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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회창 전총리의 불운과 파문발언

    ◎3번째 중도하차… 「불운」일까·「대쪽」탓일까/86년 대법관·89년 선관위장이어 취임 127일만에 퇴진/21일 “「안보회의」 결과 보고뒤 발표” 요구/“안기부·청와대 수석 통제 안된다” 불만 이회창전국무총리가 취임 1백27일만에 결국 야인으로 물러났다.「대쪽 총리」로 불리며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재임기간이 그리 길지 못하리라는 예상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독자적 판단을 위주로한 판사생활을 해왔다.대법관시절에는 소수의견을 주로 냈다.그래서 내각을 통할하고 대통령과 융화해야 하는 총리직은 그에게 적임이 아닐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뭔가 마음에 맞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사퇴할수 있는 인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퇴임시기가 너무 빨랐고 자진사퇴보다는 경질의 성격이 짙어 모두들 놀라고 있다. 이전총리가 경질된 사태의 발단은 지난 21일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시작되었다.그는 이날 자신이 직접 쓴 메모지를 읽으며 평소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점을 피력했다.그는 『통일안보조정회의에 회부되어 조정된 안건은 관계장관이 사전에 총리의 승인을 받아 시행하도록 하라』고 말했다.통일안보조정회의는 최근 대북및 안보정책이 혼선을 빚는 듯하자 김영삼대통령이 특별지시를 내려 설치된 기구이다.이영덕통일부총리 주재로 두차례 회의를 갖고 남북 특사교환을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 전제에서 빼는등 굵직한 정책을 확정,발표했었다.이전총리는 이 회의의 결과가 총리에게 보고되지 않은채 발표되는 것에 크게 불쾌해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벌목공문제의 진전에서도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함께 피력했다.이전총리는 안기부에 대해서도 포문을 열었다.「안가」현황에 대한 보고를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전총리는 우루과이 라운드협상과 관련해 김양배전농림수산부장관이 해임당할 때 청와대가 『대통령과 국민을 속였다』고 발표하자 엄청나게 괴로워 한것으로 알려졌다.안기부장을 비롯한 일부 청와대수석이 자기의 통제권 밖에 있다고도 느낀 것 같다.실제로 안기부장에게 개인보고를 몇차례 요구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따라서 21일발언은 이처럼 소외되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켜보려고 상당기간 고심한 끝에 내놓은 승부수로 이해되었다. 그가 국정장악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면서 바로 사퇴의사를 굳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이번은 이 정도로 해두고 다음번에 정말 섭섭한 일이 있을 때 물러나려 했던 것으로 관측된다.그러나 김대통령과의 청와대면담에서 자신의 국정장악의지가 전혀 받아들여질 기색이 보이지 않자 사퇴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전총리가 세인의 관심속에 공직을 떠난 것은 이번이 세번째이다.오랜 판사생활 끝에 지난 86년 대법관 재임용에서 탈락된게 첫번째이다.89년에는 동해재선거등에서 부정·타락선거를 막지 못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을 던져버렸다. 대법관 재임용 탈락은 당시 「5공정권」의 권위주의에 대항한 것으로 평가되었다.선관위원장 사퇴도 공명선거의지로 신선하게 비쳐졌다.그에 비해 이번 사퇴가 후세에 어떻게 비춰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김대통령 역시 문민정부라는 도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공직사퇴와 다른점은 또 있다.대법관 재임용 탈락은 「해임」당한 것이다.반면 선관위원장직 사퇴는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이번에는 경질인지 자진사퇴인지 불분명하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공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던 그가 문민정부에서는 그래도 오래가지 않을까 하는 일부의 기대는 일거에 무너졌다.성격상 남과 부딪치는 직책은 맡기 힘든 것인가.아니면 시대가 아직 그에게 본격적인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인가.
  • 고노 자민총재 “총리출마” 선언/연립여당선 “곧 후임총리 인선”

    ◎11일 이어 어제도 반쪽 당수회담 【도쿄=이창순특파원】 호소카와 (세천호희)총리의 후계선출을 둘러싸고 심한 대립을 보여오던 연립여당이 12일 현연정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사태수습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가운데 자민당의 고노 요헤이 총재가 후임총리선거에 나서겠다고 밝혀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연립여당내에는 이날 대립이 더욱 악화될 경우 현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이번 주안으로 후임총리 인선을 끝내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연립여당내에서는 하타 쓰토무 부총리겸 외상을 총리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이에 대해 하타외상도 『연립정권을 탄생시켰던 원점으로 돌아가면 대립양상을 수습할수 있다』고 말했다. 연립여당대표들의 12일 회의에서도 「지금의 연립정권체제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신중히 앞으로의 대응을 협의하여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연립여당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신생당도 현체제유지를 바탕으로 대응할 방침을 확인했다. 그러나 사회당이 제의한 당수급회담에는 11일에 이어 이날도 사회당,민사당,신당사키가케,참의원의 민주개혁연합만 참석해 반쪽회담이 되는등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케무라 마사요시 관방장관(신당사키가케 대표)는 이날 회의후 『현연정체제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호소카와정권의 반성이 없으면 다른 생각을 하지않을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고노 요헤이 자민당총재는 이날 열린 총무회에서 『공당의 최고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할 결의가 돼있다』고 말해 총재선거 출마의사를 밝혔다.자민당내에는 이에따라 고노총재를 후임총리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 이 총리의 공명선거 의지/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1일 상오 청와대와 내무부에서 잇따라 열린 국무위원간담회와 시도지사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김영삼대통령과 이회창국무총리의 사전선거운동 엄단 지시가 워낙 서릿발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총리는 과거 야당의원을 지낸 박태권충남지사와 최기선인천시장을 직접 겨냥했다.이총리는 『시도지사 가운데는 내가 선관위원장을 하던 89년당시 야당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도 있다.야당에 있을 때 관권선거가 얼마나 빈번하고 선거의 공정성에 흠을 주는지 절감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물의를 일으킨 두사람을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뿐만 아니라 야당에까지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내무부 관리들은 총리가 시도지사회의에 참석한 것이 처음인 것 같다고 밝혔다.이날도 총리는 원래 참석멤버가 아니었는데 전날 최형우내무부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석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총리는 사석에서 선거와 관련한 얘기들을 많이 한다.『내년의 단체장선거 때까지 총리직에 있을지 확신할수는 없지만이번만큼은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고 총리실 관계자들은 전한다. 그는 지난 89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을 그만둘 때를 회고하면서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말한다. 그때 그는 동해재선거에 출마한 여·야후보들을 모두 고발하는 「기개」를 보였다.그러나 과열된 선거전은 가라 앉지 않았다.『선거가 끝난 뒤 노태우대통령이 내가 고발한 당선자를 청와대로 불러 격려하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상한다.그는 결국 선관위원장직 사퇴서를 던지고 말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김대통령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잘못이 있으면 고치겠다는 의지에 있어서는 김대통령과 이총리는 난형난제로 평가된다. 이들 두사람의 의지가 실천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총리직은 대통령직보다는 덜 정치적이며 이총리는 정치권과 그리 깊은 인연이 없다. 선거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무차별 제재하는 「악역」을 총리가 맡고 대통령은 반발하는 정치세력으로부터 총리를 보호하는 그림을 그려본다. 이총리는단체장선거를 관리하는 가장 중립적인 내각을 이끌 적임자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 선거비 신고계좌로만 입출금/정치특위 합의

