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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선거 정당공천 전면 배제”/확정된 여 제도개선안 내용

    ◎정무직 공무원의 정당활동 허용/검경중립·방송법 야안 수용 불가 신한국당이 국회 제도개선특위에서 제기할 자체 제도개선안을 확정했다. 신한국당 김중위 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은 29일 열린 당무회의에서 당내 특위 소속 의원들이 마련한 당의 구체적인 개선안을 보고,추인을 받았다. 개선안은 선거법과 정당법·정치자금법·국회법 분야에 대해서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광범위하고 중장기적인 제도개선에 무게를 실었다.그러나 야당의 정치공세가 예상되는 검·경중립화 방안과 방송법개정문제는 구체적인 안을 추진하기 보다 일단 「야당안 수용불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특히 이번 개선안에서는 최근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서도 「금권선거풍토와 지역할거주의 병폐해소 방안을 강구한다」며 포괄적으로 언급,주목된다. 다음은 개선안 내용이다. ▷선거법·정당법◁ 첫째,선거제도에 대해서는 금권선거풍토와 지역할거주의 병폐를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이를 우선 지방의회선거부터 실험적으로 운영한다. 전국구 후보공천의 민주적 절차를 확보하고 투명성을 제고한다.이를 위해 국회의원 총선에서 5석 미만 또는 10%미만(현행 5%)에 대해 전국구의석 배정을 배제한다.지역구 총의석수 또는 의원총수에 대한 일정 비율(또는 의석수)로 전국구 배분(현행은 지역구,전국구 구분 없이 의원정수를 2백99명이내로 명시)을 법제화한다.행정의 컴퓨터화로 선거운동기간을 단축한다.선거공영제를 확대하고 선거과열을 막기 위해 현수막과 소명함을 없앤다.인터넷·컴퓨터통신에 의한 선거운동에 대해 규제제도를 마련한다. 둘째,지방자치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정당공천을 전면 배제하고 광역(단체장·의원)과 기초(단체장·의원)선거를 분리 실시한다.지방의회의 선거구제와 의원정수를 재조정한다. 셋째,지방행정계층구조의 개편을 장기적으로 추진한다. 넷째,정무직 공무원의 정당활동을 허용한다.여기에는 정부부처 차관과 대통령비서관,국회 정·부의장 비서관 등이 포함된다.이는 (93년 정치관계법 개정시)입법착오를 시정하기 위한 차원이다. 다섯째,여성 정치참여를 제고한다. ▷정치자금법◁ 첫째,국가보조금의 총액과 교섭단체 대상의 일괄 배분액을 축소한다. 둘째,평상시 기본 운영비와 정책활동비로 용도를 제한한다. ▷국회법◁ 첫째,국회품위 제고를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이를 위해 원구성후 최초의장 직무대행규정을 개정한다.구체적으로는 (최초의장을)최다선의원중 연장자로 선임하고 「산회불가」규정을 명문화한다.국회윤리법(규정)의 제정을 추진하고 징계조치의 실효성을 확보한다. 둘째,예결위제도를 보완하고 국정감사기능을 강화한다.이를 위해 예·결산안에 대한 심사기능의 실질화를 유도한다.또 국정감사·조사법의 개정을 통해 국정감사제도를 활성화한다. 셋째,의원입법 지원과 보좌기능을 강화한다. ▷검·경중립화·방송법◁ 야당의 주장에 대해 수용불가원칙을 고수한다.
  • 돼지꿈 꾸고서 복권들 샀다던데(박갑천 칼럼)

    꿈은 예나 이제나 신비롭다.과학만발한 요즘에도 신문에는 가끔씩 믿기 어려운 꿈얘기가 나온다.꿈에 신선(조상)이 나타나 일러준대로 가서 산삼을 캤다는 따위.얼마전 주택은행이 고액복권 당첨자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그게 보인다.꿈이 좋아 복권을 샀다는데 돼지꿈이 많다.미련하다면서 끙짜놓는 돼지가 꿈에는 왜 좋다는건지. 선인들의 글에도 꿈얘기는 많다.돌아간 조상이 추레하게 나타나 집이 불편하다고 호소해서 가보면 묘소가 허물어져있고 고치면 다시 나타나 고맙다고 인사까지 한다.엄발난 후손에게 닥쳐온 위험을 알려주는가하면 자신을 죽인 범인을 사또에게 에둘러주어 원한을 풀기도 한다.꿈에 역력히 가르쳐준대로 글을 지어 과거에 합격한 사례도 있다. 이런건 우리만의 얘기도 아니다.베르그송의 「꿈과 철학」에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타르티니 얘기가 나온다.그가 소나타를 작곡하려다 잠이 든다.그런데 꿈속에서 악마가 그의 바이올린으로 그가 생각했던 곡을 연주한다.깨어나서 악보에 옮긴 것이 유명한 「악마의 소나타」라 한다.프로이트가 그의 「꿈의 해석」에서 『꿈의 본질은 소망충족이다』고 했던 까닭이 이런데 있었던 듯하다. 꿈을 꾸는 일상을 사는 인생은 이승의 삶 그자체가 꿈이 아닌가 생각할때가 있다.『인생은 한마당봄꿈(인생일장춘몽)』이라 탄식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장자」(재물론)의 호접몽도 그맥락이다.­어느때 장주가 꿈을 꾼다.꿈속에서의 그는 한마리 호랑나비였다.문득 잠에서 깼다.장주가 호랑나비된 꿈을 꾼것일까,아니면 호랑나비가 장주된 꿈을 꾼것일까.여기서 출발하여 한단지몽이네 남가일몽이네 하는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못이루는것을 꿈에서나마 이루려한다.그러면서 꿈을 이상이란 뜻으로 쓰고있다.꿈을 좇으며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노발리스의 「푸른꽃」(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도 그냄새를 풍긴다.독일 로망파 최고의 시인답게.주인공 하인리히는 꿈에서 푸른꽃을 본다.다가가니 꽃은 아름다운 얼굴로 바뀐다.나중에 알게된 여인 마틸데가 그얼굴임을 느낀다.꿈속에서 그여자는 푸른물속에 잠기고 꿈그대로 그 여자는 죽는다.「장자」의 호접몽을 생각게한다.푸른꽃은 사랑이자 시이며 신이기도한 꿈이며 이상이었다.꿈이 현실이던가.현실이 꿈이던가. 인생사 모두가 한마당 봄꿈인것을.너무들 걸쌈스럽고 감때사납게 안달복달하며 살고 있는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 표 더얻고도 “억울한 낙선”/14개월만에 시의원 당선

    ◎남원시 재검표 결과 1표차로 승리 【전주=조승진 기자】 지난 6·27지방선거에서 상대후보 보다 1표를 더 얻고도 같은 수의 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되는 바람에 시의원자리를 연장자인 상대후보에게 내줬던 정준식씨(43·전북 남원시 주천면)가 1년2개월동안의 법정공방끝에 시의원자리를 되찾게 됐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지창권대법관)는 지난 23일 6·27지방선거에서 남원시의원에 당선됐다 재검표결과 상대후보보다 1표가 적어 당선무효결정이 난 노상순씨(60·남원시 주천면)가 전북도선관위원장을 상대로 낸 당선무효결정무효확인소송에서 노씨의 상고를 기각,원고패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따라서 남원시 주천면 시의원은 노씨에서 14달만에 정씨로 바뀌게 됐다.
  • “고문서토대 국학연구 본격화”

