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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옥조근정훈장 받은 영남대 디자인학부 안진호 교수

    악수를 나누니 며칠간의 고민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만날 약속을 한 뒤 그와 어떻게 자연스럽게 첫 인사를 나눌까,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터다.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걱정이 쓸데없기만 했다.서슴없이 내미는 아기손 같은 그의 짧은 오른손에선 그가 넘었던 ‘장애의 벽들’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안진호(安鎭浩),그는 공예디자이너이자 영남대 조형대 디자인학부 교수이다.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선천성 기형인 그가 이런 직함을 지닌 그 자체가 새롭다. ●선천성 장애,뛰어난 재능도 함께 지금은 달라졌지만 어릴 시절에는 학교가 끝나면 집안에 틀어박히는 조용한 내성적 소년이었다.어머니의 뜨게질을 물끄러미 보는 것이 유일한 놀거리이다시피했다.그의 호기심을 당기기에 뜨게질은 충분했다.실 색깔을 골라 줄 만큼 감각도 좋았다. 한번은 누나가 바비 인형을 갖고 놀았다.인형에 입힌 옷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진호 소년은 외할머니가 이불 홑청에 쓰다 남은 천으로 이리저리 궁리 끝에 손수 옷을 지어 입혔다.‘디자인에서부터 옷감 선택,제작까지’ 도맡아 한 것이다.“지금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었다.”고 회상한다. 그의 예술적 감각은 학교 안팎의 미술대회를 싹 쓸게 했다.한반 친구들의 미술 숙제는 그의 차지였고,그런 그를 친구들은 좋아해줬다.그런 덕분인지 장애인들이 흔히 겪는 집단 따돌림은 없었다.책 가방을 들어주는 고마운 친구조차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한 손이 ‘이상한’ 자신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다.“7살때였습니다.어머니 주민등록증 뒷면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물었어요.지문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난 지문을 찍지 못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집에 불이 났다.넉넉지 못한 형편에 불까지 났으니 학교갈 엄두조차 못냈다.며칠을 결석하자 누나의 담임선생님이 찾아왔다. 그 선생님은 누나와 그를 당분간 자기집에서 통학시키겠다며 데려갔다.두달간 흰 쌀밥에 책상이 달린 방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경험은 그에게 ‘따뜻한 선생님’의 꿈을 키우게 해줬다.“커서 반드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꼭 그 선생님이 주신 그런 따뜻함을 내가 가르칠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장애인 사범대 입학불허…교사 대신 교수돼 그렇지만 그의 꿈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산산이 깨졌다.당시만 해도 장애인이 사범대에 진학하기엔 너무나 문턱이 높았다.교사가 못되면 교수라도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아버지 친구 분이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회화분야라며 서양미술학과를 적극 추천했습니다.” 홍익대를 지원했지만 쉽지 않았다.실기시험 도중 밖으로 나가서 붓을 씻고 왔더니 그 사이 누군가 그의 ‘작품’에 낙서를 해놓았다.시험을 포기해야 했다.재수를 하면서 공예디자인쪽으로 바꿨다.“면접에서 통과 못할 것”이라며 주위의 만류도 많았다. 걱정과는 달리 실기에서 만점을 받고 장학생으로 거뜬히 입학했다.그렇지만 한손이 불편한 그에게 베틀에 올라 명주천을 짜는 일은 큰 고통이었다.1학년 겨울방학때 선배로부터 베틀직기 1대를 빌린 그는 ‘두달간 밥먹고 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베틀에 올라’ 그만의 방법을 몸에 익혔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교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른다.유학 전까지 1년 남짓 ‘대한민국 공예대전 특선’,‘산미공예전 국제특별상수상’ 등 굵직굵직한 성과를 올렸다. 그가 택한 파리 국립고등창작미술학교는 학비가 전액 보조되는 데다 직물 디자인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이 있었다.4년간의 프랑스 유학생활동안 파리 가을살롱전 장식미술부문에서 2차례나 입상했다.교수들로부터 실력도 인정받아 졸업 뒤 1년동안 연구조교로 일했다.“일자리를 우선적으로 알선해 줄 테니 프랑스에 정착하라.”는 교수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미국 필라델피아 섬유 대학원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그의 진가는 더욱 빛났다.1학기 말 작품 발표에서 모든 교수들이 기립박수를 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2학기에는 그의 섬유디자인 작품을 모든 학생이 볼 수 있도록 강의실 복도에 전시하기도 했다.‘지노 안’은 최고의 인기 학생,최고의 실력파라는 인상을 심어줬다.99년 미국 필라델피아 핸드위버 길드 주최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차지했다.졸업때에는 최우수 외국인학생상과 미국 대통령상도 받았다. ●“꿈을 간직한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다” 영남대에서는 공예디자인을 전공하는 60여명에게 섬유디자인을 가르친다.베틀에 올라 화려한 명주 천을 짜기도 하고 직물염색을 직접 시연해 보이는 그는 ‘인기 교수님’이다. 학교 밖에서는 장애인도 가르친다.그의 ‘애제자’ 이귀원(44·하반신마비)씨가 지난 해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6회 국제 장애인 기능올림픽대회 목판 날염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냈다.그는 장애를 극복하고 학생들을 잘 지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의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꿈을 간직한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제가 걸어온 길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는 그는 작별을 고하며 다시 오른손을 내밀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안진호 교수 약력 1965년 서울출생 82년 서울 한성고 졸업 88년 홍익대 미술대 공예학과 졸업 89년 한국 공예대전 특선,산미공예전 국제특별상 91∼92년 파리 가을살롱전 장식미술 2년연속 입상 95년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 졸업 99년 필라델피아 섬유대학원 졸업 2004년 3월 영남대 디자인학부 교수 04년 5월 옥조근정훈장 수상˝
  • “대학친구 이종혁선생 꼭 한번 보고싶소”

