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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로남불 논란 번진 ‘피의사실 공표 금지’

    내로남불 논란 번진 ‘피의사실 공표 금지’

    대검찰청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재수사 및 출국금지 의혹 수사팀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진상 확인에 나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연일 수사 내용이 담긴 언론 보도를 거론하며 검찰을 질책한 데 따른 조치다. 법조계에서는 “정권에 불리한 수사에만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을 강조하는 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검은 7일 “지난달 26일 전국 검찰청에 지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철저 준수’ 지침에 따라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에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근 김 전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 위법 의혹에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연루된 정황을 검찰이 확인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전날에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법무부와 행정안전부에 2019년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올린 김 전 차관 사건 관련 보고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박 장관은 수사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의심된다며 “장관의 지휘감독권에 기초해 진상을 확인하고 후속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도 박 장관은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혐의 내용이 (언론에) 나오는 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정도까지 온 것”이라며 “대검과 중앙지검의 조치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보도 경위 조사가 수사팀에 대한 외압이 될 수 있다는 비판과 관련해 “수사팀이 떳떳하면 외압으로 느낄 이유가 없다. 수사를 못 하게 하는 발언을 한 적도 없고 인사를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박 장관을 향해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 강조의 모순과 개혁의 현실적 실천을 고민해 달라”고 꼬집었다. 정권에 유리한 사법농단 수사 보도 때는 침묵하고 정권에 불리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나 김 전 차관 수사 보도에만 반발하는 행태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수사와 재판 결과가 진영 논리에 따라 해석되는 여론 형성 구조를 이대로 둔 채 수사 정보만 통제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전 차관 사건 관련 일부 보도의 출처가 자신이라고 밝히며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박준영 “‘피의사실 공표금지’ 사법농단 땐 침묵, 조국사태 땐 강조”

    박준영 “‘피의사실 공표금지’ 사법농단 땐 침묵, 조국사태 땐 강조”

    “권력형 수사 생중계도 문제지만 깜깜이도 문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경고한 것에 대해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원칙 없는 금지’라고 꼬집었다.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한 바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7일 페이스북에 쓴 ‘원칙 강조의 명암’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피의사실 공표 금지의 ‘원칙’은 여러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침묵 또는 강조가 ‘원칙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농단 수사나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여당·법무부·청와대는 침묵했다”면서 “그것은 이 정권에 유리한 보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침묵하던 사람들이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다들 아실 것”이라고 꼬집었다. 각자의 유불리에 맞춰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거나 침묵하는 등 원칙 없이 제도를 운용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관련한 보도 중 일부는 자신이 말한 것도 있지만, 수사팀에서 흘러나온 정보도 꽤 있다고 했다. 보도 중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고 볼 만한 것도 있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정파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적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이를 경고하고 나선 박범계 장관의 우려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했다. 그렇지만 “진보언론 쪽에서 내게 이 문제로 전화를 거의 걸어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며 “권력형 사건 보도에 소극적인 것도 정파적이라 할 수 있다. 피의사실 공표도 문제지만, 관심을 덜 갖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의사실 공표 금지 규정이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만큼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권력형 수사가 생중계되는 것도 문제지만 깜깜이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수사와 재판 결과가 각종 이해관계에 따라 인용·해석되는 구조를 이대로 둔 채 수사 정보만 통제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상적인 개혁의 실천은 보편적 공감, 즉 현실 속에서 진행돼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제주4·3연구소, ‘4·3과 여성2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 출간

    제주4·3연구소, ‘4·3과 여성2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 출간

    “살아야 했기에 삶을 이겨야 했다.” 제주4·3연구소가 4·3 시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구술집 ‘4·3과 여성2,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를 펴냈다.지난해 4·3여성 생활사를 처음으로 기획, 주목을 끌었던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에 이은 두 번째다. 4·3속에서 여성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했으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주체적인 삶의 시간을 살았고, 오늘을 일궈낸 빛나는 존재들이다. 이 책은 10대 소녀시절 4·3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겪었던 6인의 여성들이 어떻게 그 삶을 뚫고 나갔는지를 날 것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4·3과 당시의 삶, 이후의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4·3이 남긴 트라우마, 고통을 이겨낸 삶의 시간들 속에 그들의 정신사를 추출해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가장의 부재, 가족의 부재 속에 자신들이 삶의 주체로 나서 그 공간을 감당하였다. 살아내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작은 배움의 기회마저 멀었던 그들. 시국 탓이었다고 하면서도 70여년 동안 묻어두었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빨갱이”, “폭도” 누명을 벗기 위해 여자도 군인을 가야 했다는 한 여인의 삶에서는 또 하나의 4·3 여성사를 읽을 수 있다. 정봉영(1934년생)은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해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귀향. 마을 이장이던 아버지를 1950년 예비검속으로 잃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고문 후유증으로, 막내 동생은 굶어 죽었다. 6남매의 맏이였던 그는 소녀가장의 삶을 살아야 했다. 가난보다 힘들었던 폭도 가족’이라는 누명. 아버지의 ‘빨간 줄’을 벗기 위해 19살에 여군에 지원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버지 ‘빨간 줄’ 때문에 이미 우리 가족은 ‘폭도’ 가족이 돼버린 거야. 나는 폭도 가족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고.‘내가 군인으로 가서 빨갱이 누명을 벗어야지!’ 그 생각뿐이었어.” 김을생(1936년생)은 제주읍 영평리가 고향으로 4·3당시 열네 살. 집에 불이 붙고 마을이 초토화된 현장을 자신도 겪어야 했으며, 와중에 농사짓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참혹한 고문을 마주해야 했다. 이후 아버지는 대구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다. 4·3 피난처에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남동생을 보살펴야 했다. 2021년 아버지에 대한 4·3행방불명인 재심 재판을 신청,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가시나물서 고지는 멀지 않거든. 긴 소나무들을 비어서 지고 오다보면 억새에 걸려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이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왔어. 어떤 날은 장작해 오면 누가 보면 창피할까봐 집 뒤로 돌아가서 팰 정도였지. 집 뒤에는 큰큰한 토종 복숭아나무 세 개가 있고, 아무도 못 봤거든. 시집가기 전까지 장작 해다 말려서 팔았어.” 양농옥(1931년생)은 제주시 정실마을에서 살다가 9살에 부모가 일하는 일본으로 건너가 16살에 귀향. 4·3시기 아버지 언니 형부 조카를 잃었다. 아버지가 남긴 항아리에 감춘 돈을 밑천 삼아 소녀가장으로 여동생 둘과 삶을 꾸렸다. 60년 대 말 제주를 떠나 성남개발단지 천막생할을 하며 노점 야채상을 시작으로 하숙, 공장 하청 일 등을 하며 자식 4명을 공부시켰다. “살면서 뭐가 제일 부러웠냐면 나는 남이 ‘너 잘못 했어’ 그런 말 듣는 게 소원이었어. 그렇게 부럽더라고. 사람들마다 잘 한다 잘 한다 하는 말, 그게 싫었어. 부모 같으면 잘못한 거 잘못했다고 할 텐데….” 송순자(1938년생)는 4·3당시 용강리에서 살았고, 큰 아버지,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삼촌 등 친인척 여럿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다. 6남매가 흩어져 삶을 살았고,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성담 쌓기에 동원됐으며, 어머니와 함께 가족의 삶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피난과 굶주림에 대한 세밀한 기억을 풀어놓고 있다. 스스로 새끼 꼬아 팔기, 양복점 기술자 등 온갖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나갔다. “부잣집 사람들이 쌀 항아리에 막대기를 놔두면 쥐가 그걸 타고 들어가는 거라. 그럴 때면 옆집 어른이 그 쥐를 잡아줬어. 식탈이 난 동생한테는 그 쥐가 약이었어. 배가 차츰차츰 가라앉는 거라. 4·3 때문에 먹을 거 없고 피난 다닐 때 제일 생각나는 게 이 쥐 먹은 거야.” 임춘화(1947년생)는 대정 출생으로 4·3당시 행방불명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가로 인해 어린시절 친척집에 맡겨졌다. 자신의 이름 대신 “양옥이 사촌 누이”라고 불리며 “감자떡 비누가 고구마로 보이는” 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2021년 ‘징역7년, 목포형무소’ 수형인명부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아버지의 군법회의 재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엄마도 나도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도 힘들 수 있을까요? 우리 외할머니 말씀처럼 시국을 잘못 만난 탓이겠죠. 아버지를 잃은 것도… 어머니와 헤어진 것도… 우리 남편이 보안대에 끌려간 것도… 모두 다 시국 탓이겠죠.” 고영자(1941년생)는 해방 전 어려서 일본에서 가족과 함께 귀향. 4·3을 만나 7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70여년 동안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그는 지난 2020년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유전자 감식을 통해 아버지와 상봉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9살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평생 노동 속에서 살아야 했다. 열네 살에 모슬포 신영물에서 부추, 갈치장사, 열여덟 살에 등짐지고 동네 여인들과 옹기장사에 나서기도 했다. “열여덟 살 나니까 할망들하고 옹기 장살 다닌 거라. 난 옹기 지고 다니고 할망들은 다니면서 팔고. 사람 하나만 보이면 꼭 짐 하나를 팔고 나왔어. 일 못하는 사람은 써주지 않아. 일을 잘해야해. 무조건 일만 잘하면 살 수 있어.”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죽을 것 같은 세월을 버티고 견뎌낸 제주4·3의 여성들은 삶이란 이런 것이다를 말없이 보여준 존재들이었다.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혹한을 이겨내고 살아낸 당당하고 위대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억울함 다 못 풀고 하늘로 떠난 ‘7번방의 선물’

