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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대마저 ‘을의 눈물’ 외면하나요

    국립대마저 ‘을의 눈물’ 외면하나요

    #1. 2013년 10월부터 서울대 미술관에서 1년 단기 계약직 비서로 일해 온 박수정(25·여)씨. 박씨는 계약서에 명시된 비서 일 외에도 미술관 대관, 회계 업무 등 정규직 직원들이 하는 일을 분담해 왔다. 그러나 정규직 직원들이 받는 수당이나 상여금 등의 복리후생 혜택은 전혀 받지 못했다. 월급도 최저시급을 조금 웃도는 수준의 120만원. 박씨는 올 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 신청을 했으나 기각돼 현재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2. 지난해 3월부터 서울대에서 기간제 셔틀버스 기사로 일하던 석모(45)씨. 석씨는 올 1월 재계약에 실패해 해고자 신세가 됐다. 하지만 해고 사유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서울대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해 활동했던 석씨는 “차량 감축이나 예산상 문제가 없음에도 노조 활동으로 인해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지난 4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노동위 구제 신청하자 업무 배제 보복도 서울대가 비정규직 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내 최고의 상아탑’에 어울리지 않는 기형적인 기관별 비정규직 인력 수급과 열악한 처우 및 인사 조치 등으로 노동계의 비난을 사고 있다. 서울대는 전체 교직원 3000여명의 3분의1 수준인 1000여명이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자체 직원’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자체 직원은 서울대 내 각 기관이 개별적으로 채용한 무기계약직·단기계약직을 일컫는 말이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대다수가 법인 직원들의 일을 분담하고 있지만 이른바 ‘열정페이’ 수준의 월급과 함께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해 ‘동일 노동·동일 임금’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교 측 “예산 문제… 처우 개선 논의 노력”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율도 0.3%에 불과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정진석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대분회장은 “셔틀버스 기사도 11개월씩 쪼개기 계약을 강행, 4~5년씩 일하고도 무기계약직 전환이 안 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교 본부는 자체 직원의 문제를 각 기관의 소관으로 떠넘기며 개입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국립대가 기관에서 채용한 직원을 총장 발령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과 달리 서울대는 기관 채용을 지속하고 있다. 노경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경기지부 사무국장은 “서울대 각 기관에 채용된 자체 직원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이른바 ‘유령 직원’이며 문제가 발생해도 본부 측에서 책임을 기관에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측은 이들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단기간에 개선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법인화 이후 채용된 법인 직원의 경우 대기업 입사 뺨치는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 자체 직원들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면서도 “수년, 수십년간 각 기관과 교수들에 의해 이뤄진 채용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지난달부터 ‘무기계약직 처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정청래·주승용 ‘화해의 악수’

    정청래·주승용 ‘화해의 악수’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극심한 내홍을 겪은 새정치민주연합이 1박2일 워크숍을 통해 갈등 봉합의 단초를 마련했다. 소속의원 130명 가운데 110여명이 참석하는 등 전례 없이 단합된 모습을 보였지만 ‘비노’(비노무현) 계열 주요 인사들이 불참하는 등 앙금도 남았다. 3일 경기도 양평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이틀째 계속된 워크숍 현장에 정청래 최고위원이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자숙’을 이유로 워크숍에 불참한 정 최고위원은 비공개 원탁토론이 시작하기 직전 나타났다. 원탁토론 조 편성이 가나다순으로 이뤄져두 최고위원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둘은 토론을 마친 뒤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와 함께 취재진 앞에서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정 최고위원은 “제가 오는 것이 화합과 단결을 위해 도움이 되겠다는 연락이 많았고, 주 최고위원과 악수하고 다시 한 번 미안함을 전달하는 것이 당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주 최고위원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그럴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하자 주위에서 폭소가 터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당 윤리심판원에 재심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워크숍 마무리 발언에서 “이기는 정당을 위해 당 체계를 정립해 나가겠다”면서 “총선 준비를 일찍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당은 이날 화합을 강조하는 결의문도 발표했다. 하지만 일부 불협화음도 감지됐다. 공동대표를 지낸 김한길·안철수 의원과 박주선·조경태 의원 등 비노계 의원들은 일신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전날 밤에는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몇몇 의원들이 혁신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날 트위터에 “김상곤 혁신안이 금과옥조와 같아도 9월에 확정된 후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누명 벗은 과거사] ‘인혁당 1차 사건’도 재심서 최종 무죄…50년 만에 매듭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1965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50년 만이다. 2007~2008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2차 인혁당 사건에 이어 1차 사건까지 무죄가 확정되면서 ‘사법살인’으로 불렸던 잘못된 수사와 재판이 바로잡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예종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 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누명 벗은 과거사] ‘윤필용 사건’ 불법 고문 41년 만에 3억 6000만원 배상 판결

