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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하이 고위직 숙청 가속도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상하이(上海) 고위직들이 여권이 압수되고 이들의 출국을 막기 위해 공항과 항만에 특수경찰이 배치됐다고 홍콩 언론들이 26일 전했다. 상하이에 대한 보안 강화는 사회보장기금 4억달러를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공산당 서기의 해임 발표 하루 만에 이뤄진 전격적인 조치이다. 홍콩의 대공보는 유럽·호주를 방문할 예정이던 시 정부 대표단 3명의 출국이 취소됐으며 모든 고위직들의 해외 여행도 특별 허가를 받도록 통보됐다고 보도했다. 당 중앙 기율검사위원회 간이성(干以勝) 상무위원회 비서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국에 8개팀을 파견, 정부 고위관리와 금융기관장들의 부패실태를 조사하고 있으며, 관련자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밝혀 사건의 파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관련자가 누구이든 엄중히 처벌받을 것”이라면서 “규정과 법을 위반한 사안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용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량위는 24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1명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2002년 이래 진행하고 있는 부패 청산과정에서 현직 축출된 최고위직이다. 이와 관련, 조지프 쳉(鄭宇碩) 홍콩 시티대 교수는 “천 서기의 실각은 장쩌민이 자신의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거나 막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에 놓여있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며 “이는 장쩌민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로써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중국 정권을 완전 장악에 성공했음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증명하듯, 상하이시 공산당위원회와 시정부의 간부들은 천 서기 해임 결정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을 공산당 서기 대행으로 임명한 결정을 지지하며 상하이의 안정적인 발전과 함께 반부패투쟁을 계속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고 통신은 전했다. 타이완의 한 언론은 정치국의 “또 다른 위원과 가족들이 이번 부패사건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jj@seoul.co.kr
  • 상하이방 퇴출… 中 권력투쟁 ‘가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공산당 서기가 비리 혐의로 해임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천 서기는 중공 중앙 서열 25위 이내인 당 중앙 정치국원인 동시에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정치 기반인 상하이방(幇)의 핵심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전·현직 지도부간의 본격적인 권력 투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중국 최고 지도부의 실질적 개편이 뒤따를 것으로도 전망된다. 신화통신은 “천 서기가 시(市) (공공기금 부당대출 등) 공금 비리 사건에 연루돼 해임됐으며, 정치국 위원직도 일시 정지됐다.”고 전했다. 천 서기 해임설은 지난해 10월 열린 제16기 당 중앙위 제5차 전체회의(16期 5中全會) 무렵부터 본격 등장했다. 권력은 승계받았으나 장쩌민 전 주석의 정치적 영향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고위직에 대한 물갈이를 통해 권력 강화를 꾀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지난해 연말부터 상하이방의 마지막 보루인 황쥐(黃菊) 부총리가 한동안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뒤로 이같은 전망은 더욱 표면화됐다. 이후 진행된 중앙 정부 차원의 ‘반부패 투쟁’ 작업은 상하이방을 겨냥해나갔다. 사정의 칼날은 상하이 부동산 개발업자인 저우정이(周正毅) 눙카이(農凱)그룹 회장, 장룽쿤(張榮坤) 푸시(福禧) 투자회사 회장, 주쥔이(祝均一) 상하이시 노동 및 사회보장국장 등 외곽에서부터 옥죄어 왔다. 이어 장 전 주석의 측근인 왕서우예(王守業) 전 인민해방군 해군 부사령관(중장), 또 다른 상하이방의 거물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측근인 류즈화(劉志華) 베이징시 부시장 등에까지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상하이방이 마지막 거두인 황쥐 부총리도 이번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재 황쥐 부총리의 부인 위후이원(余慧文)이 경제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다른 가족들도 기밀 유출 혐의로 내사를 받았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공 중앙은 다음달 열리는 제16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6기 6중전회)에 맞춰 31개 성(省)ㆍ시(市)의 당 서기, 성장을 비롯한 현(縣)ㆍ향(鄕) 등 지방간부를 차례로 교체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맞춰 후 주석은 자신의 권력 기반인 중국공산청년단(共靑團) 인맥 등을 중앙으로 흡수해 지도체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커창(李克强·50) 랴오닝(遼寧)성 서기, 리위안차오(李源潮·56) 장쑤(江蘇)성 서기 등이 공청단, 즉 ‘투안파(團派)’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왕치산(王岐山·57) 베이징 시장, 보시라이(薄熙來·56) 상무부장, 시진핑(習近平·53) 저장(浙江)성 서기 등은 혁명원로 자제들인 ‘태자당(太子黨)’으로서 후 주석의 지지 기반으로 간주된다. 이들의 등용은 제 2기 후진타오 체제(2007년∼2012년)를 선포할 내년 가을 17차 당 전국대표대회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여겨진다. 이 무렵이면 9인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리창춘(李長春) 당 이념담당 서기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이 모두 물러날 것으로 전망돼 명실상부한 후진타오 체제가 완성될 것으로 전망된다.jj@seoul.co.kr
  • 해임 천량위 누구인가

    해임된 천량위(陳良宇·60) 상하이시 공산당 서기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최측근이다. 장 전 주석 퇴임 뒤 ‘상하이방(幇)’으로 불리는 장쩌민계 인맥의 맏형으로 정치적 거점인 상하이를 책임져 왔다. 1970년 상하이 펑푸(彭浦)기계공장 엔지니어를 시작으로 상하이 전기공사 서기, 상하이 황푸(黃浦)구 서기, 상하이시 부서기 등 줄곧 상하이에서만 관료생활을 해왔다. 인민해방군 후근(後勤)공정학원 건축학과와 영국 버밍엄대학을 졸업한 그는 서기 발탁 당시부터 장 전 주석의 뒤를 이을 적임자로 꼽혔으나 후진타오(胡錦濤) 체제가 출범하면서 집중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경기과열 논쟁 당시 내부회의 도중 중앙정부의 정책실패를 따지며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향해 언성을 높이는 등 반기를 든 것으로 유명하다. 후 주석이 그를 교체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여러차례 외신에 보도됐으나 상하이방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실행되지는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별한 사이인 황쥐(黃菊) 부총리가 암 투병으로 일선으로 물러난 올해 초부터는 공개 연설 때마다 후 주석을 적극 옹호하며 관계개선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하늘길’ 탄 中華대장정] (하) 두 얼굴의 라싸

    [‘하늘길’ 탄 中華대장정] (하) 두 얼굴의 라싸