    ◎투표 30일내 수입·지출내역서 내야/정당·후보 신문광고 80회까지 정치관계법 개정을 위한 여야6인협상대표는 4일 입후보자들의 선거비용은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예금계좌를 통해서만 수입및 지출을 할수 있도록 하는데 합의했다. 후보자들은 이를 위해 후보등록때 선관위에 선거비용용 예금통장의 번호를 신고하는 한편 선거가 끝난 뒤에는 통장의 사본을 제출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선거비용의 수입및 지출보고서를 선거후 30일까지 관할선관위에 제출하고 선관위는 7일안에 이를 공고,3개월동안 일반에 열람시키도록 했다. 후보자의 선거비용을 기록한 회계장부는 3년동안 보존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관할선관위는 신고받은 선거비용의 수입및 지출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회계장부및 기타 관련서류를 관련자및 해당 금융기관에 요구할수 있도록 했다. 선거비용의 조달범위는 후보자의 돈과 중앙당지원금,정치자금법에 규정된 후원회의 기부금품,선관위의 국고지원금등으로 제한된다. 6인협상대표는 또 정당및 후보자의 신문광고를 선거일전 1백20일전부터 후보등록일 사이에 80회까지 허용하고 대통령재선거는 30회,기타 보궐선거는 10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야가 큰 견해차를 보여온 당원단합대회의 존치여부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 성탄절 정치인 등 대사면/서석재·김동주 전의원 포함

    ◎일반형사범 1천여명 가석방 정부는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새정부 출범 이전의 각종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을 비롯,행형성적이 우수한 일반 형사사건의 모범수와 공안사범에 대해 성탄절을 맞아 대규모 사면·복권조치할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고위관계자는 1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다음주중 사면의 폭 및 대상자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이 정해질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번 사면에는 일부 정치인들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반 형사범 1천여명에 대해서도 가석방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면에는 지난 89년 강원도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국회의원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가 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박탈당한 서석재전의원을 비롯,지난 91년 수서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던 김동주전의원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대쪽 재상” 개혁2기 고삐 당길듯/이회창 신임총리 스토리

    ◎「성역없는 사정」 일궈낸 「개혁선봉장」/고시 8회… 45세때 일약 대법관 탈락/88년 「동해선거」땐 「불법」보고 선관위장 자퇴 개혁을 기치로 출발한 문민정부 아래 「성역없는 사정」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회창 신임국무총리.어찌보면 그는 우리가 바라는 이 시대의 「신한국인」인지도 모른다. 이신임총리가 「사정의 칼」을 들고 새 정부의 개혁선봉장으로 국민 앞에 나선 것은 지난 2월25일,김영삼대통령의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부터다.대법원장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던 「대쪽같은」 소신의 그가 개혁의 한 축인 감사원장에 발탁되면서 였다. 당시 여론은 그의 감사원장 발탁을 김대통령 인사의 절묘함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감사원장으로 내정된 그의 일성은 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국회의 임명동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소감이나 감사원 운영계획에 대한 포부를 밝히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그가 아니면 할수없는 참으로 그다운 얘기였다.이 발언은 새 정부의 이미지와 겹쳐 참신함을 더했고,국민에게 보다많은 기대를 심어줬다. 그는 개혁의 파고가 사회 곳곳을 휩쓸고간 지난 10개월 동안 이를 유감없이 보여줬다.언론들이 앞다퉈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도 그가 재임기간중 국민 모두의 바람이었던 개혁과 구태의 청산에 얼마나 성실히 임했는가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감사원장으로 있는 동안 우리 사회에는 그의 청정한 「사정의 칼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늘 개혁의 현장에 앞장서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율곡사업」「평화의 댐」등 굵직굵직한 감사로 감히 넘보기 어려웠던 군과 안기부,나아가 권부로 불리던 청와대까지 성역 없는 감사의 대상으로 삼았다.김대통령을 도와 문민의 정신인 「법에 의한 국정 운영」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그는 여기서 중단하지 않았다.국민의 일상과 관련된 민원행정,세무,건설,금융등 생활감사 부분에도 메스를 가했다. 구조적 부정부패와 무사안일에 대한 쾌도난마의 감사방식은 참으로 엄격했다.한때 정부내에서 조차 「청와대와의 불화설」이 나돌 정도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의 이같은 행보는 사실 예측가능한 것이었다.공직인생의 대부분을 법관으로 살아온 이신임총리의 평소철학은 「사법 적극주의」로 요약되고 있다.즉 사법부가 법조문의 해석에 얽매이지 말고 판결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김대통령이 그를 감사원장으로 내정하면서 『대법원장이 되어야 할 분인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법관시절,그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특히 박세경변호사 계엄법위반사건은 헌법정신 수호와 인권보장이란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판으로 기록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중이던 89년에는 강원 동해시및 서울 영등포 을구 국회의원 재선거 과정에서 불법선거를 제대로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 모든 공직자의 수범이 되기도 했다. 고시 8회인 이신임총리는 지난 60년 인천지법판사로 임관돼 서울 민사지법 부장판사,서울고법 부장판사,법원행정처 기획실장을 거쳐 81년 일약 45세의 나이로 대법관에 임명됐다.그러나 86년 대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되는 수난을 겪었다.서울이 고향으로 서울지검장을 지낸 이홍규변호사(85)의 아들이자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씨의 사위다.부인 한인옥여사(55)와의 사이에 2남1녀.
  • 선관위 대선·총선일 법정화 제안/15대 대선 97년12월19일

