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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의 일꾼’ 키우는 장학재단 2곳

    - 李埈鎔 회장 장학금은 인재를 발굴한다.많은 사람들이 장학금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치고 사회의 일꾼으로 활약하고 있다.자신들이 받았던 장학금을 대물림하고,불우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장학재단의 훈훈한 얘기를 소개한다. 범죄를 저질렀던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범죄예방위원들이 장학재단을 만든다. 서울지검 산하 범죄예방위원협의회(회장 李埈鎔 대림그룹회장) 소속 위원 610여명은 12일 오후 2시 서울지검에서 ‘푸른마음 장학재단’설립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갖기로 했다.오는 25일 재단으로 등록할 예정이다. ‘푸른마음 장학재단’은 범죄에 빠졌던 청소년들을 활기찬 사회구성원으로 이끌기 위해 출범한다.재단 명칭은 위원들의 아이디어로 채택됐다.장학기금은 선도된 청소년들의 학비 지원 및 생활보조,청소년 범죄 예방활동에 사용된다.위원들은 서울지검(金壽長 검사장)이 관할하는 중구·종로·서초·강남·성북·용산·동작·관악 등 8개 구에서 산다. 재단설립에 뜻을 모은 것은 지난해 9월.李회장 중심의 새 임원진이 구성되면서부터다. 현재 회비 및 기부금 등으로 2억500만원의 장학기금을 모아둔 상태다.李회장은 2,000만원을 기금으로 내놓았다.위원 가운데 17명은 200만∼1,000만원씩,나머지 위원들은 10만원 가량 기부했다.서울지검의 일부 검사들도 참여했다. 올해 말까지 모금 목표액은 3억원이다. 위원들은 선도조건부 기소유예가 선고된 청소년들을 위탁받아 짧게는 6개월,길게는 1년 동안 면담·지도해 다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돕고있다.우범지대나 유흥업소 등을 순찰하기도 한다. 협의회 白九燮 운영실장(50)은 “재단 설립을 계기로 50여명의 청소년들이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朴弘基 hkpark@- 李銓文 회장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성공한 인사들이 ‘보은의 장학재단’을 설립,후배들의 학업을 돕고 있다. 97년 12월 만들어진 장학재단의 이름은 ‘밀알장학회’.이사장은 방송위원회 언어특별위원을 지낸 李銓文씨다.회원은 400여명.모두 학원(學園)장학회의 도움을 받아 공부한 인사들이다. 학원장학회는 학생잡지 ‘학원’의발행인이었던 故 金益達선생이 지난 52년에 세웠다.가정형편이 어려운 우수 학생들이 중학교 때부터 대학졸업 때까지 이 장학회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마쳤다.학생들은 “성공하면 장학금을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밀알장학회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회원들은 장학기금으로 지금까지 3억원을 모았다.모든 회원이 많게는 1,000만원,적게는 100만원씩 냈다.이 돈으로 고교에 입학한 농어촌 불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지난해까지 14명이 혜택을 받았다. 밀알장학회 회원들은 각계에서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다.정계에는 국민회의金槿泰부총재와 한나라당 姜在涉의원,관계에는 尹玉水 건설교통부 국토계획과장,辛基潤 행정자치부 교육훈련과장이 있다.재계에는 張炳九 외환은행 종합기획부장이 있고,학계에서는 서울대 사범대 蘇光燮교수와 한림대 신방과劉載天교수 등이 회원이다.金聖男·金完燮 변호사와 화가 李敬子씨도 있고,의사로는 서울대 의대 진단방사선과 金承協교수 등이 활동 중이다. 밀알장학생들은 해마다 2박3일씩의 여름연수회와 송년회에서 자신들을 도와주는 장학회원 선배들과 만난다.선배들은 이 자리에서 학창시절의 얘기도 들려주고 진로 상담도 해준다. 주현진
  •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내일 예술의 전당서

    클래식 팝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바이올린의 매력을 보여주는 유진 박의 바이올린 콘서트가 20일 오후3시,7시30분 두차례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크로스오버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유진 박은 197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8살에 줄리어드 예비음악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며 10살 때 웨인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13살 때 링컨센터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재즈의 거장 윈튼 마샬리스의 눈에 띄어 뉴욕의 재즈클럽 ‘화(Wha)’ 등에서 초청무대를 가졌으며 음반 ‘브리지’와 ‘피스’ 등을 냈다. 2년전 비올라 줄과 첼로 줄을 하나씩 덧붙여 만든 ‘여섯줄 전기 바이올린’을 들고 귀국,독특한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연주회에서 유진 박은 야사 하이페츠의 ‘호라 스타카토’ 사라사테‘집시의 노래’ 브람스 ‘헝가리 무곡 제 5번’ 마스네 ‘타이스의 명상곡’ 등 클래식음악을 비롯해 자신이 작곡한 ‘블루 스카이’ ‘록 어웨이’등 팝과 록음악을 들려준다.5인조 밴드의 연주로 노래와 랩 등도 선보인다. 클래식곡 중 일부는 전기 바이올린이 아닌 일반 바이올린으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주할 예정이어서 전기바이올린과 일반 바이올린의 매력을 비교,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02)539-0303 姜宣任 sunnyk@
  • 주니어 1인자 최동휘 테니스명문 장학생 입교

    ‘국내 주니어 1인자’최동휘(13 대전 탄방초등교)가 세계적인 테니스 스쿨인 ‘닉볼리티에르’에 동양인 첫 전액 장학생으로 빠르면 내달초 입교한다. 최선수의 입교를 주선한 포항공대 서의호교수는 21일 “동휘가 미국의 닉볼리티에르와 프랑스의 어드밴티치 인터내셔널로부터 입교제의를 받았으며 조건이 좋은 미국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면서“동양인이 닉볼리티에르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닉볼리티에르는 박세리 전담 매니저먼트사인 IMG 소유의 테니스스쿨로 피트 샘프라스,마르셀로 리오스,안드레 아가시,린제이 데이븐포트,안나 쿠르니코바 등 내로라 하는 남녀 톱 랭커들이 거쳐간 곳.
  • 사서직 등 국비장학생 11명 뽑아

    행정자치부는 19일 공개채용하지 않고 있는 사서직,축산직 등 9개 직렬에 11명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선발인원은 사서직,축산직,식품검역직,선박직,화공직,학예연구직,공업연구직이 각각 1명이며 수의직과 측지직은 2명씩이다. 지원자격은 대학교 관련학과 2학년 재학생으로서 학업성적이 해당 학과·학년 정원의 20% 이내이고 평균이 B+ 이상인 학생이다.합격자 결정기준은 학과성적 50점,대입수능성적 50점,병역가점 3∼5점이다.합격하면 대학 3·4학년 2년 동안 장학금을 지원받으며 졸업과 함께 7급공무원으로 특별채용된다.
  • 딸꾹질 심한 수험생 격리시켜 시험/시험장 이모저모

