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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 힘겨루기’ 본격화

    ‘자본 힘겨루기’ 본격화

    해외 투자자들의 과도한 국내자본 빼내가기에 대해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와 재계 등에 대한 외국언론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외국정부와 언론, 자본 등이 합세해, 한국에 대한 비난과 훈수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유럽계의 공격 수위가 한층 노골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투자자들이 국내기업에 대한 경영참여를 공식화했다. 세계적으로 높은 이름값을 갖고 있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시리즈형’ 한국비난 보도는 상식선을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도 현지 자본들의 한국내 이익실현 극대화를 위해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대외 홍보와 함께 내국인의 해외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등 맞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4일 FT는 “EU가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하려는 한국의 은행법 개정안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계획을 마련중”이라고 보도했다. FT가 입수한 EU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한국이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은행 이사의 국적 제한과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WTO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FT는 “이런 움직임이 외국인의 한국 기업 지분소유에 의해 촉발된 반(反) 외국인 감정이 불공정하게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정책 변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FT는 “한국이 ‘5%룰’(주식 대량보유 보고제)을 개정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해 정신분열증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FT는 “경제 국수주의가 한국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FT는 지난해 11월에도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을 인터뷰한 뒤 “한국정부는 시장개방보다 보호주의와 고립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이런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는 “5%룰 강화는 미국 제도를 참고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외국 투자자에 대한 무리한 규제가 아니다.”며 반박했다. 또 은행법 개정안은 의원들이 국회에 제출한 것이지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FT가 잇따라 문제 제기를 하면서 한국의 외국인 규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FT의 의도에도 의구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영국계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이 제일은행을 인수하고, 헤르메스 등 영국계 펀드의 국내 투자가 늘면서 유럽에 근거지를 둔 FT가 유럽계 금융기관의 편의를 위해 한국 금융당국을 압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EU의 입장을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국 정부에 대한 강경한 목소리가 FT 보도 때문에 확산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면서 “국내 금융감독 당국이 삼성물산 투자와 관련해 헤르메스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 것 등도 반발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골드만삭스가 진로 매각을 통해 5배가량의 차익을 거둘 것으로 나타나면서 외국자본에 대한 국내 정서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국제시장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활용해 무리하게 매각가를 띄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재경부는 곧 내국인의 외국 부동산 투자 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계획이다. 과도한 외환보유고를 줄여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지만 우리나라도 민간 차원의 해외 자산시장 공략을 활성화하겠다는 계산이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일 “외환보유고가 많이 쌓일 때 좀더 해외로 뻗어나가 국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면서 “해외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외환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얘 아빠(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숙(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에게서 그룹을 지켜야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섰다. 스물한살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는데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것도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가 평생을 일군 그룹을 덜컥 떠맡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인의 얘기다.“나도 그 점이 궁금해 언젠가 한번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때가 2003년 10월 21일. 그로부터 1년여.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관리종목’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279억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원), 현대증권(580억원 추정치), 현대택배(74억원), 현대경제연구원(3억원)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지난해 말 6조 6400억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현재 19위)에 입성하겠다는 현 회장의 ‘2010 프로젝트’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에 몸담아온 한 임원의 해석은 다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현 회장 취임후) 해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룹의 주축인 현대상선이 살아났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전에 비해 그룹의 방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현 회장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배포와 결단력은 오히려 몽헌 회장(MH)을 능가한다는 게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관련해 또다른 임원의 말이 재미있다.“현 회장을 보고 있으면 사업가 유전자라는게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업가 집안의 둘째딸 현 회장은 1955년 딸만 넷을 둔 사업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78) 회장이 아버지다. 일제때 ‘호남의 거부(巨富)’로 이름을 날렸던 현준호씨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77)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현 회장에게는 외삼촌들이다. 현대가의 며느리 가운데 손아래 동서 김영명(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씨와 더불어 친정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임원의 해석처럼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가 집안의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현 회장의 자매들 이름이다. 언니가 일선씨, 여동생이 지선씨다. 현 회장의 시조카들과 이름이 똑같다.“정씨 집안과의 혼사는 숙명”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니 일선씨는 수입 침장(沈臧) ‘쉐르단’으로 유명한 홈텍스타일코리아 유승지 회장과 결혼했다. 유 회장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친동생이자 유유산업 창업주인 고 유특한씨의 아들. 현 유유산업 유승필 회장의 친동생이다. 동서지간인 유 회장과 생전의 MH는 나이가 같아 유난히 친했다고 한다.MH가 죽기 직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유 회장이 함께 했었다. ●‘군인’ MH와의 첫 만남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때인 1975년 1월 어느날. 현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갔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관계로 잘 알고 지내던 홍콩 행정 장관(C.Y. 퉁)이 방한하자 때마침 열린 선박 명명식에 ‘모시고’ 갔다. 애초 맏딸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딸 둘을 대동하고 나섰다. 몇달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쪽에서 넌지시 연락이 왔다.“군대간 아들이 마침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선박 명명식에서 ‘참한 인상의 늘씬한 재원’을 처음 본 정 회장이 단박에 며느릿감으로 점지한 것이다. 이 때가 75년 5,6월께. 현 회장과 MH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언젠가 현 회장이 사석에서 털어놓았다는 MH의 첫인상이다.“요샛말로 필이 꽂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군인이라 머리도 짧았고…그래도 듬직해 보였다.” 첫 데이트 장소는 ‘군인 커플’답게 서울 태릉사격장. 이듬해 7월 두사람은 결혼했다. ●“나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 현 회장은 결혼 후 첫딸을 낳고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얘들 키우고 살림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걸스카우트연맹(이사)·대한적십자사(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에서 ‘표 안나게’ 사회활동을 했지만 사업가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 상상도 못했다. 현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원의 얘기다.“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확실한 것은 배포가 여간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 참여를 결심한 것도,8개월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도 이같은 배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인데 어디에 그런 배포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경영권 분쟁때의)그 지독했던 마음 고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지력도 대단하다. 더러 확신이 서기까지 결단을 늦추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번복하는 일도 없다.”결단을 내려놓고도 마음이 여려 ‘가신’들의 주장에 흔들리곤 했던 MH와는 대조되는 면모다. 현 회장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지난해 8월 그룹 비전을 선포할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던 때라 사내외에 선언할 ‘비전’이 매우 중요했다.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고 직접 쓴 쪽지를 내밀었다. 임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살림만 하던 사람이 기업 경영과 직원 심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냉소도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용기와 ‘재계 1위 현대’에 대한 자부심이 절실한 때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시간을 지체해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던 가신그룹(김재수 당시 경영전략팀 사장 등)에 대한 인사도 그 해말 전격 단행해 임직원들을 다시한번 놀래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숙부의 난 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삼촌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집안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비즈니스가 얽혀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중립이 현 회장을 도왔다. 현 회장측은 분쟁의 단초가 된 금호생명 대출 200억원에 대한 정상영 회장의 보증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조카(MH)에 대한 의리라고 주장하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였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MH가 정상영 명예회장을 인간적으로 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상영 회장이 MH의 자금줄을 교묘하게 막았다.”면서 “이 때문에 MH가 ‘그룹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상영 삼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KCC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여전히 팔지 않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경영수업 받는 큰딸…‘코디’ 둘째딸… 사격 좋아하는 외아들 시어머니(변중석)가 아이 잘 낳는 보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일찍 가졌다는 큰딸. 딸을 낳자 시댁보다 딸만 넷인 친정의 실망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현 회장의 든든한 친구이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지이(28)씨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해 1월 3일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올 1월 1일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흐름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게 하려는 현 회장의 의지가 읽혀진다. 경영권 분쟁때도 현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과의 대면 자리에 반드시 지이씨를 데리고 나갔다. 맏이답게 찬찬하고 침착해 현 회장에게는 큰 의지가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다. 지난해 10월 그룹 해체후 처음 가진 신입사원 수련회때는 다른 ‘신참’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의 경계심을 녹였다.‘싼타페’를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터울이 크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6년 7개월만에 가졌다는 둘째딸 영이(21)씨는 서울 상명여고 1학년때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만큼 당차다. 보스턴에서 한시간 거리인 사립 고등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언니와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엄마의 의상을 열심히 조언해준다. 막내 외아들인 영선(20)씨는 모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뒤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버지 장례식때 고3(경복고) 수험생이었는데도 어찌나 많은 친구들이 빈소로 몰려왔던지 조문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를 닮아 총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영광 재현 꿈꾸는 핵심 브레인들 경영전략팀이 그룹의 ‘싱크 탱크’다. 다른 그룹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한다. 현 회장 사람들로 전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최용묵(57) 사장을 사령탑으로 이기승(55) 전무-하명호(47) 상무로 수직 연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맡고 있는 최 사장은 경영권 방어전략을 촘촘히 짜 현 회장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선파로, 조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회장 체제에서는 적임이라는 평을 듣는다.76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84년 현대엘리베이터 창립과 함께 관리부장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임직원들과 회사 앞마당에서 족구를 하고 삼겹살 소주 뒤풀이를 즐긴다. 이 전무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금융전문가의 보완을 절실하게 느낀 현 회장이 지난해 6월 외환은행에서 영입해온 이다.KS(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답게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 핵심인맥의 자리를 굳혔다. 미국 디킨스대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하 상무도 재무 전문가다. 현대석유화학에서 지난해 말 그룹 심장부로 옮겨왔다. 그룹의 정신적 뿌리인 대북사업은 ‘서울대 트리오’가 이끌고 있다.“대북사업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왕 회장때부터 ‘소떼 방북’ 등을 성사시키며 현대와 동고동락해 온 김 부회장은 MH가 그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통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라.”고 농담을 던졌을 만큼 2대에 걸쳐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얼마전 부회장으로 승진해 대북 라인 접촉 등 대외 업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내 업무를 떼준 것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자 ‘거리 두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내 업무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의 몫이다. 고문으로 물러나 있다가 김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된 그는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해 실무에 밝다. 서울법대를 나와 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MH와 함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일궜다. 김 부회장의 서울대 공대 직속 후배인 심재원(58) 현대아산 부사장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업무처리가 치밀하다. 그룹의 ‘캐시 카우’(돈버는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노정익(52)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던 2002년 9월 사장에 취임해 1000원대이던 주가를 2만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운반선 매각 등 뚝심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때 들어온 1조원대의 현금이 없었다면 뒤이어 터진 대북송금·분식회계 등의 악재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승선 체험을 자청, 선원들과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하나가 된 덕분에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기는 안홍환(55·부사장) 지원본부장, 회사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현(54·전무) 컨테이너본부장, 일반화물 영업을 이끄는 이동렬(56·전무) 벌크선영업본부장, 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선장으로도 근무한 ‘마도로스’ 신용호(56·전무) 해사본부장 등도 상선의 중추 세력이다. 2003년 6월 부국증권에서 스카우트돼 온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은 ‘현투(현대투자신탁증권) 책임분담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지어 그룹의 고민을 덜어주었다.‘숙부의 난’때는 오랜 증권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어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마평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김 사장을 떠받치고 있는 노치용(53·전무) 도매영업본부장은 그룹 홍보도 겸하고 있어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가며 ‘셔틀 업무’를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때 설득력있는 논리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숙부의 난 당시 격전지(경영전략팀) 한복판에 있었던 현기춘(51) 현 현대엘리베이터 전무도 눈에 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다른 한 축인 한승준(51) 전무와는 춘천고 같은반 친구이다. 기획·관리 전문가로 ‘선 굵은 CEO’로 불리는 김병훈(55) 현대택배 사장, 경제연구원 최초로 수익모델 창출에 도전한 재무관료 출신의 김중웅(64)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현(53) 현대경제연구원장 등도 그룹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경영권 분쟁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임직원들이 경영권이 위협받자 현 회장을 중심으로 차돌처럼 뭉쳤다. 이번 기회에 전열을 확실하게 정비해 그룹의 모태로서 옛 현대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 hyun@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 현대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현대맨은 “90년대 들어 언론에서 빅3(MK,MH, MJ) 운운했지만 그 때는 이미 왕회장이 MH를 후계자로 형제들에게 선언한 뒤였다.”면서 “좀체 칭찬을 하지 않는 왕회장이었지만 MH에 대해서는 심지가 깊은 아이라며 믿음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보성고와 연세대를 나와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MH는 귀국후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세워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그룹 단독 회장에 취임했다. ‘왕자의 난’의 상처를 털고 MH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4일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만 했을 따름이다. 대북송금 특검 등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측근은 당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면 가족들이 낌새를 알아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일축했었다. 투신하기 직전, 가족과 식사한 것을 두고 미리 자살을 준비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 역시 MH가 일요일에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즐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MH는 바깥일을 집에 와 자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가정적인 편이었다. 한 측근의 얘기다.“(대북송금·비자금 수사 등이 진행되자) 나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그때는 혼자 감옥가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살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투신하기 두달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자 부인(현 회장)에게 매일 순두부를 끓이라고 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투신 결심은 순간적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머리도 좋아 따르는 이가 많았던 MH. 그는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꿈(대북사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삶을 접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5살때였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며느리들 현대가의 며느리들은 4월을 ‘제사의 달’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생전에 워낙 제사를 중시한 데다 온갖 제사가 몰려있어 4월에는 아예 청운동 시댁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의 독특한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새벽마다 시댁으로 가 아침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 한 며느리는 “새벽 3시반에 갔다는 항간의 얘기는 다소 과장이고 이를 때는 4시반, 보통때는 5시나 5시반쯤 갔다. 시아버님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벽마다 수행원들 몫까지 김밥을 엄청나게 쌌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한번은 아들들이 꾀가 나 아침식사 회동에 몇번 빠졌다. 대로한 왕회장이 “모두 들어와 살라.”고 불호령을 내려 1년간 청운동 시댁 주변에 모두 모여산 적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왕회장이지만 말년에는 겸상 식사도 허용했다고 한다. 맏며느리 이양자씨는 수도여대를 나와 한때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질적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둘째며느리 이정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씨는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숙명여고를 나왔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넷째며느리 이행자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유난히 여대 출신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여자는 여대를 가야 한다.”는 왕회장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손녀 유희씨(고 몽필씨 딸)도 원래는 연세대 원서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난 뒤 여대로 틀었다고 한다. 며느리든 딸이든 해외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회사 경영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유교적 가풍 탓이다. 왕회장은 “살림에만 신경쓰라.”며 며느리들에게 골프도 치지 못하게 했다. 현정은 회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골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흐르고서야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영 재미가 붙지 않아 골프장에 딱 세번 나가본 뒤 관뒀다고. 오는 10월 ‘금강산 골프장’ 개관에 맞춰 상징 티샷을 날리라는 임원들의 압력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한때 기체조를 배웠으며 ‘걷기’ 가 취미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계7위 GS그룹 “신고합니다”

