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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북한의 권력 승계와 당·군 관계/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열린세상]북한의 권력 승계와 당·군 관계/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지키는 자 누가 지키느냐.’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는 문민통제를 받는다. 공산주의 국가의 군대는 당의 영도를 받는다. 중국은 1997년 군대의 국가화를 시도한 국방법 제정시 당의 군에 대한 영도조항을 삽입했다. 영도란 군에 대한 지휘 통솔권을 의미한다. ‘당이 시키면 우리는 한다.’ ‘혁명의 수뇌부 결사 옹위 하리라.’ 언론을 통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북한군의 구호이다. 북한 문헌은 선군정치란 ‘군대를 틀어쥐고 군대를 앞세워’ 혁명위업을 보존·발전시키는 정치방식이라고 정의한다. 김정일은 조선 인민군 최고 사령관의 명의로 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리기 전날 삼남 김정은과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 비서 등 군 경력이 전혀 없는 인물에게 군 장성급에서 가장 높은 대장 칭호를 부여했다. 또 김정일은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장 명의로 인민군 총참모장인 리영호 대장을 차수로 승진, 발령했다.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리영호 차수는 당 최고 영도조직인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북한에서 군대를 틀어쥘 수 있는 당 조직은 조명록이 맡아 온 조선 인민군 총정치국이다. 총정치국은 당 중앙위, 실제적으로 중앙군사위원회의 결정과 지시를 집행하는 조직이다. 총정치국은 총참모부로부터 중대 단위까지 정치 간부를 파견해 당 정치 사업을 관장한다. 정치일꾼으로 불리는 이들 간부들은 군 간부와 군사칭호를 받은 민간 간부 및 순수 민간 당 간부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군 경력이 없는 민간 당 간부들이 군사칭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김정은의 후계 공식화 과정은 김정일과 중국 후진타오의 권력승계 과정과 차이가 있다. 김정일과 후진타오는 당권 장악 후 군권을 맡았다. 김정일은 당 요직 장악 후 10년이 지나서야 군권을 맡았다. 후진타오는 당권 장악 후 2년동안 군권을 전임 당 총서기인 장쩌민으로부터 찾아오지 못했다.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때 당권은 자오쯔양 당 총서기가, 군권은 당 요직을 갖지 못한 덩샤오핑이 분점했다. 그렇지만 계엄령 선포와 반정부 시위자들을 처리한 권한은 덩이 행사했다. 현재 북한은 3개 조직이 군권을 각각 행사할 수 있다. 헌법에 의하면 국방위는 일체 무력의 지휘, 통솔 및 비상, 전시사태 선포권을 갖고 있다. 중앙군사위는 당 규약에 따르면 군사정책의 결정으로부터 군사력 건설 및 군대 지휘권을 갖는다. 마지막으로는 조선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다. 이 직책은 6·25 전쟁시 단일지휘를 위해 총참모부를 흡수해 설치됐다. 당규나 헌법 어느 곳에도 이 조직에 대한 명문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장령인사나 선군사업에 관련된 명령이 최고사령관 명의로 나오고 있다. 김정일은 1991년 말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제도적으로 군 장악의 발판을 마련했었다. 현재 김정일은 세 개의 직책에 대한 모자를 쓰고 있어서 북한군에 대한 단일 지휘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김정일 유고시 현재의 체제에서는 단일 지휘에 문제가 발생한다. 국방위원장의 유고로 볼 때 조명록 제1 부위원장이 장성택 등 복수의 부위원장보다 서열이 빠르다. 중앙군사위 위원장의 유고로 볼 때 김정은에게 군권이 가야 한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유고로 볼 때 인민군 총참모장과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겸직하는 리영호 차수가 나설 수 있다. 유사시 군에 대한 집체지휘는 정권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이번 당대표자회는 이런 점을 고려해 김정은 후견 세력인 리영호, 조명록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승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은 당의 노선과 명령에 복종해 온 집단이다. 권력 이양기에 군부가 단일 혹은 종파적 집단으로 당의 영도에 도전할 사태가 생긴다면 당 엘리트 간 발생한 노선투쟁이 권력투쟁으로 비화하거나 대규모 소요사태의 진압문제로 당 리더십이 심각하게 분열할 때일 것이다. 북한의 민심은 물론 권력 엘리트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당·정·군 핵심 보직을 교차 겸직한 인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 제주 ‘비밀의 정원’ 24일 공개

    제주 ‘비밀의 정원’ 24일 공개

    제주도내 관광지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생각하는 정원’이 4년간 공들여 가꾼 ‘비밀의 정원’(조감도)을 24일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은 테마가든인 ‘비밀의 정원’ 완공을 기념해 24일부터 8월29일까지 한 달간 저녁 가든 뷔페 이용객들에 한해 개방, 대금 연주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 제공한다. 6616㎡의 규모의 비밀의 정원은 2개의 폭포, 제주 자연석이 돋보이는 팔각정과 영빈관, 하늘이 보이는 화장실 등이 설치됐다. 이 정원은 본래 마이스 행사 및 각종 연회 공간으로 기획됐으나 한 해 한시적으로 일반인에 개방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나뭇잎 스탬프로 나만의 손수건을 만들 수 있는 어린이 무료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1992년 문을 연 생각하는 정원(옛 분재예술원)은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이 방문한 후 가장 부러워했다고 알려지면서 중국 고위층의 발길이 줄을 잇는 등 중국에도 널리 알려진 제주의 대표적인 사설 관광명소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후진타오 막바지 군부장악 칼뺐다

