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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이투더스카이, 5년만에 재결합

    플라이투더스카이, 5년만에 재결합

    남성 듀오 플라이투더스카이가 5년 만에 재결합할 것으로 보인다. 환희의 소속사인 에이치투미디어 관계자는 “환희와 브라이언이 함께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현재 재결합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음반 작업을 시작했다거나 구체적인 곡 발표 일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1999년 1집 ‘플라이투더스카이’로 데뷔한 이들은 2009년 발표한 8번째 정규 앨범 ‘디세니엄’을 끝으로 각자 솔로 활동에 주력해 왔다.
  • 크리스마스 영화 대표작 ‘나홀로 집에’ 맥컬리 컬킨 근황, 밀라 쿠니스 결별 뒤 폐인 모드?

    크리스마스 영화 대표작 ‘나홀로 집에’ 맥컬리 컬킨 근황, 밀라 쿠니스 결별 뒤 폐인 모드?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주연 맥컬리 컬킨이 초췌한 근황이 공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맥컬리 컬킨이 여자친구 밀라 쿠니스와 결별한 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주연으로 유명한 맥컬리 컬킨이 피자를 먹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공개된 영상 속에서 맥컬리 컬킨의 모습에서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보여줬던 귀여움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피곤함이 가득해 보일 뿐이어서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4분 28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맥컬리 컬킨은 종이 봉투에서 피자를 꺼내 다 먹어치운 뒤 “나는 맥컬리 컬킨이다. 피자를 다 먹었다. 피자, 뉴욕”이라고 말했다. 맥컬리 컬킨은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시리즈에서 연기한 주인공 케빈 역시 피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캐릭터여서 팬들은 더욱 애잔함을 느끼고 있다. 한편 맥컬리 컬킨은 최근 연인 밀라 쿠니스와 결별한 소식이 알려진 바 있다. 네티즌들은 “맥컬리 컬킨, 밀라 쿠니스와 결별하더니 충격을 받았나보다”, “맥컬리 컬킨, 밀라 쿠니스 재결합하면 나아지려나”, “밀라 쿠니스와 결별하고 폐인됐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맥컬리 컬킨, 밀라 쿠니스와 결별 뒤 초췌한 모습 ‘충격’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맥컬리 컬킨, 밀라 쿠니스와 결별 뒤 초췌한 모습 ‘충격’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주연 맥컬리 컬킨이 여자친구 밀라 쿠니스와 결별한 뒤 초췌한 근황이 공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주연으로 유명한 맥컬리 컬킨이 피자를 먹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 속 맥컬리 컬킨은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보여줬던 귀여운 모습이 사라지고 피곤이 가득해 보인다. 4분 28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맥컬리 컬킨은 종이 봉투에서 피자를 꺼내 다 먹어치운 뒤 “나는 맥컬리 컬킨이다. 피자를 다 먹었다. 피자, 뉴욕”이라고 말했다. 맥컬리 컬킨은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 시리즈에서도 피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케빈 역을 맡았다. 맥컬리 컬킨은 최근 연인 밀라 쿠니스와 결별한 소식이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맥컬리 컬킨, 밀라 쿠니스와 결별하더니 폐인됐네”, “맥컬리 컬킨, 밀라 쿠니스 재결합 안 하나”, “밀라 쿠니스와 결별 충격이 컸나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랩 괴물’ 에미넴, 이혼한 전 부인과 3번째 재결합?

    ‘랩 괴물’ 에미넴, 이혼한 전 부인과 3번째 재결합?

    전 세계적으로 865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달성해 일명 ‘랩 괴물’로 불리는 美 래퍼 에미넴(본명 Marshall Bruce Mathers)이 이혼한 전 부인과 재결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20일, 美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에미넴이 전 부인인 킴 매더스(Kim Mathers)와 다시 화목하게 지내고 있으며 법률적 재결합도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킴의 어머니인 케이시 슬럭(Kathy Sluck)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딸의 상태가 많이 안정됐고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며 “에미넴과 관계도 많이 회복돼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핑턴포스트는 최근 에미넴과 킴이 딸 헤일리의 고등학교 홈커밍데이에 함께 참석했다고 덧붙였다. 에미넴과 킴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제했으며 지난 1999년 결혼해 2년 후 이혼했다. 그 후 2006년 1월 둘은 다시 재결합했지만 3개월 뒤 다시 이혼했는데 당시 에미넴은 “킴이 불륜을 저질러 헤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최근 새 앨범 ‘더 마샬 매더스 LP 2(The Marshall Mathers LP 2)’로 컴백한 에미넴은 발매 첫 주 80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오르는 등 성공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허핑턴포스트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국민 여동생’의 파격 드레스

    ‘국민 여동생’의 파격 드레스

    ‘미국 10대들의 대통령’ 저스틴 비버(20)의 전 여친’ 셀레나 고메즈(22)의 근황이 공개됐다. 미국 연예매체 스플래쉬닷컴은 7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에서 열린 매거진 플론트(Flaunt Magazine)의 파티에 참석한 고메즈의 모습을 공개했다. 풋풋한 매력으로 ‘차세대 국민 여동생’이라고 불렸던 고메즈는 다소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검은색 드레스와 검은색에 가까운 와인색 립스틱을 바른 채 파티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고메즈가 입은 파격적인 드레스. 고메즈는 가슴 부분을 깊게 파내 가슴 라인을 강조한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의 특성상 속옷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메즈는 2011년 2월 비버와의 열애가 공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비버의 잦은 기행과 외도설 등에 시달리던 고메즈는 결국 지난 1월 비버와 헤어졌다. 이후에도 재결합설, 결별설이 반복됐지만 현재 두 사람은 완전히 이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 연기는 지금부터 시작해 천천히 만들어가고 싶어요

