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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대 지역인재전형 재심의 요청

    전북대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지역인재전형 재심의를 요청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18일 전북대에 따르면 대교협에 지역인재전형 지원자격 재심의를 요청하고 법제처에 해당 법령에 대한 유권해석을 신청했다. 전북대는 의대, 치대, 수의대, 간호대 등 일부 인기학과에 지역출신 학생 비중을 높이기 위해 2019학년도까지 지역인재 전형 자격을 ‘전북소재 고교에서 전 과정을 이수하고 입학일부터 졸업일까지 부모와 학생 모두 전북지역에 거주한 자’로 제한했다. 그러나 대교협의 권고를 받아들여 2020학년도부터 ‘전북지역 고교에서 전 과정을 이수한 자’로 완화했다. 이에 상대적으로 성적이 우수하고 다른 지역 출신이 많은 자사고 출신을 배려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부 또는 모와 함께 전북지역에 거주한 자’로 자격을 바꾸어 재심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대교협의 2020학년도 대학입학전형계획이 오는 30일 발표될 예정이어서 시간이 촉박해 재심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타 대학과 형평성도 논란이 된다. 전남대, 원광대, 우석대 등은 의대 등 인기학과 지역인재 전형 지원자격을 광주, 전북, 전남 등 호남지역 소재 고교에서 전 과정을 이수한자로 대폭 열어놓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문현웅의 공정사회] 법정 패션

    [문현웅의 공정사회] 법정 패션

    외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은 ‘가짜 상속녀’ 안나 소로킨이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하면서 부유한 상속녀 연기를 하던 시절처럼 몸에 딱 맞는 검정 드레스를 걸치고 목에는 초커를 두른 채 커다란 안경을 쓰고 법정에 출석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상습도박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1세대 아이돌그룹 SES 멤버 슈의 ‘법정 패션’과 관련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씨가 재심 첫 재판에 사복 차림으로 법원에 출석하자 무기징역이 확정돼 19년째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씨가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김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지만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면서 미결수용자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고 따라서 사복 착용이 가능하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5월 27일 “수사 및 재판단계에서 유죄가 확정되지 아니한 미결수용자에게 재소자용 의류를 입게 하는 것은 미결수용자로 하여금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심리적인 위축으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하여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도주 방지 등 어떤 이유를 내세우더라도 그 제한은 정당화될 수 없어 헌법 제37조 2항의 기본권 제한에서의 비례원칙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정하였다. 이로써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의 형사 피의자나 형사 피고인으로 구치소에 구금된 사람인 미결수용자는 수사기관 및 법정에 출석할 때 사복을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헌법재판소는 2015년 12월 23일 “수형자라 하더라도 확정되지 않은 별도의 형사재판에서만큼은 미결수용자와 같은 지위에 있으므로, 이러한 수형자로 하여금 형사재판 출석 시 아무런 예외 없이 사복 착용을 금지하고 재소자용 의류를 입도록 해 인격적인 모욕감과 수치심 속에서 재판받도록 하는 것은 재판부나 검사 등 소송관계자들에게 유죄의 선입견을 줄 수 있고, 이미 수형자의 지위로 인해 크게 위축된 피고인의 방어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재판의 피고인으로 출석하는 수형자에 대하여 사복 착용을 허용하지 아니한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인격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하였다. 이는 유죄가 확정돼 교정시설에서 복역 중인 수형자가 다른 형사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할 때, 사복을 입어도 된다는 취지의 결정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절차에서 피고인이나 피의자는 유죄판결 확정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 원칙은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인권보장사상에서 유래하여 시민적 자유를 수호하려는 근대법의 특징을 표명한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언행이 180도 변해 망나니가 된다는 다 지난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마도 착용한 복장에 따라 그 사람의 언행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미결수용자라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죄수복을 입게 하면 스스로 죄수와 같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될 우려가 있고 재판에 관여하는 사람 특히 판사에게 유죄의 선입견을 주게 되어 미결수용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위험이 매우 크다. 따라서 미결수용자에게 법정에서의 사복 착용을 허용하는 것은 헌법 제27조 제4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미결수용자인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면서 사복 착용이라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한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피고인 스스로도 자신이 사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했을 때 오히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결국 사복 착용을 포기하고 재소자용 의류를 입고 출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미결수용자에게 법정에서의 사복 착용을 허용했음에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무죄추정이 아닌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형사절차에 있어서 우리는 아직도 근대 이전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 고문에 익숙했던 경찰

    1990년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검찰도 이를 알았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7일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심의 결과 범인으로 몰린 최인철씨와 장동익씨가 경찰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발표했다.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낙동강변에서 데이트 중이던 여성이 강간살해당한 뒤 시신이 유기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채 발견됐다. 미제로 남았던 사건은 이듬해 11월 경찰관 사칭 사건 용의자인 최씨와 장씨가 범행 사실을 자백해 재판에 넘겨졌으며, 이들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을 복역하다 모범수로 감형돼 2013년 출소했다.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을 변론한 문재인 대통령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을 주장했으나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최씨와 장씨의 고문 피해 주장이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다며 부산 사하경찰서 수사팀에 의한 고문 행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사하서 수사팀은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고, 현장검증을 하루에 마친 것처럼 검증 조사를 조작한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와 장씨는 검찰 수사에서도 고문 피해를 주장했지만 수사검사는 이들의 진술을 확인하지 않고, 송치된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면 발견할 수 있는 모순점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수사검사는 피해 남성의 진술에 부합되도록 감정서를 왜곡해 해석하는 등 객관의무위반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최씨와 장씨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를 통해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중세 고딕건축의 걸작 ‘파리의 성녀’…연 1400만명 방문하는 인류의 유산