    후진타오 막바지 군부장악 칼뺐다

    중국군 주요 포스트의 장성 20여명이 최근 대대적으로 자리를 바꿨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하고 있는 후진타오(얼굴) 주석은 19일 11명의 중장을 대장에 해당하는 상장으로 승진시켰다. 임기 만료를 2년여 남겨놓은 후 주석이 막바지 군부 장악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최고지도부의 경호실 격인 중앙경위국 부국장 3명이 새로 선임된 것이 눈에 띈다. 자이루창(翟入常), 리셴파(李憲法), 궁광신 장군이 임명됐다. 자이 부국장은 중앙경위국 산하 중앙경위단의 정치위원을 겸임한다. 후 주석은 2007년에야 전임 장쩌민 주석 측근인 여우시구이(由喜貴) 국장을 내보내고, 자기 사람인 차오칭(曹淸) 장군을 중앙경위국 국장에 임명할 수 있었다. 최고 권부인 중난하이(中南海)를 관할하면서 지도부를 경호하는 중앙경위국은 그만큼 전임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이번 대규모 인사에서는 대졸 이상의 1950년대 이후 출생자에게 육·해·공군 및 무장경찰의 요직을 맡긴 점도 주목할 만하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일 “후 주석이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반면 역시 홍콩의 정치사이트인 중국평론망은 “후 주석이 줄기차게 추진해온 군부 현대화의 일환”이라고 해석했다. 전날 베이징 8·1빌딩에서 열린 상장 승진식도 주목된다. 후 주석은 직접 11명의 신임 상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모습은 관영 중앙TV(CCTV) 등을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해졌다. 이번 승진으로 현역 상장은 모두 50명으로 늘었고, 후 주석이 이 가운데 33명을 직접 임명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티베트불교사원 “黨의 영도따라…”

     라싸의 조캉사원(大昭寺)과 시가체의 따시룬포사원(紮什倫布寺)은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양대 사원이다. 특히 조캉사원은 2008년 유혈시위 때 승려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린 바 있다. 두 사원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사원을 안내한 승려들은 한결같이 중국 정부의 티베트 불교 정책을 옹호했다.  따시룬포사원 관리위원회 주임인 승려 녠자는 여러차례 “당(공산당) 중앙의 영도”를 강조했다. 녠자는 “당 중앙의 영도에 따라 민족 및 종교 정서가 잘 보호되고 있다.”면서 “특히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매우 큰 관심을 갖고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불교계 고위인사 지명과 관련해서는 “공산당이 신앙을 믿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56개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며 신앙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고 지지를 표명했다.  따시룬포사원은 달라이 라마와 함께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 활불(活佛)인 판첸 라마와 밀접한 사원이다. 중국 중앙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지명했던 11세 판첸 라마인 초에키 니마를 인정하지 않고, 기알첸 노르부를 세워 티베트 불교계 고위인사로 키우고 있다. 이에 대해 녠자는 “11세 판첸 라마는 종교의식에 따라 인정받았고, 정부의 비준도 받았다.”면서 “현재의 판첸 라마는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달라이 라마가 지명했던 초에키 니마에 대해서는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며 “해마다 따시룬포에 와서 법회를 주재하는 현재의 판첸 라마가 우리의 최고 지도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승려인 뚸포징은 “따시룬포 사원은 3·14 시위 때도 안정됐었다.”고 귀띔했다.  조캉사원의 승려들도 마찬가지였다. 민족사무회 승려인 라바는 사원 곳곳을 안내하며 “3·14 시위 이후에도 사찰과 승려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당국의 배려를 강조했다. 젊은 승려 노르깃은 “달라이 라마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승려 개인의 자유지만 나는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포탈라궁 관계자도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포탈라궁 관리처 창바거상 처장은 “2002년 6월 이후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2억위안의 자금을 투입해 포탈라궁의 유지·보수를 도와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 포탈라궁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공산당 총서기는 ‘민족 단결을 수호하고, 민족 문화를 선양하자.’는 글귀를 남겼다. 포탈라궁은 이 글귀를 편액으로 만들어 방문객들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에 내걸었다.  인도에 망명중인 14세 달라이 라마의 후임자가 이곳에 거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창바거상 처장은 “정치적인 문제라 답할 수 없다.”며 화제를 돌렸다. 포탈라궁은 원래 달라이 라마의 겨울 거주지였다.  라싸·시가체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G2 중국, 세계를 호령하다 ⑤ 야심찬 우주개발 계획

    [新 차이나 리포트] G2 중국, 세계를 호령하다 ⑤ 야심찬 우주개발 계획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미국과 소련이 하면 우리도 한다.”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선언은 ‘흰소리’가 아니었다. 중국의 우주개발 계획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의 원대한 우주개발 계획은 달을 넘어 화성을 향하고 있다. 한번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미국과 러시아가 양분했던 ‘우주자산’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하면서 미국에 맞서는 ‘우주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중국은 올 10월 두 번째 달 탐사위성인 ‘창어(嫦娥) 2호’를 발사하고, 2013년에는 달 연착륙 임무를 맡은 ‘창어 3호’를 쏘아올릴 계획이다. 여기에는 독자 개발한 달 탐사차량도 실린다. 내년 상반기에는 소형 우주정거장이자 우주실험실 역할을 맡을 ‘톈궁(天宮) 1호’를 발사하고, 하반기에 ‘선저우(神舟) 8호’를 쏘아올려 첫 우주 도킹 실험도 할 예정이다. 무인 화성탐사선 ‘잉훠(螢火) 1호’도 내년에 발사한다. 2017년 우주인을 달에 보내고, 2020년에는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2030~40년에는 화성유인탐사도 시작할 계획이다. 앞서 중국은 2003년 양리웨이(楊利偉)가 선저우 5호를 타고 우주비행에 성공함으로써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 유인 우주선 발사국이 됐다. 2007년 달 탐사위성 창어 1호 발사, 2008년 자이즈강(翟志剛)의 우주유영 등 거의 매년 ‘우주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중국의 유인 우주선 발사는 구 소련 및 미국에 비해서는 40년 이상 뒤졌다. 하지만 중국의 우주개발이 미국과 러시아를 따라잡는 데 앞으로도 4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중국의 경제성장 및 과학기술 발전 속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등을 감안하면 머지 않은 시기에 미국과 러시아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중 2대 우주강국 체제로의 전환이 예고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기 침체로 미국과 러시아가 우주개발 분야 예산을 대폭 감축한 반면 중국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우주개발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어 격차가 크게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왕원바오(王文寶) 중국 유인우주개발판공실 주임은 WSJ와의 첫 인터뷰에서 “중국이 이르면 10년 내에 독자적으로 우주공간 탐색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중국의 우주개발은 ‘중국 항공우주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첸쉐선(錢學森·2009년 사망) 박사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활동하다 전격 귀국한 1955년부터 비롯됐다. 중국 정부는 첸 박사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우주과학 기술을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올렸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1970년 유인우주선 개발계획, 이른바 ‘714공정’이 마오의 지시와 심의로 시작됐으며 개혁·개방 이후 더욱 본격화됐다. 1986년 3월 첨단기술연구계획인 ‘863계획’을 수립해 항공우주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장쩌민(江澤民) 주석 체제가 등장한 1992년 ‘921공정’을 통해 3단계의 우주개발 계획이 확정됐다. 중국이 우주개발에 집중하는 데에는 정치, 경제, 군사 등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 국민들의 결속을 이끌어 내면서 대외적으로 강대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동시에 상업적 이익의 확보, 첨단 군사기술의 제고 등에서 우주개발만큼 뛰어난 재료는 없다는 것이 미국 및 러시아의 사례에서 이미 검증됐다. 군사적 측면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쉬지량(許其亮) 공군사령관은 지난해 공군 창설 60주년 기자회견에서 “우주공간에는 국경선이 없다. 오직 힘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며 우주무기 개발을 공언했다. 중국은 경제대국, 군사대국에 이어 우주대국의 길에 들어섬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기초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재정,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다. stinger@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中 과학기술 부흥의 원동력

