을 새기든가 모든것은 자유다.그러나 다만 생명이 깃든 조각인가?」이는 영국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유영교는 강한 석재로 생명이 깃든,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만드는 작가다. 알찬 마스(양괴)와 신선한 정감표출의 단아한 나부상,예술가가 품은 그 어떤 상념도 돌이라는 재료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는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는 작품화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데생하고 데생한다.또는 수채화로 그리거나 유화나 파스텔로 그린다.그리고 하나의 회화로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였을때 이번엔 점토로 이를 빚는다. ○실패확률 거의 없어 형태의 완성과 완벽성을 석고 모형으로 경험한다음 비로소 돌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의 확률은 거의 없다.표정조차도 이미 모형에서 이미지를 또렷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이 조각에 닮아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성공적인 것이지만 만일 조각이 그림에 닮아있을땐 이건 낭패일수밖에 없을 것이다.작품에 관한한 완벽추구자이며 영원히 만족을 모를수도 있다. 작품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테마는 언제나 인간의 이야기다.인간의 고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여러형태의 모습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과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표현하느냐는 것이 과제다. 같은 고뇌라도 성자의 고뇌인가 범상한 인간의 가족애적인 것인가.사랑도 신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자비는 베풀때와 베풀음을 받은 은총일때가 다르듯이. 한때는 구도자나 수도자의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또는 어둡고 그늘진 어부나 농부의 삶에 찌든 표정이 그의 작품의 한 구릉을 이루기도 한다.그러나 「삶의 이야기」시리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보고 기절한 어머니의 모습,가톨릭의 고통과 고난과 수난은 끝이 없음을 그는 새삼 느낄수밖에 없었나보다. 이에비해 경주 불상에서 온화한 평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미술이론을 모르는 이름모를 석공이 원만함과 무심과 풍요를 그려낸 것이다. 이때부터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를 다시 읽고 노자·장자에 심취하면서 초탈·초월의 경지를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풍만감이 넘치는 인체에다 반가사유상의 양식을 적용한 극기와 무상,번뇌를 떨쳐버린 초월적 명상,마음의 갈등씻긴 평화로운 표정을 작품마다에 햇살처럼 아로새겨 나갔다. 유영교는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일류작가의 대열에서 한치도 뒤처진 적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첫 개인전 찬사 일색 아직 대학2학년때인 66년 국전 3회 연속 입선,이어서 목우회 공모전서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무총리상 국회의장상 국전 연속특선으로 삼십을 갓넘긴 나이에 국전추천작가·초대작가등 남보다 배나 빠른 정상가도를 똑바로만 달려왔다. 추천작가가 되던해인 77년 첫개인전과 함께 수많은 찬사·호평에 둘러싸여 다음해 이탈리아로 유학,국립로마미술아카데미와 르네상스 조각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카라라에서도 거장 에밀리오 그레코와 페레클레 파시니를 사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지중해」 「일드 프랑스」의 작가인 마욜과 아르프,오슬로의 후로그넬 공원에 있는 비게란드의 화강암으로 된 「조각군」을 보고 그는 자신의 구상조각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부조에서 환조에 다다른 아르프의 아르 콩쿨레(구체예술)를 수용하면서 구상·추상 사이를 넘나들다가 차츰 추상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만의 구상인체에 망설이지 않고 정착할수 있었다.