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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인사이드] GS, 스마트로 주식 매집

    ‘코스모 살리기인가, 딴 살림 차리기인가.’ GS그룹 허씨일가가 총출동해 방계 계열사인 스마트로 지분을 매입,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허창수 GS 회장 등 허씨가(家) 15명이 참여해 코스모아이넷(20.52%)과 코스모앤컴퍼니(16.22%)가 보유한 스마트로 지분 37만 6000주를 48억 8800만원(주당 1만 3000원)에 매입했다. 스마트로는 전자상거래와 스마트카드 소프트웨어를 개발, 판매하는 회사로 지난해 매출 310억원에 순이익 19억원을 기록했다. 증시에서는 오너일가가 코스모그룹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스마트로 지분 매입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스마트로는 지난해 부채비율이 724%에 이를 정도로 재무구조가 그다지 탄탄하지 않을 뿐 아니라 2003년엔 4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열사의 거래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경영 실적이 반전됐다. 여기에 코스모앤컴퍼니가 올들어 수차례에 거쳐 계열사로부터 운영자금 수십억원을 빌릴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였다는 지적이다. 지난달에는 코스모아이넷으로부터 26억 5000만원을 차입했으며, 코스모화학도 최근 운영자금 9억원을 코스모앤컴퍼니에 빌려줬다. 코스모앤컴퍼니는 아이써프(60.38%), 코스모화학(5.54%), 코스모디앤아이(16.67%), 코스모아이넷(100%)을 보유한 사실상 코스모그룹의 지주회사. 허경수(코스모앤컴퍼니 지분 45% 보유) 코스모 회장과 동생인 허연수(35%) GS리테일 상무가 대주주이다. 코스모아이넷은 코스모앤컴퍼니의 자회사로 코스모그룹의 전문 IT기업. 최근에는 계열사 수주를 기반으로 급성장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마트로에 주목한다. 오너일가가 비상장사 지분을 단체로 매입한 배경엔 기업의 성장 가능성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증시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우거나 계열 상장사의 지분 매입에 앞서 재벌 오너가가 지배구조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 비상장사의 지분을 늘리는 경향이 많다.”면서 “스마트로도 이같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경수 회장이 경영하는 코스모그룹은 코스닥 등록기업인 코스모화학을 주력으로 코스모앤컴퍼니, 코스모아이넷, 코스모레저, 드림스포츠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허 회장은 LG전자에서 이사로 잠시 일하다가 1987년 코스모산업 설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총수 기소위기의 두산그룹 세계 담수설비시장 중형사업도 싹쓸이

    검찰의 칼끝이 총수일가를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위기’에 몰린 두산그룹이 주력인 중공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美 AES 수처리사업 49억원에 인수 두산중공업은 60억원을 들여 미국 플로리다주 템파시에 ‘두산 하이드로 테크놀로지’를 설립해 계열회사로 편입했으며, 이 회사를 통해 미 AES의 RO(역삼투압 방식) 수처리 사업을 49억원에 인수했다고 31일 밝혔다. AES는 RO 수처리 사업부문에서 원천기술과 미국 전역에 걸친 영업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 및 중남미 지역에서 80여곳의 담수 플랜트와 100곳 이상의 상하수도 시설을 공급했다. 역삼투압 막을 이용해 바닷물 속의 염분을 제거, 담수를 생산하는 기술인 RO는 다단증발법(MSF 방식), 다중효용 증발법(MED 방식)과 함께 3대 담수화 방식 중 하나. 전체 담수설비 시장 4조원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 대형 담수시장 점유율 40%로 1위를 달리고 있는 두산중공업은 AES 인수를 통해 그동안 원천기술이 없어 진출하지 못했던 중소형 담수사업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RO 기술을 활용해 연간 2조원 규모의 상하수도, 오·폐수처리시설 등으로도 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중동지역에서 11억 5000만달러 규모의 담수설비를 수주했으며 올해도 카타르, 쿠웨이트, 리비아 등에서 5억달러의 수주 실적을 올리고 있다. ●원전설비 수주증가도 뚜렷 두산중공업은 또 지난해 1814억원이었던 원전설비 수주가 올해는 88% 증가한 3405억원으로 예상되는 등 발전설비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적 원전설비업체인 웨스팅하우스 인수전에도 뛰어들었고,8월 말에는 중국 하얼빈전력집단과 협약을 맺고 2020년까지 50조원 규모인 중국 내 신규원전 시장에 공동진출키로 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 2조 4500억원, 영업이익 2076억원에서 올해는 매출 3조 3000억원, 영업이익 2200억원으로 2001년 재출범 이후 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외적인 환경은 여전히 어둡다. 검찰은 이번주 중 두산비리 수사를 결론짓고 총수일가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기소할 계획이다. 사법처리 강도를 놓고 재계는 물론 국제 체육계·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는 박용성 회장은 두산중공업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다시 고개든 ‘기업 정보맨’

    다시 고개든 ‘기업 정보맨’