    중세 고딕건축의 걸작 ‘파리의 성녀’…연 1400만명 방문하는 인류의 유산

    ‘장미 창’ 극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 뽐내 빅토르 위고, 소설로 노트르담 위상 높여‘고딕건축의 걸작인 ‘파리의 성녀’(노트르담)는 850여년간 프랑스 수도의 상징이었다.’ 15일(현지시간) 화마가 집어삼킨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렇게 표현했다. 1163년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재위 1137∼1180)의 명령으로 센강 시테섬에 있던 로마신전을 허문 터에 건설을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은 중세 고딕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 주는 인류의 유산으로 평가된다. 노트르담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모마리아를 지칭한다. 연평균 1400만명이 다녀가는 프랑스의 대표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가로 48m, 세로 128m, 높이 69m인 바실리카(장방형 회당) 건축물로, 외벽에 덧댄 아치형 지지구조인 ‘플라잉 버트레스’와 둥근 천장은 고딕 양식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이다. 성당 내부의 거대한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창인 ‘장미 창’은 특히 극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뽐낸다.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과 파이프오르간도 보물로 꼽히며 성당 외벽에 있는 괴물 석상 ‘가고일’도 명물이다. 성당의 중심엔 이번 화마에 소실된 96m 높이의 첨탑이 있다. 첨탑은 프랑스혁명(1789~1794) 후 건축가인 외젠 비올레르뒤크가 복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와 납으로 건조된 첨탑의 훼손이 심각해 프랑스 정부는 개·보수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혁명 전까지만 해도 노트르담대성당은 가톨릭 국가 프랑스 정치의 중심지였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 메리 여왕 등 영국과 프랑스 왕가의 결혼식이 열렸고, 1804년에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됐다.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의 구국 영웅 잔 다르크가 처형된 후 재심 재판이 이곳에서 열렸다. 프랑스 문화의 정수가 집약·축적된 노트르담은 ‘파리의 심장’으로 불린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쓴 불후의 고전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꼽추)는 노트르담의 위상을 만들어 냈다. 소설은 노트르담성당의 종지기로 일하는 꼽추 카지모도와 어여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등을 담아 15세기 파리 시민의 군상을 묘사했다. 혁명 당시 노트르담이 훼손되자 헐어버리자는 여론이 한때 힘을 받았지만, 위고가 노트르담을 살리기 위해 쓴 이 소설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1845년 대대적인 복원 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네스코는 1991년 노트르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모자보건법 개정 작업 속도낼 듯… 과거 처벌은 소급 적용 안돼

    모자보건법 개정 작업 속도낼 듯… 과거 처벌은 소급 적용 안돼

    민주당 “조속 개정” 한국당 “후속 조치” 정의당 “임신 12주 내 허용” 법안 준비 사회·경제적 사유 허용 신규 조항 가능 수사·재판 ‘스톱’… 무혐의·무죄 가능성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 처벌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도 헌재 결정을 존중해 입법화에 나서겠다고 밝혀 법 개정 작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낙태 허용 시기와 기준이 쉽게 합의될 것 같지는 않다. 만일 국회가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현행 처벌 조항은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한다. 우선 정비해야 할 법은 위헌 판결을 받은 형법과 낙태 허용이 가능한 예외기준을 명시한 모자보건법이다. 모자보건법은 유전학적 정신장애 또는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 때, 임신이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을 때에 한해 임신 24주 이내의 낙태만 허용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을 개정한다면 임신 12주, 24주, 36주 등 임신 주기에 따라 낙태 허용 범위를 달리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의당은 임신 초기인 12주 이내에 임산부 요청에 따라 의사 상담을 거쳐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는 조항이 새로 들어갈 수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8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 조사(여성 1만명 대상)’에서 낙태를 한 이유(복수 응답)로 33.4%가 ‘학업, 직장 등 사회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32.9%는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 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라고 답하는 등 다양한 사유로 낙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혼모나 원정 낙태 문제, 불법 낙태 시술로 인한 건강 문제 등 현재의 낙태 법리 체계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면서도 “낙태의 기간만 제한할 것인지 아니면 낙태를 하는 사유나 여건까지 제한할 것인지가 논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법 개정 전까지는 낙태 시술을 한 여성과 의료진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이 일단 중단되거나 진행하더라도 무혐의 또는 무죄 선고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에 접수된 낙태죄 위반 사건 84건 가운데 13건만 재판에 넘겨졌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21건이 검찰에 접수됐지만 기소된 사건은 없다. 이미 처벌받은 사람들에 대해선 이날 결정이 소급 적용되진 않지만,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후속조치를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조속히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도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며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서 후속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정부,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따른 후속 조치 착수

    정부,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따른 후속 조치 착수

    헌법재판소가 오늘(11일)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는 현행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하면서 정부가 이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무조정실 등 정부 관계부처는 오늘 오후 헌재 결정 직후 공동 입장문을 내고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임신 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는 현행법 조항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는 없다고 본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해당 법 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기한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대상이 되는 법 조항은 형법 269조(자기낙태죄)로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또 270조(동의낙태죄)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헌재는 낙태가 가능한 기간을 어떤 방식으로 정하고 언제까지로 규정할지, 그 기간에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할지, 그리고 상담 요건이나 숙려 기간 등을 추가할지 등 여부에 대한 결정을 입법 몫으로 넘겼다. 따라서 이를 반영한 후속 입법 지원 및 제도보완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향후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2년 합헌 결정이 이뤄진 후 지난해까지 낙태죄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총 96건이다. 이 중 총 90건이 1심 선고를 받았다. 1건은 대법원판결을 앞두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의하면 형벌 법 조항이 위헌으로 판가름 날 경우 이를 소급 적용해 그 효력을 잃는다. 위헌 결정된 형벌 조항에 근거해 유죄로 확정 판결된 건에 대해서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법 개정 시한을 남겨둔 조항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되는지를 두고 법조계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헌재 “임신 초기 낙태 금지 위헌”…66년 만에 낙태죄 폐지

    헌재 “임신 초기 낙태 금지 위헌”…66년 만에 낙태죄 폐지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은 66년 만에 손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따라서 임신 후 일정기간 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법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자기낙태죄에 종속돼 처벌되는 범죄다. 동의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 심판에서는 태아의 발달단계나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에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다만 낙태죄 규정을 당장 폐지해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이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A씨는 물론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 중인 피고인들에게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12년 헌재의 합헌결정 이후 기소돼 형사처벌된 사람들의 재심청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원 일각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은 단순 위헌결정과 달리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어 낙태죄 형사재판과 관련해 추가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예심제도’ 만들어 거짓 조서 용인… 판결은 통과의례 불과했다

