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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소명의식 없는 고위공직자

    정부 당국자들의 말대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는 어떠한 이유로도섣불리 훼손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기념비’다.그런데 정작 당국자들은 얼마나 정상회담의 의미를 뼛속깊이 새기고 있는가 묻고 싶다. 정부가 8·15이산가족 방문단에 ‘정책적으로 고려할 5% 인원’을 포함시킬것이란 특혜시비에 대한 5일 통일부 담당국장의 해명을 들어보자. (기자)정책적인 고려가 무슨 의미인가? (국장)모르겠다. (기자)5%라는 수치까지 제시됐는데 모를 수가 있나? (국장)내가 얘기한 게아니라서 모르겠다. (기자)주무국장으로서의 입장은 무엇인가? (국장)말하기 어렵다. 전날엔 이런 일도 있었다.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한 토론회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장기적으로 이산가족의 재결합을 추진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그런데 파문이 커지자 보도자료를 통해 “10∼20년 뒤의 미래상황을 언급했을 뿐 양측간에 합의한 사실은 없다”고 금세 말을 바꿨다.박장관은 지난달 정상회담 직후 국회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공항영접 사전인지 여부를 놓고 양영식(梁榮植)차관과 서로 자기 말이맞다고 우기는 ‘촌극’을 연출한 적도 있다.사실 정책적 고려 대상을 포함시켜야 할지,이산가족 재결합 발언이 성급한지를 따지는 것은 둘째 문제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일반 국민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김정일 신드롬’에어리둥절해 있고,이산가족들은 이번엔 정말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 가슴을졸이고 있다.한편에서는 일부 분단주의자들이 현 정부의 ‘실족(失足)’을바라며 기회만 엿보고 있다. 이같은 거대한 과제에 능란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신중함과 철저함,그리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살신성인의 소명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혹시 당국자들이 일반 샐러리맨의 차원에서 ‘밥값’정도만 하려 한다든지,허명(虛名)만을 날리려는 생각이라면 자신은 물론 우리 민족 전체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김상연 정치팀 기자 carlos@
  • 朴통일 “이산가족 함께 살게된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4일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장기적으로 자유의사에 따라 남쪽 가족이 북에 가서 살거나 북쪽 가족이 남에 합류해 원하는지역에 정착토록 하자고 (북측과)얘기했다”고 밝혔다. 박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21세기 동북아평화포럼’ 조찬토론회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의와 향후과제’라는 제목의 강연을통해 “8·15때 상호방문하고 나면 나머지 이산가족에 대해서도 8·15때와같은 절차에 따라 생사확인과 상호방문을 거친 뒤 분위기가 성숙되면 재결합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장관은 강연후 기자들의 질문에 “공동선언에 ‘재결합’이라고 표현된부분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라며 “면회소가 설치돼 이산가족 교류가 활발해지면 10년이나 20년쯤 후엔 상호 자유의사에 따라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는뜻”이라고 설명했다. 박장관은 이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과 관련, “김위원장이 ‘고위급회담 한두번 (다른 사람을 먼저)보내고 세번째쯤 내가 (서울에)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장관은 “우리가 평양방문을 준비하다 보니 2개월이 굉장히 짧았다고 판단해 지금부터 김위원장 답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현진기자 jh
  • 離散 근본해법에 ‘남북 공감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재결합’이란 대명제에 의견을 접근시켰다는 4일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의 전언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희소식이다. 물론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상호방문→재결합이란 절차는 우리 정부가줄곧 견지해온 이산가족 문제의 해법으로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같은 우리의 구상에 북한,특히 최고 통치권자인 김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동조의 뜻을 표시했다는 것이다.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남북 양측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간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대단한 성과라는 얘기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의미는 북한 수뇌부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의지가 확인됨으로써 당장 코앞에 예정돼 있는 절차들이 가속도를 받을 공산이 커졌다는것이다.오는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물론 9월에 논의될 상시 면회소 설치 문제도 쉽게 해결되리란 기대가 커졌다. 면회소가 성공적으로 설치돼 매월 수백명씩의 상봉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경우1,000만 이산가족 전체가 생전에 가족의 얼굴만이라도 볼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실제 일각에서는 남북 양측이 올 연말까지 이산가족 1,000여명의 상봉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산가족들이 남쪽이나 북쪽으로 완전히 이주,재결합하는 최종 단계의실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도 “면회소가 설치돼 이산가족 교류가 활발해지면 10년이나 20년쯤후 상호 자유의사에 따라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며 ‘먼 훗날’의 얘기임을시인했다. 남북 양측의 첨예한 체제대립,특히 북측의 폐쇄적인 사회분위기가 완전히바뀌지 않는 한 재결합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협 등 다각적인 교류 활성화로 남북 양측의 연결고리가 굵어지고,통일논의가 병행돼 정부가 구상하는 남북 연합단계에 이르면 재결합의 꿈이의외로 빨리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상연기자 carlos@. *金위원장 답방 9월 중·하순이 가장 유력. ‘꿈 속의 일’처럼 여겨지던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점차 실체화되는 느낌이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이 4일 전한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관련 발언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고위급회담차 다른 사람을 한두번 먼저 보내고 세번째쯤 내가 (서울에) 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또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 등을 명기한 합의서에 서명을 한 뒤 “서명했으니 반드시 지키겠다”고 10번 이상 반복했다는 뒷얘기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합의서에는 답방 시기가 명기되지 않았지만,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치밀한 성격상 구두로는 구체적인 시기를 두 정상이 합의했을 것이란추측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답방 시기는 언제가 될까. 일단 4일 박 장관의 발언내용에서 어렴풋이 추론해 볼 수 있다.박 장관은“우리가 평양방문을 준비하다 보니 2개월이 굉장히 짧았다고 판단,지금부터 김 위원장 답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르면 2개월 이후에 답방 일정이 잡혀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통일부 주변에서는 정황상 9월 중순∼하순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온다.오는 10월은 북한에 노동당대회가 있는 달이고,서울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도 열린다.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9월초 비전향장기수 송환이 실현되고 이산가족면회소 설치까지 합의되면 9월 중순쯤 가서는 남북 양측의 화해 무드가 최고조에 달해 답방시기로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측이 김 위원장의 경호문제 등을 우려,연말-연초로 방문시기를조절할 가능성도 있다. 김상연기자
