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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찡꼬 심의’ 치밀한 각본 의혹

    ‘서울88’과 ‘환타지 로드’의 심의 통과는 치밀한 사전준비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공진협이 지난해 9월 유기기구의 심의를 시작한 이후 슬롯머신과 빠찡꼬류의 사행성 오락기기가 처음으로 통과됐기 때문만은 아니다.심의 전후 과정에서 로비의 냄새를 풍기는 미심쩍은 부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업계는 물론공진협 내부에서조차 관련 직원과 검사위원,심의위원에 대한 매수설 등 각종소문이 떠도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장 의혹을 사는 대목은 ‘심의 시점’이다.이 오락기기가 통과된 날짜는4월27일.며칠 뒤인 5월부터는 ‘공연법’과 ‘음반·비디오 및 게임에 관한법률’이 시행되도록 돼 있었다.새법이 시행되면 오락기기에 대한 심사 권한은 공진협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넘어가고 미리 허가를 받은 업자는 2년동안 신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업자로서는 성인용과 청소년용으로 구분,심의를 강화한 새법을 피하려면 4월 이전에 심의를 통과해야 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해당 업자가 공진협의 마지막 심의에 때를 맞춰 총력을 기울여 로비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이 주장은 2차 심의에 업체 대표들이 참석,제품 설명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2차심의에 업자들이 참석한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협의회는 그동안 “2차 심의에 참석시켜 달라”는 업자들의 제안을 거절해왔다.로비를 배제하기 위해서였다.그랬던 협의회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인 점은 이해하기힘든 부분이다. 업자들이 재심을 요청하고 필증을 교부받는 과정에서 보여준 ‘서두른 흔적’ 또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해당 업자가 심의 당시 확보해놓은 기계는 단 20대 뿐.그런데도 심의가 통과된 다음날 바로 13,000장의 필증을 교부받았고 며칠 뒤 추가로 5,000장과 3만장을 신청했다.제품이 확보되는 대로필증을 받는 관례와는 큰 차이가 있다. 또 환타지 로드는 부품이 일제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업자가 버젓이 국내 제품으로 신청한 것도 관계자들의 배려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별취재반
  • ‘빠찡꼬 심의’ 公振協간부 개입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가 빠찡꼬와 슬롯머신류의 사행성 오락기기인 ‘환타지 로드’ ‘서울88’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내부 관계자가 업체 관계자와 결탁해 심사위원 등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로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진협은 1차 심의에서 불합격한 기기를 재심의해 합격판정을 내리면 관련규정에 따라 곧바로 1차 심의위원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합격판정 사실을 보름이 지나도록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진협의 한 중간간부는 ‘환타지 로드’와 ‘서울88’에 대한 재심의가 이뤄진 지난 4월27일 동료직원을 불러 심의위원들에게 “환타지 로드는 빠찡꼬류가 아닌 단순한 액정게임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도록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간간부는 또 심의위원인 A씨에게는 “서울88은 슬롯머신류의 오락성게임이 아니며 이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에서 합격판정을 받은 적이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서울88’은 면밀한 검토작업이 생략된 상태에서 허가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진협의 중간간부로 지난해 빠찡꼬류의 오락기기 ‘매직월드’ 심의건 때문에 올 초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 G씨는 배후에 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과시하며 관련부서 직원들에게 “심의협의회에 대한 로비는 끝났다.까불면 그냥두지 않겠다”고 협박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 公振協 빠찡꼬 2차심의 안팎

    2차 심의는 지난 4월27일 열렸다.협의회 위원 14명 가운데 13명이 참석했다.구성은 문화예술계 출신 인사 3명,학계 3명,청소년계 1명,언론계 2명,법조계 1명,사회단체 등 기타 3명이었다.이날 유기기구로 상정된 안건은 모두 7건으로 문제가 된 ‘환타지로드’,와 ‘서울88’만 합격 판정을 받았다. 서울88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이렇게 된 데는 실무자로서 심의에 참석했던 공진협 중간간부의 발언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그는 “서울88은 예전에 한컴산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만국기’라는 게임에 경품제공 기능만 더 해 심의를 받게 됐고,공진협의 전신인 한컴산이 승인을 한 제품에 대해서는 재판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규정”이라고 말했다.그러나확인 결과 당시 한컴산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만국기’라는 게임은 ‘전자’ 영역에 해당하는 게임으로 ‘기타’로 분류되는 서울88과는 다른 종류였다.따라서 서울88은 재심을 받아야 했지만 ‘규정’이라는 말에 위원들은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A위원은“서울88이 ‘포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포카 냄새는 나지 않는다”고 거들었고,B위원은 “서울88은 사행심과는 거리가멀고 빠찡꼬나 슬롯머신은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는 의견을 냈다. 이 덕분에 서울 88은 찬성 9명,반대 1명으로 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와는 달리 ‘환타지 로드’의 심의에는 격론이 벌어졌다.업자들까지 참석시켜 제품 설명을 곁들였다.이날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협의회 심의에 업자들이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반대 의견을 낸 위원들은 “사행성 기구를허용하면 여러가지 형태의 사행성 게임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지만 찬성하는 위원들의 반박을 받았다. C위원은 “이 게임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기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사행 심리를 부추기는 게임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경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행성을 논하기는 어렵다”거나 “머리를 쓰게 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논쟁이 팽팽해지자 진행자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전문심의위원회로 되돌리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D의원은 “협의회도 나름대로 판단 능력이 있다”고 반발했고 3∼4명의 위원이 이에 동조,결국 표결에 붙여졌다.환타지 로드에 대해서는 찬성이7명,반대가 4명이었다. 특별취재반- 1차 심의위원들의 증언 지난 4월20일 ‘환타지 로드’‘서울88’ 등 사행성 오락기기의 1차 심의에 참석했던 검사전문위원 4명은 만장일치로 불가판정을 내렸다. 이들은 청소년들에게 해로운지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 됐다고 밝혔다. A씨 서류상으로는 국내 제작품으로 기록돼 있었다.그러나 내용물은 모두일본에서 유통되는 빠찡꼬류의 기계식 구슬치기였다.몸통과 경품상자를 빼고는 모두 일본제였다. 따라서 2차 심의에서 빠찡꼬류의 일본제품을 통과시킨 것은 말이 안된다.2차심의에서 ‘환타지로드’와 거의 똑같은 빠찡꼬류의 오락기기 ‘해피 데이’는 통과되지 않고 ‘환타지로드’만 통과된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B씨 구슬치기나 빠찡꼬류 등 사행성 오락기기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 원칙에 따랐을 뿐이다.불가판정을 내리기까지기계의 특성,게임의 진행방법,외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특히 기계의 특성 측면에서는 못이 박힌 패널의중간에 센서가 부착돼 이를 통과하면 점수가 추가되는 등 사행성 오락기기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국내 제작품이라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했다.일본식 구슬치기는 내부 패널에 박힌 못의 형태에 따라 확률이 엄청나게 달라진다.국내에서는 확률에 맞출 수 있는 정교한 제작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C씨 원칙대로 처리했다.‘환타지로드’는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빠찡꼬와 같은 것이다.부품명세서를 보면 일본제임을 알 수 있다.