    “북조선을 버리고 망명한 옛 대학친구를 만나줄런지….이종혁 선생.꼭 한번 보고 싶소.” 옛 동독 라이프치히 대학 출신의 정형외과 전문의 장태호(69·경기도 의정부시 신곡1동) 박사는 14일 이국의 대학 기숙사에서 꿈을 나누던 친구를 애타게 그렸다.그 친구는 6·15남북공동선언 4주년을 맞아 이날 입국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이종혁(69) 부위원장이다. 장 박사의 고향은 최근 폭발참사로 잘 알려진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북현리이다.1954년 북한의 정부 장학생으로 동독에 유학한 그는 라이프치히대학 의대를 졸업한 뒤 1961년 서독으로 망명했다.이후 독일 최고의 정형외과 전문의로 쉬타트하겐 도립병원장을 역임하는 등 망명객의 신분을 털고 의사로 일가를 이루었다.그는 정년퇴직한 2000년 10월 한국에 왔다.독일생활 46년 만이다. 장 박사가 이 부위원장을 꼭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옛 친구이기도 하지만,북한에 남겨진 부모님과 동생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19세에 용천을 떠난 뒤 1959년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남동생의 편지로 가족들과의 소식이 끊겼다.1972년 스웨덴 북한대사관 직원을 통해 어머니 안원선씨와 남동생 장태손씨,여동생 금실·금녀·금숙씨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 전부였다. 장 박사는 자신보다 1년 앞선 1953년 이 부위원장이 동독으로 유학을 떠난 것으로 기억했다.장 박사는 “이 부위원장이 처음에는 드레스덴에서 공학 공부를 하다 56년 라이프치히로 옮겨 독문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친해지게 됐다.”고 말했다.당시 이 대학에서 공부한 북한 유학생은 10명 안팎에 불과했다. 장 박사가 기억하는 이 부위원장은 쾌활하고 유머가 있었다.“그이는 나보다 키가 좀 작고 통통했지요.농을 잘했고,내가 문학을 동경해서 리기영 선생의 아들인 그이와 어울리길 좋아했어요.기숙사를 드나들며 함께 밥 먹고 맥주도 마시고는 했지요.” 장 박사는 용천군 북중고급중 3학년 때 150명의 군후보로 선발된 뒤 시험과 출신성분 심사를 거쳐 신의주 도후보로 뽑혔고,최종 유학강습소 입학시험에도 통과됐다.장 박사는 “당시 유학강습소가 이번에 사고가 난 용천역에서 불과 2㎞ 거리에 있었다.”고 기억했다.장 박사는 1954년 8월15일 용천역을 출발,러시아를 거쳐 9월1일 동독에 도착했다. 동독 유학생들은 중도에 소환되는 경우가 많았다.55명 가운데 20명이나 망명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끝까지 대학을 마쳤지만,장 박사는 결국 18번째 망명자가 됐다.자유가 없는 감시받는 생활을 견딜 수 없었다. 장 박사는 그러나 “부모님과 동생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혼자 망명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괴로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지난 10일 이 부위원장이 입국한다는 뉴스를 듣고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찾아갔다.이 부위원장과의 만남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관리자의 답변만 들었다.장 박사는 “마지막 인생을 사무친 그리움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옛 친구가 혹여 이 그리움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까 그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가 열리는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을 찾아 이 부위원장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다시한번 부탁을 해볼 작정이다. 의정부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볼그레한 빛깔 진도 ‘홍주’

    “카아∼” 톡 쏘는 맛이 목구멍을 할퀴고 위장 깊숙이 전해지는 짜릿함을 느껴 본 사람만 안다.예부터 전남 진도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 민속주 ‘홍주’맛이 이렇다.볼그레한 와인처럼 예쁜 때깔을 자랑하지만 보드카나 위스키 만큼독하다.마신 뒤 입안에 감도는 지초(芝草)향만이 서양의 술과 다를 뿐이다. 홍주는 증류주로서는 드물게 숙취가 없고 뒤끝이 깨끗한 ‘약주’로 알려져 있다.‘독주’를 좋아하던 섬 사람들이 즐겼으나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조때는 진상품이었다. 오늘날까지 전통 홍주 제조법의 맥을 이어온 허화자(79·전남 진도읍 쌍정리) 할머니는 “나이가 드니 공이 많이 드는 술 빚기가 힘에 부친다.”면서도 “누룩을 만들고 소주를 내릴 때는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털어 놨다.혹 명주(名酒)라는 이름에 손색이 가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숙모밑에서 자라면서 홍주 제조법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할머니에게서 홍주는 술 이상의 인생을 담고 있다. “옛날 양반집에서나 만들어 즐기던 술”이라는 허 할머니의 말에선 자부심이 배어있다.정말 홍주는 광복 전까지만해도 탁주와 달리 지체 높은 집안에서나 만들었던 고급 술이었다.그러던 것이 밀주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반 서민들에 의해 밀주로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 지방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허 할머니는 지금껏 가마솥에 고조리(주전자처럼 꼭지가 달린 옹기)를 얹어 장작불을 지피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물론 대량 생산하는 농가도 있지만 그 맛을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허 할머니 말에는 장인정신이 그래도 녹아 있다.“정성이 들어가야 술맛이 제대로 나지요.” 홍주는 보리·밀 등 곡류를 반죽해 만든 누룩과 고두밥을 섞어 발효시킨 덧술을 끓여 만든다.가마솥에 덧술을 넣고 고조리를 통과시키면 알코올성분이 함유된 증류주가 모아진다.여기까지는 일반 소주를 내리는 방식과 비슷하다. 홍주 제조의 핵심은 지초라는 생약에 있다.지초는 홍주의 붉은 색깔을 내는 주 재료인데,진도에서 자생한다.지초의 양이나 증류때 불의 강약이 술의 진홍색 또는 연홍색 등의 색깔을 좌우한다.최종 증류주를 받아낼 때 삼베에 잘게 썬 지초 뿌리를 올려 놓고 통과시키면 향과 색이 밴 홍주(알코올농도 40∼45%)가 빚어진다. 지초 표피에 다량 함유된 나프타 퀴논계열의 붉은 색소에는 해열 및 항균작용이 탁월한 성분이 들어있다.이는 정혈(精血)을 돕기도 한다. 이곳 주민들은 예부터 감기,소화불량,설사,복통이 날 때는 홍주를 소주잔으로 한 두잔씩 마셨다고 전해진다. 진도홍주는 보관중 자홍색이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이는 술의 숙성에 따른 현상이며 밑에 깔리는 찌꺼기는 지초다. 그래서 홍주는 지초주(芝草酒)라고도 하며 중국 원나라에서 들어왔다는 소주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일부 학자들은 삼별초를 토벌하러 온 몽고인들이 홍주 내리는 비법을 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하지만 재료로 쓰이는 지초는 황폐한 몽골 땅에서는 생육이 힘들기 때문에 그곳에서 전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다.일부에서는 조선조 연산군때 양천 허씨 문중이 진도로 내려오면서 제조 비법이 전해졌다고도 한다.전파 경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조 이후 이 지방에서 자연 발생한 토속주란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홍주는 허 할머니의 제조비법 전수에 따라 현재 6개 농가가 ‘전통홍주보존회’를 만들어 보존,개발·산업화에 힘쓰고 있다.또 최근에는 강삼길(55·여)씨 등 2명이 홍주 비법 전수 장학생으로 선정돼,맥 잇기에 나섰다. 진도군 문화관광관(061-540-3229). 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따라 빚으세요 재료=누룩,쌀,보리쌀,지초 (1) 쌀과 보리쌀을 7대 3비율(5㎏)로 섞어 고두밥을 짓는다. (2) 고두밥을 누룩 한 되와 섞어 항아리 등에 넣고 섭씨 20∼23도 온돌방에서 15일 정도 숙성시킨다. (3) 숙성된 덧술을 소주고리나 증류기 등에 넣고 섭씨 60도 정도로 가열,비점이 낮은 휘발성분을 제거한다. (4) 용기 겉부분에 냉각수를 부어 증류된 소주를 얻어낸다. (5) 소주를 잘게 썬 지초뿌리를 넣은 삼베주머니를 통과시키면 선홍색 홍주가 완성된다.이때 지초는 술덧 한 말당 100g정도 사용한다.˝
  • [효섭 엄마의 孟母리포트] 美명문대 5곳서 합격통지 받은 이효섭군

