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재심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60
  • “기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80년 간첩 혐의로 기소돼 15년을 복역한 신귀영(71)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경찰의 불법감금·가혹행위로 조작한 사건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자 “기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진실은 사필귀정”이라면서 “감옥에 있을 때도 민주주의가 오면 진실은 꼭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힘든 시간을 이겨 왔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금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불편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등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는 “아내가 보험회사 외판원 등을 하며 자식 키우랴, 구명운동하랴 온갖 고생을 다했다.”고 고마워하면서도 “진실화해위의 통보를 받고 가족들에게도 알렸는데 아직 완전히 무죄 선고를 받은 게 아니라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더라.”면서 그간 가족들의 심적 고통이 심했음을 내비쳤다. 고문 당사자인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고백을 하면 용서할 준비가 돼있다. 불법감금을 시인한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 만날 생각이 있다.”고 얘기했다. 부인 황욱희(62)씨는 “생활고는 물론이고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면서 “두 번이나 재심에서 기각됐는데, 이번에 진실화해위의 진실 규명 결정이 난 만큼 이번 재심에서는 꼭 잘 돼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이달 하순쯤 법원에 세 번째로 재심청구를 할 예정이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은 조작”

    1980년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이 경찰의 공작 계획에 따라 조작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외항선원인 신귀영(71)씨 등 일가 4명을 간첩으로 기소해 3년에서 15년간 복역시킨 사건에 대해 조작사건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고, 폭행가혹행위죄와 불법체포죄가 인정되므로 피해자측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경은 1980년 재일교포 신모(81)씨가 조총련 간부라고 단정하고 내사를 벌이다 증거를 찾지 못하자 치안본부장이 승인한 공작 계획에 따라 한국에 사는 가족 신귀영 일가를 불법체포한 뒤 40∼67일간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가해 허위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신귀영씨 등이 가혹 행위와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했다고 1심에서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왔으나 법원이 증거재판주의에 어긋나는 위법한 판결을 내렸고,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는 신귀영 일가를 직접 수사했던 전직 경찰관 6명을 조사한 결과 대체로 신씨 일가를 불법감금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전직 B경사는 “신귀영 일가에게 뭉둥이를 써 가혹행위를 하고 물고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며 전기고문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고 진실화해위가 전했다. 진실화해위는 80년 부산지검이 이 사건을 송치받아 형식적인 수사절차만 거쳐 기소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공익의 대표자로서 직무를 버린 처사이고, 법원은 허위 조작 개연성이 높은 상태에서 중형을 선고하고 상소를 기각했다고 지적했다. 또 신귀영씨 등이 두 차례 재심을 청구했을 때 1심에서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으나 대법원이나 부산고법에서 결정을 뒤집은 것은 오판을 시정할 기회를 저버린 처사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재일교포 신씨의 동생인 신귀영씨와 신복영씨, 사촌처남 서성칠씨, 오촌아저씨 신춘식씨 등은 외항선원으로 65∼79년 일본을 왕래하면서 군사기밀을 탐지한 혐의로 80년 기소돼 부산지법에서 신귀영씨와 서성칠씨는 징역·자격정지 15년, 신춘식씨는 징역·자격정지 10년, 신복영씨는 징역·자격정지 3년·집행유예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특별법 제정… ‘유죄’ 없던 일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방법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재심을 통한 해법과 특별법 제정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대해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당사자 등의 청구에 의해 다시 재판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재심청구사유를 원판결의 증거서류나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변조된 것으로 증명된 경우 등 7가지로 제한하고 있다. 원판결에 설령 사실오인 등의 잘못이 있더라도 이 재심 규정에 해당되지 않으면 재심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혁당 사건은 재판에 증거로 사용된 진술서와 수사기록 등이 고문 등 불법행위를 통해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재심이 받아들여졌고 32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그동안 이 재심청구사유를 좁게 해석한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넓게 해석하고 있다. 재심청구가 원판결의 법원이 관할한다는 형소법의 규정을 따를 경우 인혁당 사건은 원래 1심 법원이었던 군사법원에서 담당해야 했었다. 유가족들이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한 재심도 법적논란이 될 수 있었지만 법원이 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 좋은 예다. 1972∼87년 시국공안사건 중 사건 당사자가 불법구금이나 불법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 224건 등은 재심의 소지가 있는 사건으로 대법원은 보고 있다. 이 사건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져 대법원까지 올라올 경우 대법원 판결을 통해 판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과거의 판결이 잘못됐었다는 점을 판결문에 밝히는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판사 실명을 공개한 ‘긴급조치 판결’중에는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예가 적지 않다. 그래서 특별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긴급조치 자체를 특별법으로 무효화해 이 법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사건을 모두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재심청구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정도로는 미흡하고 긴급조치에 대해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특별법 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부산대 법대 김배원 교수는 특별법 제정에는 동의하면서도 “특별법의 기준과 범위, 보상·배상문제 등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 정당성 차원에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모든 법의 무효화를 주장하게 될 수도 있고 유신시절에 불합리한 판결에 적용된 모든 법들을 무효화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열린세상] 진실과 화해/김형태 변호사