    재계7위 GS그룹 “신고합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3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에 참석한 구본무 LG회장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57년간의 인연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GS그룹 허창수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는 ‘사랑해요 LG’가 울려 퍼졌다. 재계 7위의 ‘신생 그룹’ GS가 마침내 공식 출범을 선포했다.95년 구 회장 취임 이후 LG는 희성그룹,LG화재,LG벤처투자, 아워홈,LS그룹 등을 분가시키며 3대를 내려 온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GS의 분리로 동업관계마저 정리하면서 “동업으로 시작해 합작으로 일어섰다.”는 LG의 역사도 새로 쓰게 됐다. 허 회장은 “GS는 생활 속의 동반자, 보람된 일터, 투명한 경영과 탁월한 성과로 인정받는 기업시민이 될 것”이라며 “최고의 주주가치를 창출하는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GS그룹은 이날 ‘고객과 함께 내일을 꿈꾸며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한다.’를 경영이념으로,▲고객만족 ▲생활가치 향상 ▲보람 ▲존경과 배려 ▲열정과 활력을 공유가치로 확정했다. 또 ‘Value No.1’을 그룹의 캐치프레이즈로 선정할 계획이다. 상반기 중에는 그룹의 신규사업, 매출 및 투자계획 등 종합 비전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경석 GS홀딩스 사장은 “LG경제연구원, 컨설턴트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 계열사별 비전을 조율하고 있으며 6월말이면 그룹의 구체적인 중장기 비전 및 성장 전략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유, 유통, 홈쇼핑, 건설을 주업종으로 하는 GS는 LG그룹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신규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며 현재 38%인 수출 비중도 조만간 50% 이상으로 늘려 ‘수출그룹’으로 재탄생한다는 방침이다.15개 계열사로 이뤄진 GS그룹은 지난해 22조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 24조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산은 2004년 말 기준으로 약 18조원으로 공기업을 제외하면 삼성·현대차·LG·SK·한진·롯데에 이어 재계 7위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이미경 CJ부회장 ‘글로벌 경영’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47)의 활발한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3개월 만에 이 부회장이 미국과 일본 등에서 ‘글로벌 경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의 활동은 알려지지 않아 재계의 수군거림도 있었지만 최근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해외에서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CJ엔터테인먼트와 일본 최대의 출판·영상기업인 가도카와 홀딩스의 영화 배급 및 제작 분야에서의 사업제휴에 관한 기자간담회에 CJ측을 대표해 박동호 사장 등과 함께 참석했다. 국내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공식적인 행사에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부회장으로서의 첫 행사를 가진 것이다. 양측의 이날 사업 제휴로 CJ는 일본에서도 영화 작품의 공동투자 및 제작에 나설 수 있게 됐다. CJ가 일본 사업 파트너로 가도카와 그룹과 손잡은 데에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가도카와 그룹은 이 부회장이 지난 1995년 제일제당(현 CJ) 멀티미디어 사업부 이사 시절 스필버그 등과 손잡고 설립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회사 ‘드림웍스’의 공동주주이다 보니 자연스레 연결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앞서 미국 LA에 설립할 CJ엔터테인먼트 미주법인 총괄프로듀서(상무)에 영화제작자인 LJ필름 이승재 대표를 내정, 미국 영화시장 공략에 나설 태세를 갖췄다. 이씨는 충무로의 대표적 제작자 중 한 명이다. 이 부회장은 미국·일본에 이어 중국시장 진출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현재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내 CJ엔터테인먼트 건물에 사무실이 마련돼 있지만 주로 미국 LA, 뉴욕과 일본 도쿄 등을 오가며 해외사업을 챙기고 있다. 국내에 머물 때는 각종 회의를 주재, 업무보고를 받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아직 회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지만 궁금한 사안이 있으면 꼭 물어보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CJ글로벌 경영의 핵심주체가 돼 입지가 강화되면 향후 그룹내 역학관계에서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MK ‘항공사업 꿈’ 다시 날까

    현대차가 최근 사업목적에 ‘헬기 판매업’을 공식 추가함에 따라 정몽구(MK) 회장과 헬기업의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헬기사업으로 적잖은 손실을 봤던 MK가 ‘와신상담’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일고 있다. 현대차측은 15일 “단순히 헬기를 빌려주고 팔 뿐, 다시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펄쩍 뛴다. 현대차는 업무용 헬기를 4대나 갖고 있다. 대당 가격(신형 기준)은 60억원. 자동차 회사가 몇십억원짜리 헬기를 4대나 갖게 된 사연은 MK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MK는 우주항공쪽에 눈돌려 비행기 날개 제작을 시작했다. 미래를 내다본 투자였다. 개인재산까지 털어가며 우직하게 지원했지만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더는 투자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상당한 손실을 보고 헬기사업을 접어야 했다. 현대모비스는 헬기업종을 완전히 청산하고 자동차 부품사업에만 전념하고 있고, 우주항공사업을 갖고 있는 또 다른 계열사 로템도 우주선 발사체 제작에만 간여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은 정리했어도 비행기는 남아 현대차가 본의 아니게 ‘헬기 부자’가 되게 된 것. MK는 울산공장 등을 방문할 때 더러 이 헬기를 애용한다. 그러나 1년에 쓰는 날이 많지 않아 계열사에 빌려주기도 한다. 어차피 놀리는 헬기인 만큼 공짜로 빌려줘도 상관없지만 그럴 경우 공정거래법상의 부당지원 행위에 걸려 시간당 250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 산불이 잦은 봄가을에는 지방자치단체 등에 장기 임대(4∼5개월에 5억원)도 한다. 그러던 차에 헬기 제작사인 일본 가와사키사에서 제안이 들어왔다.“수요가 많지 않아 따로 총판을 두기도 어려운 만큼 한국에 (헬기)수요가 생기면 현대차를 통해 팔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현대차도 밑질 게 없어 선선히 수용했고, 이달초 주주총회에서 새 목적사업에 ‘항공기 및 동 부분품 판매업’을 추가했다. 현대차측은 “딸린 조종사 월급에 정비 및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아 헬기 임대업은 남는 게 별로 없다.”면서 “보유헬기를 더 늘리거나 자체 제작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동진 부회장은 주총에서 “당장은 헬기판매 수요가 연간 100억원 미만으로 크지 않지만 잠재적인 시장을 보고 있다.”며 상당한 의욕을 내비쳐 눈길을 끌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線넘은 사설정보지