    ‘초등 홈스쿨링→중학교 입학→민족사관고 입학→중퇴→미 명문대 5곳 합격’ 이효섭(18)군의 우여곡절 학창시절이다.보통 학생들처럼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값비싼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고,초등학교 과정은 집에서 엄마에게 배웠다.중학교는 ‘물’ 좋다는 강남 지역도 아니었다.남들이 보내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민족사관고는 1년만에 자퇴했다.하지만 학교를 그만둔 지 1년.효섭이는 미 명문대 5곳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효섭이가 합격 통지서를 받은 대학은 워싱턴 세인트루이스(Washington University in Saintlouis)와 노스웨스턴(Northwestern),터프츠(Tufts),칼튼(Carleton),스워스모어(Swarthmore) 등 모두 5곳.국내에서는 하버드나 옥스퍼드 등 아이비리그 대학만 알려졌지만 미국 내에서는 아이비리그 못지않게 명성이 있는 명문대들이다.효섭이는 현재 워싱턴 세인트루이스대 생의학·화학 복수전공과정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몸과 마음을 다 치료하는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어서다. 원하는 대학에 쉽게 합격했지만 효섭이는 너도나도 앞다퉈 시키는 학원이나 고액과외 등 사교육의 ‘축복’은 받지 않았다.‘무너져가는’ 공교육의 혜택을 받은 것은 중학교 3년이 전부였다.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 대학에 진학하게 된 데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들의 특성을 이해해 재능을 맘껏 펼치게 조용히 뒷바라지한 어머니 윤영(46)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의 재능은 만들어진다 어떻게 공부를 시켰을까? 윤씨는 “어려서부터 아이의 특성과 재능을 파악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만 만들어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네살 때였다.테이프가 딸린 동화책을 앉은 자리에서 혼자 10차례나 되풀이해 듣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효섭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책이다.“서점에 갈 때마다 효섭이는 5만∼6만원어치씩 책을 사달라고 졸랐어요.당시 29만원에 불과한 남편 월급으로는 큰 부담이었지요.” 이후 윤씨는 책을 사는 대신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활용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이문열의 ‘삼국지’는 효섭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되풀이해서 읽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이처럼 효섭이가 ‘책벌레’가 된 데는 윤씨의 결심이 결정적이었다. 텔레비전을 치워버린 것.윤씨는 결혼 1년 뒤 효섭이를 가진 뒤부터 혼수로 장만해온 텔레비전을 시부모께 드렸다.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윤씨는 대신 매일 육아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효섭이는 이같은 윤씨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윤씨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대신 하루종일 효섭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운 효섭이의 호기심은 날로 늘었다.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윤씨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효섭이의 물음에 일일이 답해주느라 목이 하얗게 쉬었다.대답할 때는 어른을 대하듯 정성을 다했다.“오죽했으면 친정 어머니가 ‘쓸데없는 애들 질문에 일일이 대답한다.’며 절 구박했겠습니까.하지만 전 효섭이를 하나의 어른,인격체로 대하고 싶었습니다.” 이같은 교육의 영향인지 효섭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부모와 ‘말이 통하는’ 신세대다.윤씨는 효섭이가 가끔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지만 용서를 구하며 보내온 앙증맞은 e메일 한 통에 서운함은 눈녹듯이 사라진다고 했다.“여느 수험생 엄마들처럼 저는 맘 고생 한 번 없었습니다.어려서부터 공부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집안 청소와 설거지에 효섭이가 빠질 리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말.효섭이네 생활에 크게 변화가 생겼다.효섭이의 아버지 이희명(46)씨가 베트남 합자회사인 ‘비나파이프’의 포스코 대표로 파견됐다.주변에서는 모두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라.’며 남편을 따라가는 것을 적극 말렸다.그러나 윤씨는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가 직접 가르치는 홈스쿨링(Home-Schooling)을 결심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홈스쿨링 발령지인 항구공업도시 하이퐁은 교육시설이 거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외국인학교는 아예 없었다.윤씨는 미리 초등학교 2∼6학년 교과서와 참고서,명화와 디즈니시리즈 비디오테이프 100여개를 한꺼번에 구입해 들어갔다.베트남에서의 홈스쿨링이 시작된 것이다.그는 한국 초등학교처럼 일주일의 공부 시간표를 만들어 효섭이를 가르쳤다.국·영·수는 물론 사회,과학,미술,음악에 도덕까지….교과서를 가르친 뒤 문제집을 풀게 하는 방식이었다.학교처럼 매일 숙제도 냈다.생물학을 전공하고 사범대 교직과정을 이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음악은 윤씨가 20여년간 교회 오르간 반주를 해온 경험이 있어 직접 가르쳤다.체육은 한 달에 5만원을 들여 태권도와 배드민턴을 가르쳤다. 문제는 영어였다.나중에 국제학교라도 보내려면 영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마침 적당한 과외교사가 나타났다.남편 회사에 통역사로 지원했던 베트남 하이퐁 해양대 교수였다.윤씨는 알파벳도 모르는 효섭이에게 대학생들이 회화교재로 쓰는 ‘스트림라인’으로 가르치게 했다.문법은 필요할 때마다 윤씨가 통역을 해서 가르쳤다.매일 2시간씩 매주 4차례 강의에 한 달 강의료는 300달러가 채 들지 않았다.베트남의 싼 물가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발음이 문제였다.발음 교정을 위해 마침 하이퐁 해양대 교수로 와 있던 87세의 미국인 노 교수를 매주 한 차례 집으로 모셔 한 시간씩 발음을 가르쳤다.어린이 영어성경을 읽어주면서 교리 공부까지 하는 방식이었다.윤씨는 “뭐든 말하기를 좋아하는 효섭이가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얘기하는 것을 참을성 있게 들어준 그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면서 “영어를 강요하기보다 흥미를 느끼도록 돕기만 했다.”고 했다. 홈스쿨링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았다.사교성이 떨어질까 걱정이었다.그는 남편과 잠시 헤어져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로 나가 유엔에서 운영하는 국제학교인 ‘유니스’에 효섭이를 편입시켰다.이번엔 집이 말썽이었다.시청 임대아파트가 너무 낡아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일어났다.그는 효섭이를 호치민에 있는 호주계 국제학교인 IGS로 전학시켰고,남편 회사의 도움으로 가족이 합칠 수 있었다.효섭이는 6학년때 학년 대표로 선출될 정도로 적응을 잘 해 나갔다. 윤씨의 노력과 효섭이의 탁월한 언어적 재능,그리고 뭐든 영어로 떠들기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효섭이의 영어실력은 갈수록 향상됐다.하노이 ‘유니스’에 편입하기 전 영어 실력을 평가받기 위해 치른 영어어학원(ESL) 테스트에서는 ‘ESL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4학년때였다. 효섭이의 언어적 재능을 알아차린 윤씨는 프랑스어도 가르치기로 했다.호치민에서 만나 사귄 이웃집 스위스계 여성을 선생님으로 모셨다.타고난 언어능력 덕분인지 효섭이는 불과 여섯달 만에 웬만한 회화가 가능할 수준에 올랐다.윤씨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5학년때 잠시 귀국,친정이 있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청강생 자격으로 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윤씨는 “친정 부모님께 잠시 아이를 맡기려고 했지만 학교측에서 ‘이렇게 뛰어난 아이를 우리 학교에서는 맡을 자신이 없다.엄마가 계속 가르치는 게 낫겠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외국대학에 미련 없다 6학년 2학기.효섭이는 5년여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서울 광진구 광장중에 입학한 효섭이는 윤씨의 철저한 홈스쿨링 덕에 학업 공백 없이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했다.성적도 최상위권이었다.한국에서 과외는 받지 않았다.지난해 미 SAT시험을 치르기 위해 화학 개인과외를 1주일 정도 받은 것이 전부였다. 중3때인 어느 날,남편이 원서 한 장을 들고 퇴근했다.민족사관고를 보내자는 것이었다.효섭이는 인문계 특차에 응시했고,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후 국제계열로 과를 바꿨지만 학교생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결국 효섭이는 1년만인 지난해 2월 자퇴를 결심했다.윤씨는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효섭이와 학생들의 모든 생활을 규제하는 학교 분위기와 맞지 않았고,1년에 최소 1500만원 이상 드는 학비가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효섭이는 이후 혼자 공부했고,미국 검정고시인 GED에 응시해 합격했다.미 수능시험에서는 SATⅠ 만점,SATⅡ 물리·화학·수학Ⅱ·작문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효섭이와 윤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장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달 16일부터 시작하는 워싱턴대 생의학 계열 여름캠프에 참가해야 하지만 아직 진학을 최종 결정하지 못한 탓이다.1년에 4만3000달러에 이르는 학비도 큰 부담이다.장학생으로 뽑혔지만 통지를 늦게 받아 장학금을 신청하지 못했다. “외국 대학에 보내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습니다.효섭이가 어떤 대학을 가서 어떤 일을 하든 제 스스로 잘 해낼 자신이 있으니까요.” 윤씨는 끝까지 효섭이를 믿고 있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상암 분양수익 장학금 첫 지급

