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재계
    2026-06-24
    검색기록 지우기
  • 소지섭
    2026-06-24
    검색기록 지우기
  • 투어
    2026-06-24
    검색기록 지우기
  • 200 2루타
    2026-06-24
    검색기록 지우기
  • 최종원
    2026-06-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196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대교] 교육열 높은 부모 영향… 자수성가 3형제, 매출 8000억 터닦다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대교] 교육열 높은 부모 영향… 자수성가 3형제, 매출 8000억 터닦다

    국내 최대의 교육기업을 만든 강영중(65) 회장의 부모, 특히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했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강 회장은 3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주에서 식당 일을 했던 아버지 고 강대웅씨와 어머니 김정임(92)씨는 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진주에서 연고도 없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이사를 와 여관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만 졸업해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던 부모로서는 어떻게든 자녀들이 대학까지 마치기를 바랐다. 하지만 강 회장이 25살 때였던 1974년 아버지 강씨는 58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강 회장의 형제들 모두 홀로 남게 된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깊다. 어머니 김씨는 배드민턴이 취미로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무궁화클럽’이라는 배드민턴 모임을 만들 정도로 배드민턴을 즐겨했다. 회원들은 김씨를 ‘여(女)회장’이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고령의 나이에 3년 전까지만 해도 배드민턴을 칠 정도로 건강이 좋았지만 올해 2월 경막하출혈로 쓰러진 후 8개월째 병석에 누워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의 부인 김민선(61)씨는 서울여대를 졸업했고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강 회장과 부인은 중매로 만나 결혼했는데 강 회장이 쓴 책에 따르면 부인 김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유교적인 강 회장의 집안을 잘 꾸려줬다고 한다. 강 회장과 김씨 사이에는 2남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대교그룹에서 근무하며 강 회장 이후의 후계 구도를 준비하고 있다. 장남인 강호준(34)씨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 MBA 과정을 밟은 뒤 대교 아메리카본부장을 거쳐 현재 대교 해외사업전략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차남인 강호철(32)씨는 경기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유학 후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현재 형의 뒤를 이어 대교아메리카 본부장을 맡고 있다. 둘 다 평범한 집안의 자녀와 결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은 아들들을 대교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해외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한 후 자격이 되면 대교를 맡길 생각이다. 강 회장의 둘째 동생인 강경중(62)씨는 중앙대 법대를 졸업했고 현재 국내 최대 인쇄출판기업인 타라그룹의 회장이다. 동생인 강 회장은 형과 함께 대교를 공동 창업했지만 1989년 독립해 타라그룹의 전신인 바른인쇄를 창업했다. 1989년 직원 5명과 함께 인쇄기 한 대로 시작해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는 등 동생인 강 회장도 형처럼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부인 박경주(56)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유명 진주한정식집인 ‘하모’를 운영하고 있다. 진주에서 식당을 했던 시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 문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 사이에는 1남 1녀를 뒀는데 딸 강인경(34)씨, 아들 강호연(32)씨 모두 타라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강 회장 형제의 여동생인 강영의(59)씨는 적십자간호대학(현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송진수(65) 한국태양광발전학회 회장과 결혼했다. 여동생 강씨는 결혼 전까지 대교그룹 일을 도왔다가 결혼 후 가정주부가 됐다. 이들 사이에는 1남 1녀가 있다. 장남인 송원석(32)씨는 록 밴드 ‘버닝햅번’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장녀 송유림(31)씨는 설치미술가다. 강 회장의 막내동생인 강학중(57) 가정경영연구소장은 국내 최고의 가정경영 분야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형들과 함께 대교그룹을 만들었고 대교출판 사장과 대교 대표이사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7년 말 대교그룹을 떠나 독립했다. 2000년 1월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가정경영연구소를 만들었고 한국사이버대 부총장 등을 지냈다. 강 소장은 대교를 떠나 가정경영연구소를 만들게 된 계기를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있다. 강 소장의 부인 조경희(58)씨는 가정경영연구소에서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장녀 강시내(32)씨는 영국 런던시티대 경영학을 전공한 뒤 현재 영국문화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남 강바다(30)씨는 인성그룹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대교] 송자 前 교육부 장관 삼고초려해 영입…대표이사 회장 맡겨

    경남 진주 출신에 진주농고를 다니다 서울 서라벌고로 전학해 건국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강영중(65) 대교그룹 회장은 학연과 지연 등이 거의 없고 그룹이 성장하기까지 정치인 인맥을 형성하는 등의 이야기는 들린 적이 없다. 누구보다도 원칙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교그룹이 성장하기까지 유명인들과 인연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문용린(67) 전 서울시교육감은 강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대교문화재단에서 2000년 초부터 2012년 8월까지 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강 회장과의 긴밀한 관계는 강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봉암학원에서 2008년 7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이사로 재직하면서도 이어졌다. 송자(78) 명지학원 이사장(전 교육부 장관)은 강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잠시 떠나면서 ‘삼고초려’를 해서 회장으로 데려온 것으로 유명하다. 송 이사장이 회장직을 맡기 전 수년 전부터 강 회장으로부터 기회만 되면 대교에 와서 일해줄 것을 요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 이사장은 2001년부터 2007년 3월까지 대교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현재 강 회장이 오너로서 그룹 전체를 지휘한다면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들이 대교의 각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각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대교로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1년부터 대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조영완(56) 대표이사는 SK브로드밴드 CS 대표이사 출신이다. 미디어사업 전문가로 대교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꼽는 미디어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대교그룹의 스마트러닝 등 정보통신(IT) 서비스를 책임지는 오석주(53) 대교CNS 대표이사는 한국IBM 등에서 근무한 후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를 지낸 IT 분야 전문가다. 오 대표이사는 강 회장의 사업부문별 전문가 영입추진 계획에 따라 합류해 2010년부터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청평 마이다스 골프클럽과 이천 마이다스 골프&리조트를 운영하는 대교D&S와 강원심층수의 대표이사를 지난해 3월부터 맡고 있는 최건(64) 대표이사도 삼성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 영업 상무와 우리들리조트 대표 등을 지낸 이 분야의 전문가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프로야구] 김용희 SK 신임감독, 공식 사령탑 취임