진위를 가릴수없는 모호한 추상의 세계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구상세계가 그의 투명한 성격에도 거부감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아끼는 재질인 대리석도 인체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사유와 풍요를 표현하는데 어떤 부족감도 없었다. 2년전 선보인 성숙·풍요·동반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점점 더 불교적으로 된 작품의 표정들이 무심을 지나 열반의 경지를 보이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더구나 밑그림이 철저하게 뒷받침된 표정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고 하나하나마다에 생동감이 담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빈 무심이 아니라 청순이라든가 순백·환희가 눈부신 것도 특징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이미 다른 작가가 그려온 소재를 그는 그 나름대로의 천진무구를 강조하여 행복의 꽃다발로 재창조한 경우도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이를 「회고」와 「번안」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유홍준은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체의 덩어리』라든가 자신의 작품을 되물으며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자세는 『예술의 성실성』내지 『예술의 진지함』이라 평하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금강 남쪽,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살고 있는 대전시내에서 버스로 20분거리.많은 조각가들이 교외별장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건물을 지닌 것과는 달리 야산을 깎아 만든 2천평 대지에 세운 이 간이작업장은 거대한 석물공장을 방불케한다. 10t의 무게를 들어올릴수 있는 빔설치,돌을 썰거나 마광할수 있는 전기모터와 체인 블록,바이트와 드릴과 리머와 탭 등 수백가지의 절삭공구들과 마당구석구석에 사람의 키만한 대리석 화강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이리나 문경,여수를 돌며 자연석을 직접 사오기도 하고 이탈리아 대리석을 현지에서 주문해다 쓰기도 한다. 남들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데생에서 흙반죽,석고 뜨고 돌자르고 드릴로 뚫고 다듬고 깎고 하루종일 돌가루와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채 중노동에 시달리다 밤9시가 넘어서야 귀가한다. 사방이 청명한 가을인 요즘,드넓은 벌판엔 외딴 작업실에서 내는 그의 기계소리 돌을 다듬는 소리외엔 주변은 온통 적막강산이다. 간간이 브론즈나 나무를 다루기도 하지만 돌만이 갖는 차갑고 강한 느낌,정발 하나하나로 확실하게 작가의 손에서 작업이 끝나는 확인은 돌이 아니고서는 맛볼수 없는 희열의 하나다. 유영교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세속에 물들거나 부당함에 타협하지 않는 결벽증이다. 일찍이 그가 국전추천작가가 됐을때 화단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 원동석씨는 「평론가 10인이 추천하는 신예작가」의 한 사람으로 유영교를 추천하면서 「아집이나 고집때문이 아니라 그의 천성적인 순결과 자신감은 세파에 쉽사리 물들거나 외세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대로다. 스승·선배들에게 예의 바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엉뚱한 말을 들으면 그의 의도를 명료히 제시하여 시정을 요구한다. 또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가르치는데 시간을 뺏기다보면 그의 예술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세속의 욕망을 거부 돈이 될수 있는 모뉴망이나 설치미술등의 주문에도 응하지 않는다.건물주의 몰취미에 억지로 맞추기도 싫고 번거로운 계약과정이나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온 몸과 마음으로 몰두할수 있는 대상에만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는 충북 제천군 청풍면장이던 유상종씨와 정효옥여사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면소재지이긴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때 마을에 들어온 버스를 처음 볼만큼 산골동네에서 투박하게 자라났다. 국민학교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충주고 2학년때 홍대가주최한 전국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1등상 수상.그날 조각실에서 작업복을 입고 흙을 만지는 선배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조각과를 지망하게 됐다. 이탈리아 유학중 그곳의 조각가들이 야외작업장을 가진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고향청풍에다 작업장을 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어 목원대교수인 부인 이은기씨(서양미술사)를 따라 86년 대전에 정착했다.