    최근 유망 벤처기업 사장이 사무실에 밀실을 만들어 여직원과 불륜을 저지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루머의 대상이 된 기업의 주가는 폭락했고, 당사자는 밤잠을 설치며 두문불출했다. 루머의 진원지는 ‘사설정보지(일명 지라시)’였다. 헛소문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그 회사는 되돌리기 힘든 피해를 봤다. 정부가 이처럼 허위정보를 생산·유통하는 사설정보지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특별단속을 통해 악성루머 진원지를 끝까지 추적, 악의적으로 허위정보를 생산·유통하는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키로 했다. 김승규 법무부장관과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 허준영 경찰청장은 15일 공동 명의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특별단속은 이달 말 계도기간이 끝난 뒤 다음달 1일부터 본격 시작돼 석달간 이뤄진다. 전국 18개 검찰청과 248개 경찰서에 ‘허위정보신고센터’가 설치되고, 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도 접수를 한다. 근거없는 소문을 유포한 증권사 임직원들에게는 증권거래법을 적용하고,‘연예인 X파일’ 등의 명예훼손 사안은 우선 수사한 후 피해자들의 처벌의지를 확인해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기로 했다. 정부는 범국민적 인터넷 자정캠페인을 전개하고, 사이버 윤리교육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가 이처럼 ‘사설정보지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은 이들이 유통하는 허위정보가 주로 정치인·공직자·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와 관련된 내용들이어서 불신풍조 조장, 국론분열 등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이번 특별단속은 정부의 한 고위직 인사의 사생활 관련 헛소문이 최근 사설정보지에서 집중 거론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의도 증권가가 사설 정보지의 생산지 사설 정보지의 온상은 서울 여의도 증권가다. 기업, 정부 정책 등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는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지의 생산은 각 증권사 투자정보팀 소속의 ‘정보맨’들이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들을 쓸어모아 ‘지라시(전단을 뜻하는 일본어)’라는 정보지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통되고 있는 정보지가 10∼15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주일 단위로 만들어지는 정보지 한 묶음은 A4용지 30∼40쪽 분량이다. 정보지에는 거물 정치인의 말 한마디부터 유명 탤런트의 이혼설까지 정치, 재계, 검찰, 언론계, 연예계 등의 그럴듯한 동향과 소문들이 뒤죽박죽 나열돼 있다. 대부분 공개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뒷얘기이거나 원색적인 내용도 섞여 있어 수요와 공급이 끊이지 않는 속성을 지녔다. 내용 가운데 나중에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정보맨들은 정기적으로 소모임을 갖고 정보를 공유한다. 그 자리에서 정보지를 만든다. 정보수집과 유통은 불법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은밀하게 진행된다. 정보지는 한달에 30만∼50만원을 받고 고정 회원에게 배포되기도 한다. 정보맨들의 접촉 대상에는 대기업 정보팀이나 경찰의 정보과 형사, 언론사 기자 등도 포함된다. 경찰도 전국에서 수집된 정보를 하루 10장 분량으로 압축해 수사에 참고한다.S그룹 정보팀은 황장엽씨 망명소식을 공식 발표 이전에 포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경운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경제부총리 한덕수] 정·재계 반응

    [경제부총리 한덕수] 정·재계 반응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의 경제부총리 발탁에 대해 14일 경제계와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담담했다.‘무난하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큰 우려도 없었지만 쌍수를 든 환영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보합세를 보인 이날 주식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한 부총리가 경제기획·통상 등 업무를 두루 경험했고, 현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내 원만한 조정·총괄 역할을 할 것이란 점은 높게 평가됐지만 전임 이헌재 부총리에 비해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대목은 약점으로 지적됐다. 이와관련, 한 부총리는 “실적으로 증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책총괄 능력 기대…카리스마 보완 전문가들은 한 부총리의 최대 장점으로 당·정·청, 경제부처간 조율역할을 꼽았다. 청와대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내며 능력을 보여줬고, 행정관료로서 경험도 많기 때문에 원만한 조정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상공부 통상과장,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거쳤다는 점에서 우리경제 현안인 대외개방도 잘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재경부 관계자는 “한 부총리는 이헌재 전 부총리의 시장친화적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본부장은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도하개발협상(DDA) 등 산적한 통상현안의 처리에 적임자”라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 부총리가 재경부를 떠난 지 오래돼 거시경제 감각이 둔화됐을 수 있고 재경부 주요 정책인 금융과 세제를 다뤄본 적이 없다는 점, 전임 부총리보다 카리스마가 약하다는 점 등은 보완해야 할 대목으로 지적했다. ●기존 정책 대부분 유지될 듯 한 부총리의 정책방향은 14일 오전 부총리 발탁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기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종합투자계획과 재정조기집행, 중소·벤처기업 육성 등 경기회복을 위한 성장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일자리 창출,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 부동산 투기 억제 등 소비 회복을 위한 대책들도 예정대로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정책도 이전보다 속도가 붙을 것 같다. 한 부총리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과 한·미 투자협정 실무협의를 주도했고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교육·의료·법률 등 서비스시장의 대외개방이 능동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전문가들 역시 시장친화적인 기존 정책기조의 유지를 주문했다. 경제수장으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발휘, 성장·분배라는 이념논쟁이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 정책의 중심을 시장경제에 둬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는 “우리 경제는 회복의 초기단계에 진입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정책기조가 급격하게 변하면 시장에서 혼선이 올 수 있다.”면서 “특히 그동안 성장주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오던 이헌재 부총리가 물러나면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 무너질 우려가 있으므로 새 부총리는 ‘성장’이라는 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정책 일관성 유지” 재계는 한 부총리 취임에 대해 친(親)시장주의 정책에 대한 기대와 주문을 쏟아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공식논평을 통해 “규제완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투자가 활성화되고, 기업의 경쟁력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을 펼쳐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정책이 일관성있게 펼쳐지고 통상전문가로서 시장친화적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환영하면서 “삼성도 일자리 창출, 투자확대 등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LG그룹은 “한 부총리의 임명을 계기로 환율, 유가, 수출 등 경기회복과 관련해 중요한 변수가 될 여러가지 경제현안을 효율적으로 풀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주식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3.10포인트 내린 1019.69에 마감했고, 코스닥지수는 3.25포인트 오른 493.99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0.50원 오른 1000.80원에 거래를 마쳤다.LG투자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의 부총리 임명은 증시에 ‘중립적’이었다.”고 전했다. 경제부·산업부 종합 windsea@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피플 인 포커스] 정통관료 출신… ‘금융위기’ 극복 주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홍콩의 차기 행정장관으로 내정된 도널드 창(曾蔭權·청인취안) 정무사장(총리·60)은 38년 동안 관직에 몸담아온 정통 관료 출신이다. 조기 퇴진한 둥젠화(董建華) 행정장관의 뒤를 잇는 그는 오는 7월10일 형식적 절차인 선거위원회 보궐선거를 거쳐 2년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홍콩 언론들은 “도널드 창은 앞으로 4달 동안 홍콩인들로부터 혹독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정협(政協) 천융치(陳永棋) 상무위원은 “홍콩과 중국 모두의 이익을 고려한 인선”이라고 만족을 표시했다. 1944년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직후인 1967년 공직에 입문했다.1971년 행정관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행정 엘리트로서의 길로 들어섰고 1981년 뒤늦게 하버드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창 내정자는 95년 9월 홍콩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인으로부터 홍콩 재정사장직을 넘겨받는 등 순탄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1977년 1년 동안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파견 근무한 경력도 있다. 항상 나비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창 내정자는 홍콩의 중국 반환 직전인 97년 6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 영예까지 누렸다. 하지만 영국과의 돈독한 관계는 홍콩 반환 이후 승진에 걸림돌이 됐고 이후 중국 중앙정부의 신임을 얻기 위해 조용하게 업무에만 전념했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탁월한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2001년 2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정무사장에 임명,18만명의 홍콩 공무원들을 이끌어 왔다. 창 내정자는 중국 중앙정부의 서부대개발 발표가 나오자 2001년 5월 홍콩 재계 대표단을 이끌고 서부투자를 주도하면서 중국 지도부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을 직할 통치하려는 중국 지도부와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홍콩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수위조절’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어려움이 있거나 승진할 때 롤렉스 시계를 사모으는 취미로 유명한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oilman@seoul.co.kr
  • “국내자본 M&A참여 장벽 없앤다”

    앞으로 유망기업이 매물로 나올 경우 국내 산업자본이 외국자본과 동등하게 인수·합병(M&A)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이 강구된다. 또 기업의 상장유지 비용을 대폭 경감하는 한편 기업이 과거 분식을 자발적으로 수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2년간 감리가 면제된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11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외국자본 진출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자본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 사모투자전문회사(PEF)를 활성화하고 연기금 등 국내자본의 (인수·합병) 참여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는 특히 “유망기업을 매각할 때에는 국내 산업자본이 차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방침은 그간 출자총액 제한, 은행 소유지분 제한 등을 국내자본 역차별의 근거로 지목하면서 규제 완화를 요구해온 재계의 입장과 맞물려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정부 또는 채권단이 매각을 추진중인 금융회사와 기업은 우리금융지주,LG카드, 현대건설, 대우건설, 쌍용건설, 하이닉스, 대우인터내셔널 등이다. 윤 위원장은 업무보고가 끝난 뒤 브리핑을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예외 규정을 둘 수 있느냐는 물음에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당분간 유지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또 제2금융권 구조조정 방안에도 언급,“우수한 서민금융기관에 대해서는 동일인 대출한도 확대 등 지원의 폭을 넓히고 재무구조가 부실한 곳에 대해서는 적기시정조치를 발동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기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업 지원책의 일환으로 상장유지수수료 등 비용과 고배당 부담을 완화해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과거분식을 자발적으로 수정할 때는 수정부분에 대해 2년간 감리를 제외해 증권집단소송제 시행에 따른 상장기업의 적응능력을 제고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고 “동북아 금융허브를 조성하기 위해서도 금융산업을 육성·발전시켜야 하며, 금융수준이 높아야 기업수준이 높아진다.”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선두 금융기관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므로 세계적인 수준의 자산규모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정현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11일 SK주총 ‘세몰이’

    11일 SK주총 ‘세몰이’