    ◎62세 응시자 장학생 희망/막걸리 부으며 기원하기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고사장에 나온 학부모들은 갖가지 진풍경을 연출. 서울 이화여고에서는 金英淑씨(44·여)가 새벽 6시에 교문 앞에 막걸리를 부으며 성신여고 3학년인 딸이 시험을 잘 치르기를 기원했다. ●李海燦 교육부장관은 金相權 서울시부교육감과 함께 오전 7시55분쯤 이화여고를 찾아 수험생들을 격려했다. ●수능시험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응원가는 만화주제가 ‘피구왕 통키’였다. 후배들은 ‘아침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시험장(바닷가) 맑은 공기 마시며 자 신나게 풀어보자(달려가자)∼’라고 개사를 해 부르며 선배들을 응원했다. ●전국 최연소 수험생은 광주 금호중에서 수능시험을 치른 李祐炅군(13·광주과학고1). 李군은 지난해 2월 전남 여수 문수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4월과 8월 중·고교 검정고시에 잇따라 합격했다. ●올해 최고령 응시자는 부천 계남고에서 시험을 치른 洪炳鶴씨(62·부천시 원미구 중동). 洪씨는 “지난해 310점을 얻었지만 올해는 더 좋은성적을 얻어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가겠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경남 진주중학교에서는 평소 심한 딸꾹질 증상을 보이는 金진형군(19·진주고3)이 다른 수험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별도 고사장에서 혼자 시험을 치렀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발레리나 金民嬉(이세기의 인물탐구:181)

    ◎마음의 향기 뿜어내는 ‘춤 전도사’/자기혁신 끝없는 시도 ‘20세기 파격’ 베자르 설립 벨지움무드라에서 수업/舊習에 갇힌 우리 무용계 안타까움을 작품에 溶解 “무대는 내영혼의 피난처”/윤동주 그린 ‘또다른 고향’ “번뜩이는 무용언어” 好評 추상회화 절제美 배운다 ‘베자르는 나에게 신(神)과 같은 존재’ 이는 발레리나 金民嬉의 신조다. 김민희는 대학교수이자 무용이론가이며 무용콩쿠르 심사위원, 국제세미나 질의자로서 탁월한 행정력을 지닌 지도자의 한사람이다. 그가 신처럼 여긴다는 20세기의 대표적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세계를 살펴보면 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베자르는 지난 66년 도쿄 스포츠경기장에서 거대한 군중을 상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여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는가 하면 ‘가부키’에서는 47인의 사무라이를 할복자살케 함으로써 섬뜩한 피날레로 세계를 경악시킨 장본인이다. 바로 김민희는 베자르가 설립한 국제예술원 벨지움무드라(MUDRA) 출신으로 한국 무용가로서는 베자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무용가이기도 하다. 형식과 틀에 머무르기 보다 자기속에서 끝없는 혁신을 시도하는 그의 안무는 마치 자신이 베자르인듯이 언제나 신선하고 이채로운 무대를 꾀한다. 공연장에 대한 개념도 개방적이다. 극장무대만을 고집하기보다 선상(船上)이나 해변, 야외 성당 등 공간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공연하여 그의 ‘춤의 창작성’이 어떤 제약이나 규격에서 탈피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런가하면 침묵속에서 춤추거나 혹은 북의 리듬만으로 춤추고 토슈와 맨발을 뒤섞어 놓거나 튀튀나 발레드레스가 아닌 종이옷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만년 현역으로 뛰는 다른 무용수들과는 달리 새털같은 가벼움과 냉엄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새파란 젊은이들을 무대에 세워 춤의 완성도를 향한 감연한 정열을 불태운다. 내가 만든 춤이 과연 어떤형태의 퍼포먼스로 관객의 심금을 울릴 것인가. 관객의 심장의 과녁에 확실한 메시지를 꽂아야만 비로소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아무리 창조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안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자세로 에너지가 분출하고 감동이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안무가도 무용수도 작곡가도 아니면서 발레 뤼스를 통해 미하일 포킨과 니진스키를 길러낸 디아길레프처럼 거대한 화면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 역시 무용을 총체적 예술로서 관장하는 위치다. 초기에 선보인 ‘나의 일기’와 ‘파우스트’‘파키타’가 전통발레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92년 춤의 해에 선보인 ‘헨델을 위한 무브먼트’는 모던발레의 힘찬 도약과 현란한 파드되의 직조가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시인 윤동주의 삶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또다른 고향’은 대서사시적 무용극으로 긴 침묵과 물방울 소리, 감옥의 창살 사이로 맹렬한 뜀뛰기와 휘어지는 도약, 교묘한 리프트를 실행하는 날아다니는 육체의 행렬로써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작품은 95년 서울국제무용제에서 대상·안무상·연기상·무대미술상을 휩쓸었고 평자들은 ‘번뜩이는 무용언어와 강한 캐릭터가 꿈틀거리는 수작중의 수작’으로 평한바 있다. 무용계에서는 널리 알려진대로 김민희는 묵화와 꽃꽂이연구가로 유명한 여류원로 田聖淑씨(83)의 2남4녀중 막내. 어머니의 ‘정성의 결정체’라 할만큼 아버지를 일찍 여읜 막내딸을 위해 어머니는 아직 6살이 채 못됐을 때부터 중구 회현동에 있던 동네 무용학원에 데리고 다녔고 금란여고를 거쳐 이대무용과에 입학할 때까지 간곡한 격려와 채찍으로 딸의 성장을 지켜왔다. 대학에 입학하던 67년부터 홍정희 육완순 교수의 작품에 출연,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면서 대학재학중이던 70년에 벨지움무드라에 유학하여 요가나 명상, 파드되 클래스에서 타악기 리듬을 집중적으로 몸에 익히는 가혹한 훈련을 받았다. 그때 그는 ‘발레란 육체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속과 마음속의 향기를 뿜어내는것’임을 깨달았고 베자르가 말한 ‘춤이란 댄스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에서 돌아오자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허탈감과 무기력증을 극복하지 못한채 한동안 무용계에서 잠적해버렸다. 만약 그때 무드라에서 배운대로 춤추었다면 당시의 한국의 발레풍토에서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우려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춤에 미치고 싶다’는 욕망과 ‘너무 늦었다’는 압박감에 시달릴때도 어머니의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는 충고에 따라 긴 공백을 깨고 분연히 일어나 무용계에 컴백했다. 매끄럽고 반복적이며 소박하고 학구적인 춤의 본능이 몸속에서 다시 되살아나자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안무가로서의 자신의 방향을 정하고 우리의 발레가 지나치게 구태의연하고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자신의 작품에 용해시킬 수 있었다. 그가 클래식 발레에 바탕을 둔 창작발레를 고집하는 까닭은 춤을 댄스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며 제자들에게 ‘진실한 예술가의 자세’와 ‘왜 무용을 해야하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무가로서 세계적인 이르지 키리얀과 윌리엄 포사이드의 창작세계를 분석하면서 ‘무용을 통해서 지상에서 가장 최상의 아름다움과 만나게 되는것’에 충실하게 되었다. 프랑스 신세대의 명망있는 안무가인 마기 마렝이 벨지움무드라의 동기생이고 김복희 김화숙은 이대동창이다. 가족은 사업을 하는 부군 崔勝雄씨와의 사이에 아들만 형제, 성격은 윤동주의 시처럼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편이며 구상이 끝나면 한곳에 집착하지 않고 의외성이 분출될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대단하다. 무대는 ‘사람이 자기 영혼의 정확한 크기를 발견할 수 있는 이세상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신념에 따라 그의 최근의 안무는 하나의 장르에 예속되기 보다 근육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이미지쪽에 치중하는 경향이다. 발레안무의 낡은 부대에 폭발적인 포도주를 쏟아붓기보다 흐르는 듯한 이미지와 태초의 빛,묵도(默禱)의 종착역에 다다를 때까지 그의 움직임은 추상회화의 생략과 절제처럼 여백의 미를 창출하는 시기다. □그의 길 ▲1967년 이화여대 무용과입학, 홍정희 발레공연출연 ▲1970­71년 국제예술원 벨지움무드라(MUDRA)장학생 수학 ▲1972년 이대졸업(발레전공) ▲1977·78년 독일 요한크랑코발레스쿨및 모나코 댄스아카데미연수 1981년 이화여대대학원 졸업 ▲1984년 하버드대 댄스센터연수 ▲1987년 창작발레 ‘나의 일기’ 공연 1988­현재 대한무용학회이사 ▲1989­현재 한양대 교수 ▲1989년 김민희발레공연 ▲1989­97년 한국발레협회이사 ▲1990년부터 해마다 ADF(아메리칸 댄스페스티발)연수 ▲1991년 한양대대학원(박사과정) ▲1991­현재 한국미래춤학회 상임이사, 전국발레콩쿠르 심사위원 ▲1993년부터 서울국제무용제참가 ▲1994­현재 한국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한국무용협회 이사. ▲1996년 전국무용제심사위원,한국발레협회공연및 한국발레연구회 정기공연외 한국발레협회부회장, 서울국제무용제운영위원 ‘죽은 아이들을 위한 노래’‘사람,사람들’‘숲에서’‘우리 안에는…’외 다수 서울국제무용제연기상(93년)·대상·안무상·연기상(95년) 역서 ‘클래식 발레(기초법과 용어)’(84년)‘세계발레작품 해설집’(87년)외
  • 테러/종교·민족 갈등 탓/33% 이상 美 겨낭