    |라싸(拉薩) 이지운특파원|라싸로 오는 길과 라싸 현지는 많이 달랐다. 철로가 보여준 원시의 풍광과 이에 어우러진 원색의 채색 위로 라싸에는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많은 면에서 예상과도 달랐다. ●더 오른 물가 철도 개통 이후 예컨대 물가는 낮아졌어야 옳다. 라싸의 일부 물가는 전 중국에서 가장 높다. 베이징에서 1위안(120원)짜리 광천수가 3위안에 팔리는 식이다. 물류비용이 크게 떨어졌다는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광천수는 적어도 베이징 가격에 팔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광천수 가격은 그대로다. 채소 등은 오히려 값이 뛰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 폭증 때문이다.“일부 물가는 더욱 상승할 것이며, 내년부터 화물열차가 본격 운행된다 해도 한동안은 수요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지 상인들의 전망이다. ●동·서로 나뉜 라싸 한족(漢族)의 숫자도 예상보다 많았다. 공식적인 자료는 ‘시짱자치구 인구의 92% 이상이 장족(藏族)’이라고만 설명한다. 그러나 라싸 시내(城管區) 주민 27만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한족으로 집계된다. 돈벌이가 괜찮은 택시 기사의 80% 이상도 한족이다. 한족의 급증세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한족의 유입은 도시 모양새도 바꿔놓았다. 부달라(布達拉)궁을 중심으로 동쪽은 장족의 거리, 서쪽은 한족의 거리로 확연히 나뉜다. 서쪽에는 대형 마트가 연이어 들어서는 등 소비형 거리로 빠르게 변모해가고 있다. 동쪽이라고 변화가 없는 게 아니다.“불과 몇개월새 퇴폐 안마시술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주민들의 생활상도 ‘당연히’ 달라졌다. 일부 장족 농목민들의 연간 현금 수입 중 절반 이상이 ‘다겅(打工·아르바이트)’이 차지하는 식이다. 한 농목민은 “시내 건설현장에서 잡일을 하거나 집을 지은 뒤 단청 채색을 해주는 일 등을 한다.”고 소개했다. 오후 4시쯤 찾은 샤오자오쓰(小昭寺) 주변의 전통 찻집에서는 맥주를 주문해놓은 젊은이들이 인기스타 청룽(成龍)의 영화가 방영되는 TV를 보고 있었다. 티베트의 100여 ‘생불(生佛)’ 가운데 하나이자, 중국 불교협회 티베트분회 부회장인 나다아왕단쩡(那達阿旺旦增)은 “승려가 되려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돈에 물든 티베트”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변화는 티베트가 돈의 본색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찰 앞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승려도 돈을 달라 하고, 해발 4000m 고지에서 만나 사진을 찍은 목동도 돈을 내라 한다. 오히려 한족들이 나서 “돈에 물들었다.”고 힐난할 정도다. 양줘웅춰(羊卓雍錯) 호수 주변의 잡상인들은 “한 외국인이 잃어버린 50만원짜리 비행기 티켓을 돌려주면서 그 가격을 다 받아낸 적이 있다.”고 자랑까지 한다. ●중국의 폭력에 대한 공포 눈에 드러나지 않는 변화도 있다. 심리적인 위축이다.‘정치’ 등 민감한 질문에는 거의 모두가 기겁을 한다.‘정치에 관심없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던 한 택시기사는 기자에게 “별 일 없겠지?”라고 되물으며 좌불안석이다. 티베트를 관찰해왔다는 한 외국인은 이같은 ‘공포’의 근원을 과거 티베트 독립운동 시기에 가해진 중국 정부의 폭력 진압에서 찾았다.“중국군의 폭력을 겪었던 세대들은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와 상처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 군대와 군인은 라싸 시내 곳곳에 포진해 있다. 특히 라싸시 간선도로의 하나인 진주루(金珠路)를 동에서 서로 달리다보면 ‘시짱 군구(軍區)’를 비롯, 적지않은 수의 군 부대와 군 훈련 및 관련 기관을 확인할 수 있다. 한 현지인은 “도시에도 산에도 사찰에도 곳곳에 사복 군인이 숨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곳에 독립 움직임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긴 라싸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고, 높고, 현대식인 건물은 공안국 건물이다. 시짱자치구의 한 한족 고위 공무원은 “외세가 달라이라마 등을 부추겨 독립을 사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짱자치구의 소개로 찾은 한 농목민의 가정에는 집안에 모셔놓은 신주 단지 바로 옆으로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부부는 아침 저녁으로 절을 하며 신주를 모신다고 했다. ●자본주의로 변해가는 라싸 지난 17일 낮 라싸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미국 맥주 버드와이저의 광고판이 여러개 눈에 띄었다. 라싸가 보여준 예상치 못한 여러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앞으로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갈 라싸의 모습은 고원의 날씨 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려워 보였다. jj@seoul.co.kr
  • 상하이 새 표준 교과서들 마오쩌둥 항목 대폭 축소 빌 게이츠 등 새로 추가

    중국 상하이(上海)의 새 표준 교과서에서 마오쩌둥(毛澤東)과 마르크스는 거의 퇴출되고 그 자리에 빌 게이츠와 JP모건이 들어섰다고 뉴욕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새 학기 상하이 시내 중·고교에서 전면 채택될 새 역사교과서는 중국 공산혁명의 아버지 마오쩌둥을 예절 단원에서 한 차례 언급하는 데 그쳤다.1950년대부터 줄곧 교과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자취를 감추다시피했다. 사회주의는 여전히 ‘영광스러운 미래’로 언급되고 있지만 고교 역사교과서 52개 단원 중 하나로 줄었고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사회주의는 한 문장으로만 소개됐다. 사회주의 혁명 역시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에 밀려 강조점이 약해졌다. 대장정과 난징대학살 등도 중학 교과서에서 압축해 다루고 있다. 대신 빌 게이츠와 JP모건, 뉴욕 증시, 미국 우주왕복선, 일본의 신칸센 열차 등이 역사교과서의 새로운 항목으로 등장했다. 진시황과 분서갱유를 포함한 고대사는 크게 줄어든 반면 3개 대표론을 창시한 장쩌민(江澤民)과 조화사회를 강조하는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선 폭넓게 기술됐다. 교육당국의 검정을 통과한 이 역사교과서는 새 학기 전면 도입을 앞두고 역사학자들 간 논란을 빚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역사 전반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학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과거에는 교과서가 이념과 국가정체성 부각에 치중했지만 이제는 오늘날의 정치·경제적 목표에 맞도록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학생들에게 과거 투쟁과 갈등, 전쟁의 역사를 가르치길 원치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상하이 새 표준 교과서들 마오쩌둥 항목 대폭 축소

    중국 상하이(上海)의 새 표준 교과서에서 마오쩌둥(毛澤東)과 마르크스는 거의 퇴출되고 그 자리에 빌 게이츠와 J.P.모건이 들어섰다고 뉴욕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새 학기 상하이 시내 중·고교에서 전면 채택될 새 역사교과서는 중국 공산혁명의 아버지 마오쩌둥을 예절 단원에서 한 차례 언급하는 데 그쳤다.1950년대부터 줄곧 교과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마르크스주의는 자취를 감추다시피했다. 사회주의는 여전히 ‘영광스러운 미래’로 언급되고 있지만 고교 역사교과서 52개 단원 중 하나로 줄었고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사회주의는 한 문장으로만 소개됐다.사회주의 혁명 역시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에 밀려 강조점이 약해졌다.대장정과 난징대학살 등도 중학 교과서에서 압축해 다루고 있다. 대신 빌 게이츠와 J.P.모건,뉴욕 증시,미국 우주왕복선,일본의 신칸센 열차 등이 역사교과서의 새로운 항목으로 등장했다. 진시황과 분서갱유를 포함한 고대사는 크게 줄어든 반면 3개 대표론을 창시한 장쩌민(江澤民)과 조화사회를 강조하는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선 폭넓게 기술됐다. 교육당국의 검정을 통과한 이 역사교과서는 새 학기 전면 도입을 앞두고 역사학자들 간 논란을 빚고 있다.많은 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역사 전반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학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과거에는 교과서가 이념과 국가정체성 부각에 치중했지만 이제는 오늘날의 정치·경제적 목표에 맞도록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중국 지도부가 학생들에게 과거 투쟁과 갈등,전쟁의 역사를 가르치길 원치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세계의 싱크탱크] (6) 中 사회과학원

    [세계의 싱크탱크] (6) 中 사회과학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망과 함께 중국은 극도의 정신적 공황에 휩싸였다. 광풍과도 같던 10년의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린 뒤 인민들은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었다. 국가적 오류가 속속 밝혀지고 국가의 기본 노선마저 의심받던 그 무렵, 당 중앙은 중국사회과학원의 창설을 지시한다. 1978년 5월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과학원 소속의 철학사회과학학부를 모태로 탄생했다. 마오쩌둥의 비서 출신으로 당대 최고 이론가로 꼽히던 후차오무(胡喬木)가 초대 원장을 맡았다. 내로라하는 학자와 이론가를 불러들인 것은 물론이다. 사회과학원은 바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사회주의 상품경제’ 등의 용어를 생산해내며 개혁·개방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중국 사회의 길잡이 역할이 시작된 것이다. 사회과학원의 탄생 스토리는 국가 싱크탱크로서의 성격과 역할을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우선 연구의 범위와 성격에서 다른 싱크탱크와 차별성을 갖는다. 같은 국무원 소속의 발전연구중심이나 국가발전개혁위가 국가의 정책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사회과학원은 이론 연구에 치중한다. 예컨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제시한 ‘과학적 발전관’을 어떻게 추동해나갈 것인가, 다른 싱크탱크가 구체적 정책을 준비할 때 사회과학원은 철학과 이론의 토대를 준비하는 식이다. 