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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3대 국영 석유사 회장 ‘돌려막기’

    반부패 사정 태풍으로 쑥대밭이 된 중국의 거대 석유회사들이 ‘2인자’가 모두 낙마하는 바람에 내부 승진 관례를 깨고 회장을 ‘돌려막는’ 인사가 단행됐다. 5일 중화권 매체들은 공산당 조직부가 3대 국영 석유기업 회장을 동시에 교체한 이례적인 인사를 집중 보도했다. 3대 석유기업은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중석유·CNPC), 중국석유화학집단공사(중석화·SINOPEC), 중국해양석유총공사(중해유·CNOOC)를 일컫는다. ‘공화국의 적장자’로 불리는 이 기업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석유시장에서도 ‘큰손’으로 통한다. 인사 요인은 푸청위(傅成玉) SINOPEC 회장과 저우지핑(周吉平) CNOOC 회장이 정년퇴임하면서 발생했다. 국유기업 회장은 부부급(副部級·차관급)으로 만 63세가 되면 퇴임해야 한다. 회장은 내부승진이 관례였다. 문제는 이 기업의 2인자들이 모조리 비리 혐의로 낙마해 내부승진할 적임자가 없었다. 올 들어 SINOPEC의 왕톈푸(王天普) 사장, CNPC의 랴오융위안(廖永遠) 사장, CNOOC의 우전팡(吳振芳) 사장이 모두 중앙기율위의 부패 수사에 걸려들었다. 당 조직부는 고육책으로 왕이린(王宜林) CNOOC 회장을 CNPC 회장으로 수평 이동시켰다. SINOPEC 회장으로는 왕위푸(王玉普) 현 중국공정원 부원장을 ‘공수’해 왔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나이가 59세여서 이번 인사는 임시방편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25년간 130개국 돌며 ‘야생 무역상’ 자처한 전권열씨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25년간 130개국 돌며 ‘야생 무역상’ 자처한 전권열씨