    억울함 다 못 풀고 하늘로 떠난 ‘7번방의 선물’

    파출소장 딸 강간 누명 쓰고 15년 옥살이2008년 재심서 36년 만에 무죄 받았지만시효 10일 지나 소송 이유로 배상 못 받아“억울함을 다 못 풀었지만,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당시 9세)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87)씨의 장례식이 30일 경기 용인 평온의숲에서 열렸다. “억울함 때문에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 것 같아 모질게 생명을 이어왔는데…이제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고 2008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직후 소감을 밝혔던 정씨는 이날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그는 지난 28일 별세했다. 류승룡 배우 주연의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정씨의 억울한 사연은 49년 전인 1972년 9월 27일 춘천경찰서 파출소장의 9살 난 딸이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강간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만화가게 주인인 정씨는 숨진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 점표가 나오자 체포됐다. 정씨는 조사과정에서 범죄사실을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1973년 강간치상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5년간 복역한 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지만, 정씨의 삶과 그의 가정은 엉망진창이 됐다. 정씨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2001년 10월 기각됐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결백을 호소한 정씨는 2007년 12월 재심 권고 결정을 끌어냈다. 2008년 11월 재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기댄 법원마저 적법 절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했다”면서 “피고인의 호소를 충분히 경청하지 않았던 점에서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정씨와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2013년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는 국가가 정씨와 그의 가족에게 26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6개월’이란 소멸시효가 발목을 잡았다.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 상태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권리가 사라지게 하는 제도다. 정씨는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 10일 뒤 소송을 낸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정씨의 지인은 “억울한 누명과 옥살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원섭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면서 “부디 그곳에서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별세…15년 누명 옥살이 배상 ‘0원’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별세…15년 누명 옥살이 배상 ‘0원’

    15년 누명 옥살이 배상 0원‘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별세국가 상대 손해배상 못 받아소멸시효 10일 지나 소송 제기 이유 “억울함 때문에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 것 같아 모질게 생명을 이어왔는데…이제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당시 9세)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2008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직후 춘천지법 법정을 나오면서 한 말이다. 류승룡 배우 주연의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정씨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억울함 때문에 구천을 떠돌 것 같아 모질게 생명을 이어왔다는 정씨는 30일 모든 장례 절차를 끝으로 비로소 완전한 자유인이 됐다.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SNS에 “사법 피해자 고 정원섭님. 국가배상을 받을 권리마저 억울하게 빼앗긴 아픔 안고 영면에 드셨다”며 “공정한 하늘에선 억울함 없이 편안하게 쉬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군사독재 시절 강간 살인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 정원섭씨는 춘천 파출소장 초등학생 딸 살인범으로 몰려 15년 옥고를 치른 뒤 재심으로 무죄판결 받았다. 1972년 9월 27일 춘천의 한 논둑에서 파출소장의 9세 딸이 강간, 살해당한 상태로 발견됐다. 정부는 이 범죄를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해 경찰에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춘천경찰서는 검거 기한 하루 전 정씨(당시 36세)를 검거했다. 15년간 복역한 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지만, 정씨의 삶과 그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교도소 복역 중 정씨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사망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아내마저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불운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씨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2001년 10월 이마저도 기각됐다. 정씨의 억울함은 영원히 묻히는 듯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결백을 호소한 정씨는 2007년 12월 재심 권고 결정을 끌어냈다.“고문과 증거 조작”…수사관도 정씨에게 사과·재판부도 머리 숙여 정씨는 재심 청구 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력 증거도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2008년 6월 정씨의 재심이 열린 춘천지법 법정에서 그는 자신을 수사한 경찰관들을 다시 만났다. 36년의 세월이 흘러 서로 칠순을 훌쩍 넘겼지만, 이들의 재회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재심 법정의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의 한 수사관은 심문을 마치고 방청석으로 돌아가던 중 증인석에 앉아 있던 정씨를 향해 “죄송합니다”고 말해 술렁이기도 했다. 법정을 나설 즈음 정씨와 당시 수사관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모질었던 시절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결국 그해 11월 재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2012년 5월 18일 형사보상 결정이 확정됐고 정씨는 같은 해 11월 28일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2013년 갑작스럽게 대법원 판례가 바뀌면서 정씨는 국가로부터 아무런 배상을 못 받게 됐다. 재심 무죄판결 확정 후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시작한 경우만 인정하기로 한 새로운 기준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씨는 6개월에서 겨우 10일 넘긴 날짜에 소송했다는 이유로 2심과 3심에서 패소했다. 그렇게 그는 15년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했다. 고인이 된 정씨의 장례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엄수됐다. 장지는 용인 평온의숲 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제주 4·3, ‘완전한 해결’ 위한 화해·상생의 새 여정 시작됐다

