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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서 12·12 관련자료 공개”/이양우 변호사 문답

    ◎영장집행사실 사전통보 안받아/월요일쯤 검찰에 출두하려 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양우 변호사는 3일 낮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스위스그랜드호텔 1층 음식점에서 장세동 전안기부장과 안현태 전경호실장등 핵심측근들과 대책회의를 갖기에 앞서 기자와 만나 향후 대책을 밝히면서 검찰의 전격적인 구속영장집행에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사전에 영장집행 통보를 받았나. ▲받지 못했다.영장발부사실도 어제밤 TV방송을 보고 알았다. ­이날 영장집행을 예상했나. ▲전혀 못했다.검찰이 변호사인 나에게 집행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당초 계획은. ▲검찰에서 별 연락이 없어 오늘 하오 2시쯤 전전대통령과 함께 상경,월요일 쯤 출두할 작정이었다.그래서 영장발부 사실을 전해듣자마자 밤 늦게 합천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전씨가 마지막 남긴 말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속옷바람에 옷을 챙겨 입으면서 『나 아침도 못먹고 가네』라고만 말씀하셨다.담담한 표정이었다. ­지금 느낌은. ▲구속영장이 발부되면받아들일 각오였는데 통보도 받지 못하고 날벼락을 맞았다.65년 평생,30년 법조인 생활에 이런 꼴은 처음이다.죽은 사람한테 칼을 들이댈 수 있나.부관참시와 다름없다.연희동에는 시체밖에 안남았다.(눈물을 흘리며)전직 대통령의 양팔을 잡고 연행하다니 이럴 수는 없다. ­앞으로 계획은. ▲재판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관련자료도 모두 공개하겠다.정승화나 장태완이 영웅이라니 적반하장이다.검찰에선 더이상 할말 없다.15∼16년전 사실에 대해 그분이 상세히 아는 것도 없다.과거 12·12와 관련,검찰에 제출한 3백7개 질문항목 가운데 그분이 알고 대답할 수 있는 항목이 1∼2개도 안됐다.대부분 나를 포함한 변호인단이 작성한 것이다.실제로 그분은 정승화를 잡으라는 지시만 했을 뿐이다. ­더 하고 싶은 말은. ▲과거 3공·유신체제 하에서 내가 군검찰관의 자격으로 윤보선 전대통령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소환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 3번이나 찾아가 『각하 가셔야 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대했다.
  • 전씨,노씨등과 작당해 군사반란/전씨 구속­주요 혐의 내용

    ◎수차례 회합… 군권 장악계획 음모­반란 모의/총장공관 무력 점거… 정 총장 연행­반란 실행 3일 구속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적용하고 있는 범죄 내용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만큼이나 「화려」하다.영장요지를 분석한 전씨의 주요 범죄혐의 내용을 정리한다. ○거사일정 등 논의 ▷반란모의◁ 10·26사건 합수본부장인 전씨는 군장성 진급심사에서 하나회소속 군인들의 진급이 여의치 않게 되고 권한 남용 문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과 잦은 갈등을 빚어 인사조치당할 우려가 있자 정총장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 혐의로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연행해 제거함으로써 군의 실권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79년 11월 중순부터 노태우 9사단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박준병 20사단장 등과 수차례 회합,논의한 끝에 12월12일을 정총장 연행 거사일로 정했다.정총장 연행에 반발,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거사 당일 하오 6시30분 만찬초청 명목으로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전씨 등은 같은 시각에 보안사와 인근 수경사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정총장 추종세력이 무력으로 대응할 경우 병력을 동원해 제압하기로 모의했다. ○초병 현장서 살해 ▷반란실행◁ 12일 하오 7시경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최석립 수경사 33헌병대장 등은 보안사 수사관과 헌병을 동원,총장공관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 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권총을 난사,제압한 뒤 하오 7시30분경 정총장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했다.하오 9시30분쯤 정동호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고명승 대통령경호실 작전담당관 등이 경호실 병력을 동원하여 대통령 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한 상태에서 전씨 등은 최규하대통령에게 정총장 연행·조사를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 하오 11시30분경 최세창 3공수여단장·박종규 3공수여단 15대대장은 특전사령관실에 3공수여단 병력을 투입,총격을 가해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낭 소령을 현장에서 사망하게 하고 정 특전사령관에게 부상을 가한 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박희도 1공수여단장·서수렬 1공수여단 2대대장 등은 13일 0시30분경 1공수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육본과 국방부를 점거하고 노재현 국방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근무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망케 했다.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신윤희 헌병부단장 등은 김진선 수경사 상황실장의 지원을 받아 수경사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한 후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 ○전씨 수괴역 담당 ▷혐의내용◁ 전씨는 수괴로서 노태우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탈취,반란을 일으키고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동원해 중요 지점을 점거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했다.또 김오낭을 살해하고 정병주와 하소곤·이재천·김인선 등을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특별법제정 발표에서 전씨 구속수감까지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연내제정 발표 ▲29일=정동년 등 5·18 고소인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소취하 ▲30일=헌재,「5·18선고」 연기 공식발표 ▲12월1일 하오 6시10분=검찰,전두환씨 2일 하오 3시까지 출두통보 ▲2일 상오 9시=전씨 대국민성명발표후 고향인 합천으로 출발 ▲하오 6시10분=검찰,반란수괴등 6개죄를 적용,사전구속영장 청구 ▲하오 11시23분=법원,구속영장발부 ▲밤 12시=서울지검 수사1과장 등 수사관 9명,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합천 전규명씨 집으로 급파 ▲3일 상오 5시57분=수사관 9명,합천 도착 ▲6시9분=전씨에게 영장제시 ▲6시 34분=전씨,영장집행 완료 ▲6시 37분=전씨 호송차량 합천 출발 ▲10시 37분=안양교도소 도착,수감
  • 연희동서 솜한복 교도소에 미리 전달/전씨 영장집행서 수감까지

    ◎안양교도소앞 시민들 과자 던지며 시위/고향 친인척,영장집행 수사관 한때 저지 전두환 전대통령은 3일 상오 묵고 있던 경남 합천군 내천면 율곡리 생가마을에서 검찰 수사관 9명에 의해 압송돼 안양교도소에 전격 수감됐다.영장 집행과정에서 친인척과 주민들이 수사관에 항의하는 가벼운 승강이가 있기는 했으나 전씨측이 순순이 협조해 우려했던 불상사는 없었다. ▷수감◁ 전씨를 태운 서울2버 4442호 검정색프린스승용차는 경남 합천을 떠난지 4시간10여분만인 3일 상오 10시37분쯤 안양교도소에 도착. 승용차 뒷자리 검찰 수사관 2명 사이에 푹 눌러앉은 전씨는 입을 굳게 다문채 잠을 설친 탓인지 초췌하고 침통한 모습. 전씨를 호송한 승용차는 경수산업도로 신군포 사거리 앞에서 우회전,교도소 입구에 도착,외정문 초소,외정문,정문까지 2백50여m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취재진들이 포토라인을 제대로 지켜 노태우 전대통령 수감 때와는 달리 혼잡은 거의 없었다. ○…전씨가 탄 승용차가 교도소 진입로에 들어설때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안양지부」 소속 회원 15명이 「5·18 학살자를 처벌하라」 「전두환을 사형시켜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채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뻥튀기 과자를 던지며 시위. 전씨는 처음 이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들로 착각,손을 들어 응답하려다 당황해 손을 내리기도. ○…전씨가 구속 수감된지 1시간여 만인 3일 상오 11시35분쯤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김상희 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이 전씨를 조사하기 위해 안양교도소를 방문. 서울 3포 5321호 캐피탈 등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 교도소에 도착한 김부장검사 일행은 『무슨 조사를 할 것인가』는 등의 기자들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 ▷압송◁ 전씨 압송팀들은 합천을 출발,고령에서 88고속도로로 들어서 남대구 IC를 거쳐 경부고속도로 진입,안산­동수원 톨게이트∼북수원IC∼안양 코스로 이동. 전씨의 호송차량 행렬에 대해서는 시·도 경계가 바뀔때 마다 교통 안내 경찰이 임무를 교대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없었으며,대전 부근 지점에서 잠시 정차했으나 보도진이 몰려들자 곧 바로 다시 출발해 안양교도소까지 직행. 전씨는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잠을 잘 이루지 못한듯 간혹 꾸벅뿌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시종일관 입을 꼭다문채 굳은 표정. ○…전씨가 수감되기 전인 상오 10시쯤 연희동에서 2개의 분홍색 보따리에 전씨의 내의 3∼4벌과 솜을 넣은 한복 1벌을 미리 안양교도소측에 전달해 눈길. 서울 4초4133 검은색 프린스 승용차에서 내린 2명은 보도진이 진을 치고 있는 사이를 지나 교도관에게 접근,『연희동에서 왔다』며 슬그머니 입소. ▷영장집행◁ 이수만 서울지검 수사1과장을 팀장으로 한 수사관 9명은 합천경찰서 경찰관 1천여명의 지원을 받아 2일 상오 5시59분쯤 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장조카 전규명(62)씨 집에 도착한 뒤 10분만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검찰수사관들이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동네 청년 10여명이 대문을 가로막고 진입을 막았으나 경찰은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여러분들의 행위는 불법행위다』라고 3차례 경고한 뒤 대문을 밀치고 수사관들을 들여보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청년과 경찰간에 승강이가 벌어지자 전씨의 측근 한 사람이 나와 『영장집행에 최대한 협조할테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어른(전두환씨를 지칭)이 가족과 잠시 이야기 중이다』라고 사정. 이과장 등은 이어 상오 6시9분쯤 전씨가 있던 안방으로 들어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사전구속영장을 제시한뒤 26분만인 상오 6시30분쯤 전씨와 함께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서울 2버 4442호 프린스승용차에 타고 안양으로 출발. 상오 6시35분쯤 초췌한 모습으로 검은색 양복과 검정코트에 흰 목도리를 걸치고 수사관들과 함께 방을 나온 전씨는 집앞에서 차량에 탑승하기까지 50여m를 뒤따르며 『한마디 해 달라』는 취재진의 끈질긴 요구에 묵묵부답하며 전날 합천으로 내려 올 때에 비해 한결 비통한 표정.
  • 노 전대통령 수감/30개 기업서 2천3백억 수뢰