그러나 사행성 행위 여부는 또다른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오락기기 자체가 행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사행성이란 단어와 행위라는 단어를 같이 묶어 해석하는 게 옳으냐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특별취재반- 公振協은 어떤곳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는 지난 97년 4월 공연법이 개정됨에 따라그 해 10월 공연윤리위원회(공윤)의 후신으로 출범했다. 96년 10월 영화심의 때 삭제 또는 금지조치를 내리는 행위는 잘못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영화사전심의 위헌 결정이 공진협 출범의 계기가 됐다.공진협과공윤은 운영성격부터가 다르다.공윤이 문화관광부의 산하기구인 반면 공진협은 독립된 기구다. 공윤은 문화관광부의 관리·감독을 받았고 문화관광부장관이 위원을 위촉하며 위원장이나 임원의 임용을 승인했다. 반면 공진협의 위원은 예술원회장의 추천에 따라 대통령이 위촉한다.위원장이나 임원은 위원회에서 호선으로 선출한다.문화관광부장관에게는 승인권이없다. 공진협의 심의기구로는 위원장을 포함,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협의회 밑에 영화 비디오 새영상 유기기구 가요음반 무대공연 광고선전 청소년 등 8개분야를 맡는 소위원회(60명)가 있다.영화 비디오 새영상 등 3개소위원회에는 2∼5명으로 구성된 예심회의가 별도로 있다. 총무부 영화부 비디오부 새영상부 음악광고부 등 5부가 행정사무를 맡고 있으며 직원은 40명 가량이다. 공진협이 문화관광부와 관련이 있는 부분은 예산이다.공연법은 공연·예술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국고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진협은 문화관광부에 공연·예술에 관한 지원금(전체 예산의 20%)을 신청해 국고에서 받는다.예산의 50%는 공진협의 심의 및 추천 수수료로충당되며 30% 가량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공익자금의 성격으로 지원한다. 공진협이 유기기구를 심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보건복지부산하의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의 임직원이 유기기구 심의 등과관련해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심의권은 공진협으로 넘어갔다.공진협의 서기원(徐基源) 당시 위원장은 유기기구의 심의가 공진협의 성격에맞지 않는다며 강력히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반- 서울 종로 사행성오락실 르뽀 4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3가 지하철 역 부근.탑골공원까지 500m 거리 곳곳에는 사행성 오락실 30여곳이 밀집해 있다. 피카디리 극장 근처 ‘P게임천국’을 들어서니 손님들이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슬롯머신류 오락기 ‘트로피’의 기계음이 뒤섞여 혼탁함이 가득했다. “이번은 센터에 스타 두 개입니다.아,23번 손님이 당첨됐습니다.5,000점을 보너스로 드리겠습니다” 오락실 직원의 큰 소리에 맞춰 게임기 버튼을 누르는 손님들의 장탄식과 환호가 반복해서 어우러졌다. 오락실 구석에서 게임에 열중하던 한 30대 남자가 쭈뼛쭈뼛 주위를 살피며카운터 쪽으로 이동했다.손에 들고 있던 7개의 모조 에머랄드 보석을 들어보이며 카운터에게 눈짓을 하자 직원 1명이 남자의 뒤를 따라 나섰다.가게뒤 골목에는 빨간색 쇼핑백을 든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오락실에서 나온남자가 보석을 주자 3만1,500원을 건네주었다. 종로3가 쪽으로 30m 아래에 위치한 ‘F오락실’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목격됐다.카드게임인 ‘파라다이스’를 끝낸 한 20대 남자가 경품을 들고 일어서자 종업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어 카운터에서 현금으로 환전해주었다. 오락실에는 현금 환전이 금지돼 있다.도박 자체가 불법이다. 하지만 오락실에서 내건 5,000원짜리 경품은 오락실밖의 ‘중간상’에게서500원∼1,000원 정도 할인된 가격에 현금으로 교환된다.편법으로도박성 오락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길 건너편 서울극장 근처 오락실에도 이같은 편법 운영이 성행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출입하는 오락실에서도 트로피나 파라다이스,비디오 게임등 사행성 오락기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200여평 규모의 ‘D 게임테크’에는 100여명의 청소년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지만 직원은 두명뿐이었다.청소년들이 사행성 오락기를 사용해도 제지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기계에는‘도박 및 상행위를 하면 형사 처벌을 받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학교를 마친 뒤 바로 오락실로 달려 왔다는 최모군(16)은 “슬롯머신이나카드게임이 테트리스나 스포츠 게임보다 훨씬 재미가 있어 자주 즐긴다”고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찰은 뚜렷한 단속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단속에 미온적이다.공중위생법 시행령에는 오락실의 규모와 운영 등에 대한 규정만 있어오락실의 변칙 영업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빠찡꼬류의 ‘환타지 로드’와 슬롯머신류의 ‘서울88’이 오락실에 등장하면 오락실 자체가 도박장으로 변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듯했다. 특별취재반
  • 빠찡꼬 2만대 허가‘심의 의혹’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가 지난 4월 말 수백억원의 이해가 걸린 빠찡꼬와 슬롯머신류등 사행성 오락기기의 허가를 내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공진협 전문가 심의에서는 만장일치로 불가 판정이 내려졌으나 비전문가가 심사위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재심의에서 표결로 1차 심의결과를 뒤집고 허가 판정을 내려 심의 과정에 미심쩍은 대목이많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오락기시장은 슬롯머신과 빠찡꼬류의 기기에 급속히 잠식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실제로 공진협은 빠찡꼬류 기기 1만8,000대(신청건수는 4만8,000대·대당 300만원),슬롯머신류 기기 2,000대(대당 150만∼200만원)의 허가필증을 내준 상태다. 특히 허가받은 빠찡꼬는 일본제 기기(기계식 구슬치기)로 완제품의 수입이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일제 도박기기가 판을 칠 가능성이 크다. 3일 공진협과 오락기기 제조업체 등에 따르면 공진협 산하 ‘유기기구심의협의회’(2차심의)는 지난 4월27일 1차심의에서 ‘사행성이 짙다’는 이유로 불합격판정을 받고 재심의를 요청한 4∼5건의 오락기기 가운데 사행성 오락기기인 ‘환타지 로드’와 ‘서울88’등 2건의 허가를 일부 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표결로 통과시켰다. 공진협이 98년 9월 유기기구의 심의기능을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로부터 넘겨받은 이후 슬롯머신과 빠찡꼬류의 사행성 오락기기를 허가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빠찡꼬와 슬롯머신 영업은 93∼94년 정·관계 인사가 연루됐던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이 터지면서 사행행위 등 규제및 처벌 특례법이 제정된 이후사실상 전면 금지돼 왔다. 유기기구심의협의회 위원 14명 가운데 11명이 참석한 2차심의에서는 비밀투표를 통해 찬성 7명,반대 4명으로 통과됐다. ‘환타지로드’는 일본제 빠찡꼬인 ‘로드 스타’의 중고품에다 경품상자를 추가한 뒤 이름만 바꾼 것으로 쇠구슬을 이용하는 오락기기이다.‘서울88’은 슬롯머신처럼 릴식 오락기기로 동전을 넣고 일정한 점수를 따면 선물을준다. 게임개발자,전자공학 교수,청소년 문제 전문가 등 6명으로 구성된 공진협의 전문검사위원회는 지난 4월 초 1차심의에서 “환타지로드는 빠찡꼬,서울88은 슬롯머신이나 다름 없는 사행성 오락기기”라며 불합격판정을 내렸었다. 공진협의 유기기구 검사규정 제17조(사행성 간주)는 지나친 사행심을 유발하는 화투 포커 로열카지노 슬롯머신류의 게임과, 오락성은 없고 도박에만이용될 우려가 있는 릴식 짝맞추기 게임 등을 엄격히 규제토록 하고 있다. 1차 심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환타지로드는 일본제 빠찡꼬인 ‘로드스타’를 통째로 들여 온 것”이라면서 “어떻게 재심의에서 통과됐는지 알수 없다”고 의구심을 표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심의에 올라온 오락기기 가운데 환타지로드와 비슷한 다른 업체의 제품은 통과되지 않았다”면서 “특정업체의 오락기기만 통과된 것은 요로에 줄을 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 도박성 오락기 허가 2차심의 문제 없었나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슬롯머신이나 빠찡꼬류의 사행성 오락기기가 허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의혹의 대상이다.시장 자체가 연간 최소 2조원 가량의 잠재력을 지닌데다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는 지난 4월27일 열린 2차심의 과정에서 게임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일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1차 전문가 심의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불가 판정을 받은 문제의 오락기기를 상대적으로 전문지식이 부족한 위원들로 구성된 2차 심의협의회가 주도면밀한 검토 과정도 없이 표결로 허가 판정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나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우선 특정업체의 빠찡꼬 기기만 허가를 받은 것부터가 의심을 사고 있다.