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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와 쇼핑하면 특별해진다”

    세계 명사들의 패션을 책임지고 있는 한인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가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고급 백화점 ‘니먼 마커스’에서 15년째 명사들의 쇼핑을 책임지고 있는 보보 최(한국명 최보희)가 주인공. 퍼스널 쇼퍼는 고객의 취향을 파악,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패션을 책임진다. 또 해외 유명 디자이너 제품을 구매하는 역할도 한다. 최씨는 ‘니먼 마커스’에서 개인 사무실을 주는 2명의 퍼스널 쇼퍼 중 한명. 그녀가 직접 관리하는 유명 인사들만 100명이며 이들 대부분이 세계적인 명사이다. 한국내 몇몇 재벌가들도 고객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최씨의 매출 커미션 수입은 연간 25만∼40만달러에 달한다.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뉴욕의 한 출판사가 자서전을 제안, 현재 ‘보보는 가장 뛰어난 것(Best)을 안다’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연합뉴스
  •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재벌 위상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따라야”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재벌 위상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따라야”

    서울신문이 지난해 1월10일부터 매주 월요일에 연재한 연중기획 시리즈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가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가(家)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서울신문은 지난 4일 이병남 ㈜LG 인사팀장(부사장)과 김선웅(변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유태현(재벌의 경영지배구조와 인맥혼맥의 공동 집필자) 서울시립대 지방세연구소 박사, 본지 산업부 박건승 부장과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재계의 혼맥 변천사,2세들의 경영권 승계, 기업지배구조,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 등을 놓고 결산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사회 재계 혼맥의 흐름이 과거에는 정·관계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재계내에서 인연을 맺는 경우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병남 부사장 재계 2,3세의 혼인은 과거보다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권력층에 치우쳤던 혼맥이 점점 줄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지요. ●김선웅 소장 재계 혼맥은 정치·사회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 주도세력으로 경제인들이 부상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인맥과 혼맥을 되짚어 볼 필요성은 충분합니다. 서민들도 자기 수준과 비슷한 상대를 배우자로 꼽는데 재벌가(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이들은 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자리를 이미 굳혔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것에도 대단한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세력을 두텁게 하는 파트너로 같은 재벌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태현 박사 재벌의 혼인방식은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초기에는 정·관계 사이의 혼인사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급속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신 재벌간의 혼인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재계가 정·관·법조계 등 자신들과는 다른 영역에서 상층부를 형성한 계층과의 혼인을 줄이고, 동질감이 높은 다른 재벌과의 혼인을 늘리는 까닭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선 과거 한국의 재벌은 정·관계의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제는 그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위치를 지켜갈 만한 역량을 확보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로는 90년대 들어 투명사회를 지향하면서 정·관계가 각종 비리에 연루돼 곤혹을 치르는 상황이 자주 나오면서 재벌 입장에선 더 이상 이들이 매력적인 혼인 상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세번째로는 재벌의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재벌 이외의 계층도 재벌과의 혼인을 부담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지요. 네번째로 재벌 2∼3세의 잦은 교류가 이들의 혼인 사례를 늘게 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업을 하다 보면 관계가 돈독해지고, 자연스럽게 교류가 잦아집니다. 더구나 재벌 2, 3세들은 서로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이 유학을 하는 과정에서 친밀감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혼인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가 재벌의 혼인 방식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회 재계는 ‘부(富)의 세습’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며,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 않습니까.2세들의 경영권 승계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김 소장 2세가 경영권을 승계하든, 전문경영인이 승계하든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2세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곧잘 불법과 편법을 동원한다는 점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세상사 인지상정’이며, 국민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지원에 힘입어 세워진 재벌이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관행에 따라 부의 세습을 이룬다면 이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지요. 또 능력 검증이 안된 2세들에게 그룹의 흥망을 맡기는 것은 심각히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2세들이 물론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으며,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자질을 갖춰나가고 있지만 계열사의 부당 내부거래나 계열사의 지원 등을 통해 능력이 부풀려지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이런 토양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로부터 승계의 정당성을 받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사장 오너 CEO냐, 그렇지 않으냐가 좋은기업지배구조로 평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불법·편법 재산 상속이 문제이며, 보유한 주식 이상으로 과도한 지배권을 행사하려 할 때 문제가 됩니다. 또 정당한 절차를 거쳐 2세 경영인에게 승계됐다면 이는 시장에서 판단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투명해지고, 시민단체가 수시로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편법·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는 앞으로 어려워질 것입니다. 혈연이라고 해서 승계를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법률속에서 정당하게 이뤄지느냐로 파악해야 합니다. 기업과 오너와의 관계도 구분해서 볼 시점입니다. 예컨대 ‘X파일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할 때 삼성전자의 주가 변동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시장은 기업과 오너의 이슈를 분리해서 보고 있다는 것이죠. ●사회 좋은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지배구조가 그 사회가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지요. 결국은 효용성과 도덕성의 문제로 귀결되는데요. ●김 소장 척박한 국내 경영 환경에서 가족경영은 기업 성장에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경영이 우수하냐, 전문경영이 우수하냐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경영성과를 비교할 만한 실증적인 사례가 국내에 많은 것도 아닙니다. 전문경영이 대세인 미국에서도 포드 가문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포드가(家)는 한때 가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더니 임금만 계속 올려 기업 경쟁력이 약해졌지요. 결국 대주주인 포드가문이 개입해 경쟁력을 회복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양측의 성과 비교는 어려운 문제라고 봅니다. ●이 부사장 오너들은 아무래도 경영을 길게 봅니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오너 경영일지라도 이사회 중심의 경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접근하는 전문 경영과 오너 경영의 문제는 너무 형식 논리로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가 정신이 더 중요하며, 우리 사회가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주는 방향으로 경영환경을 개선해줘야 합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면에서 이를 뒷받침해야겠죠. ●유 박사 재벌의 혼맥은 엄밀히 보면 개인사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를 비난하거나 지나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재벌이 혼맥관계를 통해 비정상적인 급성장의 방편으로 사용하고, 그것이 결국 사회적 위화감 조장으로 이어지고 건전한 시장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재벌의 성장은 근본적으로 이 사회와 국민의 도움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이 지위와 위상에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줘야 합니다. 정리 류길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결산 좌담회 (참석자) ●이병남 LG그룹 인사팀장(부사장)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硏 소장 ●유태현 서울시립대 박사 ●사회 : 박건승 산업부장 ■ 취재 뒷이야기 서울신문의‘재계 인맥·혼맥 대탐구’가 지난 3월27일자 풍림산업편을 끝으로 1년 2개월여에 걸친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이미 단행본(‘ 재벌 家脈 ´ 상편)으로 출판된 4대 그룹편이 23회 원고지 1200장 분량이었고, 나머지 그룹도 34회 1700장이 넘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그간 산업부 기자들의 취재 소감과 애환을 들어 봤습니다. -오너 일가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중견 그룹도 4대 그룹 못지 않았습니다.T그룹은 처음부터 “회장님 면담 불가, 가족도 노출 불가”라며 완강히 버텼습니다.“어차피 나갈 기사니 줄 것은 주자.”는 참모의 진언에 “턱도 없는 소리”라는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딱딱하던 총수도 막상 기사가 나오자 서울신문 가판을 여러부 들고 퇴근했다고 합니다. -취재 초기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던 모 그룹도 막판에는 회장 동생이 기자를 직접 찾아와 집안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히 털어놨습니다. -‘크렘린’ 같기로는 식음료회사인 N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창업주 일가 기사를 취재한다는 보고를 했다가 홍보담당 임원이 회장에게 엄청난 질책을 당했다고 합니다. 겨우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는 막내 사위와 연결이 돼 가계도 ‘얼개’를 그리고, 수차례 ‘단골식당’을 찾은 끝에 막내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계도 완성에만 3개월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끝내 오너일가의 반대로 가족사진은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57회 연재하는 동안 가족사진 없이 나간 경우는 처음입니다. 식음료회사는 소비자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오너가 좀더 세상에 떳떳이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삼부토건의 경우 오너의 아들인 조시연 이사와 개인적으로 술자리도 몇번 같이 하는 등 친분이 있어 ‘땅짚고 헤엄치기’식 취재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시작할 때 최대한 협조해주겠다고 약속한 그가 약속을 뒤집었습니다. 조 이사의 형이 과거에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집안 얘기가 공개되면 장자의 사망 내용도 다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너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다는 것이었죠. -한 집 걸러 이혼 부부가 속출하는 세태는 재벌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집안마다 한두 쌍의 이혼은 기본이었고 A그룹은 2남2녀 중 두 딸이 모두 이혼했는데 그중 한 명은 두 차례나 내로라하는 집안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혼 부부가 자녀를 뒀는데 그들의 혼기가 찼을 경우에는 혼사 문제를 고려해 이혼은 했지만 여전히 부부로 이름을 올려달라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반면 이혼은 했지만 자녀가 어리거나 없다면 아예 혼인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 B그룹 회장의 경우 일찌감치 이혼했지만 새로 만난 부인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인지 현 부인 사진에 대해 까다롭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다보니 형제가 분란을 겪은 그룹도 적지 않았습니다. A그룹 총수는 분쟁 이후 사과를 받았냐는 질문에 “우리 형님이 그렇게 말할 분이 아닙니다.”고 반박했고, B그룹 총수는 ‘여전히 내가 적통인데 형님이 내 자리를 차지했다.’는 뉘앙스가 짙었습니다. 형제간 계열분리된 C그룹은 서로 왕래가 없을 뿐 아니라 소식도 모르고 지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형제간 불화설이 나돌던 D그룹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6개월만에 불화설이 사실로 확인돼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산업부 ukelvin@seoul.co.kr
  • K2TV ‘굿바이 솔로’ 노희경 작가… 주연 7명 파격 캐스팅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세상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섣부르게 나쁘다고 할 수 없어요. 저는 이 작품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인간이구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세말한 캐릭터 묘사로 ‘거짓말’,‘바보 같은 사랑’ 등을 통해 마니아들을 거느린 노희경 작가가 철학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새달 1일부터 시작하는 KBS2TV 수·목드라마 ‘굿바이, 솔로’(연출 기민수·황인혁)를 통해서다. 독특한 것은 메시지만이 아니다. 그동안 실험적인 요소를 조금씩 도입하며 드라마 경계를 넓혀왔던 그는 이번에는 형식에 있어서도 파격을 선언했다. 천정명, 윤소이, 이재룡, 김민희, 이한, 나문희, 배종옥 등 주인공만 무려 7명이나 된다. 아픔과 미스터리를 간직한 이들이 각자 과거와 현재 심리, 그리고 내면에 가지고 있는 환상을 플래시백 형식으로 풀어나가게 된다. 김민호(천정명)는 재벌가 출신이지만 사생아라는 출생 문제 등으로 가족을 등졌다. 정수희(윤소이)는 재혼을 반복하는 어머니 때문에 고통받고, 남자친구 유지안(이한)의 친구인 민호를 사랑하게 된다. 호기 있는 건달 강호철(이재룡)은 속으로는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강호철을 사랑하는 최미리(김민희)는 거칠 것 없는 날라리이지만, 자신에 대한 의구심 등으로 세상 고민에 빠져있다. 스스로 ‘미친년’이라고 하는 오영숙(배종옥)은 거짓말로 자신을 위장한다. 스쳐지나가듯 이들을 연결시키는 구심점이 바로 말을 못하는 동네 밥집 할머니인 미영이 할머니(나문희)다. 노 작가는 “한 명이라도 빠지면 이야기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라면서 “7명이 함께 가는 이야기는 저도 쓰면서 낯설 정도”라고 했다. 이어 “대본 작업을 시작한지 벌써 8개월째인데 이전에 비해 2∼3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네요.”라고 혀를 내둘렀다. 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보다는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내면 묘사에 집착하며 비밀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택한 것은 건달이나 재벌2세 등에 대해 사람들이 품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어떤 캐릭터라도 애정을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노 작가는 “인간의 이해부족과 세상의 무지가 편견과 고정관념을 심화시켜요.”라면서 “이를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 작가는 “혼자는 외롭지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 바람처럼 시청자들이 ‘굿바이, 솔로’를 통해 세상에 대한 온기를 느낄지 기대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재벌 2세들 ‘방송사업 러브콜’