    ◎재벌 4∼6명 곧 재소환… 사법처리 노태우 전대통령이 16일 헌정사상 전직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구속수감됐다.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안강민 검사장)는 이날 하오 7시58분쯤 노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혐의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했다. 노씨의 구속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착수된지 28일만이다. 노씨에대한 영장은 이날 하오 1시20분쯤 주임검사인 문영호 대검중수부 2과장이 청구했으며 하오 6시51분쯤 서울지법 항소6부 김정호 판사가 발부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노전대통령은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 등 기업인 30여명으로부터 2천3백58억9천6백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밝혔다. 노전대통령은 특히 지난 91년 5월 초순쯤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대우그룹 김회장으로부터 율곡사업의 일환인 진해 해군 잠수함기지 건설을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50억원을 받은 것을 비롯,각종 편의 제공의 대가로 모두 7차례에 걸쳐 2백40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결과 노씨는 대통령 취임 직후인 88년 3월 하순부터 퇴임 3개월전인 92년 12월까지 기업인으로부터 기업경영과 관련된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금융·세제 등을 운용하면서 혜택을 받거나,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기업마다 50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노씨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한 것과 관련,노씨가 대통령으로 국가의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기업체의 경영활동에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직무와 관련한 뇌물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노씨는 영장집행 직전 대검청사 현관에서 『어떤 처벌이라고 나혼자 달게 받겠다』며 『정치인들도 불신의 갈등을 씻고 화해와 협력을 위한 새로운 정치문화를 이룩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검찰은 노전대통령에게 돈을 준 30개 기업 회장 가운데 대우그룹 김회장과 동아그룹 최회장 등 수백억대의 뇌물을 건넨 4∼6명을 조만간 재소환,보강수사를 벌인 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공여 등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그러나 기업총수들은 불구속 기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노전대통령의 구속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진행해 온 ▲비자금 조성과 규모 ▲대통령 선거자금 등 정치인으로의 유입 여부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 은닉 ▲해외은닉재산 여부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이날 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을 상대로 비자금의 조성 경위 및 사용처 등에 대해 이틀째 조사를 벌였다.
  • 재소환 28시간만에 구속영장 발부/구씨 구속­영장 발부까지

    ◎수사기록 소설책 10권 분량 2천여쪽/연희동 주민 “측은하지만 구속은 당연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16일 검찰청사는 하루종일 긴장감에 휩싸였다. 검찰이 구속영장 작성작업에 들어간 것이 이날 새벽 1시30분.구속영장을 청구한 시간은 하오 1시25분.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한 시간은 하오 6시51분.노전대통령이 서울구치소로 출발한 때가 하오 7시30분.영장 초안작성에서 집행에 이르기까지 18시간이 걸렸다. ▷영장청구◁ 이날 상오 1시30분쯤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지은 대검 중수부는 이정수 수사기획관과 주임검사인 문영호 중수 2과장,김진태 검찰연구관 등이 주축이 돼 밤을 새워가며 구속영장 초안을 작성,상오 9시쯤 안강민 중수부장을 거쳐 김기수 검찰총장에게 최종보고했다. 노씨에 대한 수사기록은 소설책 10여권에 해당하는 2천여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노씨의 인적사항과 범죄사실,3백쪽의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비롯,노씨의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기타 소명자료가 포함됐다.소명자료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등 30여명의 재벌회장들과 이현우 전청와대 경호실장과 이태진 전경호실 경리과장등의 진술조서 및 계좌추적 결과등에 대한 기록이다. 이어 주임검사인 문과장은 영장원본에 서명한 뒤 내부결재절차에 따라 상오 11시45분쯤 푸른색 보자기에 싼 수사기록을 서울지검 이종찬3차장 검사실로 갔다.대검은 대응기관인 대법원이 구속영장을 접수하지 않기 때문에 절차상 서울지법의 대응기관인 서울지검을 통해 영장을 접수해야 하기 때문이다.검찰은 영장청구사실을 일체 비밀에 붙였다. 이차장검사는 20여분동안 기록을 꼼꼼히 검토한뒤 사건번호를 부여하는 서울지검 사건과에 범죄인지서를 보내고 낮 12시10분쯤 문과장과 함께 최종결재권자인 최환 서울지검장실로 갔다. 최검사장은 1시간여동안 문과장의 보고와 함께 기록을 검토한 뒤 하오1시10분쯤 결재,영장청구를 위한 절차를 끝냈다. 대검수사관은 하오1시25분 서울지법 가동2층 영장계에 수사기록과 영장을 전달했다.영장계 직원은 5분여만에 접수절차를 끝내고 이날 영장당직판사인 형사항소 6부 김정호판사에게 수사기록을 넘겼다. ▷영장발부◁ ○…노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청구된 지 5시간24분만인 하오 6시51분 발부됐다.이로써 노씨는 전날 하오 2시50분 대검찰청으로 재소환된지 28시간만에 구속영장이 떨어진 셈이다. 김정호 판사가 영장발부 직후 구속영장과 사건기록을 인계하기 위해 서울지방법원 영장계 오형식 주임(36)을 호출하자 3명의 대검 수사관은 영장계에서 대기하다 오주임을 뒤따라 황급히 김판사 방으로 직행. 수사관들은 오주임으로부터 자주색 보자기에 싼 1천쪽 분량의 사건기록 뭉치를 넘겨받은 뒤 영장계의 구속영장 원부에 서명하고 현관앞에 대기중이던 검은색 르망승용차 편으로 1분여만에 대검청사로 복귀. 문영호 중수 2과장은 11층 특별조사실에 있는 노씨에게 가 영장요지를 알려준 뒤 안강민 중수부장 사무실에 들러 잠시 대화를 나누고 곧 바로 영장집행에 착수. ○…노씨의 구속 집행을 보기 위해 대검청사 현관 로비에 나온 김유후 변호사(전청와대 사정수석)는 노씨가 현관에 내려오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자 참담한 표정을지으며 자리를 애써 피하려는 모습. 김변호사는 「조사실에 들어가 보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힘차게 고개를 저은 뒤 『아직 누구도 변호인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고 대답. 그는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며 『곁에서 잘 보필하지 못해…』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기자들을 회피. ▷연희동◁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구속을 지켜본 연희동 주민들은 『인간적으로는 안됐지만 구속은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통장 양종환씨(50)는 『노씨의 집이 주변 집들에 비해 비교적 작고 초라해 깨끗한 정치를 했다고 믿었는데 이번 일로 더 큰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전직 대통령이 교도소로 가는 것은 안된 일이지만 5천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부정하게 모은 죄값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노씨 생가◁ 노씨의 생가가 있는 대구시 동구 신룡동 용진마을 67세대 2백50여 주민들은 16일 하오 노씨의 구속수감 소식이 전해지자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착잡한 표정들. 인척간인 노병작씨(48)는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구속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느냐』면서 『앞으로 다시는 전직대통령이 비리로 구속되는 불행은 사라져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 6공 비자금 파문­수사 어떻게 할까