지난 4월 초 1차심의에서 불가판정을 받아 재심의대상으로 올라온 기기 중에는 허가를 받은 빠찡꼬류의 ‘환타지 로드’와 같은 일본제 사행성 도박기기도 있었으나 허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심의위원들은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관성과 형평성의 유지가무엇보다 중요한데도 비슷한 게임기기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 것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특정업체의 로비가 최종 판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이와 관련,심의위원 P씨는 “지난 1일 열린 2차심의에서는 환타지로드와 유사한 성격의 일본제 오락기기는 불합격판정을 받았으며 5월25일에는 아예 2차심의가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고 전하고 “이는 4월27일 재심에서 환타지로드와 슬롯머신류인 서울88이 통과된 데 따른내부적인 갈등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환타지 로드의 허가를 신청한 업체가 1차 심의를 받기 며칠 전에 급조돼 등록한 업체라는 점도 의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업체의 대표는 지난해 9월에도 도박게임 ‘매직월드’가 1차심의 때 불합격되자 2차심의에서 통과시킨 전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 시점도 의심쩍은 대목이다.문제의 오락기기가 통과된 날짜는 4월27일로 5월부터 시행된 ‘공연법’과 ‘음반·비디오및 게임에 관한 법률’의시행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신법에 따르면 오락기기에 대한 심사권한은 공진협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넘어간다.공진협으로서는 마지막 심사였던 셈이다.하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예정보다 한달 가량 늦은 오는 8일부터 정식 가동된다. 새로운 ‘음비게법’에 따르면 종합오락실의 전용 바닥면적은 500㎡(130평규모)이상이 돼야 하며 성인용 게임물의 이용공간은 1.3m 높이의 칸막이를별도로 만들어야 하는 등 시설기준이 까다롭다.또 문화관광부나 기초자치단체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따라서 업자로서는 신법의 시행에 앞서 허가를 받음으로써 2년동안 신법의적용을 받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입게 된 셈이다. 특별취재반
  • 公振協 심의 실태

    모든 유기기구는 문화관광부의 유기기구 검사규정에 따라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의 심의를 통과해야 오락장에 설치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오락기기 업체들의 이익단체이자 심의기구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가 심의비리에 연루돼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심의 권한이공진협으로 이관됐다. 공진협의 심의는 1·2차로 나눠 이뤄진다.1차심의는 관련 전문가 6명으로구성된 ‘유기기구 검사위원’들이 하며 매주 한차례 열린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에게도 해로운지 여부를 가리는 게 1차심의의 주된 역할이다. 1차심의에 불합격한 오락기기 업체는 1차심의일로부터 60일 안에 구체적으로 사유를 명시해 서류를 제출하면 유기기구심의협의회(2차 심의위원회·14명)에서 재심의를 받을 수 있다. 2차 심의 대상 유기기구는 사행성 게임인 슬롯머신,빠찡꼬,포커,화투,릴식짝맞추기 게임을 변형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공진협 심의연감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심의를 받은 유기기구 건수는 모두 195건.이 가운데 불합격을 받은 45건(23.1%) 모두가 사행성 게임이다. 유형별로는 빠찡꼬와 유사한 사행성 게임 15건,슬롯머신과 유사한 사행성 게임 13건,포커와 유사한 사행성 게임 5건,기타 12건 등이다. 사행성 오락기기의 경우 1차심의에서 대부분 불합격 판정을 받으며 2차심의를 거치더라도 1차심의의 결과를 뒤집는 사례는 거의 없다. 지난해 9월 모업체가 신청한 ‘매직월드’가 1차심의 때 불합격했다가 2차심의 때 통과됐으나 1차 심의위원들의 거센 반발로 합격이 취소된 일도 있었다. 심의협의회 위원들은 영화 비디오 음반 등으로 세분화된 1차 검사위원들과는 달리 전문적인 식견은 부족하다.위원 14명 가운데 문화예술계 출신 인사가 3명,학계 4명,청소년계 1명,언론계 2명,법조계 1명,사회단체 등 기타 3명이다.위원들은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재심의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법규나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1차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은 ‘환타지 로드’와 ‘서울88’의 오락기기가 2차심의에서 합격한 것도 이같은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별취재반
  • 美의회, 對中 제재조치 착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중국이 미국 첨단군사 기술을 절취해왔다는 내용을 상세히 기술한 이른바 콕스보고서가 25일 발표되면서 미국과 중국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사안을 정리해 상세히 기술한 보고서를 좋아하는 미 의회가 콕스보고서의공개를 시점으로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는 한편 보고서 내용을근거로한 대 중국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회는 행정부의 안보관련조치 미흡을 이유로 샌디 버거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과 빌 리처드슨 에너지부 장관의 문책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은 핵기술보안과 관련 적절한 조치를 내리지 않은데 대한 책임을 물은것이나 두 사람에 대한 책임론 보다도 민주당과 클린턴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정치적 공세측면의 의미도 포함됐다고 보인다. 의회는 또 보고서 공개 직후 즉각 중국 톈안먼사태 10주기와 관련,특별보고서를 채택했는데 내용은 지난 89년 6월4일 민주화를 요구한 시위자들을 군대가 유혈진압한 것을 조사할 것과 중국 사법당국이 내린 제재조치를 재심할것,그리고 중국내 인권상황을 더욱 개선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다분히 중국에 대한 압력을 가하는 것임과 동시에 앞으로 중국 관련 의회행보를 가늠하게 해주는 조치이다.의회가 조만간 중국을 상대로 취할 또다른조치는 바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문제와 최혜국대우 연장문제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윌리엄 데일리 상무장관은 “의회내 중국 비판론자들이 미중교역관계를 안보문제와 연계시키려한다”며 공개적으로 우려하고 나섰으며,미국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최혜국대우는 제재가 가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미언론들은 우려했다. 이 와중에 오는 6월초 중국방문을 계획했던 코언 국방장관의 일정도 연기돼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오폭 이후 관계개선을 모색하던 행정부로서는 움직임을 정지해야만 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게다가 지난 96년 대선당시 민주당에 불법선거자금을 지원한 혐으로 기소됐던 민주당 선거자금 모금책 존 황이 이날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민주당과 백악관은 더욱 곤혹스럽게 됐다.중국으로부터의선거자금유입과 중국의 기술절취에 대한 행정부의 느슨한 조치가 자연스럽게 연계됐기 때문이다.아직 중국은 이렇다할 대응은 하지 않고 있으나 어떤 형태든 대응조치가 나올 경우 미중관계에서 더욱 큰 소리가 나올 공산이 크다. hay@
  • [제2공화국과 張勉]-실패한 내각책임제(24)

    “4·19의거의 영웅인 학생과 전국민은 단순히 정권교체만을 요구하지 않고…정치 자유의 전면적 회복과 사회복지 향상을 위한 정치의 전면적 개혁을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언제든지국민에게 책임지며 국민의 진정한 다수 의사를 현실적으로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4월혁명 후 구성된 ‘국회 내각책임제 개헌안기초위원회’(위원장 鄭憲柱)는 1960년 5월11일 국회에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하면서 개헌의 필요성을이처럼 밝혔다. 당시 개헌을 하려면 재적 222명의 3분의 1(74명) 이상이 동의해 상정한 다음 3분의 2(148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개헌위원회’는 즉시 서명받기에 들어갔다.시작한 지 1시간 만에 175명이 서명해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를 훌쩍 넘어섰다.개헌안 통과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날 개헌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기명(記名)으로 하도록 국회법을 고침으로써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조직적인 반란표를 사전에 차단했다. 공고기간을거친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6월15일 오전 국회 표결에 올라 참가의원 211명 가운데 찬성 208표,반대 3표로 통과됐다.허정(許政)과도정부도오후에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이날자로 새 헌법을 공포했다. 