    [프로야구] 김용희 SK 신임감독, 공식 사령탑 취임

    김용희(59) 감독이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공식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SK는 23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감독 취임식을 열고 ‘김용희호’ 공식 출범을 알렸다. 3년 계약기간을 채우고 SK와 재계약에 실패한 이만수(56) 전임감독도 자리해 김 감독의 사령탑 취임을 축하했다. SK 구단은 1·2군 선수단도 감독 이취임 행사에 불렀다. 올 시즌을 마칠 때가지 육성총괄로 일하던 김용희 신임감독은 21일 계약기간 2년, 계약금 3억원·연봉 3억원 등 총 9억원의 조건에 제5대 SK 사령탑에 선임됐다. 김 감독은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의 원년 멤버로 롯데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타자로 인기를 끌었다. 1982년과 1984년 두 차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미스터 올스타’라는 영예로운 별명도 얻었다. 김 감독은 1989년 플레잉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롯데 자이언츠 감독(1994∼1998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2000년) 등 사령탑 경력도 쌓았다. 1995년에는 롯데를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아 지도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06년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을 지낸 뒤 잠시 해설자로 활약한 그는 2011∼2013년 SK 2군 감독을 맡았고, 올해는 선수 육성에 초점을 맞춘 구단의 방침에 따라 육성·스카우트를 통합 관리하는 육성 총괄을 지냈다. SK는 시즌 종료와 함께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 불가를 결정하고 김용희 육성 총괄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김용희 신임감독은 “유니폼을 입고 다시 땀 흘릴 날을 기다렸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붉은 점퍼를 입은 선수들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진다”며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고개 숙이지 말자. 내년에는 기필코 가을잔치에 우리 팬들을 초대하자”고 말했다. 이어 “야구는 다른 종목과 다르게 ‘희생 플라이’, ‘희생 번트’ 등 희생이라는 정식 플레이가 있다”며 “희생을 팀 가치관으로 삼고, 여러분 모두가 팀 승리를 위해 뛴다면 내년에는 다시 가을 잔치를 벌일 수 있다”고 ‘희생’을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대교] 셔틀콕 효도 유명…세계최강 이끈 한국 배드민턴 ‘대부’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서 강영중(65) 대교그룹 회장 이야기를 뺄 수 없을 정도로 강 회장은 배드민턴계의 대부(代父)다. 한국이 배드민턴 강국이 된 데는 강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강 회장은 배드민턴을 치는 이유로 30분만 배우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 회장은 고교 1학년 때 체육선생님 두 명이 배드민턴을 하는 것을 보다가 얼떨결에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취미를 붙인 것은 1974년 강 회장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였다. 남편을 잃고 기력이 약해지던 어머니를 위해 강 회장은 당시 살던 집 앞에 조그만 공터를 샀고, 어머니는 직접 호미로 땅을 골라 배드민턴장을 꾸몄다. 덕분에 모자는 매일 아침 그곳에서 배드민턴을 쳤고 어머니 김씨의 건강도 좋아지게 됐다. 이런 인연으로 방 회장은 1997년 ‘눈높이 여자 배드민턴단’을 창단하게 된다. 눈높이 여자 배드민턴단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방수현 선수,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라경민 선수 등을 배출했다. 강 회장은 2003년 대한배드민턴협회장에 취임했고 2005년 5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에 올랐다.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4번째 국제경기단체 회장이 됐다. 강 회장은 2005년부터 2013년까지 BWF 회장으로서 BWF의 재무 및 수익 구조 개선 등을 이룬 바 있다. 그는 지난 5월 BWF 종신 명예부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1부)신흥기업 대교] 눈높이 교육 ‘해외로’ 新사업 심층수 ‘헐떡’

    [재계 인맥 대해부(1부)신흥기업 대교] 눈높이 교육 ‘해외로’ 新사업 심층수 ‘헐떡’

    ‘태어나는 아이 수는 줄어들고 해외 사업은 지지부진하고….’ 우리나라의 폭발적인 교육열로 성공한 대교지만 현재 대교는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때문에 주요 고객층인 학생이 줄고, 인터넷 강의 등 다양한 학습법이 보급되면서 학습지를 푸는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강영중 회장이 자리를 비웠던 기간 그룹은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교육기업으로서의 성장이 더딘 만큼 새로운 사업 개척이 필요했지만 이에 대한 대비도 부진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매출액 추이만 봐도 그룹의 성장세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매출액은 6497억원을 기록했고 매년 수백억원씩 매출이 증가했다. 하지만 매출액이 8000억원대를 넘어서면서부터 매출 증가가 더뎌졌다. 2011년 매출액 9080억원을 기록한 후 3년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성장세가 둔화되니 주가도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1년간 대교의 주가를 살펴보면 6000원대 후반에서 7000원대 초반을 왔다 갔다 할 뿐이다. 강 회장은 수시로 자사주를 매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16일에도 자사주 371주를 매수했다. 이처럼 자사주를 끊임없이 매수하는 이유에 대해 강 회장은 “회사의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부분도 있고 실적이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교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사업으로 2006년 해양심층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주회사인 대교홀딩스와 강원도가 공동 출자해 ‘강원심층수’를 출시했지만 출시 후 매년 30억~4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적자만 43억원에 이른다. 대교그룹은 그룹 성장동력의 초점을 교육에 맞추되 해외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1991년 8월 미국 현지법인인 대교아메리카를 설립한 이후 2002년 10월 중국 베이징에 이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각지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현재 20개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다. 강 회장의 장남인 강호준(34) 대교 해외사업전략실장, 차남인 강호철(32) 대교아메리카본부장이 해외 사업을 맡고 있어 대교가 해외 사업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신통치 않다. 해외 법인의 중심인 대교아메리카는 2011년 23억원, 2012년 38억원, 2013년 70억원의 적자를 내며 적자 폭이 매년 커지는 실정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1부)신흥기업 대교] 3명의 공부방에서 출발… 자산 1兆대 국내 1위 교육기업으로

    [재계 인맥 대해부(1부)신흥기업 대교] 3명의 공부방에서 출발… 자산 1兆대 국내 1위 교육기업으로

    ‘교학상장’(敎學相長), 배우고 가르치며 서로 같이 성장한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강영중(65) 대교그룹 회장의 좌우명이다. 1975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3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자그마한 공부방이 30여년이 지난 2014년 현재 자산규모 1조 3783억원(지난해 말 기준, 해외법인 등 제외)의 국내 1위 교육기업으로 커졌다. 학창시절 ‘눈높이 수학’, ‘눈높이 영어’ 같은 학습지를 한번이라도 풀어보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학생이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학생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이뤘던 게 그룹이 크게 된 전환점이었다. 경남 진주 출신의 강 회장은 건국대 농화학과에 입학해 ROTC(학군사관) 10기로 군복무를 마쳤다. 하지만 25세(1974년)이던 그때 아버지 강대웅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건설회사에 입사했지만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자 사표를 내고 병간호에 매달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평범한 건설회사 샐러리맨으로 살지 않았겠느냐는 게 강 회장의 생각이다. 홀로 남은 어머니가 여관을 운영하는 것이 유일한 수입원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망으로 기력이 약해졌다. 둘째 남동생은 군복무 중이었고 셋째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은 아직 어린 학생이었다. 강 회장은 장남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 회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작은아버지 강대희씨였다. 작은아버지 강씨는 네 자녀에게 일본에서 구몬수학을 공부하게 했고 4명 모두 성적이 눈에 띄게 늘자 강 회장에게 구몬수학을 한국에 들여와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1975년 1월 21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13㎡ 넓이의 작은 전셋방에서 대교의 시초인 ‘종암교실’이 문을 열었다. 첫 제자는 작은아버지 지인의 자녀인 초등학교 2학년 노승우, 4학년 노우정, 6학년 노승범 3남매였다. 나중에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가 된 노승범 교수는 대교그룹이 서울 동작구 보라매동 사옥 리노베이션(개보수) 때 설계를 맡기도 했다. 3남매의 실력이 늘자 입소문이 나서 회원 수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1976년 일본 구몬수학과 연계해 한국공문수학연구회를 창립했다. 강 회장이 고등학생인 막내 강학중(57)씨와 과외교실 홍보 포스터를 하나하나 일일이 직접 물감으로 그리고 어머니가 풀을 쑤어준 것으로 주부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 미용실마다 붙이고 다녔다. 과외교실은 서울 시내 곳곳으로 퍼져 나가 20개 지역 교실이 만들어졌다. 4년 반 만에 회원은 4200명, 교사는 100여명, 관리직원은 7명이 됐다.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사무국을 확장 이전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더 펼칠 준비도 했다. 하지만 제동이 걸렸다.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 상임위원회가 ‘과외금지’를 발표했다. 한창 승승장구하던 강 회장으로서는 내리막길을 걷는 순간이었다. 그만두겠다는 회원이 속출했고 회원은 400명으로까지 줄었다. 자금난도 심각해졌다. 교육열이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로서 어떻게든 공부를 더 시켜야 했기 때문에 불법과외가 성행했다. 이때 강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을 한다. 학생이 오게 하는 방식의 과외가 아니라 선생님이 직접 교재를 학생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학생들을 한곳에 모여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외가 아니었다. 강 회장 발상의 전환은 1983년 말 회원 수가 1만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다. 공문수학이 잘나가자 이번에는 일본의 구몬수학이 ‘공문’ 대신 일본식 발음인 ‘구몬’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로열티 인상을 요구했다. 당시 강 회장은 학습지 업계 최초로 개발 중인 국어 교재에 일본식 이름을 붙여 ‘구몬 국어’라고 부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기존 공문수학 브랜드를 포기하고 1986년 큰 교육을 지향한다는 의미인 대교(大敎)문화로 법인을 전환한다. 이어 1991년 상호를 대교로 변경했고 같은 해 7월 새로운 브랜드명을 ‘눈높이’로 하기로 했다. 당시 임원회의에서 대다수가 눈높이보다는 그룹명을 붙인 대교수학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눈높이는 순수한 우리말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데다 그 의미를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눈높이로 할 것을 밀어붙였다. 눈높이는 대성공을 거뒀다. 1993년 6월 28일 눈높이 교육 100만명 회원 시대를 열었다. 2004년 2월 3일 교육기업으로서 거래소에 상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회장이 항상 승승장구해온 것만은 아니다. 19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리고 난 뒤 엑스포 과학공원 운영권을 따 내 1994년 정식으로 개장했지만 4년 만에 1000억원의 손실을 내고 사업을 접기도 했다. 1996년에는 주간신문을 발행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경기가 불안해졌고 결국 폐간했다. 잇따른 경영 실패로 강 회장은 2000년 초 송자 명지학원 이사장(전 교육부 장관)을 회장으로 영입해 경영 전반을 맡겼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강 회장은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 등을 맡으며 스포츠 외교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강 회장은 2007년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룹의 성장이 더뎠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룹을 성장시키기 위해 지난해 7월 창립 37주년을 맞아 기업 이미지(CI)를 바꿨다. 세계에서 가장 전문화된 전인교육기업, 상생발전을 이끄는 첨단의 그린혁신그룹이라는 ‘비전2020’을 선보이며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아버지의 별세, 과외금지 조치, 일본 구몬수학의 방해 등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왔던 강 회장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문화 In&Out] 기운 것 바로잡으랴 원형 유지하랴 첨성대 복원 딜레마

