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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국민의 정신건강

    일본의 재앙에 놀랍니다. 우리와는 수많은 역사적 관계로 얽힌 그들의 비극이 가슴 아픕니다. 특히나 그 비극이 언제든 우리의 비극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일본의 비극에 많은 한국인들이 마음 아파합니다. 언론은 그들이 미증유의 재난을 맞아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처한다며 급기야 ‘민족성’과 ‘국민성’까지 칭송합니다. 그런 뉴스를 접하며 제 가치판단의 기준이 헷갈립니다. ‘그들이 정말 남에게 폐끼치기를 싫어할까. 한 면만을 보고 너무 쉽게 ‘민족성’을 말하는 건 아니며, 과거 ‘이코노믹 애니멀’로 불렸던 그들의 모습은 허상일까.’, ‘또다시 재일한국인 인권문제나, 독도·과거사 문제가 터질 때 우리는 그처럼 경우 바르고, 침착하고, 질서를 존중하는 그들을 상대로 패악을 떨고, 강짜나 부리는 우스운 민족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많아집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우월적이어서 반인륜적 폭력까지 주저없이 행사한 종래 일본의 면모를 기억하며 혼란을 느낍니다. 그들이 어려움 앞에서 보인 질서의식에 존경의 염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라기엔 우리가 지금껏 체득해 온 경험이 너무 쓰라립니다. 우리 기억 속의 일본은 질서정연하게 폭력적이었고, 평화적으로 무질서했으며, 양심적으로 부도덕했고. 열렬하게 냉정했으니까요. 저 역시 반일의 세뇌에 포획된 사람일 수 있지만 암튼 우리에게 일본은 그렇습니다. 그런 마당에 언론이 ‘일본의 탁월한 민족성’을 말하니 마치 식민사관과 민족개조론의 도그마에 다시 갇힌 느낌입니다. 딱히 일본을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고통을 잊지도 않습니다. 그래선지 요즘 언론의 ‘참을 수 없도록 가벼운’ 현상 진단이 마뜩찮습니다. 이웃에 대한 우정도 아니고, 인간애는 더더욱 아닌 그런 얼치기 보도가 국민의 정신건강에 가할 위해가 걱정스러운 나날입니다. jeshim@seoul.co.kr
  • 2012년 ‘마야 지구종말설’로 멕시코는 지금…

    2012년 ‘마야 지구종말설’로 멕시코는 지금…

    ”2012년에 지구종말? 현장에서 확인하세요~” 2012년에 지구에 종말이 온다는 예언은 사실일까? 먀야문명이 2012년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는 예언을 했다는 말이 돌고 있는 가운데 중미 멕시코가 종말론을 이용해 외화벌이에 나선다. 글로리아 게바라 멕시코 관광청장은 최근 “내년 12월 21일은 반드시 달력에 표시해야 할 날짜” 라면서 “그날엔 반드시 멕시코를 방문하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소문대로 2012년에 세계가 종말을 맞는지 마야문명의 땅(멕시코)에서 직접 확인하라는 것이다. 2012년 12월 21일은 마야의 달력에 표시된 마지막 날이다. 마야문명이 더 이상 날짜를 적어넣지 않은 건 이날 종말이 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마야의 종말 예언설’이 나왔다. 종말이 온다는 2012년이 가까워오면서 종말론에 대한 관심은 부쩍 커져 멕시코 관광청에 따르면 마야의 종말예언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는 현재 세계적으로 300만 개가 개설돼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근거 없는 소문이다. 멕시코 언론은 “마야문명이 남긴 텍스트 1만5000여 개 어느 곳에도 2012년에 대재앙이 발생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은 없다.”면서 “2012년 종말론이 등장한 건 1970년대”라고 보도했다. 헛소문이 유용한(?) 마케팅 재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중남미에선 종말론 마케팅으로 짭짤한 관광수입을 기대하는 나라가 많다. 멕시코에 앞서 온두라스공화국는 지난 1월 ”2012년을 코판(마야유적지)의 해로 선언하겠다.”고 밝히고 벌써부터 외국인관광객 유치에 골몰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中 진짜 ‘노아의 방주’ 비밀리에 건조중?

    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현실에서도 나올까. 일본 동북부를 휩쓴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의 공포로 전 세계가 전율한 가운데 지구 대재앙에 쓰일 ‘노아의 방주’가 중국에서 예약을 시작했다는 루머가 퍼져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에는 중국 정부가 ‘노아의 방주’를 본뜬 선박을 티베트에서 비밀리에 건조 중이며 상류층 사이에서 표가 거래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랐다. 글쓴이는 자신이 현대판 ‘노아의 방주’ 제작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해당 선박티켓의 사진도 함께 공개해 논란을 부추겼다.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내년 4~5월 첫 항해를 시작하는 이 배 티켓 한 장의 가격은 100만 위안(1억 7000만원). 서민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으로, 상류층에 타깃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뜨거운 논란을 야기했지만 진위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글이 지난해 6월에 올랐기 때문에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많은 이들이 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잇따른 자연재해로 인한 불안감이 이런 루머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상하이 대학 장 지아이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과 중국에서 벌어진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의 공포로 근거 없는 음모론과 루머가 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네덜란드에서 지난해 이미 만들어졌다. 회사원 요한 후버스가 노아의 방주를 본떠 67.6m길이, 3층 높이로 완성한 뒤 유럽 주요항구를 방문한 바 있으나, 이는 제 2의 홍수를 대비가 아닌 종교적 경험을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도쿄 프리즘] 때늦은 현장방문 간 총리… 흔들리는 日 리더십