    ‘기업 정보맨’이 다시 뛰고 있다. 올 들어 정부의 ‘지라시(정보지)’ 단속으로 한동안 움츠렸던 정보맨들이 최근 ‘X파일’ 사태와 시민단체의 공격, 반기업 정서 확산 등으로 여론 탐지와 정보수집 안테나를 다시 곧추세우고 있다. 특히 정보맨들이 과거와 달리 집중적으로 챙기는 곳은 시민단체 동향. 삼성과 SK, 한화 등 시민단체와 한차례 이상 악연이 있는 대기업들은 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들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숨어들었던 정보지도 다시 등장했다. 문서로 돌아다니던 정보지는 은밀하게 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전파하고 있다. 정보지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음해성 내용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KT가 최근 ‘남중수 체제’를 맞아 정보팀 조직을 새롭게 꾸렸다.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은 1398억원의 사상 최대 과징금 제재건이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정보통신부에 치중한 대관업무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정보 수집·분석에 나설 방침이다. KT 대외부문은 기존 사업협력실과 국회 등을 담당하는 대외전략실로 개편했다. 대외전략실 인력은 20여명으로 전략과 지원 부문으로 나뉜다.50여명의 사업협력실은 대정부 정책협력, 유·무선사업자 협력, 공정 경쟁, 남북협력으로 나눠져 있다.KT 관계자는 “경기도 분당 본사에 있던 대외전략부문 사무실을 광화문 사옥에도 만들어 조직 강화와 함께 전진배치한 것”이라면서 “국가 기간통신업자로서 공공성이 강해 정부와의 협력 사안이 많다.”고 설명했다. SK그룹도 SK㈜ 투자회사관리실 내에 CR지원팀과 SK텔레콤 CR지원실을 운영하고 있다.SK㈜의 경우 CR지원팀에 부장급을 팀장으로 하는 7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최근에 신설된 CR지원팀은 정보 수집과 판단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정책 변화와 기술개발 동향, 협력업체와의 관계 설정 등 대외관계를 총괄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재계 정보력의 9할인 삼성은 구조조조정본부 내 기획팀에서 주요 계열사의 대외협력단과 손발을 맞춰 대관업무와 정보 수집·분석 활동을 주관한다. 그러나 최근 잇따라 터진 악재로 인해 삼성 정보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북사업을 영위하는 현대그룹도 정보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인력과 경비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시중에 유통되는 정보를 수집하는 수준이라면 정보팀이 필요없다.”면서 “그러나 제대로 정보팀을 운영하려면 적지 않은 전문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데 현재 그룹 여건상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LG그룹은 LG경제연구원 산하 경영정보팀에서 산업과 경영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룹 위상에 비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현대차는 정보 활동에 주력하는 공식 조직이 없다. 전략기획팀에서 정부부처와 시민단체를 접촉, 경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수준이며, 국회 업무를 맡은 정책기획팀에서 그룹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입법활동 등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 전문그룹인데다 그룹 역사도 짧아 지금까지는 정보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업종이 다양해지고 그룹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레 정보활동도 강화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산업부 golders@seoul.co.kr
  • [기업 氣를 살리자] (1) 일손놓은 기획팀

    요즘 기업인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기업하기 정말 어렵다.”고 한숨을 짓는다.“돈은 있지만 투자할 곳이 없다.”거나 “정부가 규제를 풀어준다면서 오히려 고삐만 더 죈다.”는 식의 불만을 털어놓는다. 기업인들에게 올해는 기억하기 싫은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삼성X파일’로 촉발된 반기업정서는 분식회계로 인한 검찰의 비자금수사, 국정감사장에서의 무차별적인 기업인 공격으로 이어졌다. 재계가 정부와 사회 각 계층의 ‘공적’이 되다시피하면서 기업인들은 위축될 대로 위축됐고 투자 경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각종 제한과 어려움으로 인해 답보상태에 빠진 한국기업의 현주소를 조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기획, 인사, 재무, 홍보, 주주관리(IR), 법무 등 6개 부문으로 나눠 현장 스태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빌려 기업의 어려움과 애로를 진단한다. 지난 7월2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2005년 제주 하계포럼’이 열렸다. 행사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의례적 연설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기업인들을 질타하고 나섰다. 그는 “정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면서도 기업들이 정부에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기업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규제 때문이 아니라 (기업들의) 수익 모델이 없기 때문”이라고 경기침체의 책임을 기업인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행사에 참석한 대부분 기업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제때 투자에 나서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과도한 수도권 규제로 인해 5조원 가량의 공장 설립 계획을 제때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세달이 지난 지금까지 나온 얘기도 정부가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문만 들릴 뿐이다. ●정부의 반기업 정책과 정서에 불만 실제로 시장지배력이 큰 대기업의 기획 담당자들은 전경련 행사에서 기업인들이 느꼈던 답답함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한 정보통신회사의 A기획팀장은 “공정거래 차원에서 지배력이 큰 사업자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강화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고 투자여력이 있는 회사들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국제경쟁력 약화와 산업 정체라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국내시장이 포화상태인 점도 기업들의 투자 계획 수립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정유회사의 B기획팀 관계자는 “국내시장이 포화돼 있어 마케팅비용만 계속 늘어나고 추가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하지만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고 기간산업의 경우 외국기업에 대한 투자 규제가 있어 이마저도 어렵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기업체의 기획업무를 위축시키고 있다. 화학업체 기획팀 C과장은 “기업들이 안전 제일주의로 경영계획을 세우다 보니 예전보다 연구, 검토, 시뮬레이션 작업 등 기획부서의 업무량이 많아지는 반면 채택되어 투자로 이어지는 확률은 오히려 적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체 경영전략팀 D대리는 “국내 제조업체들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획이나 관리보다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공장부문과 영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스태프 부서들과 비교해 중요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도 기획담당자들의 애로사항”이라고 전했다. ●해결책은 없나. 기획담당자들은 회사의 기획업무가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원활한 관계와 소통’을 첫손으로 꼽았다. 정부가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최대한 만들어 줘야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고, 투자에 나섬으로써 투자계획과 시장분석 등 기획파트가 바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모 상사업체 E부장은 “정부와 기업간의 엇박자는 최근 이란 정부의 국산제품의 수입제재조치 파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태만 해도 이란 정부의 움직임을 정부나 코트라(KOTRA)에서 더 빨리 인지했던 것으로 알았는데 해외 진출 기업들에 사전에 아무런 정보제공이나 통보가 없었다.”며 “밉든 곱든 기업이 잘 돼야 국가가 부강해지는 법인데 정부와 기업체간의 공식라인과 비선조직 등의 원활한 네트워킹 구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신건씨 주초 소환

