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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의 에너지 자원 ‘숲’] 버려지는 목재로 수입PB 100% 국산화 가능

    [미래의 에너지 자원 ‘숲’] 버려지는 목재로 수입PB 100% 국산화 가능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신(新)에너지 자원으로 ‘바이오매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부존자원이 절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풍부한 바이오매스 에너지원이 있다. 바로 산림 자원이다. 산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데서 비롯된 경쟁력이다. 우리의 숲은 자원의 보고(寶庫)다. ●산림청 바이오매스 수집단 가동 기자는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 도고산에 올랐다.3㎞에 이르는 작업로 곳곳에는 나무덩이가 쌓여 있었다. 산을 올라가는 동안 나무를 메고 줄지어 내려오는 나무꾼(?)들을 만났다. 산림청이 지난 6일 8개 지역에서 시범 가동에 들어간 ‘바이오매스 수집단’이다. 산물(山物), 즉 산에 흩어져 있는 나무를 수집하는 인부들이다. 1개 시범 지역당 50명씩 400명이 투입된다. 수집단원에게는 하루 수집 목표량(0.8㎥)이 부여돼 있다.0.8㎥는 길이 1.8m, 지름 16㎝ 원목 17그루에 해당한다. 아산시의 사업지역은 1000㏊ 규모다. 시범지역은 도고산(50㏊) 일대다. 열흘 계획으로 지름 6㎝ 이상 목재를 수집하고 있다. 수집된 목재는 목재 가공업체에 공급된다. 재질이 좋은 침엽수림은 1㎥당 3만원, 혼합림은 2만원 정도라고 한다. 수집된 목재의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원목으로 온전한 게 있는가 하면, 겉이 부패돼 손으로 만져도 부서져 나가는 오래된 나무 부스러기도 있다. 모두가 재활용 가능한 산물들이다. 크게는 산업용과 연료용 등 2단계로 활용된다. 첫째, 산업용으로는 MDF 원료로 쓰인다.MDF란 목재에 고온을 가해 얻은 나무섬유를 접착제로 붙여 만든 목질판상제품을 말한다.MDF를 만들기에 다소 미흡한 목재로는 PB(파티클 보드)라는 한 단계 더 싼 가구용 목재로 재생산된다. 둘째, 남은 목재는 화목(火木), 즉 연료로 재활용된다. 연료용 장작인 것이다. 산을 내려와 동화기업 아산공장을 찾았다. 마당에는 전국에서 실어온 원목과 수입목 중 제재하고 남은 ‘찌끼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올 1년간 사용할 목재는 약 20만㎥다. 이것으로 MDF 16만㎥를 생산한다. 올해 바이오매스 수집 계획량(44만㎥)의 절반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다. 이근영 품질관리팀 과장은 “백방으로 원료 구입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내 간벌목 활용을 환영한다.”면서 “나무는 버리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산물을 팔아 남은 수익은 산림환경 개선사업에 활용된다. ●지난해 PB 수입 96만㎥로 1302억원어치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20만㏊ 숲가꾸기로 발생하는 산물은 250만㎥. 수거율은 평균 10%다.90%가 방치되고 있다.1㏊당 60만원이나 되는 수집비용 부담 때문이다. 그러나 방치된 부산물은 산불과 병해충 확산, 대규모 재해를 야기시킨다. 수거해서 재활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산림청은 올해 44만㎥(5t 트럭 8만 8000대분)를 수집할 계획이다. 목재 1㎥에서 나오는 열량은 중유 68ℓ의 분량이다. 계획대로 수거되는 목재로 연료를 충당한다면 중유 15만드럼(115억원)의 외화 절감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지난해 PB 수입은 96만㎥(1302억원). 버려지는 200만㎥의 목재로 100% 국산화가 가능하다. 산술적으로 200만㎥의 산물 수집에 800억원이 필요하다. 중유 68만드럼(525억원)을 대체할 수 있다. 산림청은 내년에 1000명의 나무꾼을 투입하는 등 산물 수집을 확대할 계획이다. 민간의 참여도 검토 중이다. 목재이용팀의 강신원 사무관은 “지금은 산업용 목재 수집에 집중하나 국가 지원이 이뤄진다면 나무 전체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오매스사업, 정부가 나서야 산업용보다는 화목이 풍부하다. 산림청은 올해 시범사업으로 화목보일러 740대를 농·산촌에 공급한다.20평짜리 주택에서 한 달(18∼20℃)간 화목 사용시 30만원이 든다. 경유보다는 10% 저렴하다. 수요를 늘리면 가격을 더 크게 낮출 수 있다. 목재는 환경 오염원인 아황산가스와 질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것도 이점이다. 학계 관계자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목재가 등한시되고 있다.”면서 “실현 가능한 분야를 활성화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산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열린세상] 큰 정부,작은 정부의 선택/김용하 순천향대 경제학 교수

    세금과 관련된 논쟁은 항상 뜨겁다. 국민은 세금을 적게 내고 싶어하지만 국가에 대한 기대는 큰 야누스적인 존재이다. 세금부담이 과중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국가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조세 규모는 정부 규모에 비례한다고 볼 때, 큰 정부에는 높은 조세부담이, 작은 정부에는 낮은 조세부담이 따른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탄생 배경에는 전제군주의 무분별한 세금징수에 대한 저항이 숨어 있다. 국회의 중요기능 중의 하나는 국가예산을 심의의결하고 조세부담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국회는 국가서비스와 국민부담의 양방향 길에서 민의를 저울질한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를 두고 방향을 선택한다. 우리의 선거과정을 보면 이러한 요인보다는 지연, 학연 등 막연한 기준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좌냐 우냐 하는 것도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관점이 아니라 단순한 이념 편향적이다. 국민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국정 방향도 표류한다. 그동안 참여정부의 방황도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세금 부담자와 국가서비스 수혜자가 일치할 경우는 국민선택이 단순하지만 서로 다를 경우에는 심각한 계층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주겠다는 후보를 선택하겠지만 부담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을 줄이겠다는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수혜도 받고 부담도 하는 중간계층이 다수 존재하면 선택은 좀 더 복잡하게 된다. 중간계층은 수혜와 부담의 기로에서 망설이게 된다. 우리나라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중간계층이 줄어들고 저소득층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혜자층이 증가해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큰 정부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질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참여정부가 복지를 한다고 외쳤지만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경제불황으로 인하여 체감하는 세금부담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저성장으로 인한 괜찮은 일자리의 감소와 사업부진은 세금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도 혜택보다는 부담으로 작용하여 복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부동산 부자 엿먹이는 높은 종합부동산세는 그 과세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서 대부분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게 된다. 이러한 정책혼선의 연속이 사회정의를 흐리게 만들고 포퓰리즘 정부를 만들어 왔다. 우리나라의 2006년 조세와 사회보험료의 합인 국민부담률은 26.7%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수준 37.5%와 비교할 때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국민의 조세나 사회보험료에 대한 국민저항은 우리나라만큼 높지는 않다. 왜 그럴까.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국민이 조세부담자인 동시에 국가서비스 수혜자이다. 이들의 선택은 조세와 국가서비스의 수준을 그 당시의 경제사회 실정에 맞게 적절히 선택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저소득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조세부담자일 뿐 수혜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제가 불황이 되면 조세부담이 적은 작은 정부를 선택할 유인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고령화 등 사회적 위험의 급속한 증가로 정부 역할은 어느 정도 커질 수밖에 없고 조세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정부예산에서 복지예산의 상대적 비중을 늘리거나, 예산을 절감하거나 혹은 국가부채를 늘리는 방법으로 가능하였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여기에 국민 선택의 어려움이 있다. 정치권은 앞으로 있을 두 차례의 선거에서 국민이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책임있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승리한 쪽이 국민이 선택한 방향에 따라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진국의 정치방법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경제학 교수
  • [신나는 과학이야기] 박물관연구원 살해범 수학으로 잡는다

    [신나는 과학이야기] 박물관연구원 살해범 수학으로 잡는다

    과학으로 범죄를 해결한다는 과학수사대에 이어 이젠 세상의 모든 사건을 수학으로 푸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NUMB3RS’라는 드라마에는 두 형제가 등장한다. 형은 FBI 특수요원이고 동생은 수학 교수이다. 별로 공통점이 없고 데면데면하던 두 형제를 똘똘 뭉치게 해준 것은 바로 범죄수사. 형이 수사에서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동생 찰리는 수학을 이용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범죄에 이용된 수법은 물론 인간의 성향과 행동을 수학적으로 추론해 ‘수학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명제를 직접 증명해 보이는 천재이다. 거기에 찰리를 돕는 여자조교 아미타와 찰리조차 미궁에 빠질 때면 몇 마디 조언으로 탈출구를 제공하는 물리교수 래리가 합세하면서 사건을 푸는 과정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한다. 찰리가 사용한 수학이 어떤 것인지 에피소드를 통해 알아보자. ●유물의 나이를 알아내라,14C탄소연대측정법 어느 날 밤 박물관에서 혼자 남아 일하던 연구원 하나가 살해당한다. 그녀의 수첩에는 숫자로 가득한 메모가 남겨져 있다. 찰리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녀가 ‘14C탄소연대측정법’으로 어떤 유물의 연대를 연구하고 있었음을 알아챈다. 찰리는 계산한 결과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사라진 유물이 일만년 된 원주민의 해골임을 알아내고 수사팀은 지역 원주민 부족과의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게 된다. 그러면 찰리가 숫자를 보고 유물의 나이를 알아낸 탄소연대측정법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14C탄소연대측정법은 연대측정법 중 가장 잘 알려진 방법으로,196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리비가 개발했다. 원소 중에는 원자번호는 같으나 중성자의 수가 달라 질량이 다른 것이 존재하는데 이를 동위원소라 한다. 원자번호 6번인 탄소에는 질량이 다른 동위원소인 12C,13C,14C가 존재한다. 이중 14C는 스스로 분해되는 방사성 물질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이루는 탄소는 대부분 12C와 13C이고 14C는 지극히 적다. 그러나 동위원소 간의 비율은 시간이나 장소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하다. 동식물은 광합성과 먹이사슬을 통해 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생명체 안의 동위원소의 양과 비율도 늘 일정하다. 그러나 생명체가 죽게 되면 더 이상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못하므로 탄소의 양에 변화가 생긴다. 방사성 원소가 아닌 12C와 13C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방사성 원소인 14C는 일정한 속도로 분해되어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반감기(半減期)로 시간 계산 방사성 원소의 양이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하므로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인 반감기를 알면 죽은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계산할 수 있다.14C는 반감기가 5730년이므로 미분방정식을 이용하여 풀면 유물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14C탄소연대측정법은 고고학이나 지질학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방법이나 그 특징과 반감기 때문에 한때 살아있었던 생명체였고 나이가 4만년 이하인 유물에 대하여만 이용할 수 있다. ‘NUMB3RS’는 늘 다음과 같은 멘트로 시작된다.“우리는 매일 수학을 사용합니다. 일기예보를 할 때나 시간을 알리는 데에도, 돈을 관리하는 데에도 우리는 늘 수학을 이용하지요. 수학은 단순한 공식이 아닙니다. 수학은 논리이며 이성의 작용입니다. 우리는 수학적 사고력을 통해 어떤 난해한 미스터리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통합논술 때문에 교사와 학생들이 골머리를 앓는 요즘, 수학과 과학을 응용해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통합논술에 필요한 과학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를 기르는 것은 어떨까. 한문정 숙명여고 교사
  • 국제기구 취업하는 4가지 방법