    1986년 3월, 왕다헝(王大珩) 등 중국의 원로과학자 4명이 연서한 한 권의 보고서가 공산당과 국무원에 전달됐다. 항공우주, 신재료 등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 연구발전 전략이 담긴 이 보고서는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눈에 쏙 들었고, ‘863계획’으로 명명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7년 열린 국가과학기술영도소조 제3차 회의에서는 지속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기초과학 육성 전략이 본격 논의됐다. 지금까지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국가중점기초연구발전계획, 이른바 ‘973계획’은 이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2006년 2월 중국 국무원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 규획 강요(2006~2020년)’를 발표했다. 15년간 역점을 둘 16개 중점 프로젝트가 담겼다. 정보통신·바이오 등 전략산업, 해결이 시급한 에너지, 자원, 환경 문제, 대형 여객기와 우주개발 등이 총망라됐다. 2020년까지 과학기술 투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5%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GDP에 대한 과학기술 공헌도를 6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저력은 이처럼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세대를 달리하는 지도자들이 결정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끊김 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과학기술과 교육이 나라를 부흥시킨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에 대한 믿음이다.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가 4200만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은 연구개발(R&D) 인력만 해도 2008년 말 현재 190만명에 이른다. 미국에 이어 두번째다. 연간 배출 박사 5만여명 가운데 41%가 이공계에 집중돼 있다. 게다가 해외유학에서 돌아오는 석사 이상 과학자들만 연간 2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은 2008년 과학기술 분야에 투입된 중앙재정 2540억위안(약 45조 1358억원) 가운데 863계획과 973계획 등에만 125억위안을 쏟아부었다. 정책·사람·돈 ‘3박자’가 중국 과학기술 부흥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만하지 않는 게 중국의 힘이다. 중국과학기술정보연구소는 최근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주요 국가 가운데 4위에 올랐지만 세계에 대한 영향력은 19개 주요 국가 가운데 13위에 불과하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stinger@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공자학원·장학금…돈줄로 문화도 ‘중화’ 물들인다

    [新 차이나 리포트] 공자학원·장학금…돈줄로 문화도 ‘중화’ 물들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문화의 해외진출 모델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라.” 지난 4일 베이징에서 열린 문화시스템 개혁 업무 화상회의. 지난해 9월 문화산업 진흥계획을 발표한 중국 문화부가 지금까지의 추진상황을 점검하는 이번 회의에서 차이우(蔡武) 장관은 중국문화의 저우추취(走出去·해외진출)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차이 장관은 중화문화의 국제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지금 경제력, 군사력 못지않게 문화, 이념, 정책 등의 소프트파워(연성 권력)에서도 강국의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고속성장으로 쌓아올린 경제력을 배경으로 막대한 돈을 소프트파워 확충에 쏟아붓고 있다. 벌써부터 세계인들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갈수록 높아가는 데다 중국의 굴기(崛起·우뚝 섬)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퍼져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의 ‘입’ 역할을 하는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1일 영어TV뉴스 프로그램의 시험방송에 들어갔다. 중국판 CNN인 중국신화뉴스네트워크(CNC)의 탄생이다. 오는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중국 시각을 과감하게 전할 방침이다. 리충쥔(李從軍) 사장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대안적인 정보 소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중국이 관영 언론의 국제화에 책정한 예산은 무려 450억위안(약 7조 6500억원)에 이른다. 신화통신은 현재 100여개인 해외 지국을 186개로 늘려 사실상 전 세계를 도맡을 계획이다. 중국중앙방송(CCTV), 인민일보 등도 신화통신 못지않게 국제화에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어와 중국문화 전초기지인 공자학원은 전세계 85개국에 282개나 개설돼 있다. 지난해 중국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150여개국, 1만 8000여명에 달했다. 지난 2008년 서울과 프랑스 파리의 중국문화원 홈페이지 접속자는 각각 15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은 관영 언론 국제화, 공자학원 확대, 중국문화 전파 등에 대해 이미지·브랜드 제고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중국에 대한 선입견과 무지를 자신들이 스스로 나서서 적극 바꿔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한 프랑스 청년이 프랑스 식당에서 중국인 친구를 만나 ‘중국인은 아직도 사람고기를 먹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를 지나던 프랑스인 식당 주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중국인들은 아직도 사람을 먹는다. 특히 당신 같은 사람을 아주 좋아한다.’ 그때서야 그 프랑스 청년은 자신의 무지를 알아챘지요. 아직도 서방에서는 중국 및 동방국가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 베이징대 문화산업연구원의 왕치궈(王齊國) 교수가 서방 세계의 중국에 대한 편견을 설명하며 전한 말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지난 3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특파원 여러분들이 중국에 대한 오해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영향력 확대라는 측면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담당 책임자인 류윈산(劉雲山) 중앙선전부장은 “중국이 국제 여론경쟁에서 보다 많은 발언권을 확보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관영 언론의 국제 여론시장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단순한 문화전파가 아닌, 공공외교와 대규모 원조가 동반되는 것에서도 중국의 소프트파워의 과감한 보급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지역에 대한 대대적 지원과 함께 중국적 가치를 선전함으로써 이들 지역에서 중국의 위상이 한층 커졌다는 게 소프트파워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중국은 이 같은 성공경험을 세계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1993년 중국에 소프트파워 이론을 처음 소개하면서 소프트파워의 지평 넓히기를 강조한 상하이 푸단(復旦)대 왕후닝(王?寧) 교수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인 1995년 중국 공산당의 중앙정책연구실로 자리를 옮겨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 체제에서 공산당 서열 28위인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을 맡고 있다. 중앙정책연구실은 중국의 대내외 핵심 정책을 입안하는 곳이다. 장 전 주석 시절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내세우기 시작했고, 후 주석 체제가 이를 본격화한 배경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확충은 ‘중국 위협론’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비롯됐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굴기의 한 축으로 강화되고 있다. 경제력, 군사력과 함께 소프트파워까지 갖춘 중국이 그들의 언급대로 ‘평화굴기’를 할지, 세계의 우려대로 ‘패권굴기’를 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김정일 방중 결과] “北·中 6자 획기적 진전 등 성과 못낸 듯”

