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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인사이드] 워커힐 지분 전량매각 왜?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이 보유하고 있던 워커힐호텔 지분을 전량 매각해 눈길을 끌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 부사장은 최근 워커힐호텔 지분 2.23%(17만 8700주)를 주당 4만 1341원에 모두 매각했다. 액수로 환산하면 73억 8700만원에 달한다. 이유가 뭘까? 우선 두 가지로 좁혀진다. 먼저 최 부사장이 개인적으로 돈이 필요해서 지분을 매각했을 가능성이다. 새 사업에 대한 투자나 SK케미칼 및 SKC 관련 투자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추측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계열분리설과 관련됐다는 것이다. 최 부사장이 매각한 지분은 공교롭게도 사촌 형제이자 최태원 SK㈜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이 절반 가량 매입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최 부회장은 9만 1700주를 같은 가격에 매입해 지분율이 1.15%로 늘어났다. SK그룹의 경영구도가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형제의 화학·생명공학 부문, 최태원·재원 형제의 에너지·정보통신 부문으로 나눠질 것에 대비한 ‘교통정리’의 성격이 짙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최창원 부사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SK케미칼이 지난달 22일 SK㈜ 보유지분 200만주를 처분해 이 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0.83%(106만 5826주)로 낮춘 것도 이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현재 워커힐호텔은 최태원 회장이 지분 40.70%(325만 5598주)로 최대 주주이고,SK네트웍스가 9.68%(77만 4226주), 한국고등교육재단이 8.75%(69만 9718주),SKC가 7.50%(60만주) 등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최 부사장이 1.15%를 보탬으로써 최태원·재원 형제는 우호지분을 합쳐 59.3%의 지분을 확보했다. 그러나 SK측은 이같은 해석에 대해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SK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측이 워커힐호텔 지분을 이미 절반 가량 확보해 굳이 최 부회장이 추가 매입할 이유가 없었다.”며 “다만 최 부사장이 아무한테나 팔 수 없으니까 대주주간에 서로 매수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하프타임] 삼성 김재걸 11년만에 억대 연봉

    프로야구 삼성의 내야수 김재걸이 데뷔 11년 만에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김재걸은 27일 올해 6500만원에서 69.2% 오른 1억 1000만원에 재계약했다.
  • 2005 재계 ‘말말말’

    올해도 재계는 부침의 굴곡수만큼이나 ‘말의 성찬(盛饌)’들이 쏟아졌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의 ‘말말말’을 통해 다사다난했던 재계의 한 해를 되돌아본다. ●‘철의 여인’ 현정은 회장, 올해 최고의 화술 선보여 ‘김윤규 파동’으로 대북사업 위기를 겪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고비마다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현 회장은 9월12일 현대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여러분께 올리는 글’에서 “16년간 대북사업을 보필했던 사람(김윤규 전 부회장)을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물러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북사업의 미래를 위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이었다.”며 북측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강단을 보여 ‘철의 여인’ 대처 전 영국총리에 비유되기도 했다. 그의 “비굴한 이익보다는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는 발언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 회장은 이어 10월10일 현대아산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는 “우리는 얼마전 남에게 알릴 수 없었던 몸 내부의 종기(김 전 부회장)를 제거하는 커다란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나 몸의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오랜 친구(북측)는 우리의 모습이 변했다고 다가오기를 거부한다.”는 ‘절묘한’ 비유로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전 부회장은 연이은 현 회장의 초강수에 10월22일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귀국하면서 “오너가 아니면서 오너처럼 행동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좌초한 ‘미스터 쓴소리’ 지난 7월 말 불거진 두산그룹 ‘형제의 난’은 숱한 말을 남긴 채 ‘4형제 불구속 기소’로 결론났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답게 화려한 수사로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을 몰아붙였다. 박 전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이 ‘비리사건’을 고발한 다음날인 7월22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박용오 전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사건”이라며 “100년 전통에 금이 갔다기보다는 열 손가락 중에 손가락 하나가 없어진 것일 뿐이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검찰 수사결과 비자금 조성 등이 사실로 드러나자 그룹 회장직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 등을 내놓으며 임직원들에게 ‘사과의 글’을 띄워야 했다. ●고삐 죄는 최고경영자들 올 한 해도 한 치의 긴장도 허용치 않는 총수와 CEO들의 질책과 주문이 이어졌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4월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진 ‘디자인 전략회의에서 “최고 경영진부터 현장 사원까지 디자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식해 세계 일류에 진입한 삼성 제품을 품격 높은 명품으로 만들 것”을 강조하고 “명실공히 월드 프리미엄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브랜드 등 소프트경쟁력을 강화해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모두 넘어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본무 LG 회장도 지난 3월 경기 이천 소재 LG인화원에서 열린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서 “무한경쟁 시대에 진정으로 고객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1등 제품이 아니면 안된다.”고 전제하고 “1등 제품의 핵심은 바로 R&D이며,R&D 인력은 글로벌 경쟁의 첨병인 동시에 LG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R&D를 통한 제품 및 사업 차별화와 R&D 인력의 주도적 역할도 당부했다. 올해 사상 최대의 경상이익을 기록한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은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명이 끊어진 기업이다. 기업이 이윤을 남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윤을 최대한 창출하되 사회 환원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이다.”라며 자칫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는 직원들을 독려했다. ●쏟아진 론, 론, 론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달 처음 열린 ‘삼성 애널리스트 데이’에서 프리미엄 전략 고수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강아지론’을 예로 들며 고가정책을 고수할 뜻을 내비쳤다. 이 사장은 “시골 장에서 강아지를 팔러 온 할머니도 가격이 안 맞으면 보자기에 싸서 도로 갖고 간다. 하물며 삼성전자 직원들의 땀과 정성과 기술이 녹아 있는 휴대전화를 어떻게 헐 값에 판매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도 ‘유목민론’을 들고 나왔다. 황 사장은 9월12일 세계 최초로 50나노미터(nm) 공정의 16기가비트(Gb) 플래시메모리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동하는 자가 승리하고 성을 쌓는 자는 패배할 것이다.”라며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시대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만 살아남는다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남중수 KT사장은 “바람을 막기 위해 돌로 담을 쌓지 않고 풍차를 돌리겠다.”며 ‘풍차론’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남 사장은 지난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통신시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이는 피할수 없는 시대의 트렌드”라며 “KT의 경영환경을 거센 바람이라고 한다면 최고경영자(CEO)로서 바람이 불면 피하지 않고 풍차를 돌린다는 발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박해춘 LG카드 사장은 “LG카드는 겨우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단계다.”라며 ‘병원’에 빗대 매각을 앞두고 있는 LG카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산업부 jr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천리그룹-이만득·유상덕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천리그룹-이만득·유상덕 회장家