    제 연기는 지금부터 시작해 천천히 만들어가고 싶어요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사랑한 것 같아요. 이제는 마음이 홀가분하네요.” 최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강태욱 역으로 열연한 탤런트 김지훈(32). 꽃미남 배우로 그저 향기 없는 꽃 같았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멜로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이제 그에게서는 30대 배우의 원숙미와 여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주변에서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해 주세요. 나이를 긍정적으로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죠(웃음). 군대를 갔다 오면서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 대한 각오를 다졌고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이 생겼어요. 확실히 서른이 넘으니 캐릭터에 몰입하는 깊이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대본에 몰입하다가 저도 모르게 울컥해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거든요.” ‘결혼의 여신’에서 태욱은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사랑만은 갖지 못한 남자였다. 억지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고달픈 시집살이로 자신의 일과 꿈을 포기한 아내 지혜(남상미)를 보다 못해 결국 놓아주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결국 지혜가 마음속에 두고 있던 현우(이상우)와 재결합하며 끝을 맺었지만 태욱을 응원한 시청자도 많았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였던 태욱이 진짜 사랑을 알고 변해 가는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저도, 감독님도 태욱이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어요. 생각해 보면 태욱은 사랑에 참 서툰 인물이었어요. 처음에는 자신의 사랑만을 강요하는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모습이었지만 점차 상대방을 배려하게 된 거죠. 그 과정에서 저도 변해 가는 태욱의 모습을 최대한 설득력 있게 표현하려고 애썼지요.”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악착같이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그다. 20대 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도 느꼈단다. 2002년 KBS드라마 ‘러빙 유’로 데뷔해 ‘연애 결혼’ ‘며느리 전성시대’ ‘이웃집 꽃미남’ 등의 작품에 출연했던 그는 그동안 연기보다 잘생긴 외모가 먼저 보이는 연기자였다. “그때는 빨리 뜨고 싶고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만 컸어요. 지금은 조급하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천천히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솔직히 20대 때는 연기가 많이 미흡했던 걸 인정해요. 연기의 매력이 느껴지고 흡인력이 생긴다면 외모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죠. 온전한 성인으로서의 제 연기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캐릭터가 얼마나 공감과 감동을 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는 의외로 코미디 연기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도 짐 캐리와 주성치다. “어려서부터 두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자랐고 그들의 연기력이 뛰어나서 좋아합니다. 특히 주성치의 코미디 연기는 비슷한 것 같아도 잘 살펴보면 각각의 뉘앙스가 다르죠. 정말 천재 같은 배우예요. 물론 장르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저 스스로가 캐릭터에 설득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이번 작품을 통해 멜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그는 “예전에는 내 캐릭터에만 머물러 무조건 열심히만 했는데 이제는 시야가 전체 극의 흐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지고 여유도 생겼다”면서 웃었다. 혹시 ‘결혼의 여신’을 통해 결혼관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상대방이 행복해진다면 기꺼이 놔줄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았어요. 저는 결혼을 천천히 할 생각이에요. 원래 결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결혼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단란하고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컴백설 솔솔’ god 내년부터 완전체? “아직은 글쎄…”

    ‘컴백설 솔솔’ god 내년부터 완전체? “아직은 글쎄…”

    그룹 ‘god’(멤버 박준형, 윤계상, 데니안, 손호영, 김태우)가 내년 컴백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4일 한 매체는 지난 2005년 7집 앨범 ‘하늘 속으로’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한 god가 내년 3월 새 앨범을 발매하며 ‘완전체’로 컴백한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현재 개별 활동 중인 데니안, 손호영, 김태우를 비롯해 팀 탈퇴 후 배우로 전향했던 윤계상과 미국에 있는 박준형까지 더해 재결합을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관심도 뜨겁다. 그러나 god측 관계자들은 “멤버들이 컴백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며 모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god는 지난해 케이블채널 올리브 ‘윤계상의 원테이블’을 통해 멤버 전원이 재회하면서 복귀에 대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희준 “차영과 육체관계 가진 것은 맞지만…내 아들 아냐”

    조희준 “차영과 육체관계 가진 것은 맞지만…내 아들 아냐”

    차영(51) 전 민주당 대변인으로부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당한 조희준(48) 전 국민일보 회장이 “차씨의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다”라면서 차씨와의 관계를 극구 부인했다. 12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조 전 회장은 “남녀 간의 교제관계가 아닌 업무상 협조관계를 유지한 교우관계였을 뿐”이라면서 차씨의 주장을 모두 반박했다. 차 전 대변인은 지난 7월 31일 소송을 제기하면서 “2001년 3월 청와대 문화관광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조희준을 처음 알았고 2002년 중반부터 교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전 회장은 “차영을 처음 만나 알게된 것은 1999년 11월로, 사단법인 한국자동차협회(KARA) 주관으로 창원시에 개장한 첫 모터레이싱 대회장에서였다”면서 “나는 대회를 후원하는 신문사(스포츠투데이) 대표 자격으로 참가했고, 차영은 문화관광비서관 자격으로 왔다며 내게 접근, 인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때 차영은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자신감에 찬 아나운서 출신 전문직 여성으로, 두 딸을 양육하고 있는 이혼녀를 자처했다. 자유분방했기에 나와 친밀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 전 회장은 또 “당시 차영은 내가 관여하고 있던 한일문화교류를 자신의 직위로 지원할 수 있다고 했고, 2001년 초 당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그해 8월 내가 구속되자 재판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접근해 활동비 명목의 금품 등을 요구했다”면서 “따라서 차영과 나는 업무상 협조관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에 따르면 2002년 6월 스포츠복권 사업과 월드컵휘장 사업 비리 등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대통령비서관직에서 물러난 차 전 대변인이 “민간 사업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해 조 전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던 넥스트미디어홀딩스에 연결해줬다고 한다. 차 전 대변인이 주장해 온 조 전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 전 회장은 딱 잘라 아니라고 반박했다. 차 전 대변인은 조 전 회장이 이혼을 종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조 전 회장은 “차영을 자유분방한 이혼녀로만 알고 있었다. 이혼 종용이란 있을 수 없다”면서 “차영이 2003년 1월 이혼하고 2004년 8월 전 남편과 재결합했다는 것도 (이번에) 소장을 보고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직 국민일보 대표면서 미디어그룹을 운영하며 사회적 지명도가 있던 내가 대통령비서관이 유부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연인관계를 맺는다는 것, 현실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또 “2003년 1월부터 두달동안 레지던스에서 나와 동거했다니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면서 “언론 세무조사의 여파에 시달리다가 2002년 12월, 영구히 귀국하지 않을 결심으로 출국했다. 12월 28일 일본으로 갔다가 이듬해 2월 13일 돌아왔다. 사흘 후인 2월 16일 다시 출국했고, 2003년 2월 25일에야 재입국했다”고 말했다. 다만 조 전 회장은 “업무상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교우관계를 맺었고, 자유분방한 이혼녀인줄 알았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1999년 말부터 모텔 등지에서 수 차례 육체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40대의 연상녀인 데다 두 딸을 양육하고 있던 차영과 동거하거나 청혼했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조 전 회장은 차 전 대변인이 “조희준으로 인해 엄마가 이혼하게 된 것에 대한 충격으로 딸이 자살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차 전 대변인의 2011년 책 ‘차영’의 내용을 인용해 반박했다. 책에는 차 전 대변인의 딸이 여대 2학년 때인 2008년 3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적혀있다. 조 전 회장은 “열 살 밖에 안 된 아들을 제물로 던지면서 차영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없다. 차영의 아들의 장래와 인생을 위해서라도 나는 차영과 싸울 뜻이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일리 사이러스 19금 퍼포먼스에 윌 스미스가…