    [도쿄 프리즘] 때늦은 현장방문 간 총리… 흔들리는 日 리더십

    2003년 야당 시절의 민주당 대표였던 간 나오토 총리를 단독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다. 당시만 해도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가 굳건했다. 정권교체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결코 여당을 꿈꾸지 못할 만년 야당의 당 대표, 솔직히 그에게 품고 있던 이미지였다. 돌파하고 싸우며,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서는 YS, DJ로 대표되는 한국의 야당 당수 같은 투쟁력이 결핍된 모습. 인터뷰 내내 든 인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세월이 흘러 총리의 자리에 오른 그는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패전 이후 일본 최대의 위기다. 국난 극복의 과제가 던져졌다.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생명도 걸렸다. 그런데 신속하고 정교하고 일사불란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서방 언론들은 리더십의 실종이라며 야유를 보내고 있다. 뭘 하는지 궁금했던 간 총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지진 발생 열하루 만인 21일 재해지역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20 km 인근 지역을 시찰한다고 한다. 2003년의 정치 파트너 고이즈미가 지금 총리였다면 대재앙 발생 직후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우리는 국난을 이겨낼 수 있다.”고 외쳤을 것이란 상상을 해 본다. 잃어버린 20년, 오랜 경기침체 속에 일본은 생기를 잃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 가야마 리카는 월간지 문예춘추에서 일본을 ‘우울증에 걸린 나라’라고 표현했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대재앙이다. 세계가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1945년 패전 후 19년 만에 경제부흥을 이루고 도쿄올림픽을 치른 저력의 열도, 일본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점쳐보고 있다.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퍼즐을 풀 실마리가 있다. 민영방송인 후지TV가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일본은 부흥할 수 있을까’라는 설문에 일본인의 94.6%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놀랍다. 끔찍한 재앙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본인의 희망에 총리는 어떻게 화답했던가. 국민 앞에 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총리. 원전을 둘러싼 일본 국민과 전세계의 공포와 불안에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총리. 열하루 만에 현장에 가는 총리다.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일본이라 총리의 역할이 크지 않다고 하지만 절체절명의 시대, 리더십은 국민을 희망의 길로 이끄는 중요한 길잡이다. 오죽하면 대지진 전 24%대였던 지지율이 20일 현재 35%까지 올라갔을까. 일본은 총리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하면 수명이 끝난 것으로 간주한다. 인정사정없이 무대에서 끌어내린다. 그런 그가 대지진 후 지지율이 올랐다. 국난 극복 과정에 총리를 바꾸는 혼란보다는 밉지만 맡겨보자는 뜻일 것이다. 1995년의 고베 대지진 때 오자토 사다토시 방재대신이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직접 지휘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이 재해규모가 훨씬 큰 데도 현장에 내려가 책임을 다하는 각료는 한명도 없다. 용인(用人)이 잘못이라는 지적이 들린다. 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과 출신에 변리사 자격을 지닌 간 총리는 늘 ‘기술자’라는 낙인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원전과 시버트(방사선량 단위)에만 신경 쓴다는 비아냥도 있다. 우울증에 걸린 일본이 대재앙을 계기로 침체를 딛고 활기를 되찾을지는 일본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으는 데 달렸다. 하지만 그 힘과 지혜를 모으는 구심점은 역시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점을 역사는 말한다. 재해지역 시찰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 궁금하다. marry04@seoul.co.kr
  • 트라우마에 빠진 동심… 지진·화재놀이로 악몽과 ‘사투’

    “지진이다. 도망쳐!” 땅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애써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혼비백산한다. 나무 아래, 바위 뒤로 숨었던 아이들은 잠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터벅터벅 걸어 다시 모여든다. 일본 현지언론들이 18일 전한 도호쿠 지역 대피소의 풍경이다. 언론은 대지진이 강타한 이곳에서 ‘집단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상태에 빠진 아이들이 ‘지진놀이’, ‘화재놀이’ 등 강진 당시 상황을 재연하며 스스로 상처를 꿰매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이러한 상황극은 ‘놀이’라기보다는 ‘사투’에 가깝다. 극한의 공포를 맛본 어린이들이 놀이로 상황을 포장해 긴장과 불안을 풀어내려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심리학)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두려웠던 실제를 가상으로 전환해 상황의 진지함을 희석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자연재해나 전쟁 등 두려움의 대상을 놀이의 소재로 삼는 건 흔한 현상이다. 어릴수록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적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까닭이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소아정신과)는 “회오리 피해가 잦은 미국 미시시피 지역 아이들이 ‘토네이도 놀이’를 하기도 한다.”면서 “의사소통에 서툰 아이들은 놀이로 곧잘 감정을 표현하곤 한다.”고 말했다. 누구도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피소의 어린이 10만여명 가운데 특히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들이 많아 2차 충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트라우마에 대상상실(사랑하는 사람을 잃게되는 현상)이 겹치면 아이들의 심리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커먼 파도에 아끼던 장난감과 애완견은 물론 가족까지 빼앗겨 버린 아이들은 대피소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구토와 고열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또 피해지역 밖의 아이들도 대지진 이후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일이 잦다. 도쿄와 오사카 등에 사는 부모들은 “지진 이후 아이가 잠을 자던 중 오줌을 싸거나 불안해 한다.”는 글을 수없이 올리고 있다. 일본의 한 발달심리학 전문가는 주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수시로 지진을 경험하는 탓에 브라운관을 통해 본 대지진 장면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방사능 유출 우려가 커지는데 부모들은 오히려 구체적인 설명을 꺼려 막연한 공포를 느끼는 청소년들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방사능 유출과 추위, 식량난 등 당장 급한 문제해결에만 몰두한 채 상처받은 아이들의 심리치료 대책을 전혀 세우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는 트위터를 통해 “재앙적 심리상태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채 시간이 흐르면 이들은 ‘재앙적 경험’ 때문이 아니라 ‘성격상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주위로부터 인식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아동 성폭행의 경우처럼 심리적 상처를 받은 뒤 2차 피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치유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도쿄 리포트] 日정부의 은폐체질·언론의 비판실종이 재앙 키웠다