    ◎정신문화연구원,제4기 진흥연구사업 계획 발표/「장서각」 고자료 등 단순 수집정리서 탈피/번역·주석작업 중점… 실질적 뒷받침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원장 이영덕)이 고전적 조사연구와 고문서 수집을 토대로 영인본 발간 등 국학자료의 본격적인 출판을 골격으로 한 제4기(97년 5월31일까지) 국학진흥연구사업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국학진흥사업은 정문연이 지난 93년부터 교육부의 특별지원아래 장서각자료 연구를 비롯,전국에 흩어진 고문서와 근대사자료를 수집·발굴·정리하는 정문연의 가장 핵심적인 연찬사업.이가운데 「장서각 고자료 연구사업」은 구 왕실도서관이었던 장서각의 도서가 어떻게 수집 보관돼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함께 그 장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다.지난 해까지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이재 황윤석(이재·1729∼1791년)의 초서로 된 일기를 탈초,정리한 「이재난고」 두권을 발간했으며 장서각 소장 금석문 탁본자료 정리와 함께 장서각 도서의 해제를 준비해와 「장서각의 역사와 자료적 특성」,「구결자료집」등 국학연구에 귀중한 새 자료들을 발굴 정리해 출판했다.또 「고문서 조사연구사업」은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고문서를 수집 정리해 소장자 중심으로 「고문서집성」을 발간하는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완할 수 있는 생활자료의 의미를 갖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지금까지 20여만점을 수집해 이가운데 극히 일부 자료만 영인,출판해놓고 있다. 정문연이 제4기에 추진할 사업들은 이같은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실질적으로 한국학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자료제공측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우선 「고전적 연구조사」에서는 지난해 집필된 해제원고를 정리보완해 간행하는 한편 장서각 소장 금석문 탁본자료를 영인,인쇄해 상세한 해제를 붙여 두권으로 간행한다는 계획.이와 함께 장서각 자료중 희귀본,유일본으로 지목된 「희현록」「석운일기」「예기대문언속」「낙점)」「증보 만병회춘」중 두권을 택해 영인하면서 구두와 해제를 붙여 출판하고 「이재난고」 3권을 간행,탈초한다. 「고문서 조사연구」사업으로는 충청남북도와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서원 향교 사찰및 사가에 소장된 고문서 전적류를 최대한 조사·수집·정리하며 이미 조사된 전남과 경상남북도에 대한 추가조사를 벌여 3만여점을 조사·수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또 수집자료를 평판작업과 분류·목록·문서번호 부착과정을 거쳐 마이크로필름화해 출판작업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정문연 정구복(자료조사실장)교수는 이와 관련,『지금까지의 국학진흥 사업이 주로 고문서 수집차원인 1차사업에 치중해왔으나 이같은 작업이 한국학 연구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선 본격적인 해제와 번역,주석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정부와 대학,지방 향토사학자,사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조선족 이주 역사(송화강 5천리:2)

    ◎30년대 일제이민정책에 1만가구 정착/“주택·식량 제공” 감언이설에 속아 집단이주/「만척」서 안전촌 건립… 항일 세력과 연결 차단/부여국­고구려­발해 고대사 무대… 아직도 조선지명 남아 송화강의 큰 원류는 두 갈래가 있다.이도송화강인 이도백하 말고 두도송화강이 그 원류다.두도송화강은 이도송화강을 이도백하라 하는 것처럼 그냥 두도강이라고도 한다.그런데 두도강은 본래 두갈래 물줄기가 합수하여 강을 이루었다.두도강의 한 갈래는 만주어로 어허러인(액혁낙인)이고,다른 한 갈래는 역시 만주어로 사인러인(새인낙인)이라는 이름를 가지고 있다. 어허러인은 백두산 옥설봉에 쌓인 만년설의 눈이 녹아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그래서 낙차 57m나 되는 큰 폭포에서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군을 이루었다.물이 급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일명 긴강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비해 사인러인은 완만하다는 뜻을 가졌거니와 강의 흐름도 온화했다.일명 만강이라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부여족 유적 대량 발굴 이들 두 물줄기는 화라자에서 합수했다.바로 두도강인 것이다.두도강은 2백30㎞를 달려서 길림성 화전시 백산진 양강구에서 이도백하를 만나 드디어 합류,장강다운 송화강 물길을 잡아나갔다.송화강유역은 비옥할 뿐 아니라 광활했다.이 풍요로운 땅에 세운 맨 처음의 읍락국가는 해모수를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이었다.「자치통감」기록에 나오는 첫 도읍지 녹산지도는 그 어디인가. 오늘날 길림시에는 동단산성과 동단산 평지성,용담산성이 있다.근래 동단산 부근에서는 대량의 부여족의 문물(문화재)이 발굴되었다.금 은 동 철제유물과 도자기 옥석 칠기 등의 유물만 해도 8천여점에 이른다. 또 1978년 동단산 서쪽 서단산 무덤군 돌널무덤에서는 무덤주인공의 머리를 감싼 모직물이 나왔다.양털과 개털을 꼬아 실을 자아내고 이를 천으로 짠 것이다.간단한 직조기를 사용하여 짠 이 모직물은 부여족의 문화가 상당 수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동단산 일대는 광개토대왕 시기에도 고구려 판도였다.오늘날 길림시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은 용담산성이다.용담산은 산 자체가함지박처럼 중간이 낮고,사방은 높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산세를 했다.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황토와 자갈로 쌓았다.높낮이는 일정치 않았다.성 서북쪽에 있는 길이 53m,너비 26m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다.이 연못은 1만㎥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인공 못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용담산성 망루자리에 올라서면 성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송화강과 강 양안에 우뚝우뚝 솟은 길림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조망되었다.망루에 올라 문득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질하고 있을때 피맺힌 비명이 들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서기 668년 2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공격을 받고 울부짖는 고구려군사들의 비명이….고구려는 용담산성에서 패하고 다시 군사 5만을 모아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이후 한 때는 발해가 용담산성의 주인이 되었다.그러나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그 역사의 체취가 배인 송화강유역으로 조선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압록강유역이나 두만강유역에 비해 훨씬 뒤의 일이다.1922년 「동북3성실황」은 이를 뒷받침했다.당시 두만강유역 화룡,연길,왕청 3개현의 조선족은 44만4천4백20명,송화강유역인 안도,돈화,길림,장춘은 4만5천6백명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리고 흑룡강성에는 고작 6백61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송화강유역의 조선족 이주민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두만강과 압류강 이주민들의 재이주,러시아 이주민들의 유입,일제 이민정책에 의한 집단이주 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은 일제 이민정책과 맞물린 한반도로 부터의 조선인 집단이주가 차지했다.일제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고 동북에다 중국내지와 동남아를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만들 목적으로 이민정책을 서둘러 폈다. ○동남아 침략 병참기지화 그들이 1936년 8월 입안한 이민정책에는 2년내에 일본인 1백만가구 5백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이와함께 일본은 1만가구의 조선인 농민들을 동북지방 23개현으로 집단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일본 이주민들도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큰 성과는거두지 못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망무제한 북지대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가기만 하면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조선총독부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다.그래서 조선농민들은 이주증을 받기가 무섭게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그 당시 집단이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길림성에 살고있다.장춘시의 정병남(71)노인도 그런 이주민의 한 분이다.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태생인데,당시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우리는 1937년 2월에 길림성 유하현에 도착했습니다.함평군 함평면,대동면,광주 송영리에서 각각 열다섯 가구씩 마흔다섯 가구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지요.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 다시차란 데에 떨어지니 집은 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어요.언땅에 막을 칠 수밖에….만주척식회사(만척)에서 뜬 수수와 좁쌀을 주어 그나마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냥 준 것이 아니라 변리곡이었지요.일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갚고나면 식량이 없어요.또 만척에서 변리곡을 다시 먹어야 했습니다.빚은해마다 늘고….광복이 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노예로 살았을 겁니다』 유하현 삼원포는 조선독립운동 진원지의 하나였다.1911년에 경학사가 서고 나서 신흥무관학교,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다.그런데 일제의 수탈기관 만척은 이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안전촌을 만들었다.경찰을 주둔시키고 무장자위단을 조직했다.마을마다 소총 열자루와 권총 한자루씩을 내주었다.그리고 양민증이 없으면 마을을 드나들지 못했다.항일세력들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양민증 없이 출입못해 집단이주민 무장화 과정에 나타난 유명한 무장자위단은 1944년에 조직한 풍향의용개척단이다.조선에서 보통학교 고등과를 나온 청년 90명을 모집,유하현 대통구촌 신가가에 이주시켰다.이들은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군사·농업조직이었다.단장을 비롯,군사교관·청치교원 등의 간부는 모두 일본인이 맡았다.조선인 단원 20명은 뒷날 관동군에 편입되었다.일인 간부와 조선인 단원들은 휴가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식솔들까지 데려와 살았다. 오늘날 송화강유역에는집단이주민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조선족이 있든 없든 간에 한반도 군명에서 따다 만든 마을 이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유하현에서는 아직도 창성,벽동,가평이라는 이름이 보였다.또 안도현에는 금화,원주,고성,장수,정읍,김제,익산마을이 있다.이밖에 두군의 이름을 딴 청흥(북청·신흥),안산(진안·익산)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양양이라 한 조양마을이 존재했다.이들 마을 이름에서 집단 이주민들의 진한 노스탤지어를 읽었다.
  • 대학운동권 계보(한총련의 실체:5)

