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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박찬호 “미국서 삼성 제품 자랑했다”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박찬호 “미국서 삼성 제품 자랑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 사흘째인 27일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에 꽃을 놓으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은 정·재계뿐 아니라 이 회장이 생전 애정을 품고 후원한 문화·예술·체육계 인사들이 대거 찾아 깊은 애도를 전했다. 서울삼성병원 빈소를 찾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는 “아버님을 잃은 것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와 아내 윤정희씨는 이 회장과 종종 부부동반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각각 2000년, 2011년 이건희 회장이 부친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을 기리며 만든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인연이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박찬호 선수의 방문도 눈길을 끌었다. 박 선수는 “이재용 부회장와 이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인연이 있다”며 “(빈소에서 이 부회장과)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고인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미국 진출 초창기부터 LA다저스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가 삼성 제품이어서 동료 선수들에게 그걸 자랑했었다”고 회고했다. 재계 주요 그룹 총수들의 조문도 끊이지 않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오전 10시 30분쯤 이날 첫 조문객으로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20여분간 빈소에 머물다 나온 구 회장은 취재진에게 “고인은 우리나라 첨단 산업을 크게 발전시킨 위대한 기업인”이라며 “재계의 큰 어르신들이 오래 계셔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면 좋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범 LG 가의 구자열 LS 회장과 구자용 E1 회장,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삼성 일가와 LG가는 사돈 관계다. LG 구인회 창업회장의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누나 이숙희 여사가 1957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황각규 롯데 이사회 의장과 조현준 효성 회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두 차례 발걸음했다. 조 회장은 “어릴 때 한남동 자택에서 살 때 (삼성가) 강아지들이 너무 예뻐서 제가 이재용 부회장과 잘 놀았는데 고인께서 저희에게 강아지 두 마리, 진돗개 두 마리를 보내주셔서 가슴이 따뜻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윤종원 기업은행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지성규 하나은행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등도 이날 이 회장을 찾았다.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과 아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도 함께 방문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절친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고인을 떠나보내니 저도 충격이고 힘들다”며 “지금 들으실 순 없지만 고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저희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추모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홍구 천 국무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한때 ‘삼성 저격수’로 꼽혔던 박 장관은 조문을 마친 뒤 “30여년 전 대한민국의 먹을거리를 반도체로 선택한 고인의 통찰력을 높게 평가한다”며 “재벌 개혁은 잊혀서는 안 되는 화두이며 재벌 개혁이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하는 데 앞으로도 많은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영결식과 발인은 28일 오전 진행된다. 삼성 측은 현재 발인 시간과 장례 절차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 않다. 재계에 따르면 28일 오전 7시반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진행하고 발인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만큼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내에서 비공개로 영결식을 마칠 예정이다.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건희가 쏘아올린 상속세 논란...“폐지” vs “부의 세습 완화로 기회 균등”

    이건희가 쏘아올린 상속세 논란...“폐지” vs “부의 세습 완화로 기회 균등”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쏘아올린 ‘상속세 논란‘이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등장하며 확전되고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상속세를 없애주세요’란 제목으로 상속세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게시돼 이날 오후 현재 7000여명에게 청원 동의를 받았다. ‘상속세 논란’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그룹 지분에 대한 상속세가 10조원 이상이라는 관측이 나오며 촉발됐다. 국내 주식 부자 1위인 이 회장의 삼성 계열사 주식 평가액은 18조 2000여억원에 이른다. 삼성전자 보통주 4.18%, 삼성전자 우선주 0.08%, 삼성생명 20.76%, 삼성물산 2.88%, 삼성SDS 0.01%, 삼성라이온즈 2.50% 등을 들고 있다. 상속 재산이 30억원이 넘으면 상속세 최고세율 50%가 적용되고 고인이 대기업 최대 주주이거나 최대주주의 가족 등 특수관계인이면 20%의 할증이 붙는다. 여기에 자진공제 신고 3%를 적용하면 유족들은 10조 6000여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천문학적인 상속세 수치 자체가 눈길을 끌면서 ‘상속세율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불거지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삼성 상속세’ 공방이 가열됐다. 전날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감면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날 정의당은 “이 부회장의 비선 경호실을 방불케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 국회입법조사처도 21대 국회가 검토해야 할 주요 입법·정책 현안으로 “명목 상속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배우자, 자녀, 부모, 제3자 등 상속인별 구분이 없이 상속세 최고 세율이 50%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미국과 영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40%, 독일은 30% 수준이다. 재계에서도 그간 상속세율 인하,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 폐지 등 상속세 부담 완화를 요구해 왔다. 기업을 승계할 때 상속세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 기업인들이 기업 물려주기를 포기하고 매각을 고민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 사라지게 만들고 국가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논리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피상속인이 탈세, 주가 떨어뜨리기 등 왜곡된 경제활동을 할 가능성이 커 오히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며 “때문에 상속세율을 낮추든지 최대주주 할증을 없애는 방식으로 수용가능하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세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속세의 취지 자체가 ‘부의 분산을 통한 기회 균등‘이라는 점에서 상속세율의 인하나 폐지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선다. 지난 1997년 헌법재판소도 상속세 제도에 대해 ‘재산 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10~50%까지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고, 다양한 공제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재벌을 제외하고는 실제 상속세 부담이 크지 않다”며 “부의 편중이 기회의 불평등 문제로 확산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상속세 폐지는 지나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박영선 장관 “이건희 회장 통찰력 높게 평가…재벌개혁은 잊히면 안돼”

