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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시대 달라진 사법부 위상 반영/간첩단사건 첫 재심결정 의미

    ◎“객관성 상실·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인정/군사정권 조작의혹 사건 청구 잇따를듯 지난 80년 조총련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신춘석(56) 서성철(60·사망) 신귀영씨(57) 등 기결수 3명에 법원이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문민정부와 함께 달라진 사법부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재심의 사유를 무죄선고 이상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군사정권이 처리한 간첩사건 중 조작의 의혹이 큰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가 앞으로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태우 부장판사)는 『원 판결 재판부가 재심청구인 3명에 대한 범죄사실의 부존재에 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상태(예컨대 진범이 나타는 경우와 범죄의 증명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들의 간첩행위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고 재심개시 결정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장에 나타난 간첩행위 지령자인 신수영씨가 문서를 통해 자신은 조총련 간부가 아니며,간첩행위를 지령했거나 이들을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공판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신씨가 증인으로 공판에 출석해 진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청구인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공소장에 나타난 상황 자체가 간첩행위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도 꼽았다.예컨대 지난 66년 6월 초 신춘석 피고인이 일광∼기장∼송정∼해운대를 운행하는 버스에서 051탄창 및 수영비행장 등을 촬영했다고 했으나 이 도로는 지난 70년쯤 개통됐다. 서성칠 피고인이 지난 72년 4월 초 부산중구 광복동 근학도서에서 부산 항만시설 지도 등을 구입했다는 내용 역시,근학서점의 개업일자가 75년 1월1일이고 부산항만 시설지도도 취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청구인들은 지난 80년 2월25일과 3월24일까지 부산시경 대공분실에 연행돼 40∼70여일간 영장없이 구금돼 조사를 받았고,4월10일까지는 피고인들을 조사한 기록이 일체 없다.그 이후 자백이 구체성을 띠는 점 등은 강압수사에 따른 허위자백 또는 임의성 없는 자백임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신귀영씨는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며 서성칠씨는 89년 5월9일 교도소에서 사망했다.10년형을 선고받은 신춘석씨는 지난 90년 출감,경남 양산군 일광면에서 큰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 문재인 변호사는 『그동안 너무 엄격하게 운영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재심제도가 이번에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실형 확정 간첩단 사건/법원,첫 재심개시 결정

    ◎부산지법,“강압수사 의한 자백 의구심” 【부산=김정한 기자】 부산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태우부장판사)는 24일 간첩단 사건과 관련,징역 10∼15년씩의 실형이 확정된 신춘석(56),서성칠(60·사망),신귀영씨(57) 등 3명의 가족 및 본인이 낸 재심청구사건에 대해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국가보안법 및 간첩단사건의 기결수에 대해 법원이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피고인들이 40∼70여일간 영장없이 장기간 구금된 점,자술서도 시간이 경과할수록 자백의 내용이 구체성을 띠는 점 등을 비춰 볼 때 강압수사에 의한 자백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검찰은 피고인들이 72년 4월 초순 부산시 중구 광복동 근학서점에서 부산항만 시설지도 등을 구입했다고 했으나 이 서점은 75년 1월 문을 열었고 지도도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두 신씨와 서씨 등 3명은 부산항 항만시설과 군사시설 등을 조총련에 넘겨준 혐의로 80년 5월30일 국가보안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뒤 같은 해 10월15일 부산지법으로부터 두 신씨는 징역 15년 및 자격정지 15년,서씨는 징역 10년 및 자격정지 10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81년 2월19일과 같은 해 6월23일 이들의 항소 및 상고를 이유없다고 기각했다. 재심개시결정은 재심청구가 이유있다고 인정될 때 내리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지면 형의 집행이 정지된다.
  • 노조활동 중단상태때 조합원징계 인사위(새 판례)

    ◎회사측위원만 구성 정당/대법원 노동조합원을 중징계할 때 노사동수로 구성된 인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단체협약이 있더라도 그 회사의 노조활동이 중단됐을 때는 회사 위원으로만 구성된 인사위원회도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정귀호 대법관)는 22일 정모씨(경북 포항시 대도동)가 포항제철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회사측이 인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아 절차상 위법이라고 본 원심은 잘못됐다』고 지적,이같이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노조활동과 관련해 조합원을 중징계 때 해당 조합원의 재심청구가 있다면 노사동수로 구성된 인사위원회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단체협약이 있었지만 포항제철의 노조활동이 중단돼 회사측으로만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가 작업대에서 졸았고 노조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만으로 면직처분까지 한 것은 부당하다』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인정했다.
  • 미 군정체제 확립(새로 쓰는 한국현대사:5)