    ◎총선 96년4월6일 실시/통합선거법 심의안,선거운동 대폭 자유화 중앙선관위(위원장 윤관)는 20일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일의 법정화,지방의회의원및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동시실시,각급 선거의 선거운동기간 단축,선거비용과 수입의 공개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통합선거법 제정심의안을 마련했다. 선관위는 이날하오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통합선거법 제정의견을 최종 확정,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심의안은 선거시기에 관한 소모적 논쟁을 막기위해 대통령·국회의원선거를 비롯,지방의회및 지방단체장 선거등 각급 선거의 선거날짜를 법정화했다. 이와관련,선관위는 대통령선거일의 경우 임기만료일전 70일후 첫번째 금요일로 했으며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선거일은 임기만료일전 60일이후의 첫번째 금요일로 제안했다. 이럴 경우 15대 대선은 14대 대통령의 임기만료일이 98년2월24일인만큼 97년12월19일에 실시되며 15대 총선은 14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96년5월29일에 끝나므로 96년4월6일에 실시된다. 선관위는 또 첫 실시되는 지방단체장 선거일을 95년5월12일로 하고 2대지방의회의원 선거를 이날 동시실시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와함께 재선거나 보궐선거도 매년 상반기(4월)와 하반기(10월)로 두차례 나눠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심의안은 동시실시를 위해 현재 붓두껍 기표식 투표방법대신 기계식 기표와 전산식 집계방식도 사용할수 있도록 했다. 선거운동방법과 관련,선거법에 허용된 선거운동외의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포괄적 금지방식 대신 선거법에 금지된 방법외에는 모두 허용함으로써 선거운동을 대폭 자유화하기로 했다. 선관위는 이와 함께 선거홍보물 제작과 우편배달비용의 국고부담등 선거공영제를 확대하고 선거비용지출 뿐만아니라 수입내역에 대해서도 공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선관위는 그러나 선거권 연령은 현행 20세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 자민당 새총재/고노 관방 선출

    【도쿄=이창순특파원】 집권 38년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일본 자민당의 새 총재에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56)이 30일 취임했다. 자민당은 이날 하오 중·참의원 합동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과 지방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재선거를 실시,고노장관을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후임총재로 선출했다.
  • 일 총리 호소카와 확실/연정7당 추대 합의/하타신생당수는 부총리로

    ◎“외교·안보 자민정책 계승” 성명 【도쿄=이창순특파원】 공산당과 무소속을 제외한 일본의 비자민 7개야당은 29일 연립정권의 총리후보로 일본 신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55)대표를 지명하기로 합의했다.이에따라 호소카와 후보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뒤를 이어 다음달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사회당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있은 모임에서 사회·신생·공명·일본신당·민사·신당 사키가케·사민련등과 참의원의 민주개혁연합이 정치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기로 합의하고 연립정권의 총리로 호소카와 대표를 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초 비자민 연정총리 후보로는 국정경험이 풍부하고 국민적 인기가 높은 하타 쓰토무(우전자)신생당 당수가 유력시됐으나 신생당측이 먼저 신생당이 정치개혁 대상으로 지탄받아온 다케시타(죽하)파 소속이었다는 점과 새 총리는 참신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내세워 호소카와 대표를 추천,사회당등 다른 연립정당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호소카와 신당대표가 총리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하타 신생당당수는 부총리겸 장상으로 입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8년만에 자민당통치의 막을 내리는 7개야당 당수들은 이날 총리후보확정과 함께 정치선언을 채택,금년말까지 중의원 소선거구및 비례대표 병립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 관련법안을 통과시키고 2차대전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내외에 분명히 밝히겠다고 발표했다. 정치선언은 연립정권이 외교·방위등 기본정책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정책을 계승할 것임을 천명하고 경제정책은 시장기능을 중시하며 국제협조,국민생활의 안정과 향상에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한편 자민당은 이날 총재 후보연설회를 가진데 이어 30일 하오 총재선거에 들어갈 예정이나 범계파적 지지를 받고있는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부총리겸 외상을 누르고 당선될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예상하고 있다.
  • “자민정책 틀 유지”… 대체로 낙관/일 「정변」보는 우리정부 시각

    ◎북핵 등 급격한 궤도수정은 없을듯/일부선 “새 면모 구실 변화 시도” 우려 일본의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정부는 향후 대일관계를 어떻게 이끌 것이냐를 놓고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체로 낙관적이다.연립정부수립을 선언한 7개 야당중 사회당과 사민연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책에 있어 자민당과 공통점이 많다.특히 대외문제에 있어서는 7개당이 함께 자민당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다.북한핵문제에 있어서도 보조가 일치한다. 반자민 7당이 집권하더라도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이 변치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근저에는 연립정부가 「잠정내각」에 그치리라는 예측도 깔려있다. 오랫동안 같은 정권을 유지하기에는 신당계열과 사회당계열의 시각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결국 대외정책에 있어서 한목소리로 기존과 다른 방향을 추구할수 없고,그러는 사이 조만간 재선거가 실시돼 본격적 정계개편이 다시 이뤄지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도 심상치않아 정부는 내심 긴장을 풀지 못한다.반자민7당은 정책대강에서 한반도문제에 대해 「한일기본조약을 인정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협력한다」고 밝혔다.얼핏 우리에게 고무적 내용같지만 외교전문가들은 해석을 달리한다. 자민당 집권시에는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수사」였다.원론을 반복한 것은 변화여지를 시사하며 사회당 입김이 반영된 것같다고 정부관계자는 분석했다. 또 일반의 전망과 달리 7당연합이 나름대로 보조를 맞춰가며 2년이상 정권을 이끌어간다면 대한반도정책의 상당한 수정이 이뤄질수도 있다. 신당세력들이 일본의 국제발언권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부정,긍정 양면으로 투영된다.무역수지의 과감한 개선노력,과거사에 대한 솔직한 정리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된다.과거사와 관련,국회결의형식이 추진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일본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은 그들에게 피침을 당했던 우리로서는 껄끄럽지 않을수 없다. 정부는 8월초 중의원 특별회의 표결에서 자민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을 배제하지않고 있다. 그러나 야7당의 정권획득여부를 떠나 일본정계가 2∼3년내에 양대보수정당으로나아가는 것이 필연적이라 보고 과거 자민당중심의 외교를 다변화할 방침이다. 신생당을 주도하고 있는 하타,오자와는 한국에 우호적인 다케시타파출신으로 선린관계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오자와는 우리 일부 기업인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다. 공명당,민사당은 한일의원연맹에 가입되어있어 그런대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수립할 토대는 마련되어 있다.사회당의 경우 김영삼대통령이 야당총재시절 쌓아놓은 개인적 친분이 도움을 주리라 기대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력신장으로 일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일「전전세대」퇴장…「새 정치」연다/비자민 총리 등장…일정국의 앞날