    팝가수 마일리 사이러스(21)의 ’19금 퍼포먼스’가 화제가 된 가운데 유명 배우 윌스미스와 그의 아들이 경악하는 표정이 눈길을 끈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지난 25일(현지시각) 뉴욕 브루클린 바클리 센터에서 열린 ‘2013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이하 VMA)’에서 가수 로빈 시크와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에 당시 행사에 참석해 무대를 관람하던 윌 스미스와 그의 아들 제이든, 딸 윌로우, 아내 제이다 핀켓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 그대로 생방송 전파를 탔다. 해외 언론도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AP통신은 “마일리 사이러스의 공연은 신곡을 들고 나온 레이디 가가의 오프닝 퍼포먼스와 케이티 페리·카니예 웨스트 등의 공연을 가려버렸다”며 “그는 심지어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엔싱크 재결합 공연보다 더욱 주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영 - 조희준 ‘사랑과 전쟁’

    차영 - 조희준 ‘사랑과 전쟁’

    민주당 대변인을 지낸 차영(왼쪽·51)씨가 조희준(오른쪽·48) 전 국민일보 회장의 아들을 낳았다며 양육비와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조 전 회장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77) 목사의 장남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차씨는 지난달 31일 조 전 회장을 상대로 인지청구 등의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인지청구는 혼인하지 않은 사람과 법률상 부부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법적 대응이다. 차씨는 2004년 초부터 사용한 양육비를 매월 700만원으로 계산한 총 8억여원 중 1억원을 우선 청구했다. 또 차씨의 아들 A군이 성년이 되는 2022년까지 매달 700만원을 양육비로 지급할 것과 A군이 조씨의 친생자임을 확인하고 자신을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자신의 이혼으로 큰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이 계속됐지만 조 전 회장이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위자료 3억원 중 1억원을 우선 청구했다. 차씨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 문화관광비서관으로 일하던 2001년 3월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조 전 회장을 처음 만났다. 2002년 11월 조 전 회장은 차씨에게 고급시계를 주며 청혼했다. 당시 차씨는 기혼인 상태였지만 조 전 회장은 차씨에게 이혼을 종용하며 두 딸을 미국에 보내 놓으면 유학비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차씨는 조 전 회장의 말을 믿고 2003년 1월 남편과 이혼한 뒤 조 전 회장과 동거를 시작했다. 남편과 이혼할 당시 차씨는 조 전 회장의 아들을 임신한 상태였다. 차씨는 조 전 회장의 권유에 따라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아들을 출산했다. 이후 조 전 회장은 A군의 양육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매월 1만 달러를 보내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최고급 레지던스와 리무진 및 운전기사를 지원해 줬다. 하지만 조 전 회장은 결혼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또 2004년 1월부터는 연락도 끊었고 양육비도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차씨는 아이 문제를 생각해 전 남편과 재결합했다. 차씨 측은 “2013년 2월 조 목사의 요청으로 A군과 함께 나가 식사를 했다”면서 “이 자리에서 조 목사가 A군이 장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 전 회장은 배임 혐의로 구속된 상태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조 전 회장은 지난 2월에 있었던 약속을 부정했다. 조 전 회장의 이런 태도에 차씨는 “더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됐다”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차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화우의 차동언 변호사는 “조씨는 A군의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안 지려고 한다”면서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겨 왔지만 아이가 벌써 10살이나 돼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양육비 월 700만원은 조씨가 과거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할 때의 법원 판결을 참고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차씨는 대통령 문화관광비서관, 민주당 대변인 등을 지냈다. 지난해 19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전 민주당 대변인 차영 “조용기 목사 손자 낳았다” 파문