    안기부와 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다음주 초 임동원씨 후임으로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씨를 소환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검찰은 신씨를 상대로 2001년 3월∼2003년 4월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휴대전화 감청장비 등을 이용한 정·재계 주요인사들의 도청에 연루된 혐의 등을 집중 추궁한다.검찰은 신씨가 지난 28일 소환조사를 받은 임씨처럼 매일 감청부서인 8국으로부터 도청내용이 담긴 ‘통신첩보’ 7∼8건을 보고받은 점을 중시하고 있다.또 신씨를 상대로 국정원이 2002년 3∼4월 휴대전화 감청장비인 유선중계통신망 감청기기(R2)와 이동식 휴대전화감청기기(CAS) 등을 폐기하게 된 배경 등에 대해서도 캐묻는다.한편,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귀국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홍씨는 지난달 24일 대사직에서 물러난 뒤 “주변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검찰에 알려온 뒤 한달이 넘도록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30일과 지난 21일 홍씨에게 두번에 걸쳐 소환통보를 했다. 일부에서는 홍씨가 지난 29일자로 예약했던 뉴욕발 항공편을 최근 취소하고 다음 달 초순 항공편으로 다시 잡아놓는 등 다음 달 중으로 홍씨가 귀국할 것이라고 전했지만 귀국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김재철(70)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 김 회장이 서울 농대를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한 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아니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칠고 험한 바다를 꿈의 대상으로, 기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드물다.”소설가 최인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주름잡던 마도로스 출신의 김 회장에 대해 건전하고 꿈이 있는 몽상가라고 평했다.2000년 당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를 이끌던 김 회장은 최인호씨에게 장보고를 소설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최인호씨는 장보고가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권력을 꿈꾸다 암살(삼국사기)당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장보고에 깊이 빠져 소설 ‘해신(海神)’을 쓰게 됐다. ●바다와의 인연…장보고를 꿈꾸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벤처 비즈니스맨의 전형이다. 서울대 입학을 마다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좇아 바다 인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실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개척자 정신으로 바다와 싸워 성공을 거뒀고 식품가공업과 금융부문 등으로 그룹을 키워내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김 회장의 삶은 이처럼 바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1935년 전남 강진 농촌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동생들 대신 학교를 다닌 셈이다. 어린 동생들은 후에 김 회장이 학비를 대주었지만 기대와 책임감을 한몸에 안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어서 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진농고를 결석 없이 다니면서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시절.“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망망대해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계기로 그는 수산대에 진학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큰 경사인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뱃사람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 졸업하고 나서 배를 탈 때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정식 학부 졸업생이 배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수산대 졸업생들은 수산청이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관계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교사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여수수산고 교장으로 계시는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교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백면서생의 객기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결국 항해중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겨우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참치 잘 잡는 마도로스’ 1958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한 뜻깊은 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승선자이기도 하다. 기업가로 변신하기 전 김 회장은 8년간 실제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항해사로 시작한 뱃사람 생활에서 곧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파격적인 승진이다. 다른 배보다 빨리 만선을 기록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때부터 국내외 원양어선 업계에서 그는 ‘참치 잘 잡는 선장’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고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출어에 나섰다.”면서 “고기떼를 찾아 바다를 헤맬 때나 조업을 앞둔 새벽이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일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조로 삼았던 마음 가짐 때문인지 승승장구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괜찮아’다. 1964년 고려원양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돼 물품판매, 차관업무, 선박도입 등 수산업 관련 업무를 익혔다. 당시 원양어선이 잡은 참치는 대부분 현지에서 수출됐는데 그때 외국상선들과 거래하며 쌓은 신용은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 1969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업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동원 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사업 밑천은 1000만원. 배는 일본 기업에서 공짜로 빌렸다. 일본에서 어선 구입비로 37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담보나 정부·은행의 지불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빌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신용의 결과였다. 사장이 된 뒤에도 그는 직접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섰다.‘참치 잘 잡는 선장’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동원산업의 원양어선은 월등한 어획고를 기록했다. 창업 2년만인 1970년 외화 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수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70년대 초 몰아닥친 1차 석유파동은 동원산업을 비롯해 모든 원양어선 업계에 타격을 주었다. 불황으로 도산하는 기업체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원·감량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동원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4500t급 초대형 트롤어선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지만 그는 바다생활을 통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기상정보가 정확지 않아 예보없이 폭풍우를 만나는 일도 많았지만 바람이 온다고 일일이 피해 다니다보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났을 때처럼 감격스럽고 벅찬 희열도 없다. 폭풍우와 맞서 싸운 경험들이 인생을 성장시켰고 여물게 해준 것 같다.” 그는 해양에 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85∼91년 한국수산업 회장,90∼92년 원양어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식품과 금융업으로의 확장 다른 원양회사들이 낡은 배를 가지고 ‘본전뽑기’식 조업을 하는 동안 동원은 조업을 끝낸 선박은 현지에서 매각하고 최신형 장비를 갖춘 선박을 구입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30여척의 원양어선과 함께 연간 10만t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산업체로 키운 것이다. 동원산업에서 참치캔을 내놓으며 식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다랑어란 본명을 가진 참치는 참치의 일본명인 ‘마권(眞黑)’에서 ‘참(眞)’을 따고 우리나라 생선 대부분의 이름처럼 끝에 ‘치’를 넣어 참치로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참치잡이는 그가 배를 타던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됐지만 참치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에게 낯선 고기여서 전량 수출됐다. 그는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코스에서 몇달 공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통조림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참치통조림을 먹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획고 전량을 일본·태국 등 외국에 전량 수출하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소비가 된다면 동원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참치통조림을 만들어 팔다 실패한 뒤의 도전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참치가 원래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 고기라 낯설기 때문에 통조림에 참치 모양을 그려 넣고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참치통조림 시식회를 하는 등 참치를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출시 이후 4∼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8올림픽과 함께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동원은 명실공히 식품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동원 참치캔은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식품업을 시작한 1982년. 김 회장은 증권업에도 뛰어들었다.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며 들었던 얘기가 동기가 됐다. 하버드대학 MBA출신들이 어떤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가를 조사해 봤더니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그는 어선을 더 사려고 준비했던 돈으로 증권회사를 샀다. 당시 국내 증권회사의 인식이 좋지 않아 원양어선 한 척 값(80억원대)으로 중견 증권회사인 한신증권을 살 수 있었다. 한신증권을 낙찰받으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신증권은 1996년 동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아예 동원그룹에서 분리되어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재탄생했다. 99년 무역협회 2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일들은 주요 사항만 보고받고 있다. 무협 직원 절반가량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한편 전자무역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전시 컨벤션 육성, 수출입물류비개선 , 국제물류센터 추진 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아들들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김 회장은 부인 조덕희(67) 여사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선장시절인 1962년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던 조 여사의 오빠 조영채(70)씨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조 여사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졸업한 군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분으로 김 회장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김 회장은 2004년 12월 그룹을 각각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큰아들에게는 금융을, 작은아들에게는 식품을 맡도록 했다. 장남인 김남구(42)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듬해인 지난 6월 자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기존 동원금융지주보다 시가총액이 두배나 많은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한 후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지주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다. 동원F&B 등 식품 계열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32) 경영지원실장(직급 차장)이 물려받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92학번인 김 실장은 회사 지분 44.98%를 갖고 있다.97년 동원산업에 입사,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 등을 거쳤다. 아버지가 만든 참치캔 이후 업계를 선도할 새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표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장남 김 사장은 입사하기 앞서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참치배를 타며 동원을 이해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는 한편 참치를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갑판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남 김 실장 역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 동원산업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등 밑바닥부터 배웠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좋고 남들이 보면 구두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이다. ●정·관계로 이어지는 화려한 혼맥 건설교통부 장관부터 국정원장까지 동원가의 혼맥은 화려하다. 큰 아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고병우(72) 28대 건교부 장관의 딸인 고소희(37·이대 전산학과 86학번)씨와 1992년 4월 공항터미널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려대 김동기 교수가 주례를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동윤(12)과 지윤(7) 1남1녀가 있다. 고 전 장관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다 현재 한국경영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 쌍용증권 회장 재직시절부터 김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김남구 커플은 ‘괜찮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라.’는 양가 어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개월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대 서양학과 84학번인 첫째 딸 김은자(40)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44·고대 법대 79학번) 검사와 중매로 결혼했다. 김은자씨는 내성적이고 일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을 겨냥한 사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대구 고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열두살된 외동아들 연욱이 있다. 둘째 딸 김은지(37·이대 정외과 87학번)씨는 고 김택수 전 의원의 4남인 서울 법대(81학번) 출신의 김중성(43)씨와 지난 1992년 10월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식을 올렸다. 성격이 명랑하고 친정과 시댁의 집안 대소사를 두루 잘 챙겨 어머니 조덕희씨의 자랑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이 1988년 여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CISV)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김씨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선(12)과 현선(6) 두 딸이 있다. 막내 김남정(32) 실장의 아내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64)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셋째 딸 신수아(33·이대 장식미술학과 91학번)씨.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선배의 소개를 통해 누나-동생 사이로 만난 뒤 6개월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3년 열애끝에 결혼했다. 김상하 삼양사 회장 주례로 지난 1998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찬(5)과 서연(2) 남매를 두고 있다. 사돈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재국(63) 전 동해하이테크 사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뛰어난 문장가’ 김재철 회장 “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소개된 김재철 회장의 ‘남태평양에서’의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지만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이밖에 ‘바다의 보고’,“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 그의 글은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씨는 ‘사상계(思想界)’에 발표한 김 회장의 글을 보고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기업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가 있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시절 선용품을 사기 위해 시모노세키 등의 항구에 기항하면 책방에 가서 헌책들을 무게로 달아 구입해 배 안에서 끊임없이 읽었다. 덕분에 김 회장은 문학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 지난 2004년 일본 미쓰비시 그룹 회장·사장단으로 구성된 모임인 ‘금요회’에서 ‘나의 인생과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일본어 특강을 했다. 요즘도 월 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경제·경영·역사·심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회계학도 독학으로 배워 재무제표도 꼼꼼히 본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동원산업 사내 게시판에는 책 요약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처남인 박인구 동원F&B 사장도 국내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KTX를 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강조했다.1주일에 적어도 한 권씩은 읽도록 했다. 정독이 안되면 통독을 하라고 가르쳤다. 책을 주고 A4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도 받았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느낀 점이 부족하면 느껴야 될 점과 핵심 등을 설명해 주었다.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오래전에 독후감 제출을 졸업했지만 김 사장보다 열살 어린 동생 김남정 실장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독후감 제출 대상이었다. 김 실장은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얼마나 고생해 지도자 자리에 올랐는지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최근에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추천받았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처남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처남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김경문감독, 3년간 8억 재계약