    ◎호소카와 총리 내세워 「차세대」로 진입/잠정정권 성격 강해 연정앞날 미지수/다음 총선후 하타의 전면부상 점치기도 일본정치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연립정부구성에 합의한 비자민 7당은 29일 당수회담을 갖고 총리후보에 일본신당의 호소카와대표를 옹립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호소카와대표가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뒤를 이어 일본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다. 호소카와대표는 다음달 상순에 열리는 특별국회에서 일본총리로 선출돼 정식 취임한다.총리선출을 위한 투표에는 자민당후보도 출마하지만 비자민7당의 의석이 2백43명으로 자민당의 2백24석보다 19석이 많은데다 무소속 10명이상이 이미 비자민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호소카와후보의 승리가 확실하다. 일본의 차세대지도자중의 한명인 호소카와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은 일본정치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30일에 실시되는 자민당총재선거에서도 50대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이 당선될 것으로 보여 자민당에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일본은 전후정치의 한시대가 막을 내리고 차세대지도자에 의한 새로운 정치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호소카와대표는 당초 총리후보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그는 다음정권은 단명의 잠정정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총리로 취임할 경우 전환기의 정치적 희생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그의 이같은 신중한 자세로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가 연립정부총리후보로 유력시되기도 했었다. 사회당,공명당 등은 중의원 초선인 호소카와대표가 총리가 될 경우 정권기반이 취약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대장상등 정권담당 경험이 있는 하타 신생당대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권정치의 이미지가 강한 자민당의 다케시타파로부터 떨어져나온 신생당이 연립정부의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신생당은 호소카와대표를 총리후보로 옹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연립정권구성을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는 신생당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대표간사는 「호소카와총리 카드」를 제시하며 일본신당과 비자민세력 제휴를 추진해왔다. 신생당등은 호소카와대표는 1년전에 일본신당을 창당,신당붐을 선도했으며 지사경험이 있어 행정수완에도 걱정이 없고 참신한 이미지로 정권교체의 강한 인상을 줄수 있다고 강조해왔다.다른 당들도 결국 이같은 신생당 주장에 동조했다. 호소카와대표는 신생당등의 이러한 적극적인 지원과 일본신당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총리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당내 여론을 배경으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호소카와대표는 나름대로의 큰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호소카와대표와 마지막 순간까지 「경쟁」을 벌였던 하타당수는 부총리겸 대장상이나 외상에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잠정정권에는 호소카와를 내세우고 다음총선후의 본격적인 정권때 하타당수가 총리가 되기위해 이번에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비자민세력은 총리후보결정과 함께 방위·외교등 기본정책과 제2차대전에 대한 일본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정권구성을 본격화하고 있다.이들의 기본정책은 현재의 정부정책을 계승하기로 함에따라 호소카와총리시대에도 중요한 대내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의 성격이 강한 새정권은 얼굴은 호소카와지만 실천은 의 전망은 미지의 세계다.
  • 「캄」 정부,“총선결과 불복”/유엔,개표중계방송국 병력증강

    【프놈펜 로이터 UPI 연합】 캄보디아 총선 중간개표 결과 1일 야당인 민족연합전선(FUNCINPEC)이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CCP가 일부지역에 대해 재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고 유엔은 CCP가 선거결과를 거부할 경우에 대비한 긴급 대응책마련에 나서는 등 캄보디아 정정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유엔은 개표결과를 방송하고 있는 프놈펜 라디오 방송국에 병력을 증강배치하고 경비를 강화했다고 유엔 관리들이 말했다. 이번 총선을 거부한 크메르 루주는 방송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가 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남부의 캄포트주와 타케오주에 5개사단 규모의 병력을 결집시켜 FUNCINPEC이 승리할 경우를 대비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크메르 루주는 폭력사태가 발생할 경우 병력을 총동원해 FUNCINPEC을 지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표가 60% 진행된 결과에서는 노로돔 시아누크공의 아들 노로돔 라나리드가 이끄는 FUNCINPEC이 42% 대 37%로 CCP보다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민당 “권토중래” 무산위기/엥홀름총재 은퇴후 진로 진통

    ◎87년 「바르셸사건」 위증이 치명타/대체인물 없어 콜 총리 독주할듯 내년 총선에서 기민당의 헬무트 콜 현총리와 대결할 예정이던 독일사민당의 비외른 엥홀름총재가 3일 사임함에 따라 지난 3월 헤센주의회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미처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사민당은 앞으로 당의 진로를 놓고 큰 진통과 파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엥홀름은 빌리 브란트 이후 처음으로 제1야당인 사민당의 총재직과 사민당 총리후보직을 함께 맡았을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개인별 여론조사에서도 콜총리를 능가하는 높은 인기를 누렸던 만큼 그의 사임은 독일정계에 큰 반향을 부를게 틀림없다. 한때 사민당재건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고까지 여겨졌던 엥홀름이 정계를 은퇴하게 된것은 지난 3월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폭로한 「바르셸사건」에 대한 그의 위증 때문. 이른바 독일판 워터게이트라고도 불리는 「바르셸사건」은 지난 87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회선거에서 당시 주지사였던 우베 바르▦이 엥홀름에 대해 갖가지 흑색선전을 편 정치공작사건.당시 바르▦은 엥홀름이 에이즈에 걸려 있으며 탈세를 일삼고 있다는 등의 흑색선전을 폈으며 심지어 자신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해놓고 그 혐의를 엥홀름에게 씌우려고까지 했었다.그러나 바르셸의 홍보책임자였던 라이너 파이퍼가 이같은 사실을 슈피겔에 폭로,공개함으로써 엥홀름이 재선거를 통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주지사에 오르는 길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그후 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잊혀졌다.그러나 엥홀름의 측근이 지난 88·89년 두차례에 걸쳐 파이퍼에게 5만마르크(약 2천5백만원)를 건네줬음이 또 슈피겔에 의해 폭로되면서 끝내는 엥홀름의 정계은퇴까지 몰고오게 됐다. 엥홀름은 87년 11월 주의회에서 바르셸의 흑색선전공작을 선거당일에야 알았다고 증언했었는데 슈피겔의 보도로 그가 오래전부터 바르셸의 흑색선전공작을 알고 있었음이 드러났다.위증사실이 밝혀지자 도덕정치를 표방해온 엥홀름은 자신의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었으며 강력한 사퇴압력에 처한 결과 3일 정계은퇴를 발표하게 된것이다. 사민당은 엥홀름의 은퇴선언 즉시 요하네스 라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를 임시당수로 임명하고 오는 10일 당집행위원회를 소집하는등 예상되는 혼란방지에 애쓰고 있다.그러나 유권자들의 사민당에 대한 실망이 최고수준에 이른데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루돌프 샤르딩,레나테 슈미트등 차기지도자들 가운데 엥홀름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없어 누가 사민당의 새당수가 되든 사민당의 앞날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의 또다른 과제는 독일재통일에서부터 외국난민의 유입억제,해외에서의 독일군역할 확대등 최근의 민감한 문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정책정당으로서의 신뢰도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10여년간 3번의 총선에서 모두 실패한 사민당은 이제 새로운 정책을 내건 새 인물의 등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그러나 사민당이 이번에도 참신한 인물과 새로운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난 10년간 계속되온 콜총리의 독주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선관위의 올해 10대과제와 공명대책(국정탐방)