    박영선 장관 “이건희 회장 통찰력 높게 평가…재벌개혁은 잊히면 안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7일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찾아 “30여년 전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반도체로 선택한 통찰력이 오늘날의 글로벌 삼성을 만들었다”고 애도했다. 박 장관은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30여분 간 조문한 뒤 “마침표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한번쯤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면서 “이건희 회장님의 마침표는 반도체에 대한 진한 애착이 만든 글로벌 기업 삼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통찰력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박 장관은 “재벌개혁은 잊히면 안 되는 화두”라며 “재벌개혁이 삼성의 경쟁력, 특히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하는 데 앞으로도 많은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초선 국회의원 시절인 2005년 삼성 계열사의 초과주식을 처분하는 내용의 ‘금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3선 때인 2015년 2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관련된 ‘이학수 특별법’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국정농단 게이트 청문회’ 등에서 삼성을 겨냥해 따가운 질타를 쏟아내 ‘삼성 저격수‘라 불리기도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민주당 지도부, 돌연 이건희 회장 ‘공’만 칭송

    민주당 지도부, 돌연 이건희 회장 ‘공’만 칭송

    여야 지도부가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고인의 공을 치켜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고인께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탁월한 혁신의 리더십으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 양향자 최고위원은 조문 후 “손톱만 한 반도체 위에 세계를 품은 세계인이자 기술 기반 위에서 미래를 개척한 미래인”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이 회장의 ‘빛과 그림자’를 언급했지만 이날은 ‘빛’에 집중하는 메시지로 선회했다. 공과를 평가한 뒤 나온 비판 여론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하는 날인 만큼 유족에 대한 예의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조문을 마친 후 ‘공과를 따지는 (민주당) 입장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아침 회의에서 고인 서거에 대한 추모의 말씀을 드린 바 있다”고만 답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세계 역사에 기록될 반도체 성공 신화를 창조한 혁신기업가의 타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과’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앞서 이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해 ‘적절하지 않은 애도’라는 취지 등의 댓글이 4000여개 달리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일관되게 이 회장의 공을 칭송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조문 후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 산업 전반을 놓고 봤을 때 삼성전자 반도체·스마트폰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 비대위 전 비공개 모임에서 한 비대위원이 ‘당이 나서서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완화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복수의 비대위원이 밝혔다. 이에 김 위원장은 “법이 있는데 어떻게 가능하냐”며 일축했다고 한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이건희 평가, 어제와 분위기 달라진 민주당 지도부 왜?

    이건희 평가, 어제와 분위기 달라진 민주당 지도부 왜?

    어제는 ‘빛과 그림자”…오늘은 ‘그림자’ 빠져민주당 지도부 대거 조문…“혁신의 리더십”박용진, 김두관 의원은 공과 지적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6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고인의 공을 치켜세웠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날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고인께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탁월한 혁신의 리더십으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시고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 상무를 지낸 양향자 최고위원은 조문 후 “(이 회장은)손톱만 한 반도체 위에 세계를 품으신 세계인이자 기술 기반 위에서 미래를 개척한 미래인”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논평 등에서 이 회장의 ‘빛과 그림자’를 언급했지만, 이날은 ‘빛’에 집중하는 메시지로 선회했다. 전날 ‘공과’를 언급하면서 나온 비판여론을 감안하고, 지도부가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하는 만큼 유족에 예의를 갖춘 것으로 풀이된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조문을 마친 후 ‘공과를 따지는 (민주당) 입장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아침 회의에서 고인 서거에 대한 추모의 말씀을 드린 바 있다”고 답했다. 김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세계 역사에 기록될 반도체 성공 신화를 창조한 혁신기업가의 타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과’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이건희 회장) 그의 말대로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고 했다. 이 대표도 전날 페이스북에 “고인은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가 ‘적절하지 않은 애도’라는 취지 등을 포함하는 댓글이 4000여개 달리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이 회장의 ‘공’에 집중했지만, 개별 의원들은 공과 과를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삼성 저격수’로 꼽히는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국가적으로 기업에 특혜와 권한을 몰아주던 방식으로 기업을 키우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재벌의 편법 승계 등과 관련해선, “자기들만 특권, 특혜를 기반으로 법 외적 존재로 있겠다는 인식에서는 더는 재벌 총수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고인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을 주도했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무노조 경영, 경영 승계 과정에서 보여준 사회적 책임의 부족 등은 무거운 숙제로 남았다”고 밝혔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정경유착 등 그늘도” “대한민국 위상 세워”… 민주·국민의힘, 이건희 추모 속 평가 엇갈려

    정치권은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에 한목소리로 애도를 표하면서도 고인의 공과 과에는 분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이 회장이 남긴 부정적 발자취와 과제에 집중했고, 국민의힘은 기업가로서 고인이 세운 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민주당은 주요 정당 중 가장 늦게 공식 논평을 내는 등 추모 메시지 내용에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이낙연 대표는 페이스북에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한다”며 양면을 모두 조명했다. 이 대표는 “고인께서는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끌었다”면서도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평가했다. 정의당도 정호진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제 그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지우고, 재벌 개혁을 자임하는 국민 속의 삼성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종철 대표는 이 회장의 조문을 가지 않을 계획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데 무게를 뒀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가족 빼고 모두 바꾸자는 파격의 메시지로 삼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이끈 혁신의 리더,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며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이 회장의 기업사를 후대가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배준영 대변인도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혁신과 노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기업가정신으로 도전해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리더기업을 우뚝 세워냈다”고 고인을 기렸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NYT “삼성을 韓경제 주춧돌·세계적 기업으로 키워”

