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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시대] ‘수사반장’ 권태하 극작가의 대변신

    [인간시대] ‘수사반장’ 권태하 극작가의 대변신

    80년대 말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의 극본을 쓴 장본인이, 극작가에서 풀뿌리 문화를 가꾸는 ‘문화원 전도사’로 변신해 눈길을 모은다. 주인공인 서울 동대문문화원 권태하(63) 사무국장을 지난 22일 오전 답십리동 산 1의121 ‘촬영소 고개’ 쪽 문화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60평생 살면서 이렇다 하고 내놓을 자랑거리란 게 없는데 뭘….” 그는 이런 말로 입맛을 다시며 일순 당황케 하더니 “그런데 글 쓰는 일 말고, 아니 일생껏 완결편이라 할 소설이 몇해 전 8·15 무렵에 내게서 탄생했지 뭐요.”라고 덧붙였다. 손사래를 쳐가면서까지 인터뷰를 사양하며 “문화원 얘기나 나누자.”는 통에 낭패감을 맛봤다가 겨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던 기자가 물었다.“어떤 일을 두고 한 말씀인지.”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권 국장은 “사실 처음에는 드라마로 만들 생각에 시작했는데, 역사적 의미를 남길 수 있다면 뜻을 이룬 것이라는 판단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그런 뒤 원목을 다루는 무역회사에서 인도네시아로 파견돼 일하던 1980년대 초로 기억을 더듬어갔다.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은 한국인’ 밝혀내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불리며 국민영웅묘지에 묻힌 당시 야나가와 시치세이(梁川七星)가 한국인이라는 확신으로 끝까지 추적해 10여년 만에 명예회복시킨 일화를 들려줬다. 양씨란 성(姓)은 물론, 칠성이란 이름을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연세대 국문학과 출신이다. 양칠성은 일제 때 일본군 군속으로 갔다가 현지 여인과 결혼해 눌러앉게 된 인물이다. 일본의 패망 뒤 인도네시아를 350여년간 지배한 네덜란드의 재식민지화 야욕을 꺾는 게릴라 대원으로 이름을 떨치다 네덜란드군에 붙잡혔고, 끝내 총살의 비운을 맞았다. 권 국장은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 등 요로(要路)에 양칠성의 호적과 영문 번역본을 보냈으나 메아리는 없었다. 마침내 95년 그는 ‘양칠성 이름 찾아주기 시민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일주일 만에 6000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외무부에 진정서를 냈지만 역시 호응이 없었다. 결국 청와대에 진정한 덕분인지 그해 7월 양칠성은 국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주민 참여 문화행사 정례화 “글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월 2회 아파트단지 등을 돌며 주민참여 행사를 벌이는 ‘찾아가는 문화원’과 5월 ‘배봉산 아카시 큰잔치’ 등 동대문문화원 운영에 힘쓸 각오입니다.” 79년 한 방송국의 1000만원 고료 드라마 공모에서 당선돼 극작가로 입문한 그는 60년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로 건너가 정글을 개척한 한국인의 실화를 그린 실명소설 ‘그들은 나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94년) 등 3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등 저서도 다수 동대문구에만 77년부터 30년 가까이 살아 ‘동대문 토박이’를 자부하는 권 국장은 지역언론사 운영 등 직업일선에서 은퇴한 뒤인 94년부터 뜻있는 지인들과 함께 힘을 모아 98년 동대문문화원 창설에 참여했다. 최근엔 항공사 직원으로 공항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밀수범들의 세계를 담은 새 소설의 초고(草稿)도 마쳤다. 내년 초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책에는 당시만 해도 생리대를 검색할 엄두를 못냈던 허점을 노려 생리 때에 맞춰 공작(?)을 수행하는 여성 밀수범, 조직과 의기투합한 공항 직원들의 검은 손, 신문을 도배했던 대형 사건에 얽힌 뒷얘기가 얽어지죠.” “여러가지 여건이 도와준 덕분에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은 사건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아니면 아무래도 쓰기 어려운 소재이지요. 책 나오면 팔리는 것 봐가며 소주 한잔 합시다.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최영도 인권위장 사의 안팎

    최영도(67)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게 다른 문제도 아닌 부동산 투기의혹은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나 무거웠다. 결국 최 위원장은 투기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인 18일 전격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인권위 위원장에 취임한 지 85일 만이다. 사실 최 위원장은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물러날 만한 사안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자신의 잘못이 ‘여론을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인생을 회고하건대 지금까지 돈과 권세와 지위를 추구하면서 살지 않았고, 그런 인생을 살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패소전문’이라고 자조했을 만큼 시국 및 인권사건 전문 변호사였던 최 위원장은 사실 우리나라 문화재 기증문화의 선구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2000년 자신의 표현대로 20년 동안 ‘커다란 빌딩은 하나 족히 샀을’ 정도의 비용을 들여 모은 토기 1578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이 올 가을 개관하며 ‘최영도 기증실’을 별도로 만들 계획일 정도로 수준 높은 컬렉션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사회공헌에도 투기의혹에 대한 ‘건물 밖’의 분위기는 달랐다. 여론은 일제히 부동산 매입을 위한 위장전입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등을 돌렸다. 인권위원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공동대표로 있던 참여연대마저도 그의 사퇴를 준열히 촉구했다. 이날 밤 반포동 자택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기자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친정’격인 참여연대의 사퇴 촉구를 두고 “예상했던 바이고, 나로 인해 몸담았던 단체들이 부담을 갖거나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성명서를 읽어 보니 고심의 흔적이 보이더라.”면서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더구나 장남의 위장전입 의혹에 “몸이 불편한 장남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려고 임야를 아들 이름으로 등기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잦아들기는커녕 둘째·셋째아들에게까지 ‘불통’이 튈 기미를 보이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 듯하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사설] 공정위와 광진공 혁신 과잉이다

    복지부동,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공직사회에 혁신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행정자치부는 본부·팀제 전면 도입계획을 발표해 서열파괴, 성과위주 조직혁신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무분별한 혁신 과잉적 발상에 부작용을 우려하는 눈길도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거래 제재 목표치 설정과 광업진흥공사의 상임이사 직선제 도입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정위는 올해 기업 불공정행위 제재 건수를 최근 3년간 평균보다 20% 상향조정해 141건을 달성하겠다고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신문고시 위반 시정조치건수도 20%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앞뒤가 잘못됐다. 공정위의 존재이유는 공정한 시장경쟁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지, 제재건수를 높이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교통경찰이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있지, 위반딱지 떼기 위해 있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성과위주 행정쇄신 바람이 낳은 부작용이라고 본다. 성과목표 설정이 전도된 경우다. 광업진흥공사는 상임이사 2명을 사전 후보도 정하지 않고 사원 전원이 각자 자신이 추천하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써넣는 방식으로 투표해 선출했다. 인사혁신도 좋고 서열파괴도 좋지만 공기업 이사는 사장과 함께 국민의 재산인 공기업 경영에 책임을 지는 막중한 자리다. 공모제도 아니고, 자격기준도 없이 사내투표에 맡긴 것은 인사의 기본을 무시한 것이다. 사내 파벌 형성 등 부작용은 그 다음 얘기다. 정부혁신은 시급한 과제지만 최종 목표는 국민에 대한 봉사가 돼야 한다. 과잉혁신은 오히려 국민에게 부담만 준다. 행자부의 팀제 등 각종 혁신논의에 과잉의 요소는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 정운찬 총장 교육부직원특강 전문

