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돋보기] ‘자영업자 임금명세 제출 의무화’ 논란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자영업자 지급조서(임금명세서) 제출 제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자영업자와 한국납세자연맹은 부담만 가중시키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고 반발하며 입법 저지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에 도입할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의 실효성 및 조세 형평성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세전문가들은 제도를 시행하기 전 충분한 적응 기간을 갖고, 자영업자에 대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4대 보험가입 의무’,‘영세자영업자 규모’ 등 쟁점
자영업자들의 불만의 한 가운데는 ‘4대 보험’이 있다. 종업원 임금을 신고하면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자영업자 지급조서 제출 대상이 확대되면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8.14% 늘고, 고용된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은 7.19%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납세자연맹은 시간제 근로자 대부분도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월 80시간 이상,1개월 이상 계속 근무한 종업원이면 누구나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는 “시간제 근로자 104만명(8월 기준) 가운데 30%인 31만명만 보험 가입 사유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영세자영업자의 규모에 대한 시각차이도 크다. 재경부 관계자는 “종업원 없이 사업을 꾸려가는 자영업자들이 310만명인 점을 고려할 때, 종업원을 고용하는 110만명은 전혀 영세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이들 가운데 60만명 정도만 지급조서를 내면 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납세자연맹은 종업원을 고용해도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납세자연맹은 자영업자들이 연간 120만원 안팎의 추가 세무비용이 들어갈 것을 우려한다. 김선택 회장은 “세무대리인 비용이 가산세보다도 많은 월 5만∼10만원이나 들게 돼, 결국 잠재적 범법자만 양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허용석 재경부 조세정책국장은 “이름·주민번호·월급여 등만 기재하도록 제출 양식을 간소화하고, 현금영수증 단말기를 통해서도 제출할 수 있도록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행정력 보완, 유예기간 등 검토 필요
조세전문가들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납세자 유인책 마련과 함께 세무 당국의 행정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세연구원 전병목 박사는 “납세자들이 ‘신고하면 혜택이 많다.’고 피부로 느낄 때까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실행해야 부작용이 없다.”고 강조했다.EITC가 미국·영국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지만,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시행 초기에 조세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부작용을 감안, 제도 도입에 앞서 선진국처럼 신고를 하면 일정 금액을 세액에서 공제해 주는 ‘부담 경감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세법학의 권위자인 최명근 강남대 석좌교수는 “소득파악을 제대로 못하면 EITC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만 도와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령 수입이 500만원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딸이 월급 70만원을 받는 개인사업자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것. 최 교수는 “현재 수준의 세무 당국 행정력으로는 저소득 근로자의 정확한 소득 파악과 관리에 구멍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력을 두배 이상 높이든가, 제도 도입 시기를 1년 이상 더 늦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어떻게 달라지길래…
올해부터 종업원을 1명이라도 고용한 자영업자가 국세청에 지급조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2%의 가산세를 물어야 한다. 다만 일용근로자의 경우 가산세 부과를 1년 유예했다. 종전에는 연매출이 일정규모(음식숙박업 1억 5000만원, 개인서비스업 7500만원)를 넘는 경우에 한해 이 제도를 시행했다. 재경부는 “저소득 근로자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EITC 도입을 위한 소득파악 작업은 지급 조서를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