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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10대와 살인마 처절한 사투

    두 10대와 살인마 처절한 사투

    공포 영화를 보러 가서 별 무서움을 느끼지 못할 때만큼 기분 찜찜한 일은 없다.20일 개봉하는 자움 세라 감독의 공포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House of Wax)는 그런 우려를 접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무섭고 끔찍한 영화다. ‘강렬한 비트의 청춘 호러’를 표방한 이 영화는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1953년작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돌발 장면과 음향으로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심리적 공포물이 아니라, 머리·팔·다리가 처참하게 뜯겨져 나가고 피가 솟구쳐 범벅이 되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슬래셔’ 무비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6명의 10대가 숲속에서 야영을 하게 된다. 이들은 루이지애나에서 열리는 풋볼 개막경기를 보기 위해 주말 여행을 가던 중. 다음날 아침 자동차 팬벨트가 끊어진 것을 알게 된 이들은 근처 마을로 향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곳에서는 실제 사람은 없고 오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정교한 밀랍인형들뿐이다. 이들은 밀랍인형들이 실제 사람처럼 보이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이후 흉칙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살인마가 10대 일행을 차례차례 살해하면서 닉과 칼리만 남는다. 둘은 살인마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스크린이 온통 피로 물들어 가면서 공포는 배가되지만, 스토리를 따라가는 재미는 줄어든다. 그저 ‘얼마나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느냐.’에 영화 감상의 포인트를 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러브 액추얼리’로 얼굴을 알린 알리샤 쿠스버트,TV 드라마 ‘도슨의 청춘일기’로 인기를 모은 채드 마이클 머레이 등 유망주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대재벌 힐튼가의 상속녀이자 할리우드의 사고뭉치로 악명 높은 패리스 힐튼이 이 영화를 통해 데뷔했다.18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재벌딸 행세 결혼… 시댁돈 80억 ‘펑펑’

    재벌가의 딸이라고 속이고 결혼한 뒤 사업자금 등 명목으로 남편과 시집에서 80억원을 빌려 갚지 않은 30대 여성이 쇠고랑을 찼다. A(37)씨가 B(38)씨를 만난 것은 2002년 초. 둘은 와인바에서 우연히 동석한 것을 인연으로 가까워졌다.A씨는 10년 가까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 자녀도 두고 이혼을 했지만 “나는 서울 명문여대를 졸업한 중견기업 회장의 딸”이라면서 “여러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B씨를 속였다. 의사인 B씨도 “재벌가 사위도 되고 병원 운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혼에 동의했다. A씨는 재벌가의 딸로 행세하려고 사채까지 빌려 명품을 구입해 치장하기도 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채 독촉에 시달리던 A씨는 온갖 감언이설로 남편을 속여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3억 5000여만원을 빌렸다. 결혼 후 남편의 부정한 행각을 담은 ‘몰카’가 있어 무마하겠다면서 1억여원을 받는 등 16억원을 더 빌렸다. 또 시어머니에게 “국세청에서 탈세를 문제삼아 돈을 요구해 뇌물이 필요하다.”며 40여차례에 걸쳐 64억여원을 얻어내기도 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화제의 CEO]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 前회장

    [화제의 CEO]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 前회장

    거대 석유기업 ‘유코스’를 호령하던 신흥 재벌에서 통치자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 만으로 하루 아침에 영어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42)에 대한 러시아 법원의 선고 공판이 또다시 18일로 연기됐다. 모스크바의 메슈찬스키구(區) 법원 재판부는 지난 16일부터 시작한 판결문 낭독을 17일에도 매듭짓지 못해 선고를 하루 미루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호도르코프스키에 대해 제기한 탈세 등 7가지 항목 모두 유죄로 인정된 것으로 보여 10년형의 중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1963년 모스크바의 전형적인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호도르코프스키는 모스크바 멘델레예프 화공대를 졸업한 뒤 86년 컴퓨터, 브랜디 등을 수입·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3년 뒤 훗날 유코스의 지주회사로 거듭나는 메나텝(Menatep)은행을 세웠다. 메나텝은 91년 옛 소련이 붕괴할 무렵까지 각종 정부 기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민간은행이다. 90년대 국영기업 민영화에 참여해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한 그는 95년 신흥 청년 사업가들과 함께 선거자금을 지원,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재선을 도우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국영기업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 투자하는 거래로 유코스 지분 78%를 3억 900만달러에 인수했다. 2000년 ‘정치적 자유는 제한하지만 경제 지원은 확대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 출범 이후 유코스는 시가 350억달러 기업으로 성장했고 그의 재산도 150억달러로 불어났다. 그의 몰락은 정치적인 측면이 많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야당측에 정치자금 수백만달러를 제공한 것이 결정적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과 총선을 2개월가량 앞둔 2003년 10월 탈세 등 7개 혐의로 러시아연방보안국에 체포, 구속됐다. 유코스는 세금 체납을 이유로 275억달러를 추징당했고 지난해 11월 핵심 자회사인 유간스크네프트 가스를 국영 가스회사에 매각하면서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송유관을 소유하고 민간 석유회사들을 좌지우지해온 러시아 정부에 맞서 시베리아와 중국·러시아를 잇는 송유관 건설에 나선 것도 푸틴의 미움을 산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적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재계 “비정규직법 협상 거부”

    재계가 17일 비정규직 입법 문제에 대해 사실상 재논의 불가를 선언했다. 최근 일부 사업장에서 발생한 노조의 물리적 충돌 사태에 대해서도 소송 등 강력히 맞서기로 했다. 이렇듯 재계의 강경 기류와 일부 기업체 노조의 실력행사가 충돌함에 따라 노·사 관계는 상당기간 대치 국면이 예상된다. 비정규직 입법안도 한동안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회복 시기를 점치기 어려운 국내 경제에 또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LG전자·현대차·대우조선 등 주요 기업 인사·노무 담당 임원 20여명은 이날 서울 조선호텔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재로 긴급회동을 갖고 재계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들 임원들은 회의가 끝난 뒤 자료를 통해 “정부의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 노력에 대해 노동계가 일말의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현 시점에서 비정규직 논의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못박았다. 또 “비정규직 법안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며 정부에도 비판의 화살을 겨눈 뒤 “정부 입법안 재논의를 위해서는 정규직의 지나친 고용 경직성을 완화하는 방안도 동시에 검토돼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언뜻 보면 ‘조건부 재협상 수용’ 의사처럼 보이지만 이는 재계가 대화의 틀을 깼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전술적 성격이 짙다. 노동계가 이같은 재계의 조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가 비정규직 입법안의 6월 처리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노사정 논의는 벽에 부딪치게 됐다. 대변인으로 나선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노사정 실무협의에서 노동계가 어떠한 성의도 보이지 않은 마당에, 재계가 부담을 감수하면서 정부안을 계속 지지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기업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가 이렇듯 예정에 없던 모임까지 부랴부랴 만들어가며 강경한 목소리를 낸 데는 최근의 잇단 ‘노조 실력행사’와 무관치 않다. 울산지역 건설 플랜트 노조 파업, 하이닉스·매그너칩 사내하청 노조 문제, 덤프연대의 불법단체행동 등에 이어 급기야 통일중공업 경영진이 노조원들과의 충돌과정에서 다치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더는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김 부회장은 “그동안 사측도 권력집단화한 노조에 밀려 원칙을 갖고 대응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서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원칙대로 처리해 나갈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현 시점에서 더이상 밀리면 비정규직 입법안 처리때도 주도권을 잃는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가 비정규직 입법 정부안에 대해 ‘공격’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청와대가 재벌총수를 잇달아 면담하는 등 친기업 기류가 확산되고, 노동계가 일부 폭력사태로 궁지에 몰린 틈을 타 여론 잡기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우리당 무기력’ 내부보고서 파장

    ‘우리당 무기력’ 내부보고서 파장

    “한나라당의 지지율 상승은 정부 여당의 잘못으로 인한 반사적 이익도 있으나, 차기 정권교체를 위한 당 혁신 작업, 이미지 쇄신작업에 기인한다.” 열린우리당의 무기력증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한나라당의 변화를 칭찬한 열린우리당 내부 보고서가 17일 작성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보고서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한나라당’이라는 주제로 4쪽분량이며 변화하는 한나라당과 정체한 열린우리당을 사례별로 비교해 놓았다. 열린우리당이 이날 광주에서 10월 재보선과 내년 5·30 지방선거를 앞두고 혁신위 2차 토론회가 개최되는 상황에서 나와 당 안팎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적법 개정·北비료지원 허용… 한나라 변신중 이 보고서는 한나라당의 변화로 지난 4일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국적법 통과 및 국적포기자 외국인특별전형 대입불허를 내용으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 추진, 지난 12일 공안 검사출신인 정형근 의원의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비료지원’ 촉구 등을 나열했다. 박근혜 대표의 전남 신안 방문,5·18묘역 집단참배, 중부권 신당 및 민주당과의 합당론 제기 등 지속적인 ‘서진정책’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시민단체, 뉴라이트 진영, 명망 있는 전문가 집단을 향한 본격적인 ‘헤드헌팅’에 주력한 결과에도 주목했다. 인터넷에서 열린우리당의 우위가 깨진 이유에 대한 분석도 포함돼 있다. 양당에서 가장 방문자 수가 많은 미니홈피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열린우리당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것이지만, 방문자 수에서는 각각 4000명과 400명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뒤지는 형편이다. 보고서는 대중을 끌어들일 콘텐츠 부재를 원인으로 손꼽았다. 특히 한나라당은 가정의 달인 5월의 컨셉트에 맞춰 홈페이지에 권철현 의원의 몸짱 사진, 강재섭 원내대표의 선글라스 낀 결혼 사진, 박진 의원의 월미도 데이트 사진 등을 올려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평가했다. ●교육비·집값·노후대책에 집중을 반면 열린우리당의 홈페이지는 ‘개혁과 민생이 동반 성공’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선언하고 있고, 당 게시판에도 ‘난닝구(실용파)’대 ‘빽바지(개혁파)’들간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았다고 분석했다. 정부 여당으로 정책과 노선상의 자기 색깔찾기에 실패했다는 자성도 곁들였다. 당 관계자는 “30∼45세 중산층과 서민에게 접근할 수 있는 교육비, 교육문제, 보육, 집값, 고용불안, 노후대책 등에 대한 정책적 집중이 필요하다.”면서 “재벌 규제완화 등 기득권의 환심을 사는 정책으로는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지금 그곳은] 논현동 나산백화점

