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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名唱 成又香(이세기의 인물탐구:172)

    ◎민족의 恨한큼 깊고 아득한 울림/동편제 대표격 김세종제 ‘춘향가’ 명맥이어/굵은 통성 세마치장단 할용 꾸밈없는 득음/우렁차고 한이 여울지는 소리 남창 못잖아/판소리 오미 오롯이… 힘든 가풍계승 정업/시류 영합않고 안숙선 등 13제자 길러내 춘전(春田) 成又香은 김세종제(金世宗制) ‘춘향가’의 명맥을 잇는 이 시대 대표적 명창의 한 사람이다.송계(松溪) 김세종은 전북 순창출신으로 조선조말의 申在孝문하에서 수학한 동편제소리의 전설적인 인물.장자백 이동백에 이어 강산제 소리의 대가였던 鄭應玟이 김씨 창제를 이어받았고 춘전이 정응민을 잇고 있다.지난 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년’ 기념공연만 봐도 그가 소리에 들인 공력이 얼마만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성소리 뒤늦게 소개 춘전이 걸어온 판소리의 길은 민족정서의 심연만큼이나 멀고 깊고 아득하다.그의 성색은 감기다가도 곧게 뻗고 잠기다가도 치솟으며 서럽고 답답한 삶의 애락이 소리전체에 면면히 깔려있다.넘실대는 가락은 물리학적인 음향이 아닌,민중의 아픔과 슬픔,절망과 신명을 능란하게 엇가른다.어느 때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막을듯이 유장한 진양조 장단을 울리다가도 숨이 넘어갈듯 자지러진 휘몰이며 산천초목이 더덩실 춤추고 일어서는 엇모리 단모리의 멋스러움은 가히 절품의 경지다. 마치 ‘남창을 연상케하는 호방하고 장엄한 소리는 삼각산을 등에 지고 대로를 가듯 시원하게 소리판을 짜나간다’고 이보형 문화재전문위원은 평한다.보성소리는 다른 소리제에 비해 뒤늦게 서울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72·74년에 그가 두번에 걸친 연구발표회를 가졌을 때 각 신문은 ‘춘전 강산제의 특색은 굵은 소리인 통성을 많이 쓰고 진양조보다 빠른 세마치장단을 활용하면서도 꾸미지않은 비범한 득음이 가슴을 울린다’고 특필했다. 오죽하면 국악계에선 그의 통큰 소리를 두고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우렁차고도 한이 여울지는 소리에 연전에 작고한 고수 김명환이 무덤에서벌떡 일어나 장단을 치러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춘전은 전남 화순에서 성영문과 김재녀사이의 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명고수 성차옥이백부이고 명창 주난향과는 고종 사촌간이다.어릴 적 이름은 판례였고 동네의 한학자 한분이 예명과 아호를 내려주었다. 5살이 되자 벌써 백부에게 가곡과 평시조를 배우기 시작했고 화순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화순의 안기순을 독선생으로 모신 것을 비롯 10대에 섭렵한 스승만도 광주의 정광수 남원의 강도근 한애순 강요진 등등이다.그리고 20세가 되던 무렵에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산간벽지로 송계를 찾아들어가 4년간 살이 물러터지도록 김세종제 ‘춘향가’를 사사했으며 다시 서울에 올라와 박초월 박녹주의 ‘흥보가’‘수궁가’의 창제와 더늠을 익히는 등 그의 학습은 문자그대로 ‘금성철벽(金城鐵壁)’으로 소문나있다. 춘전이 처음 회천에 갔을 때 스승은 ‘신식소리나 배우라’고 가르치기를 거절했으나 그의 타고난 성음에 가능성을 느끼고 제자로 받아들였고 ‘김세종제춘향가는 통성으로 우조를 써야한다’고 처음부터 단단히 강조해 마지않았다.스승이 부르는 ‘심청가’의 발림이 너무 애절하여 눈이 퉁퉁 붓도록 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씩 목에서 피를 토하는 가혹한 수업을 받았다. 임종자리에서도 스승은 ‘소리를 변질시키는 것은 정절을 버리는 것과 같다.절대로 소리를 만들지 말고 옛것을 그대로 하라’고 끝까지 타일렀다.‘판소리는 한바디를 기둥삼아 불러야하며 판소리 한바탕에는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 오미(五味)가 골고루 배열되어있으나 여러 바디의 좋은 대목만 따다가 조각보같이 짜맞추면 단맛만 앞서고 오미가 결여되어 판소리의 원리가 깨어진다’고 했다. ○“옛것 그대로” 스승 유언 춘전은 스승의 창법에다 다양한 붙임새를 개발하여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완자걸이 등 기묘한 장단붙임과 통성의 덜미소리를 들고나서면서 좌중을 사로잡는다.더구나 소리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통성이 강한데다 소리맺음을 할 때 짧게 끊거나 힘차게 통성으로 올려끊는 스승의 가법을 가장 잘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그래서 그의 공력은 곧잘 ‘설 벼린 칼은 쉬 부러지지만 수만번 단단히 벼린 칼은 바위를 쳐도 끄떡없다’는 이치에 비유되기도 한다.원로 국악인 성경린씨가 ‘성우향의 명창으로서의 대성은 타고난 성음,음악적 재능과 함께 하나같이 높은 스승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다. 70년대 이후 서울에 올라와 활동하면서 긴 곡절끝에 부군과 이혼 후 바둑교실을 열고있는 아들 진성환과 살면서 며느리인 원미혜가 그의 뒤를 잇고있다.삼양동 언덕배기에서 어려운 살림을 꾸리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에 봉지쌀을 사가지고 오면서 집앞까지 쌀이 새는 줄도 모른채 빈봉지를 들고올 만큼 경황없는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잔칫집에 나가 창을 부르지 않았고 ‘일반 가객들이 힘들고 난삽하여 꺼리는 가풍이지만 그는 계승의 책임감으로 이를 지켜왔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자양성에만 한 평생을 던져왔다. 그의 문하에는 1백여명의 훌륭한 제자들이 도열해있으나 아직 중요무형문화제로 지정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있다.그의 제자중에는 각종 판소리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수연 김영자 박양덕 안숙선 등 13제자가 있고 그는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완창발표를 12차례나 갖기도 했다.순수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로서 업적과 소리의 진가는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데도 흙속에 묻힌 보석인듯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얄팍한 세태가 안스럽기만 하다. ○문화재 재정안돼 아쉬움 허무하고 긴 예로(藝路)의 여정에서 인생의 파란이 얼룩져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상(嚴霜)속의 정목(貞木)’답게 단 한번도 그늘진 구석을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초연한 자세로 주변을 감싸고 보살핀다.그를 아끼는 기라성같은 제자들에 둘러싸여 존경과 선모를 한몸에 받는 이상,그리고 위대한 스승들로부터 이어받은 소중한 유음(遺音)을 전승하는 일을 자신의 정업으로 삼은 이상 그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스스로 우뚝선 참으로 홍복의 예인에 틀림없다.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전남 화순출생 ▲1949년 동일 창극단입단 ▲1950­52년 강도근판소리수업 ▲1953­57년 정응민문하사사 ▲1955년 전국판소리명창대회 1등▲1958년 임방울창극단 입단 ▲1960년부터 한국국악협회 회원 ▲1968·72년 재일교포 위문공연 ▲1972년 제1회 江山 박유전制 ‘심청가’완창발표 ▲1974년 제2회 김세종制 ‘춘향가’완창발표, 전국명인명창대회 장원 ▲1977년 전주대사습대회장원 대통령상수상기념 ‘춘향가’ 완창발 표 ▲1986년부터 국립창극단 초청강사, 사단법인 판소리보존회 연구 분실원장, 김세종제 ‘춘향가’ 완창발표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 후보지정 ▲19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주년기념공연(세종문회관 소강당 ) ▲1998년 김세종제 ‘춘향가’ 발표 성우향판소리연구소 대표, 국악예고 및 서울대등 8개대 출강 KBS국악대상(88년) ‘판소리 수궁가 (전3매)
  • 도산학회 연례 학술발표회 주제 발표/아라키 히로시

