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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 시장 3일부터 6일간 상하이 등 中 3개 도시 방문

    박원순 시장 3일부터 6일간 상하이 등 中 3개 도시 방문

    박원순 서울시장이 3일부터 8일까지 중국 상하이, 쓰촨성, 산둥성 등 3개 도시를 방문한다. 상하이와 산둥성은 중국 경제의 거점도시고, 쓰촨성은 중국 서부 대개발의 핵심 지역이다. 시 관계자는 “수도인 베이징과는 긴밀한 교류가 있었지만 다른 거점 도시와는 교류가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이번 방문이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문 기간 박 시장은 중국 도시와의 경제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박 시장은 ‘서울형 창조경제’의 근간인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상하이에서 중국은행 등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환경설명회를 연다. 박 시장은 녹지그룹, 선홍카이차이나 등의 영향력 있는 재계 인사와 개별 면담도 진행한다. 쓰촨성에선 중국 여행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관광설명회를 진행한다. 설명회에서 박 시장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맡을 예정이다. 박 시장은 또 3개 도시의 시장, 성장 등과 면담하고 교류 확대 협약을 체결한다. 아울러 3일부터 6일까지 청두시에서 열리는 제3차 세계전자정부협의체(WeGO) 총회에 의장도시 자격으로 참석한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울광장] 개헌보다 개언이 먼저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개헌보다 개언이 먼저다/진경호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전한 그제 주요 조간신문 1면 제목입니다. “박 대통령 ‘남북’ ‘세월호’는 한마디도 안했다”(경향신문), “대통령은 ‘경제’…야(野)는 ‘개헌’”(동아일보), “13개월만에 회동…쌓인 현안 돌파구 없었다”(서울신문), “‘재정적자 늘려서라도 경제 살리겠다’”(조선일보), “‘마지막 골든타임’ 경제 59번 강조”(중앙일보), “‘경제’만 59번…전작권·세월호는 쏙 뺐다”(한겨레), “연말정국 순항-대치 다시 갈림길에”(한국일보) 어떻습니까. 비슷한 듯 다릅니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평가의 틀로 봐도 그렇고, 사실 전달과 전망 측면으로 나눠도 구분이 됩니다. 하나의 사실을 놓고 언론은 이렇게 저마다의 각도로 보고 전합니다. 언론에선 이를 프레임(frame), 즉 틀이라고 합니다. 프레임은 모든 사실을 빠짐없이 전할 수 없는 언론 보도가 지닌 불가피한 특성입니다.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이 따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프레임은 힘이 셉니다. 언론 프레임에 의해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집니다.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세월호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제목을 본 사람과 ‘적자 늘려서라도 경제 살리겠다’는 제목을 본 사람의 박 대통령에 대한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겁니다.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사람들 인식이 결정되고 여론이 형성됩니다. 의식하든 않든 우리는 매일 프레임을 통해 가공된 현실을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프레임이 다양하면 그만큼 여론도 다양해집니다. 그리고 이는 민주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강화시키는 절대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문제는 프레임의 공정(公正)입니다. 한데, 공정 이것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공정일까요. ‘객관적 공정’이란 말이 성립할 수나 있을까요. 언론의 불공정은 바로 이 치명적 한계 속에서 작동됩니다. ‘공정’의 기준이 없다 보니 저마다 ‘공정’을 내세워 자신의 ‘불공정’을 가립니다. 정파적 보도, 편파·왜곡보도는 그래서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제 주장만 외치고, 엇비슷한 주장끼리 편을 먹는 사회적 분극화는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소통 부재를 개탄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불통의 주체입니다. 정치권이 개헌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한 자리를 놓고 각 정파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이것이 나라를 갈라놓고 있으니 권력을 사이좋게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나누면 지금의 극단적 사회 갈등이 봄눈 녹듯 사라질까요. 오히려 한줌 권력에 기대어 저마다 ‘완장’을 차고 제 잇속을 챙기는 데 부심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언론 매체가 늘었는데도 서로를 두른 담장은 갈수록 높아만 가는 이 소통 부재의 현실이 극복될까요. 언론이 다양한 여론을 하나의 공동선(善)으로 묶어내는 대신 갈등을 부채질하고, 더 나아가 심지어 갈등을 소비하기까지 하는 이 현실이 과연 권력을 나누면 해결될까요. 개헌보다 개언(改言)이 먼저입니다. 권력구조 개편 이전에 소통의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언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적은 이제 진부합니다. 그런 비판은 차고 넘칩니다.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지금 언론 환경에선 개별 언론 차원의 혁신은 어렵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분열의 담장이 아니라 소통의 다리가 되는 언론을 만들 보다 큰 틀의 사회적 고민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이 나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논의가 펼쳐져야 합니다. 언론과 학계, 재계, 법조계, 문화계, 시민사회계 모두가 공익과 통합을 추구하는 언론 환경을 만드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특히 언론학자들 분발해야 합니다. 학술지에 논문 하나 싣는 걸로 손 털 일이 아닙니다. 정파적 이해가 아니라 공익과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언론이어야 살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사회적 민주화가 가능합니다. 이 나라 정치, 언론에 달렸습니다. 정치가 못마땅하다면 언론을 바꿔야 합니다.jade@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마산고 동문 이윤한·허남식·설동근과 각별… 정순택은 동아대 법대 동기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의 ‘마당발’ 인맥의 중심에는 마산고와 동아대 인맥을 빼놓을 수 없다. 강 회장은 1958년 마산고(17회), 1966년 동아대 법학과(17기)를 졸업했다. 강 회장의 절친으로는 마산고 동기인 이윤한 통일보일러 대표가 꼽힌다. 강 회장이 속을 터놓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 2월 이 대표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강 회장은 아내와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장지까지 따라갔다. 이 대표는 강 회장에 대해 “남이 모르는 데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경남 진주 출신이면서 마산고 동문이기도 한 정태류 변호사와도 각별한 사이다. 마산고 동문 가운데는 허남식 전 부산시장과 부산시 교육감,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설동근 동명대 총장 등과 친하게 지낸다. 강 회장은 10년 후배인 허 전 시장이 사무관(행시 19회) 시절부터 각별히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이 3차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하면서 업무적으로 더욱 긴밀해졌다. 허 시장과 동기인 부산·대구고등법원장을 지낸 박용수 부산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동아대 인맥은 더욱 막강하다. 부산시 교육감을 지내고 현재 부산국제외국어고 교장으로 있는 정순택 전 청와대 전 교육문화수석은 강 회장과 법학과 동기다. 동아대 총동문회장을 지낸 정 전 수석은 강 회장과 종종 골프도 치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동기다. 한국해양구조협회장이자 세운철강 회장인 신정택 전 부산상의 회장도 학교 동문으로 강 회장과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하며 가깝게 지내왔다. 부산상의 부회장 출신인 박순호 세정건설 회장과도 대학과 …부산대 행정대학원 동문이다. 정치권 인사들로는 도종이 전 16대 국회의원과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학교 동문으로 인연이 깊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아내바라기 강 회장… 큰 사위는 차관보, 아들 절친은 정의선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아내바라기 강 회장… 큰 사위는 차관보, 아들 절친은 정의선