    ‘예심제도’ 만들어 거짓 조서 용인… 판결은 통과의례 불과했다

    100년 전 봄,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염원을 담아 태극기를 든 조선인들을 일제는 무참히 탄압했다. 일제의 헌병과 경찰은 만세를 외치는 조선인들을 향해 총검을 겨눴고, 생존자들은 체포한 뒤 수사를 빌미로 가혹하게 고문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산하에 있던 사법부는 이들을 그저 치안을 어지럽히고 혼란을 일으킨 범죄자로 규정했다. 일제의 혹독한 핍박은 판결문에서 철저히 가려졌다. 10일 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일어난 만세운동은 전국 각지와 만주·연해주 등 해외 99건을 포함해 총 1692건, 참가자들은 103만 73명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드러난 것만 100만여명으로 실제 참가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육군성이 발간한 ‘조선 소요사건 관계서류’에는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10일까지 전국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된 조선인이 2만 6812명이라고 기록됐다. 이 가운데 1만 1846명이 검사에게 송치돼 3695명은 훈계방면 조치를 받았고 9436명은 태형(8697명)과 구류(511명), 과료(228명) 등으로 즉결 처분됐다.일제는 1912년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조선태형령을 제정해 즉결 심판 대상이 되는 행위를 한 조선인들에게 태형을 실시하도록 했다. 특히 3·1운동 참가자들이 너무 많아 일제는 이들을 신속하게 처벌하기 위해 1919년 4월 15일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제령7호)’도 제정했다. 이들을 수용할 공간과 비용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비교적 혐의가 가볍다고 판단된 독립운동 참가자들은 태형으로 처벌했다. 주로 동네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참가할 것을 독려(판결문엔 ‘협박·선동’으로 표기)한 경우 태형 90대의 처벌을 받았다. 일제 사법부는 법에 정해진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3·1운동을 주도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은 1920년 8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의 관할권 문제로 ‘공소불수리’ 결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인들에게만 적용한 여러 특례조항을 둬 독립운동가들을 옥죄었다. 대표적으로 예심제도가 꼽힌다. 1912년부터 조선에서 전면 실시된 예심제도는 검사의 신청으로 예심판사가 사건을 먼저 심리한 뒤 객관적으로 범죄 성립에 확신이 있을 때만 재판을 시작하도록 한 제도다. 혐의가 불분명한데도 검사가 함부로 기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인권보호 차원의 제도였으나 일제는 이를 조선인들을 핍박하는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예심 단계에서 검사나 사법경찰은 피의자를 무기한 붙잡아 둘 수 있었고, 이들이 작성한 조서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쓰였다. 인권을 보호하려고 만든 제도를 자백을 할 때까지 가둬놓고 갖은 고문을 가해 거짓조서를 만들어 낸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그러면서 사법경찰권은 강화시켰고 공판 절차를 간소화해 예심제도는 더욱더 독립운동가들의 숨통을 조였다. 도면회 대전대 교수는 ‘근대 사법제도와 일제강점기 형사재판’에서 “일본 형사소송법에서는 현행범만 제한적으로 검사가 범죄 현장에서 예심 판사에게 속하는 강제처분을 하도록 했으나 조선형사령에서는 현행범의 경우 검사뿐 아니라 사법경찰도 예심 판사에 속하는 처벌을 할 수 있었고, 비현행범도 검사나 사법경찰이 ‘수사의 결과 급속한 처분을 요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공소 제기 전에 영장을 발부해 각종 검증 및 수색, 신문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19년 9월 남대문역 인근에서 새로운 총독으로 부임할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60) 의사의 1920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에서 강 의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한 근거는 대부분 예심 신문조서였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강 의사는 법정에서 폭탄을 갖게 된 경위 등을 자백한 것으로 판결문에 드러나 있을 뿐 그 외에는 강 의사의 폭탄을 옮겨주다가 공범으로 지목된 피고인 2명을 비롯해 거사 현장에 있던 증인 13명의 예심 신문조서로 유죄를 인정했다. 항소·상고 모두 기각돼 강 의사는 그해 11월 사형에 처해졌다. 청년외교단과 애국부인회 주도자들의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는 당사자들의 법정 진술을 인용한 내용이 아예 없다. 2심인 그해 12월 27일 대구복심법원 판결문에서는 김마리아를 비롯한 피고인 3명의 공판정 진술만 인용됐을 뿐 여전히 1심과 같이 조서들이 핵심 근거로 쓰였다. 조서로만 판단하고 재판을 서둘러 끝낸 것으로 보인다. 수사와 예심 단계에서 작성되는 신문조서에 독립운동가들의 자백을 담기 위해 일제는 모진 고문과 가혹행위를 가했다. 김마리아 열사는 너무 심한 고문을 당해 1심 판결 선고 전인 1920년 5월 22일 병보석으로 석방되기까지 했다. 유관순 열사는 병원 치료조차 허용되지 않아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목숨 바쳐 독립운동 했는데… “시대적 재심 통해 명예회복을”

    목숨 바쳐 독립운동 했는데… “시대적 재심 통해 명예회복을”

    ‘임시정부 정신적 지주’ 이동녕 1등급 상향 촉구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서훈 상향 서명 운동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을 맞았지만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되찾으려 했다는 이유로 일제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독립유공 서훈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재심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시대적 재심을 통해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을 제대로 예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1등급 서훈(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총 30명이다. 이 중 27명에 대한 서훈은 1976년 이전에 이뤄졌다. 친일 청산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념 논쟁이 한창일 때 서훈이 추서되다 보니 일부 독립운동가는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천안시의회는 지난달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고, 임시의정원 초대의장·국무총리·주석을 지낸 석오 이동녕 선생에 대한 서훈을 1등급으로 상향해 달라는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940년 임시정부 주석을 지내다 과로로 사망한 석오는 1962년 2등급(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시의회는 “당시 정부가 임시정부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을 맡았던 고헌 박상진 의사는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을 당했다. 이후 40여년이 지난 1963년 독립유공자 3등급(독립장) 서훈을 받았다. 대한광복회 부사령을 지낸 김좌진 장군이 1등급인 것과 비교해도 2단계나 낮다. 고헌의 고향인 울산에서는 지난해부터 서훈 상향을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고헌의 증손자 박중훈(65)씨는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서훈 한 등급 더 받으려고 독립운동을 했겠나”라면서 “그동안 서훈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이 먼저 나서주니 힘이 된다”며 “이왕이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무장투쟁단체 ‘의열단’을 이끌었던 약산 김원봉의 외조카 김태영(62)씨는 “약산은 공산당원도 아니었고 해방 이후 생명의 위협을 느껴 쫓기듯 북한으로 건너갔다”면서 “역사도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뼛속까지 북한 공산주의자’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하는 것은 진보 인사를 대표하는 상징성과 남북 평화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서훈 반대 세력에 굽신거리면서까지 받아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서훈 재심사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현행 상훈법에는 서훈 변경 규정조차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도 매 회기마다 서훈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상훈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찬반 논란 속에 흐지부지됐다. 지난 2월 독립유공자 3등급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 정부가 최고 등급인 1등급으로 ‘추가 서훈’을 결정했지만, 기존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재심사는 아니었다. 3·1운동으로 인한 애국정신 함양 등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별도 포상을 한 셈이다. 정부가 추가 서훈의 길을 터놓기는 했지만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찌질이” “둘이 사귀냐” 폭언·성희롱한 공공기관 간부 해임 정당

