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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402)-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8)

    儒林(402)-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8)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 (28) 왕께서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은 나뭇가지를 꺾는 일처럼 쉬운 일이라는 맹자의 설명은 ‘실현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왕도정치는 곧바로 실행할 수 있다. 왕도정치는 백성을 위한 정치이므로 선왕에게 짐승까지도 불쌍히 여기는 어진마음이 있는 것을 보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당연히 있는 것이므로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선왕에게 구체적으로 왕도정치를 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내 집 노인을 노인으로 섬긴 뒤 그 마음이 남의 집 노인에게까지 이르며, 내 집의 어린이를 어린이로 사랑한 뒤 그 마음이 남의 집 어린이에게까지 이른다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라는 설명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뜻이 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왕도정치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선왕은 여전히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다. 선왕은 여전히 패도정치를 꿈꿔 천하의 패왕이 되고 싶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선왕의 마음을 읽은 맹자가 다시 물었다. “전하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군사와 부하들을 위태롭게 하고, 제후들과 원한을 맺은 뒤에야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선왕이 대답하였다. “아니다. 어찌 그것이 마음이 편하겠는가. 과인은 다만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구하려 할 뿐인 것이다.” 이에 맹자가 정색한 얼굴로 묻는다. “도대체 전하께서 크게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맹자의 질문에 선왕은 그저 웃기만 했다. 매사에 인의를 강조하는 맹자 앞에서 패왕이 되고자 하려 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겸연쩍었기 때문이다. 맹자는 그런 선왕의 의중을 살피며 짐짓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전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과 가볍고 따뜻한 의복이 부족하기 때문이십니까. 아니면 여색이 부족하기 때문이십니까.” “아니다. 과인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선왕이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저어 대답하자 맹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말하였다. “그러하시다면 전하의 대망을 알 수 있겠습니다. 진나라와 초나라를 점령하여 천하통일을 하여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십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무력으로 소원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이는 ※‘나무 위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단호한 맹자의 대답에 선왕이 되물었다. “아니 그것이 그토록 심한 일인가.”“오히려 그것보다 더 심한 셈이지요. 나무 위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다른 재앙은 없습니다. 그러나 갑병(甲兵)을 일으켜 천하의 패자가 되려 하신다면 마음과 힘을 다하여 노력하더라도 뒤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연목구어(緣木求魚).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로 맹자가 선왕에게 설법하였던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 [씨줄날줄] 인구감소시대/염주영 수석논설위원

    인구학자들은 21세기 인류가 직면할 최대 위기로 인구감소를 꼽는다. 현재 지구촌에서 인구감소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나라는 유럽연합(EU)과 일본. 하지만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남성 인구는 전후 처음으로 지난 1년 동안 1만 680명(0.02%)이 감소했다. 다행히 여성 인구가 좀 늘어 아직은 전체적으로 증가세(0.04%)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는 2007년부터는 총인구마저 감소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일본 근로자들의 높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가 활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 여성들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한명당 평균 출산횟수)은 1970년 4.53명에서 2003년 1.19명으로 떨어졌다.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그것이 낮아지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인구감소가 가져올 재앙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문명의 충돌을 예견한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오는 2025년쯤이면 세계의 이슬람교도가 기독교 인구수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 기독교를 상징하는 서구와 충돌하고, 종교 갈등이 심화되며, 극심한 지역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인구감소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제정 말기 로마 인구는 약 100만명 정도로 격감했다. 로마 여성들이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수고를 감수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로마제국의 국경선은 지중해를 둘러싼 도너츠 형태로 길게 이어진다.2400㎞에 달하는 방대한 국경선을 용병들에만 의지해 지키기는 구조적으로 무리였다는 설명이다. 인구학자들은 중장기적으로 현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이 2.1명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이 현재의 출산율(1.19명) 수준을 지속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인구는 2015년 4904만명을 정점으로 이후 계속 줄어 2300년쯤에는 30만명 정도만 남게 된다. 비현실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름끼치는 얘기다. 인구감소가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지나친 불감증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염주영 수석논설위원 yeomjs@seoul.co.kr
  • [녹색공간] 아브라함의 잘못/이현주 목사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조상으로 모시는 인물이다. 누가 만일 아브라함을 비판한다면 유대인들은 자기네가 비판당한 것처럼 저항할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의 실수라 할까, 과오라 할까 아무튼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행실이 유대인들의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닐는지 모르나 사실이다. 물론,“이렇게 해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언급은 아무데도 없지만.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끝에 ‘가축과 은과 금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되어 가나안 땅 어디쯤에 정착한다. 그런데 그곳은 두 사람에게 살 만한 곳이 못되었다. 땅이 척박하거나 환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닌 재산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었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무슨 말일까. 땅에서 나는 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마시고 살아야 하는 가축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 두 집안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롯에게 말한다.“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참 근사하게 들리는 말이다.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어 그가 차지하고서 남은 땅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얘기 아닌가? 결국 롯은 좀더 기름져 보이는 요르단 분지를 차지하기로 하여 그리로 옮겨갔고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남는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두 집안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결과가 그렇지 못했다. 롯은 기름진 땅의 여러 도시를 두루 거쳐 마침내 소돔에 정착했고 소돔이 고모라와 함께 멸망할 때 가까스로 몸만 빠져나와 아내는 죽고 살아남은 두 딸과 어느 이름 모를 동굴에서 구차스레 목숨을 이어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다. 무엇이 그를 그런 지경으로 몰아갔던가. 혹시, 기름져 보이는 땅을 숙부에게 양보하고 자기가 나머지 땅을 가졌더라면 결과가 어찌 되었을는지 모를 일이나, 그러면 롯 대신 아브라함이 소돔에서 패가망신할 가능성을 피할 길이 없다. 더구나,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말이 언뜻 보면 양보의 미덕을 두루 갖춘 꽤 그럴 듯한 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다. 네가 어느 쪽을 택하든지 그로써 야기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너에게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어야 했던가. 성서는 직답을 피하고, 그 대신 이런 방식의 해결책은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말없이 말한다. 이제 우리는 그 말없는 말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나마 아브라함이 살던 때에는 말 그대로 눈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어서” 그 땅을 나눠가지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나눠가질 공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옛날 아브라함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성서의 절박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한정된 수량(水量)으로도 사이좋게 살 수 있도록 가축 수를 줄일 생각을 못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가난하게 살면 조카를 사지(死地)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실을 몰랐던 것이다. 비만과 전쟁하는 시절이 되었다고들 한다. 반가운 일이다. 체중을 조금만 줄여도 얼마나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비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바야흐로 인류는 풍요가 축복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임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런 뜻에서, 이제까지 말해온 공생공영(共生共榮)은 처음부터 무리였고, 길은 오직 공생공빈(共生共貧)에 있을 따름이라는 쓰지다 다카시 교수의 말에는 인류에게 무거운 짐을 보태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짐을 함께 덜어보자는 진정어린 권면이 담겨있다 하겠다. 이현주 목사
  • [일본을 다시본다] (12)꿈틀대는 정치권 세대교체 갈망

    [일본을 다시본다] (12)꿈틀대는 정치권 세대교체 갈망

    |도쿄 특별취재반|1866년 여름 도쿠가와 막부는 조슈 번과의 전투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다. 결국 이듬해 12월 정권은 조슈와 사쓰마 지역의 젊은 사무라이들에게 넘어가고 구태와 무능으로 일관했던 막부는 공식 폐지된다.‘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이 혁명을 주도한 핵심은 신흥계급이 아니라 기존 엘리트층인 사무라이들이라는 점이 유럽의 근대적 혁명과의 차이다. 일본은 특유의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근대화의 문을 열어젖힌 셈이다.2005년 5월. 일본 정치권에선 또다시 ‘위로부터의 개혁’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이지만 ‘우정민영화’ 법안으로 다음달 중의원 해산 후 조기 총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긴박한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일본 젊은 정치인들의 화두는 ‘세대교체’다. 그들 대부분은 아버지의 대를 이은 2세 정치인. 그러면서도 원로 정객들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메이지 혁명’의 메커니즘과 절묘하게 닿아 있다. 젊은 의원들은 향후 정치판도를 기득권층 대 신진세력의 구도로 그리고 있다. 집권 자민당에서 ‘부간사장’이란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고노 다로(43) 중의원은 마치 다른 당을 비판하듯 신랄하게 자민당을 난타했다. 차기 총선의 전망을 묻자 “세대교체에 성공하면 계속 집권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민당은 몰락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노 요헤이 전 자민당 총재의 아들로 전형적인 2세 정치인에 해당하는 그는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이 민주당에 일격을 맞은 데 대해 “연금개혁을 추진한 사람이 원로들과 바보같은 개혁을 했기 때문”이라며 “낡은 의원들이 언제까지 해먹느냐가 문제”라고 일갈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따른 장단점을 설명해달라는 주문에는 “거의 다 단점이다. 자민당의 의사결정 메커니즘과 국회운영 방법은 재앙이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수준의 ‘자아비판’은 당혹스럽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민주당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동교동계를 겨냥해 정풍운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으나, 의원 개인 차원에서 고노 의원과 같은 과격한 비판은 감히 하지 못했었다. 소장파 의원들이 힘을 모아 성명을 발표하는 경우에도 수위를 극도로 조심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핵심 당직자가 원로들을 향해 대놓고 물러나라고 소리치고 있는 격이다. 그의 단호한 눈빛에서 젊은 사무라이의 섬뜩함이 연상됐다. 야마모토 도미오 전 농수산상의 후광으로 정계에 입문한 야마모토 이치다(47) 참의원은 좀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는 “현역 중 나이가 많거나 지지율이 낮은 후보자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젊은 정치인으로 물갈이시켜야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할 수 있다.”면서 “지금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세대교체, 정당교체가 일어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마모토 의원에 따르면, 자민당내 30∼40대 젊은 의원들은 차기 총재 선거를 앞두고 세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20명선에서 출발한 ‘혁명군’이 지금은 70∼80명으로 늘었다는 주장이다. 야마모토 의원은 “이전 세대가 주축이 된 기득권 세력이 차기 총재 경선에서 또다시 승리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다면 자민당엔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런 사태가 빚어진다면 나는 야당인 민주당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정권 자체를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말까지 던졌다. 놀란 기자가 ‘민주당에 입당하겠다는 의미냐.’고 묻자 “실제로 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톤을 낮추면서도 “중요한 것은 정권을 잡느냐 못 잡느냐가 아니라, 경제부흥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미카즈키 다이조(34) 의원도 “지금 민주당에는 자민당 출신이 많은데, 그들 대부분은 자민당식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며 “지금처럼 민주당이 국민에게 자민당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총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책 한두개로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진정한 세대교체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 공천 과정에서 대규모 세대교체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일본은 파벌간 나눠먹기에 의한 하향식 공천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지역구 예산 확보에 대한 기대로 다선(多選) 중진 정치인들을 선호하고 있는 경향도 공천 혁명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우리가 유념할 대목은 젊은 유망 정치인들의 ‘위로부터의 혁명’의 기세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본 정치의 구질서를 혁파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또한번의 ‘기득권층의 변신’으로 기록될 수 있다. 민주당 미카즈키 의원은 “자민당 의원들은 자민당적인 정치방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세대교체란 화두를 전술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지금껏 일본이 가치를 뒀던 분야가 아니라, 환경과 평화와 같은 미래지향적 가치를 위해 세대교체가 단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치의 진정한 미래는 세대교체 자체가 아니라, 세대교체의 질에 있다는 지적이다. carlos@seoul.co.kr ■ 日국회의원회관 가보니 |도쿄 특별취재반|일본 국회의 의원회관은 ‘본받을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회관의 정문으로 의원들뿐 아니라 일반 민원인들도 ‘버젓이’ 출입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의원회관은 오직 의원들만 햇볕이 잘드는 정문의 커다란 유리 자동문을 통과할 수 있다. 보무도 당당하게 붉은 카펫을 밟으며 출입하는 의원들의 자태에서 ‘민주’(民主)의 이미지를 찾는 일은 허망하다. 의원들을 수행하는 보좌관들도 ‘감히’ 이 자동문은 통과하지 못한다. 양옆에 달린 좁은 회전문이 보좌관과 일반직원의 통로다. 그래서 한국의 의원회관 정문에서는 함께 걸어오던 의원과 보좌관이 각각 다른 문을 통과한 뒤 바로 다시 ‘상봉’하는 웃지못할 촌극이 이어진다. 안타까운 것은 민원인들이다. 국회 지리를 잘 모르는 이들이 어렵게 물어물어 정문까지 왔다가, 경비직원들한테 제지당하고 다시 한참을 돌아 건물 뒤편의 지하 후문으로 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본 의원회관의 경우 복도 곳곳에 전광판식으로 본회의 및 상임위원회 일정이 계속 ‘보도’되는 것도 인상적이있다. 의원들이 전광판을 수시로 마주치다 보면 아무래도 회의를 빼먹기가 좀 미안할 듯싶었다. 마침 의원회관 1층에서 입법 관련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좁은 회의실에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있었다. 그래도 침 삼키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진지했다. 자꾸 드나들어 주의를 산만하게 하거나 회의장 바깥에서 떠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carlos@seoul.co.kr ■ 日 젊은 정치인들 솔직·당당 |도쿄 특별취재반|혼네(本音·진짜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내는 마음). 흔히 일본인의 이중적 기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적어도 일본의 젊은 정치인들한테는 이 말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분히 직설적이었고,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고노 다로 중의원은 직선적인 매너로 기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사무실 위치가 헷갈려 약속시간에 3분 정도 늦었는데,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통역이 매끄럽지 않자 마침 곁에 있던 한국 특파원 출신 일본인 기자에게 “당신이 통역하라.”고 해 기자가 데려간 통역사를 무안하게 했다. 야마모토 이치다 참의원은 자화자찬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대화 도중 “유력한 차세대 총리 후보인 나로서는…”이란 말을 수시로 했다. 자신을 차세대 정치인으로 소개한 책자를 ‘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기자를 가장 놀래킨 사람은 30대의 미카즈키 다이조 중의원이있다. 한참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보좌관이 들어와 귀엣말로 뭐라고 속삭였다. 순간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집어들더니 사무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하이(예), 하이”하면서 90도로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통화를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같은 당 원로 의원의 전화였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혼신을 다하는 자세에서 혼네와 다테마에의 구분은 무의미해 보였다. carlos@seoul.co.kr
  • [신연숙칼럼] 權·經·言의 제자리