    ◎日 기토라 고분은 백제왕족 묘 일본 나라(奈良) 기토라 고분의 피장자는 일본 천황족인가,아니면 백제왕족인가.도산학회가 5일 대전시 도산회관에서 개최한 연례 학술발표회에서 日 히로시마(廣島)대 명예교수 아라키 히로시(荒木博之)씨는 이 고분의 피장자가 백제왕족이었음을 강조,눈길을 끌었다.다음은 발제 요지다. ○‘황국사관’ 아직도 남아 지난해 3월7일자 일본신문에는 일제히 기토라 고분 석실내부 사진이 실렸다.‘최고의 星宿圖(별자리그림) 확인’이라고 써놓고 ‘天武직계의 皇子墓’인가 라는 토를 달았다.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1971년에 高松塚 고분이 발견됐을 때도 일본학자들은 피장자를 天武天皇(672∼686)과 그 세 아들이라고 추정했었다.일본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의 눈에는 잘못된 꺼풀이 씌여 있다.그들은 藤原京과 天武·持統陵을 잇는 ‘성스러운 선’을 그어 그 위에 고송총을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번 새로 발견된 기토라 고분도 고송총처럼 ‘성스러운 선’상에서 천황묘라고 생각하고 있다.이들 일본학자 뇌리에는 아직도‘황국사관’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황국사관’이란 “일본 역사는 반드시 大和(야마토)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즉 “태초에 야마토가 있었다”는 근거없는 선입견을 말하는 것이다.바로 이 황국사관 때문에 한국에 대한 차별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일본의 고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벽화,특히 고구려 계통의 사신상(四神像)이 고송총 고분에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나 백제에서처럼 일본에서도 왕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 주장에 따르면 그 피장자는 천황족이 된다.즉 고송총 고분을 고구려 백제의 왕릉으로 단정하면서도 왕릉인 이상 일본에서는 천황릉이 아니겠느냐고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일본 땅에 백제의 왕릉이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 아래 내린 추단에 지나지 않는다.과연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의 한 교수가 피력한 ‘천궁에 잠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글은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성숙도는 천형으로된 우주를 표현한 것이나 동시에 지상의 황제를 중심으로 한 방형(方形)의 도성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이같은 벽화를 그려놓은 묘에 잠든 사람은 죽은 뒤에도 우주의 지배자요,세계의 지배자 계열에 드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고송총 고분이나 기토라 고분의 피장자를 천무·지통(673∼697)의 고위고관으로 추정하는 설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이들 고분에 일본의 황족,특히 천무의 황자들이 매장돼 있다는 설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으나 예컨대 草壁 황자의 묘일 가능이 높은 동명신 고분에는 벽화가 보이지 않는다.” 천무의 고위고관설과 천무의 왕자설을 부정한 이 견해에 따르면 석실내부에 별자리를 그려놓는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계집단은 629∼641년경에 도래한 백제왕족 뿐이라는 것. ○天武 황자 매장 근거 없어 이른바 ‘성스러운 선’상에 백제왕족의 능묘가 끼어 있다는 것은 백제와 야마토조정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긴밀한 연계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태초에 야마토가 있다고 주장하는 강경파 학자들이 승복할 수 없는 점인 것이다.기토라 고분이 있는 飛鳥(야스카)는 대화조정이 平城京으로 천도하기 약 200년전에 도읍했던 곳이다. “그곳 인구의 80∼90%가 도래인이었다”고 하는 정사 ‘일본서기’의 기술을 냉정하게 검토해 보면 당시 비조의 상황이 어떠했는가 불을 보듯 명백한 것이다.
  • 6·4 民意/박빙의 승부

    ◎전남 화순 등 9곳 5표차로 뒤바뀐 운명/3차례 재검토 충주 동량면 1표차 희비 6·4지방선거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축배를 들거나 패배의 쓴잔을 들은 선거구가 뜻밖에 많았다. 특히 ‘동점에서 5표 차이로 운명이 바뀐 선거구가 9곳이나 된다. 단체장 및 광역의원은 대부분 초·중반부터 우열이 뚜렷하게 가려진데 반해 일부 지역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접전이 계속돼 재 검표를 거듭한 끝에 동점상황은 물론 불과 5표도 안되는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다. 대표적인 박빙의 현장은 화순(동점),충주.청원.보령.아산(1표),인천(2표),울산(3표),진주시 대평면.태백(4표),진주 을 선거구(5표) 등이다. 전남 화순군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한 安福洙후보(62)는 나이 덕분에 당선된 운좋은 케이스.梁東福후보(51)와 같은 975표를 얻었으나 동점이면 연장자순에 따른다는 선거법에 따라 낙선의 쓴잔을 들었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 선거구 등 박빙의 차이를 보인 나머지 선거구에서도 재검표를 거듭할 때마다 승부가 뒤바뀌는 숨가픈 역전극이 펼쳐졌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 선거구에서는 3차례에 걸친 재검표 결과 李勝懿후보(현 시의원)가 993표를 얻어 992표의 尹範老후보를 단 1표차로 따돌렸다. 이밖에 張源宰후보(55·현 의원)는 충북 청원군 문의면 기초의원선거에서,金景齊후보(43·농업·축협이사)도 충남 보령시 천북면 기초의원 선거에서 1표차로 의석을 따냈다.충남 아산시 영인면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朴文浩후보(52)가 1표차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손에 쥐었다. 인천시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金成鎬후보(59·전 공무원)는 국민회의 方貴男후보(45·전 옹진군의원)를 2표차로 따돌렸으며 울산시 북구 강동동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朴光植후보(44·자영업)가 3표차로 이겼다. 진주시 대평면 기초의원선거에서 陳周鉉후보(65·농업)가 4표차로 당선됐으며 태백시 황지3동.화전1,2동.사조동 기초의원선거에서도 李遇榮후보(37)가 상대후보보다 겨우 4표가 많았다.경남 진주시 을 선거구의 河昌植후보(48·현시의원)는 재검표를 거듭한 끝에 姜大鐵후보(46·식당)를 5표차로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 6·4 民意/당선자 분석

