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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류명창 김명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8)

    ◎청류의 음색·유창한 성조… “타고난 소리꾼”/12가사·시조 등 정가 두루 통달… 명인 경지에/장려한 성색·거침없는 음역엔 감탄사 절로/“한의 세월 노래로 용해”… 사재로 문화재단 설립,후학 길러 /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화는 충신이로다.연화는 군자요 행화소인이라,국화는 은일화요 매화한사로다­/ 두 손을 무릎위에 가지런히 얹고 단정하게 노래부르는 월하의 편수대엽은 세파에 시달린 흔적없이 계류처럼 맑고 청아하게 흘러내린다. 특히나 그의 세청은 비단실을 뽑아내는듯한 명가의 격조와 경제특유의 화려하고 힘있는 성색을 지닌것이 특징이다. 처음을 높이 질러부르는 언롱은 쉽사리 달아오르거나 쉽사리 자지러들지 않는다.넘어가고 이어지고 휘어지고 늘어지는 가락마다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굽이굽이 드리우면서도 풍류를 생략하거나 정가특유의 기품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명주 명주 명주 비유 원로국악인 성경린씨는 일찍이 월하의 노래를 일컬어 「무늬없이 짠 치렁치렁한 비단」이란 의미의 명주,또 현란한 구슬을 끝없이 꿴듯한 명주,그 깊고 유창한 성조에 취하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명주에 비유했고 「월하의 정가를 들을수 있는것은 우리로서는 얼마나 경행스러운 일인가」를 찬탄해 마지않았다. 관현악반주에 맞춘 가곡12가사를 비롯,시조·한시·칠언절구에 뛰어나고 양금·거문고 연주솜씨도 수준급이다. 평시조 엇시조·사설시조·지름시조,가곡의 우락·계락등 어느 대목에 이르러도 구구절절 막힘이 없고 중간에서 곡조를 잠깐 변조시켜 질러부르는 계면조(중거)는 시의 참맛을 살려 시절가다운 흥취를 능란하게 펼쳐나간다. 아련한 피리소리 전주에 실린 피리소리 못지않은 그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재능은 과연 타고나는 것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수밖에 없다.만약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청추의 음조를 끝없이 울릴수 있을 것인가. 집안대대로 소리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어릴때부터 유랑극단을 쫓아 일찍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아온 다른 국악인들과는 달리 월하의 국악계 입신은 참으로 극적이고 의외의 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의 본명 김덕순대신 여창 김월하로 다시 태어나기까지는 마치 백락천의 비파타는 여인을 연상케하는 참담하고 기구한 사연이 오뇌의 흐느낌처럼 얼룩져있다. 그는 본래 경기도 고양군 한진면 보광리,지금의 이태원부근에서 평범한 가정의 2남3녀중 막내로 태어 났다.그러나 나이 세살때 전국에 창궐하던 호열자에 걸려 어머니와 두 오빠가 죽고 부친 김희문씨가 실성하다시피 집을 뛰쳐나가자 세자매는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 양녀로 키워지게 되었다. 그가 양녀로 간집은 종로구 사간동 모녀이대가 사는 전통있는 가문으로 그는 조모와 양모밑에서 절도있는 여성이 갖춰야할 모든 덕목과 예절을 배우며 자라났다. 재동보통학교에 다녔으나 15살때부터 혼인말이 나오더니 16살되던해 경기도 양주출신으로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던 김용복씨와 결혼,부군은 부인을 끔찍히 사랑하여 묘동학원 속성고등과에 보내주는등 자녀는 없었지만 부부의 금실은 유난히 좋았던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6·25때 부군이 납북되자 그는 손재봉틀 하나를 들고 부산 피란길에 나섰고 그때부터 이루 말할수 없는 가난과 고초를 겪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낮에는 낙동강 하구 하단에서 푸성귀를 받아다가 동대신동 시장에 나가 팔고 밤에는 삯바느질,착실하게 돈을 모아 집한채를 마련했으나 먹고 자는것 잊어 버린채 건밤샘으로 일거리에 쫓기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려 덜컥 몸져 눕게 되었다. ○시조 동호모임 가입 그때 동네노인의 권유로 지금은 없어진 구덕수원지쪽에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고 새벽마다 그곳에서 시조연습을 하던 시조동호인들을 만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비켜앉아 그들의 연습을 구경이나 하는 입장이었으나 입속에서 조금씩 따라부른것이 차츰 시조에 빠져들어 그 모임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모르고 있었고 어디서 노래부른적도 없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부를수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느리고 길게 뽑는 호흡도 그렇지만 노래의 맛을 깊이 알아 우조를 부르고 계면우를 부르는 툭 터진 소리는 「마치 통나무를 끌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화미하면서도 시원하다」하여 당장에 시조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 마침 동호인의 한사람이던 두봉 이병성이 두세번씩 그의 노래를 따로 청해 듣고는 「성색의 단아함과 장려함」에 무릎을 치며 기뻐해 마지 않았다.두봉은 이왕직 아악부에서 하규일의 지도를 받은 성악의 큰 봉우리로 그는 모처럼 만난 이 재능있는 여성에게 시조와 12가사 완창지도를 자청하고 나섰다.그때 얻은 아호가 달을 지고 있다는 뜻의 월하였다. 그는 장사를 때려치우고 낮에는 두봉 밑에서 배우고 또는 동네유지들을 모아 가르치거나 여기저기 불려나가 가곡을 부르게 되었다. ○소남 이주환에 사사 또 절색의 미모탓에 그를 바라보는 뭇시선이 많았으나 깔끔하고 쌀쌀한 성품은 한눈파는법 없이 오로지 시조에만 매달렸고 밤에는 여전히 삯바느질을 해냈다. 『어릴때 친부모 형제를 잃고 양녀로 키워지던 소년시절과 남편과 행복했던 결혼생활,피란지에서의 가난과 슬픔』을 마감하고 시조수업 3년만 59년 서울 중앙방송국이 주최한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명창대회에서시조부문 1등 수상,당대최고 율객으로 손꼽히던 소남 이주환역시 「정려하나 격발이 없는,이처럼 가곡을 위해 태어난 청류의 음색」은 결코 흔치않음을 심사평에서 지적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피란길 10년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국립국악원에서 본격적인 소남의 가곡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그때 나이가 43세. 일장월취로 시존의 모든 갈래를 꿰뚫었고 한시도 세갈래로 섭렵하여 그의 이름은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고 정부행사나 모든 축하모임에서 당당히 가곡독창자로 출연하는 화려한 월하시대를 개막했다. ○검약실천,저축상받아 국악원과 국악예술고를 비롯,서울대 한양대 추계예술대 정신문화원 강사로 하루 5∼6시간 강의가 있을때도 그는 바느질만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마포와 낙원동에 각 5층짜리 빌딩 주인에다 저축상을 받기도 한 재산가지만 단칸방에서 손수 밥을 지어먹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다닌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국수한그릇 사먹기위해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본일도 없다.화투짝 한번 만져 본적도 없고 술잔한 담배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그는 찬밥에 물을 말아 내손으로 담근 김치로 식사를 때우고 새벽에 일어나면 그가 사는 낙원동 골목길을 일일이 청소한다. 수없이 길러낸 자녀들의 미국유학도 하고 박사나 교수가 되기도 했지만 공부를 시키고 나면 독립시킬뿐 은혜에 보답받기 위해 그들을 공부시킨 것은 아니다. 지난 90년 50억 재산을 몽땅 털어 월하문화재단을 설립,마포에 있는 연구소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금도 집에는 대학 국악과에 보내고 있는 서너명의 양녀를 데리고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아녀자에 불과할뿐,다행히 시조를 좋아하여 이 세계에 빠질수 있었고 나의 모든 시름과 외로움을 덮어준것을 늘 감사하고 있다』그래서 특별한 사명감이나 포부때문은 아니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속요와는 달리 김천택의 청구영언 박효관·안치영의 가곡원류 김수장의 해동가요등 바둑판처럼 또렷한 정간보에 의해 비교적 체계있게 전수된 우리의 가곡을 후대까지 잇게하기 위해 국악에 뜻을 둔 젊은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가르치고 싶다는 일념이다. 시조강의할때가가장 행복한 그는 그의 소리를 원하는 곳은 부산이든 대전이든 마다않고 달려간다.그리고 어떤 무대에서도 「어전에서 부르던 정갈하고 깔끔한 노래답게 소리에 한도 싣지않고 흥도 치우치지 않게」몸가짐·마음가짐을 흐트리지 않는다.두성과 비음을 다 쓰면서도 잡소리가 섞이지않은 그의 노래가 곧잘 범패에 비유되는 것은 불교신자로서의 그만의 독특한 득도의 경지때문일 것이다./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궂은비는 붓듯이 온다.눈 정에 거른 님은 오늘밤 서로 만나자고 판접쳐서 맹서 받았더니 이 풍우중에 제 어이오리,진실로 오기 곳 오량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이 짧은 우락이 10여분.그는 부군을 잃은대신 「가곡」으로 꽃피운 그의 세월속에서 도무지 오지않을 님을 한시도 기다리지 않은적이 없는듯,그 높고 긴 가락속에 임그리운 여운을 절절히 끌고있다. 웅려 정대한 스케일과 함께 옥쟁반에 쏟아붓는 은구슬 금구슬의 그 현란한 사연은 아마도 「나이나 세월은 사랑을 멈추게 하지않는다」는 단 한마디,그래서 그 끝없는 마음속의 계류는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른다. □연보 ▲1917년(양력 19 18년2월8일)경기도 고양군 한진면 보광리 출생(본명 김덕순) ▲1932년 서울재동보통학교졸업 ▲1936년 서울묘동교회 부설 묘동학원 야간부고등과 졸업 ▲6·25 부산피란시절 부산 시조동호인 국립국악원 부산지원 두봉 이병성선생(이왕직아악부출신)사사 ▲1958년 서울중앙방송국주최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 명창대회 시조부문 1등 수상,소남 이주환선생(초대국립국악원장)사사를 비롯,전라도 임석윤·이창배·정운산 선생 사사 ▲1959년 「월하시조」(오아시스레코드 출반) ▲1961년 서울귀환(종로구 낙원동 정착) ▲1968년부터 국악고교 졸업식장서 장학생선발(장학생육성시작) ▲1969년 국악협 시조분과위원장 ▲1970년 전국시우단체 총연합회 발족 초대 회장취임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예능보유자지정 ▲1974∼92년 국립국악원·국악예술고강사 ▲1975∼92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술대강사 ▲1981년부터 해마다 조선일보사주최 국락대공연 참가 ▲1983년 「김월하시조(1집·2집)」(아시아레코드출반) ▲1984년9월 문예진흥원주최 가곡발표회(문예회관대극장) 10월 가곡보존협회주최 가곡발표회(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6년 「김월하가곡집」(LP3장,문화재보호협서출반) ▲1987년 국립국악원주최 중요무형문화재 발표 해마다 참가 ▲1990년 월하예술단및 월하어린이 예술단창단(KBS­TV출연및 해마다 지방공연) ▲1991년 뮤지컬 「콩쥐팥쥐」(월하 어린이 예술단공연) ▲1991년 재단법인 월하문화재단 발족(월하국악상 제정및 국악경연대회 국악연구발표및 관련단체지원,장학생 선발 등의 사업) ▲1992년 월하문화재단설립1주년기념 전통음악발표회(예술의전당)주한외국인초청 공연(워커힐서)월하예술단공연(세종문화회관대강당)수십차례의 국내공연및 해외공연등 ▲1976년∼현재 법원연수원·서울교육원·정신문화연구원·한국표준공업학회 국립국악원 출강(현재)월하문화재단이사장,월하예술단및 월하어린이예술단대표,국악협회고문 84’국악대상·세종문화대상·88’저축의날 국민목련장
  • 박종석 주택은행장(국책은행장 3인 프로필)