    [신연숙칼럼] 權·經·言의 제자리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파문은 권력, 재계, 언론 유착의 적나라한 실상을 드러내 보였다. 불법도청과 검은 돈거래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허탈감마저 느껴야 했다. 경제계는 협박을 하며 손을 벌리니 마지못해 정치자금을 줘왔다는 핑계를 더이상 댈 수 없게 됐다. 정치인들도 대가성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의 존재를 주장할 염치가 없을 것이다. 재벌 총수가 검사의 떡값까지 챙기고 있는 모습은 쓴웃음마저 나오게 한다. 이번 파문을 보면서 권력, 경제, 언론의 ‘제자리’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영역이동의 자유야 제한될 수 없겠다. 그러나 각 영역의 핵심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때라야만 사회의 조화롭고 건강한 발전이 보장된다. 이번 사건은 ‘제자리’를 못 지켰거나, 옳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강화나 영역이동을 기도한 데서 발생한 대표적 불상사로 회자될 것이다. 홍석현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른바 X파일이 공개되자 기자회견에서 “왜 이런 테이프가 공개됐는지 나름대로 짐작하는 데가 있지만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음모론의 제기다. 그의 말대로 언론이 어떤 정치적 의도와 결탁해 도청 테이프를 공개했는지는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녹음된 대화의 주인공 홍씨가 ‘현직 주미대사’가 아니었다면 사건이 이토록 커졌을까. 물론 그가 아니라도 폭발력 있는 ‘내용’은 수두룩했다. 그러나 유엔사무총장 야심을 불쑥불쑥 내비치고, 차기 대권후보, 국무총리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언론사주 출신 ‘주미대사’가 검은 거래의 중심에 없었어도 이번 사건이 이토록 큰 파장을 낳을 수 있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홍씨는 재벌가 출신으로 언론사주 역할에 충실했어야 했다. 언론을 발판삼아 대사직에 진출하고, 대사직을 발판삼아 유엔사무총장과 그 이상을 꿈꾸었을 때 그를 찾아온 것은 재앙뿐이었다. 무리한 영역이동의 종말은 이미 현대그룹 정주영씨의 1992년 대통령선거 출마에서 목격했다. 엄청난 선거자금 동원과 낙선, 그 이후 현대가 겪은 간난은 다 알려진 바다. 보다 유사하게 제3공화국 시절 사주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에 입각한 한 언론사의 쇠퇴도 언론계에서는 자주 회자된다. 경제, 언론이라는 제자리를 못지킨 대가는 그렇게 컸다. 이번 파문에서 MBC의 태도 또한 언론의 ‘제자리’에 충실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엄청난 내용의 X파일을 일찌감치 입수하고도 공개에 주저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나자 몸을 사렸다가 경쟁사의 선공에 반격하는 양상이 되면서 보도경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버렸다. 언론들은 이제 와서야 국민의 ‘알권리’를 외친다. 삼성은 언론들을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걸어 고발할 것이라 한다.MBC는 과연 법의 제재를 걱정했어야 할까. 우리나라는 언론관련 사건에서 판례가 빈약하다. 여러부담을 이유로 소송이 흐지부지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 언론의 ‘제자리’는 법정 투쟁의 결과에 힘입은 바 크다. 불법도청 사건만 해도 미국은“취재원이 불법으로 정보를 얻었더라도 언론사가 이를 합법적으로 입수했다면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 판결을 받아놓고 있다. 우리 언론도 보다 적극적인 보도와 법적 대응을 통해 ‘제자리’를 확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어느 언론도 선정적, 추측성 보도는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언론자유의 영역을 확대하는 몸싸움에는 당당히 나서기를 소망해 본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임영숙칼럼] 고령사회의 희망

    [임영숙칼럼] 고령사회의 희망

    지난 가을 ‘고령사회, 심판의 날’이란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인구의 고령화 문제가 전세계적인 재앙으로 확산돼 “심판의 날이 눈 앞에 닥쳤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담은 글이었다. 그러나 이제 고령사회에서 오히려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아울러 지난 칼럼의 오류도 고백하고자 한다. 우선 오류부터 고백하자면 세대간의 전쟁 상태 돌입을 경계하면서 베르베르의 소설 ‘황혼의 반란’을 인용한 것이다. 젊은이도 늙은이가 되어간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한 인용이었지만 세대간의 전쟁에 대한 오해를 낳을 만했다. 사실은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존속되는 한 소설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다. 즉 오는 2030년이면 우리나라 전체 선거권자 중 50세 이상의 비율이 무려 53%가 된다. 노인들의 가공할 정치세력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고령사회의 희망은 우리 사회가 좀더 인간적인 사회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노인인구가 많아지면 노동력 감소와 복지 재정부담 증가로 성장잠재력과 국민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국가 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이 예측의 실현가능성이 높지만 고령화가 가져 올 또 다른 변화의 가능성에도 주목하자는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가 은퇴자와 여성인력을 노동현장으로 불러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희망의 씨앗으로 볼 수도 있다. 육아 등 ‘돌봄’의 사회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점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무엇보다 산업사회의 병폐가 치유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에 나는 주목한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연구위원은 “산업사회의 과도한 팽창지향성을 억제하는 고령화는 오히려 산업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인간의 경제적 삶의 건강한 자리를 복원시키는 데 기여할 것”(‘고령화 사회의 도래와 노동의 복원’ 녹색평론)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좀더 들어 보자.“비노년층이 노동을 그 경제적 보상이나 사회적 성취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데 비해 노년층은 노동을 즐기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 노년층이 사회적 성취에서 어느정도 졸업했고 승진이라는 미래의 기회등에 대한 강박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노년층의 확대는 새로운 양식의 노동(직업)에 대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경제적 보상이나 권력적 요소를 다소 희생하고라도 노동의 즐거움에 보다 가중치를 부여하는 유형의 노동에 대한 수요확대를 가져 올 수 있다. 즉 물적 생산성 못지 않게 노동의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노동양식을 창출하는 혁신을 자극할 수 있다. 고령화사회의 도래는 경제적 보상 중심으로 왜곡된 노동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고 노동의 본질적 가치를 복원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물질적 소비 중심으로 편향된 현대사회의 경제적 삶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소비와 노동 간의 건강한 관계를 되찾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경청할 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해 길게 인용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제1인생을 졸업하고 제2인생(‘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에 진입한 독자들은 이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제1인생이 성공이란 목표를 위해 땀을 흘린 시기라면 제2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꿈 같은 생각이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 [논술이 술술]시사 키워드 / 줄기세포와 생명윤리

    [논술이 술술]시사 키워드 / 줄기세포와 생명윤리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줄기세포연구가 논쟁거리가 됐다. 알츠하이머로 숨진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부시를 공격한 것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난치병을 고쳐줄 것으로 기대되는 줄기세포 연구는 반면에 배아 파괴와 인간복제를 둘러싸고 인간의 존엄성 훼손 논란을 부른다. 종교계에서는 배아를 폐기하는 것은 생명을 앗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난치병 환자들의 인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배아 복제는 허용돼야 한다고 맞선다. 수정 14일 이전의 배아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 대상으로 삼아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논의의 시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질병 치료를 위한 것이다. 심장병·알츠하이머병·암·파킨슨씨병 등 난치병이 발생한 조직을 재생하거나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얻으려면 배아 또는 난자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태어날 생명을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런 점을 놓고 과학자들과 종교계, 윤리학자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의 개발은 천문학적인 상업적 이익을 수반한다.‘사이언스’에 따르면 전세계 줄기세포 치료 규모는 연간 3000억달러를 웃돈다고 한다. 생명을 파괴하는 대가로 거금을 버는 상업주의가 윤리적으로 정당할까. ●생명공학과 윤리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시험관 아기와 복제 동물을 거쳐 마침내 인간도 복제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런 성과들은 의학적 가치를 갖고 있겠지만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나아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심각한 해악을 부를 수도 있다. 인간배아를 마음대로 파괴하고 조작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다. 유전자 조작은 지구의 생태계 질서를 뒤흔들 수도 있다. 인간이 복제된다면 전통적인 가족관계는 파괴되고 정체성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의료적 가치가 아무리 크더라도 인간생명이나 인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이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거나 위협해서도 안되고 소수 특정인들을 위해 힘없는 다수가 희생되어서는 곤란하다. 줄기세포 치료를 받는 데 엄청난 돈이 든다면 일부 부유층만 수혜자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실험을 비윤리적으로 몰아세울 수도 없다. 유전자를 조작해 유전자 이상의 불치병 환자를 살리는 일, 배아줄기세포를 이식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악이 아니라 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손실(costs)과 이득(benifits)을 견주어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배아복제 반대론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수정란을 파괴하는, 즉 생명을 파괴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다. 수정후 14일 이전의, 착상이 안된 미성숙 수정란은 생명이 없다는 것은 잘못이다. 수정 직후부터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 배아복제 연구는 인간 복제로 연결될 수 있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수한 배아 파괴행위가 있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진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의 생명으로 돈을 버는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체세포 복제나 배아 복제는, 인간의 생명은 성관계를 통해 창조되어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다. 인위적인 생명창조는 가족관계를 붕괴시키는 반인륜적인 행위다. 생명복제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돌연변이나 유전학적인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종교적 관점 가톨릭적 관점에서는 생명복제를 하느님에 대한 도전으로 본다. 인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이 침범하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이 준 것이고 임의로 만들거나 거두어들일 수 없다. 인간 복제는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 인권을 위배하고 인간을 도구화하는 것이다. 생명 복제 실험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생명 파괴의 행위다. 인간은 진정한 부모를 가질 권리가 있다. 실험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과학적 유용성도 치료 목적이 아닌 한 정당화될 수 없다. ●배아복제 찬성론 찬성론은 다음과 같다. 생명발생의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킨다. 인간복제 기술은 인간을 영원히 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성형, 재생의 길을 열어 난치병자나 사고의 희생자들을 회생시킬 수 있다. 다운증후군, 시력을 잃게 되는 데이섹스병을 치료하고 간과 신장을 교체할 수 있다. 백혈병이나 암을 정복하고 폐에 치명적인 낭포성 섬유증도 고칠 수 있다. 모자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류사에서 특출한 사람들을 복제해 인류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윤리적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대안이 성체줄기세포다. 장기이식을 거부반응 없이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당뇨병, 화상, 대머리 등도 치료할 수 있다. ●생명윤리법의 내용, 각국의 입법례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각국은 법률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배아 복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미국 등 60여개국과, 연구치료 목적으로는 허용하자는 한국과 영국 등이 맞서 있다. 영국은 2000년 8월 의료 연구 목적에 한정된 인간배아 복제를 처음으로 허용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연방정부의 기금으로 치료용 배아복제연구를 지원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올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우선 인간복제를 목적으로 체세포 복제 배아를 자궁에 착상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는 행위, 매매 목적으로 정자 또는 난자를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하지만 보존 기간이 경과된 잔여 배아를, 불임 치료법 개발을 위한 연구나 희귀·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생명공학의 미래는 감히 예상하기 힘들다. 인간복제 다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언젠가는 모든 난치병과 노화를 정복해서 인간의 수명은 몇백년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명공학의 발전 속도로만 본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장기를 생산하는 공장이 만들어지고 수명을 연장해 주는 전문의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미 생명공학의 가치 창출 규모는 2010년 9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인간들이 즐비한 세상. 그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최대의 축복, 곧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중심적인,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시도는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예측하지 못한 재앙들이 닥쳐 인류를 위협할지 알 수 없다. 병들지 않고 장수하는 인간을 위해 다른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면서 끊임없이 앞으로만 전진해 가는 과학의 오만이 인류의 파멸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생명연구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고통받는 난치병 환자들을 치유하고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것은 국가적 이익과도 연관이 있다. 그러나 윤리적 규범과 자연의 원리를 벗어난 과학탐구는 제어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자연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한다. 생명공학의 발전과 동시에 윤리적 규제도 강조돼야 할 것이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사설] 실체 확인된 재벌 뻥튀기 지배