    ◎광역단체장 모두가 대학원 고학력/최소득표당선 철원기초의원 75표/직업은 공무원·나이 50대 가장 많아 6·4 지방선거에서 당선자의 직업은 공무원 출신이 가장 많았고,나이는 50대가 주류를 이뤘다.여성 당선자는 70명으로 6·27선거에 비해 저조했다.또 동점 득표자가 나오는가 하면 1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진기록도 나왔다. ◇직업별=선거별 당선자 가운데 공무원 출신이 가장 많았다.광역 당선자는 공무원 출신이 8명,정당인이 7명으로 나뉘었다.기초단체장 당선자의 경우 공무원 출신이 152명으로 전체 당선자 232명의 65.5%나 됐다.이는 현역 기초 단체장이 대거 재선에 도전한 때문으로 풀이된다.정치인은 32명으로 13%였다.광역의원 당선자 158명(25.6%)과 기초의원 당선자 782명(22.4%)도 공무원 출신이었다. ◇학력별=광역단체장 당선자는 모두 대학원을 졸업한 고학력자였다.기초자치단체장도 대졸 이상이 172명으로 74.1%를 차지했으며 독학 2명,초등학교졸업자도 1명 포함됐다.광역의원은 대졸 이상이 329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그러나 기초의원 당선자는 중졸 이상 전문대졸 이하가 1,918명으로 54.9%를 차지했다. ◇연령별=광역의원은 대부분이 51∼60세였으며 61세 이상은 1명뿐이었다.기초단체장은 40∼50세 36명(15.5%),51∼60세 112명(48.3%)로 50대가 주류였으나 61세 이상 77명,30대도 7명이나 됐다.광역의원은 51∼60세 255명(41.4%),41∼50세 214명(34.7%)이었다.기초의원은 20대가 14명이나 당선되는 등 연령별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성별=여성 후보 당선자는 70명에 불과했다.그것도 단체장에는 1명도 없었고 광역의원 14명,기초의원 56명이었다.지난 6·27선거에서 기초단체장 1명,광역의원 13명,기초의원 81명에 비해서도 부진한 기록이다. ◇정당별=광역의원 선거에서 여서야동(與西野東) 구도는 더욱 고착된 모습을 보였다.특정 정당이 본거지에서 광역의회를 100% 장악한 곳이 3곳이나 나왔다.26명의 의원을 뽑는 대구는 모두 한나라당,14명을 뽑는 광주는 모두 국민회의,14명을 선출하는 대전은 모두 자민련 일색으로 의회가 구성 되게 됐다. 광역·기초단체장은 물론 광역의원 선거도 ‘3각지역 분할’ 구도가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이른바 유권자들의 ‘줄줄이 투표관행’ 때문이라는 것이 선관위측의 분석이다. 즉 이번 선거부터 광역·기초단체장,광역의원 등 정당공천 후보들의 기호가 정당별 의석수에 따라 한나라당 ①번,국민회의 ②번,자민련 ③번으로 통일됨에 따라 유권자들이 후보의 자질·공약을 면밀하게 따지지 않고,정당 기호만 보고 광역단체장 기호에 맞춰 ‘줄줄이’ 찍었기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후보가 시·도지사로 당선된 지역에는 한나라당 시·도지사로 당선된 곳은 국민회의 공천 시·도의원 후보들이 대부분 당선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이색 통계=1만명이 넘는 후보가 격전을 벌인 이번 선거에서 동점자가 나와 연장자가 당선되고,78표를 얻어 1표차로 당선 되는 진기록도 수립됐다.전남 화순군 기초위원 선거에서 安福洙후보(62)후보와 梁東福후보(51)는 똑같이 975표를 획득했다.그러나 나이가 많은 安후보의 승리로 돌아갔다.강원 철원군 근북면 기초의원 선거에서 張鎭赫후보는 75표를 얻어 74표를 얻은 차점자를 1표차로 따돌리고 최소투표차 당선 및 최소 득표수 당선 기록을 동시에 수립했다.
  • 朴浚圭 고문 의사봉 다시 잡는다(초점인물)

    ◎의장직무대행 ‘最多選으로’ 국회법 따라/유일한 9選… 후반기 의장단 선출 주관 자민련 朴浚圭 최고고문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다시 잡는다.15대 국회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할때 의장직무대행을 맡게 됐다. 朴최고고문은 지난 93년 4월 재산공개 파동으로 국회의장직을 물러났다.이번에 의장석에 앉게 되면 5년만이다.감회가 새로울만 하지만 원로답게 담담하다.소감을 묻는 질문에 측근을 통해 “국회법에 따르는 것일 뿐 소감이랄게 있느냐”는 반응만을 보냈다. 그의 직무대행 자격은 개정된 국회법(18조)에 따른 것.15대 국회 개원 때는 최연장자에게 주어졌다.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이 자민련 金許男 임시의장의 사회 거부에 시달린 뒤 최다선(最多選)으로 바꿨다.하지만 이번도 9선의 朴최고고문이 있는 자민련 몫이 됐다. 그는 신임 의장단을 뽑을 때 단한번 의사봉을 잡는다.그러나 의장단 몫을 놓고 여야가 대립중이다.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의 과반수 의석을 허문 뒤 국회을 열어 의장을 맡겠다는 입장이다.한나라당은 원내 다수당의 상황이무너지기 전에 선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5대 전반기 국회는 지난달 29일로 마감됐다.지금은 국회가 문을 닫은 상태다.여야 협상이 늦어지면 국회의장 직대(職代)체제는 그만큼 장기화된다.국회 공백도 마찬가지다.
  • 나운규 아리랑/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한국영화의 신화로 남아있는 ‘아리랑’은 1926년 4월말 지금의 고려대 근방인 안암골에서 처음 크랭크인했다. 당시 안암골은 기와집 한채와 초가집 10여채만이 있는 첩첩산중이었다고 기록된다. 촬영기간은 4개월, 제작비는 1천200원, 필름 길이는 9천 피트로 조선총독부 완공과 함께 같은해 10월에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영화 광고용으로 사진엽서가 제작되었고 김치담그기다듬이질 널뛰기등 한국적 정서가 담긴 사진을 배경으로 ‘아리랑 타령’ 한글가사에 일본어로 토를 단것이 눈에 띤다. 일제하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첨단적인 몽타주기법을 사용한 것등은 영화미학상으로 높이 평가된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羅雲奎가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3·1만세사건과 연루된 한 대학생이 고향에 내려와있다가 여동생을 겁탈하려던 일본순사의 앞잡이를 낫으로 찔러죽이고 두손이 묶인채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에 담긴 뜻은 동생과 동생을 구하려던 대학생은 ‘조국’의 상징이며 일제 앞잡이는‘일제 강점(强占)’으로 표현되어 억압됐던 민족감정을 일시에 유발시킨 저항영화로 유명하다. 그 ‘아리랑’필름이 일본에 있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돌아올지도 모른다. 항일(抗日)로 일관된 영화내용때문에 필름이 강제수거, 폐기되는 바람에 우리에겐 없는 것을 일본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93년에도 소장자인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씨는 나운규의 아들인 나봉한감독을 통해 필름을 반환하겠다고 해서 영화계를 들뜨게 한적이 있다. 이번에도 金大中 대통령 방일(訪日)때 ‘필름의 정식반환을 요청하면 돌려줄 의사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반환의 논의가 어떻게해서 중단됐는지는 알수 없으나 일제하의 민족증언을 스크린에 담아냈다는 점에서도‘아리랑’은 우리에게 소중한 영상자료임에 틀림없다. 예술은 놓일자리에 놓여야 빛나고 쓰일자리에 쓰여야만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다. 어두운 창고안에서는 한낱 낡은 필름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예술자료가 예술적 사료(史料)로서 빛날수 있도록 순수한 협조를 기대하는 바이다.
  • 후보 전과사실 공개돼야(사설)

