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재심 무죄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원피스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재발급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편입생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여성 리더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69
  • ‘5공실세’ 이학봉 前수석 자택 경매

    ‘5공실세’ 이학봉 前수석 자택 경매

    ‘5공 실세’였던 이학봉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택이 경매에 넘어간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한 이신범·이택돈 전 국회의원의 요청에 따라 법원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이던 이씨의 자택을 경매할 예정이다. 16일 부동산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오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 1계에서 대지면적 375㎡, 건물면적 325㎡,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인 이씨의 단독주택에 대한 입찰이 진행된다. 청구액은 10억 1900만원으로, 단독주택 감정가는 배가 넘는 26억 400만원 선이다. 경매 청구인은 이신범·이택돈 전 의원이다. 이들은 신군부의 계엄군법회의에서 각각 징역 12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특별사면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4년 재심을 통해 무죄선고를 받은 뒤 이들도 재심을 청구해 2007년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이씨와 국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대해 이들에게 모두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대법, 5공 공안조작 ‘오송회’ 피해자 국가배상액 150억 확정

    제5공화국 시절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 중 하나인 ‘오송회’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 배상액이 150억원으로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이 사건 피해자인 고(故) 이광웅씨의 부인 김문자씨 등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150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를 비롯한 이 사건 피해자와 가족은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심에서는 “이씨 등을 영장 없이 강제연행해 불법 구금하고 갖가지 고문과 회유·협박 등 불법 행위를 자행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는 위자료와 이자로 약 20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불법 행위가 일어난 이후 오랜 기간 통화가치에 변동이 생긴 만큼 이자는 재심 재판 변론 종결일 이후부터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배상액을 150억원 정도로 낮췄다. 다섯(五)명의 교사가 소나무(松) 아래에 모였다는 의미를 가진 오송회는 1982년 군산 제일고 전·현직 교사들이 4·19 기념 행사를 치른 뒤 시국토론을 갖고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낭송했다는 이유로 공안 당국에 의해 이적단체로 간주됐다. 당시 전주지법은 3명에게 실형 선고, 6명에게 선고 유예했으나 광주고법은 9명 모두에게 징역 1~7년의 실형을 내렸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50년만에… 안중근의사 혈족 ‘무죄’

    안중근 의사의 혈족이자 독립운동가들이 5·16혁명 혁명재판소에서 북한을 찬양했다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50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는 27일 1962년 혁명재판소에서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안 의사의 사촌동생 안경근, 친조카 안민생, 혈족 안잠 선생 등 3명의 후손들이 낸 재심 청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의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이 보존돼 있지 않지만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의 행위가 당시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더라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는 범위에 속한다.”고 말했다. 안경근 선생 등은 1961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린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에서 “통일만이 살 길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했다. 이후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북한의 통일론을 왜곡해 국민을 선전·선동했다며 기소돼 이듬해 혁명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39년만에 벗은 누명 “모든 것이 사필귀정”

    39년만에 벗은 누명 “모든 것이 사필귀정”

    “용서하더라도 명예롭게 용서하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살인 혐의로 옥살이를 한 뒤 39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은 노인의 얼굴에는 담담함이 묻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억울함을 씻었다는 한서린 감격보다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27일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77)씨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주된 증거들이 신빙성이 없고 경찰·검찰의 진술이나 증언, 나머지 증거가 공소사실의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씨는 판결 직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너무 늦게 찾아오기는 했지만 결국 ‘사필귀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만화방 주인이었던 정씨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것은 1972년 9월이었다. 춘천시 파출소장의 딸이었던 10세 소녀가 강간을 당한 뒤 논둑길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즉각 수사에 나섰다. 당시 이 사건은 내무부 장관이 “13일 안에 범인을 검거하지 않으면 관계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와 함께 ‘전국 4대 강력사건’으로 규정됐다. 경찰은 다른 사건을 이유로 정씨를 연행한 뒤 그를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정씨는 물론, 지인들까지 불러내 고문하고, 정씨 아들까지 불러 허위진술을 얻어냈다. 15년간 옥살이를 하고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된 정씨는 이듬해 고향인 춘천을 떠나 전북 남원으로 내려가 신학공부를 하며 삶을 다시 시작했다.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남원에서 작은 교회와 사슴농장을 운영하며 누명을 씻기 위해 나섰다. 신학교 동문들은 “네가 지금 이대로 죽으면 (사건을 조작한) 그들이 정의가 되는 것 아니냐.”며 정씨를 응원했다. 결국 그는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조사를 통해 당시 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음을 밝혀냈다. 피해자가 정씨의 만화방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과 살해 장소에서 발견된 정씨의 물건 등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재심을 청구해 마침내 2008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옥바라지’를 하며 가족을 돌보던 아내는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됐다. 누명은 벗었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씻을 수 없다. 그는 “무죄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집사람이었다.”면서 “모진 세월을 감내한 아내가 나보다 더 고생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독립운동가 구익균선생 49년만에 ‘北동조’ 무죄