내각책임제 헌법이 확정되자 장면(張勉)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은 “개헌이 독재를 배격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앞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는 데도 철저한 민주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지자 여론은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고 내각책임제를 시행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됐다.“권력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권력에 집중돼 드디어 12년에 걸친 1인독재가 출현했다”는 ‘개헌 제안이유서’의 한 구절처럼 이승만독재가 대통령책임제라는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내각책임제 개헌에는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가 적극 나섰다.자유당은 내각책임제가 되어야 그나마 살아남을 구석이 생긴다는 생각이었다.조병옥(趙炳玉)을 잃어 뚜렷한 대통령 후보를 갖지 못한 구파도 대통령중심제를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 신파는 달랐다.국민이 뽑은 부통령을 지냈고 당 대표최고위원이기도한 장면이라는 걸출한 대통령감이 있었다.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자는 욕심을 낼 만했다. 따라서 신파는 ‘4월혁명의 구호가 정·부통령 부정선거를 다시 하라는 것이니 재선거를 해 대통령부터 뽑자’고 요구했다.4월혁명때 타도의 대상으로지목된 자유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독점한 현행 국회에서 개헌을 다룰수는 없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민주당 신파의 핵심인 주요한(朱耀翰)의원은 헌법 기능을 정지시키고 비상입법위원회를 구성,혁명 주체세력인 학생과 변호사,공명선거위원회,교수단,민주당 등이 주축이 돼 헌정질서를 개편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요구는 내각책임제 개헌을 서두르라는 것이었고 정치권에서는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가 뜻을 맞춰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사태가 이쯤 되자 장면 민주당 대표는 4월28일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나의 지상목표이며 철칙이 독재를 막기 위한 내각책임제 개헌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고 밝혔다.이어 “개헌을 현 국회가 하느냐,새 국회가 하느냐에 관해서는 제론(諸論)이 있으나 나로서는 현 국회가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장면이 ‘현 국회에서의 내각책임제 개헌’ 지지를 밝힘으로써 개헌 추진은급류를 탔다.과정상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4·19에서 두달이 채 안된6월15일 내각책임제 헌법은 발효됐다.또 이 헌법에 따라 7·29총선을 치러제2공화국이 탄생한다. 장면정부가 내각제를 제대로 운용(運用)하려고 애쓴 흔적은 역력하다.먼저내각 운영의 핵심인 국무회의를 오전,오후 매일 두 차례씩 열었다.당일 올라온 안건을 다음날로 미루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따라서 장면총리는 “새벽 2시 전에 취침해본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회고록에서)일에 몰두했고,다른 각료들도 새벽에 나와 밤 늦게 들어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장면은 국회에도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오전에는 민의원,오후에는 참의원’하는 식이었다.송원영(宋元英) 당시 공보비서관은 “사소한 것까지 총리에게 물어대는 것은 난처하기도 했다.더구나 같은 안건이 민의원에서 논의될때와 2∼3일 후 참의원에서 논의될 때는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장 총리와 내각의 노력은 그러나 쉽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내각책임제 하에서의 필수적 요소인 ‘의회에서의 안정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민주당 구파가 권력다툼에 패하자 분당(分黨)해 사사건건 시비를 벌인 것은 물론이고,신파 내에서도 소장파는 야당 행세를 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장면정부는 8개월23일간 집권하는 동안 무려 세 차례나 개각을 해야 했다.하나의 내각이 존립한 기간이 평균적으로 두 달을 조금 넘을 뿐이었으니 일관된 행정을 펴기 어려웠음은 당연했다.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의 월권도 정국안정에 걸림돌이었다.윤보선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라는 내각책임제하 대통령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장면정부에 간섭했다.그리고 그 간섭의 바탕에는 ‘구파의 영수’라는 파당적 시각이 깔려 있었다. 장면을 비롯한 신파 수뇌부의 지도력이 부족한 점도 내각책임제가 제기능을발휘하지 못한 책임의 하나로 꼽혀야 할 것이다. 제2공화국의 내각책임제는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을는지도 모른다.1960년대 초 한국 사회라는 역사적 토대에서 어떤 정부제도가 알맞는지를깊이 있게 따지기에 앞서 국민은 이승만독재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내각책임제를 열망한 면이 없지 않다. 더욱이 자유당의 ‘생존 욕구’와 민주당 구파의 ‘대통령감 부재’라는 정파적 이해가 결탁해 서둘러 추진된 점은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이용원기자 ywyi@-내각제 운영과 폐해 민·참의원 역할구분 없어 비효율적 제2공화국은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정부다.비록 8개월여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각책임제를 실제로 운용했기 때문에 그 제도가 갖는 장·단점을 두루 살펴볼 기회를 제공했다.먼저 제도적인 특성부터살펴본다. 내각책임제에서는 대통령이 상징적인 존재로서 국가원수 지위만을 부여받는다.구체적으로 제2공화국의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지명하는 권리를 비롯해 선전포고 및 외교사절의 신임장 접수,명목상의 국군통수권,사면권 및 계엄선포,훈장·영예의 수여 등을 권한으로 가졌다. 행정권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국무원(國務院) 곧 내각이 맡았다.행정수반인 총리는 국무위원을 임면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무원령(지금의 대통령령)을 선포할 수 있었다.국무원은 총리를 포함해 15명 이내로 구성하되과반수를 국회의원으로 채우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제2공화국에서는 입법부 기능도 크게 강화돼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로 구성됐다.무게중심은 민의원에 두었다.민의원은 총리선출권을 보유해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를 거부할 수 있었다.대통령의 지명이 두 차례 거부되면 민의원 스스로가 총리를 선출하도록 했다.또 국무원을 불신임할 수있었는데 이에 맞서 국무원도 민의원해산권을 가졌다. 상원격인 참의원은 그 정원이 민의원의 4분의 1 이내로 제한됐다.민의원에서 통과시킨 법률을 재심해 수정할 수 있었다.다만 참의원에서 고친 법안의 원안을,민의원이 재표결에서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가결하면 그대로 확정됐다. 이밖에 제2공화국 특유의 제도로는 차관을 정무차관·사무차관으로 나눈 것을 들 수 있다.정무차관은 내각과 의회를 원활하게 연계하는 것이 주임무였으며 정책수립과 기획에 간여했다.장관대신 국무회의에도 참석했다. 장면(張勉)정부는 정무차관을 주로 의원으로 임명했다.조각(組閣)때는 장면총리가 장관의 추천을 거치지 않고 재선 이상의 의원 중에서 직접 뽑았다.법무의 김영환(金榮煥),국방의 박병배(朴炳培) 등 두 정무차관이 무소속이었다. ‘정무차관이 사무차관과 알력만 빚는다’는 이유로 신민당(민주당 구파)의서범석(徐範錫)의원이 1961년 1월 폐지법률안을 낼 만큼 부작용도 있었던 듯하다.정무차관으로 시작해 장관이 된 이로는 윤택중(尹宅重)문교와 태완선(太完善)부흥이 있다.사무차관은 지금의 차관과 비슷한 기능을 했다. 내각책임제·양원제·정무차관제 등 제2공화국 특유의 제도에 대해 당시 현장에서 활동한 인사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고려대 법학과교수 출신인 김영구(金永求)내무부 정무차관(이하 당시 직책)은 “60년대 초 한국 사회는 이같은 제도를 수용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파벌이 많은 데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슈별로도 의견이 엇갈리는 정치 수준에서는 내각책임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장면정부 지도부의 역량이 부족했다고도 지적했다. 김 차관은 의회가 민의원·참의원으로 나뉘었지만 똑같은 법률을 이중으로다루었을 뿐 참의원 고유의 업무는 따로 없었다고 밝혔다.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아지고,원로원격인 참의원이 권리주장만 하려 한 점도 양원제의 폐단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업(金業)국방부 사무차관은 “정무차관이란 자리가 국회만 들락거릴뿐이지 부내에서는 결재 한번 하는 일이 없었다”고 기억하면서 “일본제도를 모방한 것인데 우리 실정에는 필요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용원기자