    1973년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 ‘윤필용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에게 국가가 금전적 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정은영)는 사건 당시 불법 고문을 당한 뒤 누명을 쓰고 복역했던 고 이정표씨의 유족에게 국가가 총 3억 6000여만원을 배상할 것을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이 피해자를 불법 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했으며 수사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피해자와 그 가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말했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게 쿠데타 음모설로 번져 윤 사령관과 그의 부하들이 처벌받은 사건이다. 당시 윤 사령관의 측근 대령이 이끄는 육군범죄수사단 대위였던 이씨는 ‘군납업자에게 뇌물을 받고 윗선에도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보안사에 소환돼 구금 조사를 받았다. 보안사 조사관들은 이씨를 고문했고, 이씨는 결국 군사법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강제로 전역당한 이씨는 당시 고문으로 무릎 통증 등 영구 장애를 얻었다. 승무원이던 딸도 1983년 KAL기 피격사건 때 사망해 그는 슬픔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다 200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2011년 이 사건의 다른 연루자가 재심 청구를 해 무죄 판결을 받아내자 이씨의 유족도 이듬해 재심을 청구했다. 2014년 4월 서울고법은 보안사 요원들이 불법 수사로 허위 증거를 만들어 낸 점이 인정된다며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50년 만에 무죄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50년 만에 무죄

    ‘1차 인혁당 사건’ 1차 인혁당 사건이 재심 끝에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사상 최악의 사법 살인으로 이어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 고(故) 도예종씨 등 9명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6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0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몸에 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변호인이나 가족과 면담·접견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당시 국회 조사자료 등을 볼 때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기소됐던 13명 가운데 4명은 재심청구가 기각돼 누명을 벗지 못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당시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차 인혁당 사건’ 50년 만에 무죄 확정…무슨 사건이기에?

    ‘1차 인혁당 사건’ 50년 만에 무죄 확정…무슨 사건이기에?

    ‘1차 인혁당 사건’ 50년 만에 무죄 확정…무슨 사건이기에? ‘1차 인혁당 사건’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 고(故) 도예종씨 등 9명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6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0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몸에 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변호인이나 가족과 면담·접견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당시 국회 조사자료 등을 볼 때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기소됐던 13명 가운데 4명은 재심청구가 기각돼 누명을 벗지 못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당시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인혁당은 어떤 사건?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인혁당은 어떤 사건?