    독립운동가 구익균선생 49년만에 ‘北동조’ 무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구익균(103) 선생이 반세기 만에 북한에 동조했다는 누명을 벗었다. 구 선생은 생존한 독립유공자 중 최고령자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김용섭)는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선고됐던 구 선생 등 통일사회당 사건 관련자 5명에 대한 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반공임시특별법과 데모규제법 제정을 반대한 것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 범주에 포함되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면서 “통일사회당이 주장했던 영세중립화 통일론은 북한의 연방통일안과 유사하다고 할 수 없으며, 이들이 북한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제창한 것도 아니다.”고 판단했다. 구 선생은 현재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대법, 선재성 부장판사에 정직 5개월 징계

    대법원은 19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법정 관리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행위를 한 선재성(49)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정직 5개월의 징계 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대 12개월까지 가능한 정직은 법관에 대한 징계 중에서는 가장 무거운 처분에 해당한다. 선 부장 판사는 현재 휴직 중이다. 앞서 광주지법은 지난 6월 선 부장판사가 광주지법 파산부 재판장 시절 법정 관리 사건 대리인으로 고교 동창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등 일부 행위가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실추시켰다며 징계를 청구했다. 징계위원회는 “선 부장판사가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했다.”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선 부장판사는 고교 동창 변호사를 통해 부인 명의로 주식에 투자해 시세 차익을 남겨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광주지법에서 “선 판사는 애초 부인이 변호사를 통해 회사에 투자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형사 재판과 징계 결정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재판에서의 무죄와 상관없이 정직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선 부장판사가 이번 처분에 불복하면 대법원은 단심으로 징계 처분 취소 여부를 재심의한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法-檢 ‘보석조건부 영장’ 갈등 재현?

    法-檢 ‘보석조건부 영장’ 갈등 재현?

    양승태 대법원장이 구속영장 제도의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이후 법원과 검찰 간의 미묘한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양 대법원장이 영장제도의 변화 필요성을 언급하며 소개한 ‘보석조건부 영장제도’에 대해 검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일축했다. 법원은 “양측 간의 반목으로 비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이지만, 형사소송법상의 불구속수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불구속 수사 원칙은 형사소송법상에 명문화돼 있고, 법원은 이를 원칙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불구속 처리되면 이를 비판하는 국민 시각이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법원이 원칙을 깰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제시한 대안이 보석조건부 영장제도다. 보석조건부 영장제도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검찰이 주장한 영장항고제(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검찰이 상급법원에 재심사를 요청하는 제도)와 함께 논의되던 사법 개혁안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검찰소위가 영장항고제를 주장하자 법원소위는 보석조건부 영장제를 들고 나와 맞섰다. 현 제도에서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법원이 발부 아니면 기각이라는 이분법적 결정만을 할 수 있었다. 검찰은 수사를 위해서는 구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법원은 불구속 수사 원칙과 피의자 인권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나타내곤 했다. 특히 이용훈 전 대법원장 때는 구속영장 발부율이 70%대까지 낮아졌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구속영장 발부율이 낮다.”면서 “불구속으로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범죄를 수사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보석조건부 영장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법원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자 인권 보호 기여 등을 제시했다. 피의자가 구속된 이후 주변인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등의 몰락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단계에서 보석처분을 받으면 구속수사도 보장하고 피의자 인권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검찰은 보석제도가 부유한 범죄자, 화이트칼라 범죄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만큼 결국 돈 있는 피의자가 보석조건부 영장제를 이용하는 ‘유전무죄’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맞받아쳤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과 발부 두 가지인데도 기준이 모호해 수사기관이나 변호인, 피의자 등이 모두 영장 발부 여부를 예측할 수 없어 ‘로또 영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며 “법원이 먼저 발부기준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보석조건이 추가되면 영장 발부가 원칙 없이 뒤죽박죽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용어 클릭] ●보석조건부 영장제도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보석과 같이 보증금, 주거제한, 피해자 접근금지 등 다양한 조건을 부과해 석방하는 제도. 조건을 어길 경우 이미 발부된 구속영장에 의해 구속이 집행된다.
  • 이용훈 대법원장 24일 퇴임…사법부 개혁·과거사 청산