    [김정일 방중 결과] “北·中 6자 획기적 진전 등 성과 못낸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관영매체가 김 위원장의 베이징 방문 및 후 주석과의 회담 사실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점 ▲북·중 우호의 상징으로 꼽히는 ‘홍루몽’ 공연이 갑자기 취소된 점 ▲김 위원장이 6자회담 참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김 위원장이 거뒀을 ‘소득’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북한은 과거 2000년, 2001년, 2004년, 2006년 김 위원장의 방중 때는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 후 주석과의 북·중 정상회담 내용을 주로 보도했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7일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 전례를 볼 때 북한이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며 6자회담 복귀와 같은 입장 표명을 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런 내용이 없었다.”면서 “북은 중국이 제일 원하는 6자회담 복귀 입장을 밝히지 않는 선에서 나름의 몽니를 부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서는 “천안함 침몰 사건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 중국이 대규모로 경제 지원을 할 수 없음을 밝혔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예상했다. 그는 또 “북·중 우호의 상징물로 불리는 홍루몽 공연을 마지막 순간에 취소한 것은 북한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유 교수는 종합적으로 “우리로서는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혈맹관계인 양국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확인했으며, 김 위원장 방중에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대중 외교전략을 공고히 해 중국과 실질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김 위원장 방중 수행단에 외자유치 및 북·중 경협관계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북·중 정상회담에서 당장 단기간에 해결해야 할 대규모 식량 지원 및 물자 지원을 중국 측으로부터 약속받지 못한 것 같다.”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선 비교적 기대 이하의 입장을 표명하며 중국 쪽에 불만을 드러낸 것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방중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기존 입장에서 변화된 것이 하나도 없으며 김 위원장은 과거에도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다.”면서 “적어도 한반도 비핵화, 6자회담 진전 등에 있어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의 만남이 국가 대 국가의 만남이 아닌 당 대 당의 관계에서 만난 것이며 중국은 김 위원장에게 최고위급으로 예우했기 때문에 북·중 정상회담 결과만을 놓고 양국 갈등이 표면화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구 교수는 이어 “한국 정부가 향후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갖게 될 위치는 물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국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번 김 위원장 방중 과정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한·중 외교 갈등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중외교와 관련, 전략적인 외교노선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방중 의미를 애써 축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후 주석과 김 위원장이 합의한 5가지 사항에 국제 및 동북아에서의 협력 강화, 전략적 소통 강화 등이 포함된 점을 들며 “6자회담에 대한 양국의 충분한 협의를 심화시킨 것으로 이해된다.”고 진단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北·中 정상 ‘천안함’ 논의할 듯

    北·中 정상 ‘천안함’ 논의할 듯

    │베이징 박홍환특파원│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이르면 4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1월 이후 4년4개월 만에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후 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 방안과 북핵 6자회담 재개 방안, 3남 정은으로의 후계체제 구축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포토] 김정일 위원장 중국 다롄 도착 두 정상은 특히 천안함 침몰과 이에 따른 후속 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점쳐져 향배가 주목된다.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가 관련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지원해 줄 것을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무관” 中지지 요청할 듯 회담 장소는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 영빈관이나 현재 머물고 있는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방추이다오(棒槌?) 영빈관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의 유력한 외교 소식통은 3일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이 다롄시의 방추이다오 영빈관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방추이다오 영빈관은 다롄시 외곽에 있어 보안이 용이하고, 김일성 전 주석도 묵은 바 있어 김 위원장이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롄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9㎞ 떨어진 방추이다오 영빈관은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후 주석 등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한 차례 이상 다녀간 곳으로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도 1950년대 말 방중했을 때 묵었다. 이날 오전부터 보안요원들이 영빈관 주변에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다롄시 외곽 영빈관서 만찬 김 위원장과 일부 일행은 이날 오후 방추이다오 영빈관에서 만찬을 가진 후 다롄 시내 푸리화(富麗華) 호텔로 돌아왔다. 중국내 서열 7위이자 랴오닝성 당서기를 역임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김 위원장과 동행하면서 만찬까지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 주석은 상하이(上海)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한 뒤 2일까지 상하이에서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후 일정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후 주석이 다롄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은 4일쯤 베이징으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위원장 일행은 이날 오전 5시20분(현지시간) 특별열차 편으로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역에 도착한 뒤 4시간 만인 오전 9시40분쯤 리무진 10여대에 나눠 타고 다롄 시내 푸리화 호텔에 들어섰다. 3남 정은은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나진(나진·선봉)시 개발을 염두에 두고 다롄을 방문지로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은 오후 1시30분부터 4시까지 다롄의 항구와 아시아 최대규모 광장인 싱하이(星海)광장 주변 등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다롄 일정을 마친 뒤 베이징으로 향할지, 그대로 돌아갈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베이징 외교가의 관측대로 방중 일정이 2박3일 또는 3박4일 정도로 짧다면 장거리 여행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후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를 면담할 수 있는 기간이 이번 주중밖에 없다.”고 말했다. 후 주석이 러시아 모스크바로 떠나는 8일 이전에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다는 얘기다.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중화굴기와 천안함/구본영 논설위원