    김경문(47) 감독이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역대 감독 최고액 기록을 세우며 재계약했다. 두산은 30일 김 감독과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3년 동안 모두 8억원에 재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1년 김인식 현 한화 감독의 3년 총액 6억원을 넘어서는 두산 역대 최고액. 연봉 2억원은 김재박 현대 감독의 2억 5000만원에 이어 선동열 삼성, 김인식 한화 감독 등과 함께 두 번째에 해당하는 고액이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김윤규 파문’ 北달래기용?

    [재계 인사이드] ‘김윤규 파문’ 北달래기용?

    ‘또 한번의 읍참마속?’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최측근인 최용묵 경영전략팀 사장이 27일 사퇴했다. 현대는 구조조정본부격인 경영전략팀을 해체하고 비서실을 강화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키로 했다. 현대그룹은 최 사장이 내부 감사보고서 유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이날 오전 사의를 표명했으며 현 회장이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현대아산 감사의 본질은 경영의 투명성과 합리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한 것이었는데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남북협력기금 유용의혹 파문 등 본의 아니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면서 “내부감사를 총괄해온 책임자로서 경영정보 관리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어려울 때마다 묵묵히 도와주셔서 늘 감사했다.”면서 “경영전략팀 사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그룹의 전문경영인으로서 항상 큰 힘이 돼달라.”고 당부했다고 현대는 전했다. 최 사장은 앞으로 현대엘리베이터 사장과 현대U&I 대표이사직만 수행하게 된다.1976년 현대그룹에 입사, 주로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일해 온 최 사장은 현 회장 취임과 함께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의 지주회사격으로 부상하면서 그룹내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최 사장의 사퇴는 북측이 지난 20일 담화문에서 “현대 상층부가 곁에 와 붙어 기생하려는 야심가들을 버리고 옳은 길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금강산관광의 넓은 길을 열어줄 것이다.”고 밝힌 직후 일어난 일이어서 북측과의 연관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북측이 지난 25일 전격적으로 현대와의 협상을 수용한 것도 현대에서 북측에 ‘성의’를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 사장의 사퇴와 북측의 ‘측근제거’ 요구는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최 사장은 감사보고서가 보도된 직후부터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수차례 밝혀왔으며 대북사업이 활로를 모색하게 되자 사퇴를 실행한 것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아직 감사보고서 유출자를 찾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최 사장만 물러난 것은 현 회장과 이종혁 북한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의 면담을 앞두고 북측에 보내는 ‘화해 제스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한편 현대는 그룹 공통업무와 구조조정, 감사 등을 담당하던 경영전략팀을 해체하는 대신 현재 차장급 직원과 여직원만 있는 비서실을 개편, 현 회장 보좌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R2팀 32명 정·관계인사 24시간 도청