    테러의 사전적 의미는‘폭력수단을 행사하여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다.우리는 테러에서 처참하고 무자비한 살상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테러는 우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류의 공분을 자아낸다.발생 시점 또한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뿐만 아니다.수단이 대단히 잔인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분개심을 느끼게 된다. 지구촌에서는 사실 이틀이 멀다하고 크고 작은 테러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최근 250명 가까운 인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5,000여명이 부상한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는 하나의 ‘큰 사건’에 불과하다. 인류가 제1의 공적으로 꼽고 있는 테러.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치명적이고 대형화,다양화하고 있는 테러를 해부한다. ◎원인과 표적/美 세계 경찰국가 자임 분쟁 개입 많아/이슬람 무장세력 주축 각국서 저항 불러 ‘미국의 모든 것은 사악하다.따라서 우리 이슬람 무자헤딘(戰士)들은 사우디 등 성지(聖地)에 있는 미국의 존재들에 대해 ‘지하드(聖戰)’를 벌여야한다’ 이번 케냐 및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딘이 올해 밝힌 회교 교령이다.비록 이슬람국가라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무차별 테러에 대한 확신이다. 문명시대에 자행되는 반(反)인류적인 국제 테러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종교나 종파 갈등에서 민족·인종갈등,영토분쟁,식민지 반대 운동,반정(反政)투쟁 등이 우선 꼽히는 명분들이다. 그러나 국익이 우선시되는 국제사회에선 많은 경우 복합돼 테러로 이어진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 영토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아랍권 국가내에서 이들 세력에 대한 지지 모습이 제각각인 것이 좋은 예다. 또 지난해 발생한 304건의 테러 가운데 3분의 1이상이 미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한두가지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세계 곳곳에 개입하다 보니 원망을 사는 예도 잦다. 미국이 지목한 테러 국가는 리비아,수단,이라크,이란,쿠바,북한,아프카니스탄 등 7개국.냉전적 대립관계에 있는 국가는 북한과 쿠바뿐,나머지는 이슬람권 국가들이며 지난해 10월 발표한 30개 테러단체 역시 대부분 이슬람 무장세력이었다. 중동 정책에 개입,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들 테러 국가들에 경제제재를 가한 것 등이 최근 빈발하는 대(對)미 테러의 요인이다. 유나 버머와 같은 반 문명주의자들,미국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범과 같은 자생적 극우주의자들도 최근들어 대형 테러 대열에 합류했다.최근에는 특별한 의도없이 대형 테러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급속히 증가,인류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주요 발생 지역/유럽·중동 등 51개국 ‘핏빛 공포’/유럽­스페인 등에서 독립투쟁… 獨선 극우파 기승/중동­과격파 활동 가장 활발… 휴양지도 안심 못해 종교·인종·이념을 축으로 한 테러단체들은 줄잡아 51개국에서 살상을 일삼는다.피바람이 멈추지 않는 세계 곳곳의 테러 현황을 소개한다. ▷중동◁ 과격 회교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중동에 주둔한 미군 및 공관과 이스라엘에 대항,회교원리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피빛 테러를 일삼고 있다.이스라엘에서는 94·95년 텔아비브,휴양지 나타니아에서 버스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지난해엔 예루살렘 시장 폭탄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사우디 아라비아에선 96년 다란 미 군사기지 폭탄테러가,95년 리야드 미군사령부 차량폭탄가 발생했다. ▷유럽◁ 비교적 안정된 유럽 역시 테러 안전지대는 아니다.스페인의 분리독립 단체인 바스크 독립과 자유당(ETA)의 테러,독일의 우익단체 테러가 기승을 부린다.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 무장단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과 신교도 얼스트의용군(UVF)도 주목받는 테러단체.아일랜드 오마시에서의 차량 폭탄테러는 세계를 경악케 하고 있다. 프랑스도 심각한 상태.95년 잇따른 지하철 폭탄테러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에 시달리고 있다.94년 마르셰이유 공항에서 에어프랑스 납치사건이 유명하다. ▷아시아◁ 스리랑카,필리핀,아프카니스탄에서도 무차별 테러는 끊이질 않는다.회교무장학생단체 탈레반과 현 정부와의 내전이 끊이않는 아프카니스탄은 이란과의 접경지로중동 테러리스트 양성소 역할을 한다.스리랑카에선 자살 특공대 ‘검은 호랑이’의 테러와 박격포까지 동원된 엄청난 규모의 테러로 피냄새가 가시질 않는다.파키스탄도 이슬람 모하지르인의 무장단체(MQM)의 테러로 연평균 1,000명이 사망한다. ▷남미◁ 좌익게릴라들의 반 정부 유정(油井)폭탄 테러및 요인납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콜롬비아에선 7일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대통령 취임에 앞서 일어난 테러에서만 25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리카◁ 알제리 92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에 회교근본무장단체들과의 내전으로 6년 동안 8만명이 숨졌다.버스안에 시민들을 가둬놓고 불을 지르는 등 극악한 테러를 자행한다.부녀자 강간도 극에 달했다.,이집트 룩소르 관광지에서 외국인 버스 테러가 잇따르는 등 위험지대다. ◎어떤 수법 있나/납치·폭파서 이젠 사이버테러까지/日선 독가스 살포… 세균탄도 실용화 가능성 높아/러,핵무기 위험성 담보 美에 보안비 요구하기도/컴퓨터 바이러스로 순간에 도시 마비시킬수도 인터넷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은 테러수단을 첨단화시켰다. 핵무기를 사용한 테러의 위험성이 대두된지는 이미 오래다.냉전이후 보안이 느슨해진 러시아의 핵무기와 원료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실제로 레베드 전 러시아국가안보위원회 서기는 미국에 이를 구실로 보안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행기 납치 및 폭파는 70년대부터 테러범들이 자주 써온 전형적인 수법. 이제는 세균 덩어리나 포탄을 장치한 소형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모색하고 있다. 최근 미국 기술평가국은 지난 93년 백악관 앞마당에 돌진했던 것처럼 소형 비행기에 100㎏의 탄저병원균을 실어 날려 보낼 경우 300만명이 희생될 수 있다고 밝힌 바있다. 95년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한 오움진리교가 인체에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를 배양하려 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세균테러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가공할 위력을 과시하는 최첨단의 테러는 사이버 테러.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 뉴욕시 전체를 암흑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선진국의 산업시설과 군사시설을 제어하는 컴퓨터에도착하기만 하면 그 기능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를 담은,이른바 전자우편 폭탄(E­mail bomb)을 한꺼번에 보내 전 도시를 일시에 마비시킨다.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이란,리비아,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이 사이버 테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페루의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 www.blythe.org)과 콜롬비아 인민해방군(ELN www.voces.org) 등 상당수 좌익 테러 단체들은 아예 인터넷에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교리,주장을 전파하며 때로는 모금운동 까지 벌이는 등 첨단 이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차별 파괴하고 처참한 결과를 유발하는 폭력성 테러는 고전적이지만 전시효과를 노린 테러범들에 의해 계속 사용될 것이 분명하다. ◎악명 높은 단체/하마스­가자지구 주무대… 지지자 수십만명/헤즈볼라­레바논 회교도 조직… 이란 지원 받아/GIA­알제리에 근거… 잔혹한 학살 일삼아 ▲하마스(이슬람 저항운동)=87년 이슬람 동포단의 팔레스티나 지부가 발전, 조직된 단체.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가 주 무대.수만명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지도자이자 창립자는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62).반 이스라엘 테러혐의로 8년간 투옥됐다 지난해 10월 석방됐다. ▲헤즈볼라(신의 당)=레바논의 시아파 회교 근본주의자들.조직원은 5,000여명.79년 이란 회교혁명후 이란 지원을 받아 급성장했다.83년 베이루트의 미국 해병대 막사폭탄 테러와 85년 미국 TWA기 납치 사건을 저질렀다. ▲가마아 이슬라미아=이집트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중 가장 과격한 단체.무바라크 대통령의 세계주의 노선을 반대하고 있다.지난해 룩소르 관광객 버스 테러를 자행했다.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스리랑카에서 타밀족의 분리 독립을 위해 83년 조직된 단체.무장이 가장 잘 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직원 1만여명. 자살특공대 ‘검은 호랑이’는 악명이 높다.지도자는 빌루필라이 프란바카란(45). ▲콜롬비아 혁명무장군(FARC)=남미 최대 무장 테러조직.5,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최근에도 전국 42곳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를 자행 230여명을 살해했다. ▲이슬람 무장그룹(GIA)=알제리에본거지를 둔 가장 잔인한 단체.92년 이슬람 구국전선(FIS)이 승리를 목전에 두고 군부정권에 의해 불법화되자 무장투쟁에 나섰다.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에 부녀자 강간까지 일삼는다.지도자는 28세의 안타르 주아브리.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멕시코 치아파스에 근거를 둔 게릴라.94년 조직돼 농민폭동을 주도하고 있다.지도자 마르코스는 프랑스어에 유창하며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연락한다.큰키에 다갈색눈으로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지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여성팬들도 많다는 소문이다.
  • 일반대 출신 3명/전투기 조종사로