    ‘선거 유세전’를 방불케 한 SK㈜ 주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SK㈜와 소버린자산운용은 9일 막바지 ‘소액주주 표밭’을 누비며 저마다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판세는 SK㈜의 우위로 기울고 있다. 소버린자산운용이 막판 여론몰이로 맹추격하고 있지만 현재의 지분구조상 뒤집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숨은 2인치’(국내외 개인주주)의 표심에 따라 승패가 바뀔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SK㈜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심정으로 혹시 모를 변수까지 계산하며 굳히기에 힘을 쏟고 있다. 양측은 11일 최태원 회장의 이사 재신임 안건을 놓고 주총 표대결에 나선다.SK㈜가 지난해에 이어 또 한번 웃을지, 아니면 소버린측이 국내 재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할지, 그 결과는 하루 남았다. ●쫓기는 자…“뒤집기는 없다.” “이변은 없을 것입니다. 최 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에 나타난 SK㈜의 경영 성과를 투자가들이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표심에서도 잘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SK 관계자) SK㈜가 현재까지 확보한 지분은 총 35% 수준.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정권에 들었다는 평이다. SK㈜가 확보한 지분을 보면 SK C&C(11.3%) 등 SK 계열사, 최 회장(0.83%)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이 15.71%. 여기에 삼성전자와 팬택&큐리텔 등 우호 지분과 한국투신운용(3.598%), 조흥투신운용(2.549%) 등 기관투자가 36곳(7.49%)이 최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대해 찬성 입장을 표시했다. SK㈜측은 소액주주와 외국인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의결권을 더 확보하기 위한 막판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사회공헌 활동을 담은 백서를 발간, 기업지배구조 개선 성과 등을 알리기도 했다. 호재도 잇따라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한국기업평가㈜는 이날 SK㈜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상향 조정했다. 또 메릴린치증권은 SK㈜ 이사회에 대해 “영향력과 독립성 측면에서 한국 최고”라고 평가했다. ●쫓는 자…“박빙이다.” “SK㈜의 외국인 투자가들로부터 최 회장을 지지하겠다는 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박빙이지만 결국 우리측이 승리할 것입니다.”(소버린측 관계자) 소버린측은 드러난 지분이 전부가 아니라는 입장이다.‘뚜껑’을 열면 의외의 결과에 놀랄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버린측이 현재 보유한 지분은 14.96%로 SK㈜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달 18일부터 국내 일간지에 주주 권리 행사를 알리는 내용의 전면광고를 연일 게재하는 등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소버린측에도 호재는 있다.SK㈜ 소액주주회는 지난 8일 “소버린의 행동을 지지한다.”면서 “아울러 소액주주들은 최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명확하게 반대하며 이를 관철하기 위해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숨은 2인치를 ‘내 품에’ SK㈜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승리를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의 이사 재선임안이 통과되려면 참석 주주의 과반수 이상과 총 발행주식의 4분1 이상 찬성 요건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이에 따라 내국인 지분 45.85% 가운데 SK㈜측 우호지분을 제외한 10%대의 지분과 외국인 지분 54.15% 중 소버린측 우호지분을 뺀 28%의 지분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사설] 투명사회협약 실천 주시한다

    정부와 정치권, 재계, 시민단체 등 4대 부문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어제 투명사회협약이 체결됐다. 과거 대형 비리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이나 재계가 자정선언을 한 적은 있지만 대부분 여론무마용 전시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민단체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협약 내용면에서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제한 및 영리목적 겸직 금지, 직무관련 주식 백지신탁제 도입, 부정한 수익 몰수 및 부패공직자 양형기준 강화 등 부패척결을 담보할 수 있는 사안들을 망라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협약이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약속한 만큼 법 제·개정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믿지만 시민단체들은 협약을 근거로 끊임없이 채근해야 한다. 특히 협약체결에 빠진 교육·노동·종교·언론·법조계의 동참도 이끌어내야 한다. 전국민적인 협약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10년째 40위권에서 맴돌고 있는 부패지수에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 투명성이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를 유인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부수 효과가 뒤따른다. 우리는 협약 체결을 계기로 공직부패수사 전담기구 설치는 물론, 공직자 재산등록제도도 부패 요인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체제로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공직을 이용한 축재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연고나 뇌물을 이용해 내 주머니부터 챙기자는 그릇된 관행도 불식돼야 한다. 제도 개선이나 감시 못지않게 전 국민의 동참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 경제는 지금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목표점인 ‘선진한국’에 도달하려면 부패고리부터 척결해야 한다.
  • [이헌재부총리 사퇴 파장] 향후 경제운용 어디로