    공정거래위원회가 처음으로 내놓은 자산규모 2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현황을 보면 총수의 지배력이 얼마나 뻥튀기 돼 있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총수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결지분율에서 총수 본인과 친인척의 소유지분율을 뺀 소유지배괴리도의 경우 자산 2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31.21%포인트, 자산 6조원 이상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은 35.25%포인트나 된다. 또 의결지분율을 소유지분율로 나눈 의결권 승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6.78배,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이 8.5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 총수들이 자신들의 보유지분보다 7∼9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재벌 총수들이 2% 안팎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이면에는 계열사끼리 얽히고 설킨 순환식 상호출자와 계열금융사를 통한 계열사 지분율 확보가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재벌 계열사 중 60%에 대해 총수 일가가 단 1주도 보유하지 않고 있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다. 더구나 계열금융사의 경우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고객이 맡긴 돈으로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고 있어 수익률 극대화라는 고객의 요구와 상충될 소지도 없지 않다. 공정위가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벌 금융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키로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재계는 소유지배구조 공개가 반재벌 정서를 부추길 뿐이라며 경영의 효율성이 잣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고 본다. 상호출자로 연결된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어떤 재앙을 초래하는지는 외환위기 당시 경험한 바 있다. 재계는 반발에 앞서 시장이 지배구조 개선 및 투명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사설] 성장동력 회복 여성인력에 달렸다

    어제 세계 인구의 날을 맞아 통계청이 내놓은 ‘세계·한국 인구 현황’ 자료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이 어떤 참극을 불러올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당장 가장 왕성하게 일할 노동층인 25∼49세 인구가 200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다. 범위를 넓히면 경제활동인구인 15∼64세 연령층도 2016년을 고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 결과,2050년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령국가로 올라섬과 동시에 경제활동인구 1명이 15세 미만 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1명을 먹여살려야 한다. 한마디로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국가적 재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가 건전하게 성장·발전하려면 핵심 노동층이 지속적으로 공급·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생산요소의 핵심인 노동의 역량이 우리나라처럼 하향곡선을 그린다면 미래 성장잠재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 3년간 내수침체와 투자 부진이 겹쳐지면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4% 내외로 떨어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터다. 따라서 추락하는 출산율과 치솟는 고령화 비율을 제어할 수단이 없다면 활용 가능한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 성장잠재력 추락은 바로 청년층 일자리 창출 및 국가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난 1994년 47.8%에서 2003년에는 48.9%로 1.1%포인트 상승에 그친 점에 주목한다. 주요 선진국이나 경쟁국에 비해 여성의 경제 참가율이 15∼20%포인트 낮다는 뜻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면 저출산율 충격을 상당 기간 상쇄할 수 있다는 해답이 나온다. 보육시설이나 육아 및 가족간호휴가제 확충 등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부동산대책] 집값잡기, 세제강화·대출제한등 ‘협공’ 필요