    [문화 In&Out] 기운 것 바로잡으랴 원형 유지하랴 첨성대 복원 딜레마

    ‘첨성대’(국보 제31호)가 북쪽으로 기울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리며 나타난 자연적 현상이란 해석부터 일부러 건축 때부터 원활한 천문 관측을 위해 살짝 기울여 놨다는 설명도 있다. 100년 전 사진에서도 첨성대의 기울어진 모습이 일부 확인되는 건 이 같은 설을 뒷받침한다. 분명한 사실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첨성대가 기울어 왔고 지금은 누가 봐도 확연히 구분할 만큼 눈에 띈다는 점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첨성대의 구조모니터링은 1981년부터 거의 매년 정기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기울기 측정이 행해진 것은 2009년 10월부터다. 당시 기단 중심과 꼭대기 정자석의 중심을 연결선 삼아 측정한 수치는 북쪽으로 200㎜, 서쪽으로 7㎜ 기울어져 있었다. 5년 만인 지난 1월 조사에선 북쪽으로 204㎜ 기울어 4㎜가 더 벌어졌다. 서쪽은 변동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 18일 경북 경주시 역사유적지구에서 마주한 첨성대는 위태로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문화재청의 그간 설명과는 차이가 났다. ‘문화재가 자리한 지역의 지자체가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는 지역주의 원칙을 감안하더라도 문화재 당국의 방기를 묵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여태껏 첨성대 구조의 안정성을 판단할 명확한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현대 건축물의 경우 안전점검 범위 등이 법으로 명시됐지만 첨성대는 상황이 다르다. 북쪽 지반이 정말 약해서, 점점 더 기울어질 것 같다면 지금은 괜찮더라도 전면 보수를 생각해 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 문화재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동행한 탁경백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첨성대는 현재로선 건축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지반 약화가 원인으로 파악된다”며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지반 안정화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지반 안정화 작업 역시 간단하지 않다. 탁 학예연구관은 “첨성대를 떠받치는 하부구조 파악을 위한 철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는 1300여년 전 첨성대가 세워진 시기의 신라 건축 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마땅한 문헌기록조차 없어 당시의 흙다짐 기법은 물론 일반적 건축물의 구조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다. 콘크리트를 사용해 우격다짐 식으로 지반을 강화할 수 있으나 이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 콘크리트를 사용해 해체와 재조립을 거친 석굴암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곳곳에 틈새를 드러낸 첨성대를 불국사 석가탑처럼 기단부터 해체해 다시 복원하는 과정이 조만간 요구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탁 학예연구관은 “현재 문화재 복원 기술로 첨성대를 해체해 다시 재조립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도 “그럴 경우 첨성대의 원형을 잃었다는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최근 경주시는 첨성대 주변의 지반을 안정화한다며 주변 지하수 분포도를 조사하고 있다. 첨성대 밑의 지하수량이 많아 첨성대가 점차 기울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지하수를 빼내는 작업을 계획 중이라는 것이다. 깊이 40m의 구멍 4개를 뚫어 첨성대 주변에서 지하수 시추 작업을 벌이는 이 작업은 가벼운 지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첨성대를 놓고 다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문화재 당국이 나서 첨성대가 앞으로 하중을 얼마나 견뎌 낼 수 있는지 이른바 ‘지내력’부터 다시 조사하는 게 첨성대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는 지름길이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김택진(47) 엔씨소프트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22세 때(1989년) ‘아래아한글’이라는 인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간지 표지 모델이 될 정도로 일찌감치 유명했던 ‘IT 아이돌’이다. 서른 살인 1997년 엔씨소프트를 설립하고 이듬해 다중접속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내놓으면서 게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리니지 단 하나로만 엔씨소프트는 1998년~올해 2조원(누적)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김 대표는 2011년 IT자수성가 사업가로는 사상 처음으로 2조원대 개인 재산(보유 주식 기준)을 쌓았다. 하지만 2011년 프로야구단 제9구단 NC다이노스 창단, 2012년 넥슨에 자기 주식 대량(14.68%) 매각, 지난해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내는 금융투자에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등 김 대표의 ‘돌발 행동’이 알려지면서 주주들의 우려를 샀다. 김 대표는 1986년 서울대 2학년 때 컴퓨터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IT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동아리 멤버였던 이찬진(49) 드림위즈 대표, 김형집(47) 전 나모인터렉티브 연구소장, 우원식(46) 엔씨소프트 부사장 등과 함께 1989년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며서 주목받았다. 그는 2011년 서울대 강연에서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과보다는 동아리 활동이었다”면서 “대학 때 꿈꿨던 그 꿈을 이루려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고 회고했다. 아래아한글은 한국 최초의 워드프로세서이기도 했지만 그래픽기능을 갖춘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점하고 있었을 때다. 당시 자국 언어로 된 워드프로세서가 MS 워드를 제친 것은 ‘아래아한글’이 유일했다. 1991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역특혜 혜택이 있는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병역 특례요원이었지만 개발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에 올랐고, 1993년 세계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인 아미넷(이후 ‘신비로’로 이름이 바뀜)을 개발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김 대표를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와 현대정보기술이 신비로 사업을 놓고 갈등을 빚자 김 대표는 직원 17명을 데리고 나와 1997년 3월 ‘(미래의) 다음 회사’(Next Company)라는 뜻의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창업 첫해 매출 2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매출 7567억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98년에 내놓은 리니지가 시쳇말로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리니지는 원래 엔씨소프트의 게임이 아니었다. 리니지는 송재경(47·전 엔씨소프트 부사장) XL게임즈 대표에 의해 허진호(53) 대표가 운영하던 아이네트에서 1996년부터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아이네트가 게임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엔씨소프트가 아이네트 게임개발팀을 영입했다. 리니지의 원작은 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다. 왕자·공주·기사·요정·마법사 등의 종족 중 하나를 자신의 캐릭터로 선택해 몬스터와 싸워 간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게임 이용자가 레벨을 키워 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변신반지’, ‘순간 이동 반지’ 등의 무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짙은 중독성 때문에 ‘리니지 폐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게임 속 아이템이 실제로 웃돈을 얹어 현금으로 거래돼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해외에서도 성공했다. 2000년 타이완에서 리니지가 출시됐을 때 동시 접속자가 1만명을 돌파하자 타이완 국가 인터넷이 2~3차례 다운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여전히 엔씨소프트 게임 매출의 54.3%(지난해 기준)를 차지하는 주 수익원이다. 이후에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2003년), 아이온(2008년), 블레이드앤소울(2012년), 길드워(2005년)·길드워2(2012년) 등의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블레이드앤소울은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동시 접속자 150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길드워2는 북미·유럽 지역에서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누적 판매량 300만장을 돌파하고 동시 접속자 40만명을 뛰어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이렇게 잘나가던 엔씨소프트가 최근엔 다소 휘청거리고 있다. 신제품 출시가 뜸해 2011년 영업이익(1357억원)이 전년 대비 45.9%나 급감했다. 하지만 2012년(1513억원), 지난해(2052억원)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문제는 실적이 아닌 엔씨소프트를 세우고 키워온 김택진 대표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2012년 6월 8일 갑작스럽게 자신의 지분 14.68%를 넥슨에 매각했다. 8000여억원어치였다. 특히, 매각 가격이 전날 종가(26만 8000원)보다 싼 주당 25만원의 헐값이라 의혹이 커졌다. 2012년 6월 27만원 정도였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6개월 뒤인 12월 28일에는 15만원까지 떨어졌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 김택진 대표가 게임사업 성장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김 대표가 매각 금액 중 상당 금액(5000억원)을 FX마진 시장에 투자해 6개월 만에 1500억원 이상을 벌었다는 소문이 알려져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급기야 올 8월엔 일부 주주들이 김 대표 ‘안티 커뮤니티’를 열기도 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게임에 대한 신규 이용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게임은 물론 캐주얼게임, 교육콘텐츠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면서 “모바일 디바이스 확대에 따른 스마트폰 게임 사업 증대를 위해 모바일게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오늘의 눈] 사랑의 공화국, 그리고 기레기/조태성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사랑의 공화국, 그리고 기레기/조태성 국제부 기자