    재벌가(家) 2세들의 ‘방송 구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송사업을 그룹의 차세대 성장 축으로 삼고 최근 대규모 종자돈을 쏟아붓고 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르면 이달 말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드림씨티방송’을 3000억원 이상선에서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현대백화점의 방송사업 확대에는 정몽근 회장의 두 아들 정지선 부회장과 정교선 상무의 입김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경영수업을 받을 때부터 방송사업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상무도 최근 그룹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지주회사인 관악유선방송 지분 5.95%를 확보하면서 애정을 표시했다. 특히 정 부회장은 기존 유통사업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방송사업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지난해부터 ‘방송 러브콜’을 본격화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3월 관악유선을 시작으로 9월 충북 CCS와 충북방송,11월엔 대구중앙케이블TV 등 4개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연이어 인수했다. 이번에 드림씨티방송을 인수하게 되면 케이블TV 가입 가구수가 150만가구로 확대된다.T브로드(옛 태광M&O)와 C&M에 이어 업계 3위 수준이다. 유진기업이 최대주주(지분 53.9%)인 드림씨티방송은 서울 은평과 경기 부천ㆍ김포를 방송권역으로 케이블TV 가입자가 39만 5000가구,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2만 9000가구, 디지털 케이블TV 가입자 1만 1000가구를 갖고 있다.2004년 매출이 553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191억원을 기록한 알짜기업이다. 유진그룹은 드림씨티방송 매각으로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실탄’을 확보하게 됐다. 유진은 대우건설 매각 예비 입찰에서 3조원 이상을 써내며 입찰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 최고가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2세 가운데 방송 사랑의 ‘원조’로는 태광산업의 이호진 회장과 오리온그룹의 이화경 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장은 태광산업 계열사인 T브로드를 통해 전국 119개 케이블TV 방송국(SO) 가운데 20개사를 보유,25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엔 우리홈쇼핑 지분 19%를 매입해 1대 주주인 경방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오리온 이 사장은 온미디어와 계열 SO 5개사를 책임지고 있다. 온미디어는 영화채널 OCN과 캐치온, 투니버스, 바둑TV, 온게임넷,MTV 등 총 10개 채널을 운영하는 다채널프로그램공급자(MPP)다. 온미디어의 10개 채널은 현재 국내 케이블TV 시청점유율에서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재현 CJ 회장도 방송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방송계열사인 CJ케이블넷은 지난달 충남방송 등 2개의 SO를 매입했다.이로써 CJ케이블넷은 계열 SO 수를 8개에서 10개로 늘렸으며, 전체 가입자 수도 150만명가량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서는 젊은 총수들이 화려한 겉모습에 취하지 말고 철저히 수익성을 따져 방송사업에 진출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태광그룹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 재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 교사(校舍)를 30년여년 동안 그룹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타 재벌과 달리 초고층 호화 사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재계 서열 30위권이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나 강남에 번듯한 빌딩을 사옥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6층짜리 학교 건물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말한다.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의 사풍이 여실히 읽혀진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는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 때부터 관통하는 ‘내실경영’이 면면히 이어진 결과다. ●대쪽 같은 선대 회장의 결혼과 창업, 그리고 성장 창업주인 고 이 회장은 지난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이었던 부친 이우식씨와 모친 정막랑씨 사이의 3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簡井)실업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등으로 일본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듬 해인 42년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부친의 권유로 당시 22세 청년이던 그는 동네에 사는 이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신부 이씨는 이 창업주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동네 유지인 이송산씨의 맏딸이다.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씨와 ‘창업 동지’ 이기화(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냄)씨는 이씨의 남동생이다. 이기화씨는 부산고·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이 창업주와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궜다. 이 창업주는 야당 거물이던 이기택씨와 처남매부지간이란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여러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남이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게 이 창업주에게는 결코 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 된다.”며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찍히면 죽던 서슬퍼런 군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경 분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세무조사 요원들을 투입, 몇 날 며칠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이씨와 중매 결혼한 이 창업주는 공직(면사무소) 생활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1951년 공직을 접은 이 창업주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에 모직 공장을 차리고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태광그룹의 모체다. 이후 1961년 전 삼호그룹 조봉구 회장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창업주는 조 회장과 결별한 뒤 부산 가야동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며 태광산업사를 주식회사로 출범시킨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씨가 함께 일궈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선애씨가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이 창업주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태광은 섬유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과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은 눈부신 호황을 누렸다. 당시 아크릴은 양모 대체품으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가 적어 태광의 고속 질주를 견인했다. 이 창업주는 스판덱스·나일론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섬유 호황기인 1970년대까지 내놓은 제품마다 시장의 돌풍을 일으켜 국내 최대의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태광은 이 시기에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석유화학에 금융이 붙으면서 태광은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휴일에도 은행 이자는 큰다 태광그룹은 은행돈을 거의 안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계한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이 창업주가 살던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부인 이선애(78)씨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30∼40년 된 옛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이 창업주를 회고한다. 그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출장길에는 새로 지은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년 동안 단골로 다닌 낡은 호텔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설렁탕 한 그릇으로 후다닥 끝낼 정도로 무척 소탈했다.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토·일요일 등 은행이 쉬는 동안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했다.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도 않았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매출 규모 1조 3000억원인 모기업 태광산업의 부채 비율이 거의 제로인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절약 경영과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수익만큼 투자하는 실속경영은 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창업주는 또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공채 출신을 키워 경영진으로 기용했다.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의 처남 이기화씨는 이 창업주의 사후 태광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또 공채 출신인 류석기·강석명·최운형씨 등이 중용됐다. 그의 이런 원칙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은 자녀들의 혼사로도 이어진다. ●화려한 혼맥…‘연애결혼은 없다´ 이 창업주는 생전에 모두 6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연애결혼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그는 평소 사대부가의 유교적인 면을 강조해와 전통 관습을 무척 중시했다. 재벌가의 혼사가 연애결혼보다 중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남3녀를 하나같이 중매결혼시켰다는 것은 가풍을 짐작케 한다. 이 창업주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이 지체 있는 가문의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혼사를 치러왔다. 이처럼 중매 일변도로 자녀 혼사를 치른 것은 중매야말로 좋은 가문의 좋은 배우자를 폭넓게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태광그룹 2세들의 혼맥은 서민의 가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이 높고 화려하다. 태광의 사돈가가 사람들은 당시에 내로라 하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자녀들 혼사로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되었지만 이들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결코 없었다. 지금도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사장은 태광 신입사원 출신인 이화동(62)씨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씨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4) 3형제와 경훈(52)·재훈(50)·봉훈(48) 세 자매를 뒀다. 이 창업주의 개혼(開婚)인 식진씨의 혼사는 비교적 평범한 집안과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두 유력 인사와 사돈을 맺는다. 이 창업주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장남 식진씨를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54)씨와 결혼시켰다. 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식진씨의 장인 진씨는 면방업체인 경방에서 일하다 독립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공대 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식진씨 부부는 정아·성아·원준 등 1남2녀를 뒀다. 장녀 정아(31)씨는 결혼했다. 연세대 상대를 나온 차남 영진씨는 어머니 이선애씨 친구의 중매로 장상준(전 동국제강 회장)가의 4남2녀 중 막내딸인 옥빈(54)씨와 1976년 결혼했다. 태광산업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중역으로 활동했다. 이들 사이에는 성준·성은 남매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호진씨의 부인 신유나(42)씨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71·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씨의 맏딸이다. 호진씨는 대원고·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가 있다. 이 창업주의 세 딸은 모두 재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세자매 모두 이화여대 선후배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창업주의 독특한 자녀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태광의 혼맥은 이대 출신의 세 딸을 출가시키면서 보다 화려하게 뻗어 나간다. 장녀 경훈씨는 진주의 대지주이자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가의 막내 며느리가 됐다. 경훈씨의 남편은 유통전문기업 GS리테일 대표인 허승조(56)씨다. 이들의 결혼은 경훈씨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임용가에서 허만정가로 이어가면 조홍제-송인상-신덕균가와 만난다. 이연두-박치현-김준성-김우중가와도 연결된다. 경훈씨는 남편 허승조씨와의 사이에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차녀 재훈씨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56)씨와 결혼시켰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로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를 양택식가로 출가시키면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가를 통해 홍진기-노신영-정주영가로 연이 닿는다. 김한수-김복동가로도 이어진다. 특히 이 창업주는 이 결혼을 통해 업계의 라이벌인 한일합섬의 창업주 김한수가와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서정·서인·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3녀 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광호가의 외아들 태원(49·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동우·상우·정우 3형제가 있다. ●뉴미디어·금융으로 21세기를 준비 태광은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 호진씨가 경영 전면에 부상한다. 호진씨는 이 창업주가 그룹의 후계자로 일찍 점찍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호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인 태광의 업종에 메스를 댄다. 추진력에 관한 한 부친 못지않은 ‘신형 엔진’ 이 회장은 ‘조용한 기업’ 태광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변화의 추동 세력은 MSO로 표현되는 종합유선방송과 금융 등 두 갈래다. 이 회장은 미래 태광의 신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섬유와 화학 중심에서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급성장이다. 이 회장은 케이블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를 세웠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등의 앞글자 ‘T’와 브로드 캐스팅, 브로드 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티브로드는 지역 케이블TV 20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 300만명, 시장 점유율 24∼25%로 명실상부한 국내 1위다. 아직까지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진 못하지만 뉴미디어는 태광의 미래를 밝혀줄 한 축임에 틀림없다. 이 회장이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미디어는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과 이상윤 안양방송 및 수원방송 사장이 이끌고 있다. 진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이 회장의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금융 쪽도 더욱 살을 붙여야겠다는 게 이 회장의 전략이다. 현재 흥국생명, 고려상호저축은행, 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화재와 예가람상호저축은행, 피데스증권 등의 인수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쌍용화재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태광산업은 쌍용화재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했다.‘흥국생명+쌍용화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의 근거는 생명보험·손해보험 상품의 교차 판매다. 태광은 쌍용화재 인수 열기가 식기가 무섭게 피데스증권 인수에 나섰다. 피데스증권은 현재 주식거래 업무만 하는 중소형 증권사지만 태광은 이 회사를 인수해 종합 증권사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은 서울·경남에 기반을 둔 저축은행이다. 이들 기업의 인수작업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지면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금융 쪽은 류석기 흥국생명 부회장과 김성태 흥국생명 사장의 투톱 체제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LG증권 사장을 지냈다. 태광산업 출신인 오용일 흥국생명 전무도 눈여겨 볼 전문 경영인이다. 이호진호(號)의 태광은 대변신을 꿈꾼다. 현재의 청사진이 조만간 구체화되면 태광그룹은 화섬 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태광관광개발), 육영재단(일주학술문화재단, 일주학원)으로 새 틀을 짜게 된다. ykchoi@seoul.co.kr ■ 정도·신의는 기업의 생명 ‘정도’와 ‘신의’.50여년 전 부산의 한 작은 시장에서 출발해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군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명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거래처와는 두번 다시 거래를 이어가지 않았을 정도다. 정도와 신의를 기업의 목숨이자 기업의 자격이라고 늘 강조했던 이 전 회장은 한눈 팔지 않고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던 기업인이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업·국가관 등을 조명하기 위한 자서전 출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어록 정리에 신경쓰는 눈치다. 그의 어록에서는 경영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 1973년 단 닷새 만에 흥국생명을 인수한 이 전 회장은 첫 임원회의에서 “보험회사의 재산은 보험가입자의 재산”이라며 “흥국생명의 돈을 태광에서 가져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이 전 회장은 ‘오래된 만남’을 중시했다. 태광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 양자의 관계는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은행만을 고집한 이 전 회장은 1975년 대한화섬 인수 후 많은 임원들이 복수은행 거래를 건의했지만 “새 친구 열 명을 사귀기 위해 헌 친구 한 명을 안 버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용은 이임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계약서는 단지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종이에 불과했다. 타계 몇해 전 신입사원 특강에서 신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닷새 만에 서는 장에 못가는 사람이 장에 가는 친구에게 무엇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혹 자기 물건 사는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결코 친구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 물건이 제수용품이었다면 남의 집 제사를 망치는 격이 돼 옛날 말로는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된다. 그래서 약속은 무서운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ykchoi@seoul.co.kr ■ 베일에 싸인 오너一家 재계에서 태광그룹만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오너 일가’도 없다.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이호진 현 회장 역시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이 회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단호한 한마디였다. 오너 일가가 이처럼 몸을 꽁꽁 숨기는 데에는 격동기를 헤쳐온 태광그룹의 기업사와 유교적 관습이 맞물려 있다. 태광에 있어 정치는 짐이었다.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은 야당의 거목인 처남(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을 두면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고속성장을 질주한 태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업경영만큼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 팔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이 전 회장은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자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전 회장의 짙은 보수성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태광 일가의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태광가(家)의 여성들에게서는 다른 재벌가와 달리 우먼파워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서 적합한 문화계나 학술계에는 진출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세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마찬가지다.3형제 못지않게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세 딸 중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딸 경훈과 둘째 재훈, 막내딸 봉훈씨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들 모두 다른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게 아닐까. 경훈·봉훈씨는 남편이 재계의 실력자들이지만 외부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있다. 태광가의 며느리들도 전혀 노출돼 있지 않다. 삼성·현대가 등 재벌들의 며느리들이 문화·재계의 저명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40대 중반인 이 회장도 전경련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기피하고 있다. 선친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현장에 매우 충실한 CEO다. 캐주얼 차림으로 불쑥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도 사실상 이 회장 작품이다. 바닥재부터 인테리어, 사무실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CEO가 안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ykcho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대성그룹 고 김수근 회장가(家)의 혼맥은 매우 단출하지만 3남3녀 모두 경영에 참여할 만큼 2세들의 대외 활동은 왕성하다. 무엇보다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딸들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는 고 김 회장가(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다. 독실한 기독교 가풍이 남녀 평등으로, 정략결혼에 대한 거부감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또 통혼(通婚) 과정에서 ‘교회 인연’이 적지 않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며,2세들의 화려한 학벌도 이 집안의 자랑이다. 대성은 고 김 회장이 연탄사업을 기반으로 성장시킨 그룹이다. 한때는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기업으로 손꼽힐 만큼 재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초엔 국내 10대 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었다. 그러나 연탄산업의 몰락과 이에 따른 변신이 늦어지면서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으며,2000∼2001년 사이엔 연이은 계열 분리로 그룹 규모가 더욱 줄었다. ●에너지 산증인 김수근 창업주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 김수근 대성 창업주가 운명하기 며칠 전 병상으로 그룹 임·직원을 불러 남긴 필담 유언의 한 토막이다. 그의 기업관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91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창업주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구상고를 중퇴하고, 삼국석탄 대구지점에서 연탄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일본인만을 채용하는 원칙이 있어 취직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회사에서 입사를 수차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여 취직한 뒤, 성실함과 정직으로 내부 업무는 물론 외판 업무도 맡았다. 당시 김 창업주는 일에 대한 집념과 노력 등으로 일본인으로부터 ‘가죽고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4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47년엔 “연료 대책이 시급하고, 더 이상 산림이 황폐화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대구 칠성동에서 연탄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했다. 김 창업주의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대성그룹이 보유한 경북 문경새재 주흘산 수백만평을 관광지역으로 개발하자는 권유가 많았었지만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연탄사업을 벌인 것은 황폐화하는 삼림을 보호하자는 뜻이 컸다는 이유에서였다. 주흘산 입구엔 “대성그룹은 청정 산림지역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고자 한다.”는 내용의 푯말이 있다. 또 김 창업주는 출장을 갔다 오면 영수증 한 장까지도 빠짐없이 챙기고, 경비가 남으면 회사에 고스란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외국 호텔 객실에서 쓰고 남은 일회용 비누를 “집에서 면도할 때 쓰면 좋겠다.”며 가방에 넣어 오기도 했다. 정치권 압력에도 초연했다고 한다. 대성이 정치적으로 스캔들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창업주는 친구였던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의 정치헌금을 거절해 세무조사를 받았을 정도였다. 경영철학도 남달랐다. 그는 무엇보다 ‘번 만큼만 투자한다.’는 경영론을 일관되게 지켰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는 경영이 가능했다.“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경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그의 경영철학은 ‘대기만성’의 약자인 ‘대성’이라는 그룹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아들 3형제에게 ‘투명 경영’을 유훈으로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기업이 내 소유란 생각을 버려라. 또한 이사회를 사장의 들러리로 만들지 마라.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죄악이니 이익을 못낼 때는 과감히 전문경영인을 써라. 국민의 사랑을 못 받을망정 지탄받는 기업은 되지 마라.” 이런 김 창업주의 철학은 대성을 남의 돈을 안 쓰는 튼실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조촐한 혼맥의 ‘교회 인연’ 김 창업주가(家)의 혼맥은 한때 내로라했던 재벌가(家)치고 매우 단출하다.2세들 가운데 중매 결혼이 적지 않았지만 정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방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영훈 회장은 이와 관련, “지인들을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덕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부친의 확고한 뜻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1942년 여귀옥(83)씨와 혼례를 치렀다. 이들의 인연은 대구 ‘남산교회’에서 맺어졌다. 김 창업주의 모친인 기묘임(작고) 여사와 여씨의 모친인 최성연(작고) 여사가 대구 남산교회의 신도였다. 그렇다고 결혼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김 창업주는 당시 대구상고를 중퇴해 가족 생계를 위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반면 여씨는 당시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하고, 평양여자신학교를 수료한 ‘신 여성’이었다. 또 여씨 집안은 대구에서 유명한 기독교 집안이자, 명망가(家)였다. 그러나 여씨의 모친인 최 여사는 “내가 딸이 둘이면 하나는 부잣집에, 하나는 인격을 보고 하겠는데 단 하나밖에 없으니 인격을 보아야겠다.”면서 주변의 반대를 물리고 김 창업주를 사위로 맞았다고 했다. 김 창업주와 여씨는 슬하에 4남3녀를 뒀다. 이 가운데 4남 영철군이 73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장남 김영대(64) 회장은 모친의 친구 소개로 71년 법조인 차영조 변호사의 딸 정현(57)씨와 결혼했다. 정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김 회장 부부는 정한(34)-인한(33)-신한(31) 등 3형제를 두고 있다. 장남인 정한씨는 현재 대성산업 기계사업·해외자원개발부 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97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대원외고 동창인 전성은(33)씨와 결혼했다. 성은씨의 부친인 전경호 서한모방 회장은 김 회장과 경북사대부고 동기동창이다. 차남 인한씨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과 후배인 이내리(28)씨와 2002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막내 신한씨는 지난해 말 병역특례를 마치고, 현재 경영수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미시간대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이다. 차남 김영민(61) SCG그룹 회장은 79년 친지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성악과)를 나온 민명옥(51)씨와 인연을 맺었다. 명옥씨의 부친은 전 유화증권 사장을 지낸 민유봉씨이다. 김 회장 부부는 은혜(26)-요한(24)-종한(17)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3남 김영훈 회장은 93년 박영창 목사의 소개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차녀인 김정윤(3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의한(12)-은진(9)-의진(6) 등이 있다. 장녀 김영주(58) 대성닷컴 부회장은 75년 서울대 의대 출신인 내과전문의 신현정(61)씨와 인연을 맺었다. 현정씨는 현재 도시가스서비스회사인 ㈜알파서비스를 경영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기업인이자 화가로 유명하다. 이들 부부는 정희(30)-명철(29)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차녀 김정주(57) 대성닷컴 사장은 하버드대 신약학 박사 출신으로 연세대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독신이다.3녀 김성주(50) 성주인터내셔날 사장은 하버드 동창생인 딘 고달드와 결혼해 딸 지혜(17)씨를 두고 있다. 김 창업주의 동생인 김의근(작고) 회장가(家)와 김문근(작고) 회장가(家)도 정·관계와 그다지 인연이 없다. 굳이 꼽는다면 재계에서 중견 기업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고 김의근 모토닉(옛 창원기화기공업) 회장은 양제선(81)씨 사이에 3남2녀를 뒀다. 장남인 영준(작고)씨를 통해 대한모방 회장을 지낸 김성섭가(家)와 사돈지간이다.3남인 김영목(50) 모토닉 부사장은 산업은행 부총재를 지낸 홍대식의 딸 홍은주(43)씨를 배필로 맞았다. 차남인 김영봉(53) 모토닉 사장은 평범한 은행원의 딸인 김혜옥(46)씨와 혼례를 치렀다. 김문근(작고) 전 대성광업개발 회장은 김정희(작고)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영범-영돈-은주-영천-영석 등 4남1녀를 뒀다. 장남인 영범씨는 최근 대성광업개발 회장직에 올랐다. 형제 모두 대성광업개발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성그룹의 분가는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매출 2조원을 넘는 대성은 고 김 창업주 생전에 동생인 김의근 회장이 2000년 7월 대성정기와 창원기화기공업의 경영권을 갖고 가장 먼저 ‘대성의 품’을 떠났다. 김의근 회장은 사실상 김 창업주와 동업 관계였다. 그는 김 창업주가 47년 연탄사업을 시작할 때 석탄 생산을 맡았고, 김 창업주는 제조와 판매를 책임졌다. 이어 2001년 4월에는 김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김문근(작고) 회장이 대성광업개발을 맡아 분가했다. 대구공고 출신인 김문근 전 회장은 대한중석 등에서 일하다 1950년대에 대성에 합류했다. 김 창업주 사후인 2001년 6월엔 영대·영민·영훈 등 아들 3형제가 다시 2차 세포분열을 통해 분가했다. 장남 김영대 회장이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차남인 김영민 회장이 서울도시가스 계열을,3남인 김영훈 회장이 대구도시가스 계열을 각각 맡았다. 그러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도 있었다. 주식 평가를 놓고 형제간 잡음이 일면서 재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김영대 회장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8월엔 막내 김성주 사장이 이끄는 성주인터내셔날도 대성에서 떨어져 나갔다. 장남과 3남은 현재 ‘대성그룹´ 사명을 같이쓰고 있다. ●김영대 회장의 ‘인재론’ 김영대 회장은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사내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잘 나서지 않고 매우 조용하다. 그는 또 학구파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월·수·금요일은 일본어, 화·목·토요일은 중국어를 공부한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안정과 보수로 대변된다. 이 때문에 간혹 김 회장 주변을 ‘경로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회장의 비서인 전성희(63) 이사는 국내 비서계의 대모다. 김 회장을 모신 지 28년째다. 그의 비서 입문은 우연이었다고 한다.79년 미국 유학을 마친 남편과 함께 귀국했을 때 남편의 대학 친구였던 김 회장은 “미혼 비서를 뒀는데 모두 1년 정도하고 그만두더라. 어디 오래 근무할 아줌마 없느냐.”며 추천을 부탁했다. 결국 남편의 권유로 전 이사는 당시 세브란스 병원 약사모집 면접을 포기하고 대성에 들어가게 됐다. 전 이사는 이화여대 약대 출신이다. 김 회장의 운전기사인 정홍(64) 차량관리 과장도 40년 이상 김 회장을 모시고 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환갑 기념 유럽여행을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상 신분을 넘어 지기(知己)인 셈이다. 또 대성 임직원들은 다른 그룹과 달리 60대 이상이 유난히 많다. 김 회장의 인재를 아끼는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샌님(?)같은 김 회장도 무서울 정도의 강한 집념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90년대 초 씨티은행으로부터 50억원을 불법 대출받아 가로챈 뒤 미국으로 도주한 직원을 직접 추적해 붙잡은 경험이 있다. 그가 쓴 ‘구름 속의 구만리’라는 추적기에서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당시 10개월 동안 출장 9차례, 미 체류기간 200일, 미대륙 종횡단 9000마일, 만난 사람만도 10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50억원의 돈도 돈이지만 회사의 신용과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그 직원을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더 컸다고 했다. 더욱이 일개 직원에게 거액의 수표를 무책임하게 내준 은행측으로부터 음모론까지 흘러나오면서 ‘대추적’을 결심했다. 대성그룹은 현재 3세 경영이 닻을 올렸다. 장남인 김 상무가 2002년 연구개발실장으로 입사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대성 부활’ 노래하는 3남 김영훈 회장 김영훈 회장은 조용한 말소리와 차분한 몸가짐, 설득조의 언어 구사 등에서 CEO보다 목사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릴 적 꿈이 목사였다.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했으며, 영락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늦장가를 갈 정도로 공부에 푹 빠져 살았다. 그가 받은 학위만도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에 이어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하버드에서 신학과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땄다.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그는 늘 책과 씨름하는 것이 취미다. 김 회장은 1988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대성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경영의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경영인보다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지만 부친의 ‘SOS’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계열분리 이후 대구도시가스를 주력으로 경북도시가스와 바이넥스창업투자 등 1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당시 에너지사업 일변도에서 지금은 문화사업을 차세대 ‘먹을 거리’로 마련해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그는 창립 60주년을 한 해 앞둔 올해 2010년까지 매출 10조원, 순익 10억달러를 목표로 한 ’10·10·10’ 전략을 내놓았다. 옛 대성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김 회장의 야심찬 청사진이다. 2남 김영민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스포츠 마니아이며 유머러스하다.ROTC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역사 교관으로 근무했다. 경북사대부고와 미국 댈러스대, 남가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공주의 길’ 포기한 김성주 사장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별종’이다. 가문에서 그렇고, 사업에 있어서도 그렇다. 다른 형제들이 부모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반면 김 사장은 부모가 반대하는 일들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그는 혹독한 고생을 경험했다. 송금이 끊겨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으며, 직장 생활도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사업에서도 ‘봉투’와 ‘접대’라는 그간의 사업 상식을 깨고 투명경영으로 남성 세계를 하나씩 깼다. 김 사장은 자기 힘으로 사업을 일군 여성 CEO가 드문 국내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첫손에 꼽힌다. 그는 훗날 성주인터내셔날을 창업한 배경에 대해 “살찐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탈출했다.”고 밝혔다. golders@seoul.co.kr ■ “우리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우리 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대성가(家)의 2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김영훈 회장은 대성의 차세대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우는 문화사업을 이른바 ‘효자 사업’이 아니라 ‘효녀 사업’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여성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성가(家)의 딸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 장녀 김영주 화백의 또다른 ‘명함’은 대성닷컴 부회장이며,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대성닷컴 사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자매가 최고경영자(CEO)직을 맡은 것은 문화사업에 여성 특유의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 회장의 요청 때문. 김 부회장은 화가로서의 재능을 대성닷컴 출판사업에 톡톡히 쏟아내고 있다. 김 부회장이 책 표지 디자인을 혼자 다할 정도다. 김 사장은 그룹의 문화사업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김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오브 아트 대학원을 나왔다. 김 교수는 미시간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매는 모친에 이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절제회’ 활동에도 열심이다.1983년부터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부회장을 번갈아가며 맡아오고 있을 정도다. 절제회는 종교를 초월해 각종 절제 운동을 펼치는 여성 단체. 국내에선 국산품 애용과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운동을 벌였고, 최근엔 금연 운동과 임산부와 청소년 음주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자매 가운데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성공한 여성 CEO로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 사장은 1997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 세계여성지도자총회의 아시아 대표 연설자,2004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의 ‘주목할 만 한 세계 여성 기업인 50명’에 선정되는 등 글로벌 CEO으로서 명성이 매우 높다. golders@seoul.co.kr ■ 2세들 ‘화려한 학벌’ 고 김수근 회장가(家)는 재계에서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3남3녀 모두 명문대 출신으로 2개 이상의 석사 학위 소지자들이다. 3남 김영훈 회장은 “모친 여귀옥 여사의 남다른 자식 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과 절제 등을 몸으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모친은 ‘공부하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으며, 제가 미국에 유학갈 때도 편안하게 ‘놀다 오라.’는 당부까지 하셨다.”면서 “그러나 우리 형제는 모친의 바른 생활과 이웃사랑 등을 보면서 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여 여사는 임신 중엔 태교를 위해 잡지나 신문을 보지 않고, 오직 성경만 보고 지냈다고 한다. 또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했으며, 꾸지람보다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했다. 대성가 2세들은 모두 대단한 학벌의 소유자이며,‘수석’을 곧잘 했다. 법학을 전공한 장남 김영대 회장은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차남 김영민 회장과 3남 김영훈 회장, 장녀 김영주 화백도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특히 김영훈 회장은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 석사 학위가 무려 4개다.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이화여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막내 김성주 사장은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앰허스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김영훈 회장은 “우리 형제는 어린 시절 학업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낸 편은 아니었다.”면서 “특히 정주 누나는 중학교 때 반에서 40등까지 했지만 우리 형제 가운데 공부를 가장 잘 했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 아래 자녀를 키운 여 여사의 가르침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3세들도 부모 못지 않은 학구파다. 한편 여 여사는 결혼 후에도 영락교회 권사로서 활동했으며,52년에는 초교파적 기독교 여성단체인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를 설립했다. 현재 35개국이 가입해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2006 정계 정기인사 인터뷰] 기업들 조직안정·실적·사기진작 중시했다