    법원 “지위 이용해 낮은 직급 인격권 침해” 부하 직원들에게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아 해임된 공공기관 간부가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박성규)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각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 부장으로 일하던 A씨는 2017년 공단 인사위원회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조직 분위기 저해 등의 사유로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 “부장 말이 법”이라고 강요하며 “찌질이”, “미친X”, “재수없다 퉤퉤”, “어휴, 또라이”, “작살 내버려야겠다, 싸가지 없는 XX” 등 모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인턴들에게는 “알아서 하세요. 다음주부터 한 명씩 자르면 되죠”, “이 중 2명은 ‘가(최하)’ 평점을 줘서 잘라버릴 수 있다”는 등 지위를 이용해 압박하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는 여직원에게 “러브샷 하자고 하면 성희롱이냐”고 물으며 러브샷을 요구하거나 남녀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둘이 사귀냐”고 말한 것 등도 징계 사유로 꼽혔다. A씨는 공단 재심청구와 중앙노위 구제 신청이 모두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징계가 직원들의 일방 진술에만 의존했고, 행위에 비해 징계가 지나치게 무겁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공기관 직원도 높은 윤리의식과 성실, 품위유지 의무 준수가 요구되는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주로 직급이 낮은 신입이나 여직원,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을 상대로 인격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하는 등 괴롭힘 행위를 해 비위 정도가 중하다”며 “괴롭힘 대상이 된 직원들의 인격이나 정신적 건강, 근무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軍 초동수사 잘못… 아들 의문사 21년째 못 밝히고 거짓말 계속”

    “軍 초동수사 잘못… 아들 의문사 21년째 못 밝히고 거짓말 계속”

    “이제부터 ‘제2의 김훈 중위 사건’ 시작입니다.” 두 시간 반 가까이 쉼 없이 말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20년을 싸워 왔는데 아버지는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경비 초소에서 근무하다가 사망한 김훈(당시 25세·육사 52기) 중위의 아버지 김척(76·육사 21기) 예비역 중장의 이야기다. 국방부는 세 차례의 수사를 거쳐 김 중위의 죽음을 ‘권총 자살’로 결론 냈다. 유족들은 “군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자살로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진상을 은폐·조작하거나 요식적인 수사를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패소, 2심과 3심에서는 1차 수사의 과실만 인정해 김 중위의 부모와 동생에게 모두 1200만원을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은 2006년 12월 “초동 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2009년 10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지었다.미궁에 빠진 죽음을 두고 2010년 육사총동창회와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자살’이 아닌 ‘순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도 몇 년이 더 흘러 김 중위는 숨진 지 19년 만인 2017년 8월 31일에서야 국방부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았다. 김 중위의 부모는 지난해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국방부가 ‘자살’로 고집하며 순직 결정을 미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이동욱)는 지난달 27일 “진상규명 불능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조항이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국방부가 순직 결정을 미룬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김 중위 부모는 곧바로 항소했다. 20년을 넘어선 싸움이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다음은 김척 예비역 중장과의 일문일답.●사건 처음부터 재조사까지 답 정해놓고 수사 -패소 판결을 받고 어떤 기분이셨나요. “정말 분노했습니다. 우리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하고 7조에는 ‘국가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판결은 이 본질을 무시하고 국방부에 편파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여겨져요. 우리는 (육사총동창회가 순직 변경을 요구한) 2010년부터의 국방부의 거짓을 문제 삼고 싸우려 한 건데, 법원은 2006년 판결을 근거로 삼았어요. 대법원을 비롯해 국회와 권익위 등 다른 국가기관들이 훈이의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국방부만 유일하게 자살 주장을 고집했어요. 아니라고 부딪치고 싸워도 다른 국가기관의 결론을 오히려 왜곡해 가면서 우리를 ‘정신질환 자살자’의 가족으로 매도했어요. 그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어 소송을 한 건데 우리의 아픔은 보지 않은 것 같아요.” -판결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불만스러우신가요. “대법원 판결에 이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훈이 죽음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고, 2012년 8월 권익위(당시 위원장이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2006년 대법원 판결 시 주심 대법관)가 훈이를 순직 처리하라고 시정 권고했어요. 그러나 국방부는 여전히 훈이가 자살한 게 맞다고 허위주장을 했어요. 2010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법원 판결에서 자살로 인정됐다’고 했고, 조정환 육군 참모차장도 ‘대법원이 ‘자살’ 내용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라 번복하는 것을 육군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2010년 육사총동창회가 순직 변경을 요구하자 육군 법무계획과장은 ‘대법원은 2·3차 수사결과 자살이라고 한 결론을 긍정한 것’이라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원고 등이) 유리한 자료들만 모아서 유리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한마디로 우리가 떼를 쓴다는 거예요. 이번 재판부는 이들의 거짓 언행이 잘못이라고 인정해 주는 듯하더니 ‘객관성과 정당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사소한 걸로 치부했어요. ‘판결 취지를 부적절하게 해석해 발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족들에게 아픔을 끼친 것을 넘어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국방부 장관이, 고위직이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몇 년간 허위주장을 해 왔는데(2012년 국감 및 국회의원 요구 자료에도 국방부는 자살이 인정됐다고 주장)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겁니까.”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도 ‘분노’라는 단어가 유독 많던데요. “군은 애초에 훈이가 정신질환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덮기 위해 부실 수사와 조작·은폐를 일삼았어요. 훈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자살을 합리화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2006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합동조사단이 다소 무리한 추측을 했다고는 인정했다.) 사건 직후 초동 수사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2·3차 수사도 잘못됐고 결국 지금까지도 제대로 진상을 밝히지 못했잖아요. 그에 대한 사과는커녕 거짓이 계속돼요. 훈이 오른손에 (권총 자살일 경우 나타나는)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군 수사 감정서를 자살이 입증된 자료라고 왜곡했고 이번 재판 과정에서도 국방부는 마치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한 훈이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순직 결정의 은혜를 베풀어 준 것처럼 의견서를 냈어요. 권익위가 재심의하라고 하니 국방부는 2012년 9월 보강조사의 중점사항으로 ‘공무상 사유로 인한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 여부’, ‘직무수행과 관련한 폭언,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원인발생 여부’를 적시했어요. 사건 처음부터 재조사까지 훈이를 정신질환자로 몰기 위해서 답을 정해 놓고 한 거예요. 그런데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것까지는 아니라고 했죠.”●돈 받으려는 소송 아냐… 진심 사과 땐 소 취하 -‘장군의 아들’이었던 김 중위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이 됐고,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네요. “제가 싸우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저와 아들이 군에 몸을 바친 게 합쳐서 40년 가까이입니다. 그나마 저는 군을 잘 알고 육사총동창회 도움도 있었기에 자료도 더 많이 얻고 여기까지 왔지만 다른 부모들은 폐쇄적인 군으로부터 객관적인 자료 하나 받기도 힘들어요. 제가 싸워서 더이상 ‘군 의문사’라는 게 없어지길 바랍니다. 객관적인 감정서를 갖고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달라는 겁니다. 군에서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부모들에게 진실을 정확히 밝혀 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훈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의 싸움이 젊은이들을 많이 구할 수 있고 군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을 세상에 태어난 제일 큰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군 의문사와 싸우지 않으면 군은 더 큰 괴물이 되는 거예요.”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하실 건가요. “소송을 냈지만 돈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국방부에도 계속 이야기했어요. 진심으로 사과하면 소를 취하하겠다고요. 잘못했으면 사과해야죠. 남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요. 제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국방부에 보낸 내용증명만 47차례에요. 법을 잘 모르니 한 번 보내려면 2주를 꼬박 고생하죠. 거대한 국가기관과 20년을 싸우면서 우리 가정은 파탄이 났어요. 한 집안이 망하는 일이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싸울 수밖에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겁니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묻는다고 치유가 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건 바보 같은 거죠. 싸워야 합니다. 내가 싸우다가 죽어도 그게 더 행복한 거예요. 훈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니 주변에서 ‘이제는 잊고, 용서하고 편히 사세요’라고들 하더군요.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를 합니까.”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손학규 찌질이’ 발언 이언주, 당원권 1년 정지 징계