    일반 대학 출신이 공군의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게 됐다. 공군의 조종 장학생으로 첫 전투조종사가 된 주인공들은 柳濟卿 중위(25·경희대 우주과 졸),宋在元 중위(26·충북대 법학과 졸),裵鍾珉 중위(24·청주대 전자공학과 졸) 등 3명으로 14일 공군제1전투비행단에서 고등훈련수료식을 갖고 전투조종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은 대학 2학년 때인 93년 공군이 도입한 ‘조종 장학생’ 1기로 선발됐었다. 柳炫旭 중위(26·계명대 무역학과 졸)·朴元圭 중위(27·영남대 경영학과 졸) 등 동기생 2명은 헬기 조종사와 수송기 조종사로 각각 배속됐다.
  • 지식인 교체(金三雄 칼럼)

    국가 환난을 불러온 구정권의 정책책임자 몇 명이 사법처리를 받고 있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공직자들의 문책은 당연하다. 그런데 IMF사태를 가져오고 150만명의 실업자를 만들고 국가경제를 10년이상 후퇴시킨 사람은 그들 뿐일까. 프랑스 작가 베르크르는 지식인(언론인)의 반역과 기업인의 반역을 카인과 악마에 비유하면서 지식인쪽의 반역이 훨씬 무겁다고 지적했다. 기업인과 달리 글을 쓰는 사람의 과오는 자신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잘못을 저지르게 하기 때문이란 이유다. 한국의 유수한 경제연구소 책임자들은 지난해 11월 초순까지도 연말 달러 환율이 960원 미만에서 안정될 것이라 예측하면서 우리 경제를 장밋빛으로 그렸다. 다수의 경제학자,언론인들도 비슷한 진단이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도 잘못된 진단과 처방에 문책받거나 사과하지 않고 지금도 전문가 노릇을 한다. 그들만 탓할 바가 아니다. 독재와 부패정권의 ‘나팔수’가 되고 ‘장학생’노릇을 하면서 민주인사들을 용공으로 몰고 분단(남북)과 분열(동서)을 부추긴 지식인과 언론인 중에 절필은커녕 참회하는 사람이 없고 여전히 명사노릇을 한다. 무슨 글을 쓰고 무슨 짓을 해도 책임지지 않고 명사가 되고 논객으로 행세하는 잘못된 풍토를 바꾸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삼전도 비문쓰고 손가락 잘라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기억해둬야 할 분이 있다. 오준(吳竣)이 바로 그 사람이다. 병자호란때 인조와 함께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던 오준은 당대 명필가란 이유로 청태종의 공덕비문을 쓰는데 차출되었다. 만대의 치욕이 걸린 이 비문을 아무도 쓰지 않으려 할때 왕명으로 악역을 맡게되고, 후일 수치심과 굴욕감을 견디지 못해 붓을 들었던 손가락을 스스로 잘랐다. 서양쪽에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중세시대 세루베루란 사람은 형용사의 위치때문에 화형을 당했다. 형용사의 위치를 바꾸면 살 수가 있었는데 이를 옮기지 않았다가 변을 당했다. 바로 ‘영원한(eternal)’이란 형용사가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라 했으면 살았을 것을‘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집하다가 죽었다. 종교적 신념과 함께 올곧은 지식인의 처신을 보게 된다. 독재를 예찬하면서 진실을 억압하는 데 앞장섰던 지식인(언론인)들은 이시점에서 자성하거나 ‘퇴출’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나라를 위기로 이끈 정책책임자,경제를 파산시킨 기업인들이 퇴출되는 마당에, 이들에 비해 책임이 적다고 할 수 없는 지식인들이 건재하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고 역사를 회귀(回歸)시키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시대의 역설이다. ○지식인의 책임과 도리 전후 프랑스 문예지 ‘레트르 프랑세즈’는 지식인이 진실을 왜곡하고 다른 지식인을 탄압하는데 협력한 자들을 관용하는 것은 범죄를 묵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문예지는 “지난날 과오를 범한 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같은 과오를 반복하게 만든 원인”이라 진단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독재자, 곡필 지식인들을 쉽게 잊고 용서하는 원칙없는 온정주의가 유지돼 왔다. 사원(私怨)은 오래 간직하면서 공분(公憤)은 쉽게 잊는 이중성이 독재와 부패, 사이비 지식인이 판치는 온상을 만들고 오늘의 국난을 불러왔다. 지식인의 정체성과 책임이 확립되지 않는한 개혁은 불가능하다. 진실한 지식인 언론인이라면 오준과 세루베루를 닮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진실을 말하고, 쓴 글에 책임을 져야한다. 기업인보다 지식인의 역할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식인 교체가 시급하다.
  • 용감한 美 의원들/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동맹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무찔러 워털루 전투에서 최후 승리를 거둔 웰즐리 웰링턴(1769.5.1∼1852.9.14)은 런던에서 있은 개선식에서 오늘까지 전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교정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헨리 6세가 1440년 나라의 핵심 지도자로 키울 우수한 학생 70명을 위해 만든 학교가 바로 이튼 칼리지다. 전교생 1,200명이 넘는 오늘까지도 왕실 장학생 70명은 오피단(Oppidan)으로 불리는 일반학생과 달리 연간 1,000여만원이나 되는 기숙사비와 학비일체를 면제받는다. 설립목적대로 영국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부분 이학교 출신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상류층의 반열에 들어 있으나 나라가 위급할 때 제일 먼저 달려나가 자신을 바친다. ‘왕과 국민의 영원한 공복(公僕)’이라는 이 학교의 변함없는 가르침이 이들을 이렇게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길러낸 것이다. 이는 서양 선진국 사회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신념이며 생활자세이기도 하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다.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도덕률을 어김없이 지키기에 항상 존경을 받는다. 지난 24일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던 미국 의사당에서 보여준 미국 국회의원과 경찰관들의 희생적이며 의연한 자세도 바로 이 정신의 실천임을 깨닫게 한다. 사건 현장 사무실의 주인인 공화당 수석부총무 톰 들레이 의원은 한바탕 난동을 부리다 총상을 입은 범인 러셀 유진 웨스턴 2세가 총을 계속 겨누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포에 떨고 있던 관광객들과 직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의사출신인 공화당의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은 연설을 마치고 지역구로 가던 길에 총격전 소식을 듣고 의사당으로 되돌아가 쓰러진 경찰관 2명과 범인을 응급조치했다. 그는 또 나중에 범인 웨스턴을 후송하는 응급차에 함께 타고 가며 인공호흡을 계속 해 주기도 했다. 의회경찰을 관장하는 빌 토머스 위원장도 총성이나자 몸을 숨기기는 커녕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관광객과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사후 수습을 주도했다. 2명의 희생자를 낸 경찰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범을보여주었다. 의회는 이런 아수라장이 됐던 의사당을 계속 개방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국민들의 신뢰를 쌓았고. 바로 이들이 한 사회를 이끌고 나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현역(無錢現役)’풍토의 우리 사회와 너무 대조적이다.
  • 佛 콩쿠르 최연소 최고상/호주 거주 박수지양