  • [대한포럼] 북으로 가는 사람들

    지난 달 30일 금강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 전원을 9월초에송환할 수 있도록 추진하자는 데 남북이 합의했던 바로 그날,이들의 송환을추진해 오던 한 민간단체가 ‘북송희망 장기수 5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명단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그들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고령자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을 것이다.80대가 13명,90대도 두사람이나 있었다.3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다니 “사상과 이념이 도대체 뭔가?”,독자들은 잠시나마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 장기수 송환과 국군포로 문제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는 그동안 북한에 억류중인 국군포로와 납북어부등의 송환 문제와 연계돼 있던 게 사실이다.이른바 ‘남북한 상호주의’가그 논리적 근거다.그러나 이제는 ‘장기수들을 먼저 보내주고,국군포로 등의 소환을 주장하자’는 쪽으로 여론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한나라당의 의원연찬회에서 젊은 의원들이 ‘비전향장기수의 조건없는 북송’을 주장하는 상황이다.‘6·15남북 공동선언’의 위력이라고 할까? 이 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분단상황을 살고 있는 국민이라면 이렇게 느낄 것이다.“살아생전 고향에 가서 가족·친척들을 만나고 싶다”는남한 이산가족들의 염원이 절절하다면,“죽기전에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과친척들을 만나고 싶다”는 장기수들의 염원 또한 똑같이 절절한 것이라고.비전향 장기수 송환도 ‘이산가족 재결합’차원에서 받아들이면 된다. 정작 9월초 송환 추진 보도를 접한 당사자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됐다니,꿈만 같다”면서도 말을 아낀다고 한다.어찌 그러지 않겠는가.72년 ‘7·4공동성명’이래 ‘꿈이 꿈으로 끝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일것이다. 언론은 또한 ‘남과 북 모두에 혈육을 두고 있는 남한 출신 비전향 장기수들’의 고통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상봉의 기쁨’과 ‘헤어짐의 아픔’을겪고 있다는 것이다.“왜 북으로 가려느냐”는 형제자매들의 애절한 호소에,“멀지 않아 남북 자유왕래가 실현될 것’이라거나,“북으로 가는 것이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남한에 두고 가는 가족들을 설득한다고 한다. *‘이산’강요하는 ‘분단’은 범죄다 남한 출신 비전향 장기수 얘기가 나올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정순택(80)노인이 그분이다.필자는 그분과는 일면식도 없고 다만 그분의 책 ‘보안관찰자의 꿈’을 읽었을 따름이다. 충북 진천이 고향으로 6·25 전에 월북한 정노인은 58년 남파될 당시 부인과 코흘리개 두 아들을 남겨 두었다.정노인은 남파 즉시 체포돼 31년 4개월의감옥살이 끝에 89년 12월 가석방됐다.정노인의 인생역정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그분이 쓴 책속에 공개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느꼈던 그 절망감을 말하기 위해서다.북으로 보내는 편지는 각각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지금쯤은 70이 넘었을 부인에게는 ‘내 사랑 두고 오고 당신 사랑 가지고 온 남편이…’.40대가 됐을 아들들에게는 ‘코 흘리고 오줌똥 싸던 너희들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아비가…’.이보다 더 진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의 말이있을 수 있는가.사상과 이념을 떠나 이산은 비극이고 그같은 이산을 강요한분단은 그 본질에 있어 범죄다. ‘북으로 가는 사람들’의 뒤를 이어 북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들과 납북인사들도 가족들 품으로 하루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張潤煥 논설고문]yhc@
  • 쿠바소년 엘리안 “돌아왔어요”

    [워싱턴·마이애미·아바나(쿠바)외신종합]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군(6)이 7개월간의 미국체류를 끝내고 28일 쿠바로 귀국했다. 엘리안군은 이날 미국 연방대법원이 그의 귀국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친척들의 상고를 기각한 지 40여분만인 오후 4시 43분(현지시각) 워싱턴 근교의 버지니아주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아버지 후안 곤살레스씨의 손을 잡은 채 전세 비행기에 올랐다. 엘리안군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밀항선을 탔으나 플로리다주 앞바다에서 좌초돼 어머니를 잃고 타이어 튜브에 매달린 채 이틀동안 표류하다 추수감사절인 지난해 11월25일 극적으로 구조됐다. ◆귀국=곤살레스 부자의 귀국 길에는 엘리안군의 새 엄마와 이복동생,엘리안군의 무료함을 달래 주기 위해 쿠바에서 데려온 그의 친구들이 동행.전세기는 3시간만에 환영군중들이 엘리안군을 ‘소년 영웅’으로 부르며 열광하는가운데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엘리안군이 부친의 팔에 안겨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자 마중나온 800여명의쿠바 어린이들은 “엘리안,엘리안”을 외치며 열렬히 환영.군악대가 쿠바 국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도착한 엘리안군 일행은 자동차에 분승,친구,친척들과의 재회를 위해 모처로 출발.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은 이날 미국을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인듯 공항환영행사에 불참. ◆양국 해빙 계기=엘리안군이 쿠바로 돌아가는 날 빌 클린턴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식량 및 의약품 수출을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할 뜻을 피력한 것과 관련,일각에서는 미·쿠바관계의 해빙을 진단하는 분위기.엘리안 문제가 문제가 불거진 직후 쿠바에서는 연일 수십만명의 쿠바인들이 모여 엘리안 송환을 요구했다.엘리안군의 귀환은 예상되던 외교적 갈등을 가라앉히면서 양국 관계 개선의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소식통들은 분석. ◆체류비용=미법무부는 엘리안군의 보호권을 둘러싸고 지난 7개월 동안 벌어진 법정소송에서 총 182만달러(약 20억원)의 비용을 사용했다고 밝혔다.법무부는 이날 대법원이 소년의 쿠바 귀국을 허용키로 한 직후 공개한 회계자료에서 지난 11일 현재까지 이 사건에 소요된 비용은 182만6,000달러였다고공개. 가장 큰 단일부문 비용은 이민귀화국(INS)관계자,법무부 보안관 및 변호사등이 워싱턴과 마이애미 및 쿠바를 오가며 쓴 여행경비로 총 78만 6,000 달러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INS 및 법무부 보안관들의 초과근무 수당으로 지급된 61만 8,000달러였다.4월 22일 엘리안을 친아버지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마이애미의 친척집을 급습했던 이른바 ‘재결합 작전’에는 22만9,686 달러가 소요됐다. ◆쿠바정부 자제=쿠바 정부는 엘리안군의 송환 소식이 알려진 직후 전국민에게 냉정과 침착을 잃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해줄 것을 당부.쿠바 정부는 이날 국영 TV방송을 통해 내보낸 짤막한 성명을 통해 미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내용을 전한 뒤 “모든 쿠바인들이 최대한의 냉정과 위엄,침착성을 유지해달라”고 당부. ◆송환판결=앞서 미 대법원은 28일 엘리안의 쿠바 귀국을 봉쇄해 달라는 엘리안의 친지들의 상고를 기각.마이애미 거주 친척들은 엘리안의 귀국을 허용한 항소 법원의 판결이 부당하다며 지난 26일 대법원에 상고,대법원 심리가열릴 때까지 엘리안의 미국 체류를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엘리안사건 일지. 1999.11.22 엘리안,어머니와 쿠바서 출발. 11.25 바다에서 구조. 11.27 아버지,엘리안 쿠바 귀환 요구. 12.10 미국 친척들,엘리안에 대한 난민지위 요구. 2000.1.5 미국이민귀화국(INS), 1월14일까지 쿠바 귀환 결정. 1.19 미국 친척들,INS결정에 불복 소송 제기. 3.21 미국 법원,소송 기각. 4.6 아버지 곤살레스,미국 도착. 4.22 INS,엘리안 강제 구인.부자상봉. 6.23 미국 항소법원,쿠바귀환 판결 재확인. 6.26 친척들,대법원에 상고. 6.28 대법원,상고 기각,엘리안 쿠바로 귀환.