    넥센은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가 됐지만 넥센 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 강병중(75) 넥센타이어 회장의 가족만큼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강 회장은 1966년 9월 동아대를 졸업한 뒤 김양자(72)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경남 진주 이반성면 길성리에 살았던 집안 어르신들이 사돈 맺기를 합의하면서 이뤄졌다. 부부는 동아대 동문이기도 하다. 남편은 동아대 법학과(17기), 아내는 동아대 화학과를 나왔다. 부인 김씨의 부친이 4형제 중 둘째였는데 형제들이 모두 일본에 건너가 성공을 거뒀었다. 장인은 귀국해 정미소도 하고 논밭도 사들여 부자가 됐다. 부인 김씨는 삼촌 두 분이 고향에 세운 이반성중학교에서 학교를 관리하면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처가 덕을 톡톡히 보며 사업의 시작과 밑천을 마련했던 강 회장은 아내 없이는 못 사는 공처가다. 측근들에 따르면 강 회장은 애정 표현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6년 전 유방암에 걸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강 회장은 매주 비행기로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르내리며 간병했다. 온천이 피로 회복에 좋다고 해서 부산 동래구에 있는 이름난 H온천장에 회원권을 끊어 거의 매일 아내와 함께 목욕을 하며 지극 정성으로 기분을 풀어줬다는 전언이다. 강 회장의 노력 덕분인지 김 전 감사는 지금 병이 완치된 상태다. 강 회장은 아내를 위해 핑크리본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골프장도 같이 다닌다. 주로 가는 곳은 경남 김해 가야 컨트리클럽 골프장이다. 강 회장 내외의 골프 실력은 95타 정도. 부부 실력이 비슷해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자주 같이 친다고 한다. 두 부부는 불심이 깊기도 하다. 강 회장 부부는 아들 호찬(43)과 신영(49), 소영(46) 등 두 딸을 뒀다. 큰딸 신영씨의 배우자는 행정고시(28회) 출신인 정은보(53) 기획재정부 차관보다. 대일고-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정 차관보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재직 때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새 정부 금융정책의 밑그림 구상에 참여했다. 2011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있을 때 관치 논란이 일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 소신파로 유명하다. 신영씨와 정 차관보는 지난해 34억 6389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19억여원 상당의 건물과 예금 자산만 14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재원(23)양이 있다. 넥센타이어를 이끌고 가는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은 홍콩에서 활동했던 국제변호사 출신 아내와 2008년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있다. 강 회장은 8년간 경영수업을 시켰던 외아들을 2009년 넥센타이어 대표이사 사장에 임명하면서 후계 구도 작업을 본격화했다. 2012년 말에는 넥센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아들에게 최대주주 자리를 내주며 재산 승계도 이뤄졌다. 당시 강 사장이 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12%였던 넥센 지분율을 50% 이상 끌어올리자 세금을 회피한 꼼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재 넥센타이어와 넥센테크의 최대주주인 넥센은 강 사장이 50.51%, 강 회장 7.4%, 김 전 감사는 2.38%로 오너 일가가 60.27%를 차지하고 있다. 넥센타이어는 65.33%, 넥센테크는 73.61%, KNN은 60.29%가 오너 일가의 주식이다. 부산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온 강 사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강 사장이 2007년 해체된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껴안은 넥센 히어로즈의 후원자라서 더욱 친해졌다고도 한다. 실제 넥센타이어는 완성차업체인 현대차에 타이어를 대량 납품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다. 강 회장의 차녀 소영씨는 2005년 의사와 결혼했지만 5년 뒤 이혼했다. 강 회장의 친척으로는 씨름선수 출신 방송인 강호동씨가 있다. 강호동은 강 회장의 사촌인 강태중씨의 아들로 5촌 관계다. 강 회장은 “아버지가 4형제였는데 그중 막내 삼촌이 호동이 할아버지며 호동이하고 저는 5촌 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호동은 명절 때마다 강 회장과 만나 함께 성묘하러 가는 사이다. 강 회장의 최측근은 9촌 조카인 강호기 KNN(부산·경남 방송) 문화재단 이사다. 강 이사는 KNN 방송 회장인 강 회장의 곁을 항상 그림자처럼 지키고 있다. 강 회장이 넥센타이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데는 전문 경영인 3명의 도움이 컸다. 1999년부터 5년간 넥센타이어를 끌어온 이규상(66) 전 부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국내 기업들이 외면했던 넥센타이어의 전신, 우성타이어 인수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인물이다.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의 이 전 부회장은 우성타이어의 법정관리를 조기 종결해 경영정상화 기틀을 닦았다. 2000년 넥센타이어로 사명을 바꾸고 초고성능(UHP) 타이어사업을 추진해 현재 고수익 사업구조의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 바통을 넘겨받은 홍종만(71) 전 부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삼성자동차와 삼성코닝정밀유리 대표이사 출신이다. 중국 칭다오에 첫 해외 공장을 건설하면서 세계시장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이듬해 영업이익 16.3%를 기록하는 등 뚝심 있는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야구단 넥센 히어로즈의 후원을 시작한 2010년 부임한 이현봉(65) 현 부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삼성전자 스페인법인장 및 생활가전 총괄사장을 맡은 경력으로 회사의 해외 판로 개척에 큰 공을 세웠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넥센 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 브랜드 홍보 → 매출 증대 ‘선순환’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넥센 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 브랜드 홍보 → 매출 증대 ‘선순환’