    [이헌재부총리 사퇴 파장] 향후 경제운용 어디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7일 사퇴함에 따라 향후 경제정책 운용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체로 이 부총리 때 세워진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후임 부총리의 경제철학에 따른 부분적인 정책수정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일부에서는 ‘성장’ 진영의 대표로서, 참여정부 내 ‘분배’ 진영과 힘의 균형을 이뤄왔던 이 부총리가 퇴장하면서 무게추가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재정 조기집행 등 기존정책 유지될 듯 ‘이헌재 경제팀’이 올해 설정한 지상과제는 ‘40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5% 경제성장’이었다. 이를 위해 상반기에는 재정을 조기집행해 가계소비와 기업투자 부진을 벌충하고 하반기에는 종합투자계획을 실행해 민간자본을 대형 국책사업에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정부의 계획은 대부분 그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또 생계형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 등 가계부채 문제 해소, 부동산시장 안정, 중소·벤처기업 활성화, 서비스업 선진화, 세제 선진화 등 작업도 대체로 큰 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사회간접자본 투자활용 등 논란이 돼왔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후임 부총리로 누가 오든 기존 정책틀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면서 “특히 최근들어 경제가 간신히 살아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신임 부총리가 자신의 컬러를 내세워 정책 틀을 바꾸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부 다른 관계자 역시 “경기회복이 본격화할 경우, 부총리 개인의 경제안목보다는 종합·조정·관리 역량이 더욱 필요해질 수 있다.”고 했다. ●성장과 분배 논란 재연될 가능성 ‘경제 올인’ 방침 등에 따라 한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성장과 분배의 갈등이 이 부총리 사퇴로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대통령의 신임을 앞세워 성장론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이 부총리만 한 중량감의 인사가 오지 않는다면 균형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날 이 부총리 사퇴에 대해 전경련 등 재계가 “시장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기업의 입장을 이해하는 인물이 사퇴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데다 재정 조기집행, 종합투자계획 등 이미 굵직한 정책방향이 잡혀 있는 상태여서 큰 흐름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일부에서는 소득세 포괄주의 과세,EITC(근로소득보전세제) 도입 등 분배지향적인 정책의 추진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급격한 변동성 해소가 최대 과제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는 “경제 수장의 교체는 어떤 이유에서든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기존 정책기조를 변화시키지 않고 산재한 정책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임자가 와야 한다.”고 밝혔다.LG투자증권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종합투자계획을 주도해온 이 부총리의 사퇴로 하반기 경기활성화에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될 종합투자계획이 원만하게 수행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태균 전경하기자 windsea@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③-신세계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③-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한 기업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2004년 재계 서열 21위(자산 기준)로 한솔그룹(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 재계 36위), 새한그룹(차남 고 이창희 회장, 워크아웃 중),CJ그룹(장손 이재현 회장, 재계 23위)보다 앞섰다. 창업주의 5녀(막내딸)인 이명희(62) 회장은 1997년 계열 분리 때 백화점과 조선호텔만 갖고 나왔다. 그리고 그룹을 국내 최고의 유통 ‘명가’로 키웠다.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지 불과 7년만에 백화점과 할인점 이마트를 주축으로 한 유통사업 외에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시스템, 조선호텔,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자신은 여성 캐피털리스트 1위를 고수하던 올케 홍라희(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호암미술관장을 제치고 2001년 이후 국내 최고의 여성 부호가 됐다. 이 회장은 삼성가(家)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정중동(靜中動) 행보의 오너다. 외부에 나서지는 않지만 소리없이 막후에서 회사의 중심을 잡으면서 방향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창업주의 귀여운 막내딸 이명희 회장은 창업주로부터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2세다.8남매(3남5녀) 중 막내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삼성그룹 출신 인사들은 “고 이병철 회장은 늘 이 회장을 데리고 다녔다.”고 회고한다. 고 이병철 회장은 회장직을 물러난 뒤 1년에 네차례 정도 일본 도쿄를 방문했는데, 이때 항상 이인희 고문과 이 회장을 동행토록 했다. 큰언니인 이 고문은 이 회장보다 열네살 많다. 이 회장은 부친이 사무실에서 먹는 과일도 먼저 맛을 보고 부친이 좋아하는 정도의 당도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들여보내곤 했다. 그래서 당시 고 이병철 회장 비서실팀 직원들은 사무실옆 간이 주방에서 꼼꼼하게 과일을 챙기는 이 회장을 두고 ‘감독관’이라고 수근댈 정도였다. 이 회장은 1943년생으로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80년 신세계백화점 상무로 승진한 뒤 97년 부회장에 올랐다. 무려 17년동안이나 상무직함을 유지했다. 그룹 회장이 된 것은 98년 말이다. 이 회장은 1967년 정재은(66) 명예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 아들 정용진(37) 신세계 부사장과 딸 정유경(33) 조선호텔 상무를 뒀다. 용진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동갑내기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경복고 동창으로 서울대에 함께 입학하다 보니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 용진씨는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가 유학을 떠나 미국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1995년 미스코리아 출신 인기 탤런트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지난해 이혼해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 해찬(7)군과 딸 해인(5)양을 뒀다. 유경씨는 서울예술고,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거쳐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유경씨는 2001년 3월 초등학교 동창인 문성욱(33)씨와 결혼, 장녀 서윤(3)양과 차녀 서진(2)양을 두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문씨는 SK텔레콤 전략기획실을 거쳐 소프트뱅크 코리아의 자회사인 벤처스코리아에서 투자심사역(차장)을 지낸 뒤 현재는 유학 중이다. 문씨의 부친은 아리랑TV 사업본부장을 지낸 문청씨다. ●부친을 경영스승으로 삼고 있는 오너 재계에서는 ‘신세계가 삼성보다 더 삼성 같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만큼 기업문화, 경영스타일이 닮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창업주의 형제들 가운데 누구보다 부친을 닮으려고 애쓰는 이 회장의 숨은 뜻이 담겨 있다. 부친의 선견지명과 직관력이 소개된 한 일간지를 복사해 수첩에 항상 갖고 다니며 경영의 시금석으로 삼을 정도로 이 회장은 부친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신세계백화점 본사 회의실과 자신의 아들 정용진 부사장 방에도 부친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부친의 경영철학을 신세계 맨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오는 8월 문을 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사무실 로비에 부친의 흉상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내가 있겠느냐.”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누구보다 평소 부친의 경영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우선 ‘疑人勿用 用人勿疑’(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를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는 용인술과 전문 경영인 체제 운영방식이 그렇다. 메모하는 습관과 업무의 중요성을 따져 챙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히 구분짓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 회장 스스로도 자신의 경영 스승이 선친임을 신세계 2005년 1월호 사보에서 드러낸 바 있다.“선대 회장께서 가장 힘쓴 것이 인재 육성이었다. 선대 회장께서는 성공한 일을 다시 돌아보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으셨다.”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부친의 육성에 담아 신세계 맨들에게 전했다. 이 회장이 무엇을 강조할 때 나오는 화법이 바로 “선대 회장은 이렇게 하셨는데….”이다. 이 회장은 실제로 젊은 시절 부친이 제일모직 등 일선 현장을 방문할 때 언니인 이인희 고문과 함께 수행하며 경영수업을 쌓았다. 창업주는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회동 때 “명희야, 들어온나.”해서 늘 이 회장을 합석시켜 보고 배우도록 했다. 신현확 전 총리, 민복기 전 법무부장관 등 당시 국내 정·관계의 실세를 만나 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할 때도 항상 ‘명희’를 불렀다. 일본 정·관계의 원로와 회동에도 꼭 자리를 함께 하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이 회장은 부친이 교류하는 각계의 주요 인사들을 다 알 정도였다. ●섬세하면서도 ‘통 큰’스타일 이 회장은 한해에 고작 한두차례 회사를 방문, 업무 보고를 받을 뿐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는 않는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해 본 적이 없다. 주요 사안이나 인사에 대해서도 사후보고를 받을 정도로 전문경영인을 믿고 맡겨 ‘통 큰’ 경영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인희 고문은 동생의 경영스타일을 두고 “명희는 (전문 경영인에게) 다 맡기는 스타일인데도 회사가 잘된다.”며 부러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 회장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8월 문을 여는 신세계 본점 재개발 사업, 신규 백화점 진출, 명품 브랜드 유치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챙기며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을 문 열 때는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는 열성을 보였다. 특히 백화점의 사각지대로 알려졌던 지하 식품매장을 일일이 다니며 꼼꼼하게 챙겼다. 이 덕분에 위층에서 쇼핑을 하다가 식품매장으로 내려 오는 ‘샤워효과’가 아니라 지하 매장을 방문토록 만든 뒤 위층까지 고객을 끌어들이는 ‘분수효과’를 톡톡히 거두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을 아는 이들은 그가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대담함을 함께 지녔다고 평가한다. 격식을 싫어해 회사 내에 비서실은 물론 개인 비서도 두지 않고 있다.90년대까지 1년에 한차례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대접하는 자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큰 오빠인 맹희씨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그의 따뜻함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부친으로부터 눈밖에 나서 유랑생활을 하던 맹희씨는 이 책에서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어준 것도 명희였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명희는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었고 늘 따뜻한 마음씨로 나를 감싸주었다.”는 것이 맹희씨의 설명이다. ●신세계 핵심 축 구학서 사장 신세계는 1999년 구학서 사장이 총사령탑에 앉은 이후 계속 상승곡선을 그려 왔다. 구 사장은 명실상부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전문 경영인은 무한 책임을 지고 일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는 회사 부채율을 230%에서 130%대로 낮췄다. 취임 당시 5만원했던 주가를 5년만에 30만원대로 끌어올려 이 회장을 한국 최고의 여성부호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신세계 신화’를 일궈낸 주역이지만 그는 한결같이 겸손한 모습이다. 오히려 신세계를 통해 자신이 성공한 데 대해 감사해한다.“56세에 은퇴하려고 했는데 59세에 사장을 하고 있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하지 않았느냐.”며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구 사장은 겉으로는 부드러운 스타일이지만 실제로는 승부욕, 추진력, 결단력을 두루 갖췄다. 매일 새벽 5시면 집 근처 우면산을 오르고,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한다. 일주일에 7∼8권의 책을 읽으며 신세계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고민한다. 구 사장의 취임 당시 신세계의 위상은 롯데, 현대에 밀려 3위로 내려앉은 초라한 신세였다. 그는 그때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적절히 활용했다. 종합금융을 매각하고 카드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대대적인 ‘메스’를 가한 것이다.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홀세일을 매각하면서 들어온 1억달러로 전국 알짜의 상권부지들을 헐값에 사들여 이마트 부지로 확보했다. 이때 사들인 부지들이 이마트에 국내 최대의 할인점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산본의 백화점 부지도 이마트로 업종을 변신시키는 등 자산 회전율을 높이며 기업의 수익구조를 끌어 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삼성그룹에서 재무통으로 커온 경력이 뒷받침됐다. 이런 신세계의 성장을 구 사장은 전문경영인 체제 덕분으로 돌린다. 스스로 “(이 회장이)너무 많은 권한을 주셔서 오히려 책임이 무겁다.”고 말할 정도로 오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소신껏 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350억원짜리 한국 최대의 매머드 쇼핑몰인 부산 센텀시티 부지 매입 응찰 때도 사후에 이 회장에게 보고할 정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72년 삼성에 공채 12기로 입사했다. 재계의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삼성 비서실, 삼성전자,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을 거쳐 삼천리그룹으로 갔다가 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로 발탁됐다. 당시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도 구 사장에게 눈독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실력파 임원들로 포진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답게 구 사장을 필두로 쟁쟁한 임원들이 포진하고 있다. 석강 백화점 부문 대표는 점장과 영업본부장을 역임한 정통 영업통. 신세계 백화점이 새롭게 문을 여는 점포마다 점장을 맡을 만큼 치밀한 전략과 강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신감과 신념의 소유자다. 신세계백화점의 면모를 일신시킨 서울 강남점을 문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본점 재개발 사업과 죽전 역사 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하며 ‘제2전성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검소한 생활에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경상 이마트 부문 대표는 백화점과 이마트에서 점장과 지원본부장, 경영지원실장 등 요직을 걸쳤다. 인화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덕장형이지만 치밀한 분석력과 경영자로서의 안목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백화점 미아점장 시절 처음으로 점장이 광고모델로 등장,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스타일을 보여줬다. 영등포점장 시절 다른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지하층을 젊은이들만의 공간으로 꾸민 ‘영웨이브’를 탄생시켰다.‘영웨이브’는 백화점 테마형 매장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다. 유원형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중앙개발 출신. 유통전문 건설업체로 급부상한 신세계건설에서 탁월한 관리 업무로 수익창출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00년 신세계로 옮겼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섬세한 업무 스타일이 돋보인다. 백화점부문의 팀제 운영 실시 등의 아이디어로 재무 건전성과 인력 효율화에 기여했다. 신세계건설 노태욱 사장은 LG건설 상무 등을 지내다 신세계건설에 합류한 건설 분야 베테랑이다. 건설업계의 투명경영을 선도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도입, 지난해 공정거래 자율준수 우수기업으로 공정거래위원장상을 수상했다. 신세계푸드시스템 최병렬 사장은 20년의 서예 경력에 단전호흡의 달인으로 불린다. 또 체력 등 자기관리가 뛰어난 만능스포츠맨이다. 백화점과 이마트 부문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신세계I&C 이상현 사장은 삼성비서실, 삼성카드에서 주로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해온 브레인. 삼성카드 재직시절 고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CRM(고객관계관리)을 도입했다.‘좋은 생각이 좋은 경영을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조선호텔 이석구 사장은 호텔 부문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호텔을 경영하는 것은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객실의 디지털화, 객장의 글로벌화를 강조하고 있다. 공항에서 에스코트를 받은 뒤 프런트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객실에서 곧바로 체크인할 수 있는 ‘익스프레스 체크인’ 서비스를 국내 처음 도입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장성규 사장은 1주일에 30개 이상의 매장을 꼭 방문하는 현장 중시 스타일이다. 그의 책상 한편에는 800명 이상의 직원 이름과 나이, 특징 등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통해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 송주권 사장은 백화점 물류관리 업무를 담당해 온 현장관리 출신이다. 새로운 수익 아이템들을 꾸준히 개발해 적자사업을 흑자로 돌려놓은 그룹 내 물류 전문가다. bori@seoul.co.kr ■ 경영수업 받는 2세 이명희 회장에 이어 신세계를 이끌 후계자는 장남 정용진(37) 부사장이다. 모친 이 회장과 부친 정재은 명예회장에 이어 3대 주주로 자리를 굳혀 이미 경영권 승계 작업의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정 부사장은 미국 유학을 끝내고 1994년 삼성물산 경영지원실에 입사,95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긴 뒤 97년까지 신세계백화점 일본 도쿄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어 신세계백화점 기획조정실 그룹 총괄담당 상무로 진급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삼성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성격의 경영지원실 소속인 그는 월·수·목요일은 신세계 본사로, 화·금요일은 이마트로 번갈아 출근하며 그룹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점장회의 등 각종 회의에 참석, 업무 보고를 받는다. 조용히 듣기만 하고 거의 발언은 하지 않지만 지나가면서 던지는 질문이 날카롭다고 한다. 사원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린다. 소주에 삼겹살도 먹고 이마트 오픈시 지내는 고사에도 참석, 직원들이 건네는 막걸리를 몇잔이고 받아 마신다. 직원들에게도 꼭 두 손으로 술을 따르며 몸을 낮춘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지하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도 한다. 식품과 패션분야에 조예가 깊다. 이마트 매장을 둘러 볼 때도 식품의 신선도, 진열방식 등을 꼼꼼히 챙긴다. 즉석 조리상품 코너를 지나치다 “소스가 안 맞는다.”거나 “외국에는 이런 상품도 있는데 한번 도입해 보라.”는 제안도 심심찮게 한다. 특히 초밥 등 신선식품은 꼭 포장지를 뜯어보고 “밥알이 굳었다. 신선도가 좋지 않다.”는 등의 평가를 한다. 명품잡지에 등장하는 모델이 입고 있는 옷들이 어느 제품인지 다 알 정도로 디자인의 흐름을 꿰고 있어 담당자들을 놀라게 한다. 그렇지만 후계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려 들지 않는다.1990년대 후반 벤처 열풍에 인터넷뱅킹사업 등 벤처사업을 무척 하고 싶어 했지만 회사측에서 “유통업체로서 바람직한 사업은 아니다.”고 결론 내리자 조직의 결정을 순순히 따랐다. 당시 재계 2,3세들은 앞다퉈 정보기술(IT) 관련 벤처사업에 뛰어 들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까먹었지만 그는 회사의 결정을 따름으로써 ‘화’를 면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고 싶은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도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검토해 주십시오.”라는 수준에서 경영진들에게 얘기할 따름이다. 그 때문에 “삼성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너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어머니한테 교육을 잘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정 부사장의 여동생 유경(33)씨는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상무)이다. 전공을 살려 그동안 객실 리노베이션과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 호텔의 품격을 한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텔업계에서는 최초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채용토록 하는 등 호텔 소품부터 리노베이션까지 비주얼 디자인업무를 지휘해 왔다. 지난해 초 자신이 리노베이션했던 자연주의풍의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돌아다니며 손님들의 반응을 물어보기도 한다. 영국 사라 퍼거슨 전 왕세자비의 결혼 때 부케를 맡아 유명해진 꽃집 ‘제인파커’를 아시아 최초로 조선호텔에 들여오고, 신세계백화점에 입점시키며 꽃집의 명품 브랜드 시대를 열기도 했다. 명품에 관심이 많아 국내 처음으로 수입 멀티숍 바람을 일으켰던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분더샵’ 도입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차원에서 구입하는 각종 미술품과 캘린더 제작에도 유경씨의 안목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촌지간으로 나이가 비슷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녀 부진(35·신라호텔 상무)씨와 같은 호텔업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bori@seoul.co.kr ■ 정재은 명예회장은 누구 정재은(66) 신세계 명예회장은 부인 이명희 회장처럼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이 회장과 달리 1년에 한차례 부장급 이상 간부를 조선호텔에 모아 놓고 세계 경제 흐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 등에 대해 강연을 한다. 오너 일가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삼성 출신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정 명예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대학원에서 수학한 엘리트다. 결혼 뒤에는 삼성그룹에서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쳤다.196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0여년간에 걸쳐 삼성전자부품 부회장, 삼성물산 부회장, 삼성항공 부회장, 삼성종합화학 부회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97년 신세계가 삼성에서 공식 분리되자 조선호텔 회장을 맡으면서 삼성을 떠났다. 그는 전자공학, 산업공학 등 자신의 전공을 살려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장인(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는 고 이병철 회장의 특명으로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재일교포 2세 손정의(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씨를 만나기도 했다. 고 이 회장은 그에게 “손씨가 삼성에 필요한 인물인지 한번 만나봐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당시에 그를 만난 정 명예회장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그 뒤 손 사장의 성공을 보고 선대 회장의 예지력에 감탄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정 명예회장은 1977년 삼성전자 이사 재직시 미국 HP사와 손잡고 HP사업부를 시작한 데 이어 84년 삼성전자 사장 시절에는 자본금 1000만달러를 들여 삼성HP를 설립, 현재의 삼성전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삼성은 컴퓨터가 전무했던 시기에 컴퓨터, 의료기기, 계측기기 분야에서 HP와 인연을 맺어 기술력을 확보하고 삼성 제품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기술력이 취약한 삼성이 HP와 같은 기업과 손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독서를 즐기는 학구적 면모를 보여 주위에서 “대학교수를 했으면 잘 했을 것 ”이라는 말을 곧잘 듣곤 했다. 경제잡지는 물론 일본 경제신문 등도 정기 구독한다.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책자는 임원들에게 보내고, 기사는 밑줄까지 쳐 읽어 보길 권한다. 화려한 이력과 배경 때문에 엘리트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람들과 격의없이 사귀는 소탈한 면도 있다. 부친 정상희씨는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냈다. 정상희씨는 삼성가(家)와 인연을 맺은 뒤 삼성전자 사장, 삼성물산 사장, 삼성생명 사장 등을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다. 정 명예회장(차남)의 맏형인 고 정재덕 전 신세계고문은 경기고, 미국 노스이스트미주리주립대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 건설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국제상사 사장, 연합철강 사장, 하나실업 회장 등을 지냈다. 고려대 출신인 동생 재환(57)씨는 현재 삼성전기 중국동관사업장 법인장 전무로 일하고 있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계 인사이드] SKT­KTF ‘e 스포츠’ 신경전