    6·4지방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지난 19일부터 공식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 각 후보와 정당들은 연일 뜨거운 선거전을 펴고 있으나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는 소식이다.이에 따라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매우 낮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경제난과 정치불신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특히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 여·야를 막론하고 중앙당 차원의 간여가 너무 심한 데다 극단적인 상대후보 비방이 이번 선거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파렴치한 범행을 저지른 전과자들이 대거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는 비방 내용에 대해서는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고 본다.사실이 그렇다면 이들의 전과사실은 공개돼야 마땅하며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은 무고 등의 혐의로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전과자라고 해서 피선거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그렇지만 사기·강간·횡령사범과 흉악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당연히 그 사실이 공개돼야 한다고 본다.이는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판단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국민의 당연한 알 권리이기도 하다.공인의 전력은 개인 사생활보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선출직 공직자는 특히 그의 모든 것이 유권자들에게 알려져 공개적인 검증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행 선거법에는 이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후보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재산공개와 선관위 공보,선전벽보가 전부다.이 정도로는 너무 미흡하다.그나마 광역단체장 후보들에 대해서는 방송토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할 수 있지만 광역의원이나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그러나 각 후보와 정당들은 연일 연설회나 성명 등을 통해 파렴치형 전과자라거나 학력위장자,이권성 사업자 등 도저히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상대후보를 헐뜯어 몰아붙이고 있는 실정이다.유권자들은 어느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 하다가 결국 정치불신으로 이어져 무관심으로 돌아서고 만다. 지난 95년 지방선거 때 부산의 경우 출마자 60여명이 파렴치형 전과자이며 2명은 피선거권도 없었고 광주·전남지역 출마자의 44.8%가 사기·횡령·폭력 전과자였다는 검찰의 발표도 있었다.조직폭력배 두목이 서울의 구의원으로 당선돼 폭력배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다 구속되기도 했다.이런 후보는 사전에 알려져 엄정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선거법을 개정해서라도 후보자들의 전과사실은 공개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치솟는 연기… 총성… 전쟁터 방불/유혈폭동 사흘째… 혼미의 印尼

    ◎印尼 최고갑부 리옹 저택 불바다/발리은행 약탈 우려 돈다발 살포/韓國 교민학교 휴교… 대사관 비상근무 【자카르타 외신 종합】 시위군중들이 폭도로 변모 곳곳에서 방화와 약탈이 자행되고 있는 자카르타 시내는 치솟는 검은 연기들 속에 간간히 총성마저 울려퍼지는 등 마치 전쟁터를 연상케 하고 있다. ○화교소유 은행 큰 피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돈 많은 억만장자 리엠 시웨 리옹의 저택이 14일 군중들에 의해 불바다가 됐으며 화교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은행도 약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군중들은 이날 수하르토 대통령 일가와의 친분을 통해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대 부자로 유명한 리엠 소에이 리옹의 저택으로 쳐들어가 승용차 5대와 서류,가족사진 등을 모조리 불태웠다. 군중들은 또 아시아 전역에서 은행업과 식품,부동산,자동차 회사 등을 경영하고 있는 화교 재벌 살림그룹 소유의 중앙아시아은행 지점들에 몰려가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군중들이 중앙아시아은행을 방화하고 약탈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발리은행 직원들은 은행이 약탈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군중들에게 돈다발을 마구 뿌리는 소동마저 일어났다고. 발리은행 자카르타 서부지점 직원들은 이날 은행 주변에 수천명의 군중들이 몰려들자 군중들의 은행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1만루피아(1달러)와 2만루피아,5만루피아권 지폐를 움켜쥐고 군중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외국인·화교 탈출 러시 ○…인도네시아 유혈 폭동과 시위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비화되고 있는 가운데 항공기편으로 자카르타를 탈출한 외국인과 화교들이 싱가포르에 도착.인도네시아 군중들의 약탈과 폭동의 표적이 돼온 화교들은 이날 공항에서 “떠날 당시 집과 상점이 불타는 등 모든 화교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하고 “당분간 싱가포르에 머물 생각”이라고 설명. ○…자카르타 주재 한국대사관은 교민 보호대책의 일환으로 14일 한국학교학생들을 낮 12시에 조기 귀가시키고 15∼16일 이틀간 휴교.또 대사관은 한국인 기업체에 대해서도 2∼3일간 휴업할 것을 권장하는 한편 비상근무조를 만들어 숙직자를 3명으로 늘렸다.
  • 세계 車업계의 구조개편(사설)

    세계 자동차업계에 대규모 인수·합병(M&A)의 빅뱅이 본격화 하고있다.이러한 대변혁은 우리의 자동차산업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돼 대응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독일 다임러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가 7일 합병을 통해 GM과 포드에 이어 세계 3위의 자동차메이커로 올라 섰고유럽 최대의 폴크스바겐은 최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영국 롤스로이스를 인수했다.또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은 프랑스르노와 합작으로 버스를 생산할 계획임을 밝힌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이처럼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들이 초(超)매머드 인수·합병을 서두르는 것은 전세게 자동차시장이 공급과잉으로 포화상태를 이룸에 따라 상호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을 합쳐 경쟁력의 시너지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겠다. 세계 전체 자동차생산능력은 6천8백만대에 이르지만 실제 출고량은 5천만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메이커들의 채산성은 극도로 악화된 실정이다.이같은 과잉공급상태의 자동차시장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려면 몸 부풀리기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일이 불가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따라서 세계 자동차업계 판도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10개 이내의 초대형 완성차메이커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자동차업계도 통폐합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우리 업계도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세계시장에서의 과당경쟁에 대비,사전 포석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특히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는 과잉 중복투자의 전형이라 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초래한 직접 요인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기아자동차문제도 삼성그룹의 자동차사업참여로 악화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게다가 국내업계는 내수(內需)침체에 따른 극심한 경영난으로 정리해고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인수·합병의 구조조정이 시급함을 강조한다.물론 이러한 구조조정은 시장자율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처럼 인수·합병에 거부감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관계당국의 정리유도도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전문화된 거대기업만이 살아 남을수 있는 세계 자동차업계 동향을 면밀히 살펴서 때늦지 않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李柄雄 韓赤총장 어제 방북/면회소·비료지원 논의할듯