    ◎“일인활용 불가피”속 행정권 장악에 석달/서울 입성뒤 「북쪽 접수」 주력… 개성 첫 점령/북의 소군은 2개월 앞서 「도인민위」 설치/인천입항 미군 환영길 한국인 2명 일경에 피살 미군이 인천에 첫발을 디딘 1945년 9월8일은 미 군정 3년을 포함해 이후 반세기동안 유지돼 온 한미간 특수 역사관계의 출발점이었다.그러나 한국인과 미군의 첫 만남은 그 시대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듯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졌다.미군을 환영하러 부두로 몰린 한국인들이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두명이 숨지고 십여명이 부상한 것이다.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근대 해항지여서 일찍부터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고 그 세도 강한 항구도시였다.반면 부두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활발히 움직이는등 반일세력도 만만찮았다.따라서 해방이 되자 인천시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일본경찰은 재향군인 9천명을 급하게 모아 특별경찰대를 조직,각 파출소에 배치하는등 경비를 강화했으며 한국인들도 이에 맞서 치안유지회(보안대)를 결성해 대치하는 분위기였다. 「미군이 9월8일 인천항으로 상륙한다」는 소문이 며칠전부터 떠돌자 시민들은 「해방군」을 맞는다는 기쁨에 들떴다.이에 조선총독부는 9월5일 담화를 통해 『미군은 민중환영등 의례적인 행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이어 8일에는 인천경찰서가 의사·산파·우편배달부를 제외한 사람의 외출을 금지한다고 공시했다.그리고 『이것은 미군의 지시』라고 못박았다. 8일 아침이 되자 인천시내 곳곳에는 미군을 환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무리를 형성했다.미군 함정이 부두에 도착한 하오2시쯤에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인천항쪽으로 나아갔다.인파가 현재의 인천우체국 자리를 지나 산업은행 앞에 이르자 일본 특별경찰대의 99식 소총이 불을 뿜었다.이 발포로 행렬에 앞장선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 권평근(당시 45세)과 보안대원 이석우(20세 가량)등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권평근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사는등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해방된 우리땅에서 독립운동가가 일본경찰에게 공공연하게 피살된,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이 사건에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사전정보부족과 한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일본측 농간들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군은 진주에 앞서 한국주둔 일본군사령관 우에쓰키(상월양부)와 연락,그로부터 『무장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자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일본군의 치안유지권을 인정한다.이같은 미군의 입장은 권평근·이석우의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장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이 미군에 발포경찰관등을 고발,이에 대한 군사재판이 13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일본인인 인천경찰서장등은 『미군 지시로 환영·외출을 금지했는데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고 법정은 이들의 행위를 「합법」이라고 판정했다.재심청구를 했지만 곧 기각됐다. 이 사건은 미국 신문에 즉시 보도돼 미국내에서도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종군기자 리처드 E 라우터배크는 「뉴욕타임스」9월9일자 기사에서 『일본군이 환영군중에게 발포한 것은 미군사령부의 지시때문』이라고 공개했다.「뉴욕타임스」는 이어 11일자 사설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정책을 시행한 쓰레기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우리가 해방시킨 민중에게는 강경하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한국점령 임무를 맡은 미 제24군단 가운데 8일 인천을 통해 맨 먼저 들어온 부대는 7사단이었다.7사단은 인천에 17보병연대를 남겨놓고 9일 아침 서울로 향했다.당시 미국신문들은 거리풍경을 『흰옷을 입고 이상스런 검정모자(갓)를 쓴 한국인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서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USA Army Welcome」이라고 쓴 환영아치도 가끔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한국인들은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미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던 것이다. 이날 하오4시6분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현 국립중앙박물관)제1회의실에서 38선이남 일본군의 공식 항복행사가 열렸다.일본측 대표인 아베 노부유키(아부신행)조선총독,우에쓰키 주둔군사령관등이 먼저 들어왔고 이어 하지중장,킨케이드중장(제7함대사령관)등 미군대표가 자리를 잡았다.하지중장 뒤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X자로 세워져 있었다. 다음날부터 미군은 38선이남의 영토와 행정조직을 장악하는데 본격적으로 나선다.서울에 본부를 둔 7사단은 우선 북쪽지역에 주력해 12일 개성을 점령한 다음 소련과 연락할 전신장치를 설치했다.이어 그리고 미군정은 각 도에 군정지사를 보내 행정권을 장악했다.지사 발령날짜를 보면 ▲경기도 10월2일 ▲강원도 11월26일 ▲충북 11월8일 ▲충남 10월9일 ▲경남 9월28일 ▲경북 11월3일 ▲전북 11월20일 ▲전남 10월26일등이다.초대 군정지사들은 영관급 장교가 대부분이고 경남지사인 찰스 해리스가 유일하게 준장이었다. 미군이 지방에 분산 배치된 초기에는 군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군단위까지 확보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고 특히 훈련된 행정요원은 턱없이 모자랐다.그런가 하면 현지실정을 몰라 한동안 일본인 관리를 활용해야 했으며,일부 지역에선 「조선인민공화국」이 임명한 관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그러나 각 도에 군정지사를 파견해 자리잡음으로써 미군정은 1945년 11월 말쯤 전국적인행정체제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 진격속도가 빨랐던 북쪽의 소련군은 군정체제를 이루는데도 앞섰다.8월9일 참전한 소련군은 일부지역에서 일본군의 저항을 받긴 했지만 8월 말까지는 38선이북 지역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끝냈다.점령군은 제25군,그 사령관은 IM 치스차코프대장이었다. 치스차코프는 평양에서도 조만식이 주도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와 「공산당 평남도위원회」를 합쳐 「평남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케 했다.이 위원회는 비록 조만식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소군은 이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정치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을 엮은 인민위원회를 9월 말까지 각 도에 구성했다. 미군이 남쪽에서 직접통치의 형태를 갖췄다면 소군은 자치적으로 보이는 「인민위원회」구성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교활한 방식을 택한 셈이다. ◎해방된 내땅인데… 일경에 맞서다 피살/유족 최초 증언… 「권평근의 인천참사」/미군 의뢰 따른 일 통제에 강력 저항/20∼30년대 노조운동 통해 항일투쟁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날 일본경찰의 흉탄에 희생된 권평근(1900∼45년)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그는 1919년 「3·1운동」부터 45년 9월 숨질 때까지 독립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아직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지 못했다.그에 관한 기록이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어 미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본사 취재팀은 일본측 기록인 ▲삼전방부의 저서 「조선 종전□ 기록」(암남당서점)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인 「국외□어□□용응조선인명부」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에서 31년 9월 발행한 「사상월보」9월호들을 검토했다. 또 ▲서울경찰청이 1993년 6월9일 국가보훈처에 회신한 「권평근에 대한 지문조회」결과 ▲국가보훈처 소장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기록 ▲조선일보 1931년 7월24일자,8월27일자,9월4일자 ▲동아일보 1931년 8월27일자,10월27일자 등 각종 자료와 가족으로부터 단독입수한 권평근의 미공개사진,증언들을 종합해 국내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권평근의일생을 복원했다. 권평근은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배재학당에 다니던 그는 「3·1운동」때 고향에서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다가 3년동안 충청도로 피신한다.이어 26∼27년에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해외 반일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권평근의 경력은 30년대에 빛난다.인천으로 이사해 노동조합에 투신한 그는 31년 7월 「일본인습격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다.당시 만보산사건이 일어나자 국내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사이에 충돌이 잦았다.그러나 권평근 등은 일본이 한·중 양국을 이간질시키려고 사건내용을 과장한 것이라며 중국인을 공격하는 군중의 분노를 일본인에게로 돌렸다.이 사건으로 그해 10월26일 경성지법 형사제1부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는다.당시 재판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이해 5월1일,6월10일,7월5일 등 세차례에 걸쳐 반일시위를 벌이려고 구체적인 준비를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복역을 마친 권평근은 노동조합을 통해 더욱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당시에는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이었다.총격 현장에서도 그는 일본경찰에게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쏠테면 쏘라』며 가슴을 내밀었다고 한다.그의 장례식은 사회단체장(일부 기록은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딸 명숙씨(55·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742)는 아버지를 『6척 장신에 힘이 장사였다』고 기억했다.또 그리 어렵지 않은 살림인데도 자신은 하루 두끼만을 먹으며 어려운 이웃에게는 식량과 옷을 서슴없이 나눠줬다고 회상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김성호 〃 ▲김경운 〃
  • “신군부 재산 강제헌납 조치 무효”/변호사일방적 선임 절차상 하자