    일본이 지난해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주었다고 하지만 경제규모에서 세계 3위인 강국이다. 여전히 특허나 원천기술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지식기술 강국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 사태 수습에 고전하고 있다지만 강국 일본의 위상을 당장 의심하는 나라는 없다. 지진 초기 남을 먼저 배려하고, 침착하게 정부 지시에 따라 대재앙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세계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기록의 민족 일본인은 집요하고, 반드시 과거에서 배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대지진·방사능 유출 사태 이후를 생각하자는 흐름도 형성되고 있다. 물론 지진 발생 일주일이 흐른 18일 현재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비판의 소리가 나오면서도 일본 사회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일본 사회의 은폐 체질을 개선하자는 지적도 많다.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는 18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관해 “정부와 도쿄전력이 올바른 정보를 신속히 공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에 만연한 은폐 체질에 대한 반성이다. 실제 일본 정부가 신중을 넘어서 과잉 보안을 하면서 원전사고 관련 정보가 부족하고, 이것이 억측으로 연결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원전 정보를 즉각 정확히 알려 달라.”고 하는 등 국제사회도 일본 정부의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외국에 공개하기 어려운 은밀한 프로젝트가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돼 있어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협조 제의에 응하지 않는다는 관측도 나온다. 플루토늄 연구와 연관시키려는 지적이지만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미국 등과 초기에 협력에 응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격과 관련된 측면이 있다. 세계최고 원자력 기술을 자랑하는데 외국에 의지하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면서 “여러 나라 기술진이 다른 해법을 제시하면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우려가 있는 점도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위기관리 능력 향상을 위한 극단적 의견까지도 나오고 있다. 중립적인 지식인들마저 “한국이나 미국 같은 군대가 없기 때문에 위기관리 능력이 약하다.”면서 “자위대 위상의 전면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사회전체의 위기관리 능력이 한 단계 오를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으로 연결될 수 있고, 헌법개정이 필요해 아직 소수지만 대지진을 계기로 세력을 얻으려 해 주목된다. 언론의 비판 기능이 부족하다는 점도 새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지난 12일 언론사에 헬기를 이용한 피해 현장 촬영 자제 및 보도 협조를 공개 요청하자 언론이 이를 받아들여 비판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문·방송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국민들의 동요를 우려, 사람이 쓰나미(지진해일)에 휩쓸려 가는 장면 등의 보도자제를 원하자 언론들이 알아서 정확한 피해상황을 알리지 않아 상황의 심각성이 은폐됐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일부 언론학자들은 일본 주요 신문들이 모두 민영방송을 갖고 있어 정부의 협조가 절대적인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언론이 정부에 저자세일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 한 일본 언론의 정부 견제와 비판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한다. 물론 일본 언론은 발행부수나 질적인 면에서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시각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찌됐든 대지진은 은폐 체질 개선과 언론의 비판 기능 강화 필요성을 사회적 화두로 부각시켰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런 지적에 펄쩍 뛰고 있지만 “지진이나 방사능 유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들이 정부나 언론을 불신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엄연하다. 향후 사회적 토론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로부터 물밀듯이 밀려오는 응원을 업고 일본이 재기할까. 사상 최대의 거대지진과 동시에 터진 원전 방사능 유출이라는 겹시련에 처한 일본이 저력을 발휘해 상황을 돌파할지 세계의 시선이 열도에 집중되고 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서울광장] 그들인들 어찌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까/박홍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들인들 어찌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까/박홍기 논설위원

    일본엔 ‘마음으론 울면서 얼굴로는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되도록이면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내가 울면 나보다 더 큰 불행을 당한 이에게 폐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메이와쿠(迷惑·폐) 방지 문화이다.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등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 그리고 원자력발전소 폭발과 방사능 공포 속에서 보여준 일본 국민의 침착성과 차분함은 세계인들에게 진한 울림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죽음의 사신 같은 시꺼먼 파도에 사랑하는 자식을, 부모를, 이웃을, 정든 집을 잃은 그들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대재앙에 항상 신경쓰고 경계하고 대비해 왔건만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제대로 손을 쓸 틈조차 없었다. 아름답고 평온하던 동북부 해안은 더 이상 아름답지도, 평온하지도 않다. 숲의 도시로 불리던 센다이는 질퍽질퍽한 개흙과 건물 잔해더미에 덮였다. 처참한 광경이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확인된 희생자만 1만명이 넘고 이재민도 40만명 이상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재난이다. 리히터 규모 9라는 수치보다 훨씬 큰 시련에 맞닥뜨렸다. 하지만 흔들림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인들 가슴이 미어지지 않겠는가. 화가 안 나고, 분노가 일지 않겠는가. 자연 재앙보다 공포스러운 방사능의 위협에 피난을 떠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삶의 터를 지켜줘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정부, 갈팡질팡하는 총리, 원전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도쿄전력에 부아가 치밀지 않겠는가. 방사능 대량 누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말이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원폭’으로 끔찍한 아픔을 겪은 그들이기에 더욱 무섭고 두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매뉴얼대로, 배운 대로 참고 견디며 행동하고 있다. 주먹밥 한개로 세끼를 때우고 종이박스를 깔고 모포 한장을 덮고 자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4㎞가량 줄을 서며 두세 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눈에 띌 만한 새치기도, 사재기도, 소란도, 약탈도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폐허를 헤매는 노부모, 시신 앞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 남편이 숨져 있을 부서진 집터에서 조용히 합장하는 여인…. 고통과 슬픔에 의연하게, 감정을 절제하는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최후까지 마이크를 붙잡고 “빨리 도망치세요.”라며 대피방송을 하다 쓰나미에 스러져간 25세의 말단 동사무소 직원, 언제 폭발할지 모를 원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퇴직 직전의 원전 직원에 대한 사연도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 디 이들뿐인가. 일본 방송도, 신문도 유난히 재난에는 흥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다. 1995년 고베대지진 때도 그랬다. 공영방송이자 재난방송인 NHK의 앵커, 기자와 아나운서들은 초유의 대재앙 앞에서 평소보다 차분한 어조로 피해 상황과 대피 요령, 피난처 정보, 구조활동 등을 상세히 전달했다.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섣부른 추측을 하지 않고 갈등과 불안을 부채질하거나 자극하지도 않았다. 유족들의 통곡 보도도 자제했다. 불필요한 제2, 제3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절망을 희망으로 함께 바꿔야 하는 재난 극복이 우선인 까닭이다. 문제는 우리다. 그들이 위기 때마다 결집, 연대하는 공동체 및 시민의식에 경탄만 할 게 아니라 ‘우리는 안전한가.’를 다시 묻고 챙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화(和·조화)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 재난대응 시스템의 산물임을 직시해야 한다. 거대한 자연의 힘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가 아닌,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라는 교훈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 국민의 행동에 대해 ‘인류정신의 진화’라고 평가했지만 그들도 속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고 있다. hkpark@seoul.co.kr
  • [열린세상] 일본의 위기극복을 위한 다자협력/조윤영 중앙대 국제정치학 교수