그 범위도 방대하다.35개 개별연구소의 이름들이 말해주듯, 문학·역사·고고학·철학·법률·정치·경제·금융·국제문제부터 소수민족과 종교, 문화보전 문제에까지 걸쳐 있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각 지역 연구소에 라틴어 연구소까지 두고 있다. 다른 곳에선 다루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사회과학원의 연구가 학술과 이론 연구에만 머무를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회과학원의 고위층과 학자 30여명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이거나 정치협상회의 위원들이다. 이미 국가 정책의 결정권자요 조정자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매년 전인대에서 총리가 낭독하는 ‘정부공작보고’의 초안 작업에 투입된다. 국가 행정의 밑그림을 구성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의료개혁, 사회보장, 부동산, 금융개혁 문제 등 국가현안에 대한 정책 보고서들은 지도자급에 전달되는 것만 연간 270여편이나 생산된다. 일반적 연구의 주제 역시 대단히 구체적이다.‘인터넷 문학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TV광고의 영향과 현상 연구’ ‘호적 문제와 인구의 변화 및 이동 문제’ 등이 연구과제의 제목들이다. 얼핏 일반 대학의 석·박사 과정 논문 제목과 비슷해보이지만, 그 연구결과의 영향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적어도 한국사람들에게라면 그 위력을 가늠케 할 만한 단적인 사례가 있다. 고구려사의 중국 편입을 시도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사회과학원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 주도로 진행된 것이다. 사회과학원은 최근에는 ‘국민도덕관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1995년 1차 조사에 이어 두번째다. 국민들의 관념·행위에 대한 변화를 관찰·조사하는 일종의 국민 의식조사인 셈이다. 이 조사 결과는 향후 각 행정 단위에 세세한 법률, 규정 등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 사회과학원이 다른 싱크탱크와 비교해 특장이 있다면 사회 일반에 대한 영향력이다. 중국중앙TV(CCTV)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약방의 감초’격이다. 각종 신문의 칼럼에도 무시로 등장한다. 사회과학원이 담당하고 있는 대국민 선전의 일환이다. 생산해 내는 엄청난 양의 연구, 조사결과는 인문·사회학의 장서로 그대로 남는다. 연간 300여권의 전문서적이 출간되며 82종의 학술 간행물이 나온다.1000건의 조사연구가 이뤄지고 7000편의 논문과 칼럼이 생산된다. 모두 각종 논문의 각주(脚註)로 활용돼 온 재료들이다. 중국 학술계를 기르는 ‘우물’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사회과학원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가 인재 배양이기도 하다. 각 연구소를 한 개의 과(課) 개념으로 운영, 전공별로 직접 교육하고 배양하는 방식으로 대학원(硏究生院)을 운영하고 있다.6개의 교학연구부에 33개 과로 되어 있으며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1998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설립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은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은 인문사회과학의 일류 인재 배양의 기지가 됐다.”고 치켜세웠다. jj@seoul.co.kr ■ 中사회과학원 왕옌중 부국장 “사회적 문제 장기적 전략 수립”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왕옌중(王延中) 중국사회과학원 연구국 부국장은 “기초 학문에 대한 연구 없이 좋은 정책을 낼 수 없다.”면서 정책 수립의 밑바탕으로서 인문·철학·사회과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정책 수립에 있어 왜 학술 연구가 중요하다고 보나. -철학·이론적 토대 없이는 사회 문제를 관통하는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어렵다.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된다. 또한 이런 연구를 통해서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사회에서 필요한 여러 방면의 사회 인재가 길러진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때 관련 전문가가 없었고, 그간 준비해놓은 게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연구의 형태는. -크게 대책 연구와 이론 연구로 나눌 수 있다. 당 중앙에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낸다. 연간 270여편가량인데, 이중 3분의1 정도가 국가 지도층의 주목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연구 측면에서의 장점은. -강의 압박 등이 없으니 연구 환경이 대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다. 사무실에는 주 1∼2회 나오면 그만이다.(3000여명의 연구원을 동시에 수용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또한 전국 각 성·시가 각급 사회과학원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학술 교류에 협력하고 있다. 사회과학원은 국가 거시 전략과 여러 지방을 연결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규모는. -35개의 연구소와 3000명이 넘는 연구원이 있다. 여기에 현역 연구원 수보다 많은 퇴역 연구원들이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여전히 사회과학원 연구를 돕고 있다. 그래서 사회과학원의 식구는 7000여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교류 현황은. -평균 연간 1000차례 외국의 학자 등이 다녀간다.1년 이상 장기 방문자도 많다. 사회과학원에서도 1000차례 이상 각종 학술대회 참석차 해외로 나간다.20개 나라와는 학술교류 협정을 맺었다.84개 나라 및 지역과의 교류가 진행 중이고 200여개 해외 연구기관 학술단체 대학, 정부 부문과 교류를 하고 있다. jj@seoul.co.kr ■ 사회과학원의 ‘맨파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모두가 중국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과학원의 연구소장들은 분야별로 적어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들이라고 보면 된다.” 한 관계자가 자랑한 사회과학원의 ‘맨 파워’다. 실제로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직도 맡고 있는 위융딩(余永定) 세계경제정치연구소장, 장윈링(張蘊嶺) 아태연구소장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그런 사회과학원이 요즘 도전을 받고 있다. 유력 대학과 민간연구소 등으로의 이탈 때문이다. 왕지스(王緝思) 전 미국연구소장은 베이징 대학으로 옮겼다. 요즘 베이징 대학이나 칭화대학 등이 경쟁적으로 인재 모시기에 나서 대학으로의 이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톈저(天則)경제연구소’를 설립한 마오위스(茅于軾)도 사회과학원 출신이다. 마오위스가 사회과학원 출신들을 불러 모은 톈저경제연구소는 민간연구소이지만, 국가 주요 정책 생산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연구소 역량의 70∼80%는 소장 개인의 전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한 연구원의 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손실이다. 특히 고위층과의 관시(關系)와 인맥이 중요시되는 중국 사회에서는 소장 개인의 네트워킹 능력이 절대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과학원측은, 인재 배출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사회과학원은 최근 35개 연구소를 5개 학부로 묶고 연구 평가시스템 개발에 나서는 등 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당 중앙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당 중앙 업무보고 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국가 영도자들로부터 ‘국가와 사회에 대한 더 많은 공헌을 기대하고 있다.’는 지시를 받았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혁과 함께 국민 정신 개조를 밀어붙이고 있는 4세대 지도부가 사상·이론적 뒷받침을, 사회과학원의 분발을 요구한 것이다. jj@seoul.co.kr