    ‘1차 인혁당 사건’ 1차 인혁당 사건이 재심 끝에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사상 최악의 사법 살인으로 이어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 고(故) 도예종씨 등 9명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6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0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몸에 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변호인이나 가족과 면담·접견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당시 국회 조사자료 등을 볼 때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기소됐던 13명 가운데 4명은 재심청구가 기각돼 누명을 벗지 못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당시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승용·정청래 빠진 채… 野 최고위 내홍 수습 안간힘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는 ‘공갈 막말 논란’의 당사자인 주승용·정청래 최고위원이 빠진 가운데 진행됐다. 주 최고위원에 대한 ‘공갈 발언’으로 정 최고위원이 전날 ‘당직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음에 따라 새정치연합은 2·8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 1, 2위 당선자가 모두 공석인 상태가 됐다. 정 최고위원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재심 청구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최고위원 측은 “전날 징계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8일 이후 20일째 당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주 최고위원 자리에는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앉았다. 주 최고위원은 정 최고위원의 징계 소식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복귀할 뜻이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한번 사퇴하면 그대로 사퇴한 것”이라며 “(복귀 여부에 대해) ‘아직은’이 아니라 복귀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당 혁신위원회에 대해 “좋은 혁신안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면서도 “문제는 혁신안이 나올 때마다 실천이 중요한데 한번도 실천이 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 내홍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새정치연합은 4·29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고 당 쇄신 작업을 위한 당직개편 구상에 착수했다. 우선 양승조 사무총장과 강기정 정책위의장, 김영록 수석대변인, 김현미 비서실장, 윤호중 디지털소통본부장, 김경협 수석사무부총장, 김관영 조직사무부총장, 유은혜 대변인,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 등 정무직 당직자 9명은 이날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뒤집힌 국과수 감정 결정적… ‘눈물의 24년’ 사죄하는 이 없다