    국제기구 취업하는 4가지 방법

    유엔 등 국제기구에 들어가는 길은 크게 4가지다. 우선 유엔국별 경쟁시험(NCRE)에 합격하거나, 초급전문가(JPO)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 인턴십에 참여하거나 국제기구에 공석이 생길 때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1)유엔국별 경재이험 도전하라 유엔국별 경쟁시험은 유엔 분담금 부담액에 비례해 직원수가 적은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유엔 사무국 각 부서의 인력 수요에 따라 시험 시기와 분야가 유동적으로 정해진다. 합격하면 인재풀에 등록돼 결원이 발생할 경우 최종 인터뷰를 거쳐 채용이 결정된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합격 후 정식 채용까지 보통 2년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는 유엔에 가입한 1991년 이후 37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현재 23명이 활동하고 있다. (2) 사회 초년생은 JPO가 제격 사회 초년생이라면 JPO시험제도를 권할 만하다. 외교통상부에서 주관하는 제도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계약이 끝난 뒤에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52명의 JPO를 파견했고, 파견 기간이 끝난 39명 가운데 32명이 정식 직원이 됐다. 이들은 유엔 정식 직원과 같은 혜택과 대우를 받는다. 보수는 일반 대기업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고 각종 복지 혜택도 좋은 편이다. 위험한 지역으로 파견을 나가면 특별 수당이 별도로 지급되며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JPO시험은 매년 한 차례 실시한다.2007년도 11차 모집공고가 지난 5일 발표됐다. 전형은 2차에 걸쳐 진행된다. 시험 과목은 1차 텝스(TEPS),2차 면접, 영어필기, 영어인터뷰 등이다. 제2외국어 능력(유엔공용어인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아랍어)과 석·박사 학위, 유관 분야 근무 경력, 모의 유엔회의나 논문 경연대회 실적 등이 가산점으로 작용한다. (3) 국제기구 인턴십 활용하라 국제기구 인턴이나 NGO 인턴십에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맥을 형성하고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입증할 수 있다. 외교통상부 국제 인턴 과정으로 지난해 유엔본부 군축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김정태(31·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재 유엔 거버넌스센터 3차 면접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유엔을 실제 접하면서 업무가 적성에 맞는지 살필 수 있고, 접하기 어려운 유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국제기구 진출에 뜻을 가지고 있다면 대학에서 마련한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서강대는 2004년부터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인턴십에 물리학 전공 학생 1명이 다녀왔다. 이화여대는 장기 인턴십 교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인턴십을 이수하면 9학점까지 인정하고 장학금도 지원한다. 숙명여대는 취업경력개발원에서 해외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 경력자는 공석에 직접 지원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제기구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도 요긴하다. 지난해 유엔 본부 인턴십으로 6개월간 근무한 김희은(26·여)씨도 여성가족부의 국제전문 여성인력으로 선발돼 항공비와 체재비를 지원받았다. 여성가족부는 매년 9월쯤 선발 공고를 내고, 약 15명의 여자 대학원생을 선발해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유엔의 빈자리에 지원하는 것도 노려볼 만하다. 현재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전문성과 경력을 확보한 사람이라면 유엔 채용사이트를 통해 해당 부서 공석에 바로 지원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젊은 전문가 프로그램(YPP제도), 외교부 후보자 등록제도나 유엔자원봉사단(UNV), 단기 계약직, 컨설턴트 등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사설] 정말 충격적인 ‘학사모’의 기부금 요구

    교복값 거품없애기 운동을 주도해 온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학사모)’이 교복업체에 상당액의 기부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업체들 주장으로는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학사모는 업체들이 부당하게 취한 이득을 사회환원금 명목으로 내놓으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단체가 쓸 돈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교육청 등에 기부하라고 한 것이므로 떳떳하다는 뜻이다. 명분이야 어찌 됐든 시민단체가 감시 대상인 기업에 후원이나 기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권익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단체가 압력을 가하고 돈을 내라고 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단체는 순수성과 존재이유를 잃게 된다. 학사모는 개학을 앞둔 시점에서 교복값 현실화 운동을 벌여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교복물려주기 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일부 업체들의 자발적인 교복값 인하도 유도해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교복착용 시기를 5월로 늦추도록 권고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업체들의 교복값 담합 조사를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런 학사모가 교복업체의 계열회사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뒤편에서 사회환원금을 요구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교복값을 내리겠다는 활동이, 업체들에 기부를 요구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은 처신이었다. 그래서야 시민단체의 우월적이고 특권적 지위를 오남용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경실련·흥사단 등 4개 시민단체가 그제 시민단체의 책임성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민주화를 증진하고 사회를 감시해 온 시민단체가 영향력은 커진 반면 권력화됐다는 안팎의 비판을 수용한 결과이다. 모처럼 자성하겠다는 마당에 드러난 학사모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시민단체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하고 고립을 가속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 [한승원 토굴살이] 시간에 대하여

    [한승원 토굴살이] 시간에 대하여

    1월부터 다음해의 봄에 출간될 장편소설 한 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는 나에게, 왜 쉴 줄을 모르고 그렇게 달려가기만 하느냐고 묻는다. 내가 대답한다.“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시간일 수 있다. 과거와 현재만 있고 미래가 없는 것은 소멸된다. 나는 미래가 있는 존재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이다.” ‘늙은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퇴직하고 나서, 하루 쉬고 하루 노는 사람들. 지금의 젊은 대통령님도 한 해 뒤에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 헬스클럽에 다니고 골프나 치듯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퇴임하자마자 자기의 일을 접어버리는 ‘늙은 젊은이’들의 삶은 안타깝고 슬프다. 전직에서 퇴임한 그들의 삶은 역사 속에 골동품으로 저장되는 것이고, 그들의 시간은 현재에서 슬프게 정지되는 것이므로 더 크고 가치 있는 미래가 형성되지 못한다. 아직 젊은 힘이 있으므로, 찾아 보면,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도, 그들은 찾아 하려하지 않고 무위도식하기만 한다. 책도 일도 던져버리고. 나는 퇴임하고 난 학자들이 해오던 연구를 죽는 날까지 계속하고, 책을 거듭 출간하는 것, 외국의 퇴임한 노정치가들이 국내의 현실 정치에서 초연한 채 세계평화와 인류 미래의 복지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80세가 넘어서까지도 좋은 소설을 꾸준히 쓰다가 환원되는 외국의 소설가들, 고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평을 해주는 한 선배의 건강성을 나는 존경하고 귀감으로 삼는다. 연못가의 매화들이 꽃샘바람 속에서 향기를 뿜느라 분주하다. 그들에게는 늘 딴 짓하고 있을 틈이 없다. 겨울 혹한 속에서부터 오직 꽃피울 준비만 하여 왔다. 어떤 추위가 닥칠지라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여느 꽃나무들보다 꽃을 일찍이 피워야 그들은 향기로운 매화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관례로 되어 있는 과거와 현재의 시공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확실한 시간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미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12년째 나를 유폐시킨 작업실의 현판 ‘해산(海山)토굴’을 쳐다본 한 스님이 “이 집 주인은 날마다 해산(解産)을 하겠네.”하고 농담을 했다. 그렇다. 얼마 전에 후배들 몇이 일본의 한 지방을 배낭여행하자고 졸랐는데, 나는 ‘해산’ 때문에 거기 다녀올 틈이 없다고 거절했다. 한 지인이, 내가 낸 소설책들을 대충 헤아려 보더니 “50권도 훨씬 넘는데요.”하고 나서 “아이고 그만큼 썼으면 됐는데 무슨 욕심을 그렇게 부리십니까?”하고 말했다. 그것은 오해이다. 나는 결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계절은 바야흐로 늦가을쯤일 터이다. 아직 추수 덜한 전답들이 남아 있으므로 나는 바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처럼 눈이 쌓이고 나의 시간이 정지되면, 비지땀 흘리며 지어놓은 것들을 거두어 들이지 못한 채 썩히게 될 터이므로. 그것들을 착실하게 거두어 들인다는 것은 내가 확실한 ‘미래’를 갖춘 시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는 당연한 귀결이어서 슬프다. 꽃이 떨어짐은 죽음이 아니고 또 다른 성숙이다. 꽃은 피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그때 확실하게 피지 않으면 안 된다. 꽃이 피는 것은 꽃망울로부터의 성숙이고, 낙화한 다음 열매를 맺는 것은 꽃으로부터의 성숙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 그것은 아쉬움 없는 이승과의 작별의 낙화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있는 꽃인 것이다. 소설가
  • 제주 빅3 물속으로?

