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대통령 선거와 미국
불과 한 달도 안 남은 대통령 선거가 여전히 예측 불허의 상황이다.
나라 밖의 관전자들은 2000년 재검표 소동까지 벌인 미국의 대선만큼이나 극적이라고 평한다.물론 과정과 결과에 따라 희극의 대미(大尾)로 마감될지,아니면 역사의 의미 있는 한 획이 그어질지가 판가름날 것이다.대선과 정쟁이뉴스의 핵으로 부각되다 보니,각 후보는 주요 쟁점군에 대해 표를 긁어모을해법 찾기에 골몰한다.외교·안보 정책의 한 축인 한·미 관계도 그중 하나다.점차 증폭되고 있는 북한 핵 문제의 긴장에 더하여,여중생 참사에 따른반미 시위,미국의 대 이라크전을 위한 지원 요청 등 21세기의 한·미 관계는 계속 얽히고 있고,각 후보의 정책 방향에도 차이점이 드러난다.미국도 대선 현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아마 주요 후보들의 대북정책 방향과 대미 인식에 그들은 촉각을 맞출 것이다.
미국은 이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북한이 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조속히 그리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하지 않는 한,중유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동시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성명을 발표해 대북 공격의사가 없음도 천명했다.분명한 것은,북한이 비밀 핵 개발과 관련해 전향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미국의 대북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극한 대결 가능성에 대해 엄청난 심적 부담을 느끼지만,일방적으로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는 일은 단호히 거부한다.이러한 일련의 북·미간 신경전은 한국의 정책 입지를 주름지게 할 뿐 아니라,향후 한반도 상황을 위기로 몰고 갈 개연성도 있다.
한편 미군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건과 이를 규탄하는 국민의 분노는 21세기한·미 동맹의 미래를 예단케 하는 가늠자가 되고 있다.
냉전기 한국 정부가 미국과 동맹을 맺고 미군의 주둔을 적극 수용했던 근본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의 국토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그런데 방위공약 준수를 위해 주둔한 동맹군에 의해 오히려 우리의 어린 딸들이 어이없이희생당했고,미국은 임무 수행 중에 일어난 사고인 만큼 무죄라는 결론을 서둘러 내렸다.이 사건으로 한국인들의 반미 정서는 더욱 고조됐다.미국의 대이라크전에 대한 지원도 지지하지 않는 분위기다.불평등한 동맹 관계에 대한 한국인의 문제 의식을 낯설어하는 미국의 무감각은 실로 개탄스럽다.나아가 좀더 건강한 한·미 관계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정부간 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그러나 한·미 동맹의 기능과 의미는 결코 용도 폐기되지 않았으며,상당기간 이 지역에서 미국의 순기능이 필요함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이것은 감정 이전에 실리의 문제다.
대통령 후보들이 제시한 안보 정책 방향도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각 후보는 한·미간 긴밀한 공조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의 대북 압박으로부터 민족 화해·교류의 견지와 경협,나아가 대북 인내 외교에 이르기까지,중도에 근접한 보수·진보간 노선의 편차를 드러내고 있다.외견상 극우와 극좌의 이념 갈등은 아니라 해도,또 양측 모두 논리적 적실성을 갖추고 있지만,기본 정향의 뿌리는 이질적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 대북 정책과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변화를야기할 수도 있다.그리고 그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한·미 관계도 달라질것이다.그러나 차기 대통령은 국민 정서를 부드럽게 다독임과 동시에,국가의 미래 이익을 확실히 챙겨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합리적 보수와 건전한 진보를 수렴시키면서,이념보다는 이해(利害)를 우선시하는 전략가여야 한다.한·미 관계는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를 관통할 뿐 아니라,한국의 대 주변국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더욱이 국가간 관계가 단순히 외교·안보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교역,경제,정보 및 기술을 망라함은 21세기 국제관계의 공리(公理)이기도 하다.미국에 대한 사대(事大)와 용미(用美) 그리고 친미(親美)와 지미(知美)를 정확히 분별하며,합리적 대미 정책을 추진하는 ‘스마트 리더’이기를 희망해 본다.
정옥임 국제안보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