    전 민주당 대변인 차영 “조용기 목사 손자 낳았다” 파문

    MBC 아나운서 출신이자 민주통합당 전 대변인 차영씨가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장남 조희준(47) 전 국민일보 회장의 아들을 낳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서울가정법원에 조씨를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제출 했다. 차씨는 아들이 조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음을 확인하고, 결혼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위자료와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2001년 대통령비서실 문화관광비서관을 지낼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조씨를 만났으며, 조씨는 차영씨에게 이혼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2002년에는 고가의 시계를 선물한 뒤 청혼하면서 당시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의 두 딸을 미국으로 보내 공부시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고 밝혔다. 결국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2003년 초 남편과 이혼했으며, 이후 조씨와 동거를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2003년 8월 아들을 출산했다. 이에 조씨는 차씨에게 아들의 양육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매월 현금 1만 달러(한화 1200만원 상당)을 보내줬다. 그러나 조씨가 결혼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2004년부터는 연락도 끊고 양육비도 보내주지 않아 차씨는 생계와 아이문제 등을 이유로 전 남편과 재결합하게 됐다고 밝혔다.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조씨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아들을 조용기 목사의 집안을 잇는 장손으로 이미 인정하고 있지만 조씨만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아들을 조씨의 자식으로 인정할 것과 더불어 양육비 지급을 요구했다. 차씨는 양육비와 관련해 2004년 초부터 매월 700만원 씩 계산한 8억여 원 중 일부인 1억여 원을 우선 청구하고, 아들이 성년이 되는 2022년 까지 매달 7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자신의 이혼으로 큰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이 있었음에도 조씨가 결혼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위자료 3억여 원 중 1억 원을 우선 청구했다. 또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조씨의 파렴치한 행위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모든 정치적 입지를 포기하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혼’ 女배우, 前남편 열애설에…

    ‘이혼’ 女배우, 前남편 열애설에…

    중국의 톱 여배우 장백지가 전 남편인 사정봉과 배우 저우쉰(주신)과 열애설을 질투한 나머지 최근 외국으로 나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홍콩 HK채널는 30일 장백지가 전 남편 사정봉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긴 것을 알고 질투한 나머지 두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났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정봉은 지난해 말 저우쉰과 교제를 시작했다. 앞서 사정봉과 장백지는 결혼 5년만인 지난 2011년 합의이혼 했다. 장백지는 이혼 후 두 아들 루카스와 퀸터스를 혼자 키웠다. 매체는 홍콩으로 거처를 옮긴 저우쉰이 사정봉과 같은 맨션으로 이사해 연애를 즐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열애 사실을 지인들은 알고 있었지만 사정봉과 재결합을 원하는 장백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봉과 저우쉰은 지난 2005년 부부의 연을 맺은 왕페이(왕비), 리야펑(이아붕)과 과거 각각 열애설에 휩싸였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불륜 女배우’ 새 남친도 약혼을…

    ‘불륜 女배우’ 새 남친도 약혼을…

    감독과의 불륜설로 몸살을 앓았던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32)가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상대 남자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17일(한국시간) 스튜어트가 9살 연상의 배우 마이클 피트(32)와 열애 중이라고 전했다. 스튜어트의 측근은 “피트는 스튜어트가 전 남자친구 로버트 패틴슨(27)을 잊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두 사람은 이달 초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 함께 참석해 열애설은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라이프는 “피트는 약혼자가 있으며 스튜어트와의 열애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피트의 측근 역시 “피트는 2005년부터 모델 제이미 부커트와 열애 중이며 파리 패션쇼도 런웨이에 서는 부커트를 보기 위해 참석한 것”이라고 전했다. 스튜어트는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함께 출연했던 패틴슨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던 중 지난해 7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감독인 루퍼트 샌더스(41)와 바람을 피워 논란을 일으켰다. 더욱이 샌더스 감독은 두 자녀를 둔 유부남이기 때문에 ‘불륜녀’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남자친구인 패틴슨은 스튜어트의 불륜 스캔들이 불거지자 결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시 재결합과 결별을 반복하다 최근에야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스튜어트는 동거를 하던 패틴슨과 완전히 헤어진 뒤 갈 곳을 찾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탈리아 출신 감독 지아니 아넬리의 집에서 함께 생활해 또 다시 염문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번에 스튜어트의 새로운 열애 상대로 지목된 마이클 피트는 미국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에 출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전설의 록 그룹 ‘도어스’ 만자렉 천상의 문 열다

    [부고] 전설의 록 그룹 ‘도어스’ 만자렉 천상의 문 열다

    전설적 록그룹 ‘도어스’의 키보드 연주자 레이 만자렉이 20일(현지시간) 독일 로젠하임에서 별세했다. 74세.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만자렉은 수년간 담관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65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영화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보컬 짐 모리슨을 만나 친동생 릭, 모리슨과 함께 ‘앤 레이븐스’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만자렉의 동생들이 빠지고 드러머 존 덴즈모어,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가 합류하면서 도어스라는 록그룹이 탄생했다. 1967년 첫 앨범 ‘더 도어스’가 발매된 후 ‘라이트 마이 파이어’, ‘브레이크 온 스루’ 등의 곡들이 인기를 끌며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했다. 특히 수록곡 ‘디 엔드’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원한다는 패륜적 내용이 담겨 있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1971년 팀의 리더였던 모리슨이 상습적 약물 복용으로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숨진 뒤 도어스의 음악은 점점 더 어둡고 환각적 측면이 강해졌고 2년 뒤 팀은 해체됐다. 한편 만자렉은 1980년 로스앤젤레스 출신 펑크록밴드 ‘엑스(X)’의 앨범 ‘로스앤젤레스’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그는 도어스가 해체된 뒤에도 재결합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 2002년에는 동료 크리거와 ‘만자렉-크리거’라는 그룹도 결성했다. 크리거는 “나는 친구이자 훌륭한 동료의 사망 소식에 슬픔에 잠겼다”면서 “지난 수십년 간 만자렉과 함께 도어스 노래를 연주할 수 있어 기뻤고, 나는 언제나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문화마당] 스타를 권하는 사회/임형주 팝페라 가수