    제주 4·3, ‘완전한 해결’ 위한 화해·상생의 새 여정 시작됐다

    4월 제주는 통곡했다. 현대사 최대 비극인 4·3사건으로 4월이면 제주는 슬픔에 빠졌다. 다시 4월이 온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4·3특별법이 개정된 후 처음 4월을 맞는다. 4·3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긴 역사의 어둠에 묻혀 있었다. 오랜 인고의 세월이 걸렸지만 다시 4월을 맞아 화해와 상생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정부 차원의 4·3 진상규명 노력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1999년 12월 16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2002년에는 1715명이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4·3 희생자로 인정됐다.2003년 10월 15일 4·3진상보고서가 확정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과거 국가 권력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2006년 위령제에 국가원수로는 처음 참석,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듬해인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66주년 추념식이 처음으로 국가 의례로 봉행됐다. 하지만 희생자 배·보상과 명예회복 등 4·3 치유와 완전한 해결에는 부족했다. 20대 국회인 2017년 12월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대립에 폐기됐다. 다시 3년여간의 노력 끝에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오는 6월 공포된다. 73년 만에 4·3이 완전한 해결을 위한 전기를 맞았다. 다음달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73주년 4·3 국가추념식은 4·3이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가는 대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제주4·3특별법은 희생자들에 대한 위자료 지급과 수형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 추가 진상조사 등을 담았다. 4·3 유족과 제주도민들의 오랜 바람을 국회가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2014년 국가기념일 지정… 4·3 국가 의례로 이에 따라 정부는 보상이나 위자료 지급 방안 및 재정 지원을 위한 연구용역을 하고 위자료 지급 등의 예산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게 된다. 연구용역이 끝나면 추가 법 개정이나 별도 입법으로 구체적인 위자료 지급 방안이 마련된다. 특별법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던 오영훈(제주시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상의 기준을 한국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의 희생자 및 유족에게 판결로서 지급한 위자료 총액을 평균한 금액으로 제시했다”면서 “위자료 개념상 배상의 용어가 담겨 있고 배상의 용어를 정부가 수용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특별법 개정에 제주4·3 유족회도 화답했다. 유족회는 앞으로 희생자 등에게 지급될 위자료를 모금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유족회는 캠페인을 벌여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모금한 기금을 희생자 추모와 유족 복지, 진상조사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바이든 정부에 공동조사 요구 공개 서한 보내 특별법 개정으로 제주4·3 당시 억울하게 형무소로 끌려간 군사재판 수형인 희생자들은 법무부와 협의해 일괄 직권재심으로 명예 회복이 가능해졌다. 또 일반재판 수형인 희생자는 개별 특별재심을 권고할 수 있다. 3500여명으로 추정되는 행방불명인에 대한 법률적 정리와 더불어 가족관계등록부 정리도 이뤄진다. 특별법 개정으로 제주4·3의 바른 이름(정명)을 찾는 추가 진상조사가 진행된다. 제주4·3은 ‘사건’으로 불리고 있지만 적확한 성격 규정에 맞지 않다고 유족과 학계 등에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국회는 추가 진상조사와 관련해 제주4·3 중앙위원회에 여야가 2명씩 추천한 위원을 추가해 진상조사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도록 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 실질적으로 추가 진상 조사하며 결과는 국회에 보고해 공식 보고서가 발간된다. 4·3평화재단은 제주4·3 초기 미군정의 역할을 조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4·3범국민위원회와 재일본제주4·3유족회, 미주제주4·3유족회준비위원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달 바이든 정부에 공개 서한문을 보내 4·3 공동 조사 등을 요구했다. ●6차 조사, 희생자 1만 4533명·유족 8만여명 개정된 제주4·3 정의는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 발포에 의한 민간인 사망사고를 계기로 저항과 탄압, 1948년 4월 3일의 봉기에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의 해제까지 무력 충돌과 공권력의 진압과정에서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4·3으로 희생된 인명 피해는 적게는 1만 4000명에서 많게는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6차례 희생자 및 유족 신고기간을 운영한 결과 지난해 말까지 희생자 1만 4533명, 유족 8만 452명 등 총 9만 4985명의 4·3희생자 및 유족들이 심의·결정됐다. 지난 23일에는 국가 차원의 제주4·3희생자 및 유족 인정을 위한 심사가 3년 만에 다시 재개됐다. 제주4·3 실무위원회는 이날 7차 심사를 벌여 추가신고한 희생자 75명과 유족 1만 2210명 중 사실조사가 끝난 희생자 3명과 유족 124명을 4·3중앙위원회에 최종 심의·결정을 요청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 갈등이 심했지만 2013년 4·3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 선언을 했다”며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 4·3 피해자와 군경희생자 신위를 함께 안치해 참배하는 등 이념 갈등을 뛰어넘어 4·3이 화해와 상생의 길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순직·전사 2048명…육군은 25년 넘도록 유가족에 알리지 않았다

    순직·전사 2048명…육군은 25년 넘도록 유가족에 알리지 않았다

    전사하거나 순직을 하고도 가족에게 정확한 사망 이유를 알리지 않은 사례가 2000여건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9일 1990년대 후반 전사·순직한 군인 2048명의 유가족을 찾아 전사 또는 순직 결정을 통보하라고 육군에 권고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육군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군 복무 중 숨진 병사자와 변사자의 순직 여부를 재심의해 9756명을 전사나 순직으로 처리하고도 이 가운데 2048명에 대해서는 25년이 넘도록 이를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군 복무중 사망한 A상병의 경우 1996년 재심의에서 순직 결정을 받았지만 육군은 2007년까지 이를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아 모친이 아들의 순직 사실을 알지 못한채 숨졌다. A상병의 순직 결정이 가족에게 통보된 건 모친이 사망한지 4개월 후였다. 육군은 “가족의 주소 불명확, 행정구역 변경 등으로 신속히 통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명했다. 이같은 사례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정관서가 전사·순직자 명부를 비치해 유가족 찾기를 실시하면 육군이 그 결과를 접수해 유가족에게 통보하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권익위는 육군 측에 조속히 유가족을 찾아 전사·순직 사실을 통보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유사한 사례들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권익위는 “순직군인의 유가족을 찾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면서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전사·순직 통보를 받지 못한 유가족을 찾아 그들을 예우하는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군대서 숨진 아들 32년만에 순직 결정…11년간 통보도 안한 군

    군대서 숨진 아들 32년만에 순직 결정…11년간 통보도 안한 군

    사망 43년만에 유가족 통보…어머니는 이미 별세군 “주소 불명확” 해명했지만 기록 정확히 기재돼 군 복무 중 숨진 뒤 단순 사망으로 처리됐다가 순직 결정이 났지만 그마저도 군 당국의 무관심 때문에 제대로 통보받지 못한 사례가 수두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어머니는 숨진 아들이 30여년 만에 순직 처리가 됐는데도 10여년 만에 유가족에 통보되면서 이를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전사·순직 결정을 받고도 유가족에게 통보되지 못한 장병이 총 2048명에 달한다고 29일 밝혔다. 1964년 군 복무 중 사망한 정모 상병은 단순 변사처리됐다가 공무와 관련해 사망했다는 점이 인정돼 1996년 순직 결정이 내려졌다. 6·25전쟁 등의 혼란 속에서 군 장병의 사망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사례가 많자 육군이 1995~1997년 군 내 병사·변사 사례를 재심의한 결과였다. 정 상병처럼 단순 변사 또는 병사 처리됐다가 이를 통해 전사나 순직 결정이 내려진 장병은 9756명에 달했다. 그런데 순직 결정이 내려지고도 정 상병의 유가족에게 통보된 것은 11년 뒤인 2007년이었다. 정 상병의 어머니가 별세한 지 넉 달 뒤였다. 육군은 통보가 늦어진 것에 대해 “정 상병 가족의 주소가 불명확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권익위가 확인한 결과 정 상병의 군 복무 기록에는 유가족의 주소가 정확히 기재돼 있었고, 심지어 정 상병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정 상병 같은 사례가 2048명이나 된다는 것이 권익위 조사 결과다. 권익위가 찾아낸 사례 중에는 조선총독 처단을 시도한 강우규 의사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공을 인정받아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 고 탁명숙 선생의 아들도 있었다. 탁 선생의 아들인 고 현종석 이등중사는 6·25전쟁 중 총상을 입고 숨졌는데, 유족들은 현 중사가 병사한 것으로만 알고 있다가 70년이 지난 뒤에야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권익위는 육군에 순직 장병의 유가족을 찾아 해당 결정을 조속히 통보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육군은 지난달 25일 전사·순직 미통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익위 권고에 따라 유가족을 다시 찾겠다고 했다고 권익위가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임병선의 시시콜콜] 대법 “국정원의 베트남전 학살 정보 공개” 판결 나오기까지