    그는 뭐든 파는 사람이다. 1990년 부산의 태광CMC란 주문자 상표 부착(OEM) 운동화업체에 취직한 것을 시작으로 무역업체 6~7군데를 거치며 해외영업 담당으로 일했다. 5년여 전부터는 프리랜서 무역 중계 및 컨설턴트 일을 하며 2012년 ‘나는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았다’를 펴낸 전권열(50)씨. ‘야생 무역상’을 자처하며 블로그 ‘지구촌 보부상 개성상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생산 및 수출업체의 해외영업과 마케팅, 바이어 발굴, 오더 수주 등을 하니 쉽게 말해 오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지도를 펼쳤을 때 안 가본 나라를 꼽기가 더 쉬울 그는 파푸아뉴기니의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고 아프리카에 뻥튀기 기계도 팔았다. 지난달 17일 서울역의 공항철도 탑승 게이트 앞에서 만났는데 열흘 넘게 동남아와 피지를 방문한다고 했다. 피지에는 슬리퍼에 문양을 새기는 기술이 없어 전사지(轉寫紙·도기나 양철에 인쇄할때 쓰는 인쇄화지)를 팔러 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몇 개국을 다녀왔고, 앞으로 여행 계획은 -3년 전 책을 쓰면서 꼽아보고 최근 기억을 더 더듬으니 비행기 경유지를 포함해 130여개국 300여개 도시를 가봤다. 전 세계에 200여개국이 있으니까 그래도 안 가본 나라가 70여개국은 되는 셈이다. 이제 업무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갈 일은 없을 것 같고, 관광 삼아 가보고 싶은 곳으로는 카리브해의 벨리즈, 마틴 제도나 중유럽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을 꼽고 있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골똘히 쳐다본 기억이 있나. -딱 그렇게 한 적은 없지만, 사회와 부도 및 지리 과목에 꽤 흥미가 있어 여러 나라의 수도를 거의 다 외울 정도였고, 세계지도도 어느 정도 그릴 줄 알았던 것 같다. →첫 출장을 1990년 뮌헨으로 떠난 것으로 아는데. -그때 모스크바와 암스테르담, 취리히, 뮌헨, 스트라스부르를 다녀왔는데 직항이 없어 매번 비행기를 갈아탔다. 떠날 때는 옛소련과 서독이었는데 귀국할 때와 얼마 안 있어 각각 러시아와 독일로 바뀌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을 텐데 재미있는 일은. -일주일에 시베리아를 두 차례 왕복한 적이 있다. 영국과 벨기에를 다녀왔다가 귀국한 뒤 이틀 만에 다시 독일과 터키를 다녀왔다. 또 하루에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 3개국과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뮌헨 등을 여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업무를 보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 들러 일 보고, 태평양 건너 일본에서 일 보고 귀국했는데 일주일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비행기 탑승한 것만 35시간 걸렸더라. →위험한 고비도 많았을 텐데.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납치도 당해봤고, 강도들을 만나 날치기도 당해서 중요한 서류와 돈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강도 칼에 손도 찔려 봤다(그러면서 그는 오른손의 흉터 자국과 왼손의 관절 부위가 기묘하게 휘어진 것을 보여줬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급한 일 보려다 독사에게 물려 큰일 날 뻔한 적도 있다. →어떤 상품들을 얼마만큼이나 팔았나. -직장 다닐 때는 회사의 데이터로, 그 뒤엔 무역중계 파트너의 데이터로 넘어가기 때문에 정확한 수량과 액수를 산정하기 어렵다. 돈을 제대로 못 받은 적은 없지 않지만 내 실수로 다니던 직장이나 거래하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 자부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거래는. -남태평양 섬나라의 식인 부족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맨발에 운동화를 신겨줬던 일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뻥튀기 기계도 아프리카 나라들에 팔았는데 적은 곡물로 많은 양의 식량을 만들어 식량 개선에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아프리카 시장에 꽃장판과 앙골라칫솔, 물통과 비닐봉지를 판매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경남 합천 출신인데도 전남 무안과 목포, 전북 군산에 인맥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장사꾼이 어딘들 못 가겠나. 지구촌 어디라도 주소만 있으면 찾아다녔다. 국내에서 군 단위로는 울릉군 외에는 거의 다 가본 것으로 기억한다. 전 세계에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데, 국내는 그러지 못하다면 균형이 어그러지는 것 아닌가? →책에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과의 인연도 상세히 쓰셨던데. -첫 직장에서 휠라 제품의 생산 및 수출 담당으로 일할 때 휠라코리아의 전신인 라인실업 대표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서울 본사 직원이 6~7명, 부산사무소에 5~6명 일했는데 지금은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셨다. 지금도 윤 회장은 “나도 마흔여덟에 시작했어. 지금도 늦지 않았어. 해봐”라고 말씀하시며 “뭐 도울 일 없어?”라고 물어봐 주신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내 마음의 멘토로 여겨왔다. 정말로 자랑스럽고 늘 존경한다. →그런 오랜 경험과 지혜를 코트라 같은 곳에서 활용하지 못하나 아쉬움이 드는데. -우리나라 무역을 대표하는 정부기관이 저처럼 해외 틈새시장만 파고든 사람을 활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류 대학 출신에 대기업 영업맨들이 다 차지하고 있을 텐데 저처럼 지방대학 출신에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경험을 활용하기 어렵다. 몇몇 무역 관련 기관과 중소기업의 중장년 해외비즈니스 전문가 특채에 응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능력과 경력을 따지지 않는 풍토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미련을 접고, 보람 있게 일하고 있다. →그렇게 고생했으니 큰 기업에 들어가 적당히 편하게 사는 꿈도 있을 텐데. -아무리 돈 많은 회장님도 혼자 사막이나 정글에 못 가지만, 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고 회사나 상사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인맥을 형성하는 비결은. -직장 다닐 때 알게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필요한 사람을 계속 연결시키다 보니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보통 해외바이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데 난 다르다. 비즈니스이건 아니건 수시로 안부 주고받고, 성탄절에 카드나 연하장 보내고 평소 개인적인 일로도 상부상조한다. 세계 어디에서나 돈 잃고 갈 곳 없어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는 분명 갖고 있다. 그는 늘 ‘길 위의 사람’이지만 첫 출장 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권의 여권을 모두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꼼꼼한 사람이다. 여행에 관해 기록된 것들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항공권과 버스, 열차, 배 등의 티켓 사진을 보냈는데 모두 42개나 됐다. 동전 사진 파일만 73개, 지폐 사진 파일만 151개나 됐다. 가이드북과 기념책자, 그림엽서 등도 일일이 모아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다 모았나. -사람들이 굉장히 활달한 성품인 줄 아는데 군에 입대하기 전만 해도 대단히 내성적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적극적으로 바뀌더라. 본래 성격대로 플로피디스켓부터 시작해 컴팩트디스크를 거쳐 지금은 메모리칩까지, 업무 데이터는 물론 여러 나라를 방문한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자료들을 모두 갖고 있다.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글쎄, 탐내는 이들이 과연 있을까? →한때 우리 경제를 떠받쳤던 상인 정신이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가. -전 여전히 농사도 많이 짓고 제조업도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테크노, 정보기술(IT) 산업이 발달하면서 컴퓨터, 인터넷, 게임 등은 발달되는데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산업들은 정체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은근과 끈기도 부족하고 힘든 일은 아예 엄두를 못 내고, 사회생활에 적응력도 떨어져 기업에서는 경력자를 선호하고 그러다 보니 취업이 어렵다는 뉴스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마저 나라가 텅 비어도 좋으니 청년들이 중동에라도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장을 많이 다녀본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의 좋은 환경에서도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이 부지기수인데, 특히 기후와 모든 것이 열악한 중동이라면 글쎄, 많이 어렵다고 본다. →가장 힘들게 한 출장지, 비즈니스 파트너는. -미주지역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시장을 주로 다녔는데 가장 힘든 곳이 중동이었다. 가장 난감했던 비즈니스 파트너는 의외로 미주지역과 중국인데 사람을 실망시키고 농락하는 일들이 빈번해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seoul.co.kr)에 이를 상세히 다룬 별도 기사 게재합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인격을 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날 때 원칙이라면. -개인적인 만남일 때는 날 최대한 상세하게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만날 때는 간단명료하게 한다. 상대의 말은 늘 적극적으로, 전부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나? 나라별 고객 응대법은. -생활용어는 현지어로 쓰고 비즈니스는 영어로만 하는데 영어의 발음도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 남태평양에서 제각기 다르게 쓴다. 아랍 상인을 대할 때는 유치원생, 초등학생 대하듯이 해야 되고, 터키 상인은 생각보다 냉정하니까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남미상인은 다혈질이라 인내력이 필요하고, 중국 상인은 이기적이면서도 뭐라도 다 해줄 것처럼 과장하는 일이 많으니까 꼼꼼하게 대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의 삶, 후회하지 않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유년을 보내고 오랜 세월 샐러리맨으로 살아 금전적으로 부유하지 않지만, 특별히 남들보다 많이 외국을 돌아다니고,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여러 나라의 소중한 인연과 친구들이 있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꼭 팔아보고 싶다는 게 있는지. -배운 거라곤 외국에 장사한 것밖에 없으니까 그것을 밑천으로 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것이다. 아직도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으며 뭔가를 팔 곳도 무궁무진하다. 걸어다니는 데 이상이 없을 때까지, 유행가 가사대로 ‘걸어서 하늘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행기나 자동차 타고 걸어서 지구촌 전부는 가봐야 되지 않겠나. 다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해도 지금까지 해온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프리카와 중동에 가서 곱슬머리를 쉽게 펼 수 있는 고데기를 팔고 싶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5년 동안 135개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온 전권열(50)씨는 가장 장사하기 까다로운 지역으로 아랍권을 손꼽았다. 다음은 10년 넘게 아랍권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은 전씨가 정리한 체험담.    1. 알고 떠나야 후회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제일 특이한 국가, 아랍국은 입국할 때부터 힘겹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다.  제일 어렵고 골치 아프게 입국 심사를 하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인데, 특히 수도인 리야드의 국제공항은 더욱 까다롭다. 이곳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입국장으로 뛰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입국 수속을 위한 대기에만 2~4시간 걸리기 때문이다.  여권과 비자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엄청 많다. 그래서 리야드를 경유해 국내선으로 갈아 타려면 비행기를 놓치기 일쑤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는 미국인이 1순위다. 미국 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입국 심사도 수월하게 지나간다. 걸프전 때 나라를 구해줬기 때문이란다.  우리 국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현지의 거래처나 지인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주한 사우디대사관에 접수하면 대사관에서 확인을 거친 뒤 비자를 발급해준다.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최소 일주일은 기본이다. 중국이나 다른 대사관처럼 수수료를 많이 내면 빨리 발급 해주는 ‘특급’도 없다.  그나마 요르단과 쿠웨이트는 공항에서 입국 수속할 때 수수료 20여 달러를 주고 비자피 확인증만 받으면 입국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비자를 받든지, 현지 거래처를 통해 호텔 도착 비자를 미리 발급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단기 방문은 무비자로 가능하다.  이스라엘은 비자를 별도 용지(보통 A4)에 받아서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입국 심사 때에는 여권에 스탬프를 찍지 않으며, 일반 용지로 된 비자에 확인을 해준다.  여행자가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아랍국을 방문할 때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 비자나 입국 스탬프가 있으면 입국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행자를 배려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공기 여승무원은 전부가 개방적인 모로코, 레바논, 이집트 등의 여성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할 때, 수년 전에는 사우디아항공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에미레이트항공이나 여러 항공사가 가세하면서 입국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제다, 담맘으로도 노선이 생겨 비즈니스 여행자들이 많이 편리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찾는 외국인 대다수는 비즈니스맨이거나 노동자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특별히 여행할 만한 곳이 없어서다.  언젠가 싱가포르에서 제다행 사우디아항공을 이용했을 때였다. 입국자가 리야드보다 적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비행기가 제다까지 가지 않고, 제다행 승객에게 리야드에서 내려서 다른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 타라고 말했다. 독점항공사의 횡포이자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는 0점이고, 모든 일정은 항공사 마음대로였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리야드에 내려서 악몽 같은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아 다시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 제다행 수속을 밟고 어렵사리 국내선으로 갈아 탔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니 방문 절차가 까다로운 국가를 수월하게 방문하는 요령이 생기더라.  언젠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갈아 탔는데 내 자리에 여자 승객들이 죽 앉아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해명도 없이 눈만 끔뻑이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항의하니까 승무원이 오더니 제멋대로 날 다른 좌석으로 지정하고는 가버렸다. 아랍의 특성상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좌석에 앉을 수 없다면, 티케팅할 때 미리 여자 승객들끼리 앉도록 배정하면 될텐데, 이건 열차도 버스도 아니고 엄연히 국제선 비행기인데 승객들을 불편하게 하면 되느냐 싶었다.    2. 비행기 뒤쪽 커튼이 쳐진 뒤에서는  아랍의 비행기를 타보면 가장 뒤쪽에 기도하는 장소를 만들어놓고 커튼을 쳐놓은 곳이 있다. 그곳에서 옷도 갈아 입고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향해 기도 시간이 되면 하나둘씩 기도한다. 이륙한 뒤나 착륙하기 전에 기장이나 승무원들이 안내방송을 하는데, 아랍 항공기는 제일 먼저 “신을 위하여, 신을 위한, 신에 의해” 안전한 항로가 되기를 기원하는 말부터 한다. 정말로 종교에 심취해 살아가는 것 같다.  아랍국에서 택시를 이용할 때는 미터기를 사용하든 말든 목적지를 말하고 미리 요금을 협의한 뒤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길을 알아둬야 한다. 그래야 택시기사가 엉뚱한 길로 가거나 돌아가는 일이 없다.  아랍국 중에 방문하거나 생활하기가 그나마 자유로운 나라들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모로코 정도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폐쇄된 사회여서 불편한 나라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등이므로 이곳을 방문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아랍의 화장실은 정말 깔끔하다. 일단 들어가면 양변기 옆에 세면기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남자 소변기 옆에는 샤워기 같은 것이 있다. 좌변기 옆에 있는 것은 여성용 비데다. 그리고 소변기 옆의 샤워기는 남성용 세정기다. 무슬림 남녀들은 소변을 본 뒤 반드시 아래를 씻는다. 이런 것이 없다면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라도 씻는다. 그것이 이슬람의 성스러움과 신에 대한 예의라고 하니 이해하자. 단, 공공장소 심지어 국제공항 화장실에도 화장지가 없으니 꼭 미리 준비해야 한다.    3.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랍국 거래처들과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짜증이 날 일이지만, 그들의 순수성을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된다.  상대방이 약속 시간을 어겨도 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소기의 비지니스 목적을 이룰 수 있을니까.  아랍인의 시간 개념은 코리안 타임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아랍 상인들과 일할 때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10년 이상 아랍 상인들과 비즈니스를 했더니 많이 여유로워졌다.  아랍국에서는 열차도 항상 늦는다. 3~4시간 늦는 것은 예사다. 그런데도 승객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태연하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 또한 비즈니스 서류를 접수해서 다시 돌아오는 데 빠르면 보름이고 한 달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아랍인들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중시하지 않는다. 또 대다수 무슬림은 다섯 차례 기도 시간을 기준으로 약속을 정한다. 기도 시간은 새벽 4시 반, 정오, 오후 3시 반, 저녁 6시 반, 8시쯤인데 확실히 지킨다.  그러니 아랍 상인들과 일할 때는 가급적 이 시간을 피해야 한다. 미팅을 하다가도 기도 시간이 되면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나갔다가 20여분 뒤에나 돌아오기 마련이다.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갔다 와서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란 식이다.  이들의 시간 개념은 ‘부크라’(내일), ‘인샬라’(신의 뜻대로)’로 함축된다. 오더 수주나 대금 결제가 내일 가능한지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법이 없고 항상 ‘인샬라’라고 답한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아예 약속 자체를 깨고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뭐라고 할라치면 ‘마알레쉬’(개의치 말라)라고 한마디 할 뿐이다.  이 말은 상당히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말이지만, 불성실한 행동의 책임을 전가하는 말로 즐겨 쓰인다. ‘부크라’는 내일이 아닌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관공서나 거래처에 좀 늦게 방문하면, 아랍인들은 내일 오라고 말한다. ‘바덴’은 나중에, 다음에란 뜻이지만, 진짜 의미는 “지금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랍국 상인들과의 협상은 인내력 테스트나 마찬가지다. 한 바이어와 상담할 때에도 같은 장소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러니 하루에 여러 군데와 상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아랍국 바이어들과 상담 약속을 할 경우엔 하루나 이틀에 한 업체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4. 그래도 아랍 비즈니스는 재미있다. 왜?  사막 지역의 나라에서는 대부분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침 시간이 있다. 관공서를 포함한 모든 사무실이 그 시간에 문을 닫는다. 대신 오침 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부터 밤늦게, 보통 11시까지 일한다.  아랍국 상인들과 비즈니스 상담을 할 때는 바디 랭귀지를 잘 살펴야 한다. 아랍인은 애매한 것들은 말로 하기보다 제스처로 표현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가볍게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며 동시에 눈을 끔벅이는 것은 긍정의 뜻이다. 눈썹을 치켜 세우며 입술을 오므리고 혀를 잇몸 가까이 대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머리를 위로 약간 쳐들면 부정의 뜻이다.  아랍국 상인들은 질보다 양이 먼저다. 그들은 실제로 그만큼 주문하지도 않으면서, 수량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면 무조건 컨테이너 단위로 대답한다. 그러면 수출업자가 가격을 싸게 주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 싸게 가격을 내놓으면 또 내려달라고 덤빈다.  결제 조건이나 가격도 꼼꼼히 따진 뒤에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달콤한 말에 넘어가 요구하는 대로 계약한 뒤 신용장을 받으면, 바이어가 유리한 조항들로만 가득할 것이다. 바이어가 마음에 안 들거나 수출자가 따지면 바로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거래처와 계약해 버린다.  그러니 아랍 상인들은 유치원생 다루듯이 살살 어르고 칭찬하면서 온갖 말로 유혹해야 한다. 세계에서 제일 비즈니스하기 까다로운 것이 아랍인이라고 하지만, 거래를 하다 보면 그들보다 쉬운 거래처가 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한번은 아랍 상인과 가격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내 상황에서는 단가를 5센트 인상해야 그나마 조금 남을 형편인데, 아랍 바이어는 막무가내였다. 몇 번이나 설득해도 안 되자 내 말대로 계약하면 지금 현금 200달러를 줄테니 아이한테 과자나 사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덥석 돈을 받고는 5센트를 올려주었다. 사실 5센트를 인상하면 500달러가 남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200달러를 주었으니 300달러가 남는 흥정이었다.  이처럼 아랍인들은 단순하다. 그 점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바이어들에겐 그런 식으로 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예 그런 시도는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5.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아랍식 관용어들  아랍인들은 장난스럽고 허물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칫 잘못하면 말재간에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즈니스 상담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하지만, 간혹 아랍어가 필요할 때도 있다. 능숙하게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말은 익혀두어야 한다.  아랍에서는 애정 섞인 표현으로 사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하비비(habibi)’란 말이 있는데, 연장자가 아랫사람을 친밀하게 부르는 말이다.  원래는 이성간에 사용하는 말이다. 같은 식으로 ‘이브니(ibni)’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본래 뜻은 ‘나의 아들’이다. 동년배끼리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농담할 때나 비아냥 거릴 때다. 반면에 ‘야 왈라드’라는 말은 ‘꼬마야’라는 뜻으로 길거리의 신문팔이 아이를 부를 때 쓴다고 한다.  무슬림들의 인사는 꽤나 길다. 상대의 인사말보다 더 나은 인사로 하든지, 적어도 동등한 수준에서 응답해야 한다. 이를테면 ‘싸바훌 카이리(아침 인사 : 안녕하세요?)’란 말이 있는데, ‘카이리’는 행운, 안녕을 뜻한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표현이 ‘누르(빛)’이기 때문에 대답으로 ‘싸바한 누르’라고 말하거나 그와 동등한 말로 답해야 한다.  아랍국 무슬림들끼리 만나면 ‘앗쌀라무알라이쿰(안녕하세요?)’이라고 인사하고 ‘와 알라이쿠뭇 쌀람’이라 고 대답하는데, 원래 뜻은 ‘평화가 그대에게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헤어질 때 ‘마앗 쌀라마(안녕히 가세요)’도 무사히 갔다 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대답은 ‘일랄리까(만날 때까지)’다.  이름 앞에 ‘야 우스타즈(sir)’라고 덧붙이는 것은 대학교수나 변호사, 문인들에게 쓴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독토르’, 정부 고위직에게는 ‘앗사아아다’라고 붙여준다. 일반적으로 존경을 표시하는 말에는 ‘하드리탁(adritak)’, 부인에게는 ‘야 마담’, 잘 모르는 이에게는 ‘야 아크(yaa ‘akh)’라고 한다.  공손하고 예의바른 표현으로는 ‘라우 싸마흐트(실례합니다만)’, ‘민 바아드 아므락(허락하시면)’, ‘타팟달(앉으세요, 들어오세요, 먼저 하세요, 그렇게 하십시오, 드십시오)’ ‘알라히 칼릭’ ‘알라히야 호파작’(신이 지켜주시기를) 등이 있다. 이 밖에 흔히 쓰이는 말로 ‘꾸워이스’(좋다, 건강하다), ‘마아쉬’(천천히), ‘슈웨이야’(조금),‘맙쑤뜨’(기쁘다, 만족한다), ‘슈크란’(감사합니다) 등이 있다.
  • [아하! 우주] 아득한 우주 거리, 과연 어떻게 잴까?