    사업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동업’ 얘기를 꺼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업 과정에서 동업자와 합의로 꾸려가기란 득보다 실이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업가들은 형제나 친척과도 동업을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동업은 제대로 하면 혼자 때보다 훨씬 많은 경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중견 그룹인 삼천리는 동업 관계로 사세를 확장시킨 대표적 기업이다. 창업 선대(先代)부터 반세기 이상 ‘동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혈육보다 진한 동업정신 삼천리의 그룹 역사는 1955년 10월1일 고 유성연ㆍ이장균 명예회장이 공동으로 ‘삼천리연탄기업사’를 설립하면서 시작했다. 지금은 도시가스 및 해외자원 개발에 전념하면서 국내 도시가스 1위 업체로 부상한 것은 물론 세계 7위 규모의 유연탄광을 경영하는 세계 굴지의 자원개발회사를 보유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형제보다 가까웠던 두 선대 회장의 관계를 유상덕(46) ㈜삼탄 회장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이장균 회장님 댁과 우리 집안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웃에서 살았고 서로 큰 집, 작은 집이라 부르며 지내 와 서로 남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우리 집안은 유(劉)가인데 왜 작은아버님의 성은 이(李)가인지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 ●세 번에 걸친 운명적인 만남 두 창업주는 창업을 하기 전까지 모두 세번의 의미있는 만남을 가졌다. 첫번째는 해방 직후 함흥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식료품 장사를 하다가 8인계 멤버로 만났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후 피란 시절에는 각자 경남 거제와 경북 포항에서 생활하다가 조우했다. 세 번째는 1955년 삼천리 창업을 통한 만남이었다. 창업 당시엔 두 가정이 단칸방에서 이불 칸막이만 쳐놓고 동고동락하며 사업을 일궜다. 연탄가루를 가져와 기계틀에 넣고 찍어 말린 뒤 배달도 직접했다. 네 사람이 연탄 수레를 ‘끌고 밀면서’ 삼천리의 그룹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유성연 명예회장은 1917년 함남 삼평면 부흥리에서 아버지 유봉주씨와 어머니 김씨의 2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곤궁한 삶을 살아야 했다. 유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공부하고 11세가 되던 해에 4년제 삼평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남보다 늦은 학업이었지만 유 명예회장은 보통학교 4년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함흥 시내에 있던 함흥제일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평양사범학교에 관비(官費)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평양사범 입학시험에는 함경도에서 200여명이 응시해 9명만 합격했을 만큼 어려운 관문이었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유 명예회장은 함흥 부근에 있는 삼호보통학교에서 첫 교편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1년간의 교사생활을 거친 뒤 함흥시내의 영정보통학교로 전근했다. 영정보통학교에서의 교직생활이 3년 지났을 무렵인 1943년 유 명예회장은 일본 유학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태평양전쟁이 2년째로 접어들면서 생활이 힘들어져 유학의 꿈을 포기하고 함남 피복조합 사무원으로 취직했다. 이후에도 징용 위협이 다가오자 징용 대상에서 제외됐던 교사직을 다시 선택했다. 1944년 함흥 외곽에 있는 주북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방 이후 유 명예회장은 경제활동에 투신해 나라 경제를 위해 큰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함흥 선덕비행장에 주둔한 소련 공군을 상대로 미군 군수물자, 초콜릿, 통조림, 담배, 술 등 식료품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유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발발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우여곡절끝에 남한으로 가는 LST함정에 겨우 올라 타 피란민 대열에 합류했다. 거제도 난민수용소에 잠시 수용됐지만 수용소를 빠져 나와 미군을 상대로 토산 기념품을 팔기 시작했다. 이만득(49) 삼천리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장균 명예회장은 1922년 6월27일 함남 함주군 상기천면에서 아버지 이황주씨와 어머니 윤윤옥씨 슬하의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때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 전답을 모두 차압당했다. 이후 몇해동안 움집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이 명예회장은 7∼8세 무렵부터 ‘소년 지게꾼’이 돼 공사장에서 자갈을 짊어져 날라야 했다. 힘든 와중에도 그는 낮에는 지게꾼으로, 밤이 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학에 나가 공부를 했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거둬 주북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다. 이후 4년간의 학창생활은 이 명예회장이 경험한 유일한 정규 학업이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 명예회장은 유담보통학교에서 촉탁 직원으로 잠시 일하다 21세에 흥남질소비료공장의 사원을 거쳐 토목건설 현장의 서기로 옮겼다. 이후 함남토목회사의 하청업자로 변신해 사업가로서 첫 길을 걷게 된다. 어느 정도의 사업 성공도 이룬다. 소련군이 함흥에 진군하자 시내에서 ‘민흥상회’라는 가게를 열어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그러다가 소련군이 좋아하는 통조림 제품을 구하려 수소문하던 중에 유 명예회장과의 ‘운명의 만남’을 갖게 됐다. 곧바로 의형제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8인계를 조직해 더욱 가까워졌다. 유 명예회장보다 보름 앞서 흥남에서 국군이 철수하는 배를 타고 포항으로 내려온 이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원산 출신인 김성숙(73) 여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 회장 부부는 포항 죽도시장 중심부에 ‘흥성상점’을 열어 시멘트, 밀가루, 설탕, 비료, 무연탄을 취급해 큰 돈을 벌었다. 특히 이 명예회장은 서민들의 연료인 신탄(숯)을 제조해 팔면서 장차 무연탄이 가정연료로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고 판단해 1953년부터 연탄사업에 손을 댔다. ●연탄사업으로 시작된 동업 이 명예회장은 1955년 서울에 있는 단성사로부터 원탄을 대량 매입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직접 강원도에 가서 560t의 원탄을 구매, 서울로 수송했다. 그러나 장기간의 운반 과정에서 원탄 가격이 하락하면서 단성사가 매입을 거부하자 탄을 저탄장에 쌓아 놓아야만 했다. 이 명예회장은 이때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유 명예회장을 만나 같이 연탄사업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 날은 삼천리그룹의 창립일인 1955년 10월1일로 유 명예회장이 박옥순(78)여사와 결혼한 날이기도 하다. 이후 아예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 두 사람은 중구 신당동에 터를 잡아 호적에 본적지로 등록했다. 유 회장이 신당동 248-1, 이 회장은 건너편의 신당동 304-211에 안착했다. 이때 5세 위인 유 명예회장은 연탄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는 사장을 맡고, 이 명예회장은 원탄 구매와 자금을 담당하는 부사장 형태로 역할 분담을 했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 구분일 뿐 두 사람은 이후 어떤 일을 하든지 상의하고 양보하면서 삼천리의 역사를 일구기 시작했다. ●2세에게 동업 각서 물려줘 이들은 각각 회장실 금고에 동업각서를 보관해 오다 두 집안의 2세도 간직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두 창업회장은 5개 조항의 동업서약서를 쓴 뒤 가족보다 끈끈한 관계를 50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동업서약서에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투자 비율이 다르더라도 수익은 절반씩 나눈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등 5개 조항이 담겨 있다. 재계 주위에서는 두 집안의 경영 스타일이 다른 점도 동업에 큰 도움이 됐다. 유 선대 회장 부자는 과묵하고 꼼꼼하고 심사숙고하는 성향인데 비해 이 선대 회장 부자는 직설적이고 외향적이며 공격적이어서 서로 보완이 됐다는 것이다.25년 전 코크스(용광로 연료) 사업에 진출할 때 이 명예회장과 유 명예회장은 공개 석상에서 한 시간 넘게 싸우는 등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이 명예회장이 유 명예회장을 17번 찾아 설득한 끝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룹의 명운을 가름할 중요한 고비마다 두 창업자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일단 합의를 이루면 상대방의 뜻에 따랐다. ●선대와 버금가는 2세들의 동업경영 두 집안은 이렇듯 탄탄한 동업경영을 기반으로 두 창업주의 아들인 이만득, 유상덕 공동회장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쳐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세 회장은 선대 회장들과 같이 서울 방배동 한 동네에 살면서 3세 자녀들이 2세 회장에게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1993년 이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만득 회장은 유 명예회장의 외아들 유상덕 회장과 함께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 회장이 그룹회장으로 취임하며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한번도 경영권 분쟁이 없었다. 유 회장은 삼천리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이만득 회장과 동일하게 갖고 있지만 삼천리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7개 계열사 지분까지 50대50의 똑같은 비율로 2대에 걸쳐 공동경영을 하며 연간 2조 5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회장이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천리(도시가스회사)와 삼천리ES(천연가스 냉난방기 판매), 삼천리ENG(도시가스 배관설비)를 맡고 있다. 유 회장은 해외에너지 자원 개발을 하는 ㈜삼탄(유연탄)과 삼천리제약을 책임지고 있다. ●월남민 출신 창업주들, 소박한 혼맥 가꿔 창업주들은 대부분의 친인척을 북한에 두고 내려와 화려한 집안을 꾸리지는 못했다. 이 명예회장은 2남2녀를 두었지만 자식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집안이나 배경보다는 며느리와 사위들의 개인 능력을 최우선으로 봤다. 며느리는 단출한 집안을 꾸릴 수 있는 ‘성품’을 위주로 봤고, 사위들은 ‘능력’을 중심으로 간택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들에 비해 요란한 혼맥을 이루지 않았다. 이 명예회장의 큰아들인 이천득씨는 삼천리 부사장으로 있던 1987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평범한 집안의 유계정(55)씨와 사이에 은백(32)·은아(30)·은미(29)씨 등 2남1녀를 두었다. 이만득 회장은 이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가발 수출을 하는 삼천리의 계열사인 미성상사에 입사, 경영에 참여했다. 형이 작고하자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 회장은 1977년 전혜연(50)씨를 배필로 맞아 은희(27)·은남(26)·은선(23) 등 3녀를 낳았다. 전씨의 부친은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같은 이북 출신 실향민이다. 이 회장과 부인 전씨의 결혼 스토리는 부친 이 명예회장의 성격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친구의 소개로 부인을 만나다가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이 명예회장은 아들이 군 복무중에도 열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두 사람을 불렀다. 이때는 5월5일 부인 전씨의 생일이어서 휴가나온 이 회장이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을 집으로 급히 호출한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집으로 달려간 두 사람은 이 명예회장이 전씨를 꼼꼼히 뜯어 보더니 “됐다. 결혼해라. 결혼식은 10일 후인 5월15일 오후 5시로 잡자.”고 말해 너무 놀랐다. 두 사람은 귀를 의심했지만 “며느리가 착실하고 몸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뭘 바라겠느냐. 혼수는 일절 없이 식을 올리자.”며 두 사람을 독려했다. 혈혈단신 월남한 이 명예회장은 아들을 빨리 결혼시키고 싶은 생각에 혼례를 서둘렀다고 이 회장은 회고한다. 이 회장의 큰 딸 은희씨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현재 플로리스트(화훼장식가)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딸 은남씨는 미국 UC어바인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셋째딸 은선씨는 UC버클리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장녀 이란(51)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후 서울대 자연과학대 통계학과 교수인 조신섭(53)씨와 결혼했다. 조 교수는 서울대 응용 분석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86년부터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2녀인 이단(47)씨는 진주화(52)씨와 혼인했다. 진씨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페퍼딘대에서 MBA를 취득했고,2002년 ㈜삼천리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그리니치 투자자문㈜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유 명예회장은 박옥순 여사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유 명예회장도 사위들을 고르는 기준으로 이 명예회장과 같이 집안 배경보다는 능력을 중요시했다. 외아들인 유상덕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9년 삼척탄좌개발㈜ 상무이사로 재직하다 1993년에 ㈜삼탄회장에 올랐다. 고등학생인 용훈(18)·용욱(17) 등 두 아들을 두었다. 장녀인 명옥(55)씨는 이태성(59)씨와 결혼했다. 이씨는 미국의 스티븐스대 기계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삼천리USA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명옥씨는 이 사장과 사이에 준영(30)·찬영(28) 등 두 아들이 있다. 차녀인 혜숙(49)씨는 이민엽(53)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혜숙씨는 미성상사를 맡고 있는 남편 이씨와의 슬하에 규빈(25)·규환(21)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jrlee@seoul.co.kr■ 이만득 회장의 ‘골프경영론’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매일 오후 헬스클럽에서 1시간동안 땀을 흘리고 주말이면 골프를 치며 경영 전략을 가다듬는다. 핸디캡 5 수준으로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두 차례나 우승컵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 회장은 골프에서 기업 경영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며 ‘골프경영론’을 설파하고 있다. 이 회장은 “골프를 치면서 기업 경영에 필요한 많은 영감을 받는다.”면서 “골프와 경영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또 골프의 고수는 14개의 클럽을 고루 잘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기업가들도 다양한 경영 요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골프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그는 “경영자는 인사, 자금, 기획, 홍보 등 다양한 요소를 잘 활용해야 기본적 조건에 맞는 조화로운 경영을 할 수 있고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골프의 코스 전략과 경영의 코디네이션이 ‘닮은 꼴’이라는 점도 지적한다.“골프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코스와, 그렇지 못한 코스의 전략이 다르듯이 경영에서도 각각의 사업 분야마다 특징을 고려해 사업부문을 코디네이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골프 경영론의 핵심이다. 골프 고수들은 아무리 쉬운 코스라도 티샷을 하기전에 머릿속에 자신만의 전략을 수립하고, 특히 어려운 코스는 더 복잡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이번 코스에서는 파(PAR·기준 타수)가 힘들겠다고 판단되면 보기(기준 타수보다 1타 더 치는 것)를 위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면서 “그리고 다음 코스에서는 버디를 잡아야겠다는 전체적인 전략을 짜게 된다.”고 말했다. 경영도 사업분야마다 이익이 많이 날 때와 적게 날 때가 있지만 모든 부분을 고려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작은 곳에 집착하지 않고 사업 전체를 크게 바라보고 전략 수립과 투자를 감행해야 성공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끝으로 “골프공은 같은 자리에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 매번 새로운 위치에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면서 “기업도 마찬가지로 매년 같은 환경에서 경영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한다.”고 말했다. 경영 환영은 수시로 변하는 만큼 새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jrlee@seoul.co.kr ■ 전권 받은 전문경영인 ‘삼천리호’ 지휘 고 유성연·이장균 명예회장이 회사 이름을 ‘삼천리´라고 정한 것은 우리나라 제품으로 삼천리반도 전체를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서 비롯됐다. 함경남도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식료품 장사를 해야 했던 창업주들의 ‘한(恨)´이 서려 있는 셈이다. 50년 만에 연탄 회사에서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천리호´에는 베테랑 CEO들이 승선해 있다. 이만득·유상덕 회장은 일선 CEO들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스타일이다. 이영복(61) ㈜삼천리 사장은 엔지니어링 출신의 CEO로 국내 최대 도시가스기업을 이끌고 있다. 도시가스 업계의 산증인으로 안전을 중요시하는 업계 특성상 꼼꼼하게 일을 살피는 경영스타일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비효율적 경영 개선을 위해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윤리경영 선포식을 이끄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부산고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천리 도시가스사업본부 영업이사를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김경이(59) 삼천리ENG 사장은 재무관리 전문가로 관리형 CEO다. 재무 전문가답게 업무 프로세스를 중히 여기며 원리와 원칙에 따른 업무를 진행한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이후 줄곧 ㈜삼천리에서 경리부문에서 재직하며 경리담당 이사대우, 부사장을 거쳐 2003년에 사장에 취임했다. 강태환(57) ㈜삼탄 사장은 글로벌 에너지기업을 이끄는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해외자원개발 전문기업으로서 연구·개발(R&D) 투자는 물론 인력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삼천리 기술투자 상무이사를 거쳐 2001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이찬의(51) KIDECO 사장은 인도네시아 파시르 광산을 세계 7대 유연탄광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2002년부터 사장을 맡아 업무별 소사장제를 도입하는 등 철저한 공정 관리와 치밀한 원가관리를 진두지휘해 왔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고,㈜삼천리 기획실 이사를 역임하는 등 ‘기획통´으로 정평이 나있다. 김용수(53) 삼천리열처리 사장은 무결함 경영을 지론으로 삼고 법적 기준에 따른 프로세스를 강조하고 있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천리 기계 상무이사, 기술연구소 상무이사를 거쳐 1997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김태성(60) 삼천리제약 사장은 삼성그룹에 입사해 홍콩 샹그릴라호텔 한국 대표를 역임하는 등 ‘외부영입´ 케이스로 삼천리호에 승선했다. 의사 결정과정에서 다양한 정보채널을 활용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이민엽(53) 미성상사 사장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믿고 맡기는 ‘보스형´ CEO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시카고대에서 MBA를 취득한 뒤 삼척탄좌 상무이사를 거쳐 1993년부터 대표이사에 재직 중이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계 빅4’ 내년 경영 키워드 글로벌 경영+성장