    [문화마당] 스타를 권하는 사회/임형주 팝페라 가수

    간만에 서재를 대청소했다. 언제 어디서 구입했는지도 모르는 음악 CD와 영화 DVD들 속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필자와 같은 해(1998년)에 데뷔했고, 한 음반사에서 같은 장르로 활동했던 동갑내기 영국 팝페라 소프라노 샬럿 처치다. 샬럿은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는 TV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었고, 노래 하나로 스타가 됐다. 12살에 세계적인 음반사 소니뮤직에서 데뷔 음반 ‘천사의 음성’(Voice of an Angel)을 내면서 전 세계에서 수백만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세웠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 세계 각국 유명인사에게 초청돼 공연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아갔다. 그러나 그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타가 된 값을 톡톡히 치렀다. 10대 후반부터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했다. 하루 담배 2갑, 길거리 흡연 등 골초로 비쳐졌고, 어린 나이에 임신과 유산을 반복했다. 2005년 음반을 내고 섹시 콘셉트의 팝가수로 변신했지만 판매량과 평단의 평가, 흥행 모두 참패했다. 운동선수 출신인 연인과의 불화, 재결합, 결혼 등 숱한 기사를 쏟아내며 그의 애칭은 ‘천사의 음성’에서 ‘최연소 스캔들메이커’가 됐다. 2년 전 샬럿은 ‘백 투 스크래치’를 발표하면서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에게서 우리 대중문화계의 현실이 겹쳐 보였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참가자격을 대폭 낮추거나, 아예 어린아이들이 대상이 된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이 탈락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참가자는 “초등학교 들어가서 공부해야죠. 제 유년기의 마지막 오디션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참 귀엽고 똘똘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며 씁쓸했다. 어린 나이에 재능을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특히 선천적 재능이 필요한 대중문화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찍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무엇보다도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무척 힘든 일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필자도 어른들 틈바구니 속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법부터 배웠던 것 같다. 어른의 눈치를 보고 어른들이 원하는 태도와 생각을 옮기면서 훈련받는 아바타가 된 느낌이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무대 위에서는 나 자신과 끝없이 싸웠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상실감·외로움·고독과 마주했다. 이 모든 것들을 혼자 감당해 내야 했다. 자유를 찾아 반항과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앞만 보고 달렸다.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잘 춘다면, 그 재능을 키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우리 아이가 방송이나 무대에서 재능을 펼치고 사랑을 받는 것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단순히 판을 벌여 맛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아이들의 재능과 특성, 장점을 먼저 찾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가기 위한 열정을 갖추었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를 스타로 만들기 전에 해야 할, 어른들의 몫이다.
  • [명사가 걸어온 길] 5. 영원한 은막의 여인 최은희