    ‘빅3 물 건너 갔나?’ 지난해 7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특별자치도로 출범한 제주도가 2단계 핵심 제도개선으로 추진중인 항공 자유화, 전지역 면세화, 법인세 인하 등 이른바 ‘제주특화 빅3’가 중앙정부의 반대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들어 시기상조라며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자 제주도의회와 제주상공회의소 등 지역 기관·단체들은 “무늬만 특별자치도일뿐 달라진 게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항공자유화 항공자유화는 외국 항공기가 제주도를 경유하여 제3국으로 갈 경우 제주도에서 여객·화물을 탑승·탑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도는 국제항공 직항노선이 부족하고(3개국 9개 도시) 현재와 같이 외국도시∼인천공항∼김포공항∼제주도라는 경로를 통해 제주도를 찾는 시스템으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한계가 있다며 제주공항 항공자유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항공자유화 허용시 상대국과의 항공자유화 협상의 지렛대가 상실되고 외국항공사의 가격덤핑 등으로 국내 항공수요를 잠식할 우려가 있고, 인천공항 등 다른 지역 공항과의 형평성을 들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도는 모든 항공사에 대한 항공자유화 허용이 아닌 양자간 항공회담시 상대국 항공사에 항공자유화를 선별적으로 추진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도 전역 면세화 도는 면세화를 통해 제주를 관광객의 쇼핑천국으로 만들겠다며 관광객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연간 이용횟수 4회, 구입한도 1회 400달러, 품목 16개 제한 등을 두고 있는 내국인면세점의 이용횟수 폐지, 구매한도 상향 등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과세·면세 겸업사업자의 면세매출 구분 곤란 등 기술적 문제와 면세효과가 사업자에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 도는 과표 1억원 이하 13%,1억원 초과 25%인 현행 법인세를 제주도에 한해 과표 1억원 초과기업에 대해서도 13% 단일세율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경쟁도시(홍콩 17.5%, 상하이 푸둥 15%, 아일랜드 12.5%, 싱가포르 20%)에 비해 복잡하고 높은 세율로 투자유치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실제 투자는 없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조세회피 등으로 대규모 세수감소가 우려된다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지난달 2회에 걸친 총리실 주관 관계부처 차관회의 등에서 제주도는 빅3 조기허용 등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양대성 제주도의회 의장은 “정부가 형평성 논리를 앞세우면 특별자치도 존재이유가 없어진다.”면서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빅3를 과감하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강태규의 연예 in] 인터넷시대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구축되면서 어느새 새롭게 자리한 ‘생활의 발견’을 감지한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혁혁한 구매문화의 변화는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매장을 직접 찾아 물건을 보고 고르는 일은 어쩌면 아날로그 방식을 추억하는 일종의 의식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터넷은 무소불위의 위력적 존재로 성장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딪힘과 언어가 아닌 연산과 기호에 의해 걸어가는 세상…. 그리 오래 지난 일도 아니다. 시내 골목길마다 붙은 영화포스터를 보고 관람충동을 느낀 것도, 포스터 속의 배우를 내 책상앞으로 가져오고 싶던 충동도 지금의 10대들에게는 우스운 옛날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지난해 10집 음반을 발표한 가수 신승훈이 1990년대 중반 음반을 발표할 때, 전국의 레코드 가게앞에는 음반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겠다. 불과 10년 사이에 변화한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다. 인터넷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들에게 방송과 영화, 그리고 우리 가요 역시 ‘앉아서 골라보기’ 존재이다. 방영시간과 개봉일자, 발매시기는 의미없는 시간이다.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 다시보기가 존재하고 P2P파일 공유를 통해 영상물과 음악을 다시 접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탐색하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새로운 창작품에 대한 설레는 마음과 절박함은 기술과 속도가 앗아간 지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편리한 기술과 속도 앞에 우리의 양심도 내놓았다.1999년 겨울, 대구에서 20년째 레코드가게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상인의 한숨 섞인 푸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탁월한 기술은 당시 음반 주 소비층인 청소년들에게 어떤 방법을 불사하더라도 돈을 지불하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유명뮤지션의 음반이 나올 즈음 평소 하루 200장 정도 나가던 음반판매량이 거짓말처럼 뚝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고 봤더니 정품 음반을 한장 구매한 학생이 컴퓨터에 내장된 CD라이터기로 수백장을 구워 친구들에게 실비로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음반재킷 디자인을 컬러프린터해 마치 정품과 유사한 형태로 복원한 채 말이다. 20년을 넘게 한자리를 지켰던 레코드 가게는 몇해 전 결국 대형 마트에 그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 변화하는 기술과 전광석화 같은 속도가 인간에게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문명이 낳은 윤리적 문제를 응당 겪고 지나야 할 과정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우리에게 너무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우리에게는 늘 존재한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 [열린세상] ‘100년 정당’ 우리에겐 불가능한가/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정당이란 일반적으로 공통된 정책적 선호도를 가지고 비슷한 이념적 성향을 공유하는 일단의 사람들로 조직된 집단이다. 그러나 정당이 비로소 정당이 되는 길은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원론적인 정의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정당이 정책이나 이념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 대신 몇가지 이익이나 집단, 또는 지역을 바탕으로 느슨하게 연대하는 형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노동당과 같이 이념정당이 있는 반면에 소속 의원들의 이념적 분포가 좌에서 우로 매우 넓게 퍼진 정당이 있다. 이른바 3김 시대를 마지막으로 당의 공천권과 돈줄을 쥐고 있는 보스가 없어진 후, 당의 기율과 위계가 현저히 약해진 최근에는 후자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국민들의 민생보다는 자신의 이해를 위하여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데 몰두하면서 같은 당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일찍이 독일출신의 유명한 사회과학도인 미헬스는 평등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에도 위계적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마는 철칙이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매디슨은 정파(faction)란 소수의 이해를 추구하기 때문에 악효과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렇듯 정당은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쉽고 집권 후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만 자기 정파와 정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뿌리도 없고 책임도 안지고 국민도 없으며 포용력도 없다. 대신 비민주주의, 정파, 국민에 대한 배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1987년 민주화 이후 이제 헌정 60주년을 앞두고 있는 오늘에도 한국의 정당들은 국민의 삶을 개선시킬 공통된 정책이나 이념을 갈고 닦기보다는 정권욕에 치우친 비타협적인 정파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어느 정당의 당의장은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정계개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느 정당의 지도자들은 몇 년 전 개혁을 위한다고 당을 쪼개놓고서는 지금은 중도세력끼리 대통합해야 한다고 또 당을 뛰쳐나가고 있다. 어느 정당에서는 후보검증을 놓고 대표주자끼리 으르렁거리는 한편 유력한 대선후보 주위로 서로 사람이 쏠리고 있다. 이번에 당이 또 깨지고 만들어지면 두고두고 지켜볼 작정이다. 과거와 같이 선거를 전후해서 반짝하는 정당은 아닌지를.1963년 정당법이 제정된 후 110여개의 정당이 생기고 100여개가 사라진 정말로 한심한 한국의 정당사에 또 다른 오점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를. 같은 기간 동안 한국 정당의 평균수명이 3년을 간신히 넘어서는데 과연 평균수명이라도 누릴 것인지를. 미국의 170여년 민주당 역사와 150여년 공화당 역사 속에 5·31 지방선거와 같은 참패가 한두 번 없었을까. 대선을 앞두고 참패가 예상되는 상황이 한두 번 없었을까. 한국과 같이 앞 다퉈 탈당하고 정계개편하자는 주장을 밥먹듯이 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까지 몰려도 클린턴의 성추문으로 당의 인기가 땅으로 떨어져도 서로 게임의 규칙도 지키고 타협도 하며 정권도 내주었다가 다시 찾아오면서 안정된 정당을 만들었다. 영국의 보수당도 170여년, 노동당도 100여년, 일본의 자민당도 50여년의 역사를 그렇게 지켜왔다. 한국은 예로부터 아침이 조용한(morning calm)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깜짝 아침’(morning surprise)의 나라가 되었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경천동지할 일이 발생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와, 우리나라에 100년 이상 국민과 애환을 같이한 정당이 생겼네.”하고 놀라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 격해지는 한나라 ‘정체성 공방’

    한나라당이 본격적인 대선정국을 앞두고 정체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극우보수 성향의 김용갑 의원은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원희룡 고진화 의원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한나라당의 이념과 정체성, 노선에 역행하면서 당론에 반대하는 것이 다반사였다.”며 “이들 두 주자는 한나라당보다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경선에 나가면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경선포기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원희룡 의원은 “김 의원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고 해당성 발언으로 오히려 당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며 즉각 반박했다. 고진화 의원도 최근 자신에 대한 잇단 비판 발언에 대해 “당 지도부나 특정 계파에서 기획된 느낌이 든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전날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인 유석춘 연세대 교수가 탈당을 공개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공작정치 의혹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또 전여옥 최고위원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박형준 의원을 공격했다. 전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은 지난 4년 동안 오로지 대선승리를 위해 모진 고통과 수모를 겪어왔다.정치학 교과서에도 정당의 존재이유가 정권교체라고 돼 있다.”고 말해 “무조건 집권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는 손 전 지사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전 최고위원은 또 박형준 의원이 전날 “당이 꼭 흰 쌀밥이 될 필요는 없다. 보리쌀이 섞여 있어도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빗대어 “‘하얀 밥 보리밥’ 정도가 아니라 당의 정체성과 당원들의 절절한 심정에 큰 못을 박는 사람들은 근신해야 한다.”며 맞받아쳤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문화마당] 문화 연구의 명암/코디최 문화이론가·화가