    e-스포츠협회 회장사(社) 선정이 SK텔레콤과 KTF의 신경전으로 한 달이상 미뤄지면서 양사의 대리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e-스포츠’란 인터넷을 이용한 네트워크 게임을 스포츠화한 것으로 스타크래프 등 시뮬레이션 게임과 피파 등 축구게임이 주종이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말 열린 e-스포츠발전정책비전 간담회에서 건전한 게임문화 육성을 위해 e-스포츠를 체계화해야 한다며 대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당시 간담회에서는 회장사를 선정할 2기 이사회를 구성했다. 늦어도 2월안에 회장사도 추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SK텔레콤과 KTF가 모두 출마를 선언하면서 선정이 늦춰졌다. 회장사 임기는 3년이다. KTF측은 “1년 넘게 회장사를 맡겠다고 공언해 왔는데 지난 연말 SK텔레콤이 정책간담회에서 갑자기 회장사를 맡겠다고 나섰다.”면서 “풍부한 노하우와 공헌도가 높은 KTF가 맡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KTF는 지난 1999년 12월 구단 ‘매직엔스’를 창단했으며,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KT-KTF 프리미어 리그 등 대형 게임대회 주최와 프로게이머 억대 연봉 지급 등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SK텔레콤은 자금력을 내세우며 향후 e-스포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유명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 등이 소속된 T1 게임단을 창단했다. 관계자는 “김신배 사장이 지난해 말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정동채 문광부 장관과 협회 멤버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회장사 출마 의사를 밝힌 만큼 굳이 출마 순서를 따지자면 남중수 사장보다 먼저 공식화한 것”이라면서 “그날은 e-스포츠협회 이사진 구성을 얘기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남 사장은 나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e-스포츠 회장사 자리가 중요해진 것은 정부 차원의 독려와 이동통신사의 이미지 경쟁 때문. 게임에 대한 기여도는 게임의 주요 타깃인 청소년 고객에 친근감을 조성할 수 있어 이통사로서는 중요한 마케팅 부문이다. 회장사 문제는 이권이 개입된 사안이 아닌 양사의 자존심 대결인 만큼 관련 부처인 문광부도 타협을 촉구하는 선 이상의 개입은 어려운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대치로 통합대회 발족, 게임규칙 표준화 등 협회가 구상한 e-스포츠 관련 사업 이행이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협회 차원에서 양사 대표들을 만나는 등 최선을 다해 이달중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GS그룹 ‘공격 경영’ 질주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탄생한 GS그룹이 공격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연달아 터져 나온 부정적 이슈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GS그룹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는 한국석유공사 지분을 일부 인수하는 방식으로 인도네시아 석유탐사 사업에 142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GS홀딩스는 인도네시아 넴(NEM)Ⅰ, 넴Ⅱ, 워캄(WOKAM) 광구 등 3곳에서 석유공사 등과 함께 탐사작업을 벌이게 되며, 지분율은 각각 5%,30%,20%라고 말했다. 개발기간은 넴Ⅰ,Ⅱ는 2009년 9월까지, 워캄은 오는 11월까지다. GS홀딩스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자회사인 LG칼텍스정유(GS칼텍스로 변경 예정)와는 별도의 결정이며 앞으로도 자회사 사업과 관련된 업종에도 지분투자나 인수·합병(M&A)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GS홀딩스는 최근 사업목적에 자원탐사 및 개발을 추가한 바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LG정유의 자원개발 투자도 보다 활발해질 전망이다. LG정유는 2003년 캄보디아 해상 석유탐사 사업에 지분 15%를 참여하는 등 지금까지 190억원을 유전 탐사에 투자했다.LG정유 관계자는 “2007년까지 유전탐사에 책정한 투자액이 표면적으로는 420억원에 불과하지만 올해부터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유전탐사 등에 투자키로 하고 현재 이사회 결의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GS그룹은 또 최근 자회사인 LG유통(GS리테일로 변경 예정)이 코오롱마트 10개점을 자산인수 방식으로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 유통업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GS홀딩스 서경석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LG유통이 편의점, 슈퍼, 할인점, 백화점까지 사업 포트폴리오가 잘 갖춰져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밝힌 바 있어 앞으로 GS그룹의 유통 키우기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관심사다. 지난 1월 LG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된 GS그룹은 최근 새 CI를 선포하고 사명 변경을 추진 중이지만 ‘GS25’로 갑자기 간판을 바꾸게 된 LG25 일부 가맹점들이 소송을 내는 등 출범 초기 ‘액땜’을 하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클릭 이슈] 日 라이브도어-후지산케이 ‘언론전쟁’

    [클릭 이슈] 日 라이브도어-후지산케이 ‘언론전쟁’