    R2팀 32명 정·관계인사 24시간 도청

    검찰이 26일 구속기소한 김은성(60) 전 국정원 2차장의 공소장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이 알려졌던 것보다 더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던 사실이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4000∼4500여건 도청내용 보고 국정원은 8국 운영단 소속 국내수집과에 ‘R2수집팀’을 별도로 구성했다. 이 팀은 2개팀 8개조 32명이 정·관·재계 고위인사들의 휴대전화 통화를 24시간 도청했다. R2수집팀은 확보된 도청내용 중 하루 10여건씩 주요 인사의 통화내용 녹취록을 만들었다. 종합처리과는 이 중 7∼8건을 대화체 형식으로 요약,A4용지 절반 분량의 보고서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는 ‘8국’ 또는 ‘친전(親展)’이라고 적힌 봉투에 밀봉돼 김씨 등에게 보고됐다. 검찰은 김씨의 공소장에 7건의 도청사례만을 적었지만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2000년 10월 이전 시기의 도청 사례나 아직 사실 확인이 끝나지 않은 도청 의혹 등을 감안하면 검찰이 밝힌 7건은 말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김씨는 1년 6개월여동안의 2차장 재직기간 동안 4000∼4500건의 도청내용을 보고받은 셈이다. ●국정원 발표도 거짓말 국정원이 발표한 도청 실태조사도 축소된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도청근절 지시에도 불구하고 관행 때문에 불법감청을 일부 답습했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결과 당초 국정원이 120회선만 접속이 가능해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도청이 가능하다던 R2는 최대 3600회선까지 접속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R2에 정치인, 경제인, 고위 공직자 등의 전화번호를 미리 입력시켜 무차별적으로 도청했다. 아울러 99년 12월∼2001년 4월 이동식휴대전화 감청장비(CAS) 20세트를 각 시도지부 등에서 60∼70차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CAS는 현장에서 직원이 임의로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할 수 있어 무차별 도청의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날 검찰이 밝힌 국정원의 일부 도청사례는 경악스럽다.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은 물론 고위공직자 인사관련 통화, 장관 해임안·정책공조 등과 관련된 정당들의 움직임, 황장엽씨 방미 관련 통화내용 등 정치·안보·경제 분야의 주요 사안을 망라하고 있다. 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기업들 “주력업종 바꿔 바꿔”

    기업들 “주력업종 바꿔 바꿔”

    ‘기업들의 변신은 무죄?’업계에 ‘탈 전문화 바람’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의 주력사업으로 키워오던 부문들을 과감히 접거나 대폭 축소하는 등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영광의 발판이 됐던 과거의 주력 부문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감히 철수하는 곳도 적지 않다. 최근들어 기업들이 회사 구조 개편작업에 속속 나서는 것은 업계에서 ‘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주력 부문도 과감히 접는다. 업계의 이런 대변신에 한화그룹이 정점에 서 있다. 한화는 지난 52년에 한국화약으로 시작해 재계 8대 그룹으로 커왔지만 지난달 회사의 모태였던 다이너마이트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내년 9월까지 인천공장을 완전 이전하고 다이너마이트는 중국에서 수입할 예정이다. 보은 공장에서는 고부가가치의 방위산업 품목에만 주력할 방침이다.SK케미칼은 이달 초 석유화학 사업부문을 완전히 떼어내 별도 회사인 SK석유화학으로 독립시킬 계획이다. 앞으로 SK석유화학은 폴리에스터 원료인 TPA생산을 전담하고 SK케미칼은 수익성이 높은 정밀화학과 제약부문을 위주로 회사를 재편하게 된다. ●돈만 된다면…수익 다각화에 나서 지난 2001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대우차판매㈜는 수익다각화 사업의 일환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위한 기업문화 개선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여오고 있다. 그동안 대우차 위주로 판매해 오던 회사의 사업구조를 건설부문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형국이다. 아파트 브랜드 ‘이안’의 강세로 인해 건설부문 매출이 연간 5000억원 수준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자동차판매부문 매출액이 1조 509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억 9500만원 감소했다. 반면 건설부문은 상반기에 2789억원의 매출에 25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회사가 보유 중인 인천 송도 부지 30만평이 개발될 때 생길 수 있는 차익 발생에도 높은 기대를 걸고 있는 등 건설업체로 탈바꿈하는 분위기다. 대우차판매는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매출을 현재 전체의 80%에서 60% 수준으로 낮추고 회사 이름도 건설부문을 아우를 수 있는 명칭으로 변경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LG상사는 74년 반도패션으로 시작한 패션부문을 분리하는 작업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LG상사의 매출액 6조 5119억원 중 패션부문이 5144억원을 차지, 전체 매출액의 7.9%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LG상사는 지난 7월 자진공시를 통해 패션부문의 분리를 검토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제일모직도 저수익사업인 직물부문의 인력을 조정하고 생산규모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또 패션부문도 브랜드 고급화전략을 구사해 중저가제품 비중을 축소하는 등 사업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회사의 주력부문이었던 계열사들을 정리하거나 비중을 낮추는 작업은 수익다각화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회사 분할로 인한 자본유치, 인수합병 등을 통한 구조개편작업으로 인해 미래에 대비한 유연한 경영전략을 선택하기가 한결 쉬워졌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사설] 유명무실한 고위 공직자 취업 제한