    “사장님은 KBS를 사랑하지 않는군요.” 읽는 내내 씁쓸했지만 이 대목에선 그만 박장대소했습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정권 시절에 KBS에서 쫓겨난 과정을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에다 자세히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정 전 사장은 사퇴를 종용하기 위해 뛰어다닌 인사들이 ‘정권의 뜻’을 들먹이며 늘 하는 소리가 바로 이 사랑 타령이라 했습니다. ‘미션’을 받아오는 사람마다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얘기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하는지 신기하다고도 했습니다. 사람 가리지 않는 사랑, 국경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요즘 국제뉴스를 장식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이런 사랑이 나옵니다. 너무 심한 왜곡보도로 유럽연합(EU) 제재대상에 이름을 올린 드미트리 키셀레프입니다. 원래는 ‘꼴통’ 방송 진행자 정도였는데 그런 그를 ‘로시야 세고드냐’라는 국영방송사 사장으로 발탁했답니다. 조국의 이 크나큰 사랑, 보답해야지요. 취임 직후 보도국에 내린 지침이 이랬습니다. “러시아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하다.” 이 사랑, 궁금하지 않은가요. 얼마나 대단한 사랑이길래 유력 정치인이나 재계 거물도 아닌데 EU 제재 대상에 자기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요. 가디언 보도 가운데 한 대목만 소개하겠습니다.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말레이시아민항기가 격추되자 미국이 러시아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했습니다. ‘사랑의 방송국’이 내놓은 논평은 이랬답니다. 2012년 멕시코 주요 20개국(G20)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늦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좀 기다리게 했나 봅니다. 푸틴은 정상회담 상습 지각생으로 유명하지요. 러시아를 격추범으로 지목한 건, 이 지각에 대한 오바마의 복수라는 겁니다. 복잡하고 오랜 지정학적 투쟁, 2차대전 당시 나치 부역과 빨치산 투쟁의 아이러니, 애꿎게 하늘에 흩뿌려진 298명의 생목숨 같은 건 모두 사라지고 남은 건 막장드라마 같은 얘기뿐입니다. 이 정도 위대한 사랑이라면 제재 대상에 오른 건 오히려 훈장일 겁니다. 이런 사랑, 우리도 낯설지 않습니다. ‘기레기’(기자 + 쓰레기)란 말이 증거입니다. “지금 많은 지식인들이 미디어를 깔보며 미디어가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하지만 루쉰 시대의 미디어도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디어를 이용해서 진정한 공공공간을 창출해냈습니다. 이 경험은 우리가 종합해볼만 합니다. 미디어는 항상 정치 경제 문화의 강한 힘에 의해 움직이고 그래서 공공성도 형체 없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디어를 거부하고 미디어를 쫓아낸다고 우리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루쉰 연구로 유명한 중국학자 왕후이가 ‘절망에 반항하라’(글항아리 펴냄)에다 써놓은 대목입니다. 제도권 언론을 기레기라 욕하는 것을 넘어서자는 제안입니다. 그들의 사랑을 우리의 더 큰 사랑으로 이기자는 얘깁니다. 더 큰 사랑은 뭘까요. 잘은 몰라도, 그 사랑을 고민하는게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기도 할 겁니다. cho1904@seoul.co.kr
  • [하프타임]

    안선주, JLPGA 투어 시즌 5승 안선주(27)가 19일 일본 세븐헌드레드 골프장(파72·6635야드)에서 열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후지쓰 레이디스 3라운드 최종합계 11언더파 205타로 연장전에 들어간 뒤 천금같은 버디를 잡아 기구치 에리카, 요코미네 사쿠라(이상 일본)를 따돌리고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5승째이자 통산 18승째. KIA, 선동열 감독과 2년 재계약 프로야구 KIA는 19일 선동열 감독과 2년간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 8000만원 등 총액 10억 6000만원에 재계약했다고 밝혔다. 선 감독은 “재신임해 준 구단에 감사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기초가 튼튼한 팀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택시회사 운영 부친 영향 가족 경영참여 많아