    ‘손학규 찌질이’ 발언 이언주, 당원권 1년 정지 징계

    바른미래당 중앙당 윤리위원회가 5일 손학규 대표에게 “찌질하다” 등 비하 발언을 한 이언주 의원의 당원권을 1년간 정지하기로 했다. 윤리위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이같은 결정을 내리고 당 최고위원회에 결과를 통보했다. 최고위는 추후 회의를 소집해 재적위원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당원권 정지 처분을 의결할 수 있다. 송태호 윤리위원장은 “이 의원은 4·3 보궐선거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당 후보의 표를 깎는 행위를 했다”며 “당헌·당규와 당 윤리규범을 근거로 이를 해당 행위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원권 정지는 ‘제명’ 다음으로 수위가 높은 징계다. 징계 대상자는 징계의결서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윤리위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앞서 이 의원은 자신에 대한 당의 징계에 대해 “목을 치려면 쳐라. 굴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20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창원에 머물며 보궐선거 지원을 하고 있는 손 대표에 대해 “찌질하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나 살려주세요 하면 짜증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인권 대부 고 홍남순 변호사 39년만에 무죄판결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인권운동 대부’ 고 홍남순(1912~2006) 변호사가 39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송각엽)는 내란중요임무종사와 계엄법 위반 혐의로 1980년 10월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은 홍 변호사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시민 수습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이모(1980년 당시 65세·사망)씨와 시위에 참여해 광주교도소를 향해 칼빈소총 2발을 발사해 유죄 판결을 받은 임모(64)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홍 변호사의 행위의 시기와 동기,사용수단, 결과 등을 볼 때 헌정 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라며 “헌법의 존립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한 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홍 변호사는 1980년 5월 시민 수습위원과 함께 시민 희생을 막기 위한 소위 ‘죽음의 행진’에 나섰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복역한 뒤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홍 변호사는 1963년 호남 민주화운동의 산실로 불리는 광주 동구 궁동 가옥에 사무실을 열고 양심수 변론을 맡아 ‘긴급조치 전문변호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인권활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 발언을 한 유옥우 전 국회의원 사건을 비롯해 문인, 정치인 등 양심수들을 위해 60건 이상의 무료 변론을 했다. 이후 5·18 광주구속자협회 회장, 5·18광주민중혁명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추진위원장 등을 맡아 5·18 진상규명과 시민 명예회복 활동을 하다가 2006년 타계했다. 검찰은 5·18 사건으로 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재심을 받지 않은 111명(사망 36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 청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한투 발행어음 ‘기관경고’

    금융감독원이 3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자금 부당대출에 대해 기관경고 제재를 의결했다. 또 과징금·과태료 부과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하고, 임직원에 대해서는 주의·감봉 조치를 결정했다. 당초 금감원이 요구했던 징계 강도에 비해서는 수위가 낮아졌다. 금감원은 한투증권에 임원해임 권고, 일부 영업정지 등의 중징계 조치안을 사전 통지했다. 하지만 중징계에 해당하는 기관경고를 제외하면 사실상 경징계가 내려졌다. 황성윤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장은 “발행어음 관련한 첫 제재 사례고, 투자자나 회사에 손실을 끼치거나 피해를 준 것은 아니어서 감경됐다”면서 “이번 조치로 시장에 충분한 신호를 줬다고 판단하고, 이후에 또 위반 사례가 있으면 엄중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투증권은 안심하는 분위기지만 아직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와 금융위 의결이 남아 있는 만큼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한투증권의 완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한투증권은 영업정지와 경영공백만 없다면 입을 피해가 전혀 없다”면서 “금감원은 체면치레를 한 수준이고 한투증권이 실리를 챙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금감원은 한투증권 발행어음 자금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흘러들어 간 것을 두고 사실상 ‘개인대출’로 판단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해당 안건을 제재심에 올렸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안창호에 내란음모죄 씌운 日…궐석재판 시도했다가 여론 뭇매