    [임병선의 시시콜콜] 대법 “국정원의 베트남전 학살 정보 공개” 판결 나오기까지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임재성 변호사가 국정원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26일 확정했다. 2019년부터 KBS1 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을 진행해 얼굴이 알려진 임 변호사는 제주 4·3사건 군사재판 재심,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 등도 맡고 있는데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민간인 70여명이 몰살된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공개해줄 것을 2017년 11월 국정원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옛 중앙정보부가 학살 사건에 관련된 소대장 등 3명을 신문한 조서들의 목록을 공개해달라고 했는데 국정원은 안 된다고 했다. 행정소송에서 패소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국정원은 다른 사유를 들어 또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민변은 2019년 3월 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며 다시 행정소송을 내 3년 반 만에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현재 퐁니 마을의 한국군 학살 의혹과 관련해 베트남 여성 응우옌티탄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국군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파병됐는데 민간인 학살은 1968년부터 1970년까지 3년에 집중돼 있다. 1968년 북베트남의 구정공세가 기폭제가 된 것은 맞다. 전장과 마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병사들은 민간인과 베트콩을 구분하기 힘드니 늘 경계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투입됐다. 그 해 2월 해병대 청룡부대가 두 마을 일대에 배치됐다. 퐁넛 마을을 지나던 한 병사가 지뢰를 건드려 발목이 날아가자 70명의 두 마을 민간인을 도륙했다. 어린 아이들도 발가벗겨진 채 숨져 있었고 두 다리를 잡아 당긴 사체도 있었다. 한국군의 학살 가운데 비교적 초기의 사건이었다. 희생자 가운데 남베트남군 친척이 있어 얼마 안돼 남베트남 정부가 항의하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 등 외신들도 다뤄 국제 문제가 됐다. 박정희 정권이나 군 최고 책임자가 엄중히 책임을 물었더라면 그 뒤 조금 줄어들었을지 모르는데 모르쇠로 일관한 것도 모자라 한 술 더 떠 무적 해병, 귀신잡는 해병, 10대 1의 라이따이한 등으로 전과를 부풀리기 바빴다. 언론은 침묵했다. 고 리영희 교수의 책 ‘스핑크스의 코’에는 조선일보 외신기자의 고백이 나오는데 “매일 수없이 죽어가는 무고한 베트남인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매일 우울한 마음으로 신문사를 나서야만 했다. 그리고는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딘가에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정권은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병사가 5000명 전사했는데 여덟 배인 4만명을 살해했다는 식으로 참전 명분을 정당화하기에 바빴다. 사실 9000명은 애꿎은 민간인이었다. 땅굴 등에 숨은 민간인을 베트콩이라며 쏴죽이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다가도 위에서 명령만 떨어지면 표변했다. 현지 말을 할 줄 아는 병사를 미군은 데리고 다니는 반면, 한국군은 애초에 현지인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민감한 시기에 한국전쟁을 겪은 이들은 반공을 앞장서 실천한다는 믿음을 계속 키웠다. 여자들을 강간하고 화염방사기를 쓰기도 했다. 불도저로 밀어 시신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작가 안정효의 ‘하얀 전쟁’에 담긴 내용은 그나마 정제된 내용이었고 실상은 훨씬 잔혹했다.베트남 곳곳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진 이유다. 이름과 나이도 표시돼 있다. ‘T’라고 표시돼 있으면 여자를 뜻하고, 우리로 치면 ‘개똥이’ 이름 옆에 ‘0’이란 나이가 표시돼 있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에 다낭이나 호이안처럼 국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베트남 관광지들이 모두 한국 군인들의 무자비한 만행을 겪은 곳이다. 식당이나 풍광 좋은 곳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우리 젊은이들이 베트남인을 향해 “가난하고 불쌍한 것들”이라고 혀를 차거나 “여자애 하나가 몸 팔아 온 식구를 먹여 살린대” 어쩌구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젊은 나라란 말을 듣는 것도 전쟁통에 워낙 많은 사람이 죽어 그런 것이고, 학교에 화장실이 없을 정도로 궁핍한 것도 전쟁에 산업 기반이 완벽히 무너진 탓이며 우리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는데 2차 가해를 하는 셈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진보정권 책임자들이 사과하긴 했지만 턱없이 모자라다. ‘만대에 걸쳐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베트남 민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엔 한참 모자란다. 개인적으로 베트남을 세 차례 정도 찾아 만난 베트남인들 중에는 꼭 한국군의 잔학함을 거론하는 이들이 한둘 있었다. 사과하면 그들은 알겠다고 답하면서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면 정부와 사회, 국민들의 일치된, 일관된 각성이 필요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확정 판결의 취지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임 변호사는 한발 나아가 해당 문서들의 공개를 요청하기로 했다. 국가정보원이 법원 판결에 수동적으로 응할 것이 아니라 아예 적절한 기회에 전향적, 적극적으로 과거 권부와 군 지휘부의 잘못을 드러내는 문서를 공개하고 사죄하길 기대해 본다. 박지원 국정원장이니 기대해 볼 수 있지 않나? 임병선 논설위원 bsnim@seoul.co.kr
  • 옵티머스 제재심, 정영채 문책경고 중징계

    금융감독원이 사기성 운용으로 고객에 큰 피해를 끼친 옵티머스 펀드의 판매사 NH투자증권 정영채 대표에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금감원은 24일 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해 3차 제재심을 열고 이같은 제재안을 의결했다. 애초 금감원은 정 대표에 대해 3개월 직무정지 징계안을 사전통보했었는데 이보다는 수위가 한단계 내려간 것이다. 문책경고가 확정되면 정 대표는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또 NH투자증권에 대한 기관 제재 역시 업무일부정지 및 과태료 부과의 중징계를 의결했다.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 펀드를 4327억원어치 팔았는데 이는 전체 환매 중단액의 84%에 달한다. 금감원은 NH투자증권이 옵티머스 판매 과정에서 부당권유 금지 의무와 설명내용 확인 의무, 투자광고 절차 등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또, 내부통제 미비 등으로 부실 펀드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자(CEO)인 정 대표의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옵티머스는 안전 자산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부실 기업 사모사채 등을 주로 담았다. 금감원은 옵티머스 펀드 수탁사였던 하나은행에 대해서도 업무일부를 정지하는 중징계안을 의결했다. 징계안은 금감원장 결재와 증권선물위원회 및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처야 최종 확정된다. 한편 금감원은 다음 달 5일 옵티머스 펀드의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는 분쟁조정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옵티머스 펀드가 투자 대상으로 제시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한 결과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땅의 발자취, 느릿느릿… 봄바람 살랑, 쉬엄쉬엄