    ◎강경주사계 「자주파」가 조직 장악/강력 반정투쟁 주장… 분파싸움 승리/한총련 조통위·정책협 등 실질 주도/온건NL파·PD파완 앙숙… 조직 별도 운영 지난 93년 전대협의 후신으로 출범한 한국 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전국적인 조직이다. 운동권내의 모든 계파는 물론 비운동권도 포함,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총학생회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한총련은 출범 당시부터 민족해방(NL)계열이라는 학생운동권내의 다수파가 장악해 왔다. 이번 연세대 폭력시위를 주도한 현 제4기 한총련의 지도부는 NL계 가운데서도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맹신하며 강경파로 분류되는 「자주파」다. 「자주파」의 한총련 장악은 학생운동의 쇠퇴와 이에 따른 운동권 내부의 치열한 분파투쟁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운동은 지난 87년 「6·29」선언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줄곧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반독재 투쟁이라는 명분이 퇴색하면서 학생운동은 학생들의 관심권으로부터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94년 제2기 한총련 출범 직후 서강대 박홍 총장의 운동권 실체폭로도 운동권을 위축시키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물론 대외적으로 소련 등 동구권의 몰락도 운동권의 사상적인 기반을 와해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에 따라 90년대 초반만해도 전체 대학생의 5% 수준까지 달했던 운동권 추종학생들이 올해는 0.5%도 안되는 3만여명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지난해의 「8·15 통일 대축전」에는 2만여명이 참가했으나 올해는 그 규모가 8천여명으로 줄어든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학생운동이 이처럼 몰락의 길을 치닫자 「과감한 정치투쟁에 의한 운동권의 위상제고」를 내건 「자주파」가 운동권내 분파투쟁에서 승리,올해 한총련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현재 운동권에서 「자주파」 등 NL계열과 대립하는 분파는 우리 사회를 계급사회로 규정,계급투쟁을 우선시하는 「민중민주주의」(PD)계열이다. 80년대초 삼민투시절 운동권을 장악했던 PD계는 지난 86년 건국대 사건 때 지도부가 대량 검거되면서 87년부터 주도권을 NL계에 빼앗겼다.소수파로 전락한 PD계는 한총련에 가입해 있으면서도 92년부터 「전국 학생연대」라는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이들의 영향력은 극소수의 조직원과 서울·대전·부산지역 11개 대학 학생회에만 국한돼 있다. 이들은 지난해 한총련 의장자리를 놓고 NL계와 표대결을 벌인데 이어 올해는 한총련의 차기 주도권을 겨냥,꾸준히 세력을 규합 중이다.이들은 올 한총련 대의원대회 및 출범식 때는 NL계의 간부독점과 친북적 투쟁노선 결정에 반발해 독자적인 대회를 가졌다.이번 연세대 「통일축전」에도 참가를 거부,서강대에서 독자적인 8·15 기념행사를 가질 정도로 NL계와는 앙숙관계다. NL계내에서도 2개의 분파가 있다.지난 94년 김일성사망이후 NL계에서는 김정일체제 추종문제로 분파투쟁이 일어나 「자주파」와 「사람사랑파」로 분열됐다. 「자주파」는 학생운동이 온건노선으로 방향을 틀면서 쇠퇴했다며 운동권의 입지확보는 강력한 정치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타 계파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총련의 주요 목표를 반미반정부 투쟁과 연방제·국가보안법 철폐 등 친북적 정치투쟁으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한총련의 단결을 위해 간부의 일정수를 다른 운동권 분파에 배분하던 전례를 무시하고 각 지역 총련의장·조통위원장은 물론 정책협의회·중앙상임위 등 요직을 독식했다. 「사람사랑파」는 주체사상에서 한발 비켜서는 대신 정당형태의 합법운동을 지향한다.따라서 「자주파」에 비해 온건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자주파」가 주도한 「통일 대축전」과는 별도의 기념행사를 가질 정도로 「자주파」와는 담을 쌓고 있다. 이밖에 NL 및 PD계 양쪽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결성한 「21세기 연합」이 6개 대학 총학생회를 장악하고 있다.
  • 미 개혁당 페로 대선후보 지명