    ◎재벌 이어 금융관계자 소환할 듯/조성경위·용처 규명에 무게 중심/전직대통령 첫 구속 가능성 높아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29일로 수사 착수 11일째를 맞으면서 조성 경위와 사용처 규명,그리고 노전대통령 사법처리라는 막바지 단계를 향해 치닫고 있다. 노전대통령의 대국민사과로 조성규모파악이라는 한 고비를 넘긴 만큼 수사의 주안점이 자연스럽게 조성경위와 사용처 부분으로 옮겨간 것이며,이 두 부분의 규명여하에 따라 노전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의 수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수사의 정점에 서있는 노전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와는 별도로 돈을 준 기업인과 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수사 차원의 해명 없이는 이른바 「비자금 정국」의 끝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노전대통령측이 30일 검찰에 제출할 것으로 전해진 비자금 내역서가 최대의 관건이 된다.그러나 검찰은 연희동측이 조성 경위 부분은 어느 정도 상세하게 밝히는 반면 사용처 부분은 계속 얼버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하고있다. 조성 경위는 검찰의 계좌추적과 지난 2월에 벌인 내사자료를 통해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이상 잡아뗄 수 없는 형편이다.그러나 사용처는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마지막 「히든카드」로 끝내 함구하리란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검찰수사는 사용처 규명보다는 노전대통령에 대한 소환후 조성경위를 밝히는 쪽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의 계좌추적과정에서 몇몇 재벌그룹회장의 돈이 노전대통령의 비계좌에 입금된 사실이 이미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검찰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우선 일부 관련 그룹회장과 간부 그리고 돈을 취급한 금융기관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가 노전대통령 소환에 앞서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정과 관련해 검찰은 이미 지난해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여동안 은밀한 내사과정을 통해 재벌그룹회장 등 13개 대기업체간부 20여명을 불러 구체적인 자금 제공액수 및 시기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서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기업체들로부터 받은 돈이 특혜에 대한 대가 즉 「뇌물」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관행화한 「정치헌금」이었는지 하는 것이다. 노전대통령측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이 돈이 「통치자금」이며 관련 기업인을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읍소한 것도 적용 법률을 가능하면 정치자금법쪽으로 몰고가 뇌물죄의 적용을 피해 보려는 교묘한 어법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주초에는 일부 혐의가 뚜렷한 기업인들을 불러 노전대통령측이 제출한 비자금내역서와 비교검토한 뒤 주중쯤 노전대통령을 1차 소환조사한다는 수순도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검찰이 노전대통령의 소환에 앞서 기업인들에 대해 조사를 선행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이 경우 6공화국 당시 저질러졌던 각종 비리와 의혹사건에 대한 노전대통령의 구체적인 비리와 혐의를 수집,결국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극약 처방의 수순을 밟을 전주곡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검 「협조공문」으로 비자금 쉽게 포착/계좌명만으로 관련자료 요구 가능… 논란 여지검찰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수사 착수 당시만 해도 계좌추적에 최소한 2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고 엄살을 부렸으나 뜻밖에도 수사착수 4일만에 비자금 9백90억원을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추적망이 4자리 숫자(1천억원) 목전까지 미치자 노 전대통령은 당초 정치적인 협상을 통해 타협책을 모색하려던 전략을 포기하고 지난 27일 대 국민 사과문 발표라는 「무조건 항복」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비자금의 은닉처를 포착하는 데 이현우 전 경호실장과 이태진 전 경호실 경리과장의 자발적인 협조가 결정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또 일각에서는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각종 비리수사를 통해 상당 부분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금융계 관계자들은 올해 초 재정경제원을 통해 전달된 대검의 협조공문이 초법적인 위력을 발휘한 결과로 평가하고 있다. 올 초 재경원이 각 금융기관에 통보한 「금융거래 비밀보장에 관한 유의사항 통보」라는 공문에 첨부된 대검의 협조공문「금융계좌 조사관련 협조요청」(시행일자 94년 11월19일)은 현행 법규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영장을 발부,집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경제명령(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 4조 2항은 압수수색영장에 ▲금융기관의 특정점포 ▲거래자의 인적사항 ▲사용목적 ▲요구하는 정보 등의 내용을 명시토록 규정하고 있다.다만 수사기관의 불편을 덜기 위해 94년 말 특정점포에 본점의 전산실을 포함시키도록 보완됐다. 대검의 협조공문은 수사의 편의를 위해 특정계좌와 전후로 연결된 계좌의 경우 영장에 별도로 계좌명이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영장집행에 협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게다가 협조공문에 첨부된 사례에는 예금주 A의 이름만 알고 있는 경우 A명의로 모든 금융기관에 개설된 자료 일체 및 일정 시점 동안 각 계좌의 입·출금 내역 전부(자기앞 수표·전표·마이크로필름)와,이와 연관된 모든 자료를 징구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수사기관이 계좌명이나 자기앞수표 발행번호만 알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어떤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모든 관련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 협조공문 때문에 지난 27일 동화은행이 본점 영업부에 개설된 노 전대통령의 가명계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문제를 놓고 「금융실명제에 위반된다」며 임원들간에 논란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 검찰이 지난 24일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면서 거래자의 인적사항에 대한 명시없이 조흥·신한 등 7개 은행의 명동지점 등 11개 금융기관 점포에 93년 2월1일 입출금된 모든 타점권과 마이크로필름 일체를 요구한 것도 이 협조공문에 근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비리수사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법리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기는 했으나 검찰의 영장집행 방식에는 법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불법을 적발하기 위해 초법적인 수단이 통용되는 관행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빨치산의 최후(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1)