    NYT “삼성을 韓경제 주춧돌·세계적 기업으로 키워”

    외신들은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을 긴급 타전하고 그의 생애와 업적을 집중 조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회장은 삼성을 스마트폰과 TV, 컴퓨터칩 글로벌 거인으로 만든 이”라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경영 혁신으로 삼성을 한국 경제의 주춧돌이자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 냈다”고 회고했다. ●블룸버그 “누구나 탐내는 기업 만들어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인이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2류 전자부품 제조사를 TV와 스마트폰, 메모리칩 분야 세계 1위로 올려놨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삼성전자를 모조품 생산업체에서 누구나 탐내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변모시킨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글로벌 기술 대기업을 일군 오점의 거인’ 제하 부고기사에서 “그가 경영진에게 끊임없는 위기의식을 심어줘 자기만족을 배격했다”면서도 “불투명한 지배구조, 가족 재산의 미심쩍은 이전 등으로 비난받았다”고 평했다. AFP는 “삼성은 한국에서 가장 큰 가족 소유 대기업, 혹은 재벌”이라고 소개했다. ●요미우리 “日기업 경영 기법에도 정통” 중국 환구망은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고인의 일본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고인은 와세다대에서 수학하고 파나소닉 창업자를 존경해 일본 기업의 경영 기법에도 정통하다”고 썼고, NHK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카리스마적 경영자로 알려졌다”고 회고했다. 삼성 스마트폰 생산 공장이 있는 베트남의 국영 베트남뉴스통신(VNA)은 메인화면에 부고를 전하며 “이 회장이 삼성을 전자, 보험, 조선, 건설 분야에서 수십개 계열사를 둔 한국 최대 기업으로 키웠다”고 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NYT “삼성을 韓경제 주춧돌·세계적 기업으로 키워”

    외신들은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을 긴급 타전하고 그의 생애와 업적을 집중 조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회장은 삼성을 스마트폰과 TV, 컴퓨터칩 글로벌 거인으로 만든 이”라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경영 혁신으로 삼성을 한국 경제의 주춧돌이자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냈다”고 회고했다. 경영에서 손 뗀 이후에도 ‘큰 사상가’(big thinker)로 남아 거시전략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 “누구나 탐내는 기업 만들어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인이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2류 전자부품 제조사를 TV와 스마트폰, 메모리칩 분야 세계 1위로 올려놨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아버지 이병철이 운영하던 국수 무역 사업을 한국 최대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한 주인공”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삼성전자를 모조품 생산업체에서 누구나 탐내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텔레비전·메모리칩 기업으로 변모시킨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AFP통신은 “삼성은 한국에서 가장 큰 가족 소유 대기업, 혹은 재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그가 혁신 독려차 ‘휴대전화 화형식’을 했던 에피소드, 비자금 조성 등으로 두 차례 기소된 전력과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은둔형 생활방식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요미우리 “日기업 경영 기법에도 정통” 중국 환구망은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고인의 일본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고인은 와세다대에서 수학하고 파나소닉 창업자를 존경해 일본 기업의 경영 기법에도 정통하다”고 썼다. 삼성 스마트폰 생산 공장이 있는 베트남의 국영 베트남뉴스통신(VNA)은 메인화면에 부고를 전하며 “이 회장이 삼성을 전자, 보험, 조선, 건설 분야에서 수십 개 계열사를 둔 한국 최대 기업으로 키웠다”고 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국내 재계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신화를 쓴 총수, 삼성을 글로벌 정보기술(IT) 최강자로 키워 낸 경영인, 무노조 경영을 견지한 자본가, 그리고 은둔의 황제. 이 같은 이름으로 수식돼 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래를 꿰뚫는 혁신의 리더십, 과감한 결단으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우며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수많은 기로에서 발휘한 승부사적 결단,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TV 등에서 글로벌 1위를 거머쥐며 삼성을 ‘제2의 창업’ 수준으로 발전시켰다.외로운 유년기 바쁜 부모님·日유학으로 외로움에 익숙 자동차·레슬링 등 ‘마니아적 기질’ 키워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등 두 명의 형이 있어 아들 중에서는 막내다. 여자 형제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 등 네 명의 누나가 있으며 여동생으로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있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에서 세 살 때까지 자랐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다섯 차례 옮겨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 때 귀국해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동양방송에 이사로 입사해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회장된 3남 두 형 제치고 46세에 삼성그룹 회장 취임 승부사적 결단·혁신으로 韓경제 신화 써 1966년. 이 회장의 둘째 형인 창희씨가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구속되고, 맏형인 맹희씨도 밀수에 관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청와대 투서 사건 등 혼란이 이어진 가운데 호암은 1971년 막내아들 건희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 보겠다는 뜻을 가져다 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다.” 호암이 유언장에 남긴 말이다. 1987년 11월 19일 호암이 노환과 폐암의 합병증으로 78세의 일기로 별세하자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건희 당시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의 나이 46세 때의 일이다.어린 시절 환경이 자주 바뀌며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했던 고인은 마니아적 성격으로 집중력이 강했는데 이런 기질로 자라난 집념은 세계 1위 삼성의 원동력이 됐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취미와 관심사는 다방면에 뻗쳐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 줬던 건 프로레슬링이었다. 와세다대 재학 시절 역도산을 직접 만날 만큼 레슬링에 몰두했던 그는 눈자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1년여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치열한 목표 의식을 키웠다. 그의 레슬링 사랑은 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내며 이어졌다.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의 영화를 봤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각종 기계를 직접 분해, 조립하면서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도 즐겼다. 이에 평생 즐겨 쓴 휘호가 ‘무한탐구’였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1년 반 동안 차를 죄다 뜯어 보며 차를 6대나 바꾸기도 했다. 1987년 취임과 함께 그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일성을 내놨고 그 약속을 지켰다. 흑백 TV가 삼성의 주력이던 1974년 호암이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하도록 설득하며 사업을 주도한 것도 그다. 당초 동물적인 사업감각의 소유자였던 호암도 아들이 반도체 얘기를 꺼내면 “이놈아, 그 돈이면 TV를 몇백만 대나 더 만들 수 있는데 그 쪼그만 것 만드는 데 쓰겠다는 거냐”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면서 첨단 하이테크 산업만이 살길이라고 믿은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호암의 지원을 이끌어 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이 된 뒤에도 ‘2등 구제불능론’(2등은 현상 유지밖에 못 한다. 조금이라도 지면 완전히 진 것이다) 등 늘 위기론을 부각시키며 ‘초격차’를 위한 고삐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3년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이듬해인 2014년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며 체질과 구조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는 ‘마하경영’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의 마지막 신년사이기도 했다.어두운 유산 정관계 로비로 퇴진, 위기론 들고 복귀불법 승계 의혹, 삼성의 리스크로 남아 성공만큼 시련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검찰과 질긴 악연을 이어 가며 재임 기간 세 차례나 법정에 섰다. 19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공소시효 완료로 무혐의 결정이 났지만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직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50여억원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방식과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 등이 공개되며 지탄을 받았다. 2008년 4월 22일 이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직을 내놓으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듬해 재판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이어 2010년 3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정관계 불법 로비, 불투명한 지배구조, 노조 설립 불허 등 그의 체제에서 이뤄진 삼성의 각종 문제들은 지금도 삼성과 재벌에 대한 불신을 만든 ‘어두운 유산’으로 남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초상집에 훈계질 무례”…이낙연 ‘이건희 추모글’에 나온 반응(종합)