    넥센타이어는 올해 한국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 2위로 진출한 ‘넥센 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다. 2010년 사명인 ‘넥센’을 구단명에 붙이는 조건으로 2년 계약을 체결한 이후 2011년, 2013년 두 차례 계약을 연장해 내년까지 메인 스폰서로 스포츠 마케팅을 벌인다. 지난 4월에는 미국 프로야구팀 LA다저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이어 추신수 선수가 활동하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에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이 아들 강호찬 넥센타이어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야구단 지원사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가공할 만한 스포츠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에서 네 차례나 우승한 전신 현대유니콘스의 저력에 수도 서울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야구팬을 확보한 서울 히어로즈에 대한 메인스폰서 계약은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프로 야구 전성기의 흐름을 잘 읽은 부자의 영리한 ‘신의 한 수’였다. 강 회장은 “브랜드 인지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동기가 필요했는데 그 해법이 스포츠 마케팅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 젊고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강 회장의 스포츠마케팅은 주효했다. 홈구장에 노출되는 단순 광고 효과를 넘어 ‘넥센’이란 이름을 젊은 층에 제대로 각인시켰다. 이는 자연스레 브랜드 홍보와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져 매출 증대로 연결되는 선순환 효과를 낳았다. 후원을 시작한 2010년 넥센타이어의 매출액은 1조 1486억원으로 전년보다 1400억원가량(13.7%) 급증했다. 5년간 후원이 이어진 지난해 매출액은 1조 7282억원으로 후원 직전인 2009년보다 무려 71.1%나 뛰었다. 업계에서는 유·무형적 광고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500억원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넥센타이어가 최대 타이어 시장인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야구, 축구, 레이싱 등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넥센타이어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이어 지난 8월 구자철 선수를 영입한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를 비롯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아A 등 유럽 5개 축구팀 리그에 구장 광고를 하고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시대 읽는 통찰력·과감한 M&A… 글로벌 타이어업체 급성장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시대 읽는 통찰력·과감한 M&A… 글로벌 타이어업체 급성장

    “내 목표는 내 힘이 닿는 데까지 1000년 타이어회사의 기초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은 ‘타이어 강’이란 별명답게 타이어의 모든 것에 47년의 인생을 바쳤다. 2000년 넥센타이어로 문패를 바꾼 이후에는 전 세계 130여국 250여개의 딜러와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자수성가하기까지 강 회장의 삶은 도전에 도전의 연속이었다. 강 회장은 1939년 7월 25일 경남 진주 이반성면 길성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당시 500석 지기를 하는 인근 최고 부자였다. 그러나 광복 후 농지개혁으로 많은 전답들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강 회장은 생후 3년 1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면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마산고를 졸업한 뒤에도 형편상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군에 입대했다. 법조인의 꿈을 안고 동아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아르바이트하며 남들보다 늦은 6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힘든 학창시절 경험한 운수회사 아르바이트는 기회로 다가왔다. 196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김양자(72)씨와 결혼한 강 회장은 당장 일을 해야 했다. 경제개발이 시작되던 당시 건설공사에 필요한 화물차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판단한 강 회장은 일본에서 성공한 처가 친척들과 상의해 국내에 없던 일본 중고 화물차를 수입 판매했다. 성공이었다. 강 회장은 1967년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기업 규모를 갖춘 화물운수회사인 옥정산업을 창업, 본격적인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바퀴가 세 개 달린 ‘용달차’는 강 회장의 작품이다. 강 회장은 당시 운송수단이던 ‘말구루마’(우마차)에서 나오는 배설물로 골치를 앓고 있던 박영수 부산시장을 찾아가 일본에서 본 삼륜차에 대한 허가를 받아내 대박을 터뜨렸다. 강 회장은 “시대의 흐름과 특징을 잘 잡아서 아이디어를 남들보다 먼저 실행에 옮긴 게 적중했다”고 말했다. 운수업을 꾸려가던 강 회장은 당시 품질이 조악해 펑크가 자주 났던 타이어를 보고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1973년 강 회장은 화물차를 모두 팔아 운수업을 정리하고 재생 타이어를 생산하는 흥아타이어 공업주식회사(현 넥센)를 세웠다. 이후 일본업체와 기술 제휴를 통해 미국 회사 튜브값의 30%에 불과한 질 좋은 타이어튜브를 만들어내 미국 진출 첫해 2000만 달러어치를 팔아치웠다. 강 회장의 성공에는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추진력 속에 과감하게 진행한 인수·합병(M&A)을 빼놓을 수 없다. 자동차용 타이어를 만드는 우성타이어를 인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신생 타이어 제조공장을 갈망했던 강 회장은 외환위기(IMF) 당시 많은 부채와 낮은 생산성 문제로 M&A 매물로 나왔던 우성타이어에 주목했다. 그는 공장을 직접 둘러보며 잠재성과 직원들의 의지를 확인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99년 3월 강 회장은 인수를 전격 단행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오히려 인력을 늘리고 효율을 높였다. 그 결과 인수 당시 6837%였던 부채비율은 현재 100%대 우량 채무 기업으로 변신했다. 강 회장은 남들이 타이어의 부속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튜브만을 특화해 세계시장 점유율 40%를 자랑하는 튜브제조회사로 키워내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개발한 산업용(지게차용) 타이어인 솔리드 타이어와 미국 특허를 획득한 골프공 ‘빅야드’ 역시 선진기술을 배우는 데 대담했던 강 회장 노력의 결과다. 시련도 있었다. 강 회장은 1994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하면서 지역금융사를 육성하겠다는 일념으로 경남생명보험, 동남은행, 상업은행리스 등을 공들여 만들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상당한 금융사 지분이 휴지조각이 된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강 회장은 타이어 관련 제품 일체를 생산하는 꿈을 이뤘다. 하지만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2010년 넥센 히어로즈 메인 스폰서 후원 등 스포츠 마케팅에 적극 나섰다. 2012년에는 기업들이 값싼 인건비를 좇아 해외로 거처를 옮길 때 경남 창녕에 최첨단 설비를 갖춘 타이어 생산·연구 공장을 지었다. 강 회장은 미국, 독일 등 세계 주요 지역에 18개 해외 법인을 두고 크라이슬러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의 타이어 수출량도 늘리고 있다. 넥센타이어의 매출 구조는 해외에서 75%를 차지한다. 세계 타이어업체 톱10을 꿈꾸는 강 회장의 타이어에 대한 열정은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가 양분하던 내수 시장 점유율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우성타이어를 인수할 당시 8%였던 넥센타이어의 시장 점유율은 한때 25%까지 올라가 업계 2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매출도 1999년 1800억원에서 지난해 1조 7282억원으로 10배가량 커졌다. 지난해 업계 1위 한국타이어의 매출은 7조 692억원, 금호타이어는 3조 6985억원이었다. “직원들이 있기에 회사가 존재한다는 믿음, 그 믿음에 직원들의 열정과 창의가 더해지면 1000년 기업도 가능할 것이다.” 인재 육성을 최우선시하는 강 회장이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에게 늘 해주는 말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현대판 신데렐라’ 슈퍼모델 스피어스, 왕가 자손 임신