  •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전현직 중국 국가주석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제주도 북제주군 현경면 저지리에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분재예술원을 운영하는 성범영(67) 원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행복한 농부다. ●세계 정상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정원을 다녀간 세계 지도자들은 수없이 많다. 최근 10년 동안 각국의 정상, 공무원, 군인, 언론인 등이 다녀갔다. 이들이 남긴 감탄의 글과 그림만도 300여점에 이른다. 성 원장은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한국적인 정원을 소개하면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가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게 된 계기는 1995년 11월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의 방문이다. 예정 관람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정원을 샅샅이 돌아본 장 주석은 귀국한 뒤 “한국 제주도에 있는 분재예술원은 일개 농민이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서 보고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간부들에게 지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생각하는 정원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국가 부주석이 찾았다. 이후 중국 당과 정부, 지방 정부, 군인 등 엘리트 공무원들이 성 원장의 정원 조성·운영 노하우와 철학을 배우기 위해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제임스 레이니·버시바우 전현직 주한 미국대사, 장 폴레오 전 주한 프랑스 대사도 다녀갔다.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중국 인민일보 총편집인 등도 찾았다.CNN에 정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나간 뒤 미국·캐나다 등에서도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성 원장은 “오직 분재원을 보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서 20시간을 걸려 찾아온 관광객도 있으며, 독일의 한 관광객은 무려 열 번이나 찾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관광 전문기자 15명이 3시간 동안 분재원을 취재하고 돌아갔다.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 성 원장의 거친 손에는 늘 전지 가위가 들려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무에 물을 주고 돌을 쌓는 억척스러운 농민이다. 세계적인 관광농원을 조성한 성 원장은 그러나 관광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제주 토박이도 아니다. 그저 나무가 좋아서, 제주도 돌이 소중해서 분재원을 가꾼 농민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 군에 입대했다. 그가 척박하기로 소문난 제주도에 발길을 내디딘 것은 1963년 말. 군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목포에서 연락선을 탔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타고 겨우 찾아온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나지막한 가시덤불 언덕이었다. 초겨울인 데도 파릇파릇 자라는 채소와 열대 과일,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돌이 신기해 막연하게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돌아갔다. 성 원장은 서울에 올라와 와이셔츠 공장을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모두 제주 돌밭을 구입하는 데 투자했다. 전국을 돌면서 나무를 사들였다. 분재 정원에 관한 전문지식을 별도로 배운 적도 없고 정원 조성 설계도도 그리지 않았다. 다만 가장 한국적이고 제주도의 자연에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농장을 가꾸고 돌담을 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미친 놈, 나무가 밥먹여주나).”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제주 돌을 아낄 줄 안다. 돌에 미친 ‘돌챙이’(돌담 쌓는 사람) 소리를 들을 정도다. 정원은 나무와 돌담으로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다. ●분재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 성 원장의 분재관은 남다르다. 분재야말로 살아 있는 나무를 소재로 삼아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하는 ‘생명예술’로 본다. 오랜 세월을 바쳐 완성하고,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시간예술’이기도 하다. 기르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름답게 완성하는 ‘인격예술’로 정의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기술과 정성을 더하여 자연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땔감에 불과한 나무(우리만 갖고 있는 자연이란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아름다운 분재가 된다. 성 원장은 “분재는 나무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교정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무를 사랑하다보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다.”며 정원 조성과 그의 철학이 담긴 책 ‘생각하는 정원’을 내놓았다. 이 책은 중국어·영어로 번역됐고, 일본어·독일어판도 나올 계획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中 때아닌 장쩌민 배우기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지난 15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의 화이런탕(懷仁堂).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9217자에 이르는 1시간짜리 긴 연설을 쏟아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의 ‘장쩌민(江澤民) 문선(文選)에 대한 학습 보고회’에서다. 문선이 전국적으로 발매된 지 닷새 만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 황쥐(黃菊) 부총리 등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전원 참석한 자리였다. 중앙 당·정·군의 지도자와 재계 인사, 이론 및 선전 책임자 등 중국 권력서열 500위권 인사들도 함께했다. 당 중앙은 여기서 ‘장쩌민 문선 학습에 관한 당 중앙의 결정’을 확정했다. 때 아니게 ‘장쩌민 학습 열기 조성’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은퇴를 강요하는’ 고별 선물로 간주되기도 한다. 마오와 덩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달라는 메시지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쩌민의 정치세력인 상하이방(上海幇)은 요즘 전방위 압력을 받고 있다.칼 끝은 상하이방의 핵심인 황쥐 부총리 근처까지 다가간 것으로 관측된다. 주쥔이(祝均一) 상하이시 노동사회보장국장이 황 부총리의 부인, 여동생 등과 가까운 상하이 기업가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 11일 파면됐다. jj@seoul.co.kr
  • 장쩌민 외교방문 실록 남북관련 주요내용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방문 실록은 ‘진달래꽃 필 때-첫 조선방문’으로 시작된다.1990년부터 2002년까지 12년간 모두 109차례의 외국 방문 내용 및 회의내용 등을 간략하게 정리해 수록했다. 이 가운데 한 차례의 한국 방문과 두 차례의 북한 방문이 포함돼 있다. 실록 내용은 중국 관계당국의 허가를 거쳐 나온 것으로 사실상 중국 정부의 기록과 다름없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진달래 꽃 필 때-첫 조선방문’(1990년 3월14∼16일) 장쩌민의 총서기 취임 후 첫 방문 국가는 북한이었다. 당시 노태우씨가 한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옛 소련, 동유럽국가 등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을 때였다. 노태우씨는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한·중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였다. 장쩌민은 한·중 무역대표부 문제를 더 이상 미뤄두기가 어렵다고 말했고 반년 뒤 김일성은 중국 공식방문에서 이를 이해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장쩌민의 방문 4개월 전(1989년 11월5∼7일) 김일성이 중국을 ‘내부방문(비공식방문)’했다. 전용열차를 타고 온 김일성을 당시 85세의 덩샤오핑이 직접 영접했다. 덩은 장쩌민을 김일성에게 소개하면서 “앞으로 김 주석은 장쩌민 동지와 사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재방문’(2001년 9월3∼4일) 김정일은 김일성 3년상이 끝난 뒤 97년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98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그 뒤 김정일은 조선주재 중국대사를 불러, 중·한 수교에 반대하지 않으며 조·중간의 고위층 상호방문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서울 답방 입장을 밝혔다. ●‘한국 방문’(1995년 11월13∼16일) 장쩌민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회담 중 양자 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논의했다. 회담에서 장쩌민은 한국을 방문하기 전날 일본 방위청장관이 침략역사를 부인하는 발언을 해 일본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쩌민은 “중국이 일본이 가는 방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일본 국내의 군국주의 세력이 재기하려 하고 있으며 그 잔여 세력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일본 방위청장관의 그러한 행동을 용인할 수 없다.”면서 “일본 지도자들이 일종의 군국주의적인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jj@seoul.co.kr