슬하엔 3남매. 유영교조각은 양감의 풍요에서는 마욜,극도의 단순한 형태추구면에서는 때때로 아르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그가 다다르고 싶은 것은 순연한 조각이다. 그러나 연전에 그의 작품전을 보고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 교수이자 평론가인 피에르 카를로 산티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형태면에서는 영혼의 영원과 가치에 대한 신념』,『작업의 전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투명한 영감의 세계』라고. 남보다 빨리 화단에 입문해서 일사천리로 예술의 정상에 이른 것처럼 그는 남보다 빠르게 그가 원하는 순정한 순연의 경지에 이미 이르고 있음을 산티니는 예고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46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충주 고교졸업 ▲1965년 홍대 미대조각과 입학 ▲1966∼68년 국전연속3회 입선(대학재학중) ▲1969년 홍대 미대졸업 ▲1975년 국전 특선 ▲1976년 국전 특선,홍대대학원 졸업 ▲1977년 국전 추천작가및 초대작가,전국조각가초대전 목우회초대전출품 ▲1977년 제1회 개인전(미술회관) ▲1978년 제2회 개인전(진화랑),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유학 ▲1980년 제3회 개인전(로마) ▲1980년 제4회 개인전(진화랑) ▲1982년 제5회 개인전(미라노),국제청년작가 야외전(미라노) ▲1983년 제6회 개인전(현대화랑) ▲1984년 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조소과졸업(거장 에밀리오 그레코 펠리클레 화시니 사사),한국조각가 13인전 한·이조각가교류전,재이한국조각가전출품 ▲1985년 재이한국조각가15인전,토스카넬로의조각전,국제청년조각가전 ▲1986년2월 귀국개인전(제7회·강남현대화랑) ▲1986년10월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이탈리아 문화원개원기념 초대전,재이 한국조각가초대전(갤러리 현대및 이탈리아 뤼기 루소) ▲1988년 제9회 개인전(현대화랑),현대조각 초대전 ▲1991년 제10회 개인전(현대화랑) ▲1992년 제11회 개인전(갤러리 신현대)홍대및 목원대 서울교대강사 현재 충남대 예술대 출강 미술회관 개관기념초대전·한국 현대조각초대대전·목우회초대전·평론가10인이 추천한 신예작가초대전·한국구상조각회 로마전 주관·국제청년작가 야외전·한이조각가교류전·한국조각가협회전및 해마다 홍익조각회전·한국구상조각회전·국전초대작가전·현대미술초대전·원로중진조각초대전·MBC구상조각대전·대한민국 미술대전초대작가 국내외 그룹초대전에 수십차례 참가 목우회공모전 동아일보사장상·목우회공모전 문교부장관상·국전국무총리상·목우회공모전 최고상·국전 국회의장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어린이대공원 워커힐미술관 럭키·금성사옥 제천시청 한일은행본점 한흥증권본점 남해화학 대전교구장 아라리오미술관 신라호텔 야외조각 전시장
  • 조선 서예 절정기 작품 한자리에/예술의 전당서

    ◎이황·한석봉 등 180명 명품 전시 중국에서 건너온 서예필법이 우리 고유의 예술로 발전,찬란한 절정을 이룬 조선중기의 서예작품들이 이달말 가을 정취 그윽한 서울 예술의 전당으로 일제히 나들이를 한다. 국내유일의 서예전문 전시관인 예술의 전당 서예관이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계속하는 「조선중기 서예전」이 바로 화제의 행사. 예술의 전당 미술부가 작년 6월부터 1년5개월여에 걸친 준비끝에 개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퇴계 이황,고산 황기로,원교 이광사,한석봉등 당대의 명필 1백80여명의 작품2백여점이 소개된다. 이중 이황의 「퇴도선생필법」은 보물548호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이며 율곡 이이의 「친필서간문」,황기로의 「초서시고액자」,한석봉의 「영낭호첩」등도 보물급에 준하는 희귀자료로 10여점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작가및 작품선정은 국내최고의 한학자 청명 임창순씨(전문화재위원장)와 최완수 간송미술관학예연구실장,한국서예사가 이완우씨(정신문화연구원)등 세명이 맡았다. 전시작은 국립중앙박물관,서울대박물관,성균관대박물관등 공공기관 소장품과 기타 70여명의 개인소장품들로 구성돼 있다. 역사학자들이 규정하고 있는 조선중기는 중종에서 숙종에 이르는 시기로 건국주체세력인 관학파들이 4대사화를 통해 퇴진하고 향촌사회에서 서원과 향약을 근거로 활동하던 사림파가 정치·사회·문화전면으로 부상하던 시기. 따라서 서예도 초기의 조맹부체가 극복되고 한석봉에 의해 독자적인 석봉체로 개발돼 국서체로 발전한다. 또 17세기 중반에 들면서 옥동 이서­공제 윤두서­백하 윤순을 거쳐 원교 이광사에 이르러 동국진체가 완성돼 조선고유의 서법으로 자리를 잡는다. 주최측은 서예의 이같은 시대적 변화를 쉽게 파악하도록 ▲송설체의 조선화 ▲초서의 명가 ▲석봉체의 형성과 전개 ▲명인들의 시서와 간찰 ▲양송체와 전예의 전통 ▲다양한 서풍의 발전 ▲동국진체의 맥락이란 7개의 소주제로 작품을 분류했다.