  • 金대통령 기념사 요지

    한국전쟁은 남한만 공산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포함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공산지배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국군은국가방위를 위해 사명을 다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민족 전체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요구하고 있다.그리고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소명이다. 평양회담에서 민족문제는 우리가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합의했다.자주는 외세배격과 같은 기존의 북한 주장이 아니다.미·일·중·러 4대국과 협력하는 가운데 민족끼리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자는 의미다. 통일에 대해서도 하나의 접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이름으로 종전과는 달라진 자세를 보였다.우리가 말하는 남북연합과매우 상통한 것이다.남북연합이란 남북 최고지도자회의,남북각료회의,남북의회회의 등의 합의 기관을 두어서 양쪽이 완전히 합의한 것만 하나하나 실천해 가자는 뜻이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는 완전한 합의를 했다.모든 이산가족이 빠짐없이재결합의 기쁨을 나눌 수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하)청사진과 미래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최근 대한매일이 주최한 국군 모범용사 부부 청와대 초청 다과회에서 “남북문제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특히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쉬운 것부터 벽돌을 쌓듯 하나 하나 추진해 나가면서 다음 대통령이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부터/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남은 2년반 동안의 임기중 남북관계 구상을 함축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총체적인 바탕은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임을 알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여러차례 “통일은 20∼30년 뒤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바랄 뿐,달성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또 통일은 의도하거나 기획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다 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관측도 이를뒷받침해 주는 언급이다. 김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남북공동선언 2항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의외의 성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연합 뿌리내리기/ 그렇다면 김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무엇일까.가능한 쉬운 것부터 해결하려는 자세여서 종합적인 청사진을 조망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단독회담에서의 논의내용을 감안할 때,그의 ‘3단계 통일론’중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의 안정적 운용과 정착화로 볼수 있다.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각료회의,국회회담 등을 통해 남북연합단계를 착근(着根)시키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밝힌 대목은 그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가 평화공존에 대한 남북간 합의에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3단계 통일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 대통령은 남북연합단계의 첫 단추를 ‘평화공존 속의 평화교류’로 보고 있다. ●다양하고 착실한교류/ 앞으로 발빠르게 진행될 남북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및 재결합,비전향장기수와 납북인사 송환협의,체육·문화·예술분야의 교류 등도 남북연합단계라는 큰 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김 대통령은 '남북 평화공존이 합의된 뒤부터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교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그래야만 힘의 논리에 의해 한 체제가다른 체제로 급속히 흡수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있다는 논리에서다. 어쨌든 이런 교류협력 작汰? 정상궤도에 진입하면 김 대통령은 남북연합을위한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투자보장 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청산결제 방안 등이 그것이다.또 평화공존을 담보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 및 군비통제,평화체제 유지 공동감시단 가동 등의 수순을 밟게될 것이다.나아가 북한이 미·일과의 수교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사회로부터 보장받고 남북이 공동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잡는 일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현기자 yangbak@. *3단계통일론 정착 '이제 첫걸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남북연방-완전통일)은 이제 겨우 1단계의 초입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가녀린 싹을 막 틔운 셈이다. 따라서 조심스럽고 지속적인 ‘양육(養育)’이 중요하다. 양육에 필수적인 ‘물’과 ‘양분’은 역시 남북 상호간 교류지속이다.그중에서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산가족 상봉의 연속성,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이 기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국방위원장 답방/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보더라도 정상간의만남은 그 어떤 대화방식보다 효과가 크다.이 때문에 김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70대 노인이 평양에 왔는데 예의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안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까지 해가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온 힘을쏟았다. 앞으로 1단계(남북연합) 정착에 필수적인 남북연합 정상회의,남북연합 각료회의,남북연합 회의(의회) 등을 구성하려면 정상간 대화는 무엇보다 필수적이다.