    국제평화모임에 가면 늘 겪는 일이 하나 있다. 일본 사람들은 매번 원폭피해자 입장만을 애써 강조할 뿐 우리나라, 중국, 동남아에서 자신들이 벌인 전쟁과 학살,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독일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과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고 배상하는 것과 대조된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유감’ 이상의 표현을 쓰지 않는 것도 딱하다.‘다 지난 일을 가지고 왜 끝도 없이 이야기를 꺼내는가.’ 일본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요즈음 유신시절의 평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30년 전 일을 가지고 왜 아직도 들먹이는가. 지금의 잣대를 가지고 그때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정략적 의도가 보인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과거를 가지고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 일본 사람들의 항변과 흡사하다. 하긴 최근 들어 우리 사회 일부에서도 일제 식민통치가 조선 근대화에 단초를 제공했다거나 구한말 상황에서 친일을 한 사람들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혁당 재심과정에서 충격적인 정황들이 나왔다. 중앙정보부는 억지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수사지침’이라는 각본까지 만들었고, 이 각본대로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면 수사경찰까지 유치장에 가두었다. 일본인 기자가 민청학련 학생들에게 취재비조로 7500원을 준 것을 폭력혁명을 위한 자금으로 표현하라고 지시하는 문건도 나왔다. 창자가 빠져나오는 고문과 조작으로 8명이 사형을 당하고 16명이 오랜 세월 옥고를 치렀다.32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죽은 이들을 되살릴 길은 없다. 당시 대통령을 비방하다 술자리에서 잡혀가 수년간 징역을 살았던 이들도 수두룩하다. 장기집권을 꿈꾸었던 대통령은 죽어 말이 없고 그의 지시대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만들고, 국민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재판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하나 ‘내탓이오.’를 말하는 이가 없다. 일본이 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와 똑같다. 긴급조치 관련 판결에 이름을 올린 한 분을 안다. 개인적으로 참 좋은 분이다. 도매금에 사회의 매도를 받을 분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사 정리는 한 개인에 대한 윤리적 평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형법교과서는 ‘책임’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책임은 개별적 행위에 대한 책임이지 인격책임 또는 행위자 책임이 될 수 없다.’ 과거사 정리 과정에서 책임을 논하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 과연 윤리적, 인격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잘못된 행위에 가담했다면 그 역사적, 사회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관점으로 유신체제하의 법관, 수사관들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도 그때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다. 개인 윤리차원에서는 ‘누가 이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라는 식의 자기 성찰적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과거를 직시하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미래를 그리는 공적 차원에서 보자면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해, 유신체제하 인권을 유린한 이들에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그 당사자가 잘못되었다고 고백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일방적 매도나 보복을 하지 않고 화해하는 것. 그래서 외국의 수많은 과거사위원회 이름 앞에는 ‘진실·화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우리의 과거사를 정리하는 기관 이름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로 되어 있다. 그 이름 그대로 잘못한 이들이 먼저 진실을 고백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가 화해하여 더불어 함께 살아갈 일이다. 김형태 변호사
  • [사설] 긴급조치 무효화 특별법 검토해야

    사법부 과거사 정리에서 먼저 할 일은 무고한 희생자를 구제하는 것이다. 또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법·제도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과거사위의 긴급조치 관련 판사 명단 공개는 성급했다. 피해자 구제보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였지만 실정법에 따라 판결한 법관의 인적 청산을 앞세우려는 처사는 정치적 배경을 의심받는다. 대법원은 긴급조치와 더불어 반공법, 국가보안법, 집회·시위법과 연관된 판결 6000여건의 문제점을 이미 분석했다고 한다.1972년부터 1987년 사이 200건 이상의 시국·공안사건이 판결문에서 고문·불법구금 논란이 있었다는 검토 결과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재심청구가 없어도 이들 사건에 대해 포괄적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초법적인 발상이다. 재심 확대와 함께 판례 변경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고, 판결문을 통해 과거 잘못을 사죄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재심 사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국회는 재심청구 범위를 넓히는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 재심 확대를 넘어 과거 정권의 시국·공안 재판을 모두 무효화하는 특별법 제정은 법의 안정성을 깬다는 측면에서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긴급조치에 한해서는 이를 무효화하고 피해자를 보상하는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긴급조치 위반사건은 죄가 되지 않는 사안을 처벌한 것으로 사실관계의 다툼이 적다. 고문이나 증거조작이 개입된 사실이 없으면 재심이 사실상 어렵다. 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통한 일괄 무효·일괄 보상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여야가 긴급조치 무효화 특별법 제정을 논의할 의사를 밝히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법에 의해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 보상을 한 뒤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 잘못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에서 사법부 수장의 사과 절차가 있어야 할 것이다.