    ◎지리산 본거지로 군사시설 파괴·후방 교란/휴전협정뒤 숙청·토벌로 조직 “지리멸렬” 1953년 7월27일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전쟁은 일단 마무리 됐다.그러나 남한 곳곳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흔히 빨치산 또는 유격대로 알려진 대한민국에서는 「공비」라 부른 공산주의자 무장집단과의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이 「전선없는 전쟁」은 1956년까지 계속됐다. 남한에서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부터 활동 했다.처음에는 남로당 출신이 주축을 이뤘지만 1949년 3월 북한이 간부들을 파견,빨치산부대를 직접 지휘케 하면서 빨치산은 정규군에 버금가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이는 물론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남한내 공산당 조직을 재가동,전쟁 때 국군의 배후를 공격하기 위한 조치였다. ○「남한 민중봉기」 염두 이어 전쟁 직전인 50년 6월 북한은 남한 각 도에 「정치공작대」5∼6명씩과 일부 무장병력을 다시 침투시켰다.6월10일 김달삼이 이끄는 유격대 2백50여명이 경북 청도 운문산에 유격구를 마련하는 임무를 띠고남하했다.24일에는 남도부를 사령관으로 한 766군부대(7백66명으로 구성)가 해군 함정을 이용,포항 쪽으로 상륙했다.같은 날 또 다른 유격대 2백50여명이 강원도 동해안으로 침투했다.이 부대들은 뒷날 북한 정규군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개전 다음날인 6월26일 김일성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평양방송을 통해 「해방전쟁」승리를 위해 남한 주민들은 총궐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특히 「남반부 남녀 빨치산」에는 더욱 강력한 주문을 했다.곧 『해방구를 확대·창설해 적의 배후를 공격,소탕하라』고 촉구했다.구체적으로는 『적의 참모부를 습격하고 철도·도로·교량과 전신·전화선등을 절단,파괴하고 도처에서 반역자를 처단하며 인민위원회를 복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민중봉기」를 염두에 둔 김일성의 이같은 요구는 당시 남한실정을 전혀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김일성의 기대에 찬 독촉이 쉴새없이 방송됐지만 어느 곳에서도 민중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에서 20만 지하당원들이 민중을 이끌고 호응할 것』이라는 박헌영의 호언장담은 무산됐다. 물론 일부 지방에서는 빨치산의 파괴활동이 벌어졌다.가장 널리 알려진 빨치산부대인 지리산 이현상부대는 8월10일 대구 주변인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미군통신부대를 기습,미군 20여명을 살상하고 무전기 14대,소총 20정을 빼앗아갔다.이들은 8월25일에는 경남 거창 미군사령부를 습격,1백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뒤 탱크 3대,화물차 30여대를 부쉈다.9월6일에는 경북 청도에서 북한군과 합동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경남 백운산유격대,경북의 배철이 지휘한 유격대,전남 빨치산,남해안유격대들이 미 공군기지를 점령하거나 경찰과 전투를 벌였고 마을 청년들을 끌고가 빨치산에 편입시키기도 했다.또 북한군 점령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때는 적극 나서 북에서 내려온 공산당원들을 도왔다. 하지만 이같은 활동은 전쟁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박헌영·김일성의 기대와는 달리 빨치산은 민중과 괴리돼 있어 힘을 쓰지 못했다.게다가 전쟁전 한국정부가 꾸준히 소탕작전을 벌여 기본조직을무너뜨린 것이 빨치산 세력약화에 결정적 요소가 됐다. 빨치산은 유엔군의 총반격으로 북한군이 밀리면서 뿌리잘린 풀잎처럼 역사의 틈바구니를 떠돈다.북한군이 38선 이북으로 쫓겨간 10월 8일 북한 노동당 정치국 군사위원회는 남한 각 지방당 조직에 『(북한군의)조직적인 후퇴를 보장하기 위해 각 도당이 책임지고 유격대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김일성도 이틀 뒤 방송에서 전세가 불리해 「전략적으로」후퇴하니 빨치산은 뒤에서 유엔군의 발목을 잡아 북진 속도를 늦추라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당을 지하당으로 개편할 것 ▲유엔군이 이용할만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군사시설은 파괴할 것 ▲입산경험자와 입산이 가능한 자는 산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남강원도로 후퇴할 것등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빨치산은 지역별로 유격대를 재편성,산악지대에 들어갔다.이들은 나중에 완전 소탕될 때까지 산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한」처절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당시 입산자들은 민청원·자위대원등 남로당 계열과 북에서 파견한 내무서원·정치보위부원·정치공작대원이 대부분이고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도 적잖게 끼어 있었다. ○이승엽 당정 총 지휘 북한군이 후퇴하자 지리산 이현상 부대는 잠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달아나는 북한군을 따라 북으로 갔다.1950년 11월 강원도 평강군 후평리에는 이현상부대를 비롯해 다른 곳에서 도망해온 빨치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이곳에는 당시 남한내 당·정을 총지휘한 이승엽이 기다리고 있었다.이승엽은 이곳에 모인 빨치산으로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해 이현상을 부대장으로,여운철을 정치위원으로 삼았다.이때 새로 편성된 이현상부대는 직속부대원 1백50여명 말고도 승리사단 4백여명,혁명지대 1백여명,인민여단 1백50여명등으로 구성됐다. 이현상 부대는 지리산을 본거지로 정하고 남하했다.먼저 태백산맥을 타고 1950년 12월 말쯤 충북 단양에 이르러 문경경찰서를 기습하는등 유격전을 벌였다.다시 속리산을 거쳐 덕유산에 이르러서는 남한내 6개 도당 대표자회의를 소집했다.이 자리에서 빨치산은남부군을 결성,통일된 지휘체제를 구성했다.이현상이 총사령관을,이영회가 부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빨치산은 북한 노동당의 지시에 따라 남부군을 해체하고 6개 유격지대 체제로 바꾸는등 여러차례 조직개편을 했다.또 북한에서 지도부와 북한군을 남파하는등 안간힘을 썼고 가끔 경찰서·열차를 습격하지만 큰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38선 일대에서 전선이 고착된 1951년 11월 말 한국 정부는 토벌전투사령부를 전북 남원에 설치,빨치산 소탕에 적극 나서 영호남 일대 빨치산은 치명타를 입고 지리산으로 모여들었다.이후 거듭되는 토벌작전에 몰린 빨치산은 「보급투쟁」이란 명목으로 산간마을에서 생필품을 약탈하는 것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지도자 대부분 피살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은 남한내 빨치산에겐 사형선고와 같았다.박헌영·이승엽을 비롯한 남로당계 간부들이 대부분 숙청되면서 빨치산은 북한정권에서 버림받게 된다.휴전협정에서도 빨치산의 지위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어 이들에게는 북으로 돌아갈 길마저 막혔다. 1953년 4월 북한 노동당의 남로당계 숙청계획에 따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평당원으로 강등됐다.8월에는 이현상이 지리산 빗장골에서 토벌대에 사살됐다.54년 초 김지회·이영회부대가 각각 전멸당하고 빨치산의 마지막 지도자 남도부가 대구에서 체포돼 남한 빨치산은 사실상 소멸됐다.한국정부의 기록에는 1954∼5년에도 「공비 출현,소탕」사실이 가끔 등장한다. 1956년 7월13일 전북 정읍에서 「공비 1명 사살,2명 생포」를 끝으로 빨치산은 정부기록에서 사라졌다. 빨치산은 조선노동당의 혁명전략 계획에 따라 조직돼 활동한 집단이었다.이들의 투쟁은 민족사에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결국 빨치산은 공산주의가 이 땅에 남긴 역사적 범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그러나 빨치산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여러 형태로 잠복해 남아 있다. ◎「빨치산 신문」 한국전중 10여종 발행/남부군 「승리의 길」 등 타블로이드판 지면 대부분 전투원 선동­선무 할애 우리 학계의 빨치산 연구는 매우 미약하다.그동안 「빨치산」이란 말조차 금기처럼 여겨온 사회 분위기에 비추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관련자료는 이우태씨(필명 이태)의 「남부군」을 비롯한 수기 3∼4종에 불과하다. 이같은 현실에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 미국립공문서 보존관리국(NARA)에서 빨치산이 한국전쟁 발발이후 간행한 신문 10여종을 찾아냈다.국내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빨치산신문들은 그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따라서 학계는 이 신문들이 빨치산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이 1951년 5월5일자로 발행한 「승리의 길」10호는 타블로이드판 한장에 양면으로 기사를 실었다.앞면 머리기사는 「총사령관 로명선」이 쓴 「5·1절을 맞으면서」란 논설.『5월1일은 전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력량과 국제적 단결을 시위하는 날』이란 의미 부여와 함께 그 내력을 소개하고 『남부군 전체 군무자 동무들』의 분발을 촉구했다.또 신문 사고의 형태로 『남부군 산하 각부대들이 3월21일부터 4월14일까지 수안보·칠성·청천·봉화·립석을 공격하여 이를 해방시켰다』고 전했다.아울러 「적 사살 1백25명,부상 30명,포로 48명,각종 무기 37정,탄약 2천2백37발」등의 전과를 올렸다고 보도했다. 1951년 11월23일자 「승리의 길」27호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진술한 김일성의 보고를 실었다. 이밖에 빨치산 신문들은 많은 지면을 전투원 선동에 할애 했다.즉 『용감하고 귀중한 빨치산들이여,적들의 지휘처와 참모부를 기습 소탕하며 기동력을 마비시키는 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하라』『리승만의 반동적 지방의회선거를 철저히 파탄 분쇄하자』는 등으로 채웠다.이따금 이명제의 서사시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29호)따위 문학작품이나 감상문,외신,전투실기,정찰기,여순병란 회고기등도 실었다.
  • 한일 합방조약 부당성 인정할때(해외사설)