    문화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단어다. 하지만 누가 그 경계와 개념을 묻는다면 경제나 정치와 같이 뚜렷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쉽게는 문학, 예술 같은 정신적 분야와 교육, 방송, 종교, 영화 등 신문의 문화면을 떠올리지만 곧바로 과학, 사회, 정치, 심지어는 연속극이나 만화, 휴양지 같은 우리 일상 속에 녹아있는 모든 것을 문화로 여기게 된다. 문화의 범주를 종종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인류학자들은 문화의 개념을 ‘사회적 행동양식’이라고 명명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행동양식을 통한 추상적 의미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문화에 대한 개념 정의는 1871년 영국의 인류학자 E B 테일러가 ‘원시문화(Primitive cultures)’라는 책에서 내린 것이 최초다. 그는 사회인은 자연과의 대립 속에 인위적인 무엇인가를 가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한 결과물이 바로 문화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인간이 요구하는 지식이나 믿음, 예술, 도덕, 법, 관습 등에 의해 만들어진 합성물이 문화다. 다시 말해 문화란 경험과 연구를 통해 학습되어진 사회 또는 소집단의 결과적 행동양식을 뜻한다. 레비 스트라우스 같은 구조주의 학자는 의미를 나타내는 실천행위를 문화로 간주하고, 그 문화를 기호로 표현했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클리퍼드 기어츠(81)는 이러한 문화의 모습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우리에게 들려주는 총체적 앙상블이라고 했다. 이같은 개념들을 감안하면, 문화는 우리의 의식에 의미를 동반하는 행위들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문화의 명확한 경계와 개념을 논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화는 자신만의 명확한 범주를 갖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을 포함하고 관용을 베푸는 듯해도 자신의 뚜렷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문화의 모습을 인간유형으로 분류해 본다면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지만 실리주의자인 보헤미안을 떠올릴 수 있다.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포용하며, 자아가 없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 그런 존재이다.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학문부터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까지 면밀하게 관찰하는 지적 자세가 필요하다. 문화 연구는 여러 주장과 서로 다른 의견 또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끝없는 지적 논쟁을 야기시킨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문화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문화연구 방법론에 ‘Anti-discipline’, 즉 일종의 ‘반(反)규율’적인 입장이라는 게 있다. 특정한 학문분야에 구속되지 않는 유연한 연구형태, 끝없이 방법론의 변화를 모색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런 자세를 취한다고 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무분별한 관점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수년전 한 신문의 연예면에서 난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 가수가 오랜 침묵 끝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날마다 열편가량의 비디오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온갖 장르의 영화를 모두 보았기에 더 이상 볼 영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관점이 생겼고, 따라서 이제부터는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쓴웃음을 짓게 하는 노릇이었다. 문화 연구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을 하게 된다. 특성상 마땅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시대상황이나 환경, 사회적 조건 등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이동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정치적이었다가, 어떤 때에는 예술적으로, 또는 일반적인 것이었다가도 역사와 연계되는 식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 연구는 아무렇지 않게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은 것이다. 비록 문화연구가 ‘반 규율´적인 속성이 있다고 해도, 이러한 무분별한 발상을 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디최 문화이론가·화가
  •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개통 1주년

    대구~부산간 민자고속도로인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25일 개통 1주년을 맞았다. 대구시 동구 용계동에서 경남 김해시 대동면까지 모두 82.05㎞의 4차선 도로인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지난 한해 동안 2500만대의 차량이 이용했다. 개통초기 하루 4만 3000여대가 이용했으나 최근엔 평일 7만 6000여대, 주말 10만여대의 통행량을 기록하고 있다. 차종별로는 승용차가 81.4%로 가장 많고 소형화물차 및 버스 9.1%, 대형화물차 9.5% 등의 순이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측은 “유류비 절감과 운행시간 단축 등의 효과로 인해 통행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도로가 개통되면서 김천, 구미, 경산 등의 수출기업 물류여건이 호전됐다. 대구~부산간 운행시간도 40여분으로 단축돼 인적자원과 관광객 이동에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과속으로 지난 1년간 15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10명이 숨졌다. 신대구부산고속국도㈜는 올해 속도감시카메라 2대를 추가 설치하고 교각 등 주요지점의 가드레일 20곳을 보강공사해 사고 예방을 한다는 계획이다. 민자로 건설돼 통행료가 일반 고속도로보다 비싼 게 이용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승용차 기준 대구~부산 대동IC간 통행료가 8500원으로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간 5700원에 비해 50% 비싸다. 또 추가요금 부담으로 대구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동대구IC 재이전도 풀어야 할 과제다. 건설교통부의 동대구IC 원위치 재이전 가능성 여부 검토 기술용역 결과가 오는 3월쯤 발표될 예정이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논란이 불가피하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2001년 착공해 민자 1조 8000여억원과 국고 7000여억원 등 2조 5000여억원이 투입돼 5년 만에 완공됐다. 인터체인지 7개와 상하행선 각각 1개의 휴게소가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야구 올림픽출전 ‘험로’

    인구 1600만명인 A나라에 한국 축구가 무릎을 꿇는다 해서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5-0으로 지지 않는 한은.인구 2300만명의 B나라에선 야구가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다. 인구가 곱절이고 최고 인기 종목으로 야구가 꼽히는 한국의 초등학교 선수는 1500명 정도지만 B나라는 무려 7000명. 이 나라와 야구 경기에서 한국이 지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감독과 선수, 기타 관계자들은 모두 비난의 불화살을 피할 길이 없다. 웬만한 팬이라면 A나라는 네덜란드이고 B나라는 타이완임을 짐작할 것이다. 네덜란드 축구에 대한 우리 팬의 관심은 상당해도 타이완 야구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런데 왜 네덜란드 축구는 인정하면서 타이완의 야구 실력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한 것은 물론, 관심도 엷을까? 유럽은 부러운 존재이고 아시아는 부끄러운 존재여서일까? 타이완은 초등학교 선수 수에서 보듯 우리보다 튼튼한 저변을 갖고 있다. 프로야구도 우리보다 뒤늦게 출발했지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진짜 프로다. 다만 너무 돈을 좋아해 도박과 리그간 싸움이 발전을 잠시 가로막았을 뿐이다. 우리가 타이완보다 나은 게 있다면 실력이 아니라 연봉뿐이다. 지난해 카타르 도하에서 타이완에 진 한국 야구는 11월 말에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다시 맞붙는다.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 두장 가운데 한장은 중국이 주최국 자격으로 미리 가져가 버렸다. 따라서 보통 아시아 대회에 나갈 때는 타이완만 이기면 체면은 세울 수 있고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권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타이완은 물론 일본도 물리쳐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그런데 타이완은 본토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메달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종목이 야구라서 총력을 기울인다. 일본도 메이저리그에 빼앗긴 프로야구의 인기를 회복하는 방법은 올림픽 메달뿐이라는 생각에서 벌써부터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는 한참 늦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타이완을 꺾으면 당연한 일이고 지면 창피한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누구도 선뜻 지도자로 나서길 꺼리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좋은 감독을 선발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찍 결정을 내려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현역 감독을 겸임시키든, 전임 감독을 뽑든 상당히 어려운 대회이므로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도 필요하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환경·생명] 폐비닐로 신음하는 국토

    [환경·생명] 폐비닐로 신음하는 국토

    국토가 폐비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계절 농업이 보편화되고 비닐 사용량이 크게 늘면서 폐비닐도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거되지 않고 묻히거나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소각되는 바람에 2차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비닐은 농업 생산성을 올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재이지만 폐비닐로 인해 농토 오염은 물론 농촌 환경을 크게 해치는 흉물로 자리잡았다. 연근해 바다와 강 속에도 폐비닐이 가라앉아 환경오염과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연간 발생하는 폐비닐은 26만t 정도.2005년에는 26만 4880t이 나왔다. 이중 21만 3723t을 거둬들여 수거율이 81%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거율이 높아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5년 전만 해도 수거율이 절반에 불과했다. 한국환경자원공사에 따르면 2001∼2005년에 발생한 폐비닐은 모두 128만t에 이른다. ●5년간 미수거만 50만t 육박 이 가운데 수거량은 80만 7712t에 불과하다. 나머지 47만 4822t은 수거되지 않고 땅속에 묻혔거나 불법으로 태워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에 발생, 수거되지 않은 폐비닐까지 더하면 엄청난 양의 폐비닐이 국토를 뒤덮고 있는 셈이다. 폐비닐 가운데는 농업용 폴리에틸렌 필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농업용 비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50년대 초.1970년대 비닐 하우스 농사가 본격화되면서 사용량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채소재배 비닐하우스에 주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농업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재질이라서 사용량에 비례해 그만큼 폐비닐이 나온다는 데 있다. ●젊은층 이농… 수거 엄두조차 못내 경기도 화성시 한 농촌 마을 밭에는 아직도 비닐이 수거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돼 있다. 농민은 “2년 전 농사지은 땅인데 젊은 사람이 없어 비닐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연기군 축산리 산밑 밭에는 고추를 심을 때 깔았던 비닐이 수년째 버려져 있다.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농사를 포기한 땅이라서 절반은 이미 무성한 잡초와 함께 땅속에 묻혔다. 또 대충 걷어낸 비닐 덩이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 남해 연근해에도 폐비닐이 쌓여 있다. 때로는 작은 고깃배 스크류가 폐비닐에 걸려 엔진이 멈춰서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그물을 쳤다가 끌어올리면 비닐 덩어리가 따라올라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폐비닐을 효율적으로 수거하는 길은 없을까. 현재 폐비닐 수거는 전적으로 농민들의 손에 의존하고 있다. 배출자 수거 원칙을 적용하면 이들이 거둬들여야 하지만 농촌 인구 고령화와 일손부족으로 이마저 여의치 않다. 농민들의 의식도 문제다. 폐비닐로 인한 국토오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도 많다. ●재활용 기술개발 투자 서둘러야 조남용 환경자원공사 수원 사업소장은 “수거율을 높이려면 지자체 장려금을 늘리고, 처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농촌 인구 고령화로 수거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폐비닐 수거에 나서고 있지만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자체는 폐비닐을 수거하면 장려금을 주는데 지급액이 천차만별이다.㎏당 30∼40원을 주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최고 300∼400원을 주는 곳도 있다.2005년 폐비닐 수거 장려금은 지방자치단체 100억원과 농림부 30억원 등 13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돈으로 수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농어민 교육에 폐비닐의 위험성을 알리고 수거 우수 마을에 대한 차별 지원 등이 필요하다. 처리 능력을 키우고 재활용 기술 개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폐비닐 처리는 대부분 환경자원공사가 맡고 있는데 2005년의 경우 수거된 21만 6000t 가운데 처리량은 10만t에 불과하다. 올해는 11만 4000t을 처리할 계획이다. 공사가 폐비닐 처리 공장 5곳과 중간 가공시설 8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폐비닐을 처리하기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직도 수거해 놓고 처리하지 못한 폐비닐이 35만t이 넘는다. 글 사진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거두면 자원, 버리면 쓰레기 다른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폐비닐도 건축자재나 생활용품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다. 흙이 묻지 않은 비닐 터널 등은 고무 함지박을 만들거나 고무 디딤판을 만드는 주원료다. 고추밭에 까는 검은색 비닐 등은 물로 씻어 이물질을 털어낸 뒤 이를 녹여 유기용제 등의 재생원료로 쓴다. 한국환경자원공사는 “영농 폐비닐만 제대로 수거해도 연간 167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폐비닐을 재활용하여 친환경 재생골재를 생산, 도로포장에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흙이나 이물질이 묻어 있는 상태의 폐비닐을 그대로 원료로 사용할 수 있어 실질적인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생골재로 흙과 섞어 도로지반을 다지면 자체의 구멍이 자갈 역할을 하여 흙이 물을 흡수하는 것을 막고, 높은 단열 효과로 도로지반이 어는 현상도 줄일 수 있다. 이 재생골재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공사에 실제로 사용돼 성능 검증을 마쳤으며 골재 원가의 30%가량을 줄이는 효과를 보았다. 폐비닐로 다공성 세라믹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나왔다. 폐비닐을 백토, 점토 및 고령토 등과 섞어 800∼1100도에서 소성시키면 다공성 세라믹 제품이 나온다. 그러나 버리면 그대로 환경을 훼손하는 쓰레기가 된다. 농경지에 그대로 묻히면 땅 속 공기 흐름을 막아 작물이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자연경관도 크게 훼손해 농촌환경을 더럽히는 원인이 된다. 밭에서 태우면 인체에 해로운 대기오염물질이 발생하고 소각 잔재물을 땅에 묻으면 토양오염의 원인이 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폐비닐 수거 요령 내가 사용한 비닐은 내가 수거한다는 의식을 갖고 흙·돌·낙엽 등 이물질을 제거한 뒤 배출해야 한다. 이물질이 얼마나 포함됐느냐에 따라 재활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물질이 30% 이하면 재활용 가치가 높고 수거 보상금도 지급한다. 이물질이 50% 제거된 폐비닐은 바람으로 털거나 물에 씻어 재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물질이 80% 이상 남아 있는 것은 매각이나 소각해야 하는데 엄청난 폐기물처리 비용이 발생한다. 제품별로 따로 수거하면 처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우스용 두꺼운 비닐(로덴비닐)과 고추밭 등을 씌우는 얇은 비닐(하이덴비닐)로 구분하고 흰색과 검정색 비닐로 나누어 묶으면 된다. 개인별 수거보다는 마을 단위 수거가 경제적이고 수거에 편리하다. 마을 공동 집하장에 모아놓고 읍·면·동 환경담당에게 연락하면 된다. 지자체는 환경자원공사에 연락, 수거 일정을 정해 전문 수거 차량이 출동, 위생적으로 거둬가고 지자체에서 보상금을 지급한다. 개인 재활용 업체가 수거하기도 하는데 수거량이 미미하고 이물질이 없는 양질의 상태만 가져간다. 이 때문에 폐비닐을 깨끗하게 처리하기 위해선 지자체를 통한 수거가 바람직하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신나는 과학이야기] 우리도 ‘국립’ 자연사 박물관을 갖자