    땅의 발자취, 느릿느릿… 봄바람 살랑, 쉬엄쉬엄

    경북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관내 일부 지역만이 아니라 군 전역이 그렇다. 지질공원에 관한 한, 지형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계절은 겨울이다. 온 산하가 헐벗을 때라야 감춰진 풍경들이 온전히 드러난다. 여기에 눈이라도 살짝 덮이면 금상첨화다. 나뭇가지에 애기 손톱만 한 이파리가 파릇파릇 돋아나는 초봄도 겨울 못지않게 좋다. 살풍경한 단색조의 지형들이 이때 비로소 생동감 넘치는 풍경으로 변한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이 계절에 청송을 찾은 건 이 때문이다.청송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지정된 건 2017년이다. 꽃무늬를 드러내는 돌(구과상 유문암) 가운데 단연 세계 최고로 꼽히는 ‘청송꽃돌’이 큰 몫을 했고,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두꺼운 화산재층으로 구성된 주왕산 기암 단애, 신성계곡 일대의 퇴적암층 등이 힘을 보탰다. 4년마다 재심의를 하는 유네스코 규정상 올해 다시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여전히 ‘자연학습장’으로서 지위 변동은 없다. 청송 전역이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인증한 슬로시티이기도 하다. 그러니 두 국제기구가 주목한 청송의 아름다움에 공감하려면 ‘지질 명소’들을 ‘느리게’ 돌아봐야 할 터다. 사실 지질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몇 해에 걸쳐 공부해도 알기 어려운 걸 한나절 걸음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시간들을 상상할 수는 있다. ‘땅의 역사’와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지질공원을 찾는 값어치는 충분히 하지 않을까 싶다. 청송의 지질명소는 모두 24곳이다. 9곳이 몰려 있는 주왕산 권역과 4곳의 지질명소를 순환하는 ‘녹색길’이 조성된 신성계곡 권역 등이 핵심으로 꼽힌다. 주왕산 권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탐방로는 주왕산 입구에서 용추폭포까지 왕복 5.8㎞ 구간이다. 3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다. 휠체어도 오갈 수 있는 무장애길로 조성됐다. 주왕산은 화산 폭발로 형성된 다양한 지질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공룡들이 뛰놀았던 중생대 백악기 때 주왕산은 화산 활동이 왕성한 곳이었다. 주왕산 일대에 500m 이상 쌓인 화산재는 단단하게 굳어 응회암이 됐고, 식는 과정에서 부피가 수축하고 암석이 떨어져 나가(절리)며 폭 150m에 달하는 웅장한 형태의 암벽을 이루게 됐다. 지질명소 1경으로 꼽히는 기암단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기암(旗巖)은 중국 당나라에서 신라로 도망쳐 온 ‘주왕’의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당시 신라 장수 마일성 등은 당나라의 요청으로 반역에 실패한 주왕을 잡은 뒤, 주왕산 첫 봉우리(巖)에 깃발(旗)을 꽂았다. 그곳이 바로 기암단애다. 기암단애와 어우러진 절집 대전사를 지나면 암석 속 파편이 후추처럼 보인다는 주방천 페퍼라이트, 다양한 주상절리와 만날 수 있는 연화굴, 수직 절리가 발달한 용추협곡, 3개의 하식 동굴이 있는 용연폭포 등이 줄줄이 펼쳐진다. 주방천 계곡과 이웃한 절골협곡 방면에도 주산지, 급수대 주상절리 등의 명소가 있다. 다만 편도 20~30분 거리의 주산지를 제외하면 서너 시간 넘게 소요돼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기암단애 건너편엔 노루용추 계곡, 달기약수 등이 있다. 주왕산 자락에 있긴 해도 입구는 다르다. 월외탐방안내소를 거쳐 올라야 한다. 노루용추 계곡은 크고 작은 폭포와 폭호가 발달한 곳이다. 핵심은 높이 11m에 달하는 달기폭포다. 월외탐방안내소에서 왕복 2시간 안팎이 걸린다.신성계곡 권역은 풍화와 침식, 융기 등 지질작용이 만든 퇴적암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질명소 4곳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녹색길’도 조성돼 있다. 전체 길이는 12㎞, 세 코스로 구성됐다. 1코스 들머리는 방호정(감입곡류)이다. 하지만 걷지 않고 드라이브스루로 지나는 관광객이라면 청송 시내에서 가까운 백석탄부터 둘러봐도 무방하다.방호정(方壺亭)은 1619년 조선 광해군 11년에 방호 조준도가 어머니의 묘를 볼 수 있는 절벽 위에 세운 정자다. 절벽 아래로는 길안천이 뱀처럼 휘돌아 흘러간다. 이를 ‘감입곡류’(嵌入曲流)라고 한다. 구불구불 휘어진 강물(曲流)이 흐르다 조각칼처럼 하천 바닥을 파내(嵌入)며 만들어졌다.방호정 맞은편엔 신성리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있다. 경남 고성 등에서 흔히 보는 화석지와 달리 비스듬하게 경사진 산자락에 형성된 게 이채롭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청송을 할퀼 때 발생한 산사태로 산 사면을 덮고 있던 퇴적층이 미끄러지면서 화석층이 드러났다.방호정에서 4㎞ 남짓 떨어진 곳엔 만안자암 단애가 있다. 만안 지역에 있는 붉은 바위(紫巖) 절벽(斷崖)이란 뜻이다. 철 성분이 많이 포함된 암석이 산화되면서 중국의 적벽처럼 붉은빛을 띠게 됐다. 신성계곡의 절정은 백석탄이다. 말 그대로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개울’이다. 냇가엔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깎고 다듬은 흰 바위들이 널려 있다. 돌에 함유된 성분에 따라 희다 못해 푸른 빛이 감돈다. 항아리 모양의 오목한 구멍이 뚫린 바위도 있다. 이를 포트홀이라 부른다. 포트홀은 물이 오랜 세월 동안 소용돌이치며 깎아낸 흔적이다. 요강만 한 바위 구멍에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인지 가늠조차 어렵다.청송의 자랑인 꽃돌은 청송군수석꽃돌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꽃돌이 전시돼 있다. 실내공간이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재개관했다. 주왕산관광단지 안에 있다. 청송 여정에서 꼭 찾아야 할 곳 하나만 덧붙이자. 야송미술관은 한국화가인 야송 이원좌(1939~2019) 화백의 작품 등을 소장해 전시하고 있는 군립미술관이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여기에 한국 최대 동양화로 꼽히는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가 전시돼 있다. 길이 46m, 높이 6.7m에 달하는 실경산수화다. 야송이 봉화의 청량산을 주제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3년에 걸쳐 그렸다. 워낙 규모가 커 청량대운도만 전시하는 전시관을 따로 뒀다. 그림 왼쪽 하단엔 예의 낙관이 찍혀 있다. 야송이 두 손과 얼굴, 두 발을 동원해 찍은 이른바 ‘오체투지’ 낙관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낙관에 비해 크기가 남다를 수밖에. 하지만 이조차 청량대운도의 높이에 비하면 채 3분의1이 못 된다. 이곳 역시 코로나19로 폐쇄됐다가 지난달 다시 문을 열었다. 글 사진 청송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샛별 출근·주5일 일하는 방송작가…‘무늬만 프리랜서’ 관행깨기 이제 시작