    [열린세상] 일본의 위기극복을 위한 다자협력/조윤영 중앙대 국제정치학 교수

    미증유의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문제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면서 일본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참혹한 인명피해와 천문학적 재산 손실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도로·항만·공항 등 기간시설이 마비되고 각 분야의 최첨단 공장들이 멈춰 섰다. 전기와 식수 공급이 중단되고 통신망은 두절되어 일본 동북부의 경제는 마비 상태다. 대지진 이후 여진이 지속되고 있고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 위험이 가중되면서 일본 열도 전역은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일본의 대재앙 앞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명과 재산 손실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자연 재난과 방사능 재앙이 일본에 국한된 게 아니라 모두에게 예상도 못한 때에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앙이 세계화된 국제사회에 연쇄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의 경제적 고통이 다른 국가에 기회로 분석되기도 하지만 세계 3대 제조업 국가의 생산 중단은 인접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는 상당기간 어려움을 주게 될 것이다. 20세기 국제정치의 큰 화두는 이데올로기와 전쟁이었다. 제국주의가 첨예화하고 이로 인한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국제사회는 겪어내야 했다. 그러나 20세기 역사의 종말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로 심판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현재 국제사회는 새로운 현상으로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국가 상호 간의 영향력이 그 어느 시기보다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화란 우리가 사는 지구촌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국가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지만 정보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가 가까워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지금은 세계화가 주는 기회의 가능성보다는 위기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준비할 시대이다. 경제가 더욱 상호의존하게 되면서 부의 창출을 증가시키는 기회인 동시에 최근 금융위기에서 보듯 한 국가의 불안정성이 다른 국가로 옮겨가는 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특히 21세기 들어 늘어나고 있는 대지진과 쓰나미 현상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일본 원전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이로 인한 방사능 노출 등에 따른 재난의 범위가 늘고 있다. 재난의 세계화 현상 속에서 국제체제를 관리하는 구조의 결핍성을 인정하고, 한 국가의 역량으로 재앙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 간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일본 대지진과 방사능의 공포로 인명의 손실이 1만명을 넘고 손실액도 수백조원이 될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한·일 협력은 중요하다. 일본의 경악할 만한 재앙과 시련 앞에서 한·일관계를 과거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관계, 가깝지만 먼 이웃이라는 과거의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 일본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지원을 정부는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는 일본을 향한 한국민들의 온정 또한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다양한 모금 행사를 보면 성원의 분위기가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전혀 원치 않는 위기지만, 이를 통해서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한 인식의 통합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상호 중요성을 인정하고 더욱 성숙한 협력적 동반자로 격상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적극적인 일본 지원을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 전통적 동맹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로 일본 위기에 대한 사후처리 방안과 향후 동아시아에서의 예방적 위기관리에 대한 협력체제 구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신흥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하고 새로운 한·중·일 다자협력의 실현을 일본의 위기극복 과정을 통해 구체화시킬 수도 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불확실성과 새로운 위기의 시대에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간호사 출신 소설가 정유정 새 장편 ‘7년의 밤’

    간호사 출신 소설가 정유정 새 장편 ‘7년의 밤’

    “그러니까 이게 전부 사실은 아니지요?” “사실이 전부는 아니야.” “그러니까 사실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는 소설의 초입부에서 ‘살인마의 아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묻는다. 사실이 진실이냐고. 그리고 소설 내내 침묵한다. 대신 어마어마하게 끔찍하면서 너무나도 불편한 얘기, 으스스하게 오래 가슴 졸여야 하는 서사(敍事)를 거침없이 풀어낸다. 그리고 소설의 끄트머리 즈음에서 스스로 대답한다.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냉소적 표현… ‘의도적 거리두기’ 그렇다.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한복판에 들어가 있어도 진실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수 년의 시간을 두고서 복판과 외곽을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할 뿐 아니라, 두려움 없이 바닷속 심연을 들여다보며 사실의 조각들을 꿰맞출 수 있는 자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리고 소설을 덮을 때쯤 그는 침묵으로 웅변한다. 진실을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고. 명백해 보이는 죽음과 죽임, 죄와 벌, 그리고 선과 악 등의 경계도 흐려질 수 있고, 진실과 사실이 갖고 있는 간극 만큼이나 서로 스치듯 교차하면서 공존하고 있을 뿐이라고. 2009년 세계문학상을 받은 ‘내 심장을 쏴라’ 이후 2년 동안 내내 웅크린 채 소설 쓰기에 몰두해온 정유정(45)이 장편소설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을 내놓았다. ‘7년의 밤’은 한 마을 주민들이 몰살당한 ‘세령호의 재앙’이라는 대참사를 저지른 살인마와 그의 아들 서원, 그리고 또 다른 미치광이 살인마와 그의 딸 세령이 끌고 가는 이야기다. 7년 전 그날 밤의 사건 이야기가 그날 이후 7년 동안의 이야기 속에 액자 소설 형태로 담겨진다. 열 두 살의 서원은 7년 동안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굴레 속에서 세상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쉼 없이 학교를 전전하다 결국 등대마을까지 떠밀려 온다. 그날 밤의 또 다른 증언자인 승환은 서원과 함께 지내며 그 시간 동안 사실의 틈바구니에 버려진 진실을 찾아 헤맨다. 병적 집착증을 보이는 또 다른 미치광이 살인마는 교통사고 뒤 목졸려 숨진 딸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비이성적인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그후 7년 동안 가슴 서늘한 복수를 준비한다. 정유정은 ‘7년’에서 격정적이면서도 탄탄한 문장과 짜임새 가득한 상황 설정으로 읽는 이들을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게 만들다가도 문득 중간중간 냉소적인 표현을 배치해 ‘의도적 거리두기’를 주문한다. 진실을 찾는 여정은 몰입만으로도, 관조만으로도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며 서둘러서도 더뎌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서사와 모든 인물들, 모든 사실 관계들은 7년 전 그날 밤의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거나 맹렬히 모여든다. 또한 발과 땀으로 쓰여진 소설이기도 하다. 작품 곳곳에 풀어헤쳐진 취재와 노력의 흔적들은 2년 전 ‘내 심장을 쏴라’에서 보여줬듯 정유정 소설이 갖는 소중한 미덕 중 하나다. ●죽음·복수… 인간 내면 치밀한 묘사 ‘7년’에서는 스쿠버다이버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려내는 심해 깊은 곳 풍경들이 마치 산소탱크를 짊어지고 직접 바다로 뛰어든 듯 생생히 눈앞에 펼쳐진다. 몰아치는 물의 흐름 속에서 느낄 법한 불안과 공포심의 미세한 변화까지 놓치지 않는다. 세령호와 세령댐, 그리고 등대마을이라는 정교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낸 뒤 나무 한 그루, 작은 둔덕 하나, 고양이 한 마리까지 촘촘히 배치하는 집요함도 보여준다. 정유정은 “스티븐 킹(미국 추리문학 대표작가)의 작품을 갖고 문장 공부를 했다”고 거리낌 없이 고백한다. 문예창작과 출신들이 잡고 있는 주류 문단에서 ‘간호사 출신 소설가’라는 이력 자체가 이미 독특하다. 스티븐 킹을 사숙(私淑)한 작가답게 죽음, 폭력, 복수, 애정 같은 격정 앞에 고스란히 내던져진 인간의 내면 심리를 치밀하게 따라가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은 채 잔인하리만치 덤덤히 풀어가는 솜씨는 전작(前作)을 뛰어넘는 성취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특파원 칼럼] 나카히로 이와타/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나카히로 이와타/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나카히로 이와타. 도쿄신문 워싱턴 특파원이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난 건 지난 9일이다. 워싱턴에 부임하기 전 도쿄신문 서울 특파원인 시로우치 야스노부가 “아주 유능한 특파원이 워싱턴에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전화번호를 적어줬었다. 나카히로와 나는 워싱턴 시내 ‘내셔널 프레스 빌딩’ 꼭대기층 라운지에서 만났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일본인 특유의 예절이 몸에 밴 중년 남성이었다. 우리는 일본어 악센트가 묻은 영어와 한국어 악센트가 담긴 영어로 인사를 나눴다. 임기가 6개월 남았다는 나카히로는 외국 기자로서 미국 정부를 취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정말 ‘처절하게’ 얻어냈다는 한 정부 관리의 연락처를 적어줬다. 일종의 ‘영업비밀’을 선뜻 공개한 셈이다. 그는 “연락처를 몇개 더 알고 있는데 지금은 갖고 있지 않다.”면서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를 표시하면서 커피값을 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인데요.”라면서 내 지갑을 따돌렸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컴퓨터를 켰을 때 놀랍게도 나카히로가 그새 보낸 이메일이 두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거기에는 그가 발로 뛰어 얻어낸 연락처들이 담겨 있었다. 나카히로가 그날 ‘패키지’로 베푼 친절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 룰로 따지자면 그는 나한테서 보답을 ‘테이크’할 기회가 앞으로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노하우를 나한테 ‘기브’한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 일본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문득 나카히로를 떠올렸다. 나는 이메일을 열어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카히로씨, 당신의 나라가 엄청난 재난을 당한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당신을 비롯한 일본 국민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일본 국민이 이 재난을 반드시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야 좀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인터넷에 들어가 보고 나는 나의 감정이 나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봇물 터진 한국인의 온정이 벌써 현해탄에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이런 현상이 이례적이라면서 구구한 분석을 시도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한국인이 지금 일본에 베풀고 있는 마음은, 관계의 특수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류의 보편적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두고 맹자(孟子)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정의한 이후 2000년이 지나도록 과학은 이 심리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분석해 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반사적으로 구하려 달려든다. 이는 그 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함도 아니며, 마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도 아니며, 원성을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라고 맹자가 지목한 바로 그 마음이 지금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마음인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한·일은 다시 독도와 과거사,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 혹여 우리가 ‘아낌없이 베풀었더니 결국 이렇게 보답하는군.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한테는 잘해주는 게 아니었어.’라고 섭섭해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고결한 측은지심을 절하(切下)하는 격이 된다. ‘이번 온정의 물결을 한·일 관계를 개선시키는 계기로 삼자.’는 얘기도 우리 입으로 할 말은 아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기브’하고 ‘테이크’를 바라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 사랑을 주고 나서 아예 잊어 버리는 국민의 품격은 얼마나 고매한가. 편지를 보낸 며칠 뒤 나카히로한테서 위로해줘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갑자기 터진 고국의 재앙에 슬퍼하랴, 기사 쓰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사태가 좀 수습되면 나카히로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해야겠다. carlos@seoul.co.kr
  • 병원·대피소서 환자 23명 사망 이재민 “脫동북” 오사카로 밀물