    상암아파트 분양수익금으로 첫 장학금이 지급된다. 서울시는 ‘Hi Seoul 장학위원회’를 열어 서울소재 275개 고교 4084명을 올해의 장학생으로 선발,오는 30일까지 모두 16억 2102만 3230원의 ‘Hi Seoul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28일 밝혔다. Hi Seoul 장학금은 SH공사(옛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시공한 마포구 상암7단지의 아파트 분양수익금에서 조성한 것으로 1차 분으로 100억원이 모였다.수업료와 학교운영비로 1인당 156만 1200원씩 4분기로 나눠 지급되며 올해 지급 규모는 모두 65억원이다.수혜 장학생 선발기준은 실제소득 인정액이 최저 생계비의 120% 미만인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했다. 이유종기자 bell@˝
  • “불법 대선자금 與도 헌납하라” 한나라 “도의적 책임” 촉구

    “열린우리당도 국고에 헌납하라.” “이젠 안희정 장학생이냐.” “벌써부터 재보궐선거 올인이냐.” 한나라당이 23일 열린우리당을 향해 다시 포문을 열었다.더 이상 수세에 몰려 있지 않겠다는 듯 거센 반격에 나섰다.지금 제동을 걸지 않으면 정국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반영한다. 1차 공세는 열린우리당측의 불법 대선자금에 초점을 맞췄다.박근혜 대표는 이날 대구행 고속철도 안에서 “800억원 대 113억원이라는 결과에 대해 우리가 700억원 상당의 연수원을 국고에 헌납한 만큼 열린우리당도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앞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에서 “우리는 3개월 전에 연수원을 헌납해 신탁했고 모든 절차가 진행중”이라며 “열린우리당도 120억원에 달하는 대선 불법자금을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또 “노무현 대통령은 총선 결과로 재신임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불법 대선자금도 용서를 받았느냐.”고 되물었다. 2차 공세에는 이강두 정책위의장과 김 총장이 나섰다.이 의장은 “노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가 롯데측으로부터 받은 불법자금이 열린우리당 386세대에 전달됐고,이중 3명이 이번 총선에서 당선됐다.”며 “불법자금의 정치적,도의적,법적 책임을 다하라.”고 주장했다. 박대출기자˝
  • [총선 D-9] 鄭의장 아들 유학비 출처 밝혀라

    민주당이 총선체제 정비와 함께 연일 열린우리당에 대해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을 ‘노인고려장’ ‘노인탄핵’ 등의 표현을 써가며 사흘간 공세를 편 데 이어 5일에는 정 의장 장남의 미국유학과 창당 자금을 문제삼고 나섰다. 장전형 선대위 대변인은 “정 의장의 장남은 지난 2001년 미국 보스턴의 명문 사립고인 브룩스 스쿨로 유학을 떠났다.”며 돈의 출처와 유학을 보낸 배경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장 대변인은 “이 학교는 미국에서도 중상류층 자녀만 다니는 비싼 학교로,학비만 연간 6000만원이 넘고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7000만∼8000만원의 교육비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며 “겉으로는 서민을 위한다며 민생투어를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적 특권층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 정 의장의 허황된 실상”이라고 비난했다.이어 “자기 아들은 호화유학을 보내놓고 교육을 살리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측은 “브룩스 스쿨은 연간 학비와 기숙사비가 3600만∼3700만원 남짓 드는 보통 수준의 사립학교로,송금기록도 갖고 있다.”면서 “민주당 주장은 터무니없는 부풀리기로,이미 올해 초 민주당 주장을 보도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했고,정정보도가 나갔다.”고 밝혔다. 정 의장측은 “장남은 고등학교를 최우수 장학생(숨마쿰나우)으로 졸업했고,현재 스탠퍼드대 이공계열 1학년에 재학중”이라고 소개했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자금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박준영 선대본부장은 “열린우리당 창당 및 17대 총선자금과 관련해 검은 돈 수백억원을 조성하는 데 노무현 대통령이 고문변호사로 있었던 U병원과 A창투라는 회사와 청와대 및 열린우리당 핵심관계자 여러 명이 연루돼 있다.”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구체적 근거를 묻는 질문에는 “여러 자료와 증거를 확보하고 있으나 열린우리당의 해명을 지켜본 뒤 공개할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이재경 부대변인은 “박 본부장의 ‘아니면 말고식’의 무차별 허위 폭로에 대응할 가치를 못느낀다.”고 일축하고 박 본부장에 대해 검찰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진경호기자 jade@˝
  • [인물] 최경수 국조실 사회수석조정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해야만 했던 현직 차관급 고위공무원이 31년 만에 모교로부터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최경수(51) 국무조정실 사회수석조정관은 지난 14일 하루 휴가를 내고 대구고 졸업식에 참석했다.명예 졸업장을 손에 쥔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녔더라면 13회 졸업생이지만 31년 늦은 44회 졸업장을 받은 것이다. 큰딸인 상은(19·성균관대 입학 예정)양도 이날 고등학교를 졸업해 부녀가 같은 날 고교 졸업생이 됐다.늦깎이 졸업장을 받은 사실이 우연히 알려진 24일 그는 “남들은 고교 졸업장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하지만 명예 졸업장은 내 인생에서 최고 훈장”이라고 털어놨다. 최 조정관은 경북 경산군 남천면에서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지난 69년 대구고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부친이 학교를 갑자기 그만두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6남매 모두 학교에 다니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다.학교를 그만두던 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내친 김에 영남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당당히 합격했다.친구들은 고교 3학년으로 올라갈 때 그는 이미 대학생이 된 것이다.어려운 가정을 이끌려면 하루빨리 고시에 붙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74년 행시 16회에 합격했을 때 그의 나이는 21살.고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을 보상받은 셈이다.물론 중퇴자란 사실이 마음에 걸려선지 88년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94년에는 성균관대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구고는 ‘명예졸업 규정’까지 새로 만들어 그에게 1호 명예졸업장을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조정관은 “당시 어려웠던 가정 환경이 오히려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라면서 “지금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극복하곤 한다.”고 활짝 웃었다. 조현석기자 hyun68@˝
  • 권노갑씨 “경선자금 공개하면 정동영 죽어”