특히 북한은 우리보다 체제가 일사불란하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태도와 의지 하나하나가 통일 논의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이산가족 교류 정례화/ 정부당국의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여론이다. 고위층끼리 아무리 합의를 도출해도 민심이 따라오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우려가 있다.따라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계속 만나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통일에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이 2차,3차로 계속 이어지면서 통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김 대통령이 그리는 남북연합 단계도 가능한 것이다.따라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의 지속적인 교환방문은 물론,판문점 등에 면회소와서신교환소를 설치하는 등 이산가족의 교류를 상시화하는 게 중요하다. ●경협의 제도적 장치/ 민간차원이든 정부차원이든 남북간 경제협력을 병행해야 통일 논의가 견고함과 지속성을 띨 수 있다.경협이 깊숙이 진행될수록 뜻밖의 돌발적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거나 통일 논의 자체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어진다. 남북 양측이 벌여 놓은 장·단기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어느한쪽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무효화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남북 당국은 경협을 그때 그때 단발성으로 진행시킬 게 아니라,장기플랜을 토대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전문가 제언.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차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지난 91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천명한 바 있다.소련제국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고려연방제라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계속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교와국방을 서로 나눠 갖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같은해 7월 북한의 한시해(韓時海) 주 유엔 대표는 ‘미국의 초기 연방제’를 거론했다.미국의 초기 연방제는 바로 대륙회의 즉,국가연합을 말하는 것이다.김 위원장의 연방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며 우리의 남북연합과 내용상 같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집권후 특별히 새로운 통일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은 88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만들어진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방안에는 이미 야당 시절부터 김 대통령이 제기해 온 3단계 통일방안이대부분 반영돼 있다.김 대통령은 집권이후 최근까지 경제난 등으로 통일방안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통일정책을 밝히지 않았다고본다. 남북한의 통일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정부는 민간 전문가 등과의 지속적인토론을 통해 국론을 결집해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남북한이 각료회의와 의회 협의회 등을 구축하고 정상회의를 수시로 열 수 있다면 국가연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이행이 되지는 않았지만,91년 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됐던 공동위원회가 국가연합의 실행기구 성격이었다. ●정용석(鄭鎔碩) 단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남과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전혀 다른 체제 속에 살아왔다.장기적인 예비기간을 두고 통일의 단계적 준비가 필요하다.연합-연방-통일이 3단계 통일론의 기본 골간이다.1민족·2국가·2체제·2독립정부 형태인 연합 단계에서는 제반 분야의 교류 협력을 기본으로 삼아야한다.남북 정부의 정상회의,국회 공동회의도 제도화하는 등 민족적 공통점을찾아내야 한다. 특히 북측의 공산주의와 남측의 시장경제 사이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공화국 연합제에서도 남측 입장인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북한과의 상이한 체제·이념·제도를 융합할 수 있는 기본틀이 최우선 과제다. 2단계인 연방단계에서는 1민족·1국가·1체제·2자치정부로서 하나의 국호와 외교·국방권을 갖는다.이 단계에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공존하는 ‘제3의 체제’로 발전돼야 한다. 대외통상관계에 있어서도 남측의 개방경제를 택해야 하는지 북측의 유치산업구조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을 관철할 것인지 등의 협의를 이뤄내야 한다. 통일단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 주장하는 복수정당제·자유선거제·시장경제 등을 북한이 수용할지의 여부가 관건이 된다.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그릇에 담을 때 어느쪽으로든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일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 남북 화해시대/ 적십자회담 추진 어떻게

    오는 8월 남북 친척방문단 교환을 위한 정부의 준비작업이 구체화되고 있다.이산가족 상봉은 적십자사가 다뤄온 인도적 차원의 문제란 점에서 양측 당국대신 남북 적십자사가 이달안에 판문점 등에서 적십자 실무회담을 열고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들은 “실무대표단의 접촉이 이달 안에 시작돼야 8월중순 교환방문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한다. ◆추진 방법 남북한은 판문점 적십자연락관이란 기존의 연락통로를 갖고 있다.언제든 판문점에 가설돼 있는 직통전화를 통해 남북 적십자사 관계자들이협의를 진행할 수 있다. 직통전화로 실무접촉 날짜를 잡은 뒤 판문점에서 회담을 시작하게 될 전망이다. 남북 양측의 적십자 사무총장이 수석대표가 될 실무회담의 최대 쟁점사안은방문단 규모.방문단의 구성방법과 원칙,방문지역 등을 논의한다. 방문단의 대표단은 양측 적십자사의 부총재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방문단의교환에 앞선 사전답사반의 구성과 답사시기도 합의가 필요한 사항.기자단의수행문제와 수행인원은 걸림돌이 될수 있는 문제다. ◆면회소 설치 적십자사간의 실무회담의 주 의제는 친척방문단의 교환.그러나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의 교류를 위한 제반 사안들도 논의해 나갈 수있다는 게 남측의 입장이다.지난 98·99년 베이징(北京)당국간 회담에서 양측은 ‘이산가족 면회소’설치에 의견을 접근한 적도 있다.금강산지역,판문점,나진·선봉지역·신의주 및 중국의 단둥(丹東) 등이 면회소 설치지역으로거론되고 있다. ◆정부 입장 친척방문단 교환합의로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첫 고리를 풀었다고 보고 있다.생사 및 주소확인·서신교환과 면회소 설치 등으로 교류·상봉을 제도화시키는 등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입장이다.해결의 최종 목적지는 자유 왕래를 통한 상봉과 자유의사에 따른 재결합.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이산가족문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이란점에 대해 남북 최고당국자의 인식이 일치한 상태”라면서 “현실적 제안을감안,단계적인 교류·상봉의 확대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석우기자 swlee@. *고향방문단 구성 방법.