    안창호에 내란음모죄 씌운 日…궐석재판 시도했다가 여론 뭇매

    1919년 3·1운동의 힘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동하자 일제는 안창호, 이동녕, 이동휘, 김규식 등 임시정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핵심 요인 16명을 재판에 넘겼다. 일제의 형법은 내란 및 내란 예비음모죄의 경우 3심 법원인 고등법원이 단심제로 관장하도록 했다. 그러나 고등법원 검사장이었던 나카무라 다케조는 1924년 3월 공소를 취소했다. 재판부는 공소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이와 같이 적었다. “(피고인들은) 1919년 3월 이후 조선 각지에서 일어나는 독립운동에 호응해 조선을 독립시킬 목적으로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기관을 조직해 각기 요직에 취임하여 (중략) 1920년 1월경 단연 독립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뜻을 관철하기로 결정하고 계책했다.”(1924년 3월 12일 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 오카모토 시토쿠의 판결문 일부) 검사장이 공소 취소 이유를 따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들 중 보석으로 풀려난 영국인 조지 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체포되지 않아 재판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는 피고인이 없는 상황에서 궐석재판이라도 감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잡히지를 않으니 궐석재판을 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효력이 없어 공소를 취소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중 유일하게 붙잡혔던 쇼는 1920년 단둥에서 신의주로 들어갔다가 일제에 체포됐다. 표면상 이유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지만, 일제는 이륭양행이라는 무역선박회사를 소유한 쇼가 중국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가 국내와 소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피고인은 임시정부와 대한청년단연합회의 성질, 목적, 수단 등을 알고도 그 목적 달성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임시정부원 및 연합회원에게 자기 소유의 주택과 기타 건조물을 빌려주고 관리에게 선박을 제공해 상해와 안동 간의 왕래에 사용하게 해 군수품, 문서 등을 운반하고 금품의 발저(송금 등)에는 자기 명의를 사용하게 하고 제국 관헌의 행동을 통보하는 등 내란 예비행위를 방조했다.”(같은 판결문) 하지만 서구 언론을 통해 쇼 체포 사건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일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에 이르렀고, 법원은 쇼를 보석으로 석방했다. 쇼는 이후에도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지만 광복을 2년가량 남겨둔 1943년 11월 생을 마감했다. 3·1 운동이 만들어 낸 임시정부는 상하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내에, 그것도 일제의 경비가 가장 삼엄한 서울 한복판에도 ‘한성정부’가 있었다. 한성정부는 13개 도와 각계 대표자가 모여 대표성과 정통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일제는 일찌감치 진압에 나섰다. “피고인 한남수, 김사국은 변호사 홍면희, 이규갑 등의 권유로 조선국민대회를 조직해 통일적으로 각소에서 봉기하는 독립운동단을 망라해 조선임시정부를 설립함으로써 계통적 독립시위운동을 하도록 기도했다. (중략) 김유인, 김사국 등은 (중략) 경성부 서린동 ‘봉춘관’에 조선 13도의 대표자를 모이게 함과 동시에 학생과 3000명의 노동자를 종로에 모아 독립만세를 고창하게 하며 인쇄물을 배부하는 등 실행계획을 만들었다.”(1920년 3월 5일 경성복심법원 형사부 재판장 쓰카하라의 판결문 일부) 이들 중 가장 중한 형을 받은 장채극은 징역 2년, 다른 5명은 징역 1년~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성정부는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면서 민주정을 채택함을 분명히 했고 이는 훗날 상하이 임시정부로도 이어졌다. 이들이 작성한 국민대회 취지서는 “3·1독립선언의 권위를 존중하고 (중략) 민족일치의 동작으로 대소의 단결과 각 지방대표자들로서 분회를 조직해 이를 세계에 선포”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약법(約法) 제1조 ‘국체는 민주제를 채용함’, 제2조 ‘정체는 대의제를 채용함’ 등으로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을 알렸다. 한성정부는 당시 연합통신(AP)에도 보도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고, 국민대회라는 국민적 절차에 의해 조직됐다는 점 등에서 훗날 임시정부 통합 과정에서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다. 이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이었던 이규갑은 훗날 상하이로 가 임시의정원에서 활동을 이어 나갔고 해방 후에는 제2대 국회의원까지 지낸 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임시정부가 국내와 연락을 취하고 운영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만든 연통제와 교통국은 3년여간 운영되다가 일제의 철저한 색출 작업에 무너졌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밀조직이 임시정부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1920년 11월 경성복심법원에서는 연통제 운영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47명에 대한 2심 판결이 선고됐다. 이 중 가장 무거운 형인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윤태선이 받은 혐의가 당시 판결문에 자세히 기재돼 있다. “윤태선 및 박상목은 경성부 제동 취운정에서 강대호, 박시목, 송범조라는 자와 회합해 경성에 임시정부 13도 총간부를, 각 도에 그 지부를 설치해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통해 독립운동을 할 것을 협의했다. (중략) 일동이 이에 찬동해 지부 조직을 완성했다.”(1920년 11월 29일 경성복심법원 형사부 판결문 일부) 이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연통제 조직이 1919년 7월 즈음 활동을 시작해 1921년 후반 거의 소멸됐다. 국경 인접 지역인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제외하고는 활발할 활동이 어려웠던 탓이 컸다. 또 면 단위까지 조직된 연통제는 일제에 큰 위협이 됐기 때문에 일제가 짧은 기간 내에 색출되고 말았다. 하지만 연통제 요원들 중 사립학교 교사·학생·전도사·승려 등 지식인이 많았다는 점, 이 조직을 통해 임시정부가 국내외를 연결하는 민주공화국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 등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기고] 벚꽃은 해마다 피고 진다/현택훈 시인