    세계적 권위의 바이올린 대회 ‘예후디 메뉴인 국제콩쿠르’ 시니어부에서 최고상을 탔던 호주 교민 박수지양이 현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쳐 세계적 연주자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4월 프랑스 보울론에서 열렸던 메뉴인콩쿠르에서 역대 수상자중 최연소로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던 박양은 4살때 바이올린을 시작,7살때 호주시드니음악원 현악부분 전액 장학생으로 수석 입한했으며 그동안 시드니 심포니와 멜버른 심포니,아델라이드 심포니와 협연했다.지난달엔 호주 연방수상초청 연주회를 가졌으며 이 모습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호주 전국에 중계되기도 했다.
  • 교수 20여명 報恩의 기금 전달

    ◎대학시절 받은 혜택 후배에게 돌린다/서울대 출신들 ‘육영회’ 창립 30돌 맞아 결의/“30년간 인재 양성에 보답” 2천만원 전달 서울대 교수들이 대학 재학 시절 장학금을 받은 장학재단을 위해 보은의 장학기금을 마련한다. 서울대 재학 당시 장학재단인 ‘우산육영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서울대 교수 20여명은 오는 22일 재단 창립 30주년을 맞아 학술 토론회를 개최하고 2천만원을 장학기금으로 재단에 전달한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영문과의 李誠元 교수를 비롯,주제 발표자로 나서는 국사학과 權泰檍 교수와 사회학과 朴明圭 교수,경제학과 李俊求 교수 등 모두가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교수들이다.토론회의 주제는 ‘IMF 위기와 세계속의 한국’으로 하오 1시부터 서울대 문화관에서 개최된다. 교수들은 10만∼1백만원씩 모금,2천만원을 金태길 재단이사장에게 전달한다. 장학생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사회학과 韓相震 교수는 “학술토론회 및 장학금은 지난 30년동안 인재양성을 힘써 온 육영회에 대한 동문들의 작은 보답”이라면서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육영회의 높은 뜻을 기리는 동문들의 마음을 모아 마련했다”고 말했다. ‘우산육영회’는 지난 68년 又山 趙且任 여사가 만든 장학재단으로 지난 30년동안 대학원 과정의 학생 1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우산육영회’는 지금까지 모두 322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현재 89명이 서울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며 30여명이 법조인과 언론인 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북풍’ 회견 교포 윤홍준은 누구

    ◎95년 미에 이민… 한·중·일 오가며 무역업 지난 대선 때 안기부의 사주를 받고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내용의 폭로 기자회견을 했던 윤홍준씨(32)는 미국 영주권을 가진 재미교포로 한국 중국 일본 등을 오가며 무역업을 해왔다. 86년 서울 S고를 나온 뒤 89년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의 아메리칸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95년에는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해 영주권을 얻었다. 이후 윤씨는 청년 실업가로 행세하며 중국 한국 등의 정·재계 인사들과 교분을 맺기 위해 애써왔으며 96년 국민회의 조모 지구당위원장에게 중국의 만리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아들이자 태자당 일원이었던 만백우씨를 소개하면서 국내 정치권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씨는 지난해 12월16일 서울 63빌딩에서 김후보를 비방하면서 “합작 사업차 2차례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북한 고위층과 잘아는 사이임을 강조했으나 당시 국민회의 내부에서는 윤씨를 ‘안기부 자금으로 유학을 갔던 안기부 장학생’으로 지목했다.
  • 대덕연구단지 생명공학연 이경광 박사(세계 최고에 도전한다:7)