    ‘재계 빅4’ 내년 경영 키워드 글로벌 경영+성장

    삼성, 현대차,LG,SK 등 4대 그룹은 내년 경영키워드로 ‘글로벌과 성장’을 내세웠다. 글로벌 경영시스템 구축을 위해 투명·윤리 경영을 강화하고,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선행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4대 그룹의 내년 매출 목표치는 대략 393조원. 올 매출 예상치(365조원)보다 7.6%가량 늘어난 수치다. 또 내년 투자 규모는 총 47조 5000억원으로 올해(43조 9000억원)보다 8.2% 정도 늘렸다. 이 가운데 순수 연구개발(R&D)투자는 15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삼성 ‘글로벌 일류기업 구현’ 삼성의 내년 경영전략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일류기업 반열에 드는 것을 목표로 뒀다. 경영·기술뿐 아니라 기업이미지, 리더십 등에서도 ‘글로벌 톱’수준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삼성은 ‘X파일’등으로 한때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했던 점을 감안해 존경받는 기업으로의 이미지 구축도 강화할 방침이다. 삼성은 내년 매출 목표치를 145조원 안팎으로 올해보다 소폭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신수종사업 발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24조원가량을 시설과 R&D 분야에 쏟아붓기로 했다.R&D 투자 규모는 7조 8000억원으로 올해(7조 3000억원)보다 6.8%가량 늘렸다. ●현대차 ‘글로벌 경영’ 현대·기아차그룹의 내년 화두도 ‘글로벌 경영’으로 모아진다. 밖으로는 글로벌 생산체제가 한층 가시화될 전망이다. 우선 연산 30만대 규모의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이 내년말 완공돼 본격적인 유럽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현대차 역시 내년부터 체코 오스트라바 공장 건설에 착수,2008년 30만대 양산체제를 갖춘다. 또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 이어 기아차도 미국 현지공장을 검토하고 있다. 안으로는 그룹의 숙원사업인 INI스틸 ‘고로(高爐)사업’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내년에 사업승인이 나오면 바로 착공에 들어갈 방침이다.2015년까지 5조원의 사업비를 투입, 연산 350만t급 고로 2기가 들어선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매출 목표치를 올해(85조원)보다 10% 이상 늘린 95조원 안팎으로 명실상부한 재계 2위그룹으로 자리매김할 방침이다. ●LG ‘선행투자+핵심기술 확보’ LG그룹은 내년에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디지털TV, 정보통신, 정보·전자 소재사업 등에서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대규모 선행투자에 나선다. 내년 R&D 투자 규모가 올해(3조 4000억원)보다 20%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또 고부가가치 사업 확대를 통한 수익성 확보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내년 매출 목표치는 올해(80조원)보다 12% 늘린 90조원. 총 투자 규모는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SK ‘성장+글로벌리제이션’ SK그룹은 글로벌리제이션을 통한 ‘성장’을 내년 경영 화두로 삼았다. 이를 위해 해외시장 개척과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할 방침이다. 내년 매출은 올 추정치(60조원)보다 소폭 늘린 63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투자는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5조원)보다 10% 늘린 5조 5000억원으로 잡았다. 원·달러 기준 환율은 1010원, 국제유가는 배럴당 43.8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정했다.SK 관계자는 “SK㈜는 내년에 정제능력 확대를 통해 아·태 메이저 석유기업으로,SK텔레콤은 신성장 엔진 발굴과 글로벌화를 통해 초우량기업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LG그룹 ‘통신 3콤’ 정홍식 체제로 가나