    [아하! 우주] 아득한 우주 거리, 과연 어떻게 잴까?

    -천문학자들의 줄자 ‘우주 거리 사다리’  100억 광년 밖의 은하를 관측했다느니, 1000만 광년 거리의 은하에서 초신성이 터졌다느니 하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1광년이라면 1초에 30만km,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돈다는 빛이 1년을 내달리는 거리다. 이것만 해도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잘 가늠이 안되는 거리인데, 천문학자들은 10억 광년이니 100억 광년이니 하는 그 엄청난 거리를 도대체 어떻게 재는 걸까? 물론 하루아침에 우주 측량술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천재들의 열정으로 갖가지 다양한 기법들이 차례로 개발되면서 이 엄청난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우주 측량술이 정립되었다. 태양이나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행해져 왔지만, 하늘의 단위와 지상의 단위를 결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문학자들은 먼저 지구의 크기와 달과 태양까지의 거리를 구한 다음, 그것들을 기초로 삼아 가까운 별에서 더 먼 천체까지 차례로 거리를 측정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이런 식으로 단계별로 척도를 늘려나가는 측량 방식을 '우주 거리 사다리'(cosmic distant ladder)라 한다. 측량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것이다. 사람은 늘 측량한다. 인류가 지상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측량은 시작되었다. 측량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측량에도 ‘천문’은 깊이 개입되어 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삼은 한 달의 날수가 바로 천문학적인 것이다. 또 미국과 미얀마 등 몇 나라만 빼고 전 세계가 쓰고 있는 미터법은 바로 지구의 크기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이 채 잦아들기도 전인 1790년, 혁명정부가 도량형 통일을 위해 ‘미래에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을 기준으로 1m를 정했는데, 그게 바로 북극과 파리, 적도에 이르는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1m로 한 것이다. 곧, 북극점에서 적도에 이르는 거리의 1만분의 1이 1km인 셈이다. 그러니까 지구 한 바퀴는 4만 km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 미터법으로 원자의 크기를 재고 우주의 넓이를 잰다. 삼각형 하나가 가르쳐준 ‘천동설’ 역사상 최초로 ‘우주 거리’를 잰 사람은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BC 310경~230)였다. 그가 우주 측량에 사용한 도구는 삼각형과 원, 그리고 하늘의 달이었다. 그러나 그 측량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먼저 그가 월식을 관측하고 얻은 결과물을 살펴보도록 하자. 월식 때 월면은 지구에 대한 거울 구실을 한다. 월면에 지구 그림자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지구 그림자를 보면 원형이다. 지구가 만약 삼각형이라면 그림자도 삼각형일 것이요, 편평한 판이라면 그림자도 길쭉하니 비칠 게 아닌가. 그런데 월식 때 보면 지구 그림자는 언제나 둥그렇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이를 지구가 구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보았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월식 관찰은 여느 사람과는 달랐다. 월식으로 지구 그림자가 달의 가장자리에 올 때 두 천체의 원호 곡률을 비교함으로써 달과 지구의 상대적인 크기까지 알아냈던 것이다. 가히 천재의 발상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알아낸 값은 지구 크기가 달의 3배라는 사실이다. 참값은 4배이지만, 기원전 사람이 맨눈으로, 그리고 오로지 추론만으로 그 정도 알아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지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천재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달이 정확하게 반달이 될 때 태양과 달, 지구는 직각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이룬다는 사실을 추론하고, 이 직각삼각형의 한 예각을 알 수 있으면 삼각법을 사용하여 세 변의 상대적 길이를 계산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지구와 태양, 달이 이루는 각도를 쟀다. 87도가 나왔다(참값은 89.5도). 세 각을 알면 세 변의 상대적 길이는 삼각법으로 금방 구해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달과 태양은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다. 이는 곧, 달과 태양의 거리 비례가 바로 크기의 비례가 된다는 뜻이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이 점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이 세 천체의 상대적 크기를 또 구했다. 태양은 달보다 19배 먼 거리에 있으며(참값은 400배), 지름 또한 19배 크다. 고로 달의 3배인 지구보다는 7배 크다(참값은 109배). 따라서 태양의 부피는 7의 세제곱으로 지구의 약 300배에 달한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수학은 정확했지만 도구가 부실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지구보다 300배나 큰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것은 모순이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구가 스스로 하루에 한 번 자전하며 1년에 한 번 태양 둘레를 돌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감각에만 의존해왔던 오랜 천동설을 젖히고 인류 최초의 지동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은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신성 모독이므로 재판에 부쳐야 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어쨌든 우주의 중심에서 인류의 위치를 몰아낸 지동설은 이렇게 한 천재의 기하학으로부터 탄생했다. 따지고 보면 직각 삼각형 하나가 인류에게 지동설을 알려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천재에게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한다. 천문학사에 불멸의 이정표를 세운 아리스타르코스는 달 구덩이 가운데 하나에 그 이름이 붙여져 영원히 남게 되었는데, 그 중심 봉우리는 달에서 가장 밝은 부분이다. 작대기 하나로 지구의 크기를 잰 사람 아리스타르코스의 뒤를 이어받은 한 천재는 한 세대 뒤에 나타났다. 그가 바로 역사상 최초로 한 천체의 크기를 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BC 276~194)였다. 그가 잰 천체는 물론 지구였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터무니없이 간단한 방법으로 인류 최초로 지구 크기를 쟀는데, 참값에 비해 10% 오차밖에 나지 않았다. 그가 이용한 방법은 작대기 하나를 땅에다 꽂는 거였다. 해의 그림자를 이용한 측정법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 역시 기하학을 이용한 건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남쪽의 시에네 지방(아스완)에서는 하짓날인 6월 21일 정오가 되면 깊은 우물 속 물에 해가 비치어 보인다’는 문장을 읽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 인들은 지역에 따라 북극성의 높이가 다른 사실 등을 근거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체인 지구의 자전축은 궤도 평면상에서 23.5도 기울어져 있다. 하짓날 시에네 지방에 해가 수직으로 꽂힌다는 것은 곧 시에네의 위도가 23.5도란 뜻이다.(이 지점이 바로 북회귀선, 곧 하지선이 지나는 지역이다) 여기서 천재의 발상법이 나온다. 그는 실제로 6월 21일을 기다렸다가 막대기를 수직으로 세워보았다. 하지만 시에네와는 달리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막대 그림자가 생겼다. 그는 여기서 이는 지구 표면이 평평하지 않고 곡면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에라토스테네스가 파피루스 위에다 지구를 나타내는 원 하나를 컴퍼스로 그리던 그 순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수학적 개념이 정확한 관측과 결합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를 확인해주는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다.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림자 각도를 재어보니 7.2도였다. 햇빛은 워낙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두 곳의 햇빛이 평행하다고 보고, 두 엇각은 서로 같다는 원리를 적용하면, 이는 곧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거리가 7.2도 원호라는 뜻이 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걸음꾼을 시켜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걸음으로 재본 결과 약 925km라는 값을 얻었다. 그 다음 계산은 간단하다. 여기에 곱하기 360/7.2 하면 답은 약 46,250이라는 수치가 나오고, 이는 실제 지구 둘레 4만km에 10% 미만의 오차밖에 안 나는 것이다. 이로써 인류는 우리가 사는 행성의 크기를 최초로 알게 되었고, 이를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과 달까지 상대적 거리에 대입시켜, 비록 큰 오차가 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실제 거리를 알게 된 것이다. 2300년 전 고대에, 막대기 하나와 각도기, 사람의 걸음으로 이처럼 정확한 지구의 크기를 알아낸 에라토스테네스야말로 위대한 지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분은 또 수학사에도 이름을 남겼는데, 소수(素數)를 걸러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고안해낸 수학자이기도 하다. 달까지 거리를 ‘줄자’로 재듯이 잰 사람 에라토스테네스 다음으로 약 1세기 만에 나타난 걸출한 천재는 에게 해 로도스 섬 출신의 히파르코스(BC 190~120)였다. 그가 남긴 천문학 업적은 세차운동 발견, 최초의 항성목록 편찬, 별의 밝기 등급 창안, 삼각법에 의한 일식 예측 등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다. 그는 지구 표면에 있는 위치를 결정하는 데 엄밀한 수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오늘날과 같이 경도와 위도를 이용하여 위치를 나타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돌던 팽이가 멈추기 전에 팽이 축을 따라 작은 원을 그리듯이 지구 자전축의 북극점도 그러한 모습으로 회전한다는 세차운동의 이론을 정립하고 그 값을 계산해냈다. 1년 동안 춘분점이 이동한 각도를 구하고, 360도를 이 값으로 나누어 구한 값이 2만 6,000년이었다.(오늘날의 그 참값은 25,800년). 히파르코스의 측량술은 달에까지 미쳤다. 그는 간단한 기법으로 달까지의 거리를 구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시차(視差)였다. 한 물체를 거리가 떨어진 두 지점에서 바라보면 시차가 발생한다. 눈앞에 연필을 놓고 오른쪽 눈, 왼쪽 눈으로 번갈아 보면 위치 변화가 나타난다. 이처럼 하나의 물체를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보았을 때 방향의 차이를 시차라 하는데, 천문학에서는 관측자의 위치에서 본 천체의 방향과 어떤 표준점에서 본 천체의 방향과의 차이를 말하며, 연주시차와 일주시차가 있다. 이 시차는 우주 거리를 재는 천문학자들이 가장 애용한 도구였다. 히파르코스는 두 개의 다른 위도상 지점에서 달의 높이를 관측해 그 시차로써 달이 지구 지름의 30배쯤 떨어져 있다는 계산을 해냈다. 이 역시 줄자를 갖다대 잰 듯이 참값인 30.13에 놀랍도록 가까운 값이었다. 이로써 그는 아리스타르코스가 구한 값(지구 지름의 9배)을 크게 수정한 셈이다. 이는 지구 바깥 천체까지의 거리를 최초로 정밀하게 측정한 빛나는 업적이었다. 히파르코스는 나이 쉰 살이 되어 로도스 섬 해변 가까운 산꼭대기에 천문대를 세우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히파르코스 이후 적어도 300년 동안 그를 능가하는 천문학자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시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문화 In&Out] 미술 한류에 재 뿌리는 ‘실적 쌓기’ 해외 전시 관행