    고위 공직자의 퇴임후 유관 사기업 취업을 제한하는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집계 결과 지난해에만 모두 132명이 취업제한 대상 사기업에 취직했으나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취업해제를 요청한 경우는 4명에 불과했다. 이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전 3년간 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에 퇴직 후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정부관리와 기업 사이에 유착의 소지를 제거하고 공직자의 윤리의식을 드높임으로써 업무집행의 공정성을 기해 보자는 것이 근본 취지다. 공직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퇴직 전 민원부서로 가 경험을 쌓고 퇴임 후 관련 사기업의 ‘로비스트’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것이 민원부서의 ‘전관예우’와 관련 기업들의 ‘퇴직자 챙겨주기’라는 관·재계간의 비리 사슬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의 사기업 취업제한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업무연관성’에 관한 판정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당 기관장에게 그 판단을 의존하는 현행 제도는 불합리하다. 기관장이 소속 공무원의 재취업에 재 뿌리는 일을 하겠는가. 외부 민간인이 참여하는 객관적인 심사위원회 구성을 검토해주기 바란다.‘업무연관성’ 심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감독할 수 있도록 공직자윤리위의 기능도 강화돼야 할 것이다. 이밖에 법조계 공직자의 사기업 취업 제한도 시급하다. 판·검사 등이 퇴직 전 3년동안 담당했던 사건 관련 기업체에 취업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우리는 이 법안의 처리 여부를 지켜볼 것이다.
  • [재계 인사이드] M&A 3인방의 논리 대결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워온 ‘신흥재벌 3인방’의 M&A 논리 대결이 흥미진진하다. 세양선박 M&A로 불거진 임병석 쎄븐마운틴 회장과 최평규 S&T중공업 회장간의 ‘투기꾼 논란’이 법정 싸움으로 비화된 가운데 임 회장이 지난주 제안한 M&A 공개 토론을 최 회장이 최근 거부했다. 또 투기꾼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한 강덕수 STX 회장은 “나를 기업 사냥꾼으로 부르지 마라.”며 차별성 부각에 나섰다. 임 회장은 M&A 과정에서 자신은 상식과 정도를 걸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핸들링할 수 없는 기업은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며 무차별적 M&A는 배제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 회장은 M&A 이후의 가치 경영을 중요시 여긴다. 그는 “돈이 있다고 무조건 인수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인수 후 가치를 키우는 것이 진정한 M&A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적대적 M&A를 꺼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최 회장과 비교되기를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시장에 나온 매물을 공개적으로 인수해 견실한 기업으로 키운 경영인과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을 한번씩 ‘찔러 보는’ 투기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최 회장과의 악연도 적지 않다. 강 회장은 지난해 그룹의 지주회사인 ㈜STX를 놓고 최 회장과 치열한 지분 경쟁을 벌였다. 최 회장은 지난해 ㈜STX 지분율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가 일부를 처분해 100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강 회장이 심정적으로 최 회장을 ‘기업 사냥꾼’으로 판단하는 대목이다. 반면 최 회장은 지속적으로 ‘단순 투자가’임을 밝혔지만,‘M&A설’을 유포하는 것은 상대방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지분 투자로 차익을 실현하는 것은 투자의 기본인 만큼 이를 놓고 적대적 M&A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 회장측은 24일 세양선박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꿀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M&A 전문가는 “임 회장은 사실상 ‘빚’으로 기업을 인수하다 보니, 매물로 나온 대상을 주요 타깃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어느 정도의 종자돈을 확보한 최 회장은 리스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평가된 기업이 관심사라는 점에서 M&A 행보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사상계 복간 기념행사

    사상계(발행인 장호권)는 25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강제폐간 35년 만에 복간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김원기 국회의장을 비롯해 신인령 이화여대총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 김진현 전 과기처장관 등 정·관계 및 재계, 학계, 언론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사상계는 1953년 4월 한국전쟁 중에 장준하 선생이 창간,50~60년대 문인과 지식인의 대변지로서의 역할을 해오다 70년 ‘오적(五賊)’시를 게재하면서 강제폐간 당했다. 우선 e-사상계‘(www.esasangge.com)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을 통하여 복간되며 내년 1월 정식 복간호를 발행할 예정이다.
  • [서울광장] 삼성, 다시 변해야 할 때다/이상일 논설위원

    [서울광장] 삼성, 다시 변해야 할 때다/이상일 논설위원

    미국 최고의 백화점인 노드스트롬은 삼성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외국기업중 하나다.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 등은 일류기업의 특징중 하나로 ‘사교(私敎)같은 문화’를 들면서 그 예로 노드스트롬을 소개했다. 노드스트롬의 완벽한 고객서비스를 뒷받침하는 비결은 기업 핵심이념의 열렬한 고수, 사원들에 대한 강도높은 충성 요구, 엄격한 통제 등이다.‘노드스트롬은 미국 해병대와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삼성은 재계에서 노드스트롬처럼 ‘무서운 곳’이라거나 ‘냉혹한 곳’으로 비쳐진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상무에 대한 변칙 상속, 대선자금과 관련된 엑스파일, 정·관계에 대한 삼성장학생 시비, 일류 스포츠선수 독점 등의 사태로 삼성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요즘 더욱 강화되는 듯하다. 그러나 제품과 서비스가 우수한 경우 특정 기업문화를 좋다, 나쁘다고 시비걸 필요는 없다. 또 오너 경영을 선호하는데 전문경영을 굳이 강제로 권고할 근거도 없다. 광복 이후 각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삼성 그룹이 정치자금을 내지 않고도 버틸 수는 없었을 것이다.‘3류’인 정계와 정부에 인맥을 만들어 미리 손쓰려 한 경우도 비난은 할지언정 이해할 수 없지는 않다. 그러면 국제기업 삼성이 한국에서 당하는 것은 ‘반기업정서’탓만일까. 삼성 때리기를 잘못된 여론몰이 때문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모그룹 회장의 전직 측근은 삼성이 집중 난타당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사회성 부족 탓”이라고 지적했다. 즉 징검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신중함, 경제논리를 앞세운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삼성의 결정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주요 결정의 사회적인 반향에 대한 고려가 모자라기 때문이란 것이다. 실제 에버랜드나 서울통신 전환사채를 통해 이재용상무에게 변칙 상속한 것은 상속세 절약 논리만 내세웠지 수십억원의 세금으로 수조원을 상속하는 것을 보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전선의 창업자인 설원량씨 유족들이 13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문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생명이 계약자 몫에 인색한 바람에 10년이상 상장이 늦춰진 것도 ‘합리적이지만 사회고려가 부족한’대표적인 사례다. 삼성그룹이 사회성이 부족한 결정을 어떤 이유가 있어 내린 것이라면 의사 결정자들이 강성기질이란 증거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만큼 삼성그룹의 핵심라인이 동맥경화증에 걸려있다는 증후일 수 있다. 사회적인 이슈는 대부분 그룹 사령탑인 구조조정본부가 생산해온 점에서 구조본의 의사 수렴과정과 구성에 문제는 없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들이 지적한 경영 개선 사항을 그룹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식의 전투개념을 바탕으로 모두 거부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삼성그룹을 움직이는 핵심인맥이 ㄱ대, 특정지역 출신과 재무팀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재무팀 인맥이 강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지역과 학교 파벌설은 무파벌을 자랑해온 삼성에서는 경계할 사항이다. 이를 의식해 이학수 본부장은 ㄱ대 출신을 구조본에 추가 배치하지 말라고 지난해 지시했다. 해병대 같은 노드스트롬이 강한 것은 종업원에게 엄청나게 많이 자율적인 의사판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계속 강해지려면 사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3류’라고 접어놓지 말아야 한다.10여년전 신경영 초기처럼 ‘마누라 빼고 다 바꿔보자.’가 삼성 사령탑에 필요할 때다. 새로운 신경영을 삼성에 기대해본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93) 精舍(정사)