    李柄雄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대북(對北)구호물자를 실은 선박에 탑승,3일 북한에 도착했으며 약 6일간 체류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가 밝혔다. 당국자는 3일 “李사무총장은 지난 2일 대북구호물자 인도단장자격으로 ‘선 게베라’호에 탑승,북한 남포항에 도착했다”면서 “현지에서는 최경린 북한적십자회 서기장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구호물자 인도선박에는 그동안 한적 국장급 간부가 인도단장 자격으로 탑승한 적은 있지만,사무총장급은 이번이 처음이다. 李사무총장과 최경린 서기장은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들로 이번 접촉에서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대북 비료지원 문제 등 지난달 베이징 남북차관급회담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문제들을 논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적 당국자는 “李총장의 방북은 지난 3월 1차 구호물자 수송 때 북한의 최서기장이 우리측 인도요원들에게 만찬을 베푼데 대한 답방형식”이라면서 “李사무총장은 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갖고 가지 않았으며,최서기장과의 대화내용도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지원 문제에 국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李총장은 오는 8,9일쯤 귀국할 것으로 전해졌다.
  • 미국에 역사소설 바람

    ◎“소설가들이 부쩍 과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컴퓨터가 할수 없는 일.즉,사람들을 과거로 데려가는 일을 하고픈 까닭일까”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최근 미국에 역사소설 붐이 일고 있다. 어느 나라나 현재가 아닌 지나간 과거를 무대로 삼거나 잘 알려진 과거사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린다.미국의 대히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뿌리’도 역사소설이지만 미국도 역시 딴 나라들에서 처럼 대개의 역사소설은 익히 알려진 과거사를 재탕삼탕 ‘쥐어짜는’ 데 그쳐 역사인식이나 소설적 격식이 그다지 높지 않다. 대신 미국에서는 플리쳐 상이 증명해주듯 역사 넌픽션과 전기 문학이 고도로 발달해서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그런데 최근 소재가 쓰기 쉬워 고른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적 형상화의 방편으로 역사를 택한 격조있는 역사소설이 동시에 많이 나오고 있다고 뉴스위크 지는 주목하고 있다. 뉴스위크가 거명한 소설가들은 워낙 예전부터 소설적 자존심이 ‘센’ 작가들이라 최근의 동시출간을 아류가 범람하는 유행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보다 심층적인 이유가 있다고 뉴스위크는 말한다.그렇더라도 지난해 하드커버로 1백60만부가 팔린 찰스 프레이져의 ‘추운 산’을 이런 붐의 엔진으로 꼽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다.무명작가의 첫 소설인 이 작품은 남북전쟁을 소재로 했다.지난해에는 이 작품 말고도 헤비급 역사소설이 여럿 있다.플리쳐 수상작가인 돈 드릴로의 ‘지하세계’는 미국의 냉전시대를 조람한 것인데 마지막까지 ‘추운 산’과 내셔널 북 상을 다투가 밀려났었다.미국에서 가장 현대적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고도 밖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말 그대로 가장 신비한 작가인 토머스 핀천은 독립전쟁 무렵이 시간대인 ‘메이슨과 딕슨’을 발표했었다. 올 봄엔 중량급 작가들의 역사소설이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뉴스위크는 말한다.엘모어 레오나드의 ‘자유 쿠바’는 19세기 후반의 미·스페인 전쟁을 다루고 있고 T.C. 보일의 ‘쪼개진 바위’는 금세기 초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백만장자 아들 이야기로 그의 정신병적인 성적 행태와 환상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조명하고 있다. 놀라운 박람강기에다 현학적 문체로 유명한 고어 바이들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역대 미 대통령 납인형들이 밤만 되면 되살아나 13살짜리 소년에겐 역사적 사건들을 다른 식으로 전개해 보여주는 환상적인 ‘스미소니언 협회’를 냈다.러셀 뱅크스는 남북전쟁 1년전에 흑인 노예의 반란을 기도하다 처형당한 열렬한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을 주인공으로 7백매가 넘는‘구름을 가르는 사람’을 썼다. 이밖에도 올 봄에 선보인 역사소설도 많는데 “소설가들이 과거에 부쩍 열을 올리는 것은 컴퓨터의 사이버 혁명과 상관이 있다.작가는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즉 사람들을 과거로 데려가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고 토머스말론이란 작가 겸 비평가가 말했다고 뉴스위크는 전한다.
  • 中 다단계판매 금지 반발 폭동

    ◎일부 도시 피해자 시위 악화… 최소 4명 숨져 【베이징 AP AFP 연합】 중국에서 다단계 판매의 전면 불법화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의 시위가 일부 도시에서 폭동수준으로 악화돼 최소 4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했다고 경찰이 30일 밝혔다. 후난(湖南)성 장자제시에서는 지난 23,24일 양일간 30시간에 걸쳐 다단계판매에 뛰어들었다가 손해를 보게 된 4천여명의 주민이 금지조치에 반발해 약탈행위 등 폭동을 일으켰다고 현지 공산당위원회 선전부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그는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심하게 구타당한 4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으며 연행자수도 3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 濠서 인공각막 첫 개발/79세 실명자에 이식/3년내 실용화 계획

    【퍼스(호주) AFP 연합】 사상 최초의 인공각막이 호주에서 개발됨으로써 실명한 사람들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호주 퍼스에 있는 라이온 안질환연구소 원장이자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어대학 안과교수인 이언 콘스테이블 박사는 28일 7년간의 연구끝에 세계 최초의 ‘연성 합성각막’을 개발,이를 79세의 실명자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인공각막은 안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는 연성 플래스틱으로 만들어졌으며 수분함유량이 높아 외형상으로는 콘택트 렌즈와 비슷하지만 가장자리를 따라 구멍이 뚫려있다. 콘스테이블 박사는 이 인공각막이 앞으로 3년안에 실용화되어 1천950달러(약 2백80만원)정도면 실명자들에게 이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년동안 많은 안과전문의들이 유리,방풍유리,강력 플래스틱,실리콘,티타늄,심지어는 인간치아를 이용하여 인공각막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지금까지 완전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없었다.
  • 30대 재미 벤처 기업가/유리 시스템 金종훈 회장

    ◎6년만에 7천억 벌었다/92년 창업… 세계 최고 데이터전송장비 개발/AT&T 계열 루센트社에 10억달러에 매각 【뉴욕 연합】 재미교포 벤처 기업인 金종훈씨(37·미국명 정 김)가 창업 6년만에 5억1천만달러(한화 7천1백억원)를 벌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면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 메릴랜드주 랜도바에 거주하는 金씨는 자신이 창업해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있는 유리 시스템사를 미국 최대 통신업체인 AT&T의 계열사인 루센트 테크놀로지스사에 10억달러에 매각키로 함에 따라 거금을 거머쥐게 됐다. 그는 이제 미국에 이민온 한국계 기업인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중 한 사람이 됐으며 미국 경제전문잡지 ‘포천’이 매년 선정하는 미국내 1백대 자산가에도 포함되게 됐다. 루센트社는 27일(현지시간) 데이터 네트워크 부문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이 분야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유리 시스템사와 최근 협상을 벌여 10억달러에 인수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루센트사는 이에따라 오는 6월말까지 뉴욕증시의 장외시장인 나스닥에 등록 된유리시스템사의 주식을 주당 35달러(총 10억달러)에 사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음성 영상 테이터 전송장비 전문업체인 유리 시스템社는 金씨가 지난 92년 창업한후 초고속 성장을 거듭,지난 97년 美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에서 초고속 성장 1백대 유망 기업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40만달러의 창업자금으로 출발한 유리 시스템사의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는 金씨는 앞으로 루센트사의 데이터 네트워킹 시스템 그룹의 통신사업 분야서 네트워크담당 사장을 맡게 된다. 지난 75년 중학교 3학년 재학중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金씨는 존스홉킨스대에서 전기전자공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뒤 해군장교로 입대했다.핵 잠수함 승선장교로 근무하면서 주로 당시 최첨단 군용통신 장비를 취급한 것이 계기가 돼 전역한후 통신관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의 딸을 이름을 따서 유리(Yurie) 시스템사를 창업한 그는 온갖 노력을 동원,통신분야의 새로운 신기술을 접목시켜 ATM 장비를 개발,이 분야서는 수년전 보스니아 내전에서 그 유용성이 입증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는 업체로 키웠다. 지난 97년 말 나스닥에 상장된 유리 시스템사(직원 2백50명)는 97년 5천1백만달러의 매출을 올려 순익만도 6백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알짜 기업이었다.이 회사는 이제 소유권만 루센트에 넘긴후 종업원과 함께 랜도바에 그대로 남게 된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 87년 창설… 당원 1만5천여명/극우 성향 獨 민족당