  • 학술단체협-5·18기념재단 주최 심포지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남겼는가.그리고 5·18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아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학술단체협의회와 5·18기념재단 주최로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는 ‘5·18은 끝났는가’라는주제로 5·18의 의미와 평가,남은 과제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했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사회학과)교수는 “5·18은 우리가 추구한 반외세민족자주화를 통한 해방공간에서의 통일국가 형성의 역사적 계기를 복원한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그러나 어렵게 복원된 계기가 제대로 성숙해 민족통일의 터전을 닦기도 전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미국 중심의 단일패권주의 구축 등 세계사적 전환과 IMF 경제신탁통치라는 내외적 강풍에 의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냉전과 탈냉전,동북아 질서의 변화,제3세계와 미국과의 관계,미국의 이윤축적 방식의 변화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우리의 민족자주화 운동은 숱한 고난을 겪어왔다”면서 “한반도는 특히 미국의 개입 정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5·18을 비롯한 일련의 민주화운동과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로이어진다”면서 “5·18의 민족사적 의의는 한반도의 탈냉전에 기초한 국가통합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루이스 앤 클라크대 랜즈버그(경제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적인 발전에 대한 한국 민중의 투쟁에서 분수령적 사건”이라면서“신군부의 압제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단결해 대항한 민중의 잠재력을 보여준 항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5·18이 ▲한국 엘리트들의 자본주의적 특권보호를 위한 폭압 ▲한국의 민주발전 촉진을 무시한 미국의 정책 ▲민주주의 발전 현실화의 장애물로 나타난 남북분단이라는 교훈과 통찰력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한국정치연구회 정해구(丁海龜·정치학)연구위원은 5·18이 한국의 지배체제에 대해서 갖는 의미에 대해 정리했다. 정연구위원은 한국의 지배체제를 ‘국가적·체제적지배체제’와 ‘정권적차원의 지배체제’로 나누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배체제의 은폐된본질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또 이렇게 드러난 지배체제의 본질은 결국 지배체제의 정당성을 급속히 약화시켜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와 함께 “5·18은 당시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던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지역공동체적 차원의 ‘민중’을 형성시키는 역할도 했다”면서 각 시대별 민주화운동의 예를 들며 한국 민주변혁운동 자체 맥락 속에서의 5·18의의미도 되새겼다. 전남대 나간채(사회학과)교수는 ‘관련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5·18운동의 과제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나교수는 “최근 5·18관련 운동은 유가족과 부상자,구속자 등 5·18 관련단체들이 법인화·통합화하고 기념재단 설립 등을 추진하는 추세”라면서 “5·18관련 책임자 처벌 등을 명시한 96년 ‘5·18재판’을 기점으로 5·18운동의 저항적 투쟁성도 기념사업활동이나 항쟁 정신을 구현하는 시민운동적성격으로 바뀌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5·18운동이 해결해 나가야 할 구조적 측면의 과제로 ▲관련단체들의내부 통합성 강화 ▲지역사회와의 연대성 강화 ▲비합법적·폭력적 방식에서 절차적 민주성을 실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 문제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활동적 측면의 과제로는 ▲진실규명과 과거 청산을 위한 문제 ▲미완의 처벌과 재심 문제 ▲불완전한 보상에 관한 문제 등 미해결 과제와 ▲각종 조형물을 포함한 기념사업 ▲학술연구회나 토론회 ▲5·18관련 사회운동 등을 제시했다. 나교수는 “이러한 모든 과제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5·18을 포함하는광주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5·18의 기본정신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고 변화된 현재의 환경 속에서 인권·정의·자치정신을 발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과제들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 안병욱(安秉旭·국사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민족의 통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서 “한국 역사의 민주적 발전과 민족통일을 위해 꼭 넘어야 할 과제인 미국의 대한(對韓)정책과 한국인들의 대미(對美)인식의 전환문제가 광주항쟁을 통해 어떻게 투영됐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교수는 “민족의 통일로 가는 과정은 또 하나의 변혁운동”이라고 전제하고 “단순히 보편적인 개념이나 이론틀을 내세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자취 속에서 그 구체적 의의를 추구할 때 5·18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남겨진 과제들을 발전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역경을 딛고…]고대에 10억 기증 최병순할머니 육필수기(6)

    재심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사형수든 무기수든 가족이 찾아와 변호사에게 착수금으로 2,000원을 내고 재심 신청만 하면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전쟁통에 이루어진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다. 나도 재심을 신청했지만 돈도 변호사도 없다 보니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공주형무소로 이감돼 1년을 살다가 형기 만기를 4년정도 남기고 서울구치소로 옮겨왔다. 나는 감옥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눈썰미가 좋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척척 일을 해냈다.한번은 형무소에 스웨터를 짜는 기계가 들어왔는데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혀 사흘만에 기계를 다루자 간수장은 내게 총책임을 맡겼다.광목에 물감을 들여 옷을 만들어 간수들과 주변에 나눠주기도했다.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었다.나는 손에 못이 박히도록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만기 2년을 남기고 비보가 날아들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왜 2년을 못 기다리시느냐”며 땅을 치고 울었다.“그 고초를 다 겪고 살아남았는데,아버지를 못뵈다니….” 얼마 안있어 작은 아버지와 삼촌이 면회를 왔다.10년이란 세월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61년 7월17일.잊을 수 없는 날이다.10년 형기를 채우고 서울 서대문 101번지 서울구치소의 붉은 담을 등지고 나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이젠 살아보겠다”는 희망이 있었다.내 나이 46세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인사동에서 내로라 하고 살던 옛적이 아니었다.집은 어디론가 사라졌다.청량리에 있던 삼촌댁에 가보니 다섯식구가 방 한칸에서 지내고 있었다.잠시 그곳에서 기거하기로 했다.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양파장사를 했다.한 포대를 100원에 받아와 종로로 청량리로 장바닥을 돌아다녔다.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돈을 모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식모자리라도 알아보기 위해 예전에 알던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천대를 받았다.‘빨갱이’로 10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사람을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세상이 박해졌다고 한탄했다.자유를 찾았지만정말 비참했다.사기도 당했다.옛날부터 함께 바느질을 하던 친구를 찾아갔더니 같이 살자고했다.삯바느질도 하고,옷장사를 하던 작은 아버지에게서 옷감을 가져다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내 몫을 모두 가로챘다. 어렵사리 남대문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함께 일하는 할머니가 사장집 식모자리를 알선해 주었다.약수동에 있는 사장집에 갔더니 “곱고 얌전하게 생겼는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색을 했다.“일을 잘 할테니 써달라”고 애원했다.사장의 노모가 다른 식모를 구하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다.쌀을 고르려 키질을 했더니 사장 부인이 보고는 칭찬했다.합격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일을 시작했다.옷을 빨고,장작불로 목욕물을 데우고,설거지에 청소까지.2∼3시간쯤 눈을 붙이고 이른 새벽부터 다시 장작불로 물을 끓이고,초·중학교에 다니는 네 아이와 가정교사의 도시락 다섯개를 쌌다.아이들과는 별도로 주인 내외와 시어머니의 밥상을 따로 차려냈다. 일을 시작한 8월18일은 내 생일이었다.