    올해 32세인 신흥 인터넷기업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 사장과 거대언론사 ‘후지산케이그룹’이 벌이는 언론전쟁이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호리에 사장이 일본 6대 일간지 중의 하나인 산케이신문과 최대 민영방송인 후지TV를 일거에 삼키겠다는 야심찬 ‘도발’을 감행, 일본 재계, 정계, 언론계와 여론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일본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어렵게 하려는 것도 이 사건 때문이다. |도쿄 이춘규특파원|후지산케이그룹은 왜소한 니혼방송이 규모가 5배나 큰 후지TV 등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뒤틀린 기업지배 구조를 갖고 있다. 니혼방송 주식을 통제하면 그룹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약점을 호리에 사장은 파고들었다. 도쿄대 문학부를 중퇴한 호리에 사장은 지난달 8일 미국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에서 800억엔(약 8000억원)의 자금을 조달, 하루만에 니혼방송 주식 35%를 사들이고 “후지산케이그룹을 경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안개속 난전 거듭 이후 전광석화처럼 지분을 40%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놀란 후지산케이측은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니혼방송을 앞세워 주식 수를 현재(3280만주)의 2.5배인 최고 8000만주까지 늘리기로 하고 신규 주식인수권을 후지산케이가 갖겠다고 23일 발표했다.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켜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주를 대량 발행하면 일본 상법상 위법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후지산케이측은 “기업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라이브도어는 위법이라면서 즉각 법원에 후지측의 신주인수권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도쿄지방법원이 1일 1차 심리에 들어갔다. 앞으로 장기적인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우선 법원이 후지산케이측의 손을 들어주면 후지TV가 니혼방송 주식의 70% 정도를 확보, 경영권을 방어하게 된다. 반면 라이브도어는 20%선으로 떨어진다. 이 경우 라이브도어가 주주로서 손해를 봤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진흙탕 싸움이 될 게 뻔하다. 반면 법원이 라이브도어의 손을 들어주면 후지산케이측으로서는 주식 공개매집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무엇보다 양측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여 ‘끝없는 소모전’이 예상된다. ●쿠데타로 창업주 몰아낸 히에다 후지산케이그룹은 1954년 니혼방송의 개국이 뿌리다. 재계의 후원으로 당시 니혼게이자이렌 시카나이 전무가 니혼방송 경영에 참여한다. 시카나이는 집안내 암투에서 승리, 실권 장악과 함께 사장 자리에 오른다. 이후 시카나이는 경영수완을 발휘,57년에는 후지TV를 설립한다. 비슷한 시기에 경영위기에 빠진 산케이신문사를 재계 요청 수락형식으로 인수했다. 라디오,TV, 신문의 3대 매체를 장악한 시카나이는 후지산케이그룹의 초대 의장에 취임했다.85년에는 장남이 2대 의장에 올라 세습을 시도하지만 3년 뒤 장남이 42세의 나이에 급사한다. 이에 당시 일본 흥업은행에 다니던 사위를 데려다 89년에 그룹 의장에 취임시킨다. 하지만 92년 7월 산케이신문사 일부 중역들이 창업주측을 “언론인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기업을 사물화한다.”며 몰아낸다. 이 때 뒤에서 조종한 인물이 당시 후지TV 사장이었던 히에다 히사시 현 후지TV 회장이라는 게 통설이다.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지다 전격적인 쿠데타로 창업주 일가를 몰아냈지만 니혼방송 주식은 창업주 일가의 수중에 있었다. 여전히 니혼방송의 최대주주였다. 당시 니혼방송은 후지TV의 주식 51%를 보유, 창업주측이 반격하면 히에다가 밀려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히에다 회장은 “창업주의 지배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니혼방송과 후지TV의 상장을 택했다고 한다. 상장을 통해 시카나이 집안의 주식 소유비율을 끌어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96년 니혼방송,97년 후지TV의 상장이 각각 이뤄진다. 이후 히에다 회장측의 의도대로 니혼방송과 후지TV 주식의 창업주 일가 소유비율도 낮아진다. 급기야 지난해 시카나이 가문이 다이와증권 등에 주식을 모두 팔아버린 것이 밝혀져 시카나이 집안의 복권 우려는 해소됐다. 이에 여유를 찾은 후지산케이그룹측은 “니혼방송 주식을 사들여 자회사로 만들고 완전독립을 성취하겠다.”며 니혼방송 주식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개매수 과정에서 시장가격보다 헐값에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이 패착이었다. 대량 주식 보유 주주를 상대로 ‘가격 후려치기’를 하려 했지만 아무도 후지산케이측에 팔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 중심부인 록폰기힐스의 모리타워 38층에 사무실을 둔 라이브도어가 같은 건물 31층에 사무실이 있는 리먼 브러더스의 자금을 동원,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라이브도어가 외자를 끌어들이면서 니혼방송 사태는 복잡해졌다. 방송에는 외국자본이 간접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도 ‘저질의 머니게임’,‘도전과 파괴정신’이라는 비난과 찬성으로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관련회사 주가도 춤을 추듯 출렁이고 있다. taei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한솔그룹은 삼성가(家)의 맏딸인 이인희(76) 고문이 일궈낸 기업이다. 아울러 ‘큰 소나무’란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진 국내 최초의 대기업이기도 하다. 1991년 삼성가로부터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받아 ‘홀로서기’에 나선지 15년. 이 ‘큰 소나무’는 한때 1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서열 11위(자산규모 9조 3970억원)까지 올라 ‘리틀 삼성’으로 불렸다. 계열분리 당시 매출액은 3400억원에 불과했지만 금융과 정보통신, 제지의 3개 부문을 축으로 삼아 급성장하며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한솔도 생채기는 있었다.1998년 외환위기 파고에 휩싸이며 ‘곁가지’를 잘라내는 아픔을 겪은 것. 매출액은 1999년 4조 5000억원을 정점으로 2003년 2조 5000억원으로 떨어지며 한동안 자존심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2002년 이후 3년 연속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온갖 풍상을 이겨낸 소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한솔은 올해 불혹(창사 40돌)을 맞아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다지고 있다. 구조조정에 나설 당시에 ‘어디까지나 내일의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뿐’이라는 이 고문의 약속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 “쟤가 아들이라면…” “이리 오세요.” 어두운 극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인희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80) 전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 이사장이 회고록에서 밝힌 아내와의 첫 상견례 대목이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이 고문과 첫 만남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통 큰 여장부’와 ‘숫기 없는 남자’로 살아갈 운명을 예감했다고 한다. 조 전 이사장은 회고록에서 아내인 이 고문에 대해 “수완이 탁월할 뿐아니라 사업가적 재질이 뛰어난 전형적인 삼성가 출신”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꼬장꼬장한 자신과 달리 아내는 남자처럼 걸걸한 편이어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뒤바뀐 부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고문의 경영자적 자질을 가장 아꼈던 사람은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이 회장은 이 고문에 대해 “쟤가 아들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근심 걱정이겠노.”라고 수시로 말했다고 한다. 당시 고 이 회장은 삼성의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썩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고 이 회장은 골프 라운딩을 할 때마다 맏딸인 이 고문을 데리고 다녔다. 이 고문에게 인사 교류의 폭을 넓혀주고, 경영에 관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고문도 부친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남모르게 골프 연습을 많이 했다. 그는 골프도 연구하는 자세로 임했다. 골프에 관한 노트가 수십권이나 된다. 고 이 회장의 메모하는 습관을 그대로 닮았다. 이 고문은 “라운딩할 때마다 아버지한테서 회사를 경영하는 기법이나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 고문의 골프 스타일은 경영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주도면밀하게 연구한 뒤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어붙인다. 이런 경영 스타일은 정보를 중요하게 여겼던 고 이 회장의 경영관과 다르지 않다. 이 고문은 “골프는 연습한 만큼, 그리고 노력한 만큼 거두는 운동이며 기업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고문은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된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대표이사를 할 때도 그의 직함은 ‘고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와 결단력은 고 이 회장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자식들의 무리한 공격 경영으로 한솔이 휘청거린 1998년, 그는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사를 정상으로 회복시켜 놓았다. 그리고 나서 3남인 조동길(50)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고 이 회장이 경영능력이 뛰어난 3남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의 대권을 물려준 것과 같은 대목이다. 이 고문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낸 일화가 있다. 한솔은 1996년 종합레저산업에 진출하면서 오크밸리 건설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됐다. 이 고문이 참석한 가운데 콘도 분양을 위한 모델하우스 신축 문제를 놓고 임원회의가 열렸다. 한 임원이 모델하우스의 시공은 실제 콘도의 객실보다 조금 크게 시공해서 고객의 호감을 얻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는 모든 건설사가 그런 관행을 따르고 있던 때였다. 이 고문은 “정직하지 못하면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제와 하나도 다름없이 시공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 고문은 벽지부터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2년 후에 개관될 콘도 자재를 긴급 구입해 실제 콘도 객실과 똑같은 모델하우스를 만들었다. 이 고문은 부친인 고 이 회장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하다. 삼성가의 장녀로서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다.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될 무렵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우리가 삼성에 들어왔지 전주제지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라는 직원들의 인식이었다. 이 고문은 이를 받아들여 직원들에게 국내 최고 수준의 복리후생을 제공했다. 특히 삼성가로부터 받은 삼성중공업의 일부 지분을 임직원에게 그냥 나눠준 것은 ‘한솔은 사람이다.’라는 경영 이념과 ‘통 큰 여장부’로서 기질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이 고문은 또 직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을 쏟았다. 공장을 방문하면 식당에 어떤 꽃을 갖다 놓으라든지, 직원 유니폼 선정 등을 일일이 챙길 정도다. 한번은 한 사원이 사옥 로비에서 인사를 드리자 이 고문은 사원 이름을 불러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경북의 명문가 조씨 가문 조운해 전 이사장은 경상도 명문가인 한양조씨 일문인 조범석가(家)의 3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인 조범석씨는 일찍이 금융계에 투신, 대구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조씨 가문은 경북 영양에서 의사와 학자, 판·검사를 두루 배출한 경북 일대의 명문 집안으로 유명했다. 해방 이후 박사만 14명이나 배출했다.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도 이 집안 인물이다. 조 전 이사장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집 전 체육부 장관은 어린 시절 조 전 이사장의 집안에 대해 부러움을 많이 느꼈다고 술회하곤 했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11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중매로 이 고문을 아내로 맞았다. 박 전 의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다. 박 여사는 맏딸인 이 고문의 배필을 박 전 의장에게 부탁했고, 박 전 의장은 경북중학교 1년 후배인 조 전 이사장을 추천한 것이다. 조 전 이사장은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영과 거리가 먼 서울대학교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고문은 이화여대 3학년 때 양가 집안의 합의로 결혼함으로써 이대 학칙상 학업을 끝내지 못했다. 그 후 이 고문은 이화여대를 위해 많은 공헌과 후원을 해왔으며, 특히 전문 여성 양성을 위한 두을장학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우리나라 여성인력 육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정략 결혼은 ‘NO’ 한솔가의 2세(3남2녀)들은 정략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재벌가의 결혼이 ‘끼리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3남인 조동길 한솔 회장 아내인 안영주(48)씨의 집안이 그나마 좀 알려진 편이다. 안씨의 부친은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이다. 장남인 조동혁(55) 한솔 명예 회장은 이정남(54)씨와 신혼 살림을 차렸다. 조 명예 회장의 장녀인 연주(27)씨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차녀인 희주(25)씨와 아들 현준(16)군은 학생이다. 차남인 조동만(52)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은 대학시절 친구 소개로 부인 이미성(49)씨를 만났다. 장녀인 은정(25)씨와 차녀인 성진(19)양, 아들인 현승(15)군은 모두 학생이다. 3남인 조 회장은 부인 안씨를 만나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인 나영(23)씨는 현재 삼성전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들 성민(18)군은 학생이다. 며느리 세 명이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솔가의 막내딸인 조자형(33)씨는 타이완계 미국인 빈센트 추(36)와 국제결혼했다. 이 고문은 당시 “너희 둘이 좋다는데 국제결혼이면 어떠냐.”면서 결혼을 승낙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타이완에서 열려 가족들만 조용히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센트 추는 현재 중국에서 정보기술(IT)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양(6)과 경(3) 등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장녀인 조옥형(44)씨는 권대규(46) 한솔창업투자 부사장과 연애결혼했다. 권애영(17)양과 권이주(10)양 두 딸은 학생이다 ●‘3각 분권형’에서 조동길 회장 ‘단독 체제’ 한솔은 장남 조동혁 명예회장과 차남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3남 조동길 한솔 회장이 1997년부터 모두 부회장을 맡아 공동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장남은 금융을, 차남은 정보통신을,3남은 제지 부문을 맡았다.3형제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그룹 사업부문을 자연스럽게 떠안은 셈이었다. 이 고문은 경영 조언자로서 2선에서 자식들을 지원했다. 3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차남 조동만 회장이었다. 발이 넓은 조 회장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며 물오른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룹이 PCS사업을 KT에 매각한 뒤 통신사업에서 손을 떼고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1994년 부친의 뒤를 이어 강북삼성병원을 경영하다가 1995년 한솔에 합류했다. 그는 한솔종금(당시 대아금고)과 한솔창투(동서창투) 등을 인수하며 한솔의 금융업 확대를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한솔의 주력사업이 제지로 재편된 뒤인 2002년 그룹 명예회장으로 선임돼 경영 일선에서 한발 비껴섰다. 그는 선이 굵고,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명예회장은 매년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며 세계적인 재계 인사들과 교류를 넓히고 있다. 3남인 조 회장에게는 ‘실무를 아는 최고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한솔에 합류해 ‘제지통’으로 성장했다. 삼성물산의 자금업무와 JP모건을 거친 만큼 재무 감각도 남다르다. 형들이 신규 사업 확장에 나설 때 그는 조용히 한솔제지의 내실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합작법인을 주도해 모친인 이 고문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 NHK방송은 한국기업의 모범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한솔을 소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솔은 금융·정보통신 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주력사업을 제지로 전환함으로써 조 회장은 2002년 자연스럽게 한솔의 ‘대권’을 물려받게 됐다. ●한솔의 전문 경영인 선우영석(61) 한솔제지 부회장은 삼성출신 한솔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회장과는 동서지간이다. 그의 아내 안인숙씨는 조 회장의 부인인 안영주씨의 언니다. 선우 부회장은 1998년 합작사(한솔·캐나다 아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노르웨이 노르스케 스코그)인 팬아시아페이퍼 대표이사를 맡아 매년 매출액을 10%씩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입장과 문화가 다른 세 회사를 조율하고 설득시키며 우량 회사로 발돋움시켰다. 이에 앞서 그는 한솔 상하이공장을 건립한 뒤, 공장을 가동하던 첫 해부터 흑자를 내는 사업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선우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국제적인 경영감각, 추진력 등 최고경영자(CEO)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1993년 한솔로 옮기기 전까지 삼성의 해외 부문과 기획업무를 맡았다. 신현정(56) 경영기획실장은 한솔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살림꾼이다. 신 실장은 삼성물산 총괄경영지원본부장과 제일모직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문주호(58) 한솔제지 영업·생산 부문 대표이사는 타고난 영업맨으로 매년 영업 사원들에게 직접 새 신발을 신겨주는 행사인 ‘착화식’을 갖고 ‘발로 뛰는 영업’을 강조한다. 유명근(58) 한솔홈데코 대표는 영업·생산·기획 등을 두루 거치면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최근 기후변화협약이 시행됨에 따라 탄소배출권 확보가 한층 중요해진 가운데 그는 90년대 초 이미 해외조림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인 식견있는 CEO다. 서울대 임학과를 나왔다. 지난해 취임한 권교택(57) 한솔케미칼 대표는 적자에 시달렸던 한솔케미칼을 단숨에 흑자로 전환시킨 능력있는 CEO다. 침착한 성격에 세심한 경영 스타일이다. 김근무(60) 한솔개발 대표는 고객서비스를 최고의 경쟁력으로 강조한다. 오크밸리는 4년 연속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한 서비스품질 최고기업으로 평가받았다. 유재철(54) 한솔건설 대표는 삼성건설 총괄팀장과 공사지원팀장을 거친 정통 건설맨이다. 업계에서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서강호(56) 한솔CSN 대표의 경영철학은 ‘선택과 집중’. 그는 인천화물터미널과 한솔CS클럽을 매각하며 물류사업에 집중, 한솔CSN의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40분에 주파하는 마라톤 마니아다. 한솔LCD를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키운 김치우(56) 대표는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CEO다. 정형근(55) 한솔EME 대표는 엔지니어링 전문가로 꼽힌다. 한솔텔레컴 유화석(53) 대표이사는 온라인게임과 인터넷 포털 등 적자사업을 정리해 경영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조동길회장 ‘테니스 경영’ 조동길 한솔 회장은 대단한 테니스 예찬론자다. 마니아 수준을 넘어 테니스를 경영에 접목시킬 정도다. 현재 한국테니스협회 회장이다. 그는 테니스와 경영의 공통점으로 ▲강인한 기초 체력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 실력주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을 꼽는다. 조 회장의 남다른 점은 ‘테니스 경영이론’을 실제 비즈니스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다.9년째를 맞는 한솔-미국 앨라배마 펄프사간 친선 교류행사가 그 예이다. 이 행사는 테니스와 골프 두 종목으로 친선 경기가 이뤄지는데, 조 회장은 직접 테니스 선수로 뛴다. 또 매년 사내 테니스 대회를 열어 선수로 뛸 뿐 아니라 경기가 끝난 후에도 출전 선수와 격의없이 어울리곤 한다. 러시아의 ‘테니스 요정’인 마리아 샤라포바 초청 이벤트는 조 회장의 ‘테니스 경영’을 가장 잘 드러낸 대목이다. 한솔은 지난해 9월 개최한 제1회 ‘한솔 코리아오픈 테니스 대회’에 세계적인 스타 샤라포바를 초청, 이른바 ‘샤라포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100억원이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을 뿐 아니라 적자가 당연시되던 테니스 대회도 흑자가 가능하다는 값진 수확을 올렸다. 당시 조 회장의 ‘레이더’에 포착된 선수가 바로 샤라포바. 샤라포바는 그 때까지만 해도 기량보다 외모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조 회장측의 적극적인 설득에 어렵지 않게 구두 승낙을 얻어냈다. 특히 샤라포바가 세계 최고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우승하면서 조 회장이 빼든 ‘샤라포바 카드’는 그야말로 대박이 예견됐다. 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된’ 샤라포바는 ‘작은 대회’에는 출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종 스케줄이 밀려 있어 방한할 수 없다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한 것. 이 때부터 기업인 최초로 한국협상협회에서 협상 대상을 받은 조 회장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조 회장은 “비즈니스는 신의가 최우선이다. 구두 약속도 계약서에 서명만 안했을 뿐이지 사실상 약속이다. 스타가 약속을 저버리기 시작하면 팬들은 당연히 돌아설 수밖에 없다. 약속을 지켜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샤라포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유리 샤라포바를 집중 공략했다. 양측은 윔블던 우승 ‘프리미엄’을 약간 얹어주는 수준에서 최종 합의에 성공했다. ■ 이인희고문의 자식교육 이인희 한솔 고문도 자식 교육 만큼은 한국의 ‘보통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여성 CEO(최고경영자)로서 한솔을 키우느라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자식을 잘되게 하기 위해 때로는 어머니로서의 냉정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고문은 한솔이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동혁, 동만, 동길 3형제와 한지붕 아래 같이 살면서 엄격하게 경영 수업을 시켰다. 3형제는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어머니 대신 고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정도이다. 그만큼 어머니를 ‘경영 스승’으로서 깍듯하게 대한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며느리들도 한때 어머님 대신 고문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고문도 호칭에 대해 굳이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식들 앞에서 경영자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한솔의 공동 경영자로서 강한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자는 깊은 뜻에서다. 그러나 마냥 엄한 어머니만은 아니었다. 장남인 조동혁 명예 회장이 미국 유학시절 크게 다치자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수주일 동안 직접 병수발을 들며 가슴 아파했을 만큼 자식 사랑이 끔찍했다. 다만 약한 어머니를 내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감췄을 뿐이었다. 이 고문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해외에 보내 외국어와 국제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3형제 모두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왔으며,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대학까지 미국에서 졸업했다. 또 이 고문 가족이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한 덕분에 3형제 모두 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이 고문은 자식들의 영어 테스트를 위해 수시로 영어 대화 시간을 갖곤 했다.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경제와 정치, 사회문제 등을 주로 다뤄 자식들이 고급 영어를 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고문도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고문은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에 머물고 있다. 매년 겨울이면 그곳에서 건강을 돌보다가 3월쯤 한국에 돌아온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계 인사이드] 소버린의 ‘법망 비켜가기’