    ‘금리조정 효과가 약발이 안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효과분석을 재검토해야 한다.’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때 통상 나타나는 경제적 효과가 시장흐름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고 있다. 기존의 금리분석 모델이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금리조정이 정책적 수단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달라진 소비·투자·심리패턴을 면밀히 재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시장 참가자들은 최근 부동산 투기억제 처방으로 거론되는 금리인상의 효과분석에도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리인하 효과를 들여다보니…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해 8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금리를 내린 것은 결과론적이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금통위는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 가계 및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 경감으로 소비 및 설비투자 심리를 자극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2004년 1·4분기 자금순환표상 금융자산과 금융부채의 수입이자와 지급이자 등을 산술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기업은 1조 2000억원, 가계는 1조 3000억원가량의 금융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금리인하에 따른 지금까지의 효과분석은 누구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미 투자부문에서 기업들이 ‘금리조정은 더 이상 투자에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함으로써 실효성이 없음이 입증됐다. 소비부문도 마찬가지다. 금리를 내리면 돈을 꿔서라도 소비를 늘리고, 부동산·주가 등이 상승하면서 자산효과로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존의 금리조정 효과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시중은행 고위 간부는 “예전의 소비주도층이었던 50∼60대는 고령화사회의 도래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로 돈이 생기면 소비 대신 무조건 저축하는 등 일본식 소비패턴으로 확연히 돌아서고 있다.”며 “소비의 주도층으로 부각된 20∼30대는 청년실업으로 쓸 돈이 없기 때문에 금리인하로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예전의 금리메커니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들어 집값이 올랐다고 하지만 집값상승이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으며, 풍부한 유동성은 부동산쪽으로만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물가로 금리조정하면 낭패(?) 한은은 지난해 콜금리를 인하할 당시 정부의 주택가격안정대책에 따라 주택가격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재 부동산가격은 치솟고 있는 반면, 물가는 안정권에 들어간 상태다.6월 소비자물가(CPI)를 보면 34개월 만에 전년 동월보다 2.7% 상승,2002년 8월(2.4%)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잖이 함정(덫)이 있다. 소비자물가에는 부동산값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집세(전세·월세)만 포함된다. 소비자물가가 체감물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도 소비자물가에 집값을 포함시키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값 상승이 시차를 두고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값을 물가지표에 반영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 집값상승→상가매매가상승→임대료상승→음식점 등 서비스요금인상 등으로 이어져 시차를 두고 집값상승은 물가로 전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금리-부동산, 실(失)이 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리인하로 부동산값이 올랐다고 해서 금리를 올리려는 접근은 자칫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부동산값이 국지적 상승에서 전국적인 오름세로 확산되면 금리인상 압력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그러나 현 상태에서는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금리 인상보다는 보유세 강화·다주택 양도세 중과세 등의 세제정책과 주택담보대출 제한(자금줄 차단) 등을 통한 금융정책을 적절히 배합한 협공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융경제연구원 관계자는 “2003년 이후 4차례에 걸친 콜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통화증가율이 장기추세를 이탈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콜금리 인하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콜금리를 현재(3.25%)보다 0.25%포인트 올린다고 해도 대출을 10억원을 받을 경우 이자를 연 250만원 더 내는 데 불과하다.”며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적지 않지만, 인상효과는 기존의 인하효과와 마찬가지로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설령 올린다고 해도 어느 수준까지 인상해야 효과가 날지, 이럴 경우 파생되는 부작용은 경기회복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미칠지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대목”이라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정감록’엔 ‘도선비결’(道詵 訣)이 포함돼 있다. 한국 풍수지리설의 원조로 평가받는 신라말의 선승(禪僧) 도선의 저작이란 이야기인데, 도선(827∼898)의 스승이라는 중국 당나라의 고승 일행(一行)이 한국의 미래를 예언하는 형식이다. “임진년에 섬 오랑캐가 나라를 좀 먹으면 송백(松栢)에 의지하라. 병자년에 북쪽 오랑캐가 나라 안에 들끓으면 산도 불리하고 물도 불리하다. 궁궁(弓弓)이 이롭도다.” ‘정감록’ 곳곳에 나오는 주장이 ‘도선비결’에도 그대로 나온다. 정씨가 세 이웃의 도움을 받아 세 아들과 함께 계룡산(鷄龍山)에 도읍한다는 내용도 ‘도선비결’에서 발견된다. 요컨대 고승 도선이 이미 9세기에 조선왕조의 멸망과 정씨의 계룡산 도읍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따르면 도선은 고려왕조의 등장을 정확히 예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감록에 실린 ‘도선비결’에는 고려에 관한 예언이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조선왕조와 정씨왕조의 계승만 언급되어 있다. 과연 ‘도선비결’을 도선이 직접 저술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선은 누구기에 사후 1000 년이 지난 다음에도 정감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언서의 저자로 논의되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예언가 도선의 정체를 알아 보고, 그가 보급한 풍수지리설이 국운의 예언에 관여하게 된 역사적 과정을 조사해 보자. ●신라 말 풍수지리설은 예언의 중심으로 떠올라 도선은 출생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조선 세종 때 채집된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도선은 하늘이 점지한 아이였다. 이야기는 영암에 사는 최씨의 밭에 열린 오이에서 시작된다. 문제의 오이는 길이가 한 자를 넘어 보는 사람마다 신기하게 여겼다는데 하루는 최씨의 딸이 그 오이를 몰래 따먹었다. 그러자 저절로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게 되었다. 최씨는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았다며 딸을 꾸짖고 아이를 대숲에 버려 두었다. 여러 날 뒤 딸이 대숲에 가서 살펴 보니 비둘기가 날개로 아이를 감싸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고 딸은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아이는 장성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는데 이름을 도선(道詵)이라 하였다고 한다(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나주목 영암군). 아이를 비둘기가 날개로 감싸주었다는 대목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설화를 연상하게 한다. 물론 주몽과 다른 점도 있다. 이를 테면 주몽이 하늘의 손자라면 도선은 땅의 손자다. 오이는 땅의 기운이 열매 맺힌 것이라 땅의 아들로 봐야 하며, 그것도 매우 큰 오이라 하였으므로, 보통 아들은 아닌 것이다. 이를 테면 땅 임금의 손자나 다름없는 도선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서 제일가는 지관(地官)이 되게끔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 설화라는 것은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만큼 도선이 지관으로서 명성이 유별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역사상 도선이 예언가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그가 쉰 살쯤 되던 서기 876년께였다. 당시 신라는 내란기였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도선은 하늘의 명을 받아 송악군으로 갔는데 마침 왕건의 아버지 융건이 집을 짓고 있었다. 도선은 집을 다시 고쳐 지으라며 왕건의 출생을 예언했다. 그리고는 한 권의 책을 건네주면서 훗날 왕건이 장성하면 이 책을 꼭 전하라고 부탁하였다. 때가 되어 왕건은 그 책을 펼쳐보았고 자신이 천명을 받아 왕이 될 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고려 전기에 최유청이 쓴 도선의 비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先覺國師 證聖慧燈 塔碑). 정리하면, 도선은 왕건의 출생과 고려 건국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도선의 예언은 한국 고대의 예언과는 색다른 방식에 근거했다. 고대의 예언은 해, 달, 별 등 천체의 움직임이나 동물, 식물의 변화를 통해 앞일을 내다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선은 그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 가지 새로운 요소를 부각시켰다. 바로 풍수지리설이었다. 왕건의 아버지에게 집을 고쳐 지으라 했을 때 그가 한 말이 흥미롭다.“이곳은 지맥이 임방(壬方)인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수모(水母)의 나무를 줄기로 삼다가 말머리 명당에서 그칩니다. 그러므로 그대 또한 물의 운명이군요.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에 따라서 집을 지어야 합니다.36구라야 천지의 대수에 부응하겠고, 그러면 내년에 반드시 성자(聖子)를 낳게 됩니다. 부디 아이의 이름을 왕건이라 하십시오.” 도선의 이 말은 ‘고려사’ 세계(世系)에 실려 있다. 단 몇 줄밖에 안 되는 간단한 내용이지만 거기서 우리는 도선의 사상적 근원을 뚜렷이 알 수 있다. 그는 풍수지리설에 음양오행설을 단단히 결합시켰던 것이다. 집터의 성격을 물(水)로 읽었고, 주인의 운명도 그와 똑같은 것으로 본 것이 그 증거다. 더욱이 주인이 살 건물까지도 물이 되어야 한다면서 36칸 집으로 고쳐짓기를 요구했다. 오행설에서는 물을 1 또는 6으로 본다. 그 가운데 1은 작은 물,6은 큰물이다. 따라서 큰물의 조합은 6에 6을 곱한 36이 되므로 ‘36구’설을 폈던 것이다. 도선은 그 명당 기운을 살리려면 집도 터의 성격에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성자’ 즉, 미래의 임금을 아들로 얻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도선은 왕건 집안이 살던 송악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종(禪宗)의 일파인 지리산 동리산의 혜철(慧澈) 스님의 제자로 전남 광양의 옥룡사(玉龍寺)에 오랫동안 주석했다. 줄곧 거기 머물다가 후백제가 건국된 지 7년 만인 898년에 입적하였다. 궁예의 태봉이 건국되기 3년 전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세력 판도를 기준으로 보면 도선은 견훤의 세력권 내에 있었다. 그는 평생 견훤과 어떠한 마찰도 없었다. 그런 도선이 정말 왕건의 가문과 밀접한 관계였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도선은 왕건가문보다 견훤과 밀접한 관계 도선의 행적에 관한 ‘고려사’의 기록은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말이다. 또 다른 예로 ‘고려사’는 도선이 중국에 유학해 일행에게 풍수지리를 배웠다고 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류다. 도선은 중국에 유학한 적이 없었다. 참고로, 도선의 스승 혜철과 제자 경보(慶甫,868∼948) 두 사람은 유학했다. 왕건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것은 다름 아닌 경보였다. 그는 후백제가 망하기 직전에 고려태조와 접촉하였다. 그럼 그 때까지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도선이든 그 제자인 경보든 후백제를 위해 봉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대 최고의 지관이었던 그들을 후백제의 왕 견훤이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다. 만일 경보가 오래 전부터 왕건을 추종했다면 후백제 영토 안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던 무렵부터 도선의 제자들이 고려왕조에 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는 차츰 윤색되기 시작했다. 도선 일파가 지관으로서 워낙 이름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밖에도 통일신라 말기 또는 후삼국 시기에는 이름난 지관들이 상당수 있었다. 역사책에 이름이 기록된 신라의 감간(監干) 팔원(八元)은 좋은 예다. 팔원은 왕건의 조상 강충을 찾아가 “군(郡)을 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산에 소나무를 심어서 바위가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합할 이가 그대의 집안에서 나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려사, 세계). 이것은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새 왕조의 출현을 예측한 최초의 사례였다. 본래 민둥산이었던 부소산에 소나무를 심어 땅의 기운을 북돋웠다든가 그래서 지명이 송악이 되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도선에 앞서 유명한 지관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풍수지리설을 통해 복잡한 사회현실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도선의 제자들, 고려의 예언계를 평정하다 도선이 죽은 지 150년가량 되던 11세기 중반, 그가 남겼다는 비기(記)가 느닷없이 등장했다.‘도선송악명당기’(道詵松嶽明堂記)라는 비결이었다. 비결 가운데 “서강(예성강) 가에 군자가 말을 몰고 있는 모양을 한 명당이 있다. 태조가 통일한 병신년(936)으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에 이곳에 건물(이궁)을 창건하라. 그러면 왕업이 연장될 것이다.”(西江邊 有君子御馬明堂之地.自太祖統一丙申之歲 至百二十年 就此創構.國業延長)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근거해 조정에서는 부랴부랴 임시 궁궐을 짓는다(‘고려사절요’, 권 4). 어느덧 도선은 고려왕실의 지속적 번영을 위해 동원되는 인물이 되었다. 이것은 물론 도선의 후예를 자처하는 고려의 술관(術官)들이 나서서 하는 일이었다. 그 무렵의 가장 대표적인 술관은 김위제였다. 그만하더라도 도선과의 학맥을 무척 강조하는 편이었다.‘고려사’에는 “신라말에 도선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당 나라에 들어가서 일행(一行)에게 지리의 법을 배웠다. 돌아와서는 비기를 지었다. 그것이 김위제에게 전해져 김위제는 그 술법을 배웠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김위제는 도선이 지었다는 ‘도선기’(道詵記)라는 예언서를 인용해 가며 당시의 남경(南京) 즉,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하였다. “고려에는 세 개의 서울이 있게 되리라. 송악은 중경, 목멱양은 남경, 평양은 서경이 되리라.11,12,1,2월은 중경에 머무르고 3,4,5,6월은 남경에 머무르며,7,8,9,10월은 서경에 머물러라. 그러면 36국이 고려의 천자에게 조공을 바칠 것이다.” 도선의 예언서에 나오는 구절이었다.“개국 후 160여년에는 木覓壤(한양)에 도읍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김위제는 한양으로 천도까지 할 필요는 없고 삼경을 돌아가며 머물면 나라의 운수가 장구할 거라고 주장했다.(‘고려사’ 권 122) ●한강 북쪽에 도읍 정하면 나라 부흥 그밖에도 김위제는 도선이 남긴 또 다른 예언서라면서 ‘도선답산가’(道詵沓山歌)를 인용하였다. 그에 따르면, 한강의 북쪽에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길이 영원하며 천하의 온 나라가 와서 조공을 바치게 되고 왕족이 창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한강을 건너 남쪽에 서울을 두게 되면 나라가 분열되어 나라가 한강을 경계로 이분된다고 말했다.(‘고려사’ 권 122) 또한 김위제는 도선이 지었다는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를 인용하면서 삼각산 아래 왕궁을 지으면 신하들 사이에 다툼이 없어지고, 왕실재정이 저절로 풍부해지며, 사방의 인재들이 조정에 가득 차게 된다고 했다. 한 마디로 국정의 운영이 순조롭게 되며 온 나라들이 조공을 바치러 온다고 극찬했다. 요약하면, 한양 즉, 오늘날의 서울은 최고의 명당이라는 것이고, 오늘날 서울의 강북 지역이야말로 나라의 중심이어야 된다고 했다. 만일 강남 또는 한강 이남이 수도로 지정될 경우 나라가 망하고 만다는 식의 이야기다. 이를 현실에 적용한다면, 최근 진행 중인 신행정 수도 같은 것은 전혀 불필요하며, 부동산 개발로 문제가 돼 있는 강남이고 판교고 개발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서두에서 소개한 이른바 ‘도선비결’의 내용과 잠시 비교해 보자. 다시 말하면 ‘도선비결’은 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내용이었다.‘도선답산가’,‘도선기’ 등과는 아무런 유사성도 찾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예언서다. 좀더 꼼꼼히 살펴 보면 고려시대에 등장한 도선의 예언서들도 내용상 상호 모순 관계에 있다.‘도선송악명당기’는 고려의 수도는 어디까지나 개경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인데 ‘도선기’는 3경설을 편다. 이에 비해 ‘도선답산가’와 ‘삼각산명당기’는 한양천도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예언서들이다. 이 모두를 고승 도선이 지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도선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지은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김위제를 비롯한 고려의 술관들은 도선이 남긴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설의 전통 위에서 국가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풀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은 도선의 권위를 빌렸다. 도선의 예언이라고 내세우면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능력은 과대평가되었다. 도선은 기껏해야 고려왕조의 출현에 관심을 가졌을 텐데, 그의 제자인 후대의 술관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빙자해 국가의 모든 현안에 개입하였다. 고려 후기까지 줄곧 그런 전통이 이어졌다. 예컨대 원나라 생활에 익숙한 충열왕이 중국을 본떠 높은 건물을 지으려 하자 술관들은 그에 반대했다. 반대의 이유는 물론 도선의 예언이었다. 술관들은 ‘도선밀기’(道詵密記)를 들먹였다.“산이 드물면 높은 집을 지어라. 산이 많거든 낮은 집을 지어라. 산이 많으면 양이다. 산이 드물면 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만일 높은 집을 짓는다면 반드시 손해를 가져온다.” 만일 이말 대로라면 63빌딩 같은 것은 당장이라도 허물어야 할 판이다. 도선의 제자들은 고려 태조 때부터 높은 건물을 금지해온 것이 고려의 국법이며 이는 바로 자기네 스승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만일 “도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태조의 명령을 좇지 않는 것이 되고, 그 결과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고려사, 권 28) 과연 도선이 고층건물을 반대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술관들의 이런 견해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국가의 비용이 절약되는데다가 백성들의 노역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도선의 제자들은 대대로 고려의 술관으로 위세를 떨쳤기 때문에 도선의 명성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이른바 도선의 예언서는 어느 것이나 일단 위작(僞作)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고려시대에는 예언서를 포함한 음양서(陰陽書) 일반이 조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주역은 전문가인 술관과 스님들이었고, 문장에 능한 문사들이 보조적인 역할을 떠맡았다. 그러나 고려시대만 해도 이런 책들을 생산, 소비하는 계층은 수도 개경의 특수층에 국한되었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도선의 명성 조선 건국 직후에도 도선의 예언서는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태종은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그 때도 도선이 이용되었다. 당시 천도 문제를 실질적으로 담당한 이는 술관 이양달(李陽達)과 정승 하륜(河崙) 등이었다. 하륜은 ‘도선비기’를 존중해 “한수가 명당으로 들어온다는 말”(漢水入明堂之語)에 주목했다. 한편 이양달은 ‘도선비기’에 “서쪽에 공암 있고 붉은 색깔로 글씨 쓴 돌 벽이 있다.”는 구절에 암시를 받아 인왕산에서 붉은 글씨를 찾았고, 결국 경복궁터를 정하게 되었다.(‘필원잡기’, 권 2) 고려의 건국을 예언했다는 도선이 이제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일어선 조선왕조의 안정과 발전을 보장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왕조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히자 도선의 예언서는 폐기처분되었다. 세조는 ‘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을 금지시켰던 것이다(실록, 세조 3년5월26일 무자). 이미 한 두 차례 강조했듯이 고대로부터 국가는 예언을 독점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예언이 ‘불순분자’들의 수중에 들어가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더욱이 성리학을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왕조의 경우, 예언은 점차 악덕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15세기 후반 이래 국가의 공식 기록에서 도선에 관한 언급은 사라졌다. 그러나 일반 민중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에게 도선은 영원한 스승으로 남았다.‘정감록’에 ‘도선비결’이 실리고, 도선의 출생에 대한 신비한 설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그 증거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도선은 “신(神)이 통한 밝고 지혜로운 스님이었다.”(성종 16년1월8일 신묘). 도선은 새 세상이 동터 옴을 알릴 만한 참된 예언가였던 것인데, 이런 기대는 그가 이 땅에 풍수지리설을 최초로 집대성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 도선의 제자들은 풍수지리설을 국가운명을 예언하는 도구로 정착시켰으며, 이것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이 되었다.(푸른역사연구소장)
  • 부동산 ‘거품위험’ 은행들이 키운다