    ‘현대판 신데렐라’ 슈퍼모델 스피어스, 왕가 자손 임신

    '현대판 신데렐라’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 것 같다. 최근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 등 해외언론은 "아가 칸(Aga Khan)의 장남 라힘 아가 칸 왕자(42)의 부인 켄드라 스피어스(25)가 임신해 첫 아기 출산이 기대된다" 고 보도했다. 임시 소식 조차 화제가 되는 아가 칸은 이슬람교 이스마일파의 정신적 지도자다. 특히 전세계 10위 안에 드는 돈많은 갑부 왕족인 아가 칸은 세계 곳곳에 사업체를 두고 정계는 물론 종교계, 재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한 명의 '만수르' 인 셈. 라힘 왕자와 스피어스의 결혼은 지난해 9월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스피어스는 차기 신디 크로포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유명 패션잡지 모델로 활동했으며 결혼을 통해 '서민'의 신분을 벗고 단번에 '왕족'으로 새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그녀의 정식 이름은 살와 아가 칸 공주. 이 때문에 할리우드 언론들은 '신분의 차이'를 극복 못하고 라힘의 동생 후사인(39)처럼 얼마 못가 이혼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내논 바 있다. 후사인 역시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 다니던 칼리야와 결혼했다가 지난해 이혼한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프로야구] 김기태 KIA 신임 감독 “팀 리빌딩”

    [프로야구] 김기태 KIA 신임 감독 “팀 리빌딩”

    김기태(45) 전 LG 감독이 고향 팀 지휘봉을 잡았다. 프로야구 KIA는 28일 “김기태 감독과 3년간 계약금 2억 5000만원, 연봉 2억 5000만원 등 총 10억원에 계약했다”고 밝혔다. KIA는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검증된 김 감독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현재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며 “올해 마무리 훈련과 내년 전지훈련을 통해 팀 색깔을 바꾸는 데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어 “팀 리빌딩에 주력하면서도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성적을 올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KIA는 지난 19일 선동열 전 감독과 2년 재계약을 했으나 팬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선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김 감독은 KIA와 전신 해태에서 뛴 적은 없지만 광주 출신이다. 광주 서림초-충장중-광주일고를 거쳐 인하대에 진학했다. 1991년 쌍방울에 입단해 프로 무대를 밟았고 삼성, SK를 거쳤으며 2005년 은퇴할 때까지 광주 연고의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2012년 LG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지난해 팀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난 4월 갑작스럽게 사퇴했고 결국 고향 팀에 둥지를 틀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AG 금메달 기운, 리그에서도 쭉~”…여자프로농구 새달 1일 개막