    일본공사의 계획에 따라 일본의 무장집단이 조선왕조의 민비를 살해했다.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꼭 1백년전의 10월8일이었다. 일본은 그 10년후인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5년후에는 식민지화했다. 그러한 일·한 합방조약을 둘러싸고 무라야먀 도미이치 총리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무라야마 총리의 발언은 식민지지배의 도의적인 면은 반성하지만 합방조약 자체는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됐다는 취지다.그러나 「한·일합방 조약은 강제적으로 체결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효」라며 남북한은 분노하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발언은 역대정권의 견해와 같다.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무효가 된것은 전후라는 해석이다.일·한기본조약 체결때도 그 문제가 큰 쟁점이었다.결국 「이미 무효」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넘어갔다. 당시 사토 총리는 「합방조약은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의사로 체결됐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그후 정부가 그러한 입장을 수정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그후 30년간 많은 정세변화가 있었다.첫째,양국의 애매한 해석의 국교정상화를 촉진시켰던 냉전도 이제는 끝났다.두번째는 일본과 국교정상화교섭을 벌이는 북한이 조약무효를 정면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세번째는 일본내에서도 합방조약이 정말로 「대등한 자유의사」로 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과 이번의 무라야마총리의 발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무라야마 총리도 그러한 차이를 인식했는지 자신의 발언을 보충·수정했다.무라야마 총리는 합방조약의 불평등성과 배경에 간접적인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이는 사토총리의 견해로 부터 많이 진전된 것으로 늦었지만 환영한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는 조약의 법적인 유효성에 대해서는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우리는 그러나 통치권의 「영구양도」 조항을 집어넣은 조약의 비도덕성,합방에 이르기까지의 여러가지 강압적인 경위등 많은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양국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측에서는 더 한층의 성의를,한국측에서는 여유있는 대응을 희망한다.
  • 야당은 치외법권 지대인가(사설)

    국민회의측이 최선길 노원구청장의 선거부정혐의 수사와 임채정 의원사무실 압수수색을 야당탄압으로 몰아 국회에서 강경대응키로 한 방침은 야당이 법집행에 대해 대단히 모순된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야당인사의 선거법위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영장의 집행을 「해서는 안될 일」로 주장하는 것은 야당은 치외법권의 성역이며 야당의원은 초법적인 특권을 갖는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누구나 법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약속이며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국민회의가 모를리 없을 것이다.더구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은 준법의 수범을 보여야 할 책무가 있다.그럼에도 사전통고없는 경찰의 현직의원사무실 수색이 국회경시라는 국민회의측 논리는 원내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을 오해하고 있거나 야당은 법집행의 예외라는 틀린 의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경찰이 영장집행을 하면서 지구당직원들이 출근하기를 기다려 사무국장이 내주는 서류만 받은 것은 지나친 야당눈치보기에서나온 불공정한 과잉친절로 비판받아야 할 일이지 결코 야당을 무시하는 자세는 아니다. 선거비리 척결은 전국민적 합의다.통합선거법을 여야가 함께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돈선거혐의 수사에 자발적인 협조는 못할망정 엉뚱한 탄압주장으로 사건을 변질시키는 자세로 선거풍토의 혁신은 불가능하게 된다. 더구나 김대중 총재가 나서서 국회에서의 강경대응 방침을 세웠다는 것은 실망스럽다.최락도 의원이나,박은대의원의 혐의내용이 국회의원의 권한을 악용해 돈을 뜯은 뇌물과 공갈인데 국민회의측이 국민을 위한 국정감사등 국회의 권능을 자파의원들 문제에 사용하겠다는 것은 남용의 낡은 사고방식이다. 사법부 독립 하나만 봐도 야당탄압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민주시대에 야당인사에 대한 수사가 있을 때마다 국회경색과 정국냉각을 조성하여 법집행을 가로막는 후진적인 행태는 공당이 할 일이 아니다.신물나는 떼쓰기 정치공세는 제발 그만 두길 바란다.
  • 최 구청장 사전선거운동 「물증」 찾기

    ◎「임채정 의원 사무실 수색」의 저변/돈받은 4명의 진술 뛰어넘는 실증 추적/선거운동 기간이전 「활동보고」에 큰 기대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이 경찰에 구속된 것은 1천만원을 지역단체장들에게 뿌리고 개인택시 운송조합을 상대로 사전에 선거운동을 한 혐의이다.경찰은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최구청장의 핵심 선거참모인 손국원씨(58)와 손씨로부터 2백만∼1백만원을 받은 4명의 지역단체장들에게 『최구청장의 지시로 돈을 주고 받았다』는 진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경찰이 최구청장을 구속한 뒤 구청장집무실과 최구청장 부부가 살던 중계본동 전셋집,그리고 압구정동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도 사실은 확실한 물증을 찾기 위해서이다.경찰은 그러나 이 곳에서 4억2천여만원이 든 예금통장 22개와 개인 비망록 등을 찾아 내긴 했지만 이렇다할 진척은 보지 못하고 있다.통장에서 5백만원 이상 인출된 내용을 추적했으나 지난 2월26일 최구청장의 장남이 빼 쓴 5백만원은 현금이어서 더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하다.3월30일 최구청장이 제일은행에서 10만원권 자기앞수표로 찾은 5백만원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수표뒷면의 기록을 확인하려면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봉천동 부동산 매각대금 15억원의 사용처와 전셋집 안방에서 마대에 보관되어 있던 1억2천만원 조성경위등에 대한 수사도 여전히 원점이다.최구청장의 부인 김모씨(52)가 조사를 받다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해 버렸기 때문이다.부인 김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없이 자금흐름에 대한 추적은 사실상 희망이 없다. 경찰이 정치적 파장을 무릅쓰고 22일 상오 새정치국민회의 임채정의원 지구당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한 이유도 알고 보면 여기에 있다.전날 조사과정에서 최구청장의 여비서 이선영씨(25)와 운전기사 이대식씨(39)로부터 『지난 19일 하오 4시쯤 구청장집무실에 있던 선거관련 서류를 임의원 지구당사무실로 옮겼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선거기간동안 최구청장이 직접 쓴 메모지철인 「구청장 활동보고」와 노원관내직능단체 회원명단·자원봉사 지원서등 선거관련 서류를 찾아냈다.그러나 선거비용지출 명세서·재산등록 목록등 대부분의 서류가 선거가 끝난뒤 노원선관위에 제출한 문건들이다.다만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지난 5월31일부터 6월20일 사이에 최구청장이 지역인사및 단체를 만나고 직접 기록한 「구청장 활동보고」에 기대를 걸고 있다.경찰 스스로도 『최구청장에게 사전 선거운동혐의가 있는 만큼 분석할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정기국회 도중 현역의원 지구당사무실을 수색한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적 공세에 시달릴 것은 뻔한 이치이다.가능한한 빠른 시일안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 구속을 각오하면서 돈받은 사실을 털어 놓을 관련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경찰에겐 또 다른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임의원 사무실 수색 정가반응/“서류 지구당 도피 해명하라”­여/“야당 탄압 강력히 대응” 천명­야 경찰이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의 선거법위반수사와 관련,22일 아침 새정치 국민회의 임채정 의원(노원을)의 지구당사무실을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국민회의측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등 이를 둘러싼 정국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민자당은 국민회의측이 최락도 의원과 박은태 의원의 비리와 최선길구청장의 선거법 위반사건 수사에 이어 이번에도 야당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대해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이다. 오히려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정계은퇴 이후에 만든 아태재단이 국민회의의 자금지원 통로가 되는 것을 차단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손학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회의가 이를 표적수사이자 덮어씌우기식의 공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를 왜곡·방해하고 정부 여당을 무조건 공격하는 것이 야당의 임무인 양 착각하는 구시대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왜 구속까지 이른 구청장의 서류가 국민회의 지구당에 옮겨져 보관되었는지 놀랄 뿐』이라면서 국민회의의 해명을 촉구했다. 손대변인은 『아태재단이라는 비영리법인을 끊임없이 편법적인 정치헌금의 통로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자초해놓고 정부여당을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면서 『국민회의는 아태재단과의 관계를 스스로 정리하고 의혹의 소지를 없에고 국민앞에 떳떳이 나서라』고 요구했다. ○…국민회의는 격앙된 분위기속에 강경대응을 천명하고 있다.창당 이후 은밀하게 진행돼 온 「김대중 죽이기」의 일환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무엇보다 임의원이 신당 창당의 일등공신이라는 점에서 이런 심증을 더욱 굳히는 것 같다. 당 진상조사위(위원장 유재건 부총재)는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진 직후 당사에서 회의를 열고 『지금은 국회 회기중이고 특히 임의원은 입법활동과 국정감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한마디 사전통보없이 압수수색을 한 것은 국회 경시풍조의 표본』이라고 비난하고 『잘 모르는 국민들은 마치 임의원이 관련된 것처럼 비쳐질 우려가 있다』며 국민회의와 임의원에 대한 「흠집내기」와 야당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조사단은 이와 함께 경찰측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서울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 때 철저히 따지기로 방침을 정했다. 박지원대변인도 논평에서 『경찰이 국회를 무시한 중대한 사태로 분노한다』면서 『경찰은 무리한 표적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현역의원 지구당사무실의 압수수색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인 임의원도 이날 하루종일 흥분을 감추지 않은 채 『국회 회기중에 현역의원의 사무실을 한마디 말도 없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국민회의는 수사가 현역의원의 지구당사무실을 압수수색할 정도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는 눈치가 역력하다. ◎압수수색 이모저모/「정치적 부담」 고려 한밤 수색 피해/경찰,만일의 사태대비 VTR 촬영 ○…서울경찰청은 21일 하오 9시30분쯤 최구청장의 여비서 이선영씨등으로부터 『임채정 의원 지구당사무실로 선거관련 서류를 옮겼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곧바로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수뇌부회의를 갖고 22일 상오로 연기했다는 후문. 경찰은 정기국회 개회중인데다직원이 아무도 없을 한밤에 현역 야당의원의 지구당사무실을 수색한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우선 고려했다고 설명. 한 관계자는 『처음엔 노원구선관위 직원을 불러 참고인으로 입회시킨 뒤 수색을 벌이는 문제까지 검토됐었다』고 소개. 경찰은 이에 앞서 여비서 이씨들로부터 진술을 받아낸 뒤 「서류이동을 지휘한 최구청장의 비서관인 강현우 비서관이 서류를 소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곧바로 지구당사무실 주변에 수사관들을 배치. ○…경찰은 이날 수색에서 사무실에 자고 있던 이승원 총무부장에게 영장을 제시하며 취지부터 자세히 설명한 뒤 이부장이 넘겨준 선거관련 서류가 든 보따리 2개를 들고 10분만에 철수.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이 과정을 모두 비디오로 촬영하고 지구당 사무국장의 출근을 기다려 압수경위를 설명. ○…경찰은 최구청장이 관악구 봉천동 부동산을 매각하고 받은 15억원 가운데 수표로 받은 10억3천만원의 흐름을 추적하는데 수사력을 집중. 그러나 최구청장의 부인이 병원에 입원해 버린데다 종로경찰서에 수감된 최구청장마저 『어떻게 당선된 구청장인데 내가 말할 것 같으냐』고 완강히 버티고 있어 예상외로 길어질 전망.
  • 「아태」 헌금과 「야당탄압」 주장(사설)