    뒤집힌 국과수 감정 결정적… ‘눈물의 24년’ 사죄하는 이 없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 강기훈(51)씨가 마침내 24년에 걸친 기나긴 한을 풀었다. 정권의 폭력이 만들어낸 ‘유서 대필’ 사건에서 완전히 결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검찰이나 사법부의 사과 혹은 유감 표명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는 현재 간암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24년 전 유죄 선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筆跡)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본 원심이 정당하다고 확인했다. 이 사건은 1991년 ‘분신 정국’에서 비롯됐다. 그해 4월 명지대 1학년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집단구타를 당해 숨졌다. 공권력의 폭력에 분노한 대학생과 노동자가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일이 잇따랐다. 그 중 한 사람이 그해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인 채 투신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당시 26세)씨였다. 당시 박홍 서강대 총장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김씨의 죽음을 매도했다. 검찰은 전민련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 배후로 지목했다.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 내지 종용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당시 나이 27세. 공안당국의 수사 결과 발표에 민주화 진영은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고, 정국은 반전됐다. 강씨는 이듬해 징역 3년이 확정돼 만기까지 복역해야 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뒤에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으로 억울함을 풀 기회를 잡았다. 개시 과정도 순탄치 않았던 재심 결과를 180도 바꾼 강력한 근거는 공교롭게도 국과수의 새로운 감정 결과였다. 국과수는 2007년(과거사위 의뢰)에 이어 2013년 재심 과정에서 두 번째 감정 결과를 내놨다. 뒤늦게 발견된 김씨의 노트·낙서장을 감정한 결과, 유서의 필적과 일치한다고 결론지은 것. 재심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관련 증인의 진술과 내용 등에 비춰 볼 때 유서는 김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심 대상이 아니었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이 확정됐다. 이미 복역했기 때문에 재수감되지 않는다. 진실 규명 결정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도 8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 간암을 앓게 된 강씨는 이날 대법원 선고를 직접 지켜보지 못했다. 선고 3~4일 전부터 주위와 연락을 끊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주문이 짧게 낭독되자 오랜 세월 강씨를 지지해 왔던 30~40명이 함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사법당국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김상근 목사는 “진실을 덮은 어둠을 빛이 이기기까지 24년이 걸렸다”며 “그동안 이 사건을 조작하고 왜곡한 검찰과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상교 변호사는 “검찰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재심 과정에서도 계속 새로운 증거를 만들어냈다”며 “이 사건은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배상 청구 등 국가의 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0년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독일에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반역자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었던 프랑스 장교 사건을 말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대법원 입장 보니?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1)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筆跡)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그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1992년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만기출소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한 지 4년여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재심을 개시하면서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토대로 한 과거 판결은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도록 쓰는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강씨의 필체는 이와 전혀 달랐고,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다만 서울고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별도로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이날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강씨가 이미 3년간 복역했기 때문에 재수감은 되지 않는다. 무죄 확정에 따라 징역 1년을 초과한 구금일수에 대해서는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이날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사건 발생 24년 만에 뒤바뀐 판결 ‘유서대필 사건 왜?’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사건 발생 24년 만에 뒤바뀐 판결 ‘유서대필 사건 왜?’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씨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이른바 ‘김기설씨 유서대필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한 강기훈(51)씨에 대한 재심에서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992년 당시 대법원이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린 지 23년 만이다. ’유서대필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가 그해 5월 분신자살한 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의 유서를 대필해 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자살방조 등)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사건을 말한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는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에 항의해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같은 해 5월 서강대에서 분신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강씨가 유서를 대신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재심을 권고했고, 강씨는 이를 근거로 재심 개시를 청구해 2009년 9월 인용 결정을 받았다. 지난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1991년의 국과수 감정은 일반적인 감정 원칙에 어긋나고, 글자를 잘못 판독해 신빙성이 없다”며 “강씨가 아니라 김씨가 유서를 썼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검찰이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유서를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선고 6일 만에 상고 의사를 밝혔으나, 이날 대법원은 23년 만에 판결을 뒤집었다.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사진 = 서울신문DB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자살방조죄 누명 벗어” 억울한 옥살이 보상은?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자살방조죄 누명 벗어” 억울한 옥살이 보상은?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1)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筆跡)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그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1992년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만기출소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한 지 4년여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재심을 개시하면서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토대로 한 과거 판결은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도록 쓰는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강씨의 필체는 이와 전혀 달랐고,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다만 서울고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별도로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이날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강 씨가 이미 3년간 복역했기 때문에 재수감은 되지 않는다. 무죄 확정에 따라 징역 1년을 초과한 구금일수에 대해서는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이날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대법원 입장 보니?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대법원 입장 보니?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대법원 입장 보니?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1)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筆跡)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그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1992년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만기출소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한 지 4년여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재심을 개시하면서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토대로 한 과거 판결은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도록 쓰는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강씨의 필체는 이와 전혀 달랐고,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다만 서울고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별도로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이날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강씨가 이미 3년간 복역했기 때문에 재수감은 되지 않는다. 무죄 확정에 따라 징역 1년을 초과한 구금일수에 대해서는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이날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간암으로 건강상태 좋지 않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간암으로 건강상태 좋지 않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간암으로 건강상태 좋지 않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1)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筆跡)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그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1992년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만기출소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한 지 4년여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재심을 개시하면서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토대로 한 과거 판결은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도록 쓰는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강씨의 필체는 이와 전혀 달랐고,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이날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간암으로 건강상태 좋지 않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간암으로 건강상태 좋지 않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간암으로 건강상태 좋지 않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1)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筆跡)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그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1992년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만기출소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한 지 4년여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재심을 개시하면서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토대로 한 과거 판결은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도록 쓰는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강씨의 필체는 이와 전혀 달랐고,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이날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왜?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왜?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필적 감정 결과 신빙성 없다” 왜?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1)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筆跡)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그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1992년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만기출소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한 지 4년여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재심을 개시하면서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토대로 한 과거 판결은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도록 쓰는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강씨의 필체는 이와 전혀 달랐고,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다만 서울고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별도로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이날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강씨가 이미 3년간 복역했기 때문에 재수감은 되지 않는다. 무죄 확정에 따라 징역 1년을 초과한 구금일수에 대해서는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이날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잘못된 필체 감정이 원인” 24년 만에 결론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잘못된 필체 감정이 원인” 24년 만에 결론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 “잘못된 필체 감정이 원인” 24년 만에 결론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51)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筆跡)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그해 7월 자살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져 1992년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만기출소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강씨가 아닌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놨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한 지 4년여만인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재심을 개시하면서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유서를 감정해놓고도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했다고 위증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토대로 한 과거 판결은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한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도록 쓰는 김씨 필체의 특징이 유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강씨의 필체는 이와 전혀 달랐고,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강씨는 다만 서울고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별도로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이날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강 씨가 이미 3년간 복역했기 때문에 재수감은 되지 않는다. 무죄 확정에 따라 징역 1년을 초과한 구금일수에 대해서는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이날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뢰 추락·개혁안 진통…금감원 ‘내우외환’ 몸살