  • 내이름 떳떳이 내놓는 사회로/현길언 작가·한양대교수(일요일아침에)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사는 금융실명제의 성공여부에 쏠려 있다고 한다.이 제도의 성공이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는 길이 되기에 사회개혁 성공여부가 바로 여기에 걸려있다고 한다.그런데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가 한 단계 성숙해서 오늘의 사회에 팽배해 있는 정명성을 극복하는 일로 발전할 때에야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이름을 떳떳하게 내놓고 선택하며 행동하는 개인들이 모여사는 사회는 바로 이 익명성의 극복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렇게 될 때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는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틀에서 벗어나 소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다.정치권력,행정권한,고급 지식에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내가 갖고 있는 것,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익명성 극복 필여 우선 그 소유의 방법과 그 결과 얻은 것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방법이 정당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가질 사람은없을 것이다.그 다음 그렇게 얻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것」만이 아니고 「우리 것」이라는 공유개념을 가져야 한다.얻기까지는 물론 내가 생각하고 노력했음에 틀림없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어진 것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내 것」만은 아니다.그러기에 그것을 쓰거나 행사하는 일도 역시 「우리 것」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다.재물은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 관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소유에 대한 공유의식은 비단 돈가진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권력이나 행정권한과 그에 따른 업무,또는 일상인이 매일매일 일터에서 되풀이하는 일에 대해서도 그러한 인식은 필요하다.우선 그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야 한다.거기에서부터 질서가 확립되고 도덕성의 바탕이 이루어진다. 선거때 추악한 작태와 정치는 없고 정략만 판쳤던 우리 정치현실은 부정한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재화를 얻기위해 취했던 갖가지 편법과 불법에 뒤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더구나 더한 것은 그렇게 획득한 힘과지위는 더 큰 힘과 지위를 위해 제 멋대로 써왔음도,부정한 돈을 가진 사람들에 못하지 않았음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정명의 정치가 판을 독점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일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책임있는 정치가들은 많지 못했다. ○공유개념 지녀야 그러기에 한시대가 물러가면 모든 정치 공과는 오직 통치자 한사람에게만 돌렸고 이에 즐겁게 동조했던 이름을 숨겼던 정치꾼들은 바뀐 정치무대에서 새 배역을 받기위해 급급했다.다행스럽게 배역을 맡게 되면 새 감독의 지시에 따라 꼭두각시 연기를 즐겁게 되풀이했다.안타까운 것은 오늘의 정치현실도 이에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부 관리들은 자기 인격을 담보로 공공의 일을 수행하려 하지 않았고 고급 지식은 지위상승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직장인들의 일은 급료를 받기위한 노동으로 타락해 버렸다. 사람들은 지금이 새 사회 질서를 구축해야 할 전환기라고 말한다.새로운 질서를 위해서는 모두가 정명성에서 벗어나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선택해서 이름을 떳떳하게 내걸고 행동하는 풍토가 중요하다.자신은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며 그러기에 내가 소유한 것은 국민이 아니면 신이 내려준 것으로 생각해서 조십스럽고 진지하게 행사할 때 경제실명제의 또 다른 의미가 살아나게 된다.이러한 의식전환은 돈과 권력과 일을 많이 가진 사람들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경제의 실명화,정치와 행정의 익명성 탈피,지식의 익명성 극복,일의 노동성으로부터 해방은 시급한 도덕적 과제이기도 하다. ○모두 역사의 주인 이 가을 새벽에 거리에 널려진 낙엽을 쓰는 미화원이거나 청와대 회의실에서 국사를 논하는 정책 창출자이든 간에 그들의 일은 나의 일이면서 우리 일이고 역사의 작은 사건을 준비하는 일이다.비록 큰 강물에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에 지나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그리고 그 작은 빗방울 속에 내 작은 이름으로서의 혼이 녹아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면 모두가 역사의 주인이라는 감격을 이 아침에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비대조직 군살빼기 “경영수술”/공기업혁신안 배경과 방향

    ◎보수·휴가·학자금 등 12개과제 쇄신/지분 참여사중 26곳 민영화 대상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기업에 대한 대수술이 마침내 시작됐다. 정부가 21일 발표한 공기업 경영개혁 추진방안에서 정부투자기관 출자회사 99개중 77개를 처음으로 민영화대상으로 확정하고 투자기관의 통·폐합을 추진키로 한 것은 「군살빼기」를 강력히 실천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문민정부 출범이래 사회 각 분야의 거센 개혁바람속에서 유독 공기업만은 「사정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다.따라서 이번의 경영개혁은 『사정에 성역은 없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이다. 개혁방안은 세가지로 나눠진다.첫째는 한전등 23개 투자기관의 조직·보수관리등 12개 경영과제를 쇄신하고,두번째는 지분을 갖고있는 99개 출자회사중 77개를 대상으로 민영화작업을 추진하며 셋째는 필요성이 없어졌거나 기능이 겹치는 기관을 민영화 또는 통·폐합하는 것이다. 정부투자기관이나 이들 자회사를 민영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23개 투자기관의 자회사 99개(중복분 제외)중 민영화대상은 해외현지법인과 투자기관들이 공동으로 투자한 회사등 22개를 뺀 77개이다.이중 순수한 자회사 51개는 거의 전부 민영화할 계획이다.투자기관이 지분참여한 회사가운데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26개도 민영화대상이다. 경제기획원 문병학심사평가국장은 『단순히 지분만 일부 처분하는 것이 아니다. 증시사정때문에 지분을 다 처분하지 못할 경우 경영권을 민간에 넘기는 방법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77개 회사중 50개정도는 민영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3개 투자기관가운데 존재이유가 줄어들었거나 기능이 중복되는 통·폐합대상은 석공과 광진공,유개공과 가스공사,토개공과 주공 등이다.역할과 기능이 축소된 민영화대상 기관으로는 국정교과서,국민은행,기업은행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경영쇄신을 위한 12개 과제에 대해서는 적지않은 반발이 예상된다.휴가제도,대학생자녀 학자금 지급제도,주택관련 지원제도,조직관리,보수관리 등 종업원들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부투자기관 노조협의회는 벌써부터 『투자기관의 처우가 복지왕국으로 비치고 있으나 민간대기업의 70%밖에 안되는 보수에 대한 보상일뿐』이라며 정부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민영화 및 통·폐합 계획을 다음달 20일까지 해당 투자기관과 주무부처가 마련해서 연말까지 시행하거나 대상을 확정키로 했다.그러나 경영쇄신과제의 경우 노사간의 단체협상대상까지도 올해안에 끝내도록 지시함으로써 1년단위인 단체협상내용을 시한이전에 바꾸는 문제가 얼마나 순조롭게 이루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28조원의 매출액에 18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정부투자기관의 경영을 혁신하거나 민영화,통·폐합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슬이 퍼렀던 지난 80년 국보위시절 대폭 축소한 퇴직금 누진율에 대한 법정시비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무리되지 못한 실정이다. 경영개혁을 성공리에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관계자나 투자기관 경영진들이 대화를 통해 기존 혜택의 감축을 감수해야하는 노조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같다.