  • 과거사보고서 어떤 사건 다뤘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31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등 5건을 진실 규명 사건으로 결정, 국가의 사과와 피해보상, 명예회복, 재심 등 상응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김진수의 중국에서의 항일독립운동 사건’ 등 2건에 대해서는 진실 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5·16직후 설치된 혁명재판소는 진보성향 신문인 민족일보가 사설 등을 통해 북한을 고무, 동조했다는 혐의로 조용수 사장에 대해 1961년 10월31일 사형을 선고했다. 진실화해위는 5·16 주도세력이 철저한 반공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고, 대내적으로는 쿠데타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할 필요성이 있던 상황에서 불법으로 제정된 소급입법에 의해 조용수 사장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 김익환 일가 고문·가혹행위 사건 71년 9월 전남 여천군 화정면 백야리 섬마을에 살던 김익환씨 등 일가 3명을 중정 여수출장소 소속 요원들이 간첩 관련 혐의로 강제연행해 5일 동안 고문·가혹행위를 하고, 석방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이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괴하고 고통속에 몰아넣은 비인도적인 야만적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밝혔다. ● 태영호 납북 사건 68년 7월3일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어로작업한 태영호 선원들을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전주지법 정읍지원에서 71∼75년까지 4차례에 걸쳐 징역 1년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법원이 고문·가혹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의 허위 자백에 의존해 아무런 물증도 없이 유죄판결을 내린 사건으로 반공 이데올리기 강화정책에 의해 어로작업을 하던 어부들이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 이수근 간첩조작 의혹사건 67년 3월22일 북한 북한조선통신 부사장 이수근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뒤 중정 판단관으로서 대국민 반공강연 활동을 하던 중 67년 1월 처조카 배경옥과 함께 여권을 위조해 홍콩으로 출국했다. 이들은 캄보디아로 향하다 중정 직원에게 체포돼 한국으로 압송, 반공법위반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해 7월2일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이수근은 당시 중정의 지나친 감시와 북한 가족의 안위 등을 염려해 한국을 떠나자 중정이 당혹한 나머지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조작, 처형해 귀순자의 생명권이 박탈된 비인도적, 반민주적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결론내렸다. ●이준호 가족간첩 사건 이준호와 그의 어머니 배병희가 85년 7월23일 서울지방법원에서 “72년 간첩을 방조했으며, 이준호가 74년 해병대대 본부의 국가기밀 등을 탐지하고,81년 예비군 훈련장 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로 이준호는 징역 7년을, 배병희는 징역 3월6월에 자격정지 4년형을 각각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사건이 확정됐다. 진실화해위는 북한에 월북 가족을 두고 있는 사회적 약자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한 것이며, 법원은 허위 조작이라는 이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 ‘긴급조치 유죄 판결’ 판사 492명 실명 공개

    ‘긴급조치 유죄 판결’ 판사 492명 실명 공개

    진실화해위는 31일 오후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에 관여한 판사 실명이 포함된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긴급조치 위반 유형별 판결 현황을 보면 ▲반유신 재야·야당정치활동 65건 ▲간첩 2건 ▲학생운동(유신반대·긴급조치해제 시위 등) 191건 ▲기타(유신체제 비판발언 등) 282건 ▲국내재산 해외도피 및 공무원 범죄 29건 등 589건이다. 판결수(1∼3심)는 1412건, 인원수는 1140명이다. 보고서에 포함된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분석 보고서’ 별첨 자료에는 알려진 대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이공현·민형기 헌법재판관, 양승태·김황식·박일환·이홍훈 대법관 등 현직 고위법관 10여명이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재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전 대법원장 윤관, 최종영, 김용철 등 전직 고위법관 100여명의 이름도 있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유신시대 긴급조치 위반 사건과 관련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 공개와 관련,“방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며 유감 표명을 했다. 대법원 변현철 공보관은 보고서 공개 직후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변 공보관은 “긴급조치와 관련된 판결은 당시 실정법 처벌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한 결과로 개별 판결의 잘잘못을 따지는 재심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면서 “포괄적이고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30년 전 시대 상황에서 사법시스템 전체가 짊어져야 할 과오를 우연히 현재까지 현직에 남아 있는 몇 명의 법관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결코 우리가 바라는 진실과 화해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인 과거사 정리를 이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일영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정치공세” “수용해야” 찬반 엇갈리는 정치권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생각한다.”긴급조치 판사 명단발표에 대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31일 반응이다. 지난 23일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이 나왔을 때 반응을 보이지 않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판사 실명 공개논란에 대해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왜 (판사실명을)지금 발표하는 것이냐.”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날 판사실명 공개에 대한 반응이 엇갈렸다. 