    국내 자수성가 기업가 중 사상 처음으로 2조원대 개인 재산(2011년 10월 보유 주식 기준)을 쌓은 김택진(47) 엔씨소프트 대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다. 아버지의 생활신조 ‘떳떳한 사람이 되자’는 아들의 좌우명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날 때쯤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빚 독촉을 당했다는 일화 정도만 전해질 뿐 그가 자란 배경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서울신문 취재 결과 그의 아버지는 서울 강동구 길동에 위치한 택시회사 대도통상㈜ 전 대표 김이민(75)씨로 확인됐다. 1969년 설립된 대도통상은 택시 80대, 직원 200명 규모의 중급 택시회사로 안정적으로 운영됐지만 2009년 자식들의 권유로 문을 닫았다. 강동구 택시브랜드인 ‘KD택시’의 주요 참가 회사이기도 하다. 김택진 대표가 초·중·고교를 다니며 성장할 때 그의 집안은 상당히 부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김 대표가 대학 때 아버지에게 커피자판기를 받은 일화도 유명하다. 김 대표는 이 자판기를 운영해 용돈을 벌었다고 한다. 일종의 경영수업이었던 셈이다. 그의 어머니 장순례(72)씨 역시 사업가였다. 대도통상의 계열사로 1982년 설립된 대도가전㈜ 대표다. LG전자 제품 전문매장으로 운영하다 역시 2009년 문을 닫았다. 엔씨소프트는 다른 IT기업과 달리 김 대표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부인 윤송이(39)씨는 엔씨소프트 미국법인장(부사장)으로 미국·유럽 사업을 총괄하고, 그의 친동생 김택헌(46) 전무는 국내 및 아시아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런 가족경영은 아버지 김이민 전 대표의 경영 스타일이다. 김택진 대표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다. 전 부인 정모씨와의 슬하에 첫째(20)와 둘째(17)를, 윤송이씨와의 슬하에 셋째(7), 넷째(4)를 두고 있다. 정씨와는 2004년 이혼했다. 당시 주식 300억원어치를 증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송이 부사장은 ‘천재소녀’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양명초, 영일여중, 서울과학고, 카이스트를 모두 수석 졸업했다. 24세에 미국 MIT에서 한국인 최연소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9세에 SK텔레콤 최연소 임원에 오르기도 했다. 2004년 엔씨소프트 사외이사로 선임되면서 김 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몰래 사랑을 키우다 2007년 11월 극비리에 결혼했다. 현재 두 아들과 함께 미국에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 윤호식(66)씨는 경기상고 출신으로 한국증권금융에서 상무를 지냈다. 어머니 이지수(64)씨는 서예가다. 윤 부사장의 여동생 윤하얀(36)씨는 과학자다. 하버드대 뉴로사이언스(신경과학)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 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 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김택진(47) 엔씨소프트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22세 때(1989년) ‘아래아한글’이라는 인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간지 표지 모델이 될 정도로 일찌감치 유명했던 ‘IT 아이돌’이다. 서른 살인 1997년 엔씨소프트를 설립하고 이듬해 다중접속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내놓으면서 게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리니지 단 하나로만 엔씨소프트는 1998년~올해 2조원(누적)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김 대표는 2011년 IT자수성가 사업가로는 사상 처음으로 2조원대 개인 재산(보유 주식 기준)을 쌓았다. 하지만 2011년 프로야구단 제9구단 NC다이노스 창단, 2012년 넥슨에 자기 주식 대량(14.68%) 매각, 지난해 환율 차를 이용해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내는 FX마진 투자에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등 ‘돌발 행동’으로 주주들의 우려를 샀다. 김 대표는 1986년 서울대 2학년 때 컴퓨터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IT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동아리 멤버였던 이찬진(49) 드림위즈 대표, 김형집(47) 전 나모인터렉티브 연구소장, 우원식(46) 엔씨소프트 부사장 등과 함께 1989년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며서 주목받았다. 그는 2011년 서울대 강연에서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과보다는 동아리 활동이었다”면서 “대학 때 꿈꿨던 그 꿈을 이루려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고 회고했다. 아래아한글은 한국 최초의 워드프로세서이기도 했지만 그래픽기능을 갖춘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점하고 있었을 때다. 당시 자국 언어로 된 워드프로세서가 MS 워드를 제친 것은 ‘아래아한글’이 유일했다. 1991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역특혜 혜택이 있는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병역 특례요원이었지만 개발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에 올랐고, 1993년 세계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인 아미넷(이후 ‘신비로’로 이름이 바뀜)을 개발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김 대표를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와 현대정보기술이 신비로 사업을 놓고 갈등을 빚자 김 대표는 직원 17명을 데리고 나와 1997년 3월 ‘(미래의) 다음 회사’(Next Company)라는 뜻의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창업 첫해 매출 2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매출 7567억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98년에 내놓은 리니지가 시쳇말로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리니지는 원래 엔씨소프트의 게임이 아니었다. 리니지는 송재경(47·전 엔씨소프트 부사장) XL게임즈 대표에 의해 허진호(53) 대표가 운영하던 아이네트에서 1996년부터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아이네트가 게임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엔씨소프트가 아이네트 게임개발팀을 영입했다. 리니지의 원작은 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다. 왕자·공주·기사·요정·마법사 등의 종족 중 하나를 자신의 캐릭터로 선택해 몬스터와 싸워 간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게임 이용자가 레벨을 키워 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변신반지’, ‘순간 이동 반지’ 등의 무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짙은 중독성 때문에 ‘리니지 폐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게임 속 아이템이 실제로 웃돈을 얹어 현금으로 거래돼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해외에서도 성공했다. 2000년 타이완에서 리니지가 출시됐을 때 동시 접속자가 1만명을 돌파하자 타이완 국가 인터넷이 2~3차례 다운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여전히 엔씨소프트 게임 매출의 54.3%(지난해 기준)를 차지하는 주 수익원이다. 이후에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2003년), 아이온(2008년), 블레이드앤소울(2012년), 길드워(2005년)·길드워2(2012년) 등의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블레이드앤소울은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동시 접속자 150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길드워2는 북미·유럽 지역에서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누적 판매량 300만장을 돌파하고 동시 접속자 40만명을 뛰어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이렇게 잘나가던 엔씨소프트가 최근엔 다소 휘청거리고 있다. 신제품 출시가 뜸해 2011년 영업이익(1357억원)이 전년 대비 45.9%나 급감했다. 하지만 2012년(1513억원), 지난해(2052억원)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문제는 실적이 아닌 엔씨소프트를 세우고 키워온 김택진 대표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2012년 6월 8일 갑작스럽게 자신의 지분 14.68%를 넥슨에 매각했다. 8000여억원어치였다. 특히, 매각 가격이 전날 종가(26만 8000원)보다 싼 주당 25만원의 헐값이라 의혹이 커졌다. 2012년 6월 27만원 정도였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6개월 뒤인 12월 28일에는 15만원까지 떨어졌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 김택진 대표가 게임사업 성장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김 대표가 매각 금액 중 상당 금액(5000억원)을 FX마진 시장에 투자해 6개월 만에 1500억원 이상을 벌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급기야 올 8월엔 일부 주주들이 김 대표 ‘안티 커뮤니티’를 열기도 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게임에 대한 신규 이용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게임은 물론 캐주얼게임, 교육콘텐츠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면서 “모바일 디바이스 확대에 따른 스마트폰 게임 사업 증대를 위해 모바일게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이희상·배재현·우원식 3인방, 리니지·아이온 신화 주역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이희상·배재현·우원식 3인방, 리니지·아이온 신화 주역