    [신나는 과학이야기] 우리도 ‘국립’ 자연사 박물관을 갖자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의 주인공 래리는 이혼남에다 하는 일마다 실패만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는 멋진 아빠이고 싶어 박물관 야간경비로 어렵게 취직을 한다. 출근 첫날밤 선임자는 “아무 것도 내보내지 말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고 사라져버리고 래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박물관 중앙 홀에 전시돼 있던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아서 래리에게 돌격해오는 것이 아닌가. 공룡뿐이 아니다. 박물관 안의 모든 전시물이 밤이 되면서 살아나 래리를 위협한다. 사자가 못나오게 자물쇠로 잠가야 하고 사나운 훈족도 피해 도망가야 하고….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그에게 선임자는 역사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충고한다. 래리는 도서관에서 인류와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마법의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시공간을 넘어 공룡과 사자와 훈족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이 박물관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연사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 그것은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자연사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연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다. 지구가 생긴 이후 지층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여러 동식물은 어떻게 진화돼 왔는지, 인류는 어떻게 문명을 이뤘는지에 이르기까지 지구를 이루는 모든 것의 진화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은 곳이다. 자연사박물관을 가면 대부분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공룡이 중앙 홀에서 손님을 맞는다. 중생대에 지구를 호령했다 사라진 공룡은 늘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존재이기에 자연사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백만년 전 그 공룡을 과학자들은 뼈와 화석만으로 복원해 살려낸다. 공룡뿐 아니라 화석과 지층, 암석을 토대로 과거에 살았던 생물들과 지구환경을 복원해내 전시한다. 자연사박물관에는 고생물뿐 아니라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종이 전시돼 있다. 우리 땅에 사는 생물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사는 생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실물과 모형을 보면서 체험할 수 있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우리 조상의 진화 과정과 문명의 발전사를 살핌으로써 인류의 진화와 여러 문화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다.“우리가 미래를 볼 수 없다면 인생에서 가장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한 자연과학자 고드리의 말처럼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봄으로써 인류가 나아갈 미래의 모습을 모색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살아있는 박물관을 꿈꾸며 현재 우리나라는 OECD 29개 회원국 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런던에도, 파리에도, 워싱턴에도 멋지고 특색 있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있다. 그곳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기업과 개인의 기부, 박물관 직원들의 연구와 교육활동 등 많은 이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사명감이 합쳐져 운영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교육의 장을 넘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이자 시민들의 휴식처, 관광자원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영화에서 밤새 벌어진 사고의 책임을 물어 래리를 해고하려던 박물관장은 박물관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 결심을 바꾼다. 사람들이 넘치는 박물관이 진정 살아있는 박물관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도 어서 빨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생겨 생생한 자연의 역사를 느끼려는 아이들로 넘쳐날 날을 꿈꿔본다. 한 문 정 숙명여고 교사
  • 시인 문태준 ‘지독한 詩사랑’

    2004~2005년 연속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인’으로 선정된 시인 문태준(37)이 자신이 지독히 사랑한 69편의 시를 뽑아 시집을 냈다.‘포옹-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해토 펴냄). 시인은 “제 사랑의 과거였으며 현재이자 미래인 이 시들을 ‘꽃을 기르는 마음으로’ 보아달라.”고 말한다. 또 “꽃이 피어나듯, 해서 붉은 꽃잎이 ‘당신’의 마음을 물들이길 희망한다.”고도 했다.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2004년), 미당문학상(2005년), 소월시문학상(2006년) 등 5개의 문학상을 휩쓴 시인은 우리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대표시인이다. 그런 만큼 시인이 뽑은 시들은 서정이 물씬 넘친다.‘그 처음에 사랑이 사랑을 만나’(제1부) ‘기다림이라는 말의 대륙이여’(제2부) ‘따뜻하고 넉넉하고 느슨하게’(제3부) ‘나는 수선화 핀 것을 보았네’(제4부) 등으로 분류됐다. 시집에는 장석남의 ‘낮은 목소리’, 정끝별의 ‘물을 뜨는 손’, 나희덕의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류시화의 ‘소금인형’ 등 시인이 사랑한 ‘은하’와 같은 시들이 한데 펼쳐져 있다. 각각의 시에 시보다 더 시적인 시인의 산문이 실려 있어 감상하는 즐거움도 배가된다. “아내의 몸에 대한 신비가 사라지면서/그 몸의 내력이 오히려 애틋하다//그녀의 뒤척임과 치마 스적임과/그릇 부시는 소리가/먼 생을 스치는 것 같다”로 이어지는 장철문의 ‘신혼’에 대해 시인은 “사람이 다른 내력으로 입때껏 살아온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비단을 만지는 일만 같은 게 아니다.”라면서 “연민이야말로 부부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포옹”이라고 적었다. 신현림의 ‘사랑이 올 때’에 대해서는 “사랑은 뼘으로 재는 것이 아니다. 자벌레처럼 한 뼘 두 뼘 재며 가는 게 아니다. 하여 사랑은 화선지가 먹물을 받듯 당신을 받아 물드는 것이다.”라고 썼다.160쪽,8500원.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7) 마라도 등대지기 김영훈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7) 마라도 등대지기 김영훈씨

    우리 땅 남쪽 끝자락 마라도에도 겨울이 한창이었다. 마라도 인근 청정바다에는 제철을 만난 방어잡이 어선들이 넘실거리고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은 겨울 파도를 헤치며 부지런히 마라도를 들락거린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한 무리의 관광객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섬을 돌아보곤 썰물처럼 빠져나길 거듭한다. 파도소리와 새들의 울음소리뿐인 마라도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한 관광객들이 빠져나가면 마라도는 다시 고요함에 휩싸인다.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섬을 둘러보고 매정하게 떠나는 관광객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요.” 마라도등대(제주해양관리단 마라도항로표지관리소)를 지키고 있는 김영훈(57)소장. 그는 등대지기 30년째다. 지난해 1월 다시 마라도에 온 김씨는 마라등대에서만 14년을 보냈다. 마라도 근무만 이번이 5번째다.30년 동안 마라도와 우도, 추자도, 제주시 사라봉 등 제주도 4개 유인등대를 모두 거쳤다. 마라도가 최남단 섬이듯이 마라등대도 전국의 등대 가운데 가장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라등대는 동중국해와 제주도 남부해역을 오가는 선박들엔 생명의 빛이다. 서해를 따라 군산·평택·인천항을 오가는 선박들은 모두 마라등대를 이용한다. 등대는 그저 불빛만 내보내지 않는다. 안개가 낀 날, 악천후에는 전파와 소리로 선박들에 24시간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위성항법장치(GPS)등 선박마다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등대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한줄기 등대 불빛은 항해사들에게 자신감과 안도감을 줍니다.” 마라등대에는 김씨를 비롯해 3명의 등대지기가 일한다. 등대지기란 말은 1988년부터 사용하지 않고 공식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이다. 3명이 교대로 하루 24시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등대에 불을 밝힌다. 하루에도 몇차례 마라도 인근 해상의 바람의 세기, 파고 등 기상상태를 파악, 제주기상대로 보내는 일도 등대지기의 몫이다. 등대 사무실과 숙소는 10m남짓 거리에 있고 하루 세끼 식사도 혼자서 해결한다. “말이 교대근무이지 수시로 낮과 밤이 바뀌는 근무에다 마땅히 갈 곳도 없어 등대지기에겐 퇴근이라는 개념은 없지요.” 김씨는 한달에 두번 가족들이 살고 있는 제주시 조천읍을 다녀온다. 근무지인 등대에서 한달에 두번 퇴근을 하는 셈이다. “요즘은 늘어난 뱃길에다 인터넷, 휴대전화 등으로 고립감은 느끼지 못하지만 늘 떨어져 살아야 하는 가족들에겐 항상 미안함이 앞섭니다.” 밤마다 홀로 남는 등대지기의 외로움은 계속되지만 마라등대 등 관광지가 된 전국의 유명등대는 요즘 더 이상 외로운 곳이 아니다. 세계의 유명 등대모형을 전시하고 있는 마라등대 앞 ‘세계의 등대마당’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밤 바다의 어둠속에서 등대가 ‘희망의 불빛’역할을 하듯 외롭고 힘들거나 상처받은 사람들도 한번쯤 등대에 와서 삶의 희망과 위안을 벋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마라등대는 세상살이에 지치거나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용기와 희망의 빛을 발하고 있다. 글 사진 마라도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이장욱론/이찬