    【밸리 포지(미펜실베이니아주) 로이터 AP 연합】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17일 자신이 창당한 개혁당의 대통령후보 지명투표에서 승리,대선후보로 지명됐다고 루스 버니 개혁당의장이 밝혔다. 버니 의장은 이날 최종개표 결과 페로는 총 투표자의 65.2%인 3만2천1백45표를 획득,34.8%(1만7천1백21표)의 득표율을 올리는데 그친 경쟁후보 리처드 램 전콜로라도 주지사를 제치고 개혁당 대선 후보자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 서울/이틀에 한번꼴 소나기/기상청,7·8월 통계 분석

    ◎7월에는 14일·이달 10일까지 5일 내려/북태평양 고기압안족 위치 기층 불안정 지난달부터 서울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소나기가 내렸다.기층의 불안정 때문이다.예측 자체가 어려우므로 항상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상청은 11일 서울에서 지난 7월에 14일,이달들어 10일까지 닷새에 걸쳐 소나기가 내렸다고 밝혔다. 7월 한달동안 전주에서는 9일,대구·대전 8일,광주·강릉에서 7일에 걸쳐 소나기가 내리는 등 북태평양 고기압의 안쪽에 위치,대기가 비교적 안정된 지역에서도 평균 사나흘에 한번꼴로 소나기가 내렸다. 관측이 되지 않는 국지적 소나기까지 고려하면 실제 소나기가 내린 날짜는 기상청 통계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소나기는 원래 한정된 지역에 기습적으로 내리는 것이어서 내리는 지역과 시간·강우량 등을 정확하게 예보하기 어렵다고 기상청 관계자는 설명한다. 최근 중부지방의 잦은 소나기는 우리나라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따뜻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북쪽의 찬공기가 만나면서 대기가 매우 불안정해지면서 생겼다. 반면 남부지방에 국지적으로 내리는 소나기는 지표면의 기온이 올라가 급상승하던 공기가 상층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열대성 소나기인 「스콜」(Squall)이 이에 해당한다.습기가 많은 지역에서는 대체로 하오에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 파키스탄/모헨조다로:상(세계 문화유산 순례:5)

    ◎BC 2,500년에 세운 완벽한 계획도시/벽돌 8천만장 소요 추산… “인더스문명의 꽃”/대욕탕에 상·하수시설… 도로는 벽돌포장/기능별로 구역 배치… 요새유적이 중추 인더스문명의 꽃 모헨조다로.파키스탄 신드지방 라르카나에 있다.카라치에서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신크리를 우회하여 2시간만에 모헨조다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황토지대에는 벌써 불볕이 깔렸다.그래서 메마른 문명의 구릉모헨조다로는 말 그대로 「죽음의 언덕」처럼 보였다. 비행장에서 4∼5㎞쯤은 될까.그리 멀지 않았다.모헨조다로 초입의 요새유적은 약간 경사진 비탈에 흙을 돋우어 만든 인공언덕 기슭을 깔고 앉았다.작열하는 불볕을 이기지 못하고 고운가루로 바스러진 황토흙과 벽돌이 어울린 모헨조다로의 색깔은 붉었다.인더스강이 범람하면서 밀어붙인 황토흙으로 벽돌을 구워 건설한 모헨조다로는 애초부터도 붉은색 도시였다. 그 요새유적 어귀에 모질게 자란 가시나무 한그루가 무척이나 반가웠다.신드말로 간디라는 가시나무는 그런대로 불볕을 가려주었으나,유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곧 시작되었다.높이 21m에 지나지 않는 인공언덕의 벽돌계단이 극악스러운 더위로 해서 코밑으로 바싹 다가왔다.그리고 정상에 올라 진흙과 벽돌을 섞어 만든 거대한 탑파(수투파)를 만났다. 요새유적 정상의 탑파는 모헨조다로를 얼핏 불교유적으로 착각하기 딱 알맞았다.1922년 이 유적을 처음 조사했던 영국 고고학자 RD배너지도 모헨조다로를 불교유적으로 보고 탑파 주변을 발굴했을 정도였으니까….실제 AD 200년쯤 쿠산왕조시대의 동전이 나오기는 했다.그러나 탑파 주변을 더 깊이 파들어가서 생전 보지못했던 인장한 점을 발굴해냈다.그 인장은 바로 세기적 유물로,모헨조다로가 인더스문명 유적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공한 단서가 되었던 것이다. 모헨조다로는 BC2500∼1700년까지 8백년동안 번영을 누렸던 도시다.그러니까 요새유적의 탑파는 모헨조다로가 멸망한 이후 1천9백여년이 지나고 나서 파괴된 모헨조다로 유적지 위에다 쌓아올린 불교유적인 것이다.어떻든 모헨조다로 사람들은 다른 세계가 거의 신석기시대를 살 무렵에계획된 도시를 건설했다.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도시 면적은 어림잡아 4천8백여㎡를 웃돌았을 것으로 보고있다. 오늘날 모헨조다로 유적은 편의상 네 블록으로 나누어 블록마다 고유부호를 붙였다.블록의 부호는 발굴자들 이름에서 약자를 따다 만든 것인데,요새유적은 SD구역으로 되어있다.인공의 언덕,다시 말하면 토루가 있기때문에 요새로 불리는 이 유적은 도시의 중핵이라 할 수 있다.정상에 올라서면 동남과 동북쪽으로 펼쳐진 주변 도시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요새유적(SD구역)에는 아주 중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중요한 건물은 큰 욕조가 있는 대욕탕이다.길이 12m,너비 6.9m,깊이 2.4m의 벽돌탱크가 설치되었다.욕조바닥 벽돌의 가장자리를 석고로 모르타르한 대욕탕은 방수처리가 완벽했다.욕조의 물은 세 개의 우물로부터 공급받는 상수도시설과 물을 빼내 흘려보내는 배수 및 하수도 시설도 갖추었다.대욕탕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에는 작은 욕조가 딸린 방들이 따로 있다.깨끗한 물을 늘상 공급받아 몸을 청결하게 가꾼 성직자들의 전용공간인 것이다. 대욕조를 돌아보고 나서 눈길을 끄는 건물터 하나가 골목 건너에서 기다렸다.네 개의 통로가 난 건물안에는 벽돌 스무남은장씩을 포개 쌓은 주춧대가 늘어 섰다.그 주춧대는 지붕 버팀기둥 자리였을 법한데,건물안 홀 넓이는 26㎡를 헤아렸다.고고학자나 문명사에 관심을 둔 전문가들은 이 건물을 종교집회를 위한 성소로 보았다.이 성소건물은 모헨조다로의 다른 블록 DK지역에서 발굴한 족장의 저택과 함께 도시사회의 통치기능과 체제를 가늠할 수 있는 유적이기도 했다. 모헨조다로를 와서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위대한 도시라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그까짓 벽돌을 쌓아 건설한 도시가 별 대수로우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BC 2500년쯤 도시계획에 의한 완벽한 도시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모헨조다로 사람들 말고 다른 많은 종족들은 기껏해야 움집 정도를 짓고 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요새유적(SD구역)과 그 밑의 도시유적 DK구역,노동자 거주유적 HR구역 등이 기능에 따라 배치되었다. 이들 구역의 모든 건물은 구워 만든 붉은색 벽돌로 지었다.그리고 우물을 파고 원형으로 벽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우물은 7백개나 되었다.방수처리한 상·하수도에도 역시 벽돌을 사용했다.도로는 오늘날 나침반이 가리키는대로 정확히 동서와 남북을 이었다.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너비가 10m에 이르는 큰 도로에는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벽돌을 모로 뉘어 깔았다.도시계획은 물론 도시토목을 맡은 전문 엔지니어가 설계한 도시가 바로 모헨조다로인 것이다. 이 도시를 건설할 때 엄청난 분량의 벽돌이 들어갔다.고고학자들이 계산해낸 숫자는 자그마치 8천만장이다.벽돌을 일정한 규격품으로 세 종류가 생산되었다.가장 큰 세로 28㎝,가로 16㎝,두께 9㎝짜리 벽돌은 나무로 구웠다.나머지 작은 규격품 벽돌을 굽는 데는 곡물의 껍데기 왕겨를 땔감으로 썼다.이들 벽돌은 건축용도에 따라 사용되었다.오늘날 건축자재용 벽돌강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제품을 대량 생산했으나 벽돌공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헨조다로와 버금하는 파키스탄의 다른 문명유적이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모헨조다로보다 더 상류에 위치한 인더스강 지류 라비강 북쪽 연안의 하라파 유적의 수난이 그것이다.영국식민통치시대 파키스탄 초기철도건설 당시 하라파유적의 벽돌이 공사용 자재로 활용되었다는 이야기다.그 이후 문명유적임이 확인되어 지금은 모헨조다로 유적과 더불어 두 개의 큰 인더스문명 유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정오를 넘긴 구릉지대의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그러나 내친 걸음이라 모헨조다로박물관에서 내준 랜드로버로 인더스강쪽을 향해 달렸다.2㎞쯤을 실히 가서 강물이 범람할 때 도시 한 블록을 흔적없이 삼켜버린 폐허지대에 다달았다.비록 폐허라 할지라도 모헨조다로를 보다 분명한 문명유적으로 부각시킨 많은 유물들이 1898∼99년 사이 여기서 출토되었다.파키스탄 독립이후 최대의 발굴성과로 꼽히는 여러 돌인장,소가 끄는 달구지 따위의 테라코타 조각품들,무늬도자기와 민무늬도자기 등이 그것이다. 소 달구지에서 모헨조다로 도시유적의 그 넓은 길이 허세가 아니었음을 실감했다.그리고 돌인장에는 설형문자가 나오거니와 큰 선박 그림을 새겼다.이들 모헨조다로의 인장은 파키스탄보다 먼 서역수메르에서도 출토되었다.모헨조다로 사람들은 아주 일찍 고유문자를 쓰는 가운데 큰 배를 부려 장거리 해상무역로를 개척했다는 증거가 아닌가.그래서 모헨조다로에는 영원한 문명의 빛이 어려있는 것이다.
  • 화이트 스콜/청소년들의 또다른 “인간승리”(영화 초대석)