    이용훈 대법원장 24일 퇴임…사법부 개혁·과거사 청산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를 내걸었던 제14대 이용훈(70) 대법원장이 24일 6년 임기를 마친다. 이 대법원장은 무엇보다 사법부의 족쇄로 작용했던 과거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인사청문회에서 “재심 사건이 하급심에서 끝나는데 대법원에 올라와 사법부의 과거에 대해 한마디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사법부 60주년’ 기념식에서 이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으로서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법부 수장이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재심’을 강조했고, 이는 과거사 청산으로 이어졌다.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 죽산 조봉암 선생 무죄 판결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유신시대 악법인 대통령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피의자에 대한 ‘불구속수사 원칙’이 처음 명문화되고 영장실질심사가 필수로 확대되면서 수사상의 인권문제를 크게 개선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사자가 법정에서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구술심리를 강화했고, 공개된 법정에서 공방과 증거를 바탕으로 한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켰다. 배심제와 참심제를 혼합한 형태의 국민참여재판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형사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영장이 수차례 기각되면서 검찰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또한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로 인해 좌편향 논란도 일었다. 한편 이 대법원장은 퇴임하면 변호사로 개업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 대법원장은 “청문회 때 어떤 의원이 퇴임 후 변호사 하지 말라고 해서 영리활동을 하는 변호사는 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사무실을 열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결국 변호사 사무실은 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민청학련’ 최권행 교수 ‘무죄’

    지난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이 확정됐던 최권행(57)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와 백영서(58)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재심을 통해 3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강형주)는 1974년 서울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내란 음모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최 교수와 백 교수 등 4명에 대한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최 교수 등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을 모의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또 보류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또 보류

    국가보훈처가 9일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선정 결정을 또다시 보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이 지난 1월 재심을 통해 조 선생에 대해 무죄 판결을 선고한 것과는 배치되는 결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9일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가 조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조 선생의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898년 9월 25일 인천 강화에서 태어난 조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복역한 뒤부터 광복 때까지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항일 독립운동을 벌였다. 조선공산당 조직에 참가하기도 했던 조 선생은 46년 박헌영에게 충고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며 공산당과 결별한 뒤 제헌의원, 초대 농림부 장관, 국회 부의장을 지냈고 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하기도 했다. ‘평화통일론’을 내걸고 진보당을 이끌며 이승만 대통령과 경쟁해온 조 선생은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처형됐다. 이와 관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9월 조 선생과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을 국가에 권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 1월 52년 만의 재심을 통해 조 선생의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조 선생의 사회주의 행적이나 공산당 활동이 서훈 심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면서도 “다만 독립유공자로 선정하기에는 일제 말기의 부적절한 행적이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족과 시민 단체 등은 크게 반발했다. ‘조봉암 선생 명예회복 범민족추진위’ 조인환(78) 운영위원장은 “국가보훈처가 지난해에는 ‘사법부의 재심 결과가 나오면 그 판단을 존중해 공적 재심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하고는 이번에는 명확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사안은 다르지만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고(故)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에 대해선 복권됐다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해주고, 조 선생에 대해선 번번이 서훈 결정을 미루는 게 과연 형평성을 갖춘 온당한 처사냐.”고 꼬집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50년 만에 무죄