    [문화 In&Out] 미술 한류에 재 뿌리는 ‘실적 쌓기’ 해외 전시 관행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무라트 예술센터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 전시회(3월 21일~5월 9일)가 어린이 페스티벌 때문에 지난 15일부터 닷새 동안 중단됐다. 전시 기간 중에 작품을 철수했다가 재설치하는 ‘부분 중단 전시’는 상설 전시라면 모를까 기획전의 경우엔 극히 예외적이다. 이는 르무라트 측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상호협의로 맺은 전시계약서에 따른 것이라고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뒤늦게 밝혔다. 르무라트 측이 함부로 전시작품을 철수하거나 운영 및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니니 천만다행이지만 국가기관에서 전시를 하면서 이런 조건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더욱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단 며칠 동안이라도 철수되는 처지에 놓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로마 국립21세기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미래는 지금이다’(2014.12.19~2015.3.15)전에 출품했던 40여점의 작품 중 6점을 소개하는 것이다. 르무라트와 국립현대미술관이 맺은 계약서 2조 1항은 ‘해당 전시는 4월 15일부터 4월 19일까지 피렌체시와 어린이 페스티벌이 맺은 사전 계약에 의거해 부분적으로 중단된다. 이와 함께 살라 베트라타가 주최하는 회의가 전시 기간과 중복되면 더블 채널 프로젝션은 잠시 중단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계약서에 따르면 이 장소에서는 이미 두 건의 이벤트성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뒤늦게 급조된 전시라는 얘기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담당했던 실무자는 29일 “지난 연말 로마 국립21세기현대미술관의 ‘미래는 지금이다’ 전시의 오픈행사에 참석했던 피렌체한국영화제 관계자들의 제안으로 영화제 기간에 맞춰 개최하는 것으로 전시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전시 중단’이라는 예외적인 조항이 들어간 계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서는 “5월 부다페스트 한국문화원, 8월 프랑스 마르세유 전시가 예정돼 있어 운송비 절약 차원에서 전시 기간을 5월 초까지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비용을 한 푼이라도 줄여 보겠다는 생각은 가상하지만 아마추어도 아니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런 식으로 해외 전시를 진행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작품의 격과 전시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피렌체 현장에서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르무라트는 피렌체시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거나 중요한 미술관도 아니다. 찾는 이도 거의 없었고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 17일엔 ‘계약서에 따라서’ 전시작품이 철수되고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가 설치되고 있었다. 보도자료에서 밝힌 대로 ‘뉴미디어로 미술 한류를’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어서 낯이 뜨거웠다. 작가의 명예를 지켜 줘야 할 작품 소장자(국립현대미술관) 스스로 작품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크다. 미술계 인사는 “민간단체나 개인도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런 조건부 계약서를 쓰면서까지 전시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며 “작가들의 작품이 어린이 놀이기구보다 못한 취급을 받도록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린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좋은 전시공간에서 제대로 소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급조된 전시로 실적을 쌓고 이를 과대 포장하는 방식으로는 우리 현대미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기아퇴치 나선 스칼렛 요한슨 “나도 구호 음식 먹고 컸다”

    기아퇴치 나선 스칼렛 요한슨 “나도 구호 음식 먹고 컸다”

    지금은 '어벤저스'의 일원으로 '지구를 구하는' 스칼렛 요한슨(30)이 어린시절 정부가 제공하는 음식으로 연명했던 사실을 고백해 화제에 올랐다. 최근 요한슨은 미국의 기아 구호 단체인 ‘피딩 아메리카'(Feeding America)의 캠페인 광고에 출연해 기아 문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요한슨은 "미국에서의 어린이 기아는 현실적 문제지만 우리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면서 "함께 힘을 합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녀의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와닿는 것은 어린시절의 고통을 담담히 털어놨기 때문이다. 뉴욕 출생인 그녀는 덴마크 아버지와 유태인 어머니 사이에서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요한슨은 "어린시절 너무 가난해 정부가 주는 음식을 먹고 자랐다" 면서 "지금도 미국에서만 1600만명의 어린이들이 기아의 고통을 겪고있다" 고 밝혔다. 지금은 천만장자가 된 그녀지만 힘들었던 어린시절의 경험을 잊지않고 기아의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셈. 실제 그녀는 동료 배우 제레미 레너와 함께 ‘피딩 아메리카'의 홍보대사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피딩아메리카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 4650만 명이 식량지원 프로그램인 ‘푸드뱅크’를 이용하고 있으며 반대로 해마다 버리는 음식물 만도 총 1650억달러(17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전북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사업 표류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사업이 장기 표류하고 있다. 28일 전북도와 군산시에 따르면 2007년 군산시 직도 사격장 허가에 대한 보상으로 2009년부터 고군산군도 연결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고군산군도 건설사업은 새만금 방조제~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 간 8.76㎞를 교량으로 연결하는 공사다. 총사업비는 2500억원 규모다. 이 사업은 3공구로 나뉘어 추진 중이다. 1공구는 새만금 방조제~신시도 3.1㎞, 2공구는 신시도~무녀도 1.29㎞, 3공구는 무녀도~선유도~장자도 4.3㎞ 등이다. 애초 이 사업은 2012년 준공될 예정이었으나 아직도 공사 중이다. 예산 확보가 제대로 안 되고 보상이 지연된 데다 시공사마저 부도가 나 언제 완공될지 미지수다. 현재 1, 2공구는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어 연말에 부분 개통될 전망이다. 그러나 3공구 건설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시공사인 벽산건설의 파산으로 지난해 공사가 중단돼 공정률이 56%에 머물고 있다. 공사 재개를 위해 공동도급사인 동아건설이 대저건설과 컨소시엄 형태로 업체 승인 행정절차를 밟고 있지만 일부 하도급사가 적자 보전을 요구하는 바람에 공사 재개가 지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공사를 다시 시작해도 내년 말까지도 공사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 관계자는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건설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군산군도가 육지와 연결되면 천혜의 비경을 가진 선유도 등 서해안의 관광자원이 빛을 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미란다 커, 석양 앞에서 비키니 입고 고난도 요가… ‘아찔한 보디라인’ 눈길

    미란다 커, 석양 앞에서 비키니 입고 고난도 요가… ‘아찔한 보디라인’ 눈길

    호주 출신 모델 미란다 커(31)가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빼어난 몸매를 과시했다. 미란다 커는 “이 시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요. 생일 축하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긴 시 한편과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사진 속 미란다 커는 비키니 차림으로 석양 앞에서 허리를 뒤로 젖히는 요가 동작을 하고 있다. 특히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로 최고난도 요가 동작을 선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편, 미란다 커는 영국 출신 배우이자 전 남편인 올랜도 블룸과의 사이에서 아들 플린을 두고 있다. 호주와 미국 등 백만장자를 비롯해 저스틴 비버, 톰 크루즈 등과 같은 톱스타와도 끊임없는 염문설을 뿌린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핀란드 백만장자, 총선서 野 승리 견인

    19일(현지시간)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서 기업인 출신 유하 시필레가 이끄는 중앙당이 승리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중앙당은 49석을 확보, 각각 37석과 34석에 그친 국민연합당과 사회민주당을 눌렀다. 반이민, 반유로를 내세운 극우정당 핀란드인당은 38석을 확보, 제2당으로 떠올랐다. 핀란드 의회 전체 의석은 200석으로 중앙당 주도의 3~4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관심은 연정에 핀란드인당이 포함되느냐다. 원래 제2당으로 연정에 참여하는 정당은 통상 재무장관직을 차지한다. 그러나 핀란드인당은 공공연히 “연정이 성사되면 외무장관직을 요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반유로, 반이민 정책을 실제 관철하겠다는 뜻이다. 연정 구성 협상을 앞둔 시필레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만 언급했다. 중앙당의 승리와 핀란드인당의 약진에는 유럽의 경기침체와 그로 인한 우경화 현상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핀란드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노키아 이후 먹거리가 분명하지 않고, 러시아의 강경 노선으로 인해 지정학적 위험이 증가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2011년 정계에 입문한 시필레가 부각된 것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서다. 그는 이동통신, 바이오,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을 키운 뒤 매각한 백만장자 기업인 출신인 데다 루터교 부흥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스스로 “세속적인 정치인들과는 다르다”고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내놓은 정책도 임금동결, 복지 축소, 예산 삭감 등을 통한 핀란드의 국가 경쟁력 강화나 그리스 구제금융 반대 등이다. 이런 태도가 경기침체를 겪은 핀란드 도시 중산층과 시골 보수층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문만 닫았을 뿐인데…무고한 새 죽인 의사