    [2006 정계 정기인사 인터뷰] 기업들 조직안정·실적·사기진작 중시했다

    재계의 정기 인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인사 내용을 되짚어보면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고경영자(CEO) 인사는 철저히 실적 위주로 이뤄졌고, 외부 수혈로 조직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기업도 나왔다.2·3세들이 주요 임원으로 승진하거나 CEO로서 전면에 나서는 등 경영 참여가 본격화된 것도 특징이다. 홍보맨들의 약진도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 오너 2·3세 전진배치 재벌가(家) 2·3세들의 과감한 승진도 줄을 이었다. 만연한 반기업정서 탓에 어느 정도 ‘눈치’를 살필 것으로 예상됐지만 꿋꿋하게 밀어붙이는 ‘배짱형’ 재벌가가 적지 않았다. 다만 금산법 등 ‘여진’이 여전한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전무 승진을 막판에 접었다. 경영수업과 후계 승계 등의 일정에 맞춰 과감하게 2·3세들을 승진시킨 곳은 대한항공과 현대백화점, 한국타이어 등을 꼽을 수 있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기내판매팀장을 차장에서 상무보로 두 단계나 승진시킨 데 이어 미국 유학중인 장남 조원태 경영기획팀 차장을 부장으로 승진시켰다. 현대백화점도 정몽근 회장의 차남 정교선 이사를 1년 만에 상무로 승진 발령냈다.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차남인 마케팅본부 조현범 상무도 전략기획본부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했다.2004년 상무 승진 이후 2년 만이다. 최고경영자(CEO)로서 경영 전면에 등장한 후계자도 많았다. 기초소재 제조기업인 일진그룹은 허진규 회장의 장남 허정석 일진전기 전무와 차남 허재명 상무를 각각 일진중공업과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로 임명해 경영승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애경그룹은 장영신 회장의 막내 아들인 채승석 애경개발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장 회장의 세 아들 모두가 CEO 대열에 합류해 2세 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주방가구업체 에넥스도 창업주 박유재 회장의 차남 진호씨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으며, 한국도자기도 김동수 회장의 차남 영목씨를 리빙한국 대표이사로 발령냈다. 신세계는 이명희 회장의 사위 문성욱씨를 시스템통합(SI)업체인 신세계I&C 상무로 발령내 눈길을 끌었다. 반면 삼성은 따가운 외부 시선을 의식해 상무 4년차인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상무를 전무 승진에서 뺐다. 이 상무는 근무 연차나 인사 고과를 따져도 충분히 승진할 수 있었지만 삼성과 삼성가를 둘러싼 여러 악재 탓에 유탄을 맞은 셈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그룹별 특징 ‘안정, 충격, 깜짝, 사기 진작….’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를 시작으로 이어진 그룹별 정기인사의 특징이다. 또 실적속에 승진이 있다는 점과 채찍 꺼내들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삼성의 정기인사 뼈대는 ‘안정과 유지’로 압축된다. 불안한 경영 환경을 앞에 두고 ‘장수’를 바꿔 조직의 안정을 해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계열사 사장단 가운데 정우택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을 빼고는 모두 유임됐다. 또 3명의 신규 사장을 포함해 455명의 임원들이 승진했다. 이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던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다. LG는 부진한 실적에 대해 충격요법을 썼다.LG화학은 전문경영인 3인방인 노기호 사장과 유철호, 여종기 사장 등을 모두 고문으로 위촉해 2선으로 후퇴시켰다. 환율과 고유가 파고에 시달린 LG전자도 임원 승진을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 실적 없이는 승진도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반면 가전분야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이영하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발령내는 등 ‘신상필벌’을 분명히 했다. 현대·기아차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김익환 기아차 사장을 11개월 만에 퇴진시켰으며, 이에 앞서 1세대 가신으로 분류됐던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을 일선에서 퇴출시켜 세대교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동부그룹은 외부수혈에 의한 깜짝 발탁인사로 눈길을 끌었다.㈜동부 사장에 삼성 비서 출신인 조영철 전 CJ홈쇼핑 사장을 영입했다. 금호아시아나와 신세계는 ‘사기진작’형 인사가 특징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조종사 파업 등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과 신훈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사장을 부회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냈다. 신세계도 최근 수년내 가장 많은 27명의 임원을 승진시켰다. 현대의 정기인사는 ‘현상유지’가 눈에 띈다. 현대는 현정은 회장 취임 이후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만큼 현 사장단에 대한 신뢰가 깊다는 점이 이번 인사에서도 적용됐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홍보맨 ‘대약진’ 반기업 정서와 오너가에 대한 비판을 누그러뜨리고 기업 이미지 개선에 온몸을 던진 홍보맨들도 승진으로 보상받았다. 지난해에는 기업과 기업 오너가를 향한 비판거리가 유독 많았던 터라 홍보맨들 역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일선에서 마음 고생이 심했고, 때로는 구질구질한 일까지 도맡아 말끔하게 처리한 노고를 인정받아 대거 승진 대열에 올랐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홍보팀은 임대기 전무, 김준식 상무, 이종진 상무보, 한광섭 상무보가 함께 승진의 영광을 안았다. 삼성 오너가에 대한 뉴스를 지혜롭고 순발력 있게 대처한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가능했다. 삼성전자 김광태 전무와 노승만 상무보도 한 단계 승진했다. 김 전무는 20년간 홍보만 전담했으며, 삼성 공채 출신 첫 전무 승진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 형제간 싸움 기사로 모든 신문을 도배질했던 두산그룹은 이계하 부장을 두산중공업 상무로 승진시키면서 기업문화팀장을 맡겼다. 현대INI스틸 김종헌 이사는 상무 승진과 함께 홍보·인사·총무 업무를 아우르는 경영지원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현대중공업에서는 김문현 이사대우가 ‘대우’꼬리를 뗐다.STX 빈일건(㈜STX 경영관리본부장) 부상무는 상무로 승진하면서 STX조선 기획관리본부장을 맡았다.㈜LG 유원 상무도 임원 승진의 기쁨을 누렸다.CJ의 대표적인 홍보맨 신동휘 상무와 조원용 아시아나항공 이사, 서강윤 대한항공 상무보도 올해 첫 임원이 됐다. 건설업체 홍보맨들도 약진했다. 현대건설은 손광영 상무와 정근영 부장이 각각 전무, 상무보로 승진했다. 대우건설 남기혁 상무보는 ‘보’를 떼는 동시에 건설업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내 영업본부 공공공사 영업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홍보담당 임원 자리는 남 상무 옆에 있던 홍기표 부장에게 상무보로 승진시키면서 넘겨줬다. 반면 홍보 임원에서 물러난 경우도 있다. 한진그룹 최준집 홍보 담당 전무는 옷을 벗은 경우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개팔자가 상팔자