    한국전쟁 당시 있었던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다 반국가행위로 옥고를 치른 유족회 간부가 50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피학살자 유족회를 결성해 활동하다 반국가행위를 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고 김영욱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의 활동이 용공사상에 고취돼 반국가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을 유지했다. 김씨는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유해를 발굴하는 등 4·19 혁명 직후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피학살자 유족회의 활동은 정부 기관장들의 후원금을 받는 등 활발하게 전개됐지만, 5·16 쿠데타와 함께 상황은 반대로 바뀌었다. 군사정부는 김씨를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가 발굴한 유해 중에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된 ‘빨갱이’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씨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 7개월을 복역하고 나온 뒤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2005년 생을 마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조봉암 업적·사상 되짚어 보자”

    “조봉암 업적·사상 되짚어 보자”

    자유당 정권 시절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죽산 조봉암의 사상과 업적을 재평가하는 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죽산 조봉암선생 명예회복 범민족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하는 ‘죽산 조봉암 선생 무죄판결기념 학술 심포지엄’이 15일 오후 2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다. 행사는 지난 1월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52년 만에 무죄 재심 판결을 받은 죽산을 되돌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위원회는 심포지엄에 앞서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그의 업적과 사상을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등이 참석하고,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민 통일연구원 연구원,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발표와 토론자로 나선다. 심포지엄에는 죽산의 헌법·통일·복지에 대한 사상을 짚어 보고, 이것이 현재의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하는 발표가 진행된다. 첫 발표자인 임지봉 교수는 죽산의 사상이 현행 우리 헌법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발표한다. 임 교수는 발표문에서 “현행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은 죽산이 지향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가 반영된 결과”라면서 “죽산은 헌법상 기본권을 중시하면서 현대 민주복지국가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이념에 충실했던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죽산의 복지국가론에 대해 주제발표를 맡은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는 “죽산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고루 잘살도록 하기 위한 한국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무죄판결은 그의 손상된 명예뿐만이 아니라 복지국가 건설의 꿈도 되살리고 있다.”고 밝혔다. 조민 교수는 이어 “현재의 한국사회에서는 죽산이 꿈꾸었던 보편주의 복지국가가 정치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으며, 제도 정치권이 이에 호응하며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오늘날 죽산의 복지국가론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죽산 재심판결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발표를 맡은 이재승 교수는 “과거 법원이 어떤 이유로 죽산에 대해 사형판결을 내렸는지, 또 현재 대법원은 어떤 취지로 무죄판결을 내렸는지에 대한 해명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1959년 대법원이 죽산에게 내린 사법살인은 직업적 실수를 통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美 ‘공천장사’ 철퇴… 前주지사 유죄

    “나는 사실만 들으려고 했어요. 우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배심원 140호)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그 점을 우리가 배심원으로서 해야 할 일과 분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배심원 103호)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막후 거래는 있죠.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러는 것은 금지선을 넘는 행위예요.”(배심원 146호) 미국 국민은 끝내 부패한 공직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27일 라드 블라고예비치(54) 전 미 일리노이 주지사에 대한 연방법원 재심(항소심)에서 무작위 추첨된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 12명(여자 11명, 남자 1명)은 20개 혐의 중 수뢰, 금품강요, 갈취, 금융사기 등 17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했다. 유죄 혐의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공석이 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직을 돈 받고 판 혐의도 포함됐다. 재판장은 오는 8월 선고공판을 열어 형량을 선고한다. 이 사건은 대법원 재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면 블라고예비치는 바로 교도소로 들어가야 한다. 산술적으로는 최대 300년 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나,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10년 안팎의 형을 예상한다. 지난해 8월 첫 재판(1심)에서 배심원단은 증거 부족과 블라고예비치의 현란한 말솜씨에 밀려 연방수사국(FBI)에 허위진술한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유·무죄 판단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검찰이 블라고예비치의 범죄 발언이 녹음된 기록 등을 제시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변호인은 “녹음된 블라고예비치의 발언은 단지 생각이었을 뿐 이를 현실에 옮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이미 FBI에 대한 허위진술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블라고예비치의 말을 배심원단은 신뢰하지 않았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고예비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법정을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집에 가서 두 딸(8살, 14살)에게 이 일을 설명해야겠다.”고 말했다. 패트릭 피저럴드 검사는 “5년 전 전임자가 부패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을 때 배심원단은 더 이상 부패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인데 블라고예비치는 그것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블라고예비치의 전임자인 조지 라이언 전 일리노이 주지사는 6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블라고예비치를 포함해 1973년 이후 4명의 주지사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일리노이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복마전’으로 꼽힌다. 현 주지사인 패트 퀸은 “더 이상 주지사가 감옥에 가지 않도록 정부를 개혁하라는 사명으로 새기겠다.”고 했다. 공화당 소속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 마크 커크는 “오늘 평결은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경고”라고 했다. FBI 시카고 지국장 로버트 그랜트는 “미국의 사법 정의는 느리지만 결국 진실을 찾는다.”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무죄’ 조봉암 선생 유족 국가에 137억 손배 소송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죽산 조봉암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3일 죽산 조봉암 선생의 유족 조호정씨 등 4명은 국가를 상대로 총 137억 4200만원을 배상하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아들 조규호씨는 71억 9300만원을, 딸 조호정·조임정·조의정씨는 각 21억 8300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육군특무부대·경찰·검찰의 불법수사, 불법적인 공소제기, 법원 판결, 사형 집행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야만적인 불법행위가 일어났다.”면서 “이로 인한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 등을 배상하라.”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 3부는 조봉암의 유족에 대한 형사보상금을 1억 2700만원으로 결정했다. 형사보상은 구속 재판을 받은 뒤 무죄가 확정되면 구금일수만큼 보상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1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진보당의 당수로 북한과 내통해 평화통일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처형된 조봉암(1899~1959)에 대해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1959년 7월 31일 조봉암이 사형된 지 52년 만의 판결이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전 재산 29만원뿐?… 전두환, 600만원짜리 항소장 제출