    [명사가 걸어온 길] 5. 영원한 은막의 여인 최은희

    어느 시인이 말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너무나 드라마틱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운명적 단어들로 여자의 일생이 가득 채워졌다. 15살에 집을 나가 배우가 됐고 순탄치 않은 결혼과 이혼, 전쟁의 아픔, 그리고 신상옥 감독과의 만남, 납북과 탈출 등으로 이어지는 질곡의 세월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서사시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를 가리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은막의 스타 최은희(83)씨.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까만 모자에 안경, 목도리가 잘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파란 많은 삶을 살아온 그 세월이 무진할 텐데 수줍게 웃는 모습이 여전히 은막의 소녀처럼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창밖을 바라본다. 안경 너머의 눈빛,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신 감독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애절하게 서려 있는 듯했다. 중얼거림으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길고도 모진 세월을 살아왔다. 고생을 모르고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아온 젊은 세대들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간들이었다”라고 말이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선정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예술인상을 수상했다. 이 자리에서 영화 ‘은교’로 신인예술인상을 받은 한참 후배 김고은의 손을 잡고 격려해 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요즘에는 어떻게 지낼까. “올겨울에는 날씨가 워낙 추워서 되도록 집에서 쉬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삶, 지나온 세월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요. 요새는 쉬어도 피곤함을 느낍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기능을 너무 많이 혹사시켰나 봐요. 제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해 외부활동을 하지 못하고 대신 마음의 정성을 담은 카드 등을 보내는 일로 대신하고 있다. 나들이할 때에는 걷기가 힘들어서 휠체어에 의지한다. 젊었을 때 너무 열정적으로 일을 하다보니 건강을 돌보지 못했고 요즘에는 노후 관리라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집에는 사촌동생이 함께 있고 가끔 영화감독인 아들 신정균과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은 1999년 ‘삼양동 정육점’으로 데뷔했으며 ‘스무살’(2001)과 ‘나의 스캔들’(2008) 등을 제작했다. 아들의 영화에 대한 평을 부탁했더니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다”며 웃는다. 자연스럽게 우리 영화 얘기로 이어졌다. 지난해 ‘영화 관람객 1억명 돌파 시대’와 관련해 그는 “너무 고맙고 흐뭇한 일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잘 만들어 가고 있다”면서 1961년 자신이 출연했던 ‘성춘향’을 떠올렸다. 이 영화는 당시 설 연휴 때 명보극장에서 개봉돼 서울에서만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이로 인해 ‘신상옥-최은희’ 전성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옛날에는 검열이 심했거든요. 그로 인해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요즘에는 패밀리 영화가 자주 나오는데 좋은 현상이고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신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 당시를 잠시 떠올린다. 북한을 탈출한 뒤 신 감독은 할리우드에 ‘신프로덕션’을 설립해 ‘쓰리 닌자’를 제작했으며 시사회 때 미국 전역 1500개 극장에 배급이 결정된다. 이는 대단한 사건이었고 신 감독은 할리우드 진출 1호로 기록됐다. 최씨는 2007년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냈다. 이와 관련, “영국의 한 제작사에서 작년부터 제의가 들어왔고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곧 촬영에 들어간다. 또 최근 미국 드라마 제작사에서 제의가 들어와 국제변호사와 얘기하고 있다”고 말해 해외 진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영화 발전을 위해 원로 연기자로서의 견해를 밝힌다. “집에 있으면서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작가가 대본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때로는 얼굴만 가지고 등장하는 후배 배우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대사 구성을 잘 못하는 경우이지요. 뭐든지 확실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들, 어머니, 딸 역할이 분명해야 하구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반추해보며 영화배우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화제를 데뷔 당시로 돌렸다. 어린 시절 활달하지 못한 성격이어서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 말이었다. 방공호에서 만난 친구가 “배우하자”고 느닷없이 제의했다. 그러더니 친구가 방공호에 함께 있는 배우 문정복(탤런트 양택조의 어머니)씨한테 가서 배우시켜 달라고 졸랐다. 당시 문씨는 연극계에서는 유명한 주연배우로 현대적이고 세련된 미인이었다. 이튿날 그는 친구와 함께 종로6가에 있는 극단 ‘아랑’ 사무실에서 문씨를 다시 만났다. 부모한테 허락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친구는 거침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바람에 허드렛일을 시작하면서 단원이 됐다. 나중에 연극협회 회원증을 받아 정식 회원이 됐고 덕분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게 됐다. 얼마 후 지방 공연 일정이 잡혔다. 첫 행선지는 대전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문씨가 대본을 건넸다. 얼떨결에 읽었다. 그랬더니 이번 지방공연 때 무대에 한 번 서 보라고 권유했다. 제목은 ‘청춘극장’으로 하녀 역할이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연기자로 데뷔하게 됐다. “지금도 첫 무대의 낯섦과 두려움, 떨림과 환희, 관객들의 숨소리, 뜨거운 눈물과 갈채를 잊지 못합니다. 극단 연구생으로 어렵게 치러냈던 첫 무대에서 이미 연극의 마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열심히 했고 운 좋게도 주연을 많이 맡았습니다.” 광복이 되자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에 이름을 최경순에서 최은희로 바꿨다. 극단 활동 또한 ‘토월회’와 ‘극예술연구회’ 등으로 넓혀 ‘40년’ ‘맹진사댁 경사’ ‘이순신’ ‘세자매’ ‘나도 인간이 되련다’ 등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영화를 처음 시작한 것은 동양극장에서 연극할 때였다. 토월회에서 함께 일했던 최운봉 선생이 찾아와 시나리오 대본을 주면서 같이 영화를 하자고 권유했던 것.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에서 순박한 어촌 처녀 역할이었다. 이 영화 역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이어 ‘마음의 고향’ ‘밤의 태양’ ‘무영탑’ 등에서 잇따라 주인공역을 맡으면서 영화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다가 목포에서 ‘사나이의 길’을 촬영할 때 6·25전쟁을 맞이한다. 배우들이 우왕좌왕했다. 부산으로 피란을 가거나 월북하는 배우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편과 집안 식구들이 걱정돼 서울로 왔다. 집에서 지내다가 먹을 것이 없어 시장 보러 가던 중 그를 알아보는 인민군 장교를 만나 어쩔 수 없이 북한 내무성 소속 경비대 합주단원이 됐다. 당시 합주단 사무실은 명동 성당의 수녀들이 숙식하던 곳이었다. 배우 김동원·김승호, 지휘자 임원식, 성악가 등 200여명의 예술인들이 모여 있었다. 포로들처럼 수용돼 사상교육을 매일 받았다. 그러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후퇴할 때 평남 순천 쪽으로 끌려갔다. 평양에 거의 다다랐을 때 목숨 건 탈출을 했고 그 과정에서 국군을 만났다. 최씨는 인민군복에서 국군복으로 갈아입고 정훈공작대원으로 선무활동에 나서게 된다. 전쟁의 와중이라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다 1·4후퇴 때 서울을 거쳐 피란지인 대구에서 극단 ‘신협’ 단원들과 연극을 하게 된다. 이때 출연했던 작품이 ‘마의태자’ ‘춘향전’ ‘맹진사댁 경사’ ‘뇌우’ 등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십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신 감독과 만난 것은 ‘춘향전’ 공연 때였다. 어느날 알고 지내던 배우 황남씨가 영화 출연 교섭을 해왔고 며칠 뒤 중국집에서 신 감독을 처음 만났다. 이후 신 감독은 극단에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열정을 보였다. 결국 영화를 하자는 구애작전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1954년 3월 7일 을지로6가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둘은 하루 24시간 그림자처럼 같이 다녔다. 영화 같은 삶이 시작된 것이다. 두 사람이 찍은 첫 작품 ‘꿈’을 비롯해 최씨는 ‘젊은 그들’ ‘무영탑’ ‘지옥화’ ‘춘희’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1976년까지 130여편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 ‘어느 여대생의 고백’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다정도 병이런가’ ‘동심초’ 등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신 감독과 함께 전성기를 누린다. 우리 영화사의 큰 획을 그은 것도 이때였다. 1978년 최씨는 신 감독과 이혼을 했으며 안양예술학교를 운영하는 일에 전념했다. 어느 날 홍콩 금정영화사의 초청으로 홍콩을 방문했다. 일정을 소화하던 중 북한의 요원들에 의해 납북된다. 이후 5년 동안 연금 상태에서 혼자 지내다가 북한에서 신 감독과 다시 운명적인 재결합을 한다. 그렇게 9년 동안 북한에서 지내면서 모두 1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때 찍은 대표작이 ‘불가사리’ ‘임꺽정’ 등이다. “당시 매주 금요일에 연회가 열렸고 여러 번 참석하면서 김정일 위원장과 여동생 김경희·장성택 부부, 김영남 외교부장 등과도 만났지요. 김정일 생일에도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요. 김정일과 관계된 곳은 공공 건물이든 가정집이든 어디나 영사실이 부설돼 있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1986년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했다가 탈출에 성공한 최씨 부부는 미국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1999년 다시 국내로 돌아왔고 2006년 신 감독이 세상을 떠나자 혼자 노년을 보내고 있다. 최씨에게 앞으로 출연기회가 온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동안 정적인 역할이 많았다. 발랄한 연기를 하고 싶다”며 빙그레 웃는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이보영 “‘내 딸 서영이’는 잊지 못할 작품”