    안방 장롱속에서 현금 1억2천만원과 아태재단에 후원금 5천만원을 낸 영수증이 나온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집 압수수색내용은 충격적이다.범죄조직의 우두머리도 아닌 야당소속 현직 단체장집에서 발견된 그같은 「물증」에 얽힌 불법혐의는 수사당국이 밝혀 낼 일이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비리의혹이 커지는 것은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엄청난 현금과 비정치단체의 후원금이 혹시 야당에 있을지도 모르는 비리구조의 빙산의 일각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위원선출 뇌물사건때도 제기된 문제지만 아태재단후원금이 공천대가인지 아닌지 차제에 명쾌히 밝혀져야 하며 아울러 그 현금이 돈선거와 관련이 있는지,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선거부정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 국민회의측은 누구나 재단의 후원회원이 될 수 있다며 공천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왜 하필 단체장공천자나 교육위원당선자들이 후원회원이 되느냐,그것도 선거철인 5월이냐 하는 의문은 풀어지지 않는다.또 최씨자신은 공천대가가 아니라 김대중 총재를 존경해서 후원금을 냈다고 진술했다지만 존경의 표시를 5천만원으로 한다는 것도 해괴한 일이며 그것이 「국민회의」의 관행이라면 깨끗한 정치를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김총재나 아태재단과 국민회의의 도덕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국민회의측은 최근의 비리혐의자 수사에 대해 『왜 우리만 문제삼느냐』면서 『야당탄압을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문제의 원인은 법을 어기고 부정혐의를 범한 당사자들에게 있지 법집행당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그럼에도 여당이나 정부인사의 비리혐의구속은 당연하고 야당인사는 안된다는 주장은 불법비리를 비호하는 반개혁적인 억지논리다. 신당창당을 통한 계파나눠먹기구조의 청산과 뒤이은 전국구 증원주장,그리고 너무나 당당한 비리혐의옹호등 국민회의의 행태는 기득권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냐하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진실로 부패정치를 개혁하려는 야당이라면 『족발먹은 것쯤이야…』하는 만성적 불감증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 한통분규 75일만에 일단락/수배 노조간부 「자수」 의미

    ◎「핵심」 잇단 구속으로 조직장악에 “한계”/통신개방 발표따라 재연 가능성도 통신대란의 우려를 자아냈던 한국통신사태가 지난달 30일 유덕상 노조위원장과 이해관 노조 경기지방본부장 등 당국의 수배를 받아오던 노조 핵심지도부가 경찰에 자수함으로써 사태발생 75일만에 일단락됐다. 유위원장은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직권중재철회와 총력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뒤 파업 등 모든 단체행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두달반을 끌어온 한국통신사태는 큰 고비를 넘기고 그동안 양측 사이에 이견을 보였던 문제를 수습하는 문제만 남겨 놓고 있다. 유위원장이 자수 직전에 언급한 내용은 『올해 임투패배를 시인하며,파업에 돌입할 경우 득보다는 실이 너무 많아 모든 단체행동을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유위원장의 이같은 발언과 자수행위는 정부의 강력대응책에 더이상 버티지 못한 현 노조집행부의 사실상 「사퇴」또는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써 좀처럼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며 대결국면과 소강상태를 반복해온 한통사태는 돌발적인 변수가 없는 한 어떤 형식으로든 해결점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노조집행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 5월 이래 간부들의 잇단 구속으로 노조의 조직력이 약화돼 실질적으로 전국사업장 동시파업능력을 갖추지 못한데다 3백40여명의 지부장구속 등 노조측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고 국민여론 또한 유리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5월16일 회사측의 노조간부 64명에 대한 중징계발표로 표면화된 한통사태는 정부의 강경대응과 노조의 「준법투쟁」등 단체행동이 이어지면서 파국위기를 맞았으며 노조간부들의 명동성당 및 조계사농성으로 사태가 장기화국면으로 접어들기도 했다. 지난 6월6일에는 노조간부들이 농성 중이던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이어 조백제 사장이 전격경질되면서 이를 계기로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의 가능성이 한때 엿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섭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아 마침내 회사측은 지난 15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중재신청을 냈으며 노조도 이에 맞서21∼22일 파업찬반투표로 파업을 결의하는 등 다시 정면대결의 양상을 드러냈다. 지난 28일에는 임금 5.7% 인상을 내용으로 하는 중노위의 중재재정이 나오자 노조측은 이를 거부,한통사태는 장기전이 될 것으로 우려됐었다. 노조지도부의 전격적인 「패배선언」으로 당분간 당국과의 물리적 충돌가능성은 희박해졌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요인 중의 하나가 한국통신의 민영화문제와 통신시장개방을 둘러싼 대립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통문제가 쉽사리 해소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올 하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한통민영화계획이나 시장개방협상여부에 따라 한국통신사태는 또 한차례 재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통사태 일지◁ ▲5월16일=노조간부 64명에 대한 파면 등 중징계방침 발표.노조 철야농성 돌입 ▲5월22일=노조간부 6명 명동성당서 농성돌입.노조위원장 등 14명 사전영장발부 ▲5월29일=노조,퇴근·점심시간지키기 등 강경투쟁방침 발표.검찰,한통사태 엄단방침발표 ▲5월30일=경찰,명동성당과 조계사측에 농성간부 영장집행 협조요청 ▲6월5일=명동성당,중재안 정부에 전달 ▲6월6일=명동성당,조계사에 공권력투입.농성간부 13명 연행. ▲7월28일=중노위,임금 5.7% 인상 중재재정 ▲7월30일=유덕상 노조위원장,단체행동 중단선언 후 자수
  • 이회장 과실부인… 책임회피 일관/「삼풍」붕괴수사·압수수색 이모저모