    병원·대피소서 환자 23명 사망 이재민 “脫동북” 오사카로 밀물

    우려대로였다. 방사능 유출 문제도 심각하지만, 당장 물·전기도 없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이로 인한 ‘2차 재앙’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특히 이재민 가운데에는 고령자가 많아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재민 중 고령자 많아 우려 고조 도쿄신문은 18일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령 환자 9명이 정전으로 인한 의료 장치 가동 중지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모두 70∼90대의 환자로 정전 사태로 가래 흡입장치가 멈추면서 폐렴이 악화돼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병원에는 약 140명의 입원 환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정기적으로 가래 흡입장치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여서 추가 희생이 우려된다. 후쿠시마현에서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피난소로 대피한 환자 14명이 사망했다. 이날 NHK는 “후쿠시마현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128명의 환자들을 이와키시의 고등학교로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2명이 숨지고, 피난소에서도 12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전날에는 리쿠젠타카타시의 피난소에서 생활하던 한 주민이 지진 쇼크와 스트레스, 피로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다. 이 주민은 피난소에서 생활하던 중 체력이 약해져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목숨을 잃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걱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나토시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인 야마구치 기요타의 말을 인용해 “아이들 상당수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지진 때문에 심적으로 무척 불안한 상태”라면서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리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오사카, 주택 2000호 제공키로 아예 지진이 발생한 동북 지방을 떠나는 이재민도 적지 않다. 일본 제2의 도시이자 간사이 지방의 관문인 오사카 지역에는 원전 방사능 공포를 피해 온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날 NHK 등 현지 언론은 간사이 공항과 신오사카역에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온 간토 지역 피난민과 해외 주재원들로 하루종일 붐비고 있다고 전했다. 오사카 시내 호텔들도 밀려드는 피난민들이 넘쳐나면서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또 한꺼번에 밀려드는 피난민들로 시내에서 거처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은 오사카에서 기차로 30~40분 거리인 인근 교토나 고베 등으로 행선지를 옮기고 있다. 오사카는 밀려드는 피난민 대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간토 지역 피난민들의 주거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지사는 지역 내에 ‘피난민대책팀’을 설치하는 한편 오사카에서 운영하는 주택 2000채를 일시적으로 피난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대재앙 넘은 한·일 지식인 우정… 그들의 아주 특별한 편지

    대재앙 넘은 한·일 지식인 우정… 그들의 아주 특별한 편지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거쳐 일본 도쿄대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근대 한·일 관계사. 이마니시 하지메는 일본 아오모리현 도호쿠 공업대학 교수다. 도호쿠 공대는 이번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센다이에 있다. 이마니시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구조역학과 지질구조 전문가다. 삼성물산 고문으로 있으면서 한국 건축물의 지질구조도 오래 연구했다. 이때 정 이사장과 친분을 쌓게 됐다. 2005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는 양국 최대 규모 교류행사인 한·일 축제한마당 운영위원장(2008년)도 맡았다. 창졸간에 덮친 대재앙 직후 두 사람이 황망히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국경과 지배·피지배 역사를 뛰어넘어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한·일 지식인의 우정과 인간애가 깃들어 있다. 그 내용을 공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센다이의 이마니시 선생께 16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열어 보니 선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후딱 훑어보아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선생의 간결한 문장을 되씹어 읽으면서, 동북관동대진재(東北關東大震災)를 겪은 일본인의 심경과 자세에 대해 깊은 동정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일본이 미증유의 재난을 하루빨리 극복하고 훌륭하게 재건하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선생의 허락을 받지 않고 편지를 공개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한국의 독자들에게 피해지의 현황과 당사자의 상황을 육성으로 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짧은 편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 앞에서도 의연하게 행동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군더더기 없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3.16 정재정 #정재정 선생께 연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려를 끼쳤습니다. 이곳은 괜찮습니다, 처도 개도 집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제부터 개통했기 때문에 메일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가스와 수도는 안 됩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어떻게든 해 나가고 있습니다. 걱정을 끼치게 되었습니다만, 오늘 나토리시 유리아게하마와 센다이공항 가까이까지 걸어서 가봤는데, 95%의 목조 건물이 소멸되었습니다. 항상 들렀던 식당도 없었습니다. 쓰나미는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차가운 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이라기보다는 담담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이 정직한 감상입니다. 이곳은 괜찮습니다. 우선 연락만으로 그칩니다. 3.15 이마니시 하지메 지난 11일 오후 저는 공무에 바쁜 관계로 일본에서 엄청난 지진이 발생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그 심각함을 알고 센다이에 계신 선생의 안부가 궁금하여 저와 아내가 몇 차례 전화를 했습니다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틀 만에 간신히 연락이 된 요코하마의 지인을 통해서도 선생의 안부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15일에 선생께 직접 메일을 보냈는데, 위와 같은 답신을 받았습니다. 편지를 읽고 나니 선생과 나눈 우정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을 돕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지 지배의 비참한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까지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90여년 전 관동대진재 때의 조선인 학살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런 자세를 보인 것은 한·일 관계의 획기적 진화를 보여 주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저는 선생을 비롯한 일본인 수강생들에게 동북 지역의 한·일 관계사 유적지 답사를 안내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재난에 휩쓸린 그 지역이 하루빨리 복구되어 일본에서 저의 강의가 속개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부디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18 정재정
  • 다음 재앙은 ‘일본産 먹을거리’