    최근 사업차 중국을 다녀온 지인이 ‘떠오르는 중국’을 다시 환기시켰다. 그는 올해 포드로부터 볼보 자동차를 인수한 지리(吉利) 그룹이 상하이 인근에 조성 중인 공장부지를 둘러봤단다. 일본이 자랑하던 골프용품 브랜드 혼마도 오래 전에 중국 기업에 인수·합병됐다고 한다. 구문임에도 중국의 엄청난 ‘식탐(食貪)’에 새삼 놀랐다.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은 강대국의 견제를 의식해 힘을 과시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외교전략을 폈다. 즉 ‘도광양회(韜光養晦·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 정책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장쩌민 시대를 거쳐 현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起)’란 기치를 내걸었다. 산이 우뚝 솟는 모양을 가리키는 ‘굴기(?起)’가 상징하듯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을 깔고 있다. 다만 평화적(和平)이란 수식어에서 보듯이 여전히 조심스러움은 유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 내부의 기류는 화평이란 꼬리표마저 뗄 참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겸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앞다퉈 전하고 있지 않은가. 내달 1일 개막되는 상하이 엑스포는 중화굴기(中華?起·중국이 떨쳐 일어남)의 현장인 셈이다. 192개국이 참가하는 이 박람회에 예상 관람객이 외국인 500만명에 내국인 6500만명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중국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거나’ , ‘평화롭게 일어서는’ 노선을 표방하지 않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형국이다. 그 대국굴기(大國?起)의 낌새에 얼마간 착잡해지는 요즘이다. 중국보다 산업화에 앞선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호시절이 짧은 봄날처럼 가고 있다는 감상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중국 변수’의 영향력이 세진 만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외교적 과제도 커졌다. 당장 천안함 사태가 1차적 시험대다. 정부는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대응 과정에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특히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인 까닭이다. 미국조차 중화굴기의 위력을 실감하는 듯하다. 캠벨 국무부 차관보는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중국과 대책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두 번의 핵실험으로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중국이 미온적이라 제재의 효과는 미미하다. 중국이 북한의 탈선까지 비호하는 한 진정한 세계의 지도국가로 떨쳐 일어설 수 없음을 중국 지도부가 깨달았으면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유해논란 해소 ‘극비시설’ 첫 공개

    유해논란 해소 ‘극비시설’ 첫 공개

    흰색 방제복을 입고 30초의 ‘에어 샤워’를 마치자 사업장 쪽으로 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이윽고 자외선이 차단된 노란색 형광등 불빛이 온몸을 감쌌다. 15일 삼성전자 반도체의 주력품인 비(非)메모리반도체 시스템 LSI가 생산되는 경기 용인시 기흥반도체공장 5라인 클린룸. 건설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활발히 가동 중이다. 100여명의 직원들이 통로 양 옆에서 금속화합물 박막을 덧붙이거나 깎는 공정에 열중하고 있다. 공정 대부분은 반도체 자동장비가 담당하지만 사람의 손길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직원들이 플라스틱통에 담긴 지름 20㎝ 정도의 웨이퍼를 카트로 옮기거나 장비 안에 넣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 나지막이 들리는 라디오 소리 사이로 직원들이 바삐, 그러나 침착하게 일손을 놀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무리 바빠도 반도체에 치명적인 먼지가 날릴 수 있어 클린룸 안에서는 절대로 뛰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여럿 있으면 반도체의 암모니아 수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3명 이상이 모이는 것도 금지사항”이라고 귀띔했다. 2004년 말 완공된 S라인은 거의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파운드리(수탁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이곳에서는 삼성 마크가 새겨진 로봇 장비 셔틀이 천장의 라인을 따라 오가며 웨이퍼를 분주히 옮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5라인 등 과거 라인들은 조만간 전자동 생산시설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1983년 공장설립 이후 최초로 국내외 보도진에게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개했다. 생산 방식이나 공장 설계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반도체 업계에서 생산 라인은 ‘극비 시설’에 해당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칼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 등 소수의 내외빈에게만 공개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 공개가 이뤄진 것은 최근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했던 20대 여직원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삼성 반도체 공장의 안전성 논란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백혈병 환자가 9명 발생하고, 이중 5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시민단체는 22명 발병에 9명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차례의 산업안전공단 역학조사에서는 ‘작업 환경에 따라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지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에서는 공장에서 쓰이는 약품에서 암을 유발하는 벤젠이 허용치 이상 검출된 것으로 나왔다. 조수인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 사장은 “국내외 분석기관들이 재확인한 결과 벤젠 성분이 제조 공정 중에 검출되지 않았고, 공기 중에 노출되지 않아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이어 “앞으로 국내외 의료기관과 전문가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조사에 착수하고, 사망 직원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도 적당한 시기에 사업장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또 최근 설립된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를 통해 임직원의 건강 증진을 위한 중장기 활동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과거에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잘 지켜졌는지는 불명확하고, 백혈병 등이 발병한 과거 라인들도 개조 등을 통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최고지도부 9명 한해 60개국 방문 ‘자원·정책 외교’