    ◎3곳 수색 실시… 뇌물준 증거 확보실패/잠긴 이사장집 열쇠전문가도 못열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 신광옥 서울지검 2차장)는 6일 하오 1시 이 백화점 이준(73)회장의 서울 중구 신당동 399의 46 자택,이한상(42)사장의 서초동 삼풍아파트 21동 503호 자택,서울 동대문구 청평화상가 4층 삼풍건설산업 사무실 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구청 공무원 등에 대한 뇌물수수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는데는 실패. 수사본부는 이회장 집에 서초경찰서 강폭반 형사 3명을 투입,장롱·서랍 등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비밀장부나 예금통장 등을 찾지 못했으며 3중으로 잠겨있는 이사장의 집 현관문은 열쇠전문가조차도 열지 못해 하오 4시쯤 철수. 경찰의 한 관계자는 『백화점측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이미 중요한 서류 등을 빼돌렸을 것으로 보고 이번 수색에서 큰 소득을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설명. 한편 이회장의 집은 대지 2백여평에 건평 80여평의 2층 슬라브 주택으로 주변 땅값을 1평에 7백만원씩 쳐서 14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설명.70년대 중반 1백20여평의 단독주택을 구입한 이회장은 옆집 3채를 더 사들여 정원으로 꾸몄다는 것. ○…서초경찰서에 구속수감돼 있는 이회장은 여전히 백화점 붕괴에 대한 과실부인과 책임회피로 일관,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하오 2시30분쯤 수갑을 차고 서울시청 관계자들과 피해보상단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잠시 유치장에서 나온 이회장은 『사고 직전 왜 대피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백화점은 내 전재산이었다』고 동문서답. 이회장은 또 재산기증 등 구체적인 보상책에 대해서도 『아직 생각해본 바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미안하다』,『할말이 없다』는 등 상투적인 사과발언으로 일관. ○…수사본부는 설계변경을 승인해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수배된 양주환(44·현 중구청 건축계장)씨 등 전·현직 서초구청 공무원 9명을 검거하기 위해 전담반을 편성,이들의 자택과 연고지 등에 급파했으며 법원으로부터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전화도청에 나서는 등 총력. ○…삼풍백화점에 대한 불법 증축허가 등으로 검찰수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서울 서초구청에서는 직원의 대부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사방향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 특히 조남호 초대민선 구청장이 검찰에 곧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지방자치시대에 구민의 대변기관으로 탈바꿈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기도. ○…이날 하오 4시10분쯤 발굴돼 노원 을지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이해경씨(26)의 유족들은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상태여서 사고 당시 차고 있던 예물시계와 반지,제왕절개 수술 자국으로 가까스로 신원을 확인. 남편 임성욱씨(26)는 이제 겨우 84일 된 아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뜬 아내의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 망연자실하며 눈물. 숨진 이씨는 이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다 출산을 앞두고 그만둔 뒤 사고 3일 전인 지난달 27일부터 지하 1층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해왔는데 사고 당일이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었다는 것. ○…지난달 30일 B동 1층 엘리베이터안에 갇혀 8시간여의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진 변동희(50·건축업)씨의 장남인 변성재(20·연세대 전기공학과 1년)군이 이날 상오 아버지가 비명에 숨져간 장소를 찾아 오열. 변군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집안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버지가 지난 89년 작성한 유서를 공개하기도. ○…6일 상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영희국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이 학교 4학년 4반 담임 김영옥(48)교사의 노제는 2백여명의 어린 제자들과 동료,학부모들의 통곡으로 울음바다. 친구들과의 모임 때문에 백화점에 들렀다가 운명을 달리한 김교사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는 20여분 동안의 노제를 마친 뒤 학생들의 비명과 통곡 속에 비가 올듯 잔뜩 흐린 하늘을 뒤로 하고 장지로 향했다. ○…서울시 사고대책본부는 B동 지하 2·3층 주차장에 있는 차량 1백16대의 소유주들이 차량을 빨리 돌려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차량번호 및 소유주 확인작업을 거쳐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정. ○…이번 사고는 동원된 소방인원과 장비의 투입 규모면에서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사건·사고 부문 신기록을 수립할 것으로 소방관계자들은 전망. 서울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현장에 투입된 인원과 장비는 각각 6천2백32명과 1천4백38대로 이제까지 최대의 인원과 장비가 투입된 것으로 기록된 지난해 12월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때의 10배를 훨씬 넘어섰다는 것.구조작업을 위해 부산·대구·광주·인천·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원정을 온 것 또한 전에 없던 일.
  • 검찰 영장집행 제시/선거사무원 구속

    【전주=조승용 기자】 민주당 이창승 전주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조직위원장 김태섭씨(38)의 금품살포 사건을 수사중인 전주지검 수사과는 26일 김씨의 검거를 방해한 선거사무원 강용덕씨(35·전주시 완산구 서신동)를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긴급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강씨는 동료 선거사무원 20여명과 함께 지난 22일 상오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이후보 선거사무실 부근에서 전주지검 수사과 직원이 김씨를 검거하려 하자 이를 적극 제지한 혐의다. 검찰은 또 강씨로 부터 당시 영장집행을 적극 제지한 김모씨(34)등 7∼8명의 신원을 밝혀내고 이들의 검거에도 나섰다.
  • 종교계는 패자가 아니다/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데스크 시각)

    한국통신 노동조합 간부들의 조계사와 명동성당 농성은 공권력의 개입으로 결국 막을 내렸다.이에 대한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당해 종교인 불교와 가톨릭교계 일부에서 반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법에 앞서 자비와 사랑을 앞세우는 종교계가 섭섭히 여기는 입장도 물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국의 고충 역시 컸다는 사실을 이번 한통노조의 농성을 통해 줄곧 보아왔다.일선 경찰서장이 자그마치 7차례에 걸쳐 조계사와 명동성당 성직자들을 찾아 영장집행에 대한 협조를 간청했다.그리고 수도치안 담당 총수 시경청장의 방문도 뒤따랐다.종교의 성소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한 모든 예우를 갖추었다는 생각이다. 국가통치권역 안에서 법집행이 그토록 어려웠던 데는 당초 종교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면 종교 역시 공권력 투입이라는 마지막 장고의 결정을 관용으로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이를테면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는 원칙 앞에서 범법의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두고만 바라다 볼수 없었던 당국의 입장이 그것이다.사회질서 유지 차원에서 방관할 수 없는 불가피한 조치가 아니었나 한다. 우리는 구약시대부터 존재한 도피성의 관행을 익히 알고 있지만,20세기의 마지막 시대인 오늘은 그 때와같은 단순사회가 아니다.모든 사회기능이 서로 얽혀 한 분야가 함몰하면 질서가 하루 아침에 깡그리 무너지는 복잡한 산업사회다.이는 문명의 비극이기도 한데,한통노조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려는 정부의 의도 또한 문명의 혼란을 막자는 데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농성중인 한통노조원들의 연행은 소수의 연행 그 자체보다 더 큰 쪽에 비중이 실려있다. 이탈리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쓴 뉴욕의 겨울 갑작스런 정전에서 비롯된 가상적 이야기를 떠올리면 통신노조가 파업으로 가서는 안된다.뉴욕 전체가 혼란의 아비규환을 이루는 이 끔찍한 이야기는 우리 통신망이 마비될 경우 실제 상황으로 다가 올 수 있다.국가의 중추신경이 끊길지도 모를 한통의 파업을 막아보려는 이번 경찰의 조계사·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을 사회전체가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지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종교는 땅에 서서 하늘처럼 높은 지고의 선을 추구하는 깨우친 인간그룹이다.그래서 종교의 본연과 세속적 현실 사이에 더러 갈등도 표출되지만 조화를 필요로 할 때가 더 많다.특히 사회규범을 성화시키고 질서 유지에 공헌할 수 있는 주체의 하나가 종교라면 도덕성을 지닌 정부와의 공존은 반드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종교의 정치예속 내지 탄압을 일삼던 시대의 정권이 아닌 오늘의 정부와 공존하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한통노조 농성장의 공권력 투입을 엄밀히 따지면 승자도 패자도 없다.농성 노조원을 본의아니게 내준 종교계는 더욱 패자가 아니다.그렇다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서도 안된다.왜냐하면 이번 사태로 국가의 장래에 미칠 영향을 숙고하면서 성숙한 종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당국의 공권력투입 불가피성을 관용으로 덮어두는 것도 종교의 아량일 수 있다.
  • 사장­대리점 등 연결/전화·팩시밀리 개설/동양화재