    ‘다음 재앙은 먹을거리다.’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가 지구촌을 덮치면서 각국 정부가 전면 조사에 나서는 등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식품은 높은 안전성과 질로 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국 등 전세계의 최고급 식품점을 장악하며 인기를 누려 왔다. 세계 1위의 일본 식품 수입국은 홍콩. 홍콩식품안전센터는 일본산 채소와 육류, 생선 등 34개 식품 샘플을 추려 방사능 검사를 실시했다고 CNN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저우이웨 홍콩 보건부 장관은 “방사능이 우려되는 한 가장 위험한 것이 유제품, 과일, 채소와 같은 신선식품”이라면서 “식품 안전에 한해서는 ‘제로 리스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심각성을 경고했다. 중국 국가품질감독검사검역총국(AQSIQ)도 지역 보건당국에 수입품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을 면밀히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16일부터 일본산 육류와 우유, 해산물 등을 중심으로 무작위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태국 보건부는 국내 일본 식당에 대한 조사도 검토 중이다. 인도는 지난 15일부터 공항과 항구로 들어오는 일본산 수입 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실시했다. 타이완 원자력위원회는 2개월 만에 한번씩 일본 수입품 샘플 20개를 조사하던 것을 매일 20개 샘플로 확대했다. 홍콩에서는 부모들이 일본의 유아용 이유식을 박스째 사들이고 있다. 타이완 주부들도 대지진 전에 수입된 고가의 일본 과일을 대거 집어가는 등 방사능 오염을 우려한 사재기 열풍으로 일부 일본 식품은 이미 품절 상태다. 미국 소비자단체인 CSPI의 캐럴라인 드왈 사무국장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채소와 과일, 향신료에서 가장 높은 방사능 수치가 나왔다고 밝히며, “핵 비상사태 기간에 방사능에 가장 취약한 농산물은 유제품과 채소”라고 강조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5년간 피해 지역의 육류, 비육류 수입식품 샘플 8900개에 대해 오염 여부를 조사했었다. 드왈 국장은 또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은 끓이거나 요리를 해도 안전하지 않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뉴에지그룹의 수석전략가 커비 달리는 “벌써 일본 수입품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아직 (위험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장기간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에 사는 폴 양은 아직 일본의 먹을거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우리 가족은 음식 습관을 바꾸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농작물이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따뜻한 지역에서 나기 때문에 걱정 없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사설] 재해대책비 성과급 전용 전면 조사하라

    교육기관들의 안전 불감증이 국민의 세금까지 축내고 있다. 일선 학교의 재해대책특별교부금이 교육청과 교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부당 전용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1112억원, 2009년에는 708억원, 2008년에는 1170억원 등 그 규모가 3년간 3000억여원에 이른다. 일본의 대참사를 연일 지켜보는 상황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니 착잡하기까지 하다. 나라의 미래인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책무를 저버리고 제 호주머니부터 채운 행태에 철퇴를 가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공개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특별교부금 집행 내역을 살펴보면 교육청은 재해대책의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재해가 없었기 때문에 재해대책비를 성과급으로 전용했다고 이유를 댔는데 도덕성은 차치하고 자질마저 의심스럽다. 재해 대책은 사후 복구만 아니라 사전 예방도 포함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교육청뿐만 아니라 나머지 정부 기관들도 이런 의식이라면 재해의 사전 예방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재해대책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내진 설계가 안 된 시설물이 전체의 81.6%로 집계됐다. 학교는 86.3%로 더하다. 현행법상 의무대상이 이러하니 강진이 발생할 경우 피해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서울교육청 등 8개 시·도 교육청은 학교시설 내진 보강 사업계획을 짜놓고도 올해 예산을 무시하거나 대폭 삭감하는 등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학부가 별도 예산을 주지 않았다는 핑계만 대면서 재해대책특별교부금으로 잔치판이나 벌이다니 그 뻔뻔함이 놀랍다. 이런 식으로 성과급을 전용한 게 교육청뿐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감사원은 교육청은 물론이고 모든 정부 기관에 대해 재해대책 특별교부금의 집행 내역을 전면 조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대재앙을 계기로 정부는 안전 강화를 외치고 있다. 안전 불감증을 치유하지 않으면 이 역시 일과성에 그칠 소지가 다분하다. 재해는 예고 없이 다가온다. 정부는 재해 매뉴얼을 다시 짜고, 국회에서는 관련법 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더라도 학교 건물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당장 보완 공사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재난 대피 훈련이라도 강화해야 한다. 그나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길이다.
  • [시론] 지진과 한일 안보협력/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시론] 지진과 한일 안보협력/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거대한 자연의 힘이 일본열도를 강타하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로 생활터전을 잃은 일본인들에게 최악의 원전 사태까지 가세하고 있다. 전 세계가 일본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선 마당에,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 역시 할 수 있는 바를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일본이 대재앙을 딛고 일어서기를 손꼽아 기원한다. 하지만 이번의 대재앙은 단순히 큰일을 당한 나라를 돕는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을 넘어 한·일관계 전반에 걸쳐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필자의 뇌리를 스쳐간 것은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진정한 이웃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일본을 가해자로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이번엔 태평양에서 발생한 쓰나미를 고스란히 막아준 일본열도에 대해 처음으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을 수 있다. 일본인들에게도 한국을 다시 보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웃나라를 돕기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고 있는 한국을 보면서, 그리고 일본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한류스타들이 앞다투어 거금을 쾌척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한국을 ‘진정한 이웃’으로 생각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이번 대재앙이 소중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 들어 한·일관계에 미묘한 전기들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부터 일본의 관리들과 언론들은 ‘한·일 안보협력’을 부쩍 강조해 왔다. 금년 1월 10일 베이징에서 미국과 중국의 국방장관들이 만나던 날, 서울에서는 김관진 국방장관과 일본의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청 장관이 만나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필요성에 대해 협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동아시아의 안보정세를 보면 일본이 왜 이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 북한의 핵개발과 대남도발, 북·중동맹의 강화 등 시시각각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신냉전 구도를 보면서 일본 역시 ‘한·미·일’이라는 삼각 협력구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삼국협력을 끌어내려는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일 간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존재한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여 한국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으며, 과거청산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다. 일본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배상한 적이 없으며, 일본의 교과서들은 여전히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있다. 2차대전을 통해 저지른 침략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철저하게 용서를 빌고 국가차원에서 배상해온 독일에 비하면 일본정부의 자세는 파렴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욕심일지 모르지만, 이번의 대재앙을 계기로 이런 일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소중한 이웃으로 인정한다면 일본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육지 영유권을 깨끗이 인정하고 수산자원과 해저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독도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을까. 양국 사이의 바다를 중립적인 창해(滄海)로 개칭하고 해군협력의 터전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물론, 중국과 우호적 공존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국에 있어 일본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원하는 대로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중관계를 담보하는 길은 아닐 터이다. 지금은 북한이 도발을 저지를수록 더 많은 안보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중국에도 도발자를 두둔하는 것이 결코 자국에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한·일 두 나라가 ‘소중한 이웃’ 관계로의 발전을 넘어 안보협력의 장을 열어갈 최상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 헬기·살수차 필사적 냉각작업에도 3호기 핵분열 조짐