    ◎외국인 추방 등 극단 민족주의 표방 【파리=金柄憲 특파원】 극우정당으로서 독일 선거 사상 처음으로 옛 동독지역의 연방주의회에 진출,충격을 안겨준 독일민족당(DVU)은 독일내 극단적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독일 정보기관에 의해 ‘우파 극단세력’으로 공식 분류된 정당답게 이번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도 ‘외국인 추방’과 ‘독일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운용’ 등을 주창했다. DVU는 이번 선거 전까지도 일반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정당이었다.87년 독일의 자유난민법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된 이래 16개 연방주 가운데 한 곳에서도 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정보기관은 전국의 DVU의 당원수를 1만5천명으로 추산. 그러나 DVU는 이번에 백만장자 당수인 게르하르트 프라이의 대대적 재정지원과 22%가 넘는 선거구의 실업률을 활용함으로써 30세 이하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 용원리 백제 고분군 발굴/4∼5세기 유물 대량 출토

    【천안=李天烈 기자】 천안시와 공주대박물관(관장 李南奭)은 23일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 온천관광지 부지조성 공사중 발굴된 백제시대 토광묘 134기와 수혈식 석실분 8기,옹관묘 2기 등 모두 144기의 고분군에서 머리에 용 문양이 장식된 긴칼(단용문환두대도)과 금동제 귀걸이 등 4백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유물 가운데 1호 석실에서 출토된 길이 85㎝의 단용문환두대도는 백제시대의 것으로는 가장 이른 시기인 4∼5세기 것으로 피장자가 수장층(首長層)임을 추정케 하고 있다.
  • 존 F.케네디(美國의 대통령 문화:19)

    ◎뉴 프런티어정책 편 美 상징적 지도자/평화봉사단 창설… 후진국 교육·영농지도/蘇의 쿠바 미사일 배치 기도 ‘힘’으로 봉쇄 【보스톤(美 메사추세츠주)=羅潤道 특파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마십시요.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요.” 1961년 1월20일,43세의 나이로 미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을 세우며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존 F.케네디 대통령(1917­1963)의 취임사는 냉전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에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미국민들에게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왔다. 63년 11월21일 댈러스에서의 총성으로 최고의 전성기에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서게 된 케네디는 불과 2년10개월(1천37일)의 짧은 집권기간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포토맥강 건너 알링턴 국립묘지 한복판,워싱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 언덕에 ‘불멸의 불꽃’(eternal flame)으로 살아 미국민들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다. 첫 20세기 출생 대통령인 그는 많은 업적을남겼다.‘뉴 프런티어’라고 불린 그의 정책은 루즈벨트의 ‘뉴 딜’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평화봉사단’을 창설,미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구석구석 후진국을 찾아가 교육과 영농을 지도케하는 인류애적 차원의 일에 적극 나섰다.흑인인권 보호를 위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도 만들었다.소련보다 한발늦기는 했지만 선구자적인 의지로 우주개발계획을 추진,미국이 최초의 달정복 국가가 되도록 했다. ○흑백차별금지법 제정 대외적으로도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대한 강력한 대처,쿠바내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저지키 위한 쿠바 봉쇄 등 ‘힘’으로 소련을 굴복시킨 그의 강력한 대외정책은 미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또한 불러 일으켰다.비록 쿠바침공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하기도 했지만 6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미국적 이상을 실현할 젊고 용기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던 미국민들에게 케네디는 ‘미국의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고 강력한 의지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더우기 정계 입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 성장과정이 백만장자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금권을 앞세운 적극적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강력하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수 있었던 것은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 때문이다.그는 사려깊고 여러 사회문제들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민주주의 원칙의 수호자로 이미지를 심었다. 1917년 보스턴 교외의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백만장자가 된 조지프와 로즈 케네디 사이의 9남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네디는 병약하고 그다지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사람을 사귀기 좋아했고 스포츠를 좋아했다.부친이 루즈벨트 행정부때 영국대사를 지내 런던대학에도 잠깐 재학한 일이 있는 그는 하버드에 입학,광범위한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점차 학업에 흥미를 보였다.영국의 나치 독일에 대한 대응 실패를 다룬 그의 졸업논문은 ‘왜 영국은 잠을 잤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어 1942년 진주만 폭격 직전 미해군에 입대해 PT(어뢰정)지휘관으로 활약,일본군과 싸운 공로로 은성훈장을 받기도 했다.45년 디스크 수술로 전역한 그는 부친의 권고로 46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 출마,당선됐다. ○57년 퓰리처상 수상 52년 3선의원인 케네디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이듬해 그는 조지워싱턴대를 나오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의 런던특파원 이던 24세의 재클린 부비어와 결혼했다.지성과 미모를 갖춘 재클린과 미남 총각 상원의원과의 결혼은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케네디의 바람기로 원만치 못했다. 57년 미의회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저술,퓰리쳐상을 받은 케네디는 바른 이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TV토론이 처음 실시된 60년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릴수 있었다. 백악관에 들어간후 재클린은 훌륭한 참모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63년 8월 2살바기 아들 패트릭이 죽은 후에는 두사람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이 좋은 금슬도 케네디의 피격으로 3달밖에 지속되지 못했다.케네디 가문은 대통령과 3형제 상원의원을 내는 등 미역사상 가장 번성한 집안의 대명사가 됐지만 두아들이 총에 맞아죽고 아들과 딸들이 사고로 죽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남아 있다. 서거 35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그는 미국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남아있으며 보스턴항 남부의 컬럼비아 포인트에는 케네디도서관이 우뚝 서 케네디 대통령 당시 각종 자료 및 유물을 집대성하고 있다.또 브루클린에는 그의 생가,히아니스항 인근에는 하계별장 등이 잘 보존돼 있다.
  • 독도에 유인등대 건립/연말까지 첨단장비 갖춰

    【포항=李東九 기자】 독도에 첫 유인(有人)등대가 건립돼 올해 말 불을 밝힌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5월초부터 올해말까지 22억여원을 들여 독도에 최신시설을 갖춘 유인등대를 설치키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유인등대는 섬 동·남쪽 가장자리에 높이 13m 규모로 세워지며 등명기 태양전지 비상발전기 등 각종 장비를 갖추게 된다.
  • 中­韓 합작 洪南쌀 가공공장(黑龍江 7천리:29)