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오는 8월 북한땅을 밟을 이산가족들의 규모와 대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범위와 규모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볼때 지난 85년 첫 고향방문단 때보다는 많은 인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귀국보고회에서 전보다 많은 인원의 방문이 가능할 것임을 밝혔다.구체적인 규모는 남북 적십자 실무회담에서 조율해 나가게 된다.보다 많은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을 원하는 남측에 대해 북측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85년 당시 양측이 각각 50명씩의 이산가족을 교환했다.또 예술공연단과 취재기자들도 각각 50명,30명씩으로 구성됐었다.상징적인 의미로 볼때 100여명이상의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이 가능할 것으로 점치는 당국자들도 적지않다. 기자단 규모도 85년 수준이상으로 기대된다. ◆선발 방법 나이가 최우선 고려 원칙이다.그다음 고려대상은 이산가족의 촌수.우선 70세이상의 고령자 우선 원칙이 적용된다.앞으로 더 기다릴 시간적여유가 없기 때문이다.부모 및 배우자,자식을 북녘에 두고 온 이산가족이 먼친척을 둔 가족보다 우선권을 갖는다.현재 정부는 방북개념에 “헤어질 당시의 가족과 그후 출생한 자녀,친척은 방계 8촌,처외가 4촌”으로 규정짓고 있다. 정부는 대한적십자사 등에서 이산가족상봉 신청 접수를 받은 뒤 추첨을 통해 선발한다는 계획이다.나이·이산가족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대상자를 정한 뒤 추첨을 통해 뽑게 된다.선발기준은 컴퓨터로 프로그램화해 입력시킨다는 방침이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신청자 수는 모두 14만6,000명.이 가운데 70세이상의 고령자는 5만명정도.100명의 방문단이 방북할 경우 최소 500대 1이상이 된다는이야기다.전국적으로 70세이상의 이산가족은 26만명 가량이다. 이석우기자
  • [사설] 이산가족 상봉, 첫 걸음이 중요

    남북정상회담의 여러가지 성과중 최우선 실현 과제는 이산가족 상봉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공동선언문에서 올 8·15에 즈음한 남북 고향방문단의 상호 교환을 약속했다.앞으로 불과 2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김대통령은 이와 관련,서울 귀환 대국민보고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 범위는 단언할 수 없지만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의 비원(悲願)이 마침내 말이 아닌 실천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정부가 추정하는 남한의 이산가족은 766만7,000명 가량이다.이들 가운데 실향민 1세대는 12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은 모두 세상을 뜨기 전에 북한의 가족과 친지를 만나보겠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하지만 단기간에 이산가족 모두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규모도 방대하지만 사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의 지속성이다.과거처럼 단발성 행사로 끝나거나 상봉 규모를 조금 늘리는 수준에 그쳐서는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크다.한두 차례로 끝난다면 상봉하지 못한 이산가족들의 실망은 더욱 커질것이다.남북한의 상호신뢰도 훼손될 것이다.규모도 꾸준히 단계적으로 늘려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봉 주체는 인도주의 정신에 맞추어 남북한 적십자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조만간 실무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우리측은 과거 북한과의 이산가족 상봉 협상에서 월 100명 가량의 고향방문단을 1∼2회 교환하는 방안을제시했었다.지난 85년 남북 고향방문단의 규모는 65명이었다.그러나 과거에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민족공동체라라는 공감대 속에 파격이 잇따랐다.고향방문단 규모에서도파격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고향방문단과 더불어 시급한 후속조치는 편지교환소 및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문제다.판문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군사적으로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교통이나 지리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 여겨진다.생사확인을 위한 이산가족 명단 교환도 월 100∼300명 수준이 유력하게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북한 당국이 성의를 보인다면 10배,100배도가능하다고 본다.북한의 이산가족 전산망 구축을 위한 지원 방안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이산가족 문제의 최종 목표는 자유로운 왕래를 통한 상봉과 자유의사에 따른 재결합이다.그렇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다.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이산가족 상봉은 흔들림없이 추진돼야 한다.
  • 남북 화해시대/ 통일부 洪良浩 인도지원국장

    “정부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일회성이 아닌 제도화 수준으로 정착시키기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 실무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 홍양호(洪良浩)인도지원국장은 16일 “남북공동선언의 이산가족 상봉 합의는 두 정상이 직접 관여했다는 점에서 어느때보다 성공적으로 이행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 광복절에 북한의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몇명인가. 구체적인숫자는 북측과 협의해 봐야 할 것이다.이산가족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만날 수는 없고 이번엔 1차로 일부만 상봉할 것이다.남북은 지난 89년571명,92년 241명씩을 상호 방문키로 합의했었다. ◆정부의 이산가족 정책방향은. 가장 기본적인 생사 확인에서부터 서신 교환,상봉,왕래,판문점 등에 면회소 및 서신교환소 설치,궁극적으로는 재결합 및이주까지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 및 상담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국 264개소에북한주민접촉신청서 접수 및 이산가족 민원접수 창구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통일부 인도지원국 이산가족과(02-732-5437)나 대한적십자사 본사(02- 3705-3653) 및 시·도지사,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02-2232-5050) 등에서접수를 받는다.인터넷(http:////reunion.unikorea.go.kr)으로도 신청할 수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한국 현대조각 주지주의 창시 전국광 추모전

    ‘한국 현대조각의 주지주의적 경향을 창시한 사람’‘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논리적 미술어법으로 풀어낸 작가’ 그가 바로 45세의 나이로 요절한 조각가 전국광이다.올해는 그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되는 해. 이에 맞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선 ‘돌에 핀 석화(石花)’란 이름의추모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작은 ‘적(積)’‘매스(mass)의 내면’ 시리즈 등 90여점.청동과 석조각이 대부분이다.조각전으로선 드물게 드로잉 연작도 30여점 나와 있어 눈길을 끈다.‘적’이 겹겹의 지층들이 무겁게 짓눌러 일궈내는 오브제의 율동을 보여준다면,‘매스의 내면’은 자연의 내재율을 기하학적 구조의 실공간과허공간을 통해 구체화한 작품이다.작가는 자연을 원자적 요소로 분해한 뒤예술적 해석을 가미해 재결합하는 이른바 ‘분석적 환원’ 방식을 취한다.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숙명적으로 난해하고 주지주의적인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작가는 생전에 “출렁거리는 수면,완만한 곡면을 이루며 한없이 펼쳐진광야,하늘을 가르듯 지나는 천둥,피부에 와 닿는 기류운동 등의 체험을 녹여 매스에 주입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라고 말하곤 했다.이같은 관점은 71년 ‘입방체의 분할’을 시작으로 81년 ‘입체분할’‘평면분할’로 이어졌다.80년대를 관통한 ‘매스의 내면’ 시리즈는 이런 작업흐름의 결정판이다. 한편 이번 추모전에 때맞춰 전국광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한 일대기 ‘씩웃고 술 한잔-전국광의 조각과 생애’(가나아트)도 나왔다.지은이는 전국광의 아내이자 조각가인 양화선.양씨는 “젊은 시절 남편은 넥타이만 달랑 매고 작가들 앞에서 스트리킹을 하는 등 기인적 행동도 서슴지 않았지만 예술의식만큼은 누구보다 건강했고 시대를 앞서 나갔다”고 회고한다.전시는 7월 9일까지 (02)720-1020. 김종면기자