    민주당 권노갑 전 고문이 이른바 ‘권노갑 장학생’의 일원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을 겨냥,‘정치적 사망 선고’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어 파문이 일고 있다. 권 전 고문은 11일 발매된 주간동아와 가진 옥중 인터뷰에서 “그 친구 경선자금을 볼 때 법적 처벌을 받는 시효는 만료됐을 것이지만 아직도 도덕적 심판은 남아 있고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면서 “내가 내용을 공개하면 그는 도덕적으로 죽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치소에서)나가면 뭔가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 중”이라고 말해 출소 후 ‘폭탄 발언’을 내비쳤다.그는 이달 중순 재판 이후 병보석을 신청할 예정이다. 권 전 고문은 정 의장이 자신을 ‘제2의 김현철’로 비난한 것과 관련,“그 사람 자기 부인하고 우리집에 찾아와 집사람이 (돈가스점으로)힘들게 돈 번다며 어깨 주무르고 그렇게 나한테 잘했다.그러다가 느닷없이….”라며 회한에 잠긴 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밟고 가는 방법을 택했다.그가 하는 모든 말과 개혁은 위선과 거짓”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2000년 4월 총선과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자금지원 내역인 ‘권노갑 파일’에 대해서는 “파일이랄 것까지는 없고….”라며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정 의장은 권 전 고문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 없는 날조”라면서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고 정기남 부대변인이 전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산재근로자 자녀 스키캠프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8일 강원 홍천군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제16기 캠프 젊은 우리들’을 열었다.전국의 산업재해근로자 자녀 중학교 3학년 장학생 136명과 선배 장학생 등이 참가했으며 31일까지 계속된다.
  • 이공계大 신입생 5300명에 등록금

    교육인적자원부는 25일 전국 대학 이공계열 관련학과(학부) 신입생 중 5300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입학금·수업료·기성회비 등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예산 265억원을 확보했다. 신청은 ▲고교 자연과정 이수자로 수학과 과학 교과별 성적이 각각 상위 20% 이내 ▲수능 자연계열 응시자로 수도권 대학은 수리 및 과학탐구영역이 모두 1등급,지방대는 수리·과학탐구 영역이 각각 2등급 이내인 학생이 할 수 있다.의·치·한의·약·보건학 및 가정학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시 1·2학기 모집 입학생은 대학별로 추천을 받아 장학생을 뽑는다.수능 수리·과학탐구영역이 모두 1등급인 비수도권 대학 신입생에게 교재비 등으로 연간 200만원을,2등급 이상인 학생에게는 100만원을 준다.특히 올해부터 수리·과학탐구영역이 모두 1등급인 수도권 대학 신입생에게도 100만원의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장학생으로 선발돼 대학이 정한 학업 성적을 유지하면 졸업 때까지 4년간(5년제로 운영되는 건축학과는 5년) 계속 장학금을 받는다.성적이 미달되면 입학 이후 성적이 우수한 해당 대학의 다른 학생에게 대신 지급된다. 교육부는 지난해 뽑은 5873명에게 205억원의 장학금을 계속 지원하고 이공계 대학원 석·박사과정생 1500명을 대학별로 추천받아 연 400만원(지난해 300만원)씩 모두 60억원을 주기로 했다.이로써 올해 대학 신입생 5300명,재학생 5873명,대학원생 1500명 등 총 1만 2673명이 530억원을 지원받는다. 교육부는 이밖에 이공계 신입생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농협을 통해 4만 4000명에게 1000억원의 등록금을 정부가 이자 전액을 부담,무이자 융자해 주기로 했다. 박홍기기자
  • 두을장학재단, 장학생 80명 선발

    두을장학재단(이사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사진)은 여대생 80명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다고 4일 밝혔다.두을장학재단은 학업성적과 생활환경,자기 계발활동 등을 고려해 매년 장학생을 뽑고 있다.올해에는 대학 1학년에서 30명을 새로 뽑고 기존 2,3학년 장학생을 재평가해 50명을 선발했다. 이 재단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고 박두을 여사의 유지를 기려 2000년 설립됐다.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홍라희 호암미술관 관장,손복남 제일제당 고문,이영자 전 새한그룹 회장 등 유가족들이 기금을 조성해 만든 국내 첫 여성전문 장학재단이다.
  • 특허청, 발명장학생 482명 선발

    특허청은 23일 한우찬(19·한양대 1년)씨 등 발명장학생 48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올해 처음 마련된 발명장학생에는 한씨가 대학부,김선민(17·홍익사대부고 2년)군과 김세진(15·송탄중 3년)군이 각각 중·고등부 최우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 ‘하자센터’ 작업장교육 졸업생과 어머니 이야기/“문제아라고요? 꿈 일찍 찾은거죠”