    [지금 그곳은] 논현동 나산백화점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강남구청 사거리는 청담동·압구정동 등과 이어져 있고 강남구청·강남세무서와도 가까워 강남지역의 요지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곳에는 수년째 ‘폐가’로 방치돼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1990년대 말 가격파괴 전략으로 유통시장에 겁없이 도전했던 옛 나산백화점 건물이다. ●원래는 83년 문 연 ‘영동백화점’ 옛 나산백화점의 원래 이름은 ‘영동백화점’이었다. 영동학원 이사장이었던 김형목씨가 지난 83년 지하 2층, 지상 8층에 연면적 4359평 규모로 지은 이 건물은 문을 연 뒤 강남의 신흥백화점으로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강남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서아(27·여)씨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백화점에 가면 또래 아이들과 옥상에 설치됐던 놀이기구에서 놀곤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강남지역 일대에 그랜드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아버지를 대신해 백화점 경영을 맡았던 김택씨는 여배우와의 마약복용, 경마 승부조작 혐의 등으로 연이어 구속되면서 ‘방탕한 재벌2세’라는 세인들의 눈총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집으로 들이닥친 강도들에게 인질로 붙잡혔던 불운을 겪기도 했다. 결국 영동백화점은 93년 1월 문을 닫았고 신세계 백화점이 위탁경영에 나섰다. 하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한 채 이듬해인 94년 당시 급성장 중이던 나산그룹에 인수됐다. ●나산그룹에 팔린 뒤 붕괴위험으로 폐쇄 나산백화점으로 다시 선보인 이곳은 특유의 ‘가격파괴’ 전략으로 유통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농수산물과 생활필수품 등을 특정시간대에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하는 전략은 당시 유통업계에 돌풍이었다. 여성복 ‘조이너스’로 기틀을 잡은 나산그룹은 서울 및 수도권 지역 곳곳에 백화점을 만들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백화점의 인기는 이내 시들해졌고 위기에 빠진 나산측은 97년 이곳을 ‘나산 홈플레이스’로 재개관했다. 국내 최초의 홈인테리어·가정용품 전문점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IMF 사태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98년 당시 지하철 7호선 공사과정에서 지하 주차장 곳곳에 균열이 발생되자 강남구는 이곳을 ‘재난위험시설물’로 지정, 입주자퇴거 및 건물사용제한 조치를 내렸다. 지난 95년 붕괴된 삼풍백화점과 같이 대들보가 없는 ‘무량판’구조로 지어졌던 것이다. 당시 그룹은 핵심 계열사의 부도로 파국에 처해진 상태였다. 결국 백화점 건물은 99년 경매물건으로 넘겨졌다. 건물 근처에는 노점상들이 몰려 장사판을 벌이기도 했다. ●부실시공 원인 공방…부동산 사기에 휘말리기도 그뒤 입주 상인들은 건물 균열의 원인이 지하철 공사과정에 있다며 지하철 시공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소송은 고등법원에서 진행중이며 확정판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부동산개발업체가 이곳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흘린 뒤 잠적해 버리는 사기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글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盧대통령 “권력, 시장에 넘어갔다”

    “대기업 제조업만 세계 일류가 아니라 중소기업도 경쟁해서 당당히 앞서가면 좋겠고, 그래서 경제가 튼튼하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 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대기업도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강조했다. 회의에는 삼성 이건희·현대자동차 정몽구·LG 구본무·SK 최태원 회장 등 대기업에서 8명, 중소·벤처기업에선 김철현 대동중공업 회장 등 7명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이 4대 재벌 총수를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은 지난해 5월 간담회 이후 1년만이고, 재벌 총수와 중소기업인 합동 회의를 가진 것은 참여정부 들어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고,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면서 “기업간에 서로 여러가지 협력이 잘 이뤄져야 비로소 상생협력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상생 협력의 이미지가 구축되면 재벌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바뀌게 될 것이고,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면서 “사실의 전환이 먼저 나가면 인식의 전환도 빨리 따라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의는 당초 예정된 시간을 1시간 넘겨 2시간30분 동안 진행됐으며, 예정에도 없던 티타임을 갖는 등 “서로 잘해보자고 해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고 배석했던 김영주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이 전했다. 이건희 회장은 “오늘 같은 자리는 우리 경제계에서 먼저 만들어서 대통령께 보고드려야 하는데 정부가 먼저 제시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는 글로벌화의 진행정도에 따라 국가간·기업간·협력업체간 상생협력의 필요성이 아주 크다.”고 거들었다. 중소기업측에서는 원자재 값과 납품가 문제 등 현실적인 애로사항을 구체적으로 토로했다. 이날 삼성, 현대차,SK,LG 등 4대 그룹과 포스코 등은 전경련을 중심으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확대 차원에서 ‘대·중소기업 협력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박정현 장세훈기자 jhpark@seoul.co.kr
  • 경매 나온 ‘재벌회장님 집’

    경매 나온 ‘재벌회장님 집’