    “초상집에 훈계질 무례”…이낙연 ‘이건희 추모글’에 나온 반응(종합)

    민주당 이낙연 대표 페이스북이건희 회장 ‘빛과 그림자’ 추모글고려대 이한상 교수 “초상집에 훈계질”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25일 오전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애도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일부 네티즌은 “별세 당일 이런 글 올리는 건 아닌 듯”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낙연 “빛과 그림자를 생각…삼성 새롭게 태어나길” 이 대표는 이날 이 회장의 별세를 애도하면서도 “빛과 그림자를 차분히 생각한다”며 “삼성이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직접 “신경영, 창조경영, 인재경영, 고인께서는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셨다”며 “그 결과로 삼성은 가전, 반도체, 휴대폰 등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대표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같은 고인의 여러 말씀은 활기 있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도 성찰의 고민을 던져 주었다”고 했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이 회장이 1997년 펴낸 에세이집이다. 그러면서도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평가했다. 또 “고인의 혁신적 리더십과 불굴의 도전 정신은 어느 시대, 어느 분야든 본받아야 마땅하다”며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 페이스북에는 대한민국 경제의 큰 획을 그은 고인이 떠난 당일 공과 과를 언급하며 훈계하는 태도는 잘못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또 향년 78세로 별세한 고인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이 회장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던 영욕(榮辱⋅영예와 치욕)의 삶이었다.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했다.이한상 교수 “초상집에 훈계질 하는 건 무례” 고려대 이한상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 회장의 기업인으로서 업적 평가는 반성 성찰하는 것이 맞는다. 하지만 초상집에서 삼성임직원과 유족들이 상심하고 있을 오늘 재벌 경제니 노조불인정이니 따위를 추모사에 언급하고 삼성에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훈계질 하는 것은 무례이자 무도”라고 했다. 이어 이 교수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사람이지만, 오늘 하루는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 혁신하고 세계 일류 제품만 남겨 사업보국하자는 기업가의 선한 영향력만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한다”며 “여당 정치인들은 양심적으로 오늘 하루는 입에 자물쇠를 거는 예의를 지켜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삼성 이건희 겨눴던 ‘원조 저격수’ 김종인…“나라가 그들 손바닥에”

    삼성 이건희 겨눴던 ‘원조 저격수’ 김종인…“나라가 그들 손바닥에”