    儒林 (451)에는 ‘精舍’(마음 정/집 사)가 나오는데,‘정신이 머물러 있는 곳’ 즉,‘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마련한 學舍(학사)나 書院(서원)’, 또는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절’을 뜻하기도 한다. ‘精’자의 본래 의미는 ‘고르다.’이다.意符(의부)인 米(미)는 벼이삭의 象形(상형)이다.音符(음부)인 靑은 ‘풀’처럼 푸른색의 鑛石(광석)을 의미한다.用例(용례)에는 精密(정밀: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여 빈틈이 없고 자세함),精誠(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精銳(정예:썩 날래고 용맹스러움) 등이 있다. ‘舍’자는 ‘口’(입 구)와 관리들의 원거리 출장 때 휴대하던 일종의 信標(신표)를 가리키는 ‘余’(나 여)를 합친 글자로 본래의 뜻은 ‘머물다.’, 혹은 ‘머무는 곳’이다.‘베풀다.’‘두다.’‘버리다.’‘쉬다.’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用例로는 ‘校舍(교사:학교의 건물),舍利(사리:부처나 고승의 유골),蝸舍(와사:작고 초라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이 있다. ‘精舍’는 산스크리트어 ‘vihara’의 漢譯(한역)이다.精舍는 석가모니 생존시의 居所(거소)에서 유래하였는데, 그저 雨期(우기)에 비를 피할 정도의 움막과 뜰이 있는 허름한 形態(형태)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精舍는 後漢(후한)의 包咸(포함)이 동해에 精舍를 세웠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는 고려말부터 생겨났으며 朱子學(주자학)의 융성과 더불어 곳곳에 세워졌다. 명망있는 선비가 자신의 고향이나 경치가 좋은 장소를 택해 은거하면서 講學所(강학소)를 개설하면, 그를 흠모하는 志學(지학)들이 모여들어 修學(수학)함으로써 많은 精舍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書院(서원)은 祠堂(사당)을 두어 享祀(향사)를 하는 등의 공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반면 精舍는 단지 私的(사적)으로 학문을 수양하는 곳일 뿐이었다. 住居(주거) 등의 목적인 건물을 나타내는 漢字(한자)에는 ‘家’(집 가),‘屋’(집 옥:흔히 가옥 꼭대기의 덮개를 말함),‘堂’(집 당:관아, 사원, 집회소 등의 높고 큰 집, 혹은 터를 높이 돋우어 지은 집),‘館’(객사 관:여행 등의 목적으로 임시 거처하는 집),‘邸’(사처 저:來朝한 제후가 서울에 올라 왔을 때 머무는 숙소),‘軒’(집 헌:난간이 설치된 긴 복도가 있는 집) 등이 있다. 이밖에 ‘亭’(정자 정:벽이 없는 觀望用(관망용)의 建築物(건축물)),‘樓’(다락 루:2층 이상의 건축물로 規模(규모)가 크고 문과 벽이 없이 트이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지은 건물),‘臺’(돈대 대: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토한 위에 세운 건축물),‘閣’(문설주 각:집, 누각, 대궐, 내각, 안방, 객관, 부엌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齋’(집 재:집이라는 뜻 외에도 ‘재계하다.’‘마음을 깨끗이 하다.’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書齋(서재)나 學舍(학사)와 같이 경건함이 필요한 집의 명칭으로 쓰인다),‘宮’(집 궁:원래는 사람이 거주하는 가옥의 통칭이었으나 秦(진)·漢(한) 이후 궁궐의 뜻으로만 限定(한정)하여 쓰임),‘殿’(큰집 전:일반적으로 큰 집이나 큰 건물을 가리키는데, 임금의 居處(거처)나 宮闕(궁궐)을 칭하기도 함) 같이 구체적인 형태의 建造物(건조물)을 나타내는 漢字도 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재계 인사이드] 세양선박 M&A ‘진흙탕 싸움’

    세양선박을 둘러싼 임병석 쎄븐마운틴 회장과 최평규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 회장간의 인수합병(M&A) 공방전이 갈수록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인신 공격이 난무하는 데다 법정 싸움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쎄븐마운틴측은 임 회장이 최 회장과 동급으로 다뤄지는 것에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최 회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최 회장은 경영인이라기보다 ‘M&A꾼’에 가깝다는 것이 쎄븐마운틴측 판단이다. 과거 ㈜STX에 대해 M&A를 시도했다가 여의치 않자 차익을 실현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적대적 M&A설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전문가라면 임 회장은 부실기업 지분을 인수해 회사를 키우는 견실한 경영인이라는 점에서 비교 대상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대주주인 S&T중공업(지분 18.14%)측은 이같은 비난에 대해 ‘법적 행보’로 맞서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9일 임 회장이 자신을 폄하하는 등 명예훼손 행위를 했다며 임 회장을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또 세양선박 이사회의 유상증자 및 해외 전환사채(CB) 발행 결정을 무력화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최 회장측 관계자는 “상법상 유상 증자와 CB 발행은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특정한 필요에 의해서만 하도록 돼있다.”면서 “세양선박 이사회의 증자 및 CB 발행 결정은 누가 봐도 M&A 방어용이므로 상법상 정한 요건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최 회장측은 특히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만약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유상증자로 발행된 신주와 CB를 취소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임 회장측은 사과하지 않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최 회장측은 ‘법대로’를 외치고 있어 양측의 감정 싸움이 향후 어떤 식으로 결론을 맺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KCC프로농구] 김승현·김주성 “개막 축배 내가”

    [KCC프로농구] 김승현·김주성 “개막 축배 내가”