    “AG 금메달 기운, 리그에서도 쭉~”…여자프로농구 새달 1일 개막

    여느 해보다 좋은 분위기에서 새 얼굴 가득한 시즌이 시작된다. 다음달 1일 KB스타즈와 KDB생명의 공식 개막전을 시작으로 2014~15 KB국민은행 여자프로농구가 내년 3월 10일까지 정규리그를 이어 간다. 여자프로농구연맹(WKBL)이 28일 서울 강남구 리베라 호텔에서 개최한 미디어데이에선 6개 팀 감독과 선수 모두 새 시즌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한목소리로 20년 만에 따낸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기운을 프로 코트에 옮겨 놓겠다고 다짐했다.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이미선(35·삼성)과 변연하(KB스타즈), 신정자(KDB생명), 임영희(이상 34·우리은행) 등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박혜진(24·우리은행), 홍아란(22·KB스타즈), 김규희(22·신한은행), 신지현(19·하나외환) 등이 힘을 모은다. 우리은행이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고 그 뒤를 신한은행, KB스타즈가 추격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나외환은 박종천, 신한은행은 정인교 전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맞아 새 바람을 기대한다. 안산에서 인천으로 연고지를 옮긴 신한은행은 홈코트도 인천 도원체육관으로 변경했다.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바뀐 삼성생명은 삼성으로 개명했다. 외국인 선수의 재계약을 허용하지 않는 여자농구의 특성상 상당수가 새 얼굴로 바뀌었다. 하나외환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앨리사 토마스와 오디세이 심스의 기량이 수준급이란 평가다. 모니크 커리는 지난 시즌 KB스타즈에서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삼성생명에서 뛰었던 샤데 휴스턴은 우리은행, 신한은행에 몸담았던 쉐키나 스트릭렌은 KB스타즈로 둥지를 옮겼는데 이들이 얼마나 새 팀에 녹아들지 관심거리다. 한편 미디어데이에서 이호근 삼성 감독은 “팀 이름을 바꾼 뒤 맞은 첫 시즌이어서 긴장되고 기대된다”면서 “모든 팀이 우승 후보”라고 했다. 정인교 신한은행 감독은 “목표는 우승이다. 차분하고 성실하게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선수들에게 큰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 그저 시즌이 끝났을 때 좋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고, 박종천 하나외환 감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즌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서동철 KB스타즈 감독은 “지난 1년간 우승 꿈을 꾸지 않은 날이 없다. 꼭 실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세환 KDB생명 감독은 “체력 훈련을 많이 했다.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대단하다”며 이번 시즌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서울반도체] LED 특허만 1만여건 ‘독보적’… 글로벌 시장 점유율 5.3%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특허수 1만여건. 서울반도체를 정의하는 건 압도적인 LED 관련 특허수다. 이정훈 서울반도체 대표는 초기부터 “자체 기술로 넘기 힘든 특허 장벽을 구축하자”고 거듭 강조해 왔다. 기술 개발 시작 단계부터 원천기술 확보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주문이다. 서울반도체는 1987년 3월 미국계 반도체 제조사 ‘페어차일드’ 출신 엔지니어들이 세운 회사다. 1992년 이 대표가 서울반도체를 인수했고 2002년 1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초기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동작표시등을 주로 생산해 왔던 서울반도체는 디스플레이 광원용 LED에 손을 대더니 2006년 컨버터(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부품) 없이도 교류에서 구동 가능한 LED ‘아크리치’ 양산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였다. 1991년 10억원이던 매출액은 15년 만인 2006년 1838억원을 돌파했다. 2007년 말에는 매출이 2500억원을 넘었고, 지난해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LED 국내 기업 중에는 최초로 매출 1조원을 기록했다. 서울반도체는 직원수 980명, 서울바이오시스, 광명반도체유한공사 등 계열사 13개를 거느린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LED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5.3%에 달한다. 독일 오스람, 네덜란드 필립스와 특허 공유 계약을 맺은 유일한 국내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마다 발휘됐던 건 이 대표의 뚝심이었다. 2006년 서울반도체는 일본 니치아화학공업과의 소송전에 휘말리는데, 이 대표는 세계 LED 1위 기업 니치아화학공업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당시 니치아는 서울반도체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고객사들은 소송 결과를 보고 주문하겠다며 돌아섰다. 모두가 만류했다. 라이선스비를 주고 출혈을 피하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동안 쌓아왔던 특허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3년간의 공방 끝에, 결과는 ‘상호 특허 사용’.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사실상 다윗이었던 이 대표가 승리한 셈이다. 2011년 LED TV 공급 과잉으로 LED 시장에 정체기가 왔을 때도 이 대표는 주력 제품을 디스플레이 소재에서 조명으로 전환해 멈출 줄 모르는 성장세를 이룩했다. 다만 올해 2분기 원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실적이 주춤했다. 1분기 229억원의 영업이익은 130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이 대표의 지분가치도 지난 3월 2일 기준 4480억원에서 2252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업계는 1만여건의 특허가 있는 서울반도체의 경쟁력이 LED 조명 시장에서 또 다른 반전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8)서울반도체] 특허소송때 담배 끊고 1년여 머리도 안자른 ‘집념의 승부사’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8)서울반도체] 특허소송때 담배 끊고 1년여 머리도 안자른 ‘집념의 승부사’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이정훈(61) 서울반도체 대표가 대학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듣던 말이다. 이 대표의 부모는 그가 학업에 소홀하다 싶으면 “공부를 그렇게 허투루하다가 사회에 나오면 세상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오로지 등산 동아리에만 심취해 했던 이 대표가 발광다이오드(LED) 업계의 거물로 성장한 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자세한 가정사 등을 일절 공개한 바 없는 이 대표의 가맥과 인맥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1953년 경기 광명에서 나고 자란 그는 광명에서 알아주는 만석꾼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어머니 고 박순여씨는 그를 끔찍이 아꼈는데, 서울반도체 인수 당시 “조그마한 구멍가게 인수해서 뭐하러 고생하느냐”고 말했다는 일화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 대표의 어머니는 2001년 5월 암으로 작고했다. 이 대표는 고려대 물리학과 71학번이다. 1975년부터 2년간 ROTC로 복무한 뒤 1979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땄다. 1981년 제일정밀공업 과장으로 입사해 회사 경험을 쌓다 1983년 오클라호마대 MBA 대학원에 진학했다. 1985년에는 둘째 형인 이정인(65)씨가 운영했던 삼신전기 임원으로 합류한다. 당시 삼신전기는 자동차부품업체를 생산했던 중소기업으로 액정식 계기판과 히터컨트롤박스 오염방지 장치 등을 생산했다. 이 대표는 삼신전기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영업부터 기술 연구 부문까지 전 영역에서 경영 감각을 키웠다. 정인씨는 1987년 회사 경영권을 현 삼신이노텍 김석기씨에게 넘겼고, 1991년까지 부사장으로 있던 이 대표는 1992년 눈여겨보던 서울반도체를 인수했다. 3남 2녀 가운데 막내인 이 대표의 첫째 누나 이정자(76)씨는 노창희(76) 전경련 고문과 결혼했다. 노 고문은 전 유엔대사를 지낸 인물로 이 인연은 농심가까지 연결된다. 노 고문은 노홍희 신명전기 전 사장의 아들로 신격호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도 혼맥으로 이어져 있다. 신춘호 회장의 3남 동익씨(농심유통계열사 메가마트 부회장)가 바로 노재경씨와 결혼했는데 재경씨는 노 고문의 조카다. 정자씨와 노 고문 사이에는 노재령(51·여) 국립현대미술관후원회 상임이사, 노재호(48)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가 있다. 첫째 형인 이정환(67)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농사꾼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국내 대표적인 농업경제학계의 학자가 됐다. 1946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홋카이도대학원에서 농업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농촌 경제연구원에서 연구 활동했다. 2005년 연구원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정환씨는 민간 연구기관인 GS&J 인스티튜트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농업 통상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한·미FTA 자원위원회 위원, 농업농촌 특별 대책 위원회 통상협의회 의장을 맡는 등 대외활동도 왕성하다. 둘째 누나인 고 이정신은 수필 문학가로, 전 감리교 전국여선교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 3월 작고한 정신씨의 남편 천광남씨는 고층 비상탈출 장치로 1984년 제네바 국제 발명 신기술 전시회에 참가할 정도로 주목받았던 엔지니어다. 컨베텍 기술 고문을 지냈다. 경기 안성에서 중앙회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천승희씨가 장남, ‘언플러그드 보이’ 등 독특한 화법으로 신선한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만화가 천계영(45·여)씨가 정신씨의 차녀다. 이 대표는 카리스마 넘치는 화법과 치밀한 경영 스타일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지금도 영업 전방에서 왕성하게 뛰고 있다. 호방한 성격으로 전형적인 리더라는 평이 많지만 실제로는 조용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기술개발과 경영을 두루 섭렵한 그는 한번 마음먹은 분야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파고드는 성격이다. 기업설명회(IR) 등에서 다양한 국가의 LED 산업에 관한 질문에도 통찰력 있는 답변을 제시한다. 일벌레로도 유명한데 명절에도 회사에 나와 근무를 하는 등 일년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세계 5개 법인, 40개 대리점을 챙기느라 분주한 그는 직원과 소통하는 데도 열심이다. 분기별로 임직원과의 토크쇼를 열고, 패밀리 데이 등 직원들의 가족까지 살뜰히 챙기는 따뜻한 리더다. 한번은 임직원 수십 명에게 자비로 주식을 사서 나눠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대표의 영업성공률은 80~90%로 비즈니스 영업의 귀재”라면서 “비즈니스 정도와 예절에 능숙하다. 매우 세련됐다”고 평했다. 또 “일에서만큼은 엄격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데도 탁월하다”면서 “한번 본 사람은 이 대표의 열정과 씀씀이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에서도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임원들이 부진하다 싶으면 특단의 조치도 내린다. 아예 회의를 시작부터 끝까지 서서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집도 세다. 실적이 부진했던 2007년에는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실제 이 대표는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이발소를 찾지 않았다. 이때가 바로 세계 1위 LED 기업인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으로부터 특허 관련 소송을 당했을 때다. 애연가였던 이 대표가 담배를 끊었던 때도 이쯤이다. 건강해야 잘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대표는 결국 골리앗이었던 니치아화학공업을 이겼다. 호시탐탐 LED 연구인력을 빼가려는 대기업과 맞선 것도 이 대표의 뚝심이 컸다. 연매출 1000억원 때부터 그는 대기업들과 ‘부정경쟁방지법’을 근거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스스로 “인맥은 거의 없지 않나”라고 말하지만 그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이채욱 CJ그룹 부회장 등 거물급 인사와 친분이 남다르다. 이 중 한 전 총리는 서울반도체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데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서도 각각 장관 자리에 올라 정·관계 영향력이 크다. 때문에 이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한 전 총리를 모신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국무총리 시절 녹색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고효율 친환경 LED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반도체와 통한다. 이채욱 부회장은 GE코리아 사장과 GE아태지역 헬스케어사업을 총괄하는 GE아시아성장시장 총괄 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 부회장도 과거 서울반도체 사외이사를 지냈다. 제일기획 대표이사, 삼성물산 사장 등을 거쳐 야후 코리아 경영고문을 지낸 신세길 서울반도체 회장도 이 대표가 어려울 때마다 조언을 얻는 최측근이다. 신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2002년 서울반도체 회장으로 부임했다. 이 대표는 알아주는 등산광이다. 부인 김재진(60)씨도 대학교 등산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났다. 슬하에는 아들 민호(34)씨와 딸 민규(27)씨가 있다. 그는 엄격한 자식 교육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인생은 드로잉’이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가르친다고 한다. ‘인생은 다시 지우고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려간다’는 말로 신중하게 첫 단추를 잘 끼우고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말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서울반도체] 李 대표·나카무라, 14년전 日 세미나서 첫 만남… 5년째 기술고문 ‘인연’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서울반도체] 李 대표·나카무라, 14년전 日 세미나서 첫 만남… 5년째 기술고문 ‘인연’