    한국 대학의 현실과 이상 1. 대학의 위기론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위기, 고등교육의 위기론이 들려온지도 제법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의 대학이 짧은 시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감당해온 성취에 대해서 객관적인 인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의 유례없는 발전의 배후에는 물론 전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과 참여가 있습니다만, 그러한 성취동기를 교육을 통해 승화시키고 전문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대학의 기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백년에 걸쳐 대학제도를 발전시켜 왔던 구미의 경험과는 달리 한국의 대학은 그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이웃 일본에 비해서도 우리는 매우 짧은 시기에 변화와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한국 대학이 수행해온 역할과 수고에 대한 응당의 평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대학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사회로부터 대학에 요구하는 것이 달라졌고, 학생들이 교수와 맺는 관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분화된 학문체제, 입시제도, 교육방식과 학교운영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상들도 자꾸 출현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며 복합적입니다. 한국경제의 발전 수준에서 볼 때 연구의 수준과 교육의 질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론이 이야기되다가 이공계 위기론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급격히 변화하고 달라지는 사회를 대학이 채 따라가지 못해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염려도 있습니다. 기업들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별로 쓸모가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입시제도를 둘러싸고 학부모들과 중고등 학생들의 불만도 적지 않은 듯 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대로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대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부적합성과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제도적 노력을 개혁이라고 한다면 대학도 현재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있음은 분명합니다. 2. 세계화, 정보화, 신자유주의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고등교육, 대학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요? 어떤 분들은 교수진을 탓하고 어떤 분들은 학생들의 질을 탓합니다.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위기의 요인들임은 분명합니다만, 보다 원천적으로 위기의 성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위기상을 지나치게 특수한 것, 즉, 우리만의 잘못된 현상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학들은 유사한 문제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선진적인 대학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대학개혁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국 대학의 위기상도 20세기 말 이후의 세계사적 변화와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저는 크게 세가지 현상이 위기의 배후에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계화입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상호작용의 빈도가 급증하면서 많은 영역에서 표준의 세계화, 즉 글로벌 스탠다드의 강화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나라별로, 지역별로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존립이유를 찾아오던 제도나 기관, 관습들이 이 압력앞에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영어권이 아니면서 문화적인 축적 수준이 높은 아시아 국가의 대학들이 더욱 심한 몸살을 앓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전달 매체의 발달에 따른 사회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정보의 산출과 유통방식이 지금까지와는 현저하게 달라지면서 전통적인 지식생산과 유통의 책임기구였던 대학의 위상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성적 담론 대신 감성적인 이미지가 더욱 중요시되는 변화도 함께 등장합니다. 지식을 전수하고 공유하는 절차도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대학의 위기를 가져오는 요소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의 확산을 들 수 있습니다. 시장과 경쟁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서 효율성을 극대화 하려는 논리가 큰 힘을 얻게 되면서 대학의 안팎에서도 경쟁논리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수들의 연구나 교육도 무한경쟁의 시스템 속에서만 더욱 발전하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대학간에도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기업처럼 홍보전략이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대학이 기업연구소나 여타 지식정보기관들과 지식생산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 대학의 위기론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연구와 교육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이 선진국대학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는 관점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스템구축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도 위기나 개혁이 이야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대학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시각도 좀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럼에도 무엇이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대두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이해와 대응이 없이 한국대학 만의 미시적 문제로 접근해서는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한국적 특수성 그러나 한국대학의 위기상은 한국적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대학이 차지하는 엄청난 사회적 위상에 비해 대학 자체의 존립기반은 매우 취약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특수한 위기를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대학입시 뉴스가 사회의 톱뉴스가 되고, 대학 정책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 되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의 대학입학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교육에 온 정성을 다 쏟는 것도 한국사회의 두드러진 모습니다. 사교육비가 큰 경제부담으로 되는 사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대접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유난히 강한 곳도 한국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대학의 위상이 한국처럼 강한 사회도 찾아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 반면에 한국사회에서 정작 대학의 존립기반은 매우 취약합니다. 한국 근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대학이 과연 무엇하는 곳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먼저 제도적으로는 대학이 자신의 교육철학과 연구여건을 독창적으로 구축해나갈 자율성과 내적 권위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정부의 대학정책 역시 자율성과 대학개성의 확립이란 점에서는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재정적으로는 대학이 연구와 교육에 지출하는 수준은 결코 충분하지 못합니다. 국립대학은 국립대학대로, 사립대학은 사립대학대로 우리 대학의 재정은 선진 교육과 연구를 감당하기에 한참 부족합니다. 사회적인 관심은 대단하면서도 정작 대학자체의 자율적 역량과 지적 권위는 뚜렷하지 못한 괴리로 인해 대학은 늘 대학외적인 문제들로 휘둘려온 감이 있습니다. 때로는 정부로부터, 때로는 기업이나 시장으로부터, 때로는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다양한 요구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진정으로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오히려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대학이 지성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독자적인 권위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대학에게 점점 더 당장 쓰여질 기술교육, 전문교육을 요구합니다. 대학을 기업연구소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 그로 인한 대학교육의 파행을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대학을 자녀의 입시관문이란 잣대로만 바라봅니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실상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도 입시만은 최대의 관심대상이 됩니다. 정부기관이 대학을 행정과 규율의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사례도 종종 경험합니다. 잠시 저희 서울대학교의 예를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대학이 나름대로의 장점과 수행해야 할 지적 과제들이 있다고 봅니다만 특히 서울대학교가 한국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뛰어난 연구자들을 기르고 전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지식산출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서울대학교의 연구여건은 매우 열악합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식 산출기관임에도 정작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크게 부족합니다. 대학 본연의 역할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연구와 교육 자체와는 거리가 먼 일들로 대학의 지적자원이 소진되어야 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입시제도의 난맥상 못지 않게 대학이 뚜렷한 자기비전을 갖고 독자적인 연구와 교육의 내실을 키워가지 못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심각한 위기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서울대학교 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대학과 사회 간에 서로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의 편차가 커지고 상호작용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야기되는 혼란과 불만,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대학이 존립이유와 자기정체성을 뚜렷하게 확립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위기의 징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위기극복을 명분으로 시행된 여러 가지 하향적 제도 개혁이나 정부간섭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측면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기는 반드시 대학 내부의 문제라기 보다는 대학-사회-정부가 한데 얽혀 있는 구조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4. 개혁의 방향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매우 상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이라는 제도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 본래적인 의미를 재확인하는 작업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이 우리 사회에 ‘진리’의 존재와 그 불멸의 가치를 알려주는 지성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고답적인 도덕공동체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세속적인 이해관심에 좌우되는 공리주의에 지배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저는 대학의 이런 정체성이 위협을 받는다면, 안팎의 어떤 요구나 강요에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변함없는 역할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교육과 연구입니다. 이 둘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교의 사정과 여건에 따라 둘 중 어느 한곳에 더욱 집중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양자는 대학의 존립근거입니다. 오늘날 대학교육은 너무도 기능위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는지 저는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때로는 막스베버가 말한 ‘비지성적 전문가’들만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기조차 합니다. 개인의 명예나 출세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과 인류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지한 젊은이들을 키우는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학이 대중교육기관처럼 일반화되기 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한 사회의 엘리트 집단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입니다. 대학은 단순한 지식전수기관이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학생들이 즐거워할 취미활동이나 당장 쓰여질 기술교육의 장소도 아닙니다. 대학교육은 학생들의 잠재적인 지적 재능을 키워내고 그들이 창의적이고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길러내는 최고수준의 가르침입니다. 때로는 힘든 훈련을 거쳐 유능한 연구자를 키워내는 과정이어야 하고, 냉정한 평가를 통해 지적으로 단련된 지성인을 키워내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분기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사고할 줄 아는 식견과 혜안을 길러주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대학교육이 내용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고급스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이런 기대와 매우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보는 바대로 오늘날 뛰어난 인재들이 고시공부로, 의대진학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 사회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단일한 가치를 추구하고 당장에 쓰여질 효용과 개인적 안락만을 중요시할 때 그 사회의 발전 잠재력이 약화될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이 이차적이고 직업적인 훈련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의 존재이유가 그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직접적 효용성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진리 그 자체, 연구 그 자체의 의의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성찰성을 중시하는 인문학적인 연구나 실험논리를 중시하는 자연과학적 연구는 그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최근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대한 이분법적 논의를 자주 접합니다만,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과학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함께 중시되어야 할 대학의 본령이 연구입니다. 자발적인 연구를 지원하고 진지한 연구성과를 존중하는 학문적인 분위기가 대학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한국대학은 여전히 선진국으로부터 최신의 지식들을 도입하고 전파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우리 자신이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지식을 산출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해방후 50년이 훨씬 넘은 역사 속에서 여전히 지적인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급속한 경제발전, 민주화, 남북관계의 변화, 정보사회로의 이행 등 한국사회가 보여준 현대사의 족적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현상임에도 아직 우리 대학이 이를 세계학계에 내놓을 수준의 연구물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절실합니다. 한국의 대학은 연구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너무 빈약합니다. 교수들의 연구를 진작시킨다는 명목으로 요즈음 경쟁논리가 곳곳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분명히 교수사회도 좀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연구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자기쇄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경쟁구조와 관료적인 평가논리가 곧 연구역량의 강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연구에는 연구자의 각오와 역량 못지 않게 연구를 가능케 하는 여건과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자연과학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인문사회과학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구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각종 인프라와 행정지원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자만을 다그치는 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해야 할 젊은 교수들이 살아남기 위해 쏟아야하는 땀이 진정으로 연구작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도적 강요로 인해 창조성을 잃고 연구역량을 소진해 가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개별연구자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조직입니다. 또한 다양한 사고와 행동이 인정되고 공존하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전체적인 의사소통과 의사결정과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민주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민주적 의사결정은 추진력의 빈약함으로 귀결된다는 오해가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토론되고 그 속에서 결집된 의사가 확인될 수만 있다면 어떤 결정이나 개혁적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사회에 좋은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개혁과제의 하나입니다. 대학마다 여건과 상황이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각 대학이 자신에 맞는 최적의 구조들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 본연의 특성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강요나 요구로부터 자율적인 권위를 민주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학부모나 기업, 정부 당국 등은 모두 대학이 스스로의 권위를 지적인 차원에서 구축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의 권위를 우리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고, 대학을 행정기관의 하나로 보거나 투자기관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장기적으로 대학 자체는 물론이고 우리사회에도 큰 손실을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제도만능주의적 사고도 재고할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제도의 도입이 곧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 가진 문제 자체가 복잡 다양하며, 여러 대학간의 사정이 또한 다릅니다. 국립대학의 여건과 사립대학의 여건이 다르며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의 여건 또한 다를 것입니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틀 위에서 각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개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사회의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대학입시와 졸업이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대학개혁의 핵심은 오히려 대학본질의 회복, 다시 말해 지성의 권위를 확립하고 창조적인 지식생산의 능력을 배양하며 지적이고 비판적인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저희 경우를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서울대학교가 지역균형선발제를 비롯한 다양한 선발기준을 모색한다거나, 국내외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연구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지식공동체로 개혁해 보려는 구상을 하는 이유도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각 대학마다 구체적인 형태는 달라도 대학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유사한 개혁과제들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대학이 자율성과 독창성을 가진 교육과 연구의 중심지로서 제 기능을 더욱 강화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대학개혁의 근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
  • 에코가 말하는 ‘문학의 즐거움’