    ◎능동·전향적 기구로/“보선과열 차단”… 초동활동 강화/공공단체·노조 등 선거관리 첫 지원/통일대비 북한선거제도 능동 연구 중앙선관위가 바빠졌다.오는 23일의 보궐선거 탓만은 아니다. 과거처럼 선거때만 잠시 활동했다가 동면에 들어가는 한시적인 기구라는 부끄러운 이미지를 벗고 상시활동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주위 비난도 사라져 때문에 「선거때만 아니면 놀고 먹는 곳」이라는 주위의 비난도 이제는 사라졌다. 30살을 맞은 선관위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경기도 선관위는 광명시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한달남짓 앞두고 금품 향응제공 등 불법사전선거운동의 혐의가 있는 차모씨(52)등 10여명을 수원지검에 고발했다. 불법타락선거운동에 대해서는 더이상 과열되기전에 초동단계부터 강력히 차단하겠다는 의지에서다. 선관위는 올해 「돈 안드는 선거」「깨끗한 선거」풍토를 이 땅에 뿌리내리려는 의욕에 넘쳐있다. 선관위가 올해 추진하고 있는 10대 과제는 이런 의미에서 예년에 비해 능동적이고 전향적이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지방자치관련 선거 등 분리돼있는 각종 선거법을 하나로 묶는 통합선거법제정이 그렇고 통일에 대비한 선거제도 마련을 위한 북한선거제도 연구가 또한 그렇다. 정부나 정당이 추진하는 정당법 및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개정에 대해서도 비록 고유업무는 아니지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자체에 의견을 낼 계획이다. 특히 공공단체나 노동조합·학교·사회단체 등 선거를 치르는 모든 단체를 대상으로 선거지원 활동을 처음으로 벌이는 것도 눈에 띈다. 각급 학교의 교과서 개편시에 선거관련부분을 강화해 어린 학생들에게 공명선거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선거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공공단체의 선거를 위탁받아 관리하고 선거정치관련 순화용어집 발간「선거연수원 실시」투개표 관리사무의 실질적 개선등을 계획하고 있다. ○높아진 위상을 실감 선관위는 창설이래 끊임없이 공정성 시비에 휘말려 왔다. 지난 61년 발족이후 6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각종 선거를 24번이나 치렀지만 불법타락선거를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에는 미흡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이후의 선관위는 확실하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선후보들이 승패에 관계없이 윤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처음으로 노고를 치하한 것만 보더라도 높아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있은 국회의 선관위법 개정에서는 선관위 사무총장의 직급을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시켰다. 선관위는 스스로의 활동상을 「태동기」「발전기」「성숙기」로 구분짓고 있다. 지난 61년 발족 첫해부터 지난 80년까지인 「태동기」는 단순화된 계도활동에 국한됐고 81년부터 90년까지의 「발전기」에는 선거계도의 기법이 본격 개발된 시기였다. 90년부터의 성숙기는 선거관리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선거개혁을 이뤄내는 역사적 전환기인데 이의 시발은 89년 12월의 동해시 재선거때부터이다. 동해시 재선거 이전까지의 선관위는 투개표 관리에만 주력해 왔을뿐 불법 타락선거운동의 억제나 단속은 사법기관의 소관사항으로 미루고 묵인·방치해온게 사실이다. 선관위는 당시 후보자 전원 고발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한 것을 시작으로 91년 기초·광역 지방의회 선거와 92년 총선·대선을 거치는 동안 변신을 거듭해 왔다. ○직원 1천8백여명 불과 2년전인 91년 1월 선관위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선관위가 「행정부의 부속기관」이라는 응답자가 16%에 이르러 국민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던 사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선거가 끝난 시점에 한국선거연구회가 실시한 국민면접조사 결과 79.1%가 선관위의 선거감시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중앙선관위는 현재 윤관위원장을 필두로 1실 4국 4담당관 8과로 구성돼 있고 직원은 모두 1천8백42명,그리고 산하에 각 3백8개 시·도·군·구 위원회를 둔 방대하고도 중요한 조직으로 발전했다. 지난 89년이후 열악한 근무환경속에서 선거감시 활동을 펴다 순직한 선관위 직원들은 모두 7명. 더 이상 「놀고 먹는 곳」이 아닌 선관위의 현재 모습이다. ◎역대 위원장 뒷얘기/초대 고 사광욱씨 헌법기관 위상세운“대쪽”/현감사원장 이회창씨는 최단명 용퇴기록 역대 중앙선관위 위원장가운데는 대법원장을 지낸 경우가 없다. 운이나 능력탓이 아니라 정치적 외풍에 항상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대법관이나 대법원 판사 출신이 맡아온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두고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온게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그러나 서슬 시퍼런 독재정권하에서도 「대쪽」같은 업무처리로 공명선거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서온 위원장도 많다. 선관위는 지난 63년 출범 첫해부터 5년간 재직한 사광욱씨(작고)를 시작으로 9대인 지금의 윤관위원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위원장은 갓 태어난 선관위가 명실공히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세울 수 있도록 권력에 굴하지 않은 숱한 일화를 많이 남긴 인물. 그는 64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각 부처 연두순시때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행정부의 장인 대통령이 어떻게 순시할 수 있느냐』며 정면으로 거부한 장본인이다. 또 67년 국회의원 선거때는 대통령의 선거지원 유세를 놓고 법률적인 논쟁이 벌어지자 『대통령은 공무원의 신분이므로 선거지원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당시 박대통령이 선관위 위원장에게 압력을 가해 유권해석을 번복시키고 선거법시행령을 개정,대통령의 선거지원활동을 가능하게 하자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맞서기도 했다. 사위원장의 뒤를 이은 주재황씨는 2,3,4대 위원장으로 무려 13년 2개월간을 재직해 최장수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통령선거 1회,국회의원 선거 4회,3선개헌,5공 헌법개정 국민투표 등 모두 12차례의 각종 선거를 대과없이 마무리했으나 정치환경 등으로 독립기관으로서의 노력은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5대 위원장을 지낸 김중서씨는 재임기간중 단 한번의 선거도 치르지 않은 유일한 기록을 남겼다. 강우영6대 위원장은 신당돌풍이 몰아쳤던 2·12총선 당시 정치규제로 묶여 있던 김영삼·김대중 양 김씨의 이름을 야당 후보들의 벽보문안에서 삭제토록 지침을 시달한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6·29이후 민주화과정에서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치러낸 윤일영 7대 위원장은 선관위 창설이후 처음으로 불법 벽보와 현수막을 철거하는 등 물리력을 동원하는 단호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새 정부의 감사원장으로 추상같은 사정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이회창 8대위원장은 1년 3개월의 가장 짧은 재임기간과 스스로 사퇴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두가지 기록을 남겼다. 그는 당시 노태우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민정당의 나웅배후보를 지지해달라는 서한을 발송한데 대해 위법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불법선거 감시에 성역이 없음을 보여줬다. 동해·영등포 을 재선거때 불법타락 선거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그는 89년 당시 선관위원장의 국회출석 답변을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91년부터 사무총장이 국회 상임위 출석답변을 맡도록 하기도 했다. ◎“각종 선거법 통합 추진”/각급 교과서에 「공명」교육내용도 보강/김봉규 선관위사무총장(인터뷰) 『지난해 12월 실시한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공명선거가 정착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올해로 창설 30주년의 청년기를 맞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김봉호사무총장은 앞으로 정책경쟁 중심의 선거풍토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창설때부터 이곳에 몸담아온 김총장은 지난해 차관급이던 직책이 국무위원급으로 격상된 것을 두고 선관위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탓이라고 말했다. ­창설 30주년을 맞은 소감은. ▲태동기부터 일해온 저로서는 누구보다 감회가 큽니다.무엇보다 지난 대선이후 공명선거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는게 더없이 값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선관위를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설치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예가 드문데 그 배경은. ▲광복이후 3·15부정선거로 4·19혁명이 일어날때까지 자행된 선거양태로 보아 일반 행정기관이 공정성을 갖고 선거를 관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공명선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선거관리기관을 두게 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내무부 산하에 선거위원회라는 기구가 있었으나 4·19혁명을 계기로 헌법상 독립기구로 됐다가 5·16혁명으로 해체된뒤 3공화국이 출범한 지난 63년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났지요. ­30년동안 선관위가 걸어온 발자취는. ▲3·15부정선거로 인해 헌정이 중단되는 극심한 혼란을 겪은 국민들은 선관위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지금까지도 공명선거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데 대해 국민들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선관위는 지난 87년 13대 대통령선거때만 하더라도 투개표 관리등 행정사무에만 주력했을뿐 불법타락 선거운동의 단속을 사법기관에 미뤄 왔습니다. 87년 대선,88년 총선,89년 동해 재선거를 거치면서 공명선거 분위기의 유도와 국민들의 의식개혁운동의 전개,단속활동의 강화 등을 통해 새로운 선거문화 창조에 중추적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획기적인 계획이 많다는데. ▲먼저 선거마다 단행법으로 돼있는 선거법 체계를 한데 묶는 선거법 통합작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한 각종 기관‘단체가 선거관리를 의뢰해올 경우 위탁 선거준비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선거에 관한 의식개혁이지요.선관위는 이를 위해 초·중·고교의 교과과정에 공명선거에 관한 내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공명선거 구현은 국민적 염원이자 시대사명인 만큼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 “실천행정·칼날사정” 자신감의 선택/차기 총리­감사원장 인선 배경