    전 재산 29만원뿐?… 전두환, 600만원짜리 항소장 제출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밝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인지(印紙) 600만원짜리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16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80년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한 이신범·이택돈 전 의원에게 10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지난 8일 항소했다. ●‘이신범·이택돈 10억 배상’ 불복 전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을 지낸 이학봉씨와 공동으로 항소장을 제출했으며, 인지대금은 608만 2500원이다. 법원 관계자는 “두 사람의 대리인이 납입했기 때문에 누가 돈을 낸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前의원, 이학봉씨 집 경매 신청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당시 정권을 잡기 위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후 조종, 내란을 음모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돼 이듬해 1월 사형을 확정판결받은 사건을 말한다. 두 전 의원은 각각 징역 12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옥살이하다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이들은 불법행위로 고통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전 전 대통령과 이씨,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지난달 17일 법원은 “피고들이 연대해 이신범 전 의원에게 7억원, 이택돈 전 의원에게 3억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두 전 의원은 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10억원의 지급을 임시 집행할 수 있다는 판결에 따라 이씨가 소유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주택에 대해 16일 부동산 강제경매를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따로 파악된 재산이 없어서 별도의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DJ 내란음모 사건 복역피해 이신범·이택돈에 10억 배상”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 이건배)는 17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계엄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한 이신범·이택돈 전 의원에게 국가와 전두환 전 대통령, 이학봉 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단장이 연대해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합수부 수사관이 이들을 강제 연행해 고문과 구타, 욕설, 협박을 동반한 수사를 하고, 이 과정에서 이택돈 의원이 사퇴하기도 했으며, 형이 확정돼 복역했는데, 이는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내란음모나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자에 대한 수사라는 직무집행의 외관을 갖춰 일어난 것이므로 전 전 대통령과 이 전 단장은 민법에 따라,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원고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신범·이택돈 전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각각 징역 12년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4년 재심을 통해 내란음모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이후 재심을 청구했고, 2007년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윤필용 사건 연루 장성에 국가 4억 배상”

    현대사의 주요 권력 스캔들 중 하나인 ‘윤필용 사건’의 연루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거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윤필용 사건은 1973년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형님이 각하의 후계자’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며 윤 사령관과 그를 따르던 장교들이 줄줄이 처벌받은 사건을 말한다. 당시 보통군법회의는 윤 소장과 육군본부 인사실 보좌관 김성배 준장 등 장성 3명과 장교 10명에게 모반죄가 아닌 횡령, 수뢰, 군무이탈죄 등을 적용해 각각 징역 1~15년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정일연)는 이들 중 진급과 관련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3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김 전 준장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 전 준장과 가족에게 총 4억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육군보안사령부는 가혹한 고문과 협박, 회유 등을 가해 허위자백을 유도했고, 증거 압수 역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국가는 이러한 불법행위로 당사자인 김 전 준장과 가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었다고 인정되므로 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소멸했다는 주장은 허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 전 준장에게는 2억 5000만원, 부인에게 8000만원, 자녀 4명에게 각각 2000만원을 인정했다. 김 전 준장은 16만원가량의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돼 1973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가 2009년 12월 재심을 통해 윤필용 사건 연루자 중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민청학련’ 故 제정구의원 재심 무죄