    개팔자가 상팔자

    올 초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개띠해인데, 올해는 초복 중복 말복을 하루로 통일하면 안되겠니?” “욕할 때 왜 내 새끼들 거들먹거리니∼.” 한국인의 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애완견 문화로 ‘대접’하거나, 보신탕 문화로 존재한다. 정말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키우기 좋은 애완견(pet dog)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 같은 반려견(company dog)이라 부른다. 유별나게 개를 키우든, 조금 다른 뜻으로 개를 좋아하든 상관없다.12년 중 올 한 해만은 개처럼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보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개팔자가 살팔자…금방석 앉았네 애완동물 시장 규모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80% 이상이 애완견 시장이다. 애견병원, 애견미용실, 애견옷가게, 애견카페 등 곳곳에 개를 위한 장소가 들어섰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애견테마파크 ‘페티앙 캐슬’이다.1500여평 규모에 공원형 애견 시설과 쇼핑몰형 테마 시설을 접목시킨 곳. 지난해 4월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열자마자 애견인들의 관심의 대상이자,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됐다. 강아지에 대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초보라면 꼭 들러 다양한 교육을 받아도 좋다. ●우리 강아지 ‘용’ 된다! 페티앙의 장점은 원스톱 관리다. 강아지 미용, 건강, 음식은 물론 애견 신분증 발급도 가능하다. 애완견의 모습을 더욱 멋지고 예쁘게 찍어주는 전문 스튜디오도 마련돼 있다. 애견가로 잘 알려진 재벌가의 자택수의사인 박현종씨가 운영하는 시설인 만큼 병원시설도 잘 돼 있다. 120평의 넓은 애견쇼핑몰에는 없는 게 없다. 애견 옷부터 쿠션, 욕조, 사료, 장난감 등이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격대부터 고가의 물건까지 갖춰져 구경할 수 있다. 요즘은 흔해진 애견 옷은 1만원 이하부터 10만원대를 훌쩍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고가의 ‘명품’코너에는 40만원짜리 수입 가죽조끼도 전시해놓았다. 고급스러운 금사 방석, 초극세사 원단으로 멸균·항균기능을 갖춘 방석, 애견 전용 욕조 등은 단지 ‘사치품’으로 넘겨버리기엔 기능이 뛰어나고 욕심이 날 정도로 예쁘다. ●애견과 함께 놀아요 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장에서 뛰어오는 개들은 마냥 신나보인다. 좁은 아파트에서 살던 개들이 한껏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이다. 회원가입을 하면 훈련사에게 무료 교육도 받을 수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인기도 높아지는 장소는 단연 애견 수영장. 청정 1급수를 사용하고, 애견샤워시설을 갖추고 있어 개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고 싶은 애견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소형견은 2만 5000원, 중·대형견은 4만원. 애견 레스토랑에는 애견 전용 메뉴도 있어 애견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페티앙 캐슬 입장료는 없다. 회원가입을 하면 회원종류에 따라 쇼핑몰 30∼50%, 수영장 10∼50%, 미용실 30% 등 할인을 비롯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031)335-5830.www.petian.com ■ 우리 해피 건강관리는 웰빙숍에서 애완견과 특별한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다면 이곳을 참고하자. ●분위기있는 카페에서 친구 사귀고 5∼6년 전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빠른 속도로 번진 애견카페는 이제 정돈 상태다. 애견마니아에게 사랑받는 곳만 남아있다. 경기도 미사리 카페촌에 있는 ‘멍스’(031-792-5573·www.mungs.co.kr)는 여유있는 드라이브를 즐기고 다양한 애견을 볼 수도 있다. 넓직한 카페에 들어서면 이곳 아이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첼로’(그레이트 피레니즈)가 맞는다. 손님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할 때까지 곁을 지키고 있어 ‘첼마담’이라는 애칭도 있다. 배용준과 CF 촬영도 한 유명한 아이. 개를 키우지 않아도 커머, 아지 등 애교가 넘치는 아이들을 보러 오는 손님도 많다. 최근 압구정동으로 이전한 ‘이글루’(02-511-0980), 논현동 ‘독스’(02-517-2202), 홍익대 근처의 ‘바우하우스’(02-334-5152)도 대표적이다. 호텔, 미용, 목욕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크기에 따라 미용은 1만∼7만원선, 호텔은 1박에 1만∼2만원선. ●우린 특별하니까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 편에 있는 애견 제과점 T베이커리(02-511-6750)는 ‘개 전용 웰빙숍’. 웰빙 사료를 비롯해 설탕, 소금, 인공조미료, 색소 등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식와 쿠키, 케이크 등을 판매한다. 먹을 것을 가리거나 소화기능이 좋지 않은 애견을 위해 이곳을 찾는 단골과 멀리서 수소문해서 찾아오는 고객도 많다. 최근 경기도 분당점도 열어 영역을 확대했다. 주인과 애견용 커플 패션을 주문제작해 주는 온라인 사이트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애견패션 사이트인 ‘퍼피아(thepuppia.com)와 ‘루쏘볼페(www.lussovolpe.com)’ 등에서 애견과 함께 입을 수 있는 커플 옷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대가 보통 2만∼6만원선으로 저렴해 품절이기 일쑤다. 이밖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 사이트나 장례서비스를 돕는 업체도 있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랑을 쏟기도 한다. 강아지옷 직접 만드는 이인숙씨 열살짜리 말티즈 ‘아미’와 네살배기 ‘미르’를 키우는 이인숙(36)씨는 이미 ‘강아지옷 만드는 예쁜엄마’로 애견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그가 강아지 키우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이트(www.lynn.pe.kr)의 회원수는 무려 3만 3000여명. 하루에도 수백명의 방문객이 북적거린다. 인숙씨는 아미와 미르에게 특별한 ‘개인기’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아미와 미르)의 귀여운 모습만 봐도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엄마다.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고 느낄 때나, 기분 좋은 표정을 읽었을 때, 근사한 간식을 앞에 두고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빙글빙글 돌며 좋아할 때 너무 예뻐요. 옷을 만들어 입혀주면 사진을 찍겠다고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에 행복감마저 느끼죠.” 아이들에게 옷을 만들어 준 것은 4년전. 아미의 털을 밀게 돼 옷을 사 입혔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입지 않는 자신의 옷들을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만들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정보를 공유하게 됐다. 장 기능이 좋지 않던 미르를 위해서는 사료 대신 전공(영양학)을 살려 영양 균형과 칼로리를 맞춘 음식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미에게 맞는 옷을 만들면서 다른 강아지들에게도 편한 옷을 만들어주고, 미르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면서 다른 애견인에게도 방법을 전수하는 ‘범국민적인 일’로 확대된 것이다. 좀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이해가 된다.“컵 속에 들어가는 크기의 애완동물인 ‘티컵 사이즈 펫’이라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쫙 끼쳐요. 생명체를 장난감처럼 대하는 풍토가 얼마나 잔인한지…. 함께 살기 시작한 애견은 같이 즐거움을 나누는 대상이예요. 같이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지 인간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애견인이든 아니든 인숙씨의 말을 우선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를 위해 그의 노하우를 살짝 들춰보자. 내팬티에도 이불에도 푸들이 뛰어놀아요 병술년, 개띠해를 맞아 강아지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친근하고 귀여운 개의 이미지를 살려 커플 제품이나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귀여운 강아지 제품을 입고 덮고 ‘비비안’은 귀여운 강아지가 럭비공을 갖고 뛰노는 모습을 프린트한 커플 트렁크 팬티를 선보였다. 강아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프린트하고, 부분적으로 야광 효과를 넣어 귀여운 스타일을 연출한다.‘임프레션’의 커플 파자마에는 강아지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캐주얼하고 발랄한 느낌을 좋아하는 커플에게 좋다. 좋은사람들의 1925세대 감성내의 ‘예스’의 ‘바우와우’ 시리즈는 불테리어종을 캐릭터화한 제품. 쫑긋 선 귀와 한쪽 눈에 크게 찍힌 점 등 특이한 외모에 빨강과 파랑 등을 포인트로 매치해 익살스럽다. 아가방은 귀여운 강아지가 제품 곳곳에 디자인된 ‘에블린 시리즈’를 준비했다. 젖병, 기저귀, 이불, 분유케이스, 욕조, 보행기 등 모든 제품에 강아지 캐릭터가 모티브로 활용돼 아기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속싸보, 속싸개, 방수요, 담요 등 섬유를 이용한 제품들은 은행나무 추출물로 만든 천연섬유 징코 소재를 사용하고, 천연 순황토볼이 들어 있는 건강 베개도 내놓아 디자인과 기능을 모두 잡았다.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 개띠해를 맞아 옥션(www.auction.co.kr),G마켓(www.gmarket.co.kr), 인터파크(www.interpark.com)에는 강아지 모양의 각종 캐릭터 상품들이 즐비하다. 하얀 말티즈의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표지의 ‘도기다이어리’(1만 5000원)는 강아지 사진들이 가득해 인기있는 상품. 두 마리 강아지가 앙증맞은 ‘강아지 분수대’(9900원)는 장식성과 가습기 효과를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인테리어 제품이다. 강아지 캐릭터를 이용한 저금통으로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어떨까. 동전을 올려 놓으면 강아지가 나와 가지고 가는 제품이나 강아지 모양으로 만든 저금통을 이용해 동전을 차곡차곡 모아보자. 올 한 해의 마지막쯤에는 마음도, 지갑도 든든해질 것이다. 강아지 캐릭터 클립(4700원)은 강아지를 본떠 만든 고무 제품. 입속에 물건을 꽂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유리벽에 붙이기만 해도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되고, 필요에 따라 컴퓨터 책상 거울 등에 붙여놓고 명함 볼펜 메모지 열쇠고리 CD걸이로 이용할 수 있다. 강아지만큼 귀여운 아이들에게 강아지 캐릭터 선물을 주는 것도 좋겠다. 시추 푸들 슈나우저 모양으로 만든 캐릭터 가방(2만원)은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멜 수 있는 제품으로 깜찍하고 실용적이다. 강아지 실내화(6900원)는 그로밋과 바둑이 캐릭터를 이용했다.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돌기처리가 되어 있어 활동이 많은 아이들이 실내에서 따뜻하고 안전하게 신을 수 있다.
  • [09일 TV 하이라이트]

    ●살림의 여왕(EBS 낮 12시) 아무리 오래되고 낡은 물건이라도 새것처럼 바꿔 놓는다는 미다스의 손 김성순 주부의 리폼 비법을 알아본다. 또 결혼 9년 만에 내집 마련에 성공한 강미현 주부의 눈물나는 리폼 도전기. 강미현 주부의 감각과 전문가의 솜씨가 어우러져 20년된 낡은 아파트 화장실이 로맨틱하고 깔끔한 공간으로 되살아 난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재벌가 남자와 동거하며 아이까지 낳았지만 남자 어머니가 아들을 재벌가 여자와 억지로 결혼시켜서 외국으로 보낸 경우. 이때 여자는 아이의 양육비를 남자 어머니에게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본다. 남편이 과거에 동성과 사귀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경우에 이혼사유가 되는 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올해 화학의 해를 맞아 이런저런 과학행사가 풍성하게 열릴 예정이다. 정부는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과학영재 육성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과학영재고와 과학고를 건립할 계획임을 밝혔다. 오는 5월에는 다목적 실용 위성 아리랑2호가 발사될 예정이라고 한다.2006년 과학계를 전망해 본다.   ●안녕 프란체스카(MBC 오후 11시5분) 인성이의 신통한 예지력을 발견한 가족들은 인성이를 앞세워 점집을 차리고, 장군동자 인성의 점집은 대성황을 이룬다. 한편, 이사벨은 겉멋으로 시작한 바이올린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가난한 연극 연출가 정우가 타고 오던 자전거에 부딪히며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찌뿌드드한 몸을 풀 수 있는 ‘지압’. 큰 노력 없이 간단히 배워 실생활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고 자극 하나만으로 피로 해소는 물론 질병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5분이면 간단히 할 수 있는 다양한 생활지압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도 알아본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연기인생 36년차 영원한 우리들의 아버지, 중견배우 주현. 드라마 속 아버지와 닮은 또 다른 현실 속 아버지 주현의 가족이야기와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무대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윤석화의 보물1호, 가슴으로 낳은 아들 수민이와의 알콩달콩 육아이야기를 공개한다.
  • 젠틀 매드니스/니콜라스 바스베인스 지음