  • 800만 실향민 호적 전산화

    정부는 800만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 실향민의 호적을 전산화,국가차원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행정자치부는 14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재결합 및 상봉 문제에대한 남북대화가 본격화될 것에 대비,이산가족 통계자료 등을 데이터 베이스(DB)화해 주민등록망과 연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행자부는 이를 위해 우선 명부로는 관리되지 않고 통계 숫자로만 관리되고있는 주민 통계부터 바로잡기로 하고 전국 1,663개의 시·군·구·읍·면의호적관련 부서에 이북5도민 호적전산화 작업 지침을 시달했다. 현재 정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실향민은 지난 70년 가호적 취득시 파악한 546만3,000명을 근거로 추산한 766만7,000명.이산가족 2,3세대를 합한 수치다. 그러나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추산치일 뿐 정확한 통계숫자는 아니다. 행자부는 1단계 작업으로 오는 7월말까지 이들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을하기로 한 것이다. 자료 파악은 이미 호적전산화가 이뤄진 3,800만명의 주민 가운데 이북이 원적인 사람을 선별하는 작업과 이북5도민회에 비치된 도민회 명부 35만8,000명,동화은행 설립시 주주명부 123만명,통일부에 신청한 이산가족 상봉 희망자 명부 14만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명단이 파악되면 바로 이들의 원적지를 비롯,출생지,주소,성명(한글·한자),주민등록번호,호주(세대주)와의 관계 등의 입력작업을 벌여 출력시 원적지또는 주소지별로 구분할 수 있도록 내년 5월까지 DB 구축을 마치기로 했다. 또 내년 5월부터는 2단계로 지금까지 DB 구축이 안돼 전산작업이 어려운 3,158만명에 대한 자료를 전산화하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호적원부는 총 6,958만명으로 이중 6,500만명이 입력완료됐으나 전산출력이 가능한 인원은 3,800만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지금까지 실향민에 대한 자료가 부실,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전산화 작업을 벌여 통일에 대비한 자료 추출은 물론 주민등록 전산망과 연계,정책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성추기자 sch8@
  • 金대통령 만찬사 요지

    존경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남 위원장,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남과 북의 지도자 여러분!김정일 위원장과 저는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습니다.이제 비로소 민족의 밝은 미래가 보입니다.화해와 협력과 통일에의희망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오늘 역사적인 정상간 합의를 도출하는데 적극적으로 인도해 주신 김정일 위원장과 여러분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우리는 출발점에 섰습니다.그동안 쌓였던 불신을 털어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남과북이 전쟁의 재발을 막고,상대방을 해치지 않으며,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3대 원칙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습니다.그것만이 7,000만 우리 민족이통일로 향하는 가장 탄탄하고 효과적인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이래 우리 민족 전래의윤리에 따라 3년상을 치른 그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였습니다.그리고 정치적안정을 이룩하고 대외관계와 경제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데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고자 서로 힘을 합칠 것을제의하는 바입니다.앞으로 남북간에 협력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우리 두 사람과 책임있는 당국간의 지속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지속적인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 서로 이해를 넓히고 믿음을 쌓아가면 협력 또한확대될 것입니다. 드디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평화가 가득차고 한강과 대동강에서 번영의물결이 넘칠 것입니다.그리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통일이 올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민족 스스로 열어 나갈 수 있다고말입니다.우리 민족은 이제 불신과 적대감을 버리고 화해와 협력을 선택하는지혜와 용기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또한 남과 북에서 애타는 심정으로 재결합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산가족이 가까운 시일 안에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인도적인 결단도 우리는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6월이라는 달이 민족의 비극이 아닌 내일에의 희망의 달로 역사에기록되어야겠습니다.그리하여 이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우리 후손들에게도 가장 자랑스러운 달로 기억돼야 하겠습니다.
  • 金대통령 방북 출발 인사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오늘부터 2박3일 동안 평양을 방문합니다.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분한 머리를 가지고방문길에 오르고자 합니다. 지난 55년 동안 영원히 막힐 것같이 보였던 정상회담의 길이 이제 우리 앞에 열리게 된 것입니다.남북정상회담은 만난다는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오해도 풀고 상대의 생각도 알고 하는 가운데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자 합니다.이해가 커질수록 평화와 협력도 커질 것입니다. 저의 이번 평양 길이 평화와 화해에의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남북 7,000만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냉전종식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또 정치·경제·문화·관광·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크게 실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특히 갈라진 이산가족들이 재결합을 이루어혈육의 정을 나누는 계기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이번 평양방문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남북간의 계속적이고 상시적인 대화의 길이 되어야 할 것이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도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민족사적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각별한 지원을 당부드립니다.감사합니다.안녕히 계십시오.