    ◎서울민사지법,박영록 전의원에 승소판결 지난 80년 5·17 비상계엄확대조치 이후 신군부측의 부정축재재산 국가헌납조치로 재산을 강제로 빼앗긴 정치인에게 땅을 돌려주라는 첫 승소판결이 내려졌다. 서울민사지법 유철환 판사는 13일 전신민당 국회의원 박영록(서울 성북구 삼선동)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재산권반환청구소송 준재심에서 『국가가 신청인의 동의 없이 변호사를 선임,박씨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토록 한 것은 민사소송법상의 변호인 선임절차를 무시한 위법인 만큼 당시의 소유권 이전 소송은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신청인이 이모변호사에게 화해신청을 위임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이변호사가 당시 합수부 소속 법무관으로부터 관련서류를 넘겨받아 소송을 대리한 것이 인정된다』며 『당시 박씨가 구금상태에 있어 자발적 의사표명을 할 수 없던 점을 이용,소송대리권이 없는 변호인이 제소전 화해라는 소송절차에 참여해 작성한 화해조서는 취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당시 신군부측 계엄사합동수사본부가 특정변호사를 동원,야당 및 재야인사들의 재산을 제소전 화해라는 적법절차를 통해 헌납받았다 하더라도 변호사선임절차상 위법의 소지가 있는만큼 무효라는 것으로 80년 당시 신군부측의 합수부에 의해 강제로 재산을 빼앗긴 피해자들의 유사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원고 박씨는 80년 신군부에 의해 구금된 상태에서 자신이 위임하지 않은 변호사에 의해 현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임야 8만여평을 강제로 국가에 헌납당하자 지난해 6월 부정축재재산 헌납조치는 절차상 불법이라며 준재심청구소송을 냈다. 준재심청구란 재판이 아닌 결정,즉 제소전 화해등의 「절차」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 낼 수 있으며 재판에 중대한 하자가 있을 경우 제기하는 재심과는 구별된다.
  • 조총련 간첩단 사건/경찰에서 조작 주장/기결수 4명 재심청구