    ◎신간서적 놓치지않는 학구파 25년동안 재무부에 근무하며 금융·국고·외환업무를 다뤘다.집안이 어려워 지방대학 장학생으로 다니다 서울상대에 다시 입학한 입지전적 인물.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적이 없지만 너무 소극적이고 결단성이 부족하다는 평도 듣는다.관심있는 신간서적을 빼놓지 않고 사다 읽는 성실노력형이다.부인 강길주씨와 3녀를 두고 있다.취미는 등산. ▲경남 함양(55) ▲서울상대 졸 ▲행정고시 6회 ▲국회 재무위전문위원 ▲재무부 기획관리실장·제2차관보
  • 공군사관 장학생 선발/대학 2년 재학생 대상

    공군은 18일 우수한 조종인력을 확보키 위해 올 상반기부터 사관후보장학생제도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장학생은 경희대·중앙대·한양대등 공군측과 협의된 국내 24개 대학의 2학년 재학생중에서 선발하며 등록금과 수학보조비로 1인당 연간 2백20여만원이 지급된다.
  • 대리시험 관련 조군·송군어머니 일문일답

    ◎“학비대준 담임요구 거절 힘들었다”/송군은 동창생이지만 모르는 사이/대리시험 조군/수배 김 교사,교제비조로 1억 요구/송모군 어머니 ­김교사와의 관계는. ▲고3때 담임이었다.어려운 가정형편을 알고 걱정을 많이 해주었으며 지난해 대입에 실패하자 학원에 장학생으로 추천해줬다. 송군은 같은 학교를 나왔으나 모르는 사이다. ­졸업후 김교사와의 관계는. ▲학원비가 모자라 학원을 포기하고 집에서 공부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김교사가 지난해 6월말 학원입학금과 6달치 학원비등 78만여원을 대줬다. 또 올해 연세대에 합격하자 등록금 1백만원을 줬다. ­어떻게 대리시험을 요구했나. ▲지난달 6일 대학등록금을 주면서 『학원입학 대리시험을 쳐달라』면서 『사진을 가져오라』고 해 사진 20여장을 주었다. 그후 후기대시험 전달인 1월28일 정인석교련교사와 함께 찾아와 내 사진이 붙은 입학원서 등을 보여주면서 『준비가 다됐으니 시험만 보면 된다』『합격하면 2년동안 학비를 대주겠다』며 대리시험을 요구했다. ­왜 승낙했나. ▲처음엔 당황했으나 그동안 김교사가 도와준 것을 생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대리시험이 발각된 뒤에는. ▲3일 김교사가 급히 찾아와 『우정때문에 대리시험을 봤다』고 하라고 해 국민대 교무과에서 거짓자술서를 썼다. ­집안 형편은. ▲8년전 부모가 별거,어머니가 화장품외판원을 하여 버는 한달 20만∼30만원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지금 심경은. ▲평소 고맙게 도와주었던 선생님을 믿고 이런 일을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송모군의 어머니 심종복씨(46) ­김교사와는 어떻게 접촉했나. ▲아들의 고2때 담임이어서 지난해 11월말 진학상담을 위해 전화했다가 만난 자리에서 김교사가 「1억원을 내면 대학에 보내는 방법이 있다」고 제의해 3천만원밖에 낼 수 없다고 했다. ­언제 또 연락이 왔나. ▲지난달 8일 김교사가 『3천만원이라도 내면 후기대에 입학시켜주겠다』고 해 모든 것을 일임했다. ­대리시험인 줄 알았나. ▲김교사가 처음 『대학재단,총장등과 교섭하려면 최소한 1억원이 필요하다』고 해 아들이시험을 보고 성적을 올려 합격시키는 방법인 줄 알았다. ­왜 처음에 거짓진술을 대학측에 했나. ▲아들과 조군이 걱정되는데다 김교사가 시켜 그렇게 했다.
  • 발레리나 김혜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9)