  • ‘1세대 교원노조’ 명예회복 나선다

    4·19 혁명 직후 결성됐다가 5·16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됐던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대한매일 4월13일자 6면 보도)가 39년만에 명예회복에 나선다. ‘4.19 교원노조’의 위원장이었던 강기철(姜基哲·74)씨와 초등교원노조총무였던 김남식(金南植·80)씨는 3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강신옥(姜信玉)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5·16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교사 1,500여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구속하고,복역을 마친 조합 간부들을 보안처분 대상자로 묶어 공민권을 박탈했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다. 강씨 등은 4·19 교원노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당시 노조원들에게 적용됐던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6조의 위헌 여부를 묻는헌법소원과 사회안전법에 의한 보안처분 원인 무효소송을 이달 안에 제기할예정이다.강씨는 자신의 전향서를 허위로 작성한 공무원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도 준비중이다. 강씨는 “교원노조는 4월 혁명 때 목숨을 바친 제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교사들의 열망에서 태동,당시 전국 초·중등·대학 전체 교원의 절반인 4만여명이 가입한 노조였다”고 회고했다.당시 한양대 등에서 문화사 강사로 재직했던 강씨는 7년 동안 복역하고 출소한 뒤에도 15년 동안 보안관찰을 받았다. 이종락기자 jrlee@
  • 햄버거 수준 식사대접 공무원도 받을수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 대법원은 27일 공직자선물금지법을 폭넓게 해석,공직자라 하더라도 가벼운 점심이나 상징적인 선물 등은 받을 수 있다고만장일치로 판시했다. 이에 따르면 연방공무원이나 선출직 공직자가 업무상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작은 선물을 받더라도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뇌물이 아니라는것이다. 이는 공직자들이 마음대로 특혜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공직자도친구나 이웃으로서 정상적인 사회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상식을 회복,공직자가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법률전문가들은 해석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공직자 강연료 및 기타 선물 등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품 기증을 제한하는 다른 법률들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번 판결에 따라 운동경기 입장권을 선물해 마이크 에스피 전 농무장관을사임케 한 한 농업협동조합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입장권이 불법이라면 스포츠팀이 백악관을 방문해 대통령에게 단복을 선물하거나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육부장관에게 학교 모자를 선물하는 것도 모두 불법행위가 된다”고 부당성을 지적했다. hay@
  • 민간인 공무원 특별임용 범위 1∼3급 20%까지 단계적으로

    정부조직법의 최대쟁점인 ‘개방형 임용제’의 폭이 1∼3급 공무원의 ‘20%까지 단계적 확대’로 가닥을 잡았다.국민회의가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의견을 반영,당초 30%였던 정부 안에서 후퇴한 것이다. 국민회의 제 1정조위원장인 이상수(李相洙)의원은 26일 오후 “개방형 임용제를 단계적으로 1∼3급의 20%까지 실시하기로 당내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이날 오전 열린 수석부총무 회담에서 여야 3당은 개방형 임용제의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다만 “일시 대량특채로 인한 공무원 사회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합의했다.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당초 10% 개방을 주장해왔다. 이의원이 밝힌 국민회의의 입장은 정부안과 자민련·한나라당 의견의 절충인 셈이다. 또 개방형 범위도 과장급까지 포함시켰던 정부안을 수정,과장급은 일단 제외하기로 3당 수석부총무간에 합의했다.실무책임자인 과장급까지 포함시킬경우,여파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국민회의는 대통령의 인사권 집중과 장관의 위상 약화를 염려하는 자민련과 한나라당을 의식,단서조항을 달기로 했다.국민회의 장영철(張永喆)의장은 이날 오후 정부조직법 제 7조 5항에 “각부 장관이 중앙인사위원회의 심사결과에 따를 수 없는 경우,재심의를 요구하지 않고 중앙인사위가장관의 의견을 첨부,임용제청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삽입키로 했다고 밝혔다.오전 수석부총무 회담에서는 공무원과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를신설,장관 추천 승진 후보자의 결격사유를 심사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정부 구조조정이란 큰 방향에 어긋나 채택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중앙인사위의 소속 문제에서는 국민회의가 대통령 직속,한나라당은 총리실산하를 주장해 입장차가 여전하다.또 해양경찰청장의 차관급 격상과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재청 승격,청소년보호위의 청소년위로의 확대개편도 평행선을달리고 있다.국가홍보처 신설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해외홍보처로 이름을바꾼다면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회의는 정부의 업무수행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27일 정부조직법을 표결처리키로 했으며 한나라당은 실력저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추승호 기자 chu@
  • [제2공화국과 張勉](16)혁신계의 浮沈/4·19이전의 상황

    4월혁명후 새 세상이 열렸다고 믿은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가 혁신계다.이승만(李承晩)정권 12년 동안 철저히 탄압받은 혁신계 인사들은 ‘4월혁명이 완수해야 할 과업이야말로 혁신세력이 책임진 역사적 과업의 주요한 일부’라고 판단했다.그리고 4월혁명이 열어놓은 정치적 공간에 그들의 활동무대도포함된다고 확신했다. 이 무렵 혁신계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혁신계’로 규정된 제(諸)정치세력의 노선·뿌리가 다양한데다,사회적으로 공인받은 정당으로서 맥을이어온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조봉암(曺奉岩)이라는,카리스마와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인물을 잃은 점도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4월혁명 후 혁신정당 창당은 명망가들의 이합집산에 좌우됐다.첫 단계로 이들은 4월30일 부산에 모여 ‘한국혁신세력집결촉진회’를 구성한다. 이어 통합신당인 ‘사회대중당’을 결성키로 하고 5월17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갖춘다.민주혁신당의 서상일(徐相日)이 대표를 맡고 진보당계의 김달호(金達鎬) 윤길중(尹吉重)과 혁신계 원로인 장건상(張建相) 이동화(李東華) 정화암(鄭華岩) 등이 참여한다. 그러나 통합을 주장하던 혁신세력은 곧 핵분열을 한다.사회대중당이 창당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건상이 혁신동지총연맹을 만들어 갈라서는가 하면 전진한(錢鎭漢) 김철(金哲)의 한국사회당,고정훈(高貞勳)의 사회혁신당 등 군소 혁신계 정당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이같은 분열이 이념이나 정강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장건상 스스로 회고록에서 밝힌 것처럼 “혁신계가 통일되지 못하고 분산된 근본적인 원인은 이론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의 파벌에 의한 것”이었다. 4월혁명을 맞아 혁신계가 창당을 서두른 까닭은 그해 7월29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해 제도권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그런데도혁신계는 통합하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채 후보를 내는 바람에 후보자가 233개 선거구에서 156명에 달했다.혁신정당 후보가 2명 이상 출마해 서로 다툰선거구도 24곳에 이르렀다. 혁신정당에 지식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한 점도 각 당이 나름대로 자신을 가진 요인이 됐다.예컨대 사회대중당은 창당준비 단계인데도 대구 5개 선거구모두에 ‘반(反)이승만독재 투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공천했다. 제헌의원을 지낸 혁신계의 대표주자 서상일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자 혁신계 원로인 이동화,대구매일신문사 주필 최석채(崔錫采),월간 ‘사상계’ 편집위원 출신인 양호민(梁好民),훗날 국회의장을 지내는 김수한(金守漢) 등이 그들이다.부산에서도 역시 독립운동가에 혁신계 원로인 장건상이 혁신동지총연맹 공천으로 출마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사회대중당 공천자 121명 중에서 서상일·윤길중(강원도 원성)·박권희(朴權熙,경남 밀양)·박환생(朴煥生,전북 남원) 등 4명이,한국사회당 공천자 18명 가운데 김성숙(金成淑,남제주)만이 원내에 진출했다.이 5명을 제외한 나머지 혁신계 후보는 전멸한다. 함께 치른 참의원 선거에도 58명이 나서 사회대중당의 이훈구(李勳求,충남)와 혁신동지회의 정상구(鄭相九,경남) 2명만 당선됐다. 혁신계는 이처럼 선거에서 참패한 까닭을 ▲유권자들이 아직도 금력·권력에 영향받는 상태였고(申相楚 주장) ▲혁신계를 공산주의자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반면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교수는 저서에서 “국민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독재적인 지배를 거부한 것이지 반공·보수주의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지도부 거의 전원이 원내 진출에 실패함에 따라 혁신계는 원외 세력으로 남아 장외투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그 와중에서 혁신계는 민주당의 신·구파 싸움과 다름없는 주도권다툼 끝에 갈라서게 된다. 먼저 혁신정당 통합을 목표로 창당을 준비하던 사회대중당은 김달호를 중심으로 한 진보당계만으로 축소 형성됐다.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방조직을 선점(先占)하는 데 성공한 진보당계는 사회대중당 창당을 진보당의 재건으로 여겼다. 이에 반발해 서상일·윤길중·이동화·정화암 등 비(非)진보당계는 김성숙·고정훈과 손잡고 통일사회당을 형성한다.사회대중당은 60년 11월24일,통일사회당은 61년 1월20일 정식 출범한다. 사회대중당과 통일사회당은 혁신정당의 두 기둥으로 떠오르지만 그 성격에는 차이가 있었다.