    【부산=김정한기자】 13년전 조총련에 포섭돼 국내 군사기밀등을 북한에 누설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기결수 4명이 경찰의 증거조작과 강압수사로 간첩으로 몰렸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간첩혐의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신귀영씨(57)는 16일 문재인변호사를 통해 지난 80년 「조총련 간첩단사건」은 조작된 것이라며 부산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신씨는 재심청구서에서 『당시 수사기관은 조총련 간부인 친형 신수영씨가 62년부터 80년까지 친동생인 신귀영,사촌제매인 서성칠(60·89년 대구교도소서 옥사),5촌당숙 신춘석(56),신복영씨(61)등 4명을 포섭,미 하이야리아부대 후문 전경과 군수사 전경등 주요 군사시설등을 카메라로 찍어 필름을 건네주는등 간첩활동을 했다며 구속기소했으나 이는 경찰이 구속영장없이 40∼70일이나 불법감금하고 온갖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 「명성」 김철호씨 헌법소환

    ◎「83년사건」때 민사·형사소송서 모순된 판결/“신체자유·재산권 박탈 이중 피해봤다” 주장 명성그룹 김철호(56)회장은 7일 법원의 형사재판과 민사·행정소송간에 상호 모순된 확정판결이 나오는 바람에 이중의 피해를 입었는데도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이를 구제받기위한 재심청구의 권리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며 「입법부작위에 의한 위헌확인등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김씨는 헌법소원에서 『84년 확정된 형사사건에서는 상업은행 예금 1천6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15년에 벌금 79억3천만원을 선고받았으나 그 뒤 민사및 행정소송에서는 이 돈을 사채로 인정,이자소득세 1백96억원을 부과했다』며 『이로 인해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을 이중으로 박탈당하는 결과가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날 헌법소원을 내면서 『중형을 선고한 형사사건의 업무상횡령 내용이 민사및 행정소송의 확정판결에서 뒤집어 졌는데도 현행 형사소송법에 재심을 허용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헌법에 보장된 재판청구권·평등권·신체의 자유등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83년 8월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김동겸대리와 짜고 예금 1천66억원을 횡령한 혐의등으로 구속기소돼 9년7개월간을 복역하고 지난해 3월 6일 가석방된 뒤 현재 명성스타월드등 7개 기업을 경영하며 옛 명성그룹의 재기를 노리고 있다.
  • “구 대선법 「선거운동제한」 위헌”/헌재 결정