    1800년대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아이제이어 토머스를 가리켜 ‘가장 고귀한 질병’에 빠진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인쇄업자이자 출판업자로 꼽히는 아이제이어 토머스가 앓은 그 고귀한 질병이란 다름아닌 책에 대한 엄청난 열정, 곧 애서광증(愛書狂症)이다. 신문에 광고까지 내면서 책을 구했다고 하니 그쯤되면 병이긴 병이다. 하지만 그 질병은 그래도 ‘고상한 광기(gentle madness)’라 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펴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애서가와 애서광, 즉 책에 미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독일의 서지학자 한스 보하타의 설명에 따르면 애서가는 자기 책의 주인이고 애서광은 자기 책의 노예다. 물론 그 경계는 모호하다. 1000쪽이 넘는 이 방대한 책의 저자는 미국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바스베인스. 미국 클라크 대학에선 그의 이름을 딴 재학생 도서수집 경연대회가 열릴 정도로 그는 도서수집광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소설가 김연수, 출판기획자 박중서 등 3인이 3년에 걸쳐 우리말로 옮겼다. 책은 80만권의 책을 소장한 전설적인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서부터 미국과 관련된 책은 무엇이든 사들였다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사양길에 접어든 이디시어 책들을 보전하기 위해 애쓰는 도서수집가 아론 랜스키(50)의 이야기까지 고금을 넘나들며 도서수집에 얽힌 일화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압권은 20여년 동안 미국 전역 268개 도서관에서 훔친 2만 3600여권의 희귀본으로 ‘블룸버그 컬렉션’을 구축한 희대의 책 도둑 스티븐 블룸버그(57) 이야기다. 그가 훔친 책은 시가로 2000만 달러. 도서절도범으로 징역만 10년 넘게 산 그는 그 덕분에 범죄세계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책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절도 이상의 만행도 부추긴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아내가 죽자 자신의 미출간 시 원고 한 묶음을 아내와 함께 묻었다. 그러나 책을 향한 광기는 그로 하여금 7년 후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을 파헤치도록 만들었다. 원고를 다시 꺼낸 그는 1870년 마침내 ‘시집’이란 제목의 시집을 냈다. 당시의 원고 묶음은 현재 하버드 대학 호우튼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책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꼽히는 게 ‘제임스 앨런, 일명 버디 그로브의 회고록’이다.1830년대 악명높은 노상강도였던 제임스 앨런이 처형되기 직전에 쓴 이 책의 장정은 놀랍게도 사람 가죽으로 돼 있다. 감옥에서 죽어가던 앨런이 자기가 죽으면 가죽을 벗겨 책을 만들어 자신을 체포한 사람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보스턴 애시니엄에 소장돼 있는 이 책은 불필요하게 흥미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일반 공개가 금지됐다. 책 경매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그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 석유재벌의 부인인 에스텔 도헤니의 장서 경매다. 미국 최고의 도서수집가 가운데 한 명인 그녀의 장서는 1987년부터 2년에 걸쳐 뉴욕 크리스티에서 여섯 번으로 나뉘어 팔렸다. 값은 3740만 달러로 세계 장서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재벌가의 책 사랑은 유별나다. 미국의 은행재벌 존 피어폰트 모건, 록펠러의 동업자인 스탠더드 오일의 헨리 클레이 폴저, 미국 서부의 철도재벌 헨리 에드워즈 헌팅턴 등은 모두 책을 극진히 사랑하고 수집했다. 이들은 사후에 자신의 장서로 공공도서관을 만들어 개방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책에 대한 이런 열정이야말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 할 만하다. ‘젠틀 매드니스’는 이제 우리도 독서문화와 함께 도서수집문화 혹은 장서문화에 눈을 돌려야 함을 일깨워주는 흥미로운 책이다.4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대선주자 새해 주가는-야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대선주자 새해 주가는-야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래서 오른다 김 본부장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섬세한 이미지가 어필하고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강점으로 꼽았다. 이 소장은 “박 대표의 이미지가 좋다.”고 분석했다. 박성민 대표는 “메시지를 반복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절제와 원칙의 미를 잘 보여준다.”면서 “자기다움을 흐트러짐 없이 잘 유지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대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자신보다는 조직을 위해 일하는 사람, 잘 정돈되고 절제된 조신한 양갓집 규수, 벤처 기업 여성 CEO 등의 이미지”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없는 이미지의 종합”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말하며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메시지를 집중하며 ‘수첩공주’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래서 내린다 김 본부장은 ▲정치적 철학부재 ▲콘텐츠 부족 느낌 ▲박정희 후광효과의 반작용 등을 약점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너무 단조롭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대표는 “이슈 주도력이 없고 미래 비전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시키지 못하며 여성 지도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반대 집단에서는 박 대표를 과거의 영화를 되찾으려 몸부림치는 봉건 지주 후손의 모습으로 본다.”며 “‘토지’의 서희처럼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손 이미지, 재기를 노리는 재벌가 자손, 몰락한 황손으로 비쳐지는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참모도 없는 것 같고 고집이 세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 한번 악수를 두면 낭패를 볼 수 있으며, 아버지의 그림자, 콘텐츠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대한전선과 대한방직, 대한제당은 모두 한뿌리 기업들이다.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설립했던 회사들로 장남인 설원식(83) 전 회장이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경영권을 승계해 가장 먼저 계열분리했다.3남인 설원량(작고) 회장은 1972년 인송의 실질적인 ‘경영 후계자’로서 당시 대한그룹의 주력사인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고 설원량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한때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지만 오일쇼크의 충격과 가전사업 매각 등으로 사세가 크게 줄었다. 또 동생인 설원봉(57) 회장이 88년 대한제당을 갖고 분가하면서 옛 대한그룹은 사실상 대한전선만 남게 됐다. 지금은 고 설원량 회장의 부인인 양귀애(58) 고문이 오너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임종욱(57)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고 설 회장의 장남인 윤석(24)씨는 대한전선 경영전략팀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처럼 1950년대 재계 서열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대한전선그룹은 오늘날보다 과거가 더 화려한 기업이다. 혼맥도도 이와 비슷하다. 창업주인 설경동 회장가(家)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옛 재벌가(家)와 적지 않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4남2녀를 뒀던 인송은 1970∼80년대 욱일승천했던 국제그룹 창업주 양태진 회장가(家)와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가(家)와 사돈지간이다. 관계에서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과 임송본 전 대한석탄공사 총재가 사돈들이다. ●50년대 재벌가 인송 인송은 1901년 평안북도 철산군 인송리에서 부친 설흥업옹과 모친 조성녀 여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정동(鄭童)이었지만 서당 스승께서 ‘큰 인물로 대성하라.’는 뜻에서 경동(卿東)으로 지어줬다. 인송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는 부친을 세살 때 여의고, 모친을 따라 함경북도 부령으로 이사해 무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3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집안을 돌보던 인송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어렵게 오쿠라 고등상업학교에 입학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 귀국해야 했다. 인송은 이후 부령 군청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1921년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판매사업을 벌였다.1936년에는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청진 앞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아 이를 가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1940년대 초에는 어선 70척에 비행기로 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함경도 거부로 성장했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북측에 공산군이 진주하면서 월남한 인송은 무역회사인 대한산업과 부동산 회사인 원동흥업을 세워 남쪽에서도 곧 거부 대열에 올라섰다.6·25전까지 그가 수원에 세운 성냥공장은 남한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인송은 53년 재벌의 터전이 된 대한방직을 인수해 근대적인 경영을 시작했다.55년엔 대한전선 인수,56년에는 대동제당(현 대한제당)을 세워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가로 올라섰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인송은 54년 자유당 재정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60년대 초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인송은 4·19 의거와 5·16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내로라하는 그룹 창업주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험난한 시기를 보냈다. 특히 인송은 강제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동산도 몰수당했다. 부친의 이같은 시련을 지켜봤던 설씨가(家) 4형제는 훗날 정치와 담을 쌓은 것은 물론 부동산 투자도 꺼렸다. 인송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이라도 소홀히 버리지 않았다. 편지가 오면 칼로 봉투의 한 귀퉁이를 잘 도려내고, 그 뒷면을 이용해 한번 더 사용했을 정도였다. 인송이 송인상 효성 고문(당시 부흥부장관)에게 보낸 편지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하던 대로 송 장관에게 소식지 ‘무역통신’ 뒷면을 이용해 서신을 보냈다. 이를 받은 송 장관은 대기업 사장의 검소함에 탄복해 서신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수년간이나 회의석상이나 강연회에서 이를 소개했다고 한다. ●옛 영화가 가득한 혼맥 인송은 두번 결혼했다. 그는 첫번째 부인 이태하(작고)씨 사이에 원식과 원철(68)씨 등 2남을 뒀다. 두번째 부인 유인순(작고)씨 사이엔 원량과 명옥(59), 원봉, 영자(53)씨 등 2남2녀를 뒀다.4남2녀 가운데 여자 형제는 중매로, 남자 형제는 연애 결혼했지만 당시 재벌가의 통혼이 그러하듯 인송은 관·재계의 명문가를 사돈으로 맞았다. 장남인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은 일제시대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총재와 대한석탄공사 5대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희숙(75)씨와 연애결혼했다. 당시 원식씨는 희숙씨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할 대학을 바꿀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설 전 회장 부부는 설범(47) 대한방직 회장과 설경화(46)씨 등 1남1녀를 뒀다. 차남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은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의 딸 보경(66)씨를 미국 유학중에 만나 인연을 맺었다. 보경씨는 코리아헤럴드 출신의 언론인이다. 설한(39), 설훈(35), 설혜선(34) 등 2남1녀를 뒀다. 3남 설원량 회장은 1969년 동생인 명옥씨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양귀애 고문과 결혼했다. 명옥씨와 양 고문은 친구 사이다. 양 고문은 국제그룹 양태진 창업주의 막내딸이며,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누이 동생이다. 윤석(24), 윤성(21)씨 등 2남을 두고 있다. 4남 설원봉 회장은 박용학 전 대농 명예회장의 장녀인 선영(56)씨와 혼례를 치렀다. 선영씨는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다녔던 설 회장과 선영씨는 학창시절부터 오랜기간 만남을 가졌다. 윤호(30)와 혜정(25)씨 등 1남1녀를 뒀다. 장녀 명옥씨는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 가문의 소개로 71년 김우기(63) 서울대 의대 교수와 결혼했다. 동철(33)과 승철(31)씨 등 2남을 뒀으며 장남은 의사, 차남은 대한제당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영자씨는 고 설원량 회장의 친구인 정근모 명지대 총장의 중매로 차동완(58)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진영(28)씨와 종현(25)씨 1남1녀를 두고 있다. 3세들도 속속 가정을 꾸리고 있다.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의 장남인 설범 회장은 한연나씨와 결혼했으며, 장녀 경화씨도 차정하씨와 혼인을 치렀다. 양 고문의 장남 윤석씨는 지난해 6월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인 심현진(24)씨와 연애 결혼했다. 현진씨의 부친은 심광일(52)씨로 중견 건설업체인 석미건설을 경영하고 있다. 양 고문은 “오랫동안 연애를 한 데다 아들의 판단을 믿었다.”면서 “설 회장도 생전에 둘의 결혼을 허락한 만큼 일찍 결혼을 시켰다.”고 말했다. 설영자-차동완 교수 부부의 장녀 진영씨는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조 부사장은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손자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이다. 진영씨는 대한전선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재벌가(家)와 통혼했다. ●일찍 시작한 분가 설경동 가문의 기업 분가는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일찍 시작됐다. 창업주 사후에 2세들의 분가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송은 생전에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등을 계열분리시켰다.1960년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가정불화마저 겹치면서 인송은 어쩔 수 없이 대한산업과 대한방직 등을 장남 원식에게 맡겨 2세 경영을 펼치도록 했다. 인송은 이후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중심으로 경영을 해오다가 7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3남인 당시 설원량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토록 했다.74년 인송이 결국 타계하자 설 회장이 대한전선그룹을 이끌게 됐다. 대한전선은 88년에 또 한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창업주 인송의 유지를 받들어 설원량 회장이 계열사인 대한제당을 분가시킨 것이다. 설 회장은 동생인 설원봉 회장이 대한제당에 입사한 이래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아왔다고 보고, 대한제당 관련 주식을 설원봉 회장에게 모두 양도해 대한전선에서 완전 분리시켰다. 대한제당은 현재 식품소재사업과 레저, 외식업 등에 진출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송의 후계자 설원량 회장 고 설원량 회장 유족들은 지난해 9월 135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매출 2조원이 안되는 중견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하자 고 설 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상속이나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다른 재벌가(家)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대단했다. 그는 평소 “기업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손님이 되어야지, 불청객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한토막. 대한전선 본사와 각 공장 구내식당에서 제공되는 한 끼 밥값은 80원이다. 공짜로 주는 것이 낫겠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설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같이 정해졌다. 설 회장이 내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음식이 혹시라도 부실해지면 회사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서 내린 조치였다. 설 회장 본인도 줄곧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이 역시 회장이 자주 이용하면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낸 것과 달리 설 회장은 부친인 설경동 회장 못지않은 ‘구두쇠’였다. 그는 양복을 한 벌 사면 소맷단이 해질 정도로 입었다. 식당에서 사용한 휴지는 잘 접어두었다가 화장실에서 다시 사용했다. 쉽게 쓰는 휴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휴지라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같은 성품 때문일까. 그는 4형제 가운데 부친으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설 회장이 미국 텍사스주립대로 유학갔을 때, 인송의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편지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인송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설 회장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설 회장은 67년 대한전선 총무부장으로 입사했다. 인송은 설 회장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호된 경영자수업을 받도록 했다. 설 회장은 68년에 상무,70년엔 전무 등 주요 사업부 수장을 거치면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72년 사실상 경영 대권을 이어받은 설 회장은 견실한 전선사업과 가전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70년대 중반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대한전선을 키웠다. 후계자로서 연착륙했다는 주변의 평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한전선과 금성사(현 LG전자)가 선점한 가전시장에 삼성전자가 후발업체로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70년대 후반부터 덩치에 밀린 대한전선은 자금난으로 갈수록 어려워졌다. 설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의 유업을 일순간에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기업가로서 그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했다. 대한전선 가전사업에 관심이 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가전사업이 어려우면 언제라도 대우에 협력제의를 해달라.”는 의중을 넌지시 전해왔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던 설 회장은 83년 3월 그룹 임직원들에게 가전부문 매각을 발표했다, 매각 금액은 2억달러 규모로 당시엔 그야말로 빅딜이었다. 가전사업과 생산직원 모두 대우로 넘어갔다. 대우그룹으로 바꿔타는 직원이 무려 6000여명. 대한전선에 남는 인원은 3000명 남짓이었다.24개 계열사 중 10개사가 대우에 속하게 됐으며, 남은 계열사는 통폐합 절차를 거쳐 7개사로 줄었다. ●‘풍운아’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50년대 국내 대표적인 재벌가(家)의 장남이었지만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뒤,55년부터 5년간 중앙대 문과대에서 강사(서양학)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는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전선 사장직에 갑자기 취임했다. 이후 3년간이나 부친인 인송과 재산 다툼을 벌였지만 그는 결국 법적으로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옛 대한그룹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설 전 회장은 70년대 대한종합개발을 설립해 건설업에 진출했으며, 아세아종합금융을 세워 금융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업 진출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는 아세아종금 주가가 폭락하면서 퇴출위기에 몰리자 주식시세를 조종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세아종금은 이후 진승현씨에게 인수돼 한스종금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훗날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졌다. 설 전 명예회장은 98년 장남인 설범 회장에게 대한방직 경영권을 물려주며 현장에서 물러났다. 차남인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의 이력도 형에 못지않다. 그는 일본 게이오대 법대와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그는 부친의 기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 입사해 조사부 부장과 샌프란시스코 무역관 관장을 거쳤다.91년엔 형인 설원식 전 회장에 이어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사장에 올랐다.2년 후에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3무 경영’ 설원봉 회장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은 연세대 법대와 미국 브루클린 공대대학원을 거쳐 1976년 대한전선 종합조정실 이사로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83년 대한제당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88년엔 형으로부터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그는 형과 달리 부드럽다는 평이다. 그러나 나서기를 꺼려하는 것은 다른 형들과 똑같다. 재계에서 친한 인사로는 경기고 동기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설 회장은 현장과 인재 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외환위기 극복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설 회장은 직원들의 신뢰속에 감원과 임금 삭감, 노사분규 없이 힘든 시기를 헤쳐왔다.‘무감원, 무감봉, 무분규’라는 대한제당 특유의 ‘3무(無) 경영’은 이렇게 나오게 됐다. 대한제당은 현재 의약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그룹 나침반 임종욱 사장 대한전선의 대표 최고경영자(CEO)인 임종욱(57) 사장은 서울생으로 선린상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95년 회장 비서실장에 임명된 이후 9년간 설원량 회장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받들어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실무관리를 해오고 있다.97년 외환위기 때에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무주리조트와 쌍방울 인수, 진로채권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다각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임 사장은 설 회장이 타계한 이후 회사 경영의 나침반으로서 차세대 ‘먹을 거리’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미망인이 본 故설원량 회장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예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어요. 자제심도 대단했고요. 남편을 사회와 일에 빼앗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평생 일만 하다 간 분이에요. 그림이나 음악에도 대단히 조예가 깊었는데….” 양귀애 고문은 남편인 고 설원량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 듯 설 회장을 언급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설 회장은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아직도 설 회장 사진을 안봐요.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남편 사진들을 다 치웠어요. 감정이 많이 정리가 됐다고 해도 가끔은 가슴이 휑해요.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가지들이 너무 낡았더라고요. 대기업 회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와이셔츠 소매는 다 헐었고, 구두는 신기 민망한 수준이었어요.” 그는 일만 했던 남편이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둘만의 데이트는 자주 했다고 했다.“설 회장은 사업이 꼬이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저를 불러요. 옆에 있어달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동안 생각만 해요. 그 때는 옆에서 말 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그래서 저를 불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둘이서 남산을 자주 산책했고, 가끔은 골프도 둘이서만 치고 다녔답니다.” 그는 불임으로 꽤 고생했다. 장남인 설윤석 과장을 결혼 12년차에 가질 정도였다.“시댁식구들 눈치 많이 봤죠. 재벌가(家)로 시집와서 12년간 애기가 없었으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그때마다 남편이 바람막이가 돼 줬습니다. 참 고마웠죠.” 양 고문은 시아버지인 인송 설경동 회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아버님이 저를 특히 예쁘게 보셨어요. 항상 자신 옆에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외출을 하면 꼭 저를 데리고 다니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한복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해서 신혼 초에는 한복만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설 회장은 자식을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남편은 아들들에게 절대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수입도 없는 애들이 돈 쓰는 버릇부터 들이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비행기를 탈 때도 애들은 항상 이코노미석이었습니다.” 양 고문은 지금까지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자신의 전부를 쏟았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이 일군 대한전선을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한편 그는 큰 오빠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근황과 관련,“건강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소일하신다.”면서 “(국제그룹 해체로) 당시엔 심리적인 타격이 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잊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막오른 3세 경영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창업한 대한전선과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은 모두 3세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3세가 최고경영자(CEO)로 전면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제 실무부서에 배치돼 첫 걸음마를 시작한 곳도 있다. 가장 빨리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은 대한방직. 설경동가(家)의 장손인 설범(47) 회장이 1998년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설씨가(家)의 3세 경영을 알렸다. 그는 85년 대한방직 이사로 출발해 91년 상무,95년 부사장,96년 대표이사 사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설 회장은 2001년 한스종금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만두라.’는 소액주주들과 주총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한차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주변에선 설 회장을 소탈하고 온화하다고 평한다. 집안 가풍대로 보수적이며, 사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업계에서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배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더 뷰크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지난해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학업과 경영수업을 동시에 했던 장남 설윤석(24)씨는 올 들어 경영전략팀 과장으로서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다. 그는 대한전선의 최대주주인 삼양금속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설 과장의 나이가 아직 어린 데다 모친인 양귀애 고문이 후견인으로 나서는 만큼 급하게 경영 대권을 잇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종욱 대한전선 사장이 전문경영인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어 후계자 교육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 고문은 “설 과장의 진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승진이나 유학 등은 상황에 따라 이뤄질 것이에요.”라고 했다. 동생인 윤성(21)씨는 중학교 3년때 미국으로 유학가 현재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다니고 있다.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의 장남인 윤호(30)씨는 경영 대권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에 입사해 현재 제당식품사업부를 책임지는 전무로 일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설 전무는 경기고와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이번엔 계약남매의 사랑?