    이탈리아의 세계적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73)의 2002년 발표작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강의’(열린책들)가 나왔다. 문학과 관련된 에코의 강연록과 에세이들을 엮은, 문학이론서이자 작가 자신의 문학편력기. 문학의 기능, 에코 자신의 소설쓰기 방식 등을 다룬 18편의 글이 실렸다. 에코는 문학의 존재이유를 “문학 그 자체의 즐거움에 있다.”거나 “문학은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말하며,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준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그가 얼마나 문학, 나아가 ‘문학인됨’을 사랑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인간의 집단적 유산인 언어를 생생히 한다.”는 말로 문학의 면모를 밝힌 에코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그 가치를 웅변하기도 한다. 단테 없는 이탈리아, 호메로스 없는 그리스 문명, 루터의 ‘성서’번역이 없는 독일의 정체성, 푸슈킨 없는 러시아, 건국신화의 서사시들이 빠진 인도문명…. 굳이 에코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문학세계를 변론하는 글에 유독 시선이 머물 독자들도 있을 법하다.‘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라는 글에서는 작품을 위해 어떻게 현장답사를 했는지, 문체와 글쓰기 습관을 놓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털어놓았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논술이 술술]역사란 무엇인가 /E.H.카아

    자연의 변화처럼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삶과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앞서 역사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앞선 시대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노력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어떤 특정한 역사 상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조건 아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과 사회는 역사의 산물로서 그저 떠밀려가기만 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지금까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늘 자신의 현실을 스스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왔다. 따라서 인간이 역사적 존재라는 말은 인간이 역사 상황의 수동적인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어떤 특정한 역사의 조건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역사의 조건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역사적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과 ‘우리 사회’에 대해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도 역사를 바로 알아야만 한다. 역사 조건과 관계 없이 일어나는 사회 현상은 없으며, 또한 역사 밖에서 살아가는 인간도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로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더 근원적으로 알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도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책을 많이 본다고 해서, 과거의 사실들을 많이 배운다고 해서 역사를 바르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 이전에 올바른 관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역사 이해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가 지니고 있는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역사’는 과거의 인간 활동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 우리 앞에 객관적인 대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인간의 모든 활동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역사적 사실과 정보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선별되고 재구성된 것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나아가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언제나 ‘역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며, 그 ‘역사들’ 가운데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려면 역사를 이해하는 올바른 관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관이란 결국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과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현재의 문제 인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서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 바로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은 모두 6개의 주제로 역사 이해와 관련된 중요한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 주제들은 역사학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관련된 여러 철학적 쟁점과 주제들을 접근하는 데에도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생각해보기 -역사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역사가와 역사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해보자. -역사를 바라보는 데 ‘실증주의’가 지니는 한계는 무엇인가.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라는 영웅사관이 지닌 문제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이라는 카아의 관점에 근거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3∼고3 -관련 교과:국사, 한국근현대사, 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20세기의 사람들(한겨레신문사), 세계사 편력 1∼3(네루·일빛),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유시민·한샘출판사). 역사의 교훈(윌 듀란트 외·범우사), 역사에세이(장수환·동녘), 역사 이야기(정옥자·문이당) -기출논제:2004학년도 경희대 정시 논술,1996학년도 이화여대 정시 인문계 논술,1998학년도 서강대 정시 인문계 논술
  • 이재오의원 “박대표 중심 당 추슬러야”

    “당은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계기로 출발해야 하지 않느냐.” 행정도시특별법 무효화 투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4인방’의 일원인 이재오 의원은 4일 김덕룡 원내대표의 사퇴 선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경험있는 김 원내대표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당을 다시 화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지도부를 겨냥한 행보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표의 사퇴도 요구하나. -이번은 원내전략의 부재이기 때문에 대표 책임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따로 나눈 이유가 책임 소재를 나누자는 것이니까 이것을 대표에게까지 가져가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향후 당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기회에 당이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도 당 대표를 제외한 모든 당직자들이 일단 총사퇴 의사를 보이고, 대표는 당을 새롭게 추스르는 것으로 한번 중간평가의 계기로 삼는 모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당에 있어서의 잘못이 있을 때 책임의 소재를 핵심적으로 최소화시키는 것이 관례다. 박세일 정책위원장이 사퇴하고 정조위원장도, 전략기획위원장·공천심사위원장도 내놨다. 기존 당직자가 총사퇴하는 것이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것이다. 총사퇴는 개인 의견이다. 향후 비대위의 투쟁은. -행정수도 지키기는 당 내분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비대위는 수도 이전을 막기 위해 출범한 것이니까 앞으로도 회의를 통해서 계속 논의할 것이다. 당장 해체할 일은 없다고 본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책꽂이]