    ‘재벌 파산의 마침표… 주인 바뀐 회장님의 저택들’ 지난 10일 서울 서부지법에는 1970년대 국내 유통업계를 휘어잡았던 박용학 대농그룹 전 명예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이 경매에 부쳐졌다. 그룹이 부도난 지 8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전 사주가(家)의 ‘빚 잔치’가 여전히 진행형임을 확인시켜줬다. 이날 경매는 가격(감정가 29억 5518만원)이 만만치 않았던 탓인지 눈치만 살필 뿐 한 사람도 입찰에 나서지 않았다. 그룹 부도와 함께 기억 속에서 시나브로 사라진 재벌 회장들의 흔적이 ‘자택 경매’로 새삼 되살아나고 있다. 돈에 관한 한 거칠 것이 없었던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집도 절도 없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회장님의 집’ 가격은 16일 부동산 경매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고합 장치혁 전 회장의 주택이 경매를 통해 5억 8880만원에 낙찰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고합 장 전 회장의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은 고급 빌라로 대지 52평, 건물 83.7평이다. 삼미 김현철 전 회장의 서초구 방배동 주택과 반포동 빌라도 2003년 11월 11억 3350만원에 낙찰됐다. 환란 이후 쓰러진 재벌가(家) 중에서 가장 고가에 팔린 집은 동아 최원석 전 회장의 장충동 자택.2003년 11월 감정가(48억 1420만원)보다 높은 50억여원에 팔렸다.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정태수 한보 전 회장은 ‘빚 잔치’를 위한 경매 건수도 가장 많아 눈길을 끌었다. 건물과 토지 등 총 35건으로 낙찰가가 무려 1000억원에 달한다. 이밖에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경기도 안산농장과 방배동 자택, 김중원 전 한일 회장의 경기도 용인 주택, 박건배 전 해태 회장의 이태원동 자택, 안병균 전 나산 회장의 성북동 자택, 장수홍 전 청구 회장의 반포동 자택, 나승렬 전 거평 회장의 봉천동 자택 등도 경매로 나와 집주인이 바뀌었다. ●경매로 나올 ‘재벌가 부동산’ 경매 대기 중인 재벌가의 부동산은 많지 않다. 엄상호 전 건영 회장의 서초구 잠원동 상가 일부가 지난 1월 중앙2계에 접수돼 오는 9월 경매에 부쳐질 전망이다. 또 나승렬 거평 전 회장의 강남구 논현동 아파트 1개동(63채)도 지난해 11월 매물로 나와 경매가 진행 중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옛 LG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차분히 축사를 읽어가는 구본무(60) LG 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허씨와의 57년간(47년 락희화학 설립 기준)의 ‘동거’를 당대에서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사돈이자 ‘동반자’였던 GS그룹 허창수(57)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 울려퍼진 ‘사랑해요 LG’는 앞으로도 두 그룹이 여전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구 회장은 이에 앞서 3월14일 ‘당숙’인 구자홍(59) 회장·구자열(52) 부회장이 이끄는 LS그룹 출범식에도 참석, 새로운 길을 떠나는 집안 어른들을 축하했다. 연이어 열린 GS·LS그룹의 출범은 LG의 역사상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동업으로 일궈 합작으로 키웠다.’는 LG의 사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GS의 분리로 자산이 지난해 61조 6000억원에서 50조 8800억원으로 줄어든 LG는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재계순위에서 현대자동차그룹(56조 400억원)에 2위(한전 제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1974년과 1980년에는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 1위까지 올랐던 LG그룹으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조부때부터 늘 확장일로를 걷던 사업을 ‘정리’한 구 회장은 LG의 비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던 종합그룹에서 전자·화학중심의 ‘글로벌 리딩그룹’으로 재확립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올해 경영목표를 매출 94조원, 경상이익 4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5%,26%나 높게 잡은데서 ‘제3의 창업’을 향한 LG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친이 준 자금으로 사업 시작 재계3위 LG그룹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원은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시작한 ‘구인회 상점’이 출발이다. 구인회 회장은 1907년 8월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할아버지 만회 구연호 공의 외아들 춘강 재서 공과 진양 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잠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과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유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세때 서울 중앙고보 2년을 마치고 귀향, 사업에 뜻을 보였는데 엄격한 유교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부와 부친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장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24세에 이미 3남 1녀와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둔 집안의 가장이었던 구 회장은 아버지가 건네 준 2000원과 첫째 동생 철회씨의 사업자금 1800원을 더해 자본금 3800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7년 뒤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출발은 일렀지만 규모는 작았던 셈이다. 구 회장의 첫 사업은 ‘실패’였다. 사업 첫 해 무려 500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듬해 고향마을의 땅을 담보로 8000원을 빌린 구 회장은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그 해 장마로 포목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후 사업이 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1936년 대홍수로 가게가 떠내려 가고 말았다. 첫 시련은 가혹했지만 구 회장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장마가 든 해에는 풍년이 들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주변 사람에게 다시 돈을 빌려 포목사업을 벌였다. 구 회장의 예측대로 그해 풍년이 들어 결혼수요가 폭증하자 포목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고 구 회장의 사업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씨와의 인연 LG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씨-허씨 동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부터 시작됐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왔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인회 회장 역시 열네살 나던 해인 1921년 담 하나 사이 이웃인 허만식씨의 장녀 을수씨와 혼례를 올렸다. 조부 만회공의 셋째 딸이 허만식씨의 둘째아들 인구씨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후 구씨와 허씨는 무려 8건의 겹사돈으로 맺어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구씨와 허씨는 1946년 1월 구 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인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준구(당시 24세)를 데리고 당시 구회장이 살던 부산으로 찾아오면서 사돈에서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허만정씨는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고 구 회장은 동경 유학생 출신의 준구씨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구씨는 첫째 동생 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이미 남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 허준구씨는 LG건설·LG전선 회장 및 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의 역사와 함께했고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 허정수(55) GS네오텍(전 LG기공) 사장,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 등 그의 아들들도 LG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LG의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씨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준구씨의 친형인 고 허학구씨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당시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허준구씨의 동생으로 당시 ‘조선통운’에 다니던 허신구씨를 끌어들였다. 허신구씨는 락희유지 상무시절인 62년 동남아출장에서 ‘합성세제’를 처음보고 구인회 회장에게 세제 사업 진출을 건의,66년 ‘하이타이’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신구씨는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고 장남 허경수씨는 87년 코스모그룹을 창립하며 독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허만정씨는 8형제를 뒀는데 학구-준구-신구씨는 LG에 발을 담은 반면 장남 고 허정구씨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창업동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정구씨의 2남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허신구씨의 차남 허연수씨도 GS리테일(전 LG유통) 상무로 일하고 있고 허만정씨의 막내인 허승조씨는 GS리테일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들의 맹활약 LG는 그동안 숱한 계열분리를 통해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오너일가’는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상당수가 구씨, 허씨일 정도로 가족경영이 활발했다. 오너일가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LG의 창업과정에서 이들의 공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인회 회장은 첫째 동생 철회씨와 동업으로 ‘구인회상점’을 창업했다. 철회씨는 형과 함께 사업을 일구며 락희화학, 금성사 등의 사장을 맡았다. 둘째 아우 정회씨도 경성전기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정회씨는 45년 구인회 회장이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화장품 기술자 김준환씨를 영입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어 ‘럭키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도 정회씨였다. 셋째 아우 태회씨는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면서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같은 해 장조카 구자경 명예회장도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태회씨는 이후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53년 락희화학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태회씨였다. 태회씨는 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역시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넷째 아우 평회씨는 락희화학 지배인 시절인 1954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청년상공인회의(JCI)에 참석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는 공을 세웠다. 공전의 히트를 친 ‘훌라후프’도 평회씨의 제안으로 들여왔다.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때는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씨가 아버지와 형(맹희씨)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5년 연속 세계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락희화학 전무시절 “고층빌딩이 계속 늘고 있어 에어컨이 앞으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시작했다.67년 9월 미국 GE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 첫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워시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나온 구자두씨는 금성사 관리부장 시절인 62년 동남아 통상사절단을 수행하며 홍콩의 바노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주문 받아오는 등 LG의 첫 수출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럭키치약 광고판을 부산 연지동 공장에 세우는 등 본격적인 광고개념을 도입한 것도 자두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6남4녀의 ‘방대한 혼맥’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르지만 권력 핵심이나 정계쪽과는 인연이 없어 세칭 ‘정략결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LG가는 특히 아들이 많은데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에 달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장녀 양세(83)씨는 15세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의 아들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진동씨에게 출가했다. 박씨는 광복후 좌우익투쟁으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사망했다. 장남 구자경(80) 명예회장은 17세때인 42년 5월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81)씨와 혼례를 올렸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진주공립중 4학년이었고 한살 위인 신부는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구 명예회장 부부는 올해로 63년째 해로하고 있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71)씨와 선을 본 뒤 4개월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과 홍재선씨와의 우애는 유명한데 홍씨는 훗날 구 회장이 한때 자신을 ‘바람둥이’로 오해해 혼사가 어려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평소 안면이 있던 다방 마담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고지식한’ 구 회장이 오해를 한 것이다. 3남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70)씨와 57년 결혼했다. 구 회장은 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동양TV방송 이사,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쳐 본가로 돌아왔다. 4남 구자두(72)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67)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미 사돈을 맺었던 홍재선씨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씨는 64년 동양TV 사장으로 일하다 삼성과의 동업파기로 물러났고 이후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삼성과 LG는 동양TV사장에 이병철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씨와 구인회 회장의 사돈인 이흥배씨를 나란히 앉혀 ‘공동경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흥배씨의 장남인 이희종(72)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낼 정도로 LG와 인연이 깊었다. 5남 구자일(70)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김청자(66)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68)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아우인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장남에게 외식업을 해보라고 권유,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F’를 처음 들여왔다. 3녀 자영(66)씨는 제일은행장을 지낸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68)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의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4녀 순자(62)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법원장 아들이자 서울지검 검사였던 류지민씨에게 시집갔다. 이 혼례도 사돈인 이흥배씨가 주선했는데 구씨의 혼사는 이처럼 사돈이 연결해 준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무척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류씨는 43세때 요절했다. 유일하게 구 회장 타계후 결혼한 6남 자극(59)씨는 이화여대 교수인 조필대 교수의 딸 아란(54)씨와 결혼했다. ●창업주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LG가문의 혼맥이 늘 주목받는 것은 구인회 회장 형제들의 혼사가 본가 못지 않게 화려하기 때문이다.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는 부인 안남이(작고)씨와 4남 4녀를 뒀는데 딸들의 결혼이 눈에 띈다. 장녀 위숙(77)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했다.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자애(66)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1·전 현대피부과원장)씨에게 시집갔다.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에게 시집갔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원(70) 넥스원퓨처 회장은 류영희(63)씨와, 차남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갑희(62)씨 등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4남인 자준(55) LG화재 부회장의 부인인 임방인(61), 이영희(53)씨도 재계나 정·관계 집안은 아니다. 다만 구자훈 회장의 3녀 문정(31)씨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에게 시집가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정회(78년 작고)씨는 부인 김증문(작고)씨 사이에 5남 2녀를 뒀다. LG유통 사장을 지낸 장남 자윤(작고)씨는 정정자(62)씨와 결혼했다.2남 형우(62) 전 부민상호저축은행 사장은 전 대한석탄공사 전무였던 이길주씨의 딸 화숙(57)씨와 결혼했고 장녀 숙희(59)씨는 이구종 전 대한교과서 대표의 아들 규영(62)씨와,3남 자헌(작고)씨는 조종렬 한일수산 회장의 딸 금숙(55)씨와 결혼했다.LG MMA 사장을 지낸 4남 자섭(55)씨는 최근 LCD 회로부품업체인 한국SMT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부인은 심영숙(51)씨. 박정화(50)씨와 결혼한 5남 자민(50)씨는 지난해 말 LG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3개월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고 형 회사인 한국SMT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2녀 명희(52)씨의 남편은 하영준(56) 전 세원기업 사장이다. 셋째 동생으로 국회예결위원장·부의장을 지낸 태회(82)씨는 최무(83)씨와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은 지순혜(60)씨와 결혼했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에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다. 차남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김태향(55)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의 사위가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이다.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의 부인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딸 미연(53)씨다.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는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결혼이 예정돼 있다. 구씨가문으로서는 두산가로 출가한 자혜씨에 이은 두번째 두산과의 혼사다.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넷째 평회(79)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씨의 딸 현주(48)씨와 결혼했다. 차남인 구자용(50) E1사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 현주(46)씨와 결혼했다.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독고진(46)씨와, 막내 혜원(46)씨는 주진규(49)씨와 결혼했다. 막내동생 두회(77)씨는 유한선(72)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 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택수씨는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점점 ‘소박’해지는 혼맥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회장 못지않은 4남 2녀를 낳아 ‘다산’의 전통을 이었다. 장남인 구본무(60)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 유학을 마친 72년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충북 괴산의 ‘수재’로 불린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 장녀 연경(27)씨는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막내 연수(9)양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지난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27)씨를 양자로 영입해 ‘대’를 잇고 있다. 장녀 훤미(58)씨는 구 회장 작고 직후인 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4남 화중(작고)씨와 결혼했다. 훤미씨의 딸인 김선혜(34)씨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전무와 결혼해 대림가와 대를 이은 혼인관계를 이어갔다. 김용관씨는 경방 회장과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의 동생이다. 화중씨는 “딸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사돈이나 사위는 아들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는 LG의 ‘가풍’대로 계열사였던 희성금속 사장을 지냈다. 95년 일찌감치 독립한 2남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은 차경숙씨와 결혼했다.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인 은미(48)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2녀 미정(50)씨는 대한펄프 창업주인 고 최화식 회장의 아들인 최병민(53)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4남 구본식(47) 희성전자 사장은 조경아(45)씨와 결혼,1남 2녀를 뒀다. ●LG를 떠나는 滋자 돌림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자승(작고)씨는 홍승해씨와 3남 1녀를 뒀다. 장남 본걸(48)씨는 LG상사 대주주이자 부사장을 맡고 있고 본순(46), 본진(41)씨도 LG상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LG상사는 LG의 다른 자회사와 달리 ㈜LG가 대주주가 아니어서 자승씨 집안 몫으로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한 둘째 동생 자학씨는 이숙희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남 본성(48)씨는 심재석 전 장은할부 부회장의 딸 윤보(44)씨와 결혼했다. 본성씨는 처가인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 삼성캐피탈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까지 지냈다. 장녀 미현(45)씨는 고 이문호 서울대의대 교수의 아들인 이영렬(50) 한양대의대 교수와 결혼했다.2녀 명진(41)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 동생 자두씨 역시 2000년 LG벤처투자를 갖고 분리했다. 이의숙씨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는데 장녀 혜란(45)씨는 심창유 청주사대 학장의 아들 현주(50)씨와,2녀 혜선(43)씨는 장홍식 전 극동정유 사장의 아들 원우(44)씨와 결혼했다.LG벤처투자 사장인 장남 본천(41)씨와 차남 본완(39)씨는 각각 2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넷째 동생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처음부터 LG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했다. 본길(39), 은미(38)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차녀 구자혜씨는 이재연 전 LG카드 부회장과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명망가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아시안스타 사장인 장남 선용(44)씨는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의 딸 은주(40)씨와 결혼했다. 차남 지용(42)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38)씨와 결혼했다. 막내 구자극(59)씨는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을 그만두고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코일, 변성기 등을 생산하는 이림테크를 인수(현 엑사이엔씨)한 뒤 스피커 전문업체인 모토조이, 성주음향의 중국 톈진공장 등을 인수하며 종합부품그룹을 키우고 있다. 엑사이엔씨 사장인 장남 본현(37)씨와 차남 본우(26)씨는 엑사이엔씨 지분 24%,4%를 각각 보유중이다. ukelvin@seoul.co.kr ■ 그룹 분가-지분율 따라 재산분배… ‘잡음’ 없어 LG는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LG벤처투자, 아워홈,LS,GS그룹 등을 차례로 분리했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예사이지만 유독 LG만은 큰 잡음없이 대규모 분가를 마무리지었다. 이는 LG가 엄격한 유교집안으로 집안 어른이 정한 기준을 자손들이 철저히 지키는데다 수십년간 그룹에서 친족들의 지분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분가에 앞서 일부 친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지분율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LG화재는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분리됐다. 한때 대한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어 손해보험-생명보험을 영위하려했던 LG는 생명보험사업이 좌절되면서 LG화재를 독립시키려 했고 집안회의에서 고 구철회씨 가족들이 화재를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LG벤처투자를 갖고 떠난 구자두씨 가족은 얼핏 ‘재산’이 너무 적어 보이지만 윗대인 구철회씨 가족에 비해 가족수가 적기 때문에 지분도 그만큼 적었다. 아워홈의 구자학씨는 한때 삼성에서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배가 이뤄졌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구태회·평회·두회씨가 LG의 창업공신인데다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게다가 LS전선은 허씨 가문의 고 허준구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허씨들이 경영을 맡아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태평두씨’ 가족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주면서 마무리됐다. LG그룹의 가장 큰 지각변동은 허씨들이 갖고 간 GS그룹의 분리다.GS칼텍스,GS건설,GS홈쇼핑,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18조 7200억원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형제들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에 비해 허씨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관계자는 “고 허만정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에도 허씨들은 계속 자금을 출자했고 그 비율은 일찌감치 65대 35로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지분비율은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업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은 전선사업에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진 금융관련 계열사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씨측의 어른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측의 대표인 고 허준구 회장이 이미 수년전에 정해 놓은 ‘분리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허 회장이 타계했지만 두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의 ‘약속’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ukelvin@seoul.co.kr ■ 필립스 “具·許씨 동업에 감명 LCD합작” 1999년 9월 LG전자에 1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전 회장은 합작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구본무 회장의 화답도 이에 못지않았다.“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잃지 않아야 한다.” LG의 58년 역사에는 숱한 합작사가 등장한다. 합작사만 한때 20개에 달할 정도였다.60년대에 이미 66년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고,68년에는 미국 콘티넨털카본사와 합작으로 한국콘티넨탈카본을 세웠다.70년에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으로 금성알프스전자를,71년에는 일본 포스타전기와 합작으로 금성포스타를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일본 후지전기와 3사 합작으로 금성통신을 설립했고 74년에는 일본 NEC와 손잡고 금성전기를 세웠다. 80년대 들어서도 합작은 계속됐는데 84년 다우코닝과 공동출자로 럭키DC실리콘을 설립했고 84년에는 제어시스템 메이커인 미국 하니웰과 공동으로 금성하니웰을 만들었다. 이후 동업관계가 끝났지만 87년 미국 EDS와 합작으로 만든 STM(현 LG CNS),96년 IBM과 맞잡은 LGIBM도 합작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LG계열사 가운데도 합작사가 적지 않다. 히타치LG는 히타치와, LG MMA는 일본 스미토모상사와 합작한 회사다.LG텔레콤은 영국의 BT가 합작투자했고 필립스와는 LG필립스LCD에 이어 LG필립스디스플레이를 합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키사와 함께 루셈을 만들었고 올 상반기중으로 LG전자와 캐나다 노텔사의 합작사인 ‘LG-노텔’이 출범할 예정이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사설] 강금원씨 사면복권 설득력 있나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창신섬유 전 대표 강금원씨가 석가탄신일 특별사면·복권 대상자로 선정됐다. 불법대선자금 사건 관련 경제인 12명에 포함돼서다. 정부는 경제인들의 국가발전 기여도와 국가적 당면과제인 경제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1명의 경제인과 강씨는 경우가 다르다. 대통령 측근을 봐주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기’를 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강씨는 배임과 조세포탈,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지만 정치자금법 부분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강씨는 불법정치자금 사범이 아니라 개인기업 비리사범일 뿐이다. 법무부는 큰 틀에서 보면 대선자금 수사를 받다 처벌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정치자금법위반자 사면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재판을 받을 땐 무죄로 빠져나가고, 사면이 있을 땐 무죄가 된 혐의를 이유로 사면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이땅에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특별사면권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긴 하다. 그러나 역대정권을 통해 비리 정치인과 공직자, 재벌기업인 구제에 남용돼 정략적 이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렇게 남발된 사면권도 측근이나 친인척에게는 최소한 범위로 자제를 해 오던 게 또한 역대 정권의 관례다. 투명사회협약까지 맺으며 부패일소를 다짐해 온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측근 비리 경제인의 ‘끼워넣기’식 사면은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사면권 남용을 규제하는 법제정이 시급하다.
  • ‘사랑찬가’ MBC드라마 맛 살릴까

