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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감원,취재봉쇄 유리벽 설치 추진

    정부의 ‘취재 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23일 현장 조사차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을 방문했다. 이주영 정책위원장을 단장으로 5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이날 브리핑룸과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유리벽이 설치될 장소 등을 둘러본 뒤 정부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소위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취재를 제한하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구식 의원은 “선진화 방안은 5공 때와 같은 잔인한 언론통제”라며 “국회 차원에서 각종 제도적 장치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동행한 박찬숙 의원 역시 “금감원은 정부기관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며 “(선진화 방안은)투명성을 막는 오만한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감위·금감원 기자단은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으로 취재원과의 접촉이 차단되고 이는 곧 정보의 차단으로 연결된다.”며 “국민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우려를 전달했다. 이에 이 정책위원장은 “언론을 일방적인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전략”이라며 “24일 개최되는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입법·제도적 장치를 통해 (선진화 방안을)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보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감원은 청와대 정책보좌관 출신의 김용덕 금감위원장이 취임한 뒤 정부의 ‘취재지원혁신안’에 따라 기존 기자실을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로 분리해 공사를 마쳤다. 브리핑룸은 1주일에 1번 정례브리핑 때만 사용되기 때문에 브리핑룸은 사실상 ‘죽은 공간’이다. 거의 사용되지 않는 브리핑룸이 신설되면서 금감원 공보실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턱없이 좁아지고 불편해졌다. 금감원은 앞으로 3층에 위치한 기자실과 직원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완전히 봉쇄하는 출입통제문을 설치할 예정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설] 프레스카드 부활하자는 건가

    정부의 관공서 취재봉쇄와 언론통제 발상이 점입가경이다. 그제 정부가 공개한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총리훈령)’은 군사정권 시절 강압적 언론통제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내용인 즉, 국정홍보처장이 내·외신 기자들의 등록을 받아 정부청사 출입증을 통괄 발급하되,1년마다 갱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기자 등록제’인데,‘증(證)’이 없는 기자는 정부청사 주변에 얼씬거릴 생각을 말라는 엄포에 다름아니다. 훈령에는 홍보처장의 등록 거부나 취소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이의신청 조항이 들어있다. 이는 여차하면 특정 기자에 대해 등록을 거부하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는 의도 아닌가. 그렇다면 5공화국 시절 정권이 기자 통제를 위해 악용했던 ‘프레스 카드’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더욱 가관인 것은, 홍보처가 기자출입증에 전자칩을 붙여 기자들의 브리핑룸 이용 실태와 출석 여부를 파악하려 했다가 말썽이 날 것 같으니 보류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자들의 행동반경까지 손아귀에 쥐겠다는 발상으로 섬뜩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러니 군사정권보다 더 교활한 언론통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 취재제한 및 통합브리핑룸과 관련해서 곳곳에서 정부부처와 일선기자들 사이에 마찰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자들이 왜 반발하는지에 귀기울일 생각이 없다. 정부의 일방적인 대언론 조치는 누차 강조했듯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취재지원선진화’ 미명 하에 진행중인 언론통제를 전면 중단할 것을 다시 촉구한다.
  • [사설] 취재봉쇄 모자라 기자 막을 방호원 뽑나

    정부가 그제 국무회의에서 ‘취재선진화’를 명목으로 직원들을 대규모 증원하고 기자 출입을 막을 방호요원을 크게 늘리기로 의결했다. 정부의 이번 직제개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말이 취재선진화이지 철저하게 언론을 차단하겠다는 속셈을 읽을 수 있다. 경찰청도 새달부터 기자들의 일선 경찰서 출입을 봉쇄한다고 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 정부 부처가 앞다퉈 경쟁하는 꼴이다. 현 정부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닌지 오래됐다. 정부는 며칠전 과천 종합청사 내 통합 브리핑룸의 기사송고실 공사를 마무리했다. 기자들의 상주 공간을 없애는 게 목적이었다. 많은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공사 철회 목소리를 끝내 외면하고 밀어붙였다. 정부 부처가 취재 사각지대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화됐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선 주자들 모두가 우려하고 반대했던 일이다. 정부 부처뿐만 아니다. 국민들과 접촉이 잦은 경찰도 마찬가지다. 형사계 보안계 등 경찰 내에서의 인권침해 감시 등이 불가능하게 됐다. 국정홍보처는 이번에 합동브리핑센터 관리 등을 구실로 직원을 35명이나 늘렸다. 정권 말기의 공무원 증원 논란이 그치지 않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배짱이 놀랍다. 기자들 출입을 막기 위해 방호원을 대폭 늘린다니, 해외 언론에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낯이 뜨거울 지경이다. 이번 일에 앞장선 정부 관계자들은 국민들의 눈, 귀를 가린 인물로 기록되는 것을 훈장으로 생각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 ‘기자실 통폐합’ 부처 실질협의 없었다