    [新 차이나 리포트] 최고지도부 9명 한해 60개국 방문 ‘자원·정책 외교’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외교의 힘은 집단지도체제 하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역할을 분담한 순방외교를 통해 무섭게 세계를 파고들고 있다. 중국 최고 지도부 9명이 2009년 해외로 나간 횟수는 모두 24차례에 이른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각각 7차례로 가장 많고,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3차례, 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2차례이다. 자칭린(賈慶林) 정협주석과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 리커창(李克强) 부총리, 허궈창(賀國强)·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은 각각 한 차례씩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이들이 나눠 돌아다닌 국가는 모두 60개국이 넘는다. 미국, 아시아,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가 이들의 외교무대였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는 자원을 얘기하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책을 거론했다. 대규모 구매단을 대동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중국이 갖고 있는 ‘지갑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고지도부의 잦은 해외나들이는 사실 중국 외교 형태의 극적 변화상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외국을 상대로 자국 정책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한편 자원 등 국가이익을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취지가 깔려 있는 것은 물론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생애를 통틀어 두 번만 해외로 나갔고, 뒤를 이은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도 해외 순방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최고지도부의 순방외교는 다분히 충격적이다. 3세대 지도자들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리펑(李鵬)·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절에 비해서는 해외순방이 많았지만 상당 부분 아시아 지역에 공을 들였다.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 등을 포함해 차기 지도자 후보군이 여럿 포진해 있는 중앙 정치국 위원들은 임기 동안 각각 40개국 이상을 순방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지도자에 오르기 위해서는 국제적 감각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중국 최고지도부의 순방외교는 역할이 중복되지 않게 잘 짜여져 있다. 후 주석과 원 총리가 다자외교에 치중하고, 나머지 상무위원들이 양자외교를 전담하는 식이다. 후 주석과 원 총리간에도 ‘아세안+한·중·일’, ‘중국·유럽연합 정상회의’ ‘한·중·일 정상회의’ 등 경제적 이슈가 강한 다자외교는 원 총리가 맡고, 주요20개국(G20),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등 정치경제적 혼합 다자외교는 후 주석이 주도한다.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와 상하이협력기구 역시 후 주석 몫이다. 이처럼 최고지도부의 순방외교가 빈번하다 보니 9명의 상무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쉽지 않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설이 4월 초에 유력하게 제기됐던 것도 최고지도부 9명의 외유 일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009년 12월에도 후 주석과 원 총리, 시 부주석은 각각 역할을 나눠 세계를 누볐다. 후 주석이 핵안보 정상회의와 남미 순방을 마치면 원 총리가 동남아시아로 떠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쩍 최고지도부의 해외순방이 잦은 것과 관련, 홍콩의 중국 전문가 린허리(林和立)는 “내정에 힘을 빼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교적 역량을 비축했다.”면서 “최고지도부가 중국에 대한 이미지 제고와 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제츠 외교부장도 2009년 중국 외교에 대한 회고를 통해 “다양한 다자 및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국제무대에 큰 족적을 남긴 한해였다.”고 평가했다. 최근 남방도시보는 중국에서 성·시·자치구의 수장이 되기 위해서는 공산당 입당 후 최소한 35년의 경력과 문화혁명 때의 하방(下放·농촌이나 공장근무) 경험, 석사 이상의 학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31개 성·시·자치구 지도자들에 대한 통계조사를 통해서다. 지방을 넘어 중앙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제적 감각과 외교 역량이라는 한 가지 조건이 더 붙게 된 셈이다. stinger@seoul.co.kr
  • 되살아나는 장쩌민 향수?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최대의 연례 정치행사인 량후이(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또 다시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장 전 주석의 저서 두 권이 발간됐다고 모든 관영 언론이 25일 일제히 보도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24일 저녁 종합뉴스 시간에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유력한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입성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 부주석의 후원자로 알려진 장 전 주석이 량후이를 앞두고 세력을 과시하는 양상이어서 주목된다. 중국에서는 은퇴한 정치지도자는 국경절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 장소나 뉴스 보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장 전 주석은 지난해 10월1일 톈안먼(天安門) 성루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나란히 서서 건국60주년 기념 열병식을 참관,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과시한 바 있다. stinger@seoul.co.kr
  • 中 ‘태자당 3인방’ 차기 군부지도자 주목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공산당 및 정부와 마찬가지로 군부 내에서도 태자당(太子黨·중국 공산혁명 원로의 자녀나 친인척)의 도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직접 임명한 태자당 출신 상장(대장)이 3명이나 돼 이들이 중국의 차기 군부 지도자로 등극할지 주목된다.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출신인 장전(張震·95) 상장의 셋째 아들 장하이양(張海陽·60) 상장이 최근 청두(成都)군구 정치위원에서 전략핵미사일부대인 제2포병 정치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 위원은 지난 7월 상장으로 진급했으며 중국에서 부자가 모두 상장에 오른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장전 상장은 1926년 혁명 대열에 합류한 혁명원로로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역임했다. 막 대권을 장악한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군 통치력 강화를 보좌했다. 장하이양 상장과 함께 상장에 진급한 또 다른 태자당 출신 인사는 류위안(劉源·58) 군사과학원 정치위원과 마샤오톈(馬曉天·60)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다. 류위안 위원은 한때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후계자 물망까지 올랐던 비운의 정치인 류샤오치(劉少奇) 전 주석의 아들이고, 마샤오톈 부총참모장의 아버지는 국공내전에 참여한 이후 1980년대 초 사망할 때까지 인민해방군 간부교육에 평생을 바친 마자이야오(馬載堯) 해방군 정치학원 전 교장이다. 이들 가운데 차기 중앙군사위 입성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사는 장하이양 위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79년과 1986년 베트남과의 전쟁 및 국경분쟁에 참여했다. 청두군구 정치위원 시절에는 쓰촨(四川)대지진과 윈난(雲南)지진 구호활동을 지휘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이번에 제2포병 사령관으로 임명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2012년 중앙군사위 입성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군내 태자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마오쩌둥 전 주석의 친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39) 군사과학원 전략부 부부장이다. 현재 계급은 대교(대령)로 장군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다. stinger@seoul.co.kr
  • 반체제 류사오보 선고공판… 최대갑부 황광위 혐의 추가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크리스마스와 연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2건의 재판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저명한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왼쪽·54)에 대한 선고 공판과 중국 최대 갑부인 궈메이(國美)그룹 전 회장 황광위(黃光裕·오른쪽·40)의 탈법경영 사건 첫 재판이다. 두 사람 모두 체포된 지 1년이 넘었다. 류샤오보는 유엔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진보적인 학자, 변호사 등과 함께 공산당 일당독재 폐지와 정치개혁 등을 요구하는 ‘08헌장’ 서명운동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3일 베이징시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0여개 국가의 외교관들이 몰려들었지만 공안 당국에 의해 방청이 저지됐다. 이틀만인 25일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서 체제전복 혐의가 인정되면 류샤오보는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 등은 “류샤오보를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중국과의 새로운 긴장관계 형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류샤오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1989년 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하자 급거 귀국,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20개월간 수감됐으며 1996년부터 3년간 노동교화 처분을 받기도 했다. 중국측은 이번 재판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메시지’로 활용할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대체적 판단이다. 황광위에 대한 첫 재판은 베이징시 제2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다. 그는 지난해 11월 내부자거래 등의 혐의로 공안 당국에 연행돼 조사를 받아왔다. 당초 성탄절인 25일쯤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검찰이 새 혐의를 발견, 수사 기관에 이송하는 바람에 재판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조사과정에서 광둥(廣東)성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 주석 천샤오지(陳紹基)와 공안부 부장조리(차관보급) 정샤오둥(鄭少東), 광둥성 전 선전시장 쉬쭝헝(許宗衡) 등을 비롯, 1000여명의 공무원들이 뇌물수수, 도박 등으로 황광위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 세력의 보이지않는 권력투쟁 과정에서 황광위와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광둥성 산터우(汕斗) 출신인 그는 궈메이전기를 창업, 중국 가전유통업계를 평정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해 평가자산 430억위안으로 중국 최고의 부호 자리에 올랐다. stinger@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보폭 넓히는 포스트胡… 東亞외교 데뷔