    재벌개혁 필요성 앞장서 외쳤던 김종인저서 통해 수차례 삼성 ‘작심 비판’도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원조 ‘삼성 저격수’였던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낼 메시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재벌개혁과 깊숙히 얽혀있는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김 비대위원장은 삼성과 수십년에 걸친 악연이 있다. 재벌개혁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가진 김 위원장은 자신의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에서 재벌개혁 필요성을 여러차례 언급하며 삼성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출간한 저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에서 “특정 재벌이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언론에는 광고를 무기로 기사 보도와 사설의 논조를 좌우한다.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등 여러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재벌로 하여금 사회가 요구하는 룰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3월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는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삼성을 비롯한 국내 재벌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비판한다. 김 위원장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노태우 정권에서 경제수석으로 있을 당시 삼성으로부터 받았던 여러 형태의 압박을 서술하며 “우리나라 재벌의 행태가 이렇다. 처음에는 회유하고, 회유에서 안 되면 협박하고, 협박해서 안 되면 도려내려 한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 근무 당시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수준의 재벌규제로 여겨지는 5.8조치를 단행하며 ‘재벌과의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 온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한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 전까지 거의 알려진 바 없었던 ‘최순실’에 먼저 주목했던 삼성의 정보력과 로비력을 조명했다. 그는 “어떤 언론도, 다른 어떤 재벌도, 세상 어떤 정보기관과 정치세력도 알지 못하던 것을 삼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삼성이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후계자를 물려주는 과정에서 정부와 모종의 결탁이 필요하게 되자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최측근을 찾아내 로비를 시도한 것이다. 당시 언론은 그 사건을 ‘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렀지만 ‘삼성 게이트’라 불러야 본질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이 권력 위에서 춤추는 행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보려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거듭하던 삼성은 25년 후 어떻게든 2세에게 기업을 공짜로 넘겨주려고 꼼수를 부리다 대통령이 탄핵되게 만들고 그들의 2세도 감옥에 가는 곤욕을 치렀다. 지독한 탐욕의 결과다”고 했다. 그는 “그 이후(박근혜 탄핵)에도 삼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절대 달라질 리 없다”면서 “그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자기들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건을 겪으며 오히려 ‘권력이란 것도 별것 없네’하고 시시하게 여기게 되었을 것”이라고 서술했다. 특히 “전임 대통령이 탄핵된 후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마저 경제가 어렵다는 소리에 곧장 삼성에 허겁지겁 달려가 ‘우리 삼성에 감사한다’는 말씀이나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그날 청와대는 대통령이 삼성을 ‘격려’해줬다고 표현했지만 삼성은 결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통령과 악수하고 포옹한 그날 밤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웃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지난 6월 취임 후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도 삼성에 대한 작심 비판을 했다. 당시 심 대표가 과거 보수정당이 삼성의 탈법적 자유는 적극 지지하면서 삼성 노동자의 노조할 자유를 반대했다고 언급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내가) 부자들이 부동산을 가지고 돈을 벌려는 자유는 과거에 민정당 때 적극적으로 제지한 사람 중 하나”라며 “삼성 같은 데가 오늘날 곤욕을 겪는 것도, 과거에 지나칠 정도로 시대를 역행해서 ‘노조 없는 회사’가 좋은 회사인 것처럼 하다가 오늘날에 와서 스스로 어려움에 빠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정치권, 이건희 추모 물결 속에도 평가는 꼼꼼하게(종합)

    정치권, 이건희 추모 물결 속에도 평가는 꼼꼼하게(종합)

    정치권은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에 한목소리로 애도를 표하면서도 고인의 공과 과에는 분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이 회장이 남긴 부정적 발자취와 과제에 집중했고, 국민의힘은 기업가로서 고인이 세운 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민주당은 주요 정당 중 가장 늦게 공식 논평을 내는 등 추모 메시지 내용에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이낙연 대표는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한다”며 양면을 모두 조명했다. 이 대표는 “고인께서는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셨다”면서도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평가했다.허영 민주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며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정호진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건희 회장은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이라는 초법적 경영 등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며 “이제 그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지우고, 재벌개혁을 자임하는 국민 속의 삼성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데 무게를 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가족 빼고 모두 바꾸자는 파격의 메시지로 삼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이끈 혁신의 리더,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며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이건희 회장의 기업사를 후대가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도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혁신과 노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차기 잠룡들도 추모 메시지 동참 차기 대권 주자들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회장을 추모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질곡의 현대사에서 고인이 남긴 족적을 돌아보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이 지사는 또 “기업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가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고인의 넋을 기리는 일이자 우리가 짊어져야 할 과제”라고 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고인께서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반도체, 휴대폰, 가전으로 삼성을 세계 일등기업으로 일으켰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우리 경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라고 했다. 또 “한국경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신 기업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삼성 같은 기업이 별처럼 쏟아져 나오는 대한민국을 만들 책임은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며 “선대의 유훈인 사업보국의 임무를 완수하신 이건희 회장님의 영면을 빈다”고 추모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기업가정신으로 도전해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리더기업을 우뚝 세워내셨다”며 “고인의 선지적 감각 그리고 도전과 혁신정신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미래먹거리 창출을 위한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국민의 자부심 높였다”vs“부정적 유산 청산해야”…여아, 엇갈린 추모(종합)

    “국민의 자부심 높였다”vs“부정적 유산 청산해야”…여아, 엇갈린 추모(종합)