    동양화재는 7일부터 설계사와 대리점 대표,임·직원들이 박종익 사장과 직접 대화하고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사장실과 사장집에 직통전화와 팩시밀리를 개설한다.
  • “통신시설 경비 철저”/정통부·한통 긴급 대책회의

    ◎일부노조원 과격행동 대비/“새 집행부 조속구성” 대화 촉구/회사측,노조 PC통신 서비스 중단/노조 “국민지탄 받을 일 말자” 주요 통신시설에 대한 돌발사태가 우려되는 가운데 정보통신부는 6일 하오2시 경상현 장관주재로 정통부와 한국통신 주요간부들이 합동대책회의를 열고 한통노조 농성간부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집행에 따른 향후대책을 논의했다. 경 장관은 또 조백제 사장 등 한국통신간부들에게 『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를 강성노조원의 과격 돌출행동에 대비해 어떤 경우에도 통신시설운영이 지장이 받는 일이 없도록 주요 통신시설에 대한 경비와 점검을 철저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경 장관은 『수배중인 유덕상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노조간부들이 하루빨리 자수해 그간의 불법행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고 조속히 직무대행자를 지명,임금과 단체협약등 산적한 노사현안을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통신직원들의 동요방지대책과 통신시설 손괴방지및 비상시 통신망운용대책등도 논의됐다. 이에 앞서 한국통신은 농성노조간부들이 연행된 직후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노조측의 불법적인 단체행동 가능성에 대비해 수배중인 노조위원장의 명령체계차단,과격행동자의 현장체포요청등 적극 대응키로 했다. 이에 따라 회사측은 그동안 유노조위원장의 투쟁명령등을 게시해온 PC통신서비스 하이텔의 폐쇄를 요청,한국통신노조통신망(KTTU)이 이날 낮 12시40분부터 서비스가 중단됐다. 한편 노조는 통신망이 폐쇄되자 하이텔의 일반게시판을 이용,전국 각 지부장에게 비상대기할 것과 지시사항외에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노조 전북지방본부 이갑열 위원장은 하이텔게시판을 통해 유덕상 위원장의 건재를 알리고 『돌출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이를 이용해 노조를 말살시키려 할 것이므로 우리는 인내하고 국민의 불편등 국민에게 지탄받을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노조측은 이날 공권력투입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지부별로 현충일행사와 함께 공권력투입규탄대회를 가졌으며 위원장의 별도지시가 있을 때까지 일단 위원장의 투쟁지침 2호에 따른 투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 명동성당·조계사/공권력 금명 투입/검찰 “농성한통노조원 영장집행”

    한국통신 노사분규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은 5일 조계사와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한국통신 노조간부들을 검거하기 위해 금명간 공권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검찰고위관계자는 이날 『미리 구속영장이 발부된 한국통신 노조간부들이 농성장에서 계속 노사분규를 지휘하며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있어 공권력의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공권력 투입을 위한 시기 선택만을 남겨 놓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서울지하철노조와 현대중공업등이 쟁의발생신고를 하고 조폐공사가 6일부터 준법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하는 등 최근의 노사분규 움직임이 다른 사업장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한국통신 사태를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검 공안부(안강민 검사장)는 「민주노총준비위」와 「공공부문노조대표자회의」등 법외노동단체에 가입한 대형 사업장들의 쟁의행위가 이들 법외단체의 지침에 따른 연대파업의 성격을 띨 때는 노동쟁의조정법 위반등으로 주동자를 전원 사법처리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했다. 검찰은 『「민주노총준비위」가 올 임금투쟁조건에 포함하도록 소속 노조에 지시한 「사회개혁 5대항목」은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아니라 명백한 정치투쟁에 해당되므로 이와 관련된 쟁의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불법농성·시위 법적용 엄격히”/시민들

    ◎한통사태등에 공권력행사 촉구/“사찰·성당이 치외법권 지역인가/영장 조속집행… 사회기강 확립을” 엄정중립을 생명으로 하는 공권력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국가전복 기도로까지 규정한 한국통신사태의 주요 관련자인 노조간부들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벌써 14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1천3백여명의 대학생들이 휴일인 4일 서울 도심에서 「노동운동 탄압 분쇄」를 주장하며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른 것도 공권력의 무기력 현상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그렇지 않고서야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나 통했던 폭력·과격시위가 어떻게 또다시 고개를 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시민들의 우려다. 특히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관할 경찰서장의 법집행을 위한 협조요청이 명동성당과 조계사 관계자들에게 7번째로 거부당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실정법을 어겨 영장이 발부된 사람이라면 종교단체 안에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당연히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더러는 『공권력이 법원으로부터 정식 발부받은 구속영장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사회기강이 바로 서겠느냐』고 답답해했다. 종교계의 거부자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경찰의 영장집행이 번번이 거부당하는 기묘한 사태를 지켜본 성균관대 이광윤(법학) 교수는 『법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문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지난날 군사정권 때의 점거농성과는 그 성격이 판이한 만큼 국가기강 확립을 위해서도 공권력의 법집행에 있어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화여대 김석준(행정학) 교수는 『노조간부들의 농성은 본질적으로 천주교와 불교계,그리고 정부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이같은 사태에 정부의 책임도 일부 있지만 법집행은 공정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국대 이황우(경찰행정학) 교수도 『구속영장이 발부된 형사피의자에 대한 법집행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히고 『법집행을 하지 않는다면 공평성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모순점을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섭 변호사는 『판사가 발부한 영장을 집행하는 것은 법집행의 정당한 절차이므로 명동성당의 반대와 조계사측의 성명서 발표는 궁극적으로 농성 노조원들을 비호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사찰과 성당이 현행법상 치외법권 지대가 아니므로 공권력은 영장을 집행,하나의 선례를 남겨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동국대 이상현(경찰행정학) 교수는 『현재 사찰과 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노조간부들은 다른 공공부문의 노조나 한총련등 외부세력의 지지나 추종을 얻어 연대농성등 분위기 확산을 꾀하면서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 가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정부가 공권력 행사에 신중을 기하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면 최상책이겠지만 공권력의 단호한 행사도 현실적인 차선책』이라고 강조했다.
  • 누구를 위한 「성역」 인가/김원홍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한국통신 노조간부들이 농성중인 명동성당과 견지동 조계사가 국가 공권력 집행을 놓고 10여일간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가톨릭과 불교는 이들 농성장이 종교적인 「성역」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가지고 방문하는 경찰관들의 법 집행을 사실상 가로막고 6차례나 되돌려보냈다. 수사당국은 성당과 사찰은 신앙인들의 종교를 위한 성역이지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의 사람들에게 도피처로 제공되는 면책의 성역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그래서 법집행은 당연한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계사는 『성스러운 도량에 쫓겨들어온 중생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불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자비를 앞세운다.또 명동성당은 『억울하게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그 울분을 토로해온 장소』라며 지난 시대의 관행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나 사찰을 19세기 중반 열강의 개항지에 존재했던 치외법권적인 조계(조계)로 여겨서는 안된다.국가의 통치권역안에 들어있는 특수한 장(장)일 뿐이다.더구나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의 하나가 질서속에 깃들인 세속의 평화라고 한다면 법질서 또한 준수되어야한다.그것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일 수도 있다. 종교계는 공권력이 개입할 경우 연대투쟁을 공언하는등 위기감마저 안겨주고 있다.종교계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시민들이 긍정적인 눈길만을 보내는 것은 물론 아니다.구속 영장이 발부된 노조원들은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화 투쟁이나 인권투쟁을 하기 위한 투사가 아니다.엄밀하게 말하면 불법적인 노조활동으로 사전 구속영장이 떨어졌기 때문에 범법혐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의 기독교 국가들의 교회에서도 실정법을 어기고 피신한 범법자들을 설득해서 내보내거나 영장집행에 협력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종교가 범법자들을 공개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종교계에서도 실정법과 종교의 관용 사이에 갈등을 느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과거 유신헌법 당시 반정부 인권투쟁을 할때나 군사 독재시대의 민주화 투쟁을 하던 암울한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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