    [기고] 벚꽃은 해마다 피고 진다/현택훈 시인

    지난 1월 17일 제주 4·3 생존 수형인에 대한 재심 판결이 있었다. 제주지방법원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1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마침내 내란실행 및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가 사라졌다. 4·3 당시 진행된 군사재판이 불법 재판임을 입증한 셈이다. 그들은 법원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70년 만에 억울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생존 수형인들 대부분 구순을 넘긴 고령이다. 올해는 4·3 71주년이다. 제주작가회의는 해마다 4·3평화공원에서 4·3 시화전을 실시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주대 교정에서도 같은 작품으로 4·3 시화전을 열었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도 시작품으로 참여했다. 이번에 제주대에서 4·3 시화전을 연 의미는 4·3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 제주대 학생들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89년 4월 제주대총학생회에 의한 4·3진상규명촉구 집회가 열렸다. 학생회관 앞에 모인 제주대 학생들은 감옥에 끌려갈 각오로 진상 규명을 부르짖었다. 1989년 필자는 중학생이었다. 제주도의 대학로 격인 제주시청 앞에서 대학생들이 스크럼을 짠 채 아스팔트에 드러누웠다. 3만명가량 희생된 4·3. 제주 사람들 대부분 유족이나 마찬가지다. 형과 누나들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진실을 밝히라고. 그후 30년이 지나 4·3 생존 수형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해마다 4월이면 제주도는 벚꽃이 한창이다. 왕벚꽃나무의 자생지 제주도에는 벚꽃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제주대 입구가 다른 곳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1989년에도 제주대 입구에는 벚꽃이 활짝 폈으리라. 제주대 4·3 시화전을 제안한 김동윤 제주대 교수는 1989년 당시 이 학교 학생이었다. 다시 그날의 벚꽃이 날리는 교정에서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이 읽는 4·3 시를 듣는 마음은 ‘분분한 낙화’처럼 아름다우면서 아련할 것이다. 형과 누나들의 머리 위에 떨어지던 꽃잎들. 군사재판의 수형인 명부에 기록된 사람들 중 2500명은 이미 숨을 거두었다. 1989년의 외침처럼 4·3의 완전한 해결이 이뤄지지 않은 지금도 진실을 찾기 위한 외침은 이어져야 한다. 제주대 교정에 핀 벚꽃은 4월 3일에 만개할 것이다.
  • [뉴스 분석] 한투증권 발행어음 오늘 3차 제재심의… 법인대출이냐 개인대출이냐 최대 쟁점

    [뉴스 분석] 한투증권 발행어음 오늘 3차 제재심의… 법인대출이냐 개인대출이냐 최대 쟁점

    한투증권 “SPC와 계약한 기업대출” 금감원 “최태원 회장에 전달 파이프” 발행어음 사업 인가 후 첫 제재 촉각금융감독원이 3일 오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불법 대출 의혹을 다시 심의한다. 이번이 세 번째 제재심인데 한투증권은 여전히 정상적인 대출이라고 주장하고 금감원은 자본시장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발행어음 사업 인가 후 첫 제재심이어서 증권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2일 금감원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한투증권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을 최태원 SK그룹 회장 개인에게 대출해 줬는지 여부다. 한투증권은 2017년 8월 말 특수목적법인(SPC) ‘키스아이비제16차’에 SK실트론 지분 19.4% 매입자금 1673억원을 빌려줬다. 한투증권은 이 SPC가 최 회장과 맺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근거로 돈을 빌려줬다. 이 계약은 SK실트론 주가 변동으로 생기는 이익이나 손실 등 모든 현금흐름에 대한 책임과 주주권을 최 회장이 갖고 SPC는 수수료를 받는 파생거래다. 삼성증권도 한투증권과 똑같은 구조로 대출해 줬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인 주식담보 대출의 하나로 본다. 금감원이 삼성증권은 문제 삼지 않고 한투증권만 불법으로 판단한 이유는 자본시장법에서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을 개인대출로 쓰지 못하게 규정해서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어음을 발행해 모은 돈으로 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거두고 투자자에게는 약속한 원리금을 주는 상품이다.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투자은행(IB) 중 대주주 적격성 등 까다로운 요건을 통과한 일부 증권사에만 사업 인가를 내준다. 한투증권이 2017년, NH증권이 지난해 인가를 받았다. 한투증권은 최 회장이 아닌 SPC와 계약한 기업대출이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SPC를 통한 대출을 오랜 기간 해왔고 법인 간 거래이기 때문에 갑자기 법적으로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본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기 전 SPC에 돈을 빌려줬고 SPC 일부 투자자들이 상환을 요구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키스아이비제16차는 발행어음 대출금이 최 회장으로 전달되는 파이프에 불과하다”면서 “실제로는 법에서 금지한 개인대출”이라고 일축했다. 금융당국이 발행어음 사업 신규 인가를 내준 이유는 조달한 돈을 모험자본의 마중물,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쓰라는 것이었다. 이 취지를 어긴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 방식이 허용되면 다른 재벌들도 발행어음 자금을 SPC로 빌려 지배구조나 사업구조 개편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재심 결정이 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 논리대로라면 SPC와 TRS를 비슷하게 활용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사모투자펀드(PEF) 상당수가 개인대출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너무 큰 도화선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한투증권을 징계하면 앞으로 금감원이 어떤 잣대를 들이대 문제 삼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커져 TRS 거래는 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도 시장에 줄 파장 우려에 고민이다. 금융위 법령해석심의위원회는 지난달 이번 건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금감원의 제재심이 끝나면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제재가 최종 확정된다. 제재심 이후에도 시장의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누명 벗었지만 진상규명 안 돼… 특별법에 도민 목소리 반영을”

    “누명 벗었지만 진상규명 안 돼… 특별법에 도민 목소리 반영을”