  • 동숭홀 ‘내 생애 최고의 날’ 코믹 감동으로 버무린 결혼생활

    극단 PMC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내 생애 최고의 날'(원제 I do, I do)을 1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한다. 국내 초연인 이 작품은 두 남녀주인공의 결혼식부터 출산,자녀교육,권태기,재결합,그리고 자식들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50년간의 결혼생활을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풀어놓는다. 두명의 배우로만 진행되는 극형식도 독특하지만 극단측이 마련한 이벤트도재미있다. 잉꼬 노인부부의 앙코르 결혼식,형편이 어려운 커플의 합동 결혼식,미혼 커플의 모의 결혼식 등 공연기간동안 10회의 무료 결혼식을 주선해준다.(02)3442-3016 김성택 경민대 연극영화과교수가 연출하고, 박해미·이윤표(아그네스)김일우·이병준(마이클)이 출연한다.매일 오후 4시·7시30분 두차례 공연. 이순녀기자 coral@
  • 남북정상회담 D-20/ 이산가족문제 커질듯

    다음달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을까. 전문가들은 정상회담 자체가 남북대화 사상 가장 획기적인 이벤트인 만큼,어느정도 진일보한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정부의 한 관계자는“지난 85년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85년 적십자회담을 통한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 행사는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인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였다.85년 5월 남북은 ‘이산가족 및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에 합의,9월에 각 151명의 고향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방문,가족들과 만났다. 그러나 대규모 상봉 행사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그후론 중국 교포 등 비공식 루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현재 우리정부의 추진방침은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물론,우편물 교환소와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 설치 등 제도적 장치까지 추진하고 있다. 판문점에 면회소를 설치하는 방안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매우 획기적이다.그러나 그만큼 북한측이 부담을 느껴 난색을 표할우려가 크다.때문에 85년의 경우처럼 고향방문단을 구성,서울과 평양을 상호방문하는 이벤트성 사업을 우선 추진하는게 더 홀가분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자체가 전격적으로 성사됐듯 이산가족 문제 역시 양 정상간 만남에서 예상외의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전문가들은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있어 이산가족 상봉을 최우선 과제로 중시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적지않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한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경협을 적극 거론하면,북측도 이산가족 문제에 성의를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6월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잘 풀리더라도 구체적인 방법과 일정은 후속 실무회담에서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이산가족 협상일지. ●71년8월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첫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72년8월 남북적십자 1차 본회담에서 주소 및 생사확인,방문,상봉,서신거래,재결합 등 5개항 논의. ●85년9월 이산가족 및 예술공연단 서울·평양방문 가족 상봉. ●91년12월 남북기본합의서에 이산가족 서신거래,왕래,상봉,방문,재결합 실현 명시. ●99년6∼7월 베이징 남북차관급회담 개최,이산가족 문제 협의.서해교전 등으로 무산.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4)적십자회담

    84년 9월8일 아침.한달 전 서울·경기 일원의 대홍수로 엄청난 수재민이 발생,복구 작업에 정신이 없었을 때였다.북한 적십자회는 ‘방송 통지문’을통해 쌀 50만석 등 수해지원 의사를 통보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해 다각적 검토에 착수했다.당시 정용석(鄭鎔碩·8∼10차 본회담 대표·단국대 교수) 한적 청소년자문위원은 “일각에선 북한의 대대적 체제선전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반대도 심했었다”며“그러나 경제적 자신감을 토대로 남북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뤘다”고 회고했다. 72년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성사를 위해 25차례의 예비회담에관여했던 이병웅(李柄雄)적십자남북교류위원장은 “결렬 직전까지 가는 숨가쁜 고비를 인내와 끈기로써 버텼다”고 회고했다. 남북대화의 물꼬는 이처럼 늘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터졌다.60년대 내내 대남강경책을 구사한 북한과 ‘선(先)건설 후(後)통일’을 견지한 박정희 정권사이에서 남북대화가 설 자리가 없었다.첫 신호탄은 70년 8월15일 선의의 경쟁을 촉구했던 ‘평화통일 구상’이었다.결실은 1년 후 71년 8월20일 판문점에서 첫 예비접촉을 통해 역사적 남북대화가 시작됐다. ■70년대/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은 72년 8월30일 평양 대동강 회관에서열렸다.남북은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 확인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실현 ▲이산가족의 서신왕래 ▲이산가족 재결합 ▲기타 인도적 해결문제 등의 5개항의 의제를 재확인했다.서울 2차회담에 이어 흥분이 가라앉은평양 3차 본회담(73년10월24일)부터는 남북간 견해차가 드러났다.북측은 “남한의 모든 법률적·사회적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며 정치적 색깔을 노골화했다.이후 거의 한달 간격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 본회담(73년 7월11일)까지 지속됐지만 ‘반공활동 금지’를 공동성명에 넣자는 북측 요구로결렬,12년간의 동면에 들어갔다. ■80년대/ 84년 9월 남한 대홍수에 따른 북측의 수해물자 인도 제의에 따라돌파구가 마련됐다.북적은 남한 수재민에게 쌀 5만석 등을 제의했고 이를 계기로 8차 본회담이 5월27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열렸다.85년 9월,40년만의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실현되는 쾌거를 이룩했다.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이 성사됐다. ■90년대/ 89년말에서 90년중반까지 제2차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공연 문제로 8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을 가졌다.하지만 북측은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공연을 고집,아무 성과없이 중단됐다.92년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문제도 협의했지만 8차례 실무접촉이 무위로 끝났다. ■평가/ 적십자 회담은 출발부터 인도적·정치적 색채가 동시에 섞여있는 이중성격을 갖고 있었다.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명분에서 시작됐지만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쥐면서 정권 유지에 활용하겠다는 남북 정권 담당자들의 정치적 계산도 숨어있었다.정용석 교수는 “인도주의 정신은 남북간 긴장속에서 어렵게 남북대화를 지탱했지만 결국 정치적 결정력에 의해 좌우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당시 주역들. 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대변했던 남북 적십자 회담은 남북모두숱한 ‘통일 일꾼’들을 배출했다. 남한 대표들의 경우 이후 통일부 장·차관과 외무부장관 등으로 정권을 지탱하는 주요 축으로 활약했고 북한 대표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71년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던 예비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는 이범석(李範錫)당시 한적부총재였다.그는 이후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다 83년 아웅산 사건으로 순직하기도 했다. 역시 대표로 활약했던 서영훈(徐英勳) 당시 한적 청소년부장은 그후 흥사단단장과 KBS사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말부터 민주당 대표로 정치권에서 맹활약중이다. 홍일점 대표였던 정희경(鄭喜卿) 당시 한적 청소년지도위원도 15대 전국구국회의원을 지냈다.7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자문위원을 지낸 박준규(朴浚圭) 당시 서울대교수는 그후 정치인으로 변신,8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의장에까지 올랐다. 8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수석대표였던 이영덕(李榮德) 한적부총재는 통일부총리로서 대북 통일 정책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통일부총리 이후 총리직도수행했다. 당시 대표였던 송영대(宋榮大) 한적구호협의회 위원은 대북창구로서 눈부신활약을 하다가 통일부 차관을 역임했다. 자문위원이었던 한승주(韓昇洲) 고려대교수는 문민정부에서 외무부장관으로4강외교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이다. 북한의 경우 80년대 모습을 드러낸 박영수 대표는 대남 강경파를 대표했던인물이다.94년에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70년대 자문위원으로 뛰었던 윤기복 당시 노동당 대외연락위부위원장은 81년 조평통 부위원장으로 재직 이후 대남 사업을 주관하는 막강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북측 수석대표 또는 대표들은 이후 큰 활동없이은퇴,통일 무대에서 사라졌다. 오일만기자