    ◎도약때 새의 비상 방불… “춤의 요정”/외지,“미감번득이는 탐미주의적 포즈” 격찬/세계적 명성 얻고도 자만하지 않는 노력형/포용력있는 성품… 「사치와 무관한 예수셰계」 추구 꽃잎처럼 여리고 가늘고 향기로운 느낌.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 김혜식씨의 이미지다.곧고 균형잡힌 체격과 세련된 용모,예술가의 찬란한 경력과 연륜,세계적 명성에 비해 그의 어느 구석에서도 자랑과 오만,자부심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알프스 소녀같은 순백한 표정에 말씨도 미소도 웃을때의 눈매도 부드럽다.걸음걸이도 발레리나 특유의 티를 내지않는다. 그러나 목선과 어깨선 조용히 앉아있거나 책을 읽을때 주스를 따를 때도 그에게선 어쩔수 없이 일가를 이룬 한 발레리나로서의 기품이 엿보인다. 잔잔한 리듬이 밴 발동작과 우아한 스텝은 그가 국립발레단 시절 「레 실피드」에서 보여준 「공기의 정령」,또는 몸속에 쇼팽의 선율이 흐르는 듯한 물결같은 움직임이다. 일명 「백색발레」(aballetblanc)로 불리는 「레 실피드」에서의 아라베스크와 절정을 향한 앙트리샤는 그의 많은 묘기중에서도 눈부시게 뛰어난 테크닉으로 손꼽힌다.특히 그의 도약은 그림자무게만큼이나 가벼울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곧잘 새의 비상(비상)에 비유되곤 한다. 한발로 선채 한 다리와 한팔을 마음껏 뒤로 뻗치는 앙트리샤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신문과 댄스 전문지등에서 일찍이 「미감이 번뜩이는 탐미주의적 포즈」로 호평된바 있다. 외지 보도에서 그는 언제나 「혜식(Haeshik)」으로 불리고 한국의 임성남 사사를 밝히는등 최근의 「댄스 티처나우」지(92년 1월호)는 「서울에서 온 김혜식」특집기사속에서 「잠자는 미녀」의 「오로라」,또는 「봄의 요정」에서의 「요정(Fairy)」자체로 그의 춤을 표현하고 있다. ○임성남씨에 사사 그는 무대위에서 「사랑스럽고 감미롭고 고혹적」이다.그러나 이 글을 쓴 무용 평론가 레슬리 프라이드맨은 그의 무용가로서의 이면에는 「고집이 세고 책임감이 강하고 주어진 일에 대한 확고한 판단력과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완벽주의가 도사려 있다」고 밝힌다. 이대 무용과에서 같이 무용을 공부한 미스코리아 출신 오현주씨는 「예술가적 양심과 도덕성,세계적 수준의 발레 기교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동시에 갖추었으나 언제나 온순하고 겸손하고 관대하다」고 친구를 자랑한다. 그의 관대함과 포용력은 이번 국립발레단 새단장 내정때 이를 질투하고 항의하는 전화를 받고도 수화기를 든채로 코를 골고 잔 이야기가 잘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그의 국립발레단 새단장은 새삼스럽게 거론된 것은 아니다.3년전부터 해마다 동아무용콩쿠르 심사위원자격으로 서울에 올때마다 스승인 임성남씨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고 무용계에서도 양식있는 실력자의 출현을 당연히 환영하는 빛이었다. 「임성남씨가 은퇴하더라도 김혜식이 있으니 안심」이라는 반응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 깊이 외국무대에 뿌리를 내린 그로서는 거미줄같은 스케줄에 얽매여서 이를 뿌리치고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지난 16년간 교수로 몸담아온 프레스노대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다.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농공학교수인 부군 김주익씨와의 섬세하고도 다각적인 의논끝에 「나를 키워준 고국에 대한 감사의 차원」에서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입장이었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 김혜식은 서울에서 태어났다.아버지 김응순씨(70년 작고)는 고대출신으로 오랫동안 교통부 해운국장으로 재직,비교적 건강하고 구김살없는 환경에서 명랑하게 자란 편이다.집안에 무용을 하는 사람은 없다.다만 사촌언니이며 문단의 중진인 시인 김양식씨가 김혜식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발레리나의 꿈」을 심어주었다. 성공회 유치원시절부터 춤을 추기 시작하여 이화여중때 일본에서 러시아발레를 전공하고 돌아온 임성남무용연구소에 입소,중학교 3학년때 「꽃의 왈츠」에서 군무로 명동 시공관 무대에 섰고 고3 되던해 「백조의 호수」에서 스승인 임성남씨의 파트너로 본격 무대에 데뷔,「발레 신데렐라」로 떠올라 무용계는 일찍이 김혜식 발레시대를 예고했다. 「타고난 재능보다 부족함을 메운다는 노력」을 신조로 하여 그는 밤낮없이 포즈연습에 매달렸고 하루가 멀다하고 토슈스를 해어뜨리는 딸의 춤을 그의 부친이 말없이 뒷바라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 「수정 온디누」를 보고 그때부터 막연히 마것 폰테인의 영국 로열발레 진출을 꿈꾸게 되었다. 당시 미국대사관 공보관으로 와있던 미스터 핸더슨은 김혜식의 「백조의 호수」「레 실피드」에서의 연속회전인 푸에테에 반해 뉴욕시티발레·로열발레 뤼스 드 몬테카를로 공연 필름을 구해주었고 새들러스 웰즈의 「불새」공연에서 눈이 핑핑 돌것같은 마것 폰테인의 현란한 선회를 마치 그 자신의 운명을 응시하듯 지켜봤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드디어 그는 67년 5·16장학금을 받아 영국으로 갔고 런던의 로열발레스쿨에 입학,세계적 프린시펄인 줄리아 파론,일리아 워드 도널드 리튼을 차례로 사사,발레스쿨 수료후엔 에롤 에디슨에게서 알레그로 스텝의 보충레슨을 위해 1년간 수업을 연장했다. 그러나 시즌엎이어서 로열발레단 오디션을 놓치는 바람에 「잠자는 미녀」솔로로 니콜라스 베리오소프 감독에게 발탁되어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에 입단,이 사실은 국내에도 널리 보도되었었다.그는 아름다운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 머물면서 각국에서 모여든 재능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이상 행복하기만 했다. 그때 미국에 살고있던 동생이 그를 만나러 왔다가 「유명 발레리나의 춥고 가난한 생활」을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자 『예술은 사치스럽다든가 풍요로운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모든 동작이 정지까지도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만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춤출 때외엔 화장을 하지 않는다.멋진 옷을 탐내지도 않는다.유럽 구석구석을 누비는 투어중에도 이 도시에서 저도시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모든 발레리나들이 그런 것처럼 그도 겨울에 입을 스웨터나 머플러를 뜨개질 하면서 공연 틈틈이 보았던 샛별같은 발레들을 머리속에 그리곤 한다.그중에서도 유럽공연을 가진 캐나다 레그랑 발레 캐나디안의 토슈스를 신지않은 「카르미나 브라나」는 퍽이나 인상적인 무대였다. 그는 이에 자극받아 취리히 발레단과의 3년계약을 끝내고 캐나다 몬트리올 발레단에 입단,오디션에서 2백명중 1명으로 뽑혀 처음엔 세미 솔로이스트,다시 솔로이스트로 올라서 모든 공연에서 「작은 코리안의 센스있는 작품해석,유연한 기량」등의 개인평과 함께 차츰 춤의 요정으로 변신해갔다. ○공연때마다 호평받아 「나이든 모습으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30세가 되던 72년,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있었던 록 발레 「토미(Tommy)」공연에 찾아온 김주익씨와 그해 12월20일 프레스노에서 결혼,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농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익씨는 「무용하는 와이프를 원치않아」결혼과 함께 그곳 신문들은 「프린세스 차밍과의 결혼을 위해 토슈스를 포기한 발레리나」를 대대적으로 보도해주었다.예상치못한 김혜식 발레 포기는 미국은 물론 한국무용계를 크게 놀라게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정주부로 머물면서 뜨개질이나 하고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발레 필름에 넋을 빼앗기는 아내를 발견한 김주익씨는 「그는 아내이기전에 한사람의 예술가」임을 뒤늦게 깨달았다.더구나 「이 도시에 세계를 누빈 발레리나가 와있다」는 소문과 함께 결혼 3개월만에 프레스노 시립발레단이 「호두까기인형」「잠자는 미녀」공연에 초청,네 왕자와 더불어 추는 「로즈아다지오는 비길데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란 극찬등 프레스노 시립발레단 초청발레리나겸 안무자로 활약하다 77년 프레스노대 연극무용과 교수로 초빙됐다. 자녀가 없는 이들은 푸들 스카티를 아들삼아 키우면서 친구처럼 남매처럼 오로지 세상에 두사람뿐인 것처럼 누구보다 다정한 부부다. 발레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던 부군도 언제부턴가 발레전문가를 능가하는 발레이론가가 되어 어떤 외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혜식으로서는 그동안 큰 좌절이나 난관은 없었다.좌절과 난관이 있기 전에 철저한 연습으로 이를 대비했기 때문이다.슬픔이 있었다면 20년 가까이 친자식처럼 키워온 스카티를 지난해 모국방문기간 동안 잃은 일이다.스카티 얘기가 나오면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닮아서 춤을 잘추었는데,바느질 스티치같은 부우레가 얼마나 귀여웠는데』하며 소녀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나 그런 이면에는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과 판단,완벽주의」가 도사려 오는 1월 단장취임에 앞서 지난 3주동안 발레단체의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연스케줄이 짜져야만 2∼3시간씩 하던 연습을 하루 8시간으로 대폭 늘렸다.타성이 된 모든 잘못된 포즈나 폼은 연습을 통해서 고친다는 각오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김혜식 발레시대의 출범과 함께 그가 세계무대에서 호평받았던 젤롬로빈스의 「목신의 오후」,조지 발란신의 「알레그로 블리리안」그리고 토슈스 없는 「카르미나 브라나」를 국립극장 무대에서 보게될지도 모른다.그리고 그것은 그의 우상이었던 마것 폰테인의 이미지를 몸속에 간직한 꽃잎과도 깃털과도 같은,김혜식 특유의 미감이 번뜩이는 불멸의 예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연보 ▲1942년4월 서울출생 김응순씨와 백운정여사의 3남2녀중 셋째(장녀) ▲61년 이화녀고 졸업 ▲57∼64년 임성남 무용연구소 사사 ▲63년 제1회 동아무용콩쿠르 김상 수상 ▲64년 이대 체육대 무용과 졸업 ▲64∼66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66년 5·16장학금과 동아일보 장학금 받아 도영,영국 로열발레 스쿨 수학(RADDIPLOMA) ▲67∼69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특별연수,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차석 무용수 ▲69∼72년 캐나다 몬트리올 발레단 프리마발레리나및 솔로이스트 ▲73∼77년 미캘리포니아 피그가든 댄스아카데미 안무및 지도위원 ▲72∼92년12월 미캘리포니아 주립대 프레스노대 연극무용과 교수 ▲67년 이탈리아 댄스페스티벌 초청예술가 참가 ▲68년 스위스 주네브 댄스페스티벌 초청예술가 ▲69년 캐나다 퀘백주립고교및 대학에서 발레교육과 테크닉을 위한 설기지도 ▲70년 미 자코브스 필로댄스 페스티벌 초청예술가 ▲71년 미 케네디센터 개관기념 공연 참가 ▲73∼74년 미 프레스노 시립발레단 발레리나 「잠자는 미녀」「호두까기인형」공연·안무 ▲77∼92년12월 프레스노대 포타볼댄스 투톱을 위한 안무와 초청발레리나 ▲82·86년 포타볼댄스 투톱의 일본 대만등 순회공연 ▲83년 홍콩아카데미 아트센터 발레실기지도 ▲85∼89년 센트럴 캘리포니아 발레콩쿠르 심사위원 ▲87∼89년 미국대학 발레전공 장학생 선발 콩쿠르 심사위원 ▲90∼92년 동아일보 주최 동아무용 콩쿠르 심사위원 「백조의 호수」「로미오와 줄리엣」「잠자는 미녀」「코델리아」「호두까기인형」「프린스 이글」「연」「아이다」「파우스트」「토미」「파이어버드」「미스줄리」「카르미나 브라나」「더트립」「아루키(ARUKI)」「인터플레이」「알레그로 블리리안트」「세레모니」「레 실피드」「목신의 오후」「봄의 요정」등 수십편.
  • 「클린턴 노믹스」 실현할 라이히사단/뉴욕타임스지 보도