여당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인혁당 재심 판결에서 보듯 과거 독재정권 유지에 기여했던 판결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사법부도 하고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판결에 관여한 경중을 따지지 않고 판사의 실명을 공개해 낙인을 찍는 건 과도하다.”고 말했다. 반면 문병호 제1정조위원장은 “사법부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판사 이름 공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과거사위 해체까지 주장하며 비판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진실을 밝혔으면 화해의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일괄폭로식 공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적절한 방법도 아니다.”고 지적했다.이밖에 민주당, 민주노동당에서는 찬성하는 입장을 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검찰, 인혁당사건 항소 포기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송찬엽)는 관련자 8명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재심 사건에 대한 항소를 30일 포기했다.이로써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1심 판결이 확정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돼 원심에서 유죄 증거가 된 조서 대부분이 재심에서 증거능력을 상실했다.피고인들은 원심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고, 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해 원심에서의 공판조서의 증명력이 인정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사형 선고의 근거가 된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 등에 대해 검찰이 상소해도 무죄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아울러 “30여년간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 온 유족들의 고통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항소의 법리적인 타당성 등에 주안점을 두고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항소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마무리되는 대로 구상권 문제 등을 검토키로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긴급조치 판사 명단 공개 파문] ‘사법부 과거 정리’ 어디까지 왔나

    유신시대 긴급조치위반 사건에 관여한 판사들의 실명이 공개돼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작업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작업이 본격화된 것은 2005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이 대법원장은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는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전제,“사법부가 행한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유지담 대법관도 퇴임사에서 “환송을 받기보다 용서를 구하고픈 심정”이라며 “사법부의 독립을 외쳤어야 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 침묵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던 전수안 대법관도 “과거의 판결들에 대하여 잘못이 인정되면 대법원장이 법원을 대표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흐름에 따라 1972∼87년 긴급조치법 및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사건의 판결문 6000여건을 수집해 분석해 왔다. 이 중에는 이번에 실명이 공개된 대법관들이 관여한 사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제청 때 긴급조치 판결에 관여했던 점을 검토했다.”면서 “대법원장도 많이 고민했지만 이런 식으로 인적 청산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제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 분석작업은 이미 지난해 3월 마무리된 상태다. 대법원 관계자는 “분석결과는 코드맞추기 논란 등을 피해 적절한 시기에 공개할 것으로 안다.”면서 “이때 사법부 과거사에 대한 발언도 함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사법부의 과거청산 방법에 대해 판결을 무효화한 독일처럼 특별법을 만들거나 32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인혁당 사건처럼 재심을 통해 과거사를 정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법살인의 공범” 비난 자초

    “사법살인의 공범” 비난 자초

    <인혁당계 21명을 포함한 ‘민청학련’ 사건관련 피고인 38명 가운데 36명이 유죄로 최종 확정됐다.…여정남,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등 8명은 원심형량대로 사형이, 이철, 유인태 등 9명에게는 무기징역이 각각 선고됐다.>(서울신문 1975년 4월8일자 1면)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형이 확정된 인혁당계 8명에 대한 사형이 9일 상오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으로 집행되었다.…8명의 사형수들은…저마다 짧은 유언을 남긴 채 형장으로 향했다. 이날 도예종은 “조국의 공산주의 통일을 기원한다.”고 했으며 우홍선은 “무덤에 붉은 ‘카네이션’을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서울신문 1975년 4월10일자 7면)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여정남씨 등 관련자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2년 만의 명예회복이었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문용선)가 여씨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서울신문 등 국내 각 신문과 방송은 주요뉴스로 비중있게 ‘사법정의’ ‘사필귀정’이라고 보도했다.32년전의 판결과 신속한 사형집행을 ‘사법살인’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여씨 등이 조작된 혐의로 구속돼 억울하게 교수형을 당할 때까지 1년여동안 우리 언론은 철저하게 ‘당국의 입’ 역할에만 충실했다. 당시의 언론에 대해 ‘사법살인의 공범’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사중인 관련자들을 ‘공산분자´로 예단 시계를 30여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1974년 4월25일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은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 수사상황을 발표한다. “민청학련 소속 대학생들이 일본공산당원들과 과거 공산계 불순단체인 ‘인혁당’ 조직과 국내 좌파 혁신계와 함께 폭력으로 정부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정권수립을 논의했다.” 