    ◎“운동원 아닌 사람 참정권 침해”/김기춘 전법무 무죄될듯 선거운동원이 아닌자의 경우 선거운동을 제한토록 규정한 대통령선거법 36조1항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과잉제한하고 있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재화재판관)는 29일 92년 14대 대선당시 부산 「초원복집 회식」사건으로 불구속기소된 김기춘전법무부장관의 담당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이 낸 대선법 제 36조1항등에 대한 위헌심판 신청사건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전장관을 비롯해 현재 법원에 계류중인 대선법 제 36조1항 위반자는 물론 이미 확정선고를 받은 사람도 재심청구 등의 방법으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게됐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이라는 법 조항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며 『 이는 헌법상의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고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요소가 있다』고 밝혔다. 김전장관은 14대 대선직전에 초원복집에서 부산의 각 기관장들과 회식하는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지난 92년 12월말 불구속 기소돼 징역 1년이 구형됐었다. 그러나 김씨의 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 합의22부는 김씨의 위헌제청이 이유있다며 헌재에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한 뒤 『헌재 결정때까지 재판을 연기한다』고 밝혔었다. 문제가 된 대선법 조항은 지난 3월 「공직선거및 선거부정 방지법」(통합선거법)으로 개정 흡수되면서 폐기되고 통합선거법 제60조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자를 공무원·외국인 등으로 특정해 규정했다. 한편 검찰은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더 이상 유·무죄를 다툴 근거가 없어짐에 따라 공소기각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 납부 토초세 6천7백억 돌려주나/「효력정지」결정에 납세자들 관심

    ◎납부자/개별소송 통해 환급여부 판정/손배자 미납자/헌재결정따라 권리구제 확실/국세청,“과세분엔 소급적용 안해… 환급불가” 앞으로 토초세는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또 이미 낸 사람은 구제받을 수 있는가. 헌법재판소가 29일 토초세법에 대해 사실상의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토초세 적용대상인 납세자와 이미 세금을 낸 사람에 대한 구제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토초세는 부동산 투기억제라는 긍정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과세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해 민원이 쏟아지고 세금부과에 불복하는 소송이 급증했다.이와 관련,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사건만도 2백여건에 이른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토초세법의 폐기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미 세금을 낸 사람과 세금고지서를 받고도 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환급 및 구제 여부와 재판에 계류중인 사람등으로 대별된다. 국세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토초세 과세대상 및 과세액은 모두 9만4천1백77명에 9천4백77억원이다. 이 가운데 지난 한햇동안 걷힌 세금은 1천9백5억원이며 그 이전에낸 부분과 올 상반기 납세분까지 합치면 총징세액은 6천7백여억원 수준이다. 따라서 6천7백억원의 토초세를 돌려받을 수 있느냐가 납세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우선 납세자중 재판에 계류중인 사람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을 것이 확실해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즉 헌재가 법개정을 촉구한만큼 국회의 법개폐 이후 새 법에 따라 세금면제를 받게 된다. 둘째,이미 토초세를 낸뒤 아무런 소송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경우다. 헌법재판소법은 형사사건 이외에 소급적용을 금지하고 있어 이경우 원칙적으로는 구제가 어렵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이같은 점을 고려,「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소급적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변형결정을 내려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이 경우 소송은 국가가 부당이득금을 받아갔으니 이를 돌려달라는 취지로 제기하는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이 해당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전국의 각급 법원에 토초세와 관련된 민사소송이 쇄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아직 이와 유사한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가 없기 때문에 구제가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셋째,국세청에 재심청구가 계류중이거나 3년 분납조건으로 아직 미납된 경우 납세의무는 자동유보된다.헌재의 결정으로 국회에서 법이 개정될 때까지 법집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법원에서 형확정판결을 받은 납세자는 현행법상 구제받을 길이 거의 없다. 이와 관련,최재천변호사는 『법원이 이미 확정 판결을 내렸다 하더라도 재심청구를 받아들이는 등의 방법으로 납세자들의 권리구제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납세자들이 이처럼 복잡한 절차보다는 국세청을 상대로 직접 환급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고 국세청은 환급해줄 경우 세수정책에 구멍이 뚫리고 조세정책에 혼선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양측간의 마찰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납부고지서를 받은뒤 이의신청이나 소송을 제기하지도 않은채 지금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경우로 이는 해석이 양분된다. 한편 국세청의 이명래 재산세 2과장은 29일 『이미 과세된 세금(국세)에 대해서는 새로운 법이나 해석을 소급해서 적용하지 않는다』며 『헌재의 결정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고 앞으로의 과세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이미 납부한 세금은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논란이 이는 경우는 토초세를 내지 않았거나 분납으로 일부만 낸 경우이다.헌재의 결정으로 이 경우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있지만 국세청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이명래 과장은 『헌재의 결정은 지난 해에 과세한 토초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토초세를 내지 않은 납세자들은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토초세를 내지 않으면 다른 세금을 체납했을 때처럼 강제집행할 것』이라며 『다만 현재 소송에 계류된 건은 헌재결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세청의 임정만 법무담당관도 『법적인 안정성 때문에 헌재의 판결은 이미 과세한 것에 대해서는 효력을 인정하는 내용』이라며 『불만이 있는 납세자들은 개별적인 소송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끝난 토초세와 관련된 소송 건수는 1백8건(총 소송건수는 5백41건)으로,국세청은 1백건에서 승소했고 8건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이미 과세한 토초세를 징수하겠다고 하지만 납세자들이 제대로 낼 가능성은 거의 없는 편이다.
  • 국민기본권의 불가침성 확인/헌재,반국가행위법 “일부위헌” 의미