    ◎당정 효율협조·경제 실무경험 반영/총리/공직·사회·경제전반 정화임무 부여/감사원장 김영삼차기대통령이 차기정권의 3대핵심포스트인 국무총리·감사원장·청와대비서실장 인선을 완료함으로써 김차기대통령이 그리는 국정운영구도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김차기대통령이 22일 국무총리에 황인성 민자당정책위의장을,감사원장에 이회창대법관을 지명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회생과 부정부패척결을 차기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황총리가 이끄는 내각에는 경제회복및 개혁집행을 담당토록하고 이감사원장에게는 공직및 사회·경제전분야에서 개혁추진을 저해하는 부정부패요소를 과감히 척결하라는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황총리내정자는 3공부터 6공에 이르기까지 군과 정계·재계·관계에서 폭넓은 행정실무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육군경리감·교통·농수산장관·아시아나항공회장·민자당정책위의장등 경제실무분야의 화려한 경력은 김차기대통령이 경제회복에 얼마만큼 신경을 쓰고 있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화합형총리·덕망가형총리등 총리인선에 대한 각계의 요구사항도 많았지만 결국 김차기대통령의 선택은 경제실무와 행정효율이라는 실무형총리로 낙찰된 것이다. 황총리지명은 우선 경제회복에 최우선과제를 부여했다는 점 이외에도 김차기대통령은 황총리내정자가 지역구 3선의원이라는 점과 민자당정책위의장으로서 차기정부의 정책공약입안자라는 점,덧붙인다면 호남출신이라는 점을 부수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황총리내정자가 호남출신이라고는 하지만 3공시절부터 정부요직을 지냈다는 점이 화합형 호남총리나,개혁을 내세우는 참신한 기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김차기대통령의 황총리내정배경에는 황총리가 호남지역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지역민과 민심의 향배를 읽을 수 있고,또 당출신으로서 개혁추진에 대한 당정협조에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총리내정자가 경제실무행정전문가로서 6공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왔고 김차기대통령이 주장해온 경제재도약을 위한 고통분담에 대해서도 상당히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발탁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감사원장의 지명은 김차기대통령이 부정부패척결을 통한 「윗물맑기 운동」을 실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불수 있다. 이감사원장내정자는 법조계에서 신념이나 판결에 있어서 타협을 불허하는 강직과 지조의 법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강직한 성품때문에 통치권자와 마찰이 있을수도 있다는 주변의 지적도 물리치고 김차기대통령이 이대법관을 감사원장에 발탁한 것은 김차기대통령 자신도 강조했듯이 「사정기관에 대한 사정」에 있어서는 성역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이감사원장내정자가 그동안 권력과 유착한 판결을 거부해왔고,88년 민화위위원으로서 광주문제에 대한 소신을 강조한점,중앙선관위원장 재직시절 동해재선거의 타락에 경고성의미로 사퇴한점 등이 향후 김차기대통령이 사정의 칼날을 얼마만큼 서슬푸르게 할 것인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단 김차기대통령은 내각의 총수에 경제실무형에다 지역성과 당정관계를 고려한 인사를 발탁했다.또 감사기관의 총수로는 타협할줄 모르는 강직한 인사를 기용했다.여기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는 지역구 4선의원을 지역구까지 포기토록하며 인선했고 수석비서관들은 격과 관계없이 전원 실무보좌형으로 구성했다. 드러난 차기정부 핵심요직인사로 볼때 김차기대통령은 주변에서 고려대상으로 지적하는 「화합」「지역안배」「새인물」이라는 기준보다는 어떻게 하면 실제적으로 「경제회복과 부정부패척결」을 수행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것이 틀림없다. 물론 개혁사령탑이자 통치권자인 김차기대통령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인사스타일에는 틀림없지만 비효율적인 안배보다는 실천과 성과에 국정운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수 있다. 차기정권출범 이후 드러날 각료인선에서도 이같은 김차기대통령의 의중으로 미루어 볼때 무엇보다도 외교·경제분야에서는 행정실무형이,사회분야에서는 국민적공감대를 유도할수 있는 정치인출신이 기용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 소신 굽히지 않는 “대쪽판사”/이회창 감사원장 내정자의 면모