언론은 이 같은 중정 발표를 기정사실화해 보도했다. KBS,MBC,TBC(현 KBS) 등 방송들은 신 부장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고, 신문들은 “폭력 공산혁명 획책”(서울),“폭력데모로 노농정권수립기도”(동아, 한국),“폭력혁명으로 노농정권 획책”(경향),“민청학련 노농정권 수립기도”(조선)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수사 중인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자들을 ‘공산분자’로 예단했다. 당시 8면에 불과했던 신문지면 가운데 3∼4면을 할애해 대부분의 신문들은 중정 발표내용을 그대로 싣는 한편 주요 피의자들의 사진은 물론 번지수까지 자세하게 주소와 인적사항도 기재했다. 서울신문 등은 사회면에서 “주모자들, 철저한 공산분자” “북괴, 데모학생 적화에 이용”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제목으로 뽑았다. 언론들은 이후에도 “주모자 접선에 가명, 암호…간첩 수법” 등으로 관련자들의 대북 관련성을 강조하는 기사와 대북 경각심을 촉구하는 사설을 잇달아 게재했다. ●이례적 사형집행에 모든 언론 침묵 한동안 잠잠하던 민청학련, 인혁당 관련뉴스는 8개월여 만에 다시 등장한다. 정부는 1975년 ‘2·15조치’를 통해 김지하씨 등 사건관련자 일부를 석방했는데 김씨가 인혁당 사건관련자들의 고문사실을 폭로한 것. 당시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게재됐지만 고문의혹은 정부의 경고에 파묻혔다. 박정희 대통령은 2월21일 법무부 순시에서 “일부 인사의 국민선동을 주시하고 있으며 자숙하지 않으면 헌법상 권한을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달 24일 황산덕 법무장관은 “인혁당은 반공법에 규정된 반국가단체로 ‘조작·민주인사’ 운운할 경우 반공법으로 엄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신문들은 이 같은 내용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한달 보름여만인 4월8일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고,18시간만인 9일 새벽 4시쯤 인혁당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전격 집행됐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사형집행에 대해 어느 언론도 문제제기를 한 곳은 없었다. 일부 언론이 “전격적인 사형에 크게 유감스럽다.”는 미 국무성대변인의 성명을 1단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유신체제선 어쩔 수 없었다.” 변명 안통해 30여년 만에 가장의 명예를 되찾은 유가족들에게 이 같은 언론보도는 어떤 ‘응어리’를 남겼을까. 고 하재완씨의 부인인 이영교씨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오열하면서 당시 조작의혹 등에 대한 보도에 인색했던 언론을 질타했다. 이씨는 “손톱만큼이라도 기사를 내달라고 했지만 모두들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 운동을 벌여온 문정현 신부도 “언론은 그동안 철저하게 우리를 외면했다.”면서 “그럼에도 (무죄로 판명난)지금와서 한마디 반성도 없다.”고 꼬집었다. 언론시민단체나 언론학자들 역시 “과거의 ‘사실보도’가 유신체제하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언론의 변명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언론이 과거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것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지만 어느 곳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32년전 인혁당 사건의 교훈은 또 과거 속으로 묻혀지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국내 첫 담배소송 ‘흡연자 패소’] 美 필립모리스사 ‘99년 5150만弗 배상 판결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다투는 담배소송은 1954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미국에서 흡연 관련 소송 4000여건이 있었지만, 담배회사에 배상금을 물린 확정 판결은 10여건에 불과하다.일본과 유럽 각국에서도 여러 차례 담배소송이 제기됐지만, 대부분 담배를 피운 흡연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회사측 손을 들어줬다. 폐암 발병 흡연자들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사례가 많은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흡연자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드물게 나오기 시작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미국에서 흡연자가 승소할 경우 배상액은 천문학적 액수를 기록한다. 99년 샌프란시스코주 법원은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사는 흡연 피해자에게 5150만달러를 배상하라.”며 흡연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필립 모리스사가 배상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 미 연방 대법원에서 재심이 진행중이다.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도 40년간 담배를 하루 두갑씩 피우다 폐암에 걸린 리처드 보켄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사들은 보켄에게 500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선고가 아닌 재판부의 중재를 통해 담배회사가 배상을 하는 선에서 양측이 합의한 경우도 있다.98년 미국 46개 주정부가 “흡연으로 주민들의 건강이 나빠져 복지 예산이 많이 든다.”며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미국 연방 대법원은 “주정부에 25년에 걸쳐 2460억달러를 지급하라.”며 조정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미국 법원들도 “담배와 폐암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흡연자 패소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라이트’‘저타르’ 등 문구를 사용해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흡연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미 대법원은 “순한 담배라는 사실과 함께 유해성을 알렸기에 회사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2월 폐암 환자 6명이 일본담배회사(JT)와 국가를 상대로 낸 담배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담배가 유해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기호품으로 정착했고, 중독성이 술보다 약해 본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끊을 수 있다는 게 판시 내용의 골자였다.프랑스와 독일에서도 2003년 “건강 악화와 흡연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잇따라 흡연자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국유지 사기 의심 14건 수사