    부동산 ‘거품위험’ 은행들이 키운다

    은행권이 최근 들어 주택담보대출 등을 통해 스스로 리스크(부실위험)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채권·주식 등 자본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해 시장기능이 크게 약화되면서 은행권이 제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신용보다는 담보를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등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는 결국 금융시스템의 왜곡현상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다. ●은행권의 속앓이 은행권 일각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추이 등에 대해 앞으로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지금의 상태로만 보면 심각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돈을 굴릴 곳이 없는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 등을 통한 가계대출을 중단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조흥은행의 지난 5월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8조 7610억원으로 지난해 말의 7조 8706억원에 비해 8904억원,11.31%가 증가했다. 이어 제일은행이 9조 5049억원에서 10조 1697억원으로 6648억원 늘어 6.99%의 증가율을 보였다. 신한은행도 5월말 현재 14조 4927억원으로 5.08%(7004억원)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은행 부실의 위험성을 자체적으로 점검한 결과 집값이 10∼20%가량 하락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걱정도…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에 대한 비중을 지금처럼 계속 늘려가면 금융시스템 왜곡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동감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개인신용,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 대출을 늘리는 방법을 은행들이 모두 고민하고 있지만 리스크가 워낙 크기 때문에 회수가 확실한 가계대출에 목을 메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기업금융에 강했던 은행들은 모두 망하고, 소매금융에 주력했던 은행들만 살아남은 최근의 ‘역사’를 경험했는데, 쉽게 가계대출을 축소할 수 있겠느냐.”면서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고민보다는 점점 격화되는 은행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계대출을 축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지동현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외에 투자상품 및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파는 것)상품 등 교차판매까지 늘려나가고 있어 평판리스크, 신용리스크, 운영리스크 등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채권 등 살려야 올들어 회사채(ABS·금융채 제외) 발행 현황을 보면 지난 3월에는 2조 9030억원이던 것이 4월에는 2조 979억원,5월에는 2조 1651억원 등으로 늘지 않고 있다. 특히 만기상환용 발행액 등을 제외한 순발행 규모로만 볼 때는 3월 2조 39억원,4월에는 7951억원,5월 -1조 2440억원 등으로 급감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주식은 외국인의 손에, 채권은 신용등급이 좋은 회사만 발행할 수 있는 등 자본시장이 갈수록 시장의 기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가운데 시장과 보완 관계에 있던 은행권은 수익 확보를 위해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에 나서고 있다.”며 자본시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시중의 풍부한 부동자금이 부동산시장보다는 주식·채권시장으로 이동하고, 은행권의 담보대출 경쟁도 수그러들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늘리기 위해 각종 편법을 쓰고 있어 문제”라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이 은행 중심으로 돼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거품 붕괴가 발생한다면 1차적인 재앙은 은행권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 이창구기자 bcjoo@seoul.co.kr
  • [MLB] 찬호 “7월에 보자”

    “같은 투수가 맞나요?” 27일 미뉴트메이드 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지역라이벌’ 텍사스 레인저스-휴스턴 애스트로스 경기를 중계하던 폭스스포츠의 캐스터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5일전 LA 에인절스전에서 1이닝 8실점으로 ‘재앙’을 당한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와는 180도 달랐기 때문.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27일 휴스턴전에 선발등판해 7이닝 동안 5안타 2실점의 눈부신 피칭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6월내내 컨트롤이 안 잡혀 ‘양날의 칼’이 됐던 투심패스트볼을 최대한 자제하고 커브와 슬라이더, 포심패스트볼에 주력한 게 효과를 봤다. 볼넷 하나 없었고 삼진은 무려 6개나 솎아냈다. 지난 5월30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 이후 5경기 만에 퀄리티스타트로 6.05이던 방어율을 5.75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2-2로 맞선 8회 마운드를 넘겨 선발 100승(시즌8승)을 챙기는 데 실패했다. 텍사스는 연장10회 접전 끝에 2-3으로 패했다. 총 투구수 95개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64개. 스트라이크와 볼의 비율이 황금비율인 2대1을 웃돌 만큼 컨트롤이 안정됐다. 최고구속도 151㎞까지 나와 위기상황에서 플라이볼을 유도해 내는 승부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박찬호가 2회 2사 1·2루에서 엔디 페디트를 2루땅볼로 잡은 것을 신호탄으로 6회 1사에서 윌리 타베라스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기까지 11타자 연속 ‘아웃 퍼레이드’를 펼친 것. 다만 6·7회 하나씩의 실투가 ‘옥에 티’였다.6회 랜스 버크먼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아 1점을 내줬고,7회엔 올랜도 팔메이로에게 2루타를 허용한 뒤 번트로 동점을 허용했다. 벅 쇼월터 감독은 인터뷰에서 “공격적인 피칭으로 팀에 승리할 기회를 줬고, 다음 등판이 기대된다.”면서 변함없는 신뢰를 표시했다.임일영기자arg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언제 누가 무슨 예언으로 세상을 움직였을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언자의 계보도 많이 달라졌다.20세기 초엔 손병희를 비롯한 신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정감록’을 근거로 ‘후천개벽’을 예언했다. 그에 앞서 조선 후기에는 풍수지리와 점술에 밝은 ‘술사(術士)’들이 예언자로 활동했다. 그들은 정권에서 소외된 이른바 ‘원국지사(怨國之士)’들과 연합해 새 왕조의 창립을 꿈꾸었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언서 ‘정감록’을 민간에 유포시켰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좀더 다양한 부류의 예언자들이 발견된다. 우선 고려 후기에는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주장하다가 사기꾼으로 단죄된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고려시대만 해도 국가는 정치적 예언을 독점 관리하였으며, 이를 위해 천문과 지리 등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술관(術官)을 따로 설치했다. 국가가 예언을 제도적으로 독점하는 경향은 이미 고대로부터 비롯됐다. 우리와 이웃한 고대 중국은 물론, 서양문명의 뿌리로 알려진 로마제국에서도 정치적 예언은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정치적 예언은 허가받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만큼 고대사회에서 예언의 역할은 중요했다. 한국 고대의 예언자들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왕, 무당, 일관 및 승려가 그들인데, 이들은 예언의 원조였다.‘정감록’의 가장 깊숙한 뿌리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성한 왕들의 예언능력 고대엔 왕들이 직접 예언자 역할을 담당했다. 예컨대 신라 선덕여왕이 그랬다.‘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인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줄거리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영묘사 옥문지에 개구리 떼가 모여 여러 날 동안 울어댔다. 이것을 보고 여왕은 여근곡이란 곳에 백제 군사가 잠복해 있는 줄을 알아냈다. 개구리는 눈이 툭 불거져 있어 성난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병사로 해석했다. 개구리가 울던 옥문은 곧 여자의 생식기인데 여자는 음이요, 빛깔로 말하면 흰색, 방향으로는 서쪽이다. 여왕은 적군이 서쪽에 있음을 짐작했다. 그런데 남근이란 여근 속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라 여근곡의 적군은 물리치기가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선덕여왕의 예언은 사물의 형태, 이름, 빛깔이 당시 사람들이 공유한 상징체계의 틀 안에서 이뤄졌단 점이 주목된다. 역사가들은 이 설화를 예로 들어 선덕여왕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든가, 또는 여왕의 권위가 만만치 않았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고대의 왕은 신성시 됐는데, 왕의 초월적 능력에 대한 기대가 그 이면에 자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중국 고대의 진시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신성한 능력의 소유자로 간주돼, 사시사철 천지의 순조로운 운행을 알리는 달력을 공포할 권리가 있었다. 심지어 고대 동양에서는 신기한 동식물의 출현, 별자리의 움직임을 비롯해 갖가지 천문 현상, 바람과 비 등 일체의 자연 현상에서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자 했다. 자연환경의 사소한 변화에도 한 나라의 정치적 공과가 반영되어 있다고 믿었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에 관한 기사가 수없이 많다. 왕은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 암시된 하늘의 뜻을 정확히 읽고 적절히 대응해야만 됐다. 그것이 하늘과 백성에 대한 왕의 의무였다. 이런 점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한국 고대엔 왕이 흉년이나 자연재해에 대해 직접 책임을 져야 됐다. 부여에선 여차하면 왕을 바꾸기까지 했다고 한다. 부여 왕은 정치적 수장이자 최고의 사제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부여 사람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하늘의 의지가 절대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이 벌어지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그 발굽 모양으로 길흉을 점칠 정도였다. 일종의 동물 점(占)이 애용되었던 것인데, 그 방법이 중국 고대 은(殷)나라의 갑골점(甲骨占)과 비슷해 보인다. 고대에는 아직 세속적인 지식과 종교적인 신앙심이나, 정치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왕은 최고 권력자이자 종교적으로 신성한 존재로서 하늘의 뜻을 정확히 읽어내야 된다는 사명을 떠안게 됐다. 심한 경우, 예언과 주술의 능력이 부족한 왕은 퇴출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상적인 왕은 선덕여왕처럼 예지 능력을 구비했어야 됐다. ●궁중의 무당 또는 일관들, 예언 전문가로 국정에 간여해 시일이 흘러감에 따라 정치와 종교는 점차 분리되었고, 정치권력이 종교적 권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왕 노릇을 하는 데는 여전히 정치적 예언능력이 요구되었지만, 왕이 직접 예언자여야 할 필요는 사라졌다. 왕은 궁궐 안에 예언자들을 고용했고, 그것으로 족했다.‘삼국사기’에 보면 이미 백제의 초창기인 온조왕 때,‘일관(日官)’이란 전문가가 측근으로 기용돼 있었다. 어느 한 해엔 왕궁의 우물물이 갑자기 넘쳤고, 도성에 사는 어떤 백성의 집에서 말이 소를 낳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 머리는 하나였으나 몸은 둘이었다. 이런 변고(?)에 대해 일관이 해석을 내놨다.“우물물이 갑자기 넘친 것은 대왕이 크게 세력을 일으키게 될 징조입니다. 소가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인 것은 대왕이 이웃 나라를 병합하게 될 징조입니다.” 예언은 맞아들었다. 얼마 후 온조왕은 진한과 마한을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 일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고구려에서는 일자(日者)라고도 하였다. 그는 천체의 이상현상을 예언으로 풀이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예컨대 149년(고구려 차대왕 4년) 5월에 다섯 별(歲星 또는 木星,熒惑 또는 火星,太白 또는 金星,辰星 또는 水星 그리고 鎭星 또는 土星)이 동쪽 하늘에 모였다. 일자가 보기에 흉한 조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마음에 거슬리면 공연히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임금의 덕”이 있다는 증거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 늦어도 2세기에는 천문에 정통한 직업적인 예언자들이 고구려 왕실에 존재했다. 일자는 이를테면 전문직 관리로 왕을 보좌했다. 고구려 왕실에는 또 다른 부류의 예언자들도 있었다. 역시 고구려 차대왕 때의 기록이 참고가 된다.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마침 하얀 여우가 보이기에 활을 쏘았다. 그러나 맞히지 못해 떨떠름해했다. 왕은 ‘무사(巫師)’에게 이 일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스승 사(師)’ 자를 붙여 무사라 일컫는 데서 짐작되듯, 최상급의 무당이었다. 무사는 그 일이 아주 나쁜 징조라고 말했다. 여우는 요사스러운 짐승인데 하물며 그 빛깔이 하얗다면 더욱 괴이한 일이라 했다.“임금님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여 덕을 닦고 잘못을 반성하십시오. 만일 임금님이 덕을 닦으시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은 화가 치밀어 올라 이렇게 간언하는 무사를 죽여 버렸다. 나라 안의 최고 무당으로서 예언자는 자연 현상에 은밀하게 담긴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아맞혀야 했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돼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무당은 자연 현상의 예언적 의미를 캐낼 때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적 개입은 위의 이야기가 상징하듯 상당한 위험이 뒤따랐다. 우리에게 삼국통일의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유신만 해도 본래는 고구려의 무당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전생에 고구려의 무당 추남이었다 한다. 추남은 천지자연의 여러 현상을 예언으로 풀이하는데 능했다. 뿐만 아니라 점술에도 밝았다. 하지만 고구려 왕비의 뜻을 거스른 바람에 무고하게 죽음을 당했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적국 신라의 귀족 가문에 환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삼국유사’에 보면, 고구려의 연개소문 역시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적국의 장수로 환생하였다고 했다. 환생에 얽힌 전설이 사실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점은 추남이든 또는 차대왕 때의 무사든 국가의 운명을 바로 예언해야 될 사명을 띤 무당들이 왕의 곁에 포진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과 별도로 천문에 밝은 일자들 역시 예언을 임무로 삼았다. ●명산대천과 시조 사당의 제관들, 국운을 예언하다 7세기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얼핏 무당과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구별되는 새로운 부류의 예언자들이 등장했다. 사제 또는 제관(祭官) 즉, 나라의 중요한 제사를 담당하던 종교인들이 예언자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고구려 말기인 보장왕 때 일이다.654년(보장왕 13년) 4월, 마령 고개 위에서 신인(神人)이 나타나 고구려의 멸망을 예언했다. 마령의 신인이란 산신령을 가리킨 것이 거의 틀림없다. 신라의 경우 김유신의 전기를 읽어보면 삼산(三山)의 여신들이 국운을 수호하는 신으로 언급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마령도 국가적으로 중시되던 명산이며, 그 곳의 산신이라면 특별한 신앙대상이 아닐까 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마령 산신의 예언을 청취한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일 수가 없다. 그는 산신령의 제사를 전담하는 사제였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딱히 고구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삼국에는 저마다 국가적인 제사의 대상이 정해져 있었다. 유명한 산천과 국가의 시조묘(始祖廟) 등이 신앙 대상이었다. 이들 종교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따로 있었다. 고구려 요동성(遼東城)만 해도 시조 주몽(朱蒙)의 사당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에 얽힌 이야기는 마침 예언자에 관한 우리의 논의에 도움이 된다. 보장왕 때 당나라 장수 이세적(李世勣)이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그 성 아래까지 쳐들어 왔다. 당나라 군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달아 성을 공격했다. 당 태종까지 친히 합세해 요동성을 수십 겹으로 에워싸 북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요동성 주민들의 사기는 저하됐고 성은 함락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주몽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나섰다.“우리가 모시는 주몽 사당에는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이 있고 날카로운 창이 있다. 전해오는 말로 이것은 전연(前燕·249∼370) 때 하늘이 내려 보냈다고 한다. 지금 적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위급하다. 미녀를 단장하여 주몽 신에게 아내(‘婦神’)로 바치자.” 그의 제안대로 미녀를 바친 다음 제관이 다시 말했다. 주몽이 기뻐하시므로 성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요동성은 바로 함락되고 말았다. ‘삼국사기’에는 주몽 사당의 제관을 단순히 무당(‘巫’)이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닐 성싶다. 요동성의 함락에 관한 내용은 고구려의 적국인 당나라 측의 사료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 사당을 보호하고 관리할 ‘사제’ 또는 ‘제관’이 없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쯤에서 요점을 간추려보자. 첫째,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은 사후에 국방의 요충인 요동성을 수호하는 신으로 간주돼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비슷한 예로 신라의 문무왕도 죽어 국가의 수호신이 되었다. 문무왕과는 달리 주몽은 성곽의 수호신이었다. 그런 점에서 주몽 사당은 후대 중국 성황(城隍)의 원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 주몽 신에게 젊은 여성이 희생으로 바쳐졌다는 점이다. 사람을 산 채로 무덤에 부장품으로 삼는 순장(殉葬) 풍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종교적 희생은 오랫동안 끈질기게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인용한 사료에서 확인되듯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 사당을 관리하는 제관이 있었고, 그는 수호신 주몽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바로 이 점이 지금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다. 백제의 경우에도 명산대천은 국가적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중요했던 만큼 국가의 멸망을 예언하는 징조가 가장 분명하게 포착된 장소이기도 했다. 백제가 멸망하기 몇 해 전부터 기이한 현상들이 자주 목격됐다. 빨간 말이 북악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와 울었다고 했다. 그 말은 사찰을 여러 날 동안 맴돌다 죽었다는 것이다. 북악이라는 명칭에서도 짐작되듯 그 산은 백제의 오악 가운데 하나였다. 명산 중의 명산으로 백제가 국가적 신앙대상으로 삼았던 북악 산신이 나라의 멸망을 알리는 징조였다면 의미심장하다. 하필 ‘말’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상징적이다. 앞서 예로 든 고구려의 산신도 마령 즉 ‘말 고개’에 출현했던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에 말은 전쟁 또는 군신(軍神)의 상징이었다. 멸망을 눈앞에 두고 백제의 우물, 강물 그리고 바다에도 재앙의 조짐이 역력했다. 서해안 해변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어찌나 많던지 백성들이 아무리 먹어도 남았다고 했다. 생초진(生草津)엔 거대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됐다. 그 길이가 무려 18척이나 됐다고 한다. 수도 사비성의 서남쪽으로 흐르는 사비하(금강)에는 큰 물고기가 죽어 떠올랐는데, 길이가 3척이나 됐다. 이어서, 사비하의 물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도성의 우물물도 핏빛으로 변했다. 모두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따져보면 우물물이나 강물이 붉게 변했다는 이야기는 큰 물고기나 거대한 여성이 폐사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대 한국인들의 관념에 따르면 물속에는 물의 신이든가 아니면 용이 살고 있었다. 그 형상은 특출한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었고 물고기 또는 지렁이와 같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물의 신은 우선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등장한다. 주몽의 외할아버지 하백이 바로 그렇다. 작은 물고기들은 물의 신(水神,河伯)의 신하로 인식됐다. 적에게 쫓기던 주몽이 무사히 강물을 건너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물고기와 자라들 덕분이었다. 만일 주몽이 수신의 외손이 아니었더라면, 수중 생물들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웠다는 것이 신화의 논리다. 백제 왕실은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였던 만큼 명산 못지않게 대천(大川)도 중요했다. 수도 사비성을 감싸 흐르던 사비하, 생초진 그리고 서해 바다의 수신은 모두 백제의 수호신이었을 것이다. 물론 수호신들의 죽음에 대한 관찰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현상을 목격하고 보고하고 기록한 것은 보통사람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언자인 제관들의 고유한 권리요, 또한 의무였다. ●호국사찰의 승려들, 불안한 미래를 보다 삼국에 불교가 전파된 뒤로 각 나라엔 호국사찰(護國寺刹)이 들어섰다. 기존의 산신과 수신에 더하여 부처님의 가호가 나라의 융성을 보장해주리란 믿음이었다. 그러다 나라가 망하게 되자 그 조짐이 호국사찰에도 나타났다. 백제의 경우, 천왕사(天王寺)와 도양사(道讓寺)의 탑이 벼락을 맞는가 하면, 백석사(白石寺) 강당에도 벼락이 쳤다. 왕흥사(王興寺)에선 배의 돛과 같이 생긴 것이 강물을 따라 절간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목격됐다. 왕흥사 승려들은 이런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한다. 정치적 예언은 본래 신성한 왕과 무당들의 독점적 영역이었으나, 역사 속에 새로 등장한 일관(日官)들, 불가(佛家)의 스님들에게도 예언의 권능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런 고대 예언자들의 직업적 계보가 이어져, 조선후기엔 술사(術士)와 스님들이 정감록의 생산과 유통을 주로 담당하게 된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씨줄날줄] 세계보도사진전/이용원 논설위원