    헬기·살수차 필사적 냉각작업에도 3호기 핵분열 조짐

    일본 정부는 17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핵 대재앙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헬기 4대와 살수차를 대거 투입, 원자로에 냉각수 살포 작업을 벌이며 원자로 연료봉의 핵분열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3호기에서 핵분열 조짐이 보이고, 방사능 수치도 크게 떨어지지 않아 여전히 최악의 상황 도래 가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와 경찰은 헬기와 물대포, 소방차 등을 총동원해 원자로 냉각작업을 벌였다. 냉각시스템 이상으로 온도가 상승, 폭발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제1원전 3호기와 4호기의 사용 후 연료봉 수조에 냉각수를 투하, 온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원자로 속의 연료봉은 물론 수조 안의 사용 후 연료봉도 냉각수를 넣어 식히지 않으면 고열로 녹아내려 심각한 방사능 오염 사고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위대는 오전 9시 50분쯤 CH47 헬기 2대를 동원해 제1원전 3호기에 바닷물을 투하했다. 헬기는 7.5t의 물이 담긴 용기를 장착하고 공중에서 3호기가 있는 건물로 물을 부었다. 3호기가 있는 건물은 앞서 일어난 수소 폭발로 지붕이 뚫려 있는 상태다. 이들 헬기가 물을 붓는 동안 또 다른 헬기 한대는 공중에서 주변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다. 동시에 자위대는 소방차 11대를 3호기 건물로 투입, 지상에서도 냉각작업을 벌였다. 4호기의 경우 공중에서 물을 투하하는 것보다 손상된 외벽 사이로 물을 뿌려 넣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정부 당국의 판단에 따라 지상에서 냉각작업을 진행했다. 경찰도 물대포를 장착한 진압용 차량을 투입, 4호기에 대한 냉각작업을 도왔다. 지상에서의 냉각작업은 방사능에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아주 위험하다. 전날 일본 당국이 3호기에 물을 뿌리기 위해 헬기를 투입했다 2시간 만에 철수한 것도 제1원전 부지의 방사능 수치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물을 붓기 위해 고도를 내렸다가는 공중 살포작업을 벌이는 헬기 조종사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실시된 자위대의 원자로 냉각 작전을 위해 이번의 경우에만 법률로 정해진 공무원의 피폭량을 100~250m㏜(밀리시버트)로 올렸다. 250m㏜는 인체에 유해할 수도 있는 데드라인이라고 전문가들을 밝혔다. 자위대와 경찰의 작전 결과 원전에 전력공급이 가능하게 되면서 한가닥 희망도 없지는 않지만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력이 부분적으로라도 공급되면 노심 냉각장치는 가동할 수 있지만 이미 격납용기가 일부 파손된 상황이어서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 또 높아진 방사능 수치 때문에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냉각수 투입도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날 하루 동안 추가적인 폭발·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가운데 도쿄전력은 원전에 새 전력선 설치를 거의 완료했고, 고장 난 기존 전력선 복구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오키 스노다 대변인은 구체적인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전력을 공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제1원전에 전력 공급이 재개되면 펌프를 통해 원자로와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에 냉각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 여부가 사태 수습에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당국은 또 3호기와 4호기 내 핵연료봉 보관 수조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CH47 치누크 헬기 4대를 투입해 냉각수를 살포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국방부는 추가로 군 장비를 배치해 물 뿌리기 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 재앙 전조?…18년 만에 ‘슈퍼문’ 내일 뜬다

    재앙 전조?…18년 만에 ‘슈퍼문’ 내일 뜬다

    오는 19일(한국시간) 18년 만에 가장 큰 달이 밤하늘을 밝힌다. 일본 대지진의 혼란으로 ‘슈퍼문 재앙설’이 나돌고 있지만, 슈퍼문 현상으로 지구상에 대규모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천문학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슈퍼문은 보름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현상으로, 이번 ‘슈퍼문’은 지구와의 평균거리 38만4000㎞보다 약 2만7000㎞더 접근한 35만6577㎞거리에 위치해 평소 보다 달이 10~15%나 더 크게 보인다.   이번 ‘슈퍼문’ 현상이 보기 드문 천체쇼이긴 하지만 지난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등으로 ‘슈퍼문 예고설’ 혹은 ‘재앙설’ 등 루머가 퍼지면서 “자연재앙의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 전문가들은 지난 일본 대지진과 슈퍼문의 연관성은 없었으며, 슈퍼문이 지구에 재해를 몰고 올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미국의 저명한 천체학자 아놀드 피얼스테인은 “달과 지구과 근접하면서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조류가 높아져 해변 침식이나 일부 해안에서 약간의 범람 등이 일어날 수는 있다.”고 조언했으나 “이 역시도 위험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단순 보은 넘어 인류애 실천…소통의 한류로”