    검찰이 서류를 위조해 국유지를 가로채려 한 소송 사기범들에 대해 추가 수사에 나섰다. 서울고검 송무부(부장 박영렬)는 2005년 7월 이후 부동산 관련 국가 소송 기록 620건을 분석, 전씨 일당을 포함해 서류 위조와 위증 등의 혐의가 의심되는 사안 14건 33명을 적발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등 8개 검찰청은 이같은 사건들에 대해 수사를 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사기 혐의가 밝혀지면 검찰은 국가 패소 소송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토지를 되찾을 방침이다.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소송 사기범들은 ▲한국전쟁 때 공문서가 소실됐다며 자신의 조상이 토지조사부나 임야조사서에 등재된 소유자 등으로부터 토지를 매수했다고 하거나 ▲일본인 명의로 등기됐다가 광복 뒤 국가에 귀속된 토지가 사실은 창씨개명한 조상의 땅이었다며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해온 것으로 드러났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檢 “더 밝힐 진실있다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재심에서 1975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8명에게 23일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이 항소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공판 내내 “처벌보다는 진실규명이 우선”이라고 천명한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이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구형 없는 논고를 했다. 이 때문에 무죄 선고가 나는 즉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선고 직후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항소를 할지 포기할지 결정하는 데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진실을 규명할 부분이 더 남아 있다면 상급심에서 다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사건과 관련,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수백억원대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검찰이 항소를 검토하는 이유중 하나다.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법부가 과거 잘못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하급심이 아니라 대법원이 판례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법원 판례는 1심은 1심대로,2심은 2심대로 의미가 있다.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정상적인 판결에 대해 상급심 판단을 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검찰의 항소 포기를 촉구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부분 60∼70대의 고령으로 32년간 고통을 받아온 유족들에게 또다시 법정 공방을 펼치게 하는 일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한편 유신정권 당시 만들어져 역사와 함께 묻힌 대통령긴급조치에 대한 위헌성 문제는 뒤늦게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고(故) 우홍선씨 등 이 사건 피고인 8명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24일 “피고인들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소(訴)를 제기하기 위해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가해자 역사적 심판 이어져야”

    “가해자 역사적 심판 이어져야”

    “1975년 4월9일,8명의 생명이 스러져간 그날 그곳에 ‘빨갱이’는 없었습니다.‘조작’이라는 단 하나의 진실이 이제서야 겨우 밝혀졌습니다.”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고인이 된 피고인들에게 32년만에 무죄를 선고한 다음날인 24일 서울 군자동 메리놀성당 사제관에서 제임스 시노트(78) 신부를 만났다. 조금 발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에는 채 가시지 않은 선고 당시의 감동이 역력했다.“도예종·서도원·하재완·송상진·우홍선·김용원·이수병·여정남…. 이제 시작입니다. 이들을 올바르게 기억하면서 추악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명운동 펼치다 75년 4월 강제추방 당해 미국인인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조작 사실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인물로, 해외 언론들에 관련 내용을 알리면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된 8명의 구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이 때문에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집안까지 감시당해야 했고 결국 1975년 4월말 강제 추방당했다. 하지만 추방된 후에도 미국 정부나 언론사에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해 왔으며,2002년 다시 한국에 영구 귀국했다. 시노트 신부는 32년만의 무죄 선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뒤, 감동과 울분·기쁨과 슬픔·웃음과 눈물이 한꺼번에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거기 그대로 있다가는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종일 지난 30여년을 조용히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죠.” ●“박정희 칭송 얘기 들을때마다 분노 치솟아” 그는 “결코 이번 무죄 판결이 ‘끝맺음’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8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을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노트 신부는 정확한 발음으로 박정희(당시 대통령), 민복기(당시 대법원장), 신직수(당시 중앙정보부장)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이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즘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거나 칭송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분노가 치솟는다.”