    ◎米質 뛰어나 中 농업박람회서 금상/삼강평원의 토질·물 좋아 1등품/年 4,000t 가공… 北京 등 대도시로/95년 인민대회당용 지정쌀로 선정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 ‘폭풍취우’는 작가 주립파가 1946년 공산당의 토지개혁공작대원으로 흑룡강성 상지시 원보툰(元寶屯)에 가서 직접 체험한 사실을 적은 것이다.상지시에서 택시로 반시간 거리에 있는 원보툰은 ‘폭풍취우’의 고향인 셈이다.그러나 오늘의 원보툰은 당시의 가난하고 찌든 모습이 사라지고 작품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들도 이미 세상을 떠나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지주 한로륙(韓老六)의 가족은 없고 조카둘이 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조선족 대농장주도 10여명 광복후 공산당은 광활한 동북땅에서 지주의 땅을 몰수하여 가난한 농민들한테 나누어 주었다.이른바 “땅은 밭가는 사람한테 준다”는 것으로서 땅몰수 바람이 폭풍취우와 같이 휩쓸었다.그러나 불과 10여년이 지난 1950년대말 공산당은 다시 그 땅을 거두어 집단농장으로 몰아넣는 역풍을 일으켰다.집단농사 20여년에 중국 사람들은 기아선상에 이르게 됐다.다행히 개혁개방이 되고 다시 토지를 분여하는 폭풍취우가 일면서 농장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옛날 지주들의 토지는 개인소유이나 오늘의 농장주들의 토지는 국가의 소유,개인한테는 사용권만 있다는 점이 농장주와 옛 지주의 구별점이라고 할 것이다. 흑룡강 하류 삼강평원에 사는 조선족들 세대에서 경작하는 땅은 보통 5㏊ 이상,청산을 당한 한로륙은 이미 소지주라고 하겠다.나북현 동명조선족향 산하에만도 30㏊ 이상의 땅을 가진 농장주가 4호,10㏊ 이상이 10여호나 된다고 한다.특히 근년에 농촌인구가 도시와 해외로 이동하는 붐이 일면서 그들이 버리고 간 땅은 소수인에게 집중되어 농업의 대규모 생산국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흑룡강성에서 소문난 농장주로는 홍상표(洪祥杓·52)씨가 있다.탕원현 탕왕향 금성촌의 사람이다.필자가 홍씨를 찾아 탕왕으로 간 날은 지난해 12월 9일,탕왕조선족중학교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탕왕향 소재지 금성촌은 현성에서 8㎞ 떨어져 있다.길 양켠에 들어선 집벽에 새하얀 회칠을 올린 것이어서 산뜻한 기분을 주었다.마을 복판쯤 길옆에 홍성표가 세운 기업이 자리잡고 있었다.‘중한합자 녹색식품유한회사’라는 글이 빨간 벽돌벽에 가로로 크고 길게 씌어져 있고 대문 양옆에 ‘흑룡강홍남쌀제품공장’이라는 합자기업 간판과 ‘흑룡강성 탕원현 벼개발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대문으로 들어서면 ㄷ자형으로 지은 공장건물인데 널따란 공지에는 벼가마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홍씨가 다루는 논만 해도 1983년에 15㏊,1985년에는 22㏊로 불었다.㏊당 소출이 8천㎏,연간 가공량이 8천t에 달하는 가공공장을 밤낮으로 가동하려니 산같은 벼가마니가 놀라울 것도 없었다. 동쪽과 북쪽 건물은 공장이고 남쪽은 사무실이다.사무실에서 홍씨를 대하는 순간 필자는 놀랐다.1m60㎝도 안되는 작은 키에 야윈 사나이가 기적을 창조한 위인이라니 아쉬운 감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그런 아쉬움은 존경심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1962년 중학교 졸업,64년부터 3년간 가목사농업학교 통신학부수료,70년 농민육종가로 되어 해남도에 가서 벼 큰이랑재배법 연구,89년 흑룡강성 알곡판매모범,그해 또 5만원을 주고 향정부에서 처리하는 산을 샀는데 낙엽송림이 23㏊,한전(旱田)이 8㏊인데 불과 10년도 되기 전에 그 가치가 100만원을 초과해 일약 백만장자가 됐다.93년 흑룡강성 조선족벼재배협회 회장으로 당선,95년에는 흑룡강농업개간국 과학원 총공정사 서일용과 조선족 육종가 강석일옹을 고문으로 모시고 ‘탕원현벼개발연구소’를 설립,그리고 또 한국 효림투자무역주식회사의 남철우(南哲佑) 이사장과 합자하여 유한회사를 세웠다. ○93년 南哲佑씨 15만불 투자 지난 93년에 중국에 첫발을 들여놓은 남사장은 흑룡강성의 농업잠재력에 매혹,벼가공기술과 설비가 따라가지 못하는 중국 실정을 감안해 쌀가공업을 벌일 계획이었다.그래서 지난 95년 녕안시 종자공사와 합자로 동경성진에 중한합자 녕안경박양식제품유한회사를 세우고 뒤이어 그해 4월에 홍상표씨와 합작으로 홍남미가공유한회사를 세웠다.그가 동경성진에 꾸린 회사에서 생산하는 ‘동경성표’ 쌀은 95년 10월 제2회 중국농업박람회 금상을 획득하고 인민대회당용 지정쌀로 선정됐다.탕원에 세운 회사에서 생산하는 ‘홍씨입쌀’도 흑룡강성 녹색식품으로 인정되었다.홍상표씨한테 투자한 그의 투자액은 15만 달러였다. “홍상표씨와의 합작은 흑룡강신문이 매개역할을 했습니다.홍씨가 많은 논과 산을 갖고 상질미가공공장을 세우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찾아왔었지요.사람이 덩치는 작아도 통이 크고 또 빈틈없는 사람이었습니다.홍씨를 만나게 된 것을 인연으로 생각합니다.” 남철우 사장이 박일기 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라고 한다.홍씨의 안내를 받아 공장을 돌아보았다.정미기는 중국산이고 가공기는 한국산인데 공장의 고정자산은 252만원,연간 생산량이 4천t이라고 한다.가공되어 나온 쌀은 알이 굵고 기름기가 자르르 흘렀다.밥을 하면 찹쌀처럼 풀기가 있다고 했다.그것은 토질과 수질이 좋기 때문이라고 홍씨는 설명했다. 동쪽 건물은 창고였다.‘홍씨쌀’이라는 상표가 찍힌 비닐봉지에 넣은 쌀들이 네모난 상자에 넣어져 차곡차곡쌓여있다.한창 쌀값이 떨어져서 1㎏에 2원도 받기 어려운 때에 ‘홍씨쌀’은 ㎏당 5원씩 하는데도 생산이 달린다는 것이다.그의 쌀은 흑룡강성은 물론 북경,상해,광주,항주,제남 등 전국 각지로 간다고 한다.
  • 民權단체 등장과 반작용(秘錄 南柯夢:6)