    ◎2001년 모유같은 우유 나온다/인체 락토페린­젖소 베타카제인 유전자 융합/젖소 수정란의 핵에 넣어 ‘락토페린 젖소’ 개발/92년 연구 착수… 의약품원료로도 큰 부가가치 창출 서해안 태안반도의 두산개발 안면목장에는 17억원짜리 세계 최고가의 ‘황금젖소’가 자라고 있다.그러나 이 젖소는 생김새가 비슷한 1천200여마리의 무리에 섞여 사는지라 보통 사람의 눈으로 가려내기가 어렵다. 이제 14개월을 갓 넘긴 이 젖소의 이름은 ‘보람’(Bovine with Lactorferrin Assisted Milk)이다. 보람이는 인간의 모유에 들어 있는 락토페린과 면역글로블린,라이소자임이 풍부한 우유를 만들어 내는 형질전환 젖소.엄마젖과 같은 우유를 쏟아 내는 젖소의 원조인 셈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복제 송아지인 ‘조지와 찰리’가 등장해 화제를 모은 것과 달리 한국에 보람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락토페린은 항균·항바이러스 등의 면역증강작용과 세포증식·철분흡수 작용이 뛰어난 인체 생리활성 단백질.모유 1ℓ에는 같은 분량의 우유보다 14배남짓 많은 1.4g이 들어 있다.‘모유를 먹여야 아기가 건강하다’는 것은 락토페린을 두고 하는 얘기다. ○90년엔 ‘슈퍼생쥐’ 첫 개발 보람이의 경제적 가치가 17억원이나 되는 것은 ‘모유같은 우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보람이의 출현은 모유가 모자라거나 직장생활하는 산모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덕연구단지 생명공학연구소 이경광 박사(49·동식물세포공학연구부장).수정란 동결법으로 인체 락토페린 생산용 형질전환 젖소인 보람이를 세계 처음으로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보람이는 96년 11월 세상에 나왔다.공교롭게도 소띠(49년생)인 이박사와 생일(11월22일)이 같다.그리고 이박사는 소의 해인 97년에 보람이가 인체 락토페린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이박사와 소는 이래저래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경북 예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시절 심훈의 ‘상록수’를 읽으며 자랐지요.소꼴을 먹이느라 소와 온종일 살다시피했던 것이 동물발생학을 전공한 계기가 됐습니다” 청년이경광은 가난에 찌든 농촌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에서 건국대 축산대에 들어갔다.석사과정까지 6년간을 줄곧 장학생으로 다닌 그는 일본문부성의 초청으로 북해도대학에서 가축번식학 박사학위를 받고 84년 귀국,동물발생학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86년부터 89년까지 불과 3년 사이에 △인공적으로 쌍둥이를 만들 수 있는 일란성 쌍자동물 △수정세포의 핵을 대치하는 핵치환 복제동물 △우성·열성 형질이 동시에 나타나는 키메라 동물을 잇따라 개발했다.90년에는 동물발생학에 유전공학적 기법을 과감히 접목,2배 이상 크게 자라는 슈퍼생쥐를 국내 처음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이박사는 이어 92년 11월 두산기술원 등과 공동으로 G7프로젝트인 ‘인체유용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형질전환동물의 개발’에 착수했다.국내 축산업을 살리려면 가축을 단순 축산물만이 아닌 고가 의약품 생산기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는 먼저 인체 락토페린 유전자를 포함한 유용 생리활성물질 유전자와 이 유전자의 발현을 돕는 소의 베타카제인유전자를 분리·추출,베타카제인/인체락토페린 융합유전자를 만들었다. 94년에는 이 융합유전자가 제대로 발현되는지를 형질전환 생쥐에서 알아본 결과 인체 락토페린 유즙이 성공적으로 분비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어 재조합 유전자를 젖소 수정란의 핵에 집어 넣어 동결시킨 뒤 이를 젖소 대리모에 이식,송아지를 낳게 했다.이렇게 태어난 35마리의 송아지 가운데 1마리가 락토페린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바로 보람이었다. ○특허 8건에 논문도 70편 이박사는 보람이와 관련된 8건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국내외에 발표한 논문만 해도 70편에 이른다. 수컷인 보람이는 앞으로 씨내리 역할을 하는 종우로서 인공수정을 통해 인체 락토페린 생산용 암젖소를 태어나게 하는데 이용된다. 이박사는 넉넉잡아 2001년 중반이면 형질전환 젖소에서 1ℓ당 1g 이상의 인체 락토페린이 든 우유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인체 락토페린 첨가물질의 95년 세계 시장 규모는 1백70억달러. 2000년에는 2백3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보람이는 유아용 특수조제 분유,기능성식품,의약품 원료 분야에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전망이다. 이박사는 동물발생학에 대한 주위의 무지로 연구과정에서 남달리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연구에만 전념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이해시키고 설득하 는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84년 해외유치과학자로 생명공학연구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일란성 쌍둥이 개발에 관한 프로젝트를 본 연구부장이 ‘당신을 쪼개 둘로 만들면 좋겠느냐.잘 자라게 하지는 못할 망정 멀쩡한 것을 뭐하러 동강내느냐’며 역정을 내더군요” 80년대 말 슈퍼마우스를 개발중일 때에는 “사람의 유전자를 쥐에 집어 넣었다가 인간의 지능을 가진 쥐가 태어나면 어떡하느냐”는 소리도 들었고 국민의 혈세를 개인 취미생활에 쓰는 넋 나간 사람으로 몰리기도 했다. 이박사는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토대삼아 앞으로 형질전환수정란 은행을 세우는 한편 산양·토끼 따위의 동물에서 혈전치료제나 항암제를 만들어 내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갖고 있다. ‘소 농사’에서는 대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박사지만 그에게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하나 있다.6년째 한달에 하루밖에 쉬지 않는 일벌레 아빠를 지켜 본 세 자녀가 “과학자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 큰 아들은 “대를 이어 과학자가 되어 달라”는 그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고 문과를 택해 대학에 들어갔다. ◎형질전환 동물이란/유전자 특정동물 염색체 인공이식/원하는 형질일부를 변형시킨 동물 형질전환동물이란 외래 유전자를 재조합해 특정 동물의 염색체상에 인공적으로 끼워 넣어 그 형질의 일부를 변형시킨 동물.인간에게 유용한 유전자를 실험동물이나 가축에 이식해 원하는 동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동물 형질전환기술은 지난 80년 미국의 생명공학자 고든이 처음 개발한 이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실험동물은 물론 면양·돼지·소 따위의 가축에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응용되는 곳은 예컨대 슈퍼마우스와 같은 성장동물 개발분야와 동물생체반응기(Animal Bioreactor) 개발분야.동물생체반응기 개발부문은 경제성이 높아 세계적으로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동물생체반응기는 유선조직의 유전자를 재조합해 특정 동물의 염색체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형질을 바꿔 우유와 함께 고부가가치의 생리활성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형질이 유전되기 때문에 고품질의 유용 생리활성물질을 자손 대대로 얻을 수 있다. ‘보람’이도 여성의 젖샘조직에서 모유에만 있는 락토페린 유전자를 뽑아 이를 젖소의 염색체에 이식,모유와 같은 우유를 만들어 내도록 만든 동물.도축장의 젖소에서 채취한 미성숙 난자로 체외수정란을 만든 뒤 수정란 핵에 락토페린 재조합유전자를 집어 넣어 착상 직전의 단계까지 1주일 남짓 체외배양시킨 뒤 이를 대리모에 이식했다.이 과정에서 락토페린 젖소가 태어날확률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세계 과학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복제양 ‘돌리’는 체세포의 핵을 뽑아 낸 뒤 그 자리에 탈핵 난세포를 치환,원래의 양과 똑같은 모습을 만든 것으로 특정 개체의 체세포를 이용해 하나의 동물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약력 △49.11 경북 예천 출생 △77.2 건국대 축산대학 낙농학과 졸업 △84.3 일본 북해도대학 농학박사(가축번식학,학위논문­집토끼 중복임신에 관한 연구) △84.5∼90.2 한국과학기술원 생명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 △85.9∼85.12 일본 북해도대학 수의학부 객원연구원 △86∼89년 일란성 쌍자동물,키메라동물,핵치환 복제동물 생산 △90.3∼91.2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과 겸임교수 △90∼96년 생명공학연구소 책임연구원 △90년 슈퍼생쥐 국내 첫 개발 △91.9∼현재 충남대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96.2∼현재 생명공학연구소 동식물세포공학연구부장 △97.12 형질전환 젖소 ‘보람’ 개발 △한국축산학회 정회원,한국가축번식학회 이사,일본축산학회 정회원
  • “알츠하이머 정복 내손으로”/뉴욕 기능발달기초연 김광수 박사