    문만 닫았을 뿐인데…무고한 새 죽인 의사

    의사의 실수(?)로 무고한 새가 죽는 모습이 포착됐다. 최근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liveleak)에는 외국의 한 병원 복도 CCTV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는 병원 비상계단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 의사의 모습이 포착돼 있다. 복도 방화문이 닫히는 순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닫히는 문과 문틀 사이에 끼어 죽는다. 의사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입을 가린 채 우두커니 서 있다. 잠시 뒤, 남성이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고 문에 끼어 죽은 새의 모습을 촬영한다. 곧이어 의사가 문을 열자 새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는 수술용 모자를 벗어 새를 덮고 한참을 문에 기대어 서 있다. 그가 발을 이용해 새를 복도 가장자리로 옮겨 간다. 이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불쌍한 새”, “황당했겠네요”, “누구의 잘못인가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영상= LiveLeaker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홍문종 손석희 추궁 ‘성완종 다이어리’ 입장 “2012년 성 전 회장 만난 적 없다”

    홍문종 손석희 추궁 ‘성완종 다이어리’ 입장 “2012년 성 전 회장 만난 적 없다”

    손석희 홍문종 홍문종 손석희 추궁 ‘성완종 다이어리’ 입장 “2012년 성 전 회장 만난 적 없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15일 입장자료를 내고 “2012년 대선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난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 측은 ”이후 2013년, 2014년에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즈음부터 성 전 회장은 공식적인 행사장은 물론 사무실에 찾아와 선거법 구명 등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면서 “개인적 목적인 본인 선거법 구명요청, 자치단체장 공천 요청, 서산태안 보궐선거 후보자 선임을 요청하기 위해 공식적인 행사장 외에도 사무실을 찾아와 몇 차례 만남을 가진 적은 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성 전 회장 다이어리와 관련해 “’2014년 12월 27일 귀국 후 미팅’이라는 일정을 확인해 본 결과, 해외출장 중이었다”면서 “‘덕산스파’라고 기록한 해둔 것은 덕산에 있는 ‘리솜스파캐슬’이며, 당시 새누리당 충남도당정치대학원 수료식이라는 공식적인 행사에 특강 연사로 참석하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홍 의원은 전날 JTBC ‘뉴스룸’에 나와 성 전 회장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된 사실과 관련해 해명했다. 손석희 앵커는 “성완종 다이어리에는 2013과 지난해 각각 9번씩 홍문종 의원을 만났다고 돼있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홍문종 의원은 “그것보다 많이 만난 느낌이다. (내가) 사무총장이었으니까”라면서 “면담 일지를 가지고 있는데 느낌으로는 훨씬 많이 만난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홍 의원은 구체적인 기록 내용을 언급하자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손 앵커가 “지난해 충남의 목욕탕에서 만났다는 얘기도 있다. 목욕탕이 덕산 스파캐슬인 것 같다”고 묻자 홍 의원은 “그런 기억이 없다”면서 “(성완종 전 회장이) 심리적으로 도망 다녔던 기억이 있다.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그렇게 많이 만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손 앵커는 “리스트에 있는 18번을 다 확인할 필요는 없지만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주 만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앵커가 성 전 회장의 일지를 보며 홍 의원을 만났다고 적힌 시점에 대해 계속 묻자 홍 의원은 “나도 리스트를 확인해야겠지만 내 리스트에 의하면 훨씬 적게 만났다”면서 “(성 전 회장은) 집요하신 분이다. 검찰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했다. 성 전 회장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홍 의원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는 메모를 남겨 파문을 일으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석희 홍문종 인터뷰, 홍문종 “대선 때 성완종 만난 적 없다”

    손석희 홍문종 인터뷰, 홍문종 “대선 때 성완종 만난 적 없다”

    손석희 홍문종 손석희 홍문종 인터뷰, 홍문종 “대선 때 성완종 만난 적 없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15일 입장자료를 내고 “2012년 대선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난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 측은 ”이후 2013년, 2014년에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즈음부터 성 전 회장은 공식적인 행사장은 물론 사무실에 찾아와 선거법 구명 등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면서 “개인적 목적인 본인 선거법 구명요청, 자치단체장 공천 요청, 서산태안 보궐선거 후보자 선임을 요청하기 위해 공식적인 행사장 외에도 사무실을 찾아와 몇 차례 만남을 가진 적은 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성 전 회장 다이어리와 관련해 “’2014년 12월 27일 귀국 후 미팅’이라는 일정을 확인해 본 결과, 해외출장 중이었다”면서 “‘덕산스파’라고 기록한 해둔 것은 덕산에 있는 ‘리솜스파캐슬’이며, 당시 새누리당 충남도당정치대학원 수료식이라는 공식적인 행사에 특강 연사로 참석하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홍 의원은 전날 JTBC ‘뉴스룸’에 나와 성 전 회장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된 사실과 관련해 해명했다. 손석희 앵커는 “성완종 다이어리에는 2013과 지난해 각각 9번씩 홍문종 의원을 만났다고 돼있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홍문종 의원은 “그것보다 많이 만난 느낌이다. (내가) 사무총장이었으니까”라면서 “면담 일지를 가지고 있는데 느낌으로는 훨씬 많이 만난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홍 의원은 구체적인 기록 내용을 언급하자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손 앵커가 “지난해 충남의 목욕탕에서 만났다는 얘기도 있다. 목욕탕이 덕산 스파캐슬인 것 같다”고 묻자 홍 의원은 “그런 기억이 없다”면서 “(성완종 전 회장이) 심리적으로 도망 다녔던 기억이 있다.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그렇게 많이 만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손 앵커는 “리스트에 있는 18번을 다 확인할 필요는 없지만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주 만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앵커가 성 전 회장의 일지를 보며 홍 의원을 만났다고 적힌 시점에 대해 계속 묻자 홍 의원은 “나도 리스트를 확인해야겠지만 내 리스트에 의하면 훨씬 적게 만났다”면서 “(성 전 회장은) 집요하신 분이다. 검찰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했다. 성 전 회장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홍 의원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는 메모를 남겨 파문을 일으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호주서 골프 치던 70대 노인 악어에 물려

    호주서 골프 치던 70대 노인 악어에 물려

    ‘골프장에 나타난 악어에 사람이…경악?’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데일리뉴스는 지난 13일 호주 퀸즐랜드 포트 더글라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파머 시 리프 골프장(the Palmer Sea Reef Golf Course)에서 존 라히프(75)씨가 4피트(약 1.2m) 바다악어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그린에서 골프를 치던 존은 11홀에서 워터 해저드(water hazard) 인근의 공을 찾는 도중 악어의 공격을 받았다. 물가에 나와 쉬고 있던 악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악어는 자신의 주위로 다가오는 존의 오른쪽 종아리 부위를 기습적으로 물었다. 피를 흘리던 존은 곧바로 인근 모스맨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존은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을 찾기 위해 카트를 몰고 사고 지역까지 갔다”며 “연못 가장자리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악어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골프장) 물가서 공을 치지 말라”며 “악어의 일광욕을 방해한 내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호주에서는 1971년 악어가 보호종으로 지정된 후 개체수가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이로 자연에 인접해 있는 골프 코스에서는 악어 경고 표지판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당국은 인명 피해 방지를 위해 야생에 있는 악어를 농장이나 동물원으로 옮기는 정책을 함께 펴고 있다. 한편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주 잉글우드 미야카 파인스 골프장에서도 13피트(약 4m) 크기의 거대 악어가 나타나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영상= 7 news / ODN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다낭성 난소 증후군 여성의 임신준비

    다낭성 난소 증후군 여성의 임신준비

    생리불순 여성의 절반 정도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 진단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만성 무배란, 임상적 혹은 생화학적 고안드로겐혈증, 그리고 커진 난소 가장자리를 따라 10여개의 작은 난포가 염주모양을 하고 있는 양상 등 세가지 기준 중 두 가지 이상을 만족하는 경우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진단한다. 때문에 생리 불순이 있으면서 초음파상에 난소에 자잘한 혹이 보이면 거의 대부분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진단을 받게 된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생리주기에 여러 개의 자잘한 난포가 자라기 때문에 난포가 일정 크기 이상을 자라기가 어려워서 배란이 잘 되지 않는 질환이다. 이 질환의 가장 큰 문제는 가임기 여성이 만성 무배란이 되는 것이다. 부산 다산미즈한의원 서면점 김민애 원장에 따르면 “한의원에 다낭성 난소증후군 혹은 생리불순으로 치료를 위해 내원하는 여성들 중 출산을 한 여성들은 거의 없다”며 “대부분 출산을 하고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치료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무월경 상태가 길어서 치료를 하는 경우보다 오히려 부정출혈 때문에 일상생활에 불편 감을 느껴 내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임신을 위해서는 정확한 배란 날짜를 아는 것이 확률을 높일 수 있는데,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나 생리불순의 경우 배란날짜를 정확히 알기 힘들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조기폐경과 다르기 때문에 이 질환이 있다고 해서 불임이라고 진단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시상하부-뇌하수체 축의 기능약화, 인슐린작용의 결함 등을 내포하기 때문에 난자의 질이 정상배란 여성들에 비해 낮을 수 있다. 때문에 고령임신일 경우 고사난자로 인한 유산빈도 증가와 더불어 과배란제 사용 등의 시술로 인한 자궁내막의 약화 등 부수적인 문제도 함께 고려하여 임신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의 경우 미혼여성과 기혼여성의 치료과정을 다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혼여성의 경우 배란기능자체를 정상화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치료시간을 바탕으로 가임 전까지 난소의 기능을 최대한 살려 보전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가 된다. 기혼여성의 경우 배란기능을 정상화하는 것과 더불어 착상력을 높여 최대한 빠른 임신을 돕고 고사난자의 비율을 줄여 유산율을 낮추는 것 이 질환의 치료 목표가 된다. 스트레스, 환경적 요인으로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나 생리불순환자는 증가하는 반면 여성의 초산연령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임신이 잘 안되어서 난임으로 한의원을 방문하는 환자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생리불순은 대부분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경우가 많은데 피임약을 오랜 기간 복용하여 무배란 상태를 너무 오래 지속하게 되면 오히려 임신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 질환의 치료는 무배란 상태의 주기적인 월경이 아닌 배란이 되는 월경주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치료이며, 한약, 침, 뜸치료 등은 정상 배란주기를 맞추도록 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줄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부영그룹] 이 회장 ‘절대권력’… “후계구도 정해진 것 없다”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부영그룹] 이 회장 ‘절대권력’… “후계구도 정해진 것 없다”