    ‘사랑찬가’ MBC드라마 맛 살릴까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력하는 신데렐라’의 발랄, 경쾌한 성공 스토리가 MBC 드라마 부활을 이끈다. MBC가 14일부터 옴니버스 주말극 ‘떨리는 가슴’의 후속으로 새 주말연속극 ‘사랑찬가’를 선보이는 것. 그동안 MBC는 ‘대장금’의 대성공 이후 드라마 경쟁에서 KBS 등에 밀려왔던 것이 사실. 때문에 이번 ‘사랑찬가’에 거는 안팎의 기대가 크다. 대장금의 기획을 맡았던 조중현 프로듀서가 연출하고, 최윤정 작가가 스토리를 요리한다. 제목에서 ‘찬’은 음식을 뜻하는 ‘찬(饌)’이다. 무대는 ‘순수하고 진실된 사람’ 오순진이 일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그는 식당 매니저로 출발해 외식업계의 일인자로 성공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픈 가족사를 지닌 재벌 3세 강새한과의 사랑도 엮어나가게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 캔디형 주인공이 등장했던 종래의 다른 드라마와 어떻게 차별화할지가 성공의 관건이 될 듯. 제작진은 요리를 소재로 했으나,‘대장금’의 현대판 리메이크로 여겨지는 것은 꺼리는 눈치다. 조 프로듀서는 “요리는 드라마의 한 소재이자 양념일 뿐,‘대장금’처럼 중심 스토리가 아니다.”라면서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 사업과 사랑에 동시에 성공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밝고 건전한 드라마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진 역은 장서희가 맡아 ‘회전목마’ 이후 1년4개월여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다. 상대역 강새한은 전광렬이 연기한다. 지난달 25일부터 촬영이 시작된 이 드라마를 위해 장서희는 서빙매너 교육을 받는 등 많은 준비를 했다. 장서희는 “지금껏 강하지만, 어두운 역할이 많았는데 모처럼 밝은 이미지여서 기대된다.”면서 “행운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드라마가 됐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현채선생 10주기… 다시 짚어보는 ‘민족경제론’

    박현채선생 10주기… 다시 짚어보는 ‘민족경제론’

    세계화 시대라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이 최근에 들어서는 ‘민족경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고 할 만큼 민족개념을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로 치부하던데 비하면 놀라운 변신이다. 계기는 바로 ‘소버린 사태’로 대표되는, 외국 자본에 의한 M&A 위협이 현실화되면서부터다. 이들은 이제 민족경제의 핵심으로 재벌의 경영권 방어를 내세우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한국 좌파가 남긴 유산인 민족경제 개념을 우파적 맥락에서 아무렇게나 인용해 쓰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좌파는 비뚤어진 재벌중심 성장체제에 가장 비판적이었고, 그 비판의 논거로 민족경제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마침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고 박현채 선생 타계 10주기(오는 8월)를 맞아 그 발자취를 정리하려는 후학들의 작업이 한창이다. 한신대 경제학과 박영호 교수와 상지대 경제학과 조석곤 교수에게 민족경제론이 남긴 의미에 대해 들었다. ●박영호-21세기 민주주의의 문제 “민족경제나 민족자본이란 말만 꺼내면 ‘빨갱이’ 취급하던 사람들이 외국 자본의 실체를 보니까 아차 싶었겠지요.” 박 교수는 최근 재벌 경영권 방어론에 ‘민족경제’라는 단어가 붙는 상황을 못마땅해했다. 대신 새로운 세기,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고 강조했다.“박현채 선생 논리의 출발점은 양적인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성장이 삶의 질을 향상시켰느냐고 묻는데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사회적 연대성, 조금 더 나아가면 21세기 한국의 민주주의 문제와 직결됩니다.”‘2만 달러 시대 달성’ 그 자체보다 2만 달러를 손에 들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세계 일류 기업이 10개가 된다 한들 비정규직만 넘쳐나는 한국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조석곤-동아시아로 시야 넓혀야 조 교수는 지금 박현채식 민족경제론의 호소력은 상당히 줄었다고 봤다. 아무래도 60∼70년대의 한국 현실을 반영한 이론이기 때문이다.“당시에야 남한의 자립경제 달성이 관건이었지만 지금은 어쨌든 세계화가 대세입니다. 소위 ‘국민경제’라는 단위가 남한 내에서 완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중소기업 육성과 농·어업 보호 등에 초점이 맞춰진 박현채 선생 주장의 적합성도 지금 상황에 꼭 들어맞는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시야를 동아시아로 넓히자고 제안했다.“북한 체제에 대한 연구,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경제 강대국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등을 합쳐서 남한 생존의 조건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민족경제론을 계승하는 후학들의 연구도 아마 이 방향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조 교수는 “박현채의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자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세와 접근법 등은 이 시대에도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현채 추모 전집·문집 발간 11월쯤 심포지엄과 함께 박현채 전집·문집이 처음 발간된다. 원래 10주기가 되는 8월에 발간 날짜를 맞추려 했으나 작업이 늦어져 생일이 있는 11월로 늦췄다. 박현채 선생이 남긴 저작물은 단행본 12권을 비롯해 모두 400권에 이를 만큼 분량이 방대하다. 그가 워낙 저술에 열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껍게 10권으로 할지, 일반 책 두께로 20권으로 정리할지 논의 중이다. 출간 비용이 만만치 않아 후원금 등 모금도 하고 있다. 박현채 추모 전집·문집 발간준비위원회 (02)362-527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⑨-KCC 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⑨-KCC 그룹