    ◎학교생활서 낙오되자 해양학교 입학/폭풍과 싸우며 새 삶 일궈낸 논픽션 바다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청소년 성장영화.실화에 바탕을 두었지만 픽션이상으로 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1960년 가을 10대 중반인 소년 열세명이 셀든 선장이 운영하는 해양학교에 입학한다.아무리 노력해도 학업을 따라갈 수 없어 공고를 자퇴한 딘,성공한 아버지의 기대에 짓눌려 사는 프랭크,사고로 죽은 형을 못잊는 겁장이 길 등 소년들은 대부분 낙오자이다. 그리고 이들이 입학한 해양학교는 「알바트로스」호라는 범선 자체이고 교육프로그램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소년들은 초기에 여러 갈등을 겪지만 셀든선장 부부를 비롯한 교사들에게서 선원실무와 뱃사람의 자세를 차츰 배워나간다. 1년쯤 지나 항해가 끝나갈 무렵 「알바트로스」호는 전설적인 폭풍 「화이트 스콜」을 만나 침몰,소년 네명과 선원 두명이 숨진다.이 때문에 사고원인을 캐기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셀든 선장은 스스로 선장자격증을 반납한다. 그러나 소년들은 청문회장을 나서려는 선장을 가로막으며『우리가 간다는 것은 모두 함께 간다는 것』이란 말을 상기시킨다.항해를 시작하면서 선장이 소년들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1년에 걸친 바다에서의 생활,특히 「화이트 스콜」을 겪어낸 소년들은 이제 낙오자도,아이도 아니었다.더구나 청문회는 사회가 또다른 「폭풍」임을 소년들에게 일깨운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소년들의 성장과정이 바다의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시원스레 펼쳐진다.「에일리언」시리즈로 유명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은 과장없이 차분하게 화면을 이끌어가면서도 「화이트 스콜」이 배를 덮치는 장면을 비롯,바다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소년들을 강한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냉철한 선장역은 제프 브리지스가 맡았고 스코트 울프·제레미 시스토·에릭 마이클 콜 등 재능있는 젊은 연기자들이 공연했다.8월 개봉예정.
  • 자연녹지내 대형 할인점·중기 공판장/내일부터 설치 허용

    자연녹지지역에 대형할인점과 매장면적 1천㎡이상인 중소기업 공동판매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통상산업부는 4일 재경원 등 관련부처와 협의를 거쳐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자연녹지지역의 대형할인점 등 설치·운영에 관한 고시」를 확정,오는 6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자연녹지에 이들 시설을 설치하려면 도·산매업진흥법에 의한 개설허가를 받아야 하며 대형할인점의 경우 건축예정 대지의 가장자리로부터 직선반경 1㎞안에 점포면적 30㎡ 이상인 도·산매업점포가 10개 미만이어야 한다. 대형할인점의 매장면적은 2천㎡ 이상이어야 하며 주차장 등 부대시설 등을 합해 부지면적 1만㎡를 초과할 수 없다.시설기준은 랙시설을 갖춘 창고형점포시설,POS 시스템설치,식당 등 편의시설 설치 등이며 운영기준은 개설자 직영,소비자 셀프서비스,셔틀버스운행 금지 등이다.이를 위반했을 때는 개설허가가 취소되고 취소일로부터 1년이상 해당건물을 대상으로 한 용도변경 등의 허가가 제한된다. 정부는 대형할인점 설치로 자연녹지지역이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것을 막기위해 시·도지사가 분기별로 매장면적·시설 및 운영기준 준수여부를 점검하도록 했다.〈임태순 기자〉
  • 수해지역 폭발물 “비상”/유실 864t중 4t 민간지역 들어간듯