    서울반도체는 최근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60)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UCSB) 교수와의 인연으로 화제가 됐다. 나카무라 슈지는 2010년 3월부터 서울반도체의 기술 고문으로 활약해왔다. 이정훈 대표와 나카무라의 인연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틈틈이 해외 시장을 준비하고 있던 이 대표는 2010년 초 일본에서 열린 한 발광다이오드(LED) 세미나에서 나카무라 고문을 처음 만났다. 나카무라는 1993년 세계 최초로 청색 LED를 발명, 일본의 작은 소기업이었던 니치아화학을 연간 10억엔 매출의 강소 기업으로 키운 LED계의 스타였다. 하지만 당시 니치아화학은 고작 2만엔의 포상금과 과장 승진으로 그의 특허 발명권을 회사에 귀속시켰다. 두 사람의 만남은 나카무라가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UCSB행을 타진하고 있던 때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 LED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확인했다. 이 대표가 세미나 직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서울반도체 공장에 그를 초대하면서 끈끈한 인연이 이어졌다. 나카무라는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라는 신조를 지녔다. 작은 신생기업으로 LED업계의 새 바람을 몰고 온 서울반도체의 비전과 이 대표의 열정이 나카무라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이듬해인 2001년 나카무라가 니치아화학공업과 특허 소송전을 벌일 때도 이 대표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색 LED에 대한 특허권 일부를 양도하거나 발명 대가로 20억엔을 지급하라는 게 나카무라 소송의 핵심이었다. 재판은 4년간의 지리한 공방 끝에 회사가 8억 4000만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의 만남은 우정보다 존경의 관계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특히 이 대표는 나카무라를 위대한 학자이자 회사 기술 고문으로서 극진히 예우한다. 이 대표는 틈만 나면 회사 직원들에게 “나카무라 교수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배우라”고 주문한다. 나카무라의 UCSB 재료물성학 연구실인 SSLEEC에 뛰어난 연구원들을 보내 공부를 시키는가 하면 일정 금액의 후원금을 매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보답하듯 나카무라는 1년에 네 차례 서울반도체와 서울 바이오시스를 찾아 연구 고문으로 공동 연구를 돕고 있다. 그는 이번 노벨상 공동 수상이 결정된 직후 경기 안산 서울반도체를 찾아 이 대표를 만나는 등 LED 개척의 동업자이자 오랜 동료인 이 대표와의 우정을 과시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서울반도체] 설립 초기부터 두 자녀에 승계 시작