    장면 하나-차 앞유리창을 뚫은 총탄 흔적은 10여개. 공포가 지나쳐서일까. 안에 탄 미군은 얼이 빠져 있다. 장면 둘-굳은 표정으로 관람객을 응시하는 사내. 짙은 눈썹 아래 양눈과, 수염으로 덮인 입술은 철사로 꿰매져 있다. 장면 셋-하늘을 벌겋게 물들인 화염의 기세는 순식간에 초라한 골목을 덮칠 듯하다. 그러나 소녀는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만 있다. 절망은 달아날 마음조차 앗아간 것일까. 첫 장면의 미군은 이라크에 파병된 해병 에릭 에욘 일병이다. 지난해 4월6일 매복공격을 받아 차량에 탄 9명 가운데 그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사흘 뒤 그 역시 같은 장소에서 전사했다. 눈·입을 꿰맨 사내는 이란의 망명자 메흐디 카우보시. 네덜란드 정부가 망명신청을 기각하자 항의 표시로 이같은 일을 벌였지만 강제추방 명령은 취소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브라질 상파울루의 빈민가에 큰 불이 나 누옥 200여채가 불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니 그 소녀는 다시금 고단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서울 태평로1가 서울신문사(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열리는 ‘2005 세계보도사진전’에 연일 관람객들이 몰리고 있다. 전시된 사진은, 세계보도사진재단(WPP)이 123개국의 출품작 7만점 가운데 수상작으로 가려낸 199점. 지난해 지구상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와 지구촌 가족의 삶, 자연의 신비 등이 두루 포함돼 있다. 먼저 눈길을 끄는 사진은 이라크전·쓰나미 피해 등 전쟁·테러·자연재앙과 관련한 것들이다. 겁에 질린 미군 병사의 사진 곁에는 짐승 우리 같은 철망에 갇힌 이라크 반군 포로의 모습이 나란히 붙어 있다. 하지만 무겁고 어두운 사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페루의 고산지대 마을 부녀자들이 치마를 입고 축구하는 장면, 아테네올림픽 개인탁구 결승전에서 유승민 선수가 강력하게 스매싱을 날리는 장면 등은 절로 미소를 떠오르게 한다. 사진은 한 컷만으로 무한한 이야기를 전달한다.‘세계보도사진전’을 한바퀴 둘러보면서 새삼 느낀 사실은 타인의 삶, 다른 문명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고통·기쁨을 나눠가짐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점이었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노인문제 근본적인 접근을/염희진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인구의 고령화는 막연한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각종 보도와 통계자료들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오는 2050년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37.3%로 높아져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며(2050년에 세계 최고 고령국-서울신문 5월23일자) 평균 수명은 망구(望九:81세)를 넘보게 된다고 한다. 실버파워가 세상을 이끄는 중심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걸맞지 않게 우리 사회의 노인에 대한 담론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노인이란 단어는 힘없고 소외된 사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나이가 많은 재벌총수나 정치인들을 노인으로 부르지 않는 것은, 그들이 현실적으로 힘을 갖고 있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노인’이라는 명칭은 항상 돈 없고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이들의 몫이었다. 우리에게 노인은 부담스러운 존재이거나 시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또 늙어간다는 자체가 긍정보다는 외면의 대상이 되고 있다.‘웰빙’과 ‘몸짱 신드롬’ 속에서 건강과 젊음으로 대표되는 청춘은 예찬되고, 늙음은 부정된다.‘잘 먹고 잘 살기’라는 미명 아래 나이를 의심케 하는 ‘젊은 노인’들만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늙음과 죽음이라는 현상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 현상이 아닌, 거스르고 거부해야 할 자연적 재앙이 된다. 분명 고령화는 경제활동인구인 청장년층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축복’이 아닌 ‘불행’이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잠재성장률이 3%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급증하는 노인부양비와 국민부담 때문이다. 따라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줄 연금개혁과 복지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노인을 바라보는 고정되고 왜곡된 시선을 바꾸는 것은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사회를 비추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서울신문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고령화와 관련하여 여러 기사와 기획을 보도했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큐! 아름다운 노년’ 시리즈이다.8번에 걸쳐 연재한 이 기획을 통해 일하는 실버, 영원한 젊음(4월4일자), 금기의 벽은 없다-노인의 성(4월11일자), 황혼의 쉼터 아쉽다(4월18일자),‘사각지대’ 학대받는 노인(4월25일자), 존엄하게 오래 사는 법(5월4일자), 치매의 덫을 피하라(5월10일자) 등 다양한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러한 기획은 고령화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알맞는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특히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해외사례(지구촌 노인들은-5월20일자)를 소개하고,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과 국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점과 구체적 대안까지 마련한 것(전문가에게 듣는다-5월30일자)은 심층기획의 성격에 적절하게 부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노인담론을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늙음과 죽음 자체에 대한 다양한 고찰이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존엄하고 오래 사는 법’만큼 ‘늙음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법’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6월3일 보도된 칼럼(열린세상 ‘불멸에 대한 욕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글이었다. 무병장수가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병들고 늙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현실을 제대로 꼬집었다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생명연장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치료라는 성과로 이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생명 연장은 젊음의 연장이 아닌, 단지 노년기의 연장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노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고령화로 부담을 떠안게 될 청장년 세대만큼 노인들의 주름 또한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기에 결국 그 주름은 나중에 노년이 될 젊은 세대의 몫이 된다. 따라서 고령화 시대의 정책부재를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하기에 앞서, 노인과 늙음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고찰을 하는데 서울신문이 앞장서기를 바란다. 염희진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 [시네 드라이브] 2005 충무로 작은 게 세다?