    국정홍보처가 기자실 통폐합 방안과 관련, 해당 부처들과 제대로 협의를 거치지 않고 추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37개 정부 부처 브리핑룸 및 송고실을 3곳으로 통폐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22일 국무회의에서 상정, 의결할 예정이다. ●경찰청 “공식적 협의 절차 없어” 21일 국정홍보처와 정부 주요 부처들에 따르면 홍보처는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의견 청취 절차만 형식적으로 거쳤다. 의견 청취는 지난 2월 국내외 기자실 운영실태 조사 때와 3월 중순 국장급 홍보관리관 워크숍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후 개선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선 부처들과 어떠한 공식적 협의도 없었다. 홍보처는 당초 각 부처와 언론계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3월에 기자실 개선에 대한 경찰청의 의견을 개진한 뒤로는 공식적인 협의 절차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수사 상황에 따른 엠바고 필요성 등 경찰 업무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현행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종로 중앙청사에 자리잡은 모 부처 공보관도 “3월 중순 국장급 홍보관리관 워크숍에서 2시간 정도 의견을 청취해간 게 전부다. 이후 공식적으로 우리 부처의 의견을 들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기자실이 통폐합되면 큰 부처와 언론사 위주로 뉴스 공급이 이루어져 작은 부처와 언론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소규모 기관은 (홍보를 위해) 퇴근 후 기자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검 관계자는 “기자실 운영실태 조사 때 의견을 낸 이후 구두로만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다.”며 “중요한 일은 문서로 확인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며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홍보처 관계자는 “워크숍 이후 국정홍보전략회의를 통해 두어번 의견수렴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전략회의가 브리핑제 개선 때문에 열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홍보처는 통·폐합되는 브리핑실을 통합 관리할 홍보처 인력을 증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등 야권과 언론계에선 대부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5공 시절 언론 통·폐합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철권정치의 전형”이라면서 “취재실의 위치와 취재의 영역을 정부 멋대로 지정하고 제한하는 것은 취재의 자유를 침해하는 언론 탄압으로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들은 이날 일제히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단체 “저항 직면할 것” 신문협회와 편협은 ‘정부는 신종 취재봉쇄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에서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자 하는 반민주적인 취재봉쇄 조치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알 권리는 중대한 침해를 받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정부는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도 “노무현 대통령의 왜곡된 언론관이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부는 공정한 취재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번 방안은 오히려 보도자료에 대한 의존도를 부추겨 국민의 알권리를 위축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임창용 박홍환 윤설영 김지훈기자 sdragon@seoul.co.kr
  • 北조평통 “南 제재가담시 해당조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5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이 이성을 잃고 끝끝내 미국의 반공화국 제재 압살책동에 가담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6·15 공동선언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동족에 대한 대결 선언으로 간주할 것이며, 해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우리에 대한 무모하고 무분별한 제재 책동으로 하여 북남관계에서 파국적 사태가 빚어지는 경우 남조선 당국은 그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며,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핵실험 이후 국제 사회의 제재 흐름에 따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참여 확대와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부지원금 중단 등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 경고에 나서기는 처음으로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조평통은 “최근 미국이 우리의 핵시험을 부당하게 걸고 들면서 반공화국 제재봉쇄를 실현해 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는 때에 남조선 당국은 그에 추종하여 우리에 대한 압살행위에 가담하려는 극히 위험천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사설] 교육부, 취재봉쇄가 교권보호인가

    교육인적자원부가 언론의 학교현장 취재에 강경대응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는 엊그제 시·도 교육청에 보낸 공문에서 “언론기관의 학교·교실 출입 취재는 반드시 학교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라.”면서 “그러지 않은 경우 경찰에 고발하라.”고 지시했다.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지침은 학부모에 무릎을 꿇은 청주 여교사 사건이 계기가 됐다. 교육부는 모 지역방송이 당시 학부모와 함께 수업중인 교실에 들어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교사를 몰아붙이고 학생들의 인터뷰를 땄으며, 이런 사실을 몰랐던 교장선생님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수업권과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지침을 내려보냈다.”면서 “그러나 언론의 정상적인 취재요청은 보장하라고 한 만큼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교육부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번 조치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알권리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오늘날 학부모와 교사들의 충돌, 전교조와 교총 등 교원단체의 갈등, 학생과 교사의 마찰 등 온갖 이해관계 충돌의 현장이다. 교육은 또 우리 사회에서 가장 관심있는 영역이다. 그런 만큼 경찰에 고발하는 분위기가 되면 언론의 교육환경에 대한 감시 기능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도 침해받는다. 비정상적인 취재로 인해 교권이 침해를 받았으면 법에 정해진 대로 조치를 취하고 피해를 구제받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원천봉쇄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평양­모스크바 「매스컴분쟁」확산/북한의 「소 언론취재 봉쇄」언저리