    이번엔 계약남매의 사랑?

    SBS가 14일부터 수·목 미니시리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의 후속으로 로맨틱코미디 ‘마이걸’(연출 전기상, 극본 홍정은·홍미란)을 시작한다.일단 주연을 맡은 연기자들보다는 연출가와 작가에 눈길이 간다. 올초 고전 ‘춘향전’을 새롭게 해석한 ‘쾌걸 춘향’을 성공적으로 합작했던 전기상 프로듀서(PD)와 홍미란·홍정은 작가의 두 번째 합작품이기 때문. 전 PD는 “20∼30대가 아니라 10∼20대의 젊은층을 타깃으로 했다.”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팝콘 같은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계약 결혼, 계약 연애를 뛰어넘어 계약 남매라는 독특한 컨셉트를 가지고 나온 것도 젊은층을 포섭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된다. 화려함을 위해 재벌이 등장하고, 가슴 떨리는 우연에다가 신데렐라 코드까지 기존 드라마 흥행 코드가 총동원된다. 사뭇 우려되는 측면도 있지만,‘춘향전’이라는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비틀어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연출과, 담백한 스토리로 흥행몰이를 했던 전 PD와 홍미란, 홍정은 작가를 한번 믿어봄직하다. 이들의 손길에서 진부한 요소들이 얼마만큼 하모니를 이루며 새롭게 빚어질지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신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신세대 연기자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특히 이다해의 연기 변신이 기대된다.‘그린로즈’에서 재벌가 딸을 연기했던 이다해가 ‘청순가련’을 털고 대폭 신분을 낮춰 코믹 발랄 ‘귀여운 거짓말쟁이’로 돌아왔다. 사기꾼인 아버지를 따라 아시아를 유랑하며 임기응변을 체질화시킨 관광가이드 ‘주유린’ 역이다. 뛰어난 친화력과 화려한 ‘말빨’에다가 외국어는 방랑 생활의 덤. 오래 전 잃어버린 손녀를 그리워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우연하게 교통사고로 인연이 닿은 유린에게 ‘계약남매’를 제안하는 재벌 호텔리어 ‘설공찬’은 ‘부모님전상서’에 나왔던 이동욱이 연기한다. 또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여장 남자로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준기가 터프가이 바람둥이 ‘서정우’로, 에릭의 여자 친구라는 뭇시선을 뛰어넘고자 하는 박시연이 스포츠 스타 ‘김세현’으로 드라마 사랑 전선에 뛰어든다. 이다해는 “그동안 정적인 이미지에 치우쳐 있어 색다른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던 차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 흔쾌히 받아들였다.”면서 “엽기적인 모습도 연기해야 해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차츰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재벌자녀 주식평가액 급증

    재벌자녀 주식평가액 급증

    올해 재벌가 자녀들은 주식매입 규모가 늘고, 주가마저 상승하는 바람에 큰 돈을 번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을 처분하지는 않고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실현이익이 늘어난 셈이다. 5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주식평가액은 연초보다 34.4% 증가한 5827억원을 기록, 재벌가 자녀들 가운데 최고의 주식부자로 평가됐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아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의 주식평가액은 현대차 6억원, 기아차 1640억원 등 모두 1646억원으로 올해 초의 보유액 4억원보다는 무려 459배나 증가했다. 정 사장은 지난 2월과 11월에 기아차 지분을 각각 350만주,340만주씩 추가 매입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은 자신이 대주주인 광주신세계의 주식 가치가 4배 가까이 급등한 데 힘입어 주식평가액이 79.6% 증가한 5030억원으로 집계됐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본사 ‘한국을 움직이는 힘-재벌 家脈’ 발간

    올 한해는 유난히 재벌가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주식 증여가 문제가 됐고, 두산그룹은 형제간 분란으로 4형제가 나란히 기소되는 치욕을 겪었다.LG그룹은 반세기 넘게 공생해온 허씨 일가를 공식 분리하는 큰일을 치렀다. 현대차그룹도 가족들의 활발한 경영참여와 재산증식이 화제가 됐다. 재벌가의 결혼과 경영권 승계, 형제간 암투 등은 그 어떤 뉴스보다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 자체로도 흥미를 자아내지만 이들의 행보에 따라 국내 재계의 ‘지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룹들이 20세기 초반에 창업해 사사가 반세기를 넘어섰다. 창업주시대를 지나 2세,3세,4세로 이어지면서 세가 크게 불어났다. SK를 제외한 3대그룹은 이미 몇차례 ‘세포분열’을 통해 방대한 방계그룹을 탄생시켰다. 현대그룹의 경우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55대 대기업집단에 현대차, 현대,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KCC, 현대산업개발, 현대오일뱅크 등 무려 7개그룹이 이름을 올렸다. 재벌들의 세포분열은 형제간 재산분배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재벌가의 ‘족보’를 따라가면 한국 재계의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서울신문 산업부 기자들이 지은 ‘한국을 움직이는 힘-재벌 家脈(무한)’ 상권은 4대그룹의 발전과정과 가족사를 추적하고, 이들 그룹의 성장과 함께한 전문경영인들을 집중 조명했다. 삼성, 현대,LG,SK그룹과 분화된 그룹들을 한번에 묶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고 취재 뒷얘기도 따로 소개했다.460페이지.2만 2000원. 산업부 ukelvin@seoul.co.kr
  • “백년손님 옛말” 사위CEO 뜬다