  • 김정일 “DJ답방 안한 건 부시 때문”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2000년 6월 평양 방문에 답방하지 않은 것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는 등 국제정세가 바뀌어 답방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뜻을 2001년 9월 북한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에게 밝혔다고 지난 30일 발간된 장 전 주석의 외교 실록이 소개했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란 제목의 이 실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그해 9월 임기 중 두번째로 북한을 찾은 장 전 주석에게 “남한에 가게 되면 세계를 향해 ‘조선 문제는 조선 인민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밝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대선 이후 국제정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 실제로 방문 효과가 어떨지를 고민한 결과,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답방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록은 또 김 위원장이 1994년 7월 사망한 김일성 전 주석 삼년상이 끝나고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 주재 중국대사와 면담한 자리에서 1992년 8월24일 이뤄진 한·중 수교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대사에게 한·중 수교는 중국 공산당이 결정한 사안으로서 “조선측은 0.001%도 이견이 없으며 나 역시 아무런 이견이 없다. 다만 조·중(朝中) 친선만 변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앞서 장 전 주석은 1990년 3월에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북한을 방문, 한·중수교에 미리 양해를 구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이때 김일성 전 주석에게 상호 무역대표부 설치 문제는 더 이상 지연시키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고 실록은 전했다. 실록에는 한·중수교 후 3년이 지난 1995년 11월 장 전 주석의 한국 방문때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 관계와 한반도 정세, 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jj@seoul.co.kr
  • 장쩌민 외교실록 남북관련 주요내용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방문 실록은 ‘진달래꽃 필 때-첫 조선방문’으로 시작된다.1990년부터 2002년까지 12년간 모두 109차례의 외국 방문 내용 및 회의내용 등을 간략하게 정리해 수록했다.이 가운데 한 차례의 한국 방문과 두 차례의 북한 방문이 포함돼 있다. 실록 내용은 중국 관계당국의 허가를 거쳐 나온 것으로 사실상 중국 정부의 기록과 다름없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진달래 꽃 필 때-첫 조선방문’(1990년 3월14∼16일):장쩌민의 총서기 취임 후 첫 방문 국가는 북한이었다.당시 노태우씨가 한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옛 소련,동유럽국가 등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을 때였다.노태우씨는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서한을 보내는 한·중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였다.장쩌민은 한·중 무역대표부 문제를 더 이상 미뤄두기가 어렵다고 말했고 반년 뒤 김일성은 중국 공식방문에서 이를 이해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장쩌민의 방문 4개월 전(1989년 11월5∼7일) 김일성이 중국을 ‘내부방문(비공식방문)’했다.전용열차를 타고 온 김일성을 당시 85세의 덩샤오핑이 직접 영접했다.덩은 장쩌민을 김일성에게 소개하면서 “앞으로 김 주석은 장쩌민 동지와 사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재방문’(2001년 9월3∼4일):김정일은 김일성 3년상이 끝난 뒤 97년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98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그 뒤 김정일은 조선주재 중국대사를 불러,중·한 수교에 반대하지 않으며 조·중간의 고위층 상호방문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회담에서 장쩌민은 조·중친선을 공고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국의 장기적 전략방침으로서 중국은 양국 관계를 손상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서울 답방 입장을 밝혔다. ●‘한국 방문’(1995년 11월13∼16일):장쩌민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회담 중 양자 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논의했다.회담에서 장쩌민은 한국을 방문하기 전날 일본 방위청장관이 침략역사를 부인하는 발언을 해 일본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장쩌민은 중국이 일본이 가는 방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일본 국내의 군국주의 세력이 재기하려 하고 있으며 그 잔여 세력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일본 방위청장관의 그러한 행동을 용인할 수 없다면서 일본 지도자들이 일종의 군국주의적인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김 전 대통령은 한·중 양국이 모두 피해자로서 일본이 과거의 죄상을 정당화하려는 기도에 대해 양국이 협력해 함께 바로잡자고 말했다. jj@seoul.co.kr
  • 김정일 DJ 답방 안한건 부시대통령 때문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2000년 6월 평양 방문에 답방하지 않은 것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는 등 국제정세가 바뀌어 답방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뜻을 2001년 9월 북한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에게 밝혔다고 지난달 30일 발간된 장 전 주석의 외교 실록(*사진*)이 소개했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란 제목의 이 실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그해 9월 임기 중 두번째로 북한을 찾은 장 전 주석에게 “남한에 가게 되면 세계를 향해 ‘조선 문제는 조선 인민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밝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대선 이후 국제정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 실제로 방문 효과가 어떨지를 고민한 결과,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답방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록은 또 김 위원장이 1994년 7월 사망한 김일성 전 주석 삼년상이 끝나고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 주재 중국대사와 면담한 자리에서 1992년 8월 24일 이뤄진 한·중 수교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대사에게 한·중 수교는 중국 공산당이 결정한 사안으로서 “조선측은 0.001%도 의견이 없으며 나 역시 아무런 의견이 없다.다만 조·중(朝中) 친선만 변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앞서 장 전 주석은 1990년 3월에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으로 북한을 방문,한·중수교에 미리 양해를 구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이때 김일성 전 주석에게 상호 무역대표부 설치 문제는 더 이상 지연시키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고 실록은 전했다. 또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 북한의 자주·평화통일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바꾸거나 북한 인민들에게 미안한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끝에 6개월 뒤 중국을 찾은 김 주석은 “만약 중국이 정말로 남조선과 무역대표부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실록에는 한·중수교 후 3년이 지난 1995년 11월 장 전 주석의 한국 방문때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 관계와 한반도 정세,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jj@seoul.co.kr