  • MS, 2개社분할안 강력 반발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마이크로소프트(MS)는 28일(현지시간)미국 연방 및주정부들의 MS 2개사 분할안을 ‘극단조치’ 또는 ‘전복기도’라고 강력히비난하고 다음달 10일 대응안을 법원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MS는 또 분할안은 법정에서 패소할 것이라고 말해 항소 및 상고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앞서 미국 연방정부 및 17개 주정부는 28일 독점금지법 위반 판결을 받은 MS사의 시정책으로 회사를 2개로 분할하고 향후 최소한 10년간 재합병을 금지해 줄 것을 연방법원에 요청했다. MS사의 독점금지법 위반 소송에서 승소한 법무부와 19개주중 17개 주정부는이날 연방 지방법원의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에게 제출한 17쪽의 공동 제안서에서 MS사를 윈도 운용체제 부문과 워드프로세서,스프레드시트,데이터베이스 등 소프트웨어 응용 부문의 2개 회사로 분리시키고 이후 10년간 재결합하지 못하도록 해줄 것을 촉구했다. MS사의 빌 게이츠 회장은 비디오로 미리 녹화한 성명에서 “만일 오피스 그룹과 윈도 그룹이 함께 일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날 윈도를 갖지 못했을것”이라면서 정부측의 MS분할 제안은 “첨단기술산업의 혁신에 찬물을 끼얹는 영향”을 미치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hay@
  • 權禧老씨 부인 수배 후원금 5,800만원 갖고 잠적

    부산 동래경찰서는 26일 수천만원을 가지고 잠적한 권희로(權禧老·72·부산시 동래구 거제동)씨 부인 돈모씨(52)를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혐의로 수배했다. 일본 야쿠자를 살해해 31년간 일본에서 형무소생활을 하다 지난해 영구귀국한 권씨는 과거 일본에서 후원금을 갖고 달아났던 돈씨가 25일 또 돈을 갖고잠적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권씨는 경찰에서 “2개월 전부터 재결합해 살던 아내가 이날 오후 낮잠을자고있는 사이 안방 장롱속에 있던 현금 1,200만원과 4,600만원이 든 예금통장·도장을 가지고 집을 나간뒤 부근 은행에서 모두 인출해갔다”고 밝혔다. 돈씨는 지난 83년 권씨와 옥중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출소후 90년 일본에서 권씨의 옥바라지를 하다 거액의 후원금을 갖고 사라져 권씨의 마음에큰 상처를 남겼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대한포럼] 정상회담 범국민적 지원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7일 대(對)국민담화에서 오는 6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초당적·범국민적 지원으로 성공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분단 55년 만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여야의 협력과 국민적공감대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특히 김대통령은 이번정상회담을 과욕없이 차분하게 대처해 나간다는 전제 아래 정권차원보다는국가적인 연속성을 고려,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김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정쟁의 대상이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총선기간 중에 발표된 정상회담의정치적 시비와 독선적 추진이라는 비난을 해소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정상회담은 정권차원의 일회용 정책이 아닌,민족통일의 대장정(大長征)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최고국정책임자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베를린 선언에서 천명한 4대원칙을 정상회담의 중심의제로 논의해나갈 것임을 재확인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협력기반을 튼튼히 다져나간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본다.6월 정상회담이 우리에게 기대를 갖게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냉전구도를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의 새로운역사를 열어가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다. 남북의 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아 민족의 장래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조성된 만큼 국민모두의 폭넓은 합의와 지원이 요청된다.특히 정상회담에 각별히 무게를 두는 것은‘남북한의 상생(相生)’을 담보할 평화정착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이번 정상회담의 중심의제가 베를린선언에서 제안한 4대과제로 함축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재결합 문제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치적 화해와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을 위한 제도적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남북쌍방의 최고통치책임자 회담에서 가장 확실하고신속하게 협의,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남북정상회담은 양측의 최고통치책임자만이 갖고 있는 권한과 책임감,재량권,보장성 때문에 다른 어떤 회담형식보다도 포괄적이고도 정확하게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다.6월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경우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6.25동란 휴전 이후 지금까지 남북정부간 대화를 기피하고 미국과의협상만을 고집해왔다.북한은 이러한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전술 아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서해북방한계선(NLL) 등 제반문제를 대미협상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북한의 대남전략과 전술이 수정 내지 폐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기대된다.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17일 평양방송 논평을 통해“민족공동의이익을 귀중히 여긴다면 남한 집권상층과도 단합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이유가 김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을 신뢰하게 됐고 이번 회담을 통해 경제복구를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기대감이 작용했다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다만 정상회담개최 사실에들뜬 나머지 지나치게 앞서가는 성급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난마처럼 얽히고설킨 남북문제가 단 한차례의 정상회담으로 한꺼번에 해결되기는 어렵다는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남북정상의 성공적인 만남을 위해 사전준비과정에서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주길 당부한다.공연히 북한을 자극하고 회담에 찬물을끼얹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유의가 요청된다.정상회담의 기대와 낙관이 큰만큼 남북간의 엄연한 현실의 벽을 직시하는 현명함도 잃지 말아야 한다.남북정상회담이 갖는 이같은 역사성과 기대효과를 전제해 볼 때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초당적·범국민적 협력과 지원은 당연한 귀결로 생각된다. [張 淸 洙 논설위원]c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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