    ◎북한 한ㆍ소 수교 움직임에 강한 불만 표시/소련 개방유도 겨냥,북한체제 실상 비판/소 기자 부분철수ㆍ외교마찰로는 번지지 않을듯 최근 북한과 소련 언론들사이에 빚어지고 있는 미묘한 분쟁이 북한당국의 평양주재 소련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로 이어짐으로써 개혁과 개방을 둘러싼 두나라 언론의 대립이 또다른 차원으로 비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소련의 모스크바방송은 지난 24일 알렉산드로 레비 주평양타스통신기자의 말을 인용,북한의 고위인물들과 만나겠다는 소련기자들의 요청이 벌써 두달이상 묵살되는 등 소련기자들의 활동이 사실상 봉쇄되었으며 이는 소련의 방송과 신문ㆍ잡지 등에 북한을 비판하는 기사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련은 지난 20일 저명한 역사학자 미하일 스미르노프의 말을 인용한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6ㆍ25전쟁이 북한의 기습남침에 의해 일어났다고 시인,북침설을 주장해온 북한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모스크바방송은 또 지난 10일 주간지 「논거와 사실」의 최근호에 실린 기사를 인용,김일성은 소련군대위로 빨치산의 한 부대를 지휘한 것에 불과하다고 폭로하는 한편 북한의 경제가 날로 곤란해지고 있으며 이는 동력 및 원료부족,과다한 군사비지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북한은 22일 평양방송을 통해 『미국이 50년 6ㆍ25전쟁을 조선에서 일으키지 않았다면 민족이 피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한소간의 수교움직임 등 관계발전이 가시화되자 지난 6일 당기관지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의 모스크바방문 사실을 처음 보도하면서 『소련이 남조선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하면 조선의 통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한소간의 수교움직임에 대해 강한 불만과 불편한 입장을 드러냈다. 같은날 관영중앙방송은 한소관계 진전에 대해 『절대 허용치 않을 것임』을 거듭 밝혀 소련측에 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다음날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일정한 방향에서 한국과의 접촉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유익하다는데 대해 북한측으로부터 이해를 구했다』는 소외무부대변인의 발표내용을 상세히 보도,북한측의 불만을 묵살하면서 한소관계발전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며 북한이 이를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북한의 중앙통신은 사흘 뒤인 지난 10일 『우리의 우방인 소련은 우리인민의 적과 친구가 되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소관계개선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한편 소련의 유력잡지인 노보에 브레미아지는 지난 3월 남북한과 소련관계를 조명하는 기사에서 『한쪽에는 사회구조자체를 개편하자는 모스크바개혁자들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쪽에는 대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인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이 있다』고 강조,소련의 급진주의개혁파와 북한의 교조주의적 권력세습을 대비시키면서 김부자를 비난했다. 이 잡지는 이어 모스크바당국이 평양을 초조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으나 소련출판물들이 북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혀 소련의 언론들이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기사만을 게재해오던 종전 자세에서 탈피,북한체제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소련의 공산당청년동맹기관지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도 지난달 26일 평양특파원 알렉산드로 라코프스키의 기사를 인용,『북한은 주민들을 사상 정치적인 투쟁에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특히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 보도에만 집착할 뿐 진실은 숨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취재봉쇄는 이제까지 취해온 「언론을 통한 대소비난」을 넘어선 보다 강경한 대응조치로서 소련언론들의 잦은 대북한 비난보도에 맞서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하고 그러나 북한외교부 보도국과장이 『우리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소련언론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일종의 경고라고 해석했다. 김부자 세습체제에 대한 비난과 개혁 및 개방의 압력을 거듭해 오고 있는 소련언론에 대해 일종의 경고성 조치를 취함으로써 「부당한」 개방압력을 최소화하고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한소수교의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계산이라는 것. 그러나 소련의 입장에서는 대북한 비판기사를 통해 한소관계의 발전이 어쩔 수 없는 대세임을 인식시켜주는 동시에 종전처럼 북한만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을 이해시키려 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 소련당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해 내심 개방과 개혁을 강력히 원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때도 적절한 압력수단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우회적으로 개방과 개혁을 유도해보려는 속셈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소련기자들의 취재봉쇄조치가 북한에 있는 소련기자들의 부분적인 철수라든지 외교적인 분쟁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북한,소기자 취재봉쇄/타스통신특파원 “비판기사 늘자 부당조치”

    ◎평양 외교부,“지지기사 쓴다면 취재 호응” 【내외】 북한은 최근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소련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사실상 봉쇄했다고 알렉산드로 레비 주평양타스통신기자가 보도했다. 24일 모스크바방송에 따르면 알렉산드로 레비는 최신호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에 게재된 기사에서 북한에서 소련 기자들의 활동이 사실상 봉쇄된 것은 소련의 방송과 신문ㆍ잡지 등에 북한을 비판하는 기사가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렉산드로 레비기자는 이에따라 북한은 공식인물들과 만나겠다는 소련기자들의 요청을 벌써 두달 이상이나 묵살하고 있으며 이같은 조치로 『조선에서 소련 기자들은 아주 이상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에대해 북한 외교부보도국과장은 『우리혁명을 지지하는 좋은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다』라고 조건을 제시했다고 알렉산드로 레비기자는 폭로했다. 알렉산드로 레비기자는 또 이 기사에서 최근 소련의 방송 및 신문ㆍ잡지 등에 게재된 북한 비판기사가 북한측의 「불안」을 자아내고 있으며 북한은 이와관련,소련 대사관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고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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