    ●대중문화속의 현대미술(토머스 크로 지음, 전영백 옮김, 아트북스 펴냄) 아방가르드 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탐구해온 미술사가의 비평을 담았다. 잭슨 폴록, 앤디 워홀,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등을 둘러싼 생생한 에피소드와, 이들이 20세기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1만 8000원. ●상군서(장현근 편역, 살림 펴냄) 중국 전국시대 정치적 풍운아였던 상앙의 사상을 담은 부국강병의 지침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군주는 그 본성을 이용해 법에 의해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게 기본 요지다. 잔혹한 군국주의 사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8900원. ●건축으로의 여행, 벽(에블린 페레 크리스탱 지음, 김진화 옮김, 눌와 펴냄) ‘벽’이라는 건축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벽이 우리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며 발전되었는지를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넘나들며 살펴본다.1만원. ●무통문명(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창익·조성윤 옮김) 한 철학자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사색이 담긴 책. 쾌락을 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현대 문명, 즉 ‘무통문명’하에서 미래문명이 만들어내는 인간은 혼수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묘사한다.1만 8000원. ●일본의 신화(요시다 아쓰히코·후루카와 노리코 지음, 양억관 옮김) 일본 신화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세계 각지의 신화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사기’와 ‘일본서기’ 등 옛 문헌을 중심으로 일본 신화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설명했다.1만 2800원. ●조피 숄 평전(바버라 라이스너 지음, 최대희 옮김, 강 펴냄)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대학가 운동권의 애독서였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주인공 조피 숄의 삶을 그린 책.1940년대 나치의 광기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을 때 독일 대학생이었던 조피 숄은 오빠 한스 숄과 함께 반나치운동을 펼치다가 붙잡혀 처형됐다.1만 3000원. ●위대한 가르침을 찾아서(P D 우드펜스키 지음, 오성근 옮김, 김영사 펴냄) 러시아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지은이가 그의 영적 스승이었던 구르지예프를 만나 경험했던 강의와 대화내용을 기록했다. 코카서스 지방에서 태어난 구르지예프는 티베트와 이집트,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여행하며 티베트교, 수피즘, 기독교의 신비주의 등 동서양 정신세계의 진수를 섭렵했다.2만 4900원.
  • [열린세상] 할머니 가설/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한시절 내 수업을 들었던 한 여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결혼을 하고 나서 5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터라 반가웠다. 그 친구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랬다. 한동안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가 좀 자랐으므로 다시 일을 하고 싶었다.‘그럴듯한’ 정규직 신규공채 시험에는 나이제한이 있다.20대 후반이면 이미 연령제한에 걸린다. 결혼한 여자가 정규직으로 재취업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서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은 연수중이다. 그녀는 과거 5년의 역사를 이처럼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4살짜리 딸아이는 누가 보살펴 줄 것인지 물어보았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시고 자기는 어머니께 수고비를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탁아와 보육시설이 빈약한 우리사회에서, 남아도는 나이든 여성들이 새로운 세대를 보살피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크리스틴 혹스의 할머니 가설이 떠올랐다. 생물학적인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의 존재이유는 오로지 재생산에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재생산을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절대명령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죽을 때까지 생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 여성은 50세 전후하여 폐경(완경)을 맞이한다. 재생산 능력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잉여의 존재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가?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현상이었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제시된 것이 할머니 가설이다. 나이든 여성들은 직접적인 재생산은 마감했지만, 다른 여성들이 재생산한 존재를 보살펴 줌으로써 끝까지 재생산과 관련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가족과 사회 전체적으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은 다른 세대를 보살피는 데서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찾는다. 여러 연구조사에 따르면 보살펴줄 대상이 있는 할머니들이 독거노인들보다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들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할머니 가설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부르짖고 있다. 많은 여성단체들의 올해 사업목표가 일자리 창출이다. 저출산을 우려한 국가정책에 발맞춰 여성운동계 역시 대안적인 가족보다는 안정적인 이성애 가족의 재생산을 위한 모성보호와 탁아와 보육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방점은 여성이 아니라 가족에 있다. 정부는 여러 여성 NGO 단체들이 오랜 세월 동안 구축해놓은 인프라를 통해 손쉽게 사회복지 차원의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다. 보육, 탁아, 간호, 보살핌 등은 나이든 여성노동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 나이든 여성들에게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사회복지수당을 주면서, 차세대, 혹은 사회적 약자 등을 돌보는 일을 맡기면, 빈곤노인의 일거리창출, 노년의 보람창출, 의료비절감 등 국가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기계화로 인한 일자리의 격감을 우려하면서 ‘노동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NGO와 같은 제3섹터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할머니 가설이야말로 그런 주장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보면 할머니 가설은 여성의 노동력을 철저히 동원함으로써 사회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결과 비정규직, 저임금, 불안정 여성노동예비군을 확실하게 만들어내게 된다. 여성노동운동이 예전에는 착취의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삼았다면, 이제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인해 착취는 정치적 화두가 못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사회는 착취당해도 좋으니, 일자리를 달라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에 처해있다. 열심히 일자리를 창출한 결과 값싸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냄으로써 오히려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모든 일자리의 비정규직화에 우리 모두 기여해왔는지 모른다. 할머니 가설이 그런 아이로니컬한 상황에 일조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 “한국의 경제침체는 美 우파정책 도입 때문”

    “한국의 경제침체는 美 우파정책 도입 때문”

    우리 경제가 투자부진과 실업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은 좌파정책이나 반미주의가 아니라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는 이같은 내용의 ‘기업집단과 경제정책’이란 논문을 25일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중진국 함정 속의 한국경제’ 토론회에서 발표한다. 신 교수는 미국식 교육에 젖은 경제엘리트들이 신자유주의를 서투르게 도입, 한국경제를 망가뜨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기업집단 재벌’ 일부 긍정적 평가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각광받던 재벌은 IMF 위기 직후 ‘부채를 잔뜩 짊어진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부정적 문구와 동의어가 됐다. 이 때문에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재벌개혁이다. 신 교수는 그러나 재벌을 ‘기업집단’으로 개념화한 뒤 ▲초기자본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내부거래 등을 통해 필요한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선진국에 비해 자본과 기술에서 열세에 놓인 후진국으로서는 그나마 있는 자본과 기술이라도 한데 모아 효율적으로 쓰는 게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거래를 악으로 규정하는 재벌개혁론과 달리 신 교수는 내부거래를 재벌의 ‘존재이유’로 파악했다. 재벌들에게 차관을 집중적으로 뿌려줘 경제성장을 이끌어 갔던 박정희시대 프로젝트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난점은 있다. 이 모델의 현실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재벌체제가 낳은 갖가지 부작용까지 모두 정당화할 수 있다. 신 교수 역시 내부거래가 지나치면 “새로운 사업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게 되고, 기업집단의 확장이 “정부와 특수관계에 바탕을 두면 해당 기업집단은 성장하더라도 국민경제는 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경유착, 개발독재를 정확히 짚는 언급이다. 그렇다면 재벌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신 교수는 우선 재벌 확장을 막는 각종 금융규제를 철폐해 산업금융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내부거래를 허용하되 주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일정 수준에 머물러야 하고 ▲기업 투명성을 제고하고 감사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비슷한 논지를 펴고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광범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장 교수는 순환출자 대신 일본처럼 연기금, 노조, 하청업체 등을 통해 우호지분을 확보해야 성장 잠재력과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재벌확장 막는 금융규제 철폐 주장도 두 교수의 이런 논지는 자본시장 개방 이래 불거지고 있는 소버린 사태, 주주자본주의 바탕 아래 이뤄진 참여연대식 소액주주운동의 적합성,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고배당 행진,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문제 등 최근의 경제이슈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관심있게 지켜볼 만한 문제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이런 주장이 자칭 ‘한국의 경제성장론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대목이다.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라던 몇몇 언론에 그의 주장은 아예 빠져 있거나, 포함됐더라도 재벌옹호론의 일면적인 모습에만 그치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그 영화 어때?]‘숨바꼭질’ 25일 개봉