  • 진정한 권위와 억지 권위/김기수(일요일 아침에)

    영어로는 「인그로운 토우네일」이라고 한다.한국에서는 이것을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발톱 끝이 살속을 파고 들어서 몹시 아프고 간혹 출혈도 본다.큰 애가 어려서 이것 때문에 고생을 한적이 있다.어찌나 혼이 났던지 그 후로는 아예 발톱을 길게하고 다닌다. 그런데 이번에는 십수년만에 둘째가 이 증상을 앓았다.이 녀석은 평소 발톱이건 손톱이건 짧게 깎아 버리는 습관이 있는데 십수년만에 모처럼 고국방문을 하였다가 그만 오지게 당한 셈이다.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서울에 가있던 아내가 즉각 외과의한테 데리고 가서 수술을 받도록 조치했다. ○외과의사의 호통 내가 서울에 당도하니 두 발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고있는 이 녀석을 가리키면서 아내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수술을 받고 난다음 단둘이 있는 기회에 그동안 아이의 행동이 어쩐지 못마땅하다고 여긴 아내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그러나 둘째는 역정을 부리면서 『이 사람들을 믿을수가 없단 말야』하고 말했다.마침 지나가다가 이 말을 들은 외과의가 이 녀석을 단단히 야단쳤다.그요지인즉 『너도 한국사람인데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믿지 않으면 되느냐』는 것이었다 한다.아내는 아이가 한국말을 잘못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이런 실수까지 저질러 놨으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었다.고두사죄하고 아이한테도 사과를 종용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나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다.고2의 의과대학 지망생으로서 평소에 온순하고 생각이 깊은 이 놈이 그런 짓을 했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설사 그런 행동이 잘못이었다 치더라도 이미 꾸중을 듣고난 터다.그렇다면 일사는 불재이할 것 아닌가.나에겐 오히려 그 의사의 반응에 납득이 안가는 점들이 있었다.하나는 모자간에 주고받는 말을 설사 옆에서 들었다 치더라도 우정 참견을 하여 아이를 야단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어째서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을 믿어야 하는가 였다. 전자에는 환자의 불평을 봉쇄하고 의사로서의 권위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지 않았던가.후자는 분명 잘못된 말이었다.일상 거짓말을 좋은 뜻 나쁜 뜻으로 무수히 하는 한국사람들 간에는 사실 믿어서 곤란한 사람이 적지 않은 터다. 나는 그후 진료비와 약값에 대하여 별도의 영수증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러 그 외과의한테 갔다가 둘째가 『이 사람들을 믿을수 없다』고 한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무엇보다도 복잡한 상가2층에 자리한 이 외과의원은 병을 고치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만원의 대기실은 조그만 에어컨이 사력을 다해서 작동하고 있었건만 한없이 무더웠다.이 밀폐된 공간에는 창문을 여는 것말고는 환기를 할 방도가 없었다.그렇다고 공기정화기가 장치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있는 병이 낫기는 커녕 오히려 새 병을 얻어가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종사원들은 아예 친절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입원실이 딸려있는 이 외과의원의 벽에는 각종 예방주사와 병리검사,심지어는 임신판별검사의 수가를 알리는 쪽지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과연 한사람의 외과의가 이 모든 일들을 성실하게 해낼수 있겠는가 싶었다. ○시설 엉망인 병원 그러나 둘째가 화를 낸 큰 이유는 다른데 있는 듯했다.캐나다에서는 이런 간단한 수술후 주사는 커녕 알약 하나 주지 않는다.수술자리가 저절로 아물게 내버려 둔다.그런데 이 아이는 주사를 연거푸 두대나 맞았는데 그중 하나는 하필이면 젊은 간호원한테 그것도 궁둥이에다 맞았던 모양이다.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루걸러 한번씩 그 간호원한테 역시 궁둥이에다 똑같은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영어에서는 궁둥이라는 말이 욕이라는 것,동성애가 심한 나라의 감수성 예민한 고등학생 간에는 이것이 욕중의 욕이라는 것을 아는 분들은 아마 이 아이가 느낀 수모감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수술을 받은 두 발가락 가운데 하나는 며칠만에 나았으나 다른 하나는 두주일이 지나도록 아물지를 않았다.