    ◎재판 10여건서 소수의견 낸 “강직파”/선관위장때 불법선거에 사임 결단 『비공식적으로 감사원장직 요청은 받았지만 앞으로 국회동의 임명절차가 남아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소감이나 감사원운영계획등에 대해 밝히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차기대통령에 의해 새정부의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이회창대법관이 22일 대법원 청사 3층 사무실로 찾은 기자들에게 밝힌 첫마디이다. 그는 그러나 『김영삼차기대통령과는 면식이 없던 사이』라면서 『최근 새정부에 동참해 달라는 의사타진을 받고 고심끝에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당수의 공무원들은 다 청렴한 것 아닌가요』라며 자신의 성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겸손해하며 『감사원장직에 내정된 이유는 잘 알지 못하며 그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것 같다』며 소감피력조차 극구 사양했다. 투철한 사명감과 대쪽같은 성품으로 법조계에 정평이 나있는 그의 첫마디 역시 「그 다운」일성이었다. 81년 법관출신으로는 최연소 대법관으로 임명돼 86년까지 대법원 판사를 지내면서 대법원전원합의체 판결 46건 가운데 16건의 주심을 맡아온 그는 이중 10여건에서 「소수의견」을 통해 판결과 관련된 소신을 피력,법이론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현 김덕주대법원장과 함께 진작부터 대법원장감으로 지목돼 주로 소장 법관들의 지지도가 높은 이감사원장 내정자는 대법관시절 이같은 대쪽소신이 「걸림돌」이 돼 대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그는 이어 88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을 맡았으나 재임1년3개월때인 89년10월 동해시및 서울 영등포을구 국회의원 재선거과정에서 불법선거운동을 규제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임했다. 53년 경기고를 졸업,서울법대에 진학한뒤 4학년때인 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그는 58년 공군 법무감실 법무관을 거쳐 60년 인천지법 판사로 발령돼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그뒤 73년까지 주로 서울에서 민·형사·고법판사등을 지냈고 73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77년 서울고법판사를 거쳐 서울남부지원장,서울민사지법 수석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이어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거쳐 대법관이 된 그는 80년 5월 비상계엄령하에서 김대중씨집에서 불법집회를 가진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세경변호사에 대한 고등군법회의에서 『81년 계엄령이 해제된 시기에서 박변호사에 대한 군법회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소수의견을 냈었다. 당시 이일령·이정우·오성환대법관과 함께 낸 이 소수의견은 당시 시국상황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88년 다시 대법관에 임명된 그는 92년 3월 국가보안법 제7조 고무찬양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상명씨 사건선고에서 이재성·배만운대법관과 함께 『고무찬양죄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적행위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라며 반대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판결이외에 그가 고법판사로 있을 당시 모재벌이 연루된 사건에서 사건을 재벌쪽의 패소로 판결을 내린 그에게 재벌측이 보내온 양복티켓을 변호사를 통해 반납토록 한 일화도 법조계에서 잔잔한 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차기대통령으로서는 차기 정부에서 명실상부한 감사원의 기능을 위해 그의 이같은 성품과 해박한 법이론이크게 평가됐으리란 분석이다. 이감사원장 내정자의 부친은 대검검사를 지낸 이홍규변호사(87)이며 부인 한인옥씨의 부친 한성수씨 역시 대법관을 지냈고 사위 최명석씨(31)도 현재 서산지청검사여서 전형적인 법조인가족이기도 하다. 가끔 갖는 법조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한번 「발동」이 걸리면 두주불사한다는 것이 주위의 말. 부인 한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충북도의원 김준석씨/청주 재선거서 당선

    【청주=한만교기자】 16일 실시된 충북도의회 청주 제2선거구 재선거에서 김준석후보(57·무소속)가 당선됐다. 김후보는 이날 하오 7시20분쯤부터 청주시청 회의실에서 시작된 개표 결과,전체 1만2천5백70표의 61.2%인 7천6백94표를 얻어 박재호후보(50·무소속)와 홍승표후보(40·무소속)를 제치고 당선됐다.
  • 「법대로」 판결… 외압시비 불식/서·이 의원 대법판결의 의미

    ◎“한낱판결은 정치의도” 야주장 무력화/“의원당선되면 모든죄 소멸” 관행에 쐐기 지난 89년부터 4년 가까이 계속됐던 민자당 서석재(58)·민주당 이부영의원(51)에 대한 공판이 29일 대법원이 선고를 내림으로써 일단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이날 판결로 서의원은 유죄가 확정돼 이날자로 의원직을 잃은 반면 이의원은 사건이 서울지법 합의부로 되돌아가 다시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질때까지 의원직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이들 두의원에 대한 재판은 대법원 계류시 공판날짜가 장기간 미뤄지다가 29일로 전격 결정됨으로써 자칫 의원직상실까지 예고될 선고공판을 한꺼번에 결정된 것에 대해 정치성이 개입된 것이 아니냐며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예상대로 서의원은 징역1년·집행유예2년이 선고된 원심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이의원사건은 4가지 혐의 가운데 노동쟁의조정법위반혐의가 파기돼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재판부는 서의원에 대한 판결에서 『원심판결은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증거로 들어 인정해 법률적용미진이나 심리미진의 위법이 없다』며 징역1년·집행유예2년의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박만호재판관이 주심인 이의원사건에서 재판부는 이의원에 대한 국가보안법·집시법·정기간행물 등록법위반등 3가지 혐의는 유죄확정을 한 반면 노동쟁의조정법위반혐의는 원심에서 법리오해가 있으므로 위법이라며 이 부분의 원심을 파기했다. 서의원의 경우는 통일민주당 사무총장이던 때인 89년 동해시 재선거때 민주당 이관형후보의 상대후보인 공화당 이홍섭후보를 5천만원에 매수한 것은 명백히 위법이며 증거까지 확보돼 유죄를 면키 어려웠다. 반면 이의원은 89년 전민련상임의장으로 범민족대회를 추진,국가보안법 혐의를 받았고 같은해 울산 현대중공업 장기파업도중 한 집회에 참가,연설해 노동쟁의조정법혐의도 추가됐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대중공업파업중에 열린 연설회의 성격이 당초 노동쟁의조정법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원심파기의 근거로 들었다. 즉 88년12월부터 89년3월까지 계속된 장기파업을 볼때 이기간중 열린 연설회는 공권력개입에 대한 항의를 주목적으로 했지 노동관계당사자가 근로조건개선을 위해 열린 것은 아니므로 노동쟁의조정법의 규제대상인 쟁의행위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따라서 이 부분의 원심이 파기돼 다시 재판을 받게 됐고 나머지 부분은 혐의내용이 유죄가 인정됐으나 4가지 범죄혐의가 경합범 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록 한부분에 대한 원심판단의 잘못이 지적됐더라도 전체원심 자체를 파기했다. 일단 이들 두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볼때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이 사실관계와 법리의 적용을 엄격히 따져 올바르게 내린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더욱이 한창 고조됐던 노동쟁의를 다스리기 위해 일견 소홀하게 적용되던 노동관계법이 이번 사건처럼 제동이 걸렸다는 면에서도 바람직스러운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국회의원에 당선만 되면 이전의 모든 불법사항은 잠잠해진다는 잘못된 인식을 이번 판결에서 바로잡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뒤에 남는 여운은 이번 공판에 참석했던 일부 야당의원들의 『사법부 만세』란 외침뒤에서 결코 개운치만은 않은것도 사실이다. 대법원 계류뒤 기약없이 연기를 거듭하며 재판지연에 대해 한마디 이유를 대지 않던 대법원이 이날 갑자기(적어도 재판부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 선고일을 잡은 것은 정치적 고려를 했다는 논란을 떨쳐버리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김영삼차기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단행될 사면에 이들 두의원이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강한 추측도 있고 보면 「사면전 형확정」이란 수순에 부합한다는 논리이다. 물론 법무부와 민자당은 사면의 성격을 놓고 고심은 하고 있지만 재판진행중인 사건까지 사면대상이 될 일반사면이 단행되면 서의원과 이의원 모두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 비춰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 「정치적 외압부인」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판결은 옳으나 시기는 부적절했다」는 뒷맛을 남겼다 하겠다.
  • 민자 서석재­민주 이부영의원/대법,오늘 선고공판