면서 “젊은이들이 정치·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다가는 암울한 역사가 재연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대통령 자리 꿈꾼다면 가족에 사과해야” 시노트 신부는 때마침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던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새해 연두 기자회견을 보면서 “미국도 부시와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힐 정도로 정치·사회의식이 많이 퇴색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의 부시와 과거의 박정희는 ‘악(evil)’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이 난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표가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통령 자리를 꿈꾼다면 적어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가슴과 삶에 새겨진 ‘빨갱이’란 말을 지워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인혁당 ‘사법살인’ 32년만에 무죄로

    인혁당 ‘사법살인’ 32년만에 무죄로

    32년 만에 법정에 다시 오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1975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사형이 선고돼 숨진 고(故) 우홍선씨 등 8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유신정권에 반대해 민주화운동을 했다가 위법한 수사·재판의 희생양이 됐던 8명과 유가족들은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문용선)는 23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1975년 4월9일 긴급조치 1호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8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각 피고인들의 인혁당 재건을 위한 반국가단체 구성, 여정남씨의 민청학련 배후 조종, 송상진·하도원씨의 북한방송 청취에 따른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와 관련,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서는 원 진술자가 사망한 경우 형사소송법상 증거 능력이 인정되려면 ‘특신상태(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다는 점이 인정돼야 하는데 당시 피의자들이 조사를 받을 때 자유로운 상태에서 작성했다고 볼 수 없다며 검찰이 제시한 조서 등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당시 공판조서도 대다수 피고인들의 진술과는 서로 배치되는 부분이 많아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판부는 여씨가 서도원·하재완씨 등의 지령을 받아 이강철·유인태·이철씨 등과 접선해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학생조직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결성,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내란을 예비·음모한 혐의에 대해서도 “민청학련이 국가를 변란할 목적 또는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조직됐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여정남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중 ‘반독재 구국선언’ 혐의 부분은 다른 재판에 병합돼 유죄 판결이 확정됐고,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사실을 인정,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측이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는 무효이고, 유신헌법 자체도 무효’라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없다.”면서 긴급조치와 유신헌법의 무효 여부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김형태 변호사 등 변호인단과 ‘인혁당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대책위’는 “사필귀정이며 사법적 명예회복이 이뤄진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안창호 2차장검사는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 검토한 뒤 법과 원칙에 따라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일지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일지

    ▲1963.6.3 ‘굴욕적 한·일회담’ 비판시위 확산으로 비상계엄령 선포 ▲1964.8.14 중앙정보부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 발표 ▲1965.1.20 1심 판결,2명만 2∼3년 징역형, 나머진 무죄 ▲1965.6.29 2심 판결,6명 징역 1년, 나머진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1965.9.21 대법원 항소심 판결 그대로 인정 ▲1972.10.17 유신 선포 ▲1974.4.3 박정희 대통령 특별담화 “민청학련 단체, 불순세력 배후조종으로 인민혁명 수행하려 하고 있다” ▲1974.4 긴급조치 4호 발표, 민청학련 범죄단체로 규정, 중앙정보부, 민청학련 배후로 제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지목 ▲1975.4.8 대법원 인혁당재건위 판결,8명 사형 선고 ▲1975.4.9 사형선고 18시간만에 사형집행 ▲2002.9.12 의문사진상규명위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 조작사건” ▲2002.12.10 인혁당사건 재심 청구 ▲2005.12.7 국정원 진실위 사건조사 결과 발표,“독재권력 연장 위해 고문으로 민주인사를 탄압한 공안사건” ▲2005.12.27 법원, 인혁당 재심 결정 ▲2006.3.20 재심 첫 공판 ▲2006.11.2 유족 국가 상대 340억원 소송 ▲2007.1.23 서울중앙지법 무죄 선고