    [피플 인 포커스]보폭 넓히는 포스트胡… 東亞외교 데뷔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한국과 중국 관계기관이 ‘구동존이(求同存異: 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 둔다)’ 정신을 발휘해 조속한 시일 내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할 수 있도록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56) 국가부주석의 보폭이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2012년 가을에 열리는 중국공산당 제18기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으로부터 ‘대권’을 넘겨받는 시 부주석은 14일부터 한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4개국 순방길에 오른다. 올해 세 차례 외유의 대미를 동아시아에서 장식하는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일왕과 모두 면담 시 부주석의 이번 한·일 방문이 주목되는 것은 그가 사실상 중국의 차기 지도자 자격으로 동아시아 외교무대에 데뷔한다는 점에서다. 실제 그는 이번 방문에서 일왕과 이명박 대통령을 모두 만난다. 그의 일정에는 한·일 양국 정계·경제계 인사들과의 대대적 교류도 예정돼 있다. 순방에 앞서 그는 한·일 언론을 통해 한·중·일 3국 간 협력을 강조했다. 아울러 6자회담 등 외교, 경제, 국제정세 등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내비쳤다. 중국에서 주석이나 총리가 아닌 인사가 순방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내부적으로도 화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제안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관련, “아시아 발전이란 큰 흐름에 부합한다.”며 사실상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어 “아시아의 중요한 국가인 한국·중국·일본 3국 간 협력을 확대해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번영 발전을 이룹시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번 아시아 순방에 대해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사실상 차기 지도자 논란에 쐐기를 박는 효과를 노린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가 일왕과 이 대통령 면담을 강력히 요청해 성사시킨 데다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외국언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는 점에서다. 실제 지난 9월 열린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7기 4중전회)에서 그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선출 안건이 논의조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내부의 권력투쟁 재점화설이 대두된 바 있다. 후 주석이 지원하는 리커창(李克强) 국무원부총리와 시 부주석 간 대권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왔다. ●9월 권력투쟁 재점화설 겪기도 중앙군사위 입성이 미뤄지긴 했지만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시 부주석이 후 주석의 뒤를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그의 입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기구인 중앙서기처를 장악하고 있는 데다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진두지휘했다. 태자당(太子黨·공산혁명 원로의 자제나 친인척)이면서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등 상하이방(상하이 지역에 기반을 둔 공산당 지도자 그룹)의 적극적 지지를 받고 있다. 문화대혁명 때 숙청당했다가 복권된 시중쉰(習仲勳·사망) 전 부총리의 아들이다. 칭화대 공정화학과와 마르크스주의 이론 과정을 졸업했고, 모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부분의 경력을 저장(浙江)·푸젠(福建)성, 상하이 등 부유한 동부연안 지역에서 쌓았다는 점은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중국의 ‘국민가수’로 통하는 펑리위안(彭麗媛)이 부인이다. stinger@seoul.co.kr
  • 中 선부론 지고 균부론 뜨나

    中 선부론 지고 균부론 뜨나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분배정책의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인민일보가 중국 공산당의 정리된 노선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선전매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위기 이후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최고 지도부 내의 갈등이 정리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민일보는 19일 ‘우리의 돈주머니를 내보여 평가받자’라는 제목의 한 면짜리 기사를 통해 “현재 상당수 국민들의 소득수준으로는 내수확대에 한계가 있다.”면서 소득분배 정책의 개선을 촉구했다. 안후이(安徽)성 화이베이(淮北)의 농민공, 헤이룽장(黑龍江)성 푸진(富錦)의 농민, 충칭(重慶)시 외곽도시의 세일즈맨,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의 교사,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중소기업인 등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다. 인터넷 포털 신랑왕(新浪網) 등 다른 매체들은 “당보가 분배정책의 개선을 촉구했다.”며 인민일보 기사를 대부분 인용보도했다. 중국 지도부 내에서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논쟁은 역사가 깊다. 개혁·개방 이후 상하이방인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까지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이른바 선부론(先富論·능력이 되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이 대세였다. 하지만 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은 이른바 ‘조화사회’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올려놓았다. 선부론의 폐해인 빈부격차 해소를 주창하고 나선 것. 3농(농민, 농촌, 농업) 중시 정책과 서부대개발 등을 통해 동부연안과 서부내륙,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경제가 잘 굴러가는 동안에는 후 주석의 ‘균부론’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연안은 여전히 돈이 넘쳐났고, 그 돈은 서부와 농촌으로 보내졌다. 갈등은 금융위기 이후 다시 불거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10월5일자에서 금융위기 이후 조화사회를 강조하는 후 주석의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 및 원자바오 총리 연합세력과 성장을 중시하는 상하이방과 태자당 연합세력이 주요 경제정책에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 주석 계열은 일반인들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전히 서부대개발 등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반면, 성장론자들은 창장(長江)과 주장(珠江)삼각주 등 전통적 수출기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 이 같은 관측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발표한 4조위안 경기부양 자금의 구체적 투입 명목이 지난 3월에야 정해지는 등 정책결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사실 등에서 갈등의 일단이 엿보였다. 이번 인민일보의 분배정책 개선 촉구와 관련,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경제회복이 본격화되면서 지도부 내에서 분배론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stinger@seoul.co.kr
  • 장쩌민은 시위중?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은퇴한 중국의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최근들어 부쩍 자주 중국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중앙군사위 입성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장 전 주석의 잦은 등장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등 시 부주석 견제세력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 해석하기도 한다. 권력구도의 변화 가능성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오후 7시뉴스인 신원롄보(新聞聯報)는 중국 전역에 방송되며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시청률이 높다. 16일 방송된 신원롄보에는 장 전 주석 관련 뉴스가 2건 보도됐다. 이날 개관한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의 문자박물관 현판을 장 전 주석이 직접 썼다는 내용과 최근 타계한 구무(谷牧) 전 부총리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을 조문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특히 구 전 부총리 장례식에서는 후 주석과 똑같이 1분 정도 그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17일 후 주석과 장 전 주석의 조문 사진을 나란히 게재했다. 중국 언론에 장 전 주석이 재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1일 건국 60주년 국경절을 전후해서다. 전야제 때 후 주석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아 건재를 과시한 장 전 주석은 국경절 당일에는 톈안먼(天安門) 성루에서 후 주석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그 모습은 CCTV를 통해 고스란히 전 중국인들에게 생중계됐다. 국경절 직전에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4중전회(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는 시 부주석의 중앙군사위 부주석 선임 여부가 최고 관심사였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국경절 이후 발표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계속 지연되고 있다. 중앙군사위 입성은 차기 지도자로 사실상 확정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장 전 주석의 잦은 행보를 권력구도의 ‘이상’ 및 내부 권력 암투와 연관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stinger@seoul.co.kr
  • [건국 60돌 中國이 다시 뛴다] ⑤ 분배냐 성장이냐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오는 2012년 열리는 공산당 제18기 전국대표대회에서 누가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를 잇는 5세대 지도자로 뽑히느냐에 따라 중국 미래의 향방이 결정된다. 시진핑 부주석은 ‘태자당’(공산당 간부 자제)의 일원이다. 장쩌민 전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상하이방’으로도 분류된다. 푸젠(福建)성에서 17년간 근무한 데 이어 2007년 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임될 때까지 상하이시의 당서기 등을 지냈다. 그가 최고 지도자에 오르면 후 주석·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체제와는 사뭇 다른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후 주석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의 수장이고, 원 총리의 정치 기반은 톈진(天津)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최근 중국 지도부 내부의 팽팽한 노선싸움의 분위기를 보도했다. 분배와 성장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 주석은 2002년 집권 이후 ‘조화사회(和諧社會)’를 표방해왔다. 성장과 분배, 그 중에서도 분배를 앞세우는 정책을 추진했다. 장 전 주석 등 이전 지도부의 성장우선 정책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반면 상하이방과 태자당은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을 계승하며 여전히 성장위주의 정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연안 대도시와 수출중심 모델을 통한 경제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기 지도자 선출이 임박했다는 점은 범 공청단 연합(후 주석, 원 총리, 리커창 부총리)과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리창춘 상무위원, 시 부주석, 허궈창·저우융캉 상무위원) 간 권력 투쟁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stinger@seoul.co.kr
  • [중국 건국 60주년] 차세대 ICBM ‘둥펑-31A’ 등 첨단무기 과시