    ◎원심확정 의원직상실 가능성 대법원은 29일 민자당 서석재·민주당 이부영의원에 대한 선고공판을 연다. 민자당 서의원은 89년4월 동해시 국회의원재선거 당시 공화당 이홍섭후보를 5천만원에 매수,후보를 사퇴케 한 혐의로 구속된 뒤 보석으로 풀려나 91년 1월과 92년 1월의 1·2심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상고했었다. 또 민주당 이의원은 89년 3월 「전민련」상임의장으로 「범민족대회」를 추진,국가보안법위반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같은해 10월 징역 2년·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은데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구속취소로 풀려난 뒤 상고했다. 기소된지 4년만에 열리는 이번 대법원 선고공판에서 두 의원은 상고가 기각돼 원심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 자동적으로 의원직이 상실될 것으로 보인다.
  • 서석재·이부영의원 재판 어찌될까/29일 상고심선고공판 큰 관심

    ◎유죄 확정땐 의원직 자동상실/“후보매수” 유죄 가능성… 사면여부 주목/서 의원/“보안법위반”… 색깔론 다시 일까 당서 걱정/이 의원 대법원이 민자당의 서석재의원과 민주당의 이부영의원관련사건에 대한 상고심선고일을 각각 오는29일로 확정함에 따라 그 결과에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들 두 의원이 유죄로 확정될 경우 피선거권박탈과 이에따른 보궐선거가 문제가 된다.나아가 차기정부의 사면복권조치에 의해 두 의원이 보궐선거에 재출마할 수 있는 것인지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더욱이 서의원은 김영삼차기대통령의 핵심측근이고 이의원은 야당의 차세대주자중의 한사람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비중이 남다르다. 서의원은 지난89년 4월 강원도 동해시 국회의원재선거당시 후보매수사건에 관련돼 국회의원선거법위반혐의로 구속기소,92년1월 2심에서 징역1년,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았었다. 이의원도 지난 89년3월 전민련상임의장으로 있을때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1년,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은바 있다.○…민자당은 서의원의 이같은 공판기일확정을 김차기대통령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핵심측근도 법의 공정한 심판을 받게함으로써 새정부의 강력한 개혁의지를 보이겠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김차기대통령이 당선이후 줄곧 법집행의 엄정성을 강조해온만큼 형평성차원에서라도 이번 상고심공판은 이미 예견됐던 터였다. 나아가 재판계류중인 정치인 연루사건을 새정부출범이전에 매듭지어 김차기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뜻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은 이와 관련,최근 선거사범으로 고발되거나 재판계류중인 소속의원및 당직자들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사직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의원건에 대해 민자당의 고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서의원은 상고심자체가 법률심인 관계로 1·2심에서 징역형을 받은만큼 파기환송될 가능성이 극히 적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무죄보다는 유죄로 확정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의원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의원직상실과 함께 당연히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게돼 그의사면복권시점및 보궐선거 입후보여부의 「골치아픈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서의원은 김차기대통령의 핵심측근인데다 대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에 김차기대통령은 「명분」과 「의리」의 갈림길에서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차기대통령은 최근들어 대법원형확정→취임초 대사면조치에 의한 특별사면→보궐선거출마허용의 수순을 밟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는 관측이 우세하다.이는 김차기대통령이 깊은 고심끝에 서의원과의 인간관계를 고려,「멍에」를 지우게할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대한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한 고위당직자는 『김차기대통령은 명분이 약한 일은 하지않는다』면서 『핵심측근이라 해서 거센 비난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특별사면조치를 내리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결국 서의원건은 보궐선거(90일내 실시)기간이 여유가 있는만큼 설날이 지난다음 당내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의원 선고일자 확정소식에 다소 긴강감을느끼는 가운데 이의원에 대한 선고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색깔론」으로 곤욕을 치른 마당에 당의 최고위원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형이 확정될 경우 또 한차례 당노선과 관련,정치적 타격을 입게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사자인 이부영최고위원은 지난 대통령선거 이전에도 「간첩단사건」과 관련한 「뜬소문」으로 한동안 시달린데다 3월 전당대회에서의 최고위원 경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이최고위원은 29일의 선고에서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원외위원장으로 전락하는데다 차세대 주자를 노리는 잠재적 경쟁자들의 노선을 빌미로 한 견제로 3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다시 선출되기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따라 이최고위원측은 형이 확정될 경우에는 역으로 이 문제를 경선에서 쟁점으로 몰아붙여 당내 대의원들로부터 정치적 사면을 받는 다는 내부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최고위원측은 의원직을 상실하더라도 함께 선고를 받게되는 민자당 서석재의원과의 「동일티켓」으로 사면·복권과정을 거쳐 보궐선거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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