    KCC 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페인트 ‘숲으로’ 하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금강고려화학의 영문 첫글자를 아예 사명으로 정한 KCC는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과 매우 밀접한 기업이다.KCC 제품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리, 창호재, 바닥재 등 웬만한 건축자재는 거의 다 만든다.“없는 것은 시멘트와 철골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1958년 8월, 스물두살의 대학생이 “장형의 유학 제의를 뿌리친 채” 직원 일곱명을 데리고 서울 영등포에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세운 게 KCC그룹의 출발이다. 땀에 흥건히 젖어 ‘슬레이트’를 직접 찍어내던 대학생 사장이 바로 오늘날의 정상영(69) 명예회장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왕 회장)의 막내동생이기도 하다. “왕 회장의 형제나 자식들은 대부분 크든 작든 기업체를 떼어 받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오롯이 혼자 힘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공장의 벽돌 한 장, 물빠지는 배수로 위치, 못 하나까지 직접 얹고 정하고 박았다.” 정 명예회장과 3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온 한 임원의 얘기다.KCC가 짧은 시간 안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현대’라는 확실한 납품처 덕도 있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창업주의 저력을 빼놓을 수 없다. KCC그룹은 지난해 1조 9000억원의 매출과 130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KCC건설(옛 금강종합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자동차유리 생산업체), 고려시리카(유리원료 제조사), 금강레저(골프장 운영업체) 등 7개 계열사 모두가 흑자를 내고 있는 재계 서열 29위(공기업 제외)의 알짜그룹이다. 특히 건축·산업자재 부문에서는 2위와의 격차를 갈수록 넓히며 독주하고 있다. 자산규모는 4월1일 현재 3조 5300억여원으로 현대백화점그룹(3조 7800억원)과 비슷하다. ●왕회장도 꺾지 못한 막내의 고집 그 자신 “공부가 싫어 소학교 졸업장이 전부가 된 것이 아니었기에, 아우들은 유학 아니라 그 이상도 해주고 싶었던”(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가운데) 왕 회장은 동국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막내동생 상영(SY)도 유학보내려 했다. 그러나 SY는 “나도 내 사업을 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왕 회장의 한마디가 곧 법이었던 현대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대가 사람들은 “막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학자금을 불모지나 다름없던 건자재 사업밑천으로 털어넣은 SY는 “통금시간(밤 12시)에 맞춰 퇴근하고 해제 사이렌(새벽 4시)에 맞춰 출근”했다. 운도 따라주었다. 때마침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초가 지붕이 속속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금강스레트는 찍어내기가 바쁘게 팔려 나갔다. 제법 돈이 모이자 젊은 상영은 슬몃 욕심이 생겼다. 당시 인기있었던 초콜릿시장 쪽을 기웃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장형의 호된 꾸지람이 돌아왔다.“초콜릿은 네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다. 이왕 사업을 할거면 국가경제에 도움되는 것을 하라.” 정신이 번쩍 든 SY는 이때부터 건축·산업자재 국산화에 매달리며 한 우물만 팠다. 변변한 기술 하나 없이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던 도료(74년), 유리(87년), 실리콘(2003년) 사업에 차례로 진출했다. 다들 “무모하다.”며 말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13년이나 걸려 완공한 전주의 실리콘공장은 SY의 뚝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진(45) 회장은 언젠가 사석에서 “전후복구사업과 수입대체 사업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아버지의 자부심은 큰아버지(왕회장)에 못지 않다.”고 말했다. 불같은 성정도 비슷하다. 왕 회장에게 혼쭐나 넋이 나간 현대건설 임원이 출입문 대신에 캐비닛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듯,KCC에는 한 임원이 정 명예회장에게 야단맞던 도중에 기절한 실화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아들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부러 13층 회장실에는 출근하지 않는 정 명예회장은 대신 지방공장 순시로 ‘취미’를 바꿨다. 전국 13개 시·도에 모두 공장이 한 곳씩 있어 발길 닿는 대로 불쑥 들러 젊은 날 자신이 직접 들여놓은 설비들을 살펴보곤 한다. ●5개국어 능통한 정몽진 회장 SY는 아들만 셋을 두었다. 지난 2000년 그룹 경영을 장남인 몽진씨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앉았다. 이 해는 그룹의 양축인 ‘금강’(슬레이트 등 무기화학 전문)과 ‘고려화학’(페인트 등 유기화학 전문)이 합병돼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장남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귀국후 1991년 고려화학 이사로 경영에 합류했다. 예나 지금이나 비즈니스 영어는 그룹 안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러시아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 중국 곤산의 페인트공장 준공식 때는 유창한 중국어로 식사를 해 현지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실리콘 기술 개발을 위해 해외 과학자들과 담판을 벌일 때도 통역 없이 직접 설득에 나섰다. 이런 그를 보고 정 명예회장은 임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저렇게 잘 하는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왕 회장을 닮아 칭찬에 인색한 정 명예회장은 아들 앞에서는 일절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이 그룹의 기반을 닦았다면 정 회장은 ‘3대 키워드’로 제2 도약을 노리고 있다. 첫번째 키워드는 해외다.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재 3곳(중국 2, 싱가포르 1)인 해외 생산공장을 앞으로 3년 안에 5개를 더 지어 8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환경 파괴를 대체할 차세대 성장산업인 실리콘과 건자재 유통도 핵심 키워드다.“유통을 빼앗기면 이름없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는 것이 정 회장의 지론이다. 한 임원의 얘기다.“명예회장님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다소 보수적이다. 반면 회장님은 해외유학파답게 세계시장의 변화와 큰 흐름을 빨리 읽어낸다.” 장남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세 아들 가운데 가장 털털해 친화력이 좋다. 한때 고려대 ‘막걸리 시범조교’로 활약했던 술 실력을 바탕으로 해마다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서 임직원들과 삼겹살 소주 파티를 벌이곤 한다. 요즘에는 위장이 나빠져 와인으로 주종을 바꿨다. ●SY의 또다른 자부심 둘째 아들 몽익 둘째 아들 몽익(43)씨는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MIS)을 전공했다. 이어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국제재정학 석사학위를 땄다. 그는 이 전과정을 4년만에 끝마쳤다. 금강과 고려화학 합병 직후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도록 경영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주역이 바로 그다. 최근에는 사무실 기기를 최신 오피스용 가구로 교체하고 소프트웨어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룹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강화시켜온 덕분에 올 2월 KCC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물론 직급은 총괄 부사장으로 같은 대표이사인 형보다 아래다. 입사(89년 금강)는 형보다 2년 빠르다. 적절한 긴장관계를 통해 건전한 경쟁을 이끌어내려는 정 명예회장의 의도가 엿보인다.KCC 지분을 몽진(17.7%)-몽익(8.82%)-몽열(5.29%) 세 아들에게 모두 나눠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 부사장은 형보다 더 꼼꼼한 편이다. 과묵해서 임원들이 말붙이기를 다소 어려워한다. 의외로 운동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잘한다. 고등학교 때는 전국체전에서 승마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농구·스키·수영 실력도 프로급이다. 골프는 싱글(핸디 10)에 가깝고 엄청난 장타다. 반면 정 회장은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클래식이나 재즈 등 집에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정 회장이 동생 얘기가 나오면 사석에서 곧잘 하는 얘기가 있다.“딜(deal)은 아무래도 내가 좀 더 강하다. 그러나 디테일은 동생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내가 협상을 통해 골격을 세우면 그 골격에 맞게 디테일을 짜는 것은 몽익이다.” 유난히 용산고 출신이 많은 것도 KCC가의 특징이다. 막내 몽열씨를 빼고는 3부자(父子)가 모두 용산고를 나왔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용산고 출신이다. 모교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애정은 유명하다. 장남 몽진씨가 이른바 ‘뺑뺑이’로 용산고에 배정됐는데도, 발표난 그 길로 친구들에게 한 턱 냈을 정도다. 용산고에 승마반도 만들어줬는가 하면 농구 코트까지 지어줘가며 허재 등을 영입, 오늘날의 ‘농구 명문’으로 키워냈다. 몽진씨와 몽익씨는 고등학교-대학교(고려대)-대학원(조지 워싱턴) 동문이기도 하다. ●‘스위첸’ 성공시킨 ‘리틀 정상영’ 셋째 아들 몽열 89년 미국 FDU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물여섯살의 나이에 고려화학에 입사한 셋째 아들 몽열(41)씨는 97년 금강종합건설 상무가 되면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건설 체질’이다. 공사판에서 소주잔 기울이기를 좋아하고, 낭만도 아는 기분파다. 그러나 한번 화가 나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그룹 임직원들이 정 명예회장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존재다. 정 회장도 “우리 형제 가운데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 막내”라며 “몽열이가 화나면 나도 무섭다.”고 농반진반 얘기할 정도다. 작고 단단한 체구나 사업 수완도 아버지를 빼닮았다. 2003년 사장으로 승진한 몽열씨는 주택사업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만에 ‘스위첸’(아파트)과 ‘웰츠타워’(주상복합)를 유명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여기에는 정 사장의 정보기술(IT) 지식도 한몫 했다. 컴퓨터학을 전공한 그는 일상생활은 물론 기업 경영에도 IT를 일찌감치 접목시켰다. 선진국형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공사를 맡은 주택의 소프트웨어에도 “유별날” 만큼 공을 들였다. 덕분에 KCC건설은 도급순위 32위, 신용도 9위의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창업동지’ 조은주 여사 현대가의 가풍이 그렇듯 정 명예회장은 연애결혼을 했다.“큰형님 회사(현대건설)를 드나들면서 경리팀의 동갑내기 아가씨에게 반해” ‘작업’을 건 것이 결혼까지 이어졌다. 조은주(69) 여사다. 서울 진명여고를 나온 조 여사는 당시 이화여대에 합격해 놓고도 등록금이 없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독립군이었던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된 아버지가 6·25전쟁 때 전사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조씨는 ‘대학생 사장’을 남편으로 둔 덕분에 물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슬레이트공장 인부들의 밥이며 새참은 으레 그의 몫이었다. 직원들 식사를 지어 나르는 일은 그후로도 20년 넘게 이어졌다. 지금도 서울 서초동의 구사옥에서 근무하는 고참 직원들 가운데는 사원식당에서 밥을 짓는 조 여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큰며느리는 음대… 셋째며느리는 미대 자유연애로 결혼한 정 명예회장은 아들들의 ‘사랑’에도 너그러웠다. 몽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홍은진(41)씨와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했다. 홍씨는 한때 아이스크림 ‘퍼모스트’로 유명했던 옛 퍼모스트유업 사장의 딸이다. 전자부품회사인 ‘퍼시픽 컨트롤스’ 홍준 사장이 처남이다. 그렇다면 소개팅 주선자는 누구일까. 다름아닌 사촌형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촌동생에게 친구의 처제인 음악도를 엮어준 것. 정 의장과 죽이 맞아 처제를 소개팅 장소로 내몬 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치과 주치의이자 성균관대 교수인 임순호 박사다. “연애할 때 플루트를 불어주던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는 정 회장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며 “결혼후에는 한번도 플루트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투덜대곤 한다.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과의 혼사는 몽익씨에 이르러 이뤄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 최은정(42)씨가 부인이다. 가톨릭 계통인 일본 성심대학 교육심리학과를 나왔다. 최씨의 언니 은영씨는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과 결혼했다. 조 회장이 몽익씨의 손위동서인 셈이다. 막내 몽열씨는 큰형수의 영향을 받았는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이수잔(35)씨와 결혼했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한자이름이다.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장인이 ‘쌓을 잔( )’자를 썼다고 한다. 여자들의 사회활동을 싫어하는 가풍 탓에, 큰동서와 마찬가지로 결혼과 동시에 그림을 접었다. 막내 며느리답게 활달한 편이다. ●‘숙부의 난’ 할 말 많지만… 정 명예회장은 조카 며느리인 현대그룹 현정은(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었다. 현대가 사정에 밝고 당시 분쟁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한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한 명예회장님의 생각은 분명하다. 현 회장의 외가를 포함해 정씨 집안 사람이 아닌 제3자가 큰형님이 평생을 바쳐 일군 현대를 넘보려 한다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대상선 등 관련 지분을 팔지 않고 계속 갖고 있는 것은 이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라고 설명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정몽헌 회장에게 200억원을 조건없이 내준 것이 ‘의리’가 아니라 ‘경영권을 염두에 둔 계산된 행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 “지나간 상처를 다시 헤집고 싶지는 않다. 명예회장님도 더이상 언급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리셨다. 다만 이 말만은 하고 싶다. 명예회장님은 장조카인 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이 아버지(왕 회장)와의 갈등으로 방황할 때 형님 눈치 보지 않고 우리 회사 부사장 자리를 선뜻 내줬다. 또다른 조카가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릴 때 70억원을 조건없이 빌려준 분도, 몽헌 회장이 군 복무를 6년이나 할 때 뒤를 봐준 분도, 명예회장님이었다.” ●“숫자는 기본” 전문 경영인들 건장한 체격의 김춘기(59) KCC 대표이사 사장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정몽진 회장이 “(그룹에)꼭 필요한 분”이라고 언급한 이다.75년 고려화학으로 입사해 꼬박 30년을 KCC와 함께했다. 특히 영업쪽에서 잔뼈가 굵었다. 마당발 인맥과 철저한 고객관리로 KCC의 영업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말단사원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이력도 흔하지는 않지만 ‘국가대표 스키선수’라는 경력이 더욱 눈길을 끈다.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때 우연히 본 스키영화 ‘백령의 왕자’에 푹 빠져 스키선수가 됐다. 대학생(경희대)때는 동계 유니버시아드와 올림픽 대회에도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그러나 취직과 동시에 “스키는 깨끗이 잊었다.”고 김 사장은 털어놓았다. 꼼꼼함은 모든 임원들의 공통점이지만 김 사장은 유난히 치밀하고 숫자에 밝다.“노력은 능력을 앞선다.”는 게 30년 직장생활의 신조다. 김 사장의 좌우 양쪽으로는 정몽진 회장에 버금가는 영어 실력으로 수출을 책임지고 있는 김영호(55·부사장) 해외본부장과 전문 무기화학 지식으로 제품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정복동(58·부사장) 생산기술본부장이 포진하고 있다. 금강레저 박연구(51) 대표와 고려시리카 이성수(53) 대표는 대학 졸업장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전문인력들이다.“학교 공부는 다소 게을리했을지 몰라도 추진력과 친화력은 (전교 1등보다)훨씬 낫다.”는 KCC의 독특한 사풍이 반영된 결과다. 코리아오토글라스 주원식(62) 사장과 금강화공의 한상기(57) 중국 곤산·신세균(55) 베이징 법인장,KCC 박성완(47) 싱가포르 법인장 등은 전문 기술인맥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일본 아사히글라스 출신의 시마나가 모토야스(61) 부사장 등도 KCC를 떠받치는 핵심 인력들이다. hyun@seoul.co.kr ■ 정상영 일가 ‘밥상머리 교육’ 정상영 명예회장의 세 아들 부부는 한주 걸러 일요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이태원 본가를 찾는다.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서다.“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며 자식들과 아침식사-사실상 새벽밥-를 함께 했던 왕 회장에 비하면 며느리들의 부담이 한결 덜하다. 음식도 각자 집에서 ‘주특기’ 한가지씩을 싸들고 와 끓이기만 하면 된다. 며느리들의 음식솜씨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정 명예회장은 며느리를 들이면 반드시 반년씩 데리고 살았다. 그래야 가풍도 익히고 속정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학 내내 플루트만 불다온 큰며느리가 음식을 잘 할 리 만무했다. 둘째며느리에게 기대를 걸었다. 요리학원을 다녔다는 재벌가의 둘째며느리는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내놓았다. 견디다 못한 정 명예회장은 급기야 “이러다가 굶어죽겠다.”며 하소연했다고. 그 며느리들이 ‘사원식당 주방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시어머니의 특별지도 아래 지금은 ‘선수’가 됐음은 물론이다. 정 명예회장은 자식들에게 매우 엄격하다. 그 영향을 받아 정몽진 회장도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아들 명선(11)군을 굳이 외국인 학교나 사립학교가 아닌 집 부근의 일반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다. 학교도 자가용을 태우지 않고 걸려서 보낸다.“어렸을 때부터 보통사람, 못사는 사람의 삶도 느껴봐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다만 큰딸 재림(15)양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귀국해 “성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외국인 학교에 보냈다. hyun@seoul.co.kr ■ 정 명예회장 ‘씨름꾼 경영론’ 왕 회장이 ‘빈대의 철학’으로 유명하다면 정상영 명예회장은 90년대 중반 ‘씨름꾼 경영론’으로 회자됐다.“씨름은 씨름꾼에게 맡겨야 한다.”는 단순 명쾌한 논리였다. 정 명예회장은 “씨름꾼이 아닌 사람이 씨름판에서 승리하기 어렵듯 기업간의 경쟁은 기업가에게 맡겨야 한다.”며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강조했다.KCC그룹의 사시인 ‘맡은 자리의 주인이 되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왕 회장의 지론이기도 하다. 지역 거상들이 장악하고 있던 총판(판매실적에 관계없이 물건값 선지급) 체제에 맞서 팔린 만큼만 대금을 지급하는 코카콜라식의 ‘루트 세일’을 도입해 유통 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당시로서는 ‘생뚱맞기’ 그지없는 슬레이트 홍보영화를 만들어 275개 시·군에 배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큰형에게 영향받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렇듯 정 명예회장에게 있어 왕 회장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형이라기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차이만 스물 한살이었다. 조카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는 두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젊었을 때 잠깐 초콜릿사업에 눈돌린 것 외에는 한번도 한 눈을 팔아본 적이 없는 그가 1970년 8월 현대차 부사장으로 홀연히 옮겨간 것도 “와서 미수금 70억원을 해결하라.”는 장형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자까지 회수해주고 다시 KCC로 돌아왔을 때는 1년 반이 흘러 있었다. 훗날 정 명예회장은 “중요한 시기에 내 사업에 공백을 가져 아쉬워한 적은 있었어도 불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여기에는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왕 회장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막내동생을 가까이 대했던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KCC측은 펄쩍 뛴다. 한 임원의 얘기다. “92년 대선 패배 이후 두문불출하던 왕 회장이 다시 산업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95년 KCC의 여주 유리공장 3호기 점화식에서였다. 또 거동이 심하게 불편해지기 전까지 왕 회장이 거의 매일같이 들러 골프를 친 곳이 금강CC였다. 라운딩 멤버는 언제나 정상영 회장이었다.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왕 회장 성격에 이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정 명예회장도 세상 사람들의 짐작 이상으로 장형에게 극진했지만, 왕 회장 역시 막내동생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데스크시각] 80점짜리 기업도시?/박건승 산업부 차장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은 지난해 10월 초 기업도시법 제정을 위한 국회 정책포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정부의 기업도시법 내용은 70점은 되는 것 같다. 전경련이 100점짜리 법안을 만들자고 요구하면 국회 통과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80∼85점짜리 법안을 만든 뒤 차츰 정비하는 것이 좋겠다.” 포럼의 좌장 자격으로 한 말이다. 법안에 담길 노동·환경·세제 부문의 규제완화 수위를 놓고 정부, 재계, 시민단체간에 목소리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자는 주문이었다.‘꾀돌이’로 불리는 강 의원다운 재치가 돋보이는 타협안이었다. 기업도시법은 이렇게 서로 속셈이 다른 주체들간에 타협의 산물로 그해 12월 빛을 보게 된다. 당초 재계가 구상했던 기업도시의 취지와 정신은 법안에서 상당히 빛을 바랜 채로, 그렇다고 시민단체의 요구가 대폭 받아들여진 것도 아닌 어정쩡한 채로 말이다. 아무튼 법안 제정 이후 외견상 기업도시 건설작업은 급물살을 타는 양상이다. 지난 4월15일 8개 지역 컨소시엄이 시범사업 신청서를 낸 데 이어 5월1일에는 기업도시법이 발효됐다. 다음달엔 4곳 정도를 시범사업자로 선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혹시나가 역시나’가 돼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업도시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일부 기업들의 면면이 미덥지가 못한 탓이다. 어떤 컨소시엄은 신청 마감일에 맞춰 급조된 흔적이 역력하고, 다른 컨소시엄은 정부의 토지용도변경 허가 의지를 떠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심지어 어떤 컨소시엄은 상당수 기업이 실체없는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라는 소리가 나오더니 급기야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500만평짜리 기업도시를 개발하려면 3년간 18조원이 투입되고 배후시설 건설에 10조원이 들어가는 등 최소한 28조원이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셈법이다. 이처럼 막대한 돈이 들고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 그만그만한 기업들이 제아무리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어느 정도의 투자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범사업 컨소시엄 명단을 아무리 훑어도 국내 재계의 대표주자인 삼성·LG·SK·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수조원씩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빅4’는 ‘재벌 특구’라는 기업도시를 왜 외면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부가 낙후지역을 시범사업 우선 선정 대상으로 고집함으로써 대기업의 참여의지를 꺾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경쟁력 확보가 전제되지 않으면 투자에 나서지 않는 법이다. 전경련은 2년전 기업도시 구상을 정부에 제안할 때 투자활성화, 일자리 창출,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환란 이후 기업의 설비투자율이 0.3%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기업도시란 무기를 꺼내든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를 도외시한 채 지리적 여건이나 인력, 인프라가 뒤진 지역을 우선 선정대상으로 삼겠다고 하니 선뜻 투자에 나설 기업이 얼마나 있겠는가. 애초부터 재계와 정부는 ‘같은 잠자리에서 다른 꿈을 꾼’ 셈이었다. 정부는 기업도시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다음달로 예정된 시범도시 선정때 낙후지역 개발과 균형발전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기업도시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엄정한 잣대로 참여 컨소시엄의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과거 산업공단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정부의 특정 지자체 밀어주기 의혹이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욱이 차기 대선과 총선을 염두에 두고 기업도시 문제를 정치논리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시범지역은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격에 못미치는 곳은 과감히 탈락시켜야 한다. 시범지역은 한두 곳이면 충분하다. 지역안배 차원이 아닌, 시범사업의 취지에 걸맞게 본보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로서는 지역별로 고루 기업도시를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겠지만, 시범사업을 방만하게 펼칠 경우 시행착오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시범사업이란 말 그대로 모범을 보이는 사업이 아닌가. 기업도시가 80점짜리가 될지, 아니면 60점짜리가 될지, 그 운명은 이제 한달여 뒤의 정부 결정에 달려 있다. 박건승 산업부 차장 ksp@seoul.co.kr
  • [열린세상] 경제·사회 부문도 ‘균형자론’ 필요하다/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에너지대안센터 대표