  • [사설] 32년만에 바로잡은 ‘인혁당 사법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법원이 이미 사형 처분을 받은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가 32년전의 잘못된 판결을 이제라도 바로잡은 것을 환영한다. 이번 판결로 고인과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사법부도 과거 질곡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관련자들의 정치적·사회적 복권 등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인혁당 사건은 유신치하의 대표적 ‘사법살인’ 사례로 꼽힌다. 고문·증거조작으로 유신에 반대했던 이들을 용공으로 몰아 대법원 확정 판결 후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서가 조작됐거나 강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됐음을 인정했다. 증거능력이 없는 신문조서로 8명의 애꿎은 인명을 유신정권이 죽음으로 몰았음을 인정한 셈이다.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 과거사를 사죄하는 의미가 담긴 판결이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피고인과 30여년을 간첩 가족이란 누명을 쓰고 살아온 유족들의 애통함을 한번의 판결로 모두 씻어주기는 어렵다. 추가 명예회복 조치와 함께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길고 길었던 고통의 일부라도 보상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 또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던 인혁당 사건 관련자,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등 유신정권의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상응한 판결과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인혁당 사건 무죄선고는 국민의 기본권과 생명을 함부로 침탈하는 정권이 다시 태어나선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사법부는 잘못된 판결이 얼마나 두려운 결과를 낳는지 깊이 새겨야 한다. 정치적 독립과 공정한 판결로 재판의 권위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쏟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은 사형제 폐지를 본격 검토해야 한다. 나중에 죄가 없음이 밝혀지더라도 돌이킬 수 없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유족들 배상 어떻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무죄를 선고받음에 따라 재판이 진행 중인 비슷한 사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판결로 유신시대 이후의 시국·공안·간첩·시위 사건 등 이른바 ‘과거사 사건’의 재심 및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유신정권이 인혁당 재건위의 배후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던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사법처리된 20여명도 이달안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된 8명의 유족들은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34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가족별 손해배상 청구액은 36억∼48억원이다. 피고측인 국가의 답변서가 제출되지 않아 현재 이 사건 재판은 첫 기일도 열리지 않은 상태다. 제주도에서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가석방된 강희철(50)씨와 신군부의 5·18광주민주화운동 탄압 실상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중형이 선고된 ‘아람회’ 사건 당사자들이 각각 지난해 6월과 7월에 낸 재심청구는 현재 제주지법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4년간 복역하다 1998년 8·15 특사로 가석방된 이장형(76)씨,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에 연루돼 21년간 복역한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67)씨 경우는 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재판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잘못된 사형선고라고 발표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 등 과거 사법부의 판결 오류가 밝혀진 사건들의 재심청구도 있을 예정이다. 또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등 민사사건은 배상 청구시효가 지났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재심 선고일을 시효가 시작되는 날로 보지 않더라도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판례가 축적돼 왔다. 김효섭 홍희경기자 newworld@seoul.co.kr
  •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잘못된 역사 진실 규명 성숙해진 우리사회 실감”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잘못된 역사 진실 규명 성숙해진 우리사회 실감”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 전원에 대한 무죄 선고를 이끌어낸 김형태 변호사는 “인혁당 유족들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서도 ‘빨갱이’로 낙인 찍혀 어울리지 못하던 존재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무죄선고를 통해 ‘레드 콤플렉스’가 사라진 우리 사회가 과거 잘못된 역사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게 실감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판결의 의미는. -피고인들은 그동안 이중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의문사위원회와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등에서 이들에 대해 명예회복이 이뤄졌지만, 사법적으로는 여전히 내란음모를 꾸민 사형수들로 분류됐다. 이번 재심 판결은 이들이 사법적으로도 죄인이 아니라는 판결이다. ▶검찰이 아직 항소할 가능성을 버리지 않고 있는데.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하고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검찰 입장을 이해한다.2005년 12월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뒤 검찰은 인혁당 사건에 대해 처벌보다는 진실 규명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실제로도 ‘공익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검찰이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를 포기하기를 기대한다. ▶민청학련 관련자들의 정·관계 진출이 활발하고, 인혁당도 전세계적인 반발 여론을 불렀던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심 선고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인가. -재심 무죄 사건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과 달리 인혁당 재건위 재심 공판은 사실상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잘못된 국가 명령을 집행했던 사람의 증언을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반면 일부 경찰관은 “자백을 받으라는 선까지 못받아내면,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며 조작을 암시하는 증언을 내놓았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