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노란드레스 여인 보여줄게요”
16일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나 김주원(31)은 발레복 대신 노란 원피스를, 토슈즈 대신 구두를 신고 있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그는 2006년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국내 발레계의 간판스타다. 그는 내년 1월 개막하는 댄스 뮤지컬 ‘컨택트’에서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해마다 연말이면 ‘호두까기 인형’ 발레 무대에 섰는데, 12년 만에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됐어요. 늘 납작한 토슈즈를 신다가 7~8㎝ 굽의 구두를 신고 스윙, 자이브, 탭댄스 등을 배우려니 힘들지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제 몸의 언어가 깊이 있고 다양해지는 걸 느낍니다.”
‘컨택트’는 무용과 뮤지컬이 결합된 ‘댄스뮤지컬’이다. 대사와 춤으로만 모든 것을 표현한다. 노래가 없다는 점 때문에 뮤지컬로 분류하는 것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2000년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 안무상, 남녀조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공연예술계의 장르 파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에요. 이번에 제가 뮤지컬에 도전한다고 할 때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을 비롯한 발레계에서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발레 대중화를 위해 힘써 달라며 격려하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댄스 음악에 맞춰 농염한 춤을 추는 발레리나 김주원의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그녀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세 번째 에피소드의 노란 드레스 여인 역을 맡았다. 성공했지만, 내면의 외로움과 상실감에 젖어 있던 남자 주인공 마이클 와일리(장현성)에게 첫눈에 반하는 역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란드레스 여인의 색깔은 모두가 달랐지만, 저는 발레리나로서 우아함을 기본으로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했어요. 이런 색다른 경험들이 다른 작품을 할 때도 묻어 나오리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도전을 앞둔 김주원의 가장 큰 고민은 무대 위에서 대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도 춤 외에 다른 것으로 표현해 본적 없는 그에게는 생소한 경험이다. 다행히 이번엔 상대역인 장현성이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인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예전에 ‘카르멘’이라는 작품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서 혼난 적이 있어요. 그땐 벽을 보고 소리 지르는 연습을 따로 했었죠. 이번엔 연출가가 자연스러운 발성을 원해 편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긴 해요.”
내년 초 뮤지컬이 끝난 뒤에 바로 발레 무대에 오르는 김주원은 요즘 두 곳의 연습실을 오가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특히 최근 고급예술로 알려진 발레는 서커스, 오페라, 뮤지컬 장르와 다양하게 결합하며 대중화를 시도 중이다. 이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은 어떨까.
“무용에서도 크로스오버가 활발하지만, 현대 예술에서 장르의 벽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급스러운 발레는 그대로 계속 발전하고, 장르 결합 시도는 이 분야대로 꾸준히 계속돼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발레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으신데, 모든 춤의 기본인 발레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기도 해요.”
재작년 패션지에 상반신 누드 사진을 실어 홍역을 치르기도 했던 그는 이번 뮤지컬 데뷔 때도 “또 뭐야?”라는 식의 냉소와 우려 섞인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때는 사진도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었어요. 서구에서는 발레극에 주인공이 알몸으로 등장하는 장면도 있거든요. 제 춤을 한번 보시면 이런 새로운 시도와 경험이 제게 어떤 영감을 줬는지 그대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