    프로농구가 어느덧 9시즌째를 맞이했지만 아직도 농구대잔치 때 ‘오빠부대의 우상’이던 이상민(33·KCC)과 문경은(34·전자랜드) 등에 대한 팬들의 사랑이 식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력과 인기 등 모든 면에서 이들을 추월한 빛나는 태양이 있다. 다소 성급하지만 올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지목된 김승현(27·오리온스)과 김주성(26·동부)이다.21일 6개월간의 대장정에 돌입하는 KCC프로농구 05∼06시즌 원주(치악체육관) 개막전에서 두 젊은 영웅이 정면 충돌한다.178㎝의 포인트가드 김승현과 205㎝의 파워포워드 김주성의 하드웨어는 ‘극과 극’이지만 프로농구사에 하나씩 남기고 있는 화려한 족적만큼은 닮은 구석이 많다. 김승현은 01∼02시즌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에 오르며 앞선 시즌 꼴찌 오리온스를 단박에 우승으로 이끌며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용병들조차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통할 선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올시즌 연봉 3억 5000만원(5위)에 재계약한 김승현은 시즌 종료 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서게 돼 올시즌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두 차례의 시범경기에서 평균 11어시스트를 기록, 이미 정상 컨디션에 올라섰음을 뽐냈다. 김주성 역시 만만치 않다.‘김주성이 있는 팀은 6강 플레이오프가 기본’이란 말이 코트에 나돈 지 이미 오래다. 김승현의 바통을 이어받아 02∼03시즌 신인왕 타이틀을 움켜줬고,04∼05시즌엔 TG삼보(동부의 전신)를 통합챔피언으로 이끌었다.‘골리앗’ 서장훈(삼성)과 함께 4억 2000만원에 재계약한‘공동 연봉킹’. KTF로 떠난 포인트가드 신기성의 공백이 크지만, 최강의 더블포스트를 구축했던 자밀 왓킨스와 두번째 시즌을 맞게 돼 ‘찰떡 호흡’으로 위력을 더할 전망이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팀의 간판이자 최고 득점원이란 점에서 둘의 활약은 승부의 최대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현정은회장 길들이기?

    20일 오후 갑작스럽게 발표된 북한의 현대 비난 담화는 격한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배은망덕’,‘냉혈인간’ 등 험악한 단어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해 ‘현대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축출에 대해 “남조선 일각에서는 정씨 가문의 자산을 현씨 가문으로 빼돌리는 데서 걸림돌이 되는 정씨 가문의 유일하게 남은 가신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는 여론이 분분하다.”고 한 대목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듯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하지만 담화문 전체의 맥락을 차분히 짚어보면 북한이 현대에 돌이킬 수 없는 ‘절교’를 선언한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도 받는다. 북한은 장문의 담화문 대부분을 현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에 할애했다. 그러나 맨 마지막 대목에서 북측은 “현대에도 앞날은 있고 길은 있다.”며 “현대 상층부가 옳은 길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금강산 관광의 넓은 길을 열어주는 아량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협상 여지를 남겼다.북측도 현 시점에서 현대 이외에 다른 남측 대기업을 대북 사업에 끌어들이기기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측이 국내 재계 서열 1∼2위를 다투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대북 사업에 나선 이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황을 감안했을 때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오히려 한 당국자는 북한의 의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이) 잘 해보자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긍정적’ 분석을 내놓았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현정은 회장이 호락호락하지 않게 나오는 데다 롯데관광의 대북 관광사업 참여도 여의치 않게 전개되자, 다급해진 북한이 공을 현 회장측에 떠넘겨 관계개선의 명분을 찾으려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결국 북한과 현대의 관계복원 여부는 현대측의 ‘북한 달래기’ 카드가 구체화하는 시점에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포인트 블루오션(blue ocean)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포인트 블루오션(blue ocean)

    블루 오션이란 말이 최근 신문 경제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블루 오션이란 한마디로 미개척 시장을 말한다. 기업에는 매력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요즘 기업치고 이 개념을 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기업이 없다. 건설, 유통, 통신, 무역, 자원개발 등에서부터 시내버스 업계까지 블루 오션 전략을 도입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블루 오션에 관한 책은 경영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블루 오션이란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한국인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1990년대 중반 가치혁신 이론과 함께 제창한 기업 경영전략론이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 미개척 시장과 같은 경쟁사와의 생존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말한다. 즉, 매력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내는 전략을 말한다. 올 2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자마자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으며 26개 언어로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반면 레드 오션(red ocean)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산업을 말한다. 기업들은 경쟁사보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며 시장은 핏빛의 레드오션이 되고 만다. ●블루 오션 성공 사례 블루 오션 전략의 특징은 차별화와 저비용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삼성전자와 LG전자는 외국 기업들이 접근하지 못한 미래형 기술개발과 프리미엄 브랜드 구축 전략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는 ‘비타 500’도 블루 오션 전략의 성공 사례다. 슈퍼마켓을 통한 유통 개혁과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맛과 향을 찾아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다. ●블루 오션 전략 한 경제연구원이 블루 오션으로 ‘헤엄쳐 가’ 성공하는 전략으로 이런 점들을 들었다. 첫째,‘모방하지 말라.’이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모방해서야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겠는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풋(Input) 관리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블루 오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투자를 꾸준하게 해야 결국 새 시장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트렌드와의 적합성을 높여라.’고 주문한다. 미래에 다가올 소비의 흐름과 유행을 예측해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블루 오션을 선점해도 지키지 못하면 바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연구원측은 그런 예로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개구이집과 얇은 삼겹살집이 대부분 사라지 고만 점을 들었다. 일단 들어간 데 만족하지 말고 ‘수성(守城)’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자면 첫째, 블루 오션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좁혀야 한다고 설명한다. 경쟁자가 쉽게 진입하지 못하게 기술이나 특허 또는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움직이는 블루 오션을 만들어라.’이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서비스의 질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고 다양화함으로써 경쟁자들이 뒤따라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나만의 블루 오션 마니아를 확보하라.’이다. 블루 오션을 지키려면 열렬한 팬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 저가 화장품이 성공한 것은 10,20대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볼 것인가 블루 오션은 지난 4월 책으로 소개된 뒤 재계는 물론 정계를 ‘광풍’처럼 휩쓸고 있다. 블루 오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 경제가 성장 속도가 둔화돼 쇠퇴기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따라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 시장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도 않고 실패할 수도 있다. 혁신의 성공 확률은 30%밖에 안 된다고 한다. 지키기도 매우 힘들다. 따라서 블루 오션 전략을 최고의 가치로 보고 여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이다. 블루 오션이란 성공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벤처기업과 비슷하다. 보수적인 기업들은 따라서 기존 시장을 포기하고 새 영역 개척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레드 오션에만 집착해서도 미래의 경쟁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레드 오션과 블루 오션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포인트 블루 오션 전략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한국 경제에서 왜 필요한지, 허점은 무엇인지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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