    부영그룹의 후계 구도는 오리무중이다. 그룹 내 절대권력으로 통하는 창업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후계 구도 논의에 대해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자식들은 경영 전선에 뛰어든 상태다. 유학파인 장남 이성훈(48)은 부영그룹 부사장이다. 그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워싱턴대 법대 박사과정을 밟은 엘리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부사장은 지난해 7월 이사에서 해임됐다. 이후 이 부사장의 부영 지분은 2.2%에서 1.6%로 낮아졌지만 장자답게 유일하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유학 중인 차남 이성욱(46)씨는 고려대를 나온 뒤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밟고 있다. ㈜부영 임원과 부영파이낸스, 광영토건 등에서 이사를 맡았었다. 성욱씨는 한국에 있을 때 투자신탁을 만들어 운영한 경험이 있다. 막내아들은 이성한(44) 영화감독이다. 부영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이 감독은 당초 건설사를 다니다 결혼한 뒤 꿈을 좇아 2006년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스페어’ ‘바람’ ‘히트’ 등 3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금난을 겪던 2011년 영화 제작비 상당액을 그룹 계열사인 동광주택이 자금을 지원하고 이듬해 계열사 대화기건이 인수·합병해 적자를 떠안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재 부영엔터테인먼트는 모친인 나길순 여사가 감사 신분으로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은 현재 그룹 계열사 광영토건 감사로 재직 중이며 새로운 시나리오를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영 관계자는 “세 아들이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만 후계구도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아하! 우주] 우주 탄생시킨 ‘태초의 빅뱅’ 여기서 터졌다

    [아하! 우주] 우주 탄생시킨 ‘태초의 빅뱅’ 여기서 터졌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가 태초 ‘빅뱅 현장’ "왜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 사람은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였다. 미적분의 발견 업적을 놓고 뉴턴과 맞선 것으로도 유명한 라이프니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이 환상일 수도 있고, 모든 존재는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우리가 환상에 현혹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삼라만상의 모든 물질은 다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물론 이러한 의문을 품었던 사람은 라이프니츠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구 상에 인류가 나타난 이래 수많은 사람이 이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한 사람은 20세기 초반이 되기까지는 하나도 없었다. 인류의 이 유서 깊은 질문- '만물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답변은 1927년, 로만 칼러를 한 옷을 입은 벨기에 가톨릭 신부이자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1894~1966)가 내놓았다. -시간과 공간도 빅뱅으로 생겨난 것 대학생 때 토목공학을 공부하다가 1차대전에 참전한 후 천문학으로 방향을 튼 르메트르는 1927년, 팽창하는 우주를 나타내는 논문 ‘일정한 질량을 갖지만 팽창하는 균등한 우주를 통한 우리 은하 밖 성운들의 시선속도에 대한 설명’을 발표,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작은 ‘원시 원자’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되었다는 대폭발 이론을 최초로 내놓았다. 르메트르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그의 이론을 '원시 원자에 대한 가설'이라 불렀다. 르메트르는 후일 빅뱅 이론으로 발전된 이 가설에서,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이러한 팽창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기원, 즉 ‘어제 없는 오늘’(The Day Without Yesterday)이라고 불렀던 태초의 시공간에 도달한다는 선구적 이론을 펼쳐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당시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을 만난 르메트르가 자신의 우주론을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당신의 계산은 옳지만, 당신의 물리는 말도 안 됩니다"라는 혹평을 받기까지 했다. 르메트르의 '가설'은 나중에 '빅뱅' 이론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우주가 영원 이전부터 지금까지 정적인 상태로 존재한다는 이른바 정상우주론자인 영국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이 라디오 대담에서 대폭발 이론을 비꼬는 뜻으로 "그럼 빅뱅이라도 있었다는 거야? 하고 말한 데서 빅뱅이란 이름이 탄생했던 것이다.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 공간과 시간이 응축된 한 점이 폭발하여 우주가 출발했다는 르메트르의 빅뱅 이론은 이처럼 처음에는 푸대접을 면치 못했지만, 그러나 시간은 르메트르의 편이었다. 빅뱅 이론이 세상에 나온 지 2년 만에 한없이 정적으로만 보이던 이 대우주가 기실은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웅은 미국의 괴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었다. 처음에는 법학을 전공했다가 천문학으로 전향한 허블은 1929년 당시 세계 최대였던 윌슨산 천문대 망원경을 이용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했다. 그가 본 우리 주위의 모든 은하들은 지구로부터 후퇴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슨 끔찍한 병균에 오염되기라도 한 듯이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천문학자는 지구가 인간으로 오염되어서 모든 은하들이 도망가는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허블의 관측 결론은, 우주의 모든 은하들은 방향에 관계 없이 우리은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으며, 그 후퇴속도는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르다는 것이다. 거리와 후퇴속도와의 관계는 이른바 허블의 법칙으로 알려졌다. 과학사에서 최대의 발견으로 꼽히는 허블의 이 '우주 팽창'은 르메트르가 우주 원리를 통해 예견한 바 있었다. -우주는 우리 은하로부터 매순간 멀어지고 있다 이처럼 우주의 모든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은하가 그 중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비율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광장에 줄지어 놓인 걸상을 생각해보자. 각 걸상들이 같은 비율로 간격이 벌여가고 있다면 거기에는 달리 중심이란 게 있을 수가 없다. 한 차원을 늘려 3차원으로 생각해보자. 만약 밀가루 반죽에 건포도를 박아넣고 굽는다면 빵이 부풀 때 건포도의 간격들 역시 벌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온 우주에 있는 은하들은 그 사이의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기약없이 서로에게 멀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이 우주에는 중심도 가장자리도 달리 없다. -빅뱅의 결정적 증거 '마이크로파' 팽창 우주의 결정적인 증거는 그로부터 30여 년 후에 발견되었다. 1964년, 우주의 극초단파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우주에서 소음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소음은 어떤 한 영역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곳에서 균일하게 오는 것이었다. 미국 벨 연구소의 아노 페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최초로 발견한 이 마이크로파 잡음은 바로 빅뱅의 잔향으로, 우주배경복사로 불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안테나의 잡음을 잡기 위해 비둘기똥을 치우다가 우연히 이 빅뱅의 화석을 발견했는데, 이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둘기똥을 치우다가 금덩어리를 주운 셈이라고 부러워했다. 우리는 이 빅뱅의 화석인 마이크로파를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있다. TV에서 방송이 없는 채널을 틀 때 지직거리는 줄무늬 중 100분의 1은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우주가 탄생할 때 발생한 그 열기가 식어서 3K도의 마이크로파가 되어 138억 년의 시공간을 넘어 지금 우리 눈의 시신경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펜지어스와 윌슨이 발견한 우주배경복사는 정상상태 우주론의 도전을 물리치고 빅뱅 모델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로써 인류는 비로소 만물은 태초의 한 원시 원자에서 출발했다는 답을 갖게 되었다. 만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빅뱅 이론은 20세기에 이룩된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취로 꼽힌다. 이 소식을 라이프니츠가 들었다면 아주 기뻐했을 게 틀림없을 것이다. -TV '지직거리는 줄무늬' 100분의1이 '빅뱅' 흔적 그런데 130억 년 전 빅뱅이 있었다면 그 장소는 어디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우주는 중심도 가장자리도 없는 구조이므로, 당연히 빅뱅이 일어난 곳은 이 우주 전체일 수밖에 없다. 그 한 점 공간이 팽창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므로, 바로 당신이 있는 그곳이 빅뱅이 일어난 현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주론이 이쯤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이에 대한 천문학자들의 답은 이렇다. -빅뱅과 함께 시간과 공간이 탄생했으므로, 그런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지구 북극점에서 북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답을 벌써 1,500년 전에 내놓은 사람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 철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신자로부터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가?"하는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지가 창조됨으로써 비로소 시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전이란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와우! 과학] ‘빅뱅’은 어디서 터졌나?