    ■ 현장에서 본 경축식 │톈안먼 광장(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은 건국 60주년 기념일인 1일 전 세계를 상대로 포효했다. 더 이상 150여년 전 서구가 멸시했던 ‘아시아의 병자’가 아니었다. 건국 60년 만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슈퍼파워’로 성장한 중국의 모습에 세계는 긴장하면서 베이징을 주목했다. 이날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하루종일 중국인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1949년 신중국 건국을 선언한 마오쩌둥(毛澤東) 당시 주석이 그랬던 것처럼 중산복을 입고 톈안먼 성루를 지켰다. 후 주석은 경축기념 연설을 통해 “60년 전 오늘 바로 이곳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했다.”며 “지난 60년 동안 중국은 거대한 발전과 진보를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우리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방침에 따라 흔들림 없이 평화통일을 이룩할 것”이라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후 주석은 이어 “우리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걸으며 60년 동안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인류에 새로운 공헌을 할 것”이라며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 위대한 중국공산당, 위대한 중국인민 만세”를 외쳤다. 경축행사는 오전 9시57분쯤 군악대의 연주 속에 후 주석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그리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8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톈안먼 성루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됐다. 중국 56개 민족이 건국 60주년을 축하한다는 뜻에서 56문의 대포에서 60발의 예포와 함께 광장의 국기 게양대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오르자, 후 주석은 도열해 있던 군대를 분열하기 위해 중국산 최고급 승용차 홍기(紅旗)에 올랐다. 차 번호는 ‘경(京)V-02009’였다. 후 주석은 열병지휘관의 보고를 받고 큰 소리로 ‘카이스(開始·시작)’를 외친 뒤 분열식을 시작했다. 창안제(長安街) 동쪽으로 죽 이어진 각종 부대 행렬을 분열하면서 후 주석은 각 부대 앞을 지날 때마다 “퉁즈먼(同志們·동지들) 하오(好·안녕)!”와 “퉁즈먼 신쿠러(辛苦了·고생이 많다)!”를 외쳤고, 장병들은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인민을 위해)”로 화답했다. 이어 진행된 열병식에서는 8000여명의 장병과 500여대의 장비, 150여대의 비행기가 중국의 최첨단 군사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3군 의장대에 이어 육·해·공군과 여군 순으로 열병이 진행됐다. 이어진 기계화부대 열병에서는 육중한 캐터필러 소리와 함께 탱크, 장갑차, 자주포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관심이 집중됐던 신형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東風)-31A’ 등이 첫선을 보였다. 그러자 중국이 자체 개발한 조기경보기를 필두로 12개 비행편대가 형형색색의 연기를 내뿜으며 동쪽에서 톈안먼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비가 내린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관람대에 자리한 각국 무관을 비롯한 외교사절과 세계 각국의 취재진 4000여명은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했다. 후 주석은 이따금 감격에 찬 모습으로 열병식을 참관했으며 옆자리의 장 전 주석과 환담을 나누는 모습 등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열병식에 이어 마오의 초상화를 앞세운 대형 축제차량 60대와 10만여명의 학생, 시민들이 함성과 함께 국민대행진을 곧바로 시작했다. 오후 1시쯤 행사가 마무리된 뒤 30여만명의 참여 인원이 톈안먼 일대를 빠져나가는 데만 2시간여가 소요됐다.행사 참가자들은 이날 새벽 4~5시쯤부터 톈안먼 광장 부근에 집결하기 시작했으며, 중국 정부는 전날 밤 11시가 돼서야 외신기자들에게 행사 취재허가증을 발급했다. 앞서 행사를 위해 도심은 전날 밤부터 철저히 통제돼 지도부와 출연진 및 초대받은 일부 시민 대표단을 제외하고는 접근조차 불가능했고, 보안과 통제가 계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강화돼 일각에서는 ‘인민이 소외된 축제’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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