    [재계 인사이드] LG그룹 ‘통신 3콤’ 정홍식 체제로 가나

    정홍식(60) 데이콤 신임 부회장이 다시 LG그룹의 정보통신부문을 총괄하게 될까. 정 부회장은 22일 열린 이사회에서 취임 이후 2년간의 경영성과를 인정받아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미래사업 구상과 대외협상, 정책 협력분야를 맡는다. 따라서 정 부회장의 승진이 ‘쓰리콤’으로 불리는 LG그룹 유·무선 통신업체의 사업 시너지 창출에 구심역할을 할지 주목된다.‘쓰리콤’은 무선의 LG텔레콤, 유선의 데이콤·파워콤을 일컫는다. 그동안 데이콤은 긴축 재정 등으로 재무 구조를 개선했고, 이동통신업계 3위인 LG텔레콤은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가입자 650만을 넘기고 있다. 통신망(網) 임대 사업자였던 파워콤도 최근 소매시장에서 ‘광랜’으로 돌풍을 일으킬 태세다.LG로선 ‘쓰리콤’의 ‘총괄과 시너지’를 얘기할 만한 때이다. 정 부회장의 ‘총괄’이 주목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데이콤 사장 취임 직전 259%(1조 8000억원대)였던 부채비율을 139%(1조 2000억원대)로 낮췄다는 데 있다. 지난 해에는 388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흑자 기조를 유지한 것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2003년 말 사장 취임전에 LG의 통신사업총괄 사장을 맡았다는 점도 그의 역할에 무게를 싣게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으로 정부와의 관계 등 대외업무도 무시할 수 없다.LG 관계자는 “LG그룹이 다시 KT,SK와 함께 ‘통신 3강’ 체제를 구축하려면 정보통신총괄 자리가 필요하다.”면서 “또 유·무선 및 통신·방송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 3사의 시너지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LG텔레콤도 23일 이사회를 열기로 돼 있어 ‘쓰리콤’의 통신총괄 문제는 수면 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남용(57) LG텔레콤 사장도 가입자 순증에 힘입어 유임이 확실시된다. 업계 관계자는 “‘쓰리콤’의 경영여건이 좋아져 LG로서는 통신을 다시 한 축으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많아질 것”이라면서 “LG 통신 CEO의 맏형인 정 부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또 이날 이사회에서는 박종응(55) 파워콤 사장이 모회사인 데이콤 대표이사 사장으로, 이정식(47) 데이콤 부사장이 파워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관련인사 29면
  • 부침 컸던 2005… 울고 웃은 CEO

    2004년에는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으로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던 국내 최고경영자들. 그러나 올해는 고유가와 원자재 대란, 출자총액제 등 안팎의 악재들로 그 어느 해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을 자신의 해로 기록한 최고경영자(CEO)가 있는가 하면, 명예도 실리도 모두 놓치고 ‘낙마’한 CEO도 적지 않았다. 또 국내 재계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창업주들의 타계 소식도 잇따랐다.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초췌한 모습은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2005년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CEO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뜬’ CEO 올해를 빛낸 그룹 총수 가운데 최태원 SK㈜ 회장이 눈에 띈다. 소버린자산운용과 2년간의 경영권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으며, 투명경영 전도사로서 그룹 전반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올해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괜찮게 마무리지은 CEO로 꼽을 수 있다. 대북사업 중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끝까지 고수해 관철시킨 현 회장은 올해가 CEO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진 해였다. 신생 GS그룹을 출범시킨 허씨가(家)의 대표 CEO인 허창수 그룹 회장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활발한 대외 행보로 그룹 알리기에 힘을 보탰다. 강덕수 STX 회장도 자신의 존재감을 재계에 알린 해였다. 짧은 시간에 사세를 중견그룹 수준으로 키웠을 뿐 아니라 인수·합병(M&A) 전문가로서 실력도 빼어났다는 평이다. 뒤늦게 스타 CEO로 등장한 이도 있다.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의 낙마로 갑작스럽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의장직을 맡았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그는 APEC 기간 내내 유창한 영어로 각종 회의를 주재하거나 토론을 주도해 외국 CEO로부터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삼성전자 대표 CEO들의 활약도 여전했다.50나노 16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로 ‘황의 법칙’을 올해도 증명한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 휴대전화 1억대 판매를 돌파한 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 전자 각 부문을 아우른 윤종용 부회장 등은 뛰어난 경영성과를 일궈냈다. 남중수 KT 사장도 올해를 잊지 못할 것 같다.KTF에 이어 국내 통신공룡인 ‘KT호’를 이끌게 된 데다 신성장 사업개발과 스피드경영으로 KT를 변모시키고 있다. ●고개숙인 CEO 올해 재계에서는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두산그룹. 두산가(家)는 고발과 폭로가 오간 형제들의 이전투구 끝에 7남매 가운데 박용오, 용성, 용만, 용욱 등 4형제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말았다.60개가 넘는 대외직함에 ‘미스터 쓴소리’로 유명했던 박용성 회장은 그룹 회장 취임 3개월만에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도 내놓아야 했다. 박용오 전 회장도 7년만에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범(凡) 현대그룹에서 CEO들의 낙마가 속출했다.1989년 이후 16년간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책임져 온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은 ‘개인비리’라는 암초를 만나 36년 현대맨 생활을 접었다. 김 전 부회장은 회사 공금은 물론 한때 ‘남북협력기금’까지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아 현대아산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뒤 부회장직마저 내놓아야 했다. 현대그룹의 구조조정본부격인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최측근 실세’로 불리던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내부감사보고서 유출에 대한 책임을 지며 경영전략팀 사장에서 물러났다. 올 한해 유난히 인사가 많았던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모비스 박정인 회장과 현대INI스틸 김무일 부회장, 기아차 김익환 사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경영일선에서 나란히 물러났다. ‘미스터 LG’로 잘 알려진 LG화학 노기호 전 사장도 고문으로 물러났으며,‘청계천 신화’로 유명한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은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재계의 큰 별들 지다 문화계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 박 명예회장은 문화예술을 사랑한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꼽힌다. 고인은 금호미술관을 건립하고 각종 연주회를 지원,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 건설업계는 큰 별 2개를 잃었다.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과 정세영 현대산업개발명예회장이 세상을 달리했다.5월21일 정세영 명예회장이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뜬 지 5개월도 안 돼 10월13일 정순영 명예회장도 노환으로 작고했다. 한 해에 현대가(家)창업 세대 2명을 잃은 셈이다. 고 정세영 명예회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 현대산업개발로 옮겨 정몽규 회장과 함께 건설업을 키우는 데 전념했던 인물이다. 고 정순영 명예회장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기반을 다진 뒤 시멘트를 중심으로 사업을 키운 경제개발의 산증인으로 평가받는다. 류찬희 류길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후배 경찰 쉼터로” 4억원 땅 선뜻

    오는 27일 명예퇴직하는 현직 경찰서장이 후배 경찰관들의 복지를 위해 시가 4억원의 자기 땅을 경찰에 기증했다. 강원 원주경찰서장 권혁표(60) 총경은 22일 후배 경찰관들의 복지를 위해 써 달라며 충북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 일대 자신의 땅 1만 273평을 경찰청에 기증했다. 이 땅은 중앙고속도로 원주 신림 IC에서 5분 거리에 있다. 권 서장은 “고된 업무에 비해 경찰 공무원을 위한 복지시설은 늘 부족하다고만 생각해왔다.”면서 “경찰 제복을 벗기 전 후배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공서 등에 기부된 땅은 원칙적으로 국가소유가 되지만 실제 관리는 경찰청 관재계에서 하게 된다. 경찰청은 권 총경이 기부한 땅을 경찰수련원 등 복지시설을 만드는데 쓰겠다는 계획이다. 권 서장은 “기증한 땅에 경찰 휴양 공간이 건립되면 강원도 경찰은 물론 경북, 충남, 경기지역 등의 후배 경찰관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평생을 바친 조직을 위해 거액의 땅을 기부하겠다는 아버지의 뜻에 부인과 자녀들도 흔쾌히 허락했다.부인 윤정옥(56)씨는 “31년간의 경찰생활을 명예롭게 마치는 순간까지 후배들을 생각하는 남편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원주 출신인 권 서장은 경찰 간부후보생 23기로 경찰에 입문했다.1998년 총경 승진 이후 경찰청 경비 2과장과 춘천경찰서장 등을 역임했고, 대통령 표창 2회 등 30여 차례의 표창을 받았다. 권 서장은 내년 12월 말로 정년퇴임이 예정돼 있었지만 자신이 경찰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고향 원주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지난 1일 명예퇴직을 신청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LG그룹 30대임원 외부영입 ‘눈길’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알려진 LG그룹이 외부에서 30대 임원을 영입해 재계에 화제다. LG화학은 지난 20일 임원 인사에서 올해 36세인 안세진씨를 산업재사업본부 마케팅전략 담당 상무로 발탁했다.2003년 당시 36세의 나이에 ㈜LG 법무팀으로 영입된 이종상 상무와 함께 LG그룹 사상 최연소 임원 타이 기록을 세운 셈이다. 안 상무는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AT커니의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지난 2년간 LG화학과 관련해 ‘중국시장 확대 전략’‘사업 턴어라운드 프로젝트’ 등 12개의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지난 9월부터 아예 LG화학에 들어와 근무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안 상무는 “몇달간 고민하다가 선택했지만 막상 인사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위분들의 반응이 엇갈렸다.”며 “특히 부모님과 집사람이 좋은 기회라고 기뻐하면서도 너무 이른 나이에 대기업 임원이 된 것에 우려도 많다.”고 말했다. 안 상무는 “LG화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상장할 수 있는 매력적인 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화학산업이 저성장 산업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회사 비전을 펼쳐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고 싶다.”며 ‘젊은피’다운 의지를 보였다. 안 상무는 ‘토종’ MBA라는 점도 눈에 띈다. 대학원 졸업 직후 미국 모니터 그룹에 입사한 뒤 LG텔레콤, 삼성물산 등을 거치며 한국기업의 문화와 전략시스템을 몸으로 익혔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최희섭 72만 5000달러에 도장 ‘꾹’