  • [중계석] 후진타오체제 외교·대북정책 변화/박창근 중국 푸단대 교수

    북한 미사일 사태 이후 ‘혈맹’을 자랑하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위조지폐 사건과 관련, 국영 중국은행이 북한 계좌를 동결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2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대표 장성민)에서 북·중관계 전문가 박창근 중국 푸단대 교수가 주제발표한 ‘후진타오 체제의 신 대외전략과 북한정책’을 요약·소개한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문 채택으로 향후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중국과 북한은 1949년 수교 이후 꾸준히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양국 관계는 1950년대처럼 동일한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에서 정립됐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 역시 철저한 국익 우선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해 중국 동북지역과 동북아의 안정이 파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국익 우선시에 대한 쌍방의 시각차로 인해 균열이나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최근엔 북한이 1999년의 미사일 발사 유예조치를 폐기하고 대포동 2호를 시험 발사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기로에 서게 됐다. 중국으로선 지정학적·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해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북정책이 중국 외교정책의 전부는 아니다. 무엇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을 추구하는 정책방향에 북한이 장애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반복했다.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도 북한 설득이 실패한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만 고려할 수 없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무엇보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이 한국·일본·타이완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위험성, 안정되고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위한 국제적 규칙의 필요성,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이 중국을 표적으로 삼게 될 가능성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에 찬성했다고 해서 북한을 적대시한다고 할 수는 없다. 장쩌민 시대와 비교할 때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 외교정책은 몇 가지 조정과 변화가 관찰된다. 그것은 ▲평화·발전·협력의 필요성 강조▲다변주의와 상호신뢰 및 호혜·평등·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신안보관’ 수립▲선진국과의 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킬 필요성▲유엔 등 국제기구와 지역기구에서 건설적 역할수행 등으로 요약된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6자회담 진행▲유엔 안보리의 단합이라는 3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했다.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결의문을 채택한 것은 일단 유엔 안보리의 단합은 유지되었음을 의미한다. 남아 있는 관건은 북한이 조속히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다. 박창근 중국 푸단대 교수 정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중국 칭화대 수석합격자 홍콩 대학 선택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지난달 실시된 중국 대학입시에서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淸華)대 수석 합격자가 입학을 포기하고 홍콩의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교육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칭화대 입시에서 장원(狀元·수석)을 차지한 수험생이 홍콩 대학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중국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대학 웹사이트와 블로그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 베이징(北京)대, 칭화대, 푸단(復旦)대 등 중국 최고의 대학들이 홍콩의 대학에도 못 미치는 ‘2류대’로 몰락하고 있다는 비난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화둥(華東)신문은 3일자 시평에서 학문적 성취와 학술 분위기 조성을 등한히 한 채 외양에만 치중하는 이들 대학을 정면으로 꼬집었다. 화둥신문은 “우수한 학생 1명이 홍콩행을 택한 것을 가지고 중국 대학 전체로 확대시켜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1998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선포한 ‘985 공정’의 정신을 새롭게 할 것을 대학들에 촉구했다. ‘985 공정’이란 장쩌민이 1998년 5월4일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현대화 실현을 위해 우리나라도 세계 선진 수준의 일류대학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한 것에 맞춰 교육부가 내놓은 ‘21세기 교육진흥행동계획’을 말한다. 중국 교육당국은 이 계획에 따라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등 전국 34개 중점대학을 세계 1류대학으로 성장시키려고 대대적인 자금 지원을 시작했다. 신문은 그러나 1000억위안(약 12조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 투자됐지만 학교 건물을 호화스럽게 새로 짓고 직원을 늘리거나 고급차량을 구입하는 데 쓰여졌을 뿐 교육의 질과 학술적인 지위는 오히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예로 들며 지은 지 수백년 된 낡은 건물이 학교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 결코 아니라면서 대학의 정신을 소홀히 하고 외양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풍조가 중국의 대학을 2류로 전락시킬 것으로 교육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jj@seoul.co.kr
  • 급부상하는 中내륙 허난성을 가다

    급부상하는 中내륙 허난성을 가다

    최근 한국 정부는 중국의 대형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중부 굴기(中部起)’에 대한 투자 타당성 정도를 조사해 그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 동부 연안에 위치한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중·서부로의 진출을 희망하는 사례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임금 상승 등 동부 연안지역에서의 생산활동 환경이 나빠진 데 따른 현상이다. 중부 굴기의 중심을 도모하는 허난성(河南省)을 찾았다. |정저우시·뤄양시·덩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소림사 방문차 허난성을 찾았을 때, 리청위(李成玉) 성장으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허난성의 역사를 알면 중국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리 성장은 앙소(仰韶)문명의 본고장이며 중국의 숱한 성씨(姓氏)와 활자가 비롯되는 등 허난성이 중국 문명의 산실이라는 점을 자랑한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다른 지역의 중국인은 ‘허난성’에서 ‘빈곤, 낙후, 농민공, 소매치기, 사기 상술’ 등 부정적인 단어들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외국인에게는 여기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까지 겹쳐진다. 그런 허난성이 지금 새로운 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당 중앙이 지난 3월 전인대에서 최종 확정한 ‘중부굴기’를 그 날개로 삼았다. ●외자기업에 특정세금 최대 60% 반환 초여름 따가운 햇살 속에 허난성 성두(省都) 정저우(鄭州)시는 천지개벽 중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철거와 재개발이 한창인 반면, 다른 한편에는 마천루가 세워지고 있었다. 정저우의 상징이자, 허난성의 심벌로 기획된 ‘정둥신(鄭東新)구’는 이미 도시로서의 그 위용을 갖춰가고 있었다. 구(舊)공항을 옮기고 2003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곳이다.150만㎢의 면적에 150만명이 생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둥신구는 호반을 중심으로 유통·물류타운에 대규모 과학·기술단지, 대학타운, 최첨단 비즈니스 센터가 밀집한 꿈의 도시가 될 것으로 허난성은 꿈꾸고 있다. 