    샛별 출근·주5일 일하는 방송작가…‘무늬만 프리랜서’ 관행깨기 이제 시작

    MBC 뉴스투데이 10년 일한 작가 2명계약 만료 6개월 전 계약해지 통보받아중노위서 부당해고 인정… 복귀 길 열려 보도국 소속 근로계약서 작성률 2%작가단체 “방송계 좁아 목소리 못 내”수년간 MBC 아침 뉴스 원고를 집필해 온 작가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결과가 지난 19일 나왔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일해 온 방송작가가 노동자로 법적 인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23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방송작가도 노동자라는 그동안의 외침이 드디어 받아들여졌다”며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첫 단추”라고 의미를 밝혔다.MBC ‘뉴스투데이’ 작가 2명은 지난해 6월 사측으로부터 계약 만료 6개월을 남기고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프로그램 개편을 위한 인적 쇄신이 그 이유였다. 10년 가까이 매일 새벽 출근해 일해 온 두 작가는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맡아 정규직 노동자처럼 일했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를 각하했다. 하지만 중노위가 재심에서 지노위 결정에 대해 초심 취소 판정을 내리면서 복귀의 길이 열렸다. 방송작가들은 이번 판정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본다. ‘무늬만 프리랜서’인 고용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노동권 보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2001년 대구·마산 지역 MBC 방송작가들이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 소송에서 패소한 지 20년 만의 변화다. 김 지부장은 “작가들 스스로도 퇴직금, 휴가 등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힘든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방송계가 매우 좁고 고용이 불안해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면서 “두 작가의 중요한 문제 제기와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 등 최근 분위기 변화가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방송작가들은 교양, 보도, 예능 등 대부분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업계는 지역 방송사까지 포함해 2만여명으로 규모를 추산한다. 그러나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저조하다. 지난해 12월 방송작가유니온이 보도국 소속 작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5일 이상 출근하는 비율은 82.9%였다. 반면 근로계약서를 쓴 작가는 응답자 100명 중 2명에 그쳤고 39명은 프리랜서 계약인 표준 집필계약서를, 32명은 업무위탁계약서를 썼다고 답했다. 정의당과 방송스태프지부가 지난해 4월 공개한 자료에서도 방송사·제작사와 구두계약을 맺고 일하는 작가는 40.6%였다. 2018년 SBS ‘뉴스토리’, 지난해 12월 KBS ‘저널리즘 토크쇼J’ 비정규직 해고 등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는 만큼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정된 시간에 상시적인 업무를 하고 회사로부터 구체적 업무 지시를 받는다면 정식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 관행이 단시간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지부장은 “방송사들은 ‘쉬운 해고’를 위해 계약서 작성을 꺼려 왔다”며 “행정소송 가능성 등 원직복직까지 길이 험난한 만큼 다른 비정규직들과도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차기 검찰총장 인선 잰걸음…유력 거론 이성윤은 검찰 4차 출석요구 불응

    차기 검찰총장 인선 잰걸음…유력 거론 이성윤은 검찰 4차 출석요구 불응

    국민들이 검찰총장 후보를 추천하는 ‘국민 천거제’가 마무리되며 총장 인선 절차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조만간 총장 제청 대상자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후보를 추려 법무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에 제시할 예정이다. 차기 총장에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유력 거론되고 있으나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의 주요 피의자라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장관은 조만간 국민들이 전날까지 추천한 피천거인과 자체 추천 후보 명단을 1차로 추려 추천위에 넘길 예정이다. 이후 추천위가 적격 여부를 따져 3명 이상의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한다. 장관은 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대통령에게 후보자 한 명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임명 당시 국민 천거가 마감일(2019년 5월 20일)로부터 24일 뒤 추천위(2019년 6월 13일)가 열렸고, 나흘 뒤(2019년 6월 17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임명 제청을 받은 윤 전 총장을 지명했다. 국민 천거 마감 이후 지명까지 한달여가 소요된 셈이다. 현재 차기 총장의 유력 후보로는 친정권 성향의 이 지검장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 지검장이 김학의 사건의 주요 피의자로 수사를 받는 점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최근 수원지검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이 지검장에게 4차 소환 통보를 했지만 이 지검장은 ‘검찰의 강제수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 지검장이 네 차례 출석에 불응하며 검찰의 강제수사 전환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지검장은 자신의 사건에 대한 전속적 관할권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에 이 지검장 사건을 이첩했다가 다시 돌려받은 수원지검이 재차 사건을 이첩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있다. 또 수원지검의 수사팀장은 해당 사건의 공소권이 공수처에 있다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주장도 정면 반박한 바 있다. 이에 검찰이 이 지검장을 직접 기소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는 이 지검장 총장 임명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총장 권한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조 차장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 국면에서 검찰 내부 의견을 담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또 박 장관이 한 전 총리 모해위증 의혹을 대검 부장회의에서 재심의하라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데 대해 전국 고검장 6명을 참석하게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조 차장의 묘수가 심의의 공정성 시비를 불식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외에 차기 총장에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 봉욱 전 대검 차장, 김오수·이금로 전 법무부 차관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임은정 “수사팀 검사 회의 참석에 귀 의심…참담한 심정”

    임은정 “수사팀 검사 회의 참석에 귀 의심…참담한 심정”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부장검사)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재심의한 대검찰청 부장·고검장 확대 회의를 언급하며 “수사팀 모 검사가 온다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고 떠올렸다. 23일 임 부장검사는 SNS에 “재소자 증인의 기소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 법무부 장관이 합동 감찰을 지시한 마당에 너무 노골적인 진행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그럴 거면 민원인 한모씨나 변호인에게도 발언 기회를 줘 공정한 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전날 확대 회의 당시 위증교사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엄희준 부장검사를 부른 것에 대해 “제 수사 지휘에 없던 내용이고 예측 가능성도 없었다”며 “담당 검사를 참여시킨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임 부장검사는 또 “합동 감찰에서 수사팀 검사에게 확인해야 할 질문을 재소자 증인의 기소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할 수 없어 말을 아꼈다”고 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임 부장검사와 엄 부장검사의 질의응답 시간을 줬지만 임 부장검사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검장들과 대검 부장 회의 참석 통보를 받고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법무부 장관의 지휘가 있은 마당에 참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며 “회의에 참석한 이상 회의 결과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참담한 심정으로 공소시효 도과 후 첫 아침을 맞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총장과 조남관 차장에게 역사가 책임을 물을 것이고, 저 역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지만, 사건 실체를 드려다본 검사로서 이런 검찰의 구성원으로 용기를 내어준 몇몇 재소자분들에게 너무도 죄송해 고통스럽다”며 “내일은 좀덜 부끄러운 검찰이 되도록 좀더 많이 분발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재지휘 않겠다” 했지만… 박범계發 ‘검찰개혁 시즌2’ 재점화

    “재지휘 않겠다” 했지만… 박범계發 ‘검찰개혁 시즌2’ 재점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2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 모해위증 의혹을 무혐의로 처리한 대검 확대회의 결정 과정에 대해 대검·법무부 합동감찰을 지시하면서도 “재지휘를 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수사 당시 검찰 수사팀의 재소자 위증교사 의혹 등을 언급하는 등 검찰 직접수사 관행의 대대적인 제도 개선을 예고하며 반격에 나섰다. 이날 언론 브리핑에 나선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은 박 장관이 대검 결정을 두고 “추가 수사지휘를 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해 “(애초) 대검의 결론을 뒤집겠다는 게 아니라 (무혐의 결론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의 이런 입장은 위증교사 의혹 사건의 공소시효가 23일 0시로 만료된다는 점에서 검찰의 불기소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박 장관은 이번 의혹과 관련 재소자 무혐의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검찰의 낡은 수사 관행은 물론 검찰 내 의사결정 구조까지 대대적으로 점검·개편할 방침이다. 박 장관은 이날 공개한 입장문에서 지난 19일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위증한 혐의를 받는 재소자 김모씨에 대해 ‘10대2’의 의견으로 불기소를 결정한 대검 회의에 대해 “절차적 정의를 기하라는 수사지휘권 행사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앞서 박 장관은 대검 측이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의 반발에도 김씨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 내자 지난 1월 28일 취임 이후 첫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대검 부장회의에서 재심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조남관 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은 대검 부장들에 더해 전국의 고검장까지 참여하는 확대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참석자 14명 중 불기소 의견 10명, 기소 의견 2명, 기권 2명으로 마무리됐다. 이에 박 장관은 “이번 회의는 사건을 담당해 온 검사의 모해위증 인지 보고와 기소 의견에 대해 무혐의 취지로 결정한 것이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것이지, 최초 재소자들을 수사했던 검사의 징계 절차를 다루는 회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증언 연습을 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당시 수사팀 검사가 사전 협의도 없이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사지휘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반발했다. 이는 대검이 당일 회의에 과거 재소자를 조사한 엄희준 부장검사를 출석시켜 입장을 들은 절차를 문제 삼은 대목이다. 박 장관은 퇴근길에도 기자들과 만나 “증언 연습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검사를 참여시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엄 부장 출석을 문제 삼은 것은 ‘꼬투리 잡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검 예규인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 7조 2항엔 ‘안건과 관련해 검사나 전문가를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대검 측은 “수사팀 검사가 참석한 것은 위증교사 의혹에 대한 본인의 변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건의 쟁점과 관련해 중요 참고인의 진술 신빙성을 정확히 판단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함이었다”고 반박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수사지휘의 결론이 본인 의도와 정반대로 나오니 사과하는 대신 재심의 과정을 감찰하겠다는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지방검찰청의 한 검사장도 “추가 수사지휘는 아니어도 박 장관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박범계 “합동감찰,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 것”