    트레이드 루머에 시달리던 ‘빅초이’ 최희섭(26)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뛴 72만 5000달러에 재계약,LA 다저스에 남게 됐다. 최희섭은 재계약 통보 마감일인 21일 에이전트를 통해 올 연봉 35만 1500달러보다 106% 인상된 1년간 72만 5000달러에 재계약했다. 최희섭의 몸값은 한국인 빅리거로는 박찬호(32·샌디에이고·5년 6500만달러)와 김병현(26·콜로라도·600만달러)에 이어 3번째 많은 금액. 당초 지역언론에서는 50만달러 규모의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누어 맺는 계약)을 전망했지만, 결과적으로 최상의 협상 결과를 이끌어냈다.
  • “日에 왜 이건희같은 경영자 없나”

    “日에 왜 이건희같은 경영자 없나”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에서 일본 업체들을 앞지른 삼성전자에 대해 견제론을 폈던 일본 언론과 지식인 사회가 이제는 “일본엔 왜 이건희 회장 같은 경영자가 없나.”라는 아쉬움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은 최근 두드러지는 일본의 ‘삼성 경외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만에 빠질 것이 아니라 일본의 ‘혼네(속내)’를 잘 읽고 이들의 거센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발행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일본 전자기업의 위기’라는 특집 기사에서 “삼성과는 대조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일본 전자업계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훌륭한 경영리더가 없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중국 하이얼과 제휴해 경영에 전혀 경험이 없는 초보자를 최고경영자(CEO)에 앉힌 산요전기와 ‘기술의 소니’에서 ‘소프트의 소니’로 방향을 돌린 소니”를 일본 일류기업들의 ‘경영자로 인한 인재(人災)’ 사례로 지목했다. 잡지는 반면 “창업 2세인 이건희 회장이 개혁을 추진한 삼성의 연간 순이익은 1조엔을 돌파해 일본 7대 전자기업의 총 순이익보다 배나 많다.”면서 “이는 삼성의 반도체와 휴대전화,LCD 등에 대한 집중 투자와 젊은 인재 등용, 세계 각지 연구·기술 인력의 대량 스카우트 등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잡지는 또 “지적재산권과 디자인, 마케팅 등 각 지표에서 삼성은 세계 톱 클래스로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삼성의 뒷 모습은 날로 멀어지고 있다.”면서 “왜 일본 업계에는 이 회장과 같은 경영자가 없는 것일까.”라는 자문을 던졌다. 최근 일본 경영컨설턴트 기타오카 도시아키(北岡俊明)와 토론모임인 ‘디베이트(Debate) 대학’이 펴낸 책 ‘세계 최강기업 삼성이 두렵다’도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다.“투지도 전략도 없는 일본의 월급쟁이 CEO들은 정말 한심하다.”고 지적한 이 책은 ‘일본 업체들은 앞으로도 삼성의 뒤를 따라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슘페터著 ‘경제발전의 이론’ 완역출간

    ‘창조적 파괴’ 개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저서 ‘경제발전의 이론’(박영률출판사 펴냄)이 완역 출간됐다.한신대 박영호 교수의 4년간 작업의 성과물이다. 슘페터는 마르크스 대항마로서 케인스와 함께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경제학자로 평가받는다. 공황이 터져 자본주의는 결국 망한다는 게 마르크스의 주장이라면, 자본주의는 ‘기업가 혁신(Innovation)’으로 불황을 돌파한다는 게 슘페터의 생각이다. 자본주의를 긍정하는데다, 오너들의 위상까지 드높일 수 있으니 슘페터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런 해석은 사실 슘페터의 진면목과 다르다. 거칠게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망해서 사회주의가 들어선다.’고 봤다면, 슘페터는 정반대로 ‘자본주의가 성공해서 사회주의가 들어선다.’고 보는 입장이다. 자본주의 발달로 사회가 합리적으로 변해갈수록 사회적 관리체제 발달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 그 자체를 공격하는 비판이론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렇게 보면 재계가 그렇게 껄끄러워해 마지않는 참여연대 등 재벌개혁세력의 등장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자본가들을 담합이나 일삼는 더러운 장사치로 비판했던 애덤 스미스가 자유시장의 수호자로만 알려진 것만큼이나 슘페터도 오해받고 있는 것이다.‘경제발전의 이론’은 기업가 혁신 개념 정립에 충실한 책이다.2만 3000원.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강철규 공정위원장 “재계와 대립 없어”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20일 자신의 블로그(blog.news.go.kr/fair_kang)에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주장한 글을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강 위원장은 ‘재계와 나’라는 글에서 “‘강’씨인데다가 이름에도 ‘철’자가 들어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강철’ 같은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계에서 나를 대립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고 ‘규제의 대명사’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재계를 사랑하고 재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 시절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외국기업 등 수많은 산업현장을 방문해 토론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공정위원장에 취임한 뒤로는 공식적으로 재계 인사를 만나는 것이 조심스러워 업계에 있는 친구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강 위원장은 “2003년 3월 공정위원장 취임 초기에는 공정위가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달라거나 경제를 다 죽이려 하느냐는 협박성 의견까지 있었다.”고 소개했다.“최근들어 공정위가 원칙과 규칙에 따라 법을 집행하고 있다는 긍정적 견해가 많아져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공정위의 변화상을 전했다. 공정위의 내년 업무에 대해 “‘시장경제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가동할 예정”이라면서 “이는 차기 위원장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3월에 끝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조선업 손댄 군인공제회