    ◎정권인수위 경제팀장중심 교수 대거기용/하버드대 서머스·버클리대 타이슨 등 포함 빌 클린턴 미대통령 당선자는 차기 미행정부의 경제관련 요직에 대학교수 출신의 브레인들을 대거 기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클린턴은 명문 예일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로즈(Rhodes)장학생 출신이라는 화려한 학력을 배경으로 그동안 광범위하게 학계의 브레인들과 인연을 맺어왔으며 특히 다음 행정부의 최대사안이 경제라는 점에서 이들 브레인들을 활용할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마련된 것이다. 「클린터노믹스」의 대표주자격인 로버트 라이히 교수가 정권인수위원회의 경제팀장으로 발탁된데 이어 라이히 교수는 새 행정부에 건의할 구체적인 경제방안을 짜기 위한 과제를 주변 인사들에게 배분했는데 이들이 차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할 「라이히 사단」의 멤버가 될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지는 19일 클린턴 대통령당선자의 보좌관들의 말을 인용,라이히교수가 로렌스 서머스교수등 9명의 인사들에게 12월 중순까지 경제분야별로 정책청사진을 제출해줄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로렌스 서머스=하버드대 경제학교수로 현재 교수직을 잠시 떠나 세계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조세정책을 포함,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의 필요성여부 등에 관한 경제정책을 담당할 예정이다.장차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유력시되고 있다. ▲로라 디 안드리아 타이슨=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학의 경제및 경영학교수로 재직중이며 기술과 제조에 관한 정책을 관장할 예정이다.첨단산업 지원을 위해 연구비를 늘리는 방법을 통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데레크 쉐러=클린턴과는 오랜 친구사이로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탈대학 경제학교수다.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및 직업훈련을 개선하는 방안을 주도할 예정이다. ▲레티시아 챔버스=예산문제가 전문인 컨설턴트로 예산업무를 관장하게 된다. ▲아이라 마가지너=오래전부터 클린턴과 친구였으며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대에서 함께 유학했다.로드 아일랜드주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오래전부터 정부의 효율화로 예산을 절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배리 카터=조지타운대 법학교수로 국제관계에 대해 클린턴의 자문역할을 했으며 앞으로 교역관련 업무를 맡을것으로 보인다. 이들외에 서머스 교수와 함께 경제정책 방안마련을 위해 일할 사람들은 진보정책연구소의 경제연구원인 로버트 샤피로,골드만 삭스사의 공동회장인 로버트 루빈,클린턴과 조지타운대 동문이며 현재 뉴욕의 투자은행인 블랙스톤 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로저 알트만등이라고 타임스지는 보도했다.
  • 세대교체 열망 업고 백악관 입성/클린턴은 누구인가