    1. ‘인공정원’ 으로서의 ‘시’를 넘어서 시인은 자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어떤 체험의 순간을 지금-여기로 다시 불러오는 존재이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시작품들 가운데, 이 순간을 상투적인 표현들로 재생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구체적인 체험 속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생(生)의 순간들과 그 감각적 비의(秘義)들은 관례화된 문법을 통해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시’ 장르의 전래적인 형식과 표현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가 되었든, 지금까지 ‘시’가 보존해 온 관습적 전범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과격하게 실험하는 ‘전위적인 현대시’가 되었든, 이러한 ‘상투성’으로부터의 이탈은 ‘문학’(literature)이라는 현대적인(modern) 산물에 요구되었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자 ‘문학’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다. 이장욱의 시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과 풍경들을 1인칭 화자의 감정과 의식과 가치를 표상하기 위한 대리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왕(旣往)의 관례화된 ‘시’의 문법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서정은 만상을 일인칭의 내면적 고도(高度)에 걸어두는 방식이다.”(‘꽃들은 세상을 버리고’,《창작과 비평》,2005년 여름,70쪽)라는 그의 진술은 우선 ‘시’(‘서정’) 장르의 일반적 원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통상적인 ‘시’ 문법에 대한 그의 반감(反感)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장욱이 재래(在來)의 ‘시’의 문법에 대해 품고 있는 회의와 반감은 그것이 필연적으로 이 세계의 ‘만상’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동일적인 영혼을 표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유(專有)하며, 마침내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상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휘발시키는”, 조작된 ‘인공정원’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더불어 이러한 ‘인공정원’으로서의 ‘시’(‘서정’)가, 세계의 그 풍요로운 다양성을 또한 사물과 사건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육체적 질감들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밀폐된 서정적 우주”로 복속시켜 버리거나 혹은 그 바깥으로 추방시킨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그에 따르면, 통상적이고 관례적인 ‘시’의 문법은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시인의 ‘일관된 가치와 의미와 정서’에 의해 세계의 만상들에 얼룩져 있는 ‘혼탁한 사물성’을 그 바깥으로 밀어내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조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1인칭 화자의 나르시시즘적인 ‘인공정원’이 가공될 수 있을 뿐, 세계 그 자체의 참다운 실상들이 발견될 수 없다. 2. 표상의 외부와 마주침의 유물론 “객관적인 아침/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깨어나고/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구름을 통과하는 비행기와/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리진다./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희미한 풍경 같아서.”(‘객관적인 아침’ 전문) ‘객관’(object)이란 철학적 인식론에서 주체의 의식 바깥에 놓여 있는 외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의 시선과 지시작용(designation)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어떤 미지(未知)의 영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곧 ‘객관’이란 주체의 의식 바깥의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 혹은 세계이기는 하나, 주체의 시선과 자기의식에 의해 호명되고 포획되어, 이미 ‘있다’고 알려진 어떤 인식적 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장욱에게 ‘객관’은 이렇게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객관적인 아침’은 ‘나’와 ‘당신’과 ‘침묵’과 ‘종이 비행기’가 서로 ‘무관하게’ 자신들의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시간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아침’이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주체의 시선과 사유에 이미 포착되어 있는 어떤 외부적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주체의 자기회귀적인 의식의 궤도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 또는 사물 그 자체가 지닌 복수적 다양성을 표현한다. 기왕(旣往)의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시작품의 경우라면, 위의 시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은 ‘단 하나의 소실점’을 위해 봉사하였을 테지만, 그리고 그것은 시인의 내면 풍경의 표상(表象)들로 고용되었을 것이지만, 여기에서 그것들은 시인이 설정한 ‘소실점’과는 ‘무관하게’ 그 자신의 존재를 보존한다. ‘내 시선의 끝’에서는 모든 사물이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지금 ‘그대와 나’라는 인간의 ‘시선 바깥’에선 ‘멸종 위기의 식물’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허공’에 ‘포자’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또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인간이 설정한 세계의 위계질서와 그것의 ‘소실점’ 역시 하나의 ‘희미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하늘’이라는 자연물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까닭은 분열되고 오염된 우리의 경험 세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마음의 도원(桃園)’을 표상(表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은 자기 내부에서 발아한 동일자의 표상(representation)들만을 세계로부터 수집할 따름이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위(僞)와 악(惡)과 추(醜)를 볼 수 없으며, 그것들과 결코 마주칠 수 없다. 이 영혼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을 보며, 보고 싶은 것만을 고백하며, 고백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등뒤에 있다”는 ‘절규’의 첫 구절은 시인 이장욱이 가진 인식론적 지평을 축약하여 드러낸다. 이것은 그의 시에서 다양한 상징적 편린(片鱗)들로 산포되어 나타난다. 이 편린들은 예컨대 “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두 그루 전신주는 아름답고 밤눈은 내리고 녹슨 제 땅에서 제 어둠을 파 내려갔으므로 단 한 번도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그 오래된 이야기”(‘이상한 나라’),“꽃은 15층 베란다에 서서 까마득한 지상을 가늠하는 자와 그 흐린 눈을 마주치지 않음으로써 꽃은, 오로지 나무일뿐 인 무서운 나무들 사이에서 아직도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사라지는 꽃’),“하지만 너무 흔한 최면처럼 아직도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하늘이 너무 흔한 최면처럼 실편백에 내리는 빗물이, 다시 나를 이끈다는 것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상투적인가 돌아오지 않기 위해 내가 치를 수 있는 무엇이, 더 있었을 것이다”(‘너무 흔한 풍경’)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시구들은 1인칭의 나르시시즘적인 영혼이 웅변하는 ‘기억’과 ‘고백’과 ‘이야기’가 ‘거짓’이거나, 세계의 풍요로운 실상과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폐쇄적인 ‘아름다움’에 불과하다는 이장욱의 인식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이 볼 수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자기 자신일 뿐이며, 그것이 도취하고 열망하는 자연의 풍경은 ‘너무 흔한 최면’일 따름이다.‘하늘’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리하여 모든 자연과 사물의 풍경이 ‘나’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에만, 시인은 ‘너무 흔한 풍경’을 재생하지 않을 수 있고,‘이 당대적 상투성의 거리’(‘상투적’)를 벗어날 수 있다. 이 벗어남은 1인칭의 고백적 화법이 마련한 자기 동일적인 표상체계 바깥으로부터 느닷없이 밀려닥치는 우발적 사건과 그것에 수반되는 ‘낯선 것의 폭력’을 통해 시작된다. 세계의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실재성과의 마주침은 바로 이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간 것이다.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가는 하오의 육신 쪽으로 수직 낙하하는 겨/울 잎, 겨울 잎 안에서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겨울 잎의 풍경 속을 지나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으나./그것은 무성하고 울울한 저 너머, 횡단 보도 앞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여자가 오래도록 통과할 숲의 풍경./나무에 깃들여 사라진 벌레들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의 어젯밤 꿈속을 나는 거/닐었는지도. 말하자면 그 꿈속의 눈 내리는 거리를./그러므로 이곳은 겨울 잎과 햇빛과 벌레들이 이루는 세/계. 뚜레주르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나오는 늙은 사내는/어젯밤의 아주 쓸쓸한 수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그/와 나는 떨어지는 겨울 잎에 눈을 두고 지나쳐갔으나 우/리가 그 겨울 잎이 기억하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의심의 여지가 없는 겨울 잎’ 부분) 이미 드러나 있는 세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사태들의 일부로서 성립된다. 우리가 그 자신들의 눈앞에 어떤 사물과 사건의 잔상(殘像)조차 데려다 놓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물과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시의 화자가 ‘지나가는’ ‘겨울’의 ‘거리’에 드러나 있는 것은 ‘겨울 잎’이나,‘겨울 잎 안’에는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 것이’며,‘우리’가 ‘떠올리지 않’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들이 이루는 세계’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모든 1인칭의 시점(視點) 내부에 선재하는 명석 판명한 대자의식(對自意識)으로서의 ‘나’의 확실성이 아니라,1인칭 주체의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세계의 다양한 만상들이며 그것들이 이루는 변화와 이행의 과정이다. 결국 시인 이장욱이 보고 느끼고 감각하고자 하는 것은 뚜렷한 형태와 공간적 점유들로 구분지어진 사물과 사건의 가시적(可視的) 외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구분의 경계들을 횡단하는 힘들의 배치이며, 모든 존재자들이 지닌 복수(複數)의 가면(假面)으로서의 ‘자세’와 ‘포오즈’이며,‘지나가’고,‘사라지’고,‘통과하’는 것으로서의 세계의 실재성이다.‘겨울 잎’ 속에는 ‘사라진 햇빛’이 ‘있었’듯이,‘나’와 ‘그대’의 ‘생’에는 ‘사라져가’고 ‘흘러간’ 것으로서 ‘무성한’ ‘잎 새’와 ‘숲’과 ‘천천히 사라진 햇빛’도 ‘있었던 것’이다. 설혹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명징한 감각과 사유가 아니라,‘꿈속을 거닐었는지도’ 모를 상상(想像)을 통해서만 겨우 감지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있었던 것’들이다. 위의 시에서 자주 활용된 ‘지나가다’,‘사라지다’,‘통과하다’ 등등의 동사들은 어떤 사물과 사건의 고정된 상태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어떤 경계를 구분지울 수 없는 사태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동사들은 ‘시’ 장르의 통상적인 화법 내부에 선재하는 자기의식의 투명성을 표상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것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다양성과 그 변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여러 시편들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지나치다’,‘건너가다’,‘흐르다’,‘멀어지다’,‘스쳐가다’ 등과 같은 동사들 역시 세계의 ‘천변만화’하는 실재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물과 존재자들의 다양성과 이질성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표상적인 감정과 가치로 바꾸어버리는 ‘시’ 장르의 관례화된 문법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시적 전략의 하나이다. 3. 假面과 ‘脫’ 인격적 주체로서의 화장 이장욱의 시가 ‘시’ 장르의 통상적인 문법에 내재되어 있는 ‘유토피아적 자기회귀’라는 ‘상투적’인 ‘최면’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주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적 화자’를 단일한 감정과 의식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전제하는 관례적(慣例的) 설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정적 자아’의 단일한 목소리를 ‘시적 화자’의 분열적이고 다수적(多數的)인 목소리로 전환시키는 것이며,‘서정’의 화법에 내재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순결성과 엄숙한 고백체를 조롱하고, 그것 속에 은폐되어 있는 숱한 가면(假面)들을 폭로하는 것이다. “감정은 어떤 포우즈 금홍아 금홍아 마당귀 화단에 잘린 벽돌들 녹슬어 고요한 철대문, 어쩌다 딱딱한 것들과 친해졌는지 (중병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게 엽서를 띄우고 싶어 이십세기와 (짱껭뽕)을 해서라도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 품에 안기고 싶네 하루 종일 내 딱딱한 그림자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에 골몰중인지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만한 일일뿐 금홍아 금홍아아 하지만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니?”(‘금홍아 금홍아’ 부분)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이상’(李箱)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적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이상’과 그의 작품들 속에서 ‘나’로 표기되는 여러 작중 화자들이 동일한 존재일 수 없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이상’(李箱)이면서 ‘이상’이 아니며, 또한 ‘이장욱(李章旭)이면서 ‘이장욱’이 아니기도 하다. 다시 말해,‘이상’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화자 혹은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이 세계의 유일한 인격적 실체로서의 고유명사 ‘이상’(李箱)이 아니라, 그가 어느 한 시점(時點)에서 취한 하나의 정념과 태도로서의 ‘나’(假面)일 뿐이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인격적 자기동일성을 전제하는 고유명사 ‘이상’(李箱)이거나 혹은 ‘이장욱’(李章旭)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정황과 그 순간적 배치 속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정념(情念)과 태도로서의 ‘나’일 뿐이다. 더불어 이러한 ‘나’는 그 정황과 배치의 변화에 따라 무한히 변양(變樣)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의 부기(附記),“금홍이는 시인 이상의 애인이다.箱(1910-1937)과 나(1968-)의 불편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그의 소설 ‘날개’,‘逢別記’,‘終生記’ 등에서 몇 구절을 차용했다.”에서 ‘箱과 나의 불편한 관계’란 하나의 자기 동일적인 인격체로서의 ‘이장욱’이 ‘이상’이라는 또 다른 인격체로서의 시적 화자를 차용하거나 혹은 ‘이상’(李箱)의 목소리를 재연(再演)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불화(不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이상’의 목소리 속에 ‘이장욱’의 목소리가, 또는 ‘이장욱’의 정념(情念) 속에 ‘이상’의 정념이 서로를 전제하면서 공명(共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공명은 ‘이상’과 ‘이장욱’이라는 경험적 인격체 전반이 공유하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이 둘이 여전히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공명이 어떤 특정한 한 순간에만 존속(存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 만한 일일뿐”이라는 구절은 ‘시적 화자’, 더 나아가 모든 발화의 상황 속에 놓인 화자의 존재론적 특성을 축약하여 표현한다. 이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시’ 장르가 전제해왔던 화자의 자기 동일성은 실상 ‘위조’된 것일 뿐이며, 화자는 시인의 전(全) 인격체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시적 정황과 맥락 속에서 구성되어지는 하나의 가면(정념)에 불과하다.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의 이러한 변양과 분열을 의식하지 못하는,1인칭 고백체의 화법은 ‘사기’,‘거짓’이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사기치지 말라,高手는 그냥 느낀다, 그대 생을 증거하는 단 하나의 표식은, 그대의 육체이다”,“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당신이 당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됩니다.”