    거침없는 인수합병(M&A) 행보로 재계의 관심을 모아 온 군인공제회가 이번에는 조선업체 투자에 나섰다. 김승광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20일 서울 강남 도곡동 본사에서 중·대형 선박 건조 업체인 성동조선해양㈜의 정홍준 대표이사 회장과 500억원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군인공제회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신주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성동조선해양 지분 33.33%를 인수,2대 주주로 부상했으며 2008년 상장을 추진키로 했다. 군인공제회측은 이번 주식 인수는 재무적 투자로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건설과 금융 분야에 주력해 왔던 군인공제회는 지난 8월 골프카 개발사업 지분참여에 이어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선박 건조 사업에도 참여하게 됐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남중수 KT 사장 vs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우리는 맞수 CEO] 남중수 KT 사장 vs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KT와 SK텔레콤은 IT업계의 ‘용호상박(龍虎相搏)’으로 불린다. 두쪽 모두 차세대IT 기술과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남중수 KT 사장과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이런 이유로 재계에서 주목받는 최고경영진(CEO)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소통’이 쉽다는 점이다. 남 사장은 특별할때 ‘감사 메일’을 직접 보낸다. 김 사장도 휴대전화를 잘 받는다. 못받았을땐 답신이 온다. 상대방은 ‘감동’은 아니라도 의외의 고마움을 느낀다. 두 CEO는 IT기술 및 서비스의 컨버전스(융합)시대를 맞아 양보없는 일전도 벌이고 있다.KT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 인터넷방송(IPTV) 등에,SK텔레콤은 위성DMB,3세대 이동전화 WCDMA가 진화한 HSDPA 등에 주력하고 있다. 두 CEO는 최근 연말을 맞아 내년의 사업 계획 등을 밝혔다. ●상대가 있어 믿음직하다 김 사장은 지난 9일 “삼수끝에 염원의 매출 10조원 달성이 가능해졌다.”며 한 획을 그었음을 밝혔다.KT가 매출 10조원을 몇년전에 넘긴 상태여서 그의 말에는 다분히 KT를 의식하고 있다. 남 사장은 5일후인 14일 “내년에 올해보다 5000억원을 더 얹어 3조원을 기술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맞받았다. 남 사장은 8월 취임때 “정책에 많은 협조를 하겠다.”고 밝혀 정부와도 연관성이 있다. 그는 경영이념을 ‘원더 경영’으로 정했다.‘놀라운’ 경영이다. ●남 사장은 ‘온화’, 김 사장은 ‘냉철’ 남 사장은 KT 재무실장일때 민영화를 성공시킨 ‘승부사’다. 그런데도 외모가 온화하고 정도 많다. 주위에선 그 ‘정’속에는 아이디어와 전략이 숨어 있다고도 말한다. 출근 직후 91세의 노모에게 화상전화로 안부인사를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반면 김 사장은 ‘샤프한’ 느낌이 온다. 사물을 꿰뚫는 혜안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의사 결정은 신중하게 하지만 결정되면 단호하게 밀고 나간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다보면 순리를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남 사장은 인생 좌우명을 ‘동선시(動善時), 거선지(居善地)’라고 말한다. 움직일 때는 때가 중요하며, 머무르기엔 낮은 곳이 좋다는 뜻이다. 김 사장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가 더 멀리 본다.’는 좌우명으로 협조를 강조한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것은 비슷하다. 김 사장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신곡도 잘 부른다. 남 사장은 기타를 잘 치고, 회사 행사때도 독주를 하곤 한다. 사장이 되기전 두 회사간 주식맞교환 협상때는 테이블에서 직접 만난 인연도 있다. ●“컨버전스시장, 승자는 누구?” 남 사장은 KT의 잠재력을 크게 본다. 따라서 펼치고 펼칠 사업도 많다. 와이브로,U-시티,IPTV, 광대역통합망(BcN) 기반구축 등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와이브로 상용화가 예정돼 있다. 김 사장의 SK텔레콤은 내년 상반기에 HSDPA를 상용화한다.HSDPA는 KT의 와이브로에 대적할 무기다. 내년엔 위성DMB의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베트남 등지의 글로벌사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두 기업은 콘텐츠에도 눈을 돌렸다.SK텔레콤은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인 IHQ와 음반전문 유통사인 서울음반 지분 인수를 통한 콘텐츠사업 발판을 마련했다.KT도 이에 뒤질세라 영상유통업체인 싸이더스FNH에 지분 참여를 통해 콘텐츠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최근엔 이를 위해 KTF,KTH 등 일부 자회사를 빼곤 사장을 다 바꿨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남중수 KT 사장 ▲1955년 6월28일생 ▲74년 경기고 졸업 ▲79년 서울대 경영학과 ▲80년 정무1장관 비서관 ▲81년 체신부장관 비서관 ▲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입사 ▲90년 미 매사추세츠대 경영학박사 ▲98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충북본부장 ▲2000년 상무이사 겸 IMT사업추진본 부장 ▲2001년 KT 전무이사 겸 재무실장 ▲2003년 1월 KTF 대표이사 사장 ▲2005년 8월 KT 대표이사 사장 ■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1954년 10월15일생(양력) ▲74년 경기고 졸업 ▲78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80년 한국과학기술원 석사 ▲8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 학원 졸업 ▲97년 SK텔레콤(옛 한국이동통신) 사업전략담당 이사 ▲98년 SK텔레콤 수도권지사장 상무 ▲2001년 SK신세기통신 사장실장 ▲2002년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 전무 ▲2004년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 LG·롯데 “용병 빵빵… 내년엔 도약”

    프로야구 중하위팀 LG와 롯데가 내년 시즌 반란을 꿈꾼다. 올 가을에 야구를 하지 못했던 LG와 롯데가 굵직한 외국인선수를 잇따라 영입, 내년 판도에 변수로 떠올랐다. 김영수 사장이 ‘신바람 야구 재건’을 선언한 LG와 ‘부산 갈매기’ 합창이 4강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롯데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최대어 장성호가 기아에 안주하자, 일찌감치 용병 수입에 힘을 쏟아왔다. LG는 메이저리그 출신 아마우 텔레마코(31)와 매니 아이바(33·이상 도미니카공화국)를 수입했다. 투수 장문석을 내주고 기아의 마해영을 ‘해결사’로 낚아 방망이를 강화한 LG는 용병 2명을 모두 투수로 채웠다. 1996년 시카고 컵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텔레마코는 애리조나·필라델피아 등에서 중간계투로 뛰며 통산 23승35패(방어율 4.94)를 기록했다. 묵직한 직구와 슬라이더가 주무기.또 아이바는 올시즌 뉴욕 메츠에서 구대성과 함께 중간계투로 활약했다.97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중간과 마무리로 뛰며 통산 17승18패3세이브(방어율 5.11)를 올렸다.150㎞ 초반의 빠른 직구와 슬라이더가 강점이다.LG는 “한국야구에 빠른 적응이 관건이지만 기본이 탄탄하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롯데는 올시즌 LA 다저스에서 뛴 내야수 브라이언 마이로우(29)에 이어 1999년 2001년 롯데에서 맹활약한 펠릭스 호세(40) 등 타자 2명을 영입했다. 거포 부재에 5위에 그쳤던 롯데는 “호세가 말썽도 많았지만 기량이 확실히 검증된 거포인 만큼 또한번 ‘검은 갈매기’ 열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우승팀 삼성은 하리칼라, 기아는 그레이싱어, 한화는 데이비스를 붙잡고 나머지 1명을 교체작업중이다.SK는 일본인 내야수 시오타니 가즈히코 1명만 수입한 상태며, 두산과 현대는 기존 용병 2명에게 재계약 의사를 통보했다.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동부그룹 ‘삼성 배우기’ 성공할까

    [재계 인사이드] 동부그룹 ‘삼성 배우기’ 성공할까

    동부그룹의 ‘삼성식 실험’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동부그룹이 19일 또다시 삼성 출신의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했다.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인사팀장 출신으로 CJ홈쇼핑 대표이사를 지낸 조영철(59)씨를 ㈜동부 사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동부그룹의 삼성 출신 CEO 영입은 올해 들어서만 네 번째다. 삼성SDS 사장 출신의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 삼성항공 사장을 역임한 임동일 동부건설 부회장,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연구소장을 지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등을 이미 끌어들였다. 여기에다 삼성전자 종합기획조정실장, 삼성SDS 사장을 역임한 이명환 ㈜동부 겸 동부정보기술 부회장, 삼성화재 부사장 출신인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까지 더 하면 6명이 동부그룹 주력 10개 계열사의 부회장 및 사장으로 포진하게 됐다. 임원급으로 내려가면 삼성식 실험의 강도를 더욱 느끼게 한다. 동부그룹의 상무·부사장급 200여명 중 60여명이 잠시라도 삼성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처럼 동부그룹이 유독 삼성 출신 임원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삼성 배우기’가 매우 적극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인재관리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일가견이 있는 삼성그룹에서 검증된 인물들이야말로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김 회장이 내건 시스템 경영을 안착시키기 위해 동부그룹 내에서 수많은 삼성 출신들이 ‘배양’되고 있는 셈이다. 동부그룹은 재계 10위권 그룹의 위상에 걸맞게 ‘삼성맨’들을 대거 영입해 시스템 경영의 실천을 통해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정착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관계자는 “특별히 삼성 출신 영입에 적극적이라기보다는 시스템 경영을 경험해 본 우수 인재가 삼성 출신이 많다 보니 영입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부산신항 명칭 ‘신항’ 결정