    해마다 전국 5만여명의 중·고등학생이 학교를 떠난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중도탈락자’란 불명예로 기억된다. 여기, 학교를 떠났지만 자신의 꿈과 일을 찾아낸 아이들이 있다.대안학교‘하자센터(서울시 청소년 직업체험센터)’내 ‘하자작업장학교’가 바로 그곳으로,18일,첫 졸업생 3명을 배출한다.더욱이 이들 뒤에는 “더 빨리 학교를 그만두게 했더라면…”이라고 후회할 만큼 자녀를 믿고 격려하는 어머니가 있다. 졸업식 행사기획과 준비에 한창 바쁜 졸업생들을 12일 저녁 8시,하자센터에서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만났다. 학교가 몸에 맞지 않았던 아이들의 ‘학교만들기’프로젝트라 이름한 하자작업장 학교의 첫 졸업식 주인공은 원,남이,제리 등 3명. 처음 하자센터 문을 열면서 부터 ‘함께 했던’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를 만들었고,배우고 싶은 것을 정해나갔을 뿐아니라 관심분야의 교과목을 개설해 학생인 동시에 가르치는 역할도 해냈다.세 사람은 졸업식을 자신의 학습여정을 보여주는 전시장이자 공연장이자 토론장으로 꾸밀 계획이라 했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어떻게 변했을까 원(21)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꿈을 위해 고1때 학교를 떠났다.그후 하자센터의 개관과 함께 10대를 위한 자치회의,포럼,파티 등을 기획했다.‘학교는 아버지다’‘왜 다시 학교인가’등 교육문화에 대한 첨예한 비판과 대안학습에 대한 자기고민을 담은 글을 썼다.영상작업자(감독)로 첫 데뷔한 작품 ‘바다를 간직하며’는 여성영화제,전주영화제 등에서 상영됐고 졸업프로젝트인 단편퀴어영화 ‘헬멧’이 인디비디오페스티벌에서 상영 중인 영화감독이자 칼럼니스트다. 남이(20)는 입시미술이 미술의 전부인 줄 알고 절망하다가 진로를 바꿔 하자센터에 왔고,그후 ‘파티기획자’로 경력을 쌓았다.교복파티,가면파티 등 컨셉트가 있는 파티를 준비하고 만들어가면서 오히려 디자이너에 대한 동기와 욕구를 발견했다. 하자센터내 10대들이 운영한 명함회사에서 시각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쌓은 이래 좀더 본격적이고 섬세한 디자인 수업을 위해 올해삼성아트디자인학교(SADI)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공에 진학,두 개의 학교를 동시에 다녀왔다. 제리(20)는 천부적인 엔지니어로 각종 자격증을 갖고 있다.하자센터에 들어온지 3주만에 인턴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제리넘버원’이란 개인잡지를 두권 발간했다.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간사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대안학습경험을 쓴 단행본을 준비중이다. ●아이는 소유물이 아닌데… 원의 어머니 오숙희(44)씨는 “용감한 어머니”로 불린다.물론 ‘용감’이란 말은 ‘이상하다’는 속뜻을 감추고 있음을 오 씨는 잘 안다.“원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긴 했지만 공부도 소홀하지 않았어요.인천 간석여중 3년동안 장학생이었는데 아이가 학교 안가겠다고 한다고 덜컥 중퇴시켰다는 사실이 아직도 다른 어머니들 사이에선 이상하게 이야기될 정도지요.물론 저도 말렸죠.혹시 성적이라도 나빴으면 아깝지나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고,아무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도 못했구요.” 그러나 오 씨는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하지만 작업장학교를 만들면서 영화 일을 해온 딸 원의 학습여정을 지켜보면서 “학교 그만두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단다.게다가 한 발짝 더 나아가 “진작 학교 그만두게 했을 것을,괜히 부모 욕심때문에 아이 고생시킨 것같아 가슴아프지요.부모가 아이에 대한 신뢰만 갖는다면 아이들은 절대로 잘못되지 않아요.”라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제리의 어머니 양춘화(48)씨도 고교를 중퇴한 아들에 대해 “너무 작업에만 마음이 팔려서 건강을 잃을까 염려될 뿐,아무 걱정없다.”고 만족감을 표했다.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유난히 컴퓨터를 잘 만졌고,중학교때부터 음향엔지니어로도 활동해 돈을 벌기도 했을 만큼 남달랐기 때문에 기대도 컸던 아들에 대해 부모욕심을 내세우지 않은 것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한단다.“누나들처럼 착하고 무난하게 지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있었지만 제리가 작업장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놀랐어요.정말 이렇게 교육이 바뀌어야겠구나 생각하기도 했구요.” ●누구나 학교를 떠날 수 있다 원은 “제가 엄마를 설득하면서,혹은 저 스스로 했던 말이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였어요.하지만 이런 제 마음도 모두 강박적임을 발견했어요.자퇴하니까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보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젠 즐겁게 작업을 하고,내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자센터에서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제리는 교사들과도 적잖이 부딪히며 지냈다.마음이 열린 교사들과 스태프들로서는 최대한 편하게 서로를 대했으나 그는 잘못된 것은 자신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단다.“하지만 제가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겁이 없었나 돌아보게 되지요.그만큼 제가 성장한 겁니다.작업장 학교에서요.” 하자센터의 조한혜정 교장은 아이들과의 지난 4년을 ‘시대적인 실험’이었다고 설명하면서,“이 아이들을 통해 10대가 답답해보여서 도와주고 싶어도 그들이 물어오기 전에는 알려주면 오히려 부작용이 난다는 것,그리고 10대들은 머리로는 알고있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으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그리고 ‘석·박사학위를 받은 제자를 내보낼 때보다 덜 걱정이 된다.’고 이들의 새출발을 격려했다. 허남주 기자 hhj@ ■작업장 학교는? ‘하자센터’는 서울시가 연세대에 위탁,운영하는 청소년직업센터로 99년 12월에 서울 영등포에 개관했다.‘스스로 업그레이드 하자’‘하고 싶은 일하면서 먹고 살자’‘자율과 공생의 원리’등을 모토로 하는 곳으로,대안적인 공교육 체제의 교육모델을 제시할 것으로,일찌감치 기대의 대상이 됐다. 2001년 9월,하자센터안에 만들어진 작은 실험학교 ‘하자작업장 학교’는 ‘탈학교’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아닌 학교’다.‘작업장학교’ 즉 production school로 기존의 학교가 틀에 박힌 교과과정을 주입시키느라 스스로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곳이란 인식하에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산하는 것을 장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배우는’아이들은 한 학기에 15∼20명선,3년제로 전체학생은 100명을 넘지 않는데 졸업도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준비가 되면 졸업하는 형식이다.즉 스스로의 경력과 학력을 만들며 준비를 끝낸 아이들이 ‘산’을 내려갈 때를 정하는 것이 졸업이라 했다.올 12월에 이어 내년 2월에도 몇 사람이 졸업할 것이라 한다.
  • [박진환의 덩크슛]떠난 감독들