(‘편집증 환자가 앉아있는 광장’) 등은 이장욱이 1인칭 화자의 자기애적(自己愛的) 순결과 정직을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1인칭의 발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위조’와 ‘위장’과 ‘가장’을 들추어내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거의 모든 시 속에 스며있는 위악적(僞惡的) 포즈와 하드보일드 문체(hard-boiled style)는 1인칭의 발화 상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백적 화법의 위선(僞善)에 대한 그의 근원적인 혐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위선을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하여,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시적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시적 화자를 자기의식(自己意識)의 명석 판명함을 입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주체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상성의 외부로 추방될 수밖에 없는 병리적(病理的)이거나 환상적(幻想的)인 혹은 괴물과 같은 존재자들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편집증 환자’,‘투명인간’,‘킬러’,‘도플갱어’,‘뱀파이어’,‘좀비’ 등과 같은 화자들이 바로 이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화자의 진술 자체를 신빙성(信憑性)이 결여되거나 불명료한 어사(語辭)들로 구성함으로써, 시작품 내부의 단일한 ‘의미화’(signification) 주체로서의 화자를 그 중심의 자리에서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그를 지나 그녀를 지나 그대를/지나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정오를 지나 새벽을 지나 오/후 네 시를 지나 그리고 어느 이상한 날에 빈 공터와 당구/장과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문득 흥겨운 술집의 죽은 친/구의 화사한 여자들의 기나긴 과거를 걸어가는 어느 이상/한 날”(‘결국,’ 부분) “그렇지. 나는 어쩌면 모든 일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혹시 모른다. 행복할 리도 황폐할 리도 없는 바람들/이 애초에 공릉동의 주민이었는지도 혹시 모르지. 이곳/에서 모든 빛들은 현재형으로 명멸한다. 너무 상투적인/가? 하지만 그때 한 마리 늑대가, 월계동 쪽의 불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문득 망망한 비가/내렸는지도, 혹시 모르지. 그의 마른 등을 향해 몇 장의/ 낡은 신문이 날아들었는지도.”(‘공릉동의 바람 속으로’ 부분)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어쩌면 여행중이었던/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생각하는 사람’ 부분) 위의 시편들에서, 화자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유를 명징하고 확실한 것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결국,’에서처럼,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는 ‘동대문 운동장’과 ‘정오’와 ‘오후 네 시’라는 구체적 지시어들을 능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상한’이라는 형용사의 집요한 반복에 의해 정상적인 언어의 체계 혹은 일상적인 개연성의 세계로부터 추방된다. 또한 ‘공릉동의 바람 속으로’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과거 추측의 의미를 지닌 어미(語尾),‘-이었는지도’의 반복과 기억의 불명확성을 표현하는 ‘모른다’라는 서술어의 반복에 의해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상실한다. 결국 그의 시의 화자들은 이러한 어법들로 인해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기억, 이야기 등과 같은 의식 내용을 능동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라는 ‘생각하는 사람’의 한 구절은 화자인 ‘나’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 화자를 ‘사로잡아’ 그를 지배하는 것처럼 언술됨으로써, 시의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주관)와 그 구성 요소로서의 대상(객관)의 관계를 역전(逆轉)시킨다. 이 시에서 여러 번 반복된 “어쩌면 여행 중이었던 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라는 구절 역시, 화자의 진술을 합리적으로 독해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만들면서, 화자의 의식으로부터 기원하는 어떤 의미의 계열도 자명하지 않은 것이 되게 하거나 또는 어떤 신비에 둘러싸인 미지(未知)의 것이 되게 한다. 결국 이러한 어사(語辭)들의 반복적 활용은 전래의 시적 관습에서 전제되었던 단일한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를 그 의미화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물러나게 하는 시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장욱의 시는 재래의 ‘시’ 장르에서 화자에게 관례처럼 부여되어왔던 의미화의 지배권을 박탈함으로써, 화자의 단일한 감정과 의식과 가치가 아니라,‘脫’인격체로서의 시적 주체의 복수적인 가면들과 정념들, 그리고 사물들 그 자체의 다양한 변양들을 시의 새로운 의미 내용으로 새겨 넣는다. 아마도 그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실재성과 마주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법으로 이러한 시적 화법을 고안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4. 비선형적 시간과 존재의 주름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를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분열적 주체로 조형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시제(時制)이다. 그의 시는 시간의 일정한 단위 분절을 통해서만 수립되는 ‘현재’의 시제 속에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중첩시킨다. 즉 어떤 특정한 외연(外延)으로 수렴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 그 외연을 넘어서 존재하는 비동시적인 사건들을 병치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서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되어지는 선형적(線形的) 시간의 투명성이 사라지게 되며, 그것의 명료한 경계 분할이 흐릿해지게 된다. “나는 오로지 지금 이곳에 있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시작된다./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결박한다./ 나는 얼어붙는다./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가 한꺼번에 다가온다./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결정’ 부분) “최선을 다해 개인적인 관계들을 생각하자/드디어 당신과 나는 10년 후의 야구를 이해한다./누군가 플레이 볼이라고 외치자/나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그리고 10년 후의 1루 베이스를 향해/필사적으로 달려갔다”(‘10년 후의 야구장’ 부분) “자꾸 다르게 보여/당신은 이미 태어났는데/당신은 사랑을 했었는데/당신은 지난해의 가을을 여행 중인데/당신은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막 떠올려 미소 지었는데”(‘정확한 질문’ 부분) ‘결정’에서 ‘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는 ‘다가온다’라는 현재시제 동사의 주어가 됨으로써 ‘지금 이곳’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10년 후의 야구장’에서는 ‘1루 베이스’가 ‘10년 후’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점에서,‘달려갔다’는 과거시제 동사의 목적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정확한 질문’에서는 ‘지난해의 가을’이라는 과거 시점의 명사가 ‘여행 중인데’라는 현재진행형의 동사와 결합되는 시제의 혼란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제의 혼란과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공존은 어떤 특정한 현재적 사태 속에 감싸여져 있는 잠재성(virtuality)의 차원을 시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한다. 위의 시들에서 표현된 ‘생각’과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화자의 자기동일성을 구축하는 명징한 자기의식과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시간 위에서 구축되는 주체의 실존적 동일성과 연대기적 서사(narrative)를 일그러뜨리는 존재의 주름들이자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이다. 이 잠재성의 차원에서 시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예컨대,“일어나지 않았던(일어났던)”이라는 과거시제나 “일어나지 않을(일어날)”이라는 미래시제는 모두 현실성(actuality)의 척도를 통해서만 측정되고 구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드러나 있는 것들로 구성되는 현실성의 차원은 실상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 가운데 그 일부가 선택되거나 배제됨으로써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잠재성의 차원은 그러므로 일정한 외연을 가진 어떤 ‘현재’로 수렴되지 않으며,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늘 존속(存續)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의 주어진 물질적 사태로서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항상 ‘실재하는 것’(reality)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삼 분전의 잠’ 부분) 이 시를 단지 특정한 ‘잠’ 속에 나타난 잡다하고 무질서한 꿈의 내용 혹은 그 환상적 이미지들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화자의 현실적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망각과 오해와 무의식의 무한한 잠재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꿈속에서 우리는 ‘삼 분 전의 문’과 ‘삼십 년 전의 그대’와 ‘삼일 전의 기슭’이 동시에 결합되거나 병치되는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꿈속에서 ‘일어났던 것’(과거)과 ‘일어나고 있는 것’(현재)과 ‘일어날 것’(미래)은 선형적인 질서를 벗어나 한데 뒤엉키며, 시간은 산술적 단위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연대기(年代記)를 벗어난다. 이것은 곧 꿈의 본질적 특성이 비선형적(非線形的) 시간의 조합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라는 구절은 이 시의 의미가 단지 화자의 ‘잠속’에 나타난 꿈 이미지들의 재구(再構)를 통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네 번이나 반복된 ‘잠에서 깨어’는 이 시의 화자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잠’의 안쪽만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모래산에 쌓이네”에서 ‘쌓이네’라는 술어(述語)는 ‘모래산’이 퇴적(堆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내 잠 깊은 모래산’은 그것이 화자의 신체에 부수되는 어떤 행위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내면적인 것인 동시에 퇴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기억’이다. 따라서 ‘잠’이 비단 현실적인 ‘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내 잠 깊은 모래산’은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기억’ 혹은 ‘나의 의식에서 지워져버린 망각들’로 해석된다.‘기억’ 또한 의식 주체의 선택과 배제를 통해서 가공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세계의 실상 그 자체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인칭과 시점에 따라 상이하게 구축되는 개연적 서사(허구)에 가깝다. 따라서 ‘기억’의 내부에는 망각되고 삭제된 그 무엇이 여전히 어떤 잉여로서 남아있게 된다. ‘잠재성’의 차원은 단지 환상이나 몽상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이미 실재하는 것이다. 잠속의 꿈과 의식되지 못한 무의식과 기억의 사슬에 무수하게 주름 잡혀 있는 망각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내 잠 깊은 모래산’에 무수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이 기거하고 있듯이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또한 인칭과 시점을 달리한 숱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명성은 주체의 의식과 기억의 자명성이 아니라, 주체에게 의식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잠재성의 차원들이 실재한다는 것의 자명성이며, 주체의 단일한 의식(기억)이 조작된 서사와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의 자명성이다. 모든 1인칭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그들의 처지와 욕망과 권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1인칭 주체의 자기의식은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이 아무리 많이 추가되고 보충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을 포착할 수 없다. 또한 그 어떤 충만한 기억도 ‘모래산’처럼 부서지기 쉬운 공허(空虛)와 무의미(無意味)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는 삶의 근원적인 공허와 무의미를 이미 깨달아버린 자의 언어이며, 이러한 현자(賢者)만이 지닐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표현한다. 현실성의 내부에 잠재성이, 의식의 내부에 무의식이, 기억의 내부에 망각이, 무한한 주름들로 감싸여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에게만,‘우연’은 이 세계의 진상을 목도(目睹)할 수 있는 어떤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5.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 “서랍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어느 날 문득 서랍 속으로 돌아오듯/어느 날 다시 돌아오는 오래전의 목소리./……/어느 순간 너를 습격하는 상형문자들./너의 내부에서 드디어/다른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는 날이 있다./혹은 돌아오는 날.”(‘복화술사’ 부분) ‘시적 에피파니’가 도래하는 시간은 시인이 어떤 신비를 능동적으로 예감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너를 습격하듯이’ 밀려닥치는 우발성의 시간이며,‘상형문자’로서의 시적 언어가 시인의 관습적 감각과 사유를 폭력적으로 뒤흔들어 놓으면서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그러므로 능동태(能動態)의 시간이 아니라 수동태(受動態)의 시간이다. 또한 이 시간은 시인에게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세계의 만상들이 그 자신들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따라서 이 순간은 “너(시인)의 내부에서 드디어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날”이기도 하며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는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시인의 명징한 의식과 관습적 표상작용에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기에,‘돌아오는 목소리’(반복)인 동시에 ‘다른 목소리’(차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복되는 것(‘돌아오는’)은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세계의 풍요로운 만상들이며, 이 반복을 통해 차이(‘다른’)를 발생시키는 것은 ‘너의 목소리’ 곧 시인의 관례적인 감각과 도식들이다. 김수영이 ‘絶望’에서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모든 미학적 실천과 시적 창조의 공간에서 우리들 자신의 관례적 감각과 도식을 매번 혁파하기 위해서는, 섬광처럼 우리를 헤집고 지나가는 모든 우발성들을 용기 있게 승인해야 하며, 이 우발성들이 우리들에게 가해 오는 ‘낯선 것의 폭력’과 과감하게 마주쳐야만 한다. 이장욱의 말처럼 “이 고투를 통과한 자에게만”,‘시적 에피파니’는 비로소 그 자신을 개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고투를 체험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어떤 ‘에피파니’의 순간도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장욱의 시에서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충직한 순결성을, 일상적 경험 속에서 피어나는 순박한 인간애를, 그 아름다운 빛으로 충만해 있는 시적 감동의 순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이 아니라 1인칭의 자기애적인 영혼이 미리 전제하고 있는 어떤 관념적인 조화이자 이상적인 도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는 이것들이 배제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세계의 잔인한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가 진정으로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혜안(慧眼)과 비전을 담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시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그 무수한 가면과 정념을, 우리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의 그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만상을, 현대적 일상의 그 지루한 반복과 권태를, 저토록 리얼하고 또 잔인하게 묘사해준다면, 그의 시는 하나의 예술로서 그것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찬
  • [혁신도시 어디까지 왔나] 제주도-환경생태·국제교류·교육연수 메카