    [와우! 과학] ‘빅뱅’은 어디서 터졌나?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가 ‘빅뱅 현장’이다! >어제 없는 오늘 "왜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 사람은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였다. 미적분의 발견 업적을 놓고 뉴턴과 맞선 것으로도 유명한 라이프니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이 환상일 수도 있고, 모든 존재는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우리가 환상에 현혹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삼라만상의 모든 물질은 다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물론 이러한 의문을 품었던 사람은 라이프니츠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구 상에 인류가 나타난 이래 수많은 사람이 이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한 사람은 20세기 초반이 되기까지는 하나도 없었다. 인류의 이 유서 깊은 질문- '만물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답변은 1927년, 로만 칼러를 한 옷을 입은 벨기에 가톨릭 신부이자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1894~1966)가 내놓았다. 대학생 때 토목공학을 공부하다가 1차대전에 참전한 후 천문학으로 방향을 튼 르메트르는 1927년, 팽창하는 우주를 나타내는 논문 ‘일정한 질량을 갖지만 팽창하는 균등한 우주를 통한 우리 은하 밖 성운들의 시선속도에 대한 설명’을 발표,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작은 ‘원시 원자’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되었다는 대폭발 이론을 최초로 내놓았다. 르메트르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그의 이론을 '원시 원자에 대한 가설'이라 불렀다. 르메트르는 후일 빅뱅 이론으로 발전된 이 가설에서,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이러한 팽창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기원, 즉 ‘어제 없는 오늘’(The Day Without Yesterday)이라고 불렀던 태초의 시공간에 도달한다는 선구적 이론을 펼쳐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당시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을 만난 르메트르가 자신의 우주론을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당신의 계산은 옳지만, 당신의 물리는 말도 안 됩니다"라는 혹평을 받기까지 했다. 르메트르의 '가설'은 나중에 '빅뱅' 이론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우주가 영원 이전부터 지금까지 정적인 상태로 존재한다는 이른바 정상우주론자인 영국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이 라디오 대담에서 대폭발 이론을 비꼬는 뜻으로 "그럼 빅뱅이라도 있었다는 거야? 하고 말한 데서 빅뱅이란 이름이 탄생했던 것이다.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 공간과 시간이 응축된 한 점이 폭발하여 우주가 출발했다는 르메트르의 빅뱅 이론은 이처럼 처음에는 푸대접을 면치 못했지만, 그러나 시간은 르메트르의 편이었다. 빅뱅 이론이 세상에 나온 지 2년 만에 한없이 정적으로만 보이던 이 대우주가 기실은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웅은 미국의 괴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었다. 처음에는 법학을 전공했다가 천문학으로 전향한 허블은 1929년 당시 세계 최대였던 윌슨산 천문대 망원경을 이용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했다. 그가 본 우리 주위의 모든 은하들은 지구로부터 후퇴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슨 끔찍한 병균에 오염되기라도 한 듯이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천문학자는 지구가 인간으로 오염되어서 모든 은하들이 도망가는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허블의 관측 결론은, 우주의 모든 은하들은 방향에 관계 없이 우리은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으며, 그 후퇴속도는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르다는 것이다. 거리와 후퇴속도와의 관계는 이른바 허블의 법칙으로 알려졌다. 과학사에서 최대의 발견으로 꼽히는 허블의 이 '우주 팽창'은 르메트르가 우주 원리를 통해 예견한 바 있었다. 이처럼 우주의 모든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은하가 그 중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비율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광장에 줄지어 놓인 걸상을 생각해보자. 각 걸상들이 같은 비율로 간격이 벌여가고 있다면 거기에는 달리 중심이란 게 있을 수가 없다. 한 차원을 늘려 3차원으로 생각해보자. 만약 밀가루 반죽에 건포도를 박아넣고 굽는다면 빵이 부풀 때 건포도의 간격들 역시 벌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온 우주에 있는 은하들은 그 사이의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기약없이 서로에게 멀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이 우주에는 중심도 가장자리도 달리 없다. >빅뱅의 결정적 증거 발견 팽창 우주의 결정적인 증거는 그로부터 30여 년 후에 발견되었다. 1964년, 우주의 극초단파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우주에서 소음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소음은 어떤 한 영역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곳에서 균일하게 오는 것이었다. 미국 벨 연구소의 아노 페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최초로 발견한 이 마이크로파 잡음은 바로 빅뱅의 잔향으로, 우주배경복사로 불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안테나의 잡음을 잡기 위해 비둘기똥을 치우다가 우연히 이 빅뱅의 화석을 발견했는데, 이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둘기똥을 치우다가 금덩어리를 주운 셈이라고 부러워했다. 우리는 이 빅뱅의 화석인 마이크로파를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있다. TV에서 방송이 없는 채널을 틀 때 지직거리는 줄무늬 중 100분의 1은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우주가 탄생할 때 발생한 그 열기가 식어서 3K도의 마이크로파가 되어 138억 년의 시공간을 넘어 지금 우리 눈의 시신경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펜지어스와 윌슨이 발견한 우주배경복사는 정상상태 우주론의 도전을 물리치고 빅뱅 모델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로써 인류는 비로소 만물은 태초의 한 원시 원자에서 출발했다는 답을 갖게 되었다. 만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빅뱅 이론은 20세기에 이룩된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취로 꼽힌다. 이 소식을 라이프니츠가 들었다면 아주 기뻐했을 게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130억 년 전 빅뱅이 있었다면 그 장소는 어디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우주는 중심도 가장자리도 없는 구조이므로, 당연히 빅뱅이 일어난 곳은 이 우주 전체일 수밖에 없다. 그 한 점 공간이 팽창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므로, 바로 당신이 있는 그곳이 빅뱅이 일어난 현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주론이 이쯤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이에 대한 천문학자들의 답은 이렇다. -빅뱅과 함께 시간과 공간이 탄생했으므로, 그런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지구 북극점에서 북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답을 벌써 1,500년 전에 내놓은 사람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 철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신자로부터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가?"하는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지가 창조됨으로써 비로소 시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전이란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모두가 한결같이 ‘모르쇠’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지목한 여권 핵심 인사들은 10일 일제히 전면 부인하거나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를 통해 배포한 입장 자료에서 “고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고 명복을 빈다”면서도 10만 달러(약 1억원) 수수 의혹에 대해 “맹세코 저는 그런 일이 없고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성 전 회장이 인터뷰에서 2006년 9월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돈을 전달했다고 시기·장소를 명시한 데 대해서도 “전혀 그런 일이 없다. 전적으로 지어낸 얘기”라고 주장했다.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해명자료를 통해 “(7억원 수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후보 자신이 클린경선 원칙하에 돈에 대해서는 결백할 정도로 엄격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캠프 요원들에게도 강조해 왔기 때문에 금품 거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입장자료에서 “성 전 회장은 검찰수사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을 즈음 이뤄진 통화에서 결백을 호소하며 구명을 요청한 바 있다”고 공개한 뒤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대해) 성 전 회장에게 자신이 있으면 검찰수사에 당당히 임해 사실을 명백히 밝히는 게 좋겠다고 했고,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했다. 앞으로 더이상 연락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것 때문에 나에게 좀 섭섭했던 모양”이라고 밝혔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너무 황당한 얘기다. 2007년 당시엔 성완종이란 사람을 알지도 못했다”며 “19대 국회 들어와서야 성 전 회장과 인사를 했다. 2012년 대선캠프에 있을 때 선진통일당과 합당 문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돈과 관련된 일은 일절 없었다”고 말했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며 “2007년 경선 때는 아예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을 몰랐고 19대 국회에서 알게 됐는데 그 양반과 돈 얘기가 오고 갈 관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실명이 언급되지 않은 데 대해 “내 이름은 빠져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서 시장 측은 “성 전 회장이 부산시장 이름을 몰랐겠느냐”며 “2012년 새누리당·선진통일당 합당 당시 성 전 회장이 원내대표로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과 카운터 파트너였지만 그 이후 이렇다 할 접촉은 없었다”고 전했다.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로는 유일하게 언급된 홍준표 경남지사는 “성 전 회장을 잘 알지도 못하고 돈을 받을 정도로 친밀감이 없다”며 “내 이름이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정치판에는 중진 정치인 이상이 되면 로비하려고 종종 빙자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완구 총리 측은 입장발표문을 통해 “19대 국회 당시 1년간 함께 의정활동을 한 것 외에는 친밀한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성 전 회장이 주도한 충청포럼에 가입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스마트폰으로 문서 위·변조 즉시 식별

    스마트폰으로 현장에서 곧장 문서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아날로그 문서에 디지털 암호화 기술을 적용해 식별하는 기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해 국내 특허를 출원했다고 9일 밝혔다. 기법은 QR코드와 스테가노그래피(투명인쇄) 부분으로 나뉜다. 문서의 여백에 문서 내용을 128비트로 암호화한 QR코드를 새기고, 가장자리엔 QR코드의 암호를 푸는 키를 눈에 보이지 않는 점으로 인쇄하는 것이다. QR코드와 스테가노그래피를 인식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은 스마트폰으로 QR코드 부분을 촬영하면 해당 문서에 기재된 내용과 QR코드에 담긴 내용이 일치하는지 여부로 진위를 그 자리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앱이 QR코드 암호를 못 풀거나, QR코드에 담긴 내용이 문서에 기재된 사항과 다르면 위·변조됐다는 뜻이다. 홀로그램이나 은화(숨은 그림)와 같은 기존 기법은 갈수록 교묘해지는 위·변조 기술 때문에 효과를 보기는커녕 악용되기 십상이다. 또 위·변조가 의심되는 문서를 국과수 등 전문기관에 감정을 의뢰하고 결과를 받아보는 데 오래 걸려 일선 수사관이나 금융기관 직원, 일반인이 실시간으로 위·변조 문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기술이 상용화되면 보통 사람들도 스마트폰만 있다면 진위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종 증명서, 신분증, 수표, 성적서 등 보안과 진위 확인이 필수인 문서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국과수는 이날 한국조폐공사와 공동 연구 및 활용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 기술 도입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국내의 다양한 문서발급 기관뿐 아니라 문서 위·변조가 만연한 해외에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新 국토기행] 제주 서귀포