    ◎정치 이유따른 기본권 제한에 쐐기 헌법재판소가 29일 유신시대의 대표적 악법으로 꼽혀온 「반국가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피고인의 반국가적 행위등 어떠한 정치적 이유로도 재판을 받을 헌법상의 국민기본권은 박탈·제한될 수 없다는 헌법정신을 확인한 것이다. 유신시절 미상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박정희대통령을 격렬히 비난하고 회고록등을 통해 반정부활동을 폈던 김형욱씨 유족들에 의해 제기됐던 이번 헌법소원은 김씨가 행한 반국가행위와 김씨에게 적용된 초헌법적 법률사이에서 헌재가 어떤 법적가치에 무게를 둘 것인지 관심을 끌어왔다. 이에대해 헌재는 이날 결정문을 통해 『반국가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조법 11조 1항등은 피고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및 상소권이라는 헌법상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할뿐만 아니라 죄형법정주의및 적법절차주의라는 형사재판의 기본원리를 무시,헌법에 어긋난다』고 선언,죄의 경중을 떠나 법의 기본질서에 의하지 않는 처벌은 있을 수 없다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정신을 뒤늦게나마 분명히했다. 이에따라 7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뒤 82년 서울형사지법에서 문제의 특조법에 따라 징역 7년과 전재산몰수형을 선고받고 서울 동소문동·사당동 가옥과 골동품등 전재산을 몰수당했던 김씨유족들은 헌법재판소법 47조에 따라 재심청구가 가능해 재산과 함께 명예를 되찾을 길이 열렸다고 할수있다. 김씨 유족들은 89년 몰수재산반환청구소송과 함께 『특조법은 피고인의 출석이나 증거조사도 없이 형을 선고하고 상소권마저 박탈하는등 위헌』이라며 위헌심판제청신청을 서울민사지법에 냈다가 모두 기각당한뒤 지난해 8월 헌법소원을 냈었다.
  • 「율곡」 문책인사 내일 단행/국방부/관련자 34명 징계도 함께

    ◎4∼5개 사업은 재심청구방침 국방부는 10일 율곡사업 비리와 관련,감사원의 징계요청을 받은 53명의 군 관계자중 34명의 현역에 대한 징계조치 및 문책인사를 빠르면 12일 실시키로 했다. 국방부는 주의조치를 받은 조근해 공군참모총장에 대해서는 문책을 하지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국방부는 나머지 관련자에 대해서는 금품수수행위와 단순행정착오로 분류,금품수수자의 경우 보직해임을 할 방침이지만 단순행정착오에 연루된 관계자들은 근신·견책등 경징계를 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장성급 인사의 경우 군 지휘권행사와 관련,보직해임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권영해 국방부장관은 9일 하오 김영삼대통령과 독대,문책범위의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국방부는 감사원의 율곡사업 감사결과 율곡관련사업부서의 일부 관계자들이 지적사항이 부당하다며 강력히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자체 검증작업을 거쳐 다음주 중으로 감사원에 재심의를 청구할 방침이다. 재심의청구대상은 P3C대잠수함초계기사업등 4∼5개 사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 남녀 정년차별 규정 단체협약 등은 무효/대법원 첫 판결