    엔씨소프트에는 4명의 부사장이 있다. 이들 중 김택진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부사장을 빼곤 모두 리니지 1~2, 아이온 등 인기 온라인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들이다. 엔씨소프트 설립 초기 멤버로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개발자인 이희상(43)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프로그래머다. 김 대표의 서울대 전자공학과 후배로 그와 함께 1989년 아래아한글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수년 전 이 부사장이 김 대표와 함께 미국의 한 게임업체를 방문했을 때 미팅 기간 이 부사장은 노트북 자판만 두드렸다. 김 대표는 ‘중요한 미팅인데 왜 저러나’ 하는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이 부사장은 미국 업체에서 요구한 프로그램을 내밀었다. 개발팀이 달라붙어 보름쯤 걸릴 일을 회의 중 만들어 내는 것을 본 미국 업체는 이 부사장에게 홀딱 반했다. 이 부사장은 회사 내 게임총괄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이 부사장에 대해 평소 “아이디어 구현에 필요한 현실적인 문제를 푸는 데 귀재”라고 평가한다. 경남대 전산통계학과 89학번인 배재현(왼쪽·43) 부사장은 1997~1998년 ‘리니지’ 개발에 참여한 후 ‘리니지2’ 총괄 프로듀서를 거쳐 2011년부터 최고프로듀싱책임자(CPO)를 맡고 있다. 2012년까지 ‘블레이드앤소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고 현재 사내 모든 개발 프로젝트를 관장하고 있다. 지난 1월 승진한 우원식(오른쪽·46·서울대 제어계측과 87학번) 부사장은 1990년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함께 한글과컴퓨터를 창업한 멤버다. 2002년 엔씨소프트에 합류하자마자 우 부사장은 ‘아이온’ 총괄개발팀장을 맡았다. 2007년 상무로 발령받은 이후 2010년 전무로 승진했으며 이후 4년 만에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게 됐다. 그가 개발한 아이온은 2008년 11월 출시 이후 160주, 약 3년간 PC방 순위 연속 1위에 오르는 국내 게임사에 대기록을 세웠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테헤란 시대’ 함께한 IT기업가 주축…게임·야구계 폭넓은 교류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테헤란 시대’ 함께한 IT기업가 주축…게임·야구계 폭넓은 교류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인 김택진(47) 엔씨소프트 대표의 인맥 핵심은 서울대 공대 출신 정보기술(IT) 기업가다.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인 이해진(47) 네이버 이사회의장과 김정주 NXC넥슨 대표, 산업공학과 86학번 김범수(48)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 걸출한 기업가들이 비슷한 시기 대학을 다녔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격변기였던 이른바 한국 IT 업계 ‘테헤란 시대’를 함께 보내면서 친분을 쌓아왔다.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안철수연구소 창업자인 안철수(52)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나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이재웅(47) 다음 창업자 역시 김택진 대표 등과 이 시기를 함께 보냈다. 김 대표와 이 창업자의 친분 때문에 2000년대 말엔 엔씨소프트의 다음 인수설이 확산되기도 했다. 2000년 일찌감치 창업해 테헤란 시대를 함께 보낸 송병준(38) 게임빌 대표도 김 대표와 친분이 두텁다. 송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94학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엔 IT 기업들이 벤처 혹은 벤처를 막 벗어난 수준이어서 최고경영자(CEO)들간의 만남이 잦았다”고 말했다. 또 허진호(53·전 아이네트 대표) 크레이지피쉬 대표와 장영승(51) 전 렛츠뮤직 대표는 김 대표의 ‘멘토’다. 허 대표는 서울대 전산학과 79학번, 장 전 대표는 컴퓨터공학과 82학번이다. 장 전 대표는 김택진 대표가 과거 언론 인터뷰 때마다 가장 존경하는 CEO로 꼽았던 인물이지만 2005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이후 업계에서 물러났다. ‘IT 업계 대모’ 장인경(62) 전 마리텔레콤 대표도 김 대표에게 각별하다. 마리텔레콤은 ‘단군의 땅’, ‘쥬라기 원시전’ 등 최초의 온라인게임을 만들었던 회사다. 김 대표는 1990년대 중반 장 전 대표를 통해 게임업계 인맥을 형성했고 이는 그가 게임사업에 뛰어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송재경(47) XL게임즈 대표가 그때 만난 사람이다. 송 대표는 김 대표의 서울대 1년 후배(컴퓨터공학과 86학번)다. 두 사람의 만남으로 ‘리니지’라는 한국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 탄생했다. 송 대표는 2000년부터 엔씨소프트 부사장을 지냈지만 김 대표와 사업방향 등을 놓고 갈등을 빚다 2003년 독립했다. 엔씨소프트 개발자 출신 게임기업 CEO로는 신재찬(37) 이노스파크 대표와 이성민(35) 신타지아 대표 등이 있다. 각각 ‘룰더스카이’와 ‘베이스볼히어로즈’ 같은 모바일게임으로 유명해진 회사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김 대표가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지도교수였다. 1989년 함께 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을 개발했던 ‘컴퓨터연구회’ 동아리회원들도 김 대표의 중요 인맥이다. 이찬진(49·전 한글과컴퓨터 대표) 드림위즈 대표, 김형집(47) 전 엔씨소프트 부사장, 우원식(46) 현 엔씨소프트 부사장 등이 있다. 이들은 여전히 종종 만나면서 3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NC다이노스 구단주인 김 대표의 야구계 인맥도 화려하다. 허구연(63) KBO야구발전실행위원장이 2010년 4월 엔씨소프트 임직원 대상으로 강연을 한 직후 김 대표를 만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던 게 NC다이노스 야구단 창단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구단의 연고지 결정 등에서 허 위원장이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스포츠 실장 출신인 이태일(48) 구단주나 김경문(56) NC다이노스 감독 역시 김 대표가 영입에 힘을 쏟았던 인물들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글로벌 100년기업 2곳 오너… 농민 아들 ‘샐러리맨 신화’ 쓰다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글로벌 100년기업 2곳 오너… 농민 아들 ‘샐러리맨 신화’ 쓰다

    ‘High Risk, High Return(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또는 모험)이 클수록 대가가 크다’는 뜻으로 윤윤수(70) 휠라글로벌 및 아쿠쉬네트 회장의 인생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 어떻게 100년 넘은 글로벌 기업을 두 개나 거느리는 오너(사주)가 됐을까. 질문이 거듭될 때마다 윤 회장도 이 말을 즐겨 사용한다. ‘샐러리맨의 신화’ ‘몸통을 삼킨 꼬리의 주역’ ‘M&A(인수·합병)의 귀재’ ‘국제 스포츠 패션 업계의 아이콘’….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수식어만 봐도 그의 발자취가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성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겸손해한다. 나이 마흔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휠라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가 30년간 쌓은 항공 마일리지가 800만 마일이다. 지난 8월 고희(古稀)를 맞은 윤 회장은 여전히 1년에 5개월은 해외에 머문다. 최근 고혈압, 심장, 갑상선 등으로 수술을 잇따라 받아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게 약”이라고 한다.  ‘해방둥이’ 윤 회장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1945년 9월 9일 경기 화성군 비봉면에서 아버지 윤태흠씨와 어머니 박수하씨 사이에서 2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비봉나들목으로 익숙한 이곳은 해방 직후 어디나 그랬듯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전염병이 한번 돌면 곡소리가 온 동네를 덮었다. 그의 어머니도 윤 회장을 낳은 지 100일 만에 ‘염병’(장티푸스)에 희생됐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젖동냥을 해 그를 키웠다. 윤 회장은 “‘젖어머니’가 한 10명쯤 되는데 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한때 고향에 가면 ‘내가 널 키웠다’고 하시는 분들을 종종 뵈었다”고 회고한다.  한창 예민하던 17살 때(서울고 2학년) 아버지마저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막내아들 장가 갈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던 아버지를 보며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에 두 번 도전해 모두 실패했다. 2지망으로 서울대 치의예과를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곧 그만둔다. 1966년 한국외국어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수석 입학했으나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건 여전했다. 설상가상, 3학년 때 동기의 요청으로 답안지를 보여주다 적발돼 1년 정학까지 당한다. 홧김에 카투사 의무병으로 지원 입대한 게 전화위복이 됐다. 3년간 군생활에서 익힌 영어는 그가 국제적인 사업가로 대성하는 큰 자산이 됐다.  첫 직장은 1973년에 들어간 해운공사. 수출·무역업을 하고 싶어 1975년 미국 무역업체 JC페니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그는 삼성전자 전자레인지의 첫 미국 수출을 성사시켜 능력을 인정받았고, 1981년 37세에 신발업체인 화승의 수출담당 이사로 스카우트됐다. 사회생활 8년 만이자 30대에 이사가 되면서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다시 실패를 안겨준 것은 영화 ‘ET’다. 1982년 귀국길 비행기에 비치된 잡지에서 ET를 보고 인형을 만들어 팔면 대박 날 것 같다는 예감에 혼자 설렜다. 부랴부랴 6개 컨테이너 분량 18만 달러어치의 ET 인형을 제작해 미국에 보냈지만 저작권 문제에 발목이 잡혀 눈물을 머금고 오클랜드 항구에서 전량을 불태워야 했다. 회사에 40만 달러의 손해를 입힌 자책감에 회장의 만류에도 화승을 3년 만에 뛰쳐나왔다.  그는 이 일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작권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한 값비싼 공부로 여긴다. “과거의 실패가 큰 득이 됐다. 인생을 살아가고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 실패”라고 말한다. 직장 생활 10년 만에 야인으로 돌아온 그는 마음을 다잡고 사업 구상에 몰두했다. 미국 출장길에 자주 봤던 휠라에 마음이 꽂혔다. 의류로 인기 높던 휠라 브랜드를 이용해 신발을 출시하면 되겠다 싶었다. 1984년 휠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ET 덕에 저작권에 대해 자각한 윤 회장은 샘플을 만들어 이탈리아 본사를 찾아갔으나 이미 신발 라이선스를 한 미국인 사업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여기서 포기할 그가 아니다. 그를 직접 만나 끈질기게 설득해 협업 형태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신발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의 경영능력에 감탄한 휠라 본사가 윤 회장에게 제안해 1991년 합작 형태로 휠라코리아가 세워진다. 1992년 내수 판매 첫해 68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7361억원으로, 20년 만에 100배 이상 성장했다. 90년대 중반 휠라코리아의 매출 규모는 유럽,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그룹 전체 매출의 10%를 담당할 정도였다. 이 같은 성과로 1997년 연봉 18억원을 받아 대한민국 최고 월급쟁이에 등극했다. ‘도전과 응전의 일생’으로 자신의 삶을 정의한 윤 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5년 휠라코리아를 인수해 토종기업으로 변신시키더니 2007년 경영난을 겪던 휠라 본사까지 사들여 ‘은수저’ 없어도 ‘오너’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정리할 나이인 칠순을 코앞에 두고 또 한번 큰일을 냈다. 2011년 7월 미래에셋PEF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세계 1위 골프용품 회사 아쿠쉬네트를 인수했다.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스카티 카메론 퍼터, 보키 웨지 등 쟁쟁한 브랜드를 보유한 매출 13억 달러 회사를 아시아의 작은 나라 기업인이 사들였다는 건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이 휠라의 아쿠쉬네트 인수를 사례연구로 다룰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 던진 충격파는 대단했다.  증권가에서 휠라코리아에 대한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다. 휠라 USA의 양호한 실적과 더불어 아쿠쉬네트 상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중국 골프시장의 성장세가 호재로 작용하는 가운데 시장은 윤 회장의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능력에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윤 회장은 휠라에 없던 신발을 만든 것처럼 용품으로만 각인된 타이틀리스트에 골프의류를 추가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2년 뒤 목표대로 아쿠쉬네트가 상장하면 시가 총액은 19억 달러(약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주가도 상승세다. 내수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휠라코리아의 주가는 지난 8월 10만원 선을 돌파했다. 16일 주가는 11만 1500원으로, 시가 총액이 1조 1650억원에 달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그의 개인자산(주식+부동산)은 4780억원(7월 말 기준)으로 추산된다.  겸손을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그는 회사에서 격의 없는 회장님이기도 하다. 약속이 없으면 서울 서초구 사옥 지하 2층에 있는 직원 식당에서 사원들과 함께 점심을 해결한다. 해외 출장이 잦은 그가 자주 찾는 간식거리는 라면과 초코파이다. 골프를 좋아하지만 지난 추석 연휴 때 골프를 몰아서 친 탓에 어깨 근육이 손상돼 당분간 골프 금지령을 받았다. 요즘은 아파트 지하 피트니스에서 퍼스널 트레이너와 함께 주 2회 운동하는 걸로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이기호·정성식·엡스타인·이스터부룩, 신화창조 공신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이기호·정성식·엡스타인·이스터부룩, 신화창조 공신