    이보영 “‘내 딸 서영이’는 잊지 못할 작품”

    “요즘은 종종 이름을 서영이로 바꾸라는 이야기를 들어요(웃음). 보영이보다 더 잘 어울린다면서요. 드라마를 끝내고 한동안 여운이 크게 남을 것 같네요.” 종영까지 2회분을 남겨둔 KBS 2TV 주말연속극 ‘내 딸 서영이’의 주인공 이보영(34). 8개월가량 이서영으로 살아온 그는 종영 소감을 물으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하루하루 정말 행복하고 소중했다. 이렇게 좋은 대본, 좋은 환경에서 작업하는 날이 또 올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15일 첫 방송을 한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와 딸의 끊을 수 없는 천륜을 바탕으로 한 가족애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45%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배신과 복수, 음모 등의 자극적인 소재가 휩쓰는 안방극장에 부성애를 코드로 한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전화로 만난 이보영에게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를 물었다. “보통의 드라마는 주인공 위주의 감정선만 따라가지만 우리 드라마는 여러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 상태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폭발력을 발휘한 것 같아요. 사실 초반에 막장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저는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깨달은 점은 사람은 각자 자기 입장이 있고 내 상황을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죠.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고요. 저도 대사를 곱씹은 적이 많았는데 보시는 분들도 단순히 드라마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느끼고 뭔가 생각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극 중 서영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도박으로 빚을 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서영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 악바리 근성으로 법대에 진학해 사법시험을 패스한 서영은 아버지의 존재를 숨긴 채 강우재(이상윤)와 결혼하게 된다. “서영은 사춘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어른 아이’ 같은 인물입니다. 소통도 안 되고 표현을 할 줄도 모르고 사랑을 받는 것이 어색한 아이죠. 아버지와도 좋은 기억은 덮어버린 채 애증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처음엔 결혼 생각이 없어서 의도하지 않게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말한 뒤 나중에 사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기회를 여러번 놓쳤죠. 하지만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구구절절하게 변명하지 않아요. 서영이는 자존심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행복해지려 했던 자신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할 염치가 없다고 느끼는 거죠.” 결과론적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결혼한 딸은 이 드라마 갈등의 주요 줄기다. 이에 대해 이보영은 “서영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존재를 부정했지만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했지 돌아가셨다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속이고 결혼한 것은 큰 문제이고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무섭게 느껴질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 ‘매도 먼저 맞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만일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빨리 고백해 피해를 최소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극 중 서영은 우재와 이혼한 뒤 홀로서기를 하지만 여전히 우재와의 재결합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다. 이보영은 최근 서영의 전 시어머니 차지선 역으로 출연하는 김혜옥에게 받은 ‘스님의 주례사’를 읽으면서 서영과 우재의 관계를 떠올렸다고 했다. “책에 결혼은 내가 기대거나 도피할 누군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누군가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은 겉으로는 날을 세우고 자신을 포장해 왔던 서영이 감정에 솔직해지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서영이가 이전에는 다소 우재에게 종속된 관계였다면 앞으로는 그를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죠.” 이보영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결혼관도 많이 바뀌었다. 그는 “결혼은 무조건 모든 것을 같이 나누고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놓지 않고 홀로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자식이나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만 있다면 극 중 차지선처럼 결국 외로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드라마에서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서영이와 아버지 이삼재(천호진)의 화해 장면이 그려졌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딸들은 이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서영이가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찍고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서 몸살기마저 생겼어요. NG 없이 촬영하기는 했는데 감정적으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연기하면서 천호진 선생님을 제대로 못 쳐다보겠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사춘기에 멀어지고 점점 무관심해지다가 엄마와 더 친해지는 게 보통이잖아요. 저도 예전에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힘 빠진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 좋고 커 가면서 점점 이해하게 됐어요. 엄마와 드라마를 보면서 자식 노릇도 중요하지만 자식을 키울 준비를 갖춘 부모의 노릇도 참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나눴습니다.” 우리나라 정서상 아버지를 숨기고 결혼한 서영이 욕을 많이 먹을 것을 알고 시작했다는 이보영. 하지만 그는 “늘 주변에 민폐만 끼치고 비현실적인 캔디형 캐릭터보다 현실적인 서영이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인물에 살을 붙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늦게 작품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청순가련형의 대명사인 이보영에게 서영은 꼭 맞는 옷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늘 정적이고 답답한 캐릭터만 연기하는 것 같아 싫었어요. 그래서 전작(MBC ‘애정만만세’)에서 변신을 시도했는데 시행착오를 거쳤죠. 하지만 KBS ‘적도의 남자’를 하면서 다시 행복해졌고 이젠 그냥 내가 잘하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감사하게 됐어요(웃음).” 캐릭터에 대해 생각은 많이 하지만 연기할 때는 힘을 빼는 스타일이라는 그는 “김혜옥 선생님을 비롯해 다른 분들도 조용조용 연기하시는 편이라 참 좋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에게 서영이를 떠나보내는 소감을 물었다. “‘내 딸 서영이’는 제게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아요. 길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서영이 힘내라’고 토닥여 주셨어요. 20대 때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워 숨고 싶었는데 30대가 되니까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제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믿고 보는 연기자가 돼야죠.”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파파라치] 리한나, 하와이서 망사 치마 입고 남친과…