    “백년손님 옛말” 사위CEO 뜬다

    재벌가의 사위 최고경영자(C EO)들이 뜨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재벌가의 사위들이 오너 2∼3세 못지않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경영권을 물려받은 일이 잦아졌다. 현재현(56) 동양그룹 회장은 최근 ‘부산 APEC 서밋’ 의장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가장 성공한 ‘사위 경영인’의 반열에 올랐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은 두 딸인 혜경·화경씨만 두었는데 생전에 이미 사위 경영 체제를 유지했다. 현 회장은 이 회장의 큰딸 혜경씨의 남편으로, 지난 77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동양시멘트 이사를 시작으로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현 회장은 외환위기로 인해 한때 부채 비율이 1000%까지 치솟는 등 위기를 맞았으나 수년간 강도높은 구조 조정과 내실 경영으로 그룹을 안정시켰다.APEC을 계기로 글로벌 경영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둘째딸 화경씨의 남편은 담철곤(50) 오리온그룹 회장이다. 담 회장은 식품과 유통,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등으로 사업군을 확대하면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사위 파워’가 거세다. 정몽구 회장의 큰딸 성이씨와 결혼한 선두훈(48) 대전 선병원 이사장은 정형외과 전문의이면서도 의료벤처기업인 코렌텍의 대표를 맡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직·간접 계열인 위아(비상장)와 동해전장이 이 회사에 대규모 출자를 해 관심을 끌었다. 정태영(45)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은 정 회장의 둘째딸인 명이씨의 남편. 현대차그룹의 금융부문을 책임지는 CEO로서 적자였던 카드와 캐피털부문을 올해 동반 흑자로 돌려놨다. 셋째딸 윤이씨의 남편인 신성재(37) 현대하이스코(옛 현대강관) 사장도 지난 3월 사장에 올랐다. 영업본부장 시절에 1조원대에 머물던 연간 매출액을 2조 3000억원대로 끌어올려 ‘장인’의 눈도장을 받은 결과다. 안용찬(46) 애경산업 사장도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딸 은정씨와 결혼, 애경에 몸담았다. 지난 95년 사장으로 취임한 뒤 부채 비율을 대폭 줄이는 등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임직원들은 안 사장을 장 회장의 사위보다 전문 경영인으로 인정할 정도다.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 회장과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인 장대환(52)씨도 매일경제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다. 박장석(50) SKC 사장은 SK그룹 최종건 회장의 둘째딸 혜원씨의 남편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서정호(62) 삼양식품 사장도 창업자 전중윤 회장의 맏사위다.‘우지 파동’으로 잠시 야인생활을 했던 서 사장은 경영 정상화라는 중책을 부여받고 ‘명가’ 재건에 나서고 있다. 반면 창업주의 딸이나 사위의 경영참여를 원천 봉쇄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코오롱그룹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동양은 국내 재벌가(家)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동양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이 1945년 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데다 이관희(76)여사 사이에 딸만 둘을 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창업주의 차녀인 화경(49)씨가 일찍이 경영에 참여해 현재 오리온 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동양의 ‘경영 대권’은 맏사위인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둘째 사위인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에게 돌아갔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만큼 이 창업주가(家)의 혼맥도는 정·관·재계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달리 단순하다. 또 이 창업주가 딸들의 통혼을 통해 사돈가(家)의 후광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유업을 이어갈 사위들의 ‘사람 됨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혼맥의 단순함을 더했다. 특히 오리온 담 회장의 집안이 화교 출신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설탕왕·시멘트왕’ 이양구 창업주 동양 창업주인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작은 농가에서 부친 이교흠(작고)씨와 모친 김성자(작고)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면서 서남의 어린 시절은 힘겨운 생활로 점철됐다.15세의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 졸업장을 받은 서남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함흥물산’이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했다. 서남은 훗날 이곳에서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배웠다고 밝혔다. 8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은 서남은 1938년 식품도매상인 ‘대양공사’를 시작으로 6·25전까지 수차례의 회사를 세우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고향에 수십만평의 토지와 1억원에 가까운 거금도 삼팔선과 전쟁으로 잃었다. 그러나 그는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전시의 특수 경기와 생필품 부족이 거꾸로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서남은 부산과 마산, 대구 등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렸다. 서남은 당시 국내 유일하게 설탕을 생산했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와 가까운 사이였다. 서남은 1955년 삼성 이 창업주와 풍국제과의 배동환씨 3인의 공동 출자로 동양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풍국제과의 경영에도 참여해 오늘날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기틀을 다졌다. 또 동양제당이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서남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서남은 1957년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 노후시설 교체와 증산을 통해 한때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규 업체의 대거 진입으로 시멘트가 남아돌았고, 정부의 금융 긴축정책으로 동양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서남이 훗날 ‘운명의 날’이라고 밝혔던 1971년 9월10일 법원에 회사보전신청을 제출해 세인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살아났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가 사실상 동양의 구명줄이었으며, 평상시 쌓아온 정직과 신용도 큰 도움이 됐다. ●운명적인 만남 서남과 이관희 여사의 인연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6·25가 이들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거제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했다. 6·25 발발로 3년 5개월만에 공군 소속으로 귀향한 서남은 모친의 부탁에 이관희씨와 약혼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관희씨는 당시 함흥의 명문인 영생고녀(永生高女)를 나와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의 전쟁 개입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도 못올리고 생이별을 하게 됐다. 부산으로 내려온 서남은 가족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뒤늦게 피란선을 타고 월남해 거제도에 머물던 관희씨와 극적으로 만났다. 이 여사는 현재 서남재단 이사장으로 남편의 유업을 기리고 있다. 서남과 이 여사는 슬하에 장녀 혜경(53)씨와 차녀 화경씨 등 2녀를 뒀다. 이화여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혜경씨는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회장과 결혼했다.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혜경씨는 현재 전공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 회장의 집안은 전형적인 선비 가문이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 현상윤 총장이 그의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씨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고 현 교수의 3남2녀 가운데 셋째다. 첫째는 고려대 대학원장인 현재천(61)씨이며, 둘째는 현재민(59)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51) 세종대 교수, 차녀는 현재란(49) 의사로 현재 이화의원 원장이다. 현 회장과 이 고문은 ‘정담(28·여)-승담(25·남)-경담(23)-행담(18)’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2세 모두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녀 현 회장과 동문이다. 첫째인 정담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로 전공한 뒤 지금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장남 승담씨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차녀 경담씨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행담씨는 스탠퍼드대 교양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서남의 둘째 딸 화경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1980년 뜨거운 열애끝에 담철곤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담 회장의 선친은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으며, 타이완 국적으로는 한의원 경영이 쉽지 않아 일찍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화경씨와 담 회장은 슬하에 경선(20)씨와 서원(16·남) 1남1녀를 뒀다. 경선씨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서원군은 국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서남가(家)의 혼맥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나마 현 회장 집안을 통해 정·재계에 인연이 이어진다. 현 회장의 조부인 현상윤 전 총장은 6∼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봉환 전 국회법사위 위원장과 사돈지간이다. 김 전 법사위원장은 손경식 CJ 회장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잉꼬 부부 이 고문과 현 회장은 중매로 만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결혼 이후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에 홀로 유학한 현 회장은 이 고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고, 편지 첫 머리에 늘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적었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서로가 첫 사랑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온 담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이 사장을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이 때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10년 이상 연애했다. 담 회장이 미국 조지워싱턴대로 유학간 4년이 유일하게 떨어진 시간이었다. 이 때도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싼 국제전화를 하는 탓에 꾸중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친구에서 연인, 다시 부부로 인연이 이어지기까지 두 사람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오랜 만남을 지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결혼때는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국내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 CEO(최고경영자)’다. 담 회장은 현재 이 사장이 총괄경영을 맡고 있는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사업 아이디어를 추진한 주역이다. 이 사장은 “나는 다소 감성적인 반면 담 회장은 실용적이어서 상호 보완이 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이제는 이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시에 더없이 훌륭한 사업 파트너”라고 곧잘 언급한다. ●혹독한 경영 수업 서남은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더 철저하게, 더 강하게 경영 수업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내 딸, 내 사위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는 것이 서남의 ‘후계자론’이다. 현 회장은 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입문한 뒤 결혼과 함께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재계의 첫 발을 내디뎠고, 초고속 승진을 통해 동양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알려졌다. 그러나 후계자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 창업주는 타계하는 날까지 두 사위와 작은 딸에게 이론과 실전으로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이후, 이 창업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았다. 낮에는 현장을 같이 누비며 실전과도 같은 수업을 받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수십년동안 쌓아온 이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 창업주의 경영수업은 이틀 정도 잠을 안재우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이화경 사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에서 인턴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담철곤 회장도 유학을 마친 후 동양시멘트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창업주는 ‘경영자가 되려면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며 두 사람 모두 구매부로 발령냈다. 이후 이 사장은 영업부를 제외한 각 부서를 돌며 업무를 익혔다. 특히 마케팅담당 시절엔 획기적이고 신선한 광고로 광고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 광고다. 그는 입사 26년만에 오리온그룹의 외식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담당하는 CEO에 올랐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한국의 여성부호 50인 가운데 8위(1652억원)에 올랐다. 담 회장도 81년부터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구매부장과 사업, 관리, 영업 상무 등을 거치며 89년 동양제과 CEO에 올랐다. ●동양·오리온의 분가 이 창업주가 1989년 타계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를 맡았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13년간 각각 시멘트·금융,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영역에서 독자 경영을 해왔다. 이 때문에 사위간에 기업 분할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여기에 동양제과가 영상미디어 분야에 투자와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30대 기업집단으로 제한을 많이 받아 계열분리가 빨라졌다. 동양제과는 2001년 9월1일 동양에서 분가했다. 동양그룹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여전히 그룹 CI(기업이미지)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뿌리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동양과 오리온의 분가는 미래 지향적인 경영을 위해서이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그룹이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지를 펼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 이후 동양은 금융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증권·종금·투신업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사로 거듭났으며, 동양생명은 6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동양은 현재 제조업 6개사, 금융 7개사로 총자산은 15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 300억원을 기록했다. 오리온그룹은 케이블 방송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해 계열사를 26개사로 늘렸다. 지난해 매출액 1조 5300억원을 올렸다. 특히 미디어플렉스의 극장사업체인 메가박스는 전국에 117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최고의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말아톤’과 ‘웰컴투 동막골’,‘가문의 위기’ 등을 잇달아 흥행시켜 설립 3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베니건스를 중심으로 한 외식사업과 편의점 사업체인 바이더웨이 등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양·오리온의 대표 CEO 노영인(59) 동양시멘트 사장은 30여년을 시멘트업계에 종사한 산증인이다.98년 동양시멘트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외환위기 한파를 수출로 돌파했다. 그동안 시멘트 수출은 채산성이 안 맞고, 선진국의 품질검사가 까다로워 시늉만 내왔다. 그러나 노 사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밀어붙여 99년에는 창사이래 최대 물량인 171만t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579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기나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노 사장은 동양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박중진(54) 동양종합금융증권 부회장은 금융업계에선 신사로 통한다. 친근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 그는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증권과 동양생명, 동양종금을 거치며 10년이상 실전 금융을 익혔다. 윤여헌(57) 동양생명 사장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건설부와 재무부를 거쳐 95년 동양에 합류했다. 윤 사장은 겉치레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내실형’ 스타일이다. 철저한 손익 위주의 경영을 선호한다. 오리온그룹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상우(48) 오리온 대표이사를 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1987년 오리온(옛 동양제과)에 입사한 이후 줄곧 마케팅 분야를 맡았다. 농심이 장악한 국내 스낵시장에 포카칩과 스윙칩 등을 출시해 오리온의 돌풍을 일으켰다. 오일호(53) 스포츠토토 사장은 1987년 오리온 마케팅부 과장으로 입사해 오리온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004년엔 스포츠토토 사령탑을 맡아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초기 난관을 극복했다. 특히 가라앉은 ‘토토´를 최근 ‘토토 붐´으로 확산시킨 것은 그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golders@seoul.co.kr ■ 창업주 두딸 이혜경·화경씨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자매.’ 이혜경(53) 동양매직 고문은 국내 ‘재벌가(家)의 딸’들이 그러하듯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공(이화여대 미대)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정에 더 충실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장녀로서 모친인 이관희(서남재단 이사장) 여사를 도와 부친의 뜻을 기리는 서남재단의 이사로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이다. 반면 이화경(49) 오리온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현 오리온)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밑바닥을 두루 거친 뒤 26년만에 오리온 사장에 올랐다. 약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장은 그동안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언니와는 다르게 ‘바깥 일’을 더 중시한다. 이 때문에 자매를 잘 아는 지인들은 보통 언니를 ‘살림꾼’으로, 동생을 ‘여장부’로 부른다. 이 고문은 소박하면서 다정다감하다. 살림을 손수 챙기며,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다. 미술 감각을 살려 실내 장식과 정원 등은 손수 꾸민다. 또 혼자서 곧잘 동대문 시장에 나가 살림 도구나 가족 옷을 산다.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1남3녀를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대에 진학시킨 것은 이 고문의 노력과 관심 덕분이다. 이 고문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때 사회활동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수년간 미국에 머물며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현 회장도 틈틈이 아이들의 영어와 수학을 직접 가르쳤다. 막내딸 행담씨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고문은 건강 관리를 위해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 사장은 경영인, 아내, 엄마의 ‘1인3역’을 소화하느라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홀한 법이 없다. 자녀(1남1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업무 외의 약속은 잡지 않는다. 경영인으로서 이 사장은 어떨까. 호탕하고 도전정신이 강해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간 현대경영이 2003년 8월 100대 기업 비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세대 여비서들이 모시고 싶은 CEO’에 뽑히기도 했다. 그만큼 업무상의 유연함과 직원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쳐 누구보다 현장 분위기와 실무진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오리온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직원들은 이 사장을 열정적인 CEO로 평가한다. 이 사장이 전담하는 계열사는 온미디어와 미디어플렉스, 외식 사업부문인 롸이즈온 등 3개사. 일주일을 나눠 각각의 회사에 출근한다. 이 사장은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직원들과 직접 회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영화사업을 담당하는 CEO로서 때로는 서울 삼성동의 메가박스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사장은 “내가 재밌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golders@seoul.co.kr ■ 두 CEO 경영스타일 비교 ‘외유내강 VS 실용주의’ 사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다 보니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은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재계 안팎에선 현 회장을 선 굵은 외유내강형으로, 담 회장을 철저한 실용주의형으로 분류한다. 기업의 성장세로는 담 회장의 오리온이 빠르다.1989년 매출액 1360억원에 불과했던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지난해 1조 5300억원으로 10배 이상 키운 것은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한 담 회장의 공이 크다. 현 회장은 오리온이 분가한 이후 그룹 구조조정에 매진했다. 금융계열사를 통합, 매각하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이 덕분에 1000%를 웃돌았던 부채비율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상대적으로 그룹의 외적 성장은 더디었지만 속은 눈에 띄게 알차졌다. 현 회장은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재계의 ‘스타 CEO’로 떠올랐다.CEO 서밋 의장으로서 각국 CEO(최고경영자)들과 토론 및 기자회견을 깔끔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 한 자신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외유내강형 CEO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 회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룹 총수가 화를 내서 임직원들의 기를 꺾으면 차후 일 진행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원칙에 따라 결정된 내용은 남들이 주저해도 과감하게 추진한다. 현 회장이 경영자로서 평가받은 첫 사업은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인수다. 당시만 해도 증권사는 대형사고와 부실경영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터라 임직원들의 증권사 인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현 회장은 자본금 20억원에 지점이 덜렁 하나뿐인 일국증권을 불과 5년만에 10대 증권사로 키워냈다. 이를 계기로 동양은 30년간 지속된 시멘트와 제과 사업에서 탈피해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를 일궈냈다. 현 회장의 취미는 바둑. 중학교 시절 바둑을 배워 고등학교 때는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대학 때는 교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했다. 장수영 9단에 2점으로 버티는 아마 고수다. 현 회장의 고교·대학 동기들은 그를 ‘티없는 친구’로 기억한다.“품성이 맑고 깨끗하며 원만할 뿐 아니라 일처리까지 깔끔하다.”는 것이다. 담철곤 회장은 실용주의자이자 ‘일벌레’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도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 대신 스키 등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냉혹한 스타일도 아니다. 직원들은 잔정이 많은 CEO라고 얘기한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부장 시절에 기획안을 제출했다가 담 회장으로부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회장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왔습니다.‘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직원의 기를 꺾지 않으려는 회장의 배려였지요.” 담 회장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90년대 초반에는 20대 중심의 신규 사업팀을 구성한 뒤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사업에 진출해 쓴맛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훗날 오리온의 케이블 TV사업과 극장·외식사업 등으로 진출해 현재의 그룹 규모를 갖추는데 일조했다. 담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잘 엮는다. 국내 제과사들이 90년대 안방시장에 안주하며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을 당시,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오리온의 고성장을 주도했다.2003년엔 남들이 모두 망했다고 평한 체육복표 사업체 스포츠토토를 인수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꿔 놓고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벌가 2~4세 내년 승진 기상도 ‘흐림’

    재벌가 2~4세 내년 승진 기상도 ‘흐림’

    연말 연시 인사철을 앞두고 재벌가(家) 2∼4세들의 승진에 관심이 집중된다. 재계는 올 초 정기인사에서 약속이나 한 듯 대규모 임원 승진에 묻어 2∼4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거나 핵심 요직에 속속 앉혔다. 그러나 내년 초 정기 인사에선 좀 다를 모양이다. 대기업 상당수가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승진 인사보다 문책성 인사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재계발(發) 악재들이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어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2∼4세들을 승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재벌가는 경영 수업과 후계 승계 등의 일정에 맞춰 과감한 승진이나 발탁 인사가 예상된다. 연말 연시 인사철을 앞두고 재벌가(家) 2∼4세들의 승진에 관심이 집중된다. 재계는 올 초 정기인사에서 약속이나 한 듯 대규모 임원 승진에 묻어 2∼4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거나 핵심 요직에 속속 앉혔다. 그러나 내년 초 정기 인사에선 좀 다를 모양이다. 대기업 상당수가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승진 인사보다 문책성 인사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재계발(發) 악재들이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어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2∼4세들을 승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재벌가는 경영 수업과 후계 승계 등의 일정에 맞춰 과감한 승진이나 발탁 인사가 예상된다. ●눈길끄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내년 정기 인사에서 승진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가 재계의 주요 관심사로 꼽힌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상무와 관련된 악재가 적지 않아 “힘들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많지만,“승진은 원칙대로 갈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올해로 상무 3년차인 이 상무는 승진 조건만큼은 충분히 갖췄다. 소니와 합작사인 ‘S­LCD’ 등기이사로 활동하며, 높은 인사고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 정기 인사에선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는 승진했지만 이 상무만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승진 대상에서 빠졌다. 재계에서 또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SK의 최씨가.SK는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고, 경영 실적도 좋아 내년 정기인사에서 대규모 승진이 예상된다. 더구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최재원 SK E&S 부회장이 최근 대표이사로 복귀하면서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표문수 전 SK텔레콤 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최 부사장은 SK가의 2세 가운데 유일하게 대표이사를 맡고 있지 않아 내년 인사에선 최고경영자(CEO) 승진 관측이 나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물러났던 표 전 사장의 복귀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SK측은 “표 전 사장이 SK 복귀보다 개인사업 추진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복귀 가능성을 사실상 부인했다. 보폭을 넓혀가는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 가능성도 눈길을 끈다. 재계에선 경영수업을 더 쌓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부회장 승진까지 초고속으로 올라간 만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허창수 GS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대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과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팀장, 고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장남인 설윤석 과장 등도 눈길끄는 2세들이다. ●2세 승진 ‘속도조절?’ 오너가의 승진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곳도 적지 않다. 두산 박씨가의 4세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두산그룹이 정기 인사보다 수시 인사 스타일이지만 아직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아 승진은커녕 오너가가 한동안 나서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LG 구씨일가의 승진도 적을 것으로 점쳐진다. 우선 그룹 실적이 지난해보다 좋지 않은 데다 구씨가 가운데 승진 대상이 별로 없다. 구본무 LG 회장의 양자인 광모씨는 아직 학생 신분이며,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도 승진한 지 2년밖에 안됐다. 또 고 구자승 LG상사 사장의 본걸-본순-본진 3형제도 상사내 패션 부문을 맡은 지 1년밖에 안됐다. 올 초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셋째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조카인 정일선 BNG스틸 사장 등이 잇따라 CEO로 승진한 현대차그룹은 내년 인사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TV는 노처녀를 모른다