    SK㈜의 주식 매입과정에서 ‘허술한’ 국내 관련 법규를 교묘히 피해갔던 소버린자산운용이 이번 LG그룹주 투자에서도 관련법을 적절히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버린자산운용은 지난 18일 LG의 지주회사인 ㈜LG와 LG전자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보유목적을 회사의 지배권 취득 또는 지배권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경영진 교체나 정관 변경은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배권과 관련있는 주식보유인데도 경영권과 관련해서는 지분행사를 않겠다고 밝힌데 대해 소버린은 “보유목적은 ‘투자’에 가깝지만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목적으로 LG측 이사회에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경영진과도 대화를 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경영에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버린 법률자문인 김영준 변호사는 “보유목적을 ‘단순투자’로 공시하면 지분매입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경영진과 접촉도 못하는 등 돈만 내고 입을 닫아야 한다.”면서 “이는 지난해 12월31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증권거래법에 의거한 것이다.”고 말했다. 소버린이 국내법을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소버린의 해박한 국내법 지식은 SK글로벌 사태로 SK내 지배구조에 균열이 공개되자 그 틈을 이용한 것과 달리 지배구조가 가장 안정된 LG를 타깃으로 삼은데서도 잘 나타난다. 동원증권 김세중 애널리스트는 “‘SK사태’ 이후 증권거래법 개정을 통해 냉각기간제 도입, 공개매수 기간 중 신주발행,5% 이상 주주 가운데 경영참여 목적이 있으면 재공시 등 외국인의 경영권 위협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어수단들이 대폭 강화됐다.”면서 “소버린은 이러한 국내 환경 변화를 염두에 두고 저평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 SK와 전혀 다른 LG 주식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버린의 ‘법망 비켜가기’는 SK의 주식매입과정에서 이미 확인됐다. 소버린은 지난해 4월4일 SK㈜ 지분 10.50%를 확보했지만 4월9일에야 공시를 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의 ‘10% 이상 주식 취득시 사전신고 의무’ 규정을 어긴 것이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이같은 혐의에 대해 소버린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국내법을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 등을 들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소버린이 전기통신사업법상 SK㈜를 통해 SK텔레콤을 지배할 수 있는 한도(15%)에 정확히 맞춰 14.99%의 지분을 매입한 ‘용의주도함’에 비춰보면 국내법을 잘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보유목적을 투자와 경영참여 둘다 해석가능한 ‘수익창출’로 내세워 공시위반 논란을 피해간 것도 절묘한 방법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법을 꿰뚫고 있는데다 한국언론의 ‘속성’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소버린이 복잡다기하면서도 미비한 지주회사 관련 법규 등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시론] 외국 투기자본을 견제하는 길/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소송연구회 회장

    [시론] 외국 투기자본을 견제하는 길/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소송연구회 회장

    2년에 걸쳐 재계 4위인 SK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자산운용이 최근 ㈜LG와 LG전자의 지분 6%를 취득했다고 한다. 이에 들어간 비용은 1조원에 불과하다.LG측은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에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소버린측이 애초부터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소버린에 국내기업은 돈벌이의 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소버린은 이미 SK의 경영권을 위협해 ‘투하 자본’의 6배인 9000억원의 주가 차익을 낸 바 있다. 이번 LG에 투자한 돈과 비슷하다. LG의 경영권도 소버린에는 관심 밖일 것이다. 주가 차익을 어떻게 노릴 것인가가 관심 대상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소버린의 주식 취득이 공시되자 LG의 주가는 장외 전자거래시장에서 모두 상한가를 쳤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국민들은 소버린의 시장 교란행위를 차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나 재계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기관은 그동안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무소불위의 공정위도 외국기업에 대해 1차례만 역외적용을 했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더욱이 무형의 재화가 거래되는 자본시장에 대한 역외적용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2003년 LG카드의 2대 주주인 외국계 펀드가 신용카드 사태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보유지분 19%를 일시에 처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결국 국내기업의 투자 규제가 존재하는 한 외국 투기자본에 대한 견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에 법인을 설치하지 않은 외국계 투기자본에 대한 법률상 규제가 현재로서는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잘 나가는’ 국내 기업들의 지분 50% 이상을 외국계 투기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사실상 이들 기업은 국내에 설립 등기만 하고 있을 뿐 이미 국내기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나마 존재하는 국내 자본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탈 한국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 자본에 대한 주식 소유 규제는 외국 자본과의 관계에서 역차별을 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출자총액제한제와 상호출자제한 등 말할 수 없을 만큼 규제가 많다. 심지어 신문사에 대해서도 동일인 소유제한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 자본시장은 소버린과 같은 외국계 투기자본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수도 있다. 사실상 ‘엘도라도(황금의 땅)’인 셈이다.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을 ‘유비쿼터스 핸드 (The Ubiquitous Hand)’라는 용어를 사용해 비판하고 있다. 이는 구조조정이란 명목의 정부 개입이 경제 전반에 걸쳐 만연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규제해야 할 대상은 국적을 불문하고 국내시장을 교란하는 투기세력이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외국 투기자본에 대해 거뜬히 견뎌낼 수 있도록 국내 자본시장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길만이 유일한 견제 장치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역차별을 가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정책 당국은 역차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신속한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소송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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