    ◎독립협회 결성에 ‘魚頭鬼面의 무리’ 비난/高宗의 해산령에도 활동 계속하자/徐載弼 등 주동자 17명 투옥/李承晩은 탈옥미수로 사형선고/하야시日公使 上奏로 특사 석방 ‘남가몽’의 저자 정환덕(鄭煥悳)이 경북 영천(永川)에서 처음 상경한 것은 1897년 가을,나이 40때였다.이 때는 갑신정변이 일어난지도 13년이 지나 세상은 온통 개화사상으로 들떠 있었다.1894년 일제는 동학란을 구실로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김홍집 등 개화파를 시켜 갑오개혁을 단행했다.그리고 이듬해는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바로 그 다음해가 정환덕이 상경한 때였다. 정환덕은 상경하기 두달 전 길몽(남가몽)을 꾸었다.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수도하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공부 더 할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1896년 徐載弼이 결성 “광무 원년(1897년) 7월 16일 밤 황학사(黃鶴寺) 동편 운수암(雲樹庵)의 동대(東臺)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흰 도포를 입은 산신령이 청려장(靑藜杖·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내려와 마루에좌정한뒤 말하기를 ‘자네가 수학(象數學-易學)에 마음을 쏟은지 벌써 7년이나 되었으나 글의 요령(참뜻)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어온 것으로 안다.그러니 글의 행간에 숨겨진 뜻을 해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더니 산신령이 청려장을 짚고 돌연 “나라가 망했다”고 개탄하는 것이 아닌가. “슬프게도 금수강산이 벌써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애석하도다! 이런 때를 당하여 비록 주(周)나라 800년을 일으킨 강태공(姜太公)이 나타나도 안되고,한(漢)나라 4백년을 보좌한 장자방(張子房)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아무 쓸데가 없다.하물며 자네가 약간의 역학을 배웠다 하여 큰 운수(大數)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겠는가.헛되이 정력을 대수에만 집착하지 말고비록 작은 운수(小數)에 지나지 않다 하더라도 잡는 것이 좋을 것같다.너의 신상에는 앞으로 십년간 통운(通運)이 있으니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라.시국의 변화를 따라 잘 대처하면 자신과 처자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꿈을 꾸고 선뜻 서울에 올라와 보니독립협회 회원들이 아우성을 치며 거리를 누벼 장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사람같지 아니한 무리(匪類),즉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무리들이 작당을 하여 단체를 만들고 이름을 독립협회라 하고 광화문 앞에 모여서 밤낮으로 선동하고 있었다.이 때문에 소란상태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문안이나 성밖을 막론하고 온 서울의 인심이 점점 물끓듯 하여 장차 군자는 설땅이 없을 것같은 조짐이 보였다.” 독립협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이 11년만에 귀국,1896년 7월 2일 결성한 단체였다.우리나라 최초의 민권당(民權黨)이요,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지금 많은 역사가들이 독립협회를 찬양하고 있으나 당대의 절대 다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예컨대 정성우(鄭惺憂)라는 선비는 상소하기를 “갑신정변때 망명했던 역당들이 갑오 6월의 난을 일으켰으며,다시 을미 8월의 대역(大逆)을 양성한 것이다.소위 개화의 무리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환국,둔갑해서 말을 바꾸기를 부국강병이라 하고 외국인을 불러들여 대변(大變)을 일으켰다.흉도(兇徒) 서재필이 외신(外臣)이라 자칭하며 국권에 간여하고 있는 것은 무슨장난이며 독립신문이라는 것은 정부를 훼방하는 글 뿐이요,의리를 저버린 것이다.이것은 다만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다”고 통렬히 비난하였다.그러니 ‘남가몽’이 독립협회 회원을 ‘비도’라 했다해서 상식에 어긋나는 말은 아니었다. “이때에 황상폐하(고종)께서는 특별히 교서를 내리시어 ‘지금 너희들이 이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죄망에 걸리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곳에 빠져들고 부득이하게 핍박되어 평시와 다르게 되었으나 내가 마땅히 용서해주고 놓아줄 것이다.각자 돌아가 농사짓는 자는 농사짓고 장사하는 자는 장사에 부지런히 힘써 생업에 안착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고 경고하여 깨우쳤다.” ○영은문 헐고 독립문 건립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지 않고 한결같이 사단을 야기하였다.이에 고종과 순종이 크게 진노,직접 광화문루 위에 올라가 교시를 내려 말하기를 “짐(朕)이 너희 무리들의 범죄를 풀어서 놓아주고 각자 돌아가 생업에 안착할 의사를 누차 깨우쳐 주었으나 듣지 않으니 너희 무리들은 도무지 정치 밖에 있는 백성으로 국민이 아니다.사세가 부득이하니 너희들을 차별없이 소멸시키고 말겠다” 하고 대포를 성루에 높이 달아매고 위력을 보이니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내가 서울에 갔을 때는 차차 평온해지고 시골도 점점 진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그러나 남은 재앙이 이어져 수해와 기근이 겹치게 되고 도적이 날뛰어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해마다 일어나지 않는 때가 없었다.겉으로는 조금 안정을 되찾는 듯했으나 안으로는 점점 비상시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재필은 먼저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이어 모화관의 편액을 독립관으로 바꿔 달았다.봄부터 독립관에서는 치열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모두가 전직 판서·참판·승지 등 고위층들로 가마를 타고 나타나 앞마당은 거마로 꽉 찼다.또한 토론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 발언권을 얻어도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연단에 서있다 내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루는 토론 주제가 “길에 가로등을 달아 도적을 없앱시다.”였다.한 사람이 일어서서 “가로등이 비치면 도적이 은신할 데가 없으니 매우 유용합니다”고 주장했는데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어떤 사람은 “도적이 어디 길에서 도적질 합디까.남의 집 캄캄한 다락이나 곳간에서 도적질하기 때문에 가로등을 세워봐야 소용없습니다”고 하였고,다른 사람은 “가로등으로 밤도둑은 막을 수 있으나 밤에 등불을 켜고 남의 집에 들어가는 명화적(明火賊)에게는 가로등이 소용없고 또 청천백일하에 선량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낮도둑(부정부패 관리)에게는 백촉,천촉,억만촉의 등불을 켜도 막을 수 없습니다.여러분!”이라고 소리쳤다. ○법무대신 韓圭卨이 감형 때마침 회장에 몰래 숨어들어와 있던 내부협판(內部協判·내무부 차관) 김중환(金重煥)이 이를 듣고 곧장 고종에게 달려가 “독립협회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정부요인들을 절국대도(竊國大盜)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라고 과장했다.고종은 대로하여 해산령을 내렸고 그래도 해산하지 않고 이듬해 여름까지 세번이나 직소를 올리자 어용단체 황국협회(皇國協會)로 하여금 몽둥이로 독립협회원을 두들겨 패고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때 독립협회 주동자는 18명이었는데 윤치호를 뺀 17명 모두가 서소문 감옥에 갇혔다.그중에서도 이승만(李承晩)은 가장 과격한 분자라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며 한번 탈옥하다가 붙잡혀 들어왔으므로 꼭 죽어야 될 신세였다.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한규설(韓圭卨)이 법무대신이 되더니 그를 감형하였고,1904년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가 고종에게 상주(上奏)하여 특사로 풀려났다.하야시는 훗날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살려내리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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