    박범계 “합동감찰,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 것”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2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검찰청 부장·고검장 회의에 대해 법무부·대검 합동감찰을 지시했다. 무혐의 의결은 수용하지만 재심의가 ‘제 식구 감싸기’로 진행되는 등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강도 높은 감찰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 전 총리 관련 의혹 공소시효는 23일 0시에 소멸해 해당 재소자와 위증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는 당시 수사팀에 대한 사법처리는 할 수 없지만 이를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반면 대검은 곧바로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다”고 반박하면서 추미애 전 장관 시절에 이어 또다시 ‘법검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대검 회의에 대한 박 장관의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대검 부장회의를 통해 다시 판단해 보라는 수사지휘의 취지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협의체에서 사건 내용을 철저히 파악하고, 담당 검사 의견을 진중하게 청취한 후 치열하게 논의해 결론을 내려 달라는 것이었다”고 전제한 뒤 “그런데 검찰 고위직 회의에서 절차적 정의를 기하라는 수사지휘권 행사 취지가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특히 지난 19일 회의에 과거 한 전 총리 수사 관련 재소자를 조사한 엄희준 부장검사가 출석해 진술한 점과 비공개회의 내용이 특정 언론을 통해 유출된 점을 합동감찰 사유로 꼽았다. 박 장관은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합동감찰은 흐지부지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상당 기간 상당 규모로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불만’ 박범계 “합동 감찰, 용두사미로 안 끝나…내 자세 하등 허물 없다”(종합)

    ‘불만’ 박범계 “합동 감찰, 용두사미로 안 끝나…내 자세 하등 허물 없다”(종합)

    “합동감찰 상당시간, 상당규모로 진행할 것”역대 4번째, 현 정권 3번째 수사지휘권 발동무리한 수사 지휘 비판에 “과하지 않아”“담당 수사검사 부른 것 이해할 수 없다” 비판대검 “법리·증거 따른 판단” 반박…감찰엔 협력현 정권 들어 세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2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와 모해위증 의혹 사건 처리 과정에 관한 합동 감찰과 관련해 검찰이 당시 수사팀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리자 “용두사미로 대충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합동 감찰을) 상당한 기간, 상당한 규모로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박 장관의 검찰 수사 관행에 관한 합동 감찰 지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한 전 총리 모해위증 의혹 논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박 장관의 지적에는 합리적 과정을 거쳤다며 반박했다. “모해위증에 집단지성 발휘하랬는데檢 확대고위직 회의도 절차 의문 유감” 박 장관은 이날 오후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퇴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목표는 검찰 특수수사, 직접수사의 여러 문제점을 밝히고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마지막에는 검찰개혁을 위한 제도개선을 하겠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다만 한 전 총리 수사팀에 대한 “징계를 염두에 둔 감찰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 회의에 대한 유감도 거듭 표명했다. 그는 “모해위증 의혹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집단지성을 발휘해달라고 했는데, 확대된 고위직 회의조차도 절차적 정의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현상이 벌어졌다”면서 “그 점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장관은 회의에 당시 수사팀 검사를 부른 것과 관련해 “제 수사지휘에 없던 내용이고 예측 가능성도 없었다”면서 “담당 검사를 참여시킨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검 회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것을 놓고서도 “국가 형사사법 작용에 굉장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검찰개혁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대검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 거쳐법과 증거에 따라 판단한 것” 반박 대검찰청은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 회의를 통한 한 전 총리 사건 논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박 장관의 지적에는 합리적 과정을 거쳤다며 반박했다. 대검은 이날 “합리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오로지 법과 증거에 따라 판단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대검은 또 수사팀 검사가 참여한 데 대해서도 “수사팀 검사가 참석한 것은 본인의 변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요 참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정확히 판단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소 의견을 낸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 등 참석자의 이의 제기도 없었다고 언급했다. 다만 대검은 이날 법무부의 검찰의 수사 관행 개선 관련 입장 발표 후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에서 잘못된 수사 관행에 대한 합동 감찰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정치적 편향성? 법무부 장관으로서 공직자로서 제 자세 하등 허물 없다” 박 장관은 자신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무리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절차적 정의에 따라 다시 살펴보라는 지휘였다”면서 “이 지휘가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역대 네 번째다. 직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두 차례 수사지휘권을 박탈했었다. 이번 수사지휘권 발동에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비판에도 “어떤 편향성이나 법무부 장관으로서, 공직자로서 제 자세에 하등 허물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한 전 총리 사건을 두고 직접수사 관행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에 대해 “일반 국민도 아닌 재소자들이 세 번에 걸쳐 민원을 냈다. 그것이 이 사건의 시발점”이라면서 “6000쪽에 이르는 기록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 문제점이 잘 드러날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검 회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것을 감찰하겠다는 법무부 발표와 관련해선 “특정 언론에 회의 내용이 유출된 것을 감찰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다. 감찰 대상은 폭과 규모가 훨씬 크다”고 답했다.임은정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엔“감찰 배제는 대검 감찰부가 판단” 내부 회의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을 받는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감찰에 참여하느냐는 질문에 “문제 제기가 있다면 언론 유출 부분은 임 검사가 감찰하지 않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임 부장검사가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된 만큼 전체 감찰에서 배제해야 한단 지적에는 “장관이 배제한다, 안 한다고 할 수 없다. 대검 감찰부가 판단하면 좋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한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의 모해위증 의혹 공소시효가 이날 만료되면서 이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이날 “오늘 자정이 되면 한 전 총리 사건은 더는 실체적 부분에 대해 기소 여부를 다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모해위증 혐의 불기소 처분으로 지난 10년여간 논란을 이어온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이 마무리됐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던 재심 가능성도 희박해졌다.대검 “수사팀, 모해위증·교사 혐의혐의 인정 증거 부족” 무혐의 처리 이번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법정에서 증언을 번복하자, 당시 검찰 수사팀이 동료 재소자들에게 증언을 연습시켜 위증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검찰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지난해 4월 한 재소자의 폭로에서 불거졌다. 그는 당시 수사팀이 금품 공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구치소 동료 재소자들을 사주해 한 전 총리에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압박했다는 진정을 법무부에 냈다. 진정 사건을 넘겨받은 대검은 “한 전 총리의 재판과 관련해 증인 2명과 전현직 검찰공무원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검 감찰부에 소속돼 사건을 검토해온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을 이 사건에서 배제한 뒤 미리 정해진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후 박 장관은 사건 기록을 직접 가져가 불기소 처분 과정 및 사건 배당, 실체관계를 검토하는 등 수사지휘권 행사 가능성을 예고해왔다. 그러나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로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검찰이 무혐의로 결론을 내리면서 이날 공소시효를 넘기게 됐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 사건 관련 의혹들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한명숙 사건’ 감찰지시 내린 박범계에 “닭질, 똥볼”