    부산시와 경상남도가 8년 동안 ‘이름 논쟁’을 벌여온 부산 신항의 공식명칭이 ‘부산신항’도 아니고,‘진해신항’도 아닌 그냥 ‘신항’으로 최종 결정됐다. 해양수산부는 19일 전국항만정책심의회의를 열고, 부산시 강서구와 경남 진해시 용원동 일대에 건설 중인 신항의 명칭을 ‘신항’으로 결정했다. 영문 명칭은 ‘New port(신항)’와 ‘Busan New port’를 함께 쓰기로 했다. 오거돈 해양부 장관은 “새로운 항만이 항만법상 부산항의 하위 항만이고 신항이 애초 부산항의 컨테이너 시설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추가로 건설되는 항만이므로 명분상 부산신항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오 장관은 “실리면에서도 97년 ‘부산신항 건설사업’ 고시 이래 ‘부산신항’으로 홍보돼 왔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됐다.”면서 “그러나 지역 갈등이 첨예해 ‘부산’이라는 지역명칭을 빼고 ‘신항’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결정으로 명칭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진해신항’을 요구해왔던 경남지역 시민들의 거센 반발과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도와 ‘진해신항 쟁취 범도민대책위원회’는 정부의 ‘신항’ 결정과 관련해 신항만 공사중지 및 명칭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 또 쉽게 정할 수 있었던 일을 정부가 몇년을 질질 끄는 바람에 부산·경남의 지역갈등을 심화시켰고, 국제 경쟁력과는 무관한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력이 낭비됐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명칭 논란은 2000년 경남도에서 ‘부산신항’이 아닌 ‘진해신항’이 돼야 한다고 본격적으로 문제를 삼으면서 뜨거워졌다. 경남지역에서는 신항 홍보간판을 삭제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고 부산에서도 이에 발끈하는 등 ‘기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해양부는 “부산시와 경남도가 합의해서 해결할 문제”라며 사실상 방관자적인 입장만 취했다. 올들어 뒤늦게 몇 차례 중재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지난 6월 이후에는 국무총리 산하 행정협의회 조정위원회에서 조정을 시도했으나 ‘부산·진해신항’을 선호한 국무조정실과 ‘부산신항’으로 밀어붙이려는 해양부가 ‘핑퐁 게임’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가 허송세월하는 사이 두 지역의 시민단체와 의회, 재계까지 가세해 매듭은 더욱 꼬여갔다. 한편 해양부의 이날 결정에 대해 부산은 “아쉽지만 수용한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경남은 강력 반발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항만 이름에 부산이라는 지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대승적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수용할 뜻을 표명했다. 반면 경남도와 도의회, 진해신항 범도민대책위 등은 “경남도의 주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김태호 경남지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법적대응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명칭 문제를 바로잡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이창구기자·창원 이정규기자·부산 김정한기자 window2@seoul.co.kr
  • 강철규 공정위장 전경련과 ‘화해’?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10개월만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회동한다.18일 공정위와 재계에 따르면 강 위원장은 21일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전경련 기업정책위원회 주최의 조찬 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과 지난해 발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공정위와 재계가 ‘대립각’을 세웠던 만큼 강 위원장의 이날 행보는 주목된다. 특히 행사를 주최한 기업정책위원회는 재벌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핵심정책을 다루는 전경련의 내부조직이다. 조건호 전경련 부회장이 위원장으로 있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LG화학,SK텔레콤 등 재벌의 주력계열사 최고경영자(CEO) 10명이 참여하고 있다. 때문에 간담회에선 재벌의 지배구조개선과 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민감한 사안들이 거론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논쟁이나 설전이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강 위원장은 내년도 공정위의 정책방향 등을 개괄적으로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행사는 전경련이 초청했고 강 위원장이 흔쾌히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공정위가 ‘재계’와 화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대한전선과 대한방직, 대한제당은 모두 한뿌리 기업들이다.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설립했던 회사들로 장남인 설원식(83) 전 회장이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경영권을 승계해 가장 먼저 계열분리했다.3남인 설원량(작고) 회장은 1972년 인송의 실질적인 ‘경영 후계자’로서 당시 대한그룹의 주력사인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고 설원량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한때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지만 오일쇼크의 충격과 가전사업 매각 등으로 사세가 크게 줄었다. 또 동생인 설원봉(57) 회장이 88년 대한제당을 갖고 분가하면서 옛 대한그룹은 사실상 대한전선만 남게 됐다. 지금은 고 설원량 회장의 부인인 양귀애(58) 고문이 오너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임종욱(57)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고 설 회장의 장남인 윤석(24)씨는 대한전선 경영전략팀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처럼 1950년대 재계 서열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대한전선그룹은 오늘날보다 과거가 더 화려한 기업이다. 혼맥도도 이와 비슷하다. 창업주인 설경동 회장가(家)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옛 재벌가(家)와 적지 않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4남2녀를 뒀던 인송은 1970∼80년대 욱일승천했던 국제그룹 창업주 양태진 회장가(家)와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가(家)와 사돈지간이다. 관계에서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과 임송본 전 대한석탄공사 총재가 사돈들이다. ●50년대 재벌가 인송 인송은 1901년 평안북도 철산군 인송리에서 부친 설흥업옹과 모친 조성녀 여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정동(鄭童)이었지만 서당 스승께서 ‘큰 인물로 대성하라.’는 뜻에서 경동(卿東)으로 지어줬다. 인송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는 부친을 세살 때 여의고, 모친을 따라 함경북도 부령으로 이사해 무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3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집안을 돌보던 인송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어렵게 오쿠라 고등상업학교에 입학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 귀국해야 했다. 인송은 이후 부령 군청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1921년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판매사업을 벌였다.1936년에는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청진 앞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아 이를 가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1940년대 초에는 어선 70척에 비행기로 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함경도 거부로 성장했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북측에 공산군이 진주하면서 월남한 인송은 무역회사인 대한산업과 부동산 회사인 원동흥업을 세워 남쪽에서도 곧 거부 대열에 올라섰다.6·25전까지 그가 수원에 세운 성냥공장은 남한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인송은 53년 재벌의 터전이 된 대한방직을 인수해 근대적인 경영을 시작했다.55년엔 대한전선 인수,56년에는 대동제당(현 대한제당)을 세워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가로 올라섰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인송은 54년 자유당 재정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60년대 초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인송은 4·19 의거와 5·16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내로라하는 그룹 창업주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험난한 시기를 보냈다. 특히 인송은 강제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동산도 몰수당했다. 부친의 이같은 시련을 지켜봤던 설씨가(家) 4형제는 훗날 정치와 담을 쌓은 것은 물론 부동산 투자도 꺼렸다. 인송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이라도 소홀히 버리지 않았다. 편지가 오면 칼로 봉투의 한 귀퉁이를 잘 도려내고, 그 뒷면을 이용해 한번 더 사용했을 정도였다. 인송이 송인상 효성 고문(당시 부흥부장관)에게 보낸 편지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하던 대로 송 장관에게 소식지 ‘무역통신’ 뒷면을 이용해 서신을 보냈다. 이를 받은 송 장관은 대기업 사장의 검소함에 탄복해 서신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수년간이나 회의석상이나 강연회에서 이를 소개했다고 한다. ●옛 영화가 가득한 혼맥 인송은 두번 결혼했다. 그는 첫번째 부인 이태하(작고)씨 사이에 원식과 원철(68)씨 등 2남을 뒀다. 두번째 부인 유인순(작고)씨 사이엔 원량과 명옥(59), 원봉, 영자(53)씨 등 2남2녀를 뒀다.4남2녀 가운데 여자 형제는 중매로, 남자 형제는 연애 결혼했지만 당시 재벌가의 통혼이 그러하듯 인송은 관·재계의 명문가를 사돈으로 맞았다. 장남인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은 일제시대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총재와 대한석탄공사 5대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희숙(75)씨와 연애결혼했다. 당시 원식씨는 희숙씨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할 대학을 바꿀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설 전 회장 부부는 설범(47) 대한방직 회장과 설경화(46)씨 등 1남1녀를 뒀다. 차남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은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의 딸 보경(66)씨를 미국 유학중에 만나 인연을 맺었다. 보경씨는 코리아헤럴드 출신의 언론인이다. 설한(39), 설훈(35), 설혜선(34) 등 2남1녀를 뒀다. 3남 설원량 회장은 1969년 동생인 명옥씨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양귀애 고문과 결혼했다. 명옥씨와 양 고문은 친구 사이다. 양 고문은 국제그룹 양태진 창업주의 막내딸이며,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누이 동생이다. 윤석(24), 윤성(21)씨 등 2남을 두고 있다. 4남 설원봉 회장은 박용학 전 대농 명예회장의 장녀인 선영(56)씨와 혼례를 치렀다. 선영씨는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다녔던 설 회장과 선영씨는 학창시절부터 오랜기간 만남을 가졌다. 윤호(30)와 혜정(25)씨 등 1남1녀를 뒀다. 장녀 명옥씨는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 가문의 소개로 71년 김우기(63) 서울대 의대 교수와 결혼했다. 동철(33)과 승철(31)씨 등 2남을 뒀으며 장남은 의사, 차남은 대한제당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영자씨는 고 설원량 회장의 친구인 정근모 명지대 총장의 중매로 차동완(58)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진영(28)씨와 종현(25)씨 1남1녀를 두고 있다. 3세들도 속속 가정을 꾸리고 있다.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의 장남인 설범 회장은 한연나씨와 결혼했으며, 장녀 경화씨도 차정하씨와 혼인을 치렀다. 양 고문의 장남 윤석씨는 지난해 6월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인 심현진(24)씨와 연애 결혼했다. 현진씨의 부친은 심광일(52)씨로 중견 건설업체인 석미건설을 경영하고 있다. 양 고문은 “오랫동안 연애를 한 데다 아들의 판단을 믿었다.”면서 “설 회장도 생전에 둘의 결혼을 허락한 만큼 일찍 결혼을 시켰다.”고 말했다. 설영자-차동완 교수 부부의 장녀 진영씨는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조 부사장은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손자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이다. 진영씨는 대한전선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재벌가(家)와 통혼했다. ●일찍 시작한 분가 설경동 가문의 기업 분가는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일찍 시작됐다. 창업주 사후에 2세들의 분가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송은 생전에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등을 계열분리시켰다.1960년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가정불화마저 겹치면서 인송은 어쩔 수 없이 대한산업과 대한방직 등을 장남 원식에게 맡겨 2세 경영을 펼치도록 했다. 인송은 이후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중심으로 경영을 해오다가 7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3남인 당시 설원량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토록 했다.74년 인송이 결국 타계하자 설 회장이 대한전선그룹을 이끌게 됐다. 대한전선은 88년에 또 한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창업주 인송의 유지를 받들어 설원량 회장이 계열사인 대한제당을 분가시킨 것이다. 설 회장은 동생인 설원봉 회장이 대한제당에 입사한 이래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아왔다고 보고, 대한제당 관련 주식을 설원봉 회장에게 모두 양도해 대한전선에서 완전 분리시켰다. 