    ◎유복자로 탄생… 주정꾼 의부밑서 자라/고교때 케네디 만난뒤 정치입문 결심/결손가정 아픔 디디고 주지사 5선 지낸 집념 기린아 클린턴이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됐다. 어느 시대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는데는 그에 걸맞는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의 등장 또한 미국 역사에 하나의 획을 긋고 있다. ○생부는 윤화로 숨져 1961년 카톨릭 교도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당선이 종교의 벽을 허문 하나의 거보였듯 클린턴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처럼 통나무집에서 자란 대통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손가정에서 자란 유복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20세기가 다 가고 있는 지금까지만해도 미국의 통념상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클린턴은 1946년 남부 아칸소주의 조그만 도시 호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중장비 차량 운전사였던 아버지 윌리엄 브라이드 3세는 클린턴이 태어나기 3개월전 미주리주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클린턴의 어머니버지니아 켈리 여사(69)는 4명의 남자와 다섯번 결혼한 경력을 갖고 있다.4명의 남편 가운데 현재의 남편을 제외한 3명의 남편과는 모두 사별했다. ○어머니 다섯번 결혼 버지니아 켈리 여사에게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피가 섞여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클린턴은 인디언의 피를 이어받은 최초의 미국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클린턴의 어머니는 클린턴이 두살 되던해에 생계를 위해 간호원이 되려는 생각으로 클린턴을 같은 동네에 살던 아버지(클린턴의 외조부)에게 맡기고 루이지애나주로 떠났다. 흑인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조그만 식료품가게를 하던 외할아버지는 클린턴을 끔찍히 사랑했다.그는 흑인들을 각별히 대하는 보기드문 백인의 한사람이었는데 클린턴은 자라면서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한 일이 있다. 어머니가 50년 고향으로 돌아와 자동차중개상인 로저 클린턴과 재혼하고 새살림을 차리면서 그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다.그러나 그의 의붓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술만 마시면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예사로 했다. ○외조부사랑 독차지 14살때의 소년 클린턴은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는 의붓아버지에게 다시는 어머니를 때리지 말도록 「엄중경고」했고 로저 클린턴의 손찌검 버릇은 그날 이후 없어졌다고 한다. 어머니 버지니아는 재혼한지 12년만인 62년 로저와 이혼했다가 3개월 뒤 다시 결합했다.클린턴은 고등학교 2학년때 이름을 윌리엄 제퍼슨 브라이드에서 지금의 빌 클린턴으로 바꿨다.의붓아버지가 좋아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이 자신과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는게 싫어 스스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클린턴의 어머니는 클린턴이 마리화나를 피운 일이 있느냐 없느냐로 선거과정에서 한때 곤욕을 치른 일과 관련해서 일화 한토막을 전해주고 있다.클린턴은 연기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데 그것은 마리화나를 피워 본 이래 생긴 현상이라는 것. 마리화나를 피워 본 죄책감으로 연기에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 것 같다면서 그 때문에 뒤뜰에서 낙엽만 태워도 클린턴은 도망을 가곤 했다고 그의 어머니는 전하고 있다. 클린턴소년은 그가 자란 가정환경과는 달리 학교에서 매우 총명하고 우수한 학생이었다.국민학교시절 그를 직접 가르쳤던 한 교사는 『클린턴군은 아주 총명했으며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아동』으로 기억하고 있다. 핫 스프링스 고교 2학년때 클린턴소년은 아카소주 우수학생의 한사람으로 백악관을 방문하는 영광을 누린다.백악관 뜰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클린턴 소년의 표정은 유난히 밝고 활기에 넘쳐 있었으며 무엇인가 대통령에게 말을 건네려 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로스장학생에 뽑혀 클린턴은 그때 사진을 이번 선거기간 동안 광고방송에 자주 활용했다.클린턴 소년의 백악관 방문은 그의 인생항로를 바꿔놓은 여행으로도 유명하다.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강력한 인상을 받은 클린턴은 의사나 연주가가 되려던 평소의 꿈을 버리고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64년 백악관이 가까이에 있는 수도 워싱턴의 조지 타운대를 택해 정치학을 전공한다.그의 대학생활은 상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졸업과 동시에 미전역에서 15명을 선발하는 로스 장학생으로 뽑혀 68년 영국 옥스포드대에 유학하게 된것을 보면 공부를 대단히 열심히 한 학생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옥스포드에서 2년동안 유학을 마친 클린턴은 부시의 모교이기도 한 예일대법대로 옮겨 72년 졸업했다.졸업후 변호사가 된 클린턴은 개업 대신 때마침 벌어지고 있던 대통령선거전에서 조지 맥거번 민주당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맥거번이 낙선하자 클린턴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카소 파예트빌대에서 4년동안 법학을 가르친다.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있던 74년 주하원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76년 주법부장관(검찰총장)으로 선출돼 대학을 떠났다. 2년후인 78년 32세의 젊은 나이로 주지사선거전에 뛰어들어 당당히 당선,미역사상 최연소 주지사의 기록을 세웠다.그러나 80년(당시는 주지사임기가 2년)재선에 실패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다 82년에 재도전,당선된뒤 5선의 주지사로 오늘에 이르렀다. ○최연소 주지사 당선 클린턴은 정치에 입문한뒤 74년 주하원의원 선거에서부터 이번 대통령선거전까지 모두 10회의 선거를 치렀으며 단 두번 낙선했을 뿐이다. 그는 부단한 노력형으로 쉴새없이 전화를 걸고 편지를 써 조직을 관리하고 사람을 설득하는 인물로 알려져있다.그리고 그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번 선거전에서만 해도 지난 1월에 터졌던 카바레 가수와의 정사스캔들,마리화나흡연 경험,병역기피 혐의,반전운동 주도등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내 버티고 이겨내는 끈질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그는 공격을 받으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반격에 나서는 도전적인 형이다.이번 TV토론에서도 그는 부시의 인신공격에 한번도 물러서본 일이 없었다. 굴복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치인 빌 클린턴의 면모와 쉽게 눈물을 흘리고 음악에 취하는 인간 클린턴의 면모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될지 궁금한 일이다.
  • 대학신입생 장학금 수혜요건 강화

    ◎대부분 310점이상­정원의 2∼5% 기준/고득점 수험생 대폭 증가 대비/성대/3백10점­입학정원의 2%이내/중대/학과별정원 5% 안넘어야 지급 각 대학들이 우수학생들의 지원을 유도하기위해 「고득점」 신입생에게 특별히 지급하는 장학금 수혜요건이 올 대학입시에서는 크게 강화됐다. 각 대학들은 4년간 등록금 전액은 물론 학비보조금까지 지급되는 고득점 장학금 상한선을 종전의 3백점선(3백40점만점)에서 10점이상 올렸다. 또 대부분의 대학들은 입시요강에서 제시한 고득점을 받더라도 다시 전체 혹은 학과별 입학정원의 2∼5%안에 들어야만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장학금 수혜요건을 제한했다. 각 대학들의 이같은 고득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 수혜폭 조정은 올 대학입시가 지난해와 같이 쉽게 출제돼 수험생들의 득점폭이 10∼20점가량 오르고 고득점 수험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3백점이상 고득점 수험생에게 무조건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입시요강에 명시했던 각 대학들은 지난해 입시문제가 쉽게 출제되는 바람에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예년의 4배가 넘는 1만2천6백여명에 이르러 장학금지급문제로 몸살을 앓았었다. 현행 대입학력고사 대입시제도가 처음 실시된 지난 88학년도이래 3백점 이상 고득점자는 해마다 3천여명정도 였다. 3일 교육부와 각 대학에 따르면 경희대의 경우 「고득점」 장학금의 상한선을 계열에따라 3백∼3백25점으로 지난해보다 일률적으로 10점씩 올렸다.성균관대학도 3백10점으로 10점을 올린 동시에 전체 모집정원의 2%이내로 수혜대상 학생수를 제한했다. 건국대도 「상허장학금」1급의 등록금 면제폭은 입학정원의 5%이내로,「도서구입비 지급」대상은 입학정원의 2%이내로 제한했다. 중앙대는 장학생 기준점수는 예년 그대로 두되 학생수를 학과별정원의 5%이내로 제한,실질적으로 10점이상 점수를 올리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한양대의 경우도 점수를 상향조정하고 지난해 수혜폭을 전체 입학정원의 10%에서 5∼6%로 크게 줄일 계획이다. 성균관대학교 조동원 학생처장은 『지난해 입시의 경우 시험문제가 예년에 비해 쉬워 고득점 장학생이 당초 학교에서 예상했던 60명의 3배에 가까운 2백여명에 이르러 올해의 경우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된다는 당국의 방침에따라 장학금 지급 기준점수를 10점 올리고 대상학생수를 모집정원의 2%이내로 제한했다』고 말했다.
  • 산업의학 장학생 선발/노동부,직업병 등 치료(단신패트롤)

    ◇노동부는 3일 직업병예방과 치료를 맡을 산업의학 전문인력을 양성해나가기위해 올 하반기에 인원수와 상관없이 산업의학 장학생을 선발키로 했다. 산업의학 장학생 선발대상은 예방의학전문의중 산업의학을 전공한 사람 가운데 국내에서 임상중심의 레지던트과정을 이수할 사람등 4개 과정이며 희망자는 오는 30일까지 신청서등 구비서류를 노동부에 제출하면 된다.
  • 장학생선발 확대 등 건의/전국 국공립대 총장회의(단신패트롤)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가 29일 강원도 양양 비치호텔에서 부산대 장혁표 총장을 비롯한 19개 대학 총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국공립대학 총장협의회는 이날 현행 장학생선발 기준이 각 학과 재적생의 1백분의 40 이내로 돼 있는 것을 1백분의 50으로 상향 조정하고 장학금액수를 등록금 수준으로 올려줄 것 등 4개항을 결의,교육부에 건의키로 했다. 국공립대 총장들은 현행 장학생선발기준이 재적생의 1백분의 40 이내로 돼 있어때로는 한국장학회에서 배정한 재원이 남아 반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의 현실적인 개선을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 성적중압에 여고생등 잇단 자살