    ◎발병 원인 A베타단백질 농도측정 항체 첫 개발 【뉴욕〓이건영 특파원】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Alzheimer)병이 우리 귀에 익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이이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여준 탓도 있다.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질병중 하나다. 알츠하이머병 퇴치를 위해 정열을 쏟는 재미 한국인 연구원,김광수 박사(64).미 뉴욕시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있는 뉴욕주립 기능발달기초연구소의 단일항체(단일세포항체) 연구실장이다. 넓은 이마에서 이웃집 아저씨같은 후덕한 인상을 풍기는 노 연구원이지만 집념만은 젊은이 못지 않다.자신을 ‘이야기거리가 없는 과학자’라고 소개한 그는 연구소에서 생물의 세포와 생활하는 사람답지 않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많은 듯했다. “말 재주가 없어 어릴 적부터 과학자가 될 생각을 했다”는 김박사는 요즘 한국의 금융사정이 퍽 걱정스러워 보인다고 했다.“아무쪼록 온 국민이 위기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줬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연구생활을 한 지는 올해로 꼭 34년째.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54년 플로리다 서던 대학의 장학생으로 도미한뒤 64년 노드 캐롤라이나대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노드 캐롤라이나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연구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69년에 연구의 터전을 뉴욕으로 옮겼다.처음에는 바이러스 쪽을 연구했지만 성과가 별로 없었던 평범한 연구원이었다.80년부터 알츠하이머병 연구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연구자로서의 보람을 평생 간직시켜 준 계기가 됐다. 88년 봄,8년의 각고 끝에 뇌신경세포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되는 특정 아미노산(A 베타)단백질을 확인,농도를 측정하는 4G8이라는 단일항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쾌거를 일구어 낸다. 1년 뒤에는 또 하나의 단일항체를 개발한다.6E10이었다. 그의 첫 단일항체 개발에 신경병리학계는 기념비적인 연구라고 엄청난 평가를 내렸다.단일항체를 사용함으로써 A 베타 단백질이 뇌신경세포에 쌓여 응고된 뉴리틱 플라크(Neuritic Plaque:신경염 반점)의 형태 및화학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뉴리틱 플라크는 알츠하이머병에서 나타나는 둥근 모양의 반점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염색하지 않고서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염색방법을 사용해도 희미하게 보일 뿐이어서 복잡한 화학구조 파악은 꿈도 꾸지 못했다.학자들마다 ‘장님 코끼리다리 만지기식’이었다. 그의 ‘제2의 연구인생’이 가져다 준 성과는 알츠하이머병의 진단방법과 면역체 등 연구시약 개발,치료에 대한 연구를 가속화시키는 일대 전기를 마련해 줬다.그가 개발한 두 종류의 단일항체는 아직도 신경병리학계의 ‘기본소프트웨어’로 돼 있다.
  • 가정 어려운 제자 장학금 6년간 1천3백만원 착복

    ◎30대 체육교사 구속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25일 제자들에게 지급된 장학금을 가로챈 통영 T상고 체육교사 박용수씨(34)를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박씨는 92년 부터 올해 초까지 6년간 교내 복싱부 소속 학생들중 각종 대회성적이 우수하고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 92명에게 지급된 체육공로 장학금 1천3백40만원을 착복한 혐의다.박씨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숨긴채 자신의 추천으로 장학생이 된 학생의 도장을 보관하면서 서무과에서 직접 수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미·일서도 실패한 컴퓨터이용 용접자동화SW

    ◎대학원 재학 20대 공학도가 해냈다/한양대 김영수군 시행착오 1년 결실/용접 동시 결함 분석… 미·가에 특허출원 학교 실습실을 자취방 삼아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려온 20대 대학원생이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한 용접자동화 프로그램을 개발,국내외 관련학계 및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한양대 대학원 정밀기계공학과 김영수군(25·4학기).김군은 지도교수인 이세헌 교수와 함께 7일 레이저 센서가 용접부위를 스스로 따라가며 용접을 하고 이때 발생하는 결함을 컴퓨터 화면 상에서 부위별로 보여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했다. 현재 세계에서 개발된 용접자동화 장치는 자동 추적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정밀도가 크게 떨어지는 데다 결함은 육안으로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그나마 용접이 끝난뒤 미심쩍은 부위를 센서로 찍어 확인하는데 그치고 있다. 김군이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용접과 동시에 결함 분석이 이뤄지는 리얼타임 방식이라 더욱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군은 “결함분석법의 핵심기술은 용접선을 따라 표시된 5개의 막대에 단차,언더 커트 등 결함 정도가 뚜렷히 나타나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용접의 결함은 전문가들도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안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동안 캐나다의 서보­로보트사,미국의 MVS사,일본의 퍼셉트론사 등 몇몇 회사들이 개발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자동차와 항공기 산업 등에 필요불가결한 이 프로그램은 독보적인 기술이라 국내는 물론 전세계 관련업계로부터 주문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프로그램이 수록된 디스켓 한장은 몇천만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김군은 다음달 미국과 캐나다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세계 특허를 출원하고 프로그램을 세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김군의 쾌거에는 이교수의 숨은 노력이 뒷받침됐다.이교수는 지난 90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용접자동화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이다. 이교수는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해놓고도 용접자동화 이론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함께 다룰줄 아는 전문가가 없어 난관에봉착했었는데 김군이 이를 해결해냈다”고 설명했다. 전북 무주의 빈농에서 태어나 줄곧 장학생으로 공부를 해온 김군은 수줍음을 잘 타면서도 공학도에게 꼭 필요한 냉정함을 갖추고 있다.내년 1월 만도기계에 산업체 특례역으로 입대한다.
  • 고졸 행시합격 ‘인간승리’/국제통상분야 김종령씨

    ◎공사장서 막노동하며 주경야독 8년/공고 나와 조선소 노동… ‘외교관 꿈’ 위해 상경/고시원비 없어 공사장 경비… 틈틈이 공부/“무역전쟁 최일선서 국가에 도움되고 싶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주경야독’을 해온 고졸출신 34세 청년이 8년만에 행정고시에 합격,인간승리를 일궈냈다. 4일 최종합격자가 발표된 제41회 행정고시에서 국제 통상분야에 합격한 김종령씨(34·서울 관악구 신림9동)의 학력은 부산기계공고 졸업.고졸 출신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것은 88년 이후 10년 만이다. 행정고시 응시 제한 연령은 만 35세여서 김씨는 마지막 기회에 꿈을 이뤘다. 김씨의 고향은 전북 부안군 부안면.농사를 짓던 아버지 김장철(80)와 어머니 오기용(75)씨의 7남2녀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고향의 보안중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문계 고교의 진학을 포기하고 형들이 일찌감치 터를 잡은 부산기계공고 기계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고교 졸업후 부산 조선공사에서 병역특례로 5년간 설비사로 근무한 김씨는 89년 외교관이나 국제통상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부모님이나 형들에게 도움을 청할수 없었던 김씨는 조선공사에서 근무하며 모은 5백만원으로 버텼으나 2년을 넘길수 없었다. 책값이나 고시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주로 맡았던 일은 공사장 경비.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12시간을 근무했다.“경비를 서는 틈틈이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는 설명이다. 퇴근후 아침에는 잠을 자고 하오에는 고시원에서 공부를 한 뒤 다시 공사장으로 향하는 집념의 생활이 6년여동안 계속됐다. 우여곡절끝에 94년에 외무고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서 떨어졌다.95년에도 외무고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 떨어졌고 나이제한 33세에 걸려 더이상 외무고시를 볼 수 없었다. 방황 끝에 35세가 나이제한인 행정고시로 눈을 돌렸다.결국 지난해 행정고시 국제통상분야 1차시험에 합격했고 나이제한 마지막 해인 이번에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어려운 형편에도 9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효도한 것 같아 기쁘다”면서 “날로 격화되는 무역전쟁의 최일선에서 국제통상 전문가가 돼 국가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무용가 김말애(이세기의 인물탐구:149)