    퇴직정년에 남녀차별을 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은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윤영철 대법관)는 11일 우림산업사 대표 김동길씨(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정2동)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청구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밝히고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우림산업이 일부 부서의 근로자정년을 남자는 55세 여자는 53세로 정한것은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배된다』고 지적,『같은 부서의 근로자가 남녀의 성적 구분에 따라 시력에 차이가 있다는 회사측의 주장은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원고 김씨는 우림산업 노조위원장으로 있던 이모씨(여·기계부소속)가 91년2월 만 53세의 정년에 걸려 퇴직당한뒤 남녀간 정년을 차별규정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은 무효라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를 신청,복직명령을 받자 소송을 냈었다.
  • 사학 교원징계권 남용 많다/재심 1백44건중 71건 구제

    ◎징계재심위 밝혀 사학에서 교원들에대한 징계권이 크게 남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따르면 첫업무를 시작한 지난 91년7월이후 사학재단측의 징계가 잘못됐다며 교원징계위에 재심을 청구,처리된 1백44건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49.3%인 71건이 학교측의 징계조치를 취소 또는 변경토록하는 인용(인용)판정을 받아 구제됐다. 반면 사학측의 교원징계가 정당하다는 판정을 받아 교원들의 재심청구가 기각되거나 각하된 건수는 모두 60건으로 전체의 41.6%에 불과했으며 13건은 사학측과 교원의 합의성립등으로 취하됐다. 또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요구한 사학 교원들의 청구 건수는 아직 처리안된 사안까지 포함하면 모두 1백55건으로 한달 평균 7∼8건에 이르고 있다.이에 반해 국·공립학교의 경우는 사립학교보다 훨씬 적은 96건이었다. 국·공립교원들의 재심청구 건수 가운데 80건이 처리됐으며 이중 인용판정을 받아 구제받은 교원은 7.5%인 6건에 불과했고 75%에 해당하는 60건이 각하되거나 기각됐다. 교원징계재심위원회는 교원의 신분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91년 5월 제정 공포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91년7월부터 교원징계 재심업무를 처리해왔다.이 기구설치이전에는 사립학교 교원은 재심을 해당 학교법인에 설치한 재심위원회에,국·공립학교 교원은 총무처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했었다.
  • 「부산모임」 불기소/국민,재심청구키로

    국민당은 30일 최고위원및 당직자회의를 열고 부산기관장회식모임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김기춘 전법무부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들을 불기소처리한데 대해 불복,내년 1월중 검찰항고를 통해 재심을 요청하기로 했다. 국민당은 또 정부의 제2롯데월드 부지 분할매각허용이 특혜라고 주장하며 정부측에 결정경위를 밝히도록 촉구하는 한편 현재 소집을 요구해놓고 있는 임시국회에서 진상조사특위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 MBC,13명 징계/노동위,재심청구 기각

    문화방송(MBC)은 1일 징계인사위원회를 열고 지난달 25일 징계위원회에 넘겨진 15명가운데 아나운서실 성경환씨(38)등 13명에 대해 정직 3개월에서 감봉 3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이에 앞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30일 하오 노조측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결정에 불복,지난 23일 청구한 재심에 대해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공정방송조항은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맡길 사안이 아니며 또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결정을 받아 들일 수 없어 서울 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 단대부고 교사 2명 임용취소 재심청구

    전교조 해직교사로는 처음 복직되었다가 지난달 11일 학교측으로부터 임용취소 처분을 받았던 전 단국대사대부고 김경욱교사(35)가 8일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 공시지가 인하요구 급증/전체 재심청구자의 72.9% 차지

    토지초과이득세와,택지초과소유부담금등 토지공개념 관련제도가 실효를 거두기 시작하면서 토지소유자들이 조세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가 고시한 공시지가를 낮춰줄 것을 요구하는 개별공시지가 재조사청구가 급증하고 있다. 12일 건설부에 따르면 전국 2천5백12만7천8백36 필지에 대해 올해의 개별 공시지가를 결정,지난 6월6일부터 8월4일까지 토지소유자및 이해관계인들로부터 재조사청구를 접수한 결과 0.07%에 해당하는 1만8천54 필지에 대해 이의가 제기됐다. 이중 27.1%인 4천8백99 필지가 고시된 공시지가보다 높여달라는 요구인 반면 72.9%인 1만3천1백55 필지는 낮춰 달라는 요구였다. 특히 국세청이 토초세부과대상이 되는 지가급등지역으로 고시한 45개 읍·면·동의 31만8천84 필지의 경우 6백63 필지는 상향조정을,1천53 필지는 하향조정을 요구하는 등 0.54%인 1천7백16 필지에 대해 재조사청구가 접수됐다.
  • 전교위위원장 잇단 중징계/부산 해임,충북선 직위해제 결정