    ◎우등생 2명등 4명 또 분신·투신·목 배 학생들이 성적부진을 비관,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12일 상오3시쯤 전북 군산시 송풍동 951의6 염한영씨(46·버스운전사)집 앞에서 염씨의 외동딸 경예양(17·군산Y여고 1년)이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가족들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상오10시쯤 숨졌다. 가족들은 경예양이 중학1년생때부터 줄곧 반장을 맡아온데다 고교입학때 성적이 전체 10위안에 들어 3년장학생으로 선발되는등 우수한 성적이었으나 11일 중간고사 첫날 시험을 치른뒤 성적이 떨어질 것을 크게 걱정했다고 밝혔다. 경예양은 유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공책에 「공부가 잘 안된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등의 낙서를 적어놓았다. 이날 상오5시30분쯤에는 부산시 금정구 구서2동 선경1차아파트 1동12층 이병대씨(53·회사원)집 베란다에서 이씨의 막내딸 서원양(16·D여고 1년)이 중간 고사에서 수학시험을 잘못 치른 것을 비관,교복을 입은채 35m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려 숨졌다. 이양은 「부모님 사랑합니다.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내 결정으로 죽는 것이니 용서하십시오」라는 유서를 남겼다. 숨진 이양은 반에서 1등,전교에서 6위권 이내의 우수한 성적에다 반장도 맡고 있는 명랑·쾌활한 성격이나 최근 중간고사에서 수학시험을 잘못 봐 고민해왔다는 것이다. 11일 하오 2시쯤 대전시 대덕구 비래동148의4 하버드학원 4층 여자화장실에서 이 학원에 다니는 이미경양(21·대전시 동구 대화동35의304)이 길이 2m정도의 줄넘기줄로 천정 수도관에 목을 매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양이 지난해 12월 대학진학을 위해 자신이 다니던 H투자금융회사를 그만둔 뒤 학원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며 공부를 해왔으나 성적이 시원치 않아 고민해 왔다는 친구들의 말에 따라 이양이 성적부진을 비관,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고국생활 적응못해 또 11일 하오 8시쯤 충북 청주시 율양동 동아아파트2동 1라인 현관베란다 옆 화단에 김세린양(15·청주J중 2년·청주시 사천동243)이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숨져 있는 것을 주민 김운칠씨(34·건설업)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잇단 청소년 자살… 각계 반응과 처방/「성적 제일주의」가 낳은 부작용/사회적 병리… 언행 눈여겨 봐야 ○정선경 전이화여고 교장 우리교육이 지난 40년동안 경쟁위주의 풍토를 지속,우리나라가 세계속에서 발돋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인간성의 성장이나 개인에게 알맞는 성취감에 차질을 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마음들을 심어줬다는 점에서는 과오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쟁위주의 교육풍토는 이제 고쳐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학교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쳐온 것은 우리 교육관계자와 부모들의 책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규동 신경정신과 전문의 청소년 자살은 3·4·5월에 피크를 이룬다. 계절적으로 봄은 만물소생을 상징하지만 청소년들은 감상적이고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어른들이 볼 때 그들의 자살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시야가 좁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자살을 한다. 청소년 자살은 사회적 병리현상의 하나로 전염병처럼 번지기도 한다.동정자살이 그 예이다. 자살자는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죽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그들의 언행을 잘 눈여겨 봐야 된다.
  • 한국계고교생 9명/미 대통령장학생에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내 고교생들의 최고영예인 대통령장학생에 윤창수군(델라웨어주 디킨슨고)등 한국계학생 9명이 6일 선발됐다. 미국대통령장학생은 미국 전역의 공·사립고교에서 성적이 뛰어나고 특별활동이 두드러진 학생 2만3천여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장학금심사위원회·중앙심사위원회에서 심사,최종적으로 1백41명을 선발하는데 한국계학생이 지난해에는 5명,90년도에는 6명이 뽑혔었다. 이들에게는 미국고교생의 최고영예인 메달이 주어지고 1주일간(6월13∼18일)워싱턴DC에 초대돼 백악관방문등의 특전이 주어진다.
  • 성남시,장학금 100억 모았다/내고장 인재 내손으로 키우자

    ◎시장부임 맞춰 90년9월 설립/중·고·대학생 연3천명에 혜택/탈루세금등이 주요재원… 시민들도 「십시일반」 동참 ○「성남장학회」 오늘 3번째 전달식 내고장 꿈나무를 우리가 가꾸자.메마르디 메마른 땅에 장학의 씨앗을 뿌리고 장학금이란 물과 비료로 정성들여 가꾼지 2년.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탐스런 열매를 맺었다. 경기도 성남시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성남시장학회」가 키운 이 지역 꿈나무들이 마침내 아름드리로 자란 것이다. 성남시장학회의 기금은 무려 1백억원,수혜학생만 연간 3천여명에 달해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장학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이 장학기금은 기업등 외부의 기탁금이나 지원을 하나도 받지 않고 전액을 자체적으로 마련한 것이어서 더욱 뜻깊은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남시가 장학회를 만든 것은 지난 90년 9월이다. 현 오성수시장이 부임하면서 이 고장의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면학의 길을 열어주어 장차 고장과 국가사회에 공헌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시는 이를 위해 먼저 시간부들로 장학회설립위원회를 구성,관내에서 징수하는 각종 탈루세금을 장학기금으로 조성키로 했다. 이때부터 버려져 있던 시소유 동산이나 부동산 찾기에 나서 이미 시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사용료를 내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재산은 사용료를 받기로 하고 임대해 주면서 「시민들이 내는 세금이 청소년들의 장학금으로 쓰여진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처음엔 장학회설립 취지를 오해하는 시민들이 있었지만 곧 모든 시유지 사용 시민들이 장학회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나섰다.그 결과 장학회설립 첫해인 90년말에 총 20억원의 장학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성남시는 이같은 방법으로 지난 91년에는 30억원을,그리고 올해에는 50억원을 장학기금으로 추가 조성했다. 기금이 조성되는대로 지방은행인 경기은행에 예탁했고 여기서 나오는 이자수입으로 지난 90년에 중학생 2백90명과 고교생 3백16명에게 모두 6천1백77만1천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91년 4월에는 대학생에게까지 장학금 지급대상을 넓혀 총 1천2백12명(중교생 6백65명·고교생 5백35명·대학생 12명)에게 5억2백만6천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장학기금 예치이자가 늘어 잉여재원으로 5백34명의 장학생을 추가로 선발,이들에게 5천8백58만6천원을 더 지급했다. 올들어서는 1·4분기 장학금 수혜대상자 2천7백45명(중교생 1천2백42명,고교생 1천3백76명,대학생1백27명)을 선발했고 4일 하오2시 성남실내체육관에서 이들에게 총 13억2천2백32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한다. 이들에게 주는 장학금액은 학비전액을 지급하고 있어 중교생의 경우 연간 34만8천원,고교생에게는 60만원,대학생에게는 1백만원씩을 학기별로 지급하고 있다. 성남시는 장학회의 효과적인 관리와 운영을 위해 지난해 12월30일 「장학금관리 특별회계설치조례」를 제정,시의회의 승인까지 받았다. 이 조례는 장학생 선발대상과 기준을 설정, ▲저소득층및 근로자 자녀를 우선으로 하고 ▲지역사회개발 유공자 자녀 ▲학업성적우수자 가운데서 시청간부와 지역사회인사들로 구성된 「장학생심의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있다.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장학금만 전달하지 않고 학생개인별 신상카드를 작성,모범생으로 키우기위해 항상 자문에 응하는등 세심한 지원도 하고있다. 이같이 성남시민이 장학의 씨앗을 정성들여 키운 결과는 올해부터 알찬 결실을 맺기 시작 하고 있다.첫해부터 성남장학회의 장학금으로 공부해 올해 고교를 졸업한 박건영군(19·낙생고졸)과 정재훈군(20·성일고졸)이 고려대와 단국대에 각각 수석합격의 영광을 얻은 것이다. 장학회를 창안한 오시장은 『모든 시민들이 자기일처럼 기뻐했다.저희들은 성남시장학회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느기업,어느학교에서 설립한 장학회보다 기금면에서나 규모면에서 가장 큰 장학재단이라는데 자부심을 갖기보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장학재단이라는데 더 큰 긍지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교육위원 김영수(54)는 『저소득층이 많은 성남시에 시청에서 전국에서 제일 큰 장학회가 설립돼 불우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처줘 여간 자랑스럽지 않다』며 앞으로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맞아 성남시가 전국 제일의 교육도시로 급부상할것 이라고 기대했다.
  • 한·흑인 지도자 화합 5개방안 합의(단신패트롤)

    ◎상호 문화소개·스포츠혼성팀 구성등 ◇한·흑대화합운동을 펴고 있는 헨리 홍목사(미평화목자회장·뉴욕거주)는 13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흑인지도자 머빈 다이말리 하원의원(전 캘리포니아부지사)과 한·흑화합방안을 협의,양측 언론이 서로 상대방의 문화를 소개하기로 하는 등 5개항에 합의했다. 홍목사는 이날 다이말리의원과 ▲흑인이 많이 시청하는 TV와 라디오에서는 한국문화를 정기적으로 소개하고 한국계 교포 방송에서는 흑인문화를 소개하며▲한·흑 청소년들로 야구·축구등의 혼성팀을 만들어 친목을 도모하고▲상호 문화교류행사를 가지며▲흑인장학생 1백명을 경희대학에 유학시키고▲한국전에 참전한 흑인 노인들을 오는 6월25일 흑인교회에 초청해 만찬을 갖는다는 등의 5개항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 전기대 합격까지 취소시키며 계획