    도대체 찰리가 누굴까? 예고편이나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반응을 보이게되는 영화 ‘숨바꼭질’(Hide and Seek·25일 개봉). 하지만 최근 궁금증만 증폭시킨 뒤 말도 안되는 반전과 결말로 김빠지게 했던 많은 영화들을 떠올리며 ‘혹시 또?’라는 의구심이 마음 한 켠엔 존재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숨바꼭질’은 찰리의 존재를 터뜨린 이후에도 긴박감을 잃지 않는 힘 있는 스릴러다.‘식스 센스’의 대형폭탄급까지는 아니지만, 차곡차곡 공포와 의문을 쌓아가며 결말로 치달은 뒤 여운까지 남기는 솜씨가 보통 이상은 된다. 적어도 ‘반전 강박증’에 걸린 영화는 아니다. 아홉살의 귀여운 소녀 에밀리(다코타 패닝)는 어느날 욕조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한 엄마의 시체를 본다. 데이비드(로버트 드 니로)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접고, 딸 에밀리가 새로운 환경에서 자라게 하기 위해 뉴욕 외곽으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아빠의 기대와 달리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에밀리. 게다가 에밀리는 찰리라는 상상 속 친구와 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는 공포영화의 단골손님이다. 천진난만하고 한없이 약한 듯 보이면서도 어른의 시선으로 예측할 수 없는 속내를 지닌 신비한 존재이기에, 관객의 허를 찌르는 공포심을 자아내는데 적합하다. 이 영화 역시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 에밀리의 모습 속에 공포의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이중적 시선을 심어놓는다. 에밀리의 ‘보이지 않는 친구’ 찰리는 에밀리의 환상일까 아니면 에밀리의 가족을 해치려는 실제의 불청객일까. 보이지 않는 존재와 신비스러운 아이에 대한 공포심을 자양분 삼아 하나둘 단서를 뿌리며 가지를 쳐가는 스토리 전개는, 피튀는 장면 없이도 더없이 오싹한 공포를 낳는다. 물론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찰리가 누군지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러티브가 촘촘한 편이어서 먼저 알아내더라도 영화가 서서히 뿌려왔던 씨를 거두는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질 만하다. 영화의 속도와 같게 찰리의 존재를 파악했다면 영화가 끝난 뒤 다시 곱씹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 어둡게 드리워진 현대사회 가족의 음울한 초상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에밀리의 상태에 대한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1분 50초 가량의 에필로그는 2가지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수입사는 두 종류의 프린트를 반반씩 들여와 극장마다 서로 다른 버전을 상영한다. 어떤 극장에 어떤 버전이 상영되는 지는 사전에 밝히지 않는다. 두 에필로그가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만 ‘대세’에 큰 지장을 줄 만큼 결정적인 장면은 아니다.‘위험한 유혹’의 존 폴슨 감독.15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독자의 소리] 정부는 귀농자 정착대책 세워라/문성권

    흔히 농촌에 대한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한다. 정부와 농업 관련 기관에서는 농업인의 소득 증대를 위해 많은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농업인의 피부에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먹고살기가 어려운 농촌에 젊은이가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최근 귀농자의 재이동이 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이처럼 귀농 후 다시 이농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쌀 시장 개방확대, 추곡수매 감축 등으로 농촌 경제가 도시 경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악화되고 있는 데다 농림부 창업자금 융자도 중단됐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은 시급히 귀농자의 조기 정착을 돕기 위해 귀농알선센터 설치 등 원스톱 서비스를 실시해야 한다. 문성권
  • [부고]

    ●김성진 前체신부 장관 김성진(金聖鎭)전 체신부(정보통신부 전신) 장관이 11일 저녁 9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인천 출생인 김 전 장관은 육사(11기)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82년 국방과학연구원 소장,83년 체신부 장관,85년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했다. 체신부 장관 때는 국가정보기간전산망 구축사업을 추진하는 등 정보화 강국을 만드는 데 힘썼다. 유족은 부인 김인혜씨와 태원(재미 공인회계사), 태우(육군 중령) 등 2남 1녀. 빈소는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 장례식장(2호실)이며 발인은 14일 오전 10시.(031)920-0302. ●이경재(이경재이비인후과의원 원장)행자(대한YWCA 전국연합회장)씨 모친상 이태섭(국제라이온스클럽 재단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이영선(연세대 교수)씨 빙모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3410-6926 ●김종한(필리핀강변교회 담임목사)한섭(제주함덕순복음교회 〃)씨 부친상 표순호(제주순복음교회 〃)씨 빙부상 13일 제주중앙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30분 (064)752-0843 ●박영환(전 한국공중전화 대표)씨 별세 원춘(미 PME 부사장)인춘(대한약사회 재무이사)세춘(미 PME 부사장)기춘(〃 부장)씨 부친상 조재진(주식회사 영창 사장)씨 빙부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02)3410-6916 ●남민배(전 굿데이 기자)씨 부친상 12일 서산 상례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41)668-6197 ●이만우(SK 홍보팀장)한우(유영제약 차장)씨 부친상 김종대(포스에이씨 과장)씨 빙부상 12일 일산 백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 (031)919-2099 ●양태찬(재미 사업)태원(현대엘리베이터 차장)태훈(럭키생명보험 부장)미영(미국 거주)씨 부친상 한기성(재미 사업)씨 빙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 (02)3010-2268 ●임채철(한국전력기술 차장)채운(농협중앙회 〃)씨 모친상 이창수(두산 주류BG 부장)정보영(리바트 상무)씨 빙모상 채정현(한국교원대 교수)씨 시모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9 ●손석태(전 인천시의원)씨 모친상 12일 인천 중앙길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32)462-9262 ●정문조(자영업)현조(KBS 아나운서)씨 모친상 13일 서울 목동 천주교회, 발인 15일 오전 8시30분 (02)2645-6648 ●이규원(사업)씨 부친상 김규옥(기획예산처 예산총괄과장)고봉찬(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씨 빙부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30분,(02)3410-6920
  • [토요일 아침에] 자기 성찰과 마음의 평안/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낯선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나에게는 늘 두려움과 불안이 따라 다녔다. 그동안 이를 없애려고 노력하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웠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내 앞에는 언제나 못마땅하고 미운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성직자로서 나는 이들을 사랑하고 가슴으로 품어야 했는데 이것이 유감스럽게도 잘 되지 않았다. 마음이 깨어나면서 지금까지 상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나의 것임을 발견하였다.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퍼 넘겨서 그들의 것이라고 비난하며 무시하고 있었다. 이로 해서 스스로 보이지 않은 죄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허물이 바로 나의 것이라는 것을 속마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으며, 다른 사람이 이를 알아차릴까 불안했다. 이때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강한 욕심이 일어났으며, 그러지 못할 때는 마음속에서부터 분노가 치솟았다. 때때로 상대의 잘못을 바라보며 내면을 관찰해 보니, 현실에 나타난 경계는 정말로 나를 위한 고마운 거울이었다. 이제는 주어진 인연이나 상황을 통해서 이들을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했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무한한 은혜로서 나의 앞에 놓여 있으며 인과의 이치는 정확히 일어나야 할 일들만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이 모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이상하게도 상대의 것을 보면서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속의 미숙한 존재는 자기를 보지 않고 상대의 문제를 민감하게 바라보며 거부하고 불평하였다. 나는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책임지며 밝고 건강한 감정을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주위 상황이나 여건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이들에게 구속되는 노예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단호히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평소에 만나는 인연들을 통해서 발견한 문제점을 보면 교무인 나는 인색하고, 이기적이었다. 권위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하였다. 욕심이 많으며 위선적이었다. 이들이 모두 보이지 않게 쌓아온 허물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상대의 것이라고 불만을 표하였고,“나는 아니다.”라고 당당히 거짓을 말하였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법신불 앞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만나는 인연이 누구이든지 그가 어떤 자세를 보인다 하여도 그 가치는 존귀하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의 신비요 기적이다. 그들에게는 문제가 없으며, 언제나 옳다.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상생(相生)의 인연이다. 이들은 나를 돕는 천사이고 나를 보호하는 신장불이며 수호신들뿐이다. 지금 그가 어느 위치에 있으며 무슨 과오가 있다 하여도 그들은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은혜로운 존재이다. 나는 이들을 무조건 존경하며 사랑한다. 이렇게 상대를 소중히 받아들일 때 자연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었다.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으며, 나 자신이 용서되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고 인정하는 길과 둘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많은 죄업으로 오염되었다 하여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하였는가보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의 내가 이처럼 존재하도록 안내하고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과 법신불님의 크신 사랑에 깊이 감사드린다. 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 [안동환기자의 현장+]시신과 함께한 하루… 삶에 눈뜨다