    【부산=이기철기자】부산시교육청은 지난 23일 하오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서명운동과 관련,「부산교사추진위원회」위원장 조성덕교사(37·부산남여상)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고 조교사를 해임키로 의결했다. 시 교육청은 조교사가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된 직장이탈금지 및 집단행동금지 등을 위반해 중징계한다고 밝혔다. 이날 징계위원회는 조교사가 지난 14일에 이어 계속 출석요구에 불응,궐석상태에서 진행됐다. 한편 조교사는 이같은 징계조치에 대해 『교사추진위의 활동은 징계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재심청구와 행정소송 등 법적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 감리교종교재판 출교선고/교단내 반발움직임 확산

    ◎목사등 반대성명발표·항의모임 결성 감리교 신학대학 변선환학장과 홍정수교수에 대한 종교재판이 감리교단내의 반대움직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박대선 김지길 장기천 김규태목사등 감리교 전·현직감독등 목회자와 신학자 총대 목사 등 1백85명으로 구성된 가칭 「김리교단을 염려하는 기도모임」은 변·홍 두 교수에 대한 서울연회 재판과 관련,지난 20일 성명을 발표하는등 범교단적 대처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서 주목된다. 이에 앞서 기독교대한감리교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위원장 고재영목사)는 지난 7일 「다른 종교에서도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와 예수의 육체부활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던신학을 주장해온 변학장과 홍교수에게 출교선고를 내렸었다. 「감리교단… 기도모임」은 오는 28일 하오 2시 서울아현감리교회에서 이 모임을 정식 출범시킬 예정이며 오는 25일 서울 한남동 여성교회관에서 이번 재판과 관련한 모임을 갖는 3백여명의 소장목회자와 신학생 장로등 교단내 인사들을 포함한 연합체를 구성해 반격에 나설방침이다. 「김리교단… 기도모임」은 이날 발표된 성명을 통해 『신학과 관련한 종교재판은 교권이 중시되는 천주교회의 전통이었을 뿐 개신교 5백년 역사 속에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면서 『두 교수에 대한 출교처분은 감리교가 그 동안 자랑스럽게 생각해 오던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전통을 위협하는 태풍』이라고 밝혔다. 모임에 참가한 목회자들은 ▲신학을 논리적 검증없이 재판했고 ▲심사위원이 스스로 검사가 돼 구형했으며 ▲피고인이 주장하는 반증자료의 확인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심 재판이 끝난후 연회감독확인이 있기도전에 시중 일간지에 재판내용이 광고로 알려진 점과 ▲피고인의 재심청구나 항소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결내용을 외부에 알려 기정사실화한점을 들어 판결의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와관련,오는 28일 아현감리교회 기도모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포스트모던신학 전공자인 마크 테일러교수(미 프린스턴대)를 초빙,특강을 듣는 것과 합께 유동식 감신대교수와 박흥규 김포월곡교회 목사가 재판과정과 관련한 불법성과 비합리성및 폭력성을 고발케할 예정이다. 기도모임은 특히 확정판결이 아닌 1심판결을 일간신문에 광고한 「교리수호대책위원회」측 관련자들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사회법정에 고발할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기도모임은 그러나 교회법이 사회법에 비해 하위법인 점을 감안,출교와 관련한 사회법 호소는 총회재판위의 최종판결이 난다음 실행에 옮길 계획이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전남북·경남북 지역의 삼남연회 소속 목회자 75명도 지난 12일 재판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변·홍 두교수는 이번 출교판결에 대해 총회 재판위원회에 항소할 예정이다. 감리교회법상 총회재판위는 항소일로부터 6개월이내에 결심공판을 하도록 돼있어 이번 재판은 오는 10월 총회를 전후해 최종적으로 결말지어질 전망이다.
  • “단체접종 예방약품 공급중단땐 제약사 허가취소”/보사부

    ◎의사압력 배제토록 보사부는 19일 예방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는 제약업체가 의사단체의 압력으로 예방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중단할 때는 관련법에 따라 제약업체의 허가취소등 강력한 조치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보사부는 최근 단체예방접종에 반대해온 전국소아과개원의협의회 등 의사단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에 불복,재심청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이같이 밝히고 정부가 실시중인 예방접종은 안정성이 확실한 것으로 드러난만큼 앞으로도 이같은 방식의 예방접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보사부는 또 의사단체에서 진료없이 단체예방접종을 실시하는 것은 불법의료행위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현행 학교에서 실시되는 단체예방접종은 학교보건법 14조 2항에 따른 것으로 완전접종유도가 쉬울 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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