간호원 출신의 이모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외과의사한테 둘째를 데리고 갔다.아니나 다를까,먼저 외과의가 실수로 발톱 한 조각을 살 속에 남겨두었더라는 것이다. ○참된 권위의 의미 전문가임을 자처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이런 일이 남의 일같지 않았다.교수인 나도 권위를 가지고 학생들을 대한다.그래서 야단도 치고 골탕도 먹인다.만약 나의 학생들이 『이 사람 믿을수가 없단 말야』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물론 나의 교수경력은 그걸로 끝이다. 의사나 매한가지로 교수의 권위는 학위나 연구업적 같은 외형적인 징표에 의해서 입증이 된다.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학생 스스로가 그의 교수로서의 직분수행능력을 믿고 따르는 데서 생긴다.권위를 앞세워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으리라.오히려 내 할일을 빈틈없이 함으로써 내 분야에 관한 한 내가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리라고 다짐해 본다.앞세워진 권위는 무능을 은폐하거나 조장하는 구실을 하기 쉬우니까.
  • 「공기업 경영개선 과제」 발표

    ◎정부지분 50% 이상/65개 공기업주 매각/민영화·통폐합 내년부터 방만한 경영으로 비판을 받아온 23개 정부투자기관 및 투자기관의 출자회사중 정부의 지분이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민영화와 통·폐합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단행된다. 기능이 비슷하거나 설립목적이 이미 달성된 민영화 대상 기업으로는 통신공사,국민은행,기업은행 등이 꼽히고 있다.23개 투자기관이 출자한 1백3개 출자회사(기관별 중복 제외)의 경우 정부의 지분이 50%가 넘는 65개사의 지분부터 매각될 전망이다. 기능이 중복되거나 존재이유가 줄어드는 석탄공사와 광업진흥공사,석유개발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폐합도 추진된다. 8일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공기업의 경영개선 과제」에 따르면 자회사 등 공기업을 개혁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정비하기로 하고,경영쇄신 및 민영화를 추진하며 업무가 중복되거나 존재의 필요성이 줄어든 공기업은 과감하게 통·폐합하기로 했다. 민영화나 통·폐합은 증시에 미치는 영향과 근로자들의 신분문제를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하되 조직관리,보수,명예퇴직 제도,노조 지원문제 등 12개 경영개선 과제는 과감하게 추진할 방침이다.민간이 할 수 있는 사업분야는 최우선적인 민영화 대상이다. 정부는 오는 21일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위원회(위원장 이경식부총리)를 열어 경영쇄신 개선안을 확정,민영화 및 통·폐합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연말까지 확정키로 했다. 정부는 지난 87년부터 외환은행과 증권거래소등 5개 기관을 완전 민영화하고 포철·한전·통신공사 등 6개 기관의 지분을 일부 매각해 왔으나 증시침체로 증권거래소(완전매각)와 포철(34.1%),한전 주식(21%)을 매각했을 뿐이다. 신경제 5개년 계획에 포함된 국민은행과 기업은행 및 포철과 한전의 주식매각은 증시상황을 봐 가며 신축적으로 단행할 계획이다. 경제기획원 문병학심사평가국장은 『투자기관의 자회사를 대상으로 민영화를 추진한 뒤 투자기관의 민영화는 그 다음 단계로 실시될 것』이라며 『자회사 1백3개중 성격과 경영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경우 대상은 약 절반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금관상 영화제」 제도적 개선 절실

    ◎「문화」부문 출품자격 제한… 고작 4편 응모/작품성도 떨어져 최우수작도 못 뽑아/“「단편예술」분야 시상도 도입… 신예 감독 길러야” 금관상영화제의 제도적 개선책이 절실한 실정이다.금관상영화제는 문화영화 제작의 활성화와 청소년 영화인력 발굴을 위해 제정된 영화잔치.그러나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있다. 지난 24일 폐막된 이 영화제를 보면 청소년분야에서 모두 31편이 응모해 전창희·박주영씨(한양대 4년)가 출품한 「파라독스의 하루」가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하는등 8개 전부문에서 입상작을 냈으나 문화영화분야에서는 출품작이 적어 8개부문 가운데 김무현씨가 「오늘을 만든 옛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기획상 한 부문에만 선정됐을 뿐이다. 