    [안동환기자의 현장+]시신과 함께한 하루… 삶에 눈뜨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장례식장은 소란스럽고 흥청거리게 마련이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나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에서도 죽은 자는 뒷전이다. 적당한 슬픔과 절제된 흥겨움이 앙상블을 이루는 우리네 장례식장. 인생 버스를 종점까지 내달린 망자(亡者)는 오히려 엑스트라에 불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망자는 몸을 정갈히 하고 의관을 갖추는 염습(殮襲)실에 이르러 비로소 주인공이 된다. 이곳에서 죽은 자를 주인공으로 마지막 리허설을 준비하는 사람이 ‘장례지도사’다. 기자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일일 인턴사원으로 장례지도사의 일상을 체험했다. 지난 29일 오전 9시, 장례식장에 출근하자마자 장아름(26)씨의 지시가 떨어진다. 그녀는 1999년 국내에서 처음 생긴 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과 1기 졸업생.4년의 경력을 쌓은 이 장례식장의 유일한 여성 장례지도사이다. 미혼인 그녀는 한달 평균 30∼40명, 그동안 멀고 먼 저승길을 가는 1500여명의 시신을 단장했다. “안치실 청소부터 하세요. 입관은 9시부터 1시간 간격이에요.” “저 염습실은 언제 들어가나요?” “오전과 오후에 한번씩 들어가면 충분하겠죠?”“헉∼두 번씩이나….” 염습실은 안치실 옆에 있다. 시신을 22구까지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는 온도가 0∼1도로 자동 유지된다. 옆방에는 향나무며,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관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장씨를 따라 들어간 염습실은 7평 남짓한 크기다. 앞에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된 별도의 공간이 있다. 유족들이 고인과 작별인사를 하는 곳이다. 그녀와 냉장고에서 암으로 숨진 50대 남자의 시신을 조심스레 꺼낸 뒤 염습실로 옮겼다. 유족이 오기 전 준비를 마쳐야 한다. 관을 가져다놓고 수의는 버선, 아랫도리, 윗도리의 순서대로 놓아둔다. 상주가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다.“이제 시작합니다.” 장씨는 유족들에게 정중히 목례를 올린다. 기자도 따라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시신의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기자에게 “머리를 꽉 잡으라.”고 지시한다. 장씨는 솜으로 손가락부터 팔, 다리 순으로 닦았다. 출혈도 있었지만 경건해 보일 만큼 정성껏 닦아나갔다. 수분을 잃은 피부는 건조했다. 그녀는 시신의 입꼬리를 올리려 애쓰고 있었다.“미소를 만들고 있어요. 고인이 웃는 것처럼 보여야 유족들도 마음이 편하거든요.” 여성 특유의 손길을 거치면서 고통의 흔적이 지워지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만들어진다. 고인의 얼굴에 비로소 평안이 깃든다. 여기에 남성이라면 면도를 하고 얼굴에 밀크로션을 바른다. 여성은 화장을 한다. 아름씨의 화장법은 독특하다. 로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바르는 과정은 똑같지만 마음이 다르다.“거울 앞에서 제가 화장하듯 해요.” 유족들은 “평생 화장 한번 안 하신 어머니를 가시는 길이나마 예쁘게 해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한다. 고인의 얼굴에는 살아온 인생이 나타난다고 한다. 장씨는 삶에 찌든 얼굴을 볼 때마다 “욕심부리고 살지 말자.”고 다짐을 한단다.“등을 잡으세요.” 수의를 입힐 때는 고인의 몸이 뒤척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무거운 시신을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21차례의 매듭을 짓고 시신을 관에 담는다.40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장례지도사는 스스로를 ‘3D 전문직’이라고 부른다. 장례식의 실질적인 지휘자로 24시간 근무하며 시신을 직접 다루지만 보수는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 시신을 다루는 일은 위험하다. 병원에서 온 시신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결핵이나 에이즈로 사망한 시신은 병원에서 미리 통보한다. 에이즈로 숨진 시신도 6개월에 한번 꼴로 들어온다. 지도사의 손에 상처라도 있으면 2차 감염이 되는 탓에 온몸을 중무장한다. 시신을 닦은 솜 등 감염성 폐기물은 모두 전문업체가 처리한다. 지난해 4월 장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병원에서 내려온 시신에 수시(收屍)작업을 했다. 수시는 막 운명한 시신의 몸이 굳기 전에 손발을 주물러 곧게 펴주는 일이다. 부검을 한다는 통보를 받고 시신을 옮기자 의사와 간호사는 온 몸을 중무장하고 들어섰다. 알고 보니 시신의 주인공이 급성호흡기증후근(사스) 의심환자였던 것. 누군가의 실수로 미리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사스는 아니었다.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시신의 부패. 약물 투여가 많은 시신은 냉장고 안에서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살갗이 쉽게 벗겨지는데다 고약한 냄새로 염을 할 때면 온 몸은 땀으로 젖는다. 장례지도사는 특별한 시신이 아니더라도 염습을 할 때 마스크를 하고 얇은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다. 기자 역시 고무장갑을 꼈고, 단단히 각오를 했음에도 염습이 끝난 뒤 소독약으로 6차례 이상 손을 씻는 등 극도로 민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생의 종착역인 장례식장에도 각박한 세태는 그대로 투영된다. 장씨는 “돌아가신 분에게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한이 쌓였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하고 “새 모이 준다.”고 말하는 상주를 본 적도 있다는 것이다. 눈치보며 곡소리를 내는 며느리는 인지상정이라지만 노인을 씻기지 않아 온 몸에 덕지덕지 때가 묻은 시신도 많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녀도 다를 것이 없다. 장례식장을 찾은 유족들의 첫마디는 대부분이 “가장 싼 것을 달라.”이다. 수의나 관을 정하면서 물건조차 보지 않고 무조건 싼 것을 찾는다. 분수에 넘치는 허례허식은 경계해야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조차 인색하고 각박한 자녀들을 보면 장씨가 더 서운하다. 최근에는 삶에 지친 시신도 많다. 산 자에게 세상 짐을 떠맡긴 시신은 표정도 평화롭지 않다. 조용균(54) 관리실장은 “1주일에 한건 정도 자살한 시신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쪼들리다 세상을 버린 사람들의 장례식은 더욱 쓸쓸할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여성은 아직 생소한 존재이다. 장씨가 장례 상담에 나서면 상주들은 남자 직원을 찾기 일쑤다. 하지만 그녀의 섬세한 손길을 경험한 유족들은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자신의 ‘사후’를 일찌감치 부탁하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죽음은 일상 곳곳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죽음이 보내는 소환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 모두에게 평등하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장례지도사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느껴졌다. 날마다 죽음을 접하면서 삶의 소중함에도 눈을 뜬 것인가. 장례지도사는 죽음이 아닌 삶을 다루는 직업이었다. ■ 장례지도사란 장례지도사(Funeral Director)는 장의사를 대체하는 용어이다. 장례 상담에서 시신안치, 염습, 발인까지 장례식의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장례지도사는 정규 대학과정에서 양성된다.1999년 서울보건대학이 장례지도과를 설치한 이후 대전보건대학과 창원전문대학에 학과가 개설됐다. 졸업생의 90%는 전공을 살려 대학병원 장례식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도 해마다 10여명씩 배출돼 전국에서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커리큘럼은 기본적인 상·장례부터 보건법규, 방부처리, 사체화학, 훼손된 시신를 복구하는 회복기술학, 해부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2년 과정에서 올해부터 3년 과정으로 개편됐다.2003년 현재 전국 623개 장례식장에서는 해마다 24만여구의 시신이 처리된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장례지도사는 2400명 안팎이다. sunstory@seoul.co.kr
  • [MD의훈수-패딩] 부담은 적고…실속은 크고