    25일 이건희 별세…여아, 엇갈린 추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소식에 25일 여야는 앞다퉈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범야권은 그의 치적을 주로 평가한 반면, 범여권은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을 지적하는 등 대조를 보였다.민주 “‘새로운 삼성’이 조속히 실현되길” 더불어민주당은 별세한 이건희 회장에 대해 공과를 거론하며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허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복을 빈다”며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정경유착,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이라며 “삼성의 글로벌 도약을 이끌며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 삼성은 초일류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허 대변인은 “이 회장의 타계를 계기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께 약속했던 ‘새로운 삼성’이 조속히 실현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이낙연 “이건희의 빛과 그림자…혁신 리더십에도 그늘 남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신경영, 창조경영, 인재경영…고인은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셨다. 그 결과 삼성은 가전, 반도체, 휴대폰 등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고 적었다. 이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같은 고인의 말씀은 활기 있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며 ”사회에도 성찰의 고민을 던져줬다”며 “그러나 고인이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밝혔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이 회장이 1997년 펴낸 에세이집이다. 그러면서 “고인의 혁신적 리더십과 불굴의 도전 정신은 어느 시대, 어느 분야든 본받아야 마땅하다.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이 회장은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이라는 초법적 경영 등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어졌다”며 “이제 그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지우고, 재벌개혁을 자임하는 국민 속의 삼성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국민의힘 “국민의 자부심 높였던 선각자” 반면 범야권은 그의 경제적 업적을 평가하는 데 주력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를 앞장서 이끌었던 이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임직원 여러분들께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였다”고 평가했다. 또 국민의힘은 “고인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첨단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1위의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고,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라며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 ‘마누라, 자식 빼놓고 모두 바꿔라’라는 혁신의 마인드는 분야를 막론하고 귀감이 되었다”고 강조했다.주호영 원내대표 “대한민국 경제의 거목” 주호영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경제의 거목”이라며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이 회장의 기업사를 후대가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 역시 안혜진 대변인의 구두논평을 통해 “경제계의 큰 별이 졌다”며 “고인께서 살아생전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한 업적은 결코 적지 않았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한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만이다. 삼성은 이날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위기마다 승부사로...‘세계의 삼성’ 일군 이건희

    위기마다 승부사로...‘세계의 삼성’ 일군 이건희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 만찬에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래를 꿰뚫는 통찰력, 과감한 결단으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우며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수많은 기로에서 발휘한 승부사 기질,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TV 등 20종의 글로벌 1위 제품을 만들며 삼성을 ‘제2의 창업’ 수준으로 일궜다. 하지만 정경유착, 불투명한 지배구조, 부당 내부거래, 노조 설립 불허 등 각종 탈법·편법 행위로 재벌기업의 폐해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며 ‘독주하는 영향력’ 만큼 한국 사회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남겼다. 고인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 여사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번째(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에서 세 살 때까지 자랐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다섯 차례 옮겨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 때 귀국해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MBA과정 수료 후 동양방송에 이사로 입사해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결혼했다. 병역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면제받았다.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었던 고인은 마니아적인 성격과 집중력이 강했다. 일본 유학 시절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던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줬던 건 프로레슬링이었다. 와세다 대학 재학 시절 역도산을 직접 만날 만큼 레슬링에 몰두했던 그는 눈자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1년여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치열한 목표 의식을 키웠다. 그의 레슬링 사랑은 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내며 이어졌다. 일본 유학 시절 영화관에서 하루에 8편을 볼 만큼 영화도 좋아했다. 각종 기계를 직접 분해, 조립하면서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도 즐겼다. 거짓말 안하고 배신할 줄 모르는 충직함 때문에 진돗개를 길러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견종종합전시회에 진돗개를 출전시키기도 했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보겠다는 뜻을 가져다 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갈 것이다.” 1971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전 회장이 유언장에 남긴 말이다. 1987년 11월 19일 호암이 노환과 폐암의 합병증으로 78세의 일기로 별세하자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건희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우리나라를 지금의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하는 데는 고인의 추진력이 큰 역할을 했다. 1974년 그가 파산 직전의 한국 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하자 회사 안팎에서는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쳐졌는데 따라가기가 하겠느냐”며 반대하고 나섰다. 198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도 “반도체는 인구 1억, GNP 1만 달러, 내수판매 50% 이상이 가능한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산업으로 기술·인력 재원이 없는 우리에겐 불가능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반도체 사업은 ‘공상’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느냐.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 제 사재를 보태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고 엔지니어를 찾아 미국 실리콘밸리를 50여차례 드나들며 인력 확보에 나섰다. 1984년 세계 반도체 시장이 극심한 불황으로 위기를 맞고 삼성도 반도체 사업에서 1000억원 정도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봤을 때도 고인은 “위기는 곧 기회”라며 오히려 설비투자를 대폭 늘리며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을 만들었다.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성공을 ‘운이 좋다’ ‘돈이 돈을 벌었다’고도 평가하기도 한다. 이에 이 회장은 1997년 10월 언론 기고를 통해 이렇게 대답한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을 놓고 간단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운이 좋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을 하려면 그에 값하는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하고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3차례나 법정에 서야 했다. 19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받았다. 공소시효 완료로 무혐의 결정을 받긴 했지만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도 이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았다. 다시 2년 후 터진 2007년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직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의 비자금 50여억원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방식과 전방위적 로비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2008년 4월 22일 이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 직을 내놓으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1년 후 재판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이후 2010년 3월 이 회장은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변을 내놓으며 경영 일선에 복귀해 조직 재정비, 삼성의 도약에 힘을 쏟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낙연이 바라본 이건희의 ‘빛과 그림자’