    올 들어 충무로 술자리들에서 안주 삼아 꾸준히 입길에 오르내린 얘깃거리가 하나 있다. 제목하여 ‘2005년 충무로 4대 재앙’이다. 괴담 속 주인공은 80~90억원의 큰 제작비를 쏟아부은 국산 블록버스터 4편. 이미 개봉한 ‘혈의 누’와 ‘남극일기’, 개봉을 기다리는 ‘천군’과 ‘청연’이 그들이다. ‘괴담’운운하는 것이 이래저래 힘겹게 영화를 찍고 있는 제작사 입장에선 가슴 쓰릴 얘기일 법하다. 하지만 충무로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성적표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실패는 가뜩이나 위축된 영화시장을 더욱 경색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설마설마했던 ‘혈의 누’와 ‘남극일기’의 성적은 역시나 영화의 덩치에 못 미쳤다. 지난달 4일 개봉한 ‘혈의 누’의 전국 관객 누계는 현재 약 227만명. 총제작비 75억원의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뉴질랜드 올로케 촬영, 톱스타 송강호·유지태 주연으로 화제를 뿌렸던 ‘남극일기’는 엄청난 기대에 비하면 ‘재앙’ 수준의 성적이다. 개봉 18일째인 지난 6일 현재 전국 관객수는 105만명에 그쳤다. 송강호라는 ‘빅 카드’를 내세웠음에도 ‘남극일기’에 대한 우려는 사실 일찍부터 충무로에 팽배했었다.6년여를 끌어온 제작기간, 도중에 제작사가 바뀌는 혼란, 해외 원정촬영 등 불안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게 영화가의 설왕설래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되 ‘해외로케 영화는 흥행실패한다.’는 속설도 ‘남극일기’의 결과로 또 한번 입증된 셈. 청년 이순신의 모습을 코믹터치로 그린 팬터지 사극 ‘천군’(7월15일 개봉),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삶을 그린 ‘청연’(12월 개봉예정)에 더욱 걱정스러운 시선이 쏠리는 것도 그래서이다. 중국 원정촬영까지 한 ‘천군’이 제작비 80억원을 들였고, 중국 일본 미국 등을 돌며 전체의 50%를 해외촬영한 ‘청연’은 순수제작비로만 90억원을 썼다. 한 제작자는 “개봉도 하기 전에 김을 빼는 듯해 안됐지만, 해외 로케로 덩치가 커지는 영화는 압축미가 떨어져 그만큼 실패 가능성도 큰 것 같다.”면서 “순제작비만 150억원을 쓴다는 곽경택 감독의 ‘태풍’ 등 연내에 개봉될 블록버스터들마저 실패하면 내년 충무로 돈줄은 씨가 마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줄잇는 ‘작은 영화’들의 선전에는 한층 더 묵직한 의미가 실린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연애술사’가 지난 6일 전국관객 100만명을 넘겨 이미 제작비(27억원)를 뽑았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안녕, 형아’도 마찬가지. 개봉 2주 만에 82만명을 불러모으며 탄력을 받고 있다. ‘사이즈가 미덕’이던 시대는 틀림없이 아닌 것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한중일 ‘역사왜곡 방지’ 심포지엄

    한중일 ‘역사왜곡 방지’ 심포지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이 낳은 최대의 성과는?아마 한·중·일 3국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가운데 일본 시민사회는 부러움과 우려의 대상이다. 철저한 풀뿌리 운동이라는 점에서는 앞서 있지만 일본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 때문에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올바른 역사인식’이 일본 젊은이들에게는 ‘공자 왈 맹자 왈’하는 고리타분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지난 20여년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바로 ‘피스보트(Peace Boat)’다. 젊은이의 눈높이에 맞춘 활동 덕분에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찬사까지 받고 있다. 심포지엄 참석 차 방한한 피스보트 대표 노히라 신사쿠를 만났다. 피스보트는 어떤 단체인가. -1982년 제1차 역사교과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역사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당시 언론인, 대학생, 연구자 등 200여명이 뭉쳐, 배를 타고 다니며 아시아를 직접 체험해보자고 했다. 이것이 피스보트다.1983년 정식 출범한 뒤 지금까지 49차례 항해에 2만 5000여명이 참석했으며 세계 60여개국을 돌았다. 지금도 바다 어딘가에 피스보트는 항해 중이다. 시민단체 활동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1960∼70년대 학생운동이 실패한 뒤 일본 시민운동에는 젊은이들이 없다. 이런 젊은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배 타고 다니며 댄스파티, 시장구경, 요리대회 등 즐거운 일을 벌인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여행할 욕심에 피스보트 사무국을 들락날락하다 자연스럽게 지뢰·기아·난민·역사 문제를 접하고 또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점이다. 세계평화를 체험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피스보트 참가자의 반 이상이 20대다. 한국 시민단체와는 연계해서 활동하나. -물론이다. 마침 올해 8월13일부터 27일까지 한국 환경재단과 함께 ‘부산-인천-단동-상하이-오키나와-나가사키’ 루트에 참가할 600명을 모집 중이다.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환영한다. 노히라의 경우는 어떤가. 피스보트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겪었나. -도쿄 사람이 내 고향 가고시마를 ‘시골 깡촌’으로 여기는데 화가 났었다. 그런데 나 역시 동남아시아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됐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90년대 초에 피스보트에 올랐다. 그리고 베트남에 갔었는데 있는 그대로의 베트남보다는 ‘이국적인 뭔가’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미군이 일본에 와서 기모노 입은 여성을 보고 ‘뷰티풀’이라고 외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던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그런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북한과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주겠다. 내가 판문점을 통해 남에서 북으로 갈 때였다. 안내자가 청바지를 입지 말라고 했다. 북한은 청바지를 ‘미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올 때 우리 일행의 반 이상은 청바지 차림이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북한사람은 뭔가 세뇌당하고 로봇처럼 산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한·중·일 3국인들이 모두 피스보트에 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교과서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한국·중국에 대해 “냉정하게 대화로 해결하자.”고 말하는데 ‘맞은 사람’은 화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때린 사람이 대화로 풀자고 하면 말이 안 된다. 왜 화가 났는지 물어보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한국 내에서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를 똑같이 놓고 비교할 수 없다. 일본은 과거 침략과 지배를 미화하는 민족주의이고 한국은 이에 저항하고 해방운동을 벌여온 민족주의다.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이미 한국은 많이 변했다. 인권이나 민주화 수준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과하다거나, 걱정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송승재 재일코리안청년연합 대표 “일본에서 살아가야 할 재일한인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한국 정부와 사회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강력히 대처해야 합니다.” 심포지엄에 참가한 송승재(31) 재일코리안청년연합(KEY) 대표는 조국의 도움을 강력히 요청했다.KEY는 재일한인 3∼4세들의 모임. 그들이 느끼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심각성은 국내에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왜일까.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식민지시대를 합리화한다는 것은 곧 재일한인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재일한인들은 식민지시대였기 때문에 일본에 건너간 우리 동포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과거의 잘못을 빼거나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교과서로 공부한 아이들이 자라나면 우리 재일한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한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큰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류열풍에 힘입어 재일한인들의 입장이 조금 나아진 측면도 있지 않을까.“일본의 미디어들은 ‘욘사마’를 한번 비추고는 일장기 불태우는 한국·중국의 집회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일본인들은 ‘일본은 아시아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다른 나라는 그러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혹여 재일한인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는지 물었다.“아직 공식적으로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과서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혀지는데 길게 보면 교과서에 반영된 인식이 전체적인 사회의 인식을 바꿔놓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KEY는 역사교과서 채택률을 떨어뜨리는데 온 힘을 다 모을 예정이다.“8월 말쯤 각급 교육위원회와 학교의 채택결과가 나온다지만 실질적으로는 7월 초·중순쯤에 이미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를 대비해 일본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후소샤교과서의 내용과 본질을 알리는 작업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후소샤교과서 어떻게 막나 이제 7∼8월이면 일본의 각급 교육위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선택을 결정한다. 가장 왜곡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후소샤 교과서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일본 우익은 채택률 10%를 목표로 내세웠다. 물론 한국과 중국은 채택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와 중국의 사회과학원, 일본의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이 9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 모여 ‘동북아 평화와 역사갈등, 해결을 위한 모색’이라는 이름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후소샤 교과서를 어떵게 막을 것인가,‘마지막 전략’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먼저 하종문 한신대 교수, 변슈위에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 교과서 네트21’ 사무국장이 한·중·일 3국의 상황을 발표했다. 이들은 후소샤 교과서의 역사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 교과서로 인해 다른 교과서들까지 우경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견을 모았다. 동시에 지난달 한·중·일 공동으로 출간한 ‘미래를 여는 역사’에 대해 “공통의 역사인식을 위한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 뒤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특히 요시후미 사무국장은 ▲후소샤 교과서에 대한 학습회를 개최하고 ▲교과서 순회 전시회를 여는 한편 ▲각급 시민단체와 지자체간의 연대를 튼튼히 한다는,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제시했다. 오후에는 한·중·일 3국 각 지역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여기서는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하고, 후소샤 교과서 채택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본내 활동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교육과 자치 사이타마 네트워크’는 후소샤 교과서를 감수한 사람이 교과서 채택권한을 가진 교육위원회의 위원으로 부임한 상황을 강력히 비판했다.7월10일 이 교육위원의 파면을 요구하는 심포지엄을 열 예정이고 여기에 한국측의 적극적인 참가를 요청했다. 류큐대 다카시마 노부요시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방식을 소개했다. 알려진 대로 역사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는 선입관없이 공정한 심사를 위해 철저히 교과서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후소샤는 미리 검정신청본을 유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유출과 동시에 각급 교육위원회 등에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하라고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노부요시 교수는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 낸 신고서를 통해 “교과서는 교육적 상품이고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불공정한 거래방식은 절대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과서를 용서하지 않는 시민네트워크 후쿠오카’는 교육위원회 위원장에게 “21세기를 함께 살아갈 이웃나라와의 우호관계를 구축해나가기 위한 교과서인지 아닌지가 교과서 선정의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참가자들은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든 지속적이고 끈질긴 감시와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정감록은 조선후기 한국에 전파된 천주교와도 만났다? 서쪽에서 들어온 새 학문이라 당시엔 서학(西學)으로 불린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에 관심을 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는 쌍방향 교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에 담긴 ‘해도진인(海島眞人)’이란 관념을 빌려갔다. 또한 ‘정감록’처럼 편년체 예언서 형식을 차용해서 ‘니벽전’이란 천주교신자들만의 예언서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정감록 신앙집단은 ‘요한계시록’에 보이는 말세관에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했다. 얼핏 생각하면 서로 대립적이었을 것만 같은 정감록 신앙과 천주교 신앙 사이에 양방향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거리가 될 만하다. 알다시피 18∼19세기 한국의 천주교는 일종의 비밀 종교단체였다. 정감록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천주교회에 호응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민중이었다. 정감록의 경우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양자는 저마다 종교 철학적 출발점은 달랐지만 신앙집단으로서 사회적 구성이 엇비슷했고, 그들이 처한 정치 문화적 배경도 같았다.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조선 후기 천주교와 정감록 신앙은 이를테면 이란성(二卵性) 쌍생아와도 같았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해도진인(海島眞人)으로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때 정감록과 서학의 미묘한 관계를 증명하는 사건 하나가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청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정감록에서 말하는 해도진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단 이야기다. 알고 보면 이미 1794년부터 주문모 신부는 국내에 잠입해 전교활동을 벌였다. 그 당시 국왕 정조는 천주교를 그다지 심하게 탄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세는 나날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제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유교 국가인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이를 국가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였다. 1801년 정월, 정조가 세상을 뜨고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올랐다. 섭정을 맡은 정순대비(貞純大妃)는 지배층의 정서를 대변하듯 천주교를 엄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소동을 겪은 끝에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명가량이 유배되었다. 그 중에는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 지도급 천주교 신자들 및 진보적인 학자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사실 신유박해는 천주교세의 팽창에 불안을 느낀 지배층의 종교탄압인 동시에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의 일부이기도 하였다. 신유박해에 관한 ‘실록’ 기사를 살펴보면 문제의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그 대강을 간추려 보겠다. 당시 체포된 사람 중에 김건순이란 서울 양반이 있었다. 그는 집안도 좋고 재산도 많아 어느 모로나 부족함이 없었는데도 방술(方術)에 관한 책들을 유독 좋아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그는 이를테면 정감록과 같은 비결이나 도술에 관한 책을 늘 끼고 살았다. 자연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 중엔 천주교 신자들도 끼어 있었다. 신자들의 소개로 그는 주문모 신부를 만났다. 김건순의 눈에는 주문모 신부가 도사 중에서도 출중한 ‘이인(異人)’으로 비쳤다. 늘 주문모를 성심껏 모시던 김건순은 주문모에게 함께 해도(海島)로 들어가자고 간청했다. 섬에 들어가서 무기를 마련하고 큰배(巨艦)를 만들어 중국으로 쳐들어가자고 했다. 병자호란 등 청나라로부터 받은 원한을 씻어보자는 것이었다. 장차 진인이 해도에서 나와 세상을 평정한다는 정감록의 내용에 공명했던 김건순은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문모는 이를 거절했다. 김건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주문모에 대한 그의 기대는 사그라지지 않아 결국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당시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 김건순은 지적 수준으로나 재력 면에서 최상위층에 속했다. 그런 그조차 해도에서 진인이 나와 세상을 바꾼다는 정감록의 예언에 매달려, 주문모를 진인으로 상정해 거사를 꿈꾸었던 것이다. 조선의 관헌 앞에서 털어놓은 말로는 장차 청나라를 공격할 생각이었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을지는 의문이다. 하필 가까운 조선을 놔두고 머나먼 청나라까지 쳐들어간다는 것이 애당초 어불성설이다. 역시 천주교 신자였던 김이백의 언사는 더욱 심했다. 그는 서울 사는 친척 김건순과 천안 사는 천주교 신자 강이천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편지를 전해주곤 했는데, 정감록 풍의 예언을 많이 지어냈다. 예컨대 “바다 가운데 품(品) 자 모양의 섬이 있는데, 그곳에는 군사와 말(兵馬)이 무척 날래다.”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한다.“바다 가운데 진인(眞人)이 있다. 진인은 육임(六壬)과 둔갑(遁甲) 즉, 점과 도술에 능하다.” 당국의 조사 결과, 강이천과 김이백은 그런 예언을 이용해 남의 재물을 빼앗으려 한 적도 있었다. 달리 말해, 자기들이 섬에 있는 진인의 군대와 잘 통하므로 미리 군자금을 제공하면 장차 좋은 수가 생긴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강이천이라면 꽤 유명한 선비였다. 일찍이 진사 시험에도 합격한 적이 있는 지식인인데, 그 또한 정감록의 내용과 논리를 빌려 포교의 기회를 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강이천 등은 정감록 비결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단 점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천주교를 전교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니벽전’,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의 예언서 19세기 중엽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을 모방해 일종의 신앙 비결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이벽선생몽회록(李檗先生夢會錄)’이란 이름의 필사본이 문제의 비결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알려주는 책이란 뜻에서 ‘새벽젼’이라 부르기도 하고, 예언자의 이름을 따라 ‘니벽전’이라고도 한다. 알다시피 정감록은 예언자 정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책이름이다.‘니벽전’은 천주교 신자 정학술이란 선비가 천주교 초기의 거물인 이벽(1754-1786)을 사후 60년만인 1846년 6월 14일 밤 꿈에서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대화체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대화체란 점에서도 정감록을 연상시킨다. 비결에 예언자로 등장하는 이벽은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거물급 지도자였다. 그는 1784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은 뒤 서울의 수표교 부근에 셋집을 빌려 천주교 교리 연구와 묵상에 전념하였다. 교리를 깊이 이해하게 된 그는 전도에 앞장서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형제들과 서울의 중인층인 김범우, 최창현, 최인길, 김종교 등에게도 천주교를 전했다. 당대의 석학 이가환, 이기양 등과 교리논쟁을 벌어졌을 때도 그들을 압도할 만큼 교리에 능통하였다. 이벽의 천주교 이해는 ‘성교요지(聖敎要旨)’란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마테오 리치를 비롯해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하느님 을 천주(天主)나 천제(天帝)라고 불렀던 것과는 달리 상제(上帝) 또는 상주(上主)라고 불렀다.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울러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 유교적 윤리가 천주교의 교리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이벽이 그리던 하느님 나라는 유교에서 말하는 고대의 성인(聖人), 성군(聖君)의 정치와 일치했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하늘의 본성(天命)을 탐구해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룩하는 데 신앙의 목적을 두었다. 이벽의 천주교는 다분히 유교적 천주교였다. 그는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쓴 정약종(丁若鍾·1760-1801)과 더불어 18세기 조선후기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였다. 공교롭게도 ‘니벽전’은 이벽을 예언자로, 정약종을 저자로 설정해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 정약종이 “정유년(1777년·정조1)”에 기록했다고 적혀 있는 관계로, 사람들은 이 책을 정약종이 지은 종교 소설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조사한 바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1801년 신유박해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정약종이 어떻게 1846년 정학술이란 사람의 꿈속 일을 기록할 수가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약종을 저자로 가탁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로 말하면 의금부에 잡혀 가서 심문을 받을 때 “나라에 큰 원수가 있으니 바로 임금이요, 가정에 큰 원수가 있으니 바로 아비다(國有大仇君也 家有大仇父也).”라고 하여, 유교적 사회질서를 한마디로 질타했다. 더욱이 그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다 죽은 사람이므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위대한 신앙의 모범이었다. ‘니벽전’은 이와 같은 사람의 붓을 빌려 천상선인(天上仙人) 이벽이 천주교 신앙에 관한 말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소재를 훑어보면, 우주창조의 원리, 낙원추방과 예수의 구원, 유·불·도의 황당함, 조상제사와 우상숭배의 잘못된 점, 신유옥사와 천주교의 마지막 승리, 하느님의 최후심판이 거론된다. 그런 다음 이벽은 정학술에게 천주밀험기(天主密驗記)를 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책의 목적은 천주교도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는 이벽 같은 인물을 내세워 천주교 박해사건을 예언함으로써, 온갖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이 신앙을 더욱 강화하도록 고무 격려하는 데 있었다. 책은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반드시 알아야 될 교리에 대한 설명이다. 둘째, 하느님과 예수를 굳게 믿고 끝까지 제사를 거부하라는 교회의 명령이다. 셋째, 한국천주교회에 닥친 박해와 환란은 미리 예정된 것이지만 이제 곧 끝난다고 예언한다. 신유박해를 비롯해 19세기 전반의 숱한 박해사건을 연대기식으로 적어나가는데, 기록방식이 편년체란 점에서 정감록을 완전히 닮았다. 참고로, 이벽의 입에서 떨어진 마지막 예언은 이러했다.“병오 이후로 다음 세상이 되어 죄 있는 자는 모두 멸망하며 착하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어갈 때가 오느니라.” 여기서 병오년은 1846년을 가리킨다. 이 예언에 따르면,19세기 중엽 세상은 종말을 맞이해 최후의 심판이 열린다. 죄지은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고, 착한 천주교 신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를테면 지상천국이 열릴 거라고 했다. 이런 천주교 신자들의 예언에서 나는 19세기말에 등장한 동학의 ‘후천개벽설(後天開闢說)’과 비슷한 인상을 받는다. 동학에서도 새 세상이 열리면 동학의 가르침대로 수련을 쌓은 군자(君子)들이 지상천국을 맡아 다스린다고 보았다. ●정감록에 스며든 ‘요한 계시록’ 물론 동학을 설립한 최제우가 말한 후천(後天)의 개념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중국 고대부터 있었고, 우리 역사에서도 이미 고려 인종 때 선천과 후천이 곧 바뀔 거라는 예언이 나오기도 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동학과 고대 중국의 후천관은 차이가 있다. 동양 고대의 선·후천 교대설과는 달리 동학에는 ‘최후의 심판’이란 요소가 감지된다. 이 ‘심판’이란 것은 다분히 기독교적인 것이다. 그래서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전기에 등장한 예언서에도 아직 찾아볼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럼 ‘정감록’은? 내가 보기에 조선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에는 ‘심판’을 연상시키는 구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감결’에서 이심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돼 있다.“세 사람이 마주하였으니 못할 말이 어디 있겠나. 신년(申年) 봄 삼월, 성세(聖歲) 가을 팔월에 인천(仁川)과 부평(富平) 사이에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하고, 안성(安城)과 죽산(竹山)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여주(驪州)와 광주(廣州) 사이에 인적이 영영 끊어지고, 수성(隨城)과 당성(唐城) 사이에 피가 흘러 내를 이루고, 한강 남쪽 백리에 닭·개의 소리가 없고, 인적이 영영 끊어질 것이다.” 이번의 신문연재에서 이미 한 두 차례 언급한 구절이라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세에 전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메시지는 다시 강조할 만하다. 이와 같은 비극적 종말은 ‘요한계시록’을 뇌리에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정감록의 저자가 반드시 천주교 신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17세기 이후 한국사회는 직접 간접으로 천주교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었다는 점을 우선 인정해야 하겠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는 비록 소수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존재했다. 더욱이 중국에는 서양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다.18세기 후반엔 한국에도 천주교회가 지하조직으로 운영되었다. 그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후심판’과 같은 천주교의 기본교리라든가 몇몇 유명한 성경구절은 한국사회에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설사 명확한 증거를 댈 순 없을지라도, 천주교가 정감록이란 민중의 신앙에 끼친 영향은 적어도 논리적인 면에선 개연성이 인정돼야 한다. 요한 계시록이 상정하는 말세의 비참한 모습은 정감록의 여러 곳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감록의 일부라 할 ‘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에도 최후의 상황이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살아 있는 백성들이 달아나 숨으니, 삼강(三綱)이 없어져 끊어졌네. 하늘의 재앙이 계속하여 혹독하니, 벌레의 독을 무엇이라 말하리. 부자가 먼저 죽으니, 아무리 뉘우쳐도 미치지 못하리. 우물 가운데 물이 연하여, 자미(紫微)에 저녁 무지개가 떴네. 다시 들러서 동쪽으로 나뉘니, 나라에 변괴가 있고, 상사가 참혹하네. 남쪽과 북쪽 군사의 조짐이 불과 같이 점점 번져오네. 집 위의 토운(土運)이 하늘의 재앙에 때로 변하네. 옛날에도 드물고 오늘날에는 없는 일, 굶주려서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어, 저마다 서로 짓밟고 있네. 사람의 목숨을 해치니, 산 자가 몇이나 되리. 또 겸해서 흉년이 들어, 쌓인 시체가 구렁을 메우네. 벼락같은 화운(火運)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네. 먼 방향에서 움직여 화서, 바람과 구름이 어두우니 장차 다시 어찌한단 말인가.” 이처럼 정감록은 ‘최후의 심판’이 행해질 때, 그것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보았다. 전염병, 흉년, 전쟁은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점은 ‘요한계시록’을 비롯해 신약과 구약의 경우에도 똑같다. 한 가지 나로선 무척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정감록에 보이는 말세의 모습이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불교적 세계관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현재도 도솔천에서 수행 중이라고 전하는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내려와 건설할 용화세계(龍華世界)는 피를 흘리는 전쟁 따위를 전제로 삼지 않는다. 불교의 이상향인 용화세계를 선도할 전륜성왕은 절대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모든 적의 항복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정감록이 기술한 참혹한 말세는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 다분히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이다. 좀더 생각해 보면 문화란 결국 상이한 계층, 종교, 언어권의 소통으로 풍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만남은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고, 바로 그런 만남이 있었기에 한국 민중의 문화는 좀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해야겠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독자의 소리] 원자력발전 활성화해야/박희철