    [MD의훈수-패딩] 부담은 적고…실속은 크고

    올해도 겨울다움을 과시하는 듯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아웃웨어 중 ‘패딩’이 인기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패딩(PADDING)은 ‘속을 채워넣다.’는 뜻으로 합성 솜이나 다운(오리의 솜털) 등을 퀼팅(뭉쳐지지 않도록 누비는 것)한 의류 제품을 일컫는다. 최근 들어 불기 시작한 웰빙을 위한 스포츠 붐과 함께 패션을 표현하는 일상적 기능, 그리고 특수 가공 처리를 통한 레저용 기능성을 동시에 겸비한 대표적인 실속형 의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클라이드 패딩점퍼 나일론 옥스퍼드(면소재의 일종)로 다른 나일론 소재보다 두께감이 있고 조직감이 있는 소재를 사용했다. 나일론 소재인 덕분에 좀 더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생활방수 기능과 오리 솜털을 사용해 기능성과 보온성이 뛰어나다. 후드(모자) 부분은 인조 털을 사용해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표현한 제품이다. 가격은 13만 9000원대이다. 코듀로이(코르덴) 소재 겉감의 남성용 솜패딩 점퍼는 12만 9000원대, 면 100% 겉감의 솜패딩 점퍼는 10만 9000원대이다. ●올리브데올리브 패딩점퍼 폴리 100%의 일본 수입소재의 고밀도 새틴 조직으로 은은한 광택감과 부드러운 느낌의 고급 소재 제품으로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실루엣에 스티치(바느질선을 밖으로 보이게 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듦)와 금속성 부자재, 아웃 포켓으로 캐주얼하게 표현했다. 후드 안쪽을 토끼털로 장식해 고급스러움과 보온성을 한층 높여 코듀로이, 진바지와 코디했을 때 더 캐주얼한 느낌을 준다.49만 8000원. ●나프나프 면패딩 점퍼 옷이 완성된 상태에서 워싱(색상을 바래게 하는 것) 처리하여 자연스러운 주름에 한번 입은 듯한 느낌과 피치 처리를 하여 포근한 느낌을 준다. 최근 유행하는 빈티지 스타일에 어울리게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다. 허리선에 예쁜 주름이 들어가 여성스러움을 연출할 수 있다. 가벼운 니트와 짧은 주름 스커트, 긴 머플러와 어그부츠로 귀여운 소녀 이미지로 변신한다.39만 8000원. ●BNX 다운점퍼 총 기장이 짧은 후드 점퍼 스타일로 생활방수 처리가 돼 있다. 색상도 블랙, 라이트 그린(LIGHT GREEN)으로 평상복 및 스키복으로도 착용이 가능하다. 후드 안쪽을 인조 털을 사용함으로써 고급스러움을 연출해 준다. 가격은 35만 8000원대. ●바닐라비 피치 코튼 하프패딩 겉감을 코튼(면) 소재로 피치(털을 세우는 것) 가공하여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표현했다. 올겨울 유행 아이템인 하프 기장의 코튼 패딩을 캐주얼하면서 바닐라비만의 귀엽고 여성스러운 느낌의 히트 아이템인 체크 블라우스, 청바지와 코디하면 좀 더 귀여운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 값은 25만 8000원대이다. ●잼진 패딩점퍼 겉감이 면으로 된 것과 레이온으로 된 제품이 있다. 보통 후드 끝을 너구리 털이나 인조 털로 처리해 보온성과 장식성을 겸비했다. 겉감 레이온이 100%고 후드 끝을 너구리털로 장식한 여성용 솜패딩 점퍼가 50% 가격 인하된 4만 4900원대이다(갤러리아백화점 서울 콩코스점). 겉감과 안감 모두 폴리에스테르 소재이고 인조털 후드가 달린 기획상품 여성용 패딩점퍼는 2만 5000원대이다. ●NII 다운점퍼 면·나일론 혼방소재의 겉감 원단에 코팅 가공을 해서 생활방수 기능을 부여한 제품. 후드 안쪽에는 포근한 느낌의 인조 털을, 후드 끝에는 너구리과의 라쿤 털을 부착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렸다. 가격은 21만 9000원. ●시스템 패딩점퍼 전체적으로 폴리에스테르를 사용, 약간의 광택으로 부피감을 살렸다. 오리깃털보다 솜털을 더 많이 충전재로 사용해 부피감은 줄이고 보온성은 높인 제품. 블루와 옐로의 배색으로 화사하면서도 히프선을 충분히 덮는 넉넉한 길이와 패딩이 부피감이 살아 있기 때문에 체크 스커트와 어그부츠로 도회지적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가격은 51만 9000원.
  • [송두율 칼럼] 경계선 그리고 경계인

    [송두율 칼럼] 경계선 그리고 경계인

    경계선은 원래 전투적인 개념이다. 이 쪽과 저 쪽을 가르는 선으로서 공격과 방어에서 설정되는 배타적 개념이다. 손가락질을 하며 가리키는 경계선의 저 쪽은 이미 내가 있는 이 쪽에 대립해서 존재하는 위협적인 공간이다. 이 쪽은 이성적인데 이와 반대로 저 쪽은 비이성적이거나 야만적이라고만 대비시켜 보는 태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은 사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만약 그러한 경계가 선이 아니고 면적이나 공간이라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경계면이나 경계공간은 이미 이 쪽과 저 쪽 사이에 자리잡을 수 있는 제3의 어떤 존재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배타적인 이 쪽과 저 쪽은 대체로 이러한 제3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 들거나, 아니면 그러한 존재에 대한 불만, 나아가 불안마저 느낀다. 불교의 초기경전 ‘쌍윳따니까야(雜阿含經)’는 검은 소와 흰 소가 하나의 밧줄에 묶여 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보고 대개는 흰 소가 검은 소에, 아니면 검은 소가 흰 소에 묶여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두 마리의 소를 묶고 있는 것은 밧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밧줄이라는 제3의 어떤 것의 의미를 지적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프랑스의 수학자 미셀 세르(M Serres)도 신인가 악마인가, 배제인가 통합인가, 긍정인가 부정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 둘 사이에 있는 끈으로부터 대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0과 1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제3의 무엇을 인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불확실성이나 애매성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그것도 당장에 빨리 결정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논거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헛소리거나, 아니면 중간에서 미적거리는 기회주의자의 억지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경계인이라는 개념이 바로 위에서 지적된 것처럼 곡해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두루 사용되고 있고, 그것도 긍정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유럽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가령 기존의 학문영역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아니면 여러 문화의 접촉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나 예술의 영역을 찾아가는 경우에도 경계인이라는 개념은 늘 뒤따른다. 이는 사회나 경제생활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접경지역에 사는 독일인이 매일 국경선을 넘어 이웃인 프랑스나 스위스 땅에서 일하고 퇴근해서 자기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을 일컬어 경계인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 주위에서도 많은 경계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쪽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경계인들이 아니겠는가. 경계인은 기존의 경계선을 허문다. 경계인은-시인 김지하의 말을 빌리자면-이쪽과 저쪽이 모두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 틈을 열기 위해서 경계인은 이쪽 안에서 저쪽을 발견하고 저쪽 안에서 이쪽을 발견하는 쉽지 않은 작업을 하여야만 한다. 다름이 있어야 같음이 드러나고 같음이 있어야 다름이 드러나는 긴장을 원효의 ‘화쟁(和諍)’은 가르치고 있다. 내 것이 이질적인 것과, 이질적인 것이 내 것과 서로 교차(交叉)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멜로-퐁티(M Merleau-Ponty)의 ‘애매성의 철학’은 말하고 있다. 여기에 바로 생산적인 제3자로서의 경계인이 갖는 철학의 핵심이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경계선의 틈을 열어 서로 숨쉴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되게 하고 이 공간을 다시 전 한반도로 확충시켜 통일된 평화스러운 삶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이쪽이냐 저쪽이냐라는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일차원적인 경계개념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이제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제3의 그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때도 되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대기 밖에 살고있는 존재이며, 새는 대기 속에서 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물 밖에 살고있는 존재로서 바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경계선의 이쪽과 저쪽을 아울러 볼 수 있는 그러한 여유를 이야기하고 싶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한국미술의 우수성 알리려 노력”

    “한국미술의 우수성 알리려 노력”