    “아직도 제주4·3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 개정안에 도민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지난 1월, 제주4·3 수형인 피해자 18명이 71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법원의 재심 무죄 판결 직후 재심 당사자인 할아버지, 할머니들 못지않게 벅찬 소감을 밝힌 이가 있었다. 2013년부터 2530명의 이름이 적힌 수형인 명부를 근거로 실태 조사에 나섰던 양동윤(69)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였다. “오늘 대한민국 법원이 우리 할망, 할아방들한테 무죄 판결을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죄 없댄 말해야 합니다!” 일흔한 번째 4·3을 하루 앞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양 대표는 “언제나 4월이면 바쁘다. 특히 올해는 연초 있었던 재심 판결 때문에 언론 취재와 행사 지원으로 하루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재심으로 누명을 벗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2월부터 법원에서 형사보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양 대표는 “무고한 수형 생활을 보상받는 게 형사보상이다. 이분들이 수형 이후 71년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받았던 고통은 아직 남아 있다”면서 “아들이 좋은 국가기관에 합격하고도 아버지의 수형 전력으로 인해서 불합격 처리가 됐고, 수형 당시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흉측하게 뒤틀려 있는 분도 계시다. 변호인들께서 피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고, 형사보상 절차가 끝나면 국가배상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날 국회에서는 발의 16개월 만에 제주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행정안전위원회의 첫 심의가 이뤄졌지만 의견 대립 끝에 의결이 무산됐다. 양 대표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현재 논의되는 개정안이 도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는 큰 틀에서 4·3을 정리해 놓은 수준입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진상이 세세하게 밝혀지지 못한 부분이 많죠. 예를 들어 주민 300여명이 학살된 북촌마을 사건의 경우 보고서에 학살 자체는 기술돼 있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밝혀진 게 없어요.” 양 대표는 “추가 진상조사가 빨리 이뤄져야 앞으로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에서도 판단 근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은 과제가 또 있느냐는 질문에 양 대표는 “지난 재심에 수형 생존자 모두가 참여한 게 아니다”라면서 “제주도에서도 아직 재심에 참여하지 못한 3~4명이 살아 있고 서울, 부산 등 육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도쿄에도 수형 생존자가 계신다. 그분들 재심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재심 판결 이후 3주 만에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현창용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며 양 대표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는 “나이라는 건 절박한 거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내일이 추념식인데 재심 당사자 17명 중 8명이 건강 때문에 못 나오신다. 법원이 물론 잘 판단해주실 것으로 믿지만, 속도를 조금 더 내달라고 호소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축구장 선거 유세’ 규정 위반 경남FC에 제재금 2000만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4·3 창원 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의 경기장 내 선거 유세를 막지 못한 프로축구단 경남FC가 제재금 2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선거 승리에만 혈안이 된 정치인들의 ‘갑질’에 애꿎은 시민구단만 생돈을 쓸 처지에 놓였다. ●상벌위 “적극 막지 못한 건 구단 귀책사유”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는 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지난달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벌어진 황 대표와 강 후보의 경기장 유세와 관련해 경남FC에 제재금 2000만원 결정을 내렸다. 이번 징계는 프로축구연맹 정관 제5조에 의거해 이뤄졌다. 연맹 관계자는 “경기 전부터 선거 열기가 고조돼 있었음에도 구단은 경호 인원을 증원하지 않았고 선거운동원들이 입장 게이트를 통과하는 상황에서 티켓 검표나 선거 운동원복 탈의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유세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고 장내 방송을 통해 공개 퇴장을 요구하지 않은 점은 구단의 귀책사유”라고 했다. 다만 구단이 유세단의 경기장 진입과 유세 활동을 제지했던 점과 소수의 구단 사무국 인원으로 다수의 운동원을 통제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승점 감점 같은 중징계가 아닌 제재금 부과를 결정했다. 경남FC는 7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한국당 “구단에 송구… 결정 재고를”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경남FC가 제재금 징계를 받게 된 것을 송구하게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구단과 축구팬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면서 “경남FC 구단이 적극적인 조치를 성실히 수행한 점을 감안해 이번 결정을 재고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다른 당은 일제히 한국당을 비판했다. 특히 황 대표가 과거 국무총리 시절 관용차를 타고 KTX 플랫폼까지 들어오는 등 ‘과잉 의전’으로 구설에 오른 사례가 있는 만큼 갑질 행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한국당은 경기장 무단 난입과 선거운동에 대해 모든 법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한국당이 갑질 정치를 계속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구상권을 청구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경남FC ‘황교안·강기윤 유세’ 제지하고도 제재금 2000만원 징계

    경남FC ‘황교안·강기윤 유세’ 제지하고도 제재금 2000만원 징계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창원청산 보궐선거 후보의 경기장 내 선거유세로 결국 프로축구단 경남FC가 제재금 2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는 2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지난달 30일 경남 창원축구센터에서 발생한 황 대표와 강 후보의 선거유세와 관련해 경남FC에 제재금 2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현행 프로축구연맹 정관 제5조에는 ‘연맹은 행정 및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경기장 안에서는 정당명, 기호, 번호 등이 노출된 의상을 입을 수 없다. 정당명, 후보명, 기호, 번호 등이 적힌 피켓, 어깨띠, 현수막 노출과 명함, 광고지 배포도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홈팀에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 무관중 홈경기, 2000만원 이상 제재금 등의 벌칙이 부과된다. 이런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와 강 후보는 지난달 30일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가 있던 창원축구센터를 찾아 경기장 안에서 금지된 선거유세를 해 물의를 빚었다. 전날 연맹 경기위원회가 경남FC에 대해 징계 필요성을 결정함에 따라 상벌위는 이날 회의를 열어 조기호 경남FC 대표이사의 소명을 들은 뒤 제재금 2000만원을 부과했다. 징계를 받은 경남FC는 7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면 연맹은 이사회를 열어 15일 이내에 재심 사유를 심의해야 한다. 앞서 경남FC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황 대표와 강 후보 측) 일부 유세원들이 ‘입장권 없이는 못 들어간다’는 얘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들어갔다”면서 “(강 후보 측) 유세원들이 경기장에서 유세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경기장 내에서는 선거유세를 하면 안 된다. 규정에 위반된 행동’이라면서 만류했지만 강 후보 측에서는 이를 무시한 채 계속적으로 선거 활동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결국 구단 측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와 강 후보 측이 선거유세를 강행하면서 경남FC가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선거를 하루 앞둔 첨예한 시점에 긴급하게 이뤄진 이번 결정에 대해 아쉬운 바가 크다”면서 “승점 감점이나 무관중 홈경기 등 중징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경남FC가 적극적 조치를 성실히 수행한 점을 감안해 (상벌위가) 결정을 재고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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