    ◎학부모와 함께 막판에 원서접수시켜/범행 5시간여만에 버젓이 신고해/전국민 경악시킨 대입문제 도난 전말 대학입시사상 처음으로 입시를 연기시키고 27만 수험생과 학부모를 비롯,전국민을 경악케 한 서울신학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22일 하오 도난사건을 처음 신고했던 경비원 정계택씨(44)가 범인임을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경찰 수사결과,정씨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신도인 이성분씨(40·여)의 딸 황모양(18·B여고3)이 전기대학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서울신학대 후기모집에 재응시한 사실을 알고 황양을 장학생으로 입학시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정씨는 지난 20일 동료 경비원 이용남씨(25)를 먼저 퇴근시킨 뒤 다음날 상오2시10분쯤 시험지가 보관된 전산실로 향했다. 정씨는 먼저 막대기로 교무처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자신이 갖고 있던 열쇠로 전산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인문계 시험지 4장을빼냈으나 겁이나 빼낸 시험지를 곧바로 소각장에서 태웠다고 진술,최소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이후 정문앞 경비실에서 잠을 잔 뒤 상오7시40분쯤 이순성교무과장(42)에게 『전산실에 보관중인 시험지 4장이 도난당했다』고 신고했으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초동수사 단계에서부터 외부로부터의 침입 흔적이 없는데다 정씨의 진술이 여러차례 엇갈리는 점등을 들어 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특히 ▲정씨가 평소 함께 근무하던 동료 이용남씨를 사건 전날 일찍 퇴근시키고 혼자 순찰을 돈 점 ▲마지막 순찰후 잠을 잤다는 장소가 교환실,정문앞 경비실등으로 3차례나 진술이 바뀐 점 ▲도난사실이 확인된 뒤 이순성교무과장이 현장보존을 지시했는데도 정씨가 이를 어기고 전산실에 들어간 점등에 대해 집중 추궁,세인을 놀라게한 이번 사건의 해결을 보게됐다. 정씨는 처음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으나 경찰이 황양과의 관련사실을 밝혀내자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 경찰은 정씨가 전기대 입시에서황양의 합격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청주대에 직접 내려가 황양이 합격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경찰은 또 황양이 다니는 B여고 담임선생인 박모씨로부터 원서접수 1시간전에 정씨와 이씨,황양이 함께 찾아와 서울신학대에 원서를 접수한 사실도 밝혀냈다. 황양은 서울신학대 원서접수시 끝에서 두번째로 원서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경찰은 이번사건이 정씨 혼자서는 저지를수 없다고 판단하고 공범이더 있을 것으로 추정,이에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대입시험사상 처음 있었던 일로 세인을 크게 놀라게 했으며 더욱이 범행이 경비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앞으로 이같은 사건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잘못된 것을 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고득점자 양산/내신비중 상승/늘어난 장학생/고액과외 찬물

    ◎「쉬운대입」 다각파문/3백점이상 1만명 넘을듯/“고교교육 정상화” 평가속 재수생등 불리/중하위권대학들,장학재원 마련에 고심 지난 17일 치러진 올 전기대 입시에서는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1만명이상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올해 전기대 응시자 63만여명의 1.58%에 해당되는 것이다. 3백40점 만점인 대입학력고사에서 3백점을 얻은 것은 1백점만점으로 환산하면 88점의 높은 점수이다. 대입학력고사에서 3백점이상 고득점자는 87학년도에 4천1백20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89학년 1천28명,90학년 2천94명,91학년 1천1백6명이었다. 중앙교육평가원은 서울대의 경우 전체합격자의 85%,연세대는 53%가 3백점이상으로 예상돼 올해 3백점이상 고득점자는 1만2천6백여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려대는 24일 최종 입시사정 결과 3백점 이상의 고득점자가 전체정원 4천9백70명(서창캠퍼스포함)의 41.9%인 2천81명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 합격자를 발표한 한양대도 3백점이상 합격자가 3백6명이나 됐으며 이화여대는 3백50명이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학교측이 밝힌 3백점이상 고득점자는 포항공대 3백명,서강대 4백31명,경찰대 1백20명,성균관대 1백90명,중앙대 73명,한국외국어대 30명 등 4천여명에 육박하고 있다.30일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인 서울대에서는 예체능계와 일부 비인기 학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합격선이 3백점을 넘어설 것으로 보여 3백점이상 합격자가 3천5백여명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3백점이상 득점자/상당수 낙방예상 이번 전기대 학력고사가 쉽게 출제됨에 따라 예기치 못한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서울대의 경우 일부 인기학과는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상당수 탈락할 것으로 보이며 합격자를 발표한 일부 대학도 동점자가 많이 나와 내신성적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이에 따라 지방수험생들이 유리해진 반면 서울 강남의 세칭 신흥명문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 또 학원에서 공부한 재수생과 고액과외에 매달린 수험생들이 별다른 이득을 보지못했다. 그런가 하면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고득점자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내건 일부 대학에서는 고득점자 사태가벌어지는 바람에 장학금 재원마련에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교육관계자들은 올해와 같은 쉬운 출제기조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경우 입시위주의 고교교육이 정상화되고 고액과외를 근절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입시에서는 고득점자들이 많이나와 상위권 수험생들간에는 동점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점 간격의 내신등급이 합격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학교수업을 충실히 받은 학생이 입시에서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학력고사 3백점이상의 고득점자에게 4년간 등록금을 전액 면제키로 한 성균관대의 경우 지난해에는 해당자가 한명도 없었으나 올해는 1백90명이나 돼 이들이 받게될 4년간의 등록금 면제액이 15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 “궂은 일 내 차지” 동사무소 근무고집 21년(이런 공무원)