    [新 국토기행] 제주 서귀포

    감귤과 올레길의 고장, 우리나라 최남단 항구 도시인 서귀포시는 아름다운 화산섬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연평균 17~18도의 따뜻한 기온, 그림 같이 펼쳐진 서귀포 칠십리 해안, 천재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곳. 서귀포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가 넘쳐 난다. 전국에 걷기 열풍을 몰고 왔던 제주 올레길이 처음 시작한 곳도 서귀포다. 사시사철 올레꾼들의 꼬닥꼬닥 발자국 소리가 이어지고 들판을 가득 메운 노란 감귤밭은 서귀포의 풍요를 말해 준다. 요즘 서귀포에는 중국인들로 넘쳐 난다. 중문관광단지 면세점에는 중국인 쇼핑 관광객이 줄을 잇고 올레길에도 중국어 소리가 왁자지껄 들린다. 과거 남제주군에 속했던 서귀포시는 서귀포항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981년 자치시로 승격했다가 2006년 7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과 통합해 행정시로 바뀌었다. 서호동에는 제주 혁신도시가 들어섰고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중산간 이곳저곳에는 중국자본의 대규모 휴양단지 건설사업이 한창이다. [볼거리] ●외돌개~월평포구로 이어진 올레 7코스… 중국 관광객도 북적 제주의 올레길 가운데 올레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귀포 7코스다. 외돌개를 출발해 법환포구를 거쳐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해안올레는 사시사철 올레꾼들이 넘쳐 난다.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가 유명하다. 7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 김수봉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2009년 2월에는 그동안 너무 험해 갈 수 없었던 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을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로 만들어 이어, ‘일강정 바당올레’로 이름 지었다. 7코스는 14.2㎞로 4~5시간이 걸린다. 올레꾼들이 7코스에만 몰리는 바람에 호젓한 올레길의 멋은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올레길 앞에 펼쳐지는 푸른 서귀포 앞바다의 풍광은 장관이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즐겨 찾는 올레길이다. ●천재화가의 예술혼 살아 있는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1916~1956)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평남 평원군을 떠나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서귀포로 피란을 왔다. 서귀포 앞바다 섶섬이 보이는 초가집 한 평 남짓한 셋방에서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1년여 고달픈 피란살이를 하다 그해 12월 이중섭은 서귀포를 떠났다. 서귀포는 이중섭과의 짧았지만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97년 그가 살았던 옛 삼일극장 일대를 ‘이중섭거리’로 이름 짓고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집을 복원했다. 2002년 11월에는 그가 피란살이를 했던 초가집 바로 옆에 이중섭미술관을 세웠다. 2012년 11월에는 일본에 거주 중인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94·한국명 이남덕)가 서귀포를 직접 찾아와 이중섭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했다. 야마모토는 이중섭으로부터 사랑의 징표로 받았던 팔레트를 70여년간 고이 간직하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서귀포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추사체·세한도 남긴 초가집 복원… 역사의 흔적 쫓는 ‘추사 유배길’ 올레길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속살을 보여 준다면 유배길은 유배 문화에 빠져 볼 수 있는 역사의 길이다. 조선시대 제주 섬은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500년 동안 200여명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걸작 세한도를 남겼다. 추사 유배 1길은 대정읍 인성리 추사 유배지를 중심으로 추사기념관, 정난주 마리아 묘, 대정향교를 거쳐 다시 추사 유배지로 돌아오는 8㎞의 순환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추사관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그의 걸작 세한도를 본떠 지어졌다. 추사가 머물렀던 , 강도순의 제주 초가집은 복원돼 있다. 추사 김정희는 이곳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세한도를 그렸다. 추사 2길에선 추사의 한시,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추사 유배지에서 시작해 오설록 녹차밭까지 이어지는 8㎞의 코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추사 3길인 사색의 길에선 산방산과 안덕계곡을 따라 제주의 바다, 오름, 계곡의 풍광을 느낄 수 있다. 대정향교에서 시작, 산방산을 거쳐 안덕계곡까지 이어지는 10㎞에 4시간 정도 걸린다. ●서귀포서 한라산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등산로 ‘돈내코 탐방로’ 돈내코 탐방로는 서귀포에서 한라산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등산로다. 돈내코 유원지 상류에 있는 탐방안내소(해발 500m)를 출발해 평궤대피소(해발 1450m)를 지나 한라산 남벽 분기점(해발 1600m)까지 이어지는 7㎞ 탐방로다. 편도 3시간 30분 소요된다. 평궤에서 남벽 분기점까지는 거의 평탄 지형으로 한라산 백록담 화구벽의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돈내코 탐방로는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상록 활엽수림과 단풍나무, 서어나무 등 낙엽 활엽수림과 구상나무, 시로미 등 한대수림이 수직적으로 분포,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 변화상을 관찰할 수 있다. 평궤에서 남벽 분기점 일대는 한라산 백록담의 현무암이 넓게 분포해 있고 소규모의 용암 동굴과 한라산 백록담 조면암의 라바돔(용암 언덕)을 가장 멋있게 조망할 수 있다. 윗세오름과 연결된 남벽 순환로를 따라가면 어리목과 영실로 하산도 가능하다. ●제주 전통 배 ‘태우’ 형상화한 새연교… 화려한 조명에 야간 관광명소 서귀포항 바로 앞 작은 새섬은 본래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2009년 9월 새연교가 놓이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서귀포항과 새섬을 연결하는 길이 169m, 높이 45m 새연교는 제주의 전통 배인 ‘태우’를 형상화했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을 한 바퀴 도는 1.2㎞ 산책로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서귀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라는 의미를 담은 새연교는 일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한다. 새연교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외줄 케이블 형식을 도입한 사장교로, 바람과 돛을 형상화한 주탑에 화려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시설까지 갖춰 야간에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야간 관광명소로 인기가 높다. ●민물·바닷물의 어울림 ‘쇠소깍’… 깊은 수심·기암괴석·소나무숲 조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인 쇠소깍은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구로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해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연못’이라는 뜻의 ‘쇠소’에 마지막을 의미하는 ‘깍’이 더해진 제주 방언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빛깔은 유난히 푸르고 맑다. 깊은 속을 그대로 비추는 계곡 바위 틈으로 썰물 때면 솟아오르는 지하수의 신기한 경관도 바라볼 수 있다. 쇠소깍은 서귀포 칠십리에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뤄진 기암괴석과 소나무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쇠소깍이 위치한 하효동은 한라산 남쪽 앞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감귤의 주산지로 유명한데 마을 곳곳에서 향긋한 감귤 냄새가 난다. ●제주 368개 오름 중 최고 ‘따라비오름’… 가을엔 은빛 억새물결 장관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기생화산)은 말굽 형태로 터진 3개의 분화구를 중심에 두고 좌우 2곳의 말굽형 분화구가 쌍으로 맞물려 3개의 원형분화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화산 폭발 시 용암이 오름의 아름다운 능선을 창조해 제주의 368개 오름 가운데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 북쪽에 새끼오름, 동쪽에 모지오름과 장자오름이 있어 가장 격이라 해 ‘딸 애비’라고 불리던 게 ‘따래비’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높이 342m, 둘레 2633m인 따라비오름은 해마다 가을이면 억새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해 질 녘 가을 햇빛에 출렁이는 은빛 억새 물결은 장관이다. 인근의 갑마장길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갑마장길은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하는 최고급 말인 갑마를 사육했던 국영목장인 갑마장에 나 있는 길로 광활한 초원과 억새밭, 따라비오름 등에 걸쳐 있다. 제주 조랑말의 생태와 목동인 말테우리의 삶, 제주마와 관련된 유물 등 100여점이 전시된 조랑말 박물관도 볼거리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먹거리] ●제주 여름 대표 음식 ‘자리물회’ 제주에서는 서귀포 보목리 앞바다에서 잡은 자리돔을 최고로 쳐 준다. 자리돔을 뼈째로 썰어 채소와 함께 토장 등으로 양념한 후 시원한 물을 부어 먹는 자리물회는 제주 여름 음식의 대명사다. 자리돔은 보리가 익을 무렵인 5월이 가장 맛있다. 자리물회는 자리돔의 비늘을 긁어내고 머리와 지느러미 내장을 제거하고 썰어서 식초를 약간 뿌려 둔다. 상추, 깻잎 등의 채소들은 잘게 썰고 오이는 채를 썬다. 토장과 다진 마늘 등 양념을 넣고 무친 후 찬물을 부어 먹는데 제피나무의 잎을 약간 넣으면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신다. 자리돔에 있는 양질의 단백질과 신선한 채소가 가진 각종 비타민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어 무더위로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 데 뛰어나다. 자리돔은 바로 소금에 절여서 젓으로 담그기도 하고, 구이로 먹기도 한다. ●겨울 제주의 진미 ‘방어회’ 방어는 전갱이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로 몸길이는 1m쯤이고, 몸 색깔은 등 쪽이 회색을 띤 푸른색이며, 배 쪽은 은백색이다. 주둥이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세로로 그어진 노란 줄이 있다. 최남단 마라도 인근 바다에서 잡아 올린 방어를 최고로 친다. 마라도 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해 이곳에서 사는 방어는 몸집이 크고 살이 단단하다. 방어회는 겨울철 제주의 진미다. 뱃살에 기름이 잔뜩 오른 방어는 참치가 부럽지 않다. 간장이나 초장, 쌈 된장과도 모두 잘 어울리며 제주 사람들은 신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기름진 방어와 신 김치는 궁합이 잘 맞는다. 회를 뜬 방어 머리를 구워 낸 머리 구이와 방어뼈를 넣고 끓인 방어 김치찌개도 별미다. 해마다 겨울이면 모슬포항에서 방어잡이 방어축제가 열린다. 무게에 따라 2㎏ 내외는 소방어, 4㎏ 이하는 중방어, 5㎏ 이상은 대방어로 쳐준다. 대방어일수록 회 맛이 더 뛰어나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The OLB Times] 잠자는 호랑이들을 깨워준 돌격대장의 형님리더십

    [The OLB Times] 잠자는 호랑이들을 깨워준 돌격대장의 형님리더십

    -김기태 기아 타이거즈 감독 ‘돌격대장’으로서 쌍방울 레이더스를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켰던 사나이. 기나긴 침체에 빠져있던 쌍둥이군단을 특유의 ‘형님리더십’으로 휘어잡으며 11시즌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2013시즌)시킨 김기태 현 기아 타이거즈 감독. 그가 2011년 이후 3년 째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호랑이 군단과 함께 다시 한 번 비상하려 하고 있다. 6전 6승 무패로 현재 순위 1위, 팀 평균자책점 1위(1.67), 선발진 퀄리티스타트 2위(4회), 팀 출루율 3위(.383) 등 수많은 지표들에 기아 타이거즈의 이름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시즌 초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일이다. 물론 아직 6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는 점은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호랑이 군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점은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사실이다. 작년 겨울, 타이거즈의 수장으로 선임된 김기태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누구보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트윈스 시절부터 유명했던 특유의 형님리더십을 이용하여 선수들과 급속도로 친해졌고 빠른 신임을 받았다. 그러면서고 선수들의 문제점도 빠르게 파악해냈고, 고쳐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오키나와 캠프에서 김 감독은 외야수 ‘김다원’을 1대1로 배팅 지도했다. 공을 직접 토스해주며 타격자세를 만드는 데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이대형의 빈자리를 김다원에게 맞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김다원은 김 감독의 가르침에 보답하듯, 현재 타격 1위(.500), 출루율 1위(.600), OPS 9위(1.163)를 기록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김 감독은 오키나와 캠프 당시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딱히 할 말이 없어요.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지켜보고 있어요. 아프지만 않는다면 충분히....”라고 말했다. 최희섭을 염두해 주고 하는 말이었다. 사실 최희섭에겐 이번 시즌이 선수생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침체가 길어졌고, 기아의 많은 홈 팬들조차 그에게 거는 기대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하는 심정으로 준비한 스프링캠프였다. 비장함으로 가득찬 제자를 바라보는 김기태 감독은 무한신뢰로 보답했다. 이범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의 주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격감은 전성기 시절에 못 미쳤다. 감독으로 새로 선임된 만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주장자리도 교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단순히 베테랑을 예우해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범호의 기량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그의 무한신뢰가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빛을 발하고 있다. 최희섭과 이범호는 나란히 홈런 3개로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고 OPS도 각각 2위(1.329), 7위(1.190)를 달리며 일찌감치 부활에 청신호를 켰다. 겹경사(?)로 검증된 투수인 윤석민까지 돌아왔다. 그를 마무리로 기용하겠다는 김 감독의 의사가 이슈가 되었지만 양현종-스틴슨-험버가 모두 제 역할을 해주며 논란을 일단락 시켰다. ‘되는 집안은 뭘 해도 된다’는 말처럼 신인급인 문경찬까지 호투를 하며 김 감독의 얼굴에 미소를 환하게 짓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 6경기 밖에 하지 않았다. 김 감독도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주에 NC, 삼성과 6연전을 치르는데 여기에서 우리 팀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만약 이번 주에도 선전을 이어간다면, 김기태 감독의 타이거즈가 80,90년대를 제패한 전설의 해태 타이거즈가 되지 못하란 법이 없다. 이번 주 6경기에 김기태 감독의 타이거즈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루이스 김 통신원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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