    신뢰 추락·개혁안 진통…금감원 ‘내우외환’ 몸살

    진웅섭 원장이 이끄는 금융감독원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감사원의 ‘경남기업 외압 결론’에 감독기관으로서의 신뢰와 사기는 추락했다. 옛 수장과 임원은 수사 대상에 올랐고 고심 끝에 내놓은 ‘금융검사 개혁안’은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와 보조를 맞추느라 야심 차게 구상했던 ‘혁신’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재심 청구를 놓고 고심 중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재심 청구는 문책 요구를 받은 기관장의 이름으로 한 달 안에 해야 한다. 억울하다며 재심을 청구하자니 감사원에 ‘반기’를 드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외압’을 인정하는 꼴이 돼 고민스럽다. 지난 23일 감사원은 “금감원이 금융권에 경남기업을 특혜 지원하라고 압력 넣은 게 인정된다”며 담당 팀장(당시 기업금융개선국 팀장)의 문책을 요구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문책 지적을 받은) 당사자 의사가 확실해야 기관 이름으로 재심을 청구하는데 아직 아무런 얘기가 없다”면서 “(재심을 하면 안 된다는) 견해도 일부 있지만 (명예가 걸린 만큼) 당사자 의사를 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기업 구조조정은 전임 원장(최수현) 때 이뤄진 일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뻗칠지 몰라 매우 조심스럽다”면서 “조직의 수장 이름까지 오르내리니 분위기가 이래저래 침울하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동창 전 KB금융 부사장에 대한 징계도 철회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사회 안건자료 등을 외부에 유출한 혐의로 금감원이 박 전 부사장에게 내린 중징계(감봉 3개월) 제재가 과도하다며 취소하라고 서울고등법원이 전날 판결해서다. 상고할 가능성이 높지만 체면은 이미 구겨졌다. 집안도 시끄럽다. 야심 차게 내놓은 ‘검사 개혁안’이 실효성 논란에 부딪쳐서다. 금감원 실무자들은 ‘원칙에 따라 검사했다면 해당 금융사에서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면책조항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감원 수뇌부도 그 필요성을 인정해 연내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은행 검사를 담당했던 한 금감원 직원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증권 사태 등을 거치면서 면책조항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반대 여론과 국회 벽 등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고 환기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부정적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면책 조항을 만들기보다 권력의 부당한 개입이나 요구에 대해 거부하고 신분 보장 등을 통해 금감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진 원장의 직속부대인 금융혁신국을 두고도 말이 많다. 애초 혁신국은 업계와 시장의 불합리한 관행을 선제적으로 발굴,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금융위 현장점검단 ‘서포터’로 전락했다는 냉소가 나온다. 금융위가 현장점검단이 수집한 금융권 건의사항을 금융혁신국에 넘겨주며 “2주 안에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한 금감원 직원은 “뒤치다꺼리는 우리에게 시키고 생색은 금융위가 내려 한다”며 “시간에 쫓겨 설익은 밥이 나오면 그 책임도 죄다 금감원이 뒤집어쓰는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法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부당노동행위의 주체 - 누가 진짜 사장인가