    이번 재보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했다. 결과에 대해 열린우리당에서는 겸허히 수용한다거나 통절히 반성한다는 표현을 쓰며 스스로 뭔가 크게 잘못한 것이 있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는 곧 드러나겠지만, 그들이 반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자료가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경북대 강연내용과 서울시의 몇가지 변화가 그것이다. 강연에서 이명박 시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는 일하고 싶은 사람, 잠잘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자리와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인데,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 와 투쟁경험만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일자리와 잠자리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투쟁경험과 투옥경험을 가진 민주화운동 세력이 중심을 이루는 집권당을 겨냥한 꽤나 통렬한 비판이다. 이명박 시장은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의 개발독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가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것이 건설업에서 자신이 이룩한 성공신화다. 여기에 민주화 이후 10여년간의 정치경험에서 배운 것을 덧붙여 서울시정을 이전의 민선시장들보다 더 잘 꾸려가는 것 같다. 그의 정책에는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화 이후 시대에 그가 쌓은 경험이 섞여 있다. 은평 뉴타운건설 같은 것은 개발독재를 연상시키는 정책이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이나, 광화문과 시청에 횡단보도를 놓은 일은 민주주의 시대에 꽤 부합하는 업적이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보아넘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청 앞과 광화문 횡단보도가 이 시장의 주요 업적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울을 상징하는 두 장소에서사람들이 마음놓고 걸어다니도록 횡단보도를 그려달라는 요구는 10여년전부터 계속된 것이다. 이것은 민주화 이후 서울시민들이 내놓은 몇 안 되는 건전한 요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민주화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조순 시장이나 고건 시장은 이 작은 일도 해내지 못했다. 물론 시도는 했다. 그러나 경찰이 차량 흐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반대하자 쉽게 물러서고 말았다.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이 시장이 의미하는 일자리와 잠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을 개발독재 수행자들보다 더 잘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횡단보도 설치 같은 생활세계의 민주화에서도 권위주의 체제의 추종자들보다 못하다면 그들이 설 자리는 어디겠는가? 나는 이번 보선 결과를 이러한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퇴장을 권고하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독재 방식의 개발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이제 물러나라는 메시지로. 이명박 시장은 강연에서 부안과 청계천을 비교하면서 다시 집권세력을 ‘조롱’했다. 투쟁경험 세력은 이해당사자가 2만명도 안 되는 부안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해서 일을 그르쳤지만,22만명이나 되는 상인들은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해 아무런 반발도 없지 않으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열린우리당과 그 주변 투쟁경험 세력에게 희망은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통절히 반성해서 반성의 방향을 제대로 찾는다면 지금도 희망을 가질 수는 있다. 민주화운동 세력의 가장 큰 잘못은 개발독재 시대의 개발 패러다임을 신주 모시듯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경제성장은 최고의 가치이고,‘올인’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 별로 없는데 개발독재 시절에 성장한 재벌이나 관료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 부안사태나 반쪽짜리 수도이전은 ‘나도 잘할 수 있다.’고 과시하려는 가운데 나온 무리수다. 경제성장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이러한 무리수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럴수록 박정희 향수는 더 강해지고, 개발독재 추종자들은 세력을 얻고, 집권세력은 점점 더 강한 퇴장 권고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성의 방향은 낡은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균형자론은 동북아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비슷한 균형자론이 국내의 경제·사회를 대상으로 나올 수는 없는 걸까?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에너지대안센터 대표
  • [혁신 공기업 탐방] ⑥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터뷰