문화영화의 응모편수가 4편에 불과한데다 응모영화 또한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금관상 영화제는 상금 액수로 보나 영화제 개최취지로 볼때 청소년분야보다는 문화영화에 무게가 실려있다.상금만 하더라도 청소년분야 최우수작품상은 1천만원인데 비해 문화분야 최우수작품상은 3천만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영화분야의 응모작이 적은 것은 우선 출품자격을 제한한데서 비롯된다.영화진흥공사는 금관상 영화제 문화영화 출품자의 자격을 「극영화가 아닌 영화제작업자」로 한정하고 있다. 「극영화가 아닌 영화제작업자」는 대체적으로 CF제작자들이 해당된다.그러나 CF제작자들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출품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번째는 용어의 문제이다.문화영화하면 3공에서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영화관에서 본영화를 틀기전에 잠깐씩 상영해온 홍보·계몽영화를 연상하게 된다.더욱이 현영화법에서는 없어졌지만 문화영화라는 용어자체가 일제시대이래 구영화법에까지 사용됐던 일제의 잔재이다. 영화계에서는 이같은 이유등으로 금관상 영화제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의견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청소년분야를 계속 활성해 나가는 한편 문화영화분야를 폐지하는 대신 단편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분야로 나누자는 것이다. 또 「극영화가 아닌 영화제작업자」로 제한하고 있는 출품자격을 폐지하고 기성 극영화업자를 비롯해 영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하자는 것이다. 사실 단편영화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소홀하게 취급되어왔다.다만 최근 삼성물산이 CA­TV 영화부문 프로그램 공급업자로 선정되면서 내년부터 「단편영화제」를 개최하겠다고 하고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단편영화제야말로 영화인력 양산의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칸,몬트리올,베니스등 외국의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 부문을 중요시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또 몇년씩 조감독 생활을 한뒤 감독으로 데뷔하는 충무로 풍토에서는 유능한 예비 영화인력의 유입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더욱이 스스로의 책임아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과 조감독으로 감독을 돕는 것은 천양지차라는 것이 영화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때문에 영화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금관상영화제에 단편예술영화분야등을 개설하는등 제도적인 개선책이 마련되면 돈을 전혀 안들이고도 우리 영화 발전의 큰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폴리프로필렌에 옥수수전분 혼합/고분해성 「플라스틱 포장재」 개발

    ◎(주)미원/스티로폴 대체… 환경오염 줄일듯 환경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 제품이면서도 땅속에 묻거나 불에 태워 폐기처리하면 10년안에 완전 분해되는 환경적응형 포장재「고분해성 플라스틱 트레이(받침대)」가 국내 첫개발돼 본격 시판된다. 한국화학연구소팀과 미원중앙연구소 포장연구팀(장근우·유형근)은 최근 기존의 상품화된 플라스틱제품과는 다른 제조공정으로 10년안에 분해될 뿐 아니라 발열량을 감소시켜 폐기처분시 아주 빨리 분해되는 「고분해성 플라스틱 트레이」를 내고있다. 바이오플러스­P로 명명된「고분해성 플라스틱 받침대」는 스티로폴이나 PVC제품의 대체재로,쇼핑백으로 이용되는플라스틱 제품의 폴리에틸렌과 옥수수 전분을 섞은 기존제조공정과는 달리 폴리프로필렌에다 옥수수 전분및 광분해성 세라믹·규조토등 무기물을 섞어 발열량을 최소화한 제품.땅속에 묻거나 불에 태우면 10년안에 분자량이 1천이하인 미생물이 먹이로 이용되는 바이오매스로 전환돼 완전 분해되는 특성을 지닌 포장재이다. 장근우팀장은 『고분해성 플라스틱 받침대를 제조할 때 혼합되는 옥수수 전분이 수분에 민감해 책받침과 같은 형태인 쉬트로 뽑는 제조공정이 가장 어려웠다』며 『이 제품의 시판으로 석유화학및 국내 관련산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바이오플러스­P는 기존 PVC받침대 보다 열수축률이 크므로 받침대의 고정성이 우수해 유통중에도 잘 깨지지 않는다.포장재로 사용시 부피가 작고 쓰레기분량도 적다.또 옥수수 전분으로 인해 받침대에서 풀매긴 냄새가 나는등 한국적 정취를 느끼께 하는 것 등이 특징이다.