    ◎혼 깃든 춤사위… 한국춤의 선도자/“한국춤은 얼굴과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 수려한 용모·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을 개척하는 타고난 춤꾼이다” 무용가 김말애가 사진집 ‘춤’을 출간했을때 무용평론가 김경애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김말애는 끝없이 춤추는 이 시대 서정시인”이라고 했다.흑백사진속에서 그는 마치 수평선을 넘나드는 한마리 새가 되어 ‘살을 푸는 떨림과 한을 푸는 흐름’으로 장면장면마다 선명한 춤선을 그려내고 있다.지난 여름 LA예총 초청으로 ‘회귀선’공연을 가졌을때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시인 고운씨가 ‘아득한 꿈길 돌아오는 배’란 즉흥시를 지어 능란한 춤꾼인 김말애에게 헌사했다.‘아득히 끝도없이/꿈이 철철 넘치게/출렁이는 배 하나/지구가 돌아가는 선을 가르고/지금은 어디쯤 어느 물길에/덩실덩실 춤을 굴리나…’로 시작되는 이 장시는 망망대해에 뜬 한척의 배를 인생행로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은 출발도 끝도 없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김말애의 무일물사상을 실감있게 담아내고 있다. ○“끝없이 춤추는 서정시인”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는 ‘우리 무용계에서는 흔치않은 대형무용가’다.한국춤은 얼굴이 작고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잘생긴 얼굴과 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에서의 ‘정중수로’와 ‘동중백학’을 성취해 보인다.그중에서도 한국춤의 정신을 되살린 창작무 ‘춤을 위하여’는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왜 춤추게 하며 어떻게 추어야 하는가’를 빠르게 돌아가는 리듬과 함께 가벼운 움직임,강철같은 강인함을 엇섞어 내딛는 보폭마다 절륜의 백태를 연출해낸다.또 누구보다 전통춤을 잘 가꾸고 보존시키는 무용가이기도 하다.음악이 춤을 능가하거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음악을 몰고가는 쪽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다른 무용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대성과 참신도를 간직하면서 ‘역동성의 균형’을 포착하는 안무실력이 특징이다. 그는 “춤추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어머니 장종숙여사로 인해 춤추게 되었고 그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딸의 후견인이자 열렬한 열성팬이다.여섯살되던 해 삼척읍에 있던 심덕진무용연구소에 데려갔고 “너는 반드시 훌륭한 무용가가 돼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에서 열린 ‘전국아동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삼척의 택시들을 총동원하여 딸을 태우고 시내퍼레이드를 벌인 일도 있다.이로 인해 “딸을 광대로 만들거냐”고 춤을 반대하던 부친 김태규씨(수산업·89년 타계)마저 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되던 해 서울로 전학,당대 최고의 무용가이던 조택원·김문숙씨 댁에 머물수 있게 도와주었다.그러다가 김백봉의 ‘부채춤’에 반해 묵정동에 있던 김백봉무용연구소에 찾아갔으나 스승은 “아무도 너를 추천해준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남의 제자를 훔쳐온 줄로 알겠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다.후에 김문숙씨와 ‘춤’지의 조동화씨가 적극 권하여 상명여중 시절에 김백봉 문하에 정식 입문했다. ‘어찌나 춤을 잘추던지’ 무용계의 거봉 조택원씨는 66년,일본에서 발행되는 ‘문예춘추’에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제하로 ‘너는 최승희를 능가하는 무용가가 되라’는 격려의 글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김백봉 스승은 공연때마다 그를 언제나 센터에 세워주었고 고교 2학년되던 해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무용콩쿠르’에서 특상하여 장학생 특전을 받았으나 ‘김백봉’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스승이 몸담고 있던 경희대에 진학했다. ○6살때부터 무용 배워 그는 우리 무용사의 신화적인 존재들인 최승희와 조용자,그리고 김백봉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아마도 외모 이전에 예술에 대한 치열성과 자신감때문일 것이다.편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타악기·구음 등의 생음악으로 춤의 활력을 작동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지난 20년동안 대학교수로서 예술현장을 지키는 춤작가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기를 서슴지않는 춤꾼으로서 그의 역할은 두드러졌으나 오로지 무대에서만 ‘끼’를 펼칠 뿐이며 ‘예술가는 무대에서 빛나야 한다’는 고집을 굳건히 지킨다.그러나 ‘예술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도정에 늘 함정이 도사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고 ‘나에게는 스승만 있는줄 알았는데 어느틈엔가 나의 제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있음’을 깨달을수 있었다.그래서 제자들이 설 땅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에 없이 사회 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을 트는가 하면 춤공연을 펼칠수 있도록 춤·타래무용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수많은 춤중에서도 김백봉스승에게 전수한 ‘부채춤’을 빼놓을수 없다.전립의 패영을 늘어뜨린 장삼차림에다 두 부채를 편채 열정적으로 춤추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한 기상을 보이면서 지음실력으로 인위(인위)와 자연의 극치를 조화시킨다’는 평을 듣는다.지난 8월 LA 윌셔 이벨극장에서 그가 재구성한 일련의 전통춤공연을 펼쳤을때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그의 춤스타일과 그가 구사하는 무용언어가 전혀 새로운 영역의 한국무용이라는 점에서 이런 류의 우리무용을 미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었다”고전제하고 “미국의 관객들에게 부채춤이나 장고춤이 행사나 형식무용이 아닌,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양예술로 재인식됐다”고 극찬했다.가족은 사업을 하는 김효영씨와 남매. ○여중때 김박봉 문하생 입문 그는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흥과 청으로 마치 무당처럼 춤추고 억제할 수 없는 벅찬 감동때문에 춤을 추는 동안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남보기에 행복하고 순탄한 역정을 지나친 것 같지만 모든 고통스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뿐 예술적 파란과 시행착오를 이긴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평론가 김태원이 “극적인 연기로 관객의 시선과 환호를 휘몰아갈수 있는 특이한 스타적 재능을 가진 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춤을 추는 춤의 완결앞에서 어느때보다 당당하고 의연한 의지를 지금 만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시기다. □연보 ▲195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71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1972년 김말애 작품발표회 ▲1973년 경희대 대학원 졸업 ▲1976∼현재 경희대 교수 ▲1983년 김말애 창작무용발표회 ▲1985년부터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1986년 뮤지컬 ‘양반전’ 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개막식 ‘차일춤’ 안무,주불대사관 초청 서울올림픽 유럽 홍보공연 ▲1988년 창작무용 ‘애장터’ 안무 ▲1989년 일본 오사카예술대 교환교수,우시마도국제예술제 공연 ▲1990년 춤·타래창단공연 ▲1995년 한국무용제전 참가 ▲1996년 김백봉춤 보존회 열린무대 ▲1997년 ‘아,김백봉무용’ 공연출연,LA한국예총 초청 미주 공연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85년) 서울국제무용제 대상·안무상·음악상(92년) ▷저서◁ ‘춤’(94년)‘한·중·일 궁중무용의 변천사’(96년)외 논문집 ▷현재◁ 대한무용학회 이사·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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