    1970년대 전국민주청년총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이 36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강형주)는 25일 반국가단체인 민청학련을 구성해 내란을 기도한 혐의로 기소된 제 전 의원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헌·무효인 대통령긴급조치 1·4호가 적용돼 공소가 제기된 이 사건은 무죄다.”면서 “또한 국가를 변란하려는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폭동을 모의·준비한 것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대법관 전원일치 ‘조봉암 재심’ 등 28건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 시절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대법관 전원이 같은 의견을 보인 전원일치 선고는 28차례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선고는 지난해 12월 유신시대 긴급조치 1호를 위헌으로 결정한 판결이다. 법률 등의 위헌심판은 헌법재판소 소관이지만,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긴급조치 1호를 위헌으로 규정했다. 이 대법원장은 “긴급조치가 유신헌법 53조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침해한 만큼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 희생자로 꼽히는 죽산 조봉암(1898~1959)에 대한 재심에서도 대법관 전원이 “간첩혐의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은 무죄이고, 1959년 내려졌던 사형 판결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내려진 “불법 파견 근로자도 2년 넘게 일해 왔다면 직접 고용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도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이었다. 이 판결은 불법 파견이라도 업체가 고용승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었다. 2009년 명예훼손이 명백한 댓글을 방치한 포털사이트에 배상책임을 물은 판결도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포털은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에 대해 당사자에게 삭제·차단 요청을 받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를 삭제하고 유사한 내용이 내걸리지 않게 처리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또 포털이 명예훼손 등에 따른 배상책임을 우려해 지나치게 간섭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포털이 관리해야 할 게시물의 기준을 별도로 제시하기도 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법원 ‘사법살인’ 인정… 죽산 반세기만에 ‘복권’

    법원 ‘사법살인’ 인정… 죽산 반세기만에 ‘복권’

    사법부가 반세기 만에 ‘사법살인’을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는 20일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죽산(竹山) 조봉암(1898~1959)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사형 집행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게 됐다. 재판부는 국가변란 혐의에 대해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결성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 북한의 위장평화통일론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육군특무부대 증인이 상급 법원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없고, 증인의 진술은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특무부대가 증인을 영장 없이 연행해 수사하는 등 불법으로 확보해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보당을 창당한 죽산의 사형은 당시 이승만의 정적 제거 차원이라고 해석한 셈이다. 대법원이 죽산 조봉암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1959년 당시의 사형 선고와 집행이 사실상 ‘사법살인’이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어두운 과거’를 바로잡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사법부의 과거청산 결정판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한편 재판부는 조봉암의 또 다른 혐의인 불법무기 소지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재심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뒤늦게나마 그 잘못을 바로잡고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직접적으로 ‘사과’란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반세기 만의 무언의 사과’라는 분석이다. 독립운동가로 제헌의원과 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 장관 등을 지낸 조봉암은 진보당을 창당하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상했지만, 1958년 간첩죄 등으로 기소됐다. ▲북한의 주장과 같은 평화통일을 정강정책으로 하고 대한민국을 변란할 목적으로 진보당을 결성했다는 것(국가보안법 위반) ▲육군 특무부대 공작요원 양이섭을 통해 자금 원조 등의 북한 지령을 받았다는 것(간첩죄) ▲허가 없이 권총 1정과 실탄 50발을 소지한 것(군정법령 5호 위반) 등이 그가 받은 혐의다. 1심에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지만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이 선고됐다. 1959년 7월 30일 재심 청구는 기각됐고,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죽산의 사형 집행을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행위이자 정치탄압”이라고 규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황희석 변호사는 “반세기 만에 진실을 밝혔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