    요즘 프로농구 경기장에 가면 관중석에 앉아 열심히 메모하는 이충희 전 고려대 감독을 볼 수 있다.지난달 농구대잔치가 열리기 직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이 감독은 이번 시즌 동안 모 스포츠지에 프로농구 관전평을 기고하고 있다. 또 지난주엔 프로농구 모비스 최희암 감독이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격 사퇴해 충격을 주었다.이처럼 현직에서 물러난 지도자들은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휴식과 재충전을 하며 현역 복귀의 꿈을 가꾸기도 하고,아예 농구계를 떠나 새로운 사업에 몰두하기도 한다.또한 빈 자리가 생길 때마다 명예회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를 걸기도 한다. 그동안 프로농구 사령탑에 올랐던 지도자(감독대행 포함)는 모두 26명.이 가운데 KCC 신선우 감독만이 한 팀에서 지금껏 장수하고 있을 뿐 팀마다 2∼5차례 사령탑이 바뀌었다. 여자팀이나 대학팀으로 옮겨간 지도자가 가장 많다.박인규(기아) 감독과 김태일(골드뱅크) 감독은 각각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과 금호생명에서 지도자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며,강정수(SBS) 감독은 모교인 중앙대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한 경우도 있다.김인건(SBS)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산실인 태릉선수촌장을 맡고 있으며,최종규(대우·삼보) 감독은 KBL 기술위원장,김동욱(삼보) 감독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심판위원장으로 활약 중이다. LG 창단감독을 지내기도 한 이충희 감독처럼 신문 칼럼을 쓰거나 방송해설을 하며 재기를 노리는 지도자들도 있다.최인선(기아·SK) 감독은 경인방송,진효준(코리아텐더) 감독은 KBS SKY의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유학이나 이민으로 비행기를 탄 ‘해외파’로는 지난달 미국프로농구(NBA) 연수를 떠난 안준호(SK) 감독과 몇 년전 미국으로 온가족이 이주한 황유하(나산) 감독이 있다. 선수시절 컴퓨터 슈터로 명성을 떨친 김현준(삼성) 감독대행은 코치로 근무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삼성 구단은 고인을 추모하여 해마다 중·고교 선수 중에서 김현준 농구장학생을 뽑아 올해 네번째 시상식을 가졌다. 최명룡(나래·동양) 감독은 딸이 미스코리아에 선발돼 화제를 뿌리기도 했으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반면에 박광호(동양)·최경덕(삼성)·박수교(기아) 감독은 최근 농구장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두문불출해 대조를 이룬다. 월간 ‘점프볼’ 편집인 pjwk@jumpball.co.kr
  • ‘국제보석디자인’ 대상 탁지인씨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가 돼 한국인의 빼어난 솜씨를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계명대학교 패션대 탁지인(24·여·패션정보기획전공 4년)씨가 세계적 디자인 회사인 이탈리아 크리에이티브 아카데미(Creative Academy)가 주최한 ‘보석,시계,액세서리' 국제 디자인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탁씨는 대상 수상으로 18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아 크리에이티브 아카데미가 개설한 ‘디자인 예술 마스터 코스’의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번 대회에서 탁씨는 ‘주얼리 디자인'이란 주제에 맞춰 목걸이,반지,브로치에 한국 전통 문양의 아름다움을 가미,높은 점수를 받았다.한국의 전통 이미지를 컨셉트로 ‘행복한 신부',‘한국의 사계'를 비롯, 진주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리얼 펄즈(Real Pearls)'등의 작품을 선보여 한국적 이미지의 독창성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는 것. 탁씨는 “앞으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아 루이뷔통 디자이너이자 패션 디렉터인 마크 제이콥스 같은 패션전문가가 되는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씨줄날줄] 꼴찌들의 반란

    누가 봐도 분명 ‘반란’이었다.미륵사지석탑이나 들먹거려야 어디쯤인지 어렴풋이 짐작되는 전북의 시골,그것도 종합고교가 올 수능에서 도내 인문계열과 예체능계열 수석을 모두 석권했다고 한다.농촌학교라고 신입생 확보조차 어려웠다고 한다.수업료는 물론 기숙사비 무료라는 조건을 내걸고 장학생을 모았지만 연합고사 170점 넘는 학생이 없었다고 한다.서울이라면 강남이 아니더라도 학급마다 수두룩한 게 190점 학생이지 않은가.그 ‘꼴찌’들이 도내 수석이 되었고 수능평균은 2등급인 320점대였다는 것이다. 익산종고의 ‘사건’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세상에 대한 포효이자 흐물흐물 붕괴되어 가는 한국 교육의 해법을 제시해 주었다.첫째 학교는 무엇보다도 입시 대비라는 학생들의 현실적인 학습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교장선생님과 환하게 웃고 있는 익산종고 학생들 모습을 보라.거창하게 따로 인성교육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가.선생님과 학생들이 어울려 공부하는 과정에서 인성교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 장학생반을 따로 만들어 운용했다는 대목에도 주목해야 한다.집단학습 시스템인 학교수업은 학력수준이 비슷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으면 좋겠다.입만 벙긋하면 분반수업은 다른 학생들과 위화감을 불러오기 때문에 안 된다는 교육당국은 얘기를 더 들어 보아야 한다.장학생과 다른 학생과의 위화감은 선생님이 제자들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말끔히 극복했다는 대목이다.그랬더니 다른 학생들도 수능 평균이 무려 30점이 높아졌다고 하지 않는가. 선생님들 몫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밤 9시까지 심화수업 그리고 자정부턴 자율학습을 시켰다고 한다.성적은 바로 노력의 대가였다.서울 일류학원 교재까지 분석하고 연구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익산종고는 빈사 상태의 한국교육의 소생 해법을 도식적으로 제시했다.교육당국은 당장 내년부터라도 일선 학교에서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그 과정에서 우려되는 위화감일랑 교사의 ‘선생님정신’으로 극복해야 한다.교사들은 하루빨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붕괴되어 가는 학교를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정인학 논설위원
  • “암투병 경찰관父子 도와주세요”

    일선 경찰관과 아들이 나란히 암 투병을 하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울 성동경찰서 북부지구대 소속 하장수(사진·51) 경사는 지난달 10일 명치 끝에 통증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입원 중이다.그는 평소 간이 좋지 않았으나 지난 95년 둘째아들 성진(23)씨가 골육종을 앓는 바람에 병 수발을 하느라 자신의 몸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진씨는 그동안 무릎 뼈를 잘라내고 보형물을 넣는 등 8차례나 수술을 받았다.발병 당시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병 치료를 위해 학교를 중퇴했으나,고입검정고시를 거쳐 올해 모 전문대 컴퓨터공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그러나 지난달 초 한동안 멈칫하던 암이 악화되면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하 경사는 1980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한 뒤 2000년부터 성동경찰서에서 근무해 왔다.성동서 관계자는 “평소 성실한 업무 처리로 신망이 두터웠다.”고 말했다.성동경찰서는 성금모금 등을 통해 하 경사를 돕기로 했다.(02)2233-1444,2252-0483. 유지혜기자 wisepen@
  • “가고싶은 고국 땅이건만 ‘자수서’와 바꿀순 없었소”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씨