    한류스타들이 대재앙 앞에 신음하는 일본에 잇따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두 나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문화의 끈’이 공고해지는 양상이다. 지금까지 국내 연예인들이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내놓은 기금은 17일 현재 총 50억원에 달한다. 지난 14일 대표적 한류스타 배용준이 10억원을 쾌척한 데 이어 이병헌, 류시원, 최지우, 송승헌, 안재욱 등 1세대 한류스타들의 기부가 줄을 이었다. 신(新)한류라는 이름으로 케이팝(K-pop)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카라, JYJ, 김현중, 장근석, 빅뱅 등 차세대 한류스타들도 가세했다. 일본 언론과 네티즌들은 자국 연예인보다도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은 한류스타들에 대해 “한류를 다시 느꼈다.”며 감동과 놀라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류스타들이 ‘통 큰 기부’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그동안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을 차례”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 2억원을 내놓은 류시원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재앙 앞에서 한류니 뭐니 따질 수는 없다.”면서 “다만 일본 팬들이 보내 준 사랑에 미약하나마 보답하고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정서적 거리가 좁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촉발된 일본 내 한류는 영화와 가요로도 확산됐다. 하지만 한류의 일방성과 상업성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일부 국가의 ‘혐한류’(한류 혐오)를 야기하기까지 했다. 일본 진출을 준비하던 한 남성 톱스타는 “한국의 스타들은 돈만 밝힌다는 인식이 일본 안에 너무 팽배해 깜짝 놀랐다.”면서 “단순한 보은 차원이 아닌 재앙 앞에 인류는 하나라는, 진심어린 인류애를 보여 줌으로써 한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용준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일방적인 한류는 곤란하다.”며 “한류가 아니라 아시아류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곤 했다. 김헌기 아시안TV 부사장은 “쌍방향 소통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은 문화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사설] 日정부 잘못된 原電 대응서 교훈 얻자

    지난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핵 재앙의 우려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에 일본 국민은 의연할 정도로 침착하게 잘 대응했지만,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의 잘못된 대응으로 핵 공포가 일본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대지진 다음 날 시작한 화재 및 폭발사고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사실상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어제 자위대 헬기가 제1원전 3호기에 냉각수를 살포하는 등 원전 피해 최소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성과는 별로 없다. 사고 원전에는 비상근무자 181명이 방사선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과열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들이붓는 등 그야말로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 핵 재앙 가능성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에 이른 것은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원전의 관리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의 안이한 판단과 대응 때문이었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원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쓰나미로 냉각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서 원자로 내 냉각수 순환이 중단됐다. 바로 바닷물을 넣었다면 이렇게 가슴 졸이는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측은 30여시간을 허비하며 실기(失期)했다. 바닷물을 원자로에 넣으면 수조원이 투입된 원자로를 쓰지 못하는 탓에 원전 측이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도쿄전력은 원전 피해에 대한 사실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숨기고 축소하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3·11 대지진과 유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다면 우리는 잘 대응할까. 성격은 다르지만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 때 정부와 군의 대응을 보면 일본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인다. 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일처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원전 안전점검도 철저히 하고 대지진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원전 기준도 대폭 높여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 문제가 된 후쿠시마 제1원전은 1970년대 가동에 들어간 노후기종이다. 보통 수명이 다한 원전의 경우 예산문제 때문에 오래된 부품을 교체해 사용하고 있으나, 안전성에 대한 고려를 더 해야 한다.
  • 48시간에 日 운명이… 320人 ‘후쿠시마 결전’

    48시간에 日 운명이… 320人 ‘후쿠시마 결전’

    차려입은 건 ‘특수’라는 이름이 붙은 헬멧과 방호복, 안면 마스크뿐이었다. 그러나 단 몇분 만에도 1년 노출 한도를 수십배 넘어서는 방사능 앞에서 이들 장비는 결코 특수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녹아내리는 원자로 곁에 섰다. 사선(死線)이었다. 핵 재앙을 막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17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펼쳐졌다. 일본의 명운을 건 작업이었다. 그 중심에 생명을 걸고 나선 320명의 원전 작업자들이 있었다. 헬기를 동원한 바닷물 투입이 실패하면서 이제 원전과 일본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렸다. 오후 자위대의 ABM 대형소방차까지 동원돼 원전에 물을 뿌려대며 달궈진 연료봉의 온도를 내리려 했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태 수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이들을 더 비장하게 원전 속으로 뛰어들게 했다. 4호기 냉각수가 고갈상태여서 핵 분열 위험성마저 높아지고 있고 1~3호기 원자로에서도 방사능이 거세게 뿜어나오고 있지만, 이들 320명은 특별작업팀으로 자원하고 나섰다. 한 미국 원전 전문가는 “그들의 작업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이 무너지면 동일본은 핵 폐허가 된다.”는 핵 재앙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방사선 피폭과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최후의 결사대’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프랑스 원자력 산업 연구기관인 ‘방사능 방어 및 핵안전 연구소’(IRSN)의 티에리 샤를 안전국장은 “앞으로 48시간이 중대 고비”라고 지난 16일 말했다. “13일 이후로 어떤 대책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전망은 비관적”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들 320명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아마노 유키야 사무총장도 17일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방사능 대량 유출 가능성을 우려했다. 냉각수 온도 상승이나 고갈,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확실한 대응책이 없는 상황에서 1억 2000만명의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이들 320명의 활약에 기대고 있다. 헬기를 동원한 바닷물 투입에도 불구하고 이날 방사능 측정치는 크게 줄지 않았다. 작전 이전에 시간당 3782m㏜(밀리시버트)였던 측정치는 작전 이후에 시간당 3754m㏜로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그러나 전력선 복구가 1차 성공하면서 원자로에 부분적으로 냉각수 공급을 18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이들은 비관론 속에서도 한줄기 가능성을 마련했다. 일단 1~3호기 원자로 핵 연료봉의 냉각수 투입 기능을 되살릴 기초를 마련한 셈이다. 320명의 사수대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미국과 IAEA 등도 총력 지원에 나섰다. 미군은 첨단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동원, 4호기 내부의 상황 변화 감시에 나선다. IAEA는 로봇과 무인조종자동차를 조만간 후쿠시마 원전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방사능 위험도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그레고리 야즈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위원장은 이날 미 하원 에너지·통상 소위원회에 출석해 “후쿠시마 원전 4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봉을 보관하던 수조의 물이 고갈됐다.”고 밝혔다. 야즈코 위원장은 “방사능 수치도 매우 높은 상태로, 정상화 작업의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관적으로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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