그 중심에 위치한 ‘국제전람회의센터’는 도시의 상징물이었다.‘기둥 없는’ 건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데 관계자들의 자부심이 작지 않았다. 정저우시 정부는 타이완·일본과 상하이(上海)를 비롯해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상인들의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같은 중부권으로 정저우보다 늘 앞서 있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최근 국내총생산(GDP) 등 몇가지 경제지수에서 앞질렀다.”며 흥분했다. ●정저우시에만 외국투자기업 2800곳 웨쩡푸(岳增浦) 시 상무국장은 “2000년만 해도 800곳이던 외국 투자기업이 2800여개로 늘었다.”면서 “자본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근처 뤄양(洛陽)시의 한 공장은 수천년 고도(古都), 중국의 ‘단골 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퉈(一拖) 국제경제무역주식회사는 중국 최고(最古), 제1의 트랙터 공장답게 쉴새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세계 92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북한과 남한에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외자기업에 대해서 25%에서 상황에 따라 특정 항목 세금의 최대 60%까지를 반환해 주는 등 개발을 위한 뤄양의 노력은 눈물겹다. 정주∼뤄양 중간에 위치한 덩펑(登封)시 역시 도시 정비와 도로 확충으로 중국 5악(岳)의 하나인 숭산(嵩山)과 소림사, 뤄양 용문석굴(龍門石窟) 등을 잇는 관광자원 확충에 집중하고 있었다. ●AIDS만연·빈곤·낙후 상당부분 치유 허난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실 구조적 측면에서 비롯된 점이 많다. 허난성의 인구는 1억에 육박해 중국의 전체 성(省)중에서 가장 많다. 또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1차산업에 종사, 낙후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개혁·개방 이후 다른 성과의 격차는 커져갔고, 많은 유민(流民)들이 양산됐다. 허난성이 AIDS 촌(村)으로 알려진 것도, 피를 팔아 생활을 연명해야 할 만큼 가난한 촌락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리청위 성장은 “38개 현에서 1만 9000명이 발병,4000여명이 숨졌으나 AIDS 사태를 야기한 혈액 채취소는 이미 모두 폐쇄됐다.”면서 “성을 뒤덮은 가난의 상흔이 치유돼 왔다.”고 강조했다. 리 성장은 “베이징∼정저우 구간과 정저우∼우한 구간 고속도로 신설 등 고속도로가 4020㎞까지 연장되면, 정저우를 중심으로 사통팔달 연결된 철도망과 함께 성 발전의 대동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jj@seoul.co.kr ■ 균형발전 바로미터 ‘중부굴기’ 성공할까 |정저우시·뤄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중국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은 지난달 말 통상 교섭차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중부굴기’를 잊지 않았다. 요즘 한국의 주요 인사를 만나는 자리면 “중부굴기에 투자해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는 그다. 그는 중부굴기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다. 강력한 차세대 영도자급 주자의 하나로 꼽히는 그로서는 반드시 성공의 기틀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는 1992년부터 10년간 다롄(大連)시장 재직 중 연 10% 이상의 고속 성장 속에서도 다롄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냈다. 이후 랴오닝(遼寧) 성장을 지내며 오늘날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중부굴기는 우선 중국의 각종 대개발 공정의 1차적 마침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2000년 무렵 시작된 ‘서부대개발’과 2003년 본격 가동된 ‘동북진흥’에 바로 뒤이은 또 하나의 역사(役事)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 4세대 지도부가 이 프로젝트를 주시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가장 중시하는 ‘균형 발전’의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의 바로미터,‘중원(中原)’ 중국의 중부 지역에는 중국 인구의 28.1%인 3억 6100만명이 산다. 이 가운데 농업인구는 2억 4400만명으로 70%에 이른다.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게다가 개발 공정의 시작도 상대적으로 늦다 보니 서부와 동부지역보다 뒤떨어진 측면이 많다. 2001∼2003년 중부 6개성의 경제성장률은 동부와 서부지역보다 각각 1.8%포인트와 0.4%포인트 낮았다. 총생산 격차도 갈수록 벌어졌다. 당 중앙이 공들이는 ‘신농촌 건설’과 ‘균형’이 가장 부합되는 지역은 어찌보면 중부지역인 셈이다. ●“그러나, 추동력이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부굴기가 서부대개발이나 동북진흥과 같은 추동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부대개발은 천연가스와 수력전기 등 자원이 풍부하고, 청두(成都)나 시안(西安) 같은 거점 도시가 공정의 주요 원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동북진흥은 과거 중국의 최대 중화학 공업 기지요 중공업 단지로, 다소의 구조조정과 현대화 작업만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중부지역은 산업적 측면에서 이같은 특징이 크게 부족하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관망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선정된 개발 공정”이라는 분석까지 내놓는다. 균형발전이란 명목을 위한 전형적인 ‘끼워넣기식’ 국가 개발사업이라는 얘기다. jj@seoul.co.kr ■ 내수생산의 중심지부상 가능성 |정저우시·뤄양시·덩펑시(허난성) 이지운특파원|중부굴기 프로젝트에는 아직 구체적인 시간표나 청사진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서부대개발이나 동북진흥이 국가발전계획위원회 산하에 별도의 판공실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직 전문적인 추진 기구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만큼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공정의 대상이 되는 산시(山西)·허난(河南)·후베이(湖北)·후난(湖南)·안후이(安徽)·장시(江西)성 등 중부 6개성 일대가 대대적인 수출 전략기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창(長)강이나 주(珠)강 삼각주 경제지역에서처럼 중심도시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성마다 독자적 경제권을 형성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특히 서부와 같은 재정·금융·투자환경 분야의 관련 우대정책을 제정한다는 문서도 없는 상황은 이같은 전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지역이 11·5규획 목표에 따라 ‘내수 생산’의 중심지로 가꿔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중국의 중·소 및 중견 제조업체들의 진출이 적합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현지 언론들은 상하이, 홍콩 등에서 임금 인상 가속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기업들이 내륙지방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후광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 정·관계를 장악했던 ‘상하이방(上海幇)’에 이어 후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안후이방(安徽幇)’이 부상하고 있다는 홍콩 언론들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편 중부지역은 아세안-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내수와 물류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하는 한국 기업에는 전초기지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는 일단 한국 중소기업들이 합작 대상으로 삼는 이 지역 중국 기업들의 신용조사를 정부 재원으로 하는 것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또한 이미 서부지역에서 실시해 효과를 보고 있는 ‘지역별 물류 센터’를 확장, 중부쪽에도 세울 것을 고려하고 있다. jj@seoul.co.kr
  • 中 톈진에 ‘동북아 물류거점’