    이낙연이 바라본 이건희의 ‘빛과 그림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생각한다”고 조의를 표했다.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신경영, 창조경영, 인재경영, 고인께서는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끄셨다”며 “그 결과로 삼성은 가전, 반도체, 휴대폰 등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대표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같은 고인의 여러 말씀은 활기 있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도 성찰의 고민을 던져 주었다”고 했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이 회장이 1997년 펴낸 에세이집이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도 “고인은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인의 혁신적 리더십과 불굴의 도전 정신은 어느 시대, 어느 분야든 본받아야 마땅하다”며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이날 향년 78세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삼성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이에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삼성 저격수’ 박용진, 이재용에 3가지 당부…상속세·준법경영·NO반칙

    ‘삼성 저격수’ 박용진, 이재용에 3가지 당부…상속세·준법경영·NO반칙

    ‘삼성 저격수’ 역할에 의정 활동을 집중해온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5일 “이건희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삼성과 우리 경제의 새 출발, 새 질서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고인을 비롯해 우리 경제를 대표하는 각 그룹의 창업주, 주춧돌 역할을 했던 1, 2세대 경영자들이 역사에서 퇴장하고, 한국경제 이끄는 재벌, 대기업의 세대교체가 마무리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박 의원은 “분명한 것은 권위주의 시대에 초창기 경영자들이 보여주었던 기업문화와 한국경제의 질서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한민국은 세계경제의 리더국가로서 반칙과 특혜, 불법으로 얼룩진 낡은 권위주의적 방식의 기업문화와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3,4세대 경영 총수들에게 인식전환과 분발을 기대한다”며 “권위주의적 방식의 경영과 결별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면 정치권도 우리 기업을 도우며 함께 하겠다”고 했다. 특히 박 의원은 “이건희 회장 사망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한다”며 “세금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양보 될 수 없는 핵심적 질서”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 국민은 기업가들이 세금 낼 것 내고 감당할 것 감당하면서 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을 향해서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삼성생명법 등 우리 경제질서에서 특혜로 작동되어온 문제들에 대해서도 전환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제 총수인 이 부회장도 혁신적 태도와 준법경영을 통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인으로 거듭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삼성왕국’ 이건희·‘세계속 LG’ 구자경·‘정도경영’ 구본무…저무는 창업 1·2세대 별들

    ‘삼성왕국’ 이건희·‘세계속 LG’ 구자경·‘정도경영’ 구본무…저무는 창업 1·2세대 별들

    27년간 삼성왕국을 이끌어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인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창업 1·2세대 별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14일에는 ‘인화’(人和·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의 기업 문화로 ‘세계속의 LG’를 일궈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94세 일기로 영면했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인 구 명예회장은 1950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 입사하며 평생 ‘LG맨’으로 살아왔다. 1970년부터 25년간 LG그룹의 수장을 맡으면서 취임 당시 260억원이었던 매출을 30조원대로 1150배 키워놨다. 2만여명이던 직원은 10만여명으로 늘었다. 현재 LG의 주력사업인 전자·화학 부문도 이때 기틀이 마련됐다.이보다 한 해 전인 2018년 5월엔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본무 엘지(LG)그룹 회장이 향년 73세로 타계했다. 구 회장은 취임과 함께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경영체제 구축, 소유구조 개선을 통한 국민기업 지향, 정도경영 추구 등 이른바 ‘실체개혁’을 단행했다. 이때 추진했던 개혁의 결과가 현재 엘지의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 안정적인 지배구조의 바탕이 됐고, 다른 재벌그룹과 달리 뇌물이나 비자금 사건 등도 거의 일어나지 않게 했다는 평가가 지금도 나온다.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도 올해 1월 19일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일본 도쿄에서 껌 사업을 시작한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식품, 유통, 관광, 화학 분야를 아우르는 대기업을 일궜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의 창업 등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한 ‘신격호의 도전과 꿈’이라는 책을 지난 6월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롯데그룹은 ‘형제의 난’을 거쳐 둘째 아들인 신동빈 회장이 이끌고 있다.지금은 간신히 흔적만 남았지만, 한때 재계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 전 회장도 지난해 말 타계했다. 31세의 나이로 자본금 500만원을 갖고 시작해 사업을 점점 키워 창업 5년 만에 수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전자, 자동차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삼성, 현대 등 국내 굴지의 재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현재는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미래에셋대우 등 일부 기업들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 1·2세대인 고인들은 대한민국이 무역강국이자 경제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던 인물들”이라며 “빛과 그림자는 있겠지만 경제산업 전반에 걸친 고인들의 업적과 정신만큼은 역사 속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평가?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정의당 “이건희, 정경유착·무노조 경영 어두운 역사 남겨”

    정의당 “이건희, 정경유착·무노조 경영 어두운 역사 남겨”

    정의당은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에 조의를 표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고 고인의 생을 평가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조의를 표한다”며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이라는 초법적 경영 등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어졌다”고 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또 “이제 그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지우고, 재벌개혁을 자임하는 국민 속의 삼성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가족 빼고 모두 바꾸자는 파격의 메시지로 삼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이끈 혁신의 리더,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며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이건희 회장의 기업사를 후대가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고인께서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반도체, 휴대폰, 가전으로 삼성을 세계 일등기업으로 일으켰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우리 경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라고 했다. 또 “한국 경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신 기업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이날 향년 78세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삼성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이에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삼성 거인으로 변화시켜”...이건희 별세 소식 전한 외신(종합)