    서울반도체의 승계 작업은 설립 초기부터 시작됐다. 외부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지분 관계만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정훈 대표는 두 자녀가 있는데, 올해 34살인 장남 민호씨는 서울반도체 지분의 8.71%를, 딸 민규(27)씨 역시 8.71%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개인 2대 최대 주주다. 2002년 코스닥 상장 때부터 지분을 증여받는 식의 전형적인 중소기업의 대물림 형태지만 사실상 몸집이 커진 서울반도체로서는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수순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민호씨는 2009년 서울반도체 재무회계 부서의 대리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민호씨는 현재 MBA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회계 부서로 입사한 건 회사 경영을 공부하려면 자금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 이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름 때문에 차남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던 딸 민규씨는 아직 해외에서 공부 중이다. 민규씨는 올해 400대 부자 중 최연소로 268위 (2020억원)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 대표는 이들 자녀의 향후 거취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이들 자녀의 승계를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개인 최대 주주인 이 대표의 지분은 16.72%다. 주요 계열사에서도 두 자녀는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서울바이오시스는 이 대표가 34.67%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민규, 민호씨가 각각 11.87%, 11.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 [프로야구] 한화에 둥지튼 김성근, 재계약 파기한 선동열… 팬들의 ‘힘’

    [프로야구] 한화에 둥지튼 김성근, 재계약 파기한 선동열… 팬들의 ‘힘’

    ‘팬심’이 프로야구 사령탑을 흔들었다. 한화는 지난 25일 ‘야신’ 김성근(72) 감독과 3년간 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 등 총 20억원에 사인했다. 김 감독의 프로야구 복귀는 SK 사령탑에서 물러난 2011년 8월 이후 3년 2개월 만이다. 한화는 당초 김응용 감독 후임으로 내부 적임자를 물색 중이었다. 하지만 한화 팬들이 포털 등 각종 사이트를 통해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줄기차게 요청했고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다. 이 때문에 한화는 내부 승격 계획을 접고 김 감독을 전격 영입했다. 이에 앞서 KIA는 “선동열 감독이 재신임을 받은 뒤 많은 고민 끝에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선 감독은 3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했지만 지난 19일 KIA와 총 10억 6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그러자 팬들은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안치홍이 올 시즌 뒤 경찰청 입대를 고집하자 선 감독이 ‘임의탈퇴’를 구실로 압력을 가했다는 구설수까지 불거지면서 재계약 6일 만에 사퇴했다. 3년 연속 꼴찌 한화의 대변신을 주도할 김성근 감독은 28일 취임식에 이어 대대적인 코치진 물갈이에 나설 전망. KIA도 김기태 전 LG 감독, 이순철 SBS 해설위원 등 후보들을 올려놓고 인선 작업에 들어갔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선동열 안치홍 사태에 전격 사퇴…임의탈퇴 압력 후폭풍 구설수

    선동열 안치홍 사태에 전격 사퇴…임의탈퇴 압력 후폭풍 구설수

    선동열 KIA 감독이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 25일 KIA 타이거즈는 “선동열 감독이 자진 사퇴를 결심했고, 선 감독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선동열 감독의 사퇴를 발표했다. 앞서 선동열 감독은 지난 19일 KIA와 2년 동안 모두 10억 6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8위에 그치는 등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선동열 감독의 재신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심지어 경찰청 입대가 확정된 안치홍과 선동열 감독 사이에 구설수까지 터지고 말았다. 안치홍이 올 시즌을 끝으로 입대를 고집하자 선동열 감독이 ‘임의탈퇴선수로 묶어놓을 수 있다’고 압력을 가했다는 것. 선동열 감독과 안치홍 사이의 구설수로 인해 선동열 감독에 대한 반대 여론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선동열 감독은 25일 오후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감독 재신임을 받은 뒤 여러 가지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지난 3년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판단해 사임을 결정했다”며 “그동안 성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선동열 감독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지만 영원한 타이거즈 팬으로서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야구명가 타이거즈의 부활이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선동열 감독은 “이곳 광주는 나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곳이라 남다르게 애착이 갔다. 꼭 좋은 성적을 올려 팬들을 웃음짓고 기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덧붙여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선동열 감독 자진 사퇴 ‘안치홍 사태 때문에?’

    선동열 감독 자진 사퇴 ‘안치홍 사태 때문에?’

    최근 구단과 2년 재계약을 했던 선동렬 감독은 불과 6일이 지난 25일 구단에게 자진사퇴 의사를 전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동렬 감독은 2012년 5위, 2013년과 2014년 8위에 그치고도 구단과 재계약해 팬들의 원성을 샀다. KIA팬들이 선동렬 감독에게 완전히 등 돌리게 된 계기는 안치홍 사태 때문. 군 입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안치홍은 내년에 경찰청에 입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선동렬 감독은 KIA가 안치홍의 공백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안치홍에게 군입대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선동렬 감독은 안치홍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말까지 했다고 전해졌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 시즌 막판 안치홍 설득에 실패한 구단은 마지막으로 선동렬 감독에게 ‘군입대를 좀 미루도록 설득해달라’며 감독실로 들여보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선동열 감독은 안치홍에게 ‘임의탈퇴’라는 말을 꺼냈다는 것. 해당 사실을 접한 팬들은 분노했고 조직적인 행동까지 추진하며 KIA와 선동렬 구단을 압박했다.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선동열 감독은 결국 25일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선동열 사퇴…안치홍 임의탈퇴 협박과 관련있나? 10억 6000만원 재계약 취소