    검은색 계통의 양복에다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옷차림이 깔끔한 느낌을 준다.키는 1백60㎝정도 였으나 다부진 체격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성품임을 금방 알수 있다.가슴에 단 「친절봉사 1백일운동」이라는 리본에서 그가 민원창구의 모범 공무원임도 알게한다.한 통의 주민등록초본을 떼는것부터 혼인 출생 전입 전출등 각종 신고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곳이 바로 일선 동사무소 민원창구다.그래서 「민원」이 「민원」이 되기가 쉬운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동사무소 근무만을 고집해오고 있는 공무원이 대구시 남구 대명1동사무소 사무장 강신반씨(54)이다. ◎“친절봉사는 이렇게” 강신반씨(대구 대명1동 사무장)/“주민접촉이 즐거움” 「민원」 현장 찾아가 해결/청소부하다 시험합격… 「공부방」 열어 보답/“웃는 얼굴이 첫째” 아내 사별 썰렁한 집서 아침마다 거울보고 연습 올해로 공직생활은 만21년.이 기간을 모두 동사무소에서만 보낸 그였지만 오히려 그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다.그가 근무한 동은 대명3동 4동 9동5동 10동 1동등 6개동. ○우편처리도 주선 『20년이상 공무원생활을 해온 제가 상급관청에서의 근무가 승진등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모를리 있습니까? 다만 외길을 걷다보니 말단의 민원업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일선 동사무소를 떠날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는 여러동을 거치면서 호적·병무·새마을·회계·총무업무 등 동사무소내의 일은 안해본 것이 없다.주민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곳이어서 그만큼 주민들로부터 많은것을 배울수가 있었다고 했다. 강사무장의 고향은 경남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빈농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고향에서 중학교만를 마치고 고교에 입학원서까지 냈으나 가정사정으로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다. ○민원서류 대필도 그는 군대를 제대한지 3년뒤인 64년에 큰형수의 소개로 결혼을 했지만 막상 시골에서 살려고 하니 부쳐 먹을 밭뙈기도 변변찮아 68년에 대구로 왔다. 『고향을 떠나 낯선 대구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못배운 한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에서였습니다』 대구에 와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대명3동의 청소부로 들어갔다.이것이 그를 공무원의 길을 걷게 한 계기가 됐다. 70년 9월에 성실하고 근면한 그의 근무자세를 지켜본 동사무소 직원들이 공무원시험에 응시해 보라고 해서 시험에 응시,무난히 합격해 그해 11월 공무원이 됐다. 그는 공무원이 되자 우선 민원인들의 어려움이 뭔가를 자세히 알려고 노력했다.70년대만 해도 문맹자들이 많았던 탓에 자신의 집번지도 모르고 간단한 신고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민원인들이 많았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이들의 대서업무를 도맡아 처리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혼인·출생·사망신고 등 본적지에 직접 가야 하는 민원은 해당지역 동과 면사무소에 우편으로 협조요청해 처리해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그가 한 일은 많다.우범지역의 주민들을 설득해 자율민방위대를 조직했는가 하면 동사무소 회의실을 영세민학생 공부방으로 활용하게 했으며 자신이 직접 참가해 이동민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또 영남대학 병원장에게 부탁해 관내 영세민들이 무료진료를 받게 주선했으며 지역유지들에게 호소해 관내경로당의 후원회를 조직,매년 노인들에게 경로잔치도 열어주었다.그는 「민원」이 「민원」이 안되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했다.웃는 얼굴에 침 뱉으란 법 없다고 먼저 민원인이 오면 미소로 맞이하면 된다고 했다. ○이동 민원실 운영 『주민들이 찾아오면 우선 미소를 지어야지요.저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 처음엔 아무리 웃어보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죠.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아무도 모르게 거울앞에서 「김치」하고 웃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곤 다른 동료들에게도 친절봉사는 먼저 웃는 낯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의 이같은 주민을 위한 봉사정신은 지난75년 6살된 셋째아들이 청소차에 치여 횡사한데 이어 이 충격으로 부인 이삼순씨마저 병을 얻어 10년이상 앓다 지난해 타계하는등 불운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하나도 흐트러짐없이 꿋꿋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자녀모두 장학생 『아내의 치료비를 대는데 월급이 거의 다들어가고도 모자라 천신만고끝에 장만했던 15평짜리 한옥을 처분해야 했었습니다.장학생으로 경북대 물리학과와 일문과에 다니던 큰아이 석립(27)이와 둘째아이 석대(23)의 학업도 차례로 잠시 중단해야만 했어요』 이런 불행속에서도 주민을 만나면 늘 웃는 낯으로 대해야 했고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자식들이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당시 국민학교에 다니던 막내딸 지혜양(16)은 어머니 대신 부엌일을 혼자 해냈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다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가 아들들에게 더욱 미안해하는데는 그만한 사유가 더 있다.석립군은 학력고사에서 3백10점을 받았고 석대군도 2백90점이 넘었으나 어려운 가정사정을 돕겠다면서 스스로 서울대를 포기하고 지방대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가 주위사람들로부터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것도 이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60여만원의 월급 가운데 절반이상을 부인 치료비를 대느라 진 빚을 갚고 주택부금도 부어야 하기때문에 빠듯한 생활을 하고있지만 출근하면 언제나 정겨운 민원인들이 있고 퇴근하면 사랑스런 자식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어 행복하다면서 활짝 웃는다.
  • 대학 청원경찰제 도입 추진/교육부/학생 야간순찰제도 권장

    교육부는 16일 최근 대학구내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강간및 강제추행사건등 각종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청원경찰제도」의 도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이날 국회에 낸 자료에서 이같이 보고하고 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법률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또 심야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을 위해 정문까지 학교버스를 운영하고 근로장학생들로 「야간학생순찰대」를 구성,교내 순찰등을 강화할 것을 권장했다. 이와함께 학교안 취약지구에 보안등을 설치하고 경비인원을 늘리는 한편 필요한 경우 사설경비기관으로부터 용역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도록 시달했다. 현재 인하대등 10개대학이 학생순찰대를 운영,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외언내언

    여성 독신주의자가 늘어간다고 한다.선진 외국에서의 경향이 우리에게도 이입된 현상.일(학문등)에 전념하다 보니 혼기를 놓친 경우도 있겠으나 경제적 능력이 따르면서 매이는 생활을 싫어하는 심리도 작용하는 듯하다.◆하지만 지난달 28일 위암으로 세상을 뜬 김보환교사의 경우는 다르다.57살을 독신으로 살아온 이 여교사는 올해 85살이 된 노모를 모시느라 결혼할 생각을 못한 경우다.아버지는 30년 전에 작고했고 4살위인 언니는 결혼을 했다.자기마저 결혼을 하면 어머니는 홀로 남을 게 아닌가.그래서 미루어 오다가 노모보다 먼저 떠나간 초로의 처녀.망구 노모의 슬픔이 가장 큰것이리라.◆위암 선고를 받고도 내색 않고 교단에 섰던 33년 교직자.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끼고서야 입원한 끝에 눈을 감았다.결혼은 안했지만 날마다 대하는 제자 하나하나가 다 내 아들이며 내 딸이라 여기면서 정성을 쏟아온 평생.그는 숨을 거두면서 노모의 생활비를 제외한 재산과 퇴직금을 몽땅 재직해 온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육영의 뜻을 죽어서도 펴겠다는 곱고도 숭고한 교육정신이다.◆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갖가지 희한한 반사회적 사건들이 잇따른다.세상이 금방이라도 결딴 날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보다 수천 수만배의 크고 작은 선의가 살아 숨쉰다.평생 김밥장수 해서 모은 돈을 대학에 내놓은 할머니도 있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자기는 죽는 의인도 적지 않다.이같은 선의들이 우리 사회를 밑받친다.김교사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사도와 효도를 본보이고 떠나간 우리 시대의 사표이다.◆이 장학금의 혜택은 해마다 30명 학생에게 돌아간다.그 장학생들에게 김교사의 정신은 이어질 것이다.저세상에서는 오순도순한 가정 이루기를.
  • 기여입학제도의 검토(사설)

    사학에서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는 불정입학사건이 우리를 참담한 심경이 되게 한다.등록금에만 의존하는 사학의 재정형편은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많은 돈을 내고라도 자녀를 대학에 입학만 시키기를 갈구하는 학부모는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니 「불정입학」의 유혹을 받는 일을 물리치기는 좀처럼 어렵다. 건대의 경우만 해도 짓다만 도서관은 속수무책이고,도서관도 제대로 못가진채 대학에서 총장노릇을 해야 하는 다급함이 겹쳐 마침내는 『호텔에 방을 차려놓고 총장이 직접 돈많은 학부모와 흥정을』벌이게까지 된 것이다. 대학과 대학인이 어떤 이유로든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해서 안될 일이다.감독기관은 그것을 사전사후에 밝혀내야 한다.그와 함께 대학과 대학인이 끊임없이 이같은 함정앞에 시험당해야 하는 일도 이제는 바로잡혀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는 6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건의한 「기부금 입학제도의 허용」도 실속있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학의 운영방식은 사학에게 재량권이 주어져서 스스로 생존능력을 기르고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기여입학제도」란 것은 어느나라 사학에도 있어왔고 유지되고 있는 제도다.그 운영관리가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수행되게 감독하는 일이 중요하다.「황금만능주의의 확산」을 우려한다거나 「사회적 위화감」을 염려해서 반대하는 여론도 많이 있지만 이런 사고방법은 다소 편협하고 성숙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므로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석금제도나 범칙금,벌금형 따위가 실형과 병행해서 운영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사회다. 그렇다고 돈만 있으면 전혀 수학능력이 없는 학생의 입학이 가능하다거나,정당한 경쟁에서 합격한 정원을 침해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또한 기부금으로 입학을 한다고 해도 입학이후의 책임은 본인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실력 모자라거나 수업에 게을러서 따라가지 못하면 탈락될 수밖에 없다.부모덕에 기부금으로 간신히 입학은 했지만 본인이 감당하지 못해 탈락된다면 그의 대학생활은 아무런 의미도 못지니게 되는 것이다. 돈으로 가장 좋은 것을 살수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다만 합법적이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그것에 대한 감시가 엄격해야 한다. 정당한 출구를 만들지 않으면 음성화하고 범죄화한다.과외상인들이 천정부지의 과외비를 버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수천억원씩의 과외비용이 소모되는 사회에서 정작 대학은 빈사의 지경을 헤맨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기부금으로 조성된 재원의 쓰임새가 대학발전사업이나 장학생확충사업 등 우선 순위로 정해진 일에 쓰이지 않는 것의 감시를 엄격하게 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국고지원에는 한계가 있고 등록금인상도 동결상태에 있으면서 빈곤한 대학재정을 극복해가야 하는 사학들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기여입학제도에도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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