대한제당은 현재 식품소재사업과 레저, 외식업 등에 진출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송의 후계자 설원량 회장 고 설원량 회장 유족들은 지난해 9월 135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매출 2조원이 안되는 중견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하자 고 설 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상속이나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다른 재벌가(家)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대단했다. 그는 평소 “기업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손님이 되어야지, 불청객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한토막. 대한전선 본사와 각 공장 구내식당에서 제공되는 한 끼 밥값은 80원이다. 공짜로 주는 것이 낫겠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설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같이 정해졌다. 설 회장이 내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음식이 혹시라도 부실해지면 회사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서 내린 조치였다. 설 회장 본인도 줄곧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이 역시 회장이 자주 이용하면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낸 것과 달리 설 회장은 부친인 설경동 회장 못지않은 ‘구두쇠’였다. 그는 양복을 한 벌 사면 소맷단이 해질 정도로 입었다. 식당에서 사용한 휴지는 잘 접어두었다가 화장실에서 다시 사용했다. 쉽게 쓰는 휴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휴지라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같은 성품 때문일까. 그는 4형제 가운데 부친으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설 회장이 미국 텍사스주립대로 유학갔을 때, 인송의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편지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인송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설 회장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설 회장은 67년 대한전선 총무부장으로 입사했다. 인송은 설 회장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호된 경영자수업을 받도록 했다. 설 회장은 68년에 상무,70년엔 전무 등 주요 사업부 수장을 거치면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72년 사실상 경영 대권을 이어받은 설 회장은 견실한 전선사업과 가전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70년대 중반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대한전선을 키웠다. 후계자로서 연착륙했다는 주변의 평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한전선과 금성사(현 LG전자)가 선점한 가전시장에 삼성전자가 후발업체로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70년대 후반부터 덩치에 밀린 대한전선은 자금난으로 갈수록 어려워졌다. 설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의 유업을 일순간에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기업가로서 그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했다. 대한전선 가전사업에 관심이 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가전사업이 어려우면 언제라도 대우에 협력제의를 해달라.”는 의중을 넌지시 전해왔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던 설 회장은 83년 3월 그룹 임직원들에게 가전부문 매각을 발표했다, 매각 금액은 2억달러 규모로 당시엔 그야말로 빅딜이었다. 가전사업과 생산직원 모두 대우로 넘어갔다. 대우그룹으로 바꿔타는 직원이 무려 6000여명. 대한전선에 남는 인원은 3000명 남짓이었다.24개 계열사 중 10개사가 대우에 속하게 됐으며, 남은 계열사는 통폐합 절차를 거쳐 7개사로 줄었다. ●‘풍운아’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50년대 국내 대표적인 재벌가(家)의 장남이었지만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뒤,55년부터 5년간 중앙대 문과대에서 강사(서양학)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는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전선 사장직에 갑자기 취임했다. 이후 3년간이나 부친인 인송과 재산 다툼을 벌였지만 그는 결국 법적으로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옛 대한그룹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설 전 회장은 70년대 대한종합개발을 설립해 건설업에 진출했으며, 아세아종합금융을 세워 금융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업 진출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는 아세아종금 주가가 폭락하면서 퇴출위기에 몰리자 주식시세를 조종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세아종금은 이후 진승현씨에게 인수돼 한스종금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훗날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졌다. 설 전 명예회장은 98년 장남인 설범 회장에게 대한방직 경영권을 물려주며 현장에서 물러났다. 차남인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의 이력도 형에 못지않다. 그는 일본 게이오대 법대와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그는 부친의 기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 입사해 조사부 부장과 샌프란시스코 무역관 관장을 거쳤다.91년엔 형인 설원식 전 회장에 이어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사장에 올랐다.2년 후에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3무 경영’ 설원봉 회장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은 연세대 법대와 미국 브루클린 공대대학원을 거쳐 1976년 대한전선 종합조정실 이사로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83년 대한제당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88년엔 형으로부터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그는 형과 달리 부드럽다는 평이다. 그러나 나서기를 꺼려하는 것은 다른 형들과 똑같다. 재계에서 친한 인사로는 경기고 동기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설 회장은 현장과 인재 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외환위기 극복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설 회장은 직원들의 신뢰속에 감원과 임금 삭감, 노사분규 없이 힘든 시기를 헤쳐왔다.‘무감원, 무감봉, 무분규’라는 대한제당 특유의 ‘3무(無) 경영’은 이렇게 나오게 됐다. 대한제당은 현재 의약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그룹 나침반 임종욱 사장 대한전선의 대표 최고경영자(CEO)인 임종욱(57) 사장은 서울생으로 선린상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95년 회장 비서실장에 임명된 이후 9년간 설원량 회장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받들어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실무관리를 해오고 있다.97년 외환위기 때에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무주리조트와 쌍방울 인수, 진로채권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다각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임 사장은 설 회장이 타계한 이후 회사 경영의 나침반으로서 차세대 ‘먹을 거리’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미망인이 본 故설원량 회장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예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어요. 자제심도 대단했고요. 남편을 사회와 일에 빼앗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평생 일만 하다 간 분이에요. 그림이나 음악에도 대단히 조예가 깊었는데….” 양귀애 고문은 남편인 고 설원량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 듯 설 회장을 언급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설 회장은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아직도 설 회장 사진을 안봐요.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남편 사진들을 다 치웠어요. 감정이 많이 정리가 됐다고 해도 가끔은 가슴이 휑해요.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가지들이 너무 낡았더라고요. 대기업 회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와이셔츠 소매는 다 헐었고, 구두는 신기 민망한 수준이었어요.” 그는 일만 했던 남편이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둘만의 데이트는 자주 했다고 했다.“설 회장은 사업이 꼬이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저를 불러요. 옆에 있어달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동안 생각만 해요. 그 때는 옆에서 말 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그래서 저를 불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둘이서 남산을 자주 산책했고, 가끔은 골프도 둘이서만 치고 다녔답니다.” 그는 불임으로 꽤 고생했다. 장남인 설윤석 과장을 결혼 12년차에 가질 정도였다.“시댁식구들 눈치 많이 봤죠. 재벌가(家)로 시집와서 12년간 애기가 없었으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그때마다 남편이 바람막이가 돼 줬습니다. 참 고마웠죠.” 양 고문은 시아버지인 인송 설경동 회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아버님이 저를 특히 예쁘게 보셨어요. 항상 자신 옆에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외출을 하면 꼭 저를 데리고 다니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한복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해서 신혼 초에는 한복만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설 회장은 자식을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남편은 아들들에게 절대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수입도 없는 애들이 돈 쓰는 버릇부터 들이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비행기를 탈 때도 애들은 항상 이코노미석이었습니다.” 양 고문은 지금까지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자신의 전부를 쏟았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이 일군 대한전선을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한편 그는 큰 오빠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근황과 관련,“건강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소일하신다.”면서 “(국제그룹 해체로) 당시엔 심리적인 타격이 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잊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막오른 3세 경영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창업한 대한전선과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은 모두 3세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3세가 최고경영자(CEO)로 전면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제 실무부서에 배치돼 첫 걸음마를 시작한 곳도 있다. 가장 빨리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은 대한방직. 설경동가(家)의 장손인 설범(47) 회장이 1998년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설씨가(家)의 3세 경영을 알렸다. 그는 85년 대한방직 이사로 출발해 91년 상무,95년 부사장,96년 대표이사 사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설 회장은 2001년 한스종금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만두라.’는 소액주주들과 주총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한차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주변에선 설 회장을 소탈하고 온화하다고 평한다. 집안 가풍대로 보수적이며, 사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업계에서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배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더 뷰크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지난해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학업과 경영수업을 동시에 했던 장남 설윤석(24)씨는 올 들어 경영전략팀 과장으로서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다. 그는 대한전선의 최대주주인 삼양금속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설 과장의 나이가 아직 어린 데다 모친인 양귀애 고문이 후견인으로 나서는 만큼 급하게 경영 대권을 잇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종욱 대한전선 사장이 전문경영인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어 후계자 교육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 고문은 “설 과장의 진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승진이나 유학 등은 상황에 따라 이뤄질 것이에요.”라고 했다. 동생인 윤성(21)씨는 중학교 3년때 미국으로 유학가 현재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다니고 있다.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의 장남인 윤호(30)씨는 경영 대권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에 입사해 현재 제당식품사업부를 책임지는 전무로 일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설 전무는 경기고와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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