    ‘이승만 대통령의 장학생’에서 유신 치하의 망명객에 이어 5·6공화국의 ‘국사범’으로 아직도 일본을 떠돌고 있는 ‘통일운동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은 정경모(79)씨다.10여년 전 민족주의자 고(故) 김구·여운형·장준하 등이 저승에서 나누는 대화 형식을 빌려 반민족행위자들을 통렬하게 꾸짖은 ‘찢겨진 산하’(거름 펴냄)로 국내에 알려진 그의 삶은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이승만 장학생' 에서 ‘국사범'으로 최근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해외 민주인사 한마당’ 행사에 송두율 교수 등과 함께 초청돼 귀국을 준비하다 ‘자수서’를 내라는 정부 제안에 “비굴한 형식을 거치느니 거부하겠다.”며 끝내 귀국을 포기해 화제가 됐다.초청인사 50명 중 입국을 거부한 두 사람이 정씨와 그의 부인이었다.일본 도쿄에서 작은 학숙(學塾)을 세워 제일교포 2세들과 일본인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다 건강이 안 좋아져 지금은 요코하마(橫濱)시 히요시(日吉)에 사는 그를 히요시역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준법서약서’ 안 써도 된다고 해서 관계자를 만났더니 자수서를 쓰라고 해.차라리 여기서 그대로 살다가 꺼졌으면 꺼졌지 그런 수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내가 자수서를 쓰면 문익환 목사를 부인하고 나를 파괴하는 거야.” 정씨의 귀국을 막고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89년 문익환 목사와 방북해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고,그전에도 문 목사의 방북을 준비하러 평양에 갔었다.95년엔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와 함께 방북했다. “방북 당시 문 목사와 허담씨가 서명한 ‘4·2 공동성명’은 남북화해의 초석이었어.거기에 놀란 노태우 정권이 당황해 ‘남북기본합의서’(91년 12월)를 내놓았는데 ‘4·2성명’을 계승한 거야.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발표한 6·15 성명도 당시 성명에서 연유한 것이지.그런데 어찌 ‘실정법을 어긴 죄인임을 자인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자수서를 내미는가 말이야.” ●판문점 통역일로 문익환목사와 인연 그가 문익환 목사를 사주해 방북을 권유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문 목사와의 인연은 50년 전에 맺어졌다.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씨는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 미국 에모리대학으로 유학을 가 화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당시만 해도 환전이 불가능해 친분이 두터웠던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학비를 대주기도 하고 송금도 도와주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면 주미 대사가 “당신 같은 사람은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조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권유해 미국 국방부 직원이 돼 도쿄 극동군최고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유학파’로 같은 일을 하러온 문익환을 만났다.두 사람은 정전협정이 논의되던 판문점에서 통역장교로 함께 일했다. 통역일은 정씨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었다.좌익이 데모하는 게 보기 싫어 유학을 갈 정도의 보수적 학생이었던 정씨는 중국의 펑더화이 사령관 등을 만나면서 한반도 정세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비롯한 동북아 현대사 서적을 탐독하며 ‘미국의 정체’를 파악했다.그러던 정씨는 1970년 박정희 독재 정권에 환멸을느껴 일본으로 망명을 감행했다. 정씨에게 송두율 교수 입국이 오버랩되는 건 당연하다.송 교수를 둘러싼 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인텔리티까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정원 능력을 과소평가한 거지.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다가 증거를 들이미니 그때마다 시인할 수밖에.차라리 황장엽씨의 폭로 등 모든 것을 털고 귀국하는 게 나았을 거야.” 내친 김에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다.“국정원의 입장은 이해해.하지만 실정법 위반 이전에 문 목사와 나의 방북 의미를 생각해야 돼.그리고 늙으면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고.자수서에 이름 석자 써넣으면 고국에 갈 수 있지만 살아온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 ●‘장길산' 일본어 번역 내년7월 마무리 화제를 바꿔 황석영씨의 소설 ‘장길산’의 일본어 번역에 대해서 물었다.황씨는 86년에 “제 작품 번역은 선생님 이외에는 해낼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이미 ‘한씨 연대기’ 등을 통해 황씨에게 매료된 상태였고 ‘장길산’을 읽느라 전철역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선뜻 동의는 했지만,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일역 등으로 짬을 못내다가 밀입북했던 황씨가 귀국해 구속된 93년부터 ‘마음의 빚’에 눌려 번역을 시작했다.94년 1권 번역 출간에 이어 1년에 1권꼴로 9권을 번역한 상태다.내년 7월이면 완역한다.(정씨는 ‘장길산’ 일역 관련 일화 등을 최근 창비사가 낸 ‘황석영 문학의 세계’에 ‘황석영과 나’라는 글에서 밝혔다.)꼿꼿하게 원칙을 지켜온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나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만해 한용운 선생 빼고 독립선언문 쓴 33인이 모두 넘어갔잖아.그런 지조를 지킨 ‘최후의 1인’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일제와 싸울 수 있지 않았겠어.” 인터뷰를 마칠 즈음 갑자기 비가 내렸다.댁까지 바래다드리겠다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는 평생 신념을 지키며 산 올곧음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요코하마 이종수특파원 vielee@
  • 이공계 재정지원 대폭 늘린다/내년 연수·장학금 2237억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이 크게 늘어난다. 기획예산처는 능력있는 학생들의 이공계 진출을 촉진하고,과학기술계의 사기진작을 위해 내년에 이공계 학생의 장학금 지원 등으로 2237억원을 지원한다고 2일 밝혔다.올해 1505억원에 비해 48.6% 늘어난 규모다.정부는 우선 대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공계 학생에 대한 장학금 및 해외 학위취득 지원금을 올해보다 416억원이 늘어난 1301억원으로 책정했다.장학금을 받는 인원도 현재의 7220명에서 1만 31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공계 미취업자의 현장 연수 지원에는 올해보다 230억원이 많은 671억원을 지원,올해의 3배에 가까운 9120명에게 현장 연수 기회를 준다. 청소년의 과학문화 확산을 위해 영재 교육 및 대통령 과학 장학생 지원 등에 올해보다 86억원이 증액된 26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과학기술 출연금에 대한 연구비로 올해보다 15.5%가 늘어난 4226억원을 반영,과학기술인의 사기 진작에 힘쓰기로 했다. 정부는 과학기술공제회의 연구원 복지증진을 위해 100억원을 재원으로 투자하고,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내년에 출범하는 연합대학원에 7억원을 운영비로 지원하기로 했다. 우수한 연구원의 신분 불안을 완화하는 방안으로,내년부터 정년 이후 연구활동을 2년 단위로 연장 계약하는 ‘정년 후 계약연장제’도 연구기관별로 자율적으로 도입하도록 권장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2008년까지 4급 이상 기술직 임용 비율을 30%로 높이고,5급 신규 채용시 기술직 비율을 2013년까지 50%로 상향조정할 방침이다. 김성수기자 s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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