    ‘한명숙 사건’ 감찰지시 내린 박범계에 “닭질, 똥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의 모해위증 의혹 공소시효가 22일 만료됐지만,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검찰 합동감찰에 착수했다. 박 장관은 한 전 총리 사건을 재심의한 대검찰청 부장·전국 고검장 회의와 관련해 “수사지휘권 행사 취지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라고 유감을 밝혔다. 박 장관은 “한 전 총리 사건의 실체적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최초 조사 과정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관행이 부적절했다는 단면이 드러났다”며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관행 전반에 대한 고강도 합동 감찰에 착수했다. 박 장관은 또한 대검 부장·고검장 회의의 ‘불기소’ 결론에 대해서는 “재수사 지휘를 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수용 의사를 표했으나 당시 회의에서도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박 장관이 재심의로 수사지휘한 한 전 총리의 모해위증 사건 의혹과 관련한 13시간30분 동안의 마라톤 회의 끝에 이전과 동일한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 당시 회의에는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전국 고검장 6명, 대검 부장 7명 등 총 14명이 표결에 참여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0명이 불기소 의견을 냈으며 2명은 기소, 2명은 기권 의견을 냈다.박 장관은 “회의는 재소자의 위증 여부를 심의하는 것이지, 최초 재소자들을 수사한 검사의 징계 절차를 다루는 회의가 아니”라면서 “그럼에도 증언연습을 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수사팀 검사가 사전 협의도 없이 회의에 참석했다. 위증 교사 의혹을 받는 검사의 출석은 장관의 수사지휘에도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회의 당일 방대한 사건기록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못하고 보고서와 문답에 의존해서 내린 결론이라면, 조직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검사에 대한 편견,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임에도 재소자라는 이유만으로 믿을 수 없다는 선입견,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6000쪽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전 총리 사건 기록을 박 장관이 직접 보는 사진이 재심의 회의 전에 박 장관의 페이스북에 올라와 논란을 낳기도 했다. 박 장관의 ‘기록’ 사진에 전국 검사들이 미제 사건을 장관실에 가져 가야 한다며 비판했던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감찰 결정에 대해 ‘닭질’이자 ‘똥볼’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 변호사는 “감찰을 하려는 이유는 징계시효 3년을 지난지 한참 넘어 10년된 사건이지만 어떻게든 한명숙 뇌물사건 수사의 문제점과 티끌을 찾아내 검찰을 물먹이고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 무력화 작업의 밑거름으로 쓰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범계는 선거 직전인데 계속 똥볼을 차면 야당을 위한 이적 행위를 하는 것인데 ‘뇌물의 여왕’ 한명숙 구하기에 올인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계속 무리수를 둔다면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에서 성난 민심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수 밖에 길이 없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논란의 불씨 ‘한명숙 사건’ 결국 공소시효 만료로 종결

    논란의 불씨 ‘한명숙 사건’ 결국 공소시효 만료로 종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의 모해위증 의혹 공소시효가 22일 만료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이날 “오늘 자정이 되면 한 전 총리 사건은 더는 실체적 부분에 대해 기소 여부를 다툴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던 재심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한 전 총리의 뇌물·정치자금법 사건은 당시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기획수사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자금 공여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전직 총리를 재판대에 세운 만큼 의혹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당초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한 전 총리는 재직 당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미화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2009년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뇌물 액수·전달 방식 등에 관한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표적 수사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한 전 총리는 1·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2013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다 2010년 4월 1차 뇌물수수 사건의 1심 선고 하루 전 검찰이 별도 혐의로 한신건영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한 전 총리의 2차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 시작됐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를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서자 정치 개입 논란이 일었다. 특히 정치자금 공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재판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직접 건넸다”는 검찰 조사 때의 진술을 뒤집자, 검찰이 사기 혐의 등으로 복역 중이던 한 전 대표를 압박해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씨는 법정에서 “3억원은 한 전 총리 비서실장에게 빌려줬고, 나머지는 로비자금으로 썼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자 약정도 없이 큰돈을 빌려주는 것은 경험칙에 반한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한씨가 번복한 법정 진술을 믿지 않았지만, 직접 돈을 줬다는 검찰 조사 진술도 신뢰할 수 없다며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한씨의 검찰 조사 진술을 신뢰할 수 있다며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한 전 총리는 2015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2년을 복역하고 2017년 8월 만기 출소했다. 한씨는 재판 후에도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네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위증 혐의로 기소돼 2년을 더 복역하고 2018년 출소한 뒤 사망했다. 이후 세간에서 잊혔던 한 전 총리 사건은 지난해 4월 한 전 총리 재판 관련 내용을 기록한 한 전 대표의 비망록이 뒤늦게 언론에 공개되면서 불씨가 살아났다. 여기에 한 전 대표의 구치소 동료들이 검찰이 허위 증언을 사주했다고 진정하면서 모해위증·교사 의혹까지 불거졌다.모해위증·교사 의혹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로까지 이어졌지만, 검찰이 무혐의로 결론을 내리면서 이날 공소시효를 넘기게 됐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 사건 관련 의혹들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22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 모해위증 의혹을 무혐의로 처리한 대검 확대회의 결정과 관련해 “재지휘를 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다만 대검 부장·고검장 확대회의에서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시도 없었고 사전 협의도 없이 의혹의 당사자인 한명숙 수사 검사를 회의에 불러 의견을 듣고, 비공개에 부치기로 했던 회의 결과를 누군가가 특정 언론에 유출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 수사 관행 문제, 이번 모해위증 의혹 사건 처리 과정에 있었던 절차적 문제에 대해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 감찰부의 합동 감찰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제도 개선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자녀 넷 죽인 호주 최악의 여성 연쇄살인범, 알고보니 무죄?

    자녀 넷 죽인 호주 최악의 여성 연쇄살인범, 알고보니 무죄?

    친자녀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18년째 복역 중인 ‘호주 최악의 여성 연쇄살인범’이 무죄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CNN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케이틀린 폴비그(53)는 2003년 당시 친자녀 4명 중 첫 아들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 나머지 세 아이에 대한 살인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0년 형을 선고받았다.네 아이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첫째부터 막내의 차례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첫째는 생후 19일, 둘째는 8개월, 셋째는 10개월, 넷째는 19개월이었다. 모두 만 2세를 채 넘지 못한 채 모두 질식사로 숨졌다. 당시 의료진은 아이들이 모두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비교적 흔치 않은 증후군으로 인한 갓난아기의 사망이 반복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네 아이의 친모인 폴비그는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 폴비그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고, 실제로 자녀 네 명을 차례로 숨지게 한 직접적인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그녀가 네 아이 사망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고, 여기에는 남편이 제출한 폴비그의 일기장이 한 몫을 했다. 넷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폴비그는 당시 일기장에 '나는 아이를 임신 중이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큰 희생이다.(중략) 전에는 이것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적었다. 징역 30년 형을 선고받고 15년 이상을 복역 중이던 2019년, 무고하다는 폴비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새로운 주장이 제시됐다. 카롤라 비누에사 호주국립대 교수가 폴비그에게서 ‘CALM2 G114R’이라는 희귀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해 낸 것.이 유전자는 네 아이 중 두 아이에게 고스란히 유전됐고, 또 다른 두 아이는 해당 유전자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확인됐다. 실제로 연구진이 해당 돌연변이 유전자를 쥐에게 주입하자 간질 증상이 나타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지가 마비돼 숨이 끊어졌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비누에사 교수와 저명한 법의학자 등은 폴비그의 자녀들이 자연사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년 당시 주정부는 재심 요청을 거부했지만 여론은 재심으로 이미 기운 상황이었다. 최근 주 항소법원은 과학자들의 탄원서를 받고 심리에 들어갔다. BBC는 “만약 폴비그의 유죄 판결이 뒤집혀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다면, 이는 호주 역사상 최악의 오심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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