    윤윤수 회장은 오늘날의 휠라를 만든 이른바 ‘휠라 드림팀’을 거느리고 있다. 휠라코리아의 이기호(62) 공동대표와 정성식(57) 수석부사장, 휠라 USA의 존 엡스타인 사장과 제니퍼 이스터부룩 부사장 등 4인방이다. 지난 8월 24일 서울 반포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고희연에서 윤 회장은 네 사람을 그와 함께 휠라의 역사와 신화를 창조한 공신으로 소개해 350여명의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국내사업을 총괄하는 이 대표는 수출·무역통인 윤 회장이 ‘안방’을 맡기고자 공들여 영입한 인물이다. 세종대 일어일문학과를 나온 이 대표는 휠라코리아 창립 멤버다. 1978년 국제상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85년 나이키코리아를 거쳤다. 영업부문 총괄을 맡은 정 수석부사장의 휠라 입사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정 부사장의 누나인 정경희씨가 윤 회장이 JC페니에 근무하던 시절 비서였던 것. 동아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다른 회사에 있던 그는 이런 인연으로 1992년 휠라코리아에 들어왔다. 정 부사장의 자형은 박상진(62) 삼성SDI 사장이다. 이 대표와 정 부사장은 휠라코리아의 등기임원으로 각각 1.90%, 1.02%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휠라 USA의 엡스타인 사장과 윤 회장은 2007년 의기투합해 휠라 본사 인수에 성공하면서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됐다. 신발업계에서 엡스타인 사장은 세일즈 전문가로 통한다. 이스터브룩 부사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휠라 USA에서 인수·합병(M&A) 등 사업 관련 내부 법률 검토를 담당한다. 윤 회장은 “우리 셋이 뭉치면 못할 게 없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한다. 2011년 타이틀리스트 인수를 총지휘한 유정헌 미래에셋맵스 자사운용 PEF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휠라 본사 인수 때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던 유 대표는 윤 회장이 아끼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유 대표는 휠라코리아에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부인 이효숙씨 휠라 관계회사 케어라인 대표 재직

    윤윤수 휠라글로벌 및 아쿠쉬네트 회장은 애처가이자 공처가다. ‘암울했던 20대’에 빛을 준 부인 이효숙(66)씨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윤 회장의 큰누나와 이씨의 어머니가 계모임에서 만나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놨다. 윤 회장은 이씨를 보자마자 한마디로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조실부모해 성격적인 면에서 ‘구멍’이 많았던 자신을 푸근하게 품어줄 운명적인 존재”임을 알아봤다. 이씨는 대한제분 상무를 지낸 아버지 이주영씨와 어머니 김옥형씨 사이에서 4남 2녀의 장녀로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 결혼해 축의금으로 셋방을 얻어야 했고 윤 회장을 키워준 고모까지 모시고 살아야 했는데 이씨와 그의 부모님은 싫은 소리 한번 안 했다고 한다. 지금도 윤 회장은 “처가에서 그때 나를 뭘 믿고 결혼을 허락했는지 궁금하다”는 농담을 종종 한다. 윤 회장과 달리 유복하고 다복한 집안에서 자란 이씨는 윤 회장에게 안정을 찾아줘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게 한 ‘내조의 여왕’이었다. 윤 회장의 사업 초반 운전기사는 물론 타이피스트, 자금 조달 업무까지 척척 해낸 여장부다. JC페니 근무 시절 뇌물 유혹에 빠질 뻔한 윤 회장의 중심을 잡아준 이도 부인이다. “그런 돈으로 사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는 부인의 말에 윤 회장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씨는 윤 회장의 뒤를 이어 현재 휠라코리아의 관계 회사인 케어라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1984년 윤 회장이 처음 세운 회사(당시 라인실업)로, 무역업을 하며 쌓은 인맥을 활용해 장난감, 신발, 전선 등 돈이 된다 싶으면 무조건 다 갖다 팔던 종합상사였다. 남이 만든 물건만 팔아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제조업으로 전환했다. 마침 수원중학교 동창으로 당시 상업은행 지점장을 하던 친구가 충북 보은군 속리산 중턱에 폐업한 연탄 공장을 주선해 줘 1억원에 그곳을 인수해 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전동 스쿠터, 파워 휠체어를 제조·판매하며 60여명의 직원을 두고 연매출 200억원 가까이 올리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윤 회장은 휠라코리아 못지않게 케어라인의 발전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남다르다. 케어라인은 휠라코리아 지분 3.83%를 보유하고 있다. 윤 회장은 처남들과도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큰 처남 이정무씨는 휠라코리아에 의류를 공급하는 중소기업 범현을 운영하고 있으며, 넷째 처남 이선무씨는 휠라스포츠 홍콩 법인장을 맡고 있다. 손아래 동서인 김상무씨는 케어라인 공동 대표로 활동 중이다. 윤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아들 근창(40)씨는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잠깐 삼성전자에 근무했다. 미국에서 MBA를 마친 후 2007년 휠라에 몸담아 현재 휠라 USA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나온 노은정(39)씨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고 있다. 딸 수연(38)씨는 성신여대 피아노학과와 맨해튼 음대 대학원을 나와 이성훈(44)씨와 2005년 결혼했다. 휠라코리아 부사장(CFO)에 올라 있는 이성훈씨의 아버지는 이석구 전 산도스 제약 대표다. 이 부사장은 연세대 경제학과와 미국 로체스터대 MBA를 졸업하고 삼성증권 IB사업본부 M&A팀, 엔씨소프트 재무전략담당을 거쳐 2007년 휠라코리아에 들어왔다. 이 부사장은 휠라코리아 등기임원으로 0.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남이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서울고 동문 김석원·임내규 등과 각별…구본무 회장과도 친분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⑤ 휠라] 서울고 동문 김석원·임내규 등과 각별…구본무 회장과도 친분