    [파파라치] 리한나, 하와이서 망사 치마 입고 남친과…

    바베이도스 출신 팝스타 리한나가 자신의 25번째 생일을 맞아 1살 연하 연인 크리스 브라운과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스플래쉬닷컴에 따르면 리한나는 핑크색 비키니 위에 망사 치마를 입은 과감한 패션으로 크리스 브라운과 해변을 손잡고 걷고 키스를 하는 등 로맨틱한 시간을 보냈다. 리한나와 크리스 브라운 커플은 2009년 결별했다가 최근 재결합해 화제가 됐다. 미국 출신 래퍼 크리스 브라운은 4년전 리한나를 폭행한 혐의로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었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인터넷 뉴스팀
  •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동공은 빛을 잃었고 귀에선 피가 흘렀습니다.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만이 숨이 붙어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1968년 6월 16일, 새벽 5시쯤. 47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김수영(왼쪽) 시인은 조각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로 ‘무’(無)의 세계에 들었다. 선불로 받은 번역료로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고 귀가하던 시인은 서울 마포구 구수동의 인적이 드문 길에서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받혀 풀잎처럼 쓰러졌다.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김현경(오른쪽·86) 여사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지난 두 달간 구술로 김수영의 삶을 풀어놨다. 원고는 조만간 자전적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 펴냄)으로 빛을 보게 된다. 에세이에는 생전 김수영이 탈고했던 시구 속에 숨은 창작 배경과 일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김수영은 평소 집에서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말수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가 술만 취하면 무궁무진한 애교로 웃음을 자아냈다. 장기는 무성영화의 변사 역할, 레퍼토리는 ‘수일과 순애’였다. 하지만 비위가 거슬려 술을 마신 날이면 주사가 심했다. 이혼 얘기가 입에 오르내리고 열흘간 별거까지 했다.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으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 ‘이혼 취소’는 이런 부부의 삶을 말해 준다. 몸도 돌보지 않고 폭주를 하는 날이면 시인은 자유당과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곤 했다. 4·19 직후 부정 선거에 대한 칼럼 청탁을 받고 동아일보에 원고를 보냈는데, 지면에는 김수영 이름 석자만 있고 휑하니 비어 있었다. 김수영은 “멋있잖아, 이런 게 저항이지”라며 오히려 신이 나 했다고 한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이종구(1990년 사망)로, 광산을 경영하던 김 여사 부친의 첩의 남동생이었다. 이종구와 김수영은 선린상고 2년 선후배로 일본 도쿄에서 함께 유학한 사이였다. 김 여사는 6살 차이인 김 시인을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고, 이후 일본에 유학 중이던 시인과 편지로 사랑을 나눴다.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 귀국한 김수영은 ‘마이 솔 이즈 다크’란 한마디 영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1949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이번엔 6·25전쟁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김 여사는 부산 피란살이 기간 동안 이종구와 동거한 뒤 김수영과 재결합했다. 이렇게 정착한 곳이 서울 성북동집. 김 여사는 “원래 거부 백낙승의 별장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세를 얻었다”면서 “정원 한쪽에 비가 오면 폭포가 되는 절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 ‘폭포’를 썼다”고 회고했다. 1968년 발표한 절명시 ‘풀’은 그해 5월 29일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무성한 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 김수영의 삶 속엔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다. 1950년 8월 인민군에 끌려가 의용군으로 징집된 김수영은 총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8남매 중 가장 총명했던 넷째 수경은 의용군에 자원 입대했고, 셋째 수강은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단장을 하다 납북됐다. 여동생 김수연씨 내외도 1969년 KAL기 납북 때 북쪽으로 끌려갔다. 김 여사는 현재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살며 김수영의 육필 시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살아생전 ‘김수영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안나 카레니나’ 등 미개봉 화제작 多 모였네

    ‘안나 카레니나’ 등 미개봉 화제작 多 모였네

    마리끌레르 필름 앤 뮤직 페스티벌이 20~26일 서울 CGV청담씨네시티에서 열린다. 영화제를 관통하는 콘셉트는 언뜻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안나 카레니나’ ‘필름소셜리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3D’ ‘주리’ 등 미개봉 화제작들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에서 호흡을 맞춘 조 라이트 감독과 키이라 나이틀리 콤비가 재결합한 ‘안나 카레니나’(위)가 우선 궁금하다. 이미 3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진 러시아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고전을 라이트 감독이 어떻게 요리했는지 정식개봉(3월 21일)까지 기다리기 어려운 이들에겐 희소식이다. 러시아 귀족 남편과 8살 난 아들을 두고도 젊은 장교와 치명적 사랑에 빠지는 안나 카레니나는 나이틀리가, 안나의 남편이자 러시아 정치인 알렉시 카레닌은 주드 로가 맡았다. 안나의 마음을 흔든 장교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파괴자들’로 얼굴을 알린 애런 존슨이 나온다. 북미에선 지난해 11월에 개봉했다. 미국인 취향과는 거리가 먼 탓에 16개 스크린에서 소규모 개봉했다. 장 뤽 고다르의 ‘필름소셜리즘’(아래)은 2010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출품된 작품이다. 고다르의 전작들처럼 국내 개봉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팔순을 넘어선 고다르(83)의 영화적 근황이 궁금하다면 열 일 제치고 챙겨볼 일이다.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고다르의 건재를 알린 영화다. 다양한 현실과 정치적 이슈를 독특한 편집과 실험적 기법으로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3D’는 북미에서 지난달 4일 개봉한 최신작이다. 개봉 첫주 2174만 달러(약 235억원)를 벌어들여 ‘장고: 분노의 추격자’ ‘호빗: 뜻밖의 여정’ ‘레미제라블’ 등 대작들을 따돌리고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 2주째에 박스오피스 9위로 추락한 만큼 영화의 만듦새는 의문이지만, 슬래셔영화 팬이라면 한번쯤 보고 싶을 것이다. 이 밖에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의 데뷔작 ‘주리’, 신연식 감독의 ‘러시안 소설’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CGV(www. cgv.co.kr), 마리끌레르 홈페이지(www.marieclairekorea.com)에서 예약할 수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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