    ◎연천서 대인지뢰 수거… 폭발사고도 철원·연천 등 수해지역 군부대에서 폭우로 폭탄이 다량 유실돼 비상이 걸린 가운데 1일 상오 9시쯤 경기도 연천군 차탄1리 도로변에서 또다시 1백5㎜ 포탄이 무더기로 발견돼 군당국이 긴급 제거에 나서는 등 도처에 폭발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달 31일에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2리 앞 도로에서 M14 대인지뢰(일명 발목지뢰 또는 폭풍지뢰)가 발견돼 군부대폭발물 처리반에 의해 수거됐다.그러나 1일 상오 10시쯤엔 연천군 연천읍 옥산2리 수해현장에서 발견된 플라스틱제 폭풍지뢰 뇌관이 터져 육군 모부대 소속 유성현 병장(22)이 다쳤으며 상오 10시20분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청양3리 남대천변에서도 대인지뢰 1개가 발견됐다. 대인지뢰는 6각형 플라스틱모양으로 위에서 내려다볼때 국방색바탕에 노란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으며 밑부분 양쪽과 위 가장자리에 모두 3개의 끈이 달려있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수해로 유실된 탄약은 1백55㎜ 포탄·60㎜ 박격포탄·수류탄·크레모어 등모두 8백64t에 달하며 이중 8백60t은 군부대지역에 매몰 또는 침수됐으나 4t가량은 민간지역으로 유실돼 현재 수거작업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연천=박성수 기자〉
  • 자민련 사무총장 김용환 의원(오늘의 인물)

    ◎총재없는 당 살림에 동분서주… “리틀 JP”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JP(김종필 총재)의 최측근 참모다.3공시절부터 따지면 25년간 JP를 모셨다.3당 통합시절 민자당을 탈당,잠시 국민당에 적을 뒀으나 근본은 「JP사람」이다.김총장에 대한 JP의 신임도 무척 두텁다.그래서 김총장을 두고 「2인자」니 「리틀 총재」니 한다. 요즈음은 더욱 그럴 만하다.JP가 어깨결림증으로 며칠째 당사에 나오지 못하자 김총장이 총재를 대신하고 있다.총장자리가 원래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김총장은 동분서주하며 정말 총재 역할을 하는 것 같다.김총장 스스로도 『이러다 당권도전 얘기 나오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할 정도다. 김총장은 1일 월례조회에서 JP를 대신해 인사말을 했다.그는 『내년 정치일정에 자민련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자』고 강조했다.「총재급」 인사말이다.지난달 31일에는 이인구 의원의 기소와 관련,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는등 기민한 움직임도 보였다.이날 하오에는 총재를 찾아온 미의회 청소년 교류사업단을 김총장이 접견하기도 했다. 오는 20일까지 당무회의와 간부회의가 모두 취쇠되는 등 당은 「정치방학」을 맞고 있으나 김총장만큼은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백문일 기자〉
  • “휴전선 부근 관측소 없어 대형참사”/이종헌 기상정창 인터뷰

    ◎하루 수십통 질책전화에 몸둘바 몰라/정확 예보로 재해 대비못해 거듭 사과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 오는 항의성 전화와 비난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1년내내 「날씨와의 전쟁」을 치르는 기상청의 총사령탑인 봉종헌 기상청장(54)은 요즘 무척이나 괴롭다. 『중부지방이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 들면 북쪽의 찬공기와 남쪽의 더운공기에 의해 갑자기 구름이 형성되기 때문에 미리 예보를 하기란 힘듭니다.반대로 비가 쏟아지겠다고 예보를 했는데 한방울도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철원,강화,문산 등 휴전선 부근에 관측소가 없어 기상실황이 아닌 예상강우량을 전달하는데 그친 것이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원인이 된 것같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국민들에게 사과한다. 그러면서도 3면이 바다이고 산악지형이 70% 이상인 우리나라는 기상변화가 심해 현재 기상청의 시설과 인원으로는 정확한 기상실황을 예보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기상청은 본청과 4개의 지방청에 79개의 관측시설을 합해 모두 9백81명이 일하고 있다.관측소49곳은 최소인원보다 2∼3명이 적은 3명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그는 『기상업무는 갈수록 첨단화를 요구하고 있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만 정확하고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면서 『앞으로 중·장기예보를 위해 장기예보와 해양전담부서 등이 신설돼야 합니다』고 인력충원을 시급한 과제로 꼽는다. 또 세계적으로 전지구모델(중·장기예보용모델)의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기상소식을 신속히 전달하는 「기상방송」의 설립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주병철 기자〉
  • 움트는 시장경제(몽골이 변한다:2)