    윤윤수 휠라글로벌 및 아쿠쉬네트 회장은 ‘글로벌 마당발’이다. 남을 배려하고 겸손하며 소탈한 성격이어서 오랜 우정을 간직한 사람이 많다. 사실 비즈니스맨에게 인맥은 가장 중요한 밑천이다. 그 또한 “사업을 한답시고 뛰어다니며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뜻밖의 도움을 받아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사업 관계로 만났더라도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지켜오고 있다. 요즘 새삼 부각된 ‘의리’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그가 ‘의리의 사나이’임이 증명된 일화가 있다. 지난 8월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자신의 고희연에 프로야구팀 두산베어스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두산베어스를 20년간 한결같이 후원해 온 휠라의 의리는 야구계는 물론 비즈니스 세계에서 줄곧 회자됐다. 감사의 표시로 두산베어스는 등번호 ‘70’이 새겨진 팀 유니폼에 야구팀 전원의 사인을 담아 윤 회장에게 선물해 칠순 잔치의 현장을 더욱 훈훈하게 만들었다. 윤 회장의 가장 큰 인맥은 서울고다. 윤 회장은 서울고 16회다. 1974년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기 전 경기고, 경복고와 더불어 ‘3대 명문고’로 통한 만큼 각계에 퍼져 있는 동문이 쟁쟁하다. 비교적 조용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윤 회장의 학교와 동기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동문 또는 16회 동기 행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물론 각종 물품 협찬 및 후원금 투척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졸업 5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와 모임이 많은데 해외 출장만 아니면 늘 참석해 친분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동기들 가운데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정영우 전 태영인더스트리 사장, 산업자원부 차관(2003년)을 지낸 임내규 차세대컴퓨팅협회 회장 등과 각별한 사이다. 지난해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씨와는 꽤 깊은 우정을 나눴다. 2010년 최씨의 권유로 가톨릭 세례도 받았다. 최씨가 그의 대부(代父)였다. 다른 서울고 동기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부부 동반 모임도 가질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재계와 문학계에서 활동해 이질적으로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2001년 대담집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가 나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명사 26명이 2명씩 짝을 지어 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정승처럼 벌어야 정승처럼 쓴다’는 주제로 경영관과 인생관을 풀어냈다. 윤 회장은 한때 최씨의 ‘상도’(商道)를 즐겨 읽으며 ‘비즈니스는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추구해야 한다’라는 대목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서울고 후배로 이민주(67·20회) 에이트넘파트너스 회장, 김석(61·24회) 삼성증권 사장 등과도 가깝게 지낸다. 외국어대 동문 중에선 KBS 뉴스 앵커를 지낸 최동호(75) 대양학원 이사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지낸 권순한(72) 한국외대총동문회장을 자주 만난다. 그는 “늘 외대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LG그룹의 구본무(70) 회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윤 회장은 구 회장에 대해 “같은 연배인 데다 공통의 친구들이 많아 가까워졌다”며 “평소에도 늘 각별하게 챙겨 주시는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부산 신발업체인 태광실업을 운영하던 동갑내기 박연차(70) 회장을 ‘평생의 은인’으로 꼽는다. 박 회장은 1990년대 휠라코리아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사업자금이 모자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5000만원을 건네준 일화로 유명하다. 그런 인연으로 2009년 박 회장이 세금 포탈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고달픈 일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변치 않는 우정을 가꿔 오고 있다. 정치계에서 그는 선거철만 되면 몸값이 치솟는 기업인이다. 올해 지방선거 때도 그의 고향인 경기 화성 출마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여당, 야당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친분을 쌓고 있으며 후원금도 곧잘 낸다. 윤 회장은 정세균(65)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정 의원이 ㈜쌍용 뉴욕지사에 근무할 때 인연을 맺어 20년 넘게 교분을 나누고 있다. 2010년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정 의원이 대선캠프 역할을 하던 국민시대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쪽에서는 윤상현(53) 의원을 들 수 있다.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사람의 교집합은 ‘칠원윤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윤씨 중의 하나로 작곡가 윤이상씨가 같은 집안 출신이다. 윤 의원이 윤 회장에게 수시로 전화하며 안부를 전한다고 한다. 초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윤병철(78)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윤원기 대동통운 사장도 같은 문중이라 형제처럼 지낸다. 국제 스포츠계의 ‘큰손’인 만큼 윤 회장의 인맥은 국경을 초월한다. 세계양궁연맹의 톰 딜런 사무총장, 최근 휠라가 후원 협약을 맺은 네덜란드 빙상연맹의 폴 샌더스 사무총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이병헌 커피 광고, 모델 정우성으로 교체…퇴출 운동 때문?

    이병헌 커피 광고, 모델 정우성으로 교체…퇴출 운동 때문?

    ’50억원 협박’ 사건을 겪으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배우 이병헌이 출연하던 커피광고 모델에서 하차했다. 16일 롯데네슬레코리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커피브랜드 네스카페의 새 모델로 배우 정우성을 기용했다. 이병헌은 걸그룹 멤버 다희와 모델 이지연 등이 연루된 협박 사건으로 법정 출석을 앞두고 있다. 이번 이병헌 하차가 그동안 일부 네티즌들이 전개해 온 ‘이병헌 광고 퇴출’ 운동과 관련이 있는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롯데네슬레코리아 관계자는 “이병헌 씨의 광고가 생각보다 빨리 중단 된 것은 사실이지만, 모델 교체는 일찍이 계획에 있었다”고 했다. 이병헌의 소속사인 BH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네스카페의 계약 종료 시점이었고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로배구] “레오 대항마는 나”

    지키려는 레오(삼성화재)와 빼앗으려는 여섯 ‘용병’의 혈투가 시작된다. 레오는 2년 연속 프로배구 V리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난 시즌 팀 공격의 59.9%를 책임지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15일 열린 2014~15시즌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7명의 감독 가운데 김호철(현대캐피탈) 감독을 비롯한 네 명의 감독이 가장 위협적인 외국인 선수로 레오를 꼽았다. 과연 이번 시즌에도 그의 독주가 이어질까. 총 7개팀 가운데 3개팀이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 디펜딩 챔피언 삼성은 레오, 준우승팀 현대는 아가메즈, 대한항공은 산체스, LIG손해보험은 에드가와 재계약했다. 반면 OK저축은행은 쿠바 출신 시몬을 새로 영입했고 우리카드 역시 쿠바에서 온 까메호와 새 계약을 맺었다. 레오와 산체스를 포함하면 쿠바 선수만 4명이다. 한국전력은 그리스에서 쥬리치를 데려왔다. 206㎝·115㎏의 뛰어난 신체조건을 지닌 시몬이 레오의 새 ‘대항마’로 기대를 모은다. 2008~10년 3년 동안 쿠바대표팀의 센터로 뛰었다. 2010년 세계남자배구선수권에서는 베스트 블로커로 뽑혔다. OK저축은행에서 센터가 아닌 라이트를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 포지션에 적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