    선동열 사퇴…안치홍 임의탈퇴 협박과 관련있나? 10억 6000만원 재계약 취소

    선동열 KIA 감독이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 25일 KIA 타이거즈는 “선동열 감독이 자진 사퇴를 결심했고, 선 감독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선동열 감독의 사퇴를 발표했다. 앞서 선동열 감독은 지난 19일 KIA와 2년 동안 모두 10억 6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8위에 그치는 등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선동열 감독의 재신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심지어 경찰청 입대가 확정된 안치홍과 선동열 감독 사이에 구설수까지 터지고 말았다. 안치홍이 올 시즌을 끝으로 입대를 고집하자 선동열 감독이 ‘임의탈퇴선수로 묶어놓을 수 있다’고 압력을 가했다는 것. 선동열 감독과 안치홍 사이의 구설수로 인해 선동열 감독에 대한 반대 여론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선동열 감독은 25일 오후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감독 재신임을 받은 뒤 여러 가지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지난 3년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판단해 사임을 결정했다”며 “그동안 성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선동열 감독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지만 영원한 타이거즈 팬으로서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야구명가 타이거즈의 부활이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선동열 감독은 “이곳 광주는 나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곳이라 남다르게 애착이 갔다. 꼭 좋은 성적을 올려 팬들을 웃음짓고 기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덧붙여 말했다. 선동열 사퇴 소식에 네티즌들은 “선동열 사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 얘기했구나”, “선동열 사퇴, 감독으로서는 재능이 없어”, “선동열 사퇴, 지금이라도 잘했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치홍, 선동열 사퇴에 화제…재계약 6일만에 물러난 이유보니

    안치홍, 선동열 사퇴에 화제…재계약 6일만에 물러난 이유보니

    선동열 KIA 감독이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 25일 KIA 타이거즈는 “선동열 감독이 자진 사퇴를 결심했고, 선 감독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선동열 감독의 사퇴를 발표했다. 앞서 선동열 감독은 지난 19일 KIA와 2년 동안 모두 10억 6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8위에 그치는 등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선동열 감독의 재신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심지어 경찰청 입대가 확정된 안치홍과 선동열 감독 사이에 구설수까지 터지고 말았다. 안치홍이 올 시즌을 끝으로 입대를 고집하자 선동열 감독이 ‘임의탈퇴선수로 묶어놓을 수 있다’고 압력을 가했다는 것. 선동열 감독과 안치홍 사이의 구설수로 인해 선동열 감독에 대한 반대 여론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선동열 감독은 25일 오후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감독 재신임을 받은 뒤 여러 가지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지난 3년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판단해 사임을 결정했다”며 “그동안 성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선동열 감독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지만 영원한 타이거즈 팬으로서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야구명가 타이거즈의 부활이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선동열 감독은 “이곳 광주는 나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곳이라 남다르게 애착이 갔다. 꼭 좋은 성적을 올려 팬들을 웃음짓고 기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덧붙여 말했다. 선동열 사퇴 소식에 네티즌들은 “선동열 사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 얘기했구나”, “선동열 사퇴, 감독으로서는 재능이 없어”, “선동열 사퇴, 지금이라도 잘했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KIA 타이거즈 선동열 감독, 재계약 6일 만에 사퇴 의사 왜?

    KIA 타이거즈 선동열 감독, 재계약 6일 만에 사퇴 의사 왜?

    최근 구단과 2년 재계약을 했던 선동렬 감독은 불과 6일이 지난 25일 구단에게 자진사퇴 의사를 전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동렬 감독은 2012년 5위, 2013년과 2014년 8위에 그치고도 구단과 재계약해 팬들의 원성을 샀다. KIA팬들이 선동렬 감독에게 완전히 등 돌리게 된 계기는 안치홍 사태 때문. 군 입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안치홍은 내년에 경찰청에 입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선동렬 감독은 KIA가 안치홍의 공백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안치홍에게 군입대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선동렬 감독은 안치홍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말까지 했다고 전해졌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 시즌 막판 안치홍 설득에 실패한 구단은 마지막으로 선동렬 감독에게 ‘군입대를 좀 미루도록 설득해달라’며 감독실로 들여보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선동열 감독은 안치홍에게 ‘임의탈퇴’라는 말을 꺼냈다는 것. 해당 사실을 접한 팬들은 분노했고 조직적인 행동까지 추진하며 KIA와 선동렬 구단을 압박했다.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선동열 감독은 결국 25일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선동열 안치홍 사태 후폭풍, 감독 재계약 6일만에 사퇴..임의탈퇴 협박?

    선동열 안치홍 사태 후폭풍, 감독 재계약 6일만에 사퇴..임의탈퇴 협박?

    ‘선동열 자진 사퇴, 선동열 안치홍, 임의탈퇴’ KIA 타이거즈 선동렬 감독이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그 배경으로 안치홍 선수가 지목되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구단과 2년 재계약을 했던 선동렬 감독은 불과 6일이 지난 25일 구단에게 자진 사퇴 의사를 전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동렬 감독은 2012년 5위, 2013년과 2014년 8위에 그치고도 구단과 재계약해 팬들의 원성을 샀다. KIA팬들이 선동렬 감독에게 완전히 등 돌리게 된 계기는 안치홍 사태 때문. 군 입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안치홍은 내년에 경찰청에 입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선동렬 감독은 KIA가 안치홍의 공백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안치홍에게 군입대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선동렬 감독은 안치홍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말까지 했다고 전해졌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 시즌 막판 안치홍 설득에 실패한 구단은 마지막으로 선동렬 감독에게 ‘군입대를 좀 미루도록 설득해달라’며 감독실로 들여보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선동열 감독은 안치홍에게 ‘임의탈퇴’라는 말을 꺼냈다는 것. 해당 사실을 접한 팬들은 분노했고 조직적인 행동까지 추진하며 KIA와 선동렬 구단을 압박했다.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선동열 감독은 결국 25일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선동열 감독은 “내가 어떻게 안치홍을 협박했겠는가. 설명하자면 안치홍이 군대를 가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자 구단에서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감독실로 불러서 이렇게 말을 했다. ‘너나 나나 프로들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소모품들이다. 최악의 경우 구단쪽에서 임의탈퇴까지 생각하면 안 되지 않느냐. 생각을 바꿔보자’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네티즌들은 “선동열 자진 사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 얘기한 건 맞네”, “선동열 자신 사퇴, 선수를 협박하다니”, “안치홍 사태 분노, 선동열 자진 사퇴 잘 한 결정이다”, “선동열 사퇴, 안치홍이 국가대표만 됐어도 이런 문제는 없었을 텐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KIA 타이거즈(선동열 안치홍, 선동렬 자진 사퇴)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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