    서양화가 안영목 화백은 올해로 여든 세 살. 화단의 ‘최원로급’이지만 그림에 대한 의욕만큼은 젊은이 못지않다. 지금도 전국의 산하를 골골샅샅이 누비며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는다. 안 화백의 그림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다. 마치 빛으로 가득한 외광파(外光派)의 그림처럼 객관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주관적인 인상을 택한다. 작가의 ‘복안(複眼)’으로 걸러낸 숙성된 그림이요 마음의 풍경이다. 지난해 12월 안 화백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에서 ‘국가살롱전’을 성황속에 끝내고 돌아왔다.“프랑스 국가살롱전은 역사가 300년이 넘는 유서깊은 전시입니다. 아카데미가 주축이 된 ‘살롱전’에는 모네 같은 화가도 끼어들 수 없어 훗날 ‘낙선전’이 생겨났을 정도였지요. 이런 전시에 한국 작가들이 보다 활발히 작품을 내 우리 미술의 우수성을 알려야 합니다.” 2003년부터 살롱전에 참가해온 안 화백은 올해에도 작품을 내 ‘정회원’ 자격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 산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서해안 평야지대에서도 먼 발치로나마 산을 볼 수 있지요. 한국은 그러니 ‘그림 그리기 좋은 나라’가 아니겠어요.” 안 화백은 특히 산과 물과 마을을 즐겨 그려왔다. 한국의 자연풍광이 안 화백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 모티프인 셈이다. “일부 현대미술 신봉자들은 풍경화 하면 으레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화석화된 생각이야말로 진부한 것이지요.” 안 화백은 앞으로도 풍경화를 포함한 구상은 물론 추상, 반추상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국제미술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안 화백은 “한국미술을 알리는 데 남은 열정을 모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올 12월로 예정된 프랑스 국가살롱전을 한국미술 세계화의 또 다른 도약대로 삼겠다는 각오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비내리는 호남선’ 작곡가 박춘석

    [어떻게 지내세요] ‘비내리는 호남선’ 작곡가 박춘석

    “와병 중이지요. 틈틈이 치료를 받고 있지만 썩 차도가 있는 편이 아닙니다.” 가요계의 거목 박춘석(본명 박의병·75)씨는 11년째 병마와 외롭게 싸우고 있다.20대 젊은이들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가수 이미자를 키워낸 작곡가로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같다. 현재 박씨가 사는 곳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20평짜리 주공아파트.24시간 간병인에 의지한 채 지낸다. 같은 작곡가이자 박씨의 동생인 박금석(73)씨가 바로 옆집에 살면서 주변을 관리하고 있다. 박금석씨는 전화통화에서 “친한 지인의 얼굴조차 못알아볼 정도이기 때문에 인터뷰는 불가능하다.”면서 “형님은 일주일에 두번씩 현대아산병원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리에 보조기계를 끼고 1시간30분 동안 걷기 운동을 한다는 것. 4년전에는 폐렴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다행스럽게 극복했다. 하지만 뇌졸중의 후유증은 여전하다. 또한 투병생활이 힘들고 안타깝다고 부연했다. 박금석씨는 “(형님의)저작권료로 병원비 내고 한달 생활비를 겨우 쓰고 있다.”면서 “요새는 병문안차 찾아오는 동료 작곡가나 가수들이 거의 없다.”고 쓸쓸한 처지를 대신 말했다. 박춘석씨가 평소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박금석씨는 “이미자의 ‘노래는 나의 인생’을 작곡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쓰러졌다.”면서 “다 아끼는 곡들이지만 ‘가을을 남기고 산 사랑’이나 ‘가시나무 새’도 평소 애착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춘석은 ‘살아있는 트로트의 전설’로 평가받는다. 특유의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다.2700곡을 발표, 고 길옥윤씨와 더불어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어릴 적 고무 공장을 하는 아버지 덕에 피아노와 오르간 앞에 앉아 자유자재로 화음을 생산해내기도 했다. 경기중학 5학년(고교 2년)인 1948년 당시 서울대에 다니던 길옥윤씨와 만나 음악활동을 함께 했다. 데뷔곡은 최양숙이 부른 ‘황혼의 엘레지’이다. ‘비내리는 호남선’은 손인호가 부른 공전의 히트곡.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 ‘기러기 아빠’ ,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패티김의 ‘초우’ 등 다양한 노래풍을 만들어낸 작곡 천재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어떻게 지내세요’ 는 독자와 함께합니다. 각계 명사는 물론 한때 스타였던 인물, 화제를 뿌렸던 사건 속 주인공들의 근황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추천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연락처 : km@seoul.co.kr)
  • 자연의 재앙, 인간/프란츠 부케티츠 지음

    ‘자연의 재앙, 인간’(프란츠 부케티츠 지음, 박종대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답답하고 우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진화는 있을지언정, 진보는 없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진화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연속’이란 절망적 목소리뿐이다. 처음엔 ‘이렇게 극단적이고 병적인 비관주의적 사고의 소유자가 있을까.’ 하고 저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번득이면서 책장을 넘겨보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논리에 의문부호를 하나씩 내주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가슴 가득 차오르는 답답함뿐인 걸 어쩌랴. ●진화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연속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사실 인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인류의 진보를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비례해 살육의 기술과 규모를 키우는 인류의 광기, 개발과 물질만능 뒤안의 환경파괴와 그로 인한 자연재앙들만 보아도, 진보는 허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리긴 어렵다. 책이 시작되자마자 저자는 묻는다. 최초의 인간이 석기나 맨손으로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먹다가 현대인이 슈퍼마켓에서 포장된 음식을 구입해 요리해먹게 된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이 과학기술 문명의 혜택을 누린다는 이유만으로 석기시대의 선조들보다 나은 인간이라가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생물학적 진화와 사회문화적 진화 영역에서 진보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했는지를 해부하고, 이를 통해 진보사상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여지없이 파헤친다. 먼저 생물학적 진화를 과연 진보와 발전의 개념으로 연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기생생물의 예를 들어 밝힌다. 바다에 사는 게에 기생하는 주머니벌레는 유충때 자유롭게 바닷속을 떠다니다가 숙주인 게의 몸속으로 구멍을 뚫고 들어간다. 일단 들어가면 눈과 다리, 신경조직은 완전히 퇴화하여 사라지고, 대신 앞쪽 끄트머리에서 가느다란나 관들이 나와서 벌레 자체가 생식선화한다. 이처럼 기생생물은 진화가 오로지 진보와 발전이 아닌 퇴행도 함을 잘 보여준다. 생물이 고도로 진화해 탄생했다는 포유류중 하나인 개 1마리에 얼마나 많은 기생생물이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진화에서 진보와 상승발전이 핵심이라는 주장은 정말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생물종들이 진화하다 멸종 지은이는 생물들의 진화는 근본적으로 크고 작은 재앙들의 연속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지구가 생긴 이후 수많은 생물종들이 진화하다가 멸종의 재앙을 맞았으며, 이는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 만일 진화과정에서 중단 없는 진보가 존재한다면 이같은 재앙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그 자체가 자연사에서 발생한 갖가지 재앙들의 한 결과물일 뿐이다. 한데도 그러한 사실을 잊은채,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더 나은 지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진화를 점점 더 큰 재앙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폭력 앞에 미약하고 무력한 존재이며, 정교하게 발달한 과학기술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자연재앙에 속수무책일 뿐이다. 지금까지 멸종을 맞은 수많은 생물, 아니 우리 선조인 구석기인들만 해도 막대한 재앙을 일으킬 능력이 애초에 없었지만 현대인 즉 ‘연미복을 입은 석기시대인’은 진보의 기치를 높이들고 대량소비와 환경파괴란 폭탄을 짊어지고 재앙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재앙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회문화적 진화는 진보성을 띠고 있는가. 지은이는 이 또한 단호히 거부한다. 진보의 증거로 내세우는 문명은 오히려 인간의 원시적 습성과 행위 충동, 즉 파괴본능을 더 조장한다. 파괴본능으로 무장한 인간의 원시적 행위 충동들이 쉽게 발현될 수 있도록 특별한 삶의 조건들을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문명인 것이다. 그 노골적인 예가 바로 국가간의 전쟁이다. 구석기시대의 무리들이 생존을 위해 사냥감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면, 현대 국가들은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국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혹은 세계를 지배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문명화 과정은 오히려 갖가지 도구들의 축적과 함께 인간의 폭력적 잠재력을 체계적으로 확장시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문명은 인간의 파괴본능 되레 조장 이 책은 만물의 영장을 자임하고,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하면서도 지구의 황폐화를 향해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도 헛된 희망을 땅에 묻어버리라고 독자들에게 요구한다.‘인간이 우주조차도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을 버리고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곳에 사는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재앙을 향한 발걸음을 최소한 늦출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오만과 광기로 점철된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 또한 헛된 희망일 듯싶다.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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