사회대중당이 급진적인 반면 통일사회당은 온건한 서구의민주사회주의에 가까웠다. 사회대중당은 61년 들어 일선조직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民自統)’을 만든 뒤 통일과 한·미관계를 이슈로 대대적인 실력행사를 벌인다.‘민자통’의 통일론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며 북한과의 무조건적인 협력을 주장했다. 이에 견줘 통일사회당은 민자통의 경쟁세력인 ‘중립화통일연맹(中立統聯)’을 지지했다.중립통련은 남북한 전역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해 통일을 이루고,통일된 한국에는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장면(張勉)정부가 반공임시특례법과 데모규제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혁신계는 61년 3월2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대 악법 반대 궐기대회’를 연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시위는 날이 어두워지면서 난동으로 변했고 횃불을 든 시위행렬이 중앙청에서 혜화동까지 서울시가를 누볐다. 횃불시위는 제2공화국 최후의 대규모 시위였다.장면 정부는 곧바로 김달호·고정훈 등 주요 혁신계인사들을 체포한다. 장면 정부하에서 혁신계는 국회 진출에 실패해 장외 세력으로 남게 된다.그들은 급진적인 학생들과 일부 소외계층의 지원을 받아 거리투쟁에 나서지만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5·16쿠데타를 맞아 다시 기나긴 잠에 빠져든다. - 4·19이전의 상황-曺奉岩 중심 진보당 두각 대한민국 출범후 국내 정치무대에서 ‘혁신계’는 항상 소수파 또는 이단이었다.남북에 분단정부가 각기 들어서 ‘6·25전쟁’까지 치른 뒤 이 땅에는‘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우익 정당 아니고는 발붙이기 힘든 것이현실이었다.따라서 이에 속하지 않는 사회주의자,민주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조합주의를 따르는 노동운동가 들을 구분짓지 않고 통틀어 혁신계라고 불렀다. 4월혁명 이전 혁신계를 대표한 지도자는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이다.조선공산당 창당멤버인 조봉암은 1946년 박헌영(朴憲永)을 비판한 서신 ‘존경하는 박헌영 동무에게’를 신문에 발표하고 공산당과 결별한다. 48년 제헌의회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되며 이승만(李承晩)정권에는초대 농림장관으로 참여한다.이어 2대 국회에서 부의장이 된 조봉암은 52년대통령선거에 진보적인 강령을 내걸고 출마해 79만표를 얻는다.비록 이승만의 523만표에는 크게 못미쳤지만 그로서는 정치적 입지를 굳힌 계기가 됐다. 55년 통합야당(민주당) 결성 움직임이 일자 조봉암은 참여를 강력하게 희망하지만 신익희(申翼熙) 장면(張勉) 등으로부터 거부당한다.이에 서상일(徐相日)계와 합쳐 혁신정당인 진보당 창당에 나선다.55년 12월22일의 창당준비위원회에는 조봉암·서상일 말고도 이동화(李東華) 박기출(朴己出) 윤길중(尹吉重) 등이 동참한다. 진보당은 창당에 앞선 56년 3월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부통령 후보에 박기출을 선출한다.이들은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신익희·장면과 야당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이지만 두차례 만에 결렬된다.조봉암이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는 조건으로 ▲부통령 후보를 진보당에 양보하고 ▲집권시 조병옥(趙炳玉)김준연(金俊淵)을 중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진보당 강령 일부를 수용하라고 요구한 것이다.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들이었다. 56년 3대 대통령선거는 신익희가 급서한 가운데 이승만과 조봉암의 싸움으로 진행됐다.결과는 이승만 504만표,조봉암 216만표로 나타났다.이후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에게 실재(實在)하는 위협이 된다. 한편 정·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서상일계가 진보당에서 이탈한다.노선상의차이보다는 대통령후보 선출 당시의 주도권싸움 탓이었다.서상일이 후보로추대받기를 원한 반면 조봉암은 투표로 뽑을 것을 주장했고 선출 결과 부통령후보로 지명된 서상일이 고사해 박기출이 대신 후보가 된 것이었다. 진보당은 56년 11월10일 창당대회를 열어 조봉암을 위원장으로,박기출 김달호(金達鎬)를 부위원장으로,윤길중을 간사장으로 각각 선출했다.정치강령으로 ▲책임있는 혁신정치 ▲수탈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을 내세웠고 특히 ‘공산독재를 배격한다’고 강조했다.서상일계도 57년 10월15일 민주혁신당을 창당해 독립한다.58년 5월의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그해 1월13일경찰은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 전원을 간첩죄 등의혐의로 검거했다. 아울러 자유당 정권은 2월25일 진보당을 등록취소한다. 조봉암은 1심에서 징역 5년을,2·3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북한 지령에 호응해 진보당을 결성하고 10여차례 자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는 판결이었다.대법원이 재심청구를 기각한 다음날인 59년 7월31일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진보당과 비슷한 정강정책을 내건 서상일계의 민주혁신당이 어떤 규제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진보당 사건’의 성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조봉암의 죽음으로 혁신계는 치명타를 입어 4월혁명까지 별다른 활동을 벌이지 못한다. 이용원기자
  • 학습지 채택료 챙긴 교사 해임처분은 징계권 남용

    15만원짜리 중학교 학습교재 한질을 학생들에게 권유하면 교사들은 5만원의 채택료를 받는다.그렇더라도 이를 이유로 교사를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특별7부(재판장 孫智烈 부장판사)는 16일 학생들에게 학습교재를권유하고 H학습지로부터 105만∼155만원의 채택료를 챙긴 金모씨 등 광주 M중의 전 담임교사 3명이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교육자로서의 비위 정도는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해임처분은 징계권 남용”이라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김씨 등은 96년 한질당 15만원인 H학습지를 채택하면 5만원씩을 사례비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받고 가정통신문까지 발송,학생들의 구독을 권유했다. 이에따라 김씨 등 교사들은 1인당 105만∼155만원의 사례비를 챙겼다.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씨 등 교사 10명은 97년 징계위에 회부됐다.징계위는 잘못을 시인한 7명은 정직이나 감봉에 처했지만 시인하지 않은 3명에게는해임처분을 내렸고 이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규제개혁 현장점검-중국인 관광객 유치

    중국이 우리나라를 자유여행국으로 지정한 것은 지난해 5월5일.법무부가 중국인의 제주도 방문에 한해 15일간 무사증(노비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지 20일 만의 성과였다. 중국이 다른 국가를 자유여행국으로 지정한 것은 한국이 처음으로,당시 우리 관광업계는 ‘12억인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큰 기대를 걸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중국 관광객의 입국은 점점 늘고 있다.지난해 4월만 해도중국인 관광객은 단 2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크게 늘어 지난 2월까지 총 2,374명이 제주도를 방문했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실시한 제주도 무사증 입국허용은별 소득이 없다.지난해 4월 법무부 발표 이후 비자 없이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단 한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29일 대한항공은 제주∼베이징(北京)간 정기항공노선을 취항했으나 관광객이 전혀 없어 무기한 휴항에 들어갔다.아시아나항공도 상하이(上海)∼제주간 노선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요가 없어 부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지금까지 불과 6회 운항에 그쳤다.이처럼 중국인 관광 무사증 입국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대한항공 중국팀 관계자는 “양국 정부간에 합의는 있었지만 중국의 경우 지방정부에까지 지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실제로는 중국측에서 여권발급을 꺼리기 때문”이라면서 “당국에 중국정부와 더 구체적인 협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 입국재심담당 李達世씨(39)는 “중국인 관광객들은제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방문하고 싶어해 제주도에 한정된 무사증 입국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여행업계에서는 중국관광 여행업체 지정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중국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정부에 공탁금 3,000만원을 내고 지정여행사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일반여행업협회 崔창우씨(30)는 “유독중국관광 부문만 거액의 공탁금을 현찰로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탁금제도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1일부터 외국인 관광객의 무사증 입국 체류기간이 15일에서 30일로 늘어나는 등 출입국 절차가 완화됨에 따라 다른 외국인의 입국도 조금씩 늘고 있다.자유여행사 朴상현 과장은 “3월 한달동안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이 예전보다 10% 정도 늘었다”면서 “출입국 절차 완화가 어느 정도는효과를 거둔 셈”이라고 말했다. 金載千
  • ‘합주악기 洋琴’ 홀로서기 시도…오늘 국립국악원서 발표회

    합주악기로 주로 사용되는 양금(洋琴) 홀로서기가 시도된다. 종묘제례악과 처용무 기능보유자인 김천흥옹은 제자 김정자(서울대 국악과교수)임재심(원광대 국악과 교수)홍선숙(국악원 단원)이지영(용인대 국악과교수)과 함께 30일 오후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양금발표회를 갖는다. 양금은 유럽에서 들어온 것으로 ‘서양의 금’ ‘구라철사금(歐羅鐵絲琴)’이라고도 부른다.다른 현악기와는 달리 철사줄을 사용,금속성의 맑고 영롱한 음색이 나오며 연주할때는 대나무를 얇게 깎아 만든 채로 줄을 가볍게 내리쳐 소리낸다. 이번 발표회는 김옹이 제자들과 10년만에 마련한 무대.연주곡목은 ‘도드리’‘취타’,양금·가야금 병주로 ‘가곡中 언락·편락’을,철가야금과 아쟁을 넣어 편곡한 ‘천년만세’와 ‘중주곡 27번 -겨울·봄·여름·가을’ 등이다.독주악기로서 양금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02)580-3333.