    판례의 재구성 28회에서는 원하청관계와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사용자개념에 대해 정의한 대법원 판결(2007두8881)을 소개한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3월 원청업체인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사건에서 원고(현대중공업)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구제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법률적 또는 사실적인 권한이나 능력을 가지는 지위에 있는 한 그 한도 내에서는 원청업체도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구제명령을 이행하여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설을 노동법 분야의 권위자인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부터 듣는다. 씨엔앰,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최근까지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 옆 광고탑과 중앙우체국 옆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진짜 사장 나와라”고 외치며 원청업체들에 정규직 전환과 휴식시간, 4대 보험 등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일감을 주고 또다시 재하청업체에 일을 주면서 인건비를 절감한다.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내리지만, 이들의 사용주는 법적으로 원청이 아니다. 근로계약의 상대방(근로기준법 제2조), 단체교섭의 상대방(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2호)이 모두 하청업체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에도 원청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 2010년 3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들을 폐업시키는 방법으로 하청업체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킨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2007두8881)한 바 있다. 대법원은 당시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업체인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사건에서 원고(현대중공업)의 상고를 기각했다. 2003년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소속된 사내하청업체들은 같은 해 9~12월에 폐업되거나 폐쇄됐다. 하청업체 폐업으로 소속 사내하청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해고(사업장 배제)됐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를 새로 설립하고 공개된 조합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을 재고용했다. 당시 중앙노동위원회는 사내하청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받아들여 현대중공업에 구제명령을 내렸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패소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원청업체도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즉 원청업체(현대중공업)가 실질적·구체적으로 근로자의 근로조건 등을 결정할 수 있다면, 원청업체도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부당노동행위의 예방 및 제거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구제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법률적 또는 사실적인 권한을 가지는 지위에 있다면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구제명령의 대상자인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어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구체적인 지배와 결정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 운영에 개입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해고된 직원의 직접적 사용자라고 볼 수 없는 만큼 하청업체에 복직시켜 줄 의무는 없다”며 부당노동행위 과정에서 해고된 하청업체 직원 원직복직과 소급임금지급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업체가 사내하청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근로계약 관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이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업체와 직접 교섭이 가능하다는 이론적인 토대가 마련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파견, 용역, 도급, 위탁, 사내하청, 외주 도입 등 원청업체의 간접고용 활용은 직접 고용 시 부담해야 할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하청업체의 중간착취와 노동자 직접 고용 회피에 따른 인건비 절약도 지속되고 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세월호 특위위원, 유가족을 ‘떼 쓰는 사람’으로 비유 논란

    세월호 특위위원, 유가족을 ‘떼 쓰는 사람’으로 비유 논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의 새누리당 추천 위원인 고영주 위원이 세월호 유가족을 ‘떼 쓰는 사람들’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9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조달청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에서 열린 제4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는 관련 부처로부터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사 계획, 피해자 지원 현황, 세월호 선체 처리 추진 현황 보고가 있었다. 문제의 발언은 국무조정실 담당 공무원이 ‘트라우마 센터’ 관련 업무보고 중 나왔다. 고영주 위원은 “의료 지원은 좋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종전 우리나라에는 대구지하철, 삼풍백화점 등 여러 사고가 있었다. 이 사건 피해자들도 트라우마가 있을 것인데, 하필이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만 혜택이 있어야 하는지 검토해본 적이 있느냐”고 했다. 이에 공무원은 “다른 사고 피해가 가족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지원 특별법은 심리상담 등의 지원 대상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가족으로 한정하고 있다. 야당 추천 위원인 박종운·김서중 위원이 “법이 그렇지만 경기도 안산에 트라우마센터가 만들어지면 다른 참사 피해자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정리했다. 하지만 고영주 위원은 대뜸 “국정 운영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떼를 쓰면 주고, 점잖게 있으면 안 주고…. 국민성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야당이 추천한 류희인 위원이 “유가족들이 떼를 쓴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런 인식으로 어떻게 이 자리에 왔는지 모르겠다. 시스템적 대응을 위한 전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근본적 의문을 갖고 있다면 특위와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고영주 위원은 “세월호 사건은 다른 참사보다 독특하게 진행되고 있다. 다른 참사보다 특별할 이유가 없다. 모든 참사에 공평해야 한다”며 반박했다. 고영주 위원은 ‘부림사건’ 당시 담당 공안검사 출신으로 지난해 부산지법에서 ‘부림사건’ 재심 청구 무죄 판결을 받자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으로 사법부 스스로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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