    [혁신 공기업 탐방] ⑥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터뷰

    한국전력공사(KEPCO)는 종종 ‘공룡’에 비교된다. 직원 수 및 자산 규모 등 외형적인 크기가 재벌기업 못지않게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룡은 제때 변화하지 못해 멸종됐다. 한준호 사장도 이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장은 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직내 벽을 없애지 않으면 변화에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 패거리 문화의 상징이었던 직군을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공기업 최초로 ‘부조리 신고 포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윤리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범주다. 한전이 공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데는 이같은 이유가 있었다. 한 사장과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다.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혁신의 방향부터 설명해 달라. -어느 조직이나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으면 강제적인 개편이 뒤따를 수 있다. 지난 2002년 4월 전력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한전 조직이었던 발전부문이 6개 자회사로 떨어져 나갔다.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대한 한전 조직을 유연한 조직으로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잭 웰치가 GE를 이끌면서 벽없는 조직을 만든 것처럼 한전 조직내 그래도 남아 있는 벽을 깨는 데 노력하고 있다. 한전은 내부에 파벌과 패거리 문화가 있다고 들었다. -경영의 핵심은 올바른 인사에 있다. 인사제도의 혁신은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그래서 보직인사 때 직군을 없앴다. 조직간 벽을 허물어 화합을 유도하려는 차원이다. 실제로 1직급 보직인사 때 사무·배전·송변전 등 직군에 관계없이 인사를 단행했다. 또 국제무대에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할 글로벌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2015년까지 세계 최고의 글로벌 종합에너지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사업영역별·지역별·직무별 전문가집단을 양성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를 총 인력의 10% 수준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우리의 시야를 국제무대로 넓히고 각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자연스럽게 벽은 허물어지고 조직활력이 높아질 것이다. 공기업 이전 문제가 큰 이슈다. 모두들 한전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인데 복안이 있나. -한전이 먼저 어느 곳으로 이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정부 방침에 충실히 따르겠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복안을 짜고 있다. 공기업 최초로 ‘부조리신고 포상제도’를 만들었다. 이같은 윤리경영으로 부방위 청렴도 조사에서 최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 같다. 앞으로의 방향은 어떤가. -윤리경영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요체다. 취임 이후 무엇보다도 윤리경영을 최우선과제로 추진했다. 그 결과 부방위 청렴도 평가에서 15개 공직 유관단체 중 4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3년까지 2년 연속 최하위에서 상위권으로 크게 도약한 것이다. 향상도면에서는 전체 조사대상 기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부조리신고 포상제도를 신설했고, 전자공개 입찰제도를 확대했다. 청렴계약제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변화와 혁신은 전직원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전은 규모가 커 직원들의 의식변화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작은 물은 쉽게 물길이 바뀌나 지속성이 없다. 반면 큰물은 그 물길이 더디게 바뀌나 한 번 방향을 잡으면 파급력이 대단하다. 규모가 큰 것이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다. 취임 후 가장 큰 성과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직원들의 의식변화라고 할 수 있다.21세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 우리 회사가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고, 그러한 변화는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주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종전 계약관계에선 한전이 갑이었고, 하청업체가 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갑이 아닌 을의 자세에서 한전의 모든 제도와 절차를 개선하고 있다. 고객의 불편을 사전에 예방하고 민원사항을 적극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다. 공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는데 비결은. -고객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1984년부터 최근까지 소비자물가는 153% 상승했지만 전기요금은 4.7% 인상하는 데 그쳤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저렴하다. 한국이 당 74.58원인 데 반해 일본 201원, 미국 79.02원, 영국 106.28원 등이다. 고급화·다양화하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서비스도 혁신했다. 이사하는 고객의 전기요금 계산을 24시간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세금계산서·전기요금 납부증명서도 인터넷으로 발급하고 있다. 해외사업의 추진현황과 향후 계획을 설명해 달라. -국가간 장벽이 없어지고 있다. 전력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한전이 갖고 있는 역량을 결집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중국의 전력 성장률은 연 10%에 달할 정도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은 이같은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매년 3000만 이상의 발전설비의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허난성에 10만 규모의 순환유동층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한준호 사장은 한준호 사장은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섭섭한 에너지정책 전문가다. 동력자원부 자원개발·석유가스국장, 통상산업부 자원정책심의관·실장을 지낸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공직생활 30여년 동안 에너지 분야에서만 20여년을 근무했다. 지난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중소기업청장과 한국생산성본부회장, 대통령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하며 중소기업 분야에서도 업무수완을 발휘했다. 한 사장은 등산 경영론자다. 국내 대부분의 산을 가봤을 정도로 산을 좋아한다. 특히 직원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끈끈한 정을 나눈다. 지난 2월에는 임원들과 한라산을 등반하며 ‘산상 경영전략회의’를 가졌다. 그는 “산을 오를 때는 왼발과 오른발이 같이 움직여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거나 “나무와 바위, 계곡, 풀 등이 제자리에 있어야 산이 산답다.”고 강조한다. 모든 직원이 제 위치에서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조직의 승패가 갈라진다는 얘기다. 2000년에는 경희대 대학원에서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활성화 요인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늦깎이’이기도 하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출입기자 등 동력자원부에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막동회’ 회원들과 가끔 어울린다. ▲경북(60) ▲경북고·서울대 법학 ▲행시10회 ▲동자부 공보관 ▲산자부 기획관리실장 ▲중소기업청장 ▲중기특위 위원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사업장별 267개 소규모 봉사회 구성 한국전력공사의 사회봉사활동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업무의 특성상 산골오지에 사는 어려운 주민까지 대하다 보니 봉사활동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한준호 사장의 취임과 함께 사회봉사활동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사업장별로 이뤄지던 봉사활동을 조직적으로 이뤄지게 한 것이다. 한전은 지난해 5월 전국의 사업장에 있던 소규모 봉사회를 267개 봉사단으로 구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켰다. 출범 당시의 봉사단원만 4033명에 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봉사활동을 위한 성금도 자발적으로 거뒀다. 전체 직원 2만명 가운데 89%인 1만 7400명이 성금을 내 모두 8억 6000만원을 마련했다. 사측도 봉사단 활동에 적극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직원들이 거둔 성금에 해당하는 8억여원을 지원, 지난해에만 16억 6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봉사활동은 한전의 특성을 살렸다. 우선 저소득층에게 효율이 높은 조명기기를 무상으로 달아주는 사업을 했다. 지난해에만 5000가구에 고효율기기를 지원했다. 올해는 5만가구로 확대할 예정이다. 혹한기나 혹서기 동안 전기요금이 체납된 고객에 대해서는 단전을 유보하는 한편 저소득 가정에 대해서는 전기요금을 대신 내줬다.2437호 가정에 1억 2000여만원을 지원했다. 저소득 가정에 대한 전기요금은 봉사기금과 별도로 캠페인을 통해 마련했다. 지난해 9월부터 2개월 동안 한전 직원들이 ‘빛 한줄기 나눔 캠페인’을 통해 1억 5000여만원을 추가로 조성했다. 지난 1월에는 간부급도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부장급 이상으로 승진한 222명 전원이 일산홀트복지타운과 가평꽃동네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한전은 2일부터 시작되는 어린이주간에는 미아예방을 위해 전국 놀이동산 등에서 어린이들에게 ‘이름표 달아주기’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달 강원도에 큰 산불이 났을 때는 송전선로 보호를 위해 직원들이 산불진화에 나섰다.”면서 “앞으로도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한전의 특성을 살려 사회공헌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푸틴, 중동평화 전도사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 중동지역 순방에 나서 평화 구축을 위한 전도사 이미지 심기에 열중하고 있다. 첫 방문지인 이집트에서의 일정을 마친 푸틴 대통령은 27일 오후(현지시간) 텔아비브공항에 도착, 곧바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등 2박3일의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29일에는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를 방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회담을 가질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을 복원하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는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희석하는 동시에 세계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세워보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첫 방문지인 이집트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이스라엘과는 적지 않은 파열음이 예상된다. 러시아가 이스라엘이 중지해줄 것을 요청한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판매를 계속하겠다고 버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제 미사일이 시리아를 거쳐 이라크와 이란, 레바논 등의 테러단체들에게 유입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란의 핵개발에 러시아가 도움을 주고 있으며 러시아에서의 반유대주의 점증 문제, 유대인인 석유재벌 유코스 전 사장 재판 등을 이스라엘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옛 소련과 러시아를 통틀어 크렘린 지도자로서 40년만에 이집트를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 등 중동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술레이만 아와드 대통령 대변인은 두 정상이 중동평화 구상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정부 잇단 언론공세 의도 있나