    “삼성 거인으로 변화시켜”...이건희 별세 소식 전한 외신(종합)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주요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그의 생애와 삼성에 대해 조명했다. AP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로이터통신, AFP통신 교도통신 등은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AP통신은 이 회장에 대해 “소규모 TV 제조사를 글로벌 가전제품 거인으로 변화시켰다”며 “이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한 약 30년간 삼성전자는 글로벌 브랜드로 부상했으며 전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TV, 메모리칩 제조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어록을 소개하며 “그는 소니 등 라이벌들에 도전하기 위해 혁신을 촉진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관련 소식을 전하며 “이 회장은 삼성을 스마트폰, TV, 컴퓨터 칩 거인으로 키웠다”며 “삼성전자는 오늘날 한국 경제의 주춧돌이며 전 세계에서 연구개발 투자지출이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의 재임 동안 점차 다른 전문 경영인들이 그룹에서 더 큰 책임을 지게 됐지만, 이 회장은 삼성의 ‘큰 사상가’(big thinker)로 남아 거시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프랑스 AFP통신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변모시킨 이 회장은 2014년 심장마비로 병석에 눕게 됐다”며 “은둔형 생활방식으로 유명한 이 회장의 구체적인 상태에 관해선 공개된 바가 적어, 그의 마지막 날들 역시 미스터리에 쌓여 있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삼성은 한국에서 가장 큰 가족 소유 대기업, 혹은 재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 언론들도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긴급 보도했다. 해외망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했다”고 전했고, 환구망도 한국 언론을 인용해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하다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명문대학과 학벌대학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명문대학과 학벌대학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학벌(學閥)사회다. ‘벌’은 지위와 위세를 뜻한다. 학벌구조의 정점에 소위 ‘명문대학’이 있다. 하지만 내 판단으로는 이곳에 명문대학(名門大學)은 없다. 글귀대로 풀이하면 명문대학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학”이다. 한마디로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 요즘 어떤 직종 종사자들이 입에 올려 화제가 된, 10대 시절 ‘전교 1등’같이 시험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 그 대학 출신들이 힘 있는 자리에 많이 진출한 대학, 그래서 출세에 유리한 대학. 좀더 학술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연구비를 많이 따오는 대학, 국내외 대학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 등. 나는 이런 기준들의 타당성을 전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명문대학을 판단하는 다른 기준을 상기시키고 싶다. 권력과 연결된 이름이 알려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대학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기준.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재벌이 그렇듯이 학벌도 부러움의 대상은 되지만 존경의 대상은 못 되기 때문이다. 존경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고 해서 따라오는 부산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곳의 학벌대학은 그 무엇을 갖고 있는가. 명문대학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한 사례를 살펴보자. 2000년 7월 미국 명문대학 중 한 곳인 뉴욕시 소재 컬럼비아대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사이드는 레바논을 방문 중 레바논ㆍ이스라엘 국경에서 이스라엘 쪽 국경초소에 돌을 던졌다. 항의의 상징이었다. 그 사진이 크게 보도됐다. 사이드는 탈식민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20세기 후반부에 출판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문학 저서 중 하나인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실천적으로 개입했다. 이런 사이드의 행동에 대해 컬럼비아대학이 자리한 뉴욕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이드의 행동을 격하게 비난하며 해임을 요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테러리스트 교수라는 말까지 나왔다. 대학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었다. 몇 개월 뒤인 2000년 10월 컬럼비아대학은 사이드의 행동을 강하게 옹호하면서 명확한 입장을 밝힌다.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행사하는, (지식인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자유를 지닌 개인들이 제기하는 자유로운 담론을 지키는 것. 그것이 대학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다.” 2005년 컬럼비아대학 총장은 재차 대학의 자율성, 학문의 자유, 지식 생산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런 자율성의 가치 위에서 트럼프 정권 초기에 벌어진, 불법이민 학생들을 색출하려는 권력의 압력에 맞서 미국 대학들은 저항의 연대를 형성했다. 명문대학은 이런 자존심과 위엄을 지닌 곳이다. 그런 자존감과 품격을 지닌 사람들을 길러내는 터전이다. 그럴 때 사회 구성원들은 그 대학을 ‘명문’으로 존경하게 된다. 존경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것이다. 명문대학의 기준이다. 유치하게 ‘전교 1등’했다는 걸 자랑하거나 권세 있는 자리에 오른 걸 뻐기는 인간들이나 배출하는 학벌대학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학벌대학은 미래의 권력집단이다. 권력집단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존경할 수는 없다. 그리고 권력집단과 비판적 지성은 양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의 학벌대학들의 모습은 어떤가.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 출신 인재를 뽑기 위한 지역균형선발 지원자들을 모조리 불합격시킨 대학. 교수가 자신의 자녀에게 근거 없이 높은 학점을 준 상황을 적발하고도 모른 체하는 대학. 음식점으로 위장한 유흥업소에서 교수들이 수십 차례에 걸쳐 거액의 연구비를 썼는데도 대충 넘어가는 대학. 고위보직 교수의 자녀가 대학원에 부정입학하는 일에 교수들이 협조하는 대학. 무엇보다 10대 시절 얻은 ‘전교 1등’ 성적을 완장처럼 내세우면서 다른 사회구성원들을 무시하는 대학. 그런 학생들이 옳다고 교수들이 나서서 옹호하는 대학. 이런 학벌대학 몇 곳이 “지난 5년간 한 차례도 빠짐없이 전체 고등교육재정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한국 사회에 학벌대학이 아닌 명문대학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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