  • [굄돌] 그 초등 평교사 선생님

    어느덧 천직이라는 교단에 선 지 벌써 30여년이 지나갔다.그 사연 많은 천둥소리 같은 시간 속에 나를 한번 뒤돌아본다.과연 나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선생이었나,있으나마나한 선생이었나,아니면 쓸모없는 선생은 아니었나. 생각하면 할수록 뭉클뭉클 부끄럽기 그지없다. 옛날부터 선생님은 부모님과 같이 우러러 존경했다.더욱이 선생은 자기 자식한테까지도 알려주지 않는 비법의 가르침을 줄 정도로 사제관계가 귀중했다.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제지간의 불상사는 황금만능주의에 치우친 일부 정신 상태를 대변해 준다.선생다운 선생,제자다운 제자가 그리운 세태다. 선생다운 선생 두 분을 소개하고 싶다.전북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에 있는운암초등학교 분교.전교생 18명에 선생님이 3명,그중 1명이 시인 김용택 선생,학생들이 쓴 시를 모아 펴낸 동시집‘학교야,공차자’를 졸업기념선물로전교생에게 한권씩 주었다. 마암분교 학생들이 시를 쓰게 된 것은 3년전 김선생이 이곳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그는 매주 토요일 한 시간씩 아이들에게글짓기를 시켰다.순박한 농촌아이들의 맑은 시심이 김선생과 더불어 지금도 봉숭아마냥 자라고 있다.그는 그렇게 고향에서 분교를 돌며 평교사로 죽비소리처럼 오롯이 자리잡고 있다. 제2건국위원회 TV광고모델 서울 삼광초등학교 이옥례 선생이 49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정년 퇴직했다.이선생은 한평생을 평교사로 지내온 최고참선생이었다.‘교육자로서 원없이 일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는 게 이선생의 퇴임 소감. 조촐한 퇴임식을 가진 뒤 공익광고에 나와 받은 모델료 5백만원을 학교에내놓았다.또 평생 모은 행운의 상징 네잎 클로버를 종이에 붙이고‘세사재심(世事在心)’이라는 낙관을 새긴 뒤 코팅처리한 책갈피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촛불 같은 선생이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숨어있어 인간의 기본이 바로서고,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닐까. [홍희표 목원대교수 시인]
  • 61년 ‘교원노조’사건“명예회복” 재심청구 준비

    5·16 직후 현직교사 1,500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교단에서 추방한 ‘교원노조사건’의 진상규명·명예회복을 위해 당시 교원노조총연합회 대표였던 姜基哲씨(74)가 최근 姜信玉 변호사를 통해 재심 청구를 준비중이다. “40년 가까이가 지난 사건으로 법률적 시효는 이미 지났습니다.그러나 새 세기를 앞두고 지난 역사의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교원노조사건’의 진상규명과 그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1960년 5월 결성된 한국교원노동조합은 최근 합법화된 전교조의 원조격으로 ‘4·19때 희생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한다는 취지로 결성됐다.“자유당시절 교사들이 3·4인씩 조를 짜서 부정선거에 가담한 사례도 있었습니다.학생들의 피로 4·19혁명이 성공하자 교사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싶은 심정이었죠.그래서 교사들이 다시는 비리나 부정을 저지르지 말자는 취지로 결성한 것이 교원노조입니다.” 60년 7월 전국조직을 갗춘 한국교원노조는 한 때 조합원 수가 4만 명에 달했다.당시 초·중·고 교사와 대학교수 등 전체교원 수가 10만명이 채 안됐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규모였다. 한편 5·16 직후 쿠데타 세력은 교원노조 조합원 1,500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체포,교단에서 추방하였다.이들중 간부급 54명은 구속돼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됐는데 이 숫자는 당시 정당·사회단체의 피체자 가운데 가장 많은숫자였다.이들은 혁명재판에 회부돼 모두 징역15∼10년을 선고받았는데 강씨는 이들 가운데 최고형인 징역15을 선고받고 7년 넘게 복역했다.민주당 정권을 전복한 장본인인 쿠데타세력들이 이들에게 갖다 붙인 죄목은 놀랍게도 ‘민주당 정부전복음모’.그러나 조사결과 혐의사실이 발견되지 않자 다시 ‘간첩사건’으로 몰아 붙였다. “당시는 통일문제를 언급하거나 한미경제협정·2대악법 반대투쟁에 나서면 모두 용공단체로 규정했습니다.당시 교원노조는 강령에서 ‘반공’을 명시했었고 한미경협문제는 거론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2대악법은 노동탄압과 직결된 것이어서 다른 사회·언론단체들과 함께반대운동을 했지요.그런데 그게 ‘이적행위’로 둔갑하더군요” 68년 7년만에 출옥한 그는 정치정화법으로 6년간 묶여 있다가 10월유신 이후에는 보안처분대상자로 분류돼 이후 20년 가까이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3공시절 3선개헌반대 33인준비위원,민주수호국민협의회 기획운영위원,엠네스티한국위원회 이사 등을 지낸 강씨는 그동안 ‘토인비와 문명’등 역사·문명사 관련 저술과 연구에 몰두해 왔다. 강신옥 변호사는 “상식적으로는 재심의 사유가 충분하나 법 논리상 제한점이 많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사건은 역사적·정치적 차원에서 꼭 해결돼야할 역사적 문제”라고 밝혔다.
  • ‘조PD 음반’ 파문

    지난 16일 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가 음반 ‘조PD 인 스타덤’에 대해청소년 유해판정을 내리자 당사자인 조PD(사진)측이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특히 이번 공진협의 결정은지난해 7월 청소년보호법 시행이후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가 첫 심의요청을 낸데 따른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진협의 이번 청소년 유해판정이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음반이 처음 PC통신 등 통신망을 통해 청소년층에 확산된 여세를 몰아 음반으로 제작돼나온데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심의요청에 따른 첫 유해판결이란 데 있다.실제로 지난해 PC통신에 이 음반에 수록된 ‘브레이크 프리’가 올려진뒤 청소년들에겐이 음악이 들불처럼 확산돼 제2의 서태지돌풍을 연상시킬 정도였으며 PC통신 게시판 등엔 이 음악과 조PD와 관련된 글이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올랐다. 결국 가사내용을 문제삼은 청보위측이 심의요청으로 치달았고 공진협 결정과정에서도 “이 노래만 빼면 문제 없을 것이란 주문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공진협과 청보위의 입장은 음반 ‘조PD 인 스타덤’의 수록곡 ‘브레이크프리’에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비속어가 7번이나 들어있고 저속한 표현과 비어가 상당수 포함됐을 뿐만 아니라 내용 자체가 청소년 선도의지를 부정적으로 폄하해 유해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에대해 조PD측은 “노래 전체의 흐름을 무시한채 가사의 일부분을 문제삼는 것은 청소년 보호란 명목아래 창작의 자유를 무시한 처사”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이같은 대립은 PC통신에서도 청소년들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청소년 유해환경 차단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란 주장과 “청소년들의 입장과 생각을 도외시한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는 견해차가 그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PC통신에 오른 글들은 이용자들이 대부분 청소년층인 때문인지 이번 결정을 비난하는 글들이 압도적이다. 청보위는 이같은 결정을 행정자치부에 요청해 관보에 고시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18세 미만 청소년에겐 이 음반을 팔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이에대해 조PD측은 “과거 가사가 더욱 문제가 된 음반도 유통됐다”면서공문을 받는대로 즉시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다.그러나 공진협 재심에선 원심 판결의 적법성을 주로 다루는 만큼 청소년 유해판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따라서 조PD의 음반은 청소년보호법 시행이후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아 유통금지를 당하게 된 첫 사례로 기록됐는데 재심에 따른 음악인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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