    ◎사기업 4만여개… 젊은 백만장자 속출/최대규모 친겔테 시장에 10만 인파 북적/국영기업도 인센티브 도입… 경쟁력 유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북쪽 친겔테에 있는 거대한 재래시장.다양한 상품과 보다 싼 가격을 찾아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인파로 이 재래시장은 늘 붐빈다.사회주의시절에는 없던 경쟁과 수요공급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장.친겔테시장은 몽골에서 가장 앞서가는 시경경제실험현장으로 활력과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한국의 옛날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친겔테시장은 60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그러나 친겔테시장이 크게 번성한 것은 1990년 몽골이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다.한줌밖에 안되는 일용잡화를 앞에 놓고 파는 상인으로부터 대규모의 가구·전자제품상점까지 다양하다.한국·러시아·중국·동유럽등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많은 상품을 비롯,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다.『일용잡화에서 무기까지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이 거래되고 있다』고 시장관계자는 말한다. 친겔테시장은 수·목요일,그리고 주말에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열린다.하지만 상인은 새벽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다.평일에는 3만여명이 모이지만 일요일에는 60만 울란바토르 인구의 6분의 1이 넘는 10여만명의 사람이 북적된다.한번 잘못 들어가면 밀려서 나오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다.그 혼잡을 이용한 소매치기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시장주변은 몽골에서 유일하게 교통체증이 있는 곳이다.지방상인에게는 도매시장의 역할을 하는 친겔테시장의 상인은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손님을 잡고,고객은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흥정을 한다.몽골에서 가장 자본주의적 모습의 현장이다. 몽골에서 시장경제을 주도하는 사람은 친겔테시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른바 보따리장수와 소규모 중소기업 경영자들이다.보따리장수는 한국·러시아·중국등 외국에서 대부분 소규모로 물건을 사다 국내에서 판다.규모가 커지면서 무역회사로 발전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몇년전에는 거의 10배장사를 했으나 지금은 수익률이 크게 떨어졌다고 한국어통역을 하던 냠다와씨는 말한다.○호객행위·값 흥정… 자본주의 실험 그들은 몽골에서 돈의 경제학을 가장 먼저 체험하고 있는 대부분 젊은 세대다.그들은 많은 사람이 경쟁이 없는 사회주의사고에 안주하고 있을 때 재빠르게 자본주의적 사고로 전환하여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공산주의시대에는 공산당간부가 특권층이었으나 지금은 그들이 몽골의 새로운 부유층으로 등장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동쪽끝에는 서울의 고급주택가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집이 많이 지어지고 있다.몽골의 부자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그 주인은 시장경제에서 돈을 벌고 있는 개인기업 사장이 대부분이다.몽골에서는 또 「사이탕」이라는 말이 새로운 유행어로 등장했다.사이탕은 몽골어로 백만이라는 뜻으로 백만장자를 일컫는 말이다.많은 젊은이가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 외국을 드나들며 무역을 하거나 기업경영에 나서고 있다. 몽골정부 통상산업부의 간바타르 외국투자담당국장은 『90년대이후 대부분이 소규모인 4만여개의 개인기업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그는 『규모가 큰 1천여개의 국영기업을 포함,60%의 국영기업이 사유화됐다』고 밝혔다.그중 농업·건축·무역·서비스업종은 1백% 사유화됐다.간바타르국장은 『몽골의 경제발전을 위해 더 많은 개인기업과 외국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경제의 바람은 대초원에도 불고 있다.유목민인 바투바일씨는 최근 3백㎞를 이동하여 울란바토르 교외로 이사왔다.그는 『말젖으로 만드는 마유주와 양털·가축등을 울란바토르에 팔아 이익을 높이기 위해 이사했다』고 말했다.유목민중에는 동물가죽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가죽보호를 위해 가축을 깨끗이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유목민의 전통가옥인 겔 옆에는 과거에는 없던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보다 효율적이고 현대화된 목축을 위해 트럭을 구입하는 유목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그들은 빠른 교통수단인 자동차를 이용,가축과 마유주·털등을 도시에 내다 팔고 있다. 몽골 최대기업중의 하나인 국영기업 고비(의류제조업체)에서도 시장경제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연동잠츠회장은 『전에는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였으나 지금은 이익을 찾아 경쟁을 하며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비는 국가가 아직도 75%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영기업이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고 있다.생산성과 월급을 연동시키는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 인식·행동패턴도 바뀌어 『사회주의시대에는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간만 때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연동잠츠회장은 말했다.돈을 벌기 위해 근로자의 인식과 행동패턴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 속도는 빠른 것 같지 않다. 울란바토르에서 2백20여㎞ 떨어진 바양고비 근처의 도로옆.10여개의 겔이 도로를 따라 나란이 있다.그 겔은 유목민이 사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에게 음료나 음식을 파는 한국의 도로변 휴게소와 같은 곳이다.시장경제 도입이후 여러 곳에 그러한 겔식당이 등장하고 있다.그것은 큰 변화다.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보다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다.사회주의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자본주의적 현상이 「대륙의 고도」로 남아 있는 몽골에서 새로운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몽골의 이러한 변화는 그러나 아직은 전체적으로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지금은 과도기며 몽골경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일본의 한 외교관은 오늘의 몽골경제상황을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죽었다』고 비유했다. 그러나 몽골이라는 이름의 「환자」는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의식을 잃었다 다시 깨어나고 있는 것 같다.몽골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시장경제개혁이다.시장경제시스템은 친겔테시장에서 전국 각지로 물건이 퍼져나가듯 친겔테시장으로부터 몽골 전체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 철원 527㎜/1년 강우량의 33% 쏟아져/집중호우 왜 발생했나

    ◎불안정 기층 태백산맥에 부딪혀 응결/문산 등 서해 만조로 물 안빠져 피해 커 25일 밤부터 만사흘간 경기 북부지역과 강원도 일원에 쏟아진 폭우는 한마디로 상식을 깬 것이다. 기상청은 26일 상오 1시부터 28일 상오 10시까지 57시간동안의 강우량은 철원 5백27.8㎜,강화 4백22㎜,춘천 3백㎜,서울 2백92.6㎜,인제 2백66㎜ 등이라고 밝혔다.원주·영월·이천·양평·홍천 등도 1백10∼1백45㎜를 기록했다. 특히 철원지역의 강우량은 지난 88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사흘동안 내린 비의 양은 지난 해 전체 강우량 1천5백80.5㎜의 3분의 1에 해당한다.지난 해에는 7월 한달 동안에는 3백65.9㎜가 내렸다. 일반적으로 7월 하순 경기·강원 일원은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북쪽의 장마영향권에서 내려온 찬 공기와 남쪽의 북태평양 고기압으로부터 밀려올라온 더운 공기가 만나 두꺼운 구름을 형성하면서 비를 뿌리는 게 보통이다.고작 1∼2시간,길어야 3∼4시간동안이며 시간당 30∼50㎜의 장대비를 뿌리기도 한다.폭우가 그치면 곧 무더위가 찾아오는식이다. 이와 달리 이번 집중호우는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 들면서 발생했다.고기압 가장자리는 따스한 고기압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기층이 매우 불안정하다. 따라서 한반도 북동쪽 상층 10㎞ 이상에 영하 30도를 밑도는 찬 공기가 자리잡고 한반도 휴전선 부근에 따뜻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가 걸쳐 있어 상층의 밀도가 높은 찬공기가 밑으로 내려오면서 따뜻한 공기를 위로 밀어올려 휴전선 부근지대에 집중적으로 비를 뿌린 것이다.두 기압간의 세력 다툼에서 더운 공기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한 셈이다.고기압 가장자리에 걸쳐 있는 북한의 해주 개성에 24일부터 3백㎜ 이상의 비가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철원지역에 특히 많은 비가 내린 것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해의 습기를 끌고 내륙으로 들어와 태백산맥에 부딪치면서 산맥의 하단 부분인 이 지역에 많은 비를 뿌린 것으로 기상청은 분석했다. 한편 문산 지역이 연천이나 철원 지역에 비해 강우량이 상대적으로 적었음에도 불구,비 피해가 엄청난 것은 문산천이 범람한 27일 하오 10시쯤부터 서해만 일대의 만조시간과 맞물려 28일 새벽까지 바닷물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28일 상오 폭우는 일단 그쳤지만 임진강의 지류인 문산천과 문산역 사이의 문산시 일대는 90% 이상이 물에 잠긴 상태였다.〈주병철 기자〉
  • 고기압·비구름 충돌/게릴라성 폭우 돌변/중부 기습호우 왜 내렸나

    ◎기층 불안정탓… 돌풍도 동반 여름철에 유독 기승을 부리는 기습 강우는 왜 생기는 걸까. 26일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지방은 새벽부터 내린 기습 호우로 강원도 철원 인근의 군부대에 산사태가 나 막사를 덮치는 등 곳곳에서 비피해를 냈다. 반면 충청 이남은 소나기가 내린 호남 일부를 제외하고 구름만 약간 끼었을 뿐,한여름 날씨를 보였다. 이같은 현상은 중부지방이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고기압의 가장자리는 따뜻한 고기압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매우 불안정한 기층이 형성된다. 이번 기습호우는 불안정한 기층이 강원 영서지방의 산악지대에서 지형적 영향으로 발생한 차가운 소나기성 비구름과 만나면서 비롯됐다.산악지대에서는 상승기류가 생겨 차가운 비구름이 쉽게 형성된다. 고기압 가장자리에 들었을 때 내리는 비는 일반적으로 저기압 상태에서 뿌리는 비와 다른 특성을 지닌다.저기압 때문에 내리는 비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한데 반해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내리는 비는 변덕스럽고 국지적이다. 지역간 강수량의 차가 크고 좁은 반경에만 비가 내려 한쪽에서는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지만 불과 몇㎞ 떨어진 곳에서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천둥번개와 함께 돌풍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기상청은 이런 날씨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큰 비가 잦으므로 산이나 강변에서의 야영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러 프라우다지 무기 휴간/희인 소유주­좌파 편집진 갈등