  • 서울시민 하루6시간47분 잔다/극동연,500명대상「생활스타일」조사

    ◎고학력·저연령일수록 늦게 잠자리/5명 가운데 1명은 아침식사 걸러 서울 시민들은 평균 6시30분대에 일어나 하오 11시40분대에 취침하며 5명중 1명은 아침식사를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대행사인 「극동조사연구소」가 최근 서울에 살고 있는 20세 이상 남녀 5백명을 대상으로 「일일 생활스타일」(9월17일 기준 시점)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상시간을 묻는 항목에서 「6∼7시 사이에 일어난다」고 답한 응답자가 38.8%로 가장 많았고 다음 「7∼8시 사이」 25.3%,「5∼6시사이」 17%의 순으로 나타났다.취침시간은 「밤11∼12시」(30.3%),「자정∼새벽1시 사이」(27.2%)로 나타나 거의 자정을 전후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수면시간은 7시간대가 29.6%로 가장 많았고 평균 6시간47분이었다. 또 고학력·저연령층일수록,생활수준이 높을 수록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는 비율이 높았는데 20대의 경우 평균 취침시간이 12시17분,30대는 11시44분,40대 11시15분,50대는 10시46분이었다.학력별로 보면 중졸이하가 10시46분,고졸 11시40분,대재이상 12시이상이었고 수면시간은 고학력일 수록 적었다. 또 응답자의 20.2%가「아침식사를 하지않았다」고 대답했다. 한편 가족을 제외,평균 6.46명의 사람과 접촉한다고 답했는데 하룻동안 한명도 접촉한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도 14.3%나 되었다.가정주부 응답자의 경우 5명중 1명이 하루에 한명도 외부인을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폐쇄된 환경에서의 가사생활이 주부 스트레스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 하룻동안 업무를 제외한 개인적인 전화 사용횟수는 평균 2.4통,한통화당 시간은 4.5분이었는데 개인통화를 한건도 하지 않았다는 사람도 22.9%로 상당수 되었다.
  • 프랑스의 「문화제국주의」/이용원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외규장각도서를 모두 돌려주겠다』는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의 약속과는 달리 프랑스 국내의 분위기는「결코 돌려줄 수 없다」는 쪽인듯 하다. 최근 외신을 타고 들려오는 프랑스내의 반응을 보면 국립파리도서관은 항의의 표시로 지난 19일 열람석 개방을 거부했으며 문화부장관에게 항의문을 보내는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또 언론이「외국 문화재 반환은 잘못」이라며 책임소재를 따지자 고문서반환 주무부서인 문화부가『엘리제궁(대통령집무실)의 직접적인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발뺌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프랑스인이 자랑하는「문화의식」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그들이「문화국민」의 자존심을 내세워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니 말이다. 한때 강력한 제국주의국가의 하나였던 프랑스는 세계 각국에서 약탈한 수많은 문화재를 현재 루브르박물관·기메박물관·국립파리도서관등 유수한 공공시설에 소장하고 있다.그러나 많은 문화재들이 기초적인 가치평가조차 받지 않은채 창고속에 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 2백97책도 그들이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문화재이며 지난 70년대 중반 한 한국인 여성에게 발견되기 까지는 국립파리박물관 지하창고에서 먼지만 켜켜 안고 있었다. 그들이 단지 소유하고만 있었던 외규장각 도서에 이름을 찾아주고 가치를 되돌려준건 분명 우리가 한 일이었다.또 앞으로 그 전적들을 보다 귀중하게 간직하고 세밀히 연구할 사람들도 바로 우리이다. 미테랑대통령과 함께 방한했던 자리주 기메박물관장은『문화재란 인류보편의 가치이니만큼 인류공동의 것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게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프랑스가「문화대국」이니 외국의 문화재라도 프랑스에서 보관·전시하는 것이 서로 좋은 일 아니냐는 투다. 외규장각 도서반환과 관련해서 프랑스인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결코「문화적」인게 아니다. 『남의 귀중한 것을 빼앗아왔더라도 물건이 일단 내 손에 있는 이상 그것은 내 것이다.그것이 원래의 소유자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는 알바 없다』는 그들의 태도는,우리는「문화애호 국민」이 아니라「문화 제국주의자」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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