    원유 값이 오를 때마다 정유회사들은 자동차에 넣는 휘발유와 경유 값을 올려 받고 있으며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만약 원유 값이 오를 때마다 전기요금을 올려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정책당국자들은 빗발치는 수용가의 비난에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전은 ‘2015년 중장기전략경영계획’에서 원가연동 요금체제를 도입하여 유연탄·석유 등 발전연료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을 따라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는 지난해 유연탄 수입비용이 전년대비 약 66%나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매장량이 유한한 화석연료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며,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온실가스 발생의 부담도 경시할 수 없다. 따라서 그간 막연한 불안감과 혐오의 대상이 돼 온 저비용·친환경 원자력발전의 가치가 뒤늦게나마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1997년에 합의한 이후 7년 만에 교토의정서가 발효된다. 교토의정서는 폭서, 가뭄, 태풍, 홍수 등 기후 재앙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기 위한 협약이다.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이산화탄소로서 주로 화석연료의 연소시 배출된다. 우리나라는 2013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8년 전(1995년)의 95%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2013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올해 배출량의 70% 수준이 되도록 맞춰야 하고 이 경우 한전은 우리나라 6대 도시가 한 해 동안 소비하는 만큼의 화력 발전을 줄여야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산자부와 전력회사들은 신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풍력, 조력, 태양력 등 대체에너지들은 아직 전기 생산원가 면에서 실용적이지 못하다.2004년 말 기준으로 풍력은 원자력발전 원가의 3배, 태양광은 21배에 달한다. 이것은 장래에 화석연료를 대신하여 신 재생에너지를 쓸 경우 훨씬 많은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정을 볼 때 사실상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원자력발전의 활성화가 아닌가 한다. 원자력발전은 온실가스의 배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안보에도 유리한 준 국산에너지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나 필수시설인 수거물 관리센터 건립에 있어서는 소모적인 논란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유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환경규제는 우리의 목을 옥죄고 있는데 국내의 몇 안 되는 환경론자들은 원자력발전 폐지를 주장하고 있어 안타깝다. 다행히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수거물 관리센터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는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 에너지 현실을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운 생각이 든다. 부디 지역적, 국민적 합의를 거쳐 지역과 국가가 공생, 발전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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