    한때 세계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며 옛소련공산당을 대변했던 80년 역사의 프라우다지가 마침내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적응치 못해 휴간을 결정했다. 4년전 적자에 허덕이던 이 신문을 인수했던 그리스의 백만장자인 테오도르와 크리스토스 이아니코스 형제는 24일 뉴스가 거의 없는 한가한 여름철 동안 신문발간을 중단키로 하고 27일자부터 휴간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휴간의 직접적인 배경은 자본주의적 소유주와 아직 공산주의식 언론관이 뼈에 박힌 편집진간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휴간결정이 알려지자 편집인들은 즉각 항의성명을 발표,외국인 사장이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신문의 독자들과 정기구독자들 그리고 편집자들을 무시했다』고 비난했다.그런 다음 편집자들은 사주의 휴간 예정일보다 사흘 앞선 24일부터 즉각 무기한 휴간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이같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인 이날 상오 프라우다신문 현관앞에서는 괴이한 해프닝이 있었다.신문사에 상주하고 있던 한 경찰관이 신문 소유주인 이들 형제의 출입을 저지한 것.프라우다지의 편집 간부인 블라디미르 라신은 이를 「내무장관의 도발」이라고 표현했다.그러나 경찰권을 장악하고 있는 내무장관이 왜 이같은 도발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한 상태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소유주와 편집진들간의 불화로 보는 사람이 많다.지난 92년 경영권을 장악한 그리스인 형제는 프라우다를 상업적이고 경쟁력있는 자본주의의 신문으로 만들려는 의욕을 가졌다. 그러나 프라우다의 간부진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래서 뉴스보다는 논평을 위주로 하는 과거의 제작스타일을 고수하려 했다.당연히 주독자층은 옛향수를 못버리는 노년층이나 골수공산주의자들로 국한됐다.광고수입은 들어오지 않고 판매부수는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모스크바=유민 특파원〉
  • 해양부 신설 법안처리 늑장/애타는 행정부

    ◎여 “조속처리”에 야 “해양위도 신설” 맞서/관련공무원 8,900여명 일손 못잡고 동요/행정공백 장기화… 예산학보 등 차질 우려 해양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개정안의 국회처리가 지연되자 행정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여야는 정치논란으로 6월 개원국회를 허송해 버렸다.뒤늦게 소집,오는 27일 회기가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법개정안이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어 관련 정부기관의 애가 타고 있다. 신한국당은 정부조직법개정안을 빨리 처리하자는 입장이다.반면 국민회의는 국회 해양위를 함께 신설하지 않는다면 처리해줄 수 없다고 맞서는 중이다.상임위를 새로 만들어 위원장자리를 차지하려는 정치목적 때문에 행정위 법안심의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 해양부 신설방침에 따라 관련기관의 승진,전보인사가 이미 동결된 상태다.해당 기관 관계자는 이삿짐을 쌀 준비를 하면서 해양부가 공식발족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항만청과 수산청 및 해양경찰청 등 관련 공무원 8천9백여명이 일손을 잡지 못한채 동요하고 있다. 항만청과 수산청 관계자들은『해양부 신설방침이 정해진뒤 해양및 수산정책의 수립과 집행 일부가 해양부 출범 때까지 중단된 상태여서 어민과 관련업계 및 단체들에 혼선과 불편을 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사실상의 행정공백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셈이다. 총무처측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정부조직관리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며 회기내 법안처리를 희망했다.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예산편성 과정에서 해양부 예산을 확보할 근거가 없다.더구나 9월 정기국회 초반부에 법안이 처리된다는 보장도 없다.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앞다퉈 선포되는 등 치열한 국제 해양경쟁시대에서 낙오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이목희 기자〉
  • 인육 먹었다는 북녘… 사실 아니길(박갑천 칼럼)

    「수호지」에서 천하장사 무송이 맹주로 귀양가는 길에 십자파라는 곳에 이른다.거기서 장청·손이랑 부부를 만나는데 술장사하는 그들은 사람고기로 만두소를 만들어 판다.특히 뚱보여행객은 좋은 사냥감이었다. 「장자」(도척편)에는 공자가 도척을 설득하러간 대목이 보인다.장주가 자기류논리를 펴려면서 만든 얘기라 할 것이다.형은 천하에 덕망높은 유하계(「논어」·「맹자」에는 유하혜로 나옴)인데 아우는 천하에 악명높은 도둑의 우두머리.공자가 안회·자공과 함께 갔을때 그는 사람간을 회쳐먹고 있는 중이었다.공자는 설득은커녕 깽비리 대접받으며 그의 장광설만 듣고 발길을 돌린다. 조선 정조때 나온 「추관지」에는 죽은 사람의 고기를 약용으로 먹었다는 사연들이 적혀있다.이 경우들은 배고파 한짓은 아니었다.「수호지」의 경우 잔인한 상술이었고 도척의 경우 또한 천하의 만무방다운 호기였다고나 할까.민간에서도 가령 어버이원수를 갚는다면서 『간을 꺼내어 씹겠다』고 했다.간은 그럴수 있는 것이었던가. 배가 고프면 사람고기도 먹는게사람이다.역겹지만 「좌전」(선공 15년)에 나오는바 『자식을 바꿔 먹는다』(역자이식)는 고사도 그것.동물계에는 제새끼 제가 먹는 사례도 있던 것인데 차마 그러진 못했음이던가.송나라가 초나라 군사한테 포위되어 다섯달을 버티다가 마침내 먹을것 땔것이 떨어지자 자식을 바꿔먹고 뼈를 쪼개어 밥을 지었다니 오싹해진다. 남의 얘기 할것이 아니다.우리 옛전적들에도 그런 기록은 나오지 않던가.「삼국사기」「고려사」「증보문헌비고」등에서 몇군데 살펴보자. 크게 가물어 백성들은 서로 잡아먹다(고구려 봉상왕 9년·소수림왕 8년·고국양왕 6년).봄·여름 크게 가물어 백성들 서로 잡아먹음(백제 온조왕33년·기루왕32년·비류왕28년·동성왕21년).백성들 서로 잡아먹다(고려 고종46년·충렬왕13년·공민왕10년).임진왜란때도 그런 일은 있었던 듯하다.「문소만록」은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아비가 자식을 팔고 남편이 아내를 팔았으며 계사년 봄에는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고 푸네기끼리도 죽이는 자가 있었으니…』 「북한사정에 밝은 관계소식통」은 북한에서 굶주림끝에 사람고기를 먹은 30대 남자가 공개처형되었다고 전한다.겹으로 놀래는 끔찍한 소식이다.이 개명천지에 이럴수가….사실 아니길 바랄뿐이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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