    청와대와 정부의 잇따른 언론 공격과 통제 기도가 심상치 않다. 검찰과 경찰은 입이라도 맞춘 듯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언론의 범죄수사과정 취재를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최근의 유전개발 의혹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정략적 외눈뜨기’로 몰아붙였고,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 언론, 법조계가 부패근원지”라며 언론계를 매도했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터진 것이 단순한 우연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사태의 진원지가 청와대와 차기 대권주자 등 권력 깊숙한 곳이다. 언론에 대한 또 다른 의도나 기획이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는 출범초부터 언론개혁 기치를 높이 들고 브리핑제 도입 등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취재시스템의 선진화 등 성과도 있었지만 언론과의 갈등 유발로 국정혼란이 격화되는 등 부작용도 컸다. 우리는 최근 정부가 국정홍보시스템을 개편하고 언론비판 수용체제를 재정비한 것을 이런 평가를 인식한 결과로 봤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만이 아니고 건강한 협력관계를 맺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한 단계 성숙된 언론관의 표현이길 바랐다. 그러나 아직도 여권은 언론을 ‘엉뚱한 의혹을 사실인 양 단정짓고 부풀리기’나 하는 뒤틀린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근거 없는 부패혐의로 언론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여기에 검찰은 “수사관련 오보를 하는 언론은 출입을 제한하겠다.”고까지 하고 나섰다.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은 물론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알 권리를 권력이 임의로 제한할 수 있다는 오만한 통제 발상과 다름없다. 더구나 이 발표가 청와대의 지시로 나왔다니 더욱 한심하다. 청와대는 언론에 대한 피해강박에서 벗어나 언론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정책 홍보가 정부 일이듯, 사회적 의제 설정은 언론이 맡아야 할 기본 역할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방기했다면 청와대도 인정한 비서실내 유전의혹 정보공유 문제점이 드러났겠는가. 언론을 따돌리고 밀실수사를 용인한다면 권력층이나 재벌 비리 수사과정을 누가 감시하겠는가.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을 중지하고 언론에 대한 이유 없는 음해도 거둬들여야 한다.
  • 삼성전자 ‘축구마케팅’으로 유럽시장 잡는다

    삼성전자 ‘축구마케팅’으로 유럽시장 잡는다

    ‘올림픽 파트너’로 브랜드 위상을 크게 높인 삼성이 이번에는 축구에 명운을 걸고 있다. 올림픽 후원이 전 세계에 삼성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축구 마케팅은 유럽시장 공략 및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26일 영국의 명문 프로축구단 첼시(Chelsea FC)의 홈구장인 런던 스탬퍼드브리지에서 구주총괄 김인수 부사장과 첼시의 피터 캐년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클럽 후원계약(Official Club Partner)’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오는 6월부터 2010년 6월까지 5년이다. 이번 계약을 통해 삼성전자는 첼시 선수단 유니폼에 ‘삼성 모바일(SAMSUNG mobile)’ 이라는 브랜드 광고를 할 수 있고 경기장 광고와 클럽 선수단 이미지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공식적인 후원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언론들은 5000만 파운드(약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했다. 수원삼성 블루윙스의 연간 운영비가 100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지만 삼성측은 전혀 아깝지 않다는 계산이다. 연간 평균 60게임(우승시 최대 70게임)을 통해 전세계 161개국 2억 5000만명이 첼시의 경기를 시청하는데 연간 AEV(미디어 노출 광고 환산지수)만 6200만달러(약 620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런던의 대표적인 부촌인 풀햄을 연고로 하는 첼시구단이 갖고 있는 ‘프리미엄&쿨’이미지와 삼성 제품을 연결시켜 고급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김 부사장은 “이번 후원 계약을 통해 유럽 내에서 삼성 휴대전화 등 모든 제품의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창단 100주년을 맞은 첼시는 러시아 석유재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소유로 현재 영국 프리미어리그 1위 및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라있다. 구단 가치는 4억 4900만달러(포브스 선정)로 세계 8위다. 때문에 아랍에미리트항공과의 스폰서 계약이 끝나는 첼시를 잡기 위해 삼성전자, 노키아,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각축을 벌였다. 한때 노키아로 기우는 듯했지만 삼성전자의 글로벌 마케팅 능력과 브랜드 파워가 전세를 역전시켰다. 캐년 사장은 “단순한 스폰서가 아니라 동반자인 삼성전자와 함께 전세계에 첼시 팬들이 넘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후원에 이어 올 들어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 후원사로 지정되는 등 축구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샬케04’의 홈구장 명칭권을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LG전자도 독일 축구 대표팀 후원에 이어 최근 영국 리버풀의 휴대전화 스폰서로 참여하는 등 국내업체들의 축구를 활용한 유럽 공략이 붐을 이루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강남구 청담동

    [우리동네 이야기] 강남구 청담동

    강남구 청담동(淸潭洞)은 압구정동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富村)으로 꼽힌다. 외국 명품매장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음식점,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았다. 청담동의 면적은 2.33㎢.2001년 현재 3만 4200여명이 살고 있다. 행정동은 청담 1·2동으로 나뉜다. 북동쪽으로는 영동대교 남단, 서쪽으로는 압구정동과 논현동, 남쪽으로는 삼성동과 접해 있다. 지금의 105번지 일대에 맑은 못이 있었으며,134번지 일대 한강변의 물이 맑아 청숫골이라고 부른 데서 동 이름이 유래됐다. 조선 말기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청담동이라 불렸고,1914년에 청담리가 됐다.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할로 있다가 1973년 영동출장소 관할이 됐다. 그리고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청담동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았다. 청담동은 1973년 영동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강촌(江村)마을이었다. 농업을 주업으로 하던 이곳 주민들은 한강에 조각배를 띄워 게나 쏘가리, 붕어 등을 잡아 강북지역에 내다 팔았다. 과실로는 앵두가 유명했다. 이 지역은 1970년대 후반 건축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경기고가 이전해 오고 영동고가 신설되는 등 교육환경이 좋아지자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서울의 ‘1번지’로 부상했다. 청담동은 로데오거리를 사이로 이웃하고 있는 압구정동과 ‘이란성 쌍둥이’다. 부자동네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부의 개념이 약간 다르다.‘현대아파트’로 대표되던 압구정동에는 재벌 기업 임원과 ‘벼락 부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반면 고급빌라나 주택이 많았던 청담동에는 옛 강북의 부유층들이 주로 모여들었다. 주민들의 차이는 문화적인 차이를 낳았다.90년 전후 ‘욕망의 해방구’ 압구정동에 풍미했던 ‘오렌지족’을 옆동네인 청담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도 압구정동이 번잡하고 화려한 분위기라면 청담동은 상대적으로 북적대지 않으면서도 절제미를 간직하고 있다. 청담동 ‘카페촌’은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청담사거리에 이르는 길의 남쪽에 주로 있다. 구치·페라가모·루이뷔통 같은 명품 매장의 뒷골목으로 이국적인 카페와 바, 퓨전 레스토랑이 촘촘히 박혀 있다. 이곳에 고급 카페문화의 씨앗을 뿌린 ‘하루에’, 커피와 차, 와인 등을 파는 ‘카페 드 플로라’ 등뿐 아니라 일식집 ‘청산’, 샤부샤부집 ‘진상’, 퓨전중식당 ‘온더락’ 등 다양한 국적의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또 재즈계의 대모 박성연씨가 운영하는 정통 재즈바 ‘야누스’도 있다. 청담동에는 연예인도 많이 살고 있다. 청담중학교 뒤와 영동대교 남단 쪽 빌라촌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청담동 거리에서 연예인들을 마주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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