    中 톈진에 ‘동북아 물류거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국무원이 지난 6일 ‘톈진(天津) 빈하이(濱海)신구 개발·개방 추진안’을 정식으로 통과시켰다고 중국 언론들이 7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로써 선전(深)경제특구, 상하이 푸둥(浦東)신구에 이어 중국의 3번째 ‘국가 종합·역점 개발구’가 공식 확정됐다. 발해만에 조성되는 개발구인 만큼 앞으로 ‘동북아의 거점’을 놓고 한국의 도시들과 경쟁하게 됐다. 이 지역은 앞으로 5년간 매년 70억위안(약 8500억원)씩 투입해 연평균 17% 성장을 목표로 하는 ‘공룡급’ 개발지구로, 면적만도 푸둥신구의 4배나 된다. 특히 수도 베이징과 자동차로 1시간30분 남짓 거리에 있어 이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 사회과학원 메이쑹(梅松) 부원장은 “이제 베이징의 기술력을 인접 지역에서 소화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또한 이 사업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이끄는 4세대 지도부의 최대 경제개발 프로젝트로 간주되는 데다 톈진이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의 고향이어서 정치적 이점도 적지 않게 누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선전은 덩샤오핑(鄧小平)의 2세대 지도부에 의해, 상하이 푸둥은 장쩌민(江澤民)의 3세대 지도부에 의해 각각 개발됐다. 이런 점에서 신구가 처음 개발된 1994년부터 지금까지는 도시발전 전략차원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국가발전 전략차원에서 육성될 것이라고 한국무역협회는 전망하고 있다. ●“푸둥보다 발전할 것” 톈진시 사회과학원 역시 “푸둥을 모델로 삼지 않을 것이며 푸둥보다 더 맹렬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난 15년간 푸둥에 쏟아진 것 이상의 정책적 지원이 뒤따를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톈진은 바다와 항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4개 직할시 가운데 하나다. 베이징을 제외하면 중국 화북·동북·서북지역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도시로 꼽힌다. 이미 전자·자동차·화공·제약 등 분야에서 세계 500대 기업 중 152개가 이미 빈해신구에 입주해 있다. ▲재정수입 연평균 20% 성장 ▲2010년 첨단기술산업 비중 50% 이상 ▲단위생산액당 자원소요량 2005년의 50% 수준으로 절감 등의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30㎢의 항구를 100㎢까지 확대하고 빈하이국제공항 터미널과 활주로를 확장해 여객수송량과 화물수송량을 각각 2.5배와 6배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베이징 수도공항과 함께 동북아 항공허브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한편 무역협회 김용민 수석연구원은 한국 업체의 진출과 관련,“토지는 공장 임대나 부지 임대보다는 토지 사용권을 획득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앞으로 최소 5∼10년간 집중적인 인프라 건설과 투자가 지속될 것이므로 지가(地價), 물가, 급여 등 각종 비용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노동집약적인 기업 경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j@seoul.co.kr
  • 美 의도적 냉대… 中 현안고수 맞불

    미국은 20일 백악관을 찾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크고 작은 의전적 결례를 범하거나 의도적으로 냉대했으며, 이에 따라 후 주석은 현안에 대해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1일 보도했다. 신문은 “의전에 집착하는 중국 지도자가 의도적이거나 부주의해 빚어진 외교적 결례로 가득 찬 하루를 보냈다.”며 “그는 북한이나 이란, 위안화 절상, 무역 불균형 해소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미국측에 어떤 가시적인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후 주석의 연설이 파룬궁 여성 수련자에 의해 무려 5분이나 방해받은 것과 관련,“백악관과 경호팀은 그가 등록된 언론인이었고 의심스러운 게 없었다고 밝혔다.”면서도 “중국은 환영식에 누가 참석 허가를 받았는지 주의해 살펴볼 것을 백악관에 전달했으나 결국 허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문이 정리한 다섯 가지 결례나 의도적인 방해.●중국 영어 명칭 혼동 후 주석 환영식장에서 미국측 행사 진행 아나운서는 중국의 공식 영어 명칭을 타이완으로 잘못 소개했다. 즉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으로 소개했어야 함에도 타이완을 가리키는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라고 부른 것. 진행자는 “신사 숙녀 여러분, 중화민국 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가 연주됩니다.”라고 말했다.●동양예절에 어긋난 체니 선글라스 착용 날씨가 화창했던 이날 딕 체니 부통령은 환영식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부시, 후 주석 소매 붙잡는 결례후 주석이 연설을 마치고 계단을 내가려는 순간, 나란히 서 있던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후 주석의 왼쪽 팔소매를 잡아 끌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가 내려가야 할 계단이 아닌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바로잡아 주려는 의도였지만, 후 주석은 소매가 끌리는 순간 짜증을 내는 듯한 표정으로 되돌아선 뒤 부시 대통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연설 방해 5분이나 내버려둬파룬궁 수련자이자 이 단체가 발행하는 ‘에포크 타임스’ 기자인 왕웬(47·병리학과 의사)이 후 주석의 연설 도중 “후 주석! 당신도 얼마 남지 않았어!”,“부시 대통령! 그가 살인을 중단하도록 저지하시오!”라고 외쳤다. 왕은 지난 2001년 몰타를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의 경호팀을 뚫고 장 주석과 언쟁을 벌인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왕에게 일일 출입증을 부여했다.●국빈 만찬도 제공하지 않아중국은 지난 1997년 장 주석이 받았던 것과 같은 국빈 방문 의전을 원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공식 방문을 고집했으며 국빈 만찬도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빈 식당이 아닌 이스트룸에서 오찬이 열렸다. 한편 중국 언론은 파룬궁 소동에 대해 거의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으며 중국내 호텔과 외국인 거주단지 등 10만곳에 대해 홍콩 피닉스 TV의 송출을 중단시켰다고 AP통신이 전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후진타오, 부시보다 빌게이츠 먼저 만난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을 만난다. 후 주석은 미국 동쪽의 워싱턴DC가 아니라 서쪽의 워싱턴주를 먼저 찾는다. 블룸버그 통신은 13일(현지시간) 미국을 처음 방문하는 후 주석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에 앞서 18일 시애틀에 먼저 들러 게이츠 회장의 레이크사이드 저택에서 만찬을 갖는다고 보도했다.‘메뉴’는 물론 중국에 만연한 불법 소프트웨어(SW)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 지적재산권 보호는 후 주석의 이번 방미에 있어 위안화 절상과 함께 가장 중요한 무역 의제다. 중국에서 해적판이 활개를 치면서 미국 기업들은 연간 2500억달러(약 250조원)의 손실을 입는다고 미 의회 상업위원회는 추산하고 있다. ‘디지털 미래의 산실’을 찾은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덩샤오핑(鄧小平) 등이 있었다. 크리스틴 그레고어 워싱턴주지사는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 리 하트웰 노벨의학상 수상자 등 100여명의 귀빈을 불러 후 주석을 환영하기로 했다. 스타벅스는 지난 1월 중국 내 유사업체와 소송을 벌여 스타벅스 로고 무단 사용의 대가로 50만위안(약 6200만원)을 받아냈었다. 후 주석은 이어 워싱턴주 에버리트의 보잉 공장을 방문해 항공기 제조과정을 둘러본다. 앞서 중국은 80대의 보잉 737기를 50억달러(약 5조원)에 구매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게이츠 회장 역시 선물 보따리를 푼다. 대중국 투자와 함께 중국 학교 등에 대한 기부를 약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이츠 회장은 교육에 관심이 많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中 후진타오 기증 암호랑이 돌연사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지난해 중국에서 기증받아 산림동물원에서 사육 중이던 백두산 암호랑이(압록·2002년생)가 지난 29일 새벽 돌연사했다. 국립수목원측은 30일 “외관상 건강에 특이한 이상이 없었고 먹이도 평소처럼 먹던 압록이가 갑자기 숨졌다.”면서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 부검을 의뢰,1주일 뒤 결과를 통보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숨진 백두산호랑이는 지난 1994년 한·중 국교수립을 기념해 당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한 백두산호랑이 한 쌍(백두·천지)이 2세를 갖지 못하자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해 11월 기증한 것으로 수컷(두만·2001년생)과 함께 국립수목원 산림동물원에 보금자리를 차렸다. 국립수목원은 숨진 압록이가 지난 2004년 새끼 3마리를 낳은 경험이 있는 ‘경산호’(經産虎)로 올 봄에는 2세를 가질 것으로 보고 발정기였던 지난달 중순 5일 동안 두만이와 합사를 시켰으나 숨질 당시엔 별도로 사육하고 있었다. 그동안 쇠고기와 닭고기, 비타민을 먹이로 제공하고 성공적인 합방을 위해 일반인과 직원들의 출입도 통제하는 등 철저한 관리를 해왔다.포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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