    TV는 노처녀를 모른다

    ●‘딴나라’ 노처녀 됐거든 노처녀는 사회에서도, 브라운관에서도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드라마에서 결혼하지 못한 고모, 이모 등으로 감초처럼 등장했던 시절은 훌쩍 지나갔다. 이제는 당당하게 주인공 캐릭터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지난해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성공에 이어 올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안방극장에서는 30대 노처녀 또는 싱글 여성의 일과 사랑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드라마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작품(시트콤 포함)만 5∼6개에 달한다. 그런데, 실제 30대 여성들의 모습을 드라마 속 노처녀들이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다. #30세? 노처녀 아니거든∼! 도대체 나이가 얼마 정도면 노처녀일까? 예전에는 20대 후반이나,30대 초반 여성 싱글을 두고 노처녀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인식이 아직 남아 있으나, 달라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 한 피부미용 전문업체가 여성 네티즌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을 벌인 결과,42.2%가 30대 중반 이후를 노처녀로 꼽았다.30대 초반이라는 답변이 31.1%로 뒤를 이었다. 사회 흐름에 따라 노처녀 기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 그런데 드라마는 예전 기준을 에 머무는 게 많다. 최고령 노처녀 주인공은 SBS 아침드라마 ‘들꽃’의 이순애(이아현). 서른다섯 살이다. 이 정도면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타 드라마들은 대부분 32∼33세 노처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주인공은 아니지만,28∼29세도 때때로 노처녀 멍에를 뒤집어쓰기도 한다.MBC 수목 미니시리즈 ‘영재의 전성시대’의 주인공 주영재(김민선)는 서른 살 노처녀라고 한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청자들이 많다. #노처녀는 사랑에 목매지 않는다! 드라마 속 노처녀 또래의 현실 속 여성들이 가장 불만을 품고 있는 부분은 여성이 순수하게 일로 승부하는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홍보대행사 과장, 내레이터 모델, 조명 디자이너, 소믈리에, 액세서리 공장 사장 등 드라마 주인공들 직업은 정말 다양하다. 노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 드라마가 시작할 때 일과 사랑을 운운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사랑으로 기울어진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성공 스토리는 성공 스토리인데, 사랑 성공 스토리로 변질된다는 것. 또 일로 성공한다 해도 스스로 성취하기보다는 주변에서 거드는 사람이 있다. 도우미로는 대개 부잣집 남정네가 선택된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SBS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의 차봉심(김원희)은 한물간 내레이터 모델이나, 부잣집 도련님과의 좌충우돌 관계 속에서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들꽃’의 이순애 주변에도 기억을 잃은 재벌가 남자가 맴돌고 있다. 반면 MBC 주말연속극 ‘결혼합시다’의 홍보대행사 과장 홍나연(강성연)은 일에서는 분명히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그런데 결혼에 목숨을 건다. 그다지 노처녀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기준으로 보면 SBS ‘프라하 연인’의 윤재희(전도연)도 29세 노처녀다. 외교관인데 일은 뒷전이고, 연애가 우선이다.KBS 시추에이션 드라마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의 메인 캐릭터,34세의 이혼한 싱글 소믈리에 홍진주(변정수)는 남자에 목말라 한다. 직장인 이소영(32)씨는 “노처녀 드라마 가운데 재미있게 보는 것도 많다.”면서 “하지만 실제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나는야 New쳐녀 ‘노처녀 드라마, 하나 추가요∼!’ 16일부터 시작한 MBC 수목 미니시리즈 ‘영재의 전성시대’(연출 이재갑, 극본 김진숙)도 속칭 ‘노처녀 드라마’다. 꿈 많고, 낙천적인 주인공 주영재(김민선)는 나이 서른 살에, 직장 8년 차 말단 직원인 여성으로 설정됐다.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최고 조명 디자이너를 꿈꾸는 인물이다. 제작진은 일과 관련된 영재의 고군분투를 통해 바람직한 직장 여성상을 제시하겠다는 야심만만한 의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99년 김희선이 나왔던 ‘토마토’식 트렌디 드라마로 귀결될 가능성도 높다는 시선이 팽배하다. 영재의 주변에는 유학 끝에 조명 디자인계에서 성공해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 상사로 왔지만, 아직도 영재를 잊지 못하고 있는 옛 애인(조동혁)과, 가짜 연애로 만나게 된 자존심 강한 실력파 디자이너(유준상)-집에 손 벌리지 않는다는 설정을 갖고 있지만, 어쨌든 집안이 재벌이다-가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영재의 성공에 삼각관계를 이루는 남자 주인공들이 어느 정도 기여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재갑 PD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또 노처녀 드라마야?’하는 반응도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영재는 결혼이나 사랑에 안달이 난 캐릭터가 아니다. 기존 드라마와 어떻게 다른지는 이야기가 전개돼가며 평가해 달라.”는 바람을 밝혔다. 과연 영재가 연애가 아닌 일로써 전성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지, 또 새로운 30대 노처녀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코오롱의 역사는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땅에 가장 먼저 나일론을 들여와 의생활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한때는 수출 한국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성숙산업에 따른 한계로 인해 코오롱은 재계서열이 점점 밀려났다. 섬유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오롱의 3세 경영이 닻을 올린지 올해로 10년째. 이웅열(49) 회장은 올해를 그룹경영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기 위해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 노후화된 주력 사업에 다시 기름을 칠하고, 쪼이고, 닦고 있는 것이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거치며 체질을 바꾼 코오롱이 재도약을 위한 또 한번의 체질 개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풍운아 이원만 창업주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83) 명예회장은 부자간이면서도 사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창업주가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사업의 ‘바람막이’가 돼 줬다면, 이 명예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챙겼다. 부자는 동업자로서 4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코오롱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명예회장이 2세이면서 창업 1.5세대로 불렸던 까닭이다. 부자는 사업 파트너로서 환상의 듀엣이었지만 가정적으론 한때 애증의 관계였다. 기업가보다 정치가로서 더 알려진 이 창업주는 워낙 풍류를 즐기는 성격인 데다 이 명예회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은 전답마저 처분하고, 사업을 위해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나이에 모친과 누이동생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선친은 이 명예회장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친의 호방한 성품과 능숙한 화술 등은 당시 정·재계에서 유명했다. 이 창업주는 술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선 재담으로 좌석을 압도했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문화재’로 불리울 정도였다. 이 창업주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 기반을 닦았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1957년엔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 공장인 한국나일론(현 ㈜코오롱)을 설립했으며,63년엔 나일론 원사 공장을 지었다. 그는 또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구로공단과 구미공단을 조성하는 산파역할을 했다. 이 창업주는 정계에도 발을 들여 대한민국 초대 참의원과 6,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인맥 만들기에 탁월한 수단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이 창업주는 1960∼70년대 정·재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1.5세대 창업주 이동찬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항상 비서와 한 방에서 잡니다. 비서들에게 해외 출장은 그야말로 곤욕이었죠. 회장이 바로 옆에서 주무시는데 잠이 편히 옵니까. 출장에서 돌아오면 몸무게가 3∼4㎏은 그냥 빠져요. 그렇다고 1달러가 아쉬운 나라에서 잠자는 곳에 돈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씀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코오롱 비서 출신의 한 임원 얘기다. ‘가장의 짐’을 일찍 떠안은 탓에 이 명예회장은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한 번은 이 명예회장이 1947년부터 50여년 이상 신었던 슬리퍼를 비서실에서 새 것으로 바꿨다가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찾았던 적도 있다. 또 이 명예회장의 점심 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이었으며, 삼복 더위도 부채와 선풍기로 보냈다. 그는 15세 때 경리사원으로 부친의 사업을 도운 지 35년 만인 1977년 코오롱 회장에 올랐다. 그는 등산식, 마라톤식으로 표현되는 꾸준한 내실 경영으로 그룹의 체질을 다져놓은 이후 섬유와 무역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건설과 화학으로 확대했다.1980년대는 전자소재와 합성섬유 등 신업종으로 영역을 더욱 넓혔다. 이 명예회장은 과외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7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후 1975년 농구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다양한 단체에서 활약했다.1980년에는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스포츠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경총 회장은 82년부터 무려 14년간이나 했다. 1996년 1월 이 명예회장은 1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은 장남인 이웅열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선친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3박4일’ 이웅열 회장 이웅열 회장은 5명의 누이들 속에서 컸지만 성격은 대단히 남성스럽다. 특히 스포츠를 좋아해서 축구와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또 시작하면 프로(?)수준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별명이 ‘3박4일’로 불린 이유는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다. 그의 학창 시절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부친인 이 명예회장이 박하지 않을 정도의 용돈만 줬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재벌 아들이 ‘짜다’는 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이 회장은 활달하고 사교적이다. 전경련 e비즈니스 위원장을 맡아 재계 2∼3세의 리더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가깝게 지낸다. 그의 이같은 사교적인 성격은 조부인 이원만 창업주의 성품과 닮았다. 호방하고 풍류를 즐겼던 이 창업주는 사업가보다 정치인으로 이름이 더 잘 알려졌다. 1989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한 이 회장은 이동통신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파고로 계열사 매각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 지분(1조 700억원어치)을 팔아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팔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오롱의 어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섬산업이 고유가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수익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권 장자 승계 코오롱 가문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4녀를 뒀지만 이 명예회장은 1남5녀, 이웅열 회장도 1남2녀다. 그룹 경영은 장남만 참여하고, 딸들과 사돈가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한다. 장자일계(長子一系)의 경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코오롱가의 특징이다. 다른 그룹들이 사돈을 비롯한 친인척들로 방대한 족벌 경영체제를 이룬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원천 전 사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친인척 배제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창업주가 그룹경영을 맡고 있을 때는 사위들의 경영 참여가 적지 않았지만,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이같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정해졌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우리 집 여자들은 아버지 사업이나 남편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 법이 없다. 사위들이 처가 덕을 보고 한자리 하겠다면 득보다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 해내는 경우에도 열등감이 생긴다. 능력이 없다고 ‘백년손님’이라 쫓아낼 수는 없는 일이니 난처해질 것이고, 훗날 내가 일선에서 물러날 땐 조용해지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로 철저히 장자일계의 경영구조를 갖춰 경영권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다툼을 미리 차단했다. ●김종필 전 총재와 한때 사돈 이원만가(家)의 혼맥은 국내 재벌가의 최정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화려하다. 이 창업주의 넓은 정계 인맥과 국내 굴지의 섬유그룹인 코오롱을 기반으로 정·관·재계 곳곳에 혈연 관계를 맺었다. 이 창업주와 이위문(작고) 여사는 2남4녀를 뒀다. 이 창업주의 영향력이 정·재계에 미치기 전에는 자녀들을 평범한 집안과 통혼시켰지만, 사업 성공에 이어 정치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 시기엔 국내 내로라하는 집안을 사돈으로 맞았다. 이 때문에 정략 결혼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장남 이동찬 명예회장은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장가부터 들라.’는 부친의 강요로 맞선을 본 지 1주일 만에 평산 신씨가(家)의 무남독녀 덕진(82)씨와 결혼했다. 이 명예회장 부부는 지난해 1월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장녀 봉필(72)씨는 54년 고향 인근 임병진씨의 아들 승엽(작고)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차녀 애란(63)씨는 노영태(63)씨와 혼인을 치렀다. 3녀 미자(61)씨는 포항지주인 박문학가(家)의 장남 성기(66)씨와 결혼했다. 성기씨는 한국바이린 사장을 역임했다. 차남 이동보(56)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 미향(51)씨의 결혼으로 코오롱가는 재계 혼맥도의 핵심으로 올라선다. 이 전 회장은 74년 제3공화국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총재의 장녀 예리(54)씨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코오롱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으며, 최고 권력가와 혈연의 끈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은 육영수 여사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88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분가했지만 부도와 구설수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막내 미향씨는 삼립식품 창업자인 허창성 집안으로 출가했다. 식품종합그룹인 SPC의 허영인(56) 회장이 그의 남편이다. ●정략결혼과 3세 혼맥 코오롱가의 혼맥은 3세로 내려가면 더욱 빛이 난다. 이 창업주가 자신의 입지와 뜻을 펼치기 위해 손주들을 정략 결혼시킨 경우가 있어서다. 이 명예회장과 신 여사는 슬하에 경숙, 상희, 혜숙, 은주, 웅열, 경주씨 등 1남5녀를 뒀다. 장녀인 경숙(59)씨는 1969년 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였던 고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3남 문조(65)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전 국회의장은 도쿄대를 나와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정치에 투신해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선 대구·경북(TK) 인맥의 대부로 통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조씨는 현재 영남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녀인 상희(56)씨는 국내 대표적 ‘송상(松商)’으로 불렸던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 집안으로 출가했다.1973년 고 회장의 장남 석진(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진씨는 코오롱제약(옛 삼영신약) 사장을 거쳐 빠이롯드전자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부도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98년 별세했다. 3녀인 혜숙(53)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58)씨와 결혼했다. 현재 고려해운 회장인 동혁씨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출신이다. 해운선사로서는 처음으로 타이완과 홍콩 등 동남아 항로에 진출해 해운업계의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이름이 높다. 4녀인 은주(51)씨는 테니스 인연으로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장남 영철(55·의사)씨와 결혼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이들 부부 결혼식은 신 전 총재가 직접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웅열 회장은 큰 누이 경숙씨의 소개로 1983년 황해도 출신인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창희(45)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 회장은 1962년 고급벽지의 대명사인 갈포벽지를 만들어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부인 창희씨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이 회장 부부는 규호(21)와 소윤(18), 소민(16) 등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5녀인 경주(46)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46)씨와 결혼했다. ●딸·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장자 경영과 친인척 경영 배제의 원칙 때문인지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대외 활동보다 가정주부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애쓴다.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신 여사는 지금껏 바깥 사교모임에 한번도 참석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 여사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3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이 명예회장의 모친인 고 이위문 여사가 남편인 이 창업주의 호방한 성격과 바깥 활동으로 마음 고생이 매우 심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운 선례 때문이다.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들은 또 모두 이화여대 동문들이다. 장녀 경숙씨가 생활미술과를 나왔으며, 상희씨는 기악과, 혜숙씨는 가정학과, 은주씨는 도서관학과를 나왔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에 딸들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장녀는 걷는 모양부터 급한 성격까지 나를 제일 많이 닮았으며, 둘째는 시댁에서 살림만 하는 편이지만, 항상 밝고 착한 데다 쓸데없이 친정에 오는 일이 없다. 셋째는 공부도 제일 잘했고, 바른 소리도 잘했다. 악바리면서 의리가 강하다. 넷째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덜렁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며느리 창희씨도 코오롱가의 여자답게 대외 활동보다 조용히 집에서 자녀 교육과 남편 내조에 열심인 한국적인 주부다. 사교 모임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창희씨지만 코오롱그룹 간부 부인들로 구성된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 활동엔 적극 나서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의 ‘李트리오’ 지금의 코오롱그룹 토대를 쌓은 주역 가운데 한 명이 고 이원천 전 한국나일론(현 ㈜코오롱) 사장이다.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의 동생이며, 이동찬 명예회장에겐 숙부가 된다. 이 전 사장은 일제시대 때부터 일본에서 형님인 이 창업주의 사업을 도왔다.1957년에는 한국나일론 사장직에 추대돼 코오롱의 ‘섬유시대’를 이끌었다. 당시 이원만-이원천-이동찬 3인은 코오롱에서 ‘이 트리오’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조카인 이 명예회장과 회사 분할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면서 나중엔 경영권 분쟁에 빠졌다. 이 전 사장은 결국 1976년 한국나일론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분을 챙겨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년만에 쓰러졌다. 이 창업주는 이후 장남인 이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겼고, 회장에 오른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을 분가시켰으며, 매제들도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숙부에 대한 회한이 커지는 요즘에도 회사 분할에 반대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숙부와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조카가 숙부의 세력을 완전히 퇴치해 버린 것 아니냐는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룹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라면 나는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사업엔 실패했지만 이원천가(家)의 혼맥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형님인 이원만 창업주가 제3공화국의 실력자 김종필 전 총재와 인연을 만들었다면, 이 전 사장은 또다른 실세였던 정일권 전 총리와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원천가(家)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 집안과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딸 희경씨가 이 전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다. 또 이원천가(家)와 영풍그룹은 한 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장남인 세훈씨가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딸 현주씨와 인연을 맺었다. 영풍그룹은 또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세련씨 가문과도 연이 이어진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 이끄는 전문경영인들 ‘코오롱호’를 이끄는 대표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한광희(56) ㈜코오롱 대표는 코오롱그룹의 간판 CEO다. 그는 요즘 한계사업 정리와 차세대 먹을거리 준비에 분주하다.1976년 코오롱에 입사한 이후 기획관리 등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쳤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한 대표는 책상에 앉아 숫자놀이를 하는 것보다 현장 영업을 더 즐기는 실물형 CEO에 속한다. 민경조(62) 코오롱건설 대표는 23년간 건설에서만 근무한 전문경영인으로 위기관리가 뛰어나다는 평이다. 사내에선 따뜻한 집안의 가장 같은 CEO로 불린다.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막내 직원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똑똑… 민경조입니다, 야근 힘들죠, 문제되는 게 뭔가요, 오늘 팀원들과 저녁 같이 합시다.”로 유명해 먼저 다가서는 CEO로 통한다.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을 정도로 고전에 관심이 많다. 제환석(59) FnC코오롱 대표는 현장주의자다.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800개에 이르는 매장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하나하나 찾았다.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제 대표는 또 CEO 명함 외에 ‘열사모’의 방장 직책을 갖고 있다. 열사모는 제 대표가 만든 모임으로 오프라인의 단체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사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가상의 모임이다.“스스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원 모두가 열사모의 열사”라고 말하는 제 대표는 열사모 방장의 이름으로 직원들과 곧잘 의견을 교환한다. 배영호(61) 코오롱유화 대표는 엔지니어로서는 드물게 미국 뉴욕지사 근무를 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해외 영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죽기살기로 부딪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배 대표는 당시 직원 가운데 한국으로 되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첫 직장에 대한 그의 신의와 열정은 특유의 사업감각과 합쳐져 코오롱유화를 종합화학 회사로 도약시켰다. 김종근(55) 코오롱글로텍 대표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 이름을 기억하고, 애로와 고충을 들어주며, 중요한 정보는 경영에 곧바로 반영한다. 또 직원들에게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을 돌면서 문제와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한다.“사장님은 오늘도 지방사업장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표와 직원들간의 간담회 때문이죠. 간담회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61개 사업장인데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 라운딩입니다. 연초에 전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사업장을 순회하고 계십니다.”한 직원의 이러한 설명에서 올 상반기에 비상장 5개사를 합병, 덩치가 커진 코오롱글로텍을 외형만큼이나 건실하게 키우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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