    서귀포시 서호동 일대에 들어설 혁신도시는 환경생태도시이자 국제교류 및 교육연수의 메카로 건설한다는 구상으로 하반기 착공할 예정이다. 제주 혁신도시의 수용인구는 5000명, 지구면적은 34만 5000평(114.5㎡),1700가구가 건설된다. 혁신도시는 이전기관이 들어서는 ‘혁신 중심지구’와 관광쇼핑거리가 들어서는 ‘중심상업지구’‘주거시설’‘공공시설’로 구성돼 있다. 주거단지는 공공주택, 단독주택, 블록형단독주택으로 개발되며 혁신도시 중앙에 중앙공원이 들어선다. 특히 환경생태도시를 지향하는 제주 혁신도시는 ▲빗물 재이용 ▲풍력발전 및 태양에너지 활용 ▲방풍형 녹지체계 등을 갖추게 된다. 올 상반기중 혁신도시 예정지에 대한 토지와 지장물의 감정을 마무리, 보상에 나선다. 현재 서귀포 혁신도시 예정지의 땅값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529억원이나 통상 공시지가보다 감정가격이 1.25∼1.3배 정도 높게 산정되는 점을 고려할 때 혁신도시 개발에 따른 토지보상비는 6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감귤나무와 감귤창고 등 각종 지장물 등이 포함될 경우 전체 보상금은 이보다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제주혁신도시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한편 보상금을 노린 토지형질 변경과 수목식재, 간이 건물 건축에 대한 상시 단속을 벌이고 있다.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에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 9개 기관 961명이 2012년까지 이전하게 된다.
  • [시론] 승리지상주의를 경계하며/김영태 목포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시론] 승리지상주의를 경계하며/김영태 목포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제17대 대통령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공식적인 선거운동기간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대선예비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선거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언론에서도 연일 예비후보자들의 지지도와 당선가능성에 관한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말 그대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보자들이 당선을 위해 모든 힘을 쏟는 것 역시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선거결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선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즉 선거는 후보자의 입장에서 유권자들의 다양한 이해를 하나로 묶는 과정이며,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해를 표현하는 과정이다. 승리지상주의에서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과정으로 이해되는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로지 다수와 소수만이 있을 뿐이다. 패자는 선거 이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소수는 무시될 수 없는 존재이다. 다가오는 17대 대통령선거가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과정이 중시되는 선거가 될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선거들을 돌이켜볼 때, 그리고 예비후보들과 정치권의 최근 행태를 볼 때 적지 않은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는 대선예비후보들의 강연 행렬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예비후보자들의 정치적 견해를 들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강연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당수 강연을 들여다보면 후보들의 자기주장만이 난무할 뿐이다. 동원된 청중이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게다가 강연 자체보다 강연 이후 언론보도에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괜히 강연정치라는 말이 회자되는 게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최근 움직임도 매우 우려스럽다. 국민과는 무관한 정계개편론은 승리지상주의의 단적인 사례이다. 한나라당 역시 지지율이라는 숫자놀음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저 동원의 대상일 뿐, 이해를 조직하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다. 국민들이 다가오는 1년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비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직 1년여의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대선예비후보들과 정치권은 승리지상주의를 버려야 할 것이다. 국민들 역시 정치권이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아니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선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대선예비후보와 정치권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말고, 먼저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려 들으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소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수와 승자의 의견만 존중되는 사회는 독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민들 역시 스스로를 구경꾼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지지도에 일희일비하는 정치권과 이를 부추기는 언론보도가 노변정담의 중심이서는 곤란하다. 자신들의 이해가 무엇인지 정치권에 명확히 전달하